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맥과 중요 지맥 산행(완료)/금북기맥(금북·완)

금북기맥 제1구간 백월산에서 지티고개까지 산행 후기

칠갑산 사랑 2012. 8. 1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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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남도 청양군과 부여군 그리고 보령시의 금북기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2년 08월 09일 (목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구름 끼고 비가 내렸으며 고온다습했던 날씨

산행온도 : 영상 24도에서 영상 34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백금2리 노인회관-금곡(백금)저수지-백월산 1.9 Km 이정표-월산로 02-01 이정목-산판도로-능선진입 통나무계단-백월산 1.0 Km 이정표-

                간티로 03/08 이정목-금북정맥 주능선(백월산 0.4 Km 이정표)-배문-줄바위-백월산(570봉)-금북기맥 분기점(금북정맥 갈림 삼거리)-

                이정표(성태산 1.9 Km와 백월산 1.2 Km)-다리재 임도(월치, 금곡저수지 1.4 Km와 보령 갈림이정표)-백월로 01/09 이정목-고사목지대-

                성태산 천세봉(626봉)-성태산 만세봉(631봉)-성태산 천세봉-성태산 0.2 Km 이정표-불난지역-금곡마을과 금곡저수지 갈림 이정표-

                행여봉(475봉, 백금리 갈림이정표)-산판도로-벌목지대-흥산리와 옥가실 갈림이장표-밤나무 밭-콘크리트 임도-반고개(606번 지방도로)-

                반고개가든에서 아침식사-밤나무 밭-235봉 통신안테나-능선진입로-콘크리트 임도-한양조씨 묘지-비포장 임도-밤나무 밭-구루고개(콘크리트

                임도)-비포장 임도-치앙재-조공산 갈림 묘지-조공산 왕복-구신이재-405봉-마동재 임도-비포장 임도-능선진입-밤나무 밭-번호없는 송전탑-

                306봉-채종림 안내판-362봉 무인산불감시카메라-밤나무 밭-비포장 임도 옆 조림식 건물-대은도로 삼거리-새재고개로 잠시 알바-능선진입로-

                번호없는 송전탑-비포장 임도-홍수경보기 시설-밤나무 밭-묘지지대-비포장 임도-비포장 임도 삼거리-밤나무 밭 초입-능선진입-무명봉-

                벌목 후 밤나무 식재 구간-328봉 벌목지대-밤나무 밭-가칠고개-월하산 갈림 삼거리-월하산 왕복-313봉-안부-무명봉-안부-365봉-383봉-

                안부-305봉-비포장 임도-지티고개(40번 지방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2.50 Km (금북기맥 구간 20.00 Km 금북기맥 분기점-지티고개, 접속구간 02.50 Km 백금2리노인회관에서 분기점까지)

산행시간 : 비가 내리고 고온다습한 날씨에 쉬며 꾸준하게 사진 담으며 11시간 55분 (05시 15분부터 17시 10분까지)

교통편 : 옆지기의 도움으로 애마 이용해 백금2리 노인회관에 도착해 산행 시작

             지티고개에서 옆지기의 도움으로 애마 이용해 집으로 복귀

 

금북기맥이란 ???

박성태님의 산경표에 의하면 백두대간 천왕봉(1508봉)에서 시작하여 말티고개, 선도산(547봉), 상당산성, 좌구산(657봉), 보현산(481봉)을 지나 칠장산(516봉)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과 갈라지면서 한남금북정맥은 끝이 나며 이어서 금북정맥은 칠현산(516봉), 안성 서운산, 천안 흑성산(519봉), 아산 광덕산(699봉), 청양 백월산(560봉), 예산 수덕산(495봉)을 지난다.

산줄기는 예산 가야산(678봉)에서 잠시 주춤거리다 성왕산(252봉), 백화산(284봉)를 거쳐 태안반도로 들어 반도의 끝 안흥진에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산경표에 금북정맥은 금강과 별로 관계가 없는 오서산과 가야산을 경유한다는 논란이 있으며 따라서 금북정맥 백월산에서 내려서다 오서산으로 향하지 않고 직진하여 성태산(624봉), 조공산(399봉), 월하산(423봉),
월명산(544봉), 옥녀봉(380봉), 봉림산(346봉), 오석산(127봉), 남산(147봉), 서대산(104봉), 중대산(102봉)을 지나 장항 앞 바다 금강 하구에서 끝을 맺는 또 하나의 산줄기를 금북기맥이라고 부르는데 이 명칭은 공식명칭이 아니고 그냥 편의상 붙인 이름이다.

다만 박성태님의 신산경표상에는 속리산 천왕봉에서 분기하여 장항 앞바다에 이르는 산줄기를 호서정맥이라 명칭하고 백월산에서 안흥진에 이르는 산줄기를 금북기맥이라 칭하고 있어 원 산경표와는 다른 주장을 하고 있음도 알아야 할 것이다.

금북기맥은 청양의 백월산에서 시작해 장항 앞바다인 금강 하구까지 이어지는 69.4 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비가 내리고 고온다습한 날씨에 힘들게 시작했지만 무탈하게 완주한 금북기맥 첫구간에서의 멋진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아들이 있고 9순이 되신 아버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처음 맞는 여름 휴가이기에 특별히 갈곳도 없고 할 일도 없으니 참으로 난감한 시간이다.

옆지기와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딸은 외국은 가지 못하더라도 시원한 계곡이라도 가 몇일 쉬었다 오기를 바라는 눈치이기에 문명 세계와 단절되다 시피한 오지 계곡을 다녀오는 휴가 계획을 짜니 옆지기가 마음이 편하지 않는지 시골에 내려가 어머님 산소나 다녀오자 제안한다.

시골집 역시 덥기는 마찬가지이기에 고운식물원 입구쪽 새로 만들어진 고추랜드 내 펜션에 하룻밤 예약을 하고 가족 모두가 내려가는 계획을 세우니 다시 여동생과 매제도 동참을 원하고 그렇게 또 시골로 내려간다.

8일날 새벽같이 내려가 이 산객은 어머님 산소만 다녀온 후 일보러 나갔다 오후에 들어 오고 가족들은 냉천골과 고운식물원을 둘러 본 후 예약된 펜션으로 돌아 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야외에서 삼겹살 바베큐로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날 오전중에 매제와 아들이 서울로 올라와야 하기에 할일이 없은 이 산객은 준비한 산행 자료를 들고 금북기맥 첫 구간을 올랐다 내려오기로 하니 옆지기가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지만 쉽게 허락을 해 준다.

산행을 하다가 눈치를 보고 여의치 않으면 반고개에서 산행을 중단하고 남아 있는 가족들과 조우해 마음 편히 하루 쉬었다 올라가기로 하고 새벽 일찍 펜션을 나와 산행 들머리인 백금2리 노인회관 앞에서 내려 옆지기를 보내고 어렵고도 긴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 4시에 일어 나 간단히 준비한 먹거리를 챙겨 옆지기와 둘이 조용히 펜션을 빠져 나와 백금리로 가 어렵게 산행 들머리를 찾아 오르니 구름은 끼어 있지만 날씨는 좋을 것 같아 기분 좋게 오르니 드디어 지난 2년전 올라 만났던 금북정맥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다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백월산으로 향하며 정산 직전 우측 전망바위에서 바라 본 오서산과 그곳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 마루금이 환상으로 펼쳐져 있다.

발 아래에는 청양과 보령을 이어주는 36번 지방도로가 지나고 그 바로 위쪽에 화성 농공단지가 펼쳐져 있다.

그 끊어질듯 이어지는 금북정맥 마루금이 오서산을 들어 올리고 그곳에서 만들었던 고운 추억을 회상하며 황홀한 아침 풍경을 마음껏 즐겨보는 시간이다.

 

옆지기와 둘이 펜션을 나와 멀지 않은 백금리로 들어가니 백금2리마을회관이 보이고 그곳에서 산행 준비 후 옆지기를 보내는 시간이 새벽 4시 40여분이다. 

새벽부터 덥기는 하지만 견딜만 하다는 생각으로 그 마을회관 우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도로를 타고 진행을 해 보지만 금새 뒤돌아 내려오고 산행 들머리를 찾지 못해 잠시 왔다리 갔다리 하다보니 민가에서 농부 한분이 나오시고 길을 물어 보니 이곳이 아닌 노인회관으로 가 진행해야 한다고 친절하게 알려 주신다.

백금2리에서 시멘트 도로를 타고 백금2리 노인회관쪽으로 걸어가니 새벽부터 승용차 한대가 내려오는데 이 산객 옆에서 멈춰 선다.

살펴보니 옆지기이고 옆지기도 애마를 가지고 알바하며 그곳 노인회관까지 갔다가 뒤돌아 나오는 길이였다.

다시 애마가 알바를 한 덕분에 편안하게 그 애마를 몰고 백금2리 노인회관 앞 공터에서 내려 다시 산행 준비 후 산행안내도와 백월산입구 0.5 Km 이정표를 사진에 담은 후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아침 5시 15분을 막 넘기고 있다.

 

옆지기를 보내고 천천히 백금2리 노인회관 우측의 시멘트 도로를 타고 들어가니 금새 한우를 키우는 축사가 보이고 그 축사를 지나 좌측으로 들어가니 논이 펼쳐져 있는데 아무리 백금저수지 즉 금곡저수지를 찾아 보지만 저수지 뿐만 아니라 그곳으로 오르는 등로조차 찾기가 쉽지 않다.

논을 가로 질러 좌측으로 갔다가 우측으로 나 있어야 할 등로를 우거진 잡목으로 인해 찾지 못하고 다시 뒤돌아 내려 와 좌측으로 돌아가는 논뚝을 타고 걸어가니 이슬이 내려 앉아 벌써 이 산객의 등산바지와 등산화를 적시고 있다.

논 가장자리를 타고 계곡 오르니 앞에 잡풀을 제거한 거대한 저수지 둑방이 보이고 그곳을 타고 오르니 드디어 금곡저수지 둑방에 올라서고 그곳에서 산행 들머리쪽과 금곡저수지 그리고 그 위로 우뚝 솟아 있는 백월산을 담아 본다.

 

저수지 둑방을 타고 백월산 입구쪽으로 걸어 가며 둑방 좌측을 보니 금곡저수지 저 위로 잘룩하게 다리재 즉 월치라 생각되는 금북기맥 산줄기가 올려다 보이고 잠시 후 만나야 할 곳이기에 잠시 가슴속 깊이 그 영상을 담아 본다.

둑방 우측으로는 파란 논들과 백금리 마을이 엷은 안개를 뒤집어 쓴채 조용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게 시골의 아침을 음미하며 둑방을 걸어 진행하니 곧바로 백월산입구 산행이정표와 안내판들이 서 있는 입구에 도착 해 나무 데크에 배낭 내려 놓고 식수 한모금으로 목마름을 달랜 후 사진 한장 남기며 긴 하루를 열어 보는 시간이다.

백월산 정상까지의 거리가 1.9 Km란 이정표가 보이고 천천히 걸어 오른다 해도 1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넓은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에는 자갈들이 많이 깔려 있다.

숲으로 들기 전에는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해 헤드렌턴 없이도 진행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숲으로 들어 오니 주위가 어두워 여간 조심하며 진행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시간이다.

잠시 오르니 월산로 02-01이라는 이정목이 보이고 다시 오르니 그저 등산로라는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다시 월산로 02-02 이정목을 지나 오르니 비포장 임도인 산판도로를 만나고 이곳에서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오르며 진행을 한다.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오르니 완만한 오르막 임도가 이어지고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가득 끼어 있지만 비는 내릴 것 같지 않다.

그렇게 한동안 오르다 임도 우측을 보니 저 멀리 동쪽 하늘에선 이미 일출이 되였을 시간인데 일출은 보이지 않고 짙게 드리워진 두꺼운 구름을 뚫고 나오려는 하루 햇살이 멋진 하늘을 만들고 있다.

오랫만에 보는 햇살에 약간의 기분이 좋아지는 시간이지만 그 반대 급부로 더욱 굵은 땀방울이 흘러 내리며 오늘 산행도 쉽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그 임도를 타고 오르니 임도 좌측 능선으로 통나무 계단이 보이고 그곳을 통해 오르면 금북정맥 마루금을 만나 백월산으로 오를 수 있는 능선 초입이다.

하지만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는 이 능선으로 오르면 잡목으로 어려우니 그냥 임도를 타고 진행하다 좌측 능선으로 오르라는 추천글도 있어 잠시 고민하지만 그냥 이 통나무 계단을 타고 오르며 진행하기로 한다.

 

잠시 오르니 등로는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로 변하고 소나무와 활엽수가 드문 드문 등로 주위를 메우고 있다.

하지만 오르기에 어려움이 있는 등로는 아니지만 등로 주위에는 안전로프를 매달아 누구라도 쉽게 오를 수 있도록 정미를 해 놓았다.

잠시 더 오르니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 옆에는 공덕고개 갈림 이정표가 서 있다.

공덕고개는 금북정맥의 고개중 하나로서 청양군 화성면 산정리와 남양면을 이어주는 고개인데 이곳 사람들은 공대기로 불르는 고갯마루이다.

신왕리는 신촌과 왕림리의 글자를 따 만든 법정리로서 원래 사양면이였다가 면사무소 이름이 남양으로 바뀌면서 남양면 신왕리가 된 마을이다.

 

신왕리와 공덕고개 이정표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이제 간티로 03-08이란 이정목이 보이고 곧이어 가파른 오르막 등로에는 안전로프가 달려 있다.

잠시 그 안전로프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는 다시 나무 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타고 오르니 또 다시 안전로프 구간이 나타난다 

그 안전로프 구간을 지나 오르니 드디어 금북정맥 주등로인 헬기장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만나는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헬기장 갈림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 갈림길에서 백월산 방향으로 오르니 등로에는 현무암이 가로막고 살펴보니 꼭 바닷가나 강가의 모래와 자갈을 시멘트에 얼버무린듯한 그런 바위들이다.

지난 금북정맥 산행 때에도 이 현무암 때문에 많은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 역시 왜 이런 바위와 돌들이 산꼭대기에 올라 와 있는지 의아한 시간이기만 하다.

조금 더 오르니 등로 좌우 양쪽으로 깊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 배문 이정표에 도착해 사진 몇장 남겨 본다.

왜 배문일까 ???

아마도 바닷물과 배 그리고 배가 드나들던 문과 연관되어 있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볼 뿐이다.

 

배문 이정표를 지나 바위지대를 넘으니 월산로 02-08 이정목이 보인다.

이제 정상까지는 300미터 남았다는 표식이다.

그곳을 지나니 다시 줄바위란 이정표가 서 있는데 어떤 의미인지 이번에도 모르고 지나야 한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그곳 좌측 바위 밑으로 내려가면 너무나 환상적인 백금2리 마을과 저수지 그리고 그 뒤 저 위로 성태산과 행여봉이 멋지게 펼쳐져 있다.

잠시 그 아름다운 풍경을 즐긴 뒤 올라 와 정상 금북정맥 마루금을 타고 백월산으로 향한다.

 

줄바위에서 남동쪽으로 펼쳐진 멋진 조망을 즐긴 후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해 전진하니 다시 이번에는 북쪽으로 튀어 나온 전망바위 하나가 보이고 그곳으로 올라 잠시 2년전 진행하며 많은 추억을 남겼던 북쪽을 바라보니 그곳에 억새로 유명한 오서산이 하늘 높은줄 모르게 올라가 있고 그 좌우측으로 안개가 피어 올라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다.

오서산 좌측으로 보령과 예산쪽 올망졸망한 산군들이 평야지대에 봉우리를 만들어 솟아 오른 모습 또한 나즈막하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다.

 

오서산 우측인 동쪽으로는 화성쪽 평야가 내려다 보인고 화성 농공단지도 내려다 보인다.

우측 저 멀리 아산의 봉수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는 그 아래에 하얀 안개 띠를 두르고 봉우리만 내밀고 있다.

아침의 고요한 들판과 민가 사이로 흩어져 있는 하얀 안개가 더해져 환상적인 풍경으로 남겨지는 마을 풍경들이다.

 

그렇게 조망과 풍경을 즐기며 진행하니 금새 백월산 정상에 도착해 너무나 많이 흘린 땀 범벅이 된 옷가지를 벗어 물기를 짜 낸 후 증명 사진 몇장 남겨 본다.

하나의 정상석과 이정표 그리고 안내도가 있지만 그 안내도는 많이도 변해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앞에는 나무 평상이 준비되어 있어 배낭 내려 놓고 잠시 얼음물 한모금 마시며 쉬어 본다.

백월산은 금북정맥 산줄기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지리적 사실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산이지만 사실 이 근처에는 이름 난 산이 없어 자주 찾는 사람들은 뜸한 편이다.

백월산이란 이름은 남양에선 그 산 위로 달이 지는 것을 그리고 청라에선 그 산 위로 달이 뜨는 것을 늘 보아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현지 사람들은 그저 월산 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또 백월산 산세가 북쪽 화성쪽으로 머리를 숙이는 모양이어서 화성면에 인물이 많이 난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백월산의 기점과 종점으로 이용되는 마을 금곡은 거문고 골짜기 라는 뜻으로 마을 지형이 거문고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백금리도 하얀 거문고 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런 고향의 산도 이제 겨우 3번째 올라 만나게 되니 얼마나 알려지지 않은 산인지 실감이 가는 곳이지만 금북정맥 산행을 하기 전까지는 또한 이토록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니 얼마나 미안하고 무지의 소치였는지 부끄러울 따름이였다.

 

백월산 정상 앞 나무 데크를 지나 만나는 전망바위에 올라 남동쪽을 바라보니 오늘 이 산객이 올라온 백금2리 금곡마을과 그 뒤로 우뚝 솟아 있는 지금부터 올라야 할 성태산과 행여봉이 멋진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다만 이제 한시간 남짓 걸어 올라 온 백월산에서 얼음 물 1리터 이상을 마셨으니 오늘 식수 걱정과 더위로 인한 어려움이 밀려오는 것 같아 더 많은 땀방울을 흘리는 시간이다.

 

올라야 할 성태산 마루금을 즐긴 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동쪽을 바라보니 두꺼운 구름속에 나오려고 몸부림 치는 태양 아래 가스가 가득하고 그 가스를 뚫고 드높은 높이를 자랑하며  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가 눈길을 잡는다.

처음에는 어디인지 분간을 못하고 방황을 하였지만 금새 그곳이 청양의 진산인 칠갑산임을 알게 된다.

가우데 우뚝 솟아 있는 칠갑산을 필두로 우측 아래로는 삼형제봉이 솟아있고 좌측 북쪽으로는 대덕봉이 아름답게 보인다.

지난 가을 칠갑지맥을 오르며 만났던 봉우리들이기에 다시 한번 고운 추억을 꺼내 상념에 잠겨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곳 백월산 정상에서 많은 시간 보내며 사진도 찍고 아름다운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젖어가는 배낭을 메고 남서쪽으로 전진해 본다.

잠시 평이한 등로가 열리는가 싶더니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그 등로 위에는 제법 큰 바위들이 덮고 있다.

조심하며 내려가니 거대한 소나무와 활엽수가 등로를 가득 메우고 곧이어 백월로 01-16이란 이정목이 서 있다.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바위가 있는 거목 위에 준.희님이 붙여 놓은 금북산줄기분기점이란 이정표가 보인다.

우측으로 진행을 하면 금북정맥 마루금으로 직진으로 내려가면 오늘 이 산객이 타야하는 금북기맥이 이어지는 마루금의 분기점이 되는 지점이다.

2년 전 곤파스의 위력 앞에 많은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나뒹굴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가슴 아픈 추억이 되어 있는 시간들이다.

 

몇장의 사진으로 금북산줄기분기점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바위가 깔린 마루금을 타고 내려가며 금북기맥 산행을 이어간다.

조금 내려가니 멋진 소나무 군락이 펼쳐지고 그 소나무들의 모습에 다시 감탄하며 잠시 쉬어 간다.

소나무와 바위들이 보이는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옛날 일제시대때 송진 채취를 위해 상처를 냈던 소나무들을 바라보며 참으로 안타까웠던 시잘도 생각해 보는 순간이다.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그저 성태산 가는 방향 표시만 되어 있는 이정표를 만나고 그 옆에 놓인 나무데크를 담아 사진 한장에 남겨 본다.

 

나무데크와 성태산 가는 방향 이정표를 지나 내려가니 곧이어 백월로 01-14란 이정목에 이제 백월산에서 0.9 Km를 내려 왔다는 거리 표시가 되어 있다.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다시 PVC 게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앞에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다.

한동안 그렇게 그 멋진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백월산에서 1.2 Km 내려왔고 성태산까지는 1.9 Km가 남아 있다는 이정표 앞에 좌측에서 우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가 나타난다.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내려가며 산행은 계속 이어진다.

 

잠시 비포장 임도로 내려 와 방금 전 내려 온 삼거리 갈림길을 바라보니 좌측 이정표 있는 곳의 내려온 등로는 잡목에 가려 보이지도 않고 우측의 넓은 비포장 임도만 눈에 들어 온다.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소나무 군락지를 내려가니 금새 저 아래에 넓게 공사중인 임도 갈림길이 나타나고 그 한가운데에는 지금도 공사중인지 커다란 포크레인 하나가 서 있는 다리재 또는 월치에 도착을 한다.

재난긴급구조 및 구조요청안내판이 서 있고 백월로 01-13이란 이정목엔 성태산까지 1.2 Km 남았다는 거리표시도 보인다.

그 옆에는 백월산과 성태산 등산안내도가 서 있지만 제대로 된 표시는 아닌듯 하고 백월산 건강정보란 안내판도 보인다.

백월산과 성태산 가는 방향과 거리의 이정표에는 좌측으로 가면 금곡저수지 1.4 Km 및 우측으로 보령가는 화살표 표시만 되어 있는 이정표가 함께 부착되어 있다.

동쪽으로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를 다리재 또는 월티라고 부른다.

산 높이 575봉의 백월산 줄기에 자리한 고개로서 보령시 청소면 나원리에서 청양군 남양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조선 시대 때 김시습이 한을 품고 넘었던 고개로 매월당을 추모하는 노래가 숨어 있는 고개로서 고개 아래에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도 고개 지명 따라 다리틔라고 부르고 또한 월티라고도 부른다.

  

잠시 그곳 다리재 또는 월치라고 하는 고갯마루에서 시간을 보낸 후 비포장 임도 우측의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소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고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네모난 각목으로 만들어진 계단이 나타난다.

그 계단을 타고 오르니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다시 나타나고 백월로 이정목을 지난다.

다시 나타나는 각목 계단을 타고 올라 평이한 등로를 타고 오르다 등로 좌측 뒤를 올려다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온 백월산과 금북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올려다 보인다.

 

다시 평이한 안부를 지나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굴곡진 삶을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소나무 한그루가 바위 옆에서 자라면서 이 산객의 발걸음을 잡아 끌고 있다.

사진에 담은 후 잠시 더 진행하니 등로 우측에 묘지 한기가 보이고 그 앞에 나무 데크로 된 평상이 보이는데 그 옆 숲속에서 고란이 한마리가 갑자기 튀어 나와 달아 나 버린다.

그 고란이도 놀라고 이 산객도 놀라 잠시 멍하니 그 고란이가 달아난 방향만 바라보고 있다.

 

그 평상을 지나 전진하니 구름속에 갇혀있던 아침 햇살이 나오며 소나무 군락지 사이를 파고 들고 그 강렬한 태양빛이 참으로 오묘하게 이 산객의 눈에 비춰진다.

아름다운 거목들이 등로 위에 낮게 자라난 들풀 위에 환상의 등로로 드러나 있고 그 그림같은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백월로 01-09란 이정목이 나타난다.

다시 그림같은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무념으로 흐르는 땀방울을 등로에 뿌려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진행하다 등로 좌측으로 잠시 잡목이 사라지며 발 아래에 펼쳐진 새벽이 이 산객이 산행을 시작한 백금리가 펼쳐져 있고 우측 아래쪽에 백금저수지가 보일듯 말듯 놓여 있다.

그 백금리 넘어 저 멀리로는 청양의 오봉산이 봉우리 주위에 하얀 안개 띠를 두르고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이 또한 그림이다.

시골에서 자라며 봤던 저 산의 이름은 좌우로 거닐은 봉우리가 9개라 해서 구봉산이라 불렀는데 금북정맥 산행을 하다보니 오봉산으로 바뀌어 있었다.

무엇인 진짜인지 산 이름을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많은 땀방울을 등로에 뿌리며 급하지 않은 완만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이제 거목들이 잠시 사라지고 산객의 키를 조금 넘는 싸리나무가 등로를 채우고 진행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군대시절 수없이 많은 싸리나무를 베어 빗자루를 만들던 추억이 갑자기 생각나는 것은 무슨연유인지...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문봉산으로 이어지는 성주지맥 마루금이 또한 환상이다.

머지 않아 다시 내려 와 한번쯤 걸어야 할 마루금이기에 가슴에 그리움만 남긴채 다시 발길을 돌린다.

 

다시 백월로 01-07 이정목을 지나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많은 소나무들이 서 있는데 하나같이 모두 고사목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의아하게 생각되는 장소이다.

등로 좌측 뒤로는 다시 지나온 백월산이 멋지게 조망되고 다시 이어지는 고사목과 잡목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다시 잡목지대가 나타난다.

그 잡목지대를 넘으니 곧이어 성태산 천세봉 정상이다.

자료도 많지 않은 성태산과 성태산 천세봉, 무슨 뜻일까 궁금한 시간이다.

 

성태산 천세봉은 금북기맥상에 있는 산이기에 꼭 들려야 하지만 우측으로 100여미 떨어져 있는 성태산 만세봉은 꼭 들려야 할 의무는 없지만 가까운 거리이니 들렸다 오기로 한다.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금새 안부에 도착하고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성태산 만세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커다란 정상석에는 631미터란 고도 표시가 되어 있고 그 뒷면에는 설명이 함께하고 있다.

성태산 만세봉은 부여군내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 시절 당시 이곳에서 대천, 청양 및 부여의 3개 시군 주민들이 모여 봉화를 올리고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만세 운동을 가졌다고 전한다.

그래서 이곳 봉우리를 만세봉이라 불렀고 그 다음봉우리를 천세봉이라 명명하였다는 설명이다.

이제거야 성태산 만세봉과 천세봉에 대한 의미를 알게 된 시간이다.

 

이곳 성태산은 또한 성주지맥의 분기벙이기도 하기에 남서쪽으로 뻗어 나간 성주지맥 상 고봉들인 문봉산과 성주산을 조망해 본다.

언젠가는 한번 다시 내려 와 올라야 할 지맥이기에 눈으로 가슴으로 그 이름을 불러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성주지맥은 금북정맥의 백월산(560봉)에서 남쪽으로 약 3 Km 떨어진 금북기맥의 성태산(633봉)에서 남서쪽으로 가지를 쳐 보령시 웅천앞바다 부사방조제앞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로 웅천천의 좌측 분수령이 되는 도상거리 약 33.4 Km의 산줄기를 성주지맥이라 칭한다.

이 산줄기를 따라가면 성태산(631봉), 문봉산(633봉), 성주산(677봉, 장군봉), 또 다른 성주산(515봉, 왕자봉), 옥마산(596.9봉), 봉화산(323봉), 잔미산(416.8봉) 및 통달산(184봉)을 만날 수 있다.

저 멀리 남서쪽으로 가까운 위치에 문봉산이 그리고 그 문봉산 뒤쪽으로는 이 성주지맥의 이름을 붙힌 성주산이 우람하게 서 있다.

 

만세봉에서 서쪽으로는 조선말엽에 보령군 청라면의 구역으로서 청라원이 있었으므로 청라원 또는 청라동이라 하였다가 행정구역 개편 때 나원리로 개편된 들녘이 멋지고 그 앞 가까이에는 작은 월티저수지도 보인다.

그 들판 저 멀리에는 나즈막한 보령의 봉황산과 배재산 줄기가 막을 치고 서쪽을 가로막고 있다.

서북쪽으로는 저 멀리 칠갑지맥의 대덕봉과 그 아래 우측으로 칠갑산 주봉 그리고 그 아래 우측으로 삼형제봉이 안개를 둘르고 봉우리만 하늘을 향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처음에는 무슨 산일까 궁금했는데 고도는 낮지만 주위에 높은 산이 없으니 금방 그 산 이름을 불러 볼 수 있었다.

늘 자주 오르던 산이였는데 이렇게 성태산에 올라 안개를 휘감고 있는 칠갑산을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다.

 

다시 한번 그리움에 성주지맥 마루금과 저 멀리 머리에 인공구조물을 이고 있는 성주산을 담은 후 다시 천세봉으로 복귀한다.

다시 칠갑산과 삼형제봉만 우뚝 솟아 있는 청양의 산을 담은 후 천천히 좌측 등로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완만한 등로가 이어지더니 갑자기 안전봉과 로프가 달려있는 사면 등로가 나타나고 그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복잡한 이정표 하나가 눈에 들어 오는데 마루금 좌측으로는 등산로 계단과 금곡마을 1.4 Km 방향 표시가 그리고 우측으로는 등산로 평길과 금곡마을 2.2 Km 방향 표시가 되어 있다.

같은 하산길이지만 조금은 가파르며 가까운 등산로냐 아니먄 멀고 와만한 등산로인가 하는 차이처럼 느껴지는 이정표에서 마루금은 우측 등산로 평길쪽이다.

 

이정표 옆에 서 있는 백월산과 성태산 등산안내도를 보면 지금까지 우측 중앙에 백금리 금곡마을과 금곡저수지를 두고 우측에서 시작해 좌측으로 한바퀴 삥돌아 걷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시 평이하고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소나무 숲이 아름답고 그 소나무 군락지 등로에 너무나 선명한 영지버섯 하나가 손바닥만큼 자라나 이 산객을 유혹하고 있다.

충분히 자랐다고 생각되기에 처음으로 조심스럽게 따 배낭에 넣은 후 식사를 하면서 반고개가든의 안주인에게 건네니 고맙다는 인사가 돌아 온다.

 

영지버섯을 딴 후 배낭에 넣고 다시 출발하니 등로는 갑자기 바위등로로 변하는데 불이 났었는지 굵은 활엽수만 남아 있고 산 표면에는 식물이 모두 사라지고 밑둥에는 불에 그을린 자국이 선명하다.

그래도 심하게 산불이 나지는 않았는지 굵은 나무들은 생명력이 그대로 살아 있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을 해 본다.

좁고 짧은 불난 지역을 벗어나자 다시 등로는 큰 소나무들과 잡목들이 채워져 있고 그 잡목들을 헤치며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노란 원추리가 반겨주는 안부 이정표에 도착해 흐르는 땀방울을 짜 낸 후 잠시 물한모금 마시고 출발한다.

등로 좌측으로는 오늘 새벽 산행을 시작한 금곡마을과 금곡저수지로 내려 갈 수 있는 하산 등로를 알려주는 두개의 다른 이정표가 서 있고 여기에서 금곡마을과 저수지까지의 거리는 1.5 Km라는 표시가 되어 있는데 이 산객은 옥가실 1.6 Km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 한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큰 소나무 군락지가 펼쳐지는데 밑에는 잡목들이 우거져 등로를 막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게 잡목을 헤치며 잠시 더 오르니 봉우리 하난가 나타나고 그 정상에는 행여봉이란 정상 이정표와 등로 우측으로 옥가실 1.4 Km 및 직진방향으로 백금리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너무나 많은 땀방울이 흐르기에 옷을 벗어 땀방울을 짜 낸 후 전화로 옆지기와 통화를 하니 이제 아침밥을 먹고 있다며 산행을 더 하고 싶으면 하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 온다.

처음에는 이곳 행여봉에서 내려가 만나는 반고개에서 산행을 마치기로 생각했었는데 다시 힘이 솟고 미음을 단단히 고쳐 먹은 후 배낭 둘러메고 천천히 내리막 등로를 타고 옥가실 1.4 Km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다만 이곳 높이는 지도상에는 그저 492봉으로 되어 있지만 정상 이정표에는 행여봉이란 이름과 함께 475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어 바르게 잡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행여봉에서 많이 쉰 후 배낭메고 우측 급경사 내리막 등롤를 타고 옥가실 방향으로 내려가니 여전히 등로는 키 큰소나무와 잡목이 혼재한 모습이고 간간히 키 큰활엽수가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잠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양쪽으로 나무 벤취가 준비되어 있는 장소를 지나고 잠시 평탄한 등로로 진행되는가 싶더니 언덕같은 나즈막한 봉우리를 넘어 등로 우측으로 올라오는 넓은 비포장 임도가 끝이 나는 장소로 내려가 등로는 곧바로 직진의 능선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붉은 황토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뜨거운 태양열 만큼이나 마음이 아파오는 시간이다.

 

능선으로 들며 비포장 임도와 헤어져 전진하니 다시 잡목이 우거진 완만한 능선을 넘고 다시 키 큰소나무와 잡목이 혼재된 등로를 타고 걸어 간다.

잡목 사이로 뚜렷하게 나 있는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 좌측으로 벌목된 장소가 나타나고 발 아래에 흥산리 마을과 들판 그리고 그 넘어 저 멀리에는 정혜산과 망월산 줄기가 펼쳐져 있다.

그림같은 풍경에 잠시 발걸음 멈추고 그 아름다움을 즐겨 보는 시간이다.

 

계속 이어지는 벌목지대 가장자리를 타고 내려가며 등로 좌측의 마을과 조망을 즐겨 본다.

잠시 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사거리 안부가 나타나고 그 앞에는 벤취도 준비되어 있다.

사진 한장 담으며 밧데리가 떨어져 교환하며 잠시 쉬어간다.

이제 반고개까지는 0.8 Km가 남아 있고 등로 우측으로는 옥가실 0.4 Km가 그리고 좌측으로는 흥산리로 내려가는 방향 화살표가 되어 있다.

옥가실마을이 있는 수신리는 외산면의 최북단에 위치해서 북쪽으로 해발 620미터의 성태산을 경계로 보령시 청라면과 청양군 남양면과 접하고 있는 지역으로 산과 들과 계곡이 잘 조화를 이룬다 해서 유교를 믿는 사람들이 신성지로 손꼽기도 하고 풍류객이라기보다 조용한 지역에서 안주를 바라는 사람들이 한번 정착하고는 떠나지 않았던 특이한 조건이 있는 지역이다.

사람들이 정착하여 뿌리를 내린다는 뜻에서 신근마을이 있고 파평윤씨가 많이 사는 마을로 뒷산의 형국이 마치 신선이 춤추는 형상이라 무수 또는 무술이라는 마을이 있으며 또한 옥가실에는 수령 5백여년 된 희귀한 소나무가 있다.

 

흥산리와 수신리로 내려가는 사거리 안부의 이정표 옆 벤취에서 잠시 쉰 후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 선 군락지가 이어진다.

잠시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내려가니 묘지 하나가 보이고 그 묘지 넘어 저 멀리 반고개 넘어 밤나무 밭 한가운데 서 있는 235봉의 무인산불감시탑이 올려다 보인다.

우측으로는 수신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좌측으로는 밤나무 단지가 들어 서 있다.

그 밤나무 단지 위를 통해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예전에는 비포장 임도였던 등로가 이제 다니는 사람이 없으니 잡목과 잡풀이 우거진 난해한 등로로 변한 밤나무 위 마루금을 타고 내려간다.

다시 묘지 지대를 지나 내려가니 콘크리트 임도와 만나는데 처음에는 그 콘크리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오르니 좌측 저 멀리 무인산불감시탑이 보이고 도로 좌측으로는 군 벙커의 굴뚝이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 봐도 내려 갈 방법이 없어 콘크리트 임도 좌측을 타고 내려가니 606번 2차선 지방도로를 만난다.

그 도로 건너편에 반고개가든 식당이 보이고 그곳으로 찾아 들어 간다.

 

이제 시간이 아침 9시 40여분이니 아잠시간인데 이곳이 아니면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없기에 들어 가 본다.

아주머니 한분이 가게를 지키고 냉면 하나를 시키니 많은 종주대를 만나셨는지 무덤덤하게 식사를 준비해 주신다.

바깥에 있는 수돗가에 나가 수돗물로 몸을 닦고 옷가지를 빨아 널어 놓으니 조금은 살 맛이 나지만 아직도 온 몸을 타고 흐르는 굵은 땀방울이 오늘도 얼마나 더운지를 말해 주고 있다.

맥주 한병을 시켜 마시니 시원한 것이 더위를 식히기에는 충분하지 않지살 것 같다는 기분이다.

냉면 맛도 좋아 기분 좋게 식사 후 나오니 주인장이 나타나고 인사를 건넨 후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니 빗방울이 떨어지며 제법 굵은 가랑비가 솟아진다.

 

식사 후 2리터 물병에 꽝꽝 얼려 놓은 얼음물을 건네 주시는 아주머니의 호의에 감사 인사를 드리고 나와 처음에는 식당 좌측의 임도를 타고 진행 할까 생각하다 종료 후 찜찜해질 것 같아 606번 지방도로를 타고 좌측 고갯마루로 올라 그 좌측으로 보이는 밤나무 단지를 통해 235봉 무인산불감시탑으로 오르기로 한다.

부여군 외산면은 평평하고 청양군 남양면은 고개로 되어 있기에 반고개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과 남쪽 지방에서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갈 때 꼭 반이 되는 지점이라 해서 반고개라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는 고개이다.

쉽지는 않지만 얼굴에 와 닿는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밤나무밭 위로 오르니 떨어지던 빗방울이 멈추며 더욱 뜨거운 열이 온 몸으로 전해지고 다시 굵은 땀방울이 온 몸을 타고 흘러 내린다.

 

 

시원한 냉면을 먹고 몸을 식힌 후 오르는 산행이기에 조금은 괜찮은 산행이라 생각했지만 금새 온 몸이 뜨거워지며 땀방울이 흘러 등로를 흥건히 적시는 기분이다.

특히 계단식으로 만들어 놓은 밤나무 밭을 타고 오르는 시간은 참으로 고통스럽고 어려운 시간이였다.

식사 후 오르는 시간이라 더욱 힘든 느낌이 드는지도 모르는 순간이다.

그렇게 힘들게 오르니 정상에 도착을 하고 잡목ㄱ이 우거진 한가운데에 무인산불감시탑이 서 있다.

이곳이 바로 235봉 정상이지만 저 무인산불감시탑이 아니면 알지도 못하고 지나칠 수 있는 그런 봉우리이다.

 

 

그 밤나무 밭이 계속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진행해야 할 241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온다.

등로 좌측으로는 흥산리와 매곡리 사이로 나 있는 606번 2차선 지방도로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어느 시골의 농촌 풍경과 다르지 않지만 고향과 가까운 곳이라 그런지 꼭 이 산객의 고향 땅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올라야 할 마루금을 바라보며 등로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계속 이어지는 밤나무 밭을 타고 내려가니 중간에 은행나무들이 나타나고 처음에는 이곳 은행나무 있는 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들어야 하는줄 알고 조심하며 진행하지만 위에서 봤던 등로와는 차이가 있기에 밤나무 가장 자리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한다.

등로 좌측 저 멀리에는 흥산리 지나 금북정맥 산줄기도 시원하게 조망되고 있어 진행하기에는 외롭지 않다.

조금 더 진행하니 밤나무 단지가 우측으로 펼쳐져 있고 좌측으로 잡목이 우거진 능선이 이어지지만 은행나무 앞에서 아무리 능선 진입로를 찾아 보지만 찾질 못하고 밤나무 단지를 타고 한동안 내려가 본다.

하지만 내려가도 정상 등로가 아니라는 느낌으로 다시 돌아 올라와 능선 진입로를 찾아 보니 찾지 못하고 옷바시라는 벌집을 건드려 벌침 2방을 쐬고는 줄행랑을 치며 밤나무 밭에 엎드렸더니 이제는 온 몸에 밤가시에 찔려 최악의 산행 순간을 맞이한다.

그래도 많은 시간 보내며 좌측의 잡목 능선과 우측의 밤나무밭이 좌측으로 꺽이는 지점 조금 더 내려가니 큰 은행나무 한그루가 서 있고 그 좌측으로 띠지 하나가 보이는데 얼마나 반가웠던지.

벌에 쏘인 지점 조금 더 내려간 지점 좌측의 잡목이 우거진 능선 진입로를 잘 찾아 능선으로 들어가 진행하니 시멘트 임도가 나타나고 처음에는 구루고개라 생각했지만 구르고개는 다시 진행해 만나는 고개가 구루고개이고 이곳은 이름없는 그냥 시멘트 임도이다.

 

구루고개인 시멘트 임도를 가로 질러 다시 능선으로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오르니 최근에 만들어진 듯한 한양조씨 묘지가 나타나고 그 우측 등로를 타고 능선으로 진행한다.

평이한 등로로 이어지던 마루금이 봉분마저 사라지는 잡풀이 무성한 곳에 올라 지나온 마루금 저 멀리 아름다운 산줄기를 살펴 본다.

 

다시 나타나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아주 편안하게 진행을 하지만 그것이 다시 오랫동안 정상 등로를 찾아 해맸던 곳으로 기억되는 곳이기도 하다.

넓은 임도를 타고 진행하다 대나무 밭이 나타나는 등로 좌측을 올려다 보니 저 멀리 이제부터 올라야 할 조공산이 우뚝 솟아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부터 장대비가 솟아지기 시작하고 갈래갈래 흩어지는 수많은 임도 줄기로 인해 등로 찾기에 어려움을 느낀다.

임도 좌측의 짧은 대나무 밭을 지나 저 앞에 보이는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곳에서 등로는 좌측 임도를 타고 진행해야 하는데 진행을 해도 띠지도 없고 잡풀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그곳으로 올랐다 내려오고 다시 직진하며 등로를 찾으며 30여분 이산 이곳에서 지체를 한듯 하다.

 

다시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삼거리 임도로 뒤돌아 와 내리는 빗줄기를 피해 준비한 산행지도와 나침판을 가지고 정독도를 해 보니 좌측 임도가 맞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내려왔던 등로를 타고 올라가 본다.

임도 좌우측으로 밤나무 단지가 펼쳐져 있는데 오랫동안 다니지 않는 임도는 키가 큰 잡풀과 밤나무 가지가 내려 와 진행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어렵게 진행을 하니 다시 묘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올려다 보는 좌측의 조공산이 이제서야 제대로 된 등로를 찾아 진행하고 있음을 확신하는 시간이다.

조금 더 진행을 하니 언덕같은 봉우리를 넘어 등로 좌측에 묘지 지대를 지나니 다시 시멘트 임도를 만나 한숨을 쉬어 본다.

하지만 자세히 지도를 살펴보니 아까 생각했던 구루고개는 그곳이 아닌 이곳 시멘트 임도가 실제 구루고개이다.

 

구루고개의 시멘트 임도로 내려 와 좌측으로 몇미터 걸어 진행하니 다시 시멘트 임도 우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나 있고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오르다 뒤돌아 보니 묘지지대 때문에 제대로 내려오지 못하고 좌측으로 꺽어 내려온 등로가 확실하게 드러나 있다.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올라가니 잡목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등로로 이어지고 그렇게 잠시 무심으로 걸어 보는 기분 좋은 시간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소나무 군락지 밑으로 펼쳐진 잡목을 헤치며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전진하니 다시 소로의 등로로 변하고 오붓하게 걸어가는 시간이다.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마루금을 타고 오르니 무명봉을 넘어 안부를 지난다.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경주김씨 묘지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조공산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맥 잇기 마루금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 내려가며 이어가야 하지만 등로 좌측으로 약간 비켜나 있는 조공산을 언제 다시 찾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기에 잠시 어렵지만 다녀 오기로 한다.

 

조공산 갈림 삼거리에서 잡목을 헤치며 오르니 금새 조공산 정상이지만 잡목으로 가려져 조망은 전혀 없다.

정상석이라도 하나 세워져 있으면 다녀가는 즐거움이라도 있을텐데... 삼거리에 붙어 있는 정상 이정표를 대신 사용해 본다.

고향쪽 산이기에 자료를 찾아 보지만 제대로 된 자료 하나 찾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차후라도 그 자료를 찾을 수 있으면 보완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다.

아쉬운 마음만 남겨 둔채 그 조공산을 내려와 삼거리 갈림길인 경주김씨 묘지를 지나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조공산 갈림 삼거리인 경주김씨 묘지를 지나 내려가니 급하지도 않고 완만하지도 않은 그런 평이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더 내려가니 완만한 내리막 등로가 끝이나고 안부가 나타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구신이재라 이름이 붙어진 곳이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구신이재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한다.

 

구신이재를 지나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잡목이 우거진 정상에 도착을 하지만 아무 표식도 없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405봉이라 생각되는데 자신은 없다.

다시 소나무 군락지가 펼쳐진 등로를 타고 조금 더 평이하게 전진하니 등로 우측 저 앞으로 화성저수지가 펼쳐져 있고 그 뒤로 금북기맥 마루금과 우측으로 우뚝 솟아 있는 월하산이 보인다.

그 좌측으로 축융산과 우측 저 멀리 월명산도 안개속에 머리를 내밀며 존재감을 확인시키고 있다.

 

멋진 화성저수지와 앞으로 올라야 할 금북기맥 마루금을 조망하며 405봉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오니 비포장 임도와 만나고 지도를 살펴보니 마동재이다.

이곳 마동재 비포장 임도를 만나면 다시 좌측 능선을 타고 올라 진행해야 되지만 특징도 없고 오늘은 특히 비가 내려 등로가 완전히 젖어 있기에 능선 마루금을 버리고 당분간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기로 한다.

비포장 임도를 만나 좌측으로 임도를 타고 진행을 하니 임도 우측으로는 계속 해 화성저수지와 그 뒤로 월하산을 구경하며 진행하게 된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임도 우측의 화성저수지와 월하산을 조망하며 걸어가니 생각보다 제법 긴 거리를 걷게 된다.

원 기맥 마루금은 임도 좌측으로 나 있고 모퉁이를 돌아 갈 때마다 그 정기맥 마루금이 살짝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한동안 진행하니 다시 뜨거운 태양열이 온 몸으로 전해지고 수많은 땀방울을 임도에 뿌리며 걸어가니 비포장 임도가 ㄱ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기 직전 좌측 능선으로 띠지 몇장이 나풀거리는데 산행지도를 살펴보니 임도와 주 등로가 가장 가깝게 만나는 지점이다.

계속 임도를 타고 진행해도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어 있지만 그 거리가 훨씬 멀게 느껴지기에 이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들어 주 기맥 마루금을 타고 진행하기로 한다.

 

능선으로 오르니 밤나무 밭이 펼쳐지고 그 밤나무 밭과 맞닿은 곳에 수레길 같은 비포장 임도가 나 있다.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꺽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나령리쪽 산줄기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계속 좌측에 밤나무밭을 두고 오르니 무명봉에 도착해 방금 전 지나온 능선 진입로와 그 뒤로 우뚝한 357봉이 조망된다.

지나온 조공산까지의 아름다운 금북기맥 마루금도 보이는 멋진 풍경을 뒤돌아 보며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나령리 안나마리와 효자각쪽 풍경이 한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다시 풍경을 즐기며 진행하다 뒤돌아 보니 지나온 마루금이 환상으로 펼쳐져 있다.

임도 좌측으로 이어지며 내려온 정금북기맥 마루금이 길게 펼쳐져 있고 저 멀리 오르지 못한 357봉 넘어 마동재가 잘록해 보이고 그곳을 지나 멀어진 곳에는 조공산 갈림길과 우측으로 조공산 정상부가 시원하게 올려다 보인다.

비가 내리고 햇볕이 든 후라 그런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 마루금이다.

 

이제부터 등로 좌측으로는 부여쪽 산줄기가 펼쳐지며 지난 몇년전 올랐던 금남정맥 마루금을 찾아 보지만 아직은 너무 멀리 있는 지 보이지 않고 다만 가까이에 존재하는 망월산쪽 산줄기만이 지루한 맥 잇기 산행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있다.

다시 선명하게 나타나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좌측에 밤나무 단지를 두고 걸어가니 소나무와 활엽수가 적당히 섞여 있는 등로로 변한다.

무명봉을 넘어 계속 전진하니 번호 없는 송전탑이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해 진행하니 안부로 내렸다가 올라 306봉에 도착을 한다.

불방친구로 알고 지내는 남양주의 금곡님이 달아 놓은 띠지와 그 띠지위에 적어 놓은 306봉이란 글귀가 무척이나 반갑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306봉에서 좌측으로 꺽어 진행을 하니 나즈막한 봉분이 있는 묘지를 지나고 잡목이 우거진 미로같은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평이하지만 꾸준한 오르막 등로로 여겨지는 마루금을 타고 진행이 된다.

한동안 조망도 없는 지루한 마루금을 타고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채종림 안내판이 보이는데 그 간이 지난지도 8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안내판은 그자리에 남아 있다.

 

채종림 안내판을 지나 조금은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앞에 잡목이 사라지고 잡풀이 무성한 362봉 공터에 도착을 하는데 그 공터 좌측으로는 높은 무인산불감시탑이 솟아 있다.

혹시나 하고 그곳을 가 살펴보니 특별한 내용은 없고 파괴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경고판 같은 것들이 사방으로 붙어 있다.

다시 뒤돌아 나와 이제 앞으로 진행해야 할 세재고개 우측으로 흐르는 마루금을 살펴 본다.

너무나 많이 달라붙는 날파리를 피해 오래 머물지도 못하고 앞으로 나 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내려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잡목을 헤치고 잠시 내려가니 뚜렷한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소나무가 등로를 뒤덮은 그늘진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밤나무 밭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세재고개 지나 직진의 축륭봉쪽이 조망되기에 길주의를 해야 한다며 내려갔는데도 정상 등로를 찾지 못하고 잠시 알바를 경험하게 된다.

밤나무 단지를 타고 내려가니 임도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는 밤나무를 가꾸고 밤을 저장하거나 일을 할때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간이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그 건물 주위에는 많은 약을 치기 위한 포대들이 보이고 냄새도 조금 심하게 풍기고 있다.

 

그 조그마한 가건물 같은 건물을 지나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을 하니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서 자주 봤던 대은도로 표지석과 임도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우측 임도를 타고 100여미터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무조건 그 시멘트 도로를 건너 직진의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잡목이 우거지고 잡풀이 자라면서 붙어 있는 띠지들을 모두 숨겨 놨기에 그 선답자들의 띠지를 발견하지 못하고 시멘트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돌아가며 세재고개 지나 능선으로 조금 더 올라 알바를 경험하게 된다.

 

좌측으로 콘크리트 도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방금 전 대은도로 표지석 반대편으로 돌아 온 느낌인데 그 콘크리트 포장도로는 계속해서 원형을 그리며 좌측으로 흘러가고 세재고개에서 우측 능선쪽으로 비포장 임도가 나 있는데 그곳을 타고 오르니 임도 초입부에 파란 철망이 짧게 보인다.

그 파란 철조망에 대한 기억이 없기에 이상하다 생각을 하면서도 조금 더 능선으로 오르니 멋진 잣나무 숨이 이어지는데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들어 지도와 나침판을 꺼내 독도를 해보니 남서쪽으로 진행을 해야하는 방향이 자꾸만 남동쪽으로 진행이 된다는 시그널이 뜬다.

뒤돌아 내려가 다시 대은도로 표지석까지 갔다 천천히 독도를 하며 비포장 임도를 내려오니 방향은 무조건 우측 능선으로 나 있다.

어렵게 위에 보이는 콘크리트 임도를만나자 마자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잡목과 잡풀로 가려진 선답자들의 띠지 몇개가 그곳에서 나풀거리고 있다.

 

능선으로 진입하니 더욱 많은 띠지들이 반기고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바닥에는 깊은 낙엽이 깔려 섞으며 푹신한 등로를 만들고 있다.

고도가 낮아 무척 더워지는 시간이기에 무명봉으로 오르기 위해 조금 더 빠르게 진행을 하니 더욱 많은 땀방울이 온 몸을 적시고 있다.

그렇게 조금 더 오르니 번호가 없는 송전탑이 가로막고 그곳에서 옷을 벗어 흐르는 땀방울을 짜 낸 후 다시 출발한다.

 

송전탑을 지나 완만한 내리막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다시 비포장 임도와 만나는데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올라간다.

이제 등로 우측으로는 다시 밤나무 단지가 펼쳐져 있고 뜨거운 태양열을 받으며 잠시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임도는 우측으로 휘어져 흐르고 그 좌측 한쪽에 홍수경보기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등로는 이곳에서 홍수경보시설과 임도 중간의 능선으로 올라 우측에 다시 밤나무 단지를 두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밤나무 단지를 우측에 두고 좌측 가장자리를 타고 오르니 좌측 저 멀리에 칠갑지맥의 주 봉우리들이 모두 보인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넣으며 진행을 하니 묘지들이 있는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 공터에서 내려다 보니 아름다운 산줄기가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뜨거운 날씨이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 있기에 잠시 쉬며 사진에 담아 본다.

 

묘지들 앞으로 나 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그늘속으로 들어가니 따가운 햇살만 피하는 것만으로도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피하는 느낌이다.

계속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전진하니 아름다운 소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고 마음껏 그 소나무에서 내뿜는 치톤피드를 마셔보는 시간이다.

잠시 더 전진하니 더 넓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고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조금 더 오르니 언덕 꼭대기에 도착을 하고 다시 펼쳐진 밤나무 단지 넘어 내산면 마전리 마을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흘러가는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꺽어 오르니 다시 밤나무 단지를 좌측에 두고 우측 능선 경계로 진행하는 형태로 산행은 이어지고 있다.

게속 올라 무명봉으로 오르니 띠지 하나가 우측에서 나풀거리는데 벌목된 나무들이 길을 막아 들어갈 수가 없어 보인다.

그 띠지 하나도 우측 안쪽이 아닌 길가에 붙어 있기에 혹시나 하고 계속 무명봉 넘어 진행하니 묘지 한기와 밤나무 밭을 지나 계속 내리막 등로이다.

무엇인가 잘못 되였음을 감지하고 무명봉으로 뒤돌아 올라가 이제 좌측 능선쪽을 유심히 살펴보니 벌목된 나무들로 막아 놓은 등로 진전에 좌측으로 들어가는 샛길이 보이고 그곳으로 들어가니 희미하지만 확실한 금북기맥 등로가 열려 있다.

진행 방향에서 보면 바로 위에 보이는 등로에서 우측 벌목된 나무들로 막혀 있는 곳으로 90도 꺽어 들어가며 진행해야 올바른 맥 잇기 산행이 되는 것이다.

 

어렵게 무명봉을 지나 벌목된 나무로 막힌 등로를 찾아 진행을 하니 벌거숭이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그 벌목된 장소에는 어린 밤나무 묘목들이 심어져 있다.

몇년이 지나면 이곳 역시 밤나무 밭으로 표기된 산행 후기를 읽을듯한 그런 풍경들이다.

제법 긴 능선을 벌목해 밤나무를 식재한 모습이 보이고 중간에 잘록한 안부를 지나 벌목된 무명봉 정상부도 조망된다.

 

뜨거운 태양이 내려 쬐는 벌목된 구간을 그늘 하나 없이 진행하려니 참으로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지만 그렇게에 보이는 주위의 아름다운 조망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시간을 지체해 본다.

등로 좌측으로 월명산 줄기가 환상으로 다가오는 시간이지만 아직도 미답봉이기에 그 상세한 속살까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언젠가는 저곳 또한 즐기는 산행으로라도 올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등로 우측으로도 화성리쪽 들판이 멋지게 펼쳐져 있고 그 넘어 외산면쪽 산줄기가 아름답게 눈에 들어 온다.

민둥의 벌목지대 한가운데에 나 있는 사거리 안부를 지나 계속 오르니 지나 온 마루금이 다시 산객을 부르고 잠시 뒤돌아 보며 지나온 마루금과 번호가 없는 철탑을 바라본다.

세재고개에서 갈라져 우측으로 흐르는 축륭산 줄기와 좌측으로 이어지는 금북기맥 마루금이 아름다운 풍경이다.

 

무명봉 정상의 벌목된 곳에서도 잠시 시간을 보내며 길찾기에 주의를 기울여 본다.

모두 벌목되어 띠지가 없기에 독도를 하며 살펴보니 등로는 이곳 무명 벌목봉에서 좌측으로 크게 꺽여 내려가고 다시 능선 그늘로 들어간 후 우측 능선으로 꺽이며 이어지고 있다.

어렵게 정상 등로를 찾아 진행을 하니 다시 밤나무 밭이 나타나고 그 밤나무 밭을 타고 진행하게 된다.

 

밤나무 밭을 타고 내려가니 어느새 밤나무 밭이 끝이나고 이제는 다시 소나무 군락지가 힘이 드는 산객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잡목이 우거진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제법 골짜기 같은 풍경이 남아 있는 가칠고개에 도착을 하지만 이제 그 고개로서의 기능을 많이도 상실한듯 잡목들이 그 고개를 채우고 있다.

 

가칠고개를 지나자 마자 고객들로부터 많은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하고 회사와 고객간 전화를 하면서 진행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되고 있다.

이제부터 특별한 곳도 특별한 조망도 없기에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해 보지만 역시나 먹고 사는 일이 발목을 잡고 늘어지고 있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전화가 통했다 불통되기를 몇번, 한동안 한장소에 머물며 일을 끝내고 다시 맥 잇기 산행을 시작하니 오르막 등로를 치고 올라 많은 띠지들이 좌측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 월하산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월하산 역시 맥 등로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오늘이 아니면 언제 다시 오를 수 있을지 기약이 없기에 어렵더라도 잠시 다녀 오기로 한다.

 

우측 오르막 등로를 타고 땀방울 흘리며 오르니 멀지 않은 곳에 월하산 정상 이정표가 붙어 있지만 이곳 역시 잡목들이 가려 조망은 전혀 없다.

월하산은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화성리와 내산면 온해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423미터인 산이다.

이 산을 중심으로 안쪽은 내산면이고 바깥쪽은 외산면으로 갈라져 있다.

들을 내려다보고 높이 솟아 있어 달 아래 우뚝 솟은 산이라 해서 월하산이라고 한다.

조선지지자료에는 홍산군의 외산면에 월하산이 기록되어 있는데 한글로 달아산이라 쓰고 소재지는 복동리이다.

조망은 없지만 그 이름 하나는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다.

 

월하산을 다녀 와 다시 몇통의 전화 통화를 한 후 준비한 빵과 과일로 요기를 하고 집으로 전화를 해 산행 시간이 앞으로 1시간 30여분 후면 지티고개로 내려 갈 수 있겠다고 전해주니 관절에 좋다며 달맞이꽃을 캐던 옆지기가 시간 맞춰 오겠다는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 온다.

잠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던 마루금이 안부를 지나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313봉이라 생각되는 곳에 도착을 해 잠시 쉬어 간다.

보이지 않던 식흔이 나타나는 모습에 해발고도는 낮지만 역시나 사람들이 발길이 뜸한 등로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몇통화의 전화를 받고 어렵게 이어가는 맥 잇기 산행을 진행한다.

한동안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띠지가 달린 무명봉을 지나고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한 후 다시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땀방울을 흘려 본다.

힘들게 오르니 다시 언덕같은 무명봉을 넘어 내려갔다 안부를 넘어 오르막 등로를 타고 366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를 넘는다.

다시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무명봉을 넘고 383봉을 넘으니 그림같은 소나무 군락지가 이어지고 있다.

 

약간의 바위지대를 통과해 진행을 하니 옆지기가 벌써 지티리에 도착을 했다며 딸과 아버님 모두 함께 왔다는 전화 통화이다.

조금은 빠르게 지행해 336봉을 넘고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다녀 온 월하산에서 부터 많은 무명봉을 넘어 진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풍경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 조망을 사진에 담은 후 다시 빠르게 진행을 하니 무명봉 지나 진행해야 할 지티고개 좌측으로 지티리쪽 풍경과 저 멀리 산줄기들이 환상으로 다가온다.

 

오랫만에 터지는 조망과 풍경에 아무리 바빠도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남아 있는 물로 허기를 채우고 목마름도 달래며 앞으로 보이는 풍경을 사진에 담다 보니 시간은 왜 그리 잘도 흘러가는지...

사면 등로를 타고 계속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논슨 철보망이 쳐져 있고 그 좌측으로는 밤나무 밭이 보인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이곳에서 등로를 잃고 헤매대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기에 정상 기맥길을 찾지 못하고 지티리쪽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잠시 더 희미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시멘트 임도와 만나고 그 임도를 넘어 오르니 무명봉 넘어 지티1리 마을쪽으로 길이 이어진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면 정상 등로를 찾아 내려 왔겠지만 아쉽지만 오늘은 이곳에서 산행을 접기로 하고 옆지기와 전화 통화 후 지티1리 마을 입구에서 애마를 만나 그 아래 계곡물에서 땀을 닦아 낸 후 애마로 지티고개로 오른다.

지티고개에서 정상 등로를 확인하고 다시 고갯마루로 내려 와 정상적인 금북기맥 제1구간을 무탈하게 마무리 짓는다.

 

40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지티고개 정상에서 다음 산행 들머리인 전봇대 옆 띠지들을 확인하고 애마로 시골집에 도착해 샤워를 마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가족 모두 집으로 복귀한다.

올라오는 길에 매송부근 식당에서 아버님이 좋아하는 메뉴로 가족 모두 즐겁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 오니 생각보다 막히지 않는 도로를 타고 짧지만 즐거운 시간 잘 마무리하고 서울로 복귀를 한다.

 

산행 후 내산면 홈 페이지에서 지티리와 지티고개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되어 있다.

지티리는 지티마을과 괴목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지티마을은 985년경 안동 장씨가 이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외산면 경계인 지티고개 아래에 위치하였으므로 지티라 칭한다.

괴목마을은 1486년경 남원양씨가 개촌한 것으로 전하며 그 후 차씨 등이 입촌하여 마을이 융성하였으나 양 성씨의 세력다툼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모두 징집되어 현재에는 이 두 성씨는 한 가구도 남아있지 않다.

그 후 창령 조씨가 입촌하여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 큰 괴목나무가 있어 마을 이름을 괴목이라 하였는데 지금도 그 때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약 500여년 된 느티나무가 있어 부여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이렇게하여 금북기맥 첫구간은 어려웠지만 무탈하게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내일 하루 더 쉰 다음 등로도 확실하지 않고 지독한 잡목들이 마루금을 덮고 있는 신백두대간 우듬지 산행을 하여야 하는데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 잡목과 가시나무를 뚫고 신백두대간 우듬지 산행을 무탈하게 마무리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다.

홀로 가는 산행이 아닌 산우님들을 모시고 진행해야 하는 산행이기에 더욱 신경이 쓰이는 시간이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무탈한 완주 산행을 꿈꿔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