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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료/완료 여행자료

무주 일사대(수성대)와 학소대 및 와룡담 그리고 서벽정 둘러보기

by 칠갑산 사랑 2023.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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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의 오지산행을 하면서 근처 여행지를 둘러봤던 시간들,

 

오래 전부터 한번쯤 올라보고 싶었던 무주의 산들을 정리하면서 아직도 만나고 싶은 산과 산줄기들이 많음에 놀라면서 새로운 산행에 대한 설레임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주말마다 비 소식으로 몇주동안 지방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집주위의 둘레길과 텃밭까지의 왕복 산책으로 무료함을 달래다 오랫만에 마음먹고 다시 무주로 내려가는데 목적없이 오르고 싶은 산행지를 찾아 가다보니 마음부터 조금은 색다르게 느껴진다.

무주로 내려가며 짙은 안개로 일찍 오른다 해도 조망이 없을 것 같아 무주읍에서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일출이 완전히 올라 온 시간에 미지의 산줄기를 따라 오르다 보니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큼은 부자된 기분으로 자연을 만끽하는 시간이다.

해발고도 1000미터가 넘어가니 약간의 산죽들과 이제서야 만개한 철쭉들이 반겨주고 급할 것 없이 쉬엄쉬엄 놀며 진행하였는데도 날머리에 도착하니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근처의 여행지를 잠시 찾아 보기로 한다.

다음날 진행 예정인 백운산과 청량산 환종주 산행의 들머리이자 날머리에는 수성대와 서벽정이 있어 여행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특히 구천동계곡이 흐르는 곳이기에 여름철 피서객들로 붐비는 곳이기에 잠시 들려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일부러 이곳만을 찾아 보기는 어려운 곳이기에 잠시 짬을 내 보니 몸은 피곤하지만 눈이 즐겁고 마음이 정화되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한 시간이었다.

 

일사대(一士臺)는 전북 무주의 구천동에 있는 명승지로서 무주 구천동의 33경 중 6경에 해당하며 일명 수성대(水城)라고도 부르는 일사대는 3대 경승지의 하나로 손꼽히는 명승지이다.

이곳은 고종 때의 위정척사 운동을 한 송병선이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숨어 살면서 서벽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며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

이 고장선비들은 송병선을 동방에 하나밖에 없는 선비라 하여 동방일사(東方一士)불렀는데 바로 여기에서 일사대라는 지명이 유래한다.

일사대는 덕유산에서 흘러내린 계곡 물줄기가 굽어 흐르는 원당천 무풍면과 설천면의 일대를 흐르다가 남대천으로 합류하는 하천의 침식 작용으로 발달한 절벽으로 소나무와 단풍이 어우러진 이곳의 경치는 무척이나 아름답다.

 

 

다만 수성대 또는 일사대를 정확히 보기 위해 원당천 위에 설치된 철다리로 진입을 하려고 살펴보니 안전진단결과 위험해 폐쇄되어 진입이 불가능해졌기에 아쉬움도 남겼다.

 

일사대(수성대)로 가기 전 공터 옆에 세워진 명승제55호 일사대에 관한 설명판이 보인다.

 

학소대(鶴巢臺)는 전북 무주의 구천동에 있는 명승지로서 무주구천동 계곡 33경 중에서 제5경에 속하는 곳으로 학들이 날아와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학소대는 와룡담에서 약 6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며 물이 맑고 큰 소나무가 많은 청정한 곳으로 순백의 학이 날아와 살았다고 한다.

 

이제 폐가로 변해 농기구와 농산물을 임시 보관할 수 있는 건물 옆으로 나 있는 비포장임도를 타고 원당천으로 내려가니 학소대 설명판에서 봤던 계곡이 나타나고 많은 사진을 남기고 세수하며 시원하게 물 몇모금 마시고 올라오니 학소대 설명판이 서 있다.

 

와룡담(臥龍潭)은 전북 무주의 구천동에 있는 명승지로서 이름처럼 계곡의 물줄기가 한 마리의 용이 꿈틀거리며 누워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천동 청금대에서 계곡의 상류를 따라 약 2km 정도 올라가면 나타나는 곳으로 구천동 33경 중에서 제4경에 속하는 곳이다.

일사대와 학소대를 확인하고 입구 방향으로 뒤돌아 나오며 살펴본 설명판이다.

 

와룡담 옆 능선 방향으로 서벽정 오르는 희미한 등로가 보여 올라가 보니 건물이 보이는데 최근에 새로 정비를 하였는지 주위가 깨끗하다.

서벽정(棲碧亭)은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에 있는 누각으로 1992년 6월 20일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말기 송병선(宋秉璿, 1836~1907)이 낙향하여 머물며 영남과 호남의 선비들과 시국을 논하고 후진을 양성하던 곳이다.

송병선은 송시열(宋時烈)의 9세손으로서 학문과 절제있는 행동으로 천거받아 서연관(書筵官)과 경연관(經筵官) 및 지평(持平)을 거쳐 대사헌(大司憲)에 이르렀으나 취임하지는 않았다.

그는 벽사설(闢邪說)을 지어 양학(洋學)을 배척하고 일본과의 개국 통상을 반대하였다.

서벽루는 당시의 세태를 비관하고 은둔 생활을 하던 그가 고종 23년(1886년) 친구의 소개로 무주 구천동을 찾아왔다가 아름다움에 반해 수성대(水城臺)에 건립하고 머물던 정자이다.

구조는 막돌로 쌓은 석축 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세운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주심포집으로 정면 좌우측 1칸씩은 누각처럼 바닥을 기둥 가운데에 올려 앉혔는데 좌측은 높고 우측은 낮으며 전체적으로 단아한 사대부의 재실 모습을 지녔다.

한때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고종 28년(1891)에 재건하였으며 6·25 전쟁을 계기로 북한군의 숙영지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고종 광무(光武) 원년(1897)에 무주군수 조병유(趙秉瑜)가 주자(朱子)와 송시열의 초상을 봉안하였다.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산행 후 가까운 명승지와 여행지를 찾아 둘러보는 시간 역시 산행만큼이나 기분 전환과 자기만족도를 높혀주고 있어 앞으로는 자주 연계하는 산행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 시간이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