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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기/경상도 산

지리산 천왕봉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9.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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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남도 함양군과 산청군의 백무동 한신계곡과 지리산 천왕봉 일대

산행일자 : 2019년 06월 28(금요일)과 29일(토요일), 1박 2일 산행

산행날씨 : 28일은 맑은 후 오후 늦게부터 흐렸고 29일은 새벽에 흐렸다가 아침부터 온종일 비가 내렸던 산행날씨

행온도 : 영상 15도에서 영상 27도

산행인원 : 칠갑산과 하람, 총 2명

산행코스 : 함양군백무동탐방안내센터 주차장-지리산 천왕할매상-백무교-백무동탐방지원센터-백무동계곡-장터목대피소 갈림삼거리 이정표(세석

                 대피소 6.5 Km와 가내소폭포 2.7 Km, 장터목대피소 5.8 Km)-장터목대피소 갈림삼거리 이정표(세석대피소 6.5 Km와 가내소폭포 2.5 Km,

                 장터목대피소 5.8 Km)-세석길-이정표(세석대피소 5.8 Km, 백무동 0.7 Km)-이정표(세석대피소 5.3 Km, 백무동 1.2 Km)-너덜컹-첫나들이

                 폭포 이정표(세석대피소 4.8 Km와 가내소폭포 0.8 Km, 백무동 1.7 Km)-한신계곡-이정표(세석대피소 4.4 Km, 백무동 2.1 Km)-가내소폭포-

                 이정표(세석대피소 3.5 Km, 백무동 3.0 Km)-오연폭포-한신폭포-이정표(세석대피소 2.0 Km, 가내소 2.0 Km)-이정표(세석대피소 1.3 Km,

                 백무동 5.2 Km)-가파른 된비알-무명폭포-이정표(세석대피소 0.7 Km, 백무동 5.8 Km)-주능선 등로-세석갈림길(1570미터)

                 이정표(거림 6.0 Km, 백무동 6.5 Km, 장터목대피소 3.4 Km)-세석대피소-헬기장-영신봉(1651.6봉) 이정표(세석대피소 0.6 Km, 연하천

                 대피소 9.3 Km와 벽소령대피소 5.7 Km)-헬기장-세석대피소-세석갈림길(1570미터) 갈림삼거리 복귀-세석평전-촛대봉(1703.1봉)

                 이정표(천왕봉 4.4 Km와 장터목대피소 2.7 Km, 세석대피소 0.7 Km)-이정표(천왕봉 3.7 Km와 장터목대피소 2.0 Km, 세석대피소 1.4 Km)-

                 이정표(천왕봉 3.0 Km와 장터목대피소 1.3 Km, 세석대피소 2.1 Km)-삼신봉(1693.6봉)-연하선경-연화봉(1730봉) 이정표(장터목

                 대피소 0.8 Km, 세석대피소 2.6 Km)-1723.4봉 이정표(천왕봉 2.1 Km와 장터목대피소 0.4 Km, 세석대피소 3.0 Km)-장터목대피소(1박)

                 이정표(천왕봉 1.7 Km, 세석대피소 3.4 Km, 백무동 5.8 Km, 음수대)-제석봉 고사목 안내판-제석봉 전망대-제석봉(1808봉)

                 이정표(천왕봉 1.1 Km, 장터목대피소 0.6 Km)-이정표(천왕봉 0.7 Km, 장터목대피소 1.0 Km)-통천문 이정표(천왕봉 0.5 Km, 세석

                 대피소 4.6 Km와 장터목대피소 1.2 Km)-칠선계곡 갈림삼거리-지리산 천왕봉(1915.4봉, 정상석, 천주)-장터목대피소 복귀-제석단(1633봉)

                 이정표(백무동 5.3 Km, 장터목대피소 0.5 Km)-소지봉(1499.1봉, 거북바위) 이정표(백무동 4.3 Km, 천왕봉 3.2 Km와 장터목대피소 1.5 Km)-

                 이정표(백무동 3.6 Km, 장터목대피소 2.2 Km)-쉼터공터 이정표(백무동 3.0 Km, 장터목대피소 2.8 Km)-참샘 이정표(백무동 2.6 Km,

                 천왕봉 4.9 Km와 장터목대피소 3.2 Km)-하동바위 이정표(백무동 1.8 Km, 천왕봉 5.7 Km와 장터목대피소 4.0 Km 및 참샘 0.8 Km)-

                 이정표(백무동 1.2 Km, 장터목대피소 4.6 Km)-이정표(백무동 0.7 Km, 장터목대피소 5.1 Km)-지리산 백무동야영장-

                 함양군백무동탐방안내센터-산행종료

산행거리 : 총 20.55 Km - 28일 10.66 Km(함양군백무동탐방안내센터 주차장에서 세석대피소, 영신봉, 촛대봉, 장터목대피소까지)

                                      29일 09.89 Km(장터목대피소에서 제석봉, 지리산 천왕봉, 장터목대피소-함양군백무동탐방안내센터까지)   

산행시간 : 약 14시간 59분 - 28일 08시간 24분 (10시 33분부터 18시 57분 까지, 비박 배낭의 무게로 인해 여유롭게 천천히 걸어 진행하며)

                                          29일 06시간 35분 (03시 27분부터 10시 02분 까지,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서 약 1시간 30여분 간 장시간 조망 즐기고

                                                                    장터목대피소에서 아침식사 후 내리는 빗줄기 속에 꾸준하게 하산하여 진행하며)

교통편 : 대중교통과 애마 이용 - 28일 07:01분 광명역에서 KTX를 이용해 07시 45분 대전역 도착 (21.200.-)

                                                      07:50분 대전역에서 죽마고우인 하람님 승용차로 백무동으로 이동

                                                      10:20분 백무동 도착 후 산행 준비 후 산행 시작(주차비 2일 간 10,000.-)

                                                      19:10분 장터목대피소 도착해 저녁식사 후 1박(26,000.-)

                                                                  총 소요비용은 39,000.- : 26,000.-/2인 + 13,000.-세석대피소 예약취소 5일 전 위약금 50%)

                                              29일 10:20분 백무동에서 하람님 승용차로 13:10분 대전 유성호텔 사우나 도착

                                                      14:10분 유성호텔 사우나 옆 국밥집에서 점심식사 (34,000.-)

                                                      14:55분 유성고속버스터미널에서 서울강남고속버스터미널 (15,300.-)

                                                      17:40분 지하철 3호선과 2호선을 이용해 무탈하게 귀가 

                                                     

 

 

죽마고우와 지리산의 품에 안겨 어린 시절 추억을 회상하고 우정을 나누며 환상의 운해에 취했던 시간들

 

 


오래 전 계룡산과 북한산 산행을 함께 즐겼던 대전에 사는 죽마고우인 하람 친구와 금요일 하루 연가를 내 지리산에 들어 대피소에서 하룻밤 묵으며 1박2일 동안 좋은 추억을 만들자고 의기투합을 해 진행하게 된 산행이었는데 오랫만에 1박을 하게 되어 설레이면서도 준비물에 대한 약간의 고민도 생겼던 시간이었다.

많은 것은 아니지만 옛날 생각에 이것저것 여러가지 먹거리를 준비하다 보니 배낭 무게가 장난이 아니기에 걱정이 앞서지만 그동안 꾸준히 운동을 해 왔기에 큰 부담없이 떠난 지리산 산행에서 두 어깨에 전해지는 무게감에 어려움도 느꼈던 시간이다.

하지만 두 어깨에 전해지는 무게로 인한 고통보다 예상하지 못했던 지리산 천왕봉에서 만난 환상의 운해와 풍경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고운 추억으로 남게 되어 그 또한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얻게 되는 이치와 같은 꿈같은 시간이었다.

또한 하람 친구와는 조금 더 가깝게 서로를 알게 된 계기가 되어 앞으로는 더 자주 좋은 산행과 여행을 즐기며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로 해 그것이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남게 되었던 지리산 산행이었다.


이것저것 먹거리를 준비하다 보니 60리터 배낭에 더 이상 들어 갈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꽉 차고 무게를 가늠해 보니 족히 20여 Kg 이상이 되는 듯 두 어깨에 전해지는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역시나 세석대피소 오르기 1 Km 전부터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두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으로 인해 약간의 고통을 느끼며 어렵게 올라 주능선을 따라 장터목대피소에 도착을 하고 맛난 저녁과 이슬이 한잔으로 고운 추억을 만든 후 잠자리에 들지만 코고는 소리와 더위로 인해 제대로 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 일찍 일어 나 어둠속에 비가 내리기 전 지리산 천왕봉으로 오른다.

한시간 30여분을 기다려 여명을 살펴보고 어둠이 엷어지는 새벽에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나 지리산의 새벽은 이 산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황홀한 조망과 풍경으로 가슴속 깊이 잠들어 있던 지리산에 대한 그리움을 다시 꺼내 보는 시간이다.

제석봉과 촛대봉 지나 저 멀리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이 선명하게 펼쳐져 있고 그 주능선 좌우측으로 바다를 연상시키는 운해가 조금씩 더 그 주능선을 넘으며 폭포수가 흘러 내리듯 시시각각 새로운 모습으로 이 산객의 가슴속으로 또 다른 세상을 저장시키고 있다.


오늘은 대전에 사는 하람이 친구와 지리산에 드는 날이기 때문에 새벽 일찍 일어나 옆지기가 준비해 준 얼린 식수와 알콜등을 배낭에 넣고 과일과 약밥까지 챙기고 나니 60리터 배낭이 가득 차 더 이상 빈 공간을 찾을 수 없을 정도이다.

두 어깨에 전해지는 묵직한 배낭을 메고 옆지기의 도움으로 광명역에 도착을 하니 10여분의 시간적 여유가 있어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 또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생각보다 많은 승객들로 붐비는 KTX를 타고 대전으로 달려가는 시간은 어릴적 소풍가는 어린아이처럼 조금은 설레임이 있지만 무거운 배낭으로 인해 계획된 산행이나 제대로 진행할 수 있을지 약간의 불안과 걱정도 상존하는 시간이다.


대전역에서 하람이 친구를 만나 친구 승용차를 이용해 함양의 백무동으로 이동하면서 휴게소에서 친구 옆지기가 준비해 준 맛난 먹거리로 아침을 해결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예정된 시간에 백무동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잠시 산행 준비를 하면서 하늘을 보니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 구름이 드높게 떠 있어 오늘 하루 날씨마저 도움을 주는 듯 해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연다.

산행 준비 후 함양군백무동탐방안내센터를 출발하려는데 도로 좌측으로 지리산천왕할매상이 보이고 오늘 주민들이 주위 잡초를 제거하며 깨끗히 청소를 하고 있어 살펴보니 한쪽에 지난 4월 19일 날 한신계곡 기우제를 지냈다는 플랭카드가 눈길을 잡는다.

지리산 천왕할매상 앞의 오석에 보이는 설명을 읽어 보니 천년 전부터 지리산 천왕봉에 봉안된 천왕할매상(성모상)은 경배의 대상으로 그 영험함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 지리산 천왕할매를 모시어 국태민안의 발원지로 삼고자 한다라고 되어 있다.

부디 기원하는 소원 모두가 이뤄지길 바래보며 지리산으로 향한 첫 발걸음을 옮겨 본다.


그렇게 지리산 천왕할매상에게 인사 드리고 내려 와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는데 오늘이 평일이고 오전 늦게 출발하다 보니 등산객들도 눈에 보이지 않고 한가하게 둘만의 세상을 만들어 보는 시간이다.

약간의 상가지대를 지나 백무교를 건너니 백무동탐방지원센터가 나타나는데 이곳은 늘 짙은 어둠속에 통과하였던 지킴터이기에 밝은 대낮에 통과하는 오늘이 역시나 조금은 어색하기만 하다.

다시 공원지킴터를 통과해 진행하니 오랫만에 느껴보는 두 어개를 짓누르는 무게감이 부담되지만 싫지 않는 느낌으로 오래 전 즐겼던 젊은 시절로 되돌아 가는 기분도 느껴보는 시간이다.

 

공원지킴터를 지나 조금 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진행하니 금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측으로는 내일 걸어 내려와야 할 장터목대피소로 향하는 등로이고 우측 직진 방향이 오늘 우리 둘이 걸어 올라야 할 세석대피소 방향으로 거리가 6.5 Km 라는 이정표가 약간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시간이다.

잠시 나무 그늘을 따라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백무동의 유래판이 보여 읽어 본다.

백무동이란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해석이 여러가지로 전해지고 있는데 이곳 백무동은 늘 안개가 끼므로 백무동(白霧洞)이라 하는 사람도 있고 지리산 365일의 저자인 최화수씨처럼 예전부터 무당이 많이 모여드는 골이라 해서(百巫洞)이 맞는 한자 표기일 거라고 설명하는데 이유는 지금도 여름이면 백무동골이며 한신골 요소마다 굿판을 벌이거나 아니면 벌건 대낮에 집단으로 목욕재개 하곤 하는 여성기도객들을 증거로 들기도 한다.

한편 이곳 백무동 주민들은 백무동 동쪽의 중봉과 하봉능선은 삼한시대 때 국경선이었는데 전쟁이나 무기와 관련이 깊은 괘점 같은 지명이 있는 곳으로 봐 무기를 뜻하는 무()를 쓴 백무동(百武洞)이 맞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백무동은 또한 백명의 무당이 배출되었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또하나의 설로는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맞서 싸울 무사 백명을 이곳에서 훈련시켜 배출시켰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어떤 설명이 맞는지 알수는 없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고 또 여러가지 설화가 남겨질 정도로 유명한 곳이기도 한 뜻이니 오랫동안 그 이야기들이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출발한다.


백무동의 유래판을 읽어 본 후 출발하니 또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이정표를 사진에 담은 후 전진하니 세석대피소로 올라가는 초입인 세석길 아치가 눈에 들어 온다.

그 세석길 옆에 세워진 지리산 한신계곡 일원이라는 설명판도 읽어 본 후 잘 정비된 이정표와 돌무덤을 통과하니 등로 좌측으로 바위너덜컹도 나타난다.

그 바위너덜컹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그늘 등로를 타고 하람이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새 첫나들이 폭포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한신계곡 건너 커다란 마당바위 위 나무데크엔 세명의 여성분들이 앉아 쉬다가 사진을 찍으니 반갑게 손까지 흔들어 준다.

백무동에서 약 2 Km 를 채 올라오지 않은 지점인 백무동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첫나들이 폭포는 이름만큼이나 예쁘고 시원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 간다.

계곡을 들어서며 맞는 첫 번째 폭포로서 지나는 사람마다 그냥 가지 못하고 추억의 사진 한 장씩 꼭 남기고 가는 폭포처럼 보이는 곳이다.

20여개의 물줄기를 자랑하는 이 폭포는 바람폭포로도 불리고 있으며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제 다리 아래로 쏟아지고 있는데 다리 위보다 아래서 위로 보는 폭포수가 더욱 장관이다.

오늘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맑은 날씨에 시간적인 여유까지 있으니 제대로 된 한신계곡을 즐기며 가슴으로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해 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첫나들이폭포를 지나 계곡을 옆에 끼고 천천히 걸어 오르니 가슴속에 내재되어 있었지만 한동안 잊고 살았던 자연에 대한 그리움과 감성이 되살아나기 시작하면서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고향에 온 듯한 착각으로 편안하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가끔 그늘을 벗어나 올려다 보는 하늘은 마치 파란 도화지에 하얀 물감으로 구름을 그린 듯 너무나 환상으로 다가오고 비 소식이 있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저런 하늘 아래 멋진 조망과 풍경들이 반겨주길 간절히 소망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곳 한신계곡은 지리산의 촛대봉과 영신봉 사이의 협곡에서 만들어져 가네소폭포에서 한신지계곡과 합류하여 백무동으로 이어진다.

한신계곡은 한여름에도 몸에 한기를 느끼는 계곡이라는 의미에서 불리게 된 이름이라고 하고 또 계곡의 물이 차고 험난하며 굽이치는 곳이 많아 한심하다고 해서 한심계곡이라 부르던 것이 발음이 변해서 한신계곡이 되었다고도 하며 옛날에 한신이란 사람이 농악대를 이끌고 세석으로 가다가 급류에 휩쓸려 몰죽음을 당했다고 해서 한신계곡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한신계곡은 험준한 지형상 원시림이 자랑으로 백무동에서 한신계곡을 통해 세석에 이르는 곳은 강인한 체력을 필요로 한다.

한신계곡은 영롱한 구슬이 구르는 듯 맑고 고운 물줄기가 사철 변함없이 이어지는 계곡으로 한신계곡의 본류는 세석으로 이어지지만 계곡 주위에는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형성되어 있다.

백무동 위로 세석까지의 한신계곡과 덕평봉 북쪽에서 발원하는 바른재골, 칠선봉부근에서 내려오는 곧은재골, 장터목 방향에서 흘러내리는 한신지계곡 등 네 갈래가 그것이다.

여름철이면 싱그러운 녹음과 시리도록 맑은 물줄기로 최고의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늦가을이면 낙엽과 단풍 물결로 만추의 서정을 빚어내 찾는 이를 감동케 한다.

겨울에 눈이 쌓이면 빙벽과 설벽을 만들어 모험을 즐기는 산꾼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이며 한신계곡의 초입인 백무동마을에서 가네소폭포까지 여름피서지로 적당하다.

지리산 한신계곡 일원은 지리산의 동북 방향 산자락인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에서 세석평전까지 약 10 Km에 이르는 계곡으로 2010년에 명승 제72호로 지정되었으며 계곡을 따라 첫나들이폭포, 가내소폭포, 오층폭포, 한신폭포 등의 폭포와 계곡을 감싸는 울창한 천연림이 경승을 이루는 곳으로 한신계곡은 지리산 12동천 중의 하나이다.

웃고 즐기며 오감으로 느끼는 사이 오랫만에 전해지는 두 어깨의 무게감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발걸음을 붙잡는 시간이기도 하다.


걸어 진행하는 한신계곡 어디라고 바라보고 사진 한장 찍으면 그곳이 모두 사진찍기 포인트가 되어주는 아름다운 계곡길을 따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 오르니 그 한신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들이 나타나고 여유롭게 그 다리를 건너며 다시 한번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들을 남겨 본다.

유순하다가도 갑자기 곡류를 만들어 커다란 바위까지 집어 삼킬듯 휘돌아 치는 계곡물에 넋을 잃고 바라보다 다시 출발하니 갑지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와 온몸에 흐르는 땀방울을 식혀주며 거대한 폭포수 굉음이 귓전을 때리기 시작하는데 살펴보니 등로 우측 아래로 가내소 폭포이다.

목책으로 출입을 금지하였지만 잠시 그 목책을 넘어 가내소 폭포 앞으로 가니 흐르떤 땀방울들은 금새 마르기 시작하고 시원한 폭포수 바람이 온 몸을 휘감아 돌며 천상에 있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가내소 폭포-백무동에서 세석으로 3 Km쯤 즉 첫나들이 폭포에서 약 1.3 Km 쯤 더 한신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폭포로서 폭포가 크진 않지만 폭포 아래가 바로 바위 협곡이어서 강인한 인상을 주는 폭포이다.

첫나들이에서 1 Km 남짓한 거리를 두고 있는 가네소폭포까지의 계곡미는 한신계곡의 진수로 평가되고 있는데 이름없는 폭포수며 넓다란 반석들과 울창한 수림은 바로 선경이다.

가네소폭포 바로 아래 지점에서 물줄기는 두갈래로 나뉘어지는데 바로 한신계곡과 한신지계곡으로 한신지 계곡은 내림폭포를 따라 장터목으로 이어지며 한신계곡은 오층폭포 한신폭포를 따라 세석으로 연결된다.

가네소는 약 15미터 높이의 폭포이며 50여평의 검푸른 소를 만들고 있어 우선 그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사철 수량이 변함없어 예로부터 기우제 장소로 많이 이용돼 왔으며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영험스런 곳으로 전해지는 곳으로 기우제 방법도 특이해 부녀자들이 홀치마바람으로 앉아 방망이를 두드리는데 방망이 소리는 통곡을 대신하는 것으로 이는 지리산 신인 마고할매의 통곡을 유도하여 그 눈물이 비가 되어 속세를 적시게 한다는 주술적 방법이다.

또 한가지는 돼지를 잡아 피를 바위에 뿌리고 머리는 가내소에 던지는데 이는 산신이 산이 더럽 혀지면 씻어내기 위해 비를 뿌릴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곳 가네소폭포 앞에서 간식도 먹고 흐르떤 땀방울도 식힌 후 다시 등로롤 복귀해 세석대피소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이어가 본다.


가네소폭포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계곡 옆 등로를 타고 계곡을 가로 건너는 다리를 따라 계곡을 건너 진행하니 웅장하고 짐승이 울부짓는 듯한 굉음에 정신이 없지만 도심에서 듣던 소음과는 완전히 다른 가슴속 깊이에서 받아 들이는 자연의 소리에 평온한 마음으로 갈어 본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진행하니 선답자들이 말한 오층폭포에 도착을 하지만 전체적인 오층폭포를 담기는 불가능 하기에 등로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계곡속 폭포만 어렵게 사진으로 담아 본다.

오층폭포는 가네소 왼쪽 흙비탈길을 올라 조금 가다보면 계곡을 만나 건너게 되는데 계곡주변 숲길을 가면 폭포가 5단계로 길게 이어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오층폭포가 있으며 오련폭포라고도 한다.

오랫만에 가슴을 울리는 거대하고 웅장한 한신계곡의 폭포들에게 완전히 몰입되면서 어릴적 경험으로 알게 된 자연의 소리와 풍경에 매료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층폭포를 지나 한동안 더 진행하니 첫나들이폭포에서 만났던 여성분들을 다시 만나는데 한신폭포는 보이지 않기에 이곳까지 올랐다 다시 내려간다는 소식을 전하며 무탈한 산행을 빌어 주기에 감사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잠시 후 거대한 폭포수 소리가 귓전을 강하게 때리는데 등로 우측을 살펴봐도 푹포는 보이지 않는다.

하람이 친구와 잠시 배낭 내리고 한신폭포를 찾아볼까 생각해 보지만 이심전심으로 포기하고 다시 진행하니 나뭇가지 사이로 거대한 폭포가 보이는데 한신폭포는 아니지만 가깝기에 담아 본다.

한신폭포는 오층폭포에서 산죽과 잡목터널을 따라 계곡을 건너고 등반로를 따라가다 보면 다소 벅찬 경사길이 나타나기를 몇차례 한 뒤에야 한신계곡을 상징하는 한신폭포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폭포는 이정표에서 80 미터 우측 계곡으로 내려가야 볼 수 있을 정도로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으며 여기서 약 1 Km를 더 가면 세석고원이다.

이곳 한신폭포 근처까지 오는 등로는 크게 어렵지 않아 잘 진행을 하였지만 짧게 남아 있는 구간이 가파른 된비알 오르막 등로이기에 잠시 배낭 내려 휴식을 취하며 마음을 다잡아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한신폭포를 소리로만 느끼고 다시 고도를 높이기 시작하니 이제 세석대피소까지 2.0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보이는데 이제부터가 마의구간으로 어떻게 이 무게운 배낭을 메고 오를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과 고민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그래도 등로 옆으로 흐르는 한신계곡 물을 바라보며 그 우렁찬 소리를 들으며 무심으로 걷다 보니 이제 세석대피소까지 1.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낭만과 여유는 사라지고 두 어깨에 전해지는 무거운 배낭 무게와 두 다리에 전해지는 무거운 발걸음만이 이 산객을 긴장시키고 있다.

길게 이어지는 나무계단조차 버겁게 올라 이어지는 돌 계단을 따라 오르는 친구의 뒷모습이 마치 지금까지 살아오며 느꼈을 무게감만큼이나 무겁게 올려다 보이는 뒷모습이다.

그래도 위대한 인간의 두 다리는 쉼없이 오르고 올라 그 고통과 무게감을 이겨내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 뿐이다.

 

오르다 어려우면 잠시 배낭 내려 쉬면서 얼음물로 갈증을 달래고 다시 오르다 어려우면 쉬었다 초콜렛 하나로 체력을 보충하며 그렇게 가파른 된비알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드디어 등로 우측으로 거대한 바위를 적시며 떨어지는 마지막 무명폭포에 도착을 해 잠시 휴식을 취하며 위안을 삼아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두어번 오르고 내려가면서 느꼈던 추억이 이곳 무명폭포부터 세석대피소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는 기억으로 위안을 삼으며 다시 두 다리에 전해지는 삶의 무게같은 배낭을 이겨내며 천천히 한발두발 옮기니 드디어 등로 옆으로 보이던 작은 지계곡조차 사라지며 이제 정말로 하늘과 가장 가깝게 오르고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다.


이제 세석대피소까지 0.7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반갑고 흔들리는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이어지는 가파른 된비알 돌계단을 오르니 멋진 구상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약간의 하늘이 열리는데 산행 시작 전 바라봤던 하늘의 푸른 색감보다는 조금 더 탁한 색으로 변해 있어 날씨에 대한 우려가 시작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잠시 후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뒤돌아 보니 오늘 우리가 산행을 시작한 백무동쪽 조망이 열리면서 가까운 청암산과 그 뒤로 백운산 지나 삼봉산 라인이 약간의 박무속에 환상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다시 힘을 내 조심하며 걸어 오르니 경사도가 완만해지며 안전목책이 설치되어 있는 주능선에 도착을 하는데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에 젖은 몸을 말리며 한시름 놓고 휴식을 취한 후 진행방향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세석대피소를 사진에 담아 본다.


주능선에 도착을 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중간에 우리들을 앞서 세석대피소를 왕복으로 다녀온다는 산객 한분을 다시 만나는데 어떻게 그 큰 배낭을 메고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오를 수 있을지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올랐다며 반갑게 다시 인사를 건넨다.

안전 산행을 빌며 헤어져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백두대간 종주 등로인 세석갈림길 이정표를 만나고 사진 한장 남긴 후 다시 조금 더 걸어 내려가 드디어 세석대피소에 도착을 한다.

처음에는 오늘 이곳 세석대피소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하룻밤 보낸 후 다음날 장터목 대피소를 지나 천왕봉을 왕복한 후 백무동으로 하산할 계획이었지만 다음날인 토요일에 비 소식이 있어 하람이 친구가 급하게 위약금까지 내면서 대피소를 장터목으로 변경하였기에 부드러운 능선이지만 아직도 3.4 Km 를 더 걸어 진해애야 한다.

세석평전에 위치한 세석대피소는 지리산에 위치한 대피소 중 가장 큰 규모의 현대식 대피소로서 1996년 건립된 대피소의 총 수용인원은 190명에 이른다.

세석대피소 앞에서 등산객에게 부탁을 해 하람이 친구와 세석평전과 촛대봉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참으로 자주 들렸고 몇번인가 머무르며 고운 추억도 남겼던 세석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하람이 친구에게 잠시 영신봉을 다녀오자고 하니 올라오면서 무릎쪽에 약간의 불편함을 느껴 이곳 세석대피소에서 머물겠다고 해 이 산객 홀로 배낭 벗어 두고 영신봉으로 향한다.

잠시 세석대피소 좌측 등로를 타고 오르니 금새 백두대간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좌측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옛 모습 그대로인 헬기장을 지나 약간은 거칠은 바위 등로를 따른다.

잠시 후 작은 바위에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쉬었다 올라온 세석대피소는 나뭇가지에 가려 보이지 않고 그 넘어 드넓게 펼쳐진 초록의 세석평전과 그 정상부에 놓여 있는 바위봉인 촛대봉이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산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고 환상으로 모습으로 마음속에 간직되는 풍경이자 조망들이다.

 

그 촛대봉 좌측 넘어로는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오늘 걸어야 할 지리산 주능선이 아름답게 이어져 있지만 안개가 밀려오며 천왕봉은 이미 그 안개로 인해 보습을 감추고 말았다.

다시 고도를 높혀 오르니 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올라 뒤돌아 보니 이제 보이지 않던 세석대피소와 그 넘어 세석평전 및 촛대봉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천왕으로으로 이어지는 주능선도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한동안 풍경을 즐기고 다시 오르니 드디어 영신봉 정상에 올라 참으로 고운 추억을 남겼던 낙남정맥 첫구간이자 1대간 9정맥 마지막 구간으로 걸었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영신봉(1651봉)은 남낙정맥의 시작하는 곳으로 김해 분산성까지 약 299 Km에 이르는 산줄기의 분기점으로 한반도에 있는 13정맥의 하나로 영신봉에서 동남쪽으로 옥녀산과 천금산, 무량산, 불모산등을 거쳐 분산성에 이른다.

또한 삼파수의 기점으로 낙동강, 섬진강, 남강의 세갈래로 흘러가는 꼭짓점이기도 하다.

영신봉은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함양군 마천면, 산청군 시천면에 걸쳐 있는 지리산의 봉우리 산이며 높이는 1651.9미터로 백두대간 낙남정맥의 출발점이다.

서쪽으로 칠선봉(1576미터)과 삼각고지(1470미터), 동쪽으로 촛대봉(1703.7미터)과 천왕봉(1915미터), 남쪽으로 삼신봉(1284미터)과 이어지는 주요 능선들이 영신봉에서 갈라지며 남쪽 비탈면에 산청군 시천면 거림골, 하동군 화개면 큰세개골과 대성계곡, 북쪽 비탈면에 함양군 마천면의 한신계곡이 있다.

노고단에서 삼각고지를 거쳐 영신봉과 천왕봉에 이르는 동서 방향의 지리산 주요 능선의 중심에 있는 영신봉은 혼성암질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신봉에 오르면 날씨가 맑은 날에는 동쪽으로 촛대봉에서 연화봉(1703미터), 장터목 대피소, 제석봉(1808미터) 및 천왕봉까지 보이고 서쪽으로는 칠선봉에서 덕평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삼신봉에 이르는 남쪽 능선까지 한눈에 들어오지만 오늘은 실질적인 영신봉 정상에는 오르지 못하고 주능선 상 정상 이정표만 만나다 보니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경과 조망은 다음 기회로 마뤄 본다.

그래도 아쉬움에 남쪽으로 흐르는 남낙정맥 산줄기를 다시 한번 가슴속에 저장한 후 영신봉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다시 세석대피소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 내려가 본다.


빠르게 내려가면서 다시 나타나는 바위 위에 올라 진행 방향으로 촛대봉과 그 좌측으로 보이는 천왕봉을 찾아 보지만 아쉬움만 남긴다.

다시 헬기장을 지나 세석대피소 갈림삼거리에서 우측 세석대피소로 내려가니 한가한 대피소 앞 탁자와 벤취쉼터에는 하람이 친구 혼자 망중한을 즐기며 반갑게 맞이해 준다.

잠시 더 휴식을 취하며 준비한 탁배기 한잔으로 갈증을 해소하고 배낭 둘러메고 촛대봉으로 향한다.

 

세석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즐기고 다시 무거운 배낭을 둘러메고 출발해 주능선으로 이어지는 세석갈림길로 나와 등로를 타고 우측 촛대봉 방향으로 거어 올라가니 습도가 높은데다 탁배기 한잔 마시고 올라서 그런지 친구의 컨디션이 썩 좋지 못하고 더욱이 무릎에 약간의 이상을 느끼니 더욱 조심하며 어려워 하는 듯 보이지만 친구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세석평전을 두고 그 가운데로 나 있는 등로를 따라 촛대봉으로 오르는 이 시간이 꿈결같기만 하다.

세석평전은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 일대에 있는 평원으로 세석대피소가 있는 곳이며 잔돌이 많은 평야와 같다고 하여 세석평전이란 이름이 붙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지리산 유산록에는 외세석, 내세석, 세석평 및 세석평전 등의 관련 지명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 현재의 명칭으로 굳어져 있는 세석평전이라는 용어는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일컬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1807년 지리산을 유람한 하익범(1767~1815)의 유두류록에는 세석평지라고 기록되어 있고 송병선(1836~1905)의 지리산북록기와 두류산기에는 세석평이라고 기록하였다.

세석평전이라는 용어는 1940년 지리산을 유람하였던 이병호(1870~1943)의 유천왕봉연방축에 나오며 그 밖에도 20세기 초반의 지리산유산기인 김택술의 두류산유록, 정기의 유방장산기, 정덕영의 방장산유행기 등에도 세석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또한 이곳 세석평전의 철쭉은 지리산 10경 중 제6경에 들 정도로 유명한데 봄이면 난만히 피어나는 철쭉으로 온통 꽃 사태를 이루는 해발 1600미터의 세석평전은 30리가 넘는 드넓은 평원으로 남녘 최대의 고원이다.

이름 그대로 잔돌이 많고 시원한 샘물도 콸콸 쏟아지는 세석평전에는 수 십만 그루의 철쭉이 5월초부터 6월말까지 꽃망울을 터뜨리며 한바탕 흐드러진 잔치가 벌어진다.

피 빛처럼 선연 하거나 처녀의 속살처럼 투명한 분홍빛의 철쭉이 바다처럼 드넓게 펼쳐지는 절정기에는 산악인들의 물결로 세석평전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서 시인 김석은 세석 계곡 훈풍이 꽃 사이로 지날 때마다 꽃들의 환상적이고 화사한 흔들림 그것은 남녘 나라 눈매 고운 처녀들의 완숙한 꿈의 잔치라고 이곳의 철쭉을 노래하기도 했다.

지리산 철쭉은 조정래가 쓴 태백산맥의 처절하도록 서럽게 그러나 꺾이지 않는 의지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진달래와 더불어 봄의 지리산을 단장하는 명물로 뭇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세석평전의 우리말 이름은 잔돌고원은 인데, 이는 말 그대로 잔돌밖에 없는 고원지대라는 뜻이지만 먼 옛날에는 제법 숲이 울창했다고 여러 문헌들이 전한다.

세석평전은 또한 세석고원으로도 불려지는 듯 보이는데 지리산 중심지 세석고원(1407미터)은 약50만평에 달하는 넓은 면적과 남향으로 15도 경사를 이루며 완만하게 펼쳐진 지형이므로 남녘의 개마고원으로 불릴 정도로 특이한 지형이다.

세석고원에는 200여종의 키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고 하고 또한 세석의 철쭉은 지리산10경의 하나인 세석 척촉으로 유명한데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과거 이데올로기의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세석평전은 오래전부터 작은 돌이 많다고 하여 원래 잔돌고원이라 불렸는데 언젠가 그것이 한자식 표현인 세석평전이 되었다가 평전이 일본식 표현이라는 의견에 따라 이제 많은 사람들이 세석고원이라 부르고 있다.

어려운 발걸음을 옮기며 서서히 고도를 높히다 뒤돌아 보니 세석고원 아래 방금 전 휴식을 취했던 세석대피소가 햇살에 반짝이고 그 뒤로 솟아 있는 영신봉이 오랫만의 재회에 반가워하면서도 짧은 이별에 아쉬움을 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세석고원과 세석대피소 그리고 영신봉을 살펴보는 즐거움을 누린 후 다시 오르니 금새 촛대봉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옆에서 쉬겠다는 친구를 남겨 두고 배낭을 벗어 놓은 채 우측의 촛대봉으로 오르니 예전과 다르게 안전목책으로 촛대봉 정상의 바위까지는 들어갈 수 없도록 하여 첫번째 바위봉에서 촛대봉 정상을 대신해 본다.

제일 먼저 북동쪽을 살펴보니 삼신봉과 1807봉인 망바위가 직선으로 보이고 그 좌측으로 연화봉 넘어 장터목대피소는 숨어 있으며 그 뒤 저 멀리 안개가 춤을 추는 직전의 제석봉과 구름속에 잠겨 있는 지리산 천왕봉이 환상으로 다가온다.

다시 지나 온 영신봉 방향을 뒤돌아 보니 안개속에 희미하게 내려다 보이는 세석고원과 세석대피소 넘어 영신봉은 벌써 안개속에 파묻혀 제대로 된 얼굴 한번 보이지 않는다.


잠시 더 그 촛대봉 장상부 바위에서 조망을 즐긴 후 내려 와 지나는 산행객에게 부탁해 쉬고 있는 친구와 함께 고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촛대봉은 경상남도 산청군의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의 경계에 있는 지리산 주능선의 한 봉우리로서 해발고도는 1703미터이다.

천왕봉에서 서쪽 노고단 방향으로 제석봉과 연하봉을 거쳐 촛대봉에 이르며 다시 칠선봉과 덕평봉으로 향해 이어지는데 촛대봉의 남사면 계류는 거림계곡으로 모아지고 북사면의 계류는 한신계곡으로 모이며 봉우리의 모양이 촛대와 같이 뾰족하게 솟아있어 이름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촛대봉의 옛 이름은 촉봉(燭峰) 혹은 촉대봉(燭臺峰)이었다가 촉봉 혹은 촉대봉이 오늘날의 한글 명칭으로 촛대봉이 되었다고 전해지는데 1879년에 지리산을 유람하고 쓴 송병선(1836~1905)의 두류산기에는 촉봉이 우뚝 솟아 있었다 라는 표현이 나오고 정기(1879~1950)의 유방장산기에는 촉대봉(燭臺峰)으로 나오는데 운무를 헤치고 천왕봉을 향하는데 겨우 촉대봉(燭臺峰)에 이르렀으나 북풍에 비바람이 불고 운무가 날려 지척도 분간할 수 없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촛대봉 이 봉우리의 전설을 보면 옛날에 연진이라는 여인이 남편 호사와 대성계곡에서 살았는데 자녀를 낳지 못해 치성을 드리는 중 흑곰이 나타나 세석고원에 있는 신비의 샘물을 마시면 자식을 낳는다는 흑곰의 말을 듣고 산신령이 금기시한 영신봉의 음양수를 마셨다.

그것을 안 호랑이는 흑곰과 앙숙이였는데 이를 산신령에게 일러바쳐 산신령이 대노하여 연진이를 남편과 평생 이별한 채 철쭉 밭을 가꿔야하는 벌을 받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연진이는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고 천왕봉 산신령에게 용서를 빌다가 돌로 굳어 버렸고 촛대봉 바위는 연진 여인의 굳어진 모습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조금 더 맑은 날씨에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을 상상하며 멀리 보이는 환상적인 조망과 풍경을 기대했는데 조금은 아쉬움이 남지만 오늘은 오늘나름대로 의미있고 뜻 깊은 날씨로 생각하기로 한다.


그렇게 친구와 좋은 추억을 남기고 다시 촛대봉을 지나 걸어 내려가니 금새 등로 좌측으로 1703미터의 촛대봉 이정석이 서 있고 진행 방향으로 장터목대피소까지 2.7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도 보인다.

나즈막한 안부로 내려가니 잘 보이지 않던 야생화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걸어가는 몇명의 등산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분들도 역시나 장터목대피소에서 하룻밤 머물 예정이기에 느긋하게 걷고 있는 중이다.

잠시 후 장터목대피소까지 2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다시 만나고 이제 막 피어난 예쁜 순백의 함박꽃도 살펴보며 걸어가니 바위 암봉지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친구가 담아 준 연화봉을 배경으로 한 사진 한장이 참으로 멋지기만 한데 이곳이 지도상 삼신봉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이제 하룻밤 묵어야 할 장터목대피소가 그리 멀지 않았기에 힘들면 쉬어가는 시간과 횟수가 늘어만 가지만 불안해하거나 걱정은 일도 없는 시간이다.


삼신봉이라 생각되는 바위봉을 지나 등로 양쪽으로 작은 바위들이 보이는 고갯마루를 통과하니 이제 장터목대피소까지 1.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다시 통과하고 그림같은 짧은 등로를 따르니 금새 도상 1693.6 바위봉에 도착을 해 배낭 내리고 시원한 얼음물로 허기와 목마름을 달랜 후 잠시 망중한을 즐겨 본다.

다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연하선경과 제석봉 지나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풍경이 아름답다고 알고 있는데 오늘은 짙은 안개로 보이는 것이 없으니 안타까운 시선으로 자꾸만 사진만 담고 있는 하람 친구의 뒷모습만 담아 준다.

 

아름다운 능선 풍경을 살펴보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그곳 1693.6봉에서 한동안 머물며 간식으로 다시 허기를 달래며 쉬고 있으니 장터목대피소에서 머물 예정인 등산객들이 합류하고 잠시 뒤 몇 팀이 더 머물다 떠나가니 거짓말처럼 서서히 안개가 사라지며 연하봉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연하선경 등로가 살짝 보이기 시작하여 환호성을 지르며 몇장의 사진을 더 남겨 본다.

친구가 핸드폰을 빼앗다 시피해 담아 준 연하선경 쪽을 배경으로 한 사진 한장이 볼수록 매력적인 모습이다.

세석과 장터목 사이 연하봉에는 철 따라 향기 그윽한 꽃들이 만발하고 기암괴석은 천 년의 고색창연한 이끼를 입고 서 있고 한신계곡을 넘어온 운무가 이 봉우리에 잠시 머물면 신선이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날 것만 같은 꿈같은 선경이 펼쳐지는데 탁 트인 전망과 기암괴석, 주변의 기화요초와 고사목, 온갖 새들의 지저귐이 천연의 조화를 이룬다.

세석산장에서 연하봉까지의 능선길이 연하선경인데 25.5 Km의 지리산 주능선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길이 연하선경인데 그 모습이 그리워 찾아 왔건만 무심한 안개가 그 조망을 방해하며 산객의 애간장을 태우다 막판에 약간 그 풍경을 열어주니 그곳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시간이 되었다.


오랫동안 머물며 많은 사진을 남기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른 등산객들이 다시 합류하고 이 산객 먼저 출발하려는데 하람이 친구는 조금 더 남아 이 보고 싶고 그리웠던 연하선경이 눈에 어른거려 출발하지 못하고 조금 더 머문 다음 뒤따라 온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혼자 천천히 출발한다.

잠시 후 안부 고갯마루를 가득 채웠던 안개들이 불어 오는 바람에 춤을 추며 사라졌다 다시 등로를 숨기기를 반복하고 그렇게 신비한 자연의 현상을 몸으로 체험하며 안부 지나 다시 서서히 고도를 높히며 올라 뒤돌아 보니 저 멀리 1693.6봉의 바위 위에는 아직도 친구 하람이와 다른 등산객들의 모습이 올려다 보인다.

연화봉으로 가는 길목에 만난 바위 위에서 뒤돌아 보는 연하선경 등로 역시 환상적이기에 다시 진행하지 못하고 자리 지키며 많은 사진으로 남겨 본다.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니 연하선경 등로 뒤로 방금 전 머물다 내려 온 1693.6봉이 올려다 보이고 그곳에 머물고 있는 친구와 다른 등산객들의 이야기 소리와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1693.6봉 좌측으로는 삼신봉과 그 뒤 저 멀리 중앙으로 촛대봉이 정상부에 안개를 드리운 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되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한동안 자연에 동화되었다 깨어 나 다시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정상부에 오르니 등로를 다시 온순한 흙길로 이어지고 나무 터널을 지나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거대한 바위 암봉이 보이고 그 암봉을 우측으로 돌아 오르니 눈 앞에 다시 등로 좌우측으로 커다란 바위들이 도열하듯 서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그 바위 가운데로 나 있는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금새 연화봉 이정표에 도착을 해 긴 휴식과 함께 많은 사진을 남겨 본다.

연하봉(煙霞峰)은 천왕봉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건너다 볼 수 있는 봉우리로서 지리산 8경인 연하봉은 선경이다.

연하는 연기처럼 피어오른 노을이라는 뜻인데 이는 연기가 아니라 구름이 연기처럼 피어오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세석평전과 장터목 사이의 연하봉은 기암과석과 층암절벽 사이로 고사목과 어우러진 운무가 홀연히 흘러가곤 하여 이곳에 앉아 있으면 마치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천왕봉을 향해 힘차게 뻗은 지리산의 크고 작은 산줄기 사이사이에는 온갖 이름 모를 기화요초가 철따라 피어 지나는 이의 마음을 향기롭게 한다.

이끼 낀 기암괴석 사이에 피어 있는 갖가지 꽃과 이름모를 풀들은 한 폭의 그림처럼 지리산과 어우러져 마치 신선의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고산준령 연하봉의 선경은 산중인을 무아의 경지로 몰고 간다.

연하봉의 이름은 아름다운 경치를 지극히 사랑함을 뜻하는 고사성어에서 유래된 명칭으로서 지금의 연하봉 풍경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 생각이 든다.

많은 시간 보내고 다시 천천히 출발해 정상부로 오르니 등로 뒷쪽으로 방금 전 지나 온 1693.6봉과 삼신봉 넘어 촛대봉이 보일듯 말듯 춤추는 안개속에 몸을 숨기고 숨박꼭질을 하고 있다.


연화봉도 지나 아주 가깝게 다가 온 장터목대피소를 생각하며 전진하니 큰까치수염과 범의꼬리 및 오줌노루꽃이 만개하여 등로를 가득 채우고 있다.

다시 나즈막한 안부로 걸어 내려가다 뒤돌아 보니 연화봉 정상부의 거대한 바위 사이로 등산객이 걸어 내려오는 모습이 마치 신선이 나풀거리며 걸어 내려오는 듯 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앞서 진행하는 등산객들 뒤로 1723.4봉이 올려다 보이고 그곳 역시 짙은 안개가 불어오는 바람과 씨름을 하면서 정상부 풍경이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고 있다.


잠시 후 장터목대피소까지 4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고 나무 터널이 된 흙길을 따라 무심으로 걷다 보니 한동안 떨어져 있던 하람이 친구가 바로 등뒤로 따라 붙었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짙은 안개가 춤을 추고 있는 장터목 앞 드넓은 마당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공사를 위한 물건들이 공터 좌측에 쌓여있고 그 앞으로는 드디어 장터목대피소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 모습은 잘 보이지 않고 저녁식사를 즐기는 산객들도 많지 않아 조금은 낮설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이곳 장터목대피소 역시 이 산객에게는 많은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이기에 잠시 구석 구석을 둘러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새로 건설된 취사장이 아닌 탁자 벤취에서 배낭을 푸는 사이 친구는 대피소로 들어 가 방 배정 마치고 되돌아 나와 함께 저녁 준비에 바쁘기만 하다.

친구가 준비한 주물럭과 이 산객이 준비한 오리훈제 및 밥을 준비하며 김치와 깻잎 그리고 이슬이 몇잔을 나누니 이 세상 모든것이 우리들이 되는 시간이다.

예상보다 한시간 이상 늦게 도착해 저녁 준비하고 맛난 식사를 하며 이슬이를 반주 삼아 무용담을 이야기하고 듣다 보니 금새 소등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조금 더 외부에서 머물다 한가한 틈을 이용해 음용수가 있는 곳으로 가 간단히 땀내를 제거하고 올라 오니 더위에 약간의 취기가 올라 와 금새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른 시간에 일어 나 너무 더운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저녁 10시가 되지 않은 시간에 대피소 2층에 마련된 보금자리로 올라가니 벌써 코를 고는 사람들로 인해 제대로 잠들지 못하다 금새 단잠에 빠졌다가 목이 말라 일어나니 이제 저녁 11시 53분을 지나가고 있다.

저녁식사 후 받아 둔 식수로 갈증을 달래고 다시 잠자리에 들지만 2층이고 여전히 코를 심하게 고는 사람들로 인해 제대로 잠들지 못하다 12시 40여분이 지나서야 간신히 다시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이제 새벽 2시 55분을 넘어가고 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니 새벽부터 내린다는 비는 내리지 않고 하늘에 별들도 몇개 떠 있어 다행이란 생각으로 시원하게 불어 오는 새벽바람을 맞으며 주위를 둘러 본다.

그렇게 지리산에서의 1박 2일 중 첫째날과 하룻밤을 보내고 더 이상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대피소 외부에 머물다 조금 이른 시간에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을 나 홀로 다녀오기로 한다.


새벽 12시 4여분에 어렵게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이제 새벽 2시 55분을 가리키고 있는데 더 이상 잠은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더위를 피해 밖으로 나오니 흐리지만 아직 비는 내리지 않아 조금 더 머물다 일찍 지리산 천왕봉을 다녀오기로 한다.

대피소 외부 벤취쉼터에서 쉬고 있는데 하람이 친구도 잠을 못이루는지 3시 20여분에 밖으로 나와 잠시 머물며 이야기 꽃을 피운 후 무릎과 체력적인 문제로 이곳 장터목대피소에서 조금 더 휴식을 취하겠다는 친구를 놔두고 홀로 3시 40여분에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 1.7 Km 거리이고 또 작은 물한통만 달랑 들고 빈손으로 오르니 채 한시간이 걸리지 않아 도착할 거리이기에 어둠속에 가능하면 천천히 걸어 진행하기로 한다.

몇 명이 앞서 진행하다 중간에서 헤어지고 정상 부근에서 다른 2명을 만나 앞서거니 뒷서거니 그렇게 진행하니 새벽 4시 26분에 드디어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에 도착을 하지만 어둠속에 보이는 것 하나 없으니 한동안 불어 오는 바람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본다.


지리산은 1967 12 27일 우리나라 첫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으로 금강산 및 한라산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삼신산의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방장산이라고도 한다.  
지리산이란 지명에 대해 현재 남아있는 역사물로 가장 오래된 것은 통일신라시대(887) 최치원 선생의 쌍계사의 진감선사 비문에 등장하는 智異山이지만 고려시대 편찬된 삼국사기에 통일신라 흥덕왕조 828년 당에 들어갔다가 돌아오는 사신 대렴이 차나무 씨앗을 가지고 오니 왕이 지리산(地理山)에 심게 하였다가 최초인데 삼국사기의 기타 기사에도 地理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고려사에는 오늘날과 같이 智異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고려시대 이후 지리산은 또 다른 이름인 두류산(頭流山)으로 개인문집이나 유람기 등에 등장하고 또한 조선시대 영남학파들에 의해 두류산이라는 이름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호칭이 있는데 신선사상의 발로이자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 산세와 풍모의 미학적 장중함을 드러내는 덕산, 민중적 변혁의식의 장소성이 반영된 불복산과 반역산 등도 지리산의 또 다른 별칭이다
.
지리산 권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마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마한의 도성이 지리산 달궁으로 피난했다는 설이 전해지며 산청에 있는 구형왕릉은 신라왕국을 피해 6세기경에 지리산 자락에서 마지막을 맞이한 가야국의 전설을 잘 드러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리산 자락 골골이 숨어 들어선 전통마을의 역사적 기원이나 형성동기를 보면 많은 경우가 조선시대의 전란을 피해 입지하고 있다
지리산의 험난한 역사는 삼한과 가야 및 삼국시대에는 국경의 접변지대로 싸움터의 무대였고 고려 때는 왜구의 침입과 민란의 현장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대변되는 침략의 밀물을 겪어야 했고 근대엔 동학민중운동과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에서 피로 얼룩진 전쟁터였다.  
구례의 석주관과 고려 말 이성계가 섬멸한 남원의 황산대첩비지, 여원치와 피아골 등은 왜적을 막던 지리산의 역사적 현장이며 특히 석주관에는 정유재란 때 순절한 의사의 위패를 모신 칠의단과 승병 및 의병을 모신 비석이 당시의 역사를 웅변하고 있다.

더욱이 다리산은 현대사에 접어들어 1948 10월 여순사건에서 시작해 1955년까지 계속된 좌우 대립의 치열한 격전으로 수만 명의 목숨이 스러진 곳이다
지리산은 험난한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피난과 보신지의 터전이기도 했는데 이규경(1788~?) 청학동 변증설에서 우리나라의 형승은 험조한데 산이 서리고 물이 감돌아 양의 창자 같은 곳이 아님이 없고 그리하여 사이사이에 동천(洞天)과 복지(福地)가 많다고 했으니 바로 골짝마다 삶터를 일굴 수 있는 지리산의 지형지세를 염두에 두고 일컬은 평인 것이다.

조선 중기 실학자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서도 지리산의 주거환경 조건을 말하기를 지리산은 흙이 두텁고 기름져서 온 산이 모두 사람 살기에 알맞으며 산 안에 백리나 되는 긴 골짜기가 있어 바깥쪽은 좁으나 안은 넓어서 가끔 사람이 발견되지 못한 곳도 있다고 적고 있다.  
이런 표현들은 모두 피난지와 은거지로 적합한 지리산의 자연지형적 조건을 잘 나타낸 것이고 또한 지리산의 온화한 기후와 맑고 충분한 수원, 농경에 필요한 토양 조건과 생태적인 풍요로움은 이곳이 한라산 혹은 변산 및 금강산과 함께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으로 여겨진 배경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외부와 차단된 깊은 골짜기와 뛰어난 자연경관은 정감록의 십승지나 청학동 전설을 비롯한 이상향 관념이 생겨난 조건이 됐다.
지리산의 지리적 입지는 국가적인 요충지로서의 중요성과 아울러 국토의 남쪽 변방이라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바다에 인접해 외국의 선진 정보를 수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새로이 유입된 문화의 발상지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지리산 권역에서 불교문화의 역사와 지리적 전개 양상을 보더라도 그런데 통일신라의 국찰이자 화엄십찰의 하나인 구례 화엄사의 입지는 국가적 요충지로서의 지리적 위상을 대변하고 있지만 신라 말에 새로이 중국에서 유입된 선종의 구산선문 중에 실상산문의 실상사와 동리산문의 태안사 등 2개 산문 역시 지리산권역에 자리하였던 것이다.  
국토의 남쪽에 크게 둥지를 틀고 있는 지리산의 입지적 무게는 중심지에 대한 변방지역의 독립성과 근거지를 확보하는 장소성을 띠고 있으며 따라서 지리산은 지배층의 견지에서는 반역지의 속성이 있었지만 민중의 입장에서는 변혁의 근거지요 산실이기도 했다.

구산선문의 2개 산문이 지리산에서 일어난 통일신라 말 불교의 변혁과정도 그랬고 동학을 위시한 근대의 민중운동도 그 역사를 잘 말해주고 있다.

지리산의 호칭이 불복산과 반역산이라는 것도 이성계가 조선 창업의 뜻을 품고 명산을 순례하며 기도할 때 유독 지리산만 응하지 않았다고 하여 생겨난 이름으로 지리산의 변혁적 장소성에 대한 지배계층의 의식을 잘 드러내어 주는 단면이다.  
지리산 권역에서 태동된 판소리의 동편제는 서편제와는 대조적으로 지리산 산세의 웅혼함을 닮아서 메아리쳐 이루어진 음률이고 남명 조식(1501~1572)의 장중한 사상적 무게와 그가 일상에서 견지한 공경과 의로움은 61세 이후로 덕산 자락에 터를 정해 산천재에 거처하고 스스로를 방장산인으로 여기면서 지리산과 한 몸이 된 결과이기도 했다.

남명의 문하에서 의병대장인 곽재우를 비롯해 조종도, 정인홍, 김효원, 최영경 등 수많은 인물이 지리산의 봉우리처럼 배출됐고 남명의 사상은 1862년의 진주민란과 동학 등의 위정척사운동과 3월 독립운동 그리고 형평사운동 등의 정신적 원동력이 되었다
많은 생물종의 다양성을 갖추고 있는 지리산의 생태적 조건은 고대적인 신화와 의례에서 모성적 장소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천신의 딸인 성모 마고가 지리산에 하강해 딸 여덟 명을 낳아서 팔도에 보내 민속을 다스리게 했다는 전설뿐만 아니라 김종직(1431~1492) 유두류록에 의하면 석가여래의 어머니 마야 부인을 산신령으로 모셨다는 언급도 나온다.

신라는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 성모를 지리산의 산신으로 남악사에 봉안했고 고려 때는 태조 왕건의 어머니 위숙왕후를 지리산의 산신으로 성모사에 봉사한 사실도 어머니 산으로서의 지리산의 역사적 상징 과정을 잘 표현해 준다.

한동안 머물고 있으니 땀이 마르면서 한기를 느끼기 시작하고 가지고 간 방풍의를 입고 바람이 잦아 든 곳에 앉아 있으니 동쪽 하늘에서 두꺼운 구름을 뚫고 강렬한 빛이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역시나 오늘은 일출은 불가능해 보인다.


정상에 도착하여 약 30여분이 지나니 서서히 어둠이 엷어지고 하나 둘 등산객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역시나 하늘에 덮혀 있는 두꺼운 구름으로 인해 어둠도 쉽게 물러가지 않는다.

새벽 5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부터 많은 사진을 담아 보지만 그동안 몇개를 바꾸며 사용하던 캐논 카메라가 고장 나 같은 기종으로 구매하려니 이제 단종이 되었다기에 어쩔 수 없이 핸드폰으로 사진을 담다 보니 오늘 같은 날은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운 시간이다.

좌측의 웅석지맥 상 웅석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우측의 구곡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사이로 산청군 삼장면이 내려다 보이는데 그곳에는 하얀 운해가 온세상을 뒤덮고 있어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그 삼장면 우측으로는 구곡산 우측으로 몇 번인가 지리산을 오르며 지났던 중산리가 펼쳐져 있고 그 중산리에도 역시 삼장면처럼 운해가 가득 들어차 있어 또 다른 기억과 추억으로 남겨지는 시간이다.

그 중산리쪽 운해를 지나 우측으로 조금 더 눈을 돌리니 낙남정맥의 삼신봉 줄기 지나 저 멀리 호남정맥의 마지막 큰 봉우리인 광양의 백운산 자락도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중산리에서 백운산 사이로 펼쳐진 산줄기들이 마치 다도해에 떠 있는 섬들처럼 이 산객의 가슴속으로 파고 들고 있다.


다시 한번 더 낙남정맥 상 삼신봉과 그 뒤에는 섬들처럼 구름 위에 떠 있는 호남정맥 상 백운산 줄기들이 환상으로 다가오는 시간이다.

대부분의 산줄기를 걸으며 늘 이곳 지리산 천왕봉을 살펴보는 시간을 기대하며 진행하였었는데 때로는 그 풍경이 환상으로 다가오고 또 한편으로는 미세먼지와 운해들로 인해 바라보지 못하고 상상만으로 이곳 지리산 천왕봉을 만나면서 걸었던 추억이 생각나는 시간이다.

대부분 큰 산줄기들은 한반쯤 걸었던 곳들이니 다시 한번 더 그 등로에 올라 걸어 볼 기회나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하는 시간이다.

 

한동안 동쪽과 남쪽 방면을 살펴보고 이제 어제와 오늘 걸었던 지리산 주능선을 살펴보니 오늘도 여전히 그곳에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지리산 주능선이 저 멀리 반야봉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리산 천왕봉 바로 아래 바위 등로가 보이고 그 뒤쪽으로 제석봉 지나 좌측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촛대봉이 반갑다.

그 촛대봉 우측으로는 영신봉 지나 올망졸망 이어지는 산줄기가 저 멀리 가장 높게 솟아 있는 반야봉으로 이어지고 그 반야봉 우측으로는 보여야 할 만복대가 머리만 보일듯 말듯 그렇게 펼쳐져 있어 자꾸만 눈길을 잡는다.


지리산 주능선을 살펴보고 그 능선 우측을 살펴보니 그곳에도 환상적인 운해가 드리워져 몽환적인 풍경을 만들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다른 등산객에게 부탁해 어렵게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창암산과 백운산 지나 저 멀리 백두대간과 호남금남 정맥의 백운산과 영취산 그리고 장안산 줄기가 희미하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잠시 옛 추억을 더듬어 보기도 한다.


이제 다시 눈을 북동쪽으로 돌리니 바로 옆에 중봉이 어둠속에 솟아 있고 언젠가는 걸어야 할 웅석지맥 지나 산청의 왕산과 필봉산도 보이고 그 뒤 저 멀리에는 진양기맥의 산줄기들도 희미하지만 뚜렷한 모습으로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을 더 담아 본다.

몇 년 전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하룻밤 유하면서 잠시 필봉산만 오르고 왕산은 들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 언젠가 가족들과 휴가를 즐기며 왕산과 하메 연계 산행으로 오르겠다 생각을 했는데 아직도 그 산행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음이 아쉽기도 하다.

하늘이 열리고 밝은 빛이 조금 더 선명해지면서 핸드폰으로 담는 사진이 조금 더 선명하였으면 좋았겠지만 이렇게 기억속에 희미한 모습만이라도 남길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빛이 밝아지기를 기다렸다 저 멀리 서쪽으로 보이는 반야봉을 배경으로 다시 한번 지리산 주능선을 살펴보니 이제서야 그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며 몇 번인가 걸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고운 추억들을 소환하고 있다.

바로 아래 우측으로 어둠속에 보지 못하고 이정표만 사진에 남기고 오른 제석봉이 보이고 그 좌측 아래로 짤록하게 들어 간 장터목대피소가 자리한 장소가 내려다 보이며 그 좌측으로 연화봉과 촛대봉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 뒤로 하얀 구름인지 안개가 산줄기에 걸려 또 다른 풍경을 만들고 그 구름을 지나 저 멀리 독야청정하게 빛나는 반야봉이 언제 다시 재회를 할 수 있느냐며 안부를 물어 온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리산이 그리우면 훌쩍 우등버스나 열차를 타고 내려 와 한바퀴 돌고 올라가 또 일주일 아니 한달 동안 생활할 수 있었는데 맥 잇기 산행에 빠지고 나니 지리산에 대한 그리움도 많이 줄어 든 느낌이다.


이제 새벽 5시 30여분이 지나고 아직까지도 일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동쪽 하늘을 살펴보니 오늘은 두꺼운 먹구름이 길을 내주지 않아 만나기 힘들것 같아 아쉬움을 남기고 홀로 이 친구를 기다리고 있을 하람이 친구가 머물고 있는 장터목대피소로 하산을 시작한다.

하람이 친구와 함께 올라왔다면 더 좋았게다는 아쉬움과 핸드폰으로 아름답게 펼쳐진 세상의 황홀함을 다 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온 몸으로 느끼며 정상을 내려가다 잠시 천주라는 글자를 다시 한번 더 알현하고 헬기장을 지나 하산을 서두른다.

내려가는 등로에도 많은 등산객들이 주위 풍경을 내려다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추억 만들기에 여념이 없지만 이 산객은 정상에서 원없이 머리와 가슴속에 추억으로 간직하고 내려왔기에 내리막 돌 등로를 따르니 등로 앞으로 구상나무 두그루와 그 옆으로 고사목이 된 한그루가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와 잠시 바쁜 발걸음 멈추고 사진 몇 장 남겨 본다.

그 구상나무 아래 저 멀리 춤을 추기 시작하는 운해가 서서히 민초들을 깨우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빠르게 하산하면서도 진행 방향과 좌측을 살펴보니 그곳에는 여전히 환상적인 지리산 주능선이 저 멀리 반야봉으로 이어지고 종산리쪽 짙은 운해는 그래도 약간씩 불어오는 바람에 약간의 틈이 생기면서 하얀 운해가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한다.

정상에서 만났던 풍경과는 또 다른 황홀경에 빠져 시간 가는줄도 모르게 많은 사진을 남겨 보지만 역시나 빛이 충분치 못한 새벽 시간에 모바일폰으로 이런 자연 풍광을 남긴다는 자체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저 멀리 남서쪽으로 섬처럼 보였던 호남정맥의 마지막 백운산이 이제는 운해가 엷어지며 제법 산줄기 형태로 보이기 시작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마음은 급하지만 눈으로 바라보는 풍경과 조망이 너무나 아름다워 자꾸만 발걸음을 붙잡으니 진행 속도는 나지 않는다.

그래도 조심하며 바위 암릉과 돌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계단이 나타나고 이제서야 지리산 천왕봉으로 오르는 산님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통천문 위 바위 위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앞에 우회해야 할 무명 바위봉이 뾰족하고 그 뒤 우측으로 잠시 후 다시 만나야 할 제석봉이 아름다운 자태로 이 산객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인다.

그 제석봉 넘어 저 멀리에는 여전히 반야봉의 정상부가 고개를 내밀고 얼마나 크고 장쾌한 지리산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 통천문 바위 위에서 잠시 더 시간을 보내고 다시 철계단을 통해 통천문을 통과하니 그 아래 안부에 통천문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통천문은 제석봉 정상에서  0.7 Km 떨어진 곳에 천왕봉을 지키며 하늘과 통한다는 천연암굴로서 이 문을 통과해야만 하늘과 통하는 지리산 천왕봉으로 오를 수 있으며 이 통천문에서 0.4 Km를 더 가면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에 이르게 된다.

오를 때 사진 몇장 남기고 통과를 하였지만 새벽 너무 이른 시간이라 사진도 나오지 않고 어둠이 짙어 분간하기 어려워 내려오며 다시 한번 더 사진에 어렵게 담아 본다.

이제 통천문을 통과하였으니 신들이 살고 있는 하늘에서 내려 와 민초들과 함께하는 땅으로 내려온 듯 마음도 가뿐하기만 하다.


통천문을 지나니 평이한 흙길이 짧게 열리는데 등로 주위에는 눈개승마 군락지가 펼쳐져 있고 하얀 꽃들이 만발해 이 산객을 반겨준다.

사진 몇장 남겼지만 역시나 빛이 모자르고 걸으며 담다보니 모두 술에 취해 담은 것처럼 흔들려 사용 가능한 사진 한장 남지 않았다.

그곳을 지나 잠시 뒤돌아 보니 지리산 천왕봉 정상은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그 뒷모습엔 거대한 바위들만 눈에 들어오며 아쉬운 시간만 흐르고 있다.

그곳을 지나 다시 계속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환상의 운해가 펼쳐지고 그 운해속에 섬섬옥수처럼 펼쳐진 산줄기들이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처럼 다가오며 이 산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언젠가는 걸어야 할 삼신지맥의 고봉들이 이 산객을 부르고 그 뒷쪽으로 아침재에서 연대봉만 남겨 둔 우듬지 및 호남정맥의 백운산 줄기가 다시 환상을 노래하고 있어 잠시 장단을 맞추고 진행을 이어가 본다.


그렇게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환상의 절경을 살펴보며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연하선경 같은 등로가 짧게 펼쳐지고 그 끝자락에 제석봉으로 이어지는 바위들 사이로 죽은 구상나무 고사목들이 색다른 모습과 풍경으로 이 산객의 눈을 사로 잡는다.

잠시 후 안부에서 장터목대피소까지 1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고 여전히 아름다운 등로 좌측의 운해를 내려다 보며 걸어 진행하니 드디어 제석봉 오르는 안전목책이 보이고 곧이어 제석봉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 도착을 해 새벽에 오르며 살펴ㅑ보지 못한 주위 풍경들을 살펴 본다.

지리산의 고사목 가운데 가장 유명한 제석봉의 고사목은 자연 그대로의 고사목이 아니라 1960년대에 있었던 대규모의 도벌작업을 추기 위해 산불을 내면서 만들어진 인위적인 고사목이다.

교적의미에서 볼때 제석(帝釋)은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도리천의 임금을 말하므로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천왕봉 밑에 제석이란 이름이 붙은 것을 보면 지극히 당연한 작명인 것 같다.

제석봉(1808봉)은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의 경계에 있는 지리산의 봉우리이며 지리산 천왕봉(1915미터)과 중봉(1874미터)에 이어 지리산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높이 1808미터이다.

봉우리 근처에 산신에게 제를 올리던 제석단이 있고 그 옆에 늘 물이 솟아나는 샘터가 있어 예로부터 천혜의 명당으로 알려졌다.

제석봉 일대 약 33만입방미터의 완만한 비탈은 고사목으로 뒤덮여 있으며 나무 없이 초원만 펼쳐져 있는데 한국전쟁 이후까지만 해도 아름드리 전나무와 잣나무 및 구상나무로 숲이 울창하였으나 자유당 말기에 권력자의 친척이 제석단에 제재소를 차리고 거목들을 무단으로 베어냈고 이 도벌사건이 문제가 되자 그 증거를 없애려고 이곳에 불을 질러 모든 나무가 죽어 현재의 고사목 군락이 생겼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아쉬움이 많은 제석봉이지만 이제 그 비극을 희극으로 만들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다시 예전처럼 울창한 숲이 조성된 제석봉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상상을 해 본다.



제석봉 이정표 바로 아래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오랫만에 다시 그곳으로 내려가 보지만 역시나 지금까지 봐 왔던 풍경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다시 정상 등로로 복귀를 한다.

전망대 우측으로 솟아 있는 촛대봉이 여전하고 그 좌측 저 멀리 호남정맥의 마지막 고봉인 광양의 백운산 줄기가 이제 제법 그럴듯한 산줄기를 이루며 오래전 맺었던 인연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 앞쪽 운해가 잠시 사라진 삼신지맥 줄기가 다시 이 산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지만 올라야 할 산줄기들이 너무 많으니 언제 다시 저곳에 올라 이곳을 살펴볼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음이 안타까운 시간이다.


전망대에서 발길을 돌려 나오면서 지나온 지리산 천왕봉쪽을 살펴보니 통천문이 있는 나즈막한 안부 뒤로 남성미를 자랑하듯 우람하게 솟아 있는 지리산 정상의 천왕봉이 하늘에 맞닿아 있는 모습으로 이 산객을 내려다 보고 있다.

환상의 운해와 풍경을 살펴 봤지만 카메라로 인한 아쉬움이 남기에 좋은 카메라를 장만하게 되면 가까운 시간내 다시 한번 올라 여유롭게 유하며 내려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보는 시간이다.


제석봉을 지나 이 산객이 가장 좋아하는 등로 중 한곳인 제석봉 고사목 지대를 천천히 걸어 내려가다 등로 좌측을 보니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서 내려다 보던 모습과는 조금 다른 환상의 풍경들이 다시 펼쳐져 있어 발걸음 멈추고 한동안 무심으로 살펴 본다.

가운데 운해가 자욱한 곳이 아마도 섬진강이고 그 섬진강에서 만들어진 운해가 주위 산군들을 뒤덮으며 높은 산봉들만 섬처럼 떠 받치고 있는 풍경이다.

운해 좌측으로는 나즈막하게 이어지는 우듬지 줄기처럼 보이고 그 끝자락에 분지처럼 보이는 초록은 아마도 금오산쯤 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우듬지 산행을 하면서 저 금오산에서 10여 Km 를 알바하며 너무나 힘들게 걸었던 추억이 생각 나 피식 웃어도 본다.

그 섬진강 우측으로는 삼신지맥 지나 호남정맥의 마지막 산줄기에 위치한 봉우리들이 작은 섬처럼 머리만 내밀고 존재감을 알리고 있어 그때 함께 걸었던 산친구들이 문득 그리워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섬진강 우측으로 눈을 돌리니 그곳에는 여전히 거대한 삼신지맥 산줄기가 저 멀리남해바다로 힘차게 뻗어 내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그 우측 운해 넘어 백운산과 도솔봉 자락들이 그 옛날 많은 땀을 흘리며 이곳 지리산을 바라보며 환상을 노래했던 시절로 되돌리고 있다.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계절에 저 맥운산에서 시작하는 억불지맥 능선을 따라 다시 한번 더 걸어 볼 기회가 있기에 오늘 아쉬움은 그때 풀어 보기로 하지만 오래 전 너무나 환상의 등로를 타고 백운산에서 억불봉 지나 매화마을을 한바퀴 돌아 내려왔던 추억이 다시 이 산객의 머릿속을 부자로 만들고 있다.


이제 제석봉 고사목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이어지는 돌 등로를 따르니 눈 앞으로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펼쳐지는데 천왕봉에서 봤던 모습과는 달리 이제 운해가 흩어지며 지리산 주능선을 타고 넘으며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지도를 만들고 있다.

그래도 높은 봉우리인 촛대봉이 우뚝하고 영신봉 지나 삼도봉 쪽 머리가 살짝 드러내더니 이제는 지리산 서쪽의 맹주인 반야봉도 운해속에 파묻혀 제대로 된 모습은 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 두 눈으로 그 아름다운 풍경과 시시각각 변해가는 지리의 산줄기들을 살펴볼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다.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등로 주위에 펼쳐진 고사목들과 이제 막 자리를 잡고 조금씩 높이를 높혀가고 있는 구상나무들을 살펴보며 걸어 내려가니 비극적인 역사와는 달리 색다르고 이색적인 풍경에 잠시 매료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제석봉 고사목이라는 안내판이 보이고 잠시 발걸음 멈추고 읽어 보니 제석봉에서 설명한 비극적인 내용들을 설명해 놓고 있다.

제석봉 고사목

살아 백년 죽어 천년이라고 무상의 세월을 말하는 이 고사목 군락지에 얽힌 내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1950년대에 숲이 울창하여 대낮에도 어두울 정도로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었으나 도벌꾼들이 도벌의 흔적을 없애려 불을 질러 그 불이 제석봉을 태워 지금처럼 나무들의 공동묘지가 되였습니다 .

탐욕에 눈 먼 인간이 충동적으로 저지른 어리석은 행위가 이처럼 현재까지 부끄러운 자취를 남기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그 어떠한 어리석은 행동들로 인해 부끄러운 자취를 남기는 사람이 없기를 바래보며 비극적인 그 아름다운 제석봉 고사목 등로를 내려가 본다.



제석봉 고사목 지대를 지나 계속 내려가니 이제서야 장터목대피소를 출발해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으로 오르는 산객들이 많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하고 인사 나누며 여유롭게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돌 계단을 지나 장터목대피소가 바로 눈 앞으로 다가온다.

여전히 잔뜩 찌프린 날씨이지만 비는 내리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으로 내려가니 하람이 친구는 벌써 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보며 좋은 사진기로 많은 사진을 담고 있다.

다시 대피소 안으로 들어 가 배낭을 정리해 밖으로 나와 아침식사 준비를 하는데 그때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 끓이다 만 라면을 들고 취사장으로 이동해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즐겨 본다.


아침식사 직전 마지막으로 장터목 음용수로 내려가 식수를 받으며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종주 산행을 하면서 이곳 20여미터 아래로 떨어진 식수대를 다녀오기 싫어 자주 내려가지 못했던 장터목대피소의 식수대를 이번에는 하룻밤 사이에 네번이나 왕복을 하였으니 그동안 내려오지 못한 횟수를 모두 채우게 되었다.

이제 오늘 떠나면 언제 다시 이곳 장터목대피소의 식수대로 내려 와 맛난 식수를 마실 수 있을지 아쉬움만 가득 남기고 출발한다.


장터목에서 이제 출발을 해야 하는 시간이기에 빗줄기가 강해지기 직전 어젯밤 늦게 넘어 온 무명봉을 사진에 담아 본다.

대피소 바로 앞 넓은 공터에는 ㅗ 무슨 공사를 할 예정인지 많은 플라스틱 통들이 보이는데 용도는 모르겠다.

다음에 오면 저 통들로 또 이곳 장터목 대피소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하기도 한 시간이다.

장터목이란 지금의 산청군 시천면 사람과  함양군 마천면 사람이 이곳에 올라와 물물교환하면서 붙은 고갯마루 이름으로 불과 십수년전만해도 장터목에는 텐트를 치고 막영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의 대피소는1997년에 확장되면서 모든 시스템이 바뀌였다.

피소에서 중산리방향으로 20미터가량 내려가면 산희샘(장터목샘)이란 식수가 있으며 그 사이에 지리산에서 편지쓰기의 일환으로 세워진 귀여운 우체통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장소에 새로운 취사장이 건립되면서 앙증맞던 우체통은 볼 수가 없어 아쉬웠다.


잠시 후 내려가야 할 백무동 방향을 담아 보니 그곳도 역시 운해가 엷게 깔려 있어 환상적인 풍경으로 다가오고 그 주위로 펼쳐진 산줄기들이 마치 옛 선조들이 그린 수묵화처럼 묵직하게 가슴속으로 들어 오는 시간이다.

청암산과 오공산 자락이 눈에 들어 오지만 그 뒤 저 멀리 보여야 할 백두대간의 고남산과 봉화산 그리고 조만간 걸어야 할 연비지맥의 산줄기들은 운해속에 숨어 보여주질 않는다.


넓은 공터를 지나 이제는 중산리쪽 마을을 내려다 보니 그곳 역시 아직까지도 짙은 운해가 덮혀 있어 사방 분간조차 하기 어렵지만 그 운해속에 솟아 있는 산봉우리들로 인해 조금씩 짐작으로 위치를 찾아 보는 시간이다.

국수봉에서 구곡산 방향으로 흐르는 산줄기가 보이고 중산리쪽 마을은 짙은 운해속에 갇혀 있으며 그 우측으로 우듬지와 낙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들이 마치 바다를 향해 뻗어 있는 마지막 산줄기와 섬처럼 운해속에 떠 있는 형상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이제 지리산에서의 마지막 조망과 풍경을 즐기고 아침식사까지 마친 후 제법 굵어진 빗줄기로 인해 완전무장한 우중 산행으로 아쉬운 장터목대피소를 출발하는 시간이 아침 7시 20여분을 지나고 있다.


아쉽지만 이제 지리산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기에 우중 산행 채비를 하고 취사장 뒷쪽 천왕봉 가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좌측 백무동 방향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생각보다 많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등로와 등로 주변의 나무들은 완전히 빗불에 젓어 등산객들이 지나다닐 때마다 빗물이 비산하며 등산복을 적시고 있다.

잠시 완만하게 올랐다 내려가니 장터목대피소에서 0.5 Km 진행했다는 이정표를 지나 조금은 지루하게 걸어 내려가니 커다란 바위 앞에 장터목대피소에서 1.5 Km 지점이란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 도착을 해 지도를 확인하니 이곳을 소지봉(1499.1봉)과 거북바위라 했는데 다른 지도에는 소지봉을 조금 더 아랫쪽에 표기를 해 놔 헷깔리는 곳이기도 하다.




거북바위를 지나 장터목에서 2.2 Km 지나왔다는 이정표를 통과하고 다시 평이한 하산 등로를 따르니 금새 작은 공터가 보이고 우측 한쪽에 장터목대피솨지 2.8 Km 걸어 왔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1284미터의 소지봉이라 표기된 장소에 도착을 하는데 아무래도 위쪽에 있는 거북바위쪽이 소지봉이 아닐까 추측을 해 본다.

이 소지봉 역시 장터목의 장터와 관련이 있는 듯 싶은데 아주 먼 옛날에 마천사람들이 장터목에서 시천사람들과 물물교환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지봉은 장터목에서 2.8 Km 떨어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며 예전에는 이곳을 우장봉(牛場峰)이라고도 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소시장이 열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이 산 중턱의 장터들은 산짐승인 호랑이와 곰보다 더 무서운 산적들의 극성으로 인해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하였다고 전해진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으니 쉬지도 못하고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하며 계속 걸어 내려가니 두 어깨르,ㄹ 짓누르는 무게감이 다시 두 다리를 무겁게 만들고 있다.


그 공터의 소지봉을 지나 조금은 유순해진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이 우중에도 장터목으로 향하는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없이 이어져 올라오고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어니새 참샘에 도착을 해 시원한 샘물 한바가지 마시고 잠시 쉬었다 내려간다.

늘 어둠속에 올라가며 빈 물통을 이곳 참샘에서 채워 올라갔던 추억이 생각 나 사진 한장 남기고 옛 추억을 떠올려 보지만 어둠속 물줄기만 기억속에서 살아 난다.


참샘을 지나 계속 내려가니 얼마 안 가 철다리가 나타나고 그 철다리를 지나니 하동바위라는 이정표가 서 있어 실제 하동바위를 찾아 보니 하동바위는 철계단 내려오기 전 우측 철망 뒤로 보이는 바위처럼 느껴져 다시 올라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지도를 보니 지도에는 학동바위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대부분 하동바위로 불리고 있어 하동바위가 맞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본다.

이곳 하동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 와 정리해 본다.

옛날 장터목에 장이 서던 날 함양 원님과 하동 원님이 산 좋고 물 좋은 지리산 장터목의 장을 둘러보기 위해 장터로 나섰다가 풍류를 잘 알았던 두 원님들은 뜻밖의 만남에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며 장기를 두게 되었는데 하동 원님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내기에 진 함양 원님은 수중에 내놓을 만한 변변한 물건이 없던 터에 승자를 놀려줄 요량과 설마 이 큰 바위를 가져갈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눈 앞에 보이는 거대한 바위를 가져가라 했다.

하동 원님은 이제 뒤질세라 고맙다며 나중에 사람들을 동원하여 가져가기로 하고 우선 이름을 하동사람들의 바위라는 뜻으로 하동바위란 이름으로 지은 것이 그만 함양 땅에 있으면서도 산 넘어에 있는 하동마을의 이름을 딴 하동바위가 되고 말았다는 설화이다.

그럴듯한 설화이면서 이곳이 분명 함양 땅이고 하동은 지리산 산줄기를 넘어야 나타나는 마을이니 설화가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보며 피식 웃어 보는 시간이다.

아주 오래 전 대낮에 한번 오르고 내려 왔던 기억이 있지만 그때만 해도 자료를 수집하고 후기를 남기지 않던 시절이다 보니 기억속에 남아 있는 등로에 대한 추억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하동바위를 지나면서도 여전히 이어지는 내리막 바위 등로를 따르니 이제 무릎에서도 아우성 소리가 들리는 듯 싶고 그렇게 한동안 내려가니 등로가 조금은 유순해지면서 이제 백무동까지 7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반가운 시간이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족욕탕 표시가 보이고 상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이틀간 1박2일 지리산 산행의 종착지에 도착했음을 느끼는 시간이다.

앞서 걸어가는 하람이 친구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지리산 박 산행을 즐기고 무탈하게 내려오며 많은 추억을 남긴 시간에 감사한 순간이다.


세석대피소와 장터목대피소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만나 다시 사진 한장 더 남기고 탐방안내센터를 지나니 약간의 긴장이 풀리면서 피로가 밀려오지만 아직은 힘든 정도는 아니다.

이렇게 또 하람이 친구와 새로운 추억을 쌓으며 즐겼던 지리산에서의 1박2일 산행도 마무리를 하는 시간이다.


드디어 함양백무동탐방안내센터와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으로 내려 와 지리산 마고할매상에게 인사를 드리고 터미널 내 비가 내리지 않는 곳으로 가 우비를 벗고 흐르는 땀방울을 화장실에서 닦아 내니 조금은 살 것 같다는 느낌이다.

잠시 배낭 정리하고 땀방울을 말린 후 하람이 친구의 승용차를 타고 유성으로 가 샤워와 점심식사 후 고속버스를 이용해 귀경하기로 하니 일사천리로 마무리가 되어 간다.

피곤이 밀려 와 덕유산휴게소에서 커피 한잔과 짧은 휴식 후 유성호텔 사우나에서 흐린 땀방울을 닦아내고 근처 국밥집에서 이슬이 한병에 도가니탕으로 근사한 식사까지 마치니 또 하루가 지나가는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유성고속버스터미널까지 친구의 도움으로 잘 도착을 하고 곧바로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 깊은 잠에 빠졌다 일어나니 버스는 벌써 서울로 진입해 터미널로 향하고 있다.

옆지기와 연락해 마지막 도움을 청하고 지하철을 이용해 귀가하니 아직 하루해가 중천에 떠 있고 서울은 맑은 하늘에 무더위로 인해 찜통 더위가 가승을 부리고 있어 다시 지리산이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오랫만에 무거운 박 배낭을 메고 친구와 지리산에서 1박2일 간 좋은 기운을 받고 왔으니 앞으로는 조금 더 여유있고 즐기며 살아가는 시간이기를 바래 본다.

다음에는 조금 더 여유롭게 배낭 무게 조절하면서 실질적인 박 산행을 약속했던 시간을 실천에 옮길 수 있기를 기다려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