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경상북도 상주시와 충청북도 옥천군의 팔음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0년 05월 12일 (화요일 당일산행)
산행날씨 : 미세먼지와 아침까지 안개로 시야가 가렸지만 강한 바람으로 계절에 비해 시원하게 진행된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15도에서 영상 26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화서119안전센터-상현무동길 1차선 포장도로-상현무동길 시멘트 포장도로-백운사-능선진입-전망바위-591.4봉(팔음지맥 접속)-
봉황산(740.6봉, 팔음지맥 분기점, 정상석과 관기303 삼각점, 백두대간 안내판과 봉황산 설명판, 원형벤취쉼터)-헬기장-폐 헬기장-
591.4봉(통덕랑 묘지, 백운사 갈림삼거리)-무명묘지 안부-바위암릉 우회등로-갈림삼거리 안부-산불났던 등로-435.4봉-창령성공 묘지2기-
민가-상현무동길 1차선 포장도로-무동저수지-25번 영남제일로 2차선 포장도로(상현2리 표지석, 백운사 입간판)-효자로 2차선 포장도로-상주시
기술농업센터 농기계임대사업장 화령분소-당진영덕고속도로 통과-달천1리(새말) 버스정류장-달천정미소 버스정류장-분재형 소나무(효자정재수
기념관 2.5 Km 이정판)-달천2리 버스정류장-금산2리(산수동) 버스정류장-황산길 1차선 포장도로(사산1리 누리미)-사산1리 표지석-사산1리
버스정류장-도림사 입구-과수원 밭 경작지-무명묘지2기-능선-539 무명봉-천택산(683.7봉, 관기22 삼각점, 헬기장)-바위암릉 우회(3지점)-
613.4 무명봉-무명안부-587봉-무명안부-484.8봉-무명묘지1-416.6 무명봉-묘지들-민가와 과수원-개티재(원정소곡로 2차선 포장도로)-
나무계단-441 공터벤취쉼터2 무명봉-493.9봉-달성서공과 밀양박씨 묘지-464.2 무명고사목봉-무명묘지1-무명안부-584.1 삼각점봉(관기308
삼각점, 무명묘지1)-523.6 무명봉-무명안부-정안이씨 묘지-무명안부-벌목지-421.4 무명봉(능선진입)-무명안부-406.5 무명봉-114 송전탑-
길주의(390.2 무명봉, 우측)-어만각재(시멘트 포장도로와 비포장임도 경계)-낙엽송 등로-잣나무 등로-비포장임도 안부-낙엽송 등로-525.7봉-
538.5 무명봉-614.3봉-577.7 무명봉-큰곡재(팔음로 2차선 포장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오르막 등로에서 힘들었지만 중간에 도로를 타고 진행하는 구간이 있어 여유롭게 진행하여 22.40 Km (스마트폰의 Oruxmaps와 트랭글 기준)
산행트랙 : 20200512 팔음지맥 제1구간 봉황산-큰곡재.gpx
산행시간 : 새벽부터 일찍 시작해 강한 바람으로 예상보다 일찍 진행하여 09시간 (05시 34분부터 14시 35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3:10 집에서 화서119안전센터를 향해 애마로 출발
05:30 화서119안전센터 주차장에 애마 주차 후 산행 준비
05:34 산행 준비 후 바로 옆 상현무동길 1차선 포장도로 타고 곧바로 산행 시작
올때 - 14시 32분 큰곡재 팔음로 2차선 포장도로에서 산행 종료
14시 35분 조금 일찍 도착한 화령개인택시로 화서119안전센터까지 이동 (화령개인택시 : 010-4858-2595, 25,000.-)
15시 10분 화령목욕탕에서 샤워와 환복 후 약속된 손님 만나 일 마치고 귀가 후 둘째 아들 생일 파티
팔음지맥이란 ???
팔음지맥은 백두대간의 봉황산(740.8봉)에서 분기하여 남서진하며 25번국도와 청원상주고속도를 건너 비산비야의 낮은 지대를 지나 천택산(683.9봉)을 일구고 팔음산(유명산, 762.3봉), 천금산(464.9봉), 천관산(445.4봉)을 지나 영동터널을 통해 경부고속도를 통과하여 철봉산(449.5봉), 고수봉(297봉)을 거쳐 다시 금강터널위를 통해 경부고속도로를 통과한 후 금강2교가 있는 금강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57.7 Km의 산줄기를 팔음지맥이라 한다.
보청천(72.1 Km)의 우측이자 초강(66.3 Km)의 북쪽 분수령이 되며 두강은 모두 금강에 흘러들어 그 세를 더해주는데 보청천과 초강이 금강과 만나는 합수점이 아닌 가장 금강으로 그 맥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수계 분류의 산줄기 체계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산줄기이기도 하다.
갑자기 생긴 일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팔음지맥 마루금 산행을 마치고 약속된 일까지 잘 마무리하며 기분 좋게 뽕도 따고 님도 만났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팔음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충청북도 옥천군과 경상북도 상주시 및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및 네이버의 지식백과와 다음의 백과사전 그리고 산림청과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예기치 못한 COVID-19로 인해 지난 겨울은 호남지방의 나즈막한 산줄기를 찾아 가시잡목이 기승을 부리기 전 20여 지맥을 마무리하고 남아 있는 15개쯤 되는 지맥 마루금은 내년으로 미루고 다시 충청과 경상도 쪽 산줄기를 찾다 보니 집에서 가까운 거리의 산줄기는 모두 올랐고 거리가 먼곳이라도 교통편이 좋은 곳부터 오르다 보니 이제부터 진행해야 할 마루금은 대중교통 편을 알아보는 것이 고난의 연속이다.
거리가 가까워도 등곡이나 연비지맥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까다로워 택시를 이용해도 되겠지만 특히나 등곡같은 경우 택시도 없어 고민이 시작되는데 마침 평일 오후 늦은 시간에 상주쪽에 일이 생겨 내려가려고 보니 하루가 그냥 깨지게 생겨 주위 산줄기를 찾아보니 팔음지맥이 보여 새벽같이 내려가 생각지도 못한 팔음지맥 첫구간을 마무리하고 일도 본 일석이조의 뽕도 따고 님도 만난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이제 남아 있는 구간은 두구간으로 나눠 진행하면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가능하기에 마음이 편해지지만 역시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까다로워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마음 편히 택시를 이용해 가능하면 빨리 마무리를 한 후 금적지맥 마지막 3 Km도 획인하고 올라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새벽부터 불어오는 살랑바람이 고맙기는 하지만 봉황산 분기점으로 오르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에서 등산복은 이미 흥건히 젖어들기 시작하고 그 이후로 펼쳐지는 비산비야의 도로를 따라 도림사 앞까지 이동한 후 다시 철쭉나무가 등로를 가득 메운 오르막 등로를 타고 힘겹게 오르니 좁은 헬기장과 삼각점이 전부인 천택산 정상에 도착을 해 진행 방향인 남쪽을 살펴보니 환상의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팔음산 좌측으로 백화산의 한성봉에서 주행봉으로 이어지는 한문의 한일자 능선이 그 옛날 고운 추억을 남겼던 시절을 떠 올리며 잠시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이제 산하는 완전한 성하의 계절로 접어 들었음을 알리면서 연두빛에서 초록으로 변해가는 가장 아름다운 극치를 보여주고 있어 바쁜 걸음이지만 한동안 말없이 그 황홀경에 빠져보는 시간은 그저 꿈결속을 헤매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천택산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진행 방향으로 펼쳐진 조망과 풍경의 황홀경에 빠졌다 어렵게 빠져 나와 거친 바위암릉을 우회하니 다시 부드러운 참나무 등로가 열리고 무심으로 힐링하듯 걸어가니 첫구간 나누기로 많이 이용되는 개터재에 도착을 해 잠시 고민하다 시간이 충분하기에 다시 올라 굵은 땀방울을 등로에 뿌리며 길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드디어 584.1 삼각점봉에 도착을 하고 추억 한장 남기고 내려가다 등로 우측을 보니 방금 전 어렵게 올랐다 내려 온 천택산 좌측 뒤로 충북알프스를 이루고 있는 구봉산의 남성미 넘치는 암릉이 톱날처럼 날을 세우고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모습이 다시 산객의 마음을 붙잡고 늘어진다.
몇번인가 올랐던 구병산이지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탓인지 모습을 보니 다시 그리워지기 시작해 조만간 한번 들려야 할 것 같다.
그 584.1 삼각점을 지나 이제 마지막 614.3봉만 넘으면 되기에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진행하니 큰 오르내림 없는 초록으로 물들은 등로를 따라 힐링하듯 이어진다.
그렇게 한동안 막혀있는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벌목지대가 펼쳐지고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벌목지대 넘어 저 멀리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팔음산이 지척으로 다가 와 있고 그 좌측 뒤로 일부가 숨어 있는 백화산의 한성봉쪽 주봉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제 목표로 한 큰곡재까지 멀지 않았음을 직감하는데 이곳부터 614.3봉 지나 큰곡재까지도 몇개의 무명봉이 까칠하게 솟아 막판 정신력을 시험하고 있어 힘들게 첫 구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지난 주말과 휴일은 산행을 하지 못하고 마음껏 먹고 놀다보니 몸무게가 늘었는지 조금 둔하다는 느낌과 소화불량으로 한주일을 보내고 다시 사무실로 출근해 일을 시작하는데 화요일 상주쪽에서 일이 생겨 오후 시간에 내려가게 되었다.
사무실에 출근했다 내려가면 하루가 그냥 지날 것 같아 주위 산줄기를 살펴보니 가까운 곳에 팔음지맥이 보이고 잠시 그곳을 들려 첫구간을 완주한 후 손님 만나 일을 보고 올라오면 긴 하루가 될 것 같아 계획을 잡아 보는데 역시나 교통이 문제이다.
오늘은 산행이 주가 아니라 일이 주가 되는 평일이기 때문에 새벽 일찍 내려 가 화서면에 주차시키고 걸어서 팔음지맥 분기점인 봉황산까지 왕복으로 다녀 와 진행하기로 하는데 내려가 주차할 공간을 확인하다 보니 마땅치 않아 백운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화서119안전센터의 넓은 주차장에 주차시키고 산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화서119안전센터에 애마를 잘 주차시키고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상현2리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니 마을 우측 뒷편으로 잠시 후 올라야 할 팔음지맥의 591.4봉 우측 뒤로 봉황산이 살짝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고 그 풍경을 사진에 담으며 걸어가니 하늘엔 아직도 먹구름이 두껍게 드리워져 있어 비에 대한 걱정도 앞서는 시간이지만 이미 비가 그치고 오늘 날씨는 좋다고 했으니 구라청을 한번 믿어 보는 시간이다.
도로는 저 앞 민가가 보이는 곳 바로 앞에서 우측으로 나 있는 좁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백운사 방향으로 걸어 오르며 산행이 이어진다.
계속 이어지는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상현리 민가들이 가깝게 눈에 들어 올쯤 민가 우측 옆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이제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도로를 따른다.
잠시 더 들어가니 초파일에 걸어 두웠던 등들이 아직도 길게 걸려있고 잠시 후 작은 플랭카드가 걸려있는데 참 좋은 인연이라는 글귀가 새벽부터 이 산객에게 큰 깨우침을 전해 준다.
그렇게 잠시 더 오르니 경사가 급해지면서 작은 백운사에 도착을 해 조용한 대웅전을 사진에 담고 운동을 하고 있는 주민들과 잠시 인사를 나눈 후 백운사 우측 뒤로 나 있는 가파른 소나무 등로를 타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해 본다.
능선으로 들어가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는데 생각보다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져 초반부터 굵은 땀방울이 흐르며 등산복을 흥건히 적신다.
잠시 후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이 편한 등로이지만 직진으로 올라 짧게 오르려고 진행하니 바위암릉이 앞을 가로막아 어쩔 수 없이 우측으로 트래버스 하듯 이동해 짧은 바위너덜길을 지나 편안하고 뚜렷한 등로를 만나 좌측으로 걸어 오른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바위가 보여 잠시 들려보니 시원한 조망과 풍경이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이름들을 불러 본다.
화서면 상현리와 상곡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우측 뒤 저 멀리 소머리산과 숭덕지맥의 채릉산 및 노악산이 솟아 있는 모습이 보이고 그 좌측인 동쪽 뒤 저 멀리로는 숭덕지맥 마루금과 무명봉들이 강렬하게 떠 오른 태양이 숨어 있는 구름 사이로 펼쳐져 있다.
눈을 남동쪽으로 돌리니 화서면 신봉리인 화령의 시가지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백두대간 상 쌍봉으로 보이는 윤지미산을 가운데 두고 좌우측으로 나즈막하게 이어지는 마루금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윤지미산 좌측으로는 나즈막한 안부처럼 잘록한 회룡재가 보이고 그 뒤로 숭덕지맥의 소머리산과 채릉산이 보이고 윤지미산 우측 아래로는 산봉산과 무지개산 및 원통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끝자락으로 신의터재가 잘록하게 보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화서면을 동쪽으로는 백두대간이 서쪽으로는 이 팔음지맥이 감싸듯 울타리를 치고 있어 아담하게 내려다 보이고 포근한 풍경이다.
그렇게 동쪽으로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을 감상하고 그 이름들을 불러 준 후 진행 방향인 남남서쪽을 살펴보니 바로 앞 나무들과 능선에 가려 팔음지맥 마루금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전망바위를 나와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통덕랑이라는 비석과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묘지가 보이는 591.4봉에 도착을 하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독도님은 이곳이 591.4봉임을 알리는 글씨도 적어 놨다.
드디어 팔음지맥 마루금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바위 뒤에 배낭을 숨기고 모바일 폰과 스틱만 들고 우측인 북쪽의 팔음지맥 분기점인 백두대간 상 봉황산으로 빠르게 진행한다.
이곳 591.4봉부터 팔음지맥 분기점인 봉황산까지는 내려오며 팔음지맥 산행으로 정리하기로 하고 빠르게 걸어 오르니 드디어 10여년 전 올랐던 740.6미터의 봉황산 정상에 도착을 해 잠시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으며 옛 추억에 젖어 본다.
이곳 상주시에 있는 봉황산에 관한 자료가 보이지 않아 정상에 있는 설명판을 읽어 보니 봉황산은 경상북도 상주시의 북동쪽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740.6미터이며 남쪽은 석천 연안의 평야를 분지상으로 하는 하나의 모식적인 산간분지이다.
봉황산은 1300여년 전 봉황새가 날아들어 30여년 간 살았다는 전설이 있으며 정상이 봉황 머리를 빼어 올리고 양 날개를 펼친 봉황과 같다하여 봉황산이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또한 중종의 태를 묻었다는 전설에 힘입어 마을에서 태봉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백두대간 산행을 하면서 두어번 오른 기억이 있는데 늘 이 봉황산은 새벽에 올라 와 어둠속에 조망도 없거나 짙은 안개로 정상석만 사진에 담고 내려갔던 기억이 생생한 곳으로 남아 있는데 그때만 해도 이곳에서 남쪽으로 분기하는 팔음지맥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난 시절이었다.
봉황산 정상에는 아담한 정상석이 보니고 그 뒷쪽으로 뽑혀 누워있는 삼각점이 보이는데 뒤에 서 있는 설명판을 보니 관기303이란 3등 삼각점이 존재하고 그 앞으로는 구멍이 난 원형 벤취가 놓여 있다.
그 북쪽으로는 봉황산과 백두대간 설명판이 서 있고 좌측인 남쪽으로는 상주시의 백두대간 안내편이 서 있는데 그 우측 옆 참나무에 팔음지맥 분기점이라는 준희님 이정판이 반갑게 걸려 있어 추억 한장 남긴다.
오늘 첫 구간을 시작했으니 앞으로 두 구간을 더해 총 3구간으로 진행하면 여유가 있을 듯 싶다.
봉황산 정상부를 사진에 담고 제일 먼저 서쪽을 살펴보니 팔음지맥 서쪽의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무명 능선이 남쪽으로 흘러 내려가고 그 뒤로 보여야 할 구병산 능선이 하얀 구름 아래 머리가 보일듯 말듯 겹쳐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북쪽으로는 백두대간 상 속리산의 우측으로 솟아 있는 우복동천의 십승지를 이루고 있는 대궐터산(청계산)의 암봉이 솟아있고 그 우측으로 흘러 내리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그 뒤 우측으로는 도장산이 보이는데 그 뒤로 보여야 할 백두대간 상 청화산은 앞 봉우리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한동안 봉황산 정상에서 제한된 시야속에 주위 풍경을 살펴보고 다시 올랐던 등로를 따라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니 등로는 좌측으로 사면치기 하듯 완만하게 내려간다.
잠시 후 바위암릉을 만나 우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하니 오를 때 만났던 헬기장에 도착을 하는데 자주 사용되지 않는 듯 주위에는 잡목들과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헬기장 추그 뒤 저 멀리로는 희미하게 천택산 줄기가 보이는데 아직은 뚜렷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헬기장을 지나 내려가다 등로 우측 앞을 보니 진행 방향으로 올라야 할 435.4봉 넘어 저 멀리 천택산과 팔음산 줄기가 보이고 사진에 담고 내려가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백두대간 상 봉황산 정상부가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다시 조금 더 평이하게 걸어 내려가니 작은 소나무들과 약간의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묵은 폐 헬기장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 한쪽에는 정비를 하려는지 보도블럭들이 쌓여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그 폐 헬기장을 지나 평이한 참나무 등로를 타고 내려가 무명안부를 지나니 짧게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배낭을 숨겨 둔 묘지가 보이는 591.4봉에 도착을 해 좌측의 백운사에서 올라오는 길목에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는 방향을 사진에 담아 본다.
잠시 배낭 찾아 물 한모금 마시고 주위 사진을 남긴 후 이제부터 우측의 등로를 타고 팔음지맥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내려가니 평이한 참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가운데에 작은 바위가 박혀이는 제법 넓은 공터처럼 보이는 곳이다.
움푹 패여있는 곳을 지나 둔덕을 넘으니 관리되지 않고 있는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바위들이 보이는 무명봉으로 오르고 그곳에서 우측을 살펴보니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남쪽으로 흘러 내리는 무명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지며 이 팔음지맥과 평행으로 달려 내려가고 있다.
그곳에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조심하며 참나무 사이를 곡예하듯 미끄러져 내려가니 등로는 자꾸만 직진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우측으로 우회하며 크게 돌아 진행하듯 내려가는데 내려가다 보니 진행 방향 좌측으로는 위에서 보기보다 훨씬 큰 바위암릉이 보이고 그곳을 내려갈 수 없어 좌우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해야 할 바위암릉 우회 등로이다.
우측으로 돌아 내려 가 그 바위암릉을 좌측에 두고 사면치기하듯 좌측으로 완만하게 걸어가니 바위너덜지대를 지나면서 좌측 참나무 위로 방금 전 우회하며 통과한 거대한 바위암릉이 바로 지척으로 올려다 보인다.
그 바위암릉을 지나니 평이한 소나무 등로가 아름답게 펼쳐지고 잠시 무심으로 걸어 내려가며 불어오는 바람에 흘렸던 땀방울을 식히다 보니 등로 우측으로 하늘이 보이면서 약간의 조망이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살펴본다.
올품상주 공장의 거대한 빌딩이 내려다 보이고 그 앞으로 화서제2농공단지에는 공장 건물들을 신축하는 듯한 공사현장이 드넓게 이어지고 그 좌측 앞을 보니 도로로 이어지는 팔음지맥 넘어 비산비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의 신의터재 방향도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올품 상주공장 우측 뒷편으로는 도림사에서 우측 능선을 타고 가파르게 올라야 만날 수 있는 천택산이 드높게 뾰족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연봉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먹구름이 드리워졌던 하늘이 맑아지며 하얀 구름이 파란 하늘에 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마루금 위에 펼쳐져 있어 한폭의 풍경화를 수놓고 있다.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아래가 불에 그을린 듯한 모습이 보이는 소나무들이 서 있는 곳에서 등로는 뚜렷한 직진 방향의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갑자기 희미하게 이어지던 등로조차 사라져 버린다.
그곳을 지나니 다시 커다란 소나무들이 나타나고 등로가 뚜렷해지더니 좌측으로 내려갈 수 있는 뚜렷한 등로가 보이는 갈림사거리 안부에 도착을 한다.
이제 참나무와 관목 등로가 연두빛에서 초록으로 변하면서 눈의 피로를 풀어주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불났던 지역에 커다란 고사목 사이로 잡목이 자라면서 거칠은 등로가 이어진다.
조심해 오르며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만났다 내려 온 묘지가 보였던 591.4봉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사진에 담는다.
지나 온 방향으로 591.4봉에서 이곳 불난지역까지 연결되는 산줄기를 살펴보고 계속 오르니 우거진 잡목 사이로 불 탄 고사목들이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애를 먹는다.
그렇게 잠시 더 조심하며 걸어 오르니 드디어 정상부에 도착을 해 뒤돌아 보고 앞으로 전진하니 관목이 서 있는 공터 넘어 소나무들이 보이는 435.4봉에 도착을 하는데 독도님이 띠지에 해발고도를 적어 놨다.
그 435.4봉을 지나니 여전히 굵은 소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편안하게 걸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다시 조망이 열리고 잠시 살펴보니 올품 상주공장 건물과 그 앞으로 공사중인 거대한 건물들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화서제2농공단지와 상주화서농공단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바로 뒷쪽으로는 당진영덕고속도로가 펼쳐져 있으며 그 뒤로 드넓은 논과 비닐하우스 지대 넘어 백두대간의 신의터재가 빤히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면 등로 우측으로 원 팔음지맥 마루금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가 나타나지만 그곳 역시 비산비야에 최근 농공단지로 개발되어 마루금이 사라졌기에 마음 편히 좌측 무동저수지 방향으로 내려가 우회하며 진행하기로 한다.
한동안 멋진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보고 소나무와 활엽수가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편안하게 걸어 전진하니 이곳 등로는 잡목이 전혀 보이지 않아 의아하게 생각하며 편안하게 진행한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갑자기 창령성공 묘지 2기가 나타나고 바로 아래로는 민가가 들어 와 있으며 그 뒤 저 멀리 백두대간의 윤지미산이 빤히 보이기 시작한다.
묘지 앞에서 화서읍내 또는 화령방향과 백두대간 마루금을 살펴보고 조심하며 민가 좌측 언덕을 내려가니 상현무동길 1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해 진행 방향을 살펴본다.
이곳 화서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화령현(化寧縣)의 서쪽이 되므로 유래한 지명이라고 하는데 화령이란 지명은 고려사지리지에 화령군은 원래 신라의 답달비군(答達匕郡, 沓達이라고도 함)인데 경덕왕은 화령군으로 고쳤다 라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본래 조선시대 상주목 화서면(化西面) 지역이었는데 여지도서(상주)에 화서면은 관문으로부터 70리 떨어져 있다 라고 하였고 호구총수(상주)에도 화서면이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화령창(化寧倉) 바로 옆에 화서면이 표기되어 있고 청구도에는 고화령창(古化寧倉)만 표기되어 있는데 1914년 화서면을 중심으로 화북면과 내서면의 일부 동리를 합쳐 화서면으로 하여 현재의 11개 동리를 관할하게 하였다가 1986년 상주군에 속하였고 1995년 상주시에 속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곳 도로에서 잠시 지나 온 방향인 북쪽을 살펴보니 상현2리 마을 뒤 저 멀리 백운사에서 올라 만났던 591.4봉이 올려다 보이고 그 우측 뒤 저 멀리 봉황산 줄기가 살짝 머리를 내밀고 있다.
상현리는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에 있는 리로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고 고개와 골짜기가 발달한 곳이며 화령현의 위쪽이 되므로 상현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상현, 창안, 당두, 사재골, 대밭골마을 등이 있는데 상현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상현리의 그것과 같으며 창안마을은 상현리에서 중심되는 마을로 창터가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당두마을은 창안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당대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사재골마을은 절이 있던 곳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며 대밭골마을은 대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사진에 담고 뒤돌아 진행 방향으로 상현무동길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전진한다.
잠시 걸어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민가들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무동저수지에 물이 가득 담겨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는데 그 무동저수지 건너편으로 나즈막한 태봉산이 올려다 보이는데 마음 같아서는 연산군 아들의 태실이 있어 다녀오고 싶지만 오늘은 일 때문에 시간적인 제약이 있어 아쉬움만 남긴 채 지맥 산행을 이어간다.
공동묘지를 지나 화서농공단지 앞 도로로 이어진다. 취재팀은 무동저수지 둑길을 걸었다. 들판 가운데 작은 산이 우뚝 솟았다. 태봉산(343m)이다.
산과 길편에 나온 자료를 찾아보니 태봉산(343미터)은 무동저수지 건너편으로 보이는 나즈막한 봉우리로서 연산군의 왕자 태실이 있는 산이고 일제가 도굴해서 백자를 훔쳐갔다고 화서면지에 안내를 해 놓은 산이기도 하다.
정상에는 태봉정과 부도같이 생긴 돌탑이 있고 돌탑은 도토리를 닮아 앙증맞은데 안내문에는 연산군의 태실이라고 해 놓아 상주시에 확인해 보니 연산군의 아들 태실이 맞다라는 안내가 들려온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며 도로 좌측 앞을 보니 화령중고등학교 건물들이 보이고 곧이어 25번 영남제일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그 입구에는 상현2리 표지석과 백운사를 알리는 이정판 그리고 그 뒤로 화서면 홍보 구조물이 높게 솟아 있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그 25번 영남제일로를 만나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측 앞 저 멀리 은행나무 사이로 잠시 후 만나야 할 천택산 줄기가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도로 좌측으로 2차선 효자로가 갈리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살펴보니 진행 방향으로 벼육묘공장과 효자정재수기념관 및 도림사와 봉산서원 가는 이정판들이 보인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가는 25번 영남제일로 2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인 남쪽으로 분기하는 효자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가는데 원 마루금에서 벗어난 우회 등로이지만 원 등로 역시 공단지역으로 개발되어 도로를 따라 걸어가야 하니 아쉬움은 전혀 없는 시간이다.
효자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달천리 마을을 지나니 도로 우측으로 커다란 상주시농업기술센터 농기계임대사업장 화령분소가 보이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도로 옆으로 비닐을 씌운 포도 과수원들이 즐비하게 보이는데 간간이 인삼포들도 줄지어 설치된 풍경이 자꾸만 눈길을 잡는다.
도로 우측 앞으로 잠시 후 만나야 할 천택산이 뾰족하게 솟아 있는 모습도 다가오고 바로 눈 앞으로는 당진영덕고속도로가 지나는 풍경과 그 아래로 효자로가 지나는 모습도 눈에 다가온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다 도로 우측 뒤를 보니 모내기를 위해 물을 받으며 정리한 논과 그 위로 인삼포 지나 저 멀리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591.4봉부터 이곳으로 이어지는 팔음지맥 마루금이 짙은 녹색의 아름다운 빛깔을 뽐내며 아름답게 이어지고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사진에 담아 본다.
하지만 그 591.4봉 넘어 있어야 할 백두대간 상 봉황산은 앞 산줄기에 막혀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느끼며 다시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당진영덕고속도로가 지척으로 다가오고 효자로 좌측 앞을 보니 오늘 새벽에 이 산객이 내려 온 화서IC 도로표지판이 눈길을 잡는다.
이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 왕복 4차선의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전 이남 지방을 다니면서 교통 체증으로 참으로 힘들게 다니던 시절이 이었는데 이제 명절과 휴가철을 제외하면 그런 교통체증도 모두 옛 이야기가 되어가니 세월 무상도 느껴보는 시간이다.
당진영덕고속도로를 통과하고 도로 좌우측으로 펼쳐진 포도와 사과 그리고 감나무 과수원들과 인삼포 및 모내기를 위해 물을 대고 정리를 해 놓은 논들을 바라보니 문득 어릴적 시골에서의 추억이 생각 나 울쩍하면서도 웃음이 피어나는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전진하니 도로 우측으로 달천1리(새말) 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사진 한장 남기며 달천리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본다.
달천1리인 새말은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달천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새말마을은 동남쪽에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새말이 있는 달천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금강의 지류가 흐르고 봉천리, 봉성리, 금성리, 달성리 등을 병합하면서 달성과 봉천의 이름을 따 달천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갈밭골, 대평, 인경재, 금성, 새말마을 등이 있다.
달천1리인 새말 버스 정류장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낡은 가옥들과 그 사이로 펼쳐진 최신의 비닐하우스로 된 포도 과수원이 부조화를 이루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자꾸만 사진에 남기게 된다.
진행 방향으로는 계속해서 천택산 정상과 그곳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눈 앞으로 아른거리고 도로 좌측으로는 넓은 논 경작지 지나 저 멀리 윤지미산을 중심으로 좌측의 화령재와 우측의 신의터재로 이어지는 비산비야의 백두대간 마루금이 화서면을 병풍처럼 감싸고 달려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잠시 후 임시 버스정류장이라 생각되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달천정미소와 천일택배 건물이 서 있는 곳을 지나는데 정미소란 단어가 다시 고향을 떠 올리게 만들고 있다.
버스정류장을 지나 도로 좌측을 보니 민가가 사라진 드넓은 들판 넘어로는 조금 더 뚜렷한 윤지미산과 백두대간 마루금이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남기고 신의터재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니 잘록하게 패인 안부가 바로 신의터재처럼 보인다.
다시 한동안 도로를 따라 걸어가다 이제는 도로 우측의 인삼포를 살펴보니 노란 물통 넘어 저 멀리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팔음지맥 분기점인 봉황산에서 백운사 갈림봉인 591.4봉 그리고 불이 났던 잡목 구간이었던 435.4봉 지나 이곳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해 잠시 바쁜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에 담으며 추억을 남겨 본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을 사진에 남기고 다시 도로를 타고 계속 걸어가니 원 팔음지맥 마루금은 인삼포 우측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이지만 이곳 효자로와 30여미터 떨어져서 평행으로 달려가고 있고 특별히 확인해야 할 지점이나 봉우리도 없으니 오늘은 그냥 마음 편히 효자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기로 한다.
잠시 후 인삼포가 끝이나는 지점에 효자정재수기념관까지 2.5 Km 거리가 남아 있다는 도로표지판 지나자마자 도로 우측으로 송화가 활짝 핀 커다란 분재형 소나무 한그루가 눈길을 사로잡아 잠시 사진에 담다 보니 어릴적 시골에서 자라면서 마을마다 보였던 마을 지킴이 소나무들이 생각나는 시간이다.
궁금해 정재수 기념관을 찾아 보니 다음백과에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보여 정리해 본다.
효자정재수 기념관은 10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구하려다 숨진 정재수군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관으로 정재수군의 모교인 옛날 사산초등학교에 조성되어 2001년 6월 12일에 개관하였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효를 주제로 하는 효자 정재수 기념관을 경북 상주시 화서면 사산리 구 사산초등학교 (고 정재수 모교)에 건립하여 현대에 들어 잊혀져가고 있는 효사상을 재정립함과 아울러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살아있는 효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정재수군은 1974년 1월 22일 아버지 정태희 씨와 함께 경상북도 상주군(현 상주시) 화서면 소곡리의 집에서 약 12km 떨어진 충청남도 옥천군 청산면 법화리에 있는 큰집으로 설을 지내기 위해 길을 나섰다.
큰집으로 가려면 보은군 마로면에 있는 험준한 고갯길인 마루목재를 건너야 했는데 당시 이 고갯길에는 이틀 전부터 내린 눈이 33cm 가량 쌓여 있었고 기온도 영하 20℃까지 내려갔다 한다.
그 다음날 사람들은 고갯길에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였는데 부자가 동사한 상태로 땅에 움츠리고 누워 있었고 아버지의 몸에는 아이의 외투가 덮여 있었으며 아이는 아버지를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술기운이 있었던 아버지가 눈길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자 아이가 옷을 덮어 주고 몸을 일으키려 애를 쓰다가 지쳐 잠들어 결국 동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눈물겨운 이야기는 당시 여러 신문기사에 실려 전국으로 알려졌고 후에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 실렸으며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정재수군이 목숨을 잃은 고갯길인 마루목재에 묘가 만들어졌고 1974년 묘 옆으로 정재수효행비가 세워졌다.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정재수군의 효행이 점점 잊혀져가자 지역의 뜻 있는 이들이 효자정재수기념사업회를 구성하고 1993년 3월 폐교가 된 정재수군의 모교에 기념관을 마련하게 되었다.
부모에 대한 효 사상이 사라져가는 세태에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드는 효자정재수에 관한 자료를 읽으며 가족과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그곳을 지나 둔덕을 넘으니 다시 마을의 민가들이 나타나고 잠시 더 걸어 전진하니 커다란 창고형 건물 앞에 달천2리 버스정류장이 서 있고 그 좌측 옆으로는 달천2리 마을회관이란 커다란 표지석과 작은 6각정자 및 마을유래석이 서 있다.
달천2리인 임경재(인경재)마을은 전에 임씨의 정자가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으로 이곳 역시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달천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금강의 지류가 흐른다.
달천2리를 지나니 도로 우측으로 보이는 원 팔음지맥 산줄기가 민가들 뒤로 조금 더 뚜렷하게 형성되어 내려가는 모습이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데 오늘은 시간도 촉박하고 도로와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으니 아쉽지만 계속 도로를 따라 진행을 한다.
도로 좌측으로는 이제 모내기를 위해 물을 대 놓은 논 경작지가 반이고 비닐하우스로 이뤄진 포도 과수원이 반이 될 정도의 드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윤지미산이 쌍봉의 모습으로 도드라지게 솟아 있으며 그 좌우측으로 나즈막하게 흐르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이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며 오래 전 만들었던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들려주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흐르는 원 팔음지맥 마루금을 아쉬운 마음으로 올려다 보며 걸어가니 금산2리 표지석과 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민가 바로 앞 우측으로 황산길 1차선 포장도로가 갈리는 삼거리에서 이제 효자로를 버리고 황산길을 따라 진행을 이어간다.
산수동마을은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금산리에 있는 자연마을로서 봉산마을 북쪽에 있는 마을로 처음에는 강씨들이 들어와 살다가 떠나고지금은 노씨, 이씨, 박씨, 김씨들이모여살고있다.
옛날부터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라하여 산수곡(山水谷)이라 칭하게 되었고 또 이곳은 흙이 좋아 옛날부터 옹기를 구웠으며 지금도 땅을 깊이 파면 옹기조각이 나온다고 한다.
이제 황산길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남쪽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걸어가니 잘 지은 민가들이 나타나고 그 민가 옆에는 비닐을 씌운 밭 경작지들이 보이는데 농부들이 밭에 나와 모종을 심고 물도 주면서 본격적인 농사철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인사 드리고 조금 더 걸어가다 도로 우측 밭 경작지 넘어 살펴보니 천택산으로 이어지는 무명봉 넘어 저 멀리 근육질의 암릉이 울퉁불퉁 솟아 있는 구병산이 살짝 고개를 내밀며 존재감을 알려온다.
생각지도 못한 풍경에 몇장의 사진으로 남기고 민가를 지나 이방인의 풀현에 울부짖는 강아지들을 달래며 계속 걸어 전진하니 나즈막한 언덕배기 넘어 드디어 원 팔음지맥 마루금과 만나는 지점에 도착을 해 우측 마루금을 살펴보고 계속 그 황산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니 도로 끝자락 저 멀리 정면으로 잠시 후 힘들게 올라야 할 천택산 정상이 빼꼼히 이 산객을 내려다 보고 있다.
이제 산해는 완전한 성하의 계절로 달려가고 있음을 눈과 피부로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황산로 우측으로는 나즈막한 산줄기를 두고 좌측으로는 드넓은 과수원들을 살펴보며 정면으로 다가 온 천택산을 사진에 담고 걸어 전진하니 또 다시 둔덕을 넘어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가 계속된다.
한동안 더 뜨거워지는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옆으로 사산1리 표지석이 보이는데 사산리는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에 있는 리로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고 금강의 지류가 흐른다.
사곡리, 용강리, 황산리 등을 병합하면서 사곡과 황산의 이름을 따 사산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말바우, 옻샘골, 사래실, 중뜸, 황산, 방죽안마을 등이 있다.
그 사산1리 표지석을 지나 둔덕을 넘으니 사산1리 황산마을이 펼쳐지고 도로 좌측 아래로는 재실 같은 건물도 보이는데 확인은 불가능하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한가운데엔 커다란 느티나무와 좌측으로 사산1리 버스정류장도 보이는데 사산1리는 옛지명으로 황산마을을 말하며 이곳으로 들어 오는 도로명 역시 이 황산마을의 이름을 따 황산길이 된 듯 보인다.
그 갈림삼거리 지나서는 최신식 건물도 보이는데 진행하며 살펴보니 농사에 필요한 물건들을 보관하는 창고처럼 보였다.
황산마을은 경상북도 화서면 사산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큰 산 밑이 된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라는데 아마도 뒷쪽에 자리한 이제부터 이 산객이 올라야 할 천택산을 두고 한 말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다.
이제 황산마을 뒷쪽으로 올라야 할 천택산이 지척으로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황산마을을 통해 도림사 방향으로 오르니 가끔 폐허처럼 변한 가옥들이 눈에 들어오며 농촌 현실을 알려주고 아픈 마음 달래며 천천히 걸어 오르니 휴양소처럼 잘 지은 황톳집들이 나타나는데 아마도 도림사라는 절간을 이렇게 멋지게 지은 듯 보인다.
그 앞 밭 경작지에서는 중년 남성이 일을 하고 있어 방해되지 않게 조심하며 우측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묵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들어가니 등로는 다시 좌측 방향으로 휘어지며 과일 수들이 식재되어 있는 밭 경작지 좌측 가장자리로 이어지고 있다.
그 과수원 좌측 가장자를 타고 조심스럽게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여러채의 지붕들이 보이는데 절이라기 보다는 잘 지어진 휴양소 같은 건물들이 흩어져 널려있다.
잠시 후 과수원이 끝나고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오르는데 칡을 캔 흔적들이 보이고 캐다 남은 굵은 칡들도 보이는데 전국 어디를 가나 칡이 가장 왕성하게 번식되고 있는 현실을 보는 것 같다.
그곳을 지나 오르니 무명묘지 2기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잠시 자리 펴고 앉아 준비한 쑥떡과 과일로 허기를 달랜 후 물 한모금으로 흘린 땀을 보충하니 다시 떨어졌던 체력이 돌아 오는 느낌이다.
휴식 후 배낭 메고 다시 산행을 시작하며 올라 온 방향을 내려다 보니 사산리 황산마을 넘어 비닐하우스들이 보이고 저 멀리 쌍봉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윤지미산 좌우측으로 올망졸망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이제 묘지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굵은 땀방울을 흘리다 보니 간간히 피었던 철쭉들이 등로에 떨어져 봄이 가고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데 그 진달래와 철쭉나무 그리고 관목의 참나무들이 빼곡하게 자라면서 좁은 등로만 열어주고 있는 형국이다.
힘들게 관목들을 피해 이리저리 가파르게 걸어 오르니 잠시 잡목들이 사라지며 평이한 능선에 도착을 하고 편안하게 걸어 전진하니 우측에 무명봉을 두고 좌측 사면 등로를 따라 등로가 이어진다.
잠시 후 사면 등로를 지나 좌측으로 휘어지며 걸어 오르니 봉 따먹기의 대가이신 서울합정동 김신원님의 하얀색 띠지가 걸려있는 526 무명봉에 도착을 해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 오는 바람에 흐르는 땀방울을 식혀 본다.
무명봉을 지나니 조금 더 뚜렷해진 등로에는 굵은 소나무와 관목의 활엽수들이 혼재되어 있고 편안하게 힐링하듯 걸어가니 싱그러운 자연이 향기와 촉감이 부드러운 새로운 연두빛 나뭇잎들이 피부에 스치며 살아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기분 좋은 느낌으로 진행하니 조금 더 경사도가 가파라지기 시작하며 다시 철쭉 꽃잎들이 등로에 떨어져 널부러져 있는 모습들이 자주 눈에 들어오고 곧이어 거칠어진 등로 끝자락을 넘으니 좁은 헬기장 우측 한쪽에 정상판과 반대쪽으로 삼각점이 박혀 있는 683.7미터의 천택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천택산은 경상북도 상주시 화남면 임곡리와 화서면 사산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683미터이고 조선 후기의 대선사 이량박이 임실 안골을 우복동이라 불렀다 하여 산 아랫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우복길지라고 믿고 있으며 주변에는 우복동과 관련된 지명들이 많다.
일대는 석회암지대로 석회를 채굴하고 있으며 석탄을 캔 흔적도 남아 있는 특이한 지형이고 동학농민운동 때 지도부의 은신처로 사용되던 석회암 동굴인 용굴이 있다.
오래 전부터 지맥 산행을 마무리하면 십승지를 찾아 볼 계획으로 자료를 찾다 보니 이곳 화령 근방은 우복동천이라 하여 십승지 중 한곳이었음을 알았기에 이곳 천택산에서 다시 우복동을 찾게 되니 괜시리 반가움이 커진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정상판 반대쪽 헬기장 옆에 박혀있던 삼각점을 사진에 담지도 못하고 등로 좌측인 동쪽부터 진행 방향인 남쪽으로 펼쳐진 너무나 아름답고 환상적인 조망과 풍경에 취해 그냥 내려가게 되었으니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시간이다.
천택산 정상에서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헬기장 지나 좌측의 북동쪽을 살펴보니 팔음지맥 분기점인 봉황산이 좌측 끝자락으로 보이고 591.4봉과 435.4봉은 보이지 않지만 그 봉우리들을 지난 도로 구간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저 멀리 봉황산 우측 뒤로 높게 솟아 있는 산봉우리 하나가 눈에 들어 오는데 자세히 보니 좌측의 작약지맥과 우측의 숭덕지맥 사이에 솟아 있는 상주시의 남산이다.
그 우측으로는 백두대간의 회룡제 지나 화서면의 마을들이 보이고 그 뒤로 회룡제 지나 우측의 윤지미산으로 향하는 나즈막한 백두대간 산줄기가 화서면을 감싸며 남쪽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봉황산 우측으로 동쪽을 살펴보니 화서면의 넓은 들판이 멋지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내려다 보이고 그 들판 넘어 쌍봉으로 보이는 백두대간 상 윤지미산부터 우측 아래로 펼쳐진 마루금이 옛 추억을 들려주며 이어지고 있다.
우측 아래로는 앞쪽으로 떨어져 있는 원통산 우측 뒤로 신의터재로 가라앉았던 산줄기가 다시 무지개산으로 가파르게 오르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그 나즈막한 백두대간 마루금인 윤지미산 뒤로는 조만간 다시 올라야 할 숭덕지맥 산줄기가 북동쪽으로 달아나는 모습도 살짝 보이고 그 숭덕지맥에서 떨어져 있는 제법 높은 노악산 줄기도 보이는데 그 노악산 우측 아래로는 상주쪽 갑장산 줄기가 박무속에 희미하게 드러나 있다.
이제 눈을 진행 방향인 남쪽으로 돌리니 이제부터 걸어 넘어야 할 팔음지맥 마루금이 정중앙으로 높게 솟아 있는 팔음산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한눈에 펼쳐져 있고 그 팔음산 좌측 뒤로는 한일자처럼 좌우측으로 길게 펼쳐진 백화산의 무명봉에서 한성봉 지나 주행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곱게 쌓았던 옛 추억을 들추며 이야기로 들려주고 있다.
이제 시간을 보니 아침 9시 50여분을 지나고 있어 잘하면 오늘 바로 앞 개터재가 아닌 저 팔음산 직전 우측으로 움푹 패인 큰곡재까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을 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삼각점을 사진에 담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생각보다 멋진 환상의 조망과 풍경들을 감사하며 많은 사진으로 남기고 잡목들이 우거진 등로를 헤치며 좌측으로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우측으로 우회하듯 내려가는데 내려가 뒤돌아 보니 위에서 보는 것과 달리 거대한 바위암릉이 자리하고 있어 우측으로 우회하며 진행이 되었다.
다시 두번째 바위암릉을 우회하고 세번째 바위암릉을 우측으로 우회하며 내려가니 드디어 유순한 참나무 등로가 열리면서 힐링하듯 무심으로 걸어보는 시간이다.
연두빛 참나무 아래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사초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초여름 산행을 하면서 가장 자주 만나게 되는 공부는 하지 않고 게으름만 피우다가 세상을 떠난 스님이 환생했다는 전설이 있는 홀딱벗고라 부르짖는 듯한 검은등뻐꾸기 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완전한 자연속에 동화되어 홀로 서 있는 시간도 가져 본다.
발걸음은 옮기고 있지만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무심으로 걷다보니 커다란 참나무들과 작은 바위들이 보이는 둔덕봉을 넘어 금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600.4 무명봉에 도착을 해 정신을 차리니 작은 소나무 한그루가 반겨주고 지나 온 천택산이 저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무명봉을 지나니 등로는 여전히 아름다운 참나무 등로가 길게 열려있고 이름모를 산새들이 지저기는 노래소리를 들으며 힐링하듯 걸어간다.
오랫만에 산행을 하면서 다시 무아의 세계로 빠져드는 느낌으로 걸어가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으로 오르는데 언덕같은 봉우리로서 인지하지 못하면 봉우리인지도 모를 그런 곳이다.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지만 등로의 색깔을 변화시키기 위한 앵념처럼 느껴지는 순한 등로를 따르니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의 화서면 사산리와 우측의 화남면 중눌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인데 좌우측으로 사람들이 다닌 흔적은 거의 없는 무명안부이다.
그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더욱 굵어진 참나무 아래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잠시 후 잡목봉으로 오르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며 이어지는데 갑자기 잡목들이 사라지며 관목의 참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 찬 모습의 등로이다.
다시 자연속 동화의 나라에 방문한 기분으로 즐겁게 걸어 내려가 안부같지 않은 안부를 지나 커다란 참나무들이 보이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에 해발고도가 적혀있는 587봉에 도착을 한다.
선답자의 산행 띠지 이외에는 표식이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587봉을 지나 다시 이어지는 산행을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중눌리 마을이 너무나 아름답게 내려다 보여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사진에 담아 본다.
중눌리는 경상북도 상주시 화남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 뒤로 천탁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으며 앞으로는 작은 개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기와집골(와가동), 눌리, 눌하(상눌리), 먹뱅이(소정이,송정,송성리), 수봉 등이 있는데 눌리는 중눌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눌리 위쪽에 있는 마을을 눌하, 또는 상눌리라 하였고 기와집골은 옛날에 기와집이 있었다고 하며 먹뱅이는 큰 소나무 정자가 있어 소정이, 송정이라고도 부른다.
수봉은 수봉이재 아래 위치한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며 눌리 중간이 되므로 중눌리라 이름하였다.
일이 아닌 순수한 등산으로 내려왔으면 저 중눌리를 통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진행을 했겠지만 오늘은 경비가 중요한 것이 아닌 시간과의 싸움이다 보니 목적지까지 가 화령택시를 이용하기로 했기에 중눌리에서의 추억은 만들 수 없게 되었다.
아름다운 중눌리를 내려다 보고 한동안 평이하게 이어지는 참나무 등로를 따라 무심으로 걸어가니 제법 움푹 패인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보는 것과 달리 무명의 안부이다.
그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약간의 칼등같은 등로가 이어지고 잡목도 거의 사라진 편안한 등로를 따라 전진하니 금새 선답자의 산행 띠지에 이곳이 484.8미터 봉우리임을 알리는 표식이 걸려있는 소나무 봉우리에 도착을 한다.
띠지가 없었으면 봉우리라고 인식도 못하고 지나쳤을 것 같은 봉우리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진행하니 바위 사이에 뿌리를 박고 힘들게 살아가는 활엽수 한그루가 눈길을 잡는데 사는 것은 고단해도 인간들에게 쓸모가 많지 않으니 수명은 길게 이어갈 것 같다는 느낌도 가져 본다.
한동안 평이한 칼등 등로를 따르니 썩어 무너질 것 같은 고사목이 보이는 무명봉을 넘어 우측으로 등로가 휘어져 이어진다.
등로는 여전히 뚜렷하고 눈에 좋은 푸른 참나무 앞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거리는 춤사위를 살펴보며 기분 좋게 전진하니 묵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짧게 지나 좌측 잡목 등로로 오르고 곧이어 무명묘지 한기를 넘어 오르니 참나무들이 보이는 409.6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무명봉을 지나니 무명묘지들이 줄지어 나타나기 시작하고 몇기의 묘지들을 지나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민가 한채와 넓은 사과 과수원이 내려다 보이는데 지도를 보니 바로 아래가 바로 개터재 2차선 도로이다.
지도를 보니 원정소곡로 2차선 포장도로로서 지명은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우측 가까운 곳에 개터재라는 지명이 나와 있는 것으로 봐 이곳을 개터재 고갯마루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상주시 화남면 지명유래란에서 자료를 찾아 보니 개티재는 중눌리 눌하마을에서 소곡리로 넘어 가는 개티골에 있는 고개로서 백석(흰 돌)이 많다고 한다.
개(街)+티(峙)+재(峴)=개티재로서 개는 고문헌에도 길(街)의 뜻으로 쓰였으며 티는 현대어에서 자립형태로 사용되지 못하고 오직 지명의 후부요소로만 쓰이고 있는 어사로 -치로도 나타난다.
삼국사기 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치(峙)가 나타나지 않다가 신증유합(新增類合)에 비로소 치(峙-우득:3 티)라 하여 치(峙)가 나타나고 있어 치(峙)는 현(峴)이나 령(嶺)보다 사용이 늦은 것으로 보이므로 개티는 우뚝 솟은 산에 있는 길의 뜻이다 라는 설명이 보여 인용해 본다.
이곳에서 오늘 산행을 접어야 하나 고민하며 시간을 보니 이제 오전 10시 40여분을 지나고 있어 손님과의 약속 시간 때문에 오후 2시 전후까지 조금 더 진행을 해 보기로 한다.
원정소곡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개티재 도로를 건너 비포장임도를 타고 걸어 오르니 등로에는 사각나무 계단이 길게 설치되어 있어 편안하게 그 계단을 따라 가파르게 올라 본다.
한동안 올라 나무계단이 사라지고 커다란 소나무 등로가 열리는가 싶더니 경사도가 급해지며 다시 나무계단이 이어지고 있다.
잠시 더 나무계단을 따라 오르니 경사도가 완만해지며 계단이 사라지고 곧이어 넓은 공터 우측으로 벤취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434 공터 무명봉에 도착을 해 가쁜 숨 몰아쉬며 잠시 휴식 후 진행하기로 한다.
그 공터 무명봉에서 휴식을 취하며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화남면 소곡리 마을 지나 저 멀리 신의터재로 내려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잠시 더 조망을 즐기고 그 공터 무명봉을 지나 전진하니 참나무들이 보이는 무명안부 지나 완만하게 오르는데 등로에는 이름모를 잡풀들이 자라면서 완전히 초록세상을 만들고 있다.
그 등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준희님이 걸어 놓은 393.9봉에 도착을 하고 잠시 추억 한장 남긴 후 적당한 곳을 찾아 쉬면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진행하기로 한다.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493.9봉을 지나 낙엽이 쌓여있는 곳에서 배낭 내려 다시 준비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시원한 물 한모금으로 갈증까지 달랜 후 다시 내리막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눈 앞으로 묘비가 보이는 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 넘어 저 멀리 이제부터 걸어 넘어야 할 584.1 삼각점봉 지나 우측으로 이어지는 팔음지맥 마루금이 초록의 물결을 이룸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진행 방향의 풍경들을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달성서공 묘지를 지나 부인인 밀양박씨 묘지가 위 아래로 나란히 보인다.
묘지들을 지나 내려가니 고사목이 썩어가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담고 다시 진행하니 멋진 참나무 등로가 계속 이어지고 잠시 후 무명묘지 한기를 다시 통과한다.
묘지를 지나니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짧게 걸어 통과하고 한동안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환상의 참나무 등로를 타고 무심으로 걷다 보니 안부 같지 않은 안부도 통과한다.
그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관기308이란 삼각점이 박혀있는 584.1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을 쐬고 다시 출발한다.
그 삼각점봉 옆에는 무명묘지 한기도 보이는데 과연 후손들이 이곳까지 찾아줄지 의문을 가지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 소나무 가지 사이로 멋진 조망과 풍경들이 보여 발걸음 멈추고 몇발자국 우측으로 내려가 살펴보니 방금 전 이 산객이 걸어 넘어 온 천택산으로 이어지는 팔음지맥 마루금과 천택산 정상 넘어 저 멀리 남성미 물씬 풍기는 구병산이 좌우측으로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뒤 희미하게 속리산도 살짝 보이기 시작하는데 박무로 인해 조금은 아쉬움도 남기지만 이정도 조망만으로도 고마운 시간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팔음지맥 분기점인 봉황산을 찾아 보니 우측 능선과 나무가지에 가려 보이지 않아 천택산과 구병산 그리고 속리산을 본 것만으로 만족하고 다시 정상 등로로 복귀해 완만하게 이어지는 마루금을 타고 전진한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커다란 참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을 넘고 별 특징없는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따라 한동안 걸어가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는 523.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잡목으로 이뤄진 정상부를 사진에 남기고 진행한다.
무명봉을 지나 고사목 2토막이 누워있는 무명봉을 다시 넘고 철쭉꽃이 떨어져 등로를 물들이고 있는 곳을 지나니 잘록한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조우측으로 지나다닌 흔적은 거의 없는 무명안부이다.
그 안부를 지나 오르니 정안이씨 묘지가 나타나고 한동안 수렛길 같은 넓고 뚜렷한 등로를 따라 편안하게 이어가니 또 다시 깊이 패여있는 안부에 도착을 해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 역시 무명안부이다.
그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잠시 진달래와 철쭉 군락지가 보이더니 금새 커다란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혼재되어 있고 그 아래에는 키 작은 관목들이 보이는 평이한 등로로 바뀌고 있다.
잠시 더 전진하니 멧돼지들이 몸을 문질러 껍질이 완전히 벗겨져 죽어있는 소나무 고사목이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에 담고 커다란 소나무 등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벌목된 벌목지대에 도착을 해 뜨거워진 날씨를 몸으로 체감하는 시간이다.
그 벌목지 경계를 타고 걸어 진행하다 잠시 뒤돌아 보니 천택산과 484.8봉 지나 584.1 삼각점봉이 이어지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마루금 뒤 저 멀리 분기점인 봉황산도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어 잠시 그 이름들을 불러 본다.
진행 방향으로는 벌목지 넘어 정중앙으로 다음 구간에 넘어야 할 팔음지맥이란 이름을 낳게 한 팔음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해야 할 큰곡재 안부가 보이고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오늘 걸어야 할 마지막 팔음지맥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팔음산 좌측 뒤로는 일부만 보이는 백화산 한성봉과 무명봉이 나와 있고 바로 발 아래로는 평산리와 양지리쪽 마을들과 비닐하우스가 다시 이 산객의 눈길을 잡는데 대부분 포도 과수원처럼 보인다.
한동안 계속 이어지는 벌목지 경계를 타고 걸어가며 진행 방향인 남쪽으로 팔음산과 백화산을 살펴보고 좌측으로는 화동면 마을들과 나즈막한 백두대간 마루금을 그리고 지나온 북쪽 방향으로는 천택산과 봉황산을 살펴보며 걷다 보니 드디어 벌목지가 끝이나고 등로는 우측 일반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그 입구에는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보초를 서듯 서 있는 곳이다.
그 참나무를 지나니 다시 방금 전 만났던 참나무보다는 가늘지만 제법 굵은 참나무에 노란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데 용도는 모르겠다.
잠시 거칠은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뚜렷해지기 시작하고 곧이어 제법 크게 패인 안부를 통과하는데 이곳 역시 이름없는 무명안부이다.
좌측으로 화동면 양지리와 우측의 중놀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많은 왕래가 있는 듯 보이는 곳을 지나 다시 오르니 참나무가 잘려져 썩고 있는 406.5 무명봉에 도착을 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잡목들을 사진에 담아 본다.
그 무명봉을 지나 여전히 아름다운 커다란 참나무 아래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114 송전탑이 나타나고 사진에 담은 후 통과하니 다시 그림같은 참나무 등로가 이 산객을 기다리고 있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바뀌는 자연의 빛깔을 음미하며 여유롭게 걸어가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커다란 참나무가 서 있는 곳에서 등로를 직진을 버리고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데 나중에 보니 앞으로 만나게 될 비포장임도의 절개지를 피해 내려가는 등로이다.
잠시 더 편안한 그림같은 등로를 따르니 짧은 절개지를 내려가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은 최근에 시멘트 포장공사가 마무리되었고 우측은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 준비중인 현장이 나타난다.
이곳을 어만각재라고도 불리는데 살펴보니 등로 좌측인 동쪽으로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평산리에 어만각이라는 건물 두채가 있는데 이 건물의 이름을 차용해 부르는 듯 싶은데 실제 이름은 없는 듯 보인다.
어만각은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평산리 산기슭 소모변에 2동의 각이 있으며 한 채는 맛배 지붕이고 아래쪽 다른 한 채는 팔작 지붕인데 모두 골기와로 한 간식이고 잘 단청이 되어 있으며 담장이 튼튼해 쌓이고 출입하는 소슬대문도 역시 맞배지붕이다.
이중 아래쪽 팔작지붕이 어만각이다.
이 각은 조선 태종이 개국공신 신 유정에게 내린 만사를 목판에 조각하여 게시 보존한 곳으로 그는 1349년(고려 충정 3년)에 출생하여 조선조의 개국공신으로 형조, 예조, 공조의 판서를 역임하였고 태종 때에는 여진을 소탕하는 큰공을 세웠다.
이리하여 그가 세상을 떴을 때 그 공을 찬양하고 그를 애석히 하는 정을 담은 만사를 지어 내렸다.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비포장임도를 건너 낙엽송이 자라고 있는 산행 들머리를 찾아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이곳은 등로를 가득 채운 파란 잡풀들이 벌써 발목을 덮고 그 위로 커다란 낙엽송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솟구쳐 있는 사이로 나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금새 주능선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갈림삼거리에서는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90도 꺽어 앞으로 보이는 잣나무 군락지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 한다.
좌측으로 걸어가니 낙엽송은 점차 잣나무로 변하고 곧이어 나즈막한 안부 지나 무명봉으로 오르며 살펴보니 등로 좌측으로는 완전한 잣나무 군락지로 변화되어 있다.
그 잣나무 아래로는 시멘트 공사를 한 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그 풍경을 사진에 담고 전진하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 제법 넓은 비포장임도가 지나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어만각재와 마찬가지로 좌측의 평산리와 우측의 중눌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이다.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쭉쭉빵빵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는 낙엽송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힘겹게 오르니 등로는 좌측 무명봉으로 오르지 않고 우측 사면 등로를 따라 진행된다.
잠시 후 다시 무명안부를 지나고 별 특징없는 칼등 등로를 따라 여유롭게 걸어가니 커다란 참나무 두그루가 서 있는 무명봉 지나 약간의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고 커다란 소나무를 타고 담쟁이 덩굴이 살아가는 525.7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몇개가 전부인 봉우리이다.
그 봉우리를 지나 잠시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한중리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그 좌측으로 보여야 할 백록저수지는 마을 좌측으로 내려가는 무명 산줄기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그 한중리 마을 뒷편으로는 충청북도 보은군에 있는 500미터급 골봉산 줄기가 아름답게 이어지고 그 뒤 우측 저 멀리에는 천택산 지나 구병산이 여전히 강렬한 남성미를 자랑하며 봄으로도 당당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환상으로 다가온다.
멋진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고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힘겹게 오르니 고사목이 썩어가고 곧이어 커다란 참나무와 바위를 지나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드디어 614.3봉에 도착을 해 정상판 앞에서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시간을 보니 이제 오후 2시로서 계획된 시간에 정상적으로 진행을 해 기분 좋게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좌측으로 100도 이상 꺽여 내려가는 난해한 등로를 찾아 내려가며 화령개인택시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출발해 달라고 요청을 한다.
이제 마지막 봉우리도 넘었으니 편안한 진행을 예상하지만 역시나 지맥 산행은 끝날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야구 용어처럼 그 끝을 봐야 끝이 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시간이다.
희미하게 사라진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어렵게 내려가니 참나무 가지 사이로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팔음산이 상당히 높게 치솟아 있는 모습이 자꾸만 눈 앞으로 아른거리고 잠시 후 참나무에 붉은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무명안부를 통과해 오르니 그리 높은 고도 차이는 아니지만 막판 체력저하 때문인지 무척 힘들게 진행된다.
잠시 후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592.3 무명봉을 넘고 사초가 자라기 시작하는 초록의 등로를 따라 조금 더 전진하니 벗나무가 보이는 577.7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진행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안부로 내려갔다 나즈막한 둔덕같은 봉우리 몇개를 넘어가니 눈 앞으로는 팔음산이 나뭇가지에 가렸다 나타나기를 반복하고 곧이어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마지막 무명봉을 넘으니 이제부터 등로는 참나무가 빼곡하게 자라는 내리막 등로로 이어진다.
조심하며 내려가니 택시 기사님으로부터 도착했다는 전화가 오고 3분만 기다리라 부탁한 후 여유롭게 내려가니 드디어 충청북도 옥산군 청산면이라는 도로 표지판이 서 있는 팔음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큰곡재에 도착을 해 도로 건너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팔음산을 잠시 올려다 본다.
드디어 팔음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큰곡재 정상에 도착을 해 생각지도 않했던 팔음지맥 제1구간을 길게 완주하고 도착해 있는 택시를 이용해 화령으로 돌아 가 애마를 회수한 후 화령에 있는 유일한 목욕탕에서 간단하게 샤워 후 일을 보기 위해 일찍 출발한다.
큰곡재는 상주시 화동면 평산리 평산마을에서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 명치리로 가는 고개를 말하는데 큰(大)+골(谷)+재(峴)로 쓰고 큰 골재→큰 곡 재로 변한 이름이며 큰 골짜기에 있는 재(고개)라는 뜻이다.
이곳 역시 대중교통을 이용해 진행하는 것이 힘들기에 고민하고 있었는데 일을 핑계 삼아 한구간 잘 마무리를 하였으니 조만간 다시 내려 와 남아 있는 두 구간도 한번에 마무리하고 올라 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택시를 타고 화령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산줄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함께 들머리와 날머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 앞으로 화령에서의 택시 이용에는 문제가 전혀 없을 듯 싶다.
생각지도 못한 사과 주스 두봉지를 가져와 건네주며 마시라는 택시 기사님의 호의에 기분좋게 화령으로 돌아 와 명함까지 받은 후 작약지맥 산행 시 다시 보자는 인사를 건네고 팔음지맥 첫 구간 산행을 마무리한다.
애마를 회수 해 화령버스터미널 앞에 있는 목욕탕에서 홀로 샤워 후 환복하고 멀지 않은 곳으로 이동해 손님과 일을 하고 회사를 나오니 이제 오후 5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라 조금은 속도를 내 귀가하니 저녁 7시가 넘어가고 있어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아들 생일 저녁을 함께 먹으며 축하해주고 사진 정리하다 보니 긴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다.
오랫만에 일 때문에 내려갔다 산행까지 마치고 일석이조로 긴 하루를 보낸 시간이 참으로 행복하게 느껴지며 조금은 더 즐거운 삶이 이어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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