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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웅석지맥(대간.완)

웅석지맥 마지막 제3구간 제마재에서 진양호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21.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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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남도 진주시의 웅석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1년 06월 09일 (수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맑고 바람 한점없이 한여름 삼복 더위같이 무척 무더웠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17도에서 영상 30도

산행인원 : 남양주 금곡님과 칠갑산 (총2명)

산행코스 : 제마재(1001번 곤수로 2차선 포장도로)-길주의 지점(156.8무명봉, 우측)-제마재(시멘트 포장도로)-전망바위-바위암릉-

               198.5봉(옥녀봉?)-196.6 갈림삼거리 무명봉-공터 무명봉-비포장임도-능선진입-202.3 무명잡목봉-밀양박공 묘지-

               비포장임도-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246 신선봉(?)-소나무 등로-243봉-길주의(좌측)-무명묘지-잡목 소나무등로-

               230.3봉-진양하공 묘지-소나무 잡목등로-194.2봉-198.2 무명봉-200.3 고사목 무명봉-말바누재-203.5봉-무명 쌍묘-

               길주의(주능선:우측)-좌측 송전탑-순흥안공 묘지-대평2 통신탑-시멘트 포장도로-대평농장-바느고개(1049번 호반로

               2차선 포장도로)-시멘트 계단-진주정씨 묘지들-잡목등로-조망처-길주의(주능선:우측)-213.5봉-소나무 잡목등로-

               137.3 무명봉(길주의:우측)-무명묘지-145.3봉-무명묘지-밤나무 과수원-시멘트 포장도로(민가)-호반로852번길-감나무

               과수원-묵은 비포장임도-철조망 등로(밤나무 과수원)-능선진입-진양호 조망-편백나무 군락지-단풍나무 조림지-

               당상동재 비포장임도-능선진입-산성터 돌담-193.7 무명묘지봉-산성터 돌담-지독한 칡넝굴 잡목등로-급격한 내리막

               등로-당하동재 잡풀안부-무명묘지2-진양호 조망-204.8봉 갈림삼거리-204.8봉-갈림삼거리 복귀-진양호와 진수대교

               조망-바위암릉-이정판(꽃동실, 웅석봉)-황학산(233봉, 정상석, 까꼬실 안내도) 이정표(231봉 0.2 Km와 톳재비

               고개 1.2 Km, 갈마봉 0.8 Km와 꼬까실 주차장 1.1 Km)-무명안부-231 무명봉-226봉-편백나무 군락지-톳재비고개

               이정표(분토봉, 한골 선찾장) (꽃동실 1.98 Km, 황학산 1.2 Km, 가곡정 0.2 Km)-사각나무 계단-분토봉(131.4봉, 정상석,

               톳재비고개 일명 도깨비고개 설명판) 이정표(반딧골, 톳재비고개)-138.2 무명봉(벤취쉼터2, 천둥오리 설명판)

               이정표(반딧골, 톳재비고개)-소나무 등로-이정표(반딧골, 톳재지고개)-통나무 계단-귀곡동 시멘트 포장도로

               안부(분딧골과 뒷들고개 설명판, 대나무 군락지) 이정표(큰마을과 당산, 한골, 분토봉과 황학산)-비포장임도-능선입구

               이정표(큰마을 큰생, 한골 선착장)-통나무 계단과 밤나무 과수원-진양호생태탐방이용안내판-이정판(꽃등실, 가조

               탐조대)-대나무 숲-이정표(뒷들고개, 분토산과 황학산 및 가조탐조대)-고인돌 지석묘 안내판-당산(단산먼당 설명판,

               벤취쉼터2)-고사리 밭-참수리 설명판과 벤취쉼터2-무명안부-상수원보호구역 알림판-삵 설명판-무명안부-청둑 선착장

               갈림삼거리 이정표(꽃동실, 당산, 청둑 선착장)-나무목책과 계단-꽃동실좌 가호전망대(나무데크, 꽃동실 정상석과

               까꼬실 안내도, 가호 설평판, 백두대간의 끝점 꽃동실)-진양호-웅석지맥 산행종료-꽃동실과 가호전망대 복귀-청둑

               선착장 갈림삼거리-귀곡길 시멘트 포장도로(귀곡동 까꼬실 지명유래판과 옛정든 이름판) 이정표(큰샘

               충의사 0.65 Km와 가곡탐조대 1.6 Km, 청둑 선착장, 꽃등실과 가호전망대 0.3 Km)-시멘트 포장도로-진양호 생태숲

               안내판-쇠백로와 수달 설명판-약수터-충의사와 가호서원 옛터 설명판-대나무 숲-통나무 계단 능선진입로-

               선착장(배 도착)-톳재비고개 갈림삼거리 이정표(한골 선착장, 분딧골, 톳재비고개)-가곡탐조대와 가곡정(천하지낙영

               까꼬실 설명판과 귀곡동 까꼬실 유래판)-톳재비고개 갈림삼거리 복귀-톳재비고개-편백나무 군락지-226봉(등로

               정비사업)-황학산 정상 복귀-이정판(갈마봉과 새미골)-주차장 갈림삼거리(사각탁자, 귀곡동 까꼬실 지명유래와 옛

               정든 이름판) 이정표(주차장 0.9 Km, 한골 1.55 Km)-비포장임도-다리 통과-까꼬실(산현) 주차장 도착-산행종료

산행거리 : 20.02 Km (제미재에서 진양호까지 지맥 산행 완료 후 꼬까실 일명 산현주차장까지)

              지맥산행 : 15.26 Km (제미재에서 진양호까지)

              접속구간 : 04.76 Km (진양호에서 까꼬실 일명 산현주차장까지)  

산행트랙 :

20210609 웅석지맥 제3구간 제마재-진양호.gpx
0.13MB

산행시간 : 10시간 03분 (06시 05분부터 16시 08분까지)

                지맥산행 - 08시간 02분 (06시 05분 제미제부터 14시 08분 진양호까지)

                접속구간 - 02시간 00분 (14시 08분 진양호부터 16시 08분 꼬까실 일명 산형주차장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4시 30분 해비치 모텔 앞에서 금곡님과 만나 평거동 전주명가콩나물 국밥집에서 아침식사

                                 05시 05분 근처 편의점에서 필요 물품 구입

                                 05시 35분 웅석지맥 날머리에서 가장 가까운 꼬까실 일명 산현 주차장까지 이동 후 애마 주차

                                 06시 05분 금곡님 차량으로 산행 들머리인 제미재까지 이동 후 산행 준비하여 곧바로 산행시작

                       올때 - 14시 08분 진양호 물에 손을 씻으며 웅석지맥 산행 종료

                                 16시 08분 톳재비고개와 황학산 정상을 지나 꼬까실 일명 산현주차장에 도착해 산행 종료

                                 16시 20분 꼬까실 일명 산형 주차장에서 배낭 정리 후 제미재를 향해 출발

                                 16시 시 50분 산행 들머리인 제미재에 도착 해 금곡님 내려 드리고 곧바로 귀가하여 가족과 저녁식사

웅석지맥이란 ???

지리산 천왕봉(1915봉)에서 북쪽으로 가지를 쳐 중봉(1875봉), 하봉(1755봉), 쑥밭재를 지나 1315미터 봉에서 동진하여 왕등재, 밤머리재를 지나 웅석봉(1099.3봉) 어깨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백운산(515봉)을 일구고 고도를 바짝 낮춰 아미랑재, 제마재를 지나 경남 진주시 귀곡동 진양호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54.5 Km 산줄기로 덕천강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한여름 삼복 무더위를 방불케 하는 계절에 비산비야로 이뤄진 웅석지맥 마루금을 따라 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진양호에 손을 씻으며 또 다른 산줄기 잇기 산행을 계획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웅석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경상남도 진주시와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및 네이버의 지식백과 그리고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어제 웅석봉과 달뜨기능선을 따라 웅석지맥 제2구간을 걸으며 이곳이 왜 지리산 천왕봉을 볼 수 있는 최고의 조망처인지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로 기온이 오르고 잡목들이 우거진 곳을 만나면서 거리에 비해 산행시간은 꽤 많이 걸렸다.

그래도 무더운 여름철 진행하는 지맥 산행치고는 크게 어려움 없이 계획된 제마재까지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진주시로 들어 가 늘 먹던 삼겹살에 소맥 몇잔으로 피로를 풀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일찍 일어 나 금곡님과 함께 산행 날머리인 꼬까실 주차장으로 가 애마룰 주차시키고 금곡님 차량으로 들머리인 제마재로 이동한 후 곧바로 산행을 진행하니 순조롭게 진행하게 되었다.

중간 지점을 제외한 초반과 후반부의 산책로 같은 등로를 따라 진양호까지 걸어 가 3구간에 걸쳐 웅석지맥이란 이름으로 걸었던 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뒤돌아 나와 꼬까실 주차장으로 나오는 시간은 참으로 힘들고 고통그런 산행이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등로에서 헤매이지 않고 지났던 황악산으로 뒤돌아 올라가 생각보다 편안하게 모든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다만 진양호에서 산행 종료 후 배를 타고 진주시로 나갈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을 배가 운행된다는 사실을 몰라 떠나는 배를 바라만 봤던 시간은 참으로 긴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운동을 하러 내려왔으니 조금 더 진행한 운동이다 생각하니 견딜만한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제 금곡님과 2주 정도 더 함께 산행을 이어가면 금곡님이 신산경표 상 162 전지맥 산행을 완주하시니 그 이후부터는 다시 홀로 진행해야 하는 산행이 조금은 아쉽고 외롭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새벽 6시가 막 지난 시간에 어제 산행을 마무리한 제마재에서 새벽 이슬을 털어내며 웅석지맥 마지막 산행을 시작하는 마음이 걱정되면서도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구 제마재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바위들이 나타나고 등로 좌측의 전망바위로 가 살펴보니 바로 옆으로 남강이 도도히 흐르고 그 위에 놓인 대관교 넘어 저 멀리 진양기맥의 집현산과 광제산 줄기가 연무속에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좌측 앞으로는 남강 옆으로 솟아 있는 무명쌍봉이 아름답게 보이고 그 좌측 뒤 저 멀리 정수지맥의 둔철산이 환상의 모습으로 이 산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올망졸망한 마루금과 비포장임도를 따라 진행하니 바느고개 넘어 금새 사평동 마을을 통과하고 감나무 과수원 지나 가파른 잡목등로를 헤치며 어렵게 무명봉으로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바느고개로 내려오기 전 걸었던 부드러운 능선 등로가 좌측에서 우측으로 길게 이어지고 그 뒤 우측 저 멀리 뾰족한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이 쌍봉의 모습으로 여전히 환상의 모습으로 멀어져 있고 그 우측 가장자리로 웅석봉이 아득히 멀게만 보인다.

천왕봉 좌측으로는 지리주능선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3개의 산줄기들이 겹쳐 흐르고 그 좌측 가장자리 방향으로는 왕시리봉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중간에 약간의 가시잡목과 어려운 등로가 있었지만 황학산을 지나니 다시 등로는 뚜렷해지면서 동네 산책로 같은 임도들도 자주 나타난다.

이제 웅석지맥 마지막 날머리가 가까워졌는지 진양호가 가깝게 보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나즈막한 비산비야를 타고 진행하니 드디어 진양호 바로 직전의 가호전망대에 도착을 하니 백두대간의 끝점 꽃동실이라는 마지막 지점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며 3구간에 걸쳐 웅석지맥이란 이름으로 걸었던 길고도 멀었던 산행이 마무리되는 시간이다.

이곳에서 20여미터 떨어진 진양호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막아 놓은 금줄을 넘어 조심하며 실질적인 웅석지맥 마지막 지점을 향해 발길을 옮기는 마음이 희열에 차 있던 시간이었다.

 

드디어 진양호 물에 도착을 해 더러워진 손을 닦으며 오래 전 걸었던 진양호 건너 진양기맥을 배경으로 마지막 추억 한장 남기는 것으로 웅석지맥 마지막 산행을 마무리 한다.

하지만 지맥 산행을 마무리했다는 가벼운 마음과는 달리 다시 애마를 주차시킨 꼬까실 일명 산현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 쉽지 않아 고민하다 다시 황학산을 거쳐 마지막 산행을 마무리하다 보니 기분 좋게 예상된 시간에 산행을 완료하고 다음주를 기약하며 또 하나의 마침표를 찍어 본다.

언제나 느끼는 것은 힘들고 어렵게 하나를 마무리하면 개운하고 시원한 마음만 있을 것 같은데 늘 한구석이 비어있는 듯한 허전함이 더 크니 또 다시 그 고행길을 자처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도에 표기도 없는 꼬까실 일명 산현 주차장을 잘 찾아 애마를 주차시키고 금곡님 차량을 이용해 산행 들머리인 제마재로 오니 새벽 6시가 넘어가고 산행 준비 후 새벽 이슬을 털어가며 산행을 시간하는 시간이 6시 5분을 넘어가고 있다.

웅석지맥 마지막 구간의 산행 들머리인 1001번 곤수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제미재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는데 아마도 이곳 지명이름인 자매리의 자매재가 오기되어 제마재가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자매리는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있는 리로서 덕천강과 남강 사이에 위치하여 평야로 이루어져 있고 자연마을로는 자매와 월계 등이 있는데 자매(紫梅)는 월계 북쪽에 있는 마을로서 지대가 높고 사방은 높은 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여 경치도 좋으며 양지 쪽의 한 골짜기에 매화나무가 많이 자라는데 이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고 해서자매실 또는 자매라고 부르게 되었다.

월계(月桂)는 자매 남쪽에 있는마을이다. 뒷산 모양이 월중단계유지(月中丹桂有志)라고 하고 인심이 좋고 맑은 것이꼭달의 계수나무 아래와 같다고 하여 월계라 이름 지었다. 문화재로는 진양자매리(紫梅里) 고분이 있다. 

 

제마재 북쪽의 좁은 공터에 차량을 주차시키고 고개의 남쪽 끝지점으로 넘어 가니 도로 좌측 옆으로 전봇대가 보이고 그 전봇대 옆 잡목 사니오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는 곳으로 오르니 약간의 이슬이 등산복을 적시고 곧이어 관목의 참나무 아래 뚜렷하게 보이는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금새 커다란 소나무 아래 썩어가는 고사목이 보이는 156.8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인 남쪽으로 90도 꺽어 내려가며 이어지는 길주의 지점이기에 주의하며 진행한다.

 

무명봉에서 우측인 남쪽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니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굵은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구제마재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한쪽에는 잔돌이 쌓여 있어 성황당 구실을 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이곳 역시 방금 전 산행을 출발한 1001번 곤수로 2차선 포장도로의 제마재와 마찬가지로 진주시 수곡면 자매리에 속한 고개로서 교통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민초들의 애환이 서려있던 고갯마루였겠지만 이제는 이 산객처럼 산행을 즐기거나 임산물을 채취하는 사람들에게나 알려진 고개로 남아 있는 듯 보인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구 제미재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관목의 활엽수들이 보이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잡목들의 방해없이 진행하니 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

그 바위를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남강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그 뒤 저 멀리 진양기맥의 집현산과 광제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사진에 담고 다시 전진하다 뒤돌아 보니 소나무 가지 사이로 지난 두번에 걸쳐 걸었던 웅석지맥 전 구간이 길게 이어지며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지나 온 웅석지맥 전 구간을 확인하고 다시 나타나는 커다란 바위암릉을 따라 오르며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구름 사이로 강렬한 빛내림이 펼쳐지는 아래로 붉게 물든 남강이 아름답게 이어지고 그 바로 뒤로 거대한 비닐하우스 지나 대평면 마을이 보이고 그 바로 뒷쪽으로 나즈막한 진주고산정이 좌우측으로 길게 펼쳐져 있다.

그 뒤 저 멀리 좌측부터 집현산과 광제산으로 이어지는 진양기맥 마루금 우측으로 진주시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 우측 끝자락으로 월아산과 장군대산이 높게 솟아 있는 풍경들도 눈에 들어 온다.

 

이제 눈을 북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좌측 가장자리로 무명봉이 쌍봉의 모습으로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 남강과 그 남강 위에 설치된 대관교 지나 저 멀리 집현산과 광제산 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하늘에선 여전히 조각 구름 사이를 뚫고 강렬한 빛 내림을 만들어 내는 햇살이 아름답기만 하다.

우측으로는 남강 지나 거대한 비닐하우스 단지 지나 대평면 마을 뒤로 진주고산정이 보인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환상의 조망과 풍경들을 즐기고 다시 잡목이 사라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다시 커다란 바위들이 등로에 널려있는 암릉이 길게 이어지는데 바위들 모두가 모나지 않은 둥근 형태로 보여 사진에 담아 본다.

그렇게 잠시 더 길게 이어지는 바위암릉을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다시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져 있고 사진에 담으며 전진하니 빼곡하게 자라는 소나무 등로 지나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198.5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산행을 이어간다.

 

몇명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에 높이를 표기해 놔 위치 파악에 도움을 받고 다시 출발하니 빼곡한 관목의 소나무 등로 지나 약간의 잡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별 특징 없는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가 쓰러져 고사목이 되어 있는 196.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천천히 진행을 이어간다.

 

고사목이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니 다시 굵은 소나무와 약간의 잡목이 보이는 뚜렷한 등로가 열려있고 그 등로를 따르니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진다.

잠시 후 넓은 공터가 보이는 무명 공터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비포장임도가 펼쳐지는데 임도 좌우측으로는 멋진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평이하게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임도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좌측 능선으로 마루금이 이어지고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는 여전히 큰 어려움 없는 뚜렷한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능선으로 진입해 뚜렷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는 갑자기 잡목들이 우거지고 이리저리 헤치며 잡목 무명봉을 넘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밀양박공 묘지2기 지나 잣나무 군락지를 짧게 통과하니 또 다시 넓은 비포장임도를 만나 그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이어간다.

잠시 더 그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마루금은 눈 앞에 보이는 능선으로 이어지고 그 마루금 우측 바로 옆으로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는데 마루금으로 오르려고 살펴보니 잡목들이 우거져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고 우측으로 따라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마루금과 큰 차이없이 진행되기에 그냥 편안하게 우측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 좌측 옆으로 마루금이 따라오는데 거리는 채 10여미터도 되지 않기에 부담없이 도로를 따른다.

그렇게 한동안 평이한 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 옆으로 쓰레기 무단투기금지라는 플랭카드가 걸려있는 곳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 잡목들이 보이는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능선으로 오르니 관목의 활엽수들이 보이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편안하게 뚜렷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하얀 철판 위에 누군가 이곳이 246미터의 신선봉이라 적어 놨고 봉우리 바로 아래에 산신제단이 있음을 알리고 있는데 지도 어디에도 이곳의 높이와 신선봉이란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그 이정판을 지나 몇발자국 더 걸어가니 측백나무 아래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하는데 등고선을 보니 240미터대임은 맞는 듯 하여 그냥 이정판에 있는 246 무명봉이라 불러 본다.

 

그 무명봉에서 물 한모금 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내려가니 잡풀이 우거진 묘지 지나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한동안 고도차이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등로를 따라 나즈막한 안부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굵은 소나무와 관목들 그리고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243봉에 도착을 해 금곡님이 걸어 둔 높이 표시가 된 띠지를 사진에 담고 곧바로 출발한다.

 

소나무와 관목들 그리고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243봉을 지나 잠시 걸어 진행하니 커다란 소나무가 보이는 곳에서 등로는 다시 좌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는 길주의 지점에 도착을 하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길라잡이를 해 주고 있어 편안하게 확인하며 진행한다.

다시 이어지는 굵은 소나무 아래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뚜렷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무명묘지 지나 평이한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타고 한동안 걸어 본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230.3봉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선답자들은 이곳에 정상 높이의 띠지를 걸어 놨지만 실제 230.3봉은 우측으로 20여미터 떨어져 있어 잠시 다녀 오기로 하고 올라 금곡님의 띠지에 높이를 적어 걸어 놓고 사진에 담은 후 다시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내려 온다.

 

갈림삼거리로 내려 와 우측으로 크게 휘어져 남동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니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진주하공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들을 지나 다시 주 등로를 따르니 조선 소나무 등로가 길게 펼쳐져 있다.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소나무 등로에 잡목들이 점점 우거지기 시작하고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가니 멋진 금강송 아래 키가 큰 잡목들이 보이는 등로 지나 선답자의 산행띠지가 걸려있는 도상 194.2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좌측으로 완만하게 휘어져 진행한다.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ㅇ상보다 훨씬 좋은 등로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계획보다 일찍 마무리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잡목들이 많이 줄어 든 뚜렷한 소나무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가니 잡목이 사라진 뚜렷한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가 길게 펼려지고 기분 좋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198.2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 지나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고사목이 보이는 200.3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잠시 배낭 내려 준비한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갈증까지 해소한 다음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고사목이 보이는 무명봉에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천천히 출발하니 약간의 바위들이 깔려있는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이끼 낀 바위들을 통과한 후 다시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도상 말바누재로서 등로 좌우측을 살펴봐도 사람이나 짐승들이 넘나들던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는 안부이다.

이곳 말바누재는 국토지리원 지도와 다음지도 모두에 표기된 안부로서 진주시 대평면 하촌리와 수곡면 효자리의 경계지점으로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그 말바누재란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멋진 리끼다 소나무 등로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소나무 아래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높지 않은 203.5봉 오르막 등로가 꽤 가파르고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 오르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에 높이가 적혀 있는 203.5봉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기고 잠시 물 한모금 마시고 진행을 이어간다.

 

그 봉우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천천히 출발하니 금새 무명묘지 2기가 나타나는데 주위는 온통 돌을 쌓아 날짐승들의 침입을 예방한 듯 보인다.

그 무명 쌍봉을 지나니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길게 열려있고 그 소나무 등로를 지나니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192.9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번호를 확인하기 어려운 송전탑이 보이고 그 송전탑 지나 소나무 등로를 타고 순흥안공 묘지2기를 넘으니 다시 한동안 소나무 등로 지나 SK 태평2라는 통신탑 앞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곳에서 원 마루금은 직진 방향의 우거진 잡목 능선이지만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 하기에 그 통신탑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민가가 보이고 도로에는 커다란 개 몇마리가 사육되고 있는데 이방인의 출현에 얼마나 짖어대는지 어렵게 그 민가 지나 내려가니 1049번 호반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바느고개에 도착을 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방금 전 내려 온 시멘트 포장도로 한쪽으로 대평농장이란 입간판이 보이는데 방금 전 내려오며 봤던 민가가 있던 곳이 대평농장인 듯 보인다.

바느고개를 찾아보니 그 이름은 보이지 않고 비늘고개가 보이는데 비늘고개는 구한말 하촌리가 침곡면(針谷面)으로 되어 있을 당시 바늘같이 가늘고 뽀족하다고 하여 바늘고개이며 이 고개이름을 따서 침곡(針谷)이라 이름지었다는 자료로 봐 바느고개는 이 바늘고개의 변음된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바느고개인 1049번 호반로 2차선 포장도로로 내려오니 도로를 관리하는 곳에서 한분이 나오셔서 도롯가 잡풀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계신데 괜시리 미안한 마음에 재빨리 도로따라 우측 고갯마루로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시멘트 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타고 오르니 단풍나무가 곱게 물들어 있다.

계단을 오르니 진주정공 묘지들이 보이는데 잡풀들이 우거져 있어 장례문화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묘지 뒤 능선으로 오르니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지독한 잡목등로가 앞을 가로막고 이리저리 희미한 흔적을 찾아 가파른 오르막 잡목 등로를 따라 오르는 시간이 참으로 힘들고 어렵게 느껴진다.

 

가파른 오르막 잡목 등로를 따라 한동안 씨름하다 보니 바람 한점 없이 온 몸을 타고 흐르는 굵은 땀방울이 등로를 적시기 시작하고 땀방울이 눈 앞을 가로막아 계속 땀방울 닦아내기 바쁜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더 힘들게 걸어 오르다 능선 가까이 오른 지점에서 뒤돌아 보니 우거진 칡넝굴 뒤로 보이지 않는 바느고개 지나 방금 전 걸어 온 통신탑과 그 우측 송신탑으로 이어지는 웅석지맥 마루금이 고도차이 없이 길게 이어지고 그 마루금 뒤 저 멀리 뾰족하게 솟아 있는 주산과 그 주위로 낙남정맥과 조만간 걸어야 할 삼신지맥 마루금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 와 사진에 담으며 우측 끝자락 쪽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확인한 후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북서 방향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확인한 후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빛바랜 여영님이 걸어 둔 산행 띠지 한장이 걸려있는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약간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에 흐르는 땀방울을 식히고 우측으로 크게 꺽어 능선을 따라 산행을 이어가니 이곳 역시 잡목들이 우거져 있지만 희미한 등로가 남아 있어 바느고개에서 올라 온 등로보다는 진행이 가능할 정도이다.

그렇게 잠시 더 잡목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커다란 소나무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213.5봉에 도착을 해 사진에 담고 계속 능선 등로를 따라 진행한다.

 

금곡님도 산행 띠지에 높이를 적어 한장 걸어 놓고 213.5봉을 출발하니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 아래 키가 큰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흐릿한 등로가 이어지지만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어 다행이고 그렇게 한동안 정신없이 전진하니 비실이부부 띠지 한장이 길라잡이를 해 주고 있어 감사한 인사 한번 드리고 계속 잡목들을 헤치며 전진한다.

계속 이어지는 같은 풍경인 듯 달리 보이는 소나무 아래 잡목들이 커가는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등로를 따르니 잡목들이 조금씩 더 우거지기 시작하고 곧이어 커다란 소나무 사이로 고사목이 누워 썩어가는 137.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는데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되고 있다.

 

고사목이 누워 썩어가는 무명봉에서 우측으로 크게 꺽어 출발하니 키 작은 잡목들과 잡풀들이 우거지기 시작하는 무명묘지 한기가 나타나고 다시 평이한 잡목 등로를 따라 잠시 더 걸어가니 커다란 소나무 몇그루 사이로 제법 굵은 잡목들이 우거진 145.3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아무 표식도 산행 띠지들도 보이지 않아 금곡님이 가지고 있는 산행 띠지에 고도 표기를 하고 한장 걸어 둔 후 사진에 담고 이제 좌측으로 크게 꺽어 산행을 이어간다.

 

남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바꿔 여전히 잡목들이 우거진 고도차이가 없는 등로를 따르니 돌로 주위를 쌓아 올린 파묘된 듯 보이는 묘지를 통과하니 눈 앞으로 벌목지 사이로 커다란 밤나무 과수원이 드넓게 펼쳐지져 있는데 하얀 밤꽃이 만개해 밤나무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밤나무 과수원을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며 살펴보니 밤나무 과수원 아래로 알록달록한 민가들 지붕들이 보이는데 지도를 보니 진주시 대평면 단촌리 사평동 마을이고 그 뒤로 잠시 후 올라야 할 감나무 과수원 뒤 우측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무명봉 줄기가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밤나무 과수원 사이로 나 있는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대나무 군락지 옆 민가를 바라보며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서고 좌측으로 허름한 민가 마루에서는 할아버지 한분이 무더위를 피해 무엇인가 일을 하시는데 덩치가 무척 큰 개 한마리가 우렁차게 짖으며 달려와 두려움을 느끼는데 할아버지가 달려 나와 그 개를 끌고 말없이 들어가시기에 감사한 인사를 드리고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당촌리 사평동 마을 한가운데로 내려가니 강렬하게 내려 쬐는 한낮 햇살이 온 몸을 뜨거운 열기로 데우며 굵은 땀방울을 연신 도로에 뿌리고 있다.

진주시에 소개된 당촌리 사평동 마을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사평마을은 댐 수몰이 되기 전에는 92호로 5개 마을로 분동되어 있었다가 현재 수중이 되어 있는 벗들에 28호가 주거하고 있고 주작물인 벗들무우(대평무우)는 전국에서도 유명하여 옛날에는 나라 임금님께 진상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무 종자를 채종하는데 옥방마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좋은 종자를 100여 가마(1가마 72㎏입)나 생산 하던 곳으로 수몰 전에는 무가 전국에서 뛰어나게 잘되던 옥토가 지금은 물속으로 변모하였다.

남강댐 수몰 전에는 유명한 벗들무우를 매입하기 위하여 부산과 서울 등지의 상인이 하루 십여 명씩 내왕하여 무를 밭떼기로 매매하는 사람과 하루 20여대의 자동차가 붐비어 주점에 만원을 이루었으며 개가 십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돈이 흔하던 고장이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곳이 되었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 와 아쉬움만 커지는 시간이다.

 

사평마을로 내려가며 지도와 트랙을 보니 마루금은 밭 경작지와 민가 사이로 곧게 나 있지만 주민들에게 피해가 될 듯 싶어 우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 따라 우회하며 내려가니 동네 한가운데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보이고 그 그늘속으로 들어가니 방금 전 포장도로와는 완전히 다른 시원한 바람이 살갗을 스치며 흐르는 땀방울을 말려준다.

잠시 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낡은 민가들과 창고들이 보이는데 이 산객이 살던 시골의 1970년대 모습과 닮아 있는 듯 개량들이 필요해 보인다.

잠시 더 느티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도로 지나 우측의 감나무 과수원 방향으로 오르니 개망초 들판 지나 비포장임도가 보이고 그곳에서 잠시 지나 온 등로와 사평마을을 뒤돌아 보니 한폭의 풍경화처럼 아름답게 보여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감나무 과수원 상단부 비포장임도가 시작되는 곳에서 지나 온 마루금과 사평마을을 살펴보고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천천히 걸어 오르니 관목의 활엽수에 글씨가 전부 사라진 이정판 2개가 걸려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 무명봉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꺽어 이어지고 그 등로 우측으로는 드넓은 벌목지대가 펼쳐져 있는데 시간이 지났는지 잡목들이 상당히 커가고 있다.

 

이제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천천히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일반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모습이고 우측은 벌목 후 밤나무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시간이 지났는지 밤나무도 상당히 커져 있고 그 사이에 자라고 있는 잡목들과 잡풀들도 우거져 색다른 풍경으로 펼쳐져 있다.

잠시 더 그 밤나무 과수원 좌측 능선 등로를 따라 우거진 잡풀들을 헤치며 걸어가다 등로 우측으로 밤나무 과수원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아래 당촌리 마을 뒤 건너편으로도 드넓은 밤나무 단지들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로는 옥산 정상부가 살짝 존재감을 알려준다.

 

밤나무 과수원 좌측 능선을 따르니 잡풀들이 우거져 있기는 하지만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는데 다만 낮이 되면서 기온이 오르고 내려 쬐는 햇살이 강해 온 몸을 타고 흐르는 굵은 땀방울이 빗물이 흐르듯 흘러 그 땀방울을 닦아내는 것이 더 어려운 시간이다.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 우측인 밤나무 과수원 방향으로는 녹슨 철조망이 보이고 잠시 후 4기의 묘지지대를 지나 좀금 더 전진하니 밤나무 과수원 지나 다시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능선 등로로 이어진다.

잠시 후 등로는 좌측으로 돌아 동쪽으로 진행을 하니 다시 주능선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서 등로는 다시 동쪽에서 남쪽으로 방향이 바뀌는데 등로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잠시 진양호가 내려다 보이는데 조망처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좌측으로 진양호를 살펴보며 진행을 이어가는데 조망처가 없어 전체 진양호를 살펴볼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계속 진행하니 관목의 편백나무 군락지가 나타난다.

하지만 일반적인 편백나무 군락지와 달리 이곳 등로는 희미해지고 길찾기도 쉽지 않아 어렵게 진행되고 그렇게 전진하니 무명묘지 지나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등로 아래 안부가 내려다 보이는 개활지로 이어지고 있는데 당촌리 당상동 안부이다.

당촌(堂村)마을은 남강댐 수몰되기 전 당촌리가 3개 마을로 분동(分洞)되어 있을 당시 101호로서 큰마을에 속하여 일정때는 대평면 내에서 벼 공출을 제일 많이 낸 마을이고 8. 15 해방후에는 무종자 생산으로도 유명한 곳이기도 하였으며 1973년 2월 26일 법률 제 2555호로 종묘관리법이 제정되기 전 무종자 생산량이 당촌마을에서 약 400가마(72㎏입)였다.

당촌리 거주 김덕용(金德龍)이 면내에서 생산된 무종자를 600여가마를 수집하고 재던 전주 흥농종묘지사(興農種苗支社)로 80여가마 송출하고 잔여 무종자는 강원도와 경기도 등 전국 각지로 송출하였으나 종묘관리법이 제정된 이후에는 이곳 당촌리에서는 종자생산을 못하게 하고 대전과 전주 흥농종묘지사에서 종자를 생산하여 진주 대평무우라고 이름 붙여 보급하고 있다.

당촌리 지하(地下) 삼거리는 경제적으로 윤택한 곳이었으며 큰 상점이 있어 사람이 많이 왕래하던 곳이다.

 

상당동 안부로 내려가니 우측으로 비포장임도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직진의 능선으로 마루금이 이어지지만 그 입구를 살펴보니 잡목들이 우거져 도저히 진입이 불가능해 보여 우측으로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짧게 걸어 내려가다 좌측 희미한 족적을 찾아 능선으로 오르니 희미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주능선에 도착을 해 우측으로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바람 한점없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온 몸이 흥건히 젖어들 쯤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돌담같은 모습들이 나타나고 잡목들이 우거진 171 무명봉 넘어 잡풀들이 우거진 무명묘지 3기가 보인다.

오전 11시가 넘어가며 기온이 오르니 오늘 하루 산행이 쉽지 않음을 느끼며 잠시 물 한모금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진행을 이어간다.

 

잡목들이 우거지고 묘지들이 보이는 171 무명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고 묘지 좌측으로 우거진 잡풀지대를 따라 내려가니 다시 돌담들이 계속 나타나고 어느곳은 제법 그 형태가 남아 있어 진주시에 들어가 자료를 찾아 보니 당촌리 산성터가 보이고 확인해 보니 당촌리 마을 최하단(수몰 전 당하마을) 뒷산에 있는 산성으로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기 위하여 쌓은 산성으로서 지금도 성터가 있다 라는 자료가 보이는데 관리가 되지 않아 산성터는 거의 무너지고 사라지고 있어 하루 빨리 고증하고 복원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산성터가 보이는 돌담을 지나니 등로는 무너진 돌담 위로 우거진 잡목 사이로 내려가며 이어지는데 흔들리는 돌들과 그 위를 휘감고 있는 잡목들과 넝굴들로 인해 진행이 쉽지 않다.

그렇게 잠시 더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다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중앙부로 233미터의 황학산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마루금인 231 무명봉이 그리고 우측 뒤로는 들리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 231.7미터의 삼각점이 박혀있는 갈마봉이 아름답게 보이는데 저 등로에는 또 어떤 사연들이 숨어 있을지 궁금한 시간이기도 하다.

 

진행 방향으로 펼쳐진 마루금과 갈마봉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산성터를 따라 우거진 잡목들을 헤치고 내려가니 다시 굵은 참나무 아래 넝굴식물이 등로를 완전히 뒤덮고 있는 내리막 등로가 나타나고 그곳을 내려가는데 등로가 사라져 짧은 알바를 경험하며 어렵게 방향을 잡아 진행을 이어간다.

그렇게 한동안 그 잡목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니 갑자기 눈 앞으로 넓은 개활지가 나타나고 그곳에는 우거진 잡풀들이 보이고 그 개활지 아래로 다시 잡목들이 우거진 경계의 안부가 내려다 보이는 당하동 안부에 도착을 해 오렵게 내려 온 산성터 방향을 올려다 보니 저 멀리 내려 온 171 무명봉으로 이어진 등로가 빤히 올려다 보인다.

당하동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당촌리에 있는 당촌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서 당촌리는 평지에 위치한 마을로 앞으로 남강이 굽이져 흐르고 당촌소류지가 있으며 넓은 들에서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당촌(당말), 늑실, 당하동, 못밑(지하), 벗들(버들들,유평), 사평, 쑥새골, 아래골(암소골), 잠방골, 황소골(대우동) 등이 있는데 당촌은 뒷산에 신당이 잇었으므로 당말 또는 당촌이라 하였는데 후에 당촌리가 되었다.

 

당하동 안부에서 물 한모금 마시고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우거진 잡목 사이를 뚫고 내려가니 우거진 잡목들로 인해 정상 마루금으로는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좌측으로 어렵게 우회해 다시 마루금으로 접속하니 무명묘지 2기가 나타나고 그 묘지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힘들게 오르니 경사도가 완만해지는 128미터 지점 좌측으로 제대로 된 진양호가 내려다 보여 잠시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에 담으며 주위를 살펴본다.

진양호 좌우측으로 나즈막한 무명 산줄기들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높은 산줄기가 보여 자세히 살펴보니 좌측 무명봉 뒤로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고 그 우측 아래로 도토리봉과 밤머리재 지나 우측의 웅석봉과 달뜨기능선 우측으로 정수지맥의 둔철산 능선이 보인다.

 

진양호와 그 뒤로 보이는 웅석지맥 분기점인 지리산 천왕봉에서 이곳 진양호까지 이어지는 전구간을 확인하고 오르니 무명묘지 지나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소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잠시 후 우측으로 204.8봉으로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몇장이 걸려있는데 이곳을 204.8봉으로 적어 놨다.

그리 멀지 않기에 이곳에 배낭 내려 놓고 우측으로 진행하니 금새 소나무들이 보이는 204.8봉 정상에 도착을 하고 금곡님이 띠지에 높이를 적어 걸어 놓고 사진에 담고 확인한 후 다시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나와 산행을 이어간다.

 

배낭을 벗어 놓은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나와 다시 식수 한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잠사 휴식을 취하고 배낭 찾아 어깨에 둘러메고 출발하는데 금곡님이 후답자들을 위해 띠지 한장 걸어 놓고 출발한다.

이제 233미터의 황학산이 멀지 않았기에 그곳부터는 많은 일반 등산객들이 찾고 있어 조금 더 좋아진 등로를 기대하며 다시 204.8봉 갈림삼거리를 출발하니 등로 우측으로 묘지 몇기가 보인다.

 

그 묘지 위에서 등로 우측을 보니 우측의 내촌리와 좌측의 내평리를 이어주는 1049번 호반로 2차선 포장도로로 이어지는 진양호 위 진수대교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로는 희미한 금성교와 그 뒤로 봉명산 군립공원의 이명산 뒤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산 하나가 눈에 들어 와 지도로 확인해 보니 하동의 금오산이기에 환호성을 질러 본다.

지난 주 지리산 천왕봉에서 운해속에 섬처럼 떠 있던 금오산이었는데 이렇게 다시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는 기회를 얻어 감개부량이다.

 

그 묘지 위에서 진양호와 주위 산줄기 및 하동의 금오산을 살펴보고 몇장의 사진에 담고 다시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바위암릉이 나타나고 미끄럽지 않토록 조심하며 걸어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에 웅석봉과 꽃등실을 알리는 작은 이정판이 걸려있어 사진에 담고 다시 한번 더 확인을 해 본다.

그 이정판 이래 보이는 귀곡총동창회와 실향민회 및 꼬까실산익회란 글씨들이 눈에 들어 오고 이제서야 이곳이 진양호를 만들며 수몰된 지역이고 많은 실향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음을 실감해 보는 시간이다.

 

그 이정판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드디어 233미터의 황학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에는 오석의 정상석과 이정판 그리고 작업중인 이정표들이 보이고 정상석도 앞뒤로 한글과 한자로 황학산을 다르게 표기하고 있어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정상석을 확인해 보니 백두대간 마지막 정기가 모인 황학산이란 글귀가 눈길을 잡는다.

지도에는 이름도 없고 고도표기도 없는 무명봉인데 등고선을 보면 230봉 안쪽이나 정상석에 표기된 233미터봉은 맞을 듯 싶은데 한골마을에 있는 안내판에는 수몰된 까꼬실 마을의 주봉으로 233m로 표기되어 있고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란 설명이 있는 정상의 황학산인데 그래서 황학산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황학산 정상에서 설치하기 위해 작업중인 이정표를 보니 진행 방향으로 231봉까지 02 Km와 톳재비고개까지는 1.2 Km인데 진양호까지 진행한 후 까꼬실 일명 산형 주차장까지 진행해야 할 방향으로는 1.1 Km 거리로 표기되어 있다.

이곳에서 갈마봉 방향을 우측으로 버리고 좌측의 꽃동실 방향의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가파른 소나무 내리막 등로에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데 지금까지의 등로와는 달리 이름이 있는 곳이다 보니 등로는 뚜렷하고 잡목의 침범이 없어 편안하게 진행된다.

그렇게 잠시 더 내려가니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무명안부를 만나 통과하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로 오른다.

 

무명안부 지나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지도에는 마무 표식이 없는 231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등로 좌측 옆으로 바위봉이 보이는데 지도를 보니 226봉이다.

그 바위 위로 올라가 보니 이정판은 물론 선답자들의 산행띠지 한장 보이지 않아 금곡님이 띠지에 226미터봉임을 알리는 글자를 적어 바위봉 끝 참나무 가지에 걸어 놓고 사진에 남긴 후 다시 우측으로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니 이곳도 등로 정비를 계획하고 있는지 많은 공사 자재들이 올라 와 있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공사 자재들이 쌓여 있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한동안 걸어 내려가며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편백나무 군락지가 드넓게 펼쳐지고 사진에 담고 살펴보며 내려가니 안부에 도착하는데 안부 좌측으로는 톳재미고개이고 진행방향으로는 분토봉이란 글자가 보인다.

잠시 후 만나게 되는 분토봉 정상에 설치된 톳재비고개에 대한 설명판을 살펴보니 톳재비고개(도깨비고개)는 마을의 북쪽 뿔당골과 신풍으로 넘어가는 큰 고개로 옛날부터 도깨비가 자주 나타나 혼자서는 넘기가 너무 무서운 고개로 톳재비고개라 불렸다고 하는데 이 톳재비는 바로 도깨비의 경상도 사투리이다.

이곳 톳재비 고개는 또한 진양호에서 웅석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꼬까실 주차장으로 이동하면서 우측의 한골선착장 방향으로 올라 황학산 지나 주차장으로 진행하게 되는 등로이기도 하다.

 

톳재비고개 안부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통나무 계단이 길게 설치되어 있고 그 계단을 따라 오르니 금새 분토봉이란 정상석이 설치되어 있는 131.4봉에 도착을 하는데 정작 정상석에는 136봉으로 되어 있어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분토산은 예전 이곳에 고인돌과 고분이 출토되었다고 해서 분딧골(墳土洞)로 불렀고 분토동에서 분토산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는 설명이 보인다.

다만 이곳 정상석 옆에 이런 분토산에 관한 설명판을 설치했으면 좋았겠는데 방금 전 지나 온 톳재비고개(고깨비고개)에 대한 설명판과 진양호생태탐방로이용안내라는 안내판만 보여 더 큰 아쉬움만 남긴다.

 

분토봉 정상석이 설치된 131.4봉에서 잠시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우측으로 돌아 몇 발자국 걸어가니 다시 분토봉이란 이정판이 걸려있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빈행방향으로 분딧골이란 글씨가 보이고 그 옆으로 톳재비고개(도깨비고개)와 진양호생태탐방로 이용안내판이 보인다.

읷에서도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다시 남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평이하고 뚜렷한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커다란 참나무와 소나무가 보이고 그 아래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능선 가운데 뚜렷하게 보이는 등로를 따르니 거리 표시는 없이 지나온 방향으로 톳재비고개와 진행방향으로 분딧골 방향이 표기된 이정표와 뒷쪽으로 벤취쉼터 2개 그리고 천둥오리에 대한 설명판이 보이는 곳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해 본다.

이정표를 지나 길게 이어지는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다시 거리 표시는 없이 방향만 표기된 이정표가 보이고 그곳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니 통나무 계단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양쪽 옆으로는 대나무 목책과 대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고 그 옆으로는 이정표와 분딧골과 뒷들고개에 대한 설명판이 서 있다.

 

진행방향 좌측으로 서 있는 분딧골과 뒷들고개 설명판을 읽어 보니 분딧불과 뒷들고개 이곳은 고인돌과 고분군이 있었고 석기와 토기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주거지로 볼 수 있어 분딧골(분토동)이란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뒷들고개는 무와 배추, 고구마, 수박, 오이의 명산지로 유명했던 뒷들과 녹디섬으로 통하는 고개이다.

특히 까꼬실고구마는 부산에서 지금도 짝퉁이 나돌고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그 옆에 서 있는 이정표를 보니 황학산과 분토봉 방향에서 내려 와 큰마을과 당산 방향으로 진행이 되고 우측으로는 진양호에서 웅석지맥 산행을 갈무리하고 꼬까실 주차장으로 뒤돌아 갈 떼 걷게 되는 한골과 선착장 방향이 표기되어 있다.

 

이제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인 북동 방향으로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멋지게 만든 대나무 목책이 설치되어 있고 그 뒷쪽으로는 대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나무데크 지나 다시 좌측으로 이정표와 그 뒤로 통나무 오르막 계단이 보이는데 그곳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큰마을(큰새) 방향의 통나무 계단을 따라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통나무 계단을 오르니 다시 하얀 꽃이 활짝 피어있고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는 밤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진양호생태탐방 안내이용판이 서 있고 등로는 이제 좌측으로 휘어져 잡풀이 양탄자처럼 깔려있는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오르막 등로로 이어진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꽃동실과 나중에 잠시 들리게 될 가곡탐조대 방향 표시가 되어 있는 작은 이정판 지나 대나무 군락지를 통해 오르니 지나 온 방향으로 뒷들고개란 방향 표시가 보이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 이정표를 지나 평이하고 뚜렷한 활엽수 등로를 따르니 그늘진 나뭇가지 사이로 약간의 산즐바람을 몰고 오고 흐르던 땀방울을 닦으며 계속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고인돌(지석묘)이라는 설명판과 그 옆으로 고인돌이 보인다.

설명판을 읽어 보니 청동기는 대부분 지석묘라 불리는 고인돌에서 출토되고 있는데 고인돌은 말 그대로 돌을 고였다하여 븥여진 이름으로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의 형태이다.

무덤 속에는 주검만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토기나 석기, 청동기 등의 다양한 유물을 넣기도 하므로 무덤은 그 시대의 사회상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 된다.

전시실이 아닌 자연 현장에서 뚜렷하게 대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청동기시대 유적이다 라는 설명이 보인다.

 

고인돌과 설명판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후 다시 평이하고 뚜렷한 넓은 임도 같은 등로를 따르니 벤취쉼터 2개와 당산먼당이란 설명판이 서 있는 당산에 도착을 한다.

설명판을 읽어 보니 큰마을 뒤에 있는 산으로 이곳에 까꼬실 마을과 토지의 수호신을 모셨고 정월대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당산제와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노송나무에는 옛날 장군이 쏘았다고 전해지는 호살자국이 있다는 내용이다.

 

그 당산을 지나니 등로는 고속도로처럼 펼쳐져 있고 마치 동네 산책로를 걷는 기분으로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넓은 고사리 밭도 나타난다.

고사리 밭을 지나니 다시 벤취쉼터 2개와 참수리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보이고 사진에 담고 조금 더 내려가니 등로 좌우측으로 뚜렷한 등로가 보이는 안부에 도착을 해 지도를 살펴보니 아무 이름도 없는 무명안부이다.

귀곡동은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동으로 원래 진양군(晉陽郡) 축곡면에 속한 지역이며 1914년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대촌과 게에미, 대터, 송정(松亭) 등을 합하여 진양군 내동면 귀곡리가 되었다.

1973년 내동면 귀곡리가 진주시에 편입되어 귀곡동이 된 귀곡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판문동(板門洞) 관할하에 있다.
가운데섬과 녹두섬 및 벗들 등의 들판, 갑골과 무점골, 분딧골, 뿔땅골, 산박골, 한골, 항아골 등의 골짜기, 개구리바우와 시포리바위 등의 바위, 공궁과 꽃동실, 시루봉, 콧등실, 태봉(胎峰), 황학산(黃鶴山) 등의 야산, 공에미와 깟고실, 대터, 딧덕골, 송정, 큰말 등의 옛마을, 고개인 아래땅곡 등이 있다.

뿔땅골은 불당이 있었다는 데서, 시루봉은 산세가 시루처럼 생겼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하고 주요 시설로는 남강댐이 있으며 유적으로는 여러 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고인돌밑에서 청동기시대의 움집 터와 돌널무덤을 주위에서 민무늬토기와 도질토기 조각등을 출토하였다.

무명안부를 지나 오르니 상수원보호구역 알림판과 삵에 대한 설명판이 나타나고 벤취쉼터 2개까지 확인한 후 사진에 담고 조금 더 전진하니 관목의 활엽수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103.5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기온이 올라 가만히 서 있어도 무더위를 느끼는 시간이기에 물 한모금 더 마시고 갈증을 해결한 후 곧바로 이어지는 굵은 참나무 등로 지나 통나무 계단을 타고 내려가며 산행을 이어간다.

 

넓게 이어지는 통나무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는 계단 내리막 등로가 펼쳐지고 조심하며 빠르게 전진하니 계단이 끝이 나는 지점에 다시 안부가 나타난다.

안부 좌우측을 확인해 보니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데 오랫동안 이용하지 않았는지 잡목들과 잡풀들로 우거져 이제는 이용하기 힘들어 보이는 무명 안부이다.

 

무명안부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보이고 그 뒤로 길게 설치된 목책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다가 가 이정표를 확인해 보니 진행 방향으로 마지막 지점인 꽃동실이란 글자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고 우측으로는 웅석지맥의 마지막 지점인 진양호를 다녀 와 다시 꼬까실 일명 산현 주차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걸어야 할 청둑 선착장으로 가는 방향 표시가 보인다.

청둑선착장으로 내려가는 통나무 계단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조금 더 진행한 후 등로 좌측 나무 옆에 배낭을 벗어 숨겨 놓고 편안한 복장으로 마지막 꽃동실과 가호전망대로 향한다.

 

청둑 선착장 갈림삼거리를 지나 배낭을 나무 뒤에 숨겨 놓고 편안하게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길게 설치된 목책이 계속 따라오고 나즈막한 언덕과 안부를 교대로 넘어 전진하니 드디어 꼬까실 안내도와 가호 설명판 및 백두대간의 끝점 꽃동실 옆으로 꽃동실이란 오석의 표지석 뒤로 나무데크로 이뤄진 가호전망대가 나타난다.

풍경과 안내판 그리고 걸명판들을 사진에 담고 웅석지맥 마지막 지점에 세워진 꽃동실이란 표지석 앞에서 추억 한장 남기며 꽃동실에 대한 자료를 찾아 읽어 본다.

백두대간의 끝점인 꽃동실은 백두산에서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는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이 여기에서 끝을 맺는 곳으로 남덕유산 찬샘에서 발원한 경호강과 지리산 천왕샘에서 발원한 덕천강이 이곳에서 합수되어 서부 경남의 젖줄인 남강이 시작되는 아름다운 진양호반(가호)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꽃동실이라 부른다고 되어 있다.

 

꽃동실 표지석에서 추억을 남기고 그 바로 뒤에 있는 나무데크로 되어 있는 가호전망대로 오르니 바로 전방으로 푸른 진양호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앞 저 멀리 남강댐이 보이며 그 좌측 뒤 진주시 평거동의 아파트 단지 앞으로 오래 전 홀로 마무리를 한 진양기맥의 마지막 끝점도 보이기 시작한다.

가호란 까꼬실의 한자식 표기로 경호강과 덕천강이 합수하는 이곳의 풍광을 아름다운 호수로 비견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오늘날 진양호반의 절경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예견한 듯하다.

농포 정문부선생을 모신 서원의 명칭이 가호서원이고 까꼬실 망향비에 새긴 서호 정광학(1791-1866) 선생의 시 가호와 쌍주 정세교(1824-1880) 선생의 시 가호팔경이 전해지고 있다고 적혀있다.

 

꽃동실 표지석과 가호전망대에서 많은 사진과 추억들을 남기고 잠시 고민하다 바로 발 아래 잔잔히 움직이는 진양호를 그냥 통과할 수 없어 우거진 잡목과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심해 내려가니 마수위 표지판이 나타나고 그 좌측 옆으로 나무 뿌리를 잡고 내려가니 드디어 웅석지맥 마루금이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는 진양호 물에 도착을 해 그 진양호에 손을 닦으며 3구간으로 나눠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한 지맥 산행을 모두 마무리 한다.

 

진양호 물가에 서서 제일 먼저 동쪽을 살펴보니 잔잔하게 출렁이는 진양호 물결 뒤로 진양기맥 마지막 구간의 나즈막한 산줄기가 좌측에서 우측으로 길게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 위로 진양호 공원 내 아시아레이크사이드로텔 좌측 위로 전망대가 보이고 그곳에 올라 이곳을 바라보며 이곳이 웅석지맥 마지막 지점이란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아름다운 풍광에 취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만 해도 이곳 웅석지맥 마루금을 따라 이곳까지 와 다시 진양기맥 마루금을 살펴보며 옛 추억을 떠 올리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강은 경상남도 남부를 흐르는 낙동강의 지류로서 원류는 함양군 서상면(西上面) 남덕유산(南德裕山:1,503m)에서 발원하는 남계천(濫溪川)으로 대체로 남남동의 유로(流路)를 따라서 소백산지(小白山地) 동사면(東斜面)에서 진양호(晉陽湖)로 흘러든다.

진양호에서 남강댐을 거친 뒤부터 남강으로 불리면서 동북동으로 유로를 바꿔 곡류(曲流)하여 하류부에서 함안군과 의령군 군계(郡界)를 이루다가 창녕군 남지읍(南旨邑) 대안(對岸)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상류부의 남계천은 지우천(智雨川)과 위천(渭川) 및 단계천(丹溪川) 등 지류를 합치면서 안의(安義)와 함양, 산청(山淸) 등 분지를 형성하여 그곳에 지방중심지를 발달시키고 진양호에서 덕천강(德川江)을 합친 뒤 하류부의 남강은 진주시를 관류하고 나서 유천강(類川江)과 향양천(向陽川) 및 검암천(儉岩川) 등 지류를 남북으로 받아들이면서 유역에 진주분지를 비롯한 유역평지를 띠모양으로 전개시킨다.

남강 유역평지는 수해상습지였으나 남강댐이 구축된 뒤 수해를 면하게 되었다.

 

이제 눈을 남동쪽으로 돌리니 좌측의 경호강이 남강으로 변경되어 이곳 진양호로 흘러들고 우측에서는 덕천강의 물길이 역시 이곳 진양호로 흘러들어 남강댐이라는 이곳에서 하나의 물길이 되어 잠시 머물다 가화천과 남강을 통해 바다로 흘러드는 모습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남강댐 좌측 끝자락으로는 진주시 평거동의 아파트 단지와 그 앞으로 진양기맥의 마지막 끝 지점인 충혼탑이 그 옛날 맺었던 소중한 인연을 다시 들려주고 있다.

남강댐(선장전화 010 9315 4303)은 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에 있는 낙동강 지류인 남강을 가로지른 댐으로 댐 우안은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삼계리에 속한다.

1920∼1930년대에 실시한 낙동강개수계획의 일환으로 남강 홍수량의 사천만 방류계획을 성안하여 홍수 조절을 위한 단일 목적으로 1939년에 착공하였으나 방수로에 토석 약 200만㎥를 굴착하고 중단되었다.

1949년에 재착공하였으나 댐코어 시공 도중 또 다시 중단되었다가 그 뒤 홍수 조절 외에 관개용수와 상수도용수 공급 및 발전을 포함하는 다목적댐사업으로 계획을 조정하여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사업으로 1962년 5월 제3차로 착공하여 1970년 7월 완공하였다.

낙동강 수계 최초의 다목적댐으로 높이 21m, 길이 975m, 부피 82만 5000㎥의 중심코어형 필댐(fill dam)이고 상류 표면 경사는 1:2에서 1:2.2, 하류 표면 경사는 1:1.8에서 1:2 구배를 이룬다.

댐 우안은 길이 68.5m의 여수로구간 및 길이 30m의 발전소구간이 콘크리트댐으로 이어지는데 댐 마루는 해발 42m, 계획 홍수위는 해발 39.5m로 2.5m의 여유고를 보유하고 있다.

댐 지점의 유역 면적은 2,285㎢, 댐에 의하여 형성되는 저수지는 진주시를 위시하여 경상남도 내 3군 9개 면에 걸쳐 있으며 39.5m의 계획 홍수위에서 만수 면적과 총 저수용량은 각각 29.4㎢와 1억 8900만㎥이다.

이 댐은 계획 홍수량 초당 1만 570㎥를 사천만 방류와 저수지 조절에 의하여 남강 본류에 2,000㎥ 이하만을 방류함으로써 남강 하류 연안 토지 5만㏊에 대한 홍수의 피해를 줄이고 남강 하류의 7,500㏊와 낙동강 하류의 2,300㏊ 농경지에 연간 6천만㎥의 관개용수를 공급한다.

또한 진주시와 사천 지구의 상수도 용수로 각각 하루 10만여㎥를 공급하며 최대 출력 1만 2600㎾의 전력과 연간 43Gwh의 발전량을 공급한다.

댐의 주요 시설물은 본댐 외에 초당 1만 570㎥의 계획 홍수량을 조절, 방류하기 위하여 문비 6문을 보유하는 여수로 시설과 홍수 때 사천만 방류를 위한 문비 10문을 보유하는 제수언 시설(制水堰施設), 연장 11㎞에 달하는 방수로 시설, 시설 용량 1만 2600㎾의 발전소 시설이 있다.

 

이제 진양호 바위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돌아가니 덕천강이 흘러드는 진양호의 남쪽을 둘러싸고 있는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나즈막한 태봉산과 미륵산 줄기가 아름답게 보인다.

덕천강은 경상남도 산청군의 삼장면에서 발원하여 진양호에서 남강에 합류하는 하천으로 삼장면 유평리 지리산 국립공원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다가 시천천 등을 합하고 단성면을 지나 진주시와 하동군 경계를 이루다가 동쪽으로 진주시와 사천시 및 하동군 경계에서 국가하천이 되고 진양호에 이르러 남강에 합류한다.

덕천은 큰 내를 뜻하는 이름이며 지리산 여러 골의 물을 모아 흐르는데 군의 시천면 덕천서원 이름도 이에 비롯되었고 이칭으로 시천과 살천, 청천강, 금성강 등이 있으며 금성강(金城江)은 사천시 곤명지방에서 부르던 명칭의 하나이다.

대동여지도에는 덕천강이 남강에 합류하기 전 하류의 명칭을 금성강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는 사천시 곤명면 금성리의 강변에 금성이라는 옛 성터가 있었던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며 예전에 금성나루터가 있었다고 한다.

살천(薩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진주)에 살천은 일명 시천이라고 한다 라는 기록이 있으며 청천강은 대동수경에 살수(薩水)-청천강을 설명하면서 나라 안에 살수라는 이름이 셋이 있는데 하나는 청주의 청천 (중략) 다른 하나는 진주의 청천인데 옛날 살천부곡이다 라는 관련 기록이 있다.

 

그렇게 웅석지맥의 마지막 끝 지점인 진양호 물가에서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무더위를 식힌 후 다시 내려간 오르막 등로를 타고 가호전망대와 꽃동실 표지석 앞에서 마지막 추억 한장 더 남기고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배낭을 숨겨 놓은 청둑선착장 갈림삼거리로 복귀한다.

배낭 찾아 이제 진행 방향 좌측인 청둑선착장 방향으로 내려가니 통나무 계단이 길게 이어지고 한동안 내려가니 지나온 방향으로 꽃동실과 가호전망대 방향과 앞으로 진행해야 할 방향인 우측으로 충의사와 큰샘 및 가곡탐조대 글씨들이 보인다.

좌측 진양호 끝 지점 방향으로는 위에서 봤던 청둑선착장으로 가는 방향 표시가 보이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주위에 설치된 많은 안내판과 설명판들을 사진에 담아 본다.

 

그 청둑 선착장 갈림삼거리에서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우측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아름다운 대나무 군락지 지나 진양호가 내려다 보이고 조금 더 전진하니 도로 양쪽으로 잘려진 대나무 더미들이 쌓여 있다.

좌측으로 휘돌아 가는 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가니 진양호생태 숲 안내판이 다시 보이고 그곳 지나 좌측을 보니 방금 전 내려 가 웅석지맥이란 산줄기의 마지막 지점에서 손을 담궜던 지점 우측 부분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내동면 방향의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보인다.

 

좌측으로 진양호를 내려다 보며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 좌우측으로 평이한 잡목 풍경들이 펼쳐지고 강렬한 햇살이 비추는 곳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온 몸을 휘감고 그늘속으로 들어가며 시원한 산들바람이 흐르는 땀방울을 식혀주는 시간의 반복이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이곳 역시 밤나무들이 보이고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히는데 결코 좋은 향기는 아니다.

잠시 후 도로 좌측으로 선착장이 내려다 보이는데 아직도 진양호를 운행하는 귀곡호가 있는 듯 해 이제서야 배 편과 운행 시간을 알아 보고 배를 이용해 진주로 나갔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선착장을 지나니 쇠백로에 대한 설명판이 보이고 그 옆에는 수달에 대한 자료판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 다시 밤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잡목들이 보이는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옆으로 매실나무들이 보이고 익은 매실들이 도로에 떨어져 나뒹굴고 좌측으로는 비닐하우스와 사람들이 머물렀던 흔적들이 있는 농막들도 보인다.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니 도로 우측으로 약수터인지 우물이 보여 잠시 들어 가 물 한모금 마시고 진행하려고 살펴보니 마시기엔 조금 불안해 포기하고 사진에 담고 뒤돌아 나와 주차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약수터를 나와 우측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충의사와 가호서원 옛터라는 안내판이 서 있고 충의사에 대한 설명서가 보인다.

충의사(忠毅祠)는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길 59-2에 있는 충의공 정문부(鄭文孚) 장군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정문부는 1588년 과거 시험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으며 임진왜란 때는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함경도를 침공한 일본군을 물리치고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정문부는 1593년의 백탑교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러 관북지방을 수복하는데 크게 기여했고 왜란 종료 후에 여러 벼슬을 거쳤으나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억울한 죽음을 당했으며 후에 무죄로 판명되어 좌찬성(左贊成)의 직위가 내려졌다.

사당 건물은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맞배지붕 단층 목조기와 집이며 이곳에는 의복, 교지, 환도 등 장군의 유품이 보존되어 있으며 경내에는 정문부 장군의 유물전시관, 갑판각, 가호서원(佳湖書院)이 있다.

남강댐 공사로 인해 1995년 진주시 귀곡동 255번지에서 현재의 장소로 옮겨 지은 충의사는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1호로 지정되었다.
가호서원은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길 59-2 에 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정문부(鄭文孚)를 모시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당초 함북(咸北)에 있는 네 개의 사우에 향사하였다가 1970년에 진주 향교 사람들의 공의와 선생 후손들의 협찬에 의해 현 위치에 사우를 건립하였으며 그 후에 서원 내에 정문부장군유물전시관도 건립되었다.

 

충의사와 가호서원 옛터를 지나니 안내판과 사각정자 및 진양호생태탐방로 이용안내판이 나타나고 곧이어 그림같은 대나무 터널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도로 양쪽을 뒤덮고 있는 대나무 터널을 통해 언덕을 넘어 다시 평이하게 내려가니 다시 도로 좌측으로 대나무 군락지가 펼쳐지고 곧이어 큰마을과 큰샘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만나고 방금 전 걸었던 도로를 따라 분딧골과 뒷들고개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아름다운 대나무 터널을 다시 사진에 담아 본다.

 

그 갈림삼거리 지나 대나무 터널을 통과하니 할머니 한분이 짐을 끌고 이 산객이 걸어가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어 왜 그쪽으로 가는지 물어 보니 집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타기 위해 간다는 소식에 배가 운행되고 있고 곧 도착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오후 2시 40여분이 지나는 시간으로 도로 우측으로 해주정씨 까꼬실 입향조 징질와 정유기 묘지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다시 선착장이 보이는데 아주머니 한분이 배를 기다리고 살펴보니 저 멀리 귀곡호 배가 들어 오는데 시간이 오후 2시 55분을 지나고 있다.

잠시 기다리니 그 배가 선착장에 잠시 머물고 기다리던 아주머니는 자주 타 봤는지 능숙하게 배에 올라 배를 타고 금새 좌측으로 사라진다.

진양호에 배가 운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조금 더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었는데 아쉬움이 깊게 남는 시간으로 아직도 까꼬실 일면 산현 주차장까지 가려면 족히 한시간 이상 걸릴 듯 하다.

 

선착장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대나무 군락지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톳재비고개로 올라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 지나 곧이어 도로 좌측으로 가곡탐조대와 가곡정이 보이는 나무데크에 도착을 한다.

그 가곡탐조대로 올라가 보니 바로 앞으로 다시 아름다운 진양호가 내려다 보이고 사진 몇장 남기고 휴식을 취하며 물 한모금 더 마시고 뒤돌아 나오니 도로 옆으로 많은 안내판과 설명판들이 보여 잠시 읽어 보고 사진에 담아 본다.

천하지낙양 까꼬실을 읽어 보니 백두대간이 두류로 뻗어 내려 황학으로 멎은 자락 경호와 덕천이 만나 남강으로 흐르고 비옥한 삼각주 퇴적지를 만드니 황학의 정상은 학의 머리가 되고 석정지와 꽃동실이 좌우 날개가 되니 다섯 마을 봉황이 알을 품어 안은 길지라 배산양수의 천하지낙양 걸출한 인물이 대를 이어 태어나고 소출이 풍성하여 재물이 풍부한 곳이더라 적혀 있다.

 

한쪽에는 까꼬실(귀곡동) 유래와 까꼬실의 특징이 설명되어 있는데 까꼬실(귀곡동) 지명의 유래를 보면 까꼬실은 가슴에 묻은 진주인의 본향으로 본향은 본디 살던 고향을 말한다.

지금은 물속에 잠겨버려 일부만 남은 기억과 마음속의 고향 섬 아닌 섬이 된 마을 생각하면 그립고 아련한 그래서 더 아쉽고 애잔한 그곳 진양호에 수몰된 마음의 고향 진주인의 본향 까꼬실이다.

까꼬실은 1970년대 남강댐 건설과 숭상공사로 대부분 물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는데 본향이라고 한 것은 4세기 동안 진주인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고향을 가슴에 묻어야 했기 때문이다.

조선 태종때에 진주목 서면 가귀곡리로 까꼬실 최초의 지명이 기록으로 표기되어 있다.

임진왜란시에 진주목 관아의 피난처였고 영조떼 해동지도에는 처음으로 가이곡리로 지명이 나타나며 그 후 가이곡리, 가이곡면, 가귀곡면, 귀곡리가 되었고 1973년 귀곡동이 되었다. 까막고개를 몇개를 넘어야 마을이 나온다하여 까꼬실이라 불리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람들의 고향이지만 이제는 이상향 혹은 동경의 대상이 돼 버렸다.

사람들은 그 시절을 잊지 못해 동산이 보이는 곳 진양호 언저리에 망향비를 세우고 명절 때나 혹은 수시로 찾아 와 고향을 그리워한다.

내 어릴적 놀던 내 고향보다 더 그리운 곳 세상에 없도다. 꼬까실에 황학산과 분토봉 및 꽃동실이 있다.

그곳 가곡탐조대에서 까꼬실 일명 산현 주차장까지 어떻게 갈 것이지 잠시 고민을 해 보는데 하나의 방법은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더 걸어 가 갈마봉 지나 내려가는 방법이 있는데 무더위에 체력 소모도 심하고 산행 시간도 길어 포기하고 항골로 올라 능선을 넘고 까꼬실 주차장으로 가는 방법은 미지의 등로이기에 이 여름철 잡목이라도 심하면 언제 내려갈지 기약이 없어 고민하다 방금 전 지나 온 톳재비고개로 올라 황학산을 거쳐 내려가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진행하기로 한다.

왔던 도로를 타고 뒤돌아 가 도로 좌측의 톳재비고개로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가파르게 오르니 금새 톳재비고개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좌측 등로를 타고 황학산으로 향한다.

 

톳재비고개에서 좌측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편백나무 군락지를 지나고 점점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빠르게 진행하니 다시 온몸에서 흘러 내리는 굵은 땀방울이 등로를 적실 정도로 쉴새없이 떨어진다.

잠시 후 기계톱으로 작업하는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하고 쉼 없이 빠르게 걸어 오르니 많은 작업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226봉에 도착을 해 남아 있는 띠지를 확인하고 까꼬실 가는 등산로도 다시 한번 더 확인한 다음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황학산으로 오르니 그 사이 작업자들이 등로 주위의 잡목들을 베어 잘려진 나뭇가지들이 등로에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도 남아 있는 체력을 모두 끌어 올려 빠르게 걸어 오르니 드디어 황학산 정상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하장 더 남기고 곧바로 꼬까실 주차장 방향으로 출발한다.

 

까꼬실 주차장까지 1.1 Km 란 방향과 거리 표기를 확인하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이곳 등로 역시 뚜렷하게 나 있어 진행에는 어려움이 전혀 없다.

잠시 후 커다란 소나무에 진행 방향으로 갈마봉과 새미골이란 이정판이 걸려있고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이곳 역시 방금 전 잡목들을 제거한 후 그 나뭇가지들이 등로에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렇게 한동안 더 진행하니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정표와 사각탁자 및 여러가지 설명판들과 안내판들이 보이는 꼬까실 주차장갈림삼거리로서 직진 등로는 갈마봉으로 가고 주차장은 우측 아래로 갈리는 지점이다.

사진 몇장 남기고 당연히 아쉽지만 직진의 갈마봉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우측의 주차장 방향으로 이어지는 내리막 비포장임도를 타고 내려가며 진행한다.

 

꼬불꼬불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부드러운 등로가 나타나고 무심으로 걸어가다 보니 작은 건계곡을 건널 수 있는 목계단 지나 등로에 보이기 시작하는 파란 잡풀들이 무성한 지점에서 좌측 위를 보니 좌측으로 231.7미터의 삼각점이 박혀 있는 갈마봉과 우측으로 171.3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저 갈마봉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니 그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고 지도를 확인해 보니 지도에는 아무 표시 없이 231.7미터의 삼각점봉으로만 표기가 되어 있어 왜 갈마봉이 되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다시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임도에는 잡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아침에 봤던 자연과 사람이 하나되는 귀곡동(까꼬실)가는 길이란 안내판 지나 까꼬실 안내도가 서 있고 금새 좌측으로 넓은 까꼬실 주차장에 도착을 해 길고도 힘들었던 웅석지맥 전 구간 산행을 마무리하고 배낭 정리한 다음 애마를 끌고 산행 들머리인 제마재로 이동을 한다.

출발하며 내려 온 방향을 올려다 보니 좌측 뒤로 황학산 정상 우측으로 까꼬실 주차장 갈림삼거리 지나 이곳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아름답게 올려다 보인다.

 

산행 들머리인 제마재에 도착을 해 금곡님 차량을 회수한 다음 인사 나누고 곧바로 귀가길에 오르니 생각보다 막히지 않는 도로를 따라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집에 도착하고 가족들과 소맥에 저녁을 먹으며 또 하루를 마감해 본다.

해발고도가 낮아지고 여름철 기온이 올라 많은 걱정과 고민속에 마지막 구간을 시작했는데 초반부는 고속도로 같은 좋은 등로로 어려움 없이 잘 진행되다 바느고개 지나면서 특유의 지맥 등로로 어려움을 격었고 특히나 기온이 높아지며 어제부터 진행한 산행의 여파로 체력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예상보다는 좋은 조건으로 사시사철 언제 올라도 될 듯한 그런 웅석지맥이었다.

어렵게 황학산에 도착하니 일반 등산객들이 걸어 놓은 띠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잘 정비된 등로로 인해 다시 속도가 났으며 꽃동실과 가호전망대 아래 진양호에서 손을 씻고 다시 뒤돌아 나와 어렵게 톳재비고개와 황학산을 거쳐 까꼬실 주차장에서 전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게 되었는데 이번 마지막 구간은 진양호를 운행하는 귀곡호의 운행 시간을 확인하여 배를 타고 진주로 나갈 수 있으면 최선의 산행 방법이 될 듯 싶었다.

혼자였으면 언제 마무리 될지도 몰랐던 웅석지맥도 남야주 금곡님과 함께 생각보다 편안하게 잘 마무리 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며 다음 주에는 다시 선암지맥과 남아 있는 구암지맥을 마무리하고 그 다음주에 금곡님과의 짧은 산행도 마무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많이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