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맥산행(완료)/팔음지맥(대간·완)

팔음지맥 제2구간 큰곡재에서 부상고개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20. 11. 9.
728x90

산행지 : 경상북도 상주시와 충청북도 옥천군 및 영동군의 팔음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0년 11월 06일 (금요일 당일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흐리고 구름이 많았으며 점심시간에는 약간의 비까지 뿌리며 오후에 강한 바람까지 불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03도에서 영상 15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큰곡재(팔음로 2차선 포장도로) 이정표(팔음산 1.4 Km, 청산, 평산)-팔음산(771.3봉, 정상석과 팔음산유래판)    

               이정표(평산리, 큰곡재)-762.3 삼각점봉(관기309) 이정표(팔음산 정상, 평산리, 화현리)-팔음산 복귀-묵은 헬기장-

               720.1 고사목봉-벙커 무명봉-고사목 무명봉-이정표(삼방리 7.7 Km, 팔음산정상 3.5 Km, 명티리주차장 0.9 Km)-

               무명안부-491.3 무명봉-벌목 후 소나무 조림지-491.5 무명봉-철망등로-철망 끝지점-522.1봉-임산물 경고팜과

               전선등로-바위암릉-504.3봉-무명안부-506.4봉-그물망등로-수원백씨 묘지-별재(비포장 임도)-밤나무 과수원-335.3

               띠지 무명봉-335,2 묵묘봉-무명안부-372.1 무명봉-천금산(464.9봉, 관기315 삼각점과 이정판)-462.1봉-호두나무

               과수원-능선진입-호두나무 과수원-호두나무 과수원 종점-442봉-전주이공 묘지-잡목 등로-전주이공 묘지-벌목

               잡목봉-전주이공 묘지들-전주이공 묘지-능성구씨 묘지-잡목등로-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쌀아터-목동마을)-사과

               과수원-잡목 등로-308.2 삼각점봉(인식 불가)-296.1 무명봉-청산효목 이동통신탑-샘터재(동물이동통로, 19번

               남부로 2차선 포장도로)-349.9봉-408봉-무명 묘지1-무명안부-이정표(법화저수지 1.75 Km, 청산면 한곡리,

               법화리마을 0.90 Km)-412.5 무명봉(벤취쉼터3)-아카시아나무 등로-동학역사탐방길 이정표(천관산 정상 0.4 Km,

               탐방길 시작점 1.1 Km)-로프 등로-천관산(대삼각점, 계화공주와 용인총각, 벤취쉼터들) 이정표(영동군, 탐방길

               시작점 1.5 Km)-안전목책과 로프구간-설명판(새야 새야 파랑새야)-안부 이정표(천관산정상 0.4 Km, 탐방길

               시작점 1.0 Km)와 천관산 밤재 동학농민군 전적비-407봉-388.7 무명봉-무명묘지와 소나무 등로-358봉-잡목과

               아카시아나무 등로-밤재(금곡4길 1차선 포장도로)-연안전씨 묘지-무명안부-363.3봉(밤재?)-장군재(비포장임도

               안부)-관봉(360봉)-초봉(396 잡목봉)-386.8봉(태안박공 묘지)-아카시아나무 등로-381봉(작은초봉?)-아카시아나무와

               잡목 등로-밀양손공 묘지-37번 송전탑-무명안부-383.3봉-벌목 후 소나무 조림지-376 무명봉(작은조천봉?)-413.6봉-

               여흥민공 묘지-무명안부-성황당고개 안부-340.6 삼각점봉(인식불가)-바위암릉-361.6 무명봉-플랭카드 등로-328.8

               무명봉-부상고개(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처음 계획했던 밤재를 지나 부상고개까지 오르락 내리락 빨래판 등로를 타고 조금은 어렵게 진행하여 26.83 Km (스마트

               폰의 Oruxmaps와 트랭글 기준)

산행트랙 :

20201106 팔음지맥 제2구간 큰고개-밤재.gpx
0.12MB

                     

20201106 팔음지맥 제2-1구간 밤재-부상고개.gpx
0.05MB

산행시간 : 밤잠을 설치고 내려가 새벽부터 일찍 시작해 예정된 시간으로 진행하여 11시간 12분 (06시 27분부터 17시 39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4:00 집에서 상주시 큰곡재를 향해 애마로 출발

                                 06:20 큰곡재 아래 팔각정 쉼터 앞 공터에 애마를 주차하고 산행 준비한 후 곧바로 산행시작

                       올때 - 17:39 비포장임도가 지나는 부상고개에서 산행 종료 후 대기하던 용산택시로 큰곡재로 이동

                                 19:10 큰곡재에서 애마 회수 후 청산면으로 들어가 어렵게 여관 잡고 갈비탕으로 저녁 해결

팔음지맥이란 ???

팔음지맥은 백두대간의 봉황산(740.8봉)에서 분기하여 남서진하며 25번국도와 청원상주고속도를 건너 비산비야의 낮은 지대를 지나 천택산(683.9봉)을 일구고 팔음산(유명산, 762.3봉), 천금산(464.9봉), 천관산(445.4봉)을 지나 영동터널을 통해 경부고속도를 통과하여 철봉산(449.5봉), 고수봉(297봉)을 거쳐 다시 금강터널위를 통해 경부고속도로를 통과한 후 금강2교가 있는 금강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57.7 Km의 산줄기를 팔음지맥이라 한다.

보청천(72.1 Km)의 우측이자 초강(66.3 Km)의 북쪽 분수령이 되며 두강은 모두 금강에 흘러들어 그 세를 더해주는데 보청천과 초강이 금강과 만나는 합수점이 아닌 가장 긴 산줄기가 금강으로 그 맥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수계 분류의 산줄기 체계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산줄기이기도 하기에 신산경표 상 팔음지맥을 완주한 후 시간되면 합수점으로 다시 한번 더 걸어 보고자 한다.

 

 

주말에 대전 처갓집에서 집안일이 있어 금요일 하루 시간 내 내려 가 빨래판 등로를 타고 쌓인 낙엽을 헤치며 어렵게 걸었던 팔음지맥에서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팔음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충청북도 옥천군과 영동군 및 경상북도 상주시 그리고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와 네이버의 지식백과 및 다음의 백과사전 그리고 산림청과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이번주 토요일은 대전 처갓집에 집안 일이 있어 토요일과 일요일 연이은 산행이 불가능하기에 금요일 하루 시간 내 금요일과 토요일로 변경하여 지난 5월에 첫구간만 진행하고 숙제로 남겨뒀던 상주와 영동 및 옥천을 지나는 팔음지맥을 마무리하고 대전에 들렸다 일요일 오전에 귀가하기로 한다.

여름 장마철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열정적으로 진행하던 지맥 산행이었는데 3개월 이상 가까운 삼성산과 관악산만 오르다 보니 다시 약간의 게으름과 지방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진행하기 쉽지 않았는데 지난주부터 숭덕지맥을 시작으로 다시 본격적인 맥 잇기 산행에 돌입해 본다.

목요일 저녁에 산행 준비를 해 놓고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3시 30분에 일어 나 세면 후 집을 나서는 시간이 4시를 막 넘기고 조금은 한산한 고속도로를 타고 산행 들머리인 큰곡재에 도착을 하니 주차하기가 만만치 않아 이리저리 확인하다 보니 큰곡재 북쪽 약 200여미터 지점에 정자와 운동기구 및 약수터가 있는 곳 한쪽으로 공간이 있어 주차시키고 산행 준비를 하다 보니 여명이 밝아오고 곧바로 배낭 메고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계획된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여유롭게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며 산행을 정리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가파른 된비알 오르막 등로에 수북히 쌓여있는 낙엽을 밟으며 힘들게 팔음산에 올라 추억을 남기고 잠시 삼각점봉까지 다녀온 후 낙엽이 깊이 쌓여있는 미끄러운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 상태는 좋지만 높낮이가 심해 은근히 힘이 들고 속도가 나질 않는다.

별재 안부를 지나 경북과 충북의 경계 능선을 타고 천금산을 넘으니 생각지도 못한 거대한 호두나무 농장이 펼쳐지고 그 우측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가다 좌측을 살펴보니 호두농장 넘어 영동군 용산면의 특이하게 생긴 박달산이 정중앙으로 보이고 그 뒤 좌측으로 민주지산과 각호산으로 보이는 백두대간과 각호지맥 산줄기가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갈기산으로 이어지는 백하지맥과 그 옆으로 천태산이 보이는데 오래전부터 저 천태산에서 서대산으로 이어지는 종주코스를 걷고 싶었는데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으니 언제나 걸어 볼 수 있을련지 궁금하기만 하다.

 

호두나무 과수원 좌측으로 생각지도 못한 환상의 조망과 풍경들을 즐기고 감상한 후 조금 더 걸어 가다 앞을 살펴보니 바로 앞으로 호두농장이 끝나는 지점 뒤로 442봉이 솟아 있고 그 우측 뒤로 중앙으로 잠시 후 올라야 할 천관산이 솟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 천관산으로 이어지는 팔음지맥 뒤로 좋은 추억을 남긴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이 보이고 그 옆으로 이어지는 식장지맥의 대성산 자락도 존재감을 알려오고 있다.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조망에 황홀함을 맛보며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호두농장에서 멋진 조망을 즐기고 다시 낙엽 덮힌 미끄러운 등로를 타고 힘든 산행을 이어가니 갈지자를 그리며 왔다리 갔다리 끊어질듯 연결되는 산줄기가 신기하기만 하고 그렇게 샘티재와 천관산을 지나 오늘 산행 목적지인 밤재에 도착을 하니 이제 시간이 오후 2시 10여분을 지나고 있어 내일 처갓집을 들리기 위해 조금 더 진행하기로 하는데 이곳에서 약간의 소나기가 떨어지기 시작해 고민이 시작되는데 몇방울의 빗줄기가 내리더니 더 이상 비는 내릴 것 같지 않아 가능하면 경부고속도로 영동2터널 직전의 부상고개까지 걸어 보기로 한다.

장군재와 관봉 및 초봉 넘어 383.3봉에 도착을 하니 작은조천봉이란 종이코팅지가 붙어있고 진행 방향으로 413.6봉으로 이어지는 등로 우측으로 벌목 후 소나무 식재지가 펼쳐져 있고 그 뒤 좌측으로 이어지는 팔음지맥 산줄기는 바로 앞 413.6봉에 가려 보이지 않고 우측 뒤 저 멀리 내일 걸어야 할 안산에서 철봉산으로 이어지는 팔음지맥 마루금이 하늘금 아래 펼쳐져 있어 잠시 살펴보는 시간은 그저 꿈속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지난 5월 중순에 이곳 상주쪽에 일이 생겨 내려왔다 생각지도 못한 팔음지맥 첫구간을 진행하고 무더위와 장마로 인해 반년이상 들리지 못하다가 이번주에는 대전 처갓집에 일이 생겨 금요일 하루 시간을 내 내려오게 되었는데 6개월 전에 비해 기온은 많이 내려갔고 낙엽이 지면서 조금은 쓸쓸하고 추위가 느껴지는 계절로 바뀌어 있다.

큰곡재에 도착을 하지만 주차공간이 없어 고갯마루를 왔다리 갔다리 하다보니 북쪽으로 약 200미터 지점에 정자와 약수터가 있는 공간이 보이고 그곳에 잘 주차 후 산행 준비를 하다보니 6시 25분이 지나면서 어둠이 물러가고 여명이 밝아 와 주위 사물이 인식되기 시작하자 곧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이곳 평산리는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에 있는 리로서 팔음산 등 여러 산이 에워싼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고 경지가 소규모로 분포하며 들에 평평한 산이 있으므로 평산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평산, 못안, 밤수, 회동, 아랫마마을 등이 있는데 평산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평산리의 그것과 같고 못안마을은 앞에 못이 있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밤수마을은 밤나무 숲이 많았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회동(檜洞)마을은 노송나무가 무성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아랫마마을은 회동 아래쪽이 된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오늘과 내일까지 팔음지맥을 마무리하면 한동안 내려왔던 상주 땅도 이제 당분간 내려올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아 감회가 남다른다.

 

조금은 싸늘한 기운에 방풍의를 입고 생각보다 많은 식수와 과일 등을 챙겨 배낭에 넣고 진행하다 보니 두 어깨에 전해지는 무게감이 상당하다.

천천히 팔음로 2차선 오르막 도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금새 고갯마루인 큰곡재에 도착을 하는데 반년만에 다시 들린 모습은 변함이 없지만 반겨주는 친구들만 계절에 따라 달라진 듯 보인다.

큰곡재는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평산리 평산 마을에서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 명치리로 가는 고개로서 큰(大)+골(谷)+재(峴)=큰 골재→큰 곡 재를 의미하며 큰 골짜기에 있는 재라는 뜻이다.

고갯마루를 넘어 좌측으로 보이는 석축이 끝나는 지점 우측으로 보이는 등산로 입구를 통해 오르면 바로 앞으로 올라 온 북쪽 방향으로 평산과 좌측인 남쪽으로는 천산 그리고 진행방향으로는 팔음산까지 1.4 Km 거리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 곳으로 오르며 이틀간 산행을 시작한다.

 

큰곡재 도로 위로 올라 이정표를 살펴보고 능선으로 드니 낙엽이 수북하게 떨어져 쌓여있고 잠시 후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만나 편안하게 진행을 하니 그 임도는 우측으로 휘돌아 가는 듯 보여 잠시 고민하다 직진의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직등하기로 결정을 한다.

많은 선답자들이 우측으로 이어지는 넓고 좋은 등로를 따라 진행한 듯 보이지만 그곳으로 진행을 해도 이곳 직등을 하는 것과 별 차이도 없을 것 같아 오르는데 오를수록 경사도가 심해지며 낙엽이 둽게 쌓여 오르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한발 두발 전진하니 어느정도 높이에 도착을 하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반년 전 지나 온 마루금을 살펴보니 시원한 조망이 펼쳐져 있다.

방금 전 올라 온 팔음로 도로가 보이고 지난 회차 무더위에 어렵게 내려 온 팔음지맥 첫구간 마루금이 길게 이어지며 우측 뒤 저 멀리 화령마을 뒷쪽으로 백두대간에서 분기한 봉황산 부근도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오르니 경사도가 조금은 완화되기 시작하고 두껍게 깔려있는 낙엽 등로를 따라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니 이제는 화동면 마을 뒤 저 멀리 백두대간 마루금과 팔음지맥 분기점이 있는 봉황산도 보인다.

사진에 담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앙증맞은 정상석과 팔음산 유래 설명판 뒤로 이정표가 보이는 팔음산 정상부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상주시 자료에 따르면 팔음산은 평산리와 모서면 득수리 및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 명치리와 경계를 이루는데 높이는 771.3m로서 흑연이 많이 생산되었던 산이다.천지개벽 당시 파리 등만큼 남고 모두 물에 잠겼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임진왜란 당시 여덟 번 소리가 났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팔음은 불교에서는 부처가 지닌 여덟 가지 특색이 있는 음성 즉 극호음, 유연음, 화적음, 존혜음, 불녀음, 불오음, 심원음, 불갈음을 뜻한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음악에서는 악기를 만든 재료에 따라 여덟 가지고 나눈 것 즉 쇠, 돌, 실, 대나무, 박(포), 흙, 가죽, 나무를 팔음이라 한다.

 

팔음산 상에서 지도를 살펴보니 좌측인 동쪽으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762.3미터의 삼각점이 보여 배낭을 벅어 놓고 잠시 편안하게 다녀오기로 한다.

활엽수 낙엽이 등로를 가득 채우고 있는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빠르게 진행하니 금새 능선 위 잡목들이 보이는 봉우리 같지 않은 곳에 관기309라는 삼각점이 박혀 있어 사진에 담고 추억 한장 남겨 본다.

그 삼각점 넘어 저 멀리 백두대간 마루금 위로 붉은 기운이 보이지만 구름이 두껍게 껴 있어 오늘 일출은 힘들어 보인다.

 

삼각점봉에서 추억을 남기고 팔음산으로 뒤돌아 가려는데 동쪽으로 몇발자국 전방에 이정표가 보여 살펴보니 동쪽으로 평산리 그리고 우측인 남쪽 방향으로는 화현리로 갈 수 있는 방향 표시가 보여 자료를 찾아보니 화현리는 경상북도 상주시 모서면에 있는 리로서 팔음산 끝자락에 자리한 산촌마을이고 작은 하천이 흐르며 고개가 발달한 곳이다.

자연마을로는 화현, 절골, 반송, 비석걸, 찬새암동마을 등이 있는데 화현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이고 절골마을은 극락암이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반송마을은 반송이 있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비석걸마을은 반송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비석이 많았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며 찬새암동마을은 찬 샘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삼각점봉에서 좋은 추억과 사진을 남기고 팔음산 정상부로 뒤돌아 와 벗어 놓은 배낭을 둘러메고 다시 한번 더 정상부를 둘러 본 후 이제 남쪽으로 이어지는 낙엽이 깊게 깔려있는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니 이슬이 마르면서 바스락 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가 귓전을 음악처럼 맴돌며 외로운 산객의 마음을 달래준다.

잠시 걸어 내려가니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넓은 공터에 도착을 하는데 바닥에는 헬기장같은 보도 블록들도 보이는데 이제는 사용이 없는 묵은 헬기장처럼 보이는 곳이다.

공터를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살짝 오르니 고사목이 서 있는 도상 720.1봉에 도착을 하고 뒤돌아 올려다 보니 참나무 등로 사이로 방금 전 넘어 온 팔음산 정상부가 빼꼼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고사목이 있는 720.1봉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올 봄 병풍지맥에서 우연히 만났던 도요새 이근진님의 노란색 산뜻한 띠지가 반겨주고 반가움에 사진 한장 담고 전진하니 이유를 알 수 없는 나즈막한 돌담이 보이고 벙커들이 나타나며 다시 커다란 고사목이 벌거벗고 서 있는 무명봉도 통과를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진행하니 잠시 후 나무들이 사라진 공터 무명봉에 이정표가 서 있는데 진행 방향으로는 삼방리가 우측으로는 명티리주차장 하산 방향과 거리가 표기되어 있는 이정표이다.

명티리는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에 있는 리로서 팔음산 자락에 위치하여 자연 경관이 빼어나며 자연마을로는 광산부락(광산촌), 구루미, 달밭골(월명동), 바리미, 솔증이, 자티(척티,점마) 등이 있다.

광산부락은 월명 광산이 생기면서 이뤄진 마을이라는 뜻이고 구루미는 면내에서 지대가 가장 높아서 늘 안개와 구름이 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달밭골은 옛날 다래밭이었다고 고 자티는 전에 옹기점이 있어 점마라고도 불린다.

삼방리는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에 있는 리로서 청산면의 동쪽 끝 팔음산 자락에 위치한 농촌 마을이며 자연마을로는 가사목(가삼리), 안가사목, 장누골(사방리) 등이 있다.

장누골은 삼방리에서 으뜸가는 마을이고 가사목은 장누골 서쪽에 있는 마을이며 안가사목은 가사목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삼리와 사방리 이름을 따서 삼방리라 하였으며 문화유적으로 양천룡 효자문이 있다.

 

이정표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 낙엽 등로를 따르니 참나무들이 서 있는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통과해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고 경북도경계탐사라는 띠지가 보여 지도를 확인하니 우측으로는 충청북도이고 좌측으로는 경상북도가 갈리는 도 경계능선이다.

우측으로 휘어지는 등로를 따라 진행하다 우측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팔음산 정상부가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이고 바위들이 깔려있는 무명봉 지나 등로 우측으로 발목 후 잡목들과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등로로 올라 우측을 보니 시원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북서 방향인 충북 보은쪽 산들로서 삼승산과 대왕산 및 일봉산 우측으로 율미산 방향이란 생각되는 풍경들로서 끝없이 펼쳐진 산그리메가 가슴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뒤돌아 보니 지나 온 방향으로는 방금 전 걸어 내려 온 720.1봉 넘어 팔음산 정상부가 시원하게 올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 삼각점이 박혀있던 762.3봉도 쌍봉처럼 보이는데 생각보다 너무 부드럽게 펼쳐져 있어 실제로 걸었던 기억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그 부드러운 마루금 위로 보이는 파란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껴 있어 비라도 내릴듯한 모습이지만 비 소식은 듣지 못했기에 아무 걱정없이 다시 산행에 집중해 본다.

 

등로 우측과 뒷쪽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조망을 즐기고 약간의 잡목들과 잡풀들이 앞을 가로막는 등로를 타고 걸어 전진하니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에 선답자의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 넘어 갑자기 등로 좌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튼튼한 철망이 쳐져 있다.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휘어져 이어지는데 아마도 최근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옮긴다고 생각되는 야생 멧돼지들의 출입을 제한하기 위해 설치된 철망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이렇게 일부 구간에만 설치를 해서 그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동안 그 철망을 타고 잘 정비된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하다 보니 산행속도가 다시 붙는다.

 

계속 이어지는 철망을 좌측에 두고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부드러운 수렛길 같은 등로를 따라 오르락 내리락 걷다보니 등로 좌측으로 경상북도 상주시 모서면 득수리의 버들방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해 살펴보니 몇채의 민가들이 보이고 작은 마을들이 내려다 보이는데 득수리는 백화산 끝자락에 자리한 산촌마을로 작은 하천이 흐르고 고개가 발달한 곳이며 맑은 물이 많은 곳이라 하여 득수리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렇게 잠시 더 철망을 타고 걸어가다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 온 팔음산과 팔음지맥 마루금이 조금씩 변해가며 멀어지는 모습이 운에 들어 온다.

 

계속 이어지는 수렛길 같은 철망 옆 등로를 따르니 잡목들이 보이는 무명봉 직전에서 철망은 좌측으로 크게 꺽여 내려가고 잡목봉 지나 커다란 참나무 2그루가 보이는 483.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해보고 진행한다.

무명봉 지나 나즈막한 무명안부도 통과하고 다시 등로 우측으로 충북 보은쪽 산그리메들을 살펴본 후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커다란 나뭇가지 높은 곳에 준희님이 걸어 놓은 이정판에 이곳이 522.1봉임을 알리고 그 옆으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도 외롭지 않게 주렁주렁 걸려있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그 522.1봉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좌측으로 크게 휘어지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이제 등로 우측으로 옥토림 주인이 걸어 놓은 개인사유지의 임산물재배지라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판들과 함께 철사로 출입을 막고 있다.

피해가 되지 않토록 눈길도 주지 않으면서 진행하니 부드러운 내리막 등로레 참나무 낙엽들이 발목까지 덮어 여간 미끄럽지 않기에 조심하며 진행하고 안부 지나 오르며 등로 좌측을 보니 부드럽게 펼쳐진 팔음지맥 마루금에 만산홍엽이 물들고 저 멀리 팔음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로가 너무나 아름답게 한폭의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진행하면서 보니 등로는 좋은데 수북하게 쌓여있는 낙엽으로 미끄럽고 활엽수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어 조망이 별로이며 높낮이가 심해 체력적으로 조금은 힘겨울 것 같다는 느낌으로 전진하니 잘 보이지 않던 바위암릉이 짧게 나타난다.

그 암릉 구간을 지나니 다시 커다란 참나무들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무명봉 지나니 옥토림원 주인장의 경고판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나는 거친 바위암릉을 타고 조심스럽게 통과하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만 걸려있는 도상 504.3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그 504.3봉을 지나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 등로를 잘 찾아 내려가니 이곳도 역시 활엽수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어 미끄럽기에 기어가듯 조심조심 내려간다.

비실이부부가 많은 띠지를 걸어 놔 길찾기에는 어려움이 없이 내려가니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눈 앞으로 커다란 바위들이 보이는 바위능선이 나타나는데 그 주능선 좌측 옆으로 우회할 수 있는 사면 등로가 개설되어 있어 편안하게 우회하며 그 바위능선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커다란 참나무에 506.4미터란 이정판이 걸려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겨 본다.

 

그 봉우리에서 등로는 또 다시 우측으로 휘어져 진행되고 잠시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무심으로 걷다보니 어느 지점에서 등로는 다시 좌측으로 크게 휘어져 남쪽으로 연결되는데 그곳을 지나자마자 등로 좌측으로 방금 전 지나 온 부드러운 경고문들이 걸려있던 등로 뒤 저 멀리 팔음산이 이제 얼굴만 내밀고 아쉬운 작별을 노래하고 있다.

산행을 진행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2시간 30여분이 지나면서 제법 먼 거리를 걸어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는 조망이었다.

 

좌측으로 오늘 걸었던 팔음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살펴보고 여전히 부드럽지만 많은 낙엽들이 쌓여있어 미끄러운 등로를 타고 평이하게 걸어가니 등로 좌측인 남동쪽 방향으로 멋진 산세를 가진 산줄기가 보여 지도로 확인해 보니 오래 전 홀로 오르며 고운 추억을 남겼던 상주시 모동과 모서를 가르는 곳에 솟아 있는 백화산 한성봉과 주행봉 능선이다.

호랑이 전설이 깃들어 있는 반야사를 기점으로 한바퀴 돌아 내려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여년이 훌쩍 지났으니 시간이 화살과 같다는 말을 실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생각지도 못한 백화산 한성봉과 주행봉 능선을 살펴보고 잠시 약간의 잡풀지대를 통과하니 등로는 여전히 멋진 참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평이한 마루금으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참나무 등로가 소나무와 혼재되어 있는 등로로 바뀌면서 등로 우측으로는 파란 그물망이 쳐져 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물망이 가라 앉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이제 그물망 등로가 끝이나고 갈지자로 왔다리 갔다리 했던 등로도 직진의 평이한 등로로 바뀌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물 한모금 마시고 산행을 이어간다.

 

그물망이 끝나고 등로는 온전한 소나무 등로로 변하면서 약간의 잡목들도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 지나 많이 망가진 수원백씨 묘지를 통과하니 갑자기 비포장임도가 나타나는데 지도를 보니 별재라 표기된 곳이다.

지도만으로는 제법 넓은 도로라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비포장임도가 지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기에 잠시 지도를 살펴보고 확인한 후 새로 조성된 키작은 밤나무 묘목들이 보이는 공사중인 비포장임도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이곳 별재는 현재 충북 옥천군 청산면 삼방리에 속해있는 지역이지만 이름은 좌측의 경상북도 상주시 모서면 정산리에 있는 별태라는 마을과 관련된 지명인 듯 싶다.

정산리는 백화산 끝자락에 자리한 산촌마을로 작은 하천이 흐르며 고개가 발달한 곳으로 자연마을로는 숲골, 가눈골, 별태, 학교앞, 주막뜸마을 등이 있는데 별태마을은 수목과 산으로 둘러싸여 하늘과 별만이 보인다는 고개인 별재의 밑이 된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예전에는 그만큼 오지중의 오지였기에 들리는 사람도 거의 없었을 것 같은 곳이지만 지금은 개간이 되어 제법 사람들의 왕래가 있는 고갯마루처럼 보인다.

 

별재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약간의 잡목들이 앞을 가로막고 살펴보니 우측으로 얼마 전 공사를 했던 흔적이 보여 가 보니 밤나무 어린 묘목들이 식재되어 있는 과수원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포크레인으로 넓은 비포장임도같은 등로를 만들어 놔 그 임도를 따라 편안하게 오른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다 등로 우측을 보니 방금 전 걸어 온 팔음지맥 마루금 아래로 화려한 단풍들이 사라지는 가을을 아쉬워하는 듯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바쁜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에 담아보지만 실제 두눈으로 확인한 멋스럼보다는 덜한 기분이다.

 

만산홍엽으로 변해가는 아름다운 마루금과 산하를 살펴보고 몇장의 사진에 담은 후 계속 이어지는 공사중인 비포장임도를 타고 오르니 공사가 끝이나고 조금 더 오른 지점 참나무 가지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된다.

잠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묵은 무명묘지 한기가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고 미끄러운 참나무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어렵게 내려가니 나뭇가지 사이로 잠시 후 올라야 할 연봉들이 연달아 보이고 곧이어 활엽수 낙엽이 깊이 쌓여있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으로 충북 옥천군 청산면 의지리와 좌측의 경북 상주시 모서면 정산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최근까지도 사람들이 다녔을 법한 흔적들이 보이는데 임산물 채취를 위한 용도로 보인다.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낙엽 등로를 타고 미끄러지 않토록 조심하며 오르니 등로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저수지와 들판들이 보이는데 잘 보이지 않아 주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에 전념해 본다.

잘린 소나무 옹이가 보이는 곳을 지나 여전히 수북히 쌓여있는 참나무 낙엽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드디어 등로 우측으로 약간의 조망이 열리고 살펴보니 충북 옥천군 청산면 의지리 의동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의지리 들판 넘어 보은쪽 산줄기들이 보이는데 그 뒤로 보여야 할 금적지맥 산줄기들은 앞 산줄기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멋진 조망들을 살펴보고 계속 이어지는 능선 마루금을 따라 편안하게 걸어가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추억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곧이어 또 다른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427.4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하면서 사진에 담아 본다.

지도를 보니 이제 천금산이 멀지 않은 듯 보여 이곳에서 사탕 하나로 목마름을 달래고 잠시 더 진행한 후 간식으로 허기를 면하고 진행을 이어가기로 한다.

 

무명봉을 지나 여전히 평이하게 이어지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등로 우측으로 시원한 조망이 열리고 살펴보니 바로 발 아래로 의지리 의동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얼마 전 걸었던 금적지맥의 산줄기들이 길게 펼쳐져 있으며 그 우측 끝자락으로는 구병산 자락의 울퉁불퉁한 남성미 넘치는 마루금이 올려다 보이는데 그 뒤로 이어지는 속리산은 구병산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분간하지 못하다가 지도를 보고서야 우측의 칼바위 능선이 구병산임을 알고 잠시 더 발걸음 멈추고 살펴 본 후 걸어 전진하니 솔향 가득한 등로 넘어 관기315라는 삼각점이 중앙에 박혀있고 주위 나뭇가지에 이곳이 464.9미터의 천금산임을 알리는 이정판들과 주위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이곳 천금산은 충청북도 옥천군의 청산면 효목리와 영동군 용산면 미전리 및 경북 상주시 모서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464.9미터이고 조선 시대 기록에 대체로 천둔산(千屯山)으로 기록되었다가 20세기 초반부터는 주로 천금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청산)에 천둔산(千屯山)은 고을 동쪽 15리에 있다 라는 기록을 필두로 여지도서(청산)에 천둔산은 주맥이 보은현 속리산으로부터 오며 현 동쪽 15리에 있다 라는 기록이 등장한다.

1872년지방지도(청산)와 대동여지도에도 千屯山 혹은 千芚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조선지지자료에는 천둔산 대신 천금산(千金山)이라는 지명이 등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또 순한글 이름 매봉도 소개하고 있는 산이다.

 

높지 않은 천금산 오름길이 생각보다 팍팍해 잠시 쉬면서 준비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흐르는 땀방울이 마르면서 한기를 느끼기에 배낭 둘러메고 다시 길을 재촉하니 이제는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경북 상주시 모서면 정산리 마을과 좁은 들판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백화산 한성봉에서 우측의 주행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마치 병풍을 두른 듯 펼쳐져 있어 사진에 담으며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완만한 내리막 등로에 무명묘지 한기가 나타나고 활엽수 낙엽으로 닾혀있는 묘지를 우회해 통과하니 나즈막한 안부 지나 등로 좌측으로 백화산 한성봉에서 주행봉으로 이어지는 확실한 모습이 두 눈에 들어 와 잠시 발걸음 멈추고 옛 추억을 떠올리며 사진 몇장 남겨 본다.

해발고도 933미터인 백화산은 충북 영동과 경북 상주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기암괴석과 수림이 어우러져 산세가 웅장하고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럽고 아름다운 산이다. 

남북으로 뻗은 날카로운 주능선 양옆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이어지고 사이사이로 아름다운 천(川)이 흘러 계절이 좋을 때는 한 폭의 그림 같은 경관을 자랑한다. 

바위가 많고 반야사 쪽으로 오르는 산 중턱에는 저승골이라 불리는 협곡도 있어 등산객의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하고 산줄기가 장쾌하여 백화산맥이라고도 부른다.

동서쪽보다 취약한 토산지역인 북쪽은 아직까지 돌로 쌓아 올린 금돌성이 남아 있어 역사의 흔적 또한 엿볼 수 있으며 백옥정, 옥동서원, 반야사 등 문화유적 답사를 즐길 수 있기도 하다.

지맥 산행이 마무리되고 나면 한가롭게 다시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만 그때까지는 들릴 기회가 없으니 이렇게 사진으로나마 대신해 본다.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조망들이 그래도 간간히 제한된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사진에 담으며 진행하니 또 다시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무명안부 지나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등로 좌측으로 여전히 제한적으로 보이는 백화산을 살펴보며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준희님이 걸어 놓은 462.1봉 이정판 옆으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긴다.

 

그 봉우리를 지나 노란색 단풍이 시야에 들어 오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드디어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서 읽었던 거대한 호두나무 농장이 펼쳐지고 좌측으로 농장을 두고 우측 가장자리로 나 있는 넓은 수렛길 같은 등로를 타고 걸어가며 진행방향인 남서쪽을 살펴보니 거대한 호두나무 농장 중앙 뒤로 442봉이 보이고 그 우측 바로 뒤 저 멀리 천관산도 보이는데 그 천관산으로 이어지는 팔음지맥 마루금은 주위 산줄기와 나뭇가지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천관산 뒤 저 멀리로는 몇해 전 어렵게 걸어던 장령지맥 산줄기들이 펼쳐져 있고 그 우측 뒤로는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도 보이기 시작해 잠시 발걸음 멈추고 그 이름들을 불러 본다.

 

호두나무 농장 가장자리로 나 있는 수 렛길 같은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 호두나무 농장 건너 좌측으로 멋진 산그리메가 펼쳐져 있는데 그중에서 사진 정중앙에 삿갓모양을 하고 있는 특이한 모습의 산이 보여 찾아보니 바로 영동군 용산면에 있는 박달산이라 생각되는 산이었다.

그 박달산을 중심으로 좌측으로는 황간과 김천 방향으로 이어지는 월류봉과 황학산쪽 백두대간 마루금도 보이고 우측으로는 영동의 백하지맥과 천태산 그리고 장령지맥의 산줄기들이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이 계속 펼쳐져 진행속도가 현저히 줄어들고 많은 사진에 담으며 천천히 걸어가니 어느덧 호두나무 농장이 잠시 사라지고 능선으로 들었다 다시 호두나무 농장으로 나와 그 끝자락으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아쉬운 마음에 뒤돌아 보니 방금 전 걸어 온 팔음지맥 마루금이 호두나무 농장을 우측에 두고 좌측 소나무 군락지와 경계를 이루며 길게 이어진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지나 온 마루금 우측으로 호두나무 과수원 뒤로는 백화산의 한성봉에서 주행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빤히 올려다 보이고 우측으로는 영동쪽 산줄기들이 여전히 아름다운 산그리메를 그리며 산객의 마음을 빼앗고 있다.

이제 둔덕으로 올랐다 내려가니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고 이곳에서 호두나무 과수원은 끝이 나고 약간의 잡목과 가시들이 앞을 가로막는 능선으로 올라 갈퀴가 나뒹굴고 있는 무명봉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나풀거리는 442미터 잡목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442봉에서 올랐던 등로를 타고 뒤돌아 내려 와 이제는 좌측 능선으로 내려가니 소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지는데 그 아래로는 키작은 잡목들이 보이는 그런 평이한 등로이다.

한동안 아무 생각없이 부드러운 솔갈비를 밟으며 소나무 등로를 타고 힐링하듯 걸어가니 무명묘지를 지나 다시 소나무와 참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등로로 이어간다.

잠시 후 전주이공 묘지를 지나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가 줄어들고 키 작은 밤나무와 잡목들이 늘어나며 이 산객의 배낭을 잡아채고 있어 조금은 신경이 쓰이는 등로로 바뀌었다.

 

이어지는 잡목봉을 지나니 또 다시 전주이공 묘지가 나타나고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여유롭게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 벌목되었는지 갑자기 키 큰나무들이 사라지고 시원한 조망과 풍경들이 펼쳐져 있다.

가까운 곳에 옥천군 청산면의 목동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좌측 가까운 곳으로 일봉산과 대왕산 및 삼승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뚜렷하고 우측 뒤 저 멀리로는 금적지맥과 장령지맥 산줄기 우측 뒤로 구병산과 속리산이 살짝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한동안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 본후 잡목들을 헤치며 조금 더 걸어가니 전주이공 가족묘들처럼 보이는 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고 그곳을 지나 소나무 등로를 지나니 또 른 전주이공 묘지 한기가 보인다.

묘지를 지나 리끼다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으로 분홍빛 진달래가 계절을 잊은 채 화사하게 피어 있는데 누군가의 노래처럼 세상이 왜이런지 모르겠다.

부디 내년 봄 정상적인 계절에 다시 피어 나 고운 자태를 뽐 낼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진달래꽃을 살펴보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잘 관리되고 있는 커다란 능성구씨 묘지가 보이고 또 다시 나타나는 무명묘지 2기를 통과하니 솔갈비를 덮고 있는 무명 묘지 한기가 보인다.

그러고 보니 이곳 산에 명당이 많은지 진행하는 내내 많은 묘지들을 만나 묘지 투어를 하듯 걸었던 구간이었다.

묘지를 지나 내려가니 잡목들이 보이고 잠시 후 잡목속에 방치된 묘지들 몇기가 차례로 나타나더니 도로 건너 신수나무가 보이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여 지도를 살펴보니 아무 표시가 없다.

용산면 미전리에 있는 안부로서 도로 건너에는 커다란 신수나무가 보여 예전에는 굿을 하기 위해 이용했던 곳처럼 보이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굿을 한 흔적도 보이지 않아 궁금하기만 하다.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미전리 안부를 지나 신수나무를 통과해 잡풀들이 우거진 등로를 찾아 걸어 오르니 사과 과수원이 나타나는데 사과는 이미 수확이 끝나 진행에는 큰 무리가 없지만 가을철 수확기에는 어려움이 예상되는 곳이기도 하다.

사과 과수원을 지나니 지독한 가시잡목 구간이 앞을 가로막고 발목을 잡으니 온 몸에선 고통의 신음이 흘러 나오기 시작한다.

참으로 힘들게 그 가시잡목 구간을 헤치고 오르니 완만하게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 위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300.7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무명봉을 지나 우측으로 휘어지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가시 침엽수가 눈에 자주 보이기 시작하고 능선 등로를 따라 진행하며 등로 우측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방금 전 지나 온 팔음지맥 마루금이 꼬깔 옷으로 갈아 입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지나 온 마루금을 살펴보다 보니 어느새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있고 선답자의 이정판과 띠지들이 걸려있는 308.2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추억과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많이 무덥거나 춥지 않아 산행하기 좋은 계절이지만 장시간 진행하다 보니 올굴에선 굵은 땀방울이 계속 흘러 내리고 땀방울을 닦아내다 보니 얼굴이 약간 쓰라리기 시작한다.

 

삼각점봉을 지나 멋진 솔갈비가 쌓여 있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힐링하듯 걸어가니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무명묘지를 지나 간벌목 더미가 쌓여 있는 298.9미터의 무명봉도 통과한다.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의 산행띠지가 골려있는 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고 계속 되는 소나무 등로를 찾아 전진하니 등로는 다시 좌측으로 크게 휘돌아 방금 전 지나온 등로와 180도 다르게 뒤돌아 가듯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이장된 듯한 사라진 분봉이 잇는 묘지지대를 지나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청산효목 지상공용기지국이라는 이동통신탑이 서 있고 곧이어 19번 남부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곳을 통과하는 동물이동통로가 나타난다.

그 동물이동통로로 내려가기 직전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영동군 용산면 법화리의 농공단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각호지맥의 산줄기들이 백두대간 마루금과 함께 살짝 머리를 내밀기 시작한다.

 

샘티재 동물이동통로로 내려가기 전 주위를 살펴보고 철망이 설치된 통로를 통해 아래를 달리고 있는 19번 남부로 2차선(이곳은 오르막이라 4차선)을 통과하며 샘티재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니 샘티재는 충청북도 영동군의 청산면 효목리에서 영동군 용산면 법화리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지명은 조선 후기 여러 지리지와 고지도에 정치(井峙) 또는 천치(泉峙) 등으로 기록되었다가 현재에도 다양한 명칭을 지니고 있다. 

해동지도 청산현과 영동현 경계에 정치(井峙)가 표기되어 있고 동일한 표기자가 여지도서(영동)와 대동여지도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 1872년지방지도(청산)에 천치(泉峙)가 있고 조선지지자료(청산)에 천치현(泉峙峴)이 동면 목동 앞에 있다고 기록되어 19세기 후반 경에 샘에 대한 표기가 정(井)에서 천(泉)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지명총람에는 샘티재의 이명칭으로 천고개, 천현(泉峴), 시암티고개가 제시되어 있고 지명 유래에 대해 옛날 고개 마루에 샘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다.

처음 들려보는 곳이고 지역 이름도 생소해 새롭게 알아보고 배우는 시간이 되었는데 이런 사라지는 이름들도 잘 보존하여 후대에 남겨질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샘티재 동물이동통로를 통해 19번 남부로를 통과하며 우측으로 가 도로를 살펴보니 저 멀리 료목리 방향으로 곧게 뻗어 있는 도로가 인상적이다.

효목리는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에 있는 리로서 천금산 아래 자리하고 있으며 목동저수지가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목동(목골), 새터말(새터), 효림이(효림리) 등이 있는데 목골은 옛날부터 수목이 울창하였다 하여 붙여진이름이고 새터말은 목동 동남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이며 효림이는 옛날에대추나무가 많았다고 하는데 효림과 목동의 이름을 따서 효목리라 하였다. 

 

샘티재 동물이동통로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노란 단풍이 반겨주고 사진에 담고 조금 더 걸어 올라 잡목들을 헤치고 전진하니 커다란 소나무들도 나타난다.

등로 우측으로 구병산과 속리산 방향을 살펴보고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만 보이고 아무 포ㅛ시도 없는 349.9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잠시 흐르는 땀방울을 닦고 진행을 이어간다.

 

등로 우측으로 옥천군 청산면 옥천청산일반산업단지 내 공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여 잠시 살펴보고 다시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에 깔려있는 부드러운 솔갈비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408미터임을 알리는 이정판과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진행한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408봉을 지나 좌측으로 꺽어 내려가니 약간의 잡목들과 참나무 관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그렇게 한동안 평이하게 전진하니 솔갈비가 닾혀있는 무명묘지를 지나 내려간다.

푹신한 등로를 따라 내려갔다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썩어가는 소나무 등걸 하나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에 담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무명안부 지나 또 다시 완만하게 오르고 곧이어 등로 옆으로 법화리와 한곡리가 표시된 이정표를 만나 사진에 담는다.

 

법화리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부드러운 등로를 따르니 다시 사라졌던 커다란 아카시아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더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벤취쉼터 3개가 설치되어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찾는 이 없는 벤취쉼터에는 낙엽만 수북히 쌓여있고 사진에 담고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동학역사탐방길이란 이정표가 서 있는데 천관산 정상까지는 0.4 Km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반가운 이정표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충북 옥천군 청산면 문바위골(한곡리)이 1893년 동학 제2세 교주 최시형과 지휘부가 머물며 훈련의 근거지로 삼은 곳이고 또한 이곳은 경기, 강원, 충청, 경상지역 수만 명의 동학농민군을 모으기 위해 재기포령(총동원령, 1894년 9월 18일)을 내린 역사적 장소이기 때문에 동학역사탐방길이란 산책로를 개설한 듯 보인다.

 

천관산까지 0.4 Km 남아 있다는 동학역사탐방길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약간의 조망이 열리고 살펴보니 백화산 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자세히 보려고 노력해도 나뭇가지에 막혀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고 조금 더 전진하니 생각보다 멋진 조망이 열리는데 자세히 보니 좌측 끝자락에 오늘 산행을 시작한 팔음산이 솟아 있고 그곳에서 이곳 천관산 직전으로 이어지는 팔음지맥 마루금 중간에 천금산이 나즈막하게 보이고 우측으로는 오늘 산행을 하면서 늘 옆에서 보면서 걸었던 백화산 함성봉과 주행봉 능선이 아름답게 다가 와 있다.

 

생각지도 못한 지나온 팔음지맥과 백화산을 확인하고 기분 좋게 진행을 이어가니 이제 등로 우측의 잡목 가지 넘어 저 멀리 톱날 형상을 하고 있는 구병산이 보이고 그 뒤로 우뚝 솟아 있는 속리산 천왕봉과 문장대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겹친 모습으로 이 산객을 부르고 있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에 바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많은 사진을 남기고 그 이름들을 불러준 후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등로 좌우측으로 펼쳐진 멋진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며 그 이름들을 불러주고 기분 좋게 다시 천관산을 향해 걸어가니 소나무 사이에 약간의 잡목들과 관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열리고 곧이어 전위봉 지나 참나무 낙엽 등로를 타고 빠르게 전진하니 다시 가파른 로프 오르막 등로를 지나 문바위 사랑님과 러브스토리(계화공주와 용인총각) 이정판과 정상 이정판 그리고 벤취쉼터들이 보이는 445.1미터의 천관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천관산(445.1봉)은 충청북도 옥천군의 청산면 대덕리와 영동군 용산면 한곡리 및 법화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445.1m이며 조선 시대에 관련 기록이 등장하지 않다가 조선지지자료(영동)에 천관산(天冠山)은 북일면 풍천리에 있고 북이면 대동리 한곡촌 뒤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처음으로 관련 지명이 등장한다.
한국지명총람에는 산 모양이 갓처럼 생겨 지어진 이름이라고 유래를 밝히고 있고 또 천관산(天冠山)과 함께 다른 이름 천강산(天剛山)도 소개하였는데 천강산이란 명칭은 지역주민의 천관산 발음을 한자로 옮기면서 달리 표기한 것으로 짐작된다.

정상에는 대삼각점이 중앙에 설치되어 있어 잠시 살펴보고 천관산을 출발한다.

 

억새로 유명한 장흥의 천관산은 몇번인가 들린 기억이 잇지만 이곳 충북의 천관산은 처음이고 또한 팔음지맥 산행이 아니라면 평생 들리지 무ㅗㅅ했을 정상이기에 조금 더 머물며 추억을 남기고 갈림삼거리에서 좌측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방향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며 산행을 이어간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평이한 소나무 등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왜 이런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이는지 궁금해하며 여유를 부리는데 갑자기 등로 우측으로 문바윗골과 최시형 동학교주의 인연에 대한 설명과 함께 새야 새야 파랑새야란 전래동요를 적어 놓은 설명판이 보인다.

 

이곳 옥천의 문바윗골이 동학농민군에게 얼마나 중요한 곳이었는지에 관한 설명을 다시 한번 더 읽어보고 계속 이어지는 안전목책과 로프를 타고 내려가니 솔갈비가 푹신하게 깔려있는 소나무 등로가 예쁘게 열려있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 내려가니 천관산 밤재 동학농민군 전적지 설명판과 벤취쉼터들 그리고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해 설명판을 읽어 본다.

충청도 옥천과 동학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갑오년(1894) 9월 18일 해월 최시형이 바로 이곳에서 전국의 동학도인들에게 총기포령을 내린 사건이다.

갑오년 의 1차 기포 당시 옥천군 청산면의 문바위골에 은신해 있던 해월은 전봉준의 9월 재기포에 맞춰 기존의 소극적 입장에서 벗어나 전국의 동학도들에게 총기포할 것을 명령한 것이다.

총기포 명령이 떨어진 곳이 청산이라는 사실은 동학농민혁명사에서 청산의 의의를 가장 직접적으로 손꼽게 하는 사건으로 이를 통해 동학농민혁명의 진정한 전국화가 가시화되었다.
총기포 이전에도 동학농민혁명은 전라도 이외의 경상도와 충청도 등지에서 전개되었지만 총기포를 계기로 동학농민혁명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똑같은 구호를 외치며 일원적 지도(해월 최시형)와 다원적(지역별 전개)가 상호 교섭하며 전개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의 전국화라는 새로운 시각을 도입할 때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1895)에 국한되지 않고 그 이전인 1892년부터 공주-삼례-광화문-보은으로 이어져 온 교조신원운동(척왜양 창의운동)과 연결되고 갑오년 이후 한국사회의 자주적 변혁운동과도 이어질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동학농민혁명 당시 대접주 중 생존자들이 천도교를 중심으로 재결합되고 계승되어 3.1운동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였던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동학(농민)혁명의 혁명적 의의가 비로소 새롭게 조형되고 그것이 곧 동학농민혁명의 세계화와 미래화를 기약하는 기본 토대가 되는 것이다.

 

안부에서 물 한모금 마신며 갈증을 달래고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잎이 노랗게 변해가는 낙엽송들도 가끔 보여 더욱 운치있는 등로를 만들고 다시 조금 더 경사도가 심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굵은 땀방울을 흘리다 보니 커다란 참나무에 준희님이 407봉이란 이정판을 걸어 놓은 봉우리에 도착을 해 심호흡 한번 해 본다.

 

이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고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올라 커다란 소나무 두그루가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다시 멋진 노란 잎새가 환상적인 낙엽송 등로를 살펴보며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니 경사도가 급해지며 금새 굵은 소나무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도상 358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긴다.

 

그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다시 90도 꺽어 진행하니 폭신한 솔갈비가 깔려있는 소나무 등로가 아름답게 열리고 잠시 후 활엽수 등로로 바뀐 마루금엔 낙엽이 밟히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귓전을 때리고 있다.

앞으로 올라야 할 봉우리들을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며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아카시아나무들과 잡목들이 우거지기 시작하고 어렵게 그 어지러운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나즈막한 무명봉 넘어 금새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밤재에 도착을 한다.

밤재는 충북 옥천군 청산면 대덕리에 있는 고개로서 대덕리 유래를 보면 덕을 지닌 선비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 하여 대덕이라 부른다고 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대덕리는 큰 비암티(큰+뱀=大+巳) 즉 대사(大巳)라 부르고 덕우리의 덕은 고어에서 언덕이 되므로 덕(언덕)+우리(집) =언덕집이란 말이 되어 언덕위에 마을이 있다는 뜻이 되나 후에 음운 변화하면서 덕우리 또는 덕골이라 하여 이를 한자화하면서 큰덕(德)과 굴곡(谷) 즉 덕곡 이라 부르다가 두 마을을 합할 때 대사의 大자와 덕곡의 德자를 따내 대덕리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원래 계획은 오늘 산행은 이곳에서 마무리를 하려고 하였는데 시간이 오후 2시를 막 넘겼고 내일 조금 일찍 마무리하기 위해 조금 더 진행하고 싶은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져 고민하게 되는데 기다리고 있으니 빗방울이 그치고 진행에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아 도로 건너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부상고개까지 진행해 보기로 한다.

 

계획했던 장소까지 산행을 마무리한 후 조금 더 진행하기 위해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면서 정신적으로 조금은 힘든 시간이지만 내일을 위해서는 더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오르니 빗방울도 그치고 낙엽에 떨어진 빗방울들도 조금씩 말라가며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이 육신을 힘들게 만든다.

약간의 잡목들과 활엽수 관목들 그리고 소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연안전씨 묘지 지나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거칠어진 낙엽송과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굵은 땀방울을 흘리니 밤재란 종이코팅지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많이 걸려있는 363.3봉에 도착을 해ㅔ 노란 단풍나누 앞에서 추억 한장 남긴다.

 

우측으로 휘어지는 등로를 타고 약간의 잡목과 소나무가 보이는 평이한 솔갈비 등로를 따르니 다시 힐링하듯 걸어보는 시간이다.

한동안 부드러운 소나무 등로를 타고 가끔 나타나는 잡목과 활엽수 단풍들이 섞여있는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진행하니 깊은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을 장군재라 하였다.

자료를 찾아보니 장군재는 한글로 장수고개인데 옛날 옛적 이 고갯길에 도둑떼가 숨어 있다가 지나는 행인들을 괴롭혀 왔는데 어느 스님이 꾀를 내어 고개 지형이 큰 장수가 날 지형이라며 소문을 내니 도둑들도 겁을 먹고 사라졌고 장수 아이를 낳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이사를 와 마을도 커졌다는 전설이 있는 고갯마루이다.

이런 전설이 진실이든 아니든 오랫동안 지켜지고 이어져 내려가길 바래 본다.

 

장군재 안부를 지나 활엽수 관목과 바위들이 보이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낙엽송과 활엽수 그리고 잡목들이 자연의 미를 발산하는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거대한 칡넝굴 지대가 보이고 어렵게 그 칡넝굴을 뚫고 지나니 거대한 아카시아나무와 쓰러진 고사목들이 펼쳐진 등로를 만나고 그곳을 어렵게 빠져 나가다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는 선답자의 산행 띠지들을 확인하다보니 이곳을 360미터의 관봉이라 하였다.

하지만 다음지도에는 이곳을 관봉이라 표기를 하였는데 어느것이 맞는지 헷깔리기만 하다.

 

쓰러진 고사목이 있는 아카시아 등로에 안산이라는 띠지를 확인하고 계속 이어지는 잡목과 아카시아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약간의 조망이 열리는데 나뭇가지에 막혀 선명하지는 못하다.

이리 저리 잡목들을 헤치고 가시나무들을 피하며 힘들게 오르니 도상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어느 선답자는 이곳을 386.8미터의 초봉이라는 종이코팅지를 걸어 놔 지도를 확인하니 다음지도에는 초봉으로 표기된 봉우리이다.

부러진 고사목과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를 확인하고 지도까지 살펴본 후 물 한모금 마시며 갈증을 풀고 다시 진행을 이어간다.

 

초봉이라는 386.8봉을 지나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찾는 사람이 없었는지 나뭇가지들이 우거지고 가시잡목들이 옷깃을 사로잡아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빛바랜 선답자의 띠지들을 확인하고 천천히 진행하니 붉은 노끈이 묶여있는 무명봉을 넘고 우측으로 휘어지며 걸어가니 잡풀들이 우거진 태안박공 묘지가 보이는 386.8봉에 도착을 한다.

지도 표기상으로는 이곳이 386.8미터의 초봉이 맞을듯 싶은데 선답자가 걸어 놓은 종이코팅지가 마음에 걸려 어느곳이 진짜 초봉인지 확신이 없다.

 

관리가 안된 잡풀이 무성한 386.8봉을 지나 잡목들과 소나무가 혼재되어 있고 등로에는 커다란 고사목이 널부러져 있는 솔갈비 등로를 따라 조심하며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거대한 아카시아나무 등로로 변하고 가시를 조심하며 천천히 진행하니 커다란 나뭇가지에 이곳이 381미터의 작은초봉이라는 종이코팅지가 붙어 있는데 봉 따먹기의 대가이신 선답자가 걸어 놓은 이정판이기에 맏을 수가 없어 그냥 381봉이라 부른다.

 

그 381봉을 지나 여전히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점점 잡목들이 거칠어지고 나뭇가지 사이로 진행방향의 팔음지맥 산줄기 상 올망졸망한 연봉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발걸음 멈추고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마루금을 확인해 보니 오늘 코스는 갈지자로 왔다리 갔다리 이어지고 보이는 저 연봉들은 내일 걸어야 할 팔음지맥 마지막 등로 상 봉우리들이다.

 

어렵게 진행하면서도 앞으로 보이는 멋진 조망들을 살펴보며 그 이름을 불러주다 보니 체력적인 어려움도 잊은채 즐기려고 노력해 보는 시간이다.

계속 이어지는 커다란 아카시아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가시나무들이 앞을 가로막고 태클을 걸기 시작한다.

그래도 천천히 조심하며 진행하니 가시잡목이 사라지고 밀양손씨 묘지를 지나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338.2 무명봉에 도착을 해 한숨을 내쉬어 본다.

 

무명봉 지나 우측으로 휘돌아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금적지맥 산줄기들이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진행 방향으로 화려하게 변해가는 등로를 조망하고 걸어가니 등로 옆으로 37번 송전탑이 서 있고 그 송전탑을 지나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공장건물이 내려다 보이는데 기계음소리가 요란하고 역한 냄새가 등로를 휘감고 있는데 잠시 후 안부에 도착을 한다.

지도를 찾아보니  청성농장으로 가축을 기르고 있는 양계장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역한 냄새가 나는 청성농장으로 통하는 무명안부를 지나 오르니 아카시아나무 등로가 열리더니 금새 소나무 등로로 변하고 있다.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을 확인하며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커다란 아카시아나무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정상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여유롭게 걸어 내려가니 가느다란 나뭇가지의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작은 소나무들이 보이고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383.3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하면서 지도를 확인한다.

 

그 383.3봉을 지나자마자 눈 앞에 드넓은 소나무 조림지가 펼쳐지고 진행방향을 살펴보니 조림지 좌측 경계를 타고 413.6봉이 올려다 보이고 등로 우측 아래로는 민가인지 아니면 창고인지 모를 건물이 보이는데 강아지 한마리가 이방인의 출현에 울부짓고 있다.

그곳에서 등산복에 붙어있는 도깨비 방망이 가시들을 떼어내고 잠시 쉬면서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면하고 진행을 이어간다.

진행에 앞서 등로 우측으로 멋진 풍경이 펼쳐져 있어 살펴보니 바로 앞으로 조천리 국사봉이 보이고 그 뒤로 보청천 하ㅣㅂ수점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상 두루봉과 가운데날산 지나 우측 뒤로 합수점을 보지 못한 금적지맥의 마지막 산줄기가 보인다.

아마도 다시 내려오게되면 저 산줄기를 타고 보청천 합수점으로 걸어 보고 진행하다 남아 있는 금적지맥을 깨끗하게 마무리하고 올라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더 멋진 조망을 즐기고 체력을 보충한 다음 베낭 둘러메고 천천히 소나무 조림지 좌측 경계를 따라 진행하니 도깨비 방망이 풀이 가시열매를 벌리고 힘든 산행을 강요하고 어렵게 그 가시지대를 벗어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봉 따먹기의 대가이신 서래야님이 이곳을 383.3미터의 작은조천봉이란 종이 코팅지를 붙여 놨는데 지도를 찾아봐도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봉으로 383.3봉은 바로 직전 잠시 쉬었던 봉우리가 맞다.

 

무명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다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소나무 조림지 좌측 경계를 따라 413.6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고 그 봉우리 좌측으로 이어지는 팔음지맥 마루금이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 우측 아래에서 들려오는 강아지 울음소리에 신경을 쓰며 조심스럽게 그 무명봉 지나 우측을 살펴보니 낡은 지붕을 한 건물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데 강아지는 보이지 않는다.

 

소나무 조림지를 타고 도깨비 방망이 가시열매를 조심하며 진행하니 여전히 강아지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신경을 쓰며 걸어 오르다 피부를 자극하는 가시로 인해 잠시 배낭 내려 등산복에 붙어 있는 가시들을 떼어 낸 후 활엽수 관목들이 자라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그렇게 오르다 등로 우측으로 이동해 뒤돌아 보니 바로 앞 나즈막한 무명 산줄기 넘어 광주리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가 솟아 있고 그 뒤 저 멀리 금적지맥 마루금도 겹쳐 보이기 시작하지만 머리만 보일 뿐이니 이름까지 부르기엔 역부족이다.

 

다시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해 오르막 등로를 타고 굵은 땀방울을 흘리니 금새 커다란 소나무에 준희님이 413.6봉임을 알리는 이정판을 걸어 놓은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이곳이 신산경표 상 날머리인 구금강2교와 조청천과 금강이 만나는 고당리 합수점으로 가는 산줄기가 분기되는 지점으로 이곳으로 내려오기 전 고민하다 신산경표의 산줄기를 따라 진행하기로 했기에 좌측 능선을 따라 진행을 이어가기로 한다.

 

그래도 약간은 아쉬운 눈길로 우측으로 이어지는 고당리 합수점으로 연결되는 등로를 보내고 활엽수 낙엽이 수북하게 깔려있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선답자의 산행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 지나 급경사 내리막 등로가 이어진다.

많은 활엽수 낙엽과 약간의 바위들이 깔려있는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등로는 왜 그리 미끄러운지 너무나 힘들게 전진하고 잠시 후 내리막 등로가 ㅡㅌ나는 지점에 여흥민씨 묘지가 나타난다.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따르니 묵묘를 만나고 다시 소나무 등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방금 전 걸어 넘어 온 마루금과 송전탑 37번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등로 좌측 위로 지나 온 팔음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무명안부 지나 짧은 평이한 등로를 통과한 후 성황당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작은 자갈들과 신수들이 보이는 고갯마루이다.

성황당고개 우측으로는 영동군 용산면 부상리 윗도내마을로 내려가는 고개인데 이다. 웃도내는 도내 위쪽에 있는 마을이며 큰골은 인가가 넓게 흩어져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성황당고개를 지나 활엽수 낙엽이 깊게 깔려 있는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약간의 잣나무가 나타나고 커다란 활엽수가 서 있는 등로를 지나 잡목들이 보이는 오르막 등로로 이어진다.

잠시 낙엽이 쌓여 미끄러운 오르막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중앙에 마모된 삼각점이 박혀있고 한쪽에는 백두사랑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정상 이정판이 걸려있는 340.6봉에 도착을 해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기며 남아 이는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다.

 

마지막 340.6 삼각점봉을 지나니 커다란 바위들이 흩어져 있는 등로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고사목봉을 넘으니 바위와 노란단풍이 보이는 361.6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용산면 택시에 전화를 하니 보상고개까지 15분이면 올 수 있다는데 토박이라며 지리를 잘 알고 있어 정확하게 부상고개에서 기다리겠다고 알려오지만 믿을 수 없어 정상적인 속도로 진행을 한다.

잠사 후 등로 우측으로 플랭카드를 모아 출입금지 지역을 구분해 놓은 등로를 만나고 바위봉을 지나 조금 더 빨리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녹슨 철사에 지워진 하얀 판이 걸려있는 마지막 부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택시 기사에게서 전화가 와 받아 보니 벌써 부상고개에 도착을 했다는 소식이다.

 

이제 어둠이 시작돠는 시간이고 택시가 미리 와 있다고 하기에 빠르게 걸어 비포장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금새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부상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부른 택시가 정말로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부상리는 충청북도 영동군 용산면에 있는 리로서 용산면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뒤로 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으며 앞으로는 내천이 흐르는 벼와 포도를 주로 재배하는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부상골(부상동), 들말(평촌), 도내(도천), 웃도내(상도천), 큰골(대곡) 등이 있는데 부상골은 마을이 동쪽을 향해 있어 해 뜨는 것이제일 먼저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들말은 들에 있는 마을로 땅이 평평하여평촌이라고도 한다.
웃도내는 도내 위쪽에 있는 마을이며 큰골은 인가가 넓게흩어져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고 문화유적으로 민대혁 효자문이 있다.

남아 있는 식수 한통으로 목마름을 달래고 택시를 이용해 큰곡재로 이동을 하니 벌써 어둠이 짙게 깔리고 택시기사님에게 추천을 받아 청산면에서 하룻밤 묵기로 하고 부상고개는 내일 새벽에 다시 올라오기로 한다.

 

하지만 청산면으로 들어가며 여관에 전화를 하니 모두 만실이 되어 시간이 필요하다기에 가까운 다른 도시로 이동하려고 확인해 보니 거리가 만만치 않아 한시간을 기다렸다 배정 받은 여관방이 담배 냄새에 찌들어 있고 위풍이 세 하룻밤 지내기도 부담스럽지만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물도 잘 나오지 않는 목욕탕에서 어렵게 샤워를 마치고 가까운 갈비탕 식당에서 맥주 한병에 저녁을 해결하고 여관으로 돌아 와 사진 정리한 후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아침 택시가 걱정이 되어 청산과 용산 그리고 이안 택시에 전화를 해 어렵게 이안택시와 6시 30분에 날머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니 마음 편히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내일 하루 더 머물며 남아 있는 구간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대전 처갓집으로 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201106 팔음지맥 제2구간 큰곡재-부상고개 고도표.jpg
0.30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