기맥과 중요 지맥 산행(완료)/금북기맥(금북·완)

금북기맥 제2구간 지티고개에서 부시치고개까지 산행 후기

칠갑산 사랑 2012. 8. 3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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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남도 부여군과 보령시의 금북기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2년 08월 31일 (금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맑고 화창하였으나 무척 무더웠던 날씨

산행온도 : 영상 17도에서 영상 28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지티고개(40번 지방도로)-잣나무 군락지-양천허씨 가족묘지-미첼 데이비슨 묘지-201봉-시멘트 임도-4번 표식-337봉-379봉-397봉-

                 금지사 갈림 삼거리 임도-묵은 헬기장-이정표(금지사 0.6 Km, 가덕리 3.3 Km 및 수리바위 6.3 Km)-헬기장-월명산(544봉)-

                 이정표(금지사 0.1 Km, 상천저수지 3.5 Km 및 수리바위 6.8 Km)-520분기봉-이정표(금지사 0.3 Km, 아홉사리고개 4.3 Km 및

                 수리바위 7.1 Km)-종2품안동김공 묘지-405 분기봉-큰낫고개-작은낫고개-천덕산(343봉, 삼각점)-실제 천덕산(363봉, 묵은 헬기장)-안부-

                 비득재(4번 지방도로)-병목산(346봉)-333봉-안부-방화선 같은 임도-새재 안부-20여분 알바-280봉 삼각점(서천 423)-정부인 전주이씨 묘지-

                 삼각점-지적경게점-이정표(옥녀봉 1.4 Km 및 학산 상기-사거리 안부 이정표(옥녀봉, 미산면 옥현리 및 옥수정옥녀쉼터)-방화선 같은 비포장

                 임도-옥녀봉 01/02 이정목-용연 갈림 이정표-옥녀봉 01/03 이정목-나무 벤취-옥녀봉 01/04 이정목-중량리옹달샘 갈림 이정표-

                 옥산옥녀봉(368봉)-비포장 임도-굴-벌목된 밤나무 식재지대-조릿대-잿말재(2차선 포장도로)-밤나무 밭-잠시 알바-경주김공 묘지-비포장

                 임도-4번 지방도로-부시치고개(4번 지방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7.00 Km (접속구간 00.00 Km)

산행시간 : 맑은 날씨에 조망 즐기며 무더위로 천천히 10시간 50분 (06시 05분부터 16시 55분까지)

교통편 : 애마 이용해 지티고개에 주차 후 산행 시작

             홍산개인택시 011 452 2839로 부시치고개에서 지티고개 복귀(20,000.- 음료수 한병 무료)

 

금북기맥이란 ???

박성태님의 산경표에 의하면 백두대간 천왕봉(1508봉)에서 시작하여 말티고개, 선도산(547봉), 상당산성, 좌구산(657봉), 보현산(481봉)을 지나 칠장산(516봉)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과 갈라지면서 한남금북정맥은 끝이 나며 이어서 금북정맥은 칠현산(516봉), 안성 서운산, 천안 흑성산(519봉), 아산 광덕산(699봉), 청양 백월산(560봉), 예산 수덕산(495봉)을 지난다.

산줄기는 예산 가야산(678봉)에서 잠시 주춤거리다 성왕산(252봉), 백화산(284봉)를 거쳐 태안반도로 들어 반도의 끝 안흥진에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산경표에 금북정맥은 금강과 별로 관계가 없는 오서산과 가야산을 경유한다는 논란이 있으며 따라서 금북정맥 백월산에서 내려서다 오서산으로 향하지 않고 직진하여 성태산(624봉), 조공산(399봉), 월하산(423봉),
월명산(544봉), 옥녀봉(380봉), 봉림산(346봉), 오석산(127봉), 남산(147봉), 서대산(104봉), 중대산(102봉)을 지나 장항 앞 바다 금강 하구에서 끝을 맺는 또 하나의 산줄기를 금북기맥이라고 부르는데 이 명칭은 공식명칭이 아니고 그냥 편의상 붙인 이름이다.

다만 박성태님의 신산경표상에는 속리산 천왕봉에서 분기하여 장항 앞바다에 이르는 산줄기를 호서정맥이라 명칭하고 백월산에서 안흥진에 이르는 산줄기를 금북기맥이라 칭하고 있어 원 산경표와는 다른 주장을 하고 있음도 알아야 할 것이다.

금북기맥은 청양의 백월산에서 시작해 장항 앞바다인 금강 하구까지 이어지는 69.4 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무더위와 잡목으로 고생했지만 멋진 조망으로 오랫만에 산행을 즐긴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유럽 출장을 다녀온 지난 주에는 산행도 못하고 머리 아픈 일이 생겨 처리하다 보니 몸은 자꾸만 아파오고 머리는 갈수록 복잡해진다.

하나 처리를 해 놓고 한숨 돌리고 나면 새로운 일이 연이어 터지며 다시 골머리를 앓는 그런 시간의 연속이기에 대충 일 처리 해 놓고 하루쯤 산에 들어 머리도 식힐겸 다녀 오기로 하는데 마침 가려고 했던 산줄기 옆 그곳에서 일이 생기고 저녁에 잠깐 손님과 만나기로 약속을 하니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이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배낭 메고 양복 차려 애마에 실은 후 출발하니 예상보다 늦게 산행 들머리인 지티고개에 도착을 하고 한쪽 비포장 임도에 주차시킨 후 여명이 밝아 오길 기다렸다 아침 6시를 넘기자 마자 지난번 내려오며 봐뒀던 짧은 절개지를 타고 전봇대 뒤로 오른다.

잠시 오르다 등로를 살펴보니 우측에서 오르는 등로와 합류되는 작은 등로를 만나 혹시나 하고 내려가 보이 그곳이 바로 의성동산이고 그 앞에는 커다란 이정석이 서 있으며 절개지쪽보다는 이곳 의성동산쪽에서 오르는 산님들이 많은듯 보였다.

또한 최근에 다가온 강력한 태풍이였던 볼라벤과 덴빈으로 인해 큰 거목과 작은 잡복의 잎새귀들이 수없이 잘리고 꺽여 등로를 가득 메우고 있어 그 위력을 실감했으며 그 피해가 산행에 큰 장애물이 되어 아주 어렵게 진행하는 시간의 연속이였다.

산행 후 약속한 손님을 만나 잠시 일처리 잘 하고 막히는 도로를 타고 집으로 복귀해 가족들과 삼겹살로 소맥 한잔 나누니 온 몸이 피곤해지며 금새 잠자리로 빨려 든다.

 

어제까지 내리던 폭우성 장대비가 그치고 맑게 갠 파란 하늘엔 하얀 뭉게 구름이 떠다니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처럼 보이지만 등로 위엔 아직까지도 한여름 무더위가 남아 산행하는 산객의 온 몸을 땀으로 샤워 시키고 있다.

그래도 한발 두발 걸어 옥녀봉 오름 임도에서 잠시 시원한 물 한모금 마시며 뒤돌아 보니 그곳에 오늘 이 산객이 지나온 마루금이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아름다운 이름 하나 하나를 불러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좌측 저 멀리 높게 솟아 있는 봉우리가 오늘 산행 중 가정 높은 높이를 자랑하는 월명산이고 내려와 중앙 우측의 반야봉을 닮아 있는 산이 두개의 천덕산이며 그 좌측 봉우리가 비득재 포장도로를 지나 오른 병목산이다.

고도가 낮고 평야지대의 가운데를 통해 흐르는 산줄기이지만 그 어느 첩첩산중의 풍경 못지 않게 멋있어 이런 모습을 보고 넘실거리는 산그리메라 말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구간 가족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내려 와 편안하게 만났던 지티고개에 다시 도착해 홀로 산행 준비를 하면서 여명을 빛을 맞이한다.

촉촉히 젖어 있는 도로를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눈가를 찌푸려 보지만 풀섶에 내려 앉아 있는 이슬의 양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다.

40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지티고개는 부여의 외산면과 내산면을 이어주는 고개로서 그 유래를 찾아보니 지티리는 지티마을과 괴목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지티마을은 985년경 안동 장씨가 이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외산면 경계인 지티고개 아래에 위치하였으므로 지티라 칭한다라는 설명이 되어 있다.

산행 들머리는 도로 건너 몇개의 전봇대가 보이는 곳에서 제일 위쪽 즉 사진의 우측 끝자락에 서 있는 곳을 통해 짧은 절개기로 오르며 시작되지만 많은 산님들은 이 지티고개를 완전히 넘어 외산면쪽으로 가면 의성동산이란 커다란 이정석이 서 있고 그곳 비포장 임도를 통해 들어가고 있는듯도 보였다.

 

능선으로 들자마자 간벌된 멋진 잣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잠시 더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양천허공 가족묘지인 듯한 많은 묘지가 작은 공동묘지를 이루고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잣나무 군락지의 멋진 등로로 빠져 나오지만 간벌된 나무들이 널부러져 있어 등로 찾기조차 쉽지 않다.

다시 어렵게 정상 등로를 찾아 위로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서 자주 만났던 미첼 데이비슨 묘지가 나타나는데 타국에 와 55년이란 짧은 삶을 살고 이곳에 묻혀있는 이유가 궁금한 시간이다.

 

미첼 데이비슨 묘지를 지나 풀섶을 헤치고 오르니 벌써 풀섶에 남아 있던 물방울이 등산화를 적시기 시작하고 흥건히 젖어 온다.

짧은 잡목지대를 지나니 묘지 한기가 다시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 좌측 잡목 사이로 환하게 떠오르는 일출을 만나는데 아쉽게도 잡목으로 인해 잘 담지 못한다.

아쉽게 멋진 일출을 담지 못하고 무명봉으로 올랐다 만나는 잡풀이 무성한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을 하니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조금 늦었지만 아름다운 일출을 잠시 감상하고 다시 출발한다.

근 2개월 정도 매주 산에 들었지만 늘 만나지 못했던 일출을 기대도 하지 않고 올랐는데 오랫만에 이렇게 만나니 감개무량한 시간이 되였다.

 

잡목이 우거진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바로 아래에 잘 정돈된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앞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인다.

그 시멘트 임도를 타고 오르면 좌측으로 산줄기가 이어지고 그곳을 통해 오르며 오늘의 산행도 이어질 것이다.

어제까지 두개의 큰 태풍이 지나가서 그런지 공기는 정말로 상쾌하고 깨끗한 느낌으로 폐부에 와 닿는 촉감이 참으로 좋다.

개인적으로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는 시간에서 이렇게 막 일출이 시작된 시간까지의 짧은 시간을 제일 좋아하기에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시간에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오른자만이 누리는 특권은 아닐까도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다.

 

묘지를 뒤로 하고 키큰 풀섶을 ㅃ!ㅏ져 나와 시멘트 임도에 도착을 하니 등산화는 이미 흥건히 젖어 있고 등산 바지 또한 축축하지만 지금까지 젖었던 축축함과는 달리 참을만한 그런 순간이다.

시멘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오르니 임도 우측 아래로 밤나무 밭이 나타나는데 식재된지 몇년되지 않았는지 키 작은 밤나무들이 무럭 무럭 잘 자라고 있고 그 아래 저 멀리 방금전 올라 온 40번 지방도로 뒤로 지티마을과 그 뒤를 병풍처럼 둘러 싸고 있는 산줄기가 아름답게 다가온다.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아름다운 풍경에 오늘 하루의 멋진 조망과 즐거운 산행을 기대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임도를 타고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이 산객이 넘어 온 201봉과 시멘트 임도가 보이고 그 좌측 저 멀리 지난 구간 어렵게 진행해 온 금북기맥 산줄기가 아련히 다가온다.

진행하며 많은 땀을 흘리던 시간은 고통과 어려움에 몸부림을 치다가도 이자서 뒤돌아 보면 아련한 추억만이 남아 있음을 다시 한번 가슴에 담아 보는 아침이다.

조금씩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밝은 빛이 조금씩 자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시작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시멘트 임도를 타고 계속 오르니 임도가 좌측으로 크게 꺽이는 우측 가장자리에 빨간 바탕색에 하얀 글씨로 아라비아 숫자 3이 크게 서 있다.

계속 그 시멘트 임도를 타고 완만한 오르막 임도를 오르니 임도 좌측에 금지사란 이정표가 서 있다.

아무리 지도를 찾아 봐도 금지사가 어디에 있는지 나타나 있지 않기에 그저 최근에 만들어진 작은 암자나 절이라 생각하며 오른다.

한동안 그렇게 시멘트 임도를 타고 오르니 시멘트 임도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부분에 4란 아라비아 숫자가 적힌 철판이 보인다.

이곳에서 좌측 능선을 타고 오르라 되어 있기에 한동안 찾아 보지만 우거진 잡목으로 인해 능선으로의 접근조차 쉽지 않아 좌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며 진행하기로 한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이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계속 진행하면 금지사 갈림 이정표가 서 있는 삼거리 안부지나 금지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올라가니 곧이어 밤나무 밭이 나타나고 그 밤나무 밭을 지나 능선쪽으로 오르니 묘지 몇기가 눈에 들어 온다.

그 묘지 앞에 서서 좌측 아래를 바라보니 그곳에 환상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올라온 등로는 물론이고 우측의 지티리와 좌측의 반교리 마을이 아름답고 지난 구간 어렵게 등로 찾아 내려왔던 마루금 역시 아름답게 이어져 있다.

좌측의 반교리 뒷쪽으로는 장군봉에서 아미산으로 이어지는 멋진 산군들도 이 산객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

산행 자체의 즐거움도 있지만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 주위 산들을 바라보며 또 다른 꿈을 만들어 가는 시간 역시 무시못할 맥 잇기 산행의 즐거움은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장군봉과 아미산 아래 조용히 자리잡고 있는 반교리 마을이 아침 햇살이 비추며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온다.

유럽을 자누 다니기에 그곳 농촌 마을을 바라보며 참으로 아름답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풍경에서 우리나라 농촌의 모습을 아쉬워했는데 오늘 내려다 보는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 마을은 지금까지의 이 산객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고 있다.

반교리는 백제 때는 대산현에 속하였으나 그 후 홍산권에 속하는 지역이고 조선시대는 홍산현 내산면이었다.

조선 말기 행정구역 개혁 때에 손대리 일부를 병합하고는 이곳에 널판으로 놓은 다리가 있다 하여 판교라 부르다가 반교라고도 불렀는데 그 이름을 따서 반교리라 하고 부여군 외산면에 편입하였다.
마을에 금반형 명당이 있다 해서 금반형마을, 마을에 돌이 많아 도팍골, 옛날에 배나무가 많아 배나무골 등이 있는 마을이다.

 

밤나무 밭 위 능선으로 올라 어렵게 주등로를 만나 우측으로 진행을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수많은 부러진 나뭇가지들과 나뭇잎이 등로를 가득 메워 산행에 여간 어려움을 주고 있지 않다.

간간히 잡목도 산객의 발목을 잡고 키 큰 거목까지 쓰러져 등로를 가로막는 모습에서는 2년전 금북정맥 산행 시 만났던 등로 위 부러진 나뭇가지와 마찬가지로 곤파스란 태풍이 연상될 정도로 이번 볼라벤과 덴비이란 태풍이 얼마나 강력하고 거대한 바람이였는지 알려주고 있다. 

조금 더 자연 보호과 자연친화적인 삶이 무엇이고 어떻게 후손들에게 이 자연을 물려 줘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시점에 온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진행해 바위 하나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337봉에 도착한다.

 

등로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는 나뭇가지들과 나뭇잎으로 인해 점점 산행 시간이 늘어나며 체력적인 고갈이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다시 천천히 등로를 타고 큰 오르내림이 없이 평이하게 진행하니 등로 좌측 앞으로 이제부터 올라야 할 마루금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등로 우측으로는 성지지맥과 저 멀리 장군봉에서 아미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또한 아름답게 손짓을 하고 있다.

언젠가는 다시 내려 와 저 아미산과 장군봉 줄기를 타고 넘으며 오늘을 기억 할 기회도 있을 것이다.

 

등로 우측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아미산을 가운데 두고 우측으로는 만수산이 그리고 좌측으로는 장군봉이 흐르는 모습이 아름답다.

아침 햇살이 떠 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붉게 물들이고 그 아래 박무가 드리워져 있지만 짙은 안개로 인해 제대로 된 풍경 한번 보지 못한 이 산객에게는 이런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즐거워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잡목이 앞을 가려 선명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근래들어 가장 좋은 조망과 풍경이다.

 

아무 표식도 없이 꺽여 등로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는 잡목에 신경을 쓰다 보니 언제 지났는지도 모르게 375봉과 373봉을 넘어 진행하게 되고 그래고 이곳 373 정상에서는 선답자들이 준.희님의 아크릴판 정상 이정표를 만났다고 하기에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하고 지나치게 된다.

잠시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타고 진행나니 무명봉 넘어 등로는 완만하게 내리막 마루금으로 이어지고 잡목과 키큰 소나무가 적당히 어울려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지만 진행하는데엔 무척 고통이 따르고 쉽지 않은 산행길이 되였다.

  

그렇게 계속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가끔 차량 이동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금지사 올라가는 시멘트 임도가 지나는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시멘트 포장도로는 좌측으로 올라 금지사로 향하고 그 가운데 녹슨 금지사 안내판 이 서 있고 그 우측으로는 비포장 임도도 보인다.

이곳에서 살펴보니 처음 산행 시작후 나즈막한 201봉 넘어 내려가 만났던 시멘트 포장 임도가 바로 이곳까지 이어지고 금지사로 통하는 것을 알게 된다.

저 녹슨 금지사 안내판 우측 능선으로 기맥 마루금이 이어지고 잠시 벤취에서 휴식 후 저곳으로 오르며 또 다시 산행이 시작된다.

 

금지사로 통하는 임도 갈림 삼거리 우측 아래에는 벤취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배낭 내려 시원한 얼음물 한모금 마시며 그 아래로 펼쳐진 아름다운 가덕리와 반교리쪽 마을 풍경을 내려다 본다.

가덕리는 백제 때부터 홍산의 문화권에 속했으나 고려시대 말기부터 정치적 변화로 은둔하는 씨족이 자리를 정했다 하나 정착하지 못하였고 마을형성은 1400년대 조선 태종 때로 추측한다.

1700년대 파평윤씨들이 정착하면서 마을형성이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홍산현 내산면 지역으로 나무가 많아서 나무를 이용하여 나무바가지(가리박)를 가공하여 파는 집이 있었으므로 가리점골 또는 가리정골에 이어 가덕이라 하였는데 조선 말기 행정구역 개혁 때에 손대리, 손사리 일부를 병합하여 가덕리라 하여 현재에 이른다.

조선시대 사화에 몰린 한 선비가 정착하여 땅을 일구고 살았다 하여 손대, 아무리 어려워도 겸손을 잃지 않는 선비가 처음 낙향한 마을이라 하여 손사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다.

우측 저 멀리로는 반교리와 지티리를 지나 지난 구간 진행해 온 마루금이 너무나 아름답게 시야에 들어 온다.

 

녹슬어 가는 금지사 안내판 뒤로 나 있는 능선 진입로를 타고 들어가니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는데 이곳 역시 부러지고 잘려진 나뭇가지들이 성가시게 굴고 특히나 거대한 소나무들까지 부러져 등로를 막고 있어 그곳을 우회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

한참을 오르니 다시 무명봉을 넘어 잠시 안부로 내려가더니 또 다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 등로를 타고 오르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더니 그곳에는 키 큰 잡풀들이 무성한 폐 헬기장이 나타난다.

그 헬기장 뒷편으로는 월명산이 멀지 않았음을 알리는 잡목과 소나무 숲 넘어 하늘이 올려다 보인다.

 

헬기장 지나 다시 능선으로 들어가니 금새 바위들이 산재해 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하고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에 tnflqkdnl rkffla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가덕리 3.3 Km 방향에서 올랐고 이제 금지사까지는 0.6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인데 우측으로는 수리바위 6.3 Km란 방향과 거리 표시가 되어있다.

그곳 수리바위 6.3 Km 밑에는 누군가가 볼펜으로 아미산 방향 표시도 함께 해 놨다.

언젠가는 꼭 한번 올라 그 아래 펼쳐진 보령댐을 한바퀴 돌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다시 잡목 사이를 헤치고 전진하니 안부가 나타나고 그 안부를 지나 오르니 다시 깔끔하게 정리된 헬기장이 나타난다.

방금 전 보고 올랐던 헬기장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다.

그곳에서 잠시 물 한모금 마시는데 생각보다 따가운 햇살이 내려 와 금새 다시 능선들어 들어가 잠시 쉬어 본다.

 

헬기장을 지나 잠시 잡목을 헤치니 금새 월명산 정상인데 정상 이정표에는 높이가 544미터로 삼각점 안내도에는 543 미터로 나와 있다.

처음에는 삼각점이 표기된 장소에서 사진을 찍고 내려가려고 했는데 주위를 살펴보니 올라오는 길목의 나뭇가지에 월명산이란 이정표가 붙어 있다.

셀카 놀이를 하며 어렵게 증명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월명산은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도흥리와 부여군 내산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544미터이다.
차령산군의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으며 보령시의 새로운 관광명소인 보령호 동쪽에 위치한다.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산인데 보령댐 완공과 함께 보령호반을 한 바퀴 도는 도로가 생기면서 점차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또한 금북기맥 산행을 하는 산꾼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산이다.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으나 정상은 잡목이 많아 조망이 좋지 않은 편이고 산기슭에는 사찰인 금지암이 있는 산이기도 하다.

 

이제 월명산까지 남쪽 방향으로 진행되던 마루금은 서서히 동쪽으로 크게 꺽이기 시작하며 진행 되는데 지도에도 없는 금지사가 등로 좌측 바로 밑에 존재한다.

금지사는 부여군 내산면 금지리에 있는데 부여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 544미터의 월명산 정상 부근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마곡사의 말사이다.

아직 현판이 없는 법당 뒷편에 약수터가 있는데 그 샘에 금빛잉어가 살았다는 전설에서 사찰 이름이 유래됐으며 규모가 작고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산수가 매우 수려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불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계절에 따라 찾고 싶은 사찰이다.

금지사의 창건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니 여지도서 홍산현 사찰조에 금지암재월명산이라는 기사가 있어 늦어도 18세기 중엽경부터 이 암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잠시 들리고 싶었지만 갈길도 멀고 종교에 대한 특별한 애착도 없기에 그냥 지나쳤지만 잠시 약수터에 들려 그 잉어 전설이라도 확인하고 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잠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키큰 억새지대를 지나 금지사 갈림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 도착해 시원한 얼음 물 한모금 마신 후 출발한다.

 

다시 진행하니 키큰 억새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작은 공터에 도착해 원형 삼각점을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하고 그저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한다.

조금 더 진행하니 바위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바위들이 이곳 저곳에 산재한 520 능선 분기봉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나침판으로 독도를 해보니 이제 등로는 남쪽에서 동쪽으로 완전히 바뀌어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이 520봉 분기점에서 내려다 보니 급경사 암릉지대가 나타나 아주 조심스럽게 진행을 해야 한다.

 

520봉을 내려서며 등로 좌측을 바라보니 금지사를 감싸고 있는 벌목된 산줄기가 가깝게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금북정맥과 칠갑산 그리고 희미하게 계룡산까지 보이는듯 한데 정확한 것은 아니기에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잡목을 헤치고 이렇게 그 멋진 산줄기를 바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랫만에 맛 보는 식도락 같은 기분이다.

늘 짙은 안개와 내리는 가랑비로 안타까웠던 시간의 아쉬움을 날려 버리고 잠시 멈춰 서서 그 황홀한 풍경을 가슴에 담아 본다.

 

한동안 등로 좌측의 풍경을 조망한 후 큰 바위들이 등로를 차지하고 있는 급경사 내리막을 조심하며 내려간다.

비가 내린지 얼마되지 않아 땅이 무르기에 더욱 조심하며 미끄러지지 않도록 내려가니 다시 평이한 등로가 열리지만 더욱 많은 나뭇가지들이 등로에 떨어져 다시 산행에 지장을 주고 있다.

그러다 잠시 잡목이 사라지며 앞으로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열리고 그 넘어 내산의 들판을 지나니 축융봉과 망신산 줄기와 부여쪽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연무속에 숨어 있는 풍경도 가슴에 와 남겨진다.

 

그렇게 진행하니 진행방향으로 아홉사리고개까지 4.3 Km 남아 있고 좌측으로는 금지사까지 0.3 Km 거리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이곳에서도 잠시 금지사를 다녀올까 고민하지만 남아 있는 식수도 충분하기에 그냥 통과하기로 했는데 이제는 조금 후회되는 시간이다.

다시 나지막한 안부를 지나 오르니 바위지대가 나타나고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여 종2품을 하사 받았다는 안동김씨 묘지를 지난다.

다시 잡목과 거목이 적당히 어우러진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잠시 올라 잡목이 사라진 지점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이 산객이 걸어 온 기맥 마루금이 환상으로 펼쳐져 있고 그 한가운데에 금지사의 모습도 아주 인상 깊게 다가온다.

우측의 금지사 바로 위 벌목지대가 부여에서 가장 높은 산인 월명산이고 좌측으로 돌아 솟아 있는 봉우리가 520 능선 분기봉이다.

 

금지사가 너무 아름다워 줌으로 당겨 한번 더 담아 본다.

그리 큰 사찰은 아니지만 조망 좋은 명당 자리에 들어 서 있어 불자가 아니더라도 한번쯤 올라 주위 풍경을 둘러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을 찾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 것 같은 그런 모습이다.

다만 산행을 하다보니 저 사찰 하나를 위해 너무나도 많은 자연이 파괴되면서 콘크리트 임도가 깔렸다는 사실이 무겁게 가슴에 내려 앉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월명산과 금지사를 뒤돌아 보고 많은 사진으로 남긴 후 다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417봉 정상이다.

특별한 표식도 없는 정상에서 다시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잠시 쉬는 동안 처음으로 사용하는 쿨 수건을 짜보니 많은 물기가 나오는데 마치 스펀지를 목에 두르고 진행하다 그 머금고 있는 물기를 짜내는 듯한 그런 기분이다.  

생각보다 기능이 괜찮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배낭 둘러 메고 천천히 내리막 등로로 내려가니 다시 등로 좌측으로 멋진 조망이 터지는데 살펴보니 금지리 마을 좌측으로 지난 제1구간의 금북기맥에서 이곳으로 진행하며 내려 온 마루금이 환상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생각지도 못한 풍경에 더 진행하지 못하고 잠시 더 머물며 그 아름다운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출발한다.

 

다시 진행하려다 앞을 보니 앞으로 진행해야 할 올망 졸망한 산줄기가 잡목 사이로 펼쳐져 있고 그 산줄기는 이제 동쪽에서 다시 남쪽으로 꺽이며 내려가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다시 나즈막한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 안부를 통과하니 잠시 평이한 등로가 열리는가 싶더니 이번 볼라벤 태풍으로 인해 큰 거목이 쓰러져 붉은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모습에서는 함께 가슴이 아파온다.

다시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어렵게 헤치며 진행하니 키 작은 관목과 키 큰 소나무와 활엽수가 적당히 어울린 마루금을 지나 405봉 능선 분기점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늦은 아침을 먹지만 오늘 따라 왜 그런지 밥 맛도 없고 입 맛도 없어 탁배기만 마시며 쉬어 간다.

결국은 제대로 식사를 못했기에 그로 인해 후반전에 체력적으로 무척 힘들게 진행하는 원인이 되였다.

 

그렇게 405봉 분기봉에서 많은 시간 휴식을 취한 후 이제 다시 직진 등로에서 우측으로 크게 꺽여 내려가며 진행을 하게 되는데 이 봉우리가 바로 동쪽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내려가게 되는 능선 분기봉이였던 것이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잡목이 우거진 마루금을 지나니 다시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며 잠시 산행하기 좋은 등로로 바뀐다.

마루금 좌측으로는 제법 크게 내려다 보이는 상천저수지가 보이지만 우거진 잡목으로 인해 제대로 된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그렇게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안부로 내려가니 큰낫고개란 안내판이 서 있다.

이름이 하도 이상해 자료를 찾아 보지만 정확한 지명유래는 찾지 못하였지만 일제시대 자원 찬탈을 위해 사용된 고개란 자료만을 찾을 수 있었다.

산행지도를 보니 이곳이 큰낫고개가 아닌 작은낫고개로 표기된 사거리 안부이다.

 

큰낫고개를 지나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326봉 정상에 도착을 하지만 아무 표식도 없고 삼각점도 찾지 못해 그냥 내려간다.

오를 땐 잡목으로 어려운 산행이였는데 내려가는 길은 소나무가 줄지어 늘어 선 등로에 마루금도 넓어 마치 수레길 같은 편안한 내리막 등로이다.

등로 우측으로는 보령 미산면의 들판과 그 넘어 아기자기한 산줄기들이 산객의 눈길을 붙잡고 그렇게 내려가니 작은낫고개란 이정표가 다시 서 있다.

이곳 역시 일제시대의 고난과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고개라니 가슴이 아픈 곳임에 틀림없지만 자세한 자료가 없으니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작은낫고개를 지나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는 누런 상천저수지가 잡목 사이로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그렇게 오르니 금새 천덕산 정상부에 도착을 한다.

하지만 지도를 보니 이곳은 천덕산이 아니고 344미터의 삼각점이 있는 무명봉으로 나타난다.

정상에는 삼각점 설명판과 삼각점 그리고 각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

어렵게 셀카를 작동시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뜨거운 햇살이 내려 쬐는 정상을 떠나 다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전진하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 간다.

별 특징이 없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잡목이 우거진 길을 걷다보니 주위 조망 역시 제로이다.

가끔 불어주던 산들바람도 막혀 무척 무더운 날씨속에 많은 땀방울을 등로에 뿌리는 시간이다.

그렇게 몇개의 무명봉과 안부를 지나 오르니 봉우리 같지 않은 평평한 곳에 높이 363미터의 부여 천덕산이란 정상 이정표가 불쑥 나타난다.

이곳 부여와 보령의 천덕산 자료를 찾아 보지만 쉽지 않아 다시 아쉬운 시간이지만 차후 찾게되면 보충 해 넣을 것이다.

 

봉우리 같지 않은 정상에 붙어 있는 부여 천덕산의 해발고도 363미터를 다시 한번 사진에 담은 후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특별할 것 없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약간의 소나무와 바위들이 산재해 있는 언덕을 넘어 진행하니 이장된 묘지가 있었던 장소가 나타나고 그 무명봉을 넘어 전진하니 앞으로 올라야 할 비득재 넘어 병목산이 가깝게 다가온다.

등로 우측으로는 도흥리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계속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이름없는 골짜기 안부를 지나 비득재 4번 2차선 지방도로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묘지 앞에 도착을 해 잠시 간식을 먹으며 쉬어 간다.

 

남아 있던 막걸리와 과일로 목마름과 허기를 달랜 후 우측 절개지를 타고 조심스레 내려가니 비득재 도로 건너 밤나무 밭에서 잡풀제거를 하시던 농민 한분이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목례 인사를 드리고 도로를 건너 몇장의 사진을 남긴 후 다시 그 반대편 절개지를 타고 오르며 우측 능선으로 진입하기 직전 뒤돌아 주위 풍경을 담아 본다.

보령군 미산면 도흥리쪽 마을과 그 뒤를 돌아 가며 줄지어 늘어선 산줄기가 다시 산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힘들고 피곤한 시간이지만 이런 환상의 풍경이 있기에 또 참으며 진행 할 수 있는가 보다.

부여군 홍산면 상기리와 토정리쪽 마을이 예쁘게 자리하고 그 뒤로 나즈막한 산줄기가 마을을 병풍처럼 두르며 지나고 있다.

북쪽에 우뚝 솟은 천덕산이 남쪽으로 그 준령을 이으면서 그 산과 계곡과 냇물 사이에 들을 조성하고 마치 바람을 가리는 형국으로 접경을 이은곳에 마을이 자리하고 토정리는 위치한다.

풍수설에 의하면 토정리의 지형은 토끼 형상을 한 산에 용이 누워있는 형국이라 토산지상 유와룡형이라 하였는데 그 형국의 모듬 장소를 발견하면 유복해진다고 전하나 아직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넋을 잃고 그 풍경을 담아 본다.

 

이제 능선으로 들어가며 아쉬운 마음에 방금 전 내려온 천덕산쪽 능선과 그 아래 비득재로 이어지는 4번 2차선 지방도로와 부여군에서 세워둔 굿뜨레란 지방자치제의 광고판이 눈에 들어 온다.

늘 고개를 만나면 느끼는 것이지만 이곳 비득재 역시 도로가 생기면서 절개지로 잘려 내려오고 다시 오르는데 어려움이 느껴지는 곳이다.

 

다시 절개지에서의 황홀한 풍경과 조망을 마친 뒤 우측 능선으로 접어 들어 진행하니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는데 여전히 이곳 역시 부러져 떨어진 작은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등로를 가득 메워 산행에 방해를 주고 있다.

이리 저리 잡목을 헤치고 떨어진 나뭇가지를 피하며 오르니 바위가 산재해 있는 봉우리를 넘어 평이한 등로가 열리는 곳에 병목산이란 정상 이정표가 붙어 있다.

생각 않고 지나치면 정상인지도 모르게 지나칠 그런 곳에 병목산 정상 이정표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해발고도 346봉인 병목산 역시 잡목으로 인해 조망은 전혀 없다.

정상부 사진을 남긴 후 다시 천천히 맥 잇기 산행을 위해 출발하니 바위가 산재해 있는 등로를 지나  다시 바위들이 산재해 있는 333봉을 지난다.

잠시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정상부를 지나 내려가니 그곳 역시 소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는 군락지가 펼쳐져 있다.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내려가니 나즈막한 안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다시 잡목과 소나무가 혼재해 자라고 있는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진행을 하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잡풀이 우거진 비포장 임도를 만나는데 그 임도의 구실을 잃은지 오래된 느낌이다.

이제 잠시 동안 그 넓은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묘지인지 아니면 집터인지 모를 공터를 통과해 골짜기 안부에 도착을 한다.

 

혹시나 하고 지도를 살펴보니 지도에는 이곳이 새재라 나와 있는 곳이다.

296봉과 나란히 적혀 있어 잘 구분이 되지는 않지만 분명 이곳은 안부이고 제법 그 흔적도 뚜렷해 새재라 생각되는 곳이다.

좌측으로는 상기리와 우측으로는 은현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예전에는 제법 뚜렷한 고갯마루였겠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다닌 흔적조차도 사라지는 그런 고갯마루로 남아 있다.

 

세재라 생각되는 안부를 지나 다시 잡목과 고사목이 쓰러져 어지러운 등로를 타고 어렵게 오르니 능선에 가까울수록 잡목의 저항이 거세다.

어렵게 벌목된 능선에 도착을 하지만 그곳 능선 역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 진행에 무척 애를 먹는데 이곳에서 독도를 하였으면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을 그냥 희미한 등로를 타고 좌측이 아닌 우측으로 진행하며 약간의 알바를 해 본다.

사진은 정상적인 기맥 등로를 잘 담아 놓고 발걸음은 저 마루금이 아닌 우측 능선을 타고 진행을 하였으니 무엇에 홀렸는지...

나즈막한 봉우리를 넘어 진행하는데 있어야 할 지도상 286봉이며 삼각점엔 280봉이란 표식을 찾지 못하고 한동안 진행을 한다.

전주이씨 묘지가 나타나야 하는데 계속 진행을 해도 전주이씨가 아닌 장흥임씨의 묘지가 연달아 나타난다.

 

무엇인가 잘못되였음을 깨닭고 한동안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다 정밀하게 독도를 해보니 남쪽 방향이 아닌 서쪽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홀로 하면서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어쩔 수 없다.

다시 잘못된 지점으로 뒤돌아 올라가 정상적인 마루금을 찾는 방법이 제일 빠른 방법임을 이제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정상 등로까지 뒤돌아 올라온다.

올라오며 등로 우측을 바라보니 보령의 미산면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저 멀리 아미산과 장군봉 산줄기도 한번쯤 만나자며 손짓을 하고 있다.

 

정상 등로를 확인하고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헤치며 어렵게 이제 우측으로 진행하니 잡목 한가운데에 삼각점 하나가 박혀있고 280봉이란 설명안내판도 서 있다.

그제서야 마음이 진정되며 어렵게 다시 정상 등로를 찾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등로 앞 우측으로는 이제부터 진행하며 올라야 할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알바를 하고 뒤돌아 올라온 방향 저 멀리 바라보니 보령시 미산면의 등잔봉이 보이고 그 우측 저 멀리 절벽처럼 생긴 당당한 모습의 장군봉과 아미산 줄기도 확연히 드러나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으로서 이토록 많은 산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맥 잇기 산행에 빠져 주위의 산들엔 눈길 주기도 바빴는데 이렇게 날씨가 좋다 보니 발길을 자주 멈추고 그 주위도 둘러 보는 여유가 생긱 것이다.

 

떠나기 아쉬워 미산면쪽 마을과 그 뒤로 펼쳐진 아름다운 산줄기를 다시 한번 사진에 담은 후 천천히 우거진 잡목을 헤치며 앞으로 전진한다.

지독한 잣나무와 잡목들 그리고 키가 웃자라 하늘까지 덮어 버릴 기세의 잡풀들이 진행하는 산객의 온 몸을 끌어 안으며 진행하지 못하게 방해를 하는듯 하다.

그래도 그 우거진 잡목을 뚫고 진행하니 희미한 등로가 열리고 반갑게 그 등로를 타고 진행하며 독도를 해보니 정확히 맞는 방향이다.

그곳을 지나니 간간히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나부끼고 즐거운 마음에 몇장의 띠지들을 사진에 담기도 한다.

다시 부러진 나무와 안부를 지나 다시 잡목과 잡풀이 우거진 등로를 헤치며 진행하니 정부인전주이씨 묘지의 비석이 나타나고 다시 정상적인 등로로 진행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정부인 전주이씨 묘지를 지나 진행을 하니 알 수 없는 삼각점 하나가 등로에 박혀 있는데 지도를 보니 246봉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이곳은 봉우리 같지도 않다.

사진에 담은 후 그곳을 지나 계속 전진하니 잡목과 고사목이 다시 등로를 가로막고 산행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아주 짧게 잡목이 제거된 좋은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금새 다시 잡목이 등로를 뒤덮고 그것을 헤치며 진행하는 몸에는 많은 생채기가 나기 시작한다.

 

그곳을 지나 오르니 나타나는 삼거리 우측 등로에 고사목을 쌓아 진행하지 못하도록 해 놓고 좌측 등로는 열어 놨는데 아무래도 이상해 우측 막아 놓은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그곳이 맞는 마루금이였다.

다시 계속 전진하니 나뭇가지들이 등로를 막아 어쩔 수 없이 좌측으로 돌아 진행을 하는데 능선 분기 삼각봉이였다.

그곳에서 좌측 등로를 버리고 우측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잡목이 우거진 등로에 작은 붉은 지적경계점이란 것이 등로에 박혀 있다.

그렇게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안부 지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바위 지대를 지나 학산산기(비홍산) 갈림 이정표가 나타난다.

이제 옥녀봉까지는 1.4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와 함께 하는데 그 이정표는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다.

이곳에서 다시 배낭 내려 흐르는 땀방울을 닦고 남아 있는 과일과 음료수로 허기를 달래 본다.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90도 가까이 꺽어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다시 키큰 억새가 자라고 있는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갑자기 골짜기 안부가 나타난다.

그 안부 우측 가장자리엔 우측으로 미산면 옥현리로 좌측으로는 옥수정옥녀쉼터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보이고 직진 방향으로는 옥녀봉이 적혀 있다.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이제 넓은 수레길 같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타고 오르게 된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한동안 오르니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너부러져 있고 금새 247봉에 올랐다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간다.

잠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옥산면 마을과 들판 그리고 저수지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잠시 잡목이 사라진 장소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계속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지만 이제부터 뜨거워진 대지와 강렬한 태양 빛이 더위를 부채질 하며 진행에 큰 어려움을 나겨 주고 있다.

 

잡목이 우거진 244봉 오르막 등로에서 앞을 올려다 보니 저 멀리 옥녀봉 팔각정이 있는 봉우리와 우측의 진짜 옥녀봉이 아스라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등로 좌측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옥산쪽 풍경을 가슴에 담으며 걸어가니 244봉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와 있고 그 봉우리 넘어 옥녀봉의 두 봉우리도 아주 근접해 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부터 갑작스런 체력 저하와 무기력증 그리고 더위를 먹은듯이 심한 갈증이 일어나 제대로 된 산행이 되지 않을 정도로 고통을 느낀다.

이제 옥녀봉 01/02 이정목을 만나기 시작하고 244봉을 넘어 그림같은 등로를 타고 진행도 해 본다.

오르니 용연 갈림 이정표도 만나 통과하고 활엽수 지대를 지나니 다시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통해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소나무와 고사목 사이로 옥산면쪽 풍경이 멋지게 다가오고 있지만 더위는 점점 더 산객을 옥죄며 어려움을 가중 시키고 있기에 쉬어 가는 시간이 늘어만 가고 남아 있던 식수의 양도 점차 줄어 들고 있다.

옥녀봉 01/03 이정목을 지나 계단을 타고 오르며 뒤돌아 보니 오늘 지나온 마루금이 한눈에 펼쳐져 있고 저 멀리 월명산에서 천덕산 지나 병목산과 이곳으로 이어져 온 등로가 환상으로 다가온다.

 

등로 좌측의 옥산면 옥산저수지 좌측으로 동쪽에는 천덕산에서 분기한 산줄기가 이어져 비홍산으로 흐르는 모습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높지는 않지만 모두 평야지대이다 보니 어느 고산준령 못지 않게 아름답게 올려다 보이는 산줄기이다.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운 만남이지만 언젠가 한번쯤은 직접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야만이 그 속살을 알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다시 일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한걸음 두걸음 발길을 옮겨 본다.

잠시 계단을 오르니 등로 옆에 의자 두개가 설치되어 있는 장소가 나타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오르니 저 멀리 옥녀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지만 그곳으로 다려면 또 얼마나 많은 발걸음을 해야 하는지 약간은 겁도 나는 시간이다.

잡목 구간을 지나 줄기 식물이 큰 소나무의 둘레를 감고 오르는 원시림 같은 분위기의 소나무 군락지를 오르니 옥녀봉 01-04 이정목을 만난다.

마지막 나무 계단을 타고 오르니 드디어 옥녀봉 정상에 도착해 잠시 주위를 둘러 본다.

 

먼저 팔각정자에 올라 배낭과 신발을 벗어 던지고 남아 있는 빵과 과일 그리고 얼음물로 허기를 달래며 체력을 보충한다.

잠시 의자에 누워 있으니 그나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그렇게 힘들었던 몸도 식혀주고 조금은 정신이 돌아 오는 기분이다.

간식 후 팔각정에서 이재부터 내려가야 할 마루금을 내려다 보니 232봉 지나 나즈막하게 이어지는 마루금이 환상이다.

 

금북기맥 마루금 우측인 서쪽으로는 서천의 모든 산들이 보일만큼 조망이 좋다.

서천의 명산인 희리산과 문수산이 보이고 그곳과 이어지는 많은 봉우리들이 제각각 모양을 뽐내며 흐르고 있는 풍경이 압권이다.

올랐던 산들도 있고 또 앞으로 올라야 할 산들이기에 가슴속 깊이 그 풍경과 모양 그리고 모습을 담아 본다.

 

마루금 좌측으로 눈을 돌리니 옥산면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옥산면 우측으로는 금북기맥 마루금이 흐르고 저 멀리 옥산을 지나서는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마루금이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이듯 보인다.

저 어느곳인가 서천이 있고 그 서천을 지나면 서해 바다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가 보일 것이다.

그곳은 마루금과 인간들의 삶이 충돌하며 아쉽게도 많은 부분 산줄기가 사라져 있겠지만 그렇기에 이렇게 그 산줄기를 타고 걸으며 그 망가진 모습에 경종을 울려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제 옥산저수지를 가운데 두고 옥산의 속살을 담아 본다.

그저 평범한 시골 풍경이 기맥 산행으로 이어지며 이렇게 아름답게 다시 태어나는 풍경이 좋아 이렇게 그 산줄기가 바다나 강으로 빠지는 모습을 그리워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우리의 시골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등로 우측에 올려다 보이는 진짜 옥녀봉을 다녀올까 잠시 고민도 해 보지만 자신이 없기에 포기하고 내려와 옥녀봉 유래를 읽어 보고 정자를 지나자 마자 옥녀봉 가는 직진의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크게 꺽어 잡풀이 무성하게 자란 정상 기맥 등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애틋한 부부애가 남아 잇고 선녀들과 노루의 전설이 남아 있는 옥녀봉에서의 꿈같은 휴식이 효험이 있었는지 몸이 가벼워지며 산행에 대한 열의도 불타오르고 있는 시간이다.

 

멋진 소나무들의 넓은 비포장 임도 양쪽에 도열하듯 늘어 서 있지만 그 한가운데 임도에는 정비되지 않고 사람들의 왕래도 없어 잡목과 잡풀이 우거져 내려가기 어려운 조건이다.

그래도 그 멋진 소나무들을 친구 삼아 천천히 내려가니 갑자기 앞을 가로막는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더니 그 앞에는 짧은 절개지가 보인다.

잡풀이 우거진 그 비포장 임도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조금 진행하니 다시 우측 절개지 위로 띠지들이 나풀거리고 그곳 능선으로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 간다.

 

능선으로 올라 짧은 구간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좌측에 깊은 구덩이가 보이는데 무슨 용도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는 굴이다.

약 2미터쯤 되어 보이는 그 굴 한가운데에 제법 굵은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봐서는 꽤 오래전 만들어진 굴처럼 보였다.

그 굴을 지나 잠시 호젓한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갑자기 벌목지대가 펼쳐지고 자세히 보니 그 벌목된 장소에는 어린 밤나무들이 식재되어 자라고 있다.

띠지도 사라진 이곳 벌목지에서 잠시 헷깔려 서성이다 어렵게 좌측 등로를 타고 진행한다.

즉 벌목된 능선에 오르면 좌측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그 벌목지대로 걸어가면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곳을 따라 진행하면 된다.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풍산리 마을과 들판을 구경하며 걸어가는 풍경도 나쁘지 않다.

다시 벌목되어 어린 밤나무가 식재된 구간이 끝나고 소나무 숲으로 된 넓은 비포장 임도를 만나 진행하지만 간벌 후 잘려진 나뭇가지들을 치워 놓지 않아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도 잡목이 덜 우거져 산행에는 큰 불편을 주지만 크게 신경을 쓸 정도는 아닌 좋은 비포장 임도이다.

   

그렇게 나즈막한 언덕같은 봉우리를 넘어 진행을 하니 잠시 나뭇잎들이 떨어져 있는 잡목지대를 지나는데 그 잡목 사이에 몇개의 선답자들 띠지들이 보여 반갑게 웃어 본다.

그곳을 지나니 내리막 등로는 갑자기 키 큰 산죽밭과 만나고 조심스레 그 산죽을 헤치고 내려가니 묘지 몇기가 보이는데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아 잡풀들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그 묘지로 내려 와 등로 좌측의 중양리 마을을 내려다 본다.

 

묘지에서 우측 잡풀들이 무성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다 살펴보니 이 등로는 묘지를 만들면서 생긴 넓은 비포장 임도처럼 보이지만 지금은 관리가 되질 않아 너무나 키가 커버린 잡풀들로 인해 진행하기조차 힘이 드는 상황이다.

그래도 그곳으로 전진하니 갑자기 눈 앞에 부여군의 브랜드인 굿뜨레 방울토마토 선전 도로이정표와 대천해수욕장을 알리는 보령시의 도로 표지판이 다가와 있고 그 아래로는 절개지가 보인다.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부여와 보령을 이어주는 잿말재 2차선 지방도로 위였다.

 

그 절개지 위에서 좌측으로 나 있는 잡풀이 무성한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잠시 후 2차선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하고 몇장의 사진을 담은 후 도로 건너 전봇대 뒤로 나 있는 잡풀속 등로를 타고 오른다.

하지만 이곳에서 부터 잡풀과 잡목으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대형 알바와 많은 시간 까 먹고 지도에도 없는 온양정씨 묘지를 만난 후 결국은 중간에 다시 2차선 포장도로 내려 와 부시치 고개까지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을 하게 되는데 이 산객처럼 여름철에 오르는 산님들은 마루금을 고집 할 것이 아니라 2차선 포장도로를 이용해 부시치 고개로 이동하는 편이 훨씬 나아 보인다.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곧바로 밤나무 밭이 나타나고 그 밤나무 밭을 우측에 두고 진행을 하지만 곧바로 정상부근에 오르기도 전에 무지막지한 잡목과 잡풀들을 만나 온 몸에 생채기를 만들고 말았다.

계속 전진하며 어렵게 그 잡목을 헤쳐 전진하지만 정상을 넘어 가지도 못하고 우측 잡목지대에 빠져 허우적 거리다 천신만고 끝에 그 잡목지대를 벗어나 다시 나타나는 벌목지대 위에 올라 내려다 보니 그제서야 이 산객이 서 있는 부분은 정상 등로에서 서쪽으로 조금 더 벗어난 지역으로 그곳으로 진행하면 무량골 지나 갈로고개쪽으로 진행하는 등로였다.

바로 보이는 저 마을을 우측에 두고 내려가는 마루금을 타고 내려가 만나는 부시치 고개를 넘어 오르면 앞에 보이는 봉우리 넘어 놋점이고개로 도착할 것이다.

 

다시 그곳 벌목지에서 배낭 내려 간식을 먹고 시원한 물 한모금으로 목마름을 달랜 후 내려다 보니 금북기맥 마루금이 확연히 드러나 있고 저 바로 아래 부시치 고개도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부시치고개 넘어 봉우리를 넘으면 오늘 산행 목표지점인 놋점이 고개가 있겠지만 벌써 시간이 오후 4시 30여분을 지나고 손님과 한 약속 시간과 집으로 올 손님 생각에 저 부시치고개에서 오늘 산행을 접기로 한다.

다시 어렵게 잡목속으로 들어가지만 이번에는 지독한 잡목이 버티는 좌측 등로가 아닌 약간의 사면 등로인 우측 사면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얼마 가지 않아 선답자들의 띠지가 우측 하산 등로에 달려 있어 안심을 하고 긴 한숨을 내 쉬어 본다.

 

그 선답자들의 띠지를 따라 잘 진행하니 또 다시 벌목된 장소에 도착을 하는데 이제는 키 작은 관목들이 자라나면서 제대로 된 등로조차 보이지 않는다.

참으로 어렵게 그 관목을 뚫고 진행하며 내려가니 등로가 사라지며 다시 미아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어렵게 경주김씨 묘지위로 올라 다시 관목을 뚫고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와 만나고 그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는 분명 우측으로 나 있을듯 한데 우거진 잡목과 잡풀들로 인해 도저히 그 등로를 찾지 못하고 계속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잿말재에서 얼마 내려 오지 않은 부근의 2차선 포장도로와 다시 만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잿말재 2차선 도로를 만나면 도로 건너 밤나무 단지 위로 올라가지 말고 그 2차선 포장도로를 좌측으로 타고 풍산리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 부시치고개로 진행하는 것이 맞을듯 싶다.

 

그곳에서 어렵게 홍산개인 택시기사님과 전화 통화가 되어 설명하니 20여분 걸린다기에 2차선 포장도로를 우측으로 타고 빠르게 부시치고개 방향으로 내려간다.

약 10여분을 2차선 지방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민가들이 보이고 곧이어 만나는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오르니 부시치고개이다.

사진 두어장 담고 있으니 마침 택시도 도착 해 젖어 있는 배낭을 트렁크에 실고 지티고개로 복귀해 애마로 잠시 내려오다 개울에서 땀을 씻은 후 양복으로 갈아 입고 손님을 만나 무탈하게 일도 잘 마무리 한다.

약간 막히는 도로를 타고 어렵게 집으로 복귀해 옆지기가 준비해 준 삼겹살에 소맥 두어잔 하고 나니 온 몸의 긴장이 풀리며 먼 꿈나라로 일찍 여행을 떠난다.

 

참으로 어렵게 진행하는 맥 산행이지만 이제부터는 더위가 물러나며 조금은 수월한 산행 시간을 기대해 보는 순간이다.

 

더 멋지고 황홀한 시간을 꿈꾸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