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경상남도 산청군과 함양군의 웅석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1년 06월 01일 (화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아침까지 흐렸고 늦은 오전부터 맑고 약간의 바람이 불었으나 무더웠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13도에서 영상 29도
산행인원 : 남양주 금곡님과 칠갑산 (총2명)
산행코스 : 지리산 중산리탐방안내소 주차장-지리산 중산리 탐방지원센터-중산리 야영장 이정표(로타리대피소 3.1 Km와
법계사 3.2 Km 및 장터목대피소 5.1 Km 그리고 천왕봉 5.2 Km, 순두류 3.0 Km, 시외버스정류장 1.9 Km)-통천길-
이정표(로타리대피소 2.6 Km와 법계사 2.7 Km 및 장터목대피소 4.5 Km, 중산리 0.7 Km)-칼바위(해발 800m)-
장터목대피소 갈림삼거리 이정표(로타리대피소 2.0 Km와 법계사 2.1 Km 및 천왕봉 4.1 Km, 장터목대피소 4.0 Km,
중산리 1.3 Km)-망바위(해발 1177m) 이정표(법계사 1.0 Km와 천왕봉 3.0 Km, 중산리탐방안내소 2.4 Km)-돌 헬기장-
로타리대피소 이정표(천왕봉 2.1 Km, 식수장 30 m, 순두류 2.7 Km와 중산리탐방안내소 5.7 Km, 칼바위 2.0 Km와
중산리 탐방안내소 3.3 Km)-지리산법계사 이정표(천왕봉 2.0 Km, 중산리 3.4 Km, 법계사)-전망바위-심장안전쉼터-
개선문(해발 1700 m) 이정표(천왕봉 0.8 Km, 법계사 1.2 Km와 중산리 4.6 Km)-입석 이정표(천왕봉 0.6 Km,
법계사 1.4 Km와 중산리 4.8 Km)-철쭉등로-나무계단-심장안전쉼터-천왕샘 이정표(천왕봉 0.3 Km, 법계사 1.7 Km와
중산리탐방안내소 5.1 Km)-철계단-이정표(장터목대피소 1.7 Km, 대원사 11.7 Km, 법계사 2.0 Km와 로타리
대피소 2.1 Km 및 중산리 5.4 Km)-안전철봉과 로프-지리산 천왕봉(1915.4봉, 정상석)-이정표(치밭목대피소 4.0 Km와
대원사 11.7 Km, 장터목대피소 1.7 Km, 로타리대피소 2.1 Km와 중산리 5.4 Km)-안전목책과 로프-무명안부-
중봉(해발 1874.6봉) 이정표(치밭목대피소 3.1 Km와 대원사 10.8 Km, 천왕봉 0.9 Km)-대원사 갈림삼거리(출입통제
목책)-무명안부-바위암릉-무명안부-헬기장-철쭉꽃 안부-하봉(1754.7봉)-바위암봉 우회-영랑대 갈림삼거리-암벽
로프등로-공터봉(밑등)-무명묘지-국골오거리 안부-두류봉(1617.4봉)-국골사거리 안부(영룡봉 1478.6봉 갈림삼거리)-
산죽지대(산죽꽃)-청이당과 약수터 갈림삼거리 안부-산죽등로-1260.8봉(금곡님 띠지)-윗새재 갈림삼거리-바위암릉-
산죽등로-1276.2봉(금곡님 띠지)-산청독바위 갈림삼거리-바위암벽 로프-산청독바위 정상-갈림삼거리 복귀-바위암릉
로프-쑥밭재 안부-1263.8 잡목무명봉-1322.3봉(새봉, 금곡님 띠지)-마당바위(새봉바위) 조망-바위로프-1234.4
무명봉-바위암봉 우회-폐 헬기장터-산죽터널-전망바위-산죽터널-잣나무 군락지-새재갈림삼거리 안부-969.5
삼각점봉(산청438 삼각점)-923.9봉(금곡님 띠지)-외고개 안부-858.7봉 우회등로-낙엽등로-산죽등로-조망처-왕등습지
출입금지 목책-왕등재습지 안내판-나무데크-왕등재 습지-안전목책과 로프-왕등재-식흔-1048.6봉(서왕등봉)-
산죽지대-사초안부-983.8봉(금곡님 띠지)-전망바위-993.6 공터봉(금곡님 띠지, 조망)-바위암봉 우회등로-산죽지대-
903.4봉-912.3봉-903.9봉-무명안부-889.8 무명공터봉-936.5봉(동왕등봉, 산청311 삼각점, 조망)-무명안부-729.1봉-
무명안부(출입금지판)-무명안부-848.5봉-무명안부-908.8봉(헬기장, 조망)-널부러진 간벌목-출입금지 경고판-
반달가슴곰 경고 플랭카드-밤머리재(59번 친환경로 2차선 포장도로, 간이매점)-산행종료
산행거리 : 24.46 Km (지리산 중산리탐방안내소 주차장에서 밤머리재까지)
지맥산행 : 19.06 Km 지리산 천왕봉에서 밤머리재까지
접속구간 : 05.40 Km 지리산 중산리탐방안내소 주차장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산행트랙 :
산행시간 : 13시간 58분 (03시 29분부터 17시 28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0시 10분 밤머리재 넓은 공터에 도착 해 약 2시간 동안 차박
02시 30분 밤머리재에서 남양주 금곡님과 만나 애마 주차 후 금곡님 차량으로 중산리 주차장으로 이동
03시 29분 지리산 중산리탐방안내소 주차장에 도착 해 산행 준비 후 곧바로 산행 시작
올때 - 17시 28분 밤머리재에서 산행 종료 후 배낭 정리해 애마를 끌고 중산리 탐방안내소 주차장으로 이동
18시 10분 다음날 성수지맥 마지막 구간 산행을 위해 남원시 수모텔로 출발
19시 30분 수모텔에 도착해 샤워 후 환복 (35,000.- x 2 = 70,000.-)
20시 20분 수모텔 근처의 흑돈연가에서 삼겹살에 소맥으로 저녁해결 (38,000.-)
22시 00분 모텔로 복귀해 사진 정리 후 곧바로 취침
웅석지맥이란 ???
지리산 천왕봉(1915봉)에서 북쪽으로 가지를 쳐 중봉(1875봉), 하봉(1755봉), 쑥밭재를 지나 1315미터 봉에서 동진하여 왕등재, 밤머리재를 지나 웅석봉(1099.3봉) 어깨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백운산(515봉)을 일구고 고도를 바짝 낮춰 아미랑재, 제마재를 지나 경남 진주시 귀곡동 진양호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54.5 Km 산줄기로 덕천강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다시 찾은 지리산 천왕봉과 마음의 부담으로 남아 있던 웅석지맥 첫 구간에서 환상의 조망과 풍경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겼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웅석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경상남도 산청군과 함양군 및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와 네이버의 지식백과 그리고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지맥 산행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생활하다 지리산이 그리우면 야간 버스를 타고 계획없이 내려가 천왕봉으로 오르며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곤 하였는데 지맥 산행에 빠지고 나니 즐겁게 만나던 지리산도 이제 마음 먹고 계획을 해야만 만날 수 있으니 그 그리움만 더 커지고 갈증만 늘어나는데 마침 웅석지맥을 위해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2 년 전 죽마고우와 계획없이 올라 장터목에서 하룻밤 유하고 새벽 어둠을 뚫고 올라 환상의 조망과 풍경을 즐겼기에 갈증을 어느정도 해결을 했지만 이번에는 같은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면서 비탐방 등로를 통과해야 하고 또 산행 거리와 난이도가 있기에 걱정속에 평일을 택해 또 다시 지리산 천왕봉으로 향한다.
다만 2개월 가까이 발을 맞춘 남양주 금곡님과 함께 진행을 하기 때문에 고민과 걱정을 했던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진행 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출발하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시간이었다.
아직 산행이 무엇인지 또 왜 지리산을 그렇게 동경하고 오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채 산친구 4명과 함께 15년 전 박 배낭을 메고 2박 3일 동안 화엄사에서 대원사로 종주 산행을 하면서 처음 지리산를 만난 후 그 웅장하고 장쾌한 산줄기에 매료되어 그 다음해 곧바로 백두대간을 시작하며 중산리에서 지리산 천왕봉으로 오르며 아름다운 지리산과의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 이후 마음이 심란해지고 삶이 고달퍼지면 계획없이 지리산에 들어 무작정 걷다보면 마음이 안전되고 다시 활력을 되찾아 올 수 있어 그 이후로는 매년 다녀오는 이 산객의 은신처 같은 곳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으로서 지리산은 신라 5악의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하여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렀고 또 멀리 백두대간이 흘러왔다 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하며 옛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方丈山)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삼신산은 백두산과 한라산을 포함한 3개 산을 말한다.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면 늘 많은 등산객들로 붐벼 정상석에서 사진 한장 남기기 어려웠는데 오늘은 같이 오른 남양주 금곡님과 둘이 전세를 내듯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며 새롭게 진행하는 산줄기와 함께 오랫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가장 먼저 살펴본 곳은 반야봉과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지리산 주능선이었지만 오늘은 웅석지맥이란 이름으로 동부능선을 따라 걸어가야 하기에 북쪽에서 북동쪽을 살펴보니 중봉과 하봉 지나 숨어있는 두류봉에서 우측으로 돌아 새봉과 왕등재가 보이는데 그 우측으로 돌아 내려가닌 도토리봉과 밤머리재로 이어지는 능선은 사진에 잘려 버렸다.
그 새봉과 왕등재 넘어로는 몇 년 전 고운 추억을 만들었던 왕산과 필봉산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 거창의 감악산과 그 뒤로 진양기맥의 월여산과 황매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능선이 박무속에 희미하게 펼쳐져 있다.
북쪽인 하봉 뒷쪽으로는 괘관산에서 이름이 바뀐 대봉산 주위로 용추계곡을 에워싸고 있는 기금거황 줄기가 옛 추억을 들려주고 있다.
이제 눈을 서쪽인 반야봉 방향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주능선을 살펴보니 제석봉과 연하봉 지나 좌측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촛대봉이 군계일학으로 빛나고 그 우측으로 낙남정맥 분기점인 영신봉과 칠선봉 넘어 명선봉과 토끼봉을 지나면 서부능선에서 가장 높은 반야봉이 특이한 모습으로 눈에 들어 오고 그 좌측으로 뾰족한 노고단이 고운 추억을 이야기 하는데 그 좌측인 남쪽으로는 불문장등 아래로 왕시리봉이 이 산객을 부르지만 시간이 더 필요하기에 다음을 기약해 본다.
지금까지 20여 차례 저 주능선을 따라 걸으며 다양한 산친구들과 많은 억들을 만들었는데 변화된 산친구들과는 달리 지리산 주능선은 늘 한결같은 모습과 풍경으로 이 산객을 맞이해 주니 다시 그리워질 시간들이 있을 것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많은 시간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15년 만에 중봉을 거쳐 하봉으로 진행을 하는데 이곳부터는 비탐 구간이기에 불편한 마음으로 걸어가는 시간이다.
진행하다 보니 해발고도가 높은데도 지독한 하루살이들의 습격으로 어랴운 산행을 이어가고 그렇게 하봉에 도착을 해 북서쪽을 살펴보니 바로 앞쪽으로 창암산이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 금대산과 백운산이 겹쳐 보이고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가면 연비지맥의 삼봉산이 보인다.
좌측 가장 뒷쪽으로는 바래봉과 덕두산이 길게 우측으로 ㅓㄷ어 있고 그 바로 뒷쪽으로 얼마 전 걸었던 천황지맥의 만행산 천황봉이 뾰족하게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 개동산 지나 장수의 팔공산과 선각산 및 덕태산이 하나의 거대한 산군처럼 보이고 그 우측인 사진 가장 먼 중앙부 우측으로 금남호남정맥의 장안산과 그 바로 우측으로 백두대간의 백운산이 보이는데 그 우측 뒤로 보였던 남덕유산은 사진에 잘려 아쉽다.
하봉을 지나 계속 고도를 낮추며 원시림 같은 등로를 따르니 새봉과 왕등습지 및 서왕등재와 동왕등재를 넘어 오늘 산행의 마지막 헬기장 봉우리로 이뤄진 도토리봉에 도착을 해 서쪽을 살펴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웅석지맥의 대부분이 한눈에 펼쳐지고 그 풍경에 취해 한동안 바라보며 그 이름들을 불러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사진 좌측으로 가장 끝에 가장 높은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이 쌍봉처럼 붙어 있고 우측으로 하봉 지나 두류봉이 보이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뾰족한 새봉에서 동쪽인 앞쪽으로 이어지고 다시 왕등습지까지 북동 방향으로 올라가다 방향을 바꿔 남동 방향으로 길게 이어져 이곳 도토리봉까지 이어지는 마루금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보고 또 바라봐도 질리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평생 보며 살아도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보며 피식 웃어 본 시간이었다.
밤머리재에 조금 일찍 도착해 짧은 차박을 하고 애마를 주차시킨 후 남양주 금곡님의 차량으로 어둠에 쌓여있는 중산리 탐방안내소 주차장에 도착을 하니 예전의 화려했던 영광은 모두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정적만이 흐르고 있어 코로나19로 인해 변한 세상을 몸으로 느껴본다.
백두대간 들머리로 자주 이용했던 중산리이기에 대형버스 주차장까지 와 도로를 타고 걸어 올라왔던 추억이 남아 있는 이곳까지 애마를 이용해 올라오니 또 다른 느낌으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동절기엔 새벽 4시까지 기다렸다 올라갔던 기억이 생생한데 오늘은 안내소를 지키던 직원조차 보이지 않으니 그것 또한 서운하기까지 하다.
오늘이 지나면 종주 산행을 위해 어둠속에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밝은 날에 들려 주위를 살펴보며 조금은 더 여유롭게 천왕봉으로 오르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도 해 보는 시간이다.
잠시 산행 준비를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고 옛 추억도 소환하며 사진에 담고 비어있는 중산리 탐방지원센터 앞에 설치된 차량 통제용 바리게이트를 지나니 좌측으로 지리산국립공원이란 글자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와 사진을 찍고 조금 더 도로를 따라 오르니 탐방안전센터 앞에 중산리야영장이란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 직진 방향으로는 순두류를 통해 법계사로 가는 길이고 좌측이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올라야 할 로타리대피소를 통해 법계사로 올라가는 등로가 갈리는 곳이다.
탐방안전센터를 지나자마자 통턴문이란 글자가 보이는 아치가 보이는데 그곳으로 들자마자 시원한 중산리계곡 물소리가 정적을 깨며 무더위를 식혀주는 듯 하다.
어둠속에 빛나는 통천길 아치을 지나 돌길을 따라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또 다시 이정표가 서 있는데 중산리에서 700미터 올라 온 지점이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도상 칼바위가 있는 지점인데 아무리 찾아 봐도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고 계속 걸어 오르니 잠시 후 등로 옆으로 해발 800미터의 칼바위란 이정목이 서 있고 좌측 어둠속으로 칼의 형상을 닮은 칼바위가 우뚝 솟아 있어 사진에 담고 출발하는데 등로 옆으로 흐르는 중산리 계곡의 물소리가 너무나 청아하게 귓전을 감돌고 있다.
중산리계곡은 경상남도 산청군의 시천면 중산리에 있는 계곡으로 지리산 천왕봉의 주맥에서 발원한 계류가 모여서 중산리계곡을 이루었는데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는 최근거리의 등로로서 일찍이 김종직(金宗直)을 비롯하여 김일손(金馹孫)과 조식(曺植) 및 이륙(李陸)과 같은 유학자들이 중산리를 경유하여 천왕봉에 올랐다.
중산리는 본래 진주군 시천면 관할로서 중산(中山)이라고 했는데 1914년에 동당의 일부를 편입하여 중산리라고 하였으며 유산기에는 중산촌(中山村)이라는 명칭으로도 다수 등장한다.
이동항(李東沆, 1736~1804)의 방장유록(方丈遊錄)에는 중산동(中山洞) 골짜기를 굽어 보니 덕천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길과 벽취령에서 오르는 길이 모두 이곳에서 합쳐진다. (중략) 오대사와 묵방사, 삼장사, 대원사 등이 모두 겹겹의 골짜기 속에 숨어 있었다 라고 기록하였다.
칼바위를 지나 청아하게 들리는 중산리 계곡물을 들으며 굵은 땀방울들을 등로에 뿌리며 조금 더 걸어 오르며 예전에 보이지 않던 심장안전쉼터라는 입간판과 사각탁자들이 보이고 그 한쪽으로는 장터목대피소로 오를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와 탐방로안내판이 보인다.
오래 전 한번 이곳에서 장터목대피소로 올랐던 기억이 있는데 그 이후로는 들릴 기회가 없어 잊고 지냈던 곳이었는데 다시 이정표를 만나니 그때 그 추억이 미소를 짓게 만들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장터목은 지리산에서 노고단과 함께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이는 곳 중 한 곳으로 이곳은 사통팔달로 등산로가 열려있고 천왕봉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어서 지리산 종주를 하는 이들 뿐 아니라 천왕봉 일출을 보고자 하는 이들치고 장터목대피소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지명의 유래는 그 옛날 남쪽의 산청군 시천주민과 북쪽의 함양군 마천주민들이 이곳에서 장을 열고 물물교환을 하던 장소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그 이름에 걸맞게 이곳 장터목은 사시사철 많은 등산객들로 날마다 장터를 방불케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장터목대피소 갈림삼거리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산죽등로 사이로 깔려있는 돌길을 따라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금곡님은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은지 뒷모습도 보여주지 않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다.
이곳 중산리에서 천왕봉으로 오를 땐 늘 무거운 박 배낭을 메고 백두대간 출정식을 겸해 올랐던 기억이 많기에 힘들고 어려웠다는 기억들 뿐이라 마음의 부담이 컸는데 그 잔상들이 남아 있는지 오늘은 배낭 무게도 무겁지 않은데 발걸음이 조금 무겁기만 하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오르니 이정표 아래 해발 1177미터에 망바위라는 글씨가 보이고 좌측으로 밝아오는 여명속에 망바위가 올려다 보인다.
망바위는 중산리에서 법계사를 지나 천왕봉을 오를 때 칼바위 지나 만나는 바위로서 모습이 마치 경계병이 망을 보고 있는 듯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어둠속에 스치듯 지나다 보니 정말 보초병처럼 생겼는지 언제 한번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망바위를 지나니 짙은 어둠이 서서히 물러가고 여명이 밝아오며 주위 사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이제 머리에 찼던 헤드렌턴을 끄고 여유를 찾아 보지만 뒷모습도 보여주지 않고 달아 나 버린 금곡님을 따라 쉼없이 발걸음을 옮겨 본다.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약간씩 조망들이 스쳐지나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사진에 담고 다시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돌계단을 지나 기암괴석들을 살펴보다 보니 돌이 깔려있는 공터인지 헬기장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올라야 할 지리산 천왕봉 방향을 살펴보니 아직도 한참이나 더 가파르게 올라야 하는 거리감이 두 다리의 힘을 빼 놓고 있다.
진행 방향으로 지리산 천왕봉의 암봉들을 살펴보고 그 우측을 보니 울퉁불퉁 써리를 닮아 있는 바위암릉 지나 뾰족하게 솟아 있는 써리봉이 솟아 있어 사진에 담아 본다.
저 써리봉을 타고 국사봉과 구곡산 지나 산청군 외곡마을까지 이어지는 능선을 황금능선이라 하는데 가을이면 그 능선에 자라는 산죽들이 누렇게 변해 황금처럼 보이기 때문에 붙여졌다는데 아직 미답지로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넓은 공터의 헬기장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다 좌측을 보니 지리산 주능선 아래 남쪽으로 펼쳐진 나즈막하게 보이는 산줄기들 사이로 희미하게 중산리 민가들이 내려다 보이는 듯 하다.
다시 이어지는 돌 등로를 따라 등로 주위에 산재되어 있는 바위들을 구경하며 전진하니 좁은 공터에 태양광 발전 집열판이 보이는 곳을 통과해 금새 로타리대피소에 도착을 하는데 숙박하는 등산객들은 없는지 조용하기만 하다.
지리산 천왕봉으로 오르는 최단코스인 중산리에서 법계사를 통해 이어지는 등로 중간에 있는 로타리대피소는 1978년 로타리클럽 회원들이 기금을 모아 만든 대피소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2000년에 환경부에 기부 체납하여 지금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인수 받아 현대식 시설로 고쳐 탐방객들의 안전관리를 하고 있는 시설물로 남아 있다.
로타리대피소에서 잠시 사진을 남기며 쉰 후 다시 이어지는 돌길을 따라 오르니 금새 등로 우측으로 지리산법계사란 일주문이 나타나는데 늘 바쁘게 지리산 천왕봉으로 오르다 보니 제대로 구경 한번 하기 어려운 법계사가 되었는데 오늘도 역시 마음만 법계사로 보내고 발걸음은 천왕봉으로 향한다.
법계사는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지리산 천왕봉(天王峯)에 있는 삼국시대 승려 연기가 창건한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높이 1,400m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로서 544년에 조사(祖師) 연기(緣起)가 창건하였고 1405년에 선사 정심(正心)이 중창한 뒤 수도처로서 널리 알려졌으며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으나 6·25 때 불탄 뒤 워낙 높은 곳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토굴만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최근에 법당이 준공되어 절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법당 왼쪽에 보물 제473호로 지정된 법계사삼층석탑이 있으며 절 뒤에는 암봉(巖峰)과 문창대(文昌臺)가 있다.
법계사 일주문을 지나니 이정표가 서 있고 살펴보니 천왕봉까지 2 Km 남아 있다는 거리가 반가운 시간으로 사진에 담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아직 들리지 못한 문창대가 살짝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해 자료를 찾아 본다.
고운 최치원의 유적지로 잘 알려져 있는 문창대는 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 법계사에 자주 왕래를 하면서 이곳에 올라 멀리 서편에 위치한 향적대의 바위에 과녁을 만들어 놓고 활을 쏘기도 하였으므로 이곳을 처음에는 시궁대(矢弓臺) 또는 고운대(孤雲臺)라고 하였다가 최치원이 사후에 받은 문창후(文昌侯)의 시호(諡號)를 따서 문창대로 개칭을 하였다고 전한다.
지리산 문창대를 세간에 처음 알린 사람은 조선중기 영남사림의 중심인물이었던 진주선비 부사 성여신(浮査 成汝信)으로 그는 1617년 중산리 법계사 코스로 천왕봉을 등정한 후 칠언고시의 형식으로 기록한 유두류산시(遊頭流山詩)를 통하여 법계사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문창대에 관해 한 기록이라 전하고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 온 방향의 문창대를 사진에 담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타고 오르니 다시 눈 앞에 커다란 바위 우측으로 안전철봉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전망바위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통과한 망바위 우측으로 솟아 있는 문창대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고 그 뒤로 황금능선 하단부의 구곡산과 우측 뒤로 특이하게 뾰족 솟아 있는 주산이 박무속에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방금 전 이 산객이 걸어 올라 온 중산리 법계사 등로와 망바위 및 문창대 서쪽인 우측을 살펴보니 주산 우측 옆으로 나즈막하게 이어지는 낙남정맥 마루금이 살짝 보이고 그 우측 앞으로 거림계곡 지나 외삼신봉에서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 마루금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 낙남정맥 마루금 뒷편으로는 시루봉에서 깃대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또한 매력적으로 드러나 있는데 지리산에 오르면서 느끼는 것은 언제 이 모든 산들을 올라 만나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죽기 전에 한번씩은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질문들이다.
그 안전철봉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전망바위를 지나니 여전히 돌로 뒤덮힌 등로에 등산로 안내판이 보이고 그 화살펴 방향으로 커다란 너럭바위도 통과하니 예전에 보지 못했던 심폐소생술 순서판과 비상구급약통 그리고 심장안전쉼터라는 입간판들이 서 있고 한쪽에는 넓은 시각나무데크가 설치된 장소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 마시며 살펴보니 갑작스런 심장마비나 예기치 못한 환자가 발생했을 때 이용할 수 있는 구급함과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쉼터들을 새로 설치한 듯 보인다.
잠시 심장안전쉼터 주위를 둘러보며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다시 이어지는 돌계단을 따라 걸어 오르니 드디어 개선문에 도착을 하는데 오늘은 그 많던 등산객 한명 보이지 않고 금곡님과 단 둘이서 여유를 만끽해 보지만 늘 만났던 일출은 이미 시작되어 해가 중천까지 올라 와 있으니 지리산에 올라 일출을 기대하지 못한 시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개선문 앞쪽에 세워진 이정표를 보니 해발고도가 1700미터로서 천왕봉까지는 이제 800미터 거리라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데 그 800미터의 길지 않은 등로가 참으로 어렵고 힘들게 올라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마음의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곳 개선문은 천왕봉 서쪽의 주능선에 있는 통천문과 함께 천왕봉을 오르는 관문으로 여겨지는데 통천문처럼 신비스럽고 위용을 갖춘 모습은 아니지만 마치 개선하는 기분이 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에는 현재 남아 있는 우측 뿐만 아니라 좌측에도 바위기둥이 있었지만 지금은 올라가는 좌측의 기둥은 붕괴되어 없어지고 우측으로만 높이 약 10미터의 문설주가 있다.
일부에서는 통천문이 하늘을 오르는 문 또는 하늘로 통하는 문이라는 의미라는 점을 들어 이곳도 개선문보다는 개천문이 되어 하늘을 여는 문이라는 의미에서 타당해 보인다는 이야기들도 보인다.
개선문을 지나 오르며 천왕봉 방향을 올려다 보니 이곳은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자연의 빛깔이 이제서야 연두빛으로 갈아 입기 시작하고 한두 송이씩 하얀 산철쭉이 눈에 들어 오며 등로에는 하얀 철쭉꽃이 떨어져 꽃길을 만들어 놓고 있다.
이제서야 이곳 지리삼 천왕봉 부근의 높이를 인지하기 시작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식생도 민초들이 살고 있는 낮은 고도의 산들과는 확연이 차이가 나는 식생들을 보이고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이제 제대로 된 산철쭉 꽃 터널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사진에 담으며 여유롭게 진행하니 등로 한쪽으로 이제 천왕봉까지 0.6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 지나 우측 위로 선돌이 나타나고 곧이어 아름다운 산철쭉이 만개한 철쭉터널과 만나 어린아이처럼 이 시간을 즐겨 본다.
선돌을 지나니 이곳이 무릉도원인 듯 예쁜 철쭉이 만개해 등로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기 시작하고 그렇게 산철쭉과 추억을 만들며 천천히 걸어 오르니 생각보다 고사목이 많이 보여 안타까운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늘어나는 느낌이다.
이제 제법 고도감을 느끼기 시작하니 등로 뒷쪽으로 제법 멋진 조망들이 열리기 시작하고 정상에서 보는 풍경과는 또 다른 모습이기에 사진에 담으며 아는 이름들을 불러 보는 시간이다.
등로 좌측인 남서쪽을 살펴보니 우측 위로 평범한 삼신봉 지나 뾰족하게 올라 온 촛대봉 암봉이 군계일학으로 보이고 그 좌측 아래로 또 다른 무명암봉이 눈길을 끌지만 지도를 살펴봐도 이름없는 무명봉이다.
그 좌측으로 남부능선을 따라 삼신봉과 외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 마루금이 시원한데 저 삼신봉은 삼신지맥 산행을 위해 다시 한번 더 올라 만나야 할 인연이 남아 있기에 오늘은 이렇게 사진 한장 남기는 것으로 대신해 본다.
이제 눈을 등로 우측인 동쪽으로 돌리니 방금 전 떠 오른 강렬한 햇살 아래 논 경작에 사용되던 서래를 닮은 써리능선과 써리산 그리고 그 우측으로 흐르는 황금능선이 아름답고 그 바로 뒤로 삼장천과 덕천강 사이로 흐르는 무명 산줄기 하나가 나즈막하게 내려가고 있는데 저렇게 낮아 보여도 해발고도는 1000미터를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으니 지리산이 넓고 높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껴 보는 시간이다.
그 무명 산줄기 뒤로는 다음 구간에 넘어야 할 밤머리재에서 웅석봉 지나 우측으로 달뜨기능선이 환상으로 펼쳐져 있고 사진 좌측 끝자락으로 드높게 솟아 있는 진양기맥의 황매산과 감악산 줄기가 또한 이 산객의 눈길을 잡으며 옛날 추억을 들려주고 있다.
다시 이어지는 계단을 타고 굵은 땀방울을 쉴새없이 흘리다 보니 등로 좌측으로 촛대봉 남쪽으로 흐르는 낙남정맥의 삼신봉과 외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남부능선이 환상을 노래하고 그 뒤 저 멀리 피아골 근처의 황장산과 형제봉 줄기들이 끝없는 산그리메을 이루며 발걸음까지 잡는다.
이제 지리산 천왕봉이 지척으로 올려다 보이고 그 아래 거대한 바위암벽과 고사목들이 보이는 풍경들을 사진에 담고 산철쭉 사이로 길게 설치되어 있는 계단을 따라 심장안전쉼터가 설치되어 있는 곳으로 올라 등로 우측인 동쪽을 살펴보니 다시 황매산과 웅석지맥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곳에서 잠시 배낭 내려 시원한 물 한모금 마시고 남남동쪽을 살펴보니 가운데 뾰족하게 솟아 있는 주산을 중앙부에 두고 좌측으로 황금능선 따라 구곡산이 존재감을 알리고 그 구곡산 뒤로는 하동의 500에서 600미터급의 산들이 너울치듯 이어지고 있다.
주산 우측 뒤로는 우듬지란 이름으로 고생하며 걸었던 하동 금오산이 박무속에 우뚝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 보여야 할 호남정맥의 백운산은 박무속에 그 모습을 감추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남쪽과 남남동쪽을 살펴보고 눈을 남서쪽으로 돌리니 우측부터 지리 주능선인 연하봉과 삼신봉 지나 뾰족하게 솟아 있는 촛대봉 암봉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그 좌측으로 무명암봉 지나 낙남정맥을 이루는 남부능선을 타고 삼신봉이 우뚝 솟아 있다.
그 삼신봉 줄기 뒤 저 멀리로는 드디어 호남정맥의 백운산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그 백운산 정상 우측으로 또아리봉과 도솔봉이 오래 전 만들었던 예쁜 인연들을 소환하기 시작한다.
산행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 그저 매화꽃이 좋고 뾰족한 억불봉을 확인해 보고 싶어 백운산과 억불봉을 돌아가는 환종주를 하면서 황홀경에 빠졌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버러 10여년이란 세월이 훌쩍 넘어 버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광주의 무등산까지 확인을 해 보지만 너무 욕심이 많았나 그곳은 머리카락 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주위 풍경들을 사진에 담으며 알고 있는 이름들을 찾아 불러주고 다시 배낭 둘러메고 천천히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 위로 지리산 천왕봉 아래 거대한 바위암릉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쳐진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그 앞에는 거대한 고사목들이 안타까움을 자아내는데 지구 환경이 변하면서 고산지대에 살아가는 식생들도 기온 변화에 따라 달라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는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예전에 천왕샘이란 이정판이 서 있던 곳에 도착을 하고 좌측 바위 밑을 살펴보니 석간수가 마실만큼 내려오고 있어 오랫만에 지리산 물맛을 보게 되는 행운도 가져 본다.
이곳 천왕샘이 있는 곳의 고도가 해발 1800m로서 남강댐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는데 수량이 워낙 적어 신빙성은 떨어져 보이지만 아무튼 이곳 천왕봉에서 시작된 물이 덕천강을 따라 흘러 남덕유산의 참샘을 발원지로 하는 경호강과 남강댐에서 합류하여 남강을 이루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높이 약 6미터 정도의 바위 밑에서 방울방울 흘러내린 샘물이지만 오늘은 어제 내린 비로인해 수량이 조금 더 많이 보이는데 1977년 덕산 두류산악회에서 석공을 동원해 물이 고일 수 있도록 홈을 파놓았지만 가물 때는 쉽게 말라버리기 일쑤다.
다만 비가 내리지 않고 가뭄이 들거나 햇살이 뜨거우면 흘러 내리는 물의 양이 적어 말라버리기 일쑤이지만 남강의 첫 시발점이란 의미가 있으며 천왕봉에서 제알 가깝게 흐르는 물 맛을 볼 수 있다는 것에서 색다른 경험이 된다.
어제 내린 비로 인해 제법 수량이 되는 천왕샘에서 어렵게 물을 받아 다시 목을 축인 후 완만하게 이어지는 바위 너덜길을 타고 오르니 이곳은 하얀 산철쭉과 함께 분홍빛 진달래가 이제서야 만개한 모습으로 반겨 주는데 민초들이 살고 있는 인간 세상과는 2개월 정도 늦은 계절의 차이가 있어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더 바위 너덜길을 따르니 길게 이어지는 마지막 계단이 눈앞에 펼쳐지고 오르다 보니 2미터 간격으로 대기 안내판이 붙어 있어 코로나19 시대에 등산객들이 몰리는 시간과 계절에는 정상을 찾기도 쉽지 않아 보이는 모습이다.
그렇게 힘들게 계단을 타고 오르니 드디어 지리산 천왕봉 정상 직전에 도착을 하고 우측으로 대원사 가는 방향과 거리를 확인한 다음 좌측 지리산 천왕봉 정상으로 향한다.
죽마고우와 함께 장터목에서 올랐던 2년 전 추억을 떠 올리며 좌측으로 오르니 바위암벽 넘어 드디어 중산리 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한 후 3시간만에 무사히 지리산 천왕봉에 다시 도착을 하고 한가한 정상에서 여유를 부리며 많은 사진들을 마음껏 담아 본다.
늘 많은 등산객들로 인해 정상석에서 인증 한장 남기기 어려웠는데 코로나19 사태와 평일임을 감안해도 오늘은 이 산객에게 지리산 천왕봉을 마음껏 부리라고 준 기회인 듯 싶어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해발고도 1915.4미터의 지리산은 남한 내륙의 최고봉으로 3대가 덕을 쌓아야 천왕봉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속설과 더불어 반드시 관문을 거쳐 올라 오도록 하고 있다.
즉 동쪽으로 개선문(일명 개천문)이 있고 남서쪽으로는 통천문을 두어 이들 관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거쳐 들어오게 하고 있다.
지리산 천왕봉 벙상석에 지금의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시작되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기 전에는 경남인의 기상이 있었고 그전에는 남명의 하늘이 울어도 산은 울리지 않는다는 뜻의 만고천왕봉 천명유불명(萬古天王峰 天鳴猶不鳴)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서산대사는 금강산과 구월산 및 묘향산과 더불어 지리산을 평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장엄한 산이라 했다.
지리산 천왕봉 정상석에서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뒤로 나와 이제부터는 사방팔방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들을 즐기며 알고 있는 산줄기와 봉우리들 이름들을 불러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제일 먼저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북쪽을 살펴보니 바위암봉 지나 바로 지척으로 중봉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좌측 뒤로 하봉이 보이는데 저 중봉은 두어번 오른 기억이 있지만 하봉은 처음인 듯 하다.
그 하봉 좌측 뒤로는 촛대봉 넘어 법화산이 솟아 있는데 그 좌측으로 연비지맥의 삼봉산은 사진으로 잘려 보이지 않는다.
그 법화산 뒤 저 멀리로는 대봉산과 함양의 용추계곡 주위를 감싸고 솟아 있는 기금거황 산줄기들도 보일듯 말듯 다가 와 있다.
중봉 우측으로는 오래 전 고운 추억을 남겼던 산청의 왕산과 필봉산이 뚜렷하고 그 앞으로는 잠시 후 통과하며 만나야 할 웅석지맥의 왕등재 부근이 살짝 드러나 있다.
이제 눈을 북동동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돌리니 방금 전 중산리에서 올라 온 마지막 바위암봉이 바로 눈 앞에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새봉 지나 왕등재에서 오늘 만나야 할 도토리봉 지나 밤머리재로 내려 앉았다 다음 구간에 걸어야 할 사진 정중앙 제일 먼쪽의 웅석봉과 우측으로 달뜨기 능선이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아름답고 그 좌측 위로는 진양기맥의 감악산과 황매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그 옛날 만들었던 고운 추억 보따리를 풀어 놓고 있다.
이제 눈을 동쪽으로 돌리니 사진 좌측 뒤 가장자리로 웅석봉이 자리하고 그 우측 아래로 달뜨기 능선이 길게 이어지며 그 우측 아래 방향으로 웅석지맥과 헤어져 우측으로 돌아가는 수양산과 시무산 및 조례산 능선이 올망졸망 이어지고 있다.
그 앞으로는 이름없는 산줄기 하나가 좌측인 북쪽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어 내리고 그 끝자락으로는 산청군 시천면 마을이 하얀 안개속에 묻혀있는 모습으로 내려다 보이고 그 앞쪽으로는 구곡산도 보인다.
바로 발 아래로는 오늘 새벽에 이 산객이 힘들게 올라 온 중산리와 법계사 코스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 황금능선이 구곡산을 향해 내달리는 모습 역시 환상적으로 펼쳐져 있다.
이제 눈을 남동 방향으로 돌리니 오늘 이 산객이 중산리에서 올라 온 법계사 코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그 산줄기 뒷쪽으로 황금능선 지나 구곡산과 오대주산 그리고 비룡산과 두방산 방향의 산줄기와 봉우리들이 끝없는 산그리메를 만들며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우측 뒤 사진 중앙부로 나즈막하지만 뾰족하게 솟아 있는 주산이 눈길을 잡고 그 주산 우측으로는 낙남정맥 마루금 뒤 저 멀리 우듬지란 이름으로 만나게 되는 하동의 금오산이 흐릿하지만 확실하게 그 존재감을 알려 오고 있다.
이제 눈을 남서 방향으로 돌리니 사진 우측 가장 먼 곳으로 왕시리봉이 솟아 있고 바로 앞으로는 암봉의 촛대봉이 드높게 보인다.
그 촛대봉 좌측인 남쪽으로는 낙남정맥의 삼신산과 좌측으로 외삼신산이 길게 흐르고 그 뒤 하늘금과 맞닿아 있는 곳 제일 좌측 끝으로 억불봉이 솟아 있으며 우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 백운산 그리고 우측으로 도솔봉과 또아리봉이 차례로 펼쳐져 있어 잠시 자세히 살펴본다.
이제 서쪽을 살펴보니 이곳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가장 먼저 알게 된 지리산 주능선과 그 봉우리들로서 가장 많이 걸었고 가장 많은 추억을 남겼던 곳들이기에 이제보니 많은 사연들과 인연들이 만들어 졌던 곳들이기도 하다.
바로 앞 바위 암릉을 지나면 벌목 후 고의로 산불을 내 민둥의 고사목이 된 주목들이 안타깝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제석봉 넘어 장터목대피소가 숨어 있고 그 뒤로 연화봉과 삼신봉 지나 촛대봉이 우뚝하다.
그 촛대봉 넘어 이 산객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세석평전과 세석대피소를 지나면 낙남정맥 분기점이 있는 연신봉과 칠성봉 넘어 덕평봉과 토끼봉 지나 우측의 반야봉이 뚜렷하고 그 좌측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노고단과 반야봉 우측의 견두지맥 분기점인 만복대가 좌우를 호위하듯 날개를 펼치고 있다.
노고단 좌측 아래로는 왕시리봉 능선과 왕시리봉이 여전히 드높은 산줄기를 자랑하며 길게 펼쳐져 있어 한동안 많은 사진으로 남겨본다.
서쪽으로 펼쳐진 지리 주능선을 살펴보고 북서쪽을 살펴보니 바로 앞 우측 아래로 지금은 막혀있어 들어가지 못하는 칠선계곡 좌측으로 백무동에서 올라 오는 소지봉 통해 장터목이나 세석대피소로 올라 오는 능선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한신계곡 넘어 지리산 자연휴양림과 음정마을로 하산할 수 있는 덕천천이 흐르는 용소폭포 계곡을 지나면 뱀사골 계곡 전 별바위등에서 영원사 지나 삼정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산줄기 뒤 저 멀리 투구봉 지나 망바위봉 거쳐 뱀사골 계곡 끝자락인 반선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름답다.
이곳 반선 역시 하얀 안개인지 회색빛 건물인지 모를 빛의 변화가 눈에 들어 온다.
이제 다시 눈을 북쪽으로 돌리니 사진 우측 가장자리를 따라 중봉과 하봉 그리고 두류봉이 차례로 줄지어 늘어서 있고 하봉 좌측 아래로는 뾰족한 암봉인 촛대봉 지나 칠선계곡을 타고 추성리로 가라 앉는 풍경이 보인다.
추성리 뒷쪽인 사진 중앙 제일 좌측으로 창암산이 뾰족하게 솟아 있고 그 뒤로 금대산과 백운산이 보이지만 그 뒤로 솟구친 삼봉산 줄기와 겹쳐 보이며 묻혀 버렸다.
그 삼봉산 우측 앞으로는 법화산이 보이는데 저 삼봉산에서 법화산 앞쪽의 나즈막한 산줄기를 따라 연비지맥이 흐르는데 이곳에서는 잘 분간하기 어렵다.
삼봉산 뒤로는 오봉산과 연비산 지나 백두대간의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연비지맥 마루금이 보일듯 말듯 애간장을 태우고 그 뒤 봉화산에서 월경산 지나 백운ㅅㄴ 방향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은 박무속에서도 그 존재감을 알리고 있어 몇장의 사진에 더 담아 본다.
그렇게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서 사방팔방 막힘없이 펼쳐진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보고 그 이름들을 불러 준 후 금곡님이 삼각점을 찾으러 서쪽 공터로 내려가기에 따라 내려 가 삼각점을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그 정상 벽면 바위에 새겨 진 천주라는 글자만 사진에 담아 본다.
지리산 천왕봉 정상이 마치 거대한 암괴(岩塊)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이곳 서쪽 암벽에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라는 의미의 천주라는 음각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아득한 옛날부터 이곳 지리산 천왕봉에는 지리산 신령을 봉안했던 성모사가 자리해 있었으나 속인들의 끊임없는 욕심으로 자취를 감추고 빈 자리만 덩그렇게 남아 있다.
성모상은 훼손된 채 사라졌다가 다행히 한 스님에 의해 찾아진 후 중산리 천왕사에 모셔져 있으나 제자리로 돌아오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천왕봉의 성모사는 1489년 이곳을 오른 김일손의 속두류록에 의하면 천왕봉 정상에 한 칸 정도의 돌담벽이 있고 담 안의 너와집에 성상이 안치돼 있었다고 전한다.
이 사당은 빨치산에 의해 허물어진 뒤 오늘날까지 노천암대만 남아 처량하게 수십 여 성상을 보내고 있는 처지에 놓여있다.
약간의 박무가 있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에 취하고 또 등산객들이 많지 않아 정상을 독차지하고 즐기다 보니 상당히 오랜시간 머물러 이제는 다시 웅석지맥 산행에 집중을 해 보는 시간이다.
올랐던 바위암릉이 있는 동북 방향으로 가니 연분홍 진달래가 이제서야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하고 눈 맞춤을 해 주고 출발하니 진행 방향으로 치밭목대피소와 대원사 가는 방향의 이정표가 보이고 곧이어 안전목책과 로프 등로가 나타나는데 그곳으로 걸어 내려가며 진행 방향을 보니 중봉과 하봉 그리고 그 산줄기 우측 뒤로 산청의 동의보감촌이 조성되어 있는 왕산과 필봉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앞쪽으로 웅석지맥의 왕등재 줄기가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 왕산과 필봉산 뒷쪽으로는 감악산과 월여산 우측으로 황매산까지 이어지는 진양기맥 산줄기가 하늘금에 맞닿아 있는 모습으로 이 산객의 눈을 즐겁게 만들고 있다.
잠시 더 좌측 사면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열린 철문이 나타나고 그곳에는 개방탐방로와 통제탐방로가 표기되어 있고 경방기간에도 통제를 하고 있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는데 천왕봉에서 치밭목까지도 통제탐방로에 포함되어 있어 게름칙하게 내려간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다 등로 좌측인 북서쪽을 내려다 보니 예약제로 탐방이 가능한 칠선계곡 좌측으로 백무동에서 올라 오는 소지봉 능선이 아름답고 그 뒤로 창암산과 금대봉 및 백운산 넘어 삼봉산이 그리고 그 좌측으로는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산과 덕두봉 능선이 길게 튀어 나와 있고 그 앞 줄기에는 삼정산이 펼쳐져 있다.
그 바래봉 좌측으로 만복대 넘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백두대간 마루금을 찾아 보지만 앞 세걸산에서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산줄기에 막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진행 방향으로 중봉과 하봉 그리고 좌측으로 연비지맥과 저 멀리 백두대간 마루금을 확인하며 걸어 내려가니 안전목책과 커다란 구상나무가 바람의 영향으로 제대로 크지 못하고 나뭇가지와 잎들이 남쪽으로 쓸려있는 모습이 안쓰러운 풍경도 보면서 진행한다.
잠시 후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통과해 다시 중봉으로 오르며 뒤돌아 보니 지리산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바위암릉 사이로 죽어가는 거대한 구상나무들과 주목들이 눈길을 붙잡고 천왕봉 우측 뒤로는 제석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 펼쳐져 있다.
지나 온 지리산 천왕봉과 그 사면에 보이는 바위암릉들 그리고 특이한 식생들과 고사목들을 살펴보고 우측 뒤 저 멀리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지리 주능선도 확인한 후 뚜 렷하게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거대한 바위암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 바위암벽을 좌측으로 돌아 오르니 금새 이정표가 서 있는 1874.6미터의 중봉에 도착을 하고 오래 전 한번 만났던 기억을 되살려 보니 한겨울에 눈이 많이 쌓여이던 시절에 올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중봉에서 배낭 내려 간식과 물 한모금 마시고 제일 먼저 북동쪽을 살펴보니 좌측 가장자리부터 와불산이 숨어 있고 그 앞쪽으로 잠시 후 걸어 만나야 할 새봉으로 이어지는 웅석지맥 마루금이 우측 왕등재로 이어지고 사진 중앙 우측 뒤로 도토리봉으로 이어지는 800에서 900미터급 산줄기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새봉과 왕등재 사이 뒷편으로는 왕산과 필봉산이 솟아 있고 그 좌측 뒤로는 수도산에서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수도지맥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온다.
그 가야산 좌측으로 비계산과 오도산 지나 감악산과 월여산 그리고 우측 중앙 가장 뒷쪽으로 솟아 있는 황매산으로 이어지는 진양기맥 산줄기가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고 있어 몇장의 사진에 더 담으며 상세한 산줄기를 가늠해 본다.
이제 눈을 동쪽으로 돌려 웅석봉을 사진 한가운데에 두고 구도를 잡아보니 좌측 가장자리 제일 뒷쪽으로 여전히 진양기맥의 황매산이 우뚝 솟아 있는데 몇 년 전 홀로 진양기맥 산행을 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내려 와 황매산 철쭉을 즐겼던 추억이 생각나는 시간이다.
바로 앞으로는 오래 전 겨울에 내려 와 걸어 내려갔던 써리봉 능선이 우측으로 급경사를 이루며 길게 이어지고 좌측 안부에 새로 단장한 치밭목대피소 우측으로 무제치기폭포 지나 유평마을과 대원사로 내려갔던 추억이 깃든 곳이기에 자세히 실펴보지만 앞 능선에 막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써리봉과 치밭목대피소 지나 능선 끝자락 넘어로는 왕등재에서 안부로 내려가는 등로 넘어 도토리봉과 웅석봉 지나 달뜨기능선으로 이어지는 웅석지맥 산줄기가 아름답고 그 앞쪽으로 흐르는 나즈막한 산줄기 하나는 삼장천과 덕천강 사이로 솟아 흐르는 무명 산줄기이다.
눈을 다시 우측인 남동쪽으로 돌리니 바로 발 아래로 순두류에서 올라 올 수 있는 마야계곡이 이곳 중봉으로 길게 이어지는 모습이 내려다 보이고 그 마야계곡 좌측으로 써리봉에서 흘러 내린 산줄기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길게 내려가고 그 좌측으로 무제치폭포 동쪽으로 흐르는 삼장천이 길게 남쪽으로 흐르는데 그 삼장천은 내려가며 청정계곡인 장당계곡과 내원계곡을 만들며 이어지고 있다.
그 삼정천 우측 끝자락쪽으로 삼장마을이 하얀 안개속에 파묻혀 있고 그 뒷쪽으로 이방산과 화장산 및 수양산과 시무산으로 이어지는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이 연달아 줄지어 늘어선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그 우측으로는 사진 정중앙 우측으로 구곡산이 어머니품과 같은 넉넉한 모습으로 솟아 있고 그 우측 뒤로는 낮지만 뾰족한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주산과 그 주위를 흐르는 나즈막한 낙남정맥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그렇게 한동안 그 중봉 정상에서 북동쪽에서 서 방향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조망과 풍경들을 감상하고 다시 배낭 둘러메고 출발하며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만나고 내려 온 지리산 천왕봉이 저 멀리 멀어지고 그 우측으로 제석봉과 촛대봉 우측 넘어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 다시 이 산객을 부르지만 언제 오를지기약조차 할 수 없으니 오늘은 그저 손을 흔들어 이별인사를 나누는 것이 전부이다.
이곳 중봉 정상 주위에도 이제서야 하얀 산철쭉이 만개하기 시작하고 나뭇잎들은 초록이 아닌 연두빛으로 변해가며 계절이 한참 뒤늦게 시작되고 있음을 알려 준다.
중봉 정상에서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며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고 출발하며 아쉬움에 다시 한번 더 주위 풍경들을 사진에 담고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평이하게 진행하니 등로는 완만하게 내려가고 곧이어 출입통제 안내판과 목책이 설치된 장소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으로는 치밭목대피소를 거쳐 유평마을과 대원사로 하산할 수 있는 등로가 나 있지만 직진 방향의 웅석지맥 마루금은 사진처럼 굵은 목책으로 가로막고 출입금지 풀랭카드까지 내걸어 잠시 고민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도둑고양이가 되어 출입금지 목책 넘어 산행을 이어간다.
하지만 이곳부터 지독한 하루살이 곤충들이 떼로 몰려 와 습격하는 바람에 두어번 등산복을 벗어 털어내며 힘겹게 걸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우측 유평마을과 대원사로 내려가는 정상 마루금을 확인하고 출입금지 목책을 넘어 조용히 잡목 사이로 나 있는 뚜렷한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는 생각보다 잘 나 있어 지리태극과 종주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들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이 나는 시간이다.
잠시 잡목과 사초가 반겨주는 등로를 따르니 진행 방향 저 멀리 하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바로 눈 앞으로는 커다란 주목 한그루가 바위위에 올라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모습이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다가온다.
어렵고 힘든 세월 잘 견디며 저토록 굵게 자랐으니 앞으로도 천년 이상 자라며 길라잡이가 되어주길 바라며 사진에 담고 통과해 내려간다.
주목을 지나 내려가니 연두빛 산하가 이제서야 봄이 되었음을 알려주고 하얀 산철쭉이 산객의 눈길을 사로잡아 많은 사진으로 남기며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는데 이 높은 고도에서 왜 그리 하루살이 곤충들이 나뭇가지에 내려 앉았다가 산객이 지날때마다 먼지처럼 솟아 나 습격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시간이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다 진행 방향을 보니 하봉을 좌측에 두고 우측 뒤로 새봉 지나 왕등재로 이어지는 웅석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고 그 뒤로 솟아 있는 왕산과 필봉산이 다시 부르는데 언제 다시 저 왕산과 필봉산을 오를 수 있을지 아쉽기만 하다.
그 아래 조성된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머물며 산행도 하고 건강도 챙기며 남사예당촌에 들려 맛있는 음식까지 먹고 올라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진행 방향으로 웅석지맥 마루금과 왕산 및 문필봉을 확인하고 이제는 하봉을 우측에 두고 좌측을 살펴보니 하봉에서 흘러 내린 산줄기에 솟아 있는 암봉인 촛대봉 좌측으로 칠선계곡이 길게 이어지고 그 끝자락의 추성리 두지동골 넘어 924.9미터의 창암산과 그 뒤로 연비지맥의 삼봉산이 법화산 방향의 오도재로 이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반복되지만 조금씩 다른 풍경과 조망들을 사진에 담으며 평이하게 진행하니 하얀 철쭉꽃과 고사목 뒤 저 멀리 바위 암봉이 눈에 들어 오는데 진행하다 보니 저 바위암봉은 좌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하게 된다.
바위 암봉으로 오르기 전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좌측 사면 등로를 따라 방금 전 올려다 봤던 거대한 바위암봉을 우회하며 오르니 바위암봉 사이로 나 있는 소로로 올라서게 되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내려 온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 북쪽 사면의 거대한 바위암릉과 고사목들 그리고 거칠게 살아가는 식생들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 거대 바위암봉을 완전히 통과하니 다시 하얀 산철쭉이 만개한 아름다운 등로가 펼쳐지고 사진에 담으며 연두와 초록이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잡물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무명안부 지나 사방이 틔인 헬기장에 도착을 한다.
지도와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보니 이곳 헬기장 우측 60미터 지점에 샘이 있다는데 오늘은 식수도 충분하기에 내려가 확인하는 것을 포기하고 헬기장 지나 오르니 전형적인 늦봄의 정취가 물씬 묻어난다.
초록이 우거졌던 다른 지맥 등로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과 풍경에 조금은 어리둥절하면서 전진하니 커다란 구상나무 한그루와 많은 철쭉을이 만개한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고 사진 몇장 남기며 잠시 쉬었다 출발한다.
안부를 지나니 연두빛 잎들이 막 돋아난 나뭇가지 사이로 하얀 산철쭉꽃이 활짝 펴 웃어주고 등로 바닥에는 파란 사초가 자라면서 미풍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약간은 원시림 같은 등로를 타고 자연을 즐기며 진행하니 금새 키 작은 관목들과 잡목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1754.7미터의 하봉에 도착을 하는데 하얀 종이코팅지에 이곳이 하봉임을 알리는 이정판 한장이 전부이다.
이곳 역시 하루살이 날파리가 지독하게 달려들고 잠시 피해 있다 코팅지를 배경으로 사진 한장 남기는데 오늘 산행은 제한탐방로라 그런지 제대로 된 정상판이나 띠지 한장 발견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부실하지만 아쉬운대로 종이 코팅지의 하봉 정상판을 배경으로 추억 한장 남기고 남쪽인 중봉 방향을 살펴보니 중봉과 지리산 천왕봉이 바짝 붙어 있어 마치 하나의 봉우리가 솟아 있는 듯 보이고 그 북쪽 사면으로는 두 군데나 산사태 지역이 올려다 보이는데 이 높은 산중에 무슨일로 저런 산사태가 일어 났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우측 산사태가 난 부분 위쪽으로는 천왕봉 지난 제석봉 아래로서 제법 넓게 산사태가 났었음을 알 수 있다.
지나 온 웅석지맥 마루금이 너무 아름다워 지리산 천왕봉에서 중봉 지나 이곳 하봉으로 이어지는 전 구간을 다시 한번 더 사진에 담고 천왕봉 우측 뒤를 살펴보니 제석봉에서 저 멀리 반야봉까지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반야봉을 확인하고 그 우측인 북서 방향을 살펴보니 생각지도 못한 천황지맥의 만행산 천황봉부터 우측으로 팔공산과 선각산 및 덕태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름답게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바로 앞으로 창암산 우측인 사진 중앙으로 금대산과 백운산이 보이고 그 우측 뒤로 연비지맥의 삼봉산이 길게 펼쳐져 있고 사진 좌측 뒤로는 바래봉과 덕두산이 우측으로 길게 빠쟈 나와 있다.
그 덕두산 우측 뒤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만행산 천황봉 우측으로 개동산 그리고 삼정산 뒤 저 멀리 끝자락으로 팔공산과 선각산 지나 덕태산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산줄기가 하늘금과 맞닿은 모습으로 박무속에서도 그 존재ㅔ감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어 몇장의 사진에 더 담아본다.
하봉에서 생각지도 못한 멋진 조망과 풍경을 즐기고 특히 얼마 전 걸었던 장수와 임실의 천황지맥 산줄기들을 확인하고 희열에 찬 기분으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진행 방향으로도 제법 길게 이어지는 바위암릉이 길게 펼쳐진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이제 그 하봉을 내려 와 거대한 바위암릉을 우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하니 또 다시 나타나는 바위암릉 앞 안부에 철쭉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데 앞을 막고 있는 바위암봉이 바로 영랑대이다.
영랑대로 직접 올라가 보려고 하다 포기하고 그 앞 등로인 영랑재에서 갈림삼거리만 확인하고 영랑대를 우측으로 우회하며 진행을 이어간다.
영랑재에서 영랑대를 오르지 못하고 우측으로 돌아가니 영랑대로 오르는 바위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그곳으로 오르니 진행 방향으로 뚜렷한 등로가 나 있는데 좌측으로 영랑대를 들려보고 싶었지만 들어가는 등로가 정확치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사전에 조금 더 확인하고 진행을 했으면 영랑대에 올라 조망과 풍경을 즐겼을텐데 지나고 보니 많은 아쉬움이 남는데 예전에 어느 산친구가 서부 지리보다 동부 지레에 빠지면 한동안 빠져 나오기 힘들다는 전언이 생각나는 시간이다.
영랑대 바위암릉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커다란 활엽수 사이로 잡목들과 철쭉나무들 그리고 등로에는 파란 잡풀들이 보이는데 그 위에 하얀 철쭉꽃이 만개되어 조금씩 피로감을 느끼는 산객을 반겨 준다.
잠시 후 오래 전 쓰러진 고사목 밑둥이 남아 있는 좁은 공터에 도착을 하는데 오룩스에 1682.1봉으로 표기된 봉우리이다.
그곳을 지나니 구상나무들과 하얀 철쭉꽃이 생각보다 잘 조화롭게 등로를 밝히고 사진에 담으며 진행하다 보니 잡목과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무명묘지 한기가 보이는데 어떤 후손이 이 높은 곳에 묘지를 쓰고 또 이렇게 묘지 관리가 되지 않는데 묘지를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지는 시간이다.
무명묘지를 지나 평이한 원시림 같은 잡목 등로를 따르니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평소 지맥 산행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식생들이 눈에 들어 온다.
커다란 주목과 구상나무 사이로 약간의 잡목들 그리고 등로에는 파란 잡풀들이 아름다운 철쭉꽃과 조화되며 이 산객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드는데 초반 지리산 천왕봉으로 오르며 조금 속도를 높혀 무리라 생각했던 체력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느낌이라 조심하며 진행한다.
그렇게 잠시 더 평이하게 걸어 전진하니 국골오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고 좌측 국골 방향으로 등로가 있는지 확인해 보니 잘 보이지는 않는다.
국골은 좌측에 촛대봉 능선과 칠선계곡을 두고 우측으로는 두류능선을 두고 추성리로 내려가는 골짜기를 말하는데 칠선계곡처럼 비탐구간이라 원시림의 계곡미를 그대로 간직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국골오거리 안부를 지나 하얀 철쭉꽃이 화사하게 등로를 밝혀주는 풍경을 사진에 담으며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에 종이코팅지로 1617미터의 두류봉이란 이정표가 붙어 있는 두류봉 정상에 도착을 해 지도를 확인해 보니 실제 높이는 1617.4미터이다.
두류봉(頭流峰, 1617.4봉)은 위치부터 정확하게 정의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이는데 그 정상에서 좌측 추성리 방향으로 흘러 내린 능선을 두류능선으로 불리고 있다.
두류 능선은 인적이 드문 호젓한 오솔길이 매력이고 특히 군데군데 솟아 노송과 멋지게 어우러진 바위 벼랑이 더욱 볼거리이지만 더 큰 매력은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란 점이다.
바위 벼랑을 오를 때마다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는 지리산 북동지역의 장엄한 파노라마는 탄성을 넘어 전율에 가깝다.
두류봉 정상 풍경을 사진에 담고 좌측 바위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 보니 바위 끝에 조망처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지나 온 방향인 하봉을 살펴보니 부드럽게 이어지는 능선이 아름답고 그 하봉 우측 뒤로 지리산 주능선을 따라 반야봉까지 이어지는 등로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반야봉 우측 아래로는 주능선에서 흘러 내린 등로와 계곡들이 모두 보이고 그 끝자락에 바래봉과 덕두산 지나 우측 뒤로 천황지맥의 만행산 천황봉과 개동산 그리고 그 우측으로 팔공산과 선각산 및 덕태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한동안 그곳 두류봉 정상에서 아름다운 조망들을 살펴보고 다시 평이한 잡목 사이로 뚜렷하게 펼쳐진 등로를 따르니 커다란 활엽수가 보이고 안부 형태로 남아 있는 국골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 좌측 암봉과 영용봉을 다녀왔어야 하는데 아무 생각없이 진행하게 돼 나중에야 후회하게 되었다.
국골은 지리산 동북부에 위치한 경남 함양 땅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아직은 때 묻지 않은 신비로움을 간직한 곳으로 지리산 최고로 이름난 칠선계곡(七仙溪谷)과는 초암능선을 가운데에 두고 아주 가까운 이웃이다.
지리산의 수많은 지명 중에서 나라 국(國)자를 쓰는 유일한 곳인 국골은 가락국의 마지막 왕 구형왕이 추성산성을 쌓고 신라의 침공에 대비했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두류능선과 초암능선 사이에 있는 국골은 두어 시간 오르면 좌골과 우골로 갈리는데 좌골은 초암능선 정상인 소년대(1746m)와 국골 사거리 사이로 이어지고 우골은 초암능선의 촛대봉 부근으로 이어진다고 하며 처음 들머리는 비슷해 보이나 좌골이 수량이 많고 절경인 폭포가 7개 정도 되어 대부분의 산행객이 좌골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국골사거리에서 좌측의 암봉과 영용봉을 다녀오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키 작은 산죽 등로에 산죽꽃들이 등로 가득 피었는데 귀하다는 산죽꽃을 볼 수 있어 행운이었다.
꽃이 피어있는 산죽 등로를 지나니 굵은 참나무가 보이는 사초 등로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다시 키 작은 산죽 등로를 만나 편안하게 걸어가니 청이당 갈림삼거리 안부에 도착을 한다.
청이당터는 이곳 청이당고개 바로 우측 아래에 위치하는데 예전 이곳에 청이당이란 당집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졌으며 뒤로는 지리산 동부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앞에는 맑은 청이당 계곡수가 흐르는 등 배산임수의 명당자리이다.
옛 청이당은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에도 등장하는데 이곳을 지나는 선비들과 상인들의 산중 숙박지로서 함양쪽에서 천왕봉을 오를 때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으며 이곳에서 쉬었다가 하봉을 거쳐 천왕봉에 올랐다고 적고 있다.
또한 남쪽의 진주와 덕산장 및 북쪽의 마천장을 오가던 상인들이 이곳에서 하룻밤 묵고 가기도 했으며 그 위에 있는 능선 상 청이당 고개는 덕산과 마천을 최단거리로 이어주는 고개로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지금은 사라진 산중 숙박시설이었던 청이당 터로 내려갈 수 있는 청이당고개 안부를 지나 관목의 참나무들과 잡목들이 보이고 사초가 깔려있는 등로를 따르니 다시 산죽 등로가 나타난다.
해발고도가 낮아지며 등로는 원시림같았던 풍경이 사라지고 평이한 참나무와 잡목들 또는 산죽 등로가 교대로 나타나는 평이한 등로로 바뀌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산죽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도상 1260.8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정판은 물론 선답자들의 띠지 한장 보이지 않아 금곡님이 산행 띠지에 높이를 적은 띠지 한장을 걸어 놓고 사진에 담아 본다.
참나무와 산죽들이 보이는 1260.8봉을 지나니 등로는 여전히 빼곡한 산죽 사이로 관목의 참나무들이 보이는 평이한 마루금으로 이어지는데 산죽 등로는 등산객 한명이 빠듯이 빠져 날 수 있는 등로가 열려있다.
잠시 더 빼곡한 산죽 등로를 따르니 우측으로 윗새재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살펴보니 산죽들로 내리막 등로도 잘 보이지 않는 갈림삼거리이다.
윗새재(조개골산장)는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오봉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하나인 윗새재를 말하는데 윗새재마을은 새재마을의 위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윗새재 갈림삼거리를 지나니 눈 앞으로 거대한 바위암릉이 나타나고 우측으로 돌라 바위 사이로 올라가니 다시 빼곡한 산죽 등로가 앞을 가로막는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산죽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산죽이 빼곡하고 그렇게 봉우리로 오르니 도상 1276.2봉인데 아무 표식도 없을 뿐더러 그 흔하던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한장 보이지 않는다.
금곡님이 산행 띠지에 높이를 적어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사진에 담은 후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산죽 내리막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산죽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주능선 좌측의 사면 등로를 따라 이어지고 잠시 후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 앞 저 멀리 진주독바위 또는 산청 독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올려다 보인다.
이곳 독바위는 항아리 즉 독처럼 생겼다고 붙은 이름이며 옹암(甕巖)이라고 하는데 저 독바위에서 진주가 보인다고 진주독바위 또는 산청 땅에 있어서 산청독바위라 하여 함양독바위와 구분하여 부른다.
진주 독바위 또는 산청 독바위는 웅석지맥 마루금에서 우측으로 약간 벗어나 있지만 일단 올라가 정상을 찍고 내려 오기로 하고 급경사 오르막 등로로 오르니 독바위로 오를 수 있는 낡은 로프가 매달려 있어 조심스럽게 그 독바위 정상으로 오르니 일망무제로 펼쳐진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이 일품인 조망처이자 전망바위이다.
제일 먼저 지나 온 방향인 남쪽을 보니 저 멀리 걸어 내려 온 부드러운 오르막 등로 따라 두류봉이 올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 하봉 지나 써리봉 능선 지나 좌측 ㅡㅌ자락으로 써리봉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중앙부의 두류봉 우측으로는 들리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는 영룡봉이 뾰족하게 솟아 있어 더욱 아쉬움이 크게 밀려오는 시간이었다.
남쪽을 둘러보고 서쪽과 서북쪽을 살펴보니 중앙부에 우뚝 솟아 있는 창암산을 중심으로 좌측에 백무동 버스정류장 옆으로 오공산이 보이고 그 오공산 뒷쪽으로 영원령과 삼정산이 펼쳐져 있다.
창암산 우측으로는 금대산과 백운산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 연비지맥의 삼봉산이 솟아 있으며 그 뒤 끝자락으로 희미하게 전북 장수와 임실쪽 천황지맥의 만행산 천황봉과 우측으로 개동산 지나 팔공산과 선각산 지나 덕태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처음에는 눈을 의심하다 이내 황홀경에 빠져보는 시간이다.
이제 눈을 삼봉산 우측인 북서 방향으로 돌리니 바로 앞 우측 가장자리로 잘려버린 와불산 좌측 중앙부로 법화산이 보이고 그 법화산 좌측으로는 금대봉과 백운산 바로 뒤로 삼봉산이 보인다.
그 삼봉산 뒷쪽으로는 천황지맥의 분기점인 팔공산 뒤로 금남호남정맥 옆으로 솟아 있는 선각산과 덕태산이 보이고 그 우측 옆으로는 장안산과 대봉산 그리고 그 뒷쪽으로 희미하게 남덕유산과 장수덕유인 서봉이 마치 쌍봉처럼 보이고 그 우측 옆으로는 기맥산 군립공원을 이루고 이는 기백산과 금원산 및 거망산과 황석산이 하나의 산군처럼 솟아 있는 모습이 환상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진행 방향인 북동쪽을 살펴보니 독바위를 내려가 부드럽게 걸어 올라야 할 새봉이 바로 눈 앞으로 다가 와 있고 그 마루금 좌측 뒤로 와불산이 보이고 그 와불산 뒤 저 멀리로는 장수덕유와 남덕유산 우측으로 기백산 군립공원의 기백산과 금원산 및 거망산과 황석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있다.
그 새봉 우측 뒤 저 멀리로는 진양기맥의 월여산과 황매산이 잠시 올굴을 내밀고 있다.
이제 눈길을 동쪽으로 돌리니 새봉 넘어 왕등재와 도토리봉으로 이어지는 오늘 이 산객이 걸어 넘어야 할 웅석지맥 마루금이 우측으로 길게 이어지고 그 도토리봉 뒷쪽으로 숨어 있는 밤머리재 지나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웅석봉과 그 우측으로 달뜨기능선이 길게 펼쳐져 있고 좌측 뒤 저 멀리로는 진양기맥의 황매산 우측 아래로 감악산 줄기가 길게 펼쳐져 있다.
우측 아래로는 덕천강 따라 유평리 새재로 이어지는 계곡이 길게 이어지는데 그 우측으로 보여야 할 조개골은 사진에는 잘려 나왔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눈을 남동쪽으로 돌리니 조개골 뒤로 웅석지맥의 달뜨기능선이 보이고 그 우측 아래로 웅석지맥 마지막 산줄기가 진양호로 가라 앉는 방향이지만 그 앞에 솟아 있는 능선들에 막혀 보이지는 않는다.
사진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는 써리봉과 치밭목대피소 끝자락에 솟아 있는 비둘기봉이 살짝 보이고 그 좌측 아래로는 구곡산 뒤로 웅석지맥 사이로 덕원자연휴양림 근처의 수양산과 두방산 같은 나즈막한 산즐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진주 또는 산청 독바위 정상에서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내려가다 남동 방향을 살펴보니 좌측의 조개골과 이곳 작은조개골을 통해 흐르는 덕천강 지나 저 멀리 새재로 이어지고 그 유평리 넘어 좌측 뒤로 오늘 걸어 넘어야 할 마지막 봉우리인 도토리봉 뒤로 웅석봉과 그 우측으로 달뜨기능선이 길게 펼쳐져 있고 조개골 우측 옆으로는 치밭목대피소와 무제치폭포에서 흘러 내려 온 무명의 산줄기가 아름답게 올려다 보인다.
조개골의 지명유래는 그 골짜기 입구에 6.25이전까지 조계사란 절이 있어 조계골로 불리다가 조개골로 음운변화되었다는 설과 옛날 바다였다가 지각변동으로 해면이 융기되어 조개화석이 발견되어 불리게 되었다는 설 및 지리산에서 아침이 가장 먼저 열리는 골짜기여서 조개골로 불린다는 설 등이 있다.
산청독바위 바로 앞에 보이는 또 다른 바위 위에는 갈리진 틈에서 키 작은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빗물만 받아 자라기 때문에 몸집은 작아도 세월은 무척 오래된 듯 보이는 분재형 소나무 한그루가 자꾸만 눈길을 잡는다.
이제 로프를 타고 산청 독바위를 내려 와 산죽 밭을 헤치고 나와 평이한 등로를 따라 전진하니 바위암릉에 설치된 로프지대가 보이고 잠시 후 ㅗ 다른 바위암봉을 우회해 통과하니 좌우측 등로가 희미하게 보이는 도상 쑥밭재에 도착을 해 몇장의 사진을 남겨본다.
쑥밭재는 경상남도 산청군의 삼장면 유평리에 있는 고개로서 지리산 천왕봉에서 북쪽으로 중봉과 하봉을 거쳐 쑥밭재에 이르며 쑥밭재를 경계로 동남쪽으로는 덕천강 상류와 북서쪽으로는 칠선계곡의 물줄기로 나뉜다.
쑥밭재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산청의 덕산에서 대원사를 거쳐 지리산 천왕봉으로 오르는 지리산 유람 코스의 길목에 있었고 예전에는 애전령(艾田嶺)이라고 일컬었는데 이 한자 지명이 한글로 변화한 것이다.
1877년에 박치복(朴致馥, 1824~1894)는 계곡을 따라 절벽을 붙잡고 올라 애전령(艾田嶺)에 이르렀다 라고 남유기행(南遊記行)에 기록하였다.
또는 초령(草嶺)이라는 명칭도 나타나는데 1610년에 박여량(朴汝樑, 1554~1611)은 천왕봉을 유람하고 하산하는데 초령(草嶺)을 넘었으며 초령은 함양과 산음으로 나뉘는 두 갈래 길의 분기점이었다 라고 두류산일록(頭流山日錄)에 기록하고 있으니 초령은 지금의 쑥밭재를 가리킨다.
쑥밭재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관목의 참나무 가운데 잡목들이 보이는 1263.8 잡목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약간의 바위암릉 지대를 통과한 후 바위에 새봉 가는 화살펴 표시가 되어 있는 장소에 도착을 한다.
웅석지맥 마루금은 우측으로 휘어지며 이어지지만 직진의 가까운 거리에 1322.3미터의 새봉이 있기에 잠시 들려 사진과 추억을 담아 보기로 한다.
새봉 정상으로 오르니 잡목속에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조망이 열리는 북쪽을 살펴보니 바로 눈 앞으로 너무나 아름답고 부드럽게 펼쳐진 1213.9미터의 와불산이 눈길을 사로잡고 그 뒤로 법화산과 그 앞으로 연비지맥이 흐르지만 연비지맥은 워낙 낮게 지나고 있어 인지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 뒤로 함양군 휴천면 마을 지나 괘관산에서 이름이 변경된 대봉산과 용추 계곡을 감싸고 있는 기백산 군립공원의 4개산인 기백 금원 거망 황석산 넘어 쌍봉으로 보이는 장수적유(서봉)와 남덕유산 우측으로 덕유산 향적봉이 아련한 추억처럼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제 와불산 좌측인 북서 방향을 살펴보니 사진 우측 가장자리로 와불산을 두고 그 뒤로 법화산과 그 좌측 뒤로 오도재와 삼봉산으로 이어지는 연비지맥이 보이고 그 삼봉산 좌측으로는 금대산과 백운산 그리고 그 사이로 또 다른 삼봉산이 솟아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다만 삼봉산 뒤로 보여야 할 오봉산과 연비산은 앞 삼봉산의 높이에 가려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지만 그 가장 먼곳 좌측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천황지맥의 만행산 천황봉이 보이고 개동산은 삼봉산 자락에 가려 보일듯 말듯 애간장을 태운다.
그 우측으로 천황지맥 분기점이 있는 팔공산 우측으로 산각산과 덕태산이 마치 하나의 산처럼 붙어 있는 모습이 아련하게 눈에 들어 와 한동안 탄성을 지르며 사진에 담아 본다.
그 우측으로는 장안산과 대봉산 그리고 용추계곡을 감싸고 있는 기금거황의 4개 산군들이 마치 거대한 하나의 산처럼 솟아 있어 환상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조망을 즐기고 나오니 금곡님이 산행 띠지에 높이 표기를 한 띠지 한장을 정상에 걸어 놔 증명사진처럼 담고 조금 더 걸어가니 다시 전망바위가 나타나 그곳으로 올라 가 이제 남쪽과 남남서쪽 방향을 살펴보니 이 산객이 걸어 내려 온 부드러운 등로 앞으로 산청 독바위가 보이는데 소나무에 가려있고 그 뒤 저 멀리 뾰족하게 솟아 있는 두류봉 우측으로 들리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 영룡봉이 좌측 뒤 뾰족하게 솟아 있는 하봉 지나 써래능선이 톱날처럼 펼쳐지고 그 좌측 가장 바깥쪽으로 비둘기봉이 솟아 있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전망바위에서 지나 온 마루금 방향으로 두류봉과 하봉을 살펴본 후 다시 이어지는 부드러운 사초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바위암릉 사이로 얇은 로프가 걸려있는 오르막 등로로 올라 부드러운 흙길로 이어간다.
그곳에서 진행 방향으로 약간의 조망이 열리고 살펴보니 동쪽으로 지금부터 걸어야 할 1234.4 무명봉 우측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웅석지맥 마루금이 다시 좌측 뒤 왕등재로 이어지고 우측 뒤로 또 다른 왕등재 넘어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웅석봉이 빤히 보이기 시작한다.
왕등재와 웅석봉 사이 좌측으로는 오늘 마지막으로 올랐다 날머리인 밤머리재로 내려가야 할 도토리봉이 둔철봉 앞으로 보이고 정수지맥의 둔철산 좌측으로는 정수산도 가깝게 다가와 있는데 그 정수산 좌측 위로는 감악산과 황매산으로 이어지는 진양기맥 마루금이 보인다.
너무 아름답고 환상적인 조망과 풍경에 취해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그 전망바위를 내려 와 다시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바위암벽으로 오르니 지독한 산죽등로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지독하게 빼곡한 산죽 등로를 따라 한동안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굵은 참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사초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방금 전 전망바위에서 봤던 뾰족한 1234.4 무명봉에 도착을 하니 굵은 참나무 아래 사초가 깔려있는 아름다운 등로이다.
굵은 참나무와 약간의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부드러운 사초가 있는 무명봉을 지나니 다시 바위암릉이 나타나고 좌측으로 우회하며 사면치기 하듯 통과하니 이제 등로는 평이한 잡목 등로가 길게 이어진다.
다시 나타나는 바위암릉을 우회하니 사초 등로가 이어지고 부드러운 사초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보도블럭들이 널부러져 있고 관목의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폐 헬기장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겨 본다.
그 폐 헬기장을 지나니 다시 산죽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이 산객을 완전히 뒤덮을 만큼 큰 키의 산죽터널이 길게 이어진다.
그래도 그 산죽터널을 통과하니 키 작은 산죽등로가 계속 이어지고 조금 더 전진하니 등로 옆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올라가 보니 등로 우측 옆으로 덕천강이 흘러 유평리를 통해 대원사로 내려가는 새재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그 덕천강 줄기를 ㅏ라 길게 이어지는 골짜기 좌측으로는 웅석지맥 마루금이 우측으로는 비둘기봉 지나 무명 산줄기가 함께 내려가고 저 멀리로는 다음 구간에 올라 걸어야 할 웅석봉과 달뜨기 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웅석봉과 달뜨기능선 그리고 유평리 대원사계곡 방향을 살펴보고 눈을 북동 방향으로 돌리니 잠시 후 걸어 만나야 할 웅석지맥의 왕등재 능선 좌측 뒤로 왕산과 필봉산이 아주 가깝게 다가 와 있고 그 바로 좌측인 북쪽과 북북동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우측 중앙부로 왕산을 두고 그 좌측 아래로 오봉천이 흐르는 오봉계곡 따라 산청군 금서와 휴천마을들이 펼쳐져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그 좌측 뒤로는 대봉산 뒤로 여전히 남덕유산과 서봉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함양의 기백산 군립공원을 이루고 있는 용추계곡을 감싼 기금거황 4개 산들이 보인다.
조망을 즐기고 다시 등로를 따라 진행을 이어가니 지독한 산죽터널이 길게 이어진다.
키가 이 산객보다 훨씬 커 허리를 숙이고 손으로는 키 큰 산죽들을 헤치며 힘겹게 걸어 전진하니 둔덕봉 넘어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로 진행된다.
얼굴에 상처가 나지 않토록 조심하며 전진하다 보니 생각보다 속도가 나질 않아 거리에 비해 시간은 상당히 소요되는 느낌이다.
지독한 산죽터널을 통과하니 오늘 처음 보는 잣나무 등로가 짧게 펼쳐지고 산죽 등로 위로 보이는 잣나무 군락지를 따라 내려가니 우측으로 내려갈 수 있는 뚜렷한 등로가 보이는 새재 갈림삼거리 안부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긴다.
새재는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에 있는 최상단 자연마을로서 우평계곡의 최상단에 있는 마을이고 윗새재와 아랫새재로 나누는데 윗새재(조개골산장)는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오봉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하나인 윗새재를 말하는데 윗새재마을은 새재마을의 위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새재갈림삼거리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관목의 참나무 아래 파란 사초가 깔려있어 진행에는 전혀 어려움 없이 이어진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산청438이란 삼각점만 박혀있고 다른 이정판이나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한장 보이지 않는 969.5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금곡님이 높이와 삼각점 표시가 되어 있는 띠지 하나를 걸어 놓는다.
금곡님이 걸어 놓은 산행 띠지와 삼각점을 배경으로 사진 몇장 더 남기고 다시 진행을 이어간다.
삼각점봉을 지나 거의 평지 같은 철쭉 등로를 타고 느긋하게 걸어가니 능선 그늘에선 약간의 바람이 불며 상쾌한 기분으로 진행하지만 오르막 등로에선 바람 한점 없이 기온이 오르며 생각보다 더위로 인한 어려움이 느껴지는 산행이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도상 923.9봉에 도착을 하지만 이곳 역시 통제탐방로라 그런지 이정판은 물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한장 보이지 않아 금곡님이 걸어 놓은 높이가 표시된 띠지로 증명사진 한장 더 남기고 산행을 이어간다.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 상 923.9봉을 지나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관목의 잡목들과 잡풀들이 조금 자라고 있는 아주 평이한 등로로 이어진다.
잠시 후 자작나무가 보이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외고개란 이름의 안부로서 자료를 찾아보니 외고개는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밤밭골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며 외고개 밑이 된다 하여 외고개라 한다.
오봉리와 삼장면 유평리 외곡마을을 이어주는 외고개는 지난날 삼장이나 덕산에서 함양이나 산청으로 넘어가거나 혹은 그 반대일 경우에 주로 동부능선의 다섯 고개를 이용했다고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외고개였다.
그 다섯고개는 쑥밭재와 새재, 외고개, 왕등재, 밤머리재가 그것으로 그 중 밤머리재만 도로가 뚫려 웅석봉 산행의 들머리 역활을 하고 있다.
또한 외고개 아래 외곡마을 일대는 국가적인 사업으로 지난 65년부터 70년까지 5년 동안 면양 시범목장으로 조성되었던 곳으로 한국 최고로 면양사육의 적지로 본 것인데 교통이 불편한 이유로 면양목장은 남원군 운봉면의 운봉고원인 바래봉 일대로 옮겨간 것이라고 한다.
현재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지 등로 좌우측으로 뚜렷한 등로는 보이지 않는 묵은 등로가 있는 고개로 변한 듯 보인다.
자작나무와 묵은 등로가 보이는 외고개를 지나 평이하게 진행하니 등로는 좌측 봉우리 방향이 아닌 우측 관목의 참나무와 활엽수 그늘로 이뤄진 사면 등로로 이어진다.
아무 생각없이 우측 우회등로를 따르니 금곡님이 좌측 도상 858.7봉을 다녀왔으면 하는 눈치이기에 다녀 오시라 말씀 드리고 홀로 사면 등로를 따라 천천히 진행을 이어간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좌측 858.7봉에서 내려오는 등로와 만나는 곳에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마루금에 다시 접속하고 다시 평이한 관목의 활엽수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산죽 지대가 나타나고 곧이어 왕등습지 갈림삼거리에 도착한다.
그 갈림삼거리에서 남서쪽을 살펴보니 방금 전 걸어 내려 온 새봉이 우측으로 올려다 보이고 그 좌측 뒤 저 멀리 우측부터 영룡봉 좌측으로 두류봉과 하봉이 보이고 좌측 쌍봉의 모습으로 중봉 지나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는데 그 좌측으로는 톱날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써리능선도 올려다 보인다.
진행 방향인 남동쪽으로는 왕등습지 지나 1048.6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보이기엔 부드럽게 이어지지만 실제 오르다 보니 경사도가 있어 힘들게 오르게 된다.
이곳 왕등습지 갈림삼거리에서 고민하다 일단 원 마루금인 왕등습지 좌측 능선을 따라 올라 보려고 조금 더 능선 방향으로 진행하지만 잡목들이 우거져 있고 오르는 등로가 갑자기 사라져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뒤돌아 내려 와 좌측의 나즈막한 무명봉은 포기하고 우측 왕등습지를 통해 진행을 이어가기로 한다.
좌측 무명봉으로 오르려던 계획은 등산로가 봉지 않아 포기하고 우측 평지를 타고 조금 걸어 들어가니 목책과 로프가 나타나고 그 목책을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왕등재습지라는 안내판이 서 있고 사진에 담고 앞에 보이는 나무데크로 올라 좌측을 보니 생각보다 크지 않은 습지가 나타나고 우측 옆으로 많지 않은 개울의 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
왕등재 고산습지는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지리산에 위치한 산지습지로서 지리산 능선 동쪽 끝자락의 해발 960m 고갯마루에 위치해 있는 길이 120m에 폭 50m 정도의 장타원형 고산습지이다.
1996년 여름에 처음으로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의 내륙에서 발견된 산지습지 중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고 습지가 위치한 왕등재는 진틀재라는 이름으로 주민들에게 불리고 있다.
진틀이라는 말은 습지를 뜻하는 지방사투리이며 왕등재습지는 백두대간의 말단부인 지리산 동남단에 위치한 곳으로 900m 이상의 고봉이 능선을 이루고 있어 지형이 비교적 험준하다.
주변지역은 주로 선캄브리아기의 편마암류가 분포하고 이를 관입한 화강섬록암과 화강암이 혼재되어 있어 풍화층이 잘 발달해 있다.
주변 산지의 물은 이 습지로 모였다가 다시 남쪽 계곡으로 작은 물줄기를 형성하여 내려가고 있고 이 물줄기를 따라서 또다시 소규모의 습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습지의 이탄층이 씻겨 내려와 퇴적되어 있다.
왕등재습지의 인근 토양은 발달 심도가 매우 깊고 유기물층인 O층이 두꺼울 뿐만 아니라 그 하위의 A층도 매우 두꺼운 특징이 있다.
또 습지의 기반암인 화강편마암은 거정의 반상변정을 다량 함유하고 있으며 장석의 함량이 매우 높아 이들이 풍화되면 고령석 등 다양한 점토광물이 생성되는데 이들은 유기물과 더불어 보수성이 매우 뛰어나고 투수성이 불량한 특징이 있다.
이와 같은 토양의 특징 때문에 하절기 우기 동안에 장기간에 걸쳐 많은 양의 물을 보수하게 되고 투수성이 불량하기 때문에 함양된 물은 단기간에 배출되지 못하고 아주 서서히 침출되며 습지의 주변 사면에서 이와 같은 형태로 배출되는 지하수는 습지의 유지수 역할을 한다.
2007년에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습지 내에 뻐꾹나리와 창포 등 58종의 습지식물과 13종의 포유류, 72종의 조류, 8종의 양서와 파충류, 큰 땅콩물방개 등 39종의 저서성 대형무척추동물, 물먼지말류 등을 비롯한 158종의 담수조류 그리고 붉은배새매와 까막딱따구리 등 천연기념물과 새홀리개와 삵 및 담비 등의 멸종위기야생동물도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했다.
습지 내에는 장경 1∼1.5m, 수심 0.2m 이내의 웅덩이군이 4개가 있으며 최상부에는 비교적 큰 5m 이상의 못이 형성되어 있으나 갈수기에는 고갈되기도 하며 습지내 유로는 이들 웅덩이를 따라 복잡하게 형성되어 있다.
그 왕등재습지를 확인하고 사진에 담은 후 나무데크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 안내판이 서 있는데 이 습지 일원은 2026년 말까지 출입이 금지된 지역으로 보호되고 있다는 내용이기에 괜시리 미안한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잠시 후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파란 사초 등로가 보이고 한동안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사초가 사라지고 관목의 철쭉나무가 보이는 급경사 오르막 등로로 이어진다.
잠시 후 도상 왕등재에 도착을 하는데 아무래도 표기가 잘못된듯 보이고 사진에 담고 오르니 식흔이 드넓게 분포되어 있는 지역을 지나 작은 돌탑이 보이는 1048.6봉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좌측으로 조금 더 걸어 올라 1048.6봉에 도착하니 유목민의 연화산방이란 띠지 하나만 달랑 걸려있어 금곡님이 높이 표시를 한 산행 띠지 하나를 더 걸어 놓은 후 사진 몇장 남기고 뒤돌아 나온다.
이제 밤머리재 가까운 729.1봉 지나 무명안부로 내려갔다 다시 908.8봉으로 오를때까지 대부분 900미터대의 능선 등로를 따라 큰 고도차이 없이 진행을 하게 된다.
산죽 등로를 타고 잠시 통과하니 다시 잡목들이 보이는 사초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관목의 철쭉나무들이 자라는 무명안부 지나 983.8봉에 도착을 하니 이곳 역시 선답자의 산행 띠지 한장 보이지 않아 금곡님이 높이를 표시한 띠지 한장을 걸어 놓고 사진 한장 남긴다.
약간의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983.8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정상에 약간 좁은 공터로 되어 있고 키작은 잡목들이 보이는 993.6봉에 도착을 해 등로 뒷쪽 우측을 살펴보니 오늘 이 산객이 웅석지맥이란 이름으로 걸어 온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 우측으로 하봉과 두류봉 및 영룡봉 우측 앞 독바위와 새봉으로 이어지고 그 능선이 이곳으로 연결되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새봉 우측으로 왕등재 고산습지 안부 지나 1048.6봉으로 올랐다 이곳으로 이어지는 부드럽게 보이는 능선이 참으로 아름답기만 하다.
키 작은 잡목들이 보이는 공터로 이뤄진 993.6봉에서 뒤돌아 본 사진 좌측 가장자리부터 써리봉 능선 우측으로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이 쌍봉처럼 보이고 그 우측으로 안부 지나 하봉과 두류봉이 이어지고 우측 아래로 영룡봉이 보이는데 저 영룡봉은 다녀오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다.
그 두류봉 앞쪽으로 나즈막한 마루금이 내려 와 안부를 통과한 후 우측 독바위와 새봉 넘어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왕등재 고산습지로 내려가는 마루금이 시원하게 보인다.
사진 좌측 가장자리부터 독바위와 새봉 넘어 나무 뒤로 왕등재 고산습지로 내려갔다 우측 위 1048.6봉으로 올랐다 그곳에서 우측 아래 마루금을 타고 이곳으로 내려온 능선이 환상인데 저 마루금을 전부 타고 오늘 걸어 온 두 다리가 대견스러운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더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보고 천천히 그 993.6봉을 출발한다.
지나 온 방향으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웅석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출발하려는데 등로 좌측인 북쪽으로 몇 년 전 고운 추억을 남겼던 왕산과 필봉산이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어 옛 추억을 소환하며 잠시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몇 년 전 회사를 다닐 때 Outing으로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하룻밤 묵으며 저 필봉산만 다녀 온 아쉬운 추억이 남아 있는데 저 좌측의 왕산과 우측의 붓끝 같은 필봉산은 경남 산청군 금서면 구형왕릉로에 있는 산들로서 가락국의 멸망을 지켜본 구형왕의 능과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이 활쏘기를 했다는 사대(射臺)가 있는 왕산(925.6 삼각점봉)과 선비의 고장인 산청을 상징한다는 필봉산(858.2봉)은 산청군 금서면 일대에 높이 솟아있다.
왕산의 옛 이름은 태왕산이라고 하였는데 아마 가락국의 궁궐 이름도 태왕궁이 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추측되고 수로왕이 만년에 이 곳에 와서 휴양했다고 가락국 양왕신도비에 새겨져 있으며 왕산은 가락국의 왕과 많은 사연이 있음을 알려주는 지명 즉 왕등재, 국골, 깃대봉, 각종 기록이나 문헌에도 있어 왕산이라 하였던 것 같다.
여우고개에서 보이는 필봉의 모습은 독특한데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산의 이름대로 붓끝을 연상해 필봉(筆峰) 또는 문필봉(文筆峰)으로도 볼 수 있겠으나 혹자는 여인의 가슴을 연상해 유방봉 또는 유두봉으로 부르기도 한다.
높이는 이웃한 왕산보다 75cm가 낮지만 산의 모습이 인상적이라 시야에는 필봉산이 먼저 들어오는데 필봉산 정상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바윗덩어리로만 이루어져 있는데다 뾰족하고 사방이 가파른 급경사라 여우재쪽 외에는 접근하기가 까다롭다.
이제 진행 방향인 동쪽과 동남쪽을 살펴보니 지금부터 걸어 만나야 할 부드러운 웅석지맥이 또 다른 왕등재로 이어지고 좌측으로 돌고 돌아 도토리봉을 넘은 후 밤머리재로 낮아졌다 다시 가파르게 올라 좌측 뒤로 솟아 있는 웅석봉을 만나고 우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달뜨기 능선이 환상을 노래하고 있어 잠시 더 머물며 많은 사진에 담고 아쉬움을 달래며 천천히 그 993.6봉을 출발한다.
생각보다 아름답고 환상적인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보고 많은 사진에 담은 후 완만하게 내려가니 관목의 철쭉나무 그늘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둔덕 넘어 바위암릉을 만나는데 좌측으로 돌아 우회 통과하니 다시 키가 큰 산죽 등로가 길게 이어진다.
그 산죽지대를 지나니 다시 철쭉나무 등로 아래 파란 사초가 깔려있고 그곳을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좌측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우측으로 뚜렷한 우회 등로가 발달되어 있어 지도를 보니 좌측 가까운 곳에 903.4봉이 보여 올라가 보지만 이곳 역시 이정판은 물론 선답자의 산행 띠지 한장 보이지 않아 사진 한장 남기고 내려오는데 금곡님이 높이를 표시한 띠지 한장 걸어 놓는다.
철쭉나무 아래 파란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보이는 903.4봉을 지나 평이하게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관목의 참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고 그 아래 약간의 사초가 자라고 있는 그늘 등로로 길게 이어지고 그렇게 잠시 더 여유를 가지고 전진하니 도상 912.3봉에 도착을 해 잠시 기다렸다 금곡님이 높이 표기를 한 산행 띠지 한장을 걸어 놓은 후 증명사진 찍듯 사진에 담으며 위치를 확인한다.
참나무 그늘 아래 사초가 보이는 912.3봉을 지나니 한동안 등로는 큰 고도 차이없이 관목의 참나무와 철쭉나무 아래 사초와 낙엽들이 쌓여 있는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는데 중간에 둔덕 같은 봉우리들이 계속 나타나지만 이정판이나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한장 만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관목의 참나무와 활엽수 잡목들이 나무 그늘을 만들어 놓은 등로를 따라 조금 더 평이하게 진행하니 903.9봉에 도착을 해 금곡님이 걸어 놓은 높이가 표기된 띠지 한장으로 위치를 확인하고 진행을 이어간다.
좌측으로 산청군 금서면 저막리와 우측의 삼장면 유평리의 경계 능선을 따라 계속 평이하게 걸어가니 낙엽이 깔린 고비가 보이는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평이하게 이어지는 참나무 오르막 등로로 오르니 말라있는 억새가 보이는 좁은 공터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에 담고 뜨거운 햇살을 피해 곧바로 나무 그늘로 들어가니 금새 바위 앞에 깨진 산청311이란 삼각점이 보이는 도상 936.5봉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에는 삼각점 표시가 없는 봉우리로서 왕등재란 글자가 보인다.
왕등재(936.5미터)는 안부가 아닌 좌측의 산청군 금서면 지막리 절골과 우측의 삼장면 유평리 밤밭골 사이로 솟아 있는 봉우리로서 지명유래를 찾아보니 옛날에 수로왕이 이 고개를 넘었다 하여 왕등재라 한다고 되어 있다.
이곳 역시 아무 표시도 없어 금곡님이 높이와 삼각점 표시를 한 띠지 한장을 걸어 놓고 증명사진 찍듯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며 주위 풍경과 조망들을 살펴본다.
제일 먼저 남서쪽을 살펴보니 정중앙부에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을 두고 좌측으로 써리봉 능선과 써리봉이 보이고 그 앞쪽으로 무제치폭포와 치밭목대피소로 이어지는 능선이 아름답고 바로 앞 좌측으로 흐르는 이름없는 능선 하나가 눈길을 잡는다.
중봉 우측으로는 안부 지나 하봉과 두류봉이 보이고 영룡봉 우측 앞으로 독바위와 새봉으로 이어지는 웅석지맥 마루금이 펼쳐져 있다.
두류봉 우측 아래로 산청독바위와 새봉으로 올랐다 다시 새재로 내려가고 왕등재 고산습지인 안부 지나 다시 1048.6봉으로 오른 후 900미터대 부드러운 산죽과 참나무 및 철쭉나무 등로를 따라 이곳으로 이어진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온다.
보고 또 봐도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경이라 조금 더 머물며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아쉬운 발걸음을 옮기며 진행 방향의 지도를 확인해 보니 이제부터 200여미터 내려갔다 다시 150여미터를 올려야 하는 힘든 마지막 등로가 기다리고 있어 마음 다잡고 출발한다.
이제 지금부터 걸어 만나야 할 웅석지맥 제1구간의 마지막 능선을 살펴보니 바로 아래 안부로 약 250미터 정도 내려 갔다 729.1봉으로 오른 후 점점 고도를 높혀 우측 끝자락으로 908.8미터인 도토리봉까지 오른 후 급격하게 고도를 낮춰 580미터의 밤머리재로 내려가면 오늘 산행도 마무리가 될 것이지만 체력적으로 힘이 드는 시간이기에 주의가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 마루금 좌측으로는 금서면 지막리의 절골로 이어지는 골짜기 아래 지막리 마을이 살짝 내려다 보이기도 하다.
이제 동쪽과 남동 방향을 살펴보니 산청군 삼정면 홍계리 마을 뒤로 이 산줄기의 주산인 웅석봉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웅석봉 우측으로는 달뜨기 능선이 환상으로 다가 온다.
웅석봉(1099.9m, 산불초소, 정상석, 산청25 삼각점)은 경상남도 산청군의 단성면 청계리와 산청읍 내리 및 삼장면 홍계리 일대에 걸쳐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099.9미터이며 지리산 천왕봉 산줄기가 동쪽으로 중봉과 하봉으로 이어지고 쑥밭재와 깃대봉을 거쳐 밤머리재에 이르러 솟은 산이 웅석봉이다.
웅석봉의 동사면으로는 경호강이 서사면으로는 시천천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종단해서 흐르고 산기슭과 하천이 만나는 일대에는 농경지가 형성되었으며 자연마을의 취락이 발달하였다.
웅석봉의 옛 이름은 유산(榆山)이었는데 유산이라는 이름은 조선지도(산청), 1872년지방지도(산청), 광여도(산음), 영남지도(산음) 등에도 표기되었다.
여지도서에서는 유산 아래에 지곡사(智谷寺)와 심적암(深寂庵)이 있다고 하였고 조선지지자료에는 유산을 우리말로 곰석산이라고 한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지역 마을 주민들에게는 곰바위산 혹은 곰석산으로도 일컬어졌음을 알 수 있다.
웅석봉의 북사면의 지곡 아래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응진(應眞)이 창건한 지곡사(智谷寺)가 있는데 창건 당시의 사찰 이름은 국태사(國泰寺)였다.
고려 전기에 혜월(慧月)과 진관(眞觀)이 크게 중창하여 선종 5대 산문(山門)의 하나였으며 조선시대 산음현(山陰縣)의 대표적인 사찰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기록이 확인된다.
웅석봉은 1983년에 산청군의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출발하려는데 등로 좌측인 북쪽으로 수철리 지나 왕산과 필봉산이 확실하게 보이는데 우측 필봉산은 정말 붓의 끝 부분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 왕산과 필봉산 좌측으로는 대봉산과 기백산 군립공원의 4개 산들이 우측으로는 진양기맥의 감악산과 월여산 줄기가 보인다.
수철리는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에 있는 리로서 지리산 북동쪽 자락에 위치하여 대부분 산지와 골짜기에 위치하며 무쇠로 솥이나 농기구를 만들던 점이 있었으므로 무쇠점 또는 수철동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구가재, 죽전, 원동 등이 있는데 구가재마을은수철리 북쪽에 있는 마을로 방곡리에 신가재가 생기면서 가재, 가현, 가등동이라 불리던 것이 구가재가 되었다.
죽전마을은 은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대밭이 있다하여 대밭골, 죽전이라 불리고 원동마을은 죽전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원집이있었다 하여 원골 또는 원동이라 불린다.
그 936.5미터의 왕등재 정사에서 사방팔방 시원하게 펼쳐진 조망과 풍경들을 감상하고 확인한 후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지금까지와는 달리 등로에 낙엽이 쌓여 있어 조심스럽고 그렇게 내려가니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언덕같은 봉우리 지나 또 다른 무명안부에 도착한다.
낙엽이 발목까지 빠지는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지금은 고인이 되신 조은산님의 빛바랜 띠지 한장이 걸려있는 729.1봉에 도착을 해 금곡님이 걸어 놓은 높이 표시가 된 띠지와 함께 위치를 확인하고 진행을 이어간다.
그 719.1봉을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나즈막한 안부에 도착하는데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와 그 옆으로 출입금지 경고판이 누워있어 살펴보니 인지하지 못했는데 이곳 역시 출입금지 지역임을 느끼며 미안한 마음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그곳 안부를 지나 낙엽 깔린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생각보다 급하지 않게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한동안 진행하니 이제 낙엽 대신 사초 등로로 바뀌고 있다.
이제부터 조금씩 더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더니 잠시 평이한 등로가 짧게 나타나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기를 반복해 어렵게 오르니 바위암릉 등로 지나 굵은 참나무와 작은 자갈들이 깔려있는 848.5봉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잠시 쉬어 간다.
그 848.5봉 역시 특별한 이정판이 없어 금곡님이 높이를 표기한 띠지를 걸어 놓고 내려가니 낙엽이 깊게 깔려있는 무명안부를 지나 가파른 낙엽 깔린 오르막 등로와 무명안부를 반복해 만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갑자기 넓은 헬기장이 나타나고 그 헬기장 뒤로 돌아 가니 작은 바위들과 잡목들이 보이는 오늘 걸어야 할 마지막 봉우리인 908.8미터의 도토리봉에 도착을 해 금곡님이 걸어 놓은 높이 표시가 된 띠지를 사진에 담으며 헬기장으로 내려 와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하산하기로 한다.
도토리봉(908.8봉)이란 이름이 궁금해 찾아보니 도토리가 많이 나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믿음이 가지는 않지만 오래전부터 많은 산꾼들 입으로 구전되어 왔기에 굳어진 지명이 된 듯 보인다.
제일 먼저 남서 방향을 살펴보니 가장 먼곳 좌측 가장자리부터 무제치기와 치밭목대피소로 이어지는 능선 위로 써리봉 능선이 보이고 그 위로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이 우뚝솟아 있으며 그 우측으로 안부 지나 하봉과 두류봉 그리고 영룡봉 우측으로 안부 지나 독바위와 새봉이 솟아 있다.
그 새봉 우측으로 새재로 낮아졌다가 우측 앞으로 왕등재 고산습지 안부로 내려 앉았다가 참나무 우측 옆으로 1048.6봉으로 오르고 다시 좌측으로 이어지는 평이한 900미터대 능선을 따르면 좌측 앞으로 936.5미터의 왕등재가 솟아 있다.
그 왕등재 좌측으로 낮아진 마루금이 무명안부 지나 이곳 도토리봉으로 이어지는 오늘 이 산객이 걸었던 웅석지맥 첫 구간이 전부 한눈에 들어 와 몇장의 사진에 담으며 그 이름들을 불러주는 시간은 희열에 찬 행복한 시간이다.
이제 눈을 남쪽으로 돌리니 좌측에 웅석봉과 달뜨기 능선 지나 저 멀리 진양호로 흘러드는 웅석지맥 마지막 산줄기가 뻗어가고 우측으로는 지리산에서 뻗어 내린 황금능선 끝자락을 지나는 구곡산 지나 뾰족한 주산이 보이는 그 한가운데를 가로 지르는 59번 친환경로와 덕천강을 따라 형성된 산청군 삼장면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사진 좌측 뒤로부터 감투봉과 이방산비룡산과 오대주산이 보이고 그 우측 뒤로 뾰족한 주산 앞 우측으로 구곡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한동안 더 머물며 많은 사진에 담고 좌측 끝자락의 진주호와 웅석지맥 마지막 부분을 찾아 보지만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이 펼쳐진 908.8미터인 도토리봉 헬기장에서 많은 사진을 담으며 보이는 산줄기와 봉우리들 그리고 마을들의 이름을 불러 준 후 내려가니 관목의 참나무로 이뤄진 뚜렷한 등로가 완만하게 이어지고 몸과 마음도 가볍게 진행하니 간벌목들이 널부러져 있지만 이미 많은 선답자들이 진행하며 뚜렷한 등로를 만들어 놔 진행에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경사도가 점점 가파라지기 시작하고 조금은 가파른 내리막 등로가 미끄러워 조심스럽게 전진하니 출입금지 경고판이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조금 더 내려가니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반달가슴곰이 활동하는 위험지역 경고 플랭카드가 걸려있다.
그렇게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모두 내려 와 잠시 여유를 찾아 걸어가니 드디어 버스를 개조해 만든 간이 매점이 보이고 넓은 주차장인지 공터 옆으로 표지석과 이정표들 그리고 다음 구간 산행 들머리가 보이는 59번 친환경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밤머리재에 도착을 해 오늘 산행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자축해 보는 시간이다.
밤머리재(580미터, 밤머리재 표지석, 웅석봉 안내도)는 산청군 금서면 지막리와 삼장면 홍계리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서 조선시대에 남명 조식선생이 이곳에서 가까운 시천면 덕산의 산천재에 머물렀을 때 지인을 찾아 고개를 넘어 다닐 때 밤을 한말 정도 까 먹어야 넘을 수 있는 고개라 해서 밤머리재라 불려지게 되었다는데 지금이야 도로가 개설되어 편하게 올라오는 고개이지만 예전에는 구절양장 험하고 어렵게 올라오는 고개였다는 의미로 알려져 있다.
커다란 밤머리재 표지석 앞에서 추억 몇장 남기고 그 뒤로 보이는 도로 표지판들을 보니 대원사부터 남명 조식유적지 지나 빨치산토벌전시관 그리고 잠시 후 가야 할 중산리가 약 28.5 Km 로 표기된 거리가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밤머리재 주위 풍경들을 사진에 담고 도로 건너 다음 구간 올라야 할 산행 들머리를 확인한 후 14시간 동안 지리산에서 올라 웅석봉 들머리까지 걸었던 멀고도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하고 배낭 정리하여 애마를 끌고 중산리로 향한다.
아마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고 날씨가 좋으면 다음 주 다시 이곳으로 내려 와 웅석지맥이란 이름으로 또 하나의 산줄기 잇기 산행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다.
밤머리재에서 배낭 챙겨 주차시킨 애마를 끌고 새벽에 들렸던 중산리탐방지원센터 앞 주차장으로 가니 저녁 6시가 넘어가고 일단 내일 성수지맥 마지막 구간 산행을 위해 남원시청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출발하는 시간이 저녁 6시 30여분이 가까워진 시간이다.
이렇게 멀고도 힘들었고 마음의 부담으로 남아 있던 웅석지맥 첫 구간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다음 주 다시 내려 와 남아 있는 두구간도 잘 마무리하여 또 새롭게 시작한 웅석지맥 산행도 갈무리 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약간의 박무가 있었지만 멀리 보이는 조망과 풍경에 환호하며 특히 최근에 걸었던 전북 장수와 남원쪽 천황지맥 마루금과 남덕유산을 살펴볼 수 있는 혜안이 생겼음에 감사하며 함께 걸어 준 남양주 금곡님에게도 감사 인사를 드리는 시간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지맥산행(완료) > 웅석지맥(대간.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웅석지맥 제2구간 밤머리재에서 제마재까지 산행후기 (0) | 2021.06.11 |
---|---|
웅석지맥 마지막 제3구간에서 만난 풍경들 (0) | 2021.06.10 |
웅석지맥 제2구간 산행 중 만난 풍경들 (0) | 2021.06.10 |
웅석지맥 제1구간에서 만난 풍경들 (0) | 2021.06.02 |
웅석지맥 산행 자료들 (0) | 2021.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