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산행(완료)/한북정맥(완료)

한북정맥 제12-1구간 문봉동재에서 장명산과 곡릉천까지 산행 후기

칠갑산 사랑 2012. 5. 2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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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기도 고양시와 파주시 일대

산행날자 : 2012년 05월 25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아침에 구름과 박무로 시야가 제한되였고 오전부터 맑고 화창한 늦봄 날씨

산행온도 : 영상 16도에서 영상 28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견달산 부대위 삼거리(문봉동재)-석빠우간판-(주)첨단종합물류간판-타워골프클럽간판-

               KCC 글라스간판-인선이엔티공장-치킨매니아간판-동국로245번지길 도로표지판-

               미르 및 채널샾간판-영동자원간판-예빛교회간판-원각사간판-원각사-3182부대경고판-

               3182부대철조망-3182부대정문-시멘트도로-제9보병부대철조망-능선진입-성동재-

               영천사와 만경사 진입 임도-고봉산 안내도-만경사-영천사 0.37 Km 이정표-고봉산

               (고양고봉누리길 종합안내도)-영천사 진입임도-이무기바위-고봉산 등산로 안내도-

               붙임바위와 틈새바위-영천사-쇠철조망 통과-장사바위 갈림 삼거리-고봉산 헬기장-

               중산마을 갈림 이정표-쇠철조망 통과-현위치 안내판 안테나봉-고봉누리길 나무계단-

               고봉정-두산아파트 갈림 이정표-고봉로삼거리(황룡산 0.25 Km 이정표)-중산고개(개미고개, 숯고개)-고봉산 삼거리-

               황룡산 입구-금정굴 100미터 장승-통나무계단-금정굴(6.25 전사자 유해 발굴 현장)-현위치 안내판-철봉체육시설-

               현위치 안내판-5895군부대철조망-철봉시설(탄현아파트 갈림 삼거리)-108봉(탄현묘지 갈림 삼거리)-

               철봉 탄현아파트 갈림 삼거리 복귀-비포장 임도-탄현동 고개(e Mart everydasy)-마트와 호곡초교 사이 포장도로-

               탄현동성당-탄현동 큰마을 아파트-도담유치원-한국유통-큰마을 아파트 115동-큰마을 대림아파트-탄현큰마을교-

               일산가구공단 4거리-운정가구타운 도로표지판-광성교회-구름다리길 표지판-동서대로 358도로표지판-아미가골프연습장-

               미래로, 운정 도로표지판-삼부르네상스아파트-E MART-운정가구타운 도로표지판-운정 1, 2동 주민센타 도로표지판-

               운정3동주민센타 도로표지판-한울마을아파트-세계로금란교회-경기인력개발원-택지조성공사장-자운학교-산내공원-

               가람마을-운정고등학교-교하2차현대아이아파트-와석순환로-해솔마을2단지 버스정류장-교하1차월드메르디앙아파트-

               월드메르디앙과 청암초교 직전 우측 시멘트 임도-교하읍 고인돌 산림욕장 안내도-들꽃어린이집-56번 지방도로-

               지하통로로 56번 지방도로 통과-성재암 빗돌-성재암 임도-성재암 빗돌과 성재암 삼거리-파평윤씨교하종중묘지비-

               다율리 및 당하리 지석묘군-고인돌 0.1 Km 이정표 및 체육시설 삼거리-교하중학교 정문-군부대 담장 및 철조망-

               핑고개(오도1리 버스 정류장)-(주)미진봉투사-능선 진입-삼각점봉 및 낡은 산불감시초소-(주)교하환경 및 유진골재-

               교통호-장명산(102봉)-교통호-교하체육공원-곡릉천-정맥산행종료-신용비철-359번 지방도로 안내판-북진로 삼거리-

               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6.00 Km (접속구간 00.00 Km)

산행시간 : 사진 찍으며 꾸준하게 06시간 10분 (05시 35분 부터 11시 45분까지)

교통편 : 갈때-애마 이용해 문봉동재까지 이동 후 옆지기가 애마 회수

            올때-북진로 삼거리 버스정류장에서 73번 버스로 교하읍의 롯데 마트까지 이동

                    교하읍 롯데마트 앞에서 2200번으로 지하철 2호선 합정역까지 이동

                    합정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 후 집으로 복귀

 

한북정맥과 오두지맥 그리고 도봉지맥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산행을 준비하며

백두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은 남쪽으로 따라 내려오면서 여러 갈래의 산줄기로 나누어지면서 지리산으로 이어진다.

신경준의 산경표에서는 우리나라 한반도의 산줄기를 남북한 합쳐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분류하였는데 한북정맥이란 백두대간의 추가령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려오면서 한강과 임진강에 가르는 산줄기를 말하는데 그 마루금을 살펴보면 추가령에서 남서로 갈라져 내려오면서 백암산(1110봉)을 지나 휴전선을 넘어 적근산과 대성산으로 이어지며 대성산(1175봉)에서 내려온 산줄기는 수피령에서 복주산(1152봉), 광덕산(1046봉), 백운산(904봉), 국망봉(1167봉), 강씨봉(830봉), 청계산(849봉), 운악산(945봉), 죽엽산(601봉), 불곡산 임꺽정봉(445봉), 도봉산(739봉), 북한산(836봉), 노고산, 현달산, 고봉산으로 이어지다가 임진강과 한강의 합류 지점인 교하의 장명산에서 그 맥을 다하는 산줄기를 말한다라고 되어 있다.

 

다만 박종률의 신산경표에는 산경표와는 달리 신한북정맥(오두지맥)이란 신산경표에 따른 산줄기로 산경표의 원리대로 한다면 한북정맥이 도봉산으로 이어지지 않고 한강봉을 지나 첼봉에 닿기 전 무명봉에서 서진하는 산줄기를 따라 나아가다가 고령산, 월롱산을 넘어 통일전망대가 있는 오두산에서 끝이나야 맞다는 이론으로 분기봉에서 그 마루금이 다하는 지점까지의 도상거리로 약 41.3 km를 그동안 통칭하여 오던 오두지맥이 아닌 신한북정맥으로 표기하면서 많은 논란을 촉발한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산객은 몇년전 완주한 신한북정맥(오두지맥)과는 별도로 원한북정맥(도봉지맥)이라 불려지는 산줄기를 타고 걸어 봄으로서 차이나는 두 마루금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하고자 이렇게 진행해 보기로 한다.

 

 

어렵게 완성한 한북정맥 도봉지맥에서 아쉬움과 새로운 희망을 가졌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또한 마루금을 걸으며 다양한 의견들을 종합해 그 의견을 확실히 알아보고자 개인적으로 맥 잇기 산행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걸어 보고자 노력하며 산행기를 올려 드리니 산줄기에 대해 이 산객과 다른 의견에 대한 댓글은 사양함을 알려 드림니다.

 

다시 평상심을 갖고 생활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쉽게 잊혀지지 않는 지난 3주간의 악몽이 살아나며 많은 고통속에 지내다 지난 주 완벽한 몸 상태가 아닌 상황에서 소백산을 다녀 와 다시 지독한 몸살감기로 일주일을 더 고생한 후에야 정상으로 돌아 온다.

다시 좋아하는 산행을 하면서 피로에 지친 심신을 달래보려 남아 있는 한북정맥과 낙남정맥을 마무리하기로 마음을 정하니 생활이 편안해지며 다시 활력이 붙는 느낌이다.

다시 많은 자료 준비 후 금요일 하루 파주에 일이 있어 가는 길에 남아 있는 한북정맥인지 아니면 도봉지맥인지를 마무리하고 돌아 오자 마음먹고 새벽에 집을 나서니 옆지기가 걱정스런 모습으로 바라보며 동행을 해 주기로 한다.

아버님 모시기도 벅찬 시간일텐데 이렇게 마음 써 주니 그저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새벽 일찍 집을 나서 고양시청 근처에서 올갱이국으로 해장을 한 후 어렵게 문봉동재에 도착해 5시 35분에 홀로 남아있는 마루금을 오르며 옆지기를 집으로 돌려 보내는 마음이 걱정되면서도 개운한 순간이다. 

 

집에서 새벽 3시 30여분에 출발해 문봉동재에 도착을 하니 4시 20여분을 넘기고 어렵게 고양시청 근처에서 24시간 문을 열고 영업을 하는 식당으로 들어가 올갱이 국으로 배를 채운다.

다시 어둠이 물러나며 서서히 여명이 밝아 오는 시간에 문봉동재로 복귀해 옆지기를 보내고 홀로 남아 배낭을 챙기고 지난 구간 내려온 견달산과 문봉동재를 바라보며 흔적 한장 남겨 본다.

이제 오늘 지나면 언제 다시 이곳에 와 만날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장소이기에 조금 더 멈춰서서 그 풍경 하나 하나를 가슴에 담아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시작부터 딱딱한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해야 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지만 현실은 현실로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그저 새벽 공기 마시며 걸을 수 있음에 만족하는 순간인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 도로 좌측으로 군부대 담장과 그 담장위에 걸쳐져 있는 원형 철조망을 바라보며 오래 전 군 생활을 했던 기억을 떠 올리며 그때 함께했던 전우들을 생각했던 것은 무슨연유인지...

새벽 5시 30여분인데도 벌써 81번 버스가 지나가고 홀로 공부하며 이용 할려고 생각했던 버스이기에 반가움이 교차하지만 텅 비어 있는 버스안 모습에 씁쓸함도 베어나는 시간이다. 

잠시 더 도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도로 우측에 마치 도로 표지판을 닮게 제작해 세워둔 석빠우 간판이 나타나고 차례로 케어.손 그리고 첨단종합물류 간판이 외롭지 않게 반겨준다.

 

계속 왕복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서 자주 봤던 타워골프클럽이 나타나고 아트니어링과 다혜산업개발 그리고 대현건설 입간판이 한곳에 모아진 곳도 지나친다.

KCC글라스 간판과 건물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 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가 좌측에서 우측으로 크게 꺽이고 그 꺽이는 우측에는 산이 앞을 가로막는 도로 좌측에 거대한 친환경 우수기업 인선이엔티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이제부터 이 인선이엔티 공장의 담벼락을 도로 좌측에 두고 한동안 진행해야 한다.

새벽부터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지 기계음 소리가 귓전을 찌르고 있다.

 

다시 직진의 도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도로 좌측으로 거대한 문이 열려있고 혹시나 하고 들여다 보니 여전히 인선이엔티 공장이 이어지고 있고 이곳을 공사 차량들의 입출구 역활을 하고 있는 장소이다.

다시 계속 도로를 타고 걸어거니 도로 우측에 치킨매니아 간판이 보이고 다시 도로 좌측으로 인선이엔티 공사현장이 들여다 보이는 장소도 지난다.

그렇게 주위 구경을 하며 지나니 도로 우측으로 태을신궁 간판도 보이고 직선의 도로를 타고 한동안 걸어가니 도로 우측에 명찰제조업체인 미르와 그 옆에는 채널샾 공장이 보인다.

 

이제 시간적으로 일출이 시작되어야 할 시간이지만 두껍게 드리워진 구름으로 인해 일출 구경은 힘들겠다는 생각에 잊어 버리고 그저 주위 풍경만 마음속에 담아 보는 시간이다.

다시 도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도로 우측으로 영동자원과 청우산업 간판이 서 있는 그 사이로 포장도로가 나 있고 그곳을 지나 계속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남서쪽에서 남쪽으로 걸어가니 도로 우측 저 멀리 올라갈 수 없는 높은 인공탑이 우뚝한 고봉산이 가깝게 조망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에 기다리던 예빛교회가 보이고 그 도로 건너 우측에는 이제 타고 걸어 들어가야 할 원각사 200미터란 간판이 반겨 준다.

지루한 포장도로를 타고 잘 진행되어 왔다는 안도감이 약간의 피로감을 전해 주는 시간이지만 걱정했던 몸의 컨디션은 참으로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탁트인 넓은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하다 임도 양쪽에 하늘을 뒤덮는 거목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는 원각사 들어가는 도로로 들어서니 갑자기 컴컴해지며 두려움이 급습해 온다.

그래도 마음만은 부드럽게 정화되며 평온을 찾아 가는듯한 기분이다.

그렇게 진행하니 거목이 사라지며 갑자기 원각사 건물이 앞을 가로막고 그 원각사 건물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나 있는 임도를 타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지난 1995년 4월 개원한 원각사는 기도와 포교를 중심으로 대중불교와 생활불교를 지향하며 꾸준히 발전해 온 사찰로서 정각스님이 주지스님으로 오시면서 현실 속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구현하고자 불교대학을 중심으로 누구나 쉽게 불교 교리와 경전을 공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곳을 지나니 아름다운 전원주택들이 보이고 그 뒤로 이어진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3182부대장의 경고판이 나타나더니 금새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서 봤던 군부대 철조망 직전의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난다.

 

그 갈림 삼거리에서 좌측의 철조망쪽으로 혹시나 하고 올라보지만 진행하기가 어려워 내려 와 다시 우측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그 임도는 성석동 안산마을로 이어지는 임도처럼 보였다.

근래 오른 많은 선답자들은 좌측 군부대 철조망을 타고 진행하지 않고 그냥 이 임도를 타고 안산마을을 통해 고봉산으로 접근한 후기를 많이 읽었는데 이 산객은 그냥 철조망을 타고 진행하기로 하고 그 철조망으로 접근하는 길을 찾아보며 걸어 본다.

나즈막한 고개를 넘어 진행하니 바로 코 앞에 안산마을 민가들이 펼쳐져 있고 그 좌측으로 넓은 공터 직전에 군부대 철조망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그 좌측 희미한 등로를 타고 철조망을 만나 군부대 철조망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꺽어 계속 진행을 하니 제9보병 또는 3182부대 북문 정문이 나타나고 초병 2명과 인사를 나눈 후 부대 정문을 바라보고 우측 포장 임도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계속 진행한다.

 

그 부대 북문 정문 우측으로는 신축 건물이 들어서고 있는데 높은 옹벽을 만들어 도로로 내려서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군부대 정문 우측으로 나 있는 포장 임도를 타고 좌측에 군부대 담벼락과 원형 철조망을 두고 진행을 하니 임도 우측으로는 거대한 비닐하우스가 존재하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들어가니 비닐 하우스가 끝이나고 저 멀리 공장같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는 곳 군부대 철조망이 좌측으로 꺽여 올라가는 그곳에 전봇대 하나가 서 있고 그곳으로 등로는 이어지고 있다.

결국은 군부대 철조망을 타고 한동안 진행하는 코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군부대 철조망을 타고 진행하다 등로 우측 저 멀리 바라보니 벌써 일출이 시작되어 해가 중천에 떠 있고 그 우측 저 멀리에는 고양시 성삭동과 중동쪽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하늘 높이 솟아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다시 급하지 않게 굴곡진 군부대 철조망을 타고 걷다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쳐진 거미줄이 발길을 붙잡고 온 얼굴에 거미줄을 친 다음에야 어렵게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한동안 진행하니 저 멀리 나즈막한 봉우리 정상에 군부대 초소가 보이고 그곳으로 오르니 초병은 보이지 않지만 군부대 철조망은 좌측으로 크게 꺽여 달아나고 등로는 우측 능선으로 내려가며 소나무 군락지로 이어진다.

잠시 서성이며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마지막으로 군초소를 올려다 보며 추억 한장 남긴 후 우측으로 크게 꺽어 남서쪽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걸어 본다.

 

오랫만에 소나무가 군락지를 이루고 있는 융단같은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도심과 가깝기에 조용하지 못하고 차량들이 통행하는 강렬한 소음이 조금은 아쉬움을 남기지만 그래도 잘리고 막혀있던 등로를 버리고 이렇게 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 갈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짧지만 아름다운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다시 차량 소음이 강렬하게 들리기 시작하고 벙커들이 등로 옆을 채우는가 싶더니 금새 성동재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성동재 도로에 내려서니 2차선 왕복 포장도로로서 도로 우측으로는 성석동으로 가는 길목에 참빛교회와 고봉산 아구식당이 내려다 보이고 도로 좌측으로는 일산동으로 통하는 고갯마루인데 타임이란 식당 간판과 영천사와 만경사 들어가는 입구에 간판만 보이고 있다.

그 만경사와 영천사 들어가는 시멘트 임도로 들어가니 그 옆에 고봉산 안내도가 서 있어 한번 살펴 보고 오른다.

성석동은 문봉동의 서쪽에 위치한 마을의 명칭으로 이곳에는 일산동과의 경계에 일산구의 주산인 고봉산이 위치해 있다.

이곳을 성석이라 부르는 것은 고봉산과 깊은 연관이 있는데 고봉산에는 삼국시대 이래로 성이 쌓여서 지금까지도 남아있는데 산성을 토성과 석성으로 나누어 쌓았다.

이에 돌로 성을 쌓았다는 데서 성석이란 이름이 생겼다 한다.

일산동은 3개동으로 나눠져 있는데 그 유래를 찾아 보니 일산1동은 고양시 일산구의 지리적, 행정적으로 중심마을에 해당하는 곳이다.

일산동의 본래 이름은 본래 와야촌 마을인데 이곳 일산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일제시대로 일본인들이 경의선 철도를 만들고 이곳에 기차역을 설치하면서 인근의 한산마을 이름을 일산으로 바꾸면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 일산은 이 지역의 고유한 이름으로 이곳에 고봉산과 같이 큰산이 하나밖에 없어 일산이라 부르고 있다는 유래설도 전해온다.

일산2동은 우리시 일산서구의 지리적으로는 북동쪽에 위치하며 예전의 읍과 면소재지로서 행정적으로 중심지에 해당하는 곳으로 일산 1동과 같은 내용이다.

이곳 일산3동의 지명유래는 일산 1동과 같은 일화가 전해지며 다만 다른 후곡마을에 대하여 알아본다,

후곡은 우리말로 뒷골이 되는 마을로서 이 뒷골은 정발산이 있는 마두나 일산역이 있는 원 일산에서 보았을 때 그 위치가 산 안쪽의 뒷골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참으로 자주 찾았고 또 들었던 지명이름들이였는데 오늘에서야 그 정확한 의미와 뜻을 공부 할 수 있어 이 또한 맥 잇기 산행의 산물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성동재 도로에서 좌측 고갯마루쪽으로 조금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시멘트 임도가 열려 있고 그 앞에는 타임과 만경사 그리고 영천사 간판이 서 있고 그안으로 들어가며 오늘 산행을 이어가 본다.

다음주 월요일이 석가탄신일이기에 각 사찰마다 수많은 등을 도롯가에 매달아 놨지만 어딘지 모르게 근래에 일어난 승려들의 불법과 도박등으로 인해 많이 세가 위축된 느낌이다.

그 호젓한 임도를 타고 거목들과 친구하며 많은 사색과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만경사에 도착을 한다.

만경사는 한국불교태고종의 사찰로서 조선 선조(1567-1608년 재위) 때 문신이었던 홍이상이 창건하였다.

홍이상은 이 사찰을 조상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원당으로 삼았고 영조(1724-1776년 재위) 때 홍이상의 8세손 홍명주가 중건한 뒤부터 홍이상 후손들이 거주하며 풍산 홍씨 문중 재실로 삼았다.

1950년 6·25전쟁으로 불에 탄 것을 1955년 경해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며 현존하는 유물로는 대웅전과 요사채 2동이 있는 사찰이지만 겉보기에는 그저 평이한 사찰처럼 보였다.

조금은 안타까운 종교 특히나 불교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은 시간이다. 

 

만경사를 살펴보고 다시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임도를 타고 오르니 임도 우측에 좌측으로 영천사 0.37 Km와 우측 아래쪽으로 수연약수터 0.3 Km 갈림 이정표가 보이는데 오늘은 산행 거리도 짧고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에 영천사로 오르기로 한다.

그 이정표 지나 곧바로 또하나의 나무로 된 이정표가 있는데 다만 만경사에서 0.1 Km 지나왔다는 이정 화살표 하나가 더 추가되어 있는 이정표이다.

조금은 더 가파라지는 시멘트 임도를 타고 오르니 고봉산이란 표지목에 고양고봉누리길 종합안내도가 서 있고 그 안에는 고봉산, 안지습지공원, 추만 정지운 선생 그리고 장희빈 가족 묘역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다.

장희빈 가족 묘역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에 잠시 놀라 그 내용을 읽어 본다.

이곳에서 우측 정상으로는 군부대가 실제하기에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그로 인해 고봉산 정상을 밟아 보지도 못한채 아쉬운 마음으로 좌측 사면길로 열려 있는 영천사 임도를 타고 진행을 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체험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고봉산은 행정구역상 고양시 일산동구 중산동과 고봉동 경계가 되는데 한북정맥 산줄기로 이 산 남쪽에 성동고개가 있고 북쪽은 중산고개가 있다.
테미산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산 아랫 부분에 띠를 두르듯 평지가 감싸고 있어 생긴 이름이라 전해지고 정상에 고봉봉수대가 있는데 높은 산봉우리 또는 봉화를 올린다는 뜻에서 고봉산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고봉산 정상으로 향하는 군부대 입구를 사진에 담은 후 아쉬운 발길을 돌려 시멘트 임도 좌측으로 나 있는 영천사 들어가는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곧바로 이무기 바위와 그 설명판이 서 있다.

고봉산에는 작은 바위들이 많은데 마당바위, 장사바위, 두꺼비바위, 붙임바위, 이무기바위, 벼락바위등이 대표적인 바위들인데 그 바위들 중 처음으로 만난 바위가 바로 이곳 이무기 바위인 것이다.

이무기 모양을 하고 있다는데 이 산객이 아무리 들여다 봐도 정말 이무기를 닮아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 이무기 바위를 지나 걷다보니 많은 동네 주민들이 이곳 고봉산에 올라 운동도 즐기고 산책을 하면서 삶을 이어가는 모습에 다른 높은 산에서는 느끼지 못한 또 다른 묘한 매력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무기 바위를 지나 내려가니 임도 우측으로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 한쪽에는 다시 고봉산 등산 안내도가 서 있다.

그곳을 지나 계속 진행하니 다시 임도 우측으로 바위 하나와 설명판이 붙어 있는데 붙임바위와 틈새바위이다.

작은 바위 하나에도 이토록 많은 스톨링을 붙여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 또한 산을 찾게 만드는 것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붙임바위와 틈새바위를 읽어 보곤 홀로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잠시 웃은 후 다시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저 멀리 영천사가 내려다 보이고 그 뜰앞에는 수많은 등이 매달려 있다.

하지만 대중으로부터 멀어지는 종교가 무슨 소용이며 겉으로만 보이는 화려하고 치장된 모습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걱정도 되는 시간이다. 

이제부터라도 대중을 위하고 민초를 위하는 종교로서 불교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한 시간이기도 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봉산 영천사의 자료를 찾아 보지만 다음에 커페는 개설되어 있지만 그 내용은 원하는 내용이 없어 아쉬운 시간이다.

그 영천사 앞을 가로 질러 그냥 사진 한장 남기고 지나친다.

영천사 앞 뜰을 지나 계단 앞에 세워진 영천사에서 바라 본 일산. 송포 들판이란 안내판이 발길을 붙잡아 잠시 읽어 본다.

 

그 영천사를 지나 오르니 벤취와 운동시설이 갖춰진 장소가 나타나고 다시 좁은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열려진 철조망 문을 통해 영천사를 빠져 나가도록 되어 있다.

다시 계속 잘 나 있는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장사바위 가는 등로가 열려 있는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 장사바위쪽 등로는 영천사를 들리지 않고 장사바위를 거쳐 이곳으로 오는 또 다른 등로처럼 보이는 곳이였다.

그 갈림 삼거리를 지나 우측 능선으로 방향을 틀어 올랐다 좌측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금새 고봉산 헬기장이 나타나는데 그 옆에는 고봉산에 관한 설명판이 서 있다.

그곳에서 설명판과 고봉산 정상부의 인공 철탑을 담아 보는 것으로 고봉산에 들리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 보는 시간이다.

고봉산은 경기도 고양시의 일산동구 중산동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203미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고봉성산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군의 서쪽 15리 지점에 위치한다.

한씨 미녀가 달을성현 높은 산 위에 봉화를 올려서 안장왕을 맞이하였던 까닭에 고봉으로 이름하였다 한다.

해동지도에는 고봉봉수가 표시되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봉봉수가 서쪽으로 교하현 금단산에 응하고 동쪽으로 봉현에 응한다는 기록이 있다.

고양군지에서는 읍치 서쪽 25리 지점에 있는 봉우리를 고봉이라 하였다.

고봉에 대한 표기는 여지도에서만 고봉봉이라고 산의 의미를 강조한 듯하고 나머지 광여도, 팔도군현지도, 조선지도 등에서는 봉수대를 의미하는 고봉봉으로 표기하여 봉수대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이 산을 대위산 또는 대산이라고도 부르는데 발음상 태매산이라고도 부른다.

법정동명인 고봉동은 바로 이 산 고봉산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고봉산 헬기장에서 몇장의 사진을 남긴 후 그 헬기장을 가로질러 오르려니 헬기장 좌측으로도 공터가 보이고 등로가 나 있다.

혹시하고 그쪽으로 가 보니 현위치 안내판이 붙어 있고 그 좌측 등로쪽으로는 중산마을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다.

고양시 일산구 일산동에 있는 마을이름으로서 신시가지 건설이전에는 중산말, 안악골, 왜골 또는 더부골 등의 자연촌락 마을이 있었다.

중산이란 고양지역의 주봉이며 중심산인 고봉산 인근에 마을이 위치하고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또 다른 설로는 고양의 역사에 중심적 역활을 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라고 전해지는 마을이다.

그 옆에는 넘어진 고봉산 숲지도가 자리하고 그 옆에서 동네 아저씨가 운동을 하고 있다.

 

그곳을 지나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다시 완만한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다시 가로막은 철조망 한쪽에 열려 있는 철조망 문을 통해 올라간다.

이제 다시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완만한 내리막 등로가 열려 있고 그곳에는 소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다.

잠시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진행하다 등로 우측을 바라보니 박무가 드리워진 삼그리메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산 하나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어떤 산인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나즈막한 마루금을 걸으며 만날 수 있는 흔한 풍경이 아니기에 사진으로 담은 후 출발한다. 

 

다시 등로를 타고 완만한 오르막 길로 전진하니 소나무에 고양고봉누리길의 현위치 안내판이 걸려 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하고 살펴보니 두어개의 이상하게 생긴 철 안테나가 서 있고 그 가운데에는 나무 판자로 만든 작은 가건물이 서 있다.

혹시나 하고 지도를 살펴보지만 특별한 표식도 없는 무명봉이다.

다시 그곳을 타고 넘어 나무판자로 된 작은 가건물 옆으로 나 있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황룡산 방향으로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이제부터 나무계단으로 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다 나무 벤취가 준비된 장소에서 배낭 벗어 처음으로 시원한 식수로 목마름을 달래본다.

계속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타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고봉산으로 등산을 하고 있고 그 거칠은 숨소리를 들으며 다시 배낭 둘러메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철조망이 쳐진 등로가 이어진다.

그 등로를 타고 가로등도 설치된 곳을 지나니 저 멀리 팔각정이 보이는데 올라보니 조망도 없어 다시 내려 와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곳이 바로 고봉정이였지만 왜 이곳에 이런 팔각정을 세워 두웠는지 알가다도 모를 시간이다.

 

다시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헬기장에서 0.58 Km 지나왔고 황룡산까지 0.2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 좌측으로 두산아파트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이정표를 지나 내려가니 중간에 몇개의 나무벤취가 준비되어 있는 공터가 나타나고 계속 이어지는 안전목과 로프가 설치된 곳을 따라 내려가니 1차선 포장도로가 있는 고봉로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영천사에서 1.3 Km 지나왔고 황룡산까지 0.25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그곳 고봉산삼거리에서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니 고봉산 장어집 간판이 우측에 보이고 그 우측 방향으로 몇개의 식당들이 보인다.

 

그 식당들 좌측으로는 SK 주유소가 있고 그 앞으로는 지도에 중산고개라 되어 있지만 그곳 횡단보도 옆에는 개미고개와 숯고개란 이름으로 안내판까지 서 있다.

고봉로는 고봉누리길에서 만나는 가장 큰 도로로 일산과 파주 봉일천 방향으로 이어진다.

지하도나 육교없이 횡단보도로 도로를 건너야 하기 때문에 안전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고봉로 도로상에서 가장 높은 이곳 개미고개는 일산, 탄현, 성석 세마을의 분기점으로 개발 이전 이 고개가 개미허리와 같이 좁고 가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개미고개 서북쪽의 마을이 탄현동 즉 숯고개 마을인데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이 개미고개를 또 다른 이름으로 숯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숯고개는 황룡산과 고봉산 기슭에서 참나무를 베어 숯을 구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안내판이 눈길을 잡아 잠시 읽어 본다.

 

황단보도를 건너 좌측으로 가면 두개의 커다란 간판 걸이대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니 우측으로 황룡산 입구 간판이 보이고 그곳 옆으로 통나무 계단이 보이는데 그곳이 산행 들머리이다.

그 산행 들머리로 가니 들머리 좌측에 통한의 금정굴을 평화의 공원으로란 커다란 빗돌이 서 있고 그 옆에는 나무로 만든 장승과 안내판에 금정굴 100미터란 글이 보인다.

그 통나무 계단을 타고 올라 등로가 좌측 능선으로 들어가는 지점에서 잠시 등로 우측으로 지나온 개미고개쪽 풍경을 내려다 보니 저 멀리 고봉산에서 이곳까지 이어져 있는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다시 고즈넉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그늘진 능선으로 오르니 상쾌한 자연의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있다.

오랫만에 뇌리에 와 닿는 자연의 냄새에 순응하며 천천히 오르니 저 멀리 가건물들과 장승들이 보이고 올라가 살펴보니 6.25의 비극이 그대로 묻혀있던 금정굴 사건이 있었던 장소였다.

금정굴 사건은 6ㆍ26전쟁 직후인 1950년 10월 9일부터 31일까지 북한군을 위해 부역했거나 부역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찰이 고양과 파주지역 주민을 일산서구 탄현동 황룡산의 금정굴에서 150여명을 총살한 후 암매장한 사건이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6월 이 사건을 경찰의 지휘하에 불법적으로 벌어진 민간인 집단학살로 규정하고 희생자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평화공원 조성을 포함한 위령사업을 정부와 지자체에 권고한 바 있다.

그리고 서울중앙지법은 2011년 11월 24일 고양 금정굴 민간인학살사건 희생자인 이 모 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국가가 1억 원을 배상하라는 원고승소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한편 1993년 문제를 제기한 유족회와 시민단체가 1995년 9월과 10월 사건 현장에서 153구의 유해를 발굴했지만 안치할 곳이 없어 2011년 12월 현재 16년 간 서울대병원이 연구실 창고에 보관해 오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다.

전사자도 아닌 국가의 경찰에 의해 무자비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의 가슴 아픈 사연에 고개가 숙여지는 숙연한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금정굴 주위를 둘러보고 그 설명판에 적어 놓은 글귀들을 읽어 본 후 아픈 가슴을 안고 다시 나즈막한 능선을 넘어 이어지는 맥 잇기 산행을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온 몸이 무거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금새 그림같은 등로에 마음이 평온해지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니 현위치 안내판이 나타나는데 이제는 금정굴과 황룡산이 보인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그 정상에는 통나무로 만든 벤취가 보이고 저 앞에는 강아지 한마리를 데리고 산책 나온 주민 한분이 걸어 가고 있다.

그 통나무 벤취를 지나니 다시 철봉과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장소가 나타나고 잠시 철봉에 매달려 보곤 진행을 한다.

 

다시 갈 나 있는 등로를 타고 키 큰 소나무와 키 작은 활엽수 관목이 섞여 있는 호젖한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잘려져 나간 콘크리트 이정목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무명봉이 나타나고 그곳을 넘어 다시 내려가니 앞서가던 주민 한분과 강아지는 등로 좌측의 샛길로 빠져 시야에서 사라진다.

다시 고양고봉누리길의 현위치 안내판에 금정굴과 황룡산 화살표를 사진에 담은 후 조금 더 오르니 군부대 철조망이 가로막고 그 철조망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등로가 나 있는 장소에 도착을 한다.

 

군부대 철조망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이곳에서는 제법 많은 등산객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더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에 철봉이 보인다.

이곳이 정상 정맥 등로로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탄현동 아파트 단지로 내려갈 수 있는 등로처럼 보이지만 확실하지는 못하기에 그냥 그곳 정상부로 올라 보기로 한다.

정상으로 오르니 우측으로 황룡산 0.8 Km 및 좌측으로 탄현묘지 0.1 Km 란 이정표가 서 있고 그 한쪽에는 삼각점 하나가 보인다.

이곳이 108봉처럼 느껴지지만 확신하지 못해 다시 군부대 철조망을 타고 계속 진행을 하니 안부에 황룡산 0.7 Km란 이정표가 보이고 아무래도 미심쩍어 지나가는 연세드신 등산객에게 탄현아파트를 물어 보니 방금 전 지나온 철봉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는 것이 맞다는 이야기를 전해 준다.

 

그 연세 드신 등산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다시 108봉 정상으로 올라 자세히 살펴보니 황룡산 0.8 Km란 거리표시는 맞지만 그 사이 금정굴에서 0.79 Km 왔다는 거리 표시가 떨어져 나가고 탄현묘지 0.1 Km 란 화살표가 남아 있어 잠시 헷깔렸던 모양이다.

그 108봉 정상을 지나 올랐던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저 아래 철봉이 보이고 그 철봉 가기 직전 우측으로 여러 갈래의 샛길이 보이는데 이곳에서도 헷깔려 다시 다른 연세 드신 등산객에게 물어 보니 어느기을 택해도 내려가 만나니 걱정하지 말고 내려가라 알려 준다.

이곳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10여분 알바하며 잠시 헷깔려하며 허둥지둥한 장소로 남겨 본다.

 

자갈이 깔려 있는 등로를 타고 잠시 내려가니 급경사 내리막 등로에 소나무 군락지가 펼쳐지고 금새 등로가 평이해 지더니 호젖한 산길로 변한다.

그 산길을 따라 기분 좋게 걸어 내려가니 다시 소나무 군락지가 짧게 펼쳐지고 그곳을 통해 계속 내려가니 활엽수가 펼쳐지더니 금새 넓은 비포장 임도와 이어진다.

좌측에서 우측으로 크게 꺽여 내려가는 비포장 임도 안쪽으로는 검정 천막으로 가려진 가건물이 보이고 그 앞에는 승용차도 보인다.

그 임도를 만나 우측으로 그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호곡중학교의 진입을 막는 녹색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고 우측으로도 공터가 보이는데 그곳으로 진입을 막는 녹색 철조망이 쳐져 있다.

그 가운데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내려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그렇게 양쪽으로 쳐진 녹색 철조망 한가운데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탄현동 고개의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 건너편엔 선답자들이 말했던 에스엠마트는 사라지고 그자리엔 e mart everyday란 새로운 가게가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예담교회도 보인다.

그 e mart everyday 마트 좌측으로는 2차선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도로 좌측으로는 호곡초등학교의 담벼락과 다시 칼라풀한 철망이 쳐져 있다.

그 사이로 나 있는 2차선 도로를 타고 탄현 큰마을 아파트쪽으로 걸어 들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 간다.

 

계속 그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도로 우측에 천주교 탄현동성당이 보이고 곧이어 도로 건너편의 호곡초등학교 담벼락도 끝이나며 탄현동 큰마을 아파트 단지 안으로 진입을 하게 된다.

아파트 단지로 진입해 들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곧바로 도담유치원이 보이고 시가이 일러 그런지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는 관리 아저씨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고 많은 아파트 주민들이 출근과 등교하기 바쁜 일상사가 한눈에 들어 온다.

 

그 아파트 단지 안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많은 주민들이 바라보며 조금은 이상하게 또 조금은 멋지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듯 하다.

하기야 아른 아침부터 배낭 둘러메고 선글라스 끼고 모자를 눌러 쓰고 산도 없는 아파트를 걸어 가며 많은 사진을 찍는 모습이 요상하게 보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렇게 아파트 단지 내를 걸어 가며 진행을 하니 정면으로 한국유통이란 상점 간판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편한세상 큰마을 아파트 115동이 보인다.

그 115동 아파트를 우측에 두고 좌측에 나 있는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꺽어 진행을 하니 큰마을 대림아파트 정문이 나타난다.

 

 

그 큰마을 대림아파트 정문을 나서자 마자 우측에 빗돌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나타나는 편도2차선 포장도로를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꺽어 도로를 타고 걸어 간다.

잠시 더 그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서 많이 봤던 탄현큰마을교가 나타나고 그 다리를 타고 건너며 중간쯤에서 우측을 내려다 보니 경의선 전철선이 곧게 뻗어 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열차가 지나지 않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렇게 정상 등로를 찾아 맥 잇기 산행을 진행 할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 탄현큰마을교를 건너 계속 도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 안에서 이 산객을 바라보며 조금은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너무나 많이 받았던 시선이라 별 관심없이 진행해 걸어가며 사진을 찍으니 더욱 기기묘묘한 얼굴 표정들을 짓는다.

그렇게 걸어가니 좌측으로 탄현역과 서울 그리고 우측으로는 금촌 방향이 보이고 직진으로는 일산가구단지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 일산가구단지 사거리에 도착을 한다.

이곳부터는 어짜피 정상적인 마루금을 타고 진행하기가 불가능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향과 등로를 찾아 장명산으로 향하는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운 순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일산가구단지 내로 진행한 선답자들도 있고 직진해 일산가구단지 방향의 도로르 타고 진행한 선답자들도 있었지만 이 산객은 우측의 금촌방향으로 도로를 타고 진행하기로 하고 우측으로 90도 꺽어 도로를 타고 걸어 간다.

 

 

좌측에 359번 지방도로를 두고 우측 도롯가를 타고 걸어가니 추오정이란 커다란 식당이 보이고 승안 SK 셀프 주유소가 나타나며 운정가구타운 도로표지판이 나타난다.

직진은 파주(금촌)방향과 운정신도시가 도로 표지판에 써 있고 우측 방향으로 야당동이란 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 계속 직진하며 걸어가니 우측으로 도로가 갈리며 그 앞에는 거룩한빛광성교회란 커다란 빗돌이 서 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도로를 건너 직진방향으로 진행한 선답자들도 있었지만 헷깔리기에 이 산객은 359번 도로를 타고 계속 더 직진하기로 한다.

 

광성교회를 지나 계속 359번 지방도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구름다리길이란 도로 표지판이 나타나고 직진으로는 359번 금촌 가온호수공원 화살표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고양시 장애인 종합복지관과 일산직업능력개발원 화살표가 보인다.

계속 진행을 하니 직진의 방향으로 359번 금촌과 가온호수공원 이정표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358번 서울로 진입하는 화살표가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359번 지방도로를 타고 직진을 하니 도로 건너 좌측 저 멀리에 아키건설에서 건설중인 예스비프라자 건설현장도 보인다.

계속 359번 지방도로를 타고 전진하니 이제 큰 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직진방향으로는 여전히 359번 금촌과 가온호수공원 화살표가 되어 있고 좌측으로는 358번 서울과 제2자유로란 이정표가 보이는데 그 위에는 동서대로란도로 표지판이 되어 있다.

 

이제 동서대로 삼거리에서 그 동서대로를 타고 좌측으로 90도 꺽어 다시 358번 지방도로를 타고 한동안 걸어가 본다.

걷다보니 도로 건너 좌측 저 멀리에는 아미가골프 연습장이 보이고 앞으로 800미터 전방에 직진의 서울 방향이 358번 지방도로가 지나고 좌측으로 고양(덕이동)이 우측으로는 해솔마을로 갈라지는 사거리 도로 표시가 되어 있다.

그곳을 지나 계속 직진하니 다시 도로표지판이 나타나는데 미래로라 되어 있고 좌측으로 덕이동, 직진은 358번 지유로 그리고 우측으로는 운정 표시가 있는 사거리이다.

 

이 운정으로 가는 사거리에서 미래로를 타고 우측 운정 방향으로 걸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미래로란 도로 좌측으로는 삼부르네상스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면 황톳빛 E-MART 건물이 보인다.

그곳 앞으로 진행하기 위해 미래로를 횡단보도를 통해 건넌후 삼부 르네상스 아파트 정문과 이마트 건물 앞을 통과한다.

더 진행을 하니 다시 운정가구단지란 도로표지판이 나타나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니 운정1동주민센터와 운정2동주민센터란 도로표지판이 나타난다.

 

계속 그 도로표지판을 보고 직진으로 진행을 하니 남북방향으로 미래로 그리고 동서방향으로는 와석순환로란 도로표지판이 나타난다.

그곳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돌아 진행을 하니 바로 도로가에 운정3동주민센터가 지나온 방향인 좌측으로 존재한다는 화살표만 있는 표지판이다.

그곳으로 올라가다 만나는 사거리에서 도로표지판을 보니 직진방향으로는 산내. 한울마을과 가온운동장, 좌측으로는 서울. 고양(일산) 방향이 그리고 우측으로는 가람마을과 해솔마을 화살표 표시가 되어 있는데 그 도로 표지판 우측 도로 건너 저 멀리에 경기인력개발원의 붉은 건물이 언덕위로 올려다 보인다.

즉 도로 좌측의 서울. 고양(일산)방향에서 이곳 사거리로 와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경기인력개발원 건물 방향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원 정맥길보다 좌측 도로를 타고 진행하지만 역시 이곳 모두가 개발되어 정상적인 마루금이 남아 있는 곳이 없으므로 정상 마루금을 타고 맥 잇기 산행을 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 느낌이다.

 

그 경기인력개발원 건물을 바라보며 도로를 건너 경기인력개발원을 우측에 두고 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 좌측 건너편엔 한울마을이란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줄지어 서 있다.

계속 올라 진행을 하니 기독교대한감리회 세계로금란교회 건물이 도로 우측에 서 있고 그곳을 지나 진행을 하니 도로 우측 안쪽으로 경기인력개발원 건물 정문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 계속 도로를 타고 진행을 하지만 금새 도로가 끝이나며 거대한 공터엔 다시 아파트 단지 조성을 하고 있는지 토목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드넓게 펼쳐진 공사장에 몇대의 포크레인이 공사를 하고 있고 많은 트럭들이 드나들고 있다.

그 공사장을 빠져 나가니 새로 조성된듯한 왕복 4차선 도로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잠시 헷깔려 시간을 허비하고 만다.

 

공사장을 빠져 나오면 위 사진에 보이는 왕복6차선 도로와 만나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도로를 타고 저 지하통로를 건너 계속 진직하며 올라가면 되는데 방향을 잡지 못하고 왔다리갔다리하면서 몇분간 도로위에서 헤매였다.

다시 이곳 지하통로가 있는 공사장에서 빠져 나온 곳으로 돌아 와 지도를 펴놓고 방향을 살펴보니 역시 저 지하통로를 넘어 계속 진행해야 된다는 결론을 얻어 올라가 본다.

즉 산내마을과 한울마을 도로표지판을 보고 그쪽 방향으로 진행하면 되는 것이다.

 

한동안 계속 직진으로 나 있는 그 도로를 타고 걸어 올라가다 도로를 건너 진행을 하니 도로 우측에 공립특수교육기관 자운학교건물이 보이고 스피커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무슨 소리인지는 듣지 못할 정도의 소음이다.

그 자운학교를 지나 진행을 하니 산내공원 조성도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그 도로변에는 쉬어 갈 수 있는 벤취들도 잘 구비되어 있는데 현재 조성중인지 많은 사람들이 식물을 심기도 하고 공원 조성을 하기 위한 공사를 계속 진행중에 있는듯 하다.

 

다시 계속 그 도로를 타고 직진으로 걸어가니 사거리 도로표지판에는 직진방향으로 아무 표시가 없고 그저 화살표만 보이는데 좌측으로는 한빛마을과 와석초등학교가 우측으로는 가람마을과 해솔.산내마을 표시가 되어 있다.

사거리 도로 우측에는 현재 막 지어진 듯한 KT 건물이 비어있고 그 건물을 우측에 두고 우측도로를 타고 가람마을. 해솔과 산내마을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하니 도로 우측으로는 계속해서 산내공원을 조성중인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고 도로가에는 많은 산내공원 안내판이 서 있다.

 

계속 우측에 산내공원을 두고 공사중인 도로를 타고 가람마을과 해솔. 산내마을 방향으로 따라 가니 육교가 간간히 보이고 도로 건너 좌측 저 멀리 운정고등학교 건물이 보인다.

그 운정고등학교를 지나 진행을 하니 공사중인 도로 위에 표지판이 보이는데 좌우측으로는 그저 화살표만 표기되어 있고 직진방향으로는 운정역과 가람. 해솔마을 표시가 되어 있다.

그곳에서 도로를 횡단보도를 통해 건넌 후 다시 우측으로 계속 직진하니 도로 좌측으로 교하2차 현대 I 아파트 입구가 나타난다.

 

그곳을 지나 지하도를 지나니 사거리가 나타나는데 도로 좌측에는 여전히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사거리 도로 위 표지판을 올려다 보니 와석순환로 333번과 337번이 보이고 직진으로는 운정역과 가람. 해솔마을 방향표시가, 좌측으로는 해솔마을 표시 그리고 지나온 방향으로는 환율마을과 산내마을 표시가 되어 있으며 이 산객이 서 있는 도로 반대편에는 해솔마을 아파트 단지들이 하늘 높은줄 모르게 높이 솟아 있다.

이곳에서 도로 좌측의 해솔마을 방향으로 90도 꺽어 진행하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 간다.

 

계속 그 도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도로 건너 우측에는 월드메르디앙 제1차 아파트 단지들이 도로를 따라 줄지어 서 있다.

한동안 걸어 전진하니 도로가에 해솔단지2단지 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그 아래에는 87번 버스 안내도가 보인다.

잠시 더 진행하니 도로 건너 교하1차 월드메르디앙 정문이 보이고 계속 전진하니 다시 삼거리 도로가 나타난다.

그 삼거리 도로에서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가니 육교와 같은 도로로 이어지고 그 도로 위를 타고 넘으니 청암초교 버스 정류장이 보이고 곧바로 우측으로 제2차 월드메르디앙 아파트 입구가 나타나는데 그곳을 통해 들어가니 아파트 단지 좌측 저 멀리 청암초등학교 건물이 보인다.

하지만 이곳에서 잠시 헤매이다 지도를 펴놓고 살펴보니 정상 등로는 이곳 월드메르디앙 아파트까지 오기 직전 우측으로 크게 꺽어 좌측에 월드메르디앙 아파트를 두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다시 그 월드메르디앙 제2차 아파트 정문을 나와 청암초교 버스정류장을 지나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 함석 철판으로 도로를 가린 가림막 사이로 시멘트 도로가 열려 있고 그곳을 통해 이제 좌측으로 들어가며 정상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갑자기 도심 한복판의 복잡한 아파트 단지들을 따라 걸어 오다 한적한 시골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멘트 임도를 타고 걸어가는 시간은 왠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좌측에는 월드메르디앙 제2차 아파트 단지를 두고 우측으로는 묵은 밭같은 공터를 두고 진행을 하는데 이 좁은 도로에 어린이 차량이 지나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진행을 하니 넓은 공터가 나타나며 그 가운데에는 교하읍 고인돌 산림욕장 안내도가 서 있고 그 안내도 우측에는 넓은 임도가 그리고 좌측으로는 산책로란 이정표와 함께 좁은 등로가 열려 있다.

그곳에서 좌측 산책로를 타고 오르니 나즈막한 정상부에 도착을 하는데 좌우측 두갈래의 삼거리 갈래길이 나 있다.

처음에는 좌측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다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에 지도를 살펴보니 들꽃어린이 집을 통과하도록 되어 있고 방금 전 이곳으로 오르기 직전 시멘트 임도에서 만났던 어린이집 차량이 생각나 다시 정상 삼거리 갈림길로 복귀해 이제는 좌측의 도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멋진 나무들이 늘어 선 등로를 타고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드넓은 공터에 의자와 탁자들이 설치되어 있어 아이들이 뛰어 놀거나 쉬기에 편안하도록 쉼터가 조성되어 있고 그곳을 지나 걸어가니 금새 능선으로 들기 전 헤어졌던 넓은 임도를 다시 만나 좌측으로 따라 진행한다.

조금 더 진행하니 임도 좌측으로 들꽃어린이 집 건물이 나타나고 어린이들이 참새 소리를 내며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도 들어 온다.

그곳 들꽃 어린이 집 건물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넓은 임도를 타고 걸어 본다.

 

임도 우측으로는 산이 존재하고 좌측으로는 묵은 밭인지 논같은 곳이 나타나는데 지금은 나무가 식재되어 있는 모습이다

그 식재된 나무 저 멀리 방금 전 지나온 들꽃 어린이 집 건물이 아담하게 다가오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걸어 내려가니 다시 56번 왕복 4차선 지방도로와 만나는데 공사중이고 차량 통행도 많아 무단황단을 하지 못하고 임도 좌측으로 나 있는 지하통로를 통해 그 도로를 건너 다시 우측으로 올라 절개지가 만들어지기 전의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하기 위해 땀을 흘려 본다.

 

지하통로를 통해 56번 지방도로를 건너 우측으로 나 있는 도로를 타고 오르니 삼거리 갈래길이 나타나는데 좌측으로는 마을로 향하는 임도이고 도로와 나란히 하는 도로는 성재암으로 향하는 도로인듯 보였다.

잠시 더 오르,니 시멘트 임도 좌측에는 성재암 이정석이 크게 서 있고 그곳을 사진에 담은 후 56번 지방도로와 나란히 걸어 올라가니 도로 위에는 동물이동통로를 만드는지 아니면 다른 용도가 있는지 한창 공사중에 있다.

 

도로와 나란히 나 있는 시멘트 임도를 타고 절개지 정상부쪽으로 오르니 도로는 갈림 삼거리로 바뀌고 이곳 정상부에서 이 산객은 좌측 능선 방향으로 방향을 크게 꺽어 진행하고 이제부터 계속 그 임도를 타고 올라가 본다.

한참을 멋진 나무 그늘속에서 시원한 감촉을 느끼며 진행하니 삼거리 갈림 임도가 나타나는데 이 산객이 정리한 자료에 성재암 삼거리에서 우측의 성재암을 버리고 좌측 임도를 타고 진행하라고 되어 있어 의심하지 않고 좌측 임도를 타고 한동안 진행을 하지만 아무래도 이상해 다시 지도를 펴 놓고 정독을 하다 보니 성재암 근처에서 좌측 임도를 타고 진행하여야 하는데 너무 일찍 좌측으로 꺽어 진행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어렵지만 다시 원 임도 갈림 삼거리까지 되돌아 나와 이제는 좌측으로 나 있는 임도를 타고 한참을 더 걸어 들어가니 중앙에 성재암 빗돌이 서 있고 우측으로 성재암 건물이 보이며 좌측으로는 계속 이어지는 임도가 나 있다.

이곳이 바로 성재암 갈림 삼거리인데 이 산객이 너무 빠른 곳에서 등로를 잘못 이해해 10여분 다시 알바를 하고 돌아 온 곳이다.

즉 성재암 오르는 임도를 타고 진행하다 처음 만나는 갈림 삼거리에서는 무조건 우측의 임도를 타고 진행하다 성재암 빗돌이 서 있는 성재암 갈림 삼거리에서 우측의 성재암 방향을 버리고 좌측 임도를 타고 진행하면 큰 무리가 없는 곳이다.

 

성재암 갈림 삼거리를 지나 계속 호젓한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제법 많은 등산객들이 산책을 즐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빈손으로 올라 산책을 즐기는 주민들 속에 제대로 된 산행 준비 후 걸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잠시 더 진행을 하니 임도 좌측으로 파주윤씨교하종중묘지란 빗돌이 보이고 계속 시멘트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저 멀리 좌측으로 교하중학교 담장이 나타난다.

그곳 교하중학교 담장을 만나는 지점 우측으로 고인돌이란 이정표 하나가 보이고 그곳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파주 다율리 및 당하리 지석묘군이란 설명판과 함께 지석묘 하나가 보인다.

이곳 지석묘군은 1992년 6월 5일 경기도기념물 제129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다율리, 당하리, 교하리가 인접한 구릉 지대에 100여 기의 고인돌이 있었으나 군사 시설물을 만들면서 그 가운데 20여 기만 남았으며 6기가 발굴되었다.
다율리 고인돌은 발굴 전 이미 훼손된 상태여서 본래의 하부 구조가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았으나 탁자식으로 추정되며 주변에서 작은 토기 조각 등 유물이 나왔다.

현재 일부 고인돌은 경기도청, 통일로, 온양민속박물관 등에 이전되어 복원되었다.
당하리 고인돌은 대부분 제자리를 벗어나 있는데 하부 구조가 타원형의 적석으로 이루어진 것도 있으며 주변에서 간돌검, 화살촉, 숫돌 등이 채집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집터인 긴 네모꼴 움집도 발굴되었는데 길이 12.5미터, 너비 4미터, 깊이 40-80센티미터의 맞배지붕집으로 추정된다.

안에서 구멍무늬토기, 민토기, 간돌검, 가락바퀴 등이 나왔고 화덕자리가 두 군데 있다. 

이렇게 또 이곳 지석묘에 대한 공부를 하며 역사를 배워본다.

 

그 파주의 다율리 및 당하리 지석묘군을 살펴 본 후 정상 시멘트 임도로 나와 다시 맥 잇기 산행을 하니 임도 좌측으로는 계속해서 교하중학교 담장이 따라오고 그렇게 진행을 하니 담장이 좌측으로 크게 꺽이는 지점 우측에 운동시설이 되어 있고 그쪽 방향으로 길이 하나 나 있다.

그 옆에는 월드메르디앙에서 2.1 Km 그리고 고인돌에서 0.1 Km 왔으며 ㅇ하리까지 0.7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도 서 있다.

그쪽으로 조금 들어가니 도로 좌측 능선쪽으로 고인돌 0.1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보이지만 방금 전 봤기에 이곳은 그냥 패스한다.

다시 나와 좌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교하중학교 정문으로 통하는 임도가 보이는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난다.

 

교하중학교 정문에서 정문으로 통하는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나 있는 임도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임도 좌측으로는 다시 군부대 담벼락이 서 있고 그 위에 원형 철조망이 쳐져 있다.

그 도로를 타고 잠시 더 내려가니 임도 우측으로는 거대한 공사장이 펼쳐져 있고 곧이어 왕복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핑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건너 버스 정류장에는 오도1리라 적혀 있는데 우측으로는 교하리 좌측으로는 오도리삼거리로 이어지는 고갯마루이다.

 

핑고개 도로를 건너 시멘트 도로를 타고 진행을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 우측 능선이 바로 마루금처럼 느껴져 올라 보지만 진행할 수 없는 능선이여서 다시 시멘트 임도로 내려와 걸어 간다.

도로 앞 저 멀리 좌측으로 공장지대가 나타나고 그 앞에는 (주)미진봉투사란 회사 건물이 보이고 그쪽으로 따라 들어가니 그 건물 가기 직전에 우측으로 또 다른 길이 나 있는 삼거리 갈림길이 보인다.

그곳에서 미진봉투사쪽이 아닌 우측 고갯마루를 지나 걸어가니 고다로 도로 좌측 절개지 위로 정상 등로가 열려 있고 많은 띠지들이 나풀거리고 있다.

아마도 방금 전 이 산객이 걸어 넘어 오려고 했던 능선을 타고 이곳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많은 도로가 나면서 이렇게 맥 진행 마루금도 변해 버렸던 것이다.

 

핑고개를 지나 능선으로 들어 다시 호젓한 등로를 타고 걸어보는 시간은 참으로 평온하지만 발가락에 문제가 일어나며 조금은 불편한 산행을 이어 가고 있다.

잠시 능선을 타고 걷다보니 등로가 미진봉투사가 있는 공단지역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빙둘러 진행하듯 그렇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잠시 능선을 따라 걸어가니 갑자기 포크레인 굉음이 울리고 눈 앞 우측으로 거대한 흙더미가 보이더니 그곳에서 흙먼지가 날아 앞을 가린다.

지독한 쓰레기 냄새가 코를 찌르고 그렇게 그곳 흙더미를 우측에 두고 진행하니 사용되지 않는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삼각점봉에 올라 주위를 살펴 보지만 잡목으로 인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제 마지막 장명산에 올랐다 곡릉천에서 손을 닦으면 길고도 멀었던 한북정맥이랄까 아니면 도봉지맥 산행도 마무리가 되는 시간이지만 그 마지막 봉우리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그 삼각점봉에서 내려오니 좌측으로 공단지대 건물들이 들어선 마을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장명산보다 높아 보이는 거대한 흙더미가 쌓여 있으며 그 넘어에선 돌을 깨는 기계 굉음이 들리고 있다.

그 흙더니 좌측으로 나 있는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그 공사장 입구가 열려 있고 앞으로 빤히 올려다 보이는 장명산이 있기에 그 공사장 안으로 들어가 장명산 방향으로 걸어보지만 그곳으로 오를 수 없다는 인부들의 강력한 제지에 뒤돌아 나오며 난감해 진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삼각점봉으로 뒤돌아 올라간 후 내려가 이제 정상 등로에서 좌측으로 진행을 하니 다시 공사장 내로 들어가는 문이 열려 있고 그 공사장 내로 들어가 정문쪽으로 조심하며 내려가 본다.

 

그 공사장 내 도로를 타고 조심하며 거대한 트럭을 피해 내려가니 정문 좌측에 교하환경과 유진골재란 건물 입간판이 보이고 그곳을 빠져 나와 좌측을 보니 그곳으로도 수많은 쓰레기 처리 트럭이 들락거리고 있다.

그 곡릉천 방향으로 내려가면 좌측으로 장명산 오르는 등로가 나타나지만 확실하지 않아 우측으로 도르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닭집이 있어 들어가 연세든 할아버지에게 시원한 식수 한바가지 얻어 마시고 장명산 오르는 들머리를 물어보니 장명산은 사라졌다면서 친절하게 알려 주신다.

방금 전 봤던 곳으로 오르는 것이 맞다는 설명을 듣고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 후 뒤돌아 나와 장명산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정상 등로는 완전히 사라져 이곳 장명산 정상을 오르기가 만만치 않아졌으며 그 아래에응 골재 채취와 쓰레기 매립으로 인해 온통 장명산 자체가 고립되어 가는 그런 느낌이였다.

또한 장명산 정상으로 오르다 보니 장명산 곳곳은 온통 파헤쳐져 군사요새처럼 변해 버렸고 그 어디에서도 온전한 산으로서의 대접을 받기에는 형편없이 변해 버렸음이 가슴을 답답하고 아프게 만든다.

그래도 그 정상에 올라 셀카 놀이를 하면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한북정맥 또는 도봉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장명산은 일명 약산이라고도 한다.

고양의 고봉산 서북맥 내령으로 와동산을 거쳐 끝머리 벌판 가운데로 우뚝서있는 이산은 산아래 공능천(휴률강)이 흘러 경관이 아름다우며 이산 주위로 구절초가 자생하여 주민들은 이를 많이 복용하여 수명이 연장되었다 하여 장명이라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옛날 조선시대에 아이를 갖지 못하는 한 아낙이 아이 갖기를 소원한 나머지 교하면 장명산 중턱에 위치한 약수터에 올라가서 약수물에 밥을 지어 먹고 구절초 대린 물을 먹으면서 지성을 드린 후에 아이를 갖게 되자 그 소문 이 한양 땅에 퍼지게 되어 아이를 갖지 못한 양반님네 부인들이 매년 음력 9월 9일에 장명산 약수물에 밥을 지어 먹고 구절초 대린 물을 먹어서 아이를 갖게 된 일이 많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구절초는 여자의 냉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마지막 봉우리인 장명산 정상석에 서서 내려다 보는 기분은 참으로 묘한 기분이다.

 

셀카 놀이 후 방금 전 이곳 장명산 정상을 오르기 위헤 해매며 돌아 다닌 마루금과 골재장을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다.

우측의 삼각점봉을 올랐다 고재장을 거쳐 이곳으로 올라야 하는데 골재장이 가로막아 더 이상 저 골재장을 통해 오르기는 힘이 들 것 같다는 생각이다.

저 멀리 좌측으로는 고양의 식사동쪽 고층 아파트가 보이고 그 좌측으로 오늘 이 산객이 출발한 문봉동재쪽 마을도 보일듯 말듯 다가온다.

골재 채취장 때문에 기분이 상하지만 그것 역시 왜 우리가 이곳에 올라 자연을 가꾸고 보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한번 더 하고 내려갈 수 있음에 그 보람을 찾아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장명산 서쪽으로는 오도리 평야가 펼쳐져 있고 곡릉천이 내려다 보이며 다리도 보인다.

그 곡릉천 우측 저 멀리에는 신한북정맥 또는 오두지맥으로 그 끝자락에 위치한 마지막 봉우리인 오두산과 오두산 전망대가 지난날의 추억을 꺼집어 내고 있다.

오도리 마을의 동쪽으로 장명산이 있는 평야지대의 마을인데 본래 교하군 청암면의 지역으로 오두말 또는 오도촌이라 한데서 오도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당아래, 대골, 대울, 오장골 등이 있는데 당아래는 마을 뒤편에 수백년 된 닥나무가 있어 닥나무 아래에 있는 동네라 하여 닥아래라 하였는데 발음이 변하여 당아래가 되었다 한다.

서당아래의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며 대골은 대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대울은 장명산 서맥이 내려와 마을을 울타리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어 붙은 이름이며 오장골은 인체의 오장육부와 같이 중요한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나즈막한 능선과 나무들로 인해 시원한 조망은 아니지만 이렇게 그 그리운 곳을 바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흐믓한 미소가 흐르는 시간이다.

 

 

곡릉천 넘어 서북쪽으로는 지난 몇년전 백두대간 산행을 완주하고 많은 산친구들과 처음 시작한 한북정맥 산행을 하면서 신한북정맥 마루금을 타고 마지막 구간에 올랐던 오두산과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빤히 보인다.

그날의 추억이 되살아나며 옛 산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금은 모두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있는 것인지...

저곳에 올랐을때엔 이곳 장명산을 바라보면서도 알지 못해 이름조차 불러주지 못했는데 이제 저 오두산을 바라보며 옛 추억까지 꺼집어 낼 수 있으니 이 칠갑산도 장족의 발전이 있었는가 보다.

 

장명산 북동쪽으로는 곡릉천이 바로 내려다 보이고 그 넘어 파주의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거대한 군락을 이루며 신도시로서의 위용을 자랑하며 그 뒤를 병풍처럼 둘러쳐진 기간봉과 월롱산이 몇년전 그곳을 오르며 고생한 추억을 다시 꺼내게 만든다.

나즈막한 봉우리였지만 생각보다 많은 땀방울 흘리며 탁배기 한잔 마시던 시절에 그저 미소만 남겨지는 순간이다.

다시 오를 수 있는 기회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더 밟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그곳 장명산 정상에서 많은 시간 보내며 많은 사진을 남긴 뒤 천천히 교통호를 타고 내려오지만 역시나 곡릉천으로 내려가는 등로를 찾지 못해 올랐던 들머리로 돌고 돌아 내려 온 후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가 교하체육공원 옆 곡릉천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손을 닦으며 다시 셀카 놀이로 사진 한장 남기며 길고도 멀었던 그리고 아쉬웠던 한북정맥 산행을 완전히 마무리 한다.

한북정맥이면 어떻고 신한북정맥이면 또 어떨건인가 그저 이 산객이 의지를 가지고 올라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배우고 또 왜 자연을 가꾸고 보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고 내려오면 그것으로 족한 시간인 것을...

이제 내일 모레엔 남아 있는 낙남정맥 첫구간을 다녀 와 깨끗한 기분으로 1백두대간 9정맥을 마무리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오늘 산행을 마무리한 곡릉천은 경기도 고양시의 덕양구를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하천으로 양주시에서 발원하여 오금동에서 시로 흘러 들어오며 지영동의 지영교를 지나면서 파주시로 흘러간다.

현지 주민들에 의해 공릉천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해동지도에는 공릉천으로 표기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보신천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보신천은 파주 남쪽 30리 지점을 흐르고 물의 근원은 양주군 홍복산로 기록되어 있는데 파주군지에서는 보시천으로 기록되었다.

광여도에서는 지도 위쪽에 곡릉천의 상류가 표기되어 있다.

한편 조선지도와 팔도군현지도에서는 심천으로 표기되었다.

형제봉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벽제천이 벽제역 부근에서 합류한다.

 

곡릉천에서의 마지막 의식을 한 후 시원한 기분으로 뒤돌아 나오며 버스를 탈 수 있는 곳까지 걸아 나온다.

걸어 나오는 동안 들판엔 벌써 모내기가 많이 진행되어 있고 아직 모내기가 되어 있지 않은 논에서는 두루미 한마리가 먹이를 찾아 한가롭게 거닐고 있는 모습에 잠시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본다.

시골에서 자랄때 그 많던 황새와 두루미들은 다 어디로 가고 이렇게 한마리 만나는 하얀 두루미에 신기함을 가져야 하는지...

 

산행 후 기분 좋게 사람들을 만나 사업 이야기를 나누고 일을 마친 후 저녁 늦게 버스를 타고 합정약까지 나온 후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복귀하며 즐거운 하루를 마무리 한다.

그동안 한북정맥 또는 도봉지맥을 걸으며 도움을 주신 많은 사람들과 만났던 모든 자연의 친구들에게 감사한 마음 전해 드림니다.

 

이제 다가오는 일요일에는 영신봉에서 삼신봉을 거쳐 고운동재까지 홀로 걸으며 5년여 동안 줄기차게 올랐던 마루금 잇기 산행의 1차 목표를 마치기로 하니 초등학생이 소풍가기 전 설레이는 마음으로 잠못 들듯 그런 심정으로 또 짧은 시간을 기다려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