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전라북도 김제시의 모악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0년 04월 25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맑고 기온이 올라 초여름 같은 날씨였으나 바람이 강하게 불어 산행에 도움을 받았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11에서 영상 20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애통리사거리(716번 콩쥐팥쥐로 4차선 포장도로와 금백로 2차선 포장도로)-경원유통-불노사거리(716번 콩쥐팥쥐로 4차선 포장도로와 황토로 2차선 포장도로)-불노버스정류장-사동버스정류장-상리버스정류장-신흥콘크리트 갈림삼거리-무수버스정류장-효정버스정류장-명품가구-점촌삼거리-점촌사거리버스정류장-포내, 선인버스정류장-한국폴리텍V대학-갈림사거리(716번 콩쥐팥쥐로 4차선 포장도로와 735번 황산로 4차선 포장도로)-아리랑호 4차선 포장도로-지구촌마을 이정판-농원육교(호남선 철로 통과)-김제순동일반산업단지-김제온천사거리-온천길 2차선 포장도로-승반1길 1차선 포장도로-승반마을(흥사동)-60.2봉-승반길 1차선 포장도로-흥복사-승방산등산로 이방표(승방산 0.285 Km)-통나무계단-무명안부-승방산등산로 이정표(승방산 0.025 Km, 흥복사 0.20 Km)-승방산(57.6봉, 익산27 삼각점)-흥복사 갈림삼거리 리정표-흥복사-승반길 1차선 포장도로-산업도로교차로(23번 하공로 4차선 포장도로)-관망대 갈림삼거리(하흥로 2차선 포장도로)-모텔지역(하정로 2차선 포장도로)-두악산과 전망대(52.6봉, 2층 팔각정자)-하정로 2차선 포장도로-팔봉전통도자기학습장-백산제취입수문-유니플렌텍-오믹시스 육종연구소-부농종묘-복지교차로-복지버스정류장-웅진산업(크라운음료회사)-702번 4차로 포장도로-백산사거리-712번 8차선 포장도로-지평선산단 버스정류장-자유무역지역-백산사거리-백석로 2차선 포장도로-지평선산단2길 2차선 포장도로-세중산업-Royal Canin-갈림 삼거리(농업기술실용화재단)-대동공단2길 갈림사거리-평안정강과 일강-대동공단1길-백석로 4차선 포장도로-소동교차로-소동버스정류장-부창 버스정류장(갈림삼거리)-점촌3길-조산농장-대동1육교(29번 금만로 4차선 포장도로 통과)-점촌3길 시멘트 1차선 포장도로-대장로 2차선 포장도로-폐가옥들-대동2육교(서해안고속도로 통과)-점촌5길 2차선 포장도로-참푸드-대석리 버스정류장-만경로 2차선 포장도로-두무동 버스정류장-묘원사 표지석-능재양수장-남산서원-묘라리버스정류장-만경삼거리-711번 해학로 2차선 포장도로-가실삼거리(심포항과 망해사 갈림삼거리)-청봉농장-성덕사거리-모산마을 1차선 포장도로-성덕6길 1차선 포장도로-성덕산(25.2봉, 이리453 삼각점, 묘지들)-성덕6길 1차선 포장도로-성덕리 모산마을-모산버스정류장-부동경로당(버스정류장)-가실오거리(정동버스정류장)-상궐1길 1차선 포장도로-정동경로당-진봉평야와 청보리밭-상궐정미소-상궐버스정류장-신부마을 표지석-중앙버스정류장-종야버스정류장-석치마을(702번 지평선로 2차선 포장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총 36.06 Km (애통리사거리에서 석치마을까지)
산행트랙 : 20200425 모악지맥 제3구간 애통리사거리-석치마을.gpx
산행시간 : 03간 09분 (15시 12분부터 18시 21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15시 12분 애마를 이용해 애통리사거리에서 이동 시작
올때 - 18시 21분 진봉면 고사리 석치마을에서 산행종료
18시 55분 김제시 순동 모텔 찜에 투숙 (30,000.-)
19시 30분 모텔 찜 근처의 식당에서 생고기 비빔밥과 소주 한병으로 저녁식사 후 숙박
모악지맥이란 ???
모악지맥은 호남정맥의 묵방산(538봉)에서 북쪽으로 약 1.3 Km, 옥정호 초당골에서 약 1 Km 떨어진 355미터봉에서 북서쪽으로 분기하여 국사봉(541봉), 모악산(793.5봉), 매봉(249.9봉), 천잠산(153봉), 승반산(58.5봉), 두악산(57봉), 이성산(60.9봉), 국사봉(61봉), 진봉산(72.2봉)과 봉화산(85봉)등을 일구고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서 새만금간척지에 발을 담그며 그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77 Km쯤 되는산줄기로 만경강과 동진강의 수계를 가른다.
길이는 상당히 길지만 모악산 매봉을 지나면 급격히 산세를 낮춰 비산비야를 이루며 새만금으로 이어지는데 중간에 도로를 이용하는 구간이 많아 진행에 고민과 어려움이 있는 산줄기이기도 하다.
아쉬운대로 애마를 몰아 도로를 타고 먼 거리를 기볍게 마무리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모악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전라북도 김제시와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및 네이버의 지식백과 그리고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새벽 일찍 애마를 타고 전주시로 내려 와 버스 시간표를 보니 너무 늦을 것 같아 산행 들머리인 유각치로 이동을 해 주차시킨 후 산행을 시작했는데 초여름 같은 무더위에 걱정을 했는데 바람이 강하게 불어 생각보다 즐겁게 애통리사거리까지 진행을 하니 이제 시간이 오후 2시를 막 넘기고 있어 카카오택시를 콜해 유각치로 이동한 후 애마를 회수해 다시 애통리사거리로 도착하니 오후 3시 10여분을 지나고 있다.
일단 김제김천사거리까지만 차량을 이용해 진행한 후 나머지 구간은 내일 진행하기로 했는데 차량을 이용해 천천히 도로를 따라 가며 사진을 찍다 보니 김제 온천사거리에 도착을 하고 이제 오후 3시 30여분을 넘기고 있어 진행 가능한 지점까지 진행하기로 한다.
중간에 자유무역지대가 들어서며 지형이 변해 어려움도 있었지만 도로를 따라 진행하다 보니 금새 승방산 앞까지 이동하고 그곳에서 잠시 60.2봉과 흥복사에서 승반산을 왕복으로 다녀 온 후 다시 도로를 따라 두악산까지 이동하고 두악산 정상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달리다 보니 어둠이 깔리기 전 성덕산 지나 고사리 석치마을 입구까지 도착을 해 산행을 마무리하고 김제로 이동을 해 마음 편히 하룻밤 묵게 되었다.
이 산객이 추구하는 산행 방식은 아니지만 도로를 타고 위험을 무릅쓰고 걷기보다 차량을 이용해 일찍 안전하게 마무리하니 그것 또한 산행의 일부로 받아 드리며 제3구간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애통리사거리에서 따뜻한 음료수 한잔 마시고 차량을 이용해 716번 콩쥐밭쥐로 4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천천히 달리니 불로사거리와 점촌삼거리 지나 순동 사거리에서 우측 아리랑로 4차선 포장도로 방향으로 틀어 달려가니 드디어 김제 온천사거리까지 이동한다.
김제 온천사거리에서 좌회전해 온천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달려 처음 나타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우측 승반1길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김제시 흥사동 승방마을로 들어 가 뒷산인 60.2봉을 다녀 온 후 다시 흥복사로 가 삼각점이 박혀있는 57.6미터의 승반산에 올라 추억과 사진 한장 남기며 편안하게 산행을 이어간다.
승반산을 내려 와 다시 애마를 이용해 23번 하공로 산업도로교차로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꿔 모텔지대를 통과하니 두악산이 보이고 오솔길을 통해 오르니 두악산정상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그곳에서 환상의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두악산 지나 복지삼거리에서 702번 4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성덕6길까지 이동해 잠시 삼각점이 박혀있는 26.5미터의 성덕산에 올라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햇살에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성덕산을 다녀 와 다시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진행하다 보니 드넓은 김제평야가 펼쳐지고 그곳에도 새만금에서 포항까지 연결하는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라 지도와는 완전히 다른 도로와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진행하다 보니 김제평야에 재배하고 있는 초록의 보리밭이 드넓게 펼쳐지고 너무나 아름답고 환상적이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잠시 애마에서 내려 많은 사진을 남기며 어린시절 시골 고향에서의 추억을 꺼내보는 시간은 참으로 행복했던 시간으로 남겨본다.
애마를 이끌고 한시간 전 제2구간을 마무리했던 은교리 애통리사거리에 다시 서서 이제부터는 두 다리가 아닌 애마를 이용해 진행하게 되니 괜시리 스스로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한 시간이다.
애통리는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은교리에 속하는 자연마을로서 원은교는 애통리라는 부분명도 있는데 애통이는 쑥골→쑥동→애통에서 유래됐을 것으로 추측하며 은다리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나그네가 전주에서 김제로 가는 도중에 배를 곯아 애통하게 죽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 애통리사거리에서 716번 콩쥐팥쥐로 4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달리니 도로 우측은 공사중이라 1차선이 막혀있고 도로 좌측으로는 주유소도 보인다.
공사장을 지나니 도로 우측으로 모다아울렛 건물 공사장이 보이고 잠시 후 갈림사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측으로는 황산농공단지로 가는 도로이고 우측으로는 김제대대와 용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지점이다.
사거리를 지나 주유소와 약간의 공장 건물들을 지나니 다시 불노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김제시 용지면 부교리이다.부교리는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에 있는 리로서 남으로 금구면과 동으로 완주군 이서면과 경계를 이루는 낮은 언덕지형이다.
부교, 백자, 자흥 등의 자연마을이 있는데 부교는 본래 마을 이름이 부교였는데 고려 말부터 일제시대까지는 마을이 너무 가난해서 비골이라 불렸다가 1967년 호남야산개발사업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이 마을은 김제군에서 제1위의 양잠마을이 됨에 따라 부자 마을이 되었기 때문에 마을 이름도 다시 부교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불노사거리를 지나자마자 도로 옆으로 불노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사진에 담고 다시 출발하니 호도과자점과 편의점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니 다시 불로교회가 보이고 솔밭식당도 통과하니 사동버스정류장이 나타난다.
사동마을은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부교리에 속하는 자연마을로서 부교리의 명칭유래는 부교리의 으뜸가는 부교마을에서 따 온 이름이다.
부교마을은 백제시대에 이미 형성된 마을로 고려 말 너무 가난하여 비골이라고 불리다가 일제강점기에 부교(父橋)로 고쳤는데 이웃 모산마을(母山마을)과 대비되는 이름이라고 여겨진다.
1789년 발간한 호구총수에는 뜰 부(浮)자와 다리 교(橋)자를 써서 부교(浮橋)라고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수리 일부와 완주군 이서면 은교리를 병합하여 부교리라 하고 김제군 용지면에 편입하였다가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용지면 부교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 부교와 백자 및 자흥(子興) 등이 있는데 모두 가마터와 관련이 있는 지명으로 백자마을과 인접한 자흥마을은 1920년경 위덕화라는 사람이 옹기를 굽기 위해 땔감으로 많이 쓰이는 소나무가 많은 이곳에 가마를 만들고 터를 잡으면서 형성된 마을이며 1978년 연와 공장을 완공하여 현재 가동 중이다.
부교리와 인접한 용지면 용암리의 모산마을 역시 기와를 굽던 가마가 있어 와리라고 부르다가 모산(일명 엄마산) 밑에 있는 마을이어서 모산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백자마을과 인접한 애통마을 사이에 골짜기가 있는데 옛날에 기와를 구웠던 곳이어서 기와막골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백자마을을 비롯한 부교리 일대는 기와나 옹기를 굽기에 적합한 토양과 땔감인 소나무가 많다는 점 그리고 완성된 그릇들을 내다 팔기에 좋은 시장인 김제나 전주가 지리적으로 가까운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사동버스정류장을 지나 다시 출발하니 도로 좌측 건너편으로 꽃식물원도 보이고 한동안 별 특징없는 716번 콩쥐팥쥐로 4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 좌측 건너 식당이 보이는 곳 우측으로 상리 버스정류장도 보이는데 이곳 상리 역시 방금 전 지나 온 사동과 마찬가지로 부교리의 마을이다.
사진 한장 남기고 계속 이어지는 4차선 도로를 타고 천천히 달려간다.
상리버스정류장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니 도로 우측으로 신흥콘크리트 가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우측으로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인다.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로 바뀐 무수라는 버스정류장을 통과하고 계속 도로를 따라 천천히 진행하니 효정리와 흥정리의 경계를 이루는 사거리도 통과한다.
무수는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효정리에 있는 자연마을로서 약 100여 년 전 완주군 구이면 양생동이라는 마을에서 광산 김씨 일가족 75명이 무려 10여년에 걸쳐 이주하여 광산 김씨 마을을 이루고 아무런 근심 걱정없이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사거리를 통과하니 도로 우측으로 효정이라는 버스정류장이 보이는데 효정은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효정리에 있는 자연마을로서 예전에 효자가 불구가 된 어머니를 위하여 정자를 짓고 편히 모셨다 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효정 또는 소정으로 혼동되어 불리다가 행정구역 통폐합 때 효정이란 이름으로 고정되었다.
다시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니 가구점과 곰소식자재 가게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니 점촌삼거리 지나 점촌사거리 버스정류장도 통과한다.
점촌삼거리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니 도로 우측으로 보이는 밭 경작지에는 봄이 왔음을 알리는 농작물들이 이미 심어져 있고 그 풍경을 사진에 담으며 진행하니 포내와 선인 버스정류장 지나 도로 좌측으로 한국폴리텍V대학이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보인다.
한국폴리텍V대학 김제캠퍼스는 전라북도 김제시 백학동에 있는 국립 종합기술전문대학으로 기존에 있던 기능대학과 기술전문학교를 통합하여 2006년 출범한 것으로 2년제 학사 과정 대학(권역별 11개)과 1년제 기능사 양성 과정(지역별 29개)을 7개 권역으로 묶어 한국폴리텍 1대학~7대학과 특성화 대학 4개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폴리텍 1대학은 서울과 수도권 및 제주권역이며 2대학은 인천과 경기권역, 3대학은 강원권역, 4대학은 충청권역, 5대학은 호남권역, 6대학은 대구와 경북권역, 7대학은 부산과 경남 및 울산권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중 호남권역인 한국폴리텍 5대학 광주캠퍼스는 광주광역시와 전라북도 및 전라남도를 관할하는 지역 거점 폴리텍대학 중의 하나이며 김제캠퍼스는 목포와 고창, 익산, 순천, 남원 등 지역 캠퍼스 중의 하나이다.
교육목표는 성실과 정의를 바탕으로 투철한 국가관과 건전한 가치관을 지닌 전문 기술인, 정보화 시대를 대비하여 컴퓨터 및 첨단 기술 교육을 익힌 전문 기술인, 학식과 덕성을 겸비한 실천 교육으로 창의적 사고를 지닌 유능한 직업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폴리텍V대학 입구를 지나 계속 도로를 따르니 한국폴리텍 버스정류장도 통과하고 곧이어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상동동에서 순동으로 바뀌는 지점이다.
그곳에서 이제 한동안 따라 왔던 716번 콩쥐팥쥐로를 버리고 우측의 아리랑호 4차선 포장도로로 바꿔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더 그 아리랑로 4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니 도로 우측으로 지구촌마을이라는 입간판과 도로 표지판이 보여 잠시 찾아보니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로서 20여년 전 설립된 곳이었다.
지구촌마을 입간판과 도로표지판을 지나 도로를 따라 계속 달리니 금새 농원육교를 지나는데 그 아래로는 호남선 철도가 지나는 곳이다.
호남선 철로를 지나 계속 진행하니 제법 큰 공장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건너편으로는 순동산업단지안내판과 그 뒤로 커다란 공장 건물들이 보인다.
순동산업단지는 전라북도 김제시 순동에 있는 일반산업단지로서 새만금 개발권의 배후 지원 기능 강화와 지역 소득원 개발로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하여 1995년 지방공업단지지구로 지정되었으며 1996년 12월 30일부터 2000년 12월 31일까지 총 사업비 108억 원을 투입하여 조성되었다.
그후 순동일반산업단지는 1996년 5월 31일 실시 계획이 승인되었으며 1999년 4월 13일 관리기본계획이 고시되고 2003년 2월 10일 관리기본계획이 변경 고시되었다.
주로 음식료, 석유 화학, 철강, 운송 장비, 전기 전자 업체들이 입주해 있다.오래 전 진행한 선답자들의 산행 트랙과는 완전히 다른 지형과 등로로 변해 제대로 된 마루금을 찾아 진행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개발지역으로 변해 버렸다.
계속 이어지는 아리랑로 4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순동산업단지를 지나니 김제온천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 온천과 김제스파힐스골프장 방향으로는 아무 표식도 없는 신설 도로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좌측도로를 타고 문화체육공원 방향으로 진행한다.
온천사거리에서 좌회전 해 2차선 온천로를 타고 방향을 바꾸니 도로 좌우측으로는 드넓은 밭 경작지가 펼쳐져 있고 비닐들을 씌워 놔 농작물을 심기 위한 작업들이 한창이다.
그렇게 잠시 더 온천로를 타고 들어가니 우측으로 첫번째 1차선 포장도로가 갈리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이제부터 우측의 승반1길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흥사동 승방마을 방향으로 진행한다.
잠시 더 그 1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나즈막한 도상 60.2봉이 승방마을 뒷쪽으로 보여 잠시 애마를 주차시키고 그 봉우리를 향해 민가 옆 임도를 타고 올라 본다.
대나무 밭과 잡목지대를 지나 오르니 검정천막이 설치되어 잇고 곧이어 정상 모악지맥 마루금에 도착을 해 우측으로 몇발자국 걸어가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고사목이 보이는 60.2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뒤돌아 내려 온다.
내려오며 원마루금 방향인 북서쪽을 살펴보니 잡목등로 지나 검정천막이 보이고 그 바로 뒤로 복숭아인지 모를 과수원이 펼쳐져 있다.
그 과수원 지나면 승방마을의 민가들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돌아가는 나즈막한 모악지맥 마루금을 따라 우측으로 나즈막한 승반산 정상부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정상 마루금을 살펴보고 대나무 밭과 민가를 지나 주차시킨 애마로 가 애마를 회수한 후 다시 이어지는 좁은 승방길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승방마을을 빠져 나가니 도로 좌측으로도 드넓은 과수원이 펼쳐져 있고 그곳 역시 높은 그물망이 쳐져 있다.
잠시 더 달리니 승반산으로 오르는 들머리 이정표가 보이는데 주차 공간이 없어 조금 더 내려가니 흥복사 주차장이 나타나고 그곳에 주차 시킨 후 50여미터 뒤돌아 올라가 이정표를 살펴보니 승방산까지 0.285 Km 거리라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눈에 들어 온다.
하지만 지도에는 모두 승반산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현지의 이정표에는 승방산으로 표기가 되어 있어 조금은 아쉬움도 느낀다.
통나무 계단을 타고 걸어 올라 뚜렷한 소나무 등로를 따라 잠시 힐링하듯 걸어 오르니 둔덕봉을 넘어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닷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좌측으로 흥복사 하산 갈림삼거리 지나 잡목과 잡풀속에 익산27이라는 삼각점이 박혀있는 57.6미터의 승반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과 사진 한장 남기며 주위를 둘러보지만 나무들로 막혀 조망은 전혀 없다.
승반산은 전라북도 김제시의 흥사동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59미터로서 승반산의 정상에 서면 북쪽으로 두악산과 백산저수지, 서쪽으로 백산 들녘이, 남쪽으로 김제 시가지가 펼쳐져 있으며 동쪽으로 용지들녘이 보인다.
이 산에서 발원하는 두월천은 만경강으로 합류하여 새만금으로 유입하며 승반산(升盤山)은 쌀을 되는 되(升)를 거꾸로 엎어 놓은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해동지도(김제)에는 승가산(僧加山) 옆에 있는 봉우리로 표기되어 있고 호구총수에는 백석면(白石面) 승방산(升方山)이라고 적혀있지만 현재에도 승방 마을과 승방서원이 있어 그 유래를 짐작하게 하며 향토지에 의하면 1995년에 주민들의 요청으로 승방 지명은 정리되었다.
승반산 정상에서 잠시 머물다 뒤돌아 내려 와 이제는 직진의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흥복사로 내려가는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흥복사로 내려가는 등로 역시 넓고 뚜렷한 소나무로 조성되어 있어 편안하게 걸어 내려가 잠시 흥복사를 둘러보고 애마를 회수해 도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흥복사는 전라북도 김제시 흥사동 승가산(僧伽山)에 있는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인데 650년(백제 의자왕 10)에 고구려 승려 보덕이 창건하였다.
처음 이름은 승가사(僧伽寺)였으나 보덕은 고구려 사람으로 당시 고구려에 도교(道敎)가 융성하자 백제로 망명하여 대반열반경을 연구하며 이곳저곳에서 강설하다가 이곳에 극락전을 짓고 삼존불을 모셨고 창건 후부터 임진왜란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으며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완전히 없어진 것을 1625년(인조 3)에 흥복(興福)거사가 중창하고 흥복사라 불렀다.
1943년 법운(法雲)이 극락전과 관음전을 중수하였고 1954년 불교정화운동 때에는 임시 조계종 전북종무원이 설치되었으며 1961년에는 월주가 주지로 오면서 전라북도 불교정화운동의 핵심도량이 되기도 하였다.
1965년에는 전강을 모셔와 선원을 개설하고 1969년 도영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관음전, 미륵전, 삼성각, 정혜원, 사천왕문 등이 있으며 관음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1976년 이후에 새로 지었고 관음전에는 진묵조사가 모셨다는 관세음보살상과 후불탱화가 있다.
대웅전에는 삼존불과 후불탱화 및 팔상도가 모셔져 있으며 내부에 제흥복사 등 시문 3매와 관음전중창시주 등 현판 3매가 걸려 있다.
극락전에 걸려 있던 현판은 조선 후기 명필인 창암 이삼만이 쓴 것이라고 하나 지금은 대구광역시에 있는 어느 사찰로 옮겨져 있다고 한다.
전북고적에 따르면 흥복사에는 삼대진물로 500년 수령의 신단목, 김제에 부임하는 수령들이 마실 물을 길어갔다는 우물 설천, 법당의 청자기와가 있었다고 한다.
이 중 청자기와는 본래 극락전에 있었다고 하나 오늘날은 전하지 않고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승가산흥복사사적비(1980)와 시주공덕비(1994), 팔각오층석탑 등이 있다.
승반산과 흥복사를 살펴보고 돌아 나와 공사가 진행중인 승반길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북동 방향으로 달리니 그곳 역시 도로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라 어수선하고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어렵게 돌아 갈림사거리로 진행하니 산업도로교차로라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데 아마도 산업단지로 조성되고 있는 신도시가 아닐까 생각되는 곳으로 도로 옆으로는 거대한 모텔촌이 형성되어 있어 의아스럽게 생각되는 곳이다.
어렵게 23번 하공로 4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편안하게 진행하니 좌측으로 하흥로 2차선 포장도로로 이어지고 잠시 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다시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으로 전망대가는 도로 표지판이 보여 우측으로 꺽어 전망대 방향으로 진행한다.
하정로라는 2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 좌우측으로는 거대한 여관과 모텔지구가 펼쳐져 의아한 생각으로 달리니 그 2차선 포장도로가 우측으로 휘어져 가는 곳 직진 방향으로 1차선 포장도로가 보이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나 그곳에서 직진의 산 능선 방향으로 오른다.
잠시 더 산속으로 달리니 제법 넓은 주차장이 나타나고 주차 후 전망대가 보이는 방향으로 가니 계단 좌측으로 지저분한 쓰레기들이 널려있는 옆으로 두악산과 전망대에 관한 설명판이 보여 잠시 읽어 보고 두악산 정상에 세워진 전망대로 오르니 사방팔방 시원하게 펼쳐진 조망과 풍경이 아름다워 한동안 머물며 많은 사진에 담아 본다.
두악산은 전라북도 김제시 흥사동과 백산면 하정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52.6미터로서 호남야산개발사업 기공식 때 박정희 대통령이 방문했던 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호남야산개발사업은 김제시 검산동 양수장에서 양수기를 이용해서 섬진강 물을 품어서 물이 부족한 산등성이마다 용수로를 개설해서 농업용수를 공급하여 옥토로 바꾼 대규모 국책사업이었다.
두악산의 명칭유래는 김제평야에서 바라보면 마치 말(斗)에다 쌀을 담아 놓은 형상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두악산의 산줄기는 호남정맥 초당골(막은댐)을 지나 모악산기맥 분기점에서 전라남도 광양시의 백운산까지 뻗어가는 호남정맥과 헤어져 북쪽으로 달리는 모악기맥이 뿌리이며 이 모악기맥은 만경강과 동진강을 가르며 엄재, 국사봉, 화율봉, 장근재, 모악산, 유각치, 묘고산에 닿는다.
묘고산에서 서쪽으로 구성산 줄기를 갈라놓고 북쪽으로 달리며 매봉산과 천잠산에 이르면 방향을 서쪽으로 꺾고 승반산(升盤山)을 지나 두악산을 일구고 국사봉, 망해사가 있는 진봉산(進鳳山)을 지나 봉화산(烽火山)에서 맥을 다한다.
두악산의 물줄기는 두월천(斗月川)을 통해서 만경강으로 합류하여 새만금 지역으로 들어간다.
두악산은 높이 57미터이며 북서쪽에 백산저수지가 축조되어 백산면, 성덕면, 공덕면, 만경읍 등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며 동쪽으로 국도 23호선이 지나고 있다.
두악산은 김제평야에 우뚝 솟아 있어 그 자태가 수려하고 소나무가 울창해서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하게 하고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어 주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호남야산개발지구는 뽕밭이 지천이었지만 무분별한 중국산 누에고치 수입으로 양잠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듦에 따라 지금은 원예작목을 재배하는 온실들이 들어차 있다.
두악산전망대는 1967~1971년 호남 야산 개발 당시 시민의 휴식 공간을 확보할 목적으로 1967년 호남 야산 개발 기공식이 있던 장소에 설치된 시민 휴식 공간 겸 전망대이며 호남 야산 개발 추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두악산전망대에서 열린 기공식에 참석하였다.
호남 야산 개발은 쓸모없이 버려졌던 4,844㏊의 야산을 개발하여 1,139㏊는 수리안전답으로 조성하여 쌀을 생산하고 3,705㏊는 뽕밭으로 조성하는 사업이었는데 이를 위하여 구릉 지역에 관개수로를 개설하고 검산동에 호남양수장을 시설하였으며 220마력의 양수기를 이용하여 섬진댐에서 흘러오는 물을 구릉지에 위치한 백산저수지에 양수하였다.
구릉지를 연결하는 관개수로를 통하여 구릉 지역에 농업용수가 공급됨에 따라 백산, 공덕, 성덕, 만경 지역이 혜택을 입게 되었다.
두악산전망대는 익산과 김제를 연결하는 국도 23호선 서쪽 500m에 위치하는 두악산 정상에 위치하며 맑은 날 두악산전망대에 올라보면 서쪽으로는 멀리 서해가 바라다 보이며 북서쪽으로는 백산저수지, 동남쪽으로는 흥복사가 있는 승반산(升盤山)과 김제온천지구가 보인다.
두악산 정상에 세워져 있는 3층 정상의 전망대에 올라 살펴보니 사방팔방 일망무제로 펼쳐진 조망과 풍경이 환상이라 한참을 머물며 둘러보고 내려온다.
제일 먼저 남남동쪽으로 방금 전 지나 온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앞에 많은 모텔과 여관들이 보였던 곳이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좌측으로 동네 야산같은 승반산도 보이는데 그 좌측 옆으로는 김제스파힐스골프장도 보인다.
승반산 우측 뒤로는 김제시의 아파트 단지들도 살짝 얼굴을 보이는데 약간의 박무로 인해 아쉬움도 남긴다.
남서 방향으로는 김제서흥농공단지와 백산면 마을 지나 김제시의 풍경들이 보이는데 사진 우측 뒤 멀리로는 손전탑인지 팔랑개비가 수없이 솟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제 눈을 북서방향으로 돌리니 백산저수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뒤 좌측으로 김제지평선일반산업단지와 김제대동농공단지의 드넓은 평야지대와 공장지대가 박무속에서도 펼쳐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이제 눈을 북쪽으로 돌리니 두악산 지나 달려야 할 도로가 사진 좌측으로 보이고 가운데 높은 전봇대 뒤로 드넓은 태양광 발전시설들이 펼쳐져 있으며 그 뒤로 보여야 할 익산시 방향을 살펴보니 거리감이 있어 익산까지는 확실하지 않다.
사진 우측 옆으로 황톳빛 들판이 눈길을 잡는데 토질이 좋아 좋은 쌀과 식자재들의 재배가 가능한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동쪽으로는 용지면 쪽 드넓은 들판과 민가들 사이로 전주시의 시야도 살짝 보이기 시작하는데 혁신도시 근처만 보일뿐 도심지는 거리감 때문에 분간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게 두악산 정상에서 사방팔방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보고 다시 내려 와 애마를 몰아 입구로 나간 후 좌측 하정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부곡 방향으로 진행하니 도로 좌측 벌목지 위로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두악산 정상부의 전망대가 빤히 올려다 보이고 곧이어 좌측으로 이정판들이 보이는 갈림삼거리를 통과하는데 그 좌측으로는 팔봉전통도자기학습장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 별 특징없는 하정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북서와 북쪽 방향으로 천천히 달리니 우측으로 백산제취입수문이 나타나고 사진에 담고 그곳을 통과하니 도로 좌우측으로 드넓은 밭 경작지들이 펼쳐져 있는데 보기에 모두 토질이 좋아 농사가 잘 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잠시 더 진행하다 도로 좌측을 보니 두악산 정상에서 빤히 내려다 보였던 백산저수지가 이제 좌측 옆으로 보이기 시작해 잠시 사진 한장 남겨본다.
다시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니 우측 밭 경작지에는 비닐이 씌여진 드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는데 대부분 고추를 심기 위한 밭처럼 보인다.
잠시 후 공장들과 민가들을 지나 우측으로 유니플렌텍이 보이는 곳을 통과하니 다시 좌측으로 드넓은 인삼포와 저수지가 보이고 잠시 후 도로 우측으로 오믹시스육종연구소란 입간판이 보인다.
이름과 육종연구소란 단어가 궁금해 찾아보니 생명공학 기술전문기업인 오믹시스는 유전체분석, 기능성 작물육종, 종자검사 및 가공 등을 주된 사업으로 영위하고 있으며 쿨리지코너와 유티씨인베스트먼트 등 기관투자를 유치했고 TIPS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 회사는 종자패키징 기술인 Seedmo는 PCT를 포함해 25개국에서 특허 등록이 됐고 이를 활용한 육묘기술에 대해 2018년에는 정부로부터 신기술(NET) 인증을 취득 했다.국내외 스마트팜과 식물공장에서 우량한 육묘생산과 작물재배를 자동화 할 수 있는 솔루션 개발을 위해 산학연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종자 종류와 크기에 상관없이 표준화해 제작이 가능하고 자동화 파종과 발아세를 균일하게 유지시키는 장점이 있어 시설비와 인건비 등 유지비용 절감 효과를 보려는 식물공장이나 육묘장 등에서 구매 수요가 많으며 현재 식물공장 분야 선진국인 일본은 물론 유럽 등지에 수출하고 있는 기업이기도 하다.
계속 이어지는 하정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북서진하니 도로 좌측으로 드넓은 백산저수지가 계속 눈에 들어오고 잠시 후 직진 방향으로 갈림삼거리 도로 표지판이 서 있는데 살펴보니 우측으로 익산가는 방향이 좌측으로는 만경으로 가는 방향이 표기되어 있는 도로표지판이다.
그곳을 지나 우측으로 부농종묘 건물을 통과하니 공장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바로 앞에 복지교차로라는 커다란 도로 표지판이 올려다 보인다.
그 복지교차로에서 좌측으로 돌아 백산면 조종리 방향으로 진행하게 되는데 많은 선답자들은 능제로 2차선 포장도로로 진행을 하였지만 이 산객은 새로 개설된 702번 4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게 되었다.
복지 버스정류장을 지나 크라운음료공장을 보고 지나는데 다음지도에는 회사가 변경되었는지 웅진산업이란 공장이름이 보인다.
잠시 후 지하통로를 지나 백산교차로라는 갈림사거리에서 좌측의 자유무역지역 방향으로 좌회전해 진행을 이어간다.
좌회전해 진행하니 712번 8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지평선산단이라는 버스정류장을 통과하는데 다음지도에는 부거리로 표기된 곳이다.
잠시 후 백산사거리에서 우측 백석로를 타고 2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다시 만나는 첫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돌아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잠시 후 좌측으로 방향을 바꿔 서쪽으로 진행하니 지평선산당2길이라는 4차선 포장도로이다.
한동안 달리니 부거리 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자유무역지역인지 많은 신설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듯 보이는 산업단지이다.
도로 좌우측으로 많은 공장건물들을 보며 천천히 진행하니 눈 앞에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도로 건너편으로는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이라는 커다란 건물들이 보이고 사진에 담고 잠시 기다렸다 좌측 도로를 따라 백석로 4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더 진행하니 도로 우측으로 농업기술실용화재단 호남권종자종합처리센터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눈길을 잡는다.
도로 좌측으로 펼쳐진 거대한 공장건물들을 살펴보며 진행하니 대동농공단지란 버스정류장을 지나 사거리를 통과하고 계속 이어지는 백석로 4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달리니 소동교차로에 도착을 한다.
사거리인 소동교차로를 지나자마자 소동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이제 시골길 같은 백석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첫번째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백석로를 버리고 우측의 소로를 타고 점촌3길을 따라 방향을 바꿔 진행한다.
잠시 후 우북농장과 조산농장 입간판이 보이는데 그 입간판을 지나 나즈막한 둔덕을 넘으니 생각보다 큰 조산농장이 우측으로 보이고 다시 나타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의 직진 도로를 따르니 대동1육교에 도착을 하는데 육교 양쪽으로는 농자재들이 쌓여 있다.29번 금만로 4차선 포장도로를 통과할 수 있는 육교이다.
그 육교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1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우측으로 드넓은 비닐이 씌여진 밭 경작지가 나타나고 그 뒤 저 멀리 인삼포도 보인다.
잠시 후 과수원 지나 민가 한채를 통과하니 공사현장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니 비어있는 건물들과 민가들이 자주 보이는데 주민이탈이 심각함을 느끼는 시간이다.
잠시 후 태양광 발전시설을 지나니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주변으로 많은 폐 건물과 민가들이 보여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갈림사거리에서 좌측의 폐 건물과 민가를 사진에 담고 우측으로 돌아 대장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니 서해안고속도로를 통과할 수 있는 대동2육교를 통과하며 아래로 뻗어 있는 서해안고속도로를 사진에 담아 보니 생각보다 차량 통행은 적어 보인다.
바로 남쪽으로는 서김제IC가 있음을 알리는 도로표지판이 바로 육교 아래로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통과할 수 있는 대동2육교를 지나 나타나는 갈림사거리에서 좌측 점촌5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천천히 달리니 도로는 다시 1차선으로 변하면서 전형적인 시골 풍경으로 변하고 있다.
비닐하우스와 민가들을 지나 공장건물과 참푸드 공장을 지나니 다시 갈림사거리가 나타나는데 대목리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으로 묘라리와의 경계지점이기도 하다.
그 대목리 버스정류장에서 우측으로 돌아 만경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천천히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 새만금과 전주간 고속도로 공사가 진행중인데 이 고속도로는 이곳 새만금에서 시작해 포항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고속도로 공사 현장이다.
묘라리의 두무동이라는 버스정류장도 지나고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드디어 새만금과 포항간 고속도로 현장임을 알리는 커다란 입간판이 설치되어 있다.
계속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니 묘라리 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우측으로 묘원리 표지석도 보인다.곧이어 묘라리라는 또 다른 버스정류장을 지나니 도로 우측으로 용화사와 남산서원 가는 도로 표지판이 서 있는 곳에 도착을 해 잠시 남산서원을 찾아 본다.
남산서원은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에 있는 서원으로 사당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병자호란 때 척화파(斥和派)로 활약한 유지화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574년(선조 7)에 창건하였고 그후 순조 때 남궁 제를 배향하였으며 1870년(고종 7)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970년에 다시 중건되었다.
남산서원 도로표지판을 지나 대야와 군산 방향으로 계속 달려가니 묘라라는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곧이어 묘라와 후리마을로 가는 이정판도 보인다.
도로 변에 피어있는 노란 유채꽃을 살펴보며 진행하니 갈림삼거리인 만경삼거리에 도착을 해 좌측으로 크게 꺽어 죽산 부안방향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만경읍은 전라북도 김제시의 북서쪽에 위치한 읍으로 조선 시대 만경현이 있던 곳이며 만경여자중학교와 읍사무소는 군현인 객사와 동헌이 있던 자리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만경읍성의 규모는 둘레가 2,820척, 높이가 12척, 성안의 우물이 6개이며 성의 동쪽에 토성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일제강점기 초에 허물어져 그 원형을 찾기 어렵다.
이외에도 사직재, 교동, 옥거리, 서문외리, 서문안, 동문안, 대문내, 성밖에 등의 지명을 통해 과거 고을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만경(萬頃)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밭 사이의 경계(두둑)가 만 개라는 뜻인데 이는 곧 들이 넓다는 뜻으로 그만큼 경작지가 광활함을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은 만경리 남쪽에 김제시에서 가장 넓은 저수지인 능제가 있어 농업에 필요한 관개용수를 공급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고 만경읍사무소 바로 뒤에 있는 동산(60m)은 만경현의 주산으로 성황산이라고도 불렀는데 만경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면 소재지인 만경리를 비롯하여 7개 리를 관할한다.
여지도서(만경)에 백제 때 두내현을 창설하고 신라 때 만경현으로 이름을 바꿨다 라는 기록에 의하면 통일신라 때 지명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본래 백제 두내산현(豆乃山縣)이었는데 신라 때 지금 이름으로 고치어 김제군 영현으로 만들었고 고려 때 임피현(臨陂縣)에 붙였으며 예종 원년에 감무를 두었다가 후에 현령으로 승격시켰고 본조에서는 그대로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만경삼거리에서 죽산과 부안방향으로 711번 해학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니 죽산과 부안으로 갈 수 있는 도로표지판이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더 진행하니 도로 우측으로 가실리 버스정류장이 있고 진봉과 심포항으로 갈 수 있는 가실삼거리에 도착을 해 잠시 사진 한장 남기고 계속 직진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가실리는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에 있는 리로서 남쪽에 성덕산이 있는 낮은 언덕지형이며 자연마을로는 가실, 정동, 정서, 신정, 부동, 가신성 등이 있다.
가실 마을의 형성 연대는 정확히 알려져있지 않으나 조선시대로 추측되며 당시에는 큰동네, 서당너머, 달동네, 새터 등으로 불리다가 행정구역 개편시 가실로 변경되었다.
내일 마지막 구간으로 잠시 들려보려고 계획중인 심포항이기에 도로표지판으로만 봐도 가슴이 설레는 이름이다.
이제 진봉면으로 들어 계속 이어지는 711번 해학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주유소들을 지나 우측으로 밭 경작지와 청봉농장이 보이는 시골스러운 도로가 길게 펼쳐져 있다.
다시 중간 중간에 거대한 축사들과 태양광 발전시설들이 보이는 곳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연두빛 도로를 천천히 음미하며 달리니 도로 우측으로 잠시 후 지나야 할 비산비야의 마루금이 보이기 시작한다.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햇살을 받아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를 바라보며 조금 더 진행하니 도로 우측으로 모산마을과 성덕사로 들어갈 수 있는 1차선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직진의 711번 해학로를 버리고 우측의 성덕6길로 진행한다.
좁은 1차로 포장도로를 따라 성덕6길로 들어가니 비산비야의 마루금이 이어지고 도로 좌우측으로는 황토빛의 밭 경작지와 태양광 발전시설들이 보인다.
좌측으로 성덕사 갈림삼거리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모산마을이 보이고 그 뒤로 소나무들이 자라고 잇는 성덕산이 보이는데 일반 산이 아닌 동네 뒷동산 같은 모습이다.
그 앞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잠시 걸어 들어가니 금새 잘 관리되고 있는 넓은 묘지지대에 삼각점이 박혀있는 26.5미터의 성덕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본다.
성덕산은 전라북도 김제시의 성덕면 성덕리와 진봉면 가실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27미터이며 낮은 산이지만 해안의 평야지대에 위치하여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는데 백제 시대에 쌓은 토성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 그 흔적을 찾을 수는 없다.
1872년지방지도(만경)에 처음으로 기재되어 있고 향토지에 두사총(杜四聰)이라는 지관이 이곳을 지나면서 장차 이 산으로 인해서 어진 사람이 많이 나리라 라는 기록이 있다.
그 성덕산을 다녀 와 다시 애마를 몰아 기울어져 가는 서산의 약해진 햇살을 받으며 진행하니 모산마을을 지나 버스정류장이 있는 성덕로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성덕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이어가니 우측으로 가실1리로 이어지는 1차선 포장도로가 갈리는 삼거리 도로표지판도 만난다.
이어지는 2차선 성덕로를 따르니 부동 버스정류장 지나 부동경로당 건물도 좌측으로 보이는 가실리 부동마을을 통과한다.
부동마을은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가실리에 속하는 자연마을로서 부동은 마을 부근에 가마솥을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겨 부산(釜山) 또는 가마산이라 부르던 산이 있어 마을 이름을 부동(釜洞)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뜻이 다른 부동(富洞)으로 바뀌었다.
고개를 넘어 정동 버스정류장이 있는 5거리에서 좌측으로 돌아 정동과 정서 마을 경계를 따라 가니 갈림삼거리가 보이고 그곳에서 우측의 상궐1길 방향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이제 가실리의 정동과 정서마을을 지나 둔덕을 넘어가니 드넓은 가실리에서 상궐리로 이어지는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는데 그곳에는 초록의 청보리밭과 초지지대가 끝도 없이 재배되고 있어 잠시 애마를 멈추고 많은 사진을 남기는데 잠잠했던 바람이 다시 강해지면 한기를 느끼게 만든다.
고창의 청보리밭에서 봤던 느낌과는 또 다른 풍경으로 드넓은 청보리밭을 살펴보고 마지막 마루금을 따라 애마로 진행 가능한 곳까지 진행하기로 한다.
들판을 조성하며 만들어진 인공 수로를 건너 드넓은 평야지대로 나 있는 1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상궐1길이다.
상궐리는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에 있는 리로서 동쪽으로 가실리와 이웃해 있는 충적평야지역이고 상궐, 하궐, 석교, 상수내, 하수내, 신흥, 망해, 오산, 전중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상궐과 하궐은 옛날 들판 가운데 있었던 기와집이 유난히 돋보인다 하여 와촌 또는 기와물이라 불렀는데 행정구역 개편시 고사리가 많이 나는 밭이 있다고 하여 고사리 궐(蕨)자를 써서 밭 위쪽을 상궐 아래쪽을 하궐이라 이름 붙였다.
진봉초등학교를 우측에 두고 진봉로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가니 다시 도로 좌우측으로는 드넓은 청보리 밭과 초지지대가 펼쳐져 있고 많은 사진에 남기며 진행하니 진행 방향 저 멀리 고사리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곳으로 가는 도로 양쪽으로도 드넓은 청보리밭이 환상으로 펼쳐지고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아름다운 자연 그 자체를 마음속 깊이 각인시키고 있다.
다시 상궐1길이 진봉로와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좌측의 지봉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니 도로 우측으로 상궐정미소와 마을이 보이고 도로는 다시 우측으로 크게 꺽여 이어지고 있다.
좌측으로 돌아가니 상궐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직진으로 뻗어 있는 도로를 따르니 다시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는 우측 직진의 진봉로를 버리고 좌측의 남고8길 2차선 포장도로 방향으로 진행한다.
직진의 남고8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중앙 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중앙은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에 속한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관기에서 남쪽으로 약 1 Km 떨어져 있는 마을로 진봉면 전체를 통틀어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잠시 후 종야 버스정류장도 통과하는데 종야 역시 고사리의 자연마을로서 관기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약 500여 년 전 전주유씨 중시조 유승혜가 5대째 독신으로 살던 중 너른 들판을 낀 마을에서 살아야 자손이 번성한다고 여겨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지대가 높아 높은 들과 마루 들이라는 뜻을 담아 높을 종(宗)자와 들 야(野)자를 써서 종야라 하였다.
다시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니 중앙 버스정류장과 마을회관을 지나는데 고사리의 중앙은 관기에서 남쪽으로 약 1 Km 떨어져 있는 마을로 진봉면 전체를 통틀어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중앙마을과 버스정류장을 지나니 도로 우측 청보리 밭 넘어 최신식 사료공장이 보이고 사진에 담고 진행을 이어가니 종야 버스정류장과 민가들이 보이는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한다.
좌측으로는 옥정마을이 보이는데 고사리 옥정은 종야 서쪽에 있는 마을로서 옛날에 갈대가 우거졌던 이곳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샘물을 팠더니 구슬처럼 맑고 질 좋은 샘물이 솟았으므로 옥정이라 하였다.
그곳 종야를 지나 우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하니 도로 포장공사를 하고 있어 도로가 끊기기도 하고 비포장임도로 바뀌기도 하면서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는데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어렵게 방향을 잡아 진행하니 이제 북서쪽 저 멀리 내일 오전에 걸어야 할 니성산에서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모악지맥 마지막 산줄기가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붉은 하늘 하래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렇게 한동안 도로포장 공사중인 곳을 어렵게 지나 천천히 진행하니 드디어 702번 지평선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 바로 옆에는 석치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석치마을은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에 속하는 자연마을로서 인향 동쪽에 있는 마을이며 1525년경 평산신씨가 정착하면서 형성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돌고개를 넘어서 나룻배를 타고 옥구를 왕래한 데서 마을 이름을 돌고개의 한자 표기인 석치(石峙)라 하였다.
이곳에서 마루금은 석치마을 북쪽 뒤 능선으로 올라 니성산을 거쳐 마지막 봉화산까지 마루금을 따라 걸어야 하기에 오늘은 이곳에서 애마를 이용한 산행을 마무리하고 김제로 돌아 가 편안하게 하룻밤 머물기로 한다.
김제시 순동의 모텔찜으로 가 저렴한 가격에 흥정을 해 샤워 후 환복하고 근처 식당으로 가 육회 비빔밥에 공기밥 두공기 그리고 소주와 맥주 한병으로 목마름과 허기를 달래고 여관으로 돌아 가 피곤한 몸을 눕히니 또 긴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육회 비빔밥은 나주가 유명하다는데 가족들 데리고 가 백룡과 옥룡 산행 시 도움을 받으며 한번 맛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본다.
새벽 일찍 카카오택시까지 군 경계가 다르다고 추가 요금을 요구하는 바람에 기분이 나빴지만 산행 후 애통리사거리에서 만나 카카오택시 기사님의 친절함에 너무나 고마운 마음에 조금 더 웃돈을 드리고 기분 좋게 헤어져 애통리사거리에서 석치까지 애마를 이용해 거져 먹는 산행을 하고 나니 오늘 하루 총 45 Km 가까이 걸은 듯 하다.
내일은 10여 Km만 걸으면 되기에 새벽 일찍 시작해 점심시간 전에 귀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지맥산행(완료) > 모악지맥(호남·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악지맥 마지막제4구간 진봉면 석치마을에서 새만금 방조제까지 산행후기 (0) | 2020.04.29 |
---|---|
모악지맥 제2구간 유각치에서 애통리사거리까지 산행후기 (0) | 2020.04.28 |
모악지맥 마지막 석치마을에서 새만금 방조재까지 산행 중 만난 조망과 풍경들 (0) | 2020.04.26 |
모악지맥 제2, 3 구간에서 만난 풍경과 조망들 (0) | 2020.04.26 |
모악지맥 제1구간 운암삼거리에서 분기점과 모악산 지나 유각치까지 산행후기 (0) | 2020.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