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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춘천지맥(한강·완)

춘천지맥 제7구간 모래재(사현)에서 소주고개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8.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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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강원도 춘천시의 춘천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8년 06월 17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맑고 바람도 없이 한여름처럼 무더워 많은 식수를 마시며 걸었지만 고도차가 별로 없어 즐겁게 걸으며 진행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상 15도에서 영상 26도

산행인원 : 총5명(칠갑산과 강원도 친구 4명, 동해바다, 강릉이쁜 쑨, 나사, 햄벅)

산행코스 : 모래재(사현, 340미터, 5번 2차선 포장도로, 국립춘천병원)-논골입구 버스정류장 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송전탑 81번과 38번-무명안부-

                 송전탑 80번과 37번-425.2 삼각점봉-419.6봉-429 무명벌목봉-송전탑 77번과 34번-380 무명봉-좌측 벌목등로-339.9 철조망봉-염소목장-

                 새술막길 4번 2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무명안부-우측 강원양돈단지-383.2봉-낙엽송지대-334 무명봉-330 고사목봉-뚜렷한 무명안부-

                 336 폐헬기장봉-신도CC 공사장-덕만이고개(70번  2차선 포장도로)-331 무명 안테나봉-우측 삼호아스콘 공장-332 무명봉-우측 송전탑-

                 364 무명봉-363 무명봉-352 무명봉-밭 경작지-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혈동리와 행촌리 경계)-밭 경작지-무명안부-비포장 임도-356

                 무명봉-363 무명봉-374.1봉-342 무명봉-348 유해발굴봉-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나가지고개(1차선 포장도로)-파란 그물망-271 무명그물봉-

                 야생동물보호안내판(휘슬링락CC 이동통로)-전봇대안부-372 삼각점봉(인식 불가)-352 무명봉-꼬깔봉(420.2봉, 정상석과 삼각점)-357 무명봉-

                 357 바위봉-잣나무 군락지-성황당 안부-343 무명봉-346 무명봉-그물망 등로-336 무명봉-밭 경작지-추곡고개(추곡고개길 2차선 포장도로)-

                 간벌지대-343.9 소삼각점봉-2차선 포장도로(더존IT그룹강촌캠퍼스)-절개지 진입-346 무명봉-무명안부-송전탑 41번-355.5봉-339 무명봉-

                 소주고개(403번 2차선 포장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큰 고도 차이 없이 아기자기한 능선을 따라 무더위에 고생하며 진행하여 16.82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트랙 : 2018-06-17 춘천지맥제7구간 모래재-소주고개.gpx

산행시간 : 무더위에 많은 식수를 마시며 쉬엄 쉬엄 진행하여 08시간 02분 (05시 47분에서 13시 49분까지)

교통편 : 애마 2대를 이용하여 소주고개와 모래재 국립춘천병원 폐문에 애마를 각 1대씩 주차하고 산행한 다음 회수

춘천지맥이란 ???
춘천지맥이란 한강기맥 상에 있는 청량봉(1052봉)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하뱃재로 고도를 낮추다가 다시 솟구쳐 응봉산(1103봉), 백암산(1099봉), 가마봉(1192봉), 소뿔산(1118봉), 가마봉(925봉), 매봉(800봉), 가리산(1051봉), 대룡산(899봉), 응봉(759봉), 연엽산(850봉), 꼬깔봉(421봉), 봉화산(515봉), 새덕봉(488봉)을 거쳐 춘천의 경강역 뒤편 북한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125 Km의 산줄기를 말하는데 청량봉(1052봉)은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님이 이곳을 종주한 후 이 무명봉을 청량봉으로 명명했기에 이후로는 모두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는 설명이 보인다.

영춘지맥이란 ??? 
영춘지맥은 영월지맥과 춘천지맥 그리고 이 두 지맥을 잇는 한강기맥의 일부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으로 월간 사람과 산에 연재를 하면서 이 두 지맥을 합쳐서 영춘지맥이라고 소개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임진강을 제외한 한강유역의 울타리는 한북정맥, 백두대간, 한남정맥이다.
천마지맥과 앵자지맥을 경계로 하는 팔당댐 이후의 한강하류를 제외하면 남북으로는 한강기맥을 경계로 북한강과 남한강이 구분되고 동서로는 영춘지맥을 경계로 한강상류와 한강중류가 구분된다.
이는 북한강 상류와 중류의 경계는 북한강이 처음으로 경기도계를 만나는 지점을 거쳐 한북정맥으로 이어가는 것으로 봤고 남한강 상류와 중류의 경계는 남한강이 처음으로 충청북도계를 만나는 지점을 거쳐 백두 대간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춘천지맥이 홍천강의 끝으로 가지 않고 춘성대교로 가서 화악지맥을 따라 한북정맥에 이르러 북한강 상류와 중류의 경계가 되고 영월지맥이 평창강의 끝으로 가지 않고 태화산 아래 샘골로 내려가서 마대산과 형제봉을 지나 백두 대간에 이르러 남한강의 상류와 중류의 경계가 된 것이다.
따라서 영춘지맥은 영월지맥과 한강기맥 일부 그리고 춘천지맥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이는 한강의 상류와 중류를 구분하는 산줄기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알았으면 좋겠으며 그래서 춘천지맥과 영월지맥을 따로 구분한다면 춘천지맥의 끝이 홍천강의 끝으로 갈 수 있으나 영춘지맥의 춘천지맥이라면 춘성대교로 가야 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산줄기의 구분이나 명칭에 관한 정답은 없으며 구분 기준이나 명칭을 정한다 해도 예외는 있기 마련이고 산줄기의 명칭은 그 산줄기를 답사하거나 또는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공통어이므로 가능한 한 간단하고 명료하게 정리되는 것이 좋겠다.




큰 고도 차이는 없었지만 무더위로 인해 산행 시간을 조정하며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무탈하게 마무리하며 추억을 만들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날씨가 무더워지고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져 하지가 가까워진 시기이다 보니 산행 자체보다 날씨로 인한 어려움이 더욱 고민을 만들고 강원도 산친구들과 협의하여 새벽 일찍 만나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하지만 아침 식사가 문제인데 마침 강원도 산친구들이 아침식사를 준비해 모래재 정상에서 새벽 식사를 즐기고 출발하자는 제안에 동의를 하고 새벽 4시 30분에 소주고개에서 만나기로 하니 하룻밤 잠자기가 참으로 난처하다.

새벽 3시를 넘겨 출발을 해야 하기에 잠시 월드컵 축구 경기를 관람하다 강제로 잠자리에 들어 자는둥 마는둥 뒹굴다 1시간만에 어렵게 일어나 텅 비어있는 도로를 달려 강원도로 향하는 마음은 몸과 달리 상코하기만 하다.

지난 2주일 동안 제대로 된 산행 한번 못하고 몸 관리가 되지 않아 걱정이지만 오늘 하루도 페이스를 따라 오버하지 않고 무탈하게 완주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어둠을 달리는 시간이다.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평이하게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하니 몇번의 도로를 건너 마지막 나가지고개라 이름 지어진 도로에 도착을 해 잠시 휴식 후 오늘 산행 중 최고봉인 꼬깔봉으로 향한다.

생각보다 지루하고 오르는 등로가 까탈스러워 많은 땀방울을 등로에 뿌리며 힘들게 걸어 오르니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는 꼬깔봉 정상석이 반겨주고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추억 한장 남겨 보는 시간은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마무리가 될 것 같다는 좋은 예감으로 즐겼던 시간으로 남겨 본다.


새벽 4 30분 정각에 소주고개에서 강원도 산친구들을 만나 이 산객의 애마를 고갯마루 아래 안전한 장소에 주차를 시키고 강원도 산친구의 애마를 이용해 지난 구간 날머리로 이용했던 5번 국도가 지나는 모래재에 도착을 하니 5시가 막 넘어가고 있다.

밖으로 나오니 역시 강원도임을 알리듯 싸늘한 기운이 감돌아 준비한 방풍의를 걸치고 도로 옆 버스 정류장에서 준비한 뜨거운 순대국에 이른 아침을 먹으며 긴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이 애잔하기만 하다.

식사 후 따뜻한 커피 한잔까지 마시고 산행 준비 후 출발하는 시간이 새벽 5 45분을 넘어가고 단체 사진 한장 남기는 것으로 모래재에서의 추억을 마음속으로 담아보는 시간이다.

모래재 (331미터)는 대동여지도의 사현이라는 지명이 최근 지도에는 모래재로 표기되어 있는 곳이다.

홍천과 춘천을 연결하는 5번국도가 지나는 고갯마루로서 5번국도는 창원시 진동에서 2번국도와 만나면서 끝이 나는데 백두대간 죽령을 넘고 문수와 보현 및 팔공 그리고 황학지맥에서 낙남정맥까지 마루금 잇기 산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만났던 국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주 만났던 도로이다.

고갯마루 정상에는 모래재정상입니다 해발340미터 라는 대형 도로 표지판에 표지석도 있으며 국립춘천병원이 있고 춘천시내에 속해 근사한 버스정류장도 보이고 버스 노선표도 붙어 있는데 살펴보니 시내버스가 5개 노선이 지나는 모래재이다.

산행은 국립춘천병원 폐문이 있는 곳에서 5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좌측으로 조금 걸어가면 논골입구라는 버스정류장 입간판이 서 있는 곳 우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시작된다.


논골입구라는 버스정류장 입간판이 보이는 도로 우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들어가니 등로는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벌써 수풀이 우거져 능선으로 오르는 등로가 희미하다.

어렵게 능선 초입을 찾아 가파르게 걸어 오르니 평이한 참나무 능선 등로와 이어지고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송전탑과 그 주위로 끝없이 펼쳐진 춘천시의 산그리메가 엷은 아침 안개를 머금은 채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갈길이 바쁘고 멀지만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잠시 발걸음 멈춰 몇장의 사진으로 남긴 채 다시 출발하니 한동안 등로 좌측으로는 이런 풍경들이 계속해 다가오고 있다.


다시 약간의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벌써 등줄기와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들이 흘러 내리기 시작하고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엷은 안개를 머금은 아름다운 산그리메을 감상하며 진행하니 81번과 38번이라는 두개의 번호가 붙어 있는 송전탑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약간의 잣나무가 보이는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참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평이한 능선을 따르니 등로는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지만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최근에 설치된 듯한 80번과 37번 버호2개가 붙어 있는 송전탑을 지나 우측으로 크게 꺽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에 삼각점이 보이고 지도를 살펴보니 425.2 삼각점봉이다.


삼각점봉을 지나 다시 이어지는 평이한 참나무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하니 기온이 오르면서 흐르는 땀방울도 많아지기 시작하고 땀을 닦아내는 손수건도 벌써 흥건히 젖어 오고 있다.

잠시 후 별 특징없는 419.6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하니 정상이 벌목된 429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도 별 특징이 없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한동안 조망도 없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77번과 34번의 두개의 번호가 붙어 있는 송전탑을 만나고 곧이어 많은 가지를 가지고 있는 참나무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380 무명봉도 통과를 한다.

다시 한동안 더 걸어가니 갑자기 등로 좌측으로 벌목된 등로가 펼쳐지고 살펴보니 바로 아래 서울양양간 고속도로가 지나고 그 양쪽으로 이름없는 산줄기들이 길게 줄지어 늘어서 있는 풍경이 아름답기만 하다.


드높게 건설된 고속도로 교각들도 내려다 보며 혹시나 하는 생각에 눈 앞에 보이는 산줄기 넘어 금학산과 팔봉산을 찾아 보지만 산줄기에 막혀 보여주지 않는다.

키 작은 소나무가 자라면서 등로가 사라져 능선 좌측 아래에 있는 사라져 가는 묵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어렵게 진행을 이어가니 벌목지대는 짧게 끝이나고 다시 능선으로 진입을 하는데 진입해 조금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녹슨 철조망이 쳐져 있고 잠시 후 벗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339.9봉에 도착을 해 지점을 확인해 본다.


그 철조망이 있던 곳 정상에서 등로가 사라지고 철조망 좌우측으로 희미한 등로가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데 살펴보니 선답자들은 철조망 좌측 밖으로 돌아 내려가지만 이 산객은 철조망을 타고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다 개구멍이 나 있는 곳에서 녹슨 철조망을 넘어 좌측 염소 사육장 방향으로 어렵게 걸어 내려가 본다.

넓은 묵은 경작지가 펼쳐져 있고 눈 앞으로는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며 그 도로 우측 아래에는 민가의 지붕도 보이는 곳에서 묵은 비포장 임도를 다시 만나 그 임도를 타고 해발고도 291미터인 군자리고개에 도착을 한다.

군자리는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에 있는 리로서 북쪽에서 서쪽으로 삼포천이 흐르고 동쪽으로 금병산과 연엽산이 위치하고 있으며 군자리는 전형적인 산간분지의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군들, 갈골, 논골, 삼막골, 옻밭골 등이 있는데 논골은 마을에 논이 많다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갈골은 전에 갈부자가 이 마을에 살았다고 하여 붙여졌다.

삼막골은 예전에 삼을 캐러 다니던 사람들이 모여 막을 치고 살았다는 유래가 전해지고 옻밭골은 예전에 이 마을에 옻나무 밭이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군자리는 군자골 또는 군자곡 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알바로 잠시 뒤떨어져 내려오는 후미를 기다렸다 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는 아침이다.


이제 계절은 봄을 지나 성하의 계절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음을 알려주듯 예쁜 하늘나리 야생화가 등로 주변에 지천으로 피어 있다.

잡목들이 우거진 비포장 임도같은 능선으로 들어가니 잠시 벌모ㅗㄱ이 된듯 하던 등로는 사라지고 좌측 가파른 오르막 언덕으로 희미한 진입로가 보인다.

어렵게 그 진입 등로를 찾아 오르니 정상적인 마루금에 도착을 하고 잠시 무명봉에 올랐다 완만하게 내려가니 갑자기 큰 골짜기 같은 무명 안부가 나타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무명 안부로서 등로 우측으로 거대한 강원양돈단지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약간의 가축 분뇨 냄새를 맡으며 빠르게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파란색 지붕들이 잡목 사이로 보이고 곧이어 잣나무와 참나무가 보이는 383.2봉에 도착을 해 잠시 물 한모금 마시고 출발한다.


그 봉우리를 넘으니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가 나타나고 그곳에는 멋진 낙엽송 군락지가 짧게 펼쳐져 있다.

그 낙엽송 지대를 지나 힐링하듯 자연을 벗삼아 무념으로 걸어 진행하니 오래전 벌목된 나무토막들이 나뒹굴며 썩어가는 334 무명봉을 지나고 잠시 내려갔다 오르니 또 다른 나무토막들이 보이는 330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내려가니 다시 깊은 무명 안부가 나타나고 그 안부를 통과해 오르니 지도상에 표기가 되어 있지 않은 폐헬기장이 보인다.

그 폐헬기장을 지나 우측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는데 아침부터 얼마나 더운지 온 몸이 흥건히 젖어 있는 몰골이 되었다.


폐헬기장봉을 지나 내려가니 다시 짧은 낙엽송 군락지가 펼쳐지고 잠시 후 기계음이 들리더니 등로는 공사장 한쪽으로 내려선다.

살펴보니 신도골프장에서 공사중인 포크레인이 내는 소음으로서 공사장 주변으로는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어 재빨리 그 골프장 공사장을 벗어 나 본다.

잠시 후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해발510미터라는 고도표시와 함께 덕만이고개라는 커다란 이정석이 보이는 덕만이고개에 도착을 한다.

덕만이고개는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혈동리에 위치한 고개로서 혈동리의 남쪽 끝에 있는 덕만리라는 마을의 이름을 붙여 덩마니고개라 하였다.

예전에 어느 관찰사가 이 고개를 넘다가 덕만이라는 심복 종을 잃어버렸다 하여 덕만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유래도 있다.

춘천의 지명유래에 덩마니에서 동산면 군자리 두못골로 넘어가는 고개를 덩마니고개라 하고 김유정의 소설에도 덩마니가 나온다고 기록하고 있다.

좌측으로는 초대교회가 보이는데 옛날에는 탈렌트 정보석씨가 카페를 운영하였다는데 이제는 이래에 덕만이터널이 뚫려 통해하는 차량과 사람이 줄면서 카페도 문을 닫고 교회로 변한 한가한 고갯마루가 된 듯한 풍경이다.


이정석 옆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시원한 식수 한모금으로 더위를 달랜 후 다시 높은 콘크리트 옹벽을 넘어 가파른 능선으로 오르니 금새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버린다.

이장된 듯한 묘지지대를 지나 조금 더 가파르게 걸어 오르니 높은 철 안테나와 그 옆으로 작은 바위가 보이는 331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우측으로 급하게 내려가는 등로를 주의깊게 살피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무명봉을 지나 희미해진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잠시 평이한 등로가 나타나고 등로 우측으로 골프장을 건설중인 공사장이 잡목 사이로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다.

잠시 후 키 작은 소나무들이 자라면서 진행에 상당한 방해를 주는 등로에 진입을 하고 어렵게 그곳을 통과하니 커다란 참나무가 아름다운 멋진 그늘 등로가 이어진다.

한동안 그렇게 걸어 진행을 하니 별 특징도 없는 332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우측으로 번호 인식이 안되는 송전탑을 지나 우측 사면 등로를 따라 바위 능선을 우회한다.

한동안 그렇게 보이는 것 하나 없이 잡목과 참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따르니 364 무명봉에 도착을 해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에 땀방울을 식히며 물 한모금 더 마시고 출발한다.


다시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을 넘어 잣나무 군락지를 좌측에 두고 가파르게 오르니 우측으로 391 무명봉이 올려다 보이지만 좌측 사면 등로가 발달되어 있어 그 사면 등로를 타고 우회하며 우측 무명봉을 통과한다.

다시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평이하지만 지루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커다란 소나무가 보이는 363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내리막 등로에는 낙엽송이 짧게 풍경을 바꾸고 있다.

다시 평이하게 걸어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 있는 352 무명봉을 넘어 내려가니 등로는 사라지고 좌측의 비닐이 씌여져 이는 밭 경작지 가장자리로 내려서며 이어져 곧바로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우측의 봉이터골로 통하는 고갯마루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도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잠시 쉬면서 준비한 과일과 시원한 얼음식수로 더위를 식히고 출발하기로 한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오는 봉이터골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 위 고갯마루에서 시원한 과일과 식수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다시 좌측 잡목이 우거진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가 희미해지고 사라지기 시작하는데 뒤 따르던 두명은 우측의 묵은 밭 경작지 가장자리를 타고 오르고 있다.

잠시 후 사라졌던 등로가 희미하게 나타나고 곧이아 우측 밭 가장자리를 타고 올라 온 산친구들과 만나 진행을 하니 마루금은 다시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약간의 잣나무가 보이는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 무명봉을 넘어 완만하게 진행하니 이장된 듯한 묘지터가 나타나고 등로 좌측 앞으로 약간의 조망이 터져 살펴보니 춘천과 가평 쪽 산그리메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이장된 듯한 묘지터에서 조망을 즐기고 다시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등로는 우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잡풀이 무성한 묵은 밭 가장자리로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걸어 밭 가장자리를 통과한 후 능선으로 오르니 나무토막들이 널부러져 있는 무명봉을 지나 키 작은 소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하는 등로로 바뀌고 있다.

잠시 후 뚜렷한 안부가 있는 곳을 지나 지도를 살펴보니 무명 안부로서 잠시 편안하게 그 비포장 임도를 따르다 보니 이 임도는 등로 주변에 산재되어 있는 묘지들을 조성하며 만들어진 임도처럼 보인다.

그 비포장 임도가 끝나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올라 참나무들이 보이는 무명봉을 통과하고 다시 평이하게 걸어 전진하니 잡목들이 보이는 356 무명봉에 도착을 해 가쁜 숨을 몰아 내쉬어 본다.


무명봉을 지나 진행을 이어가니 등로가 사라지고 길찾기가 난해 해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도 희미한 족적을 찾아 진행을 이어가니 멋진 잣나무 군락지로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후 완만하게 올라 작은 바위가 박혀있는 363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등로는 이곳에서 좌측으로 크게 꺽어 완만하게 내려가고 나즈막한 무명 안부를 지나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붙어 있는 374.1봉에 도착을 해 잠시 물 한모금 더 마시고 출발하는 시간이다.


기온이 오르면서 진행하다 쉬는 시간이 길어지고 식수를 마시는 횟수도 급격하게 늘어나는 산행 시간이다.

별 특징 없는 지루한 능선 등로를 따라 한동안 걸어 진행하니 작은 고사목이 보이는 342 무명봉을 통과하고 잠시 후 또 다른 유해발굴 현장이라 생각되는 웅덩이가 보이는 348 무명봉도 지난다.

낙엽이 발목까지 빠지는 등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눈 앞에 1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는데 오래전 주도로로 이용하였으나 이제는 사용하지 않아 묵은 도로처럼 보이는 곳이다.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 같은 1차선 도로가 나타나고 주위를 살펴보니 포장도로 양쪽으로 깊은 절개지 같은 풍경이 인상적인 나가지고개이다.

나가지고개라는 이름이 평범하지 않아 찾아보니 한자로는 낙안현(260미터)으로 표기하는데 기러기가 날다 떨어진 고개라는 의미가 있다는데 아마도 도로가 나기 전까지는 해발고도는 낮아도 넘나들기에 높아 어려웠던 고개라는 의미인 듯 보인다.


그늘 하나 없이 내려쬐는 햇살이 뜨거워 주위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절개지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오르는 등로 옆으로 잘 익은 오디나무가 보이는데 너무 작아 따 먹기는 어려워도 가물어서 그런지 단맛은 일품이다.

잠시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다시 평이한 등로와 이어지고 곧이어 등로 옆으로 파란 그물망이 나타나는데 제발 파충류를 잡기 위한 그물망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한동안 그 그물망을 따라 진행을 하니 271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이곳에서 그물망을 우측으로 보내고 등로는 좌측으로 진행하며 완만하게 내려가게 된다.


잡목들을 헤치고 잠시 내려가니 등로 옆으로 갑자기 야생동물보호 안내문이 서 있는데 삵과 담비 보호를 위한 안내문이었다.

지도를 보니 이곳은 휘슬링락 골프장이 있는 동물이동통로로서 등로 주위로는 골프장이 잡목 사이로 잠시 내려다 보이는 곳이기도 하였다.

다시 잠시 걸어 오르니 뚜렷한 낙엽 등로가 시원하게 열려있고 그 등로를 타고 무심으로 걸어가니 전봇대가 서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이곳 역시 골프장 위 등로로서 양쪽으로는 골프장과 통하는 곳인듯 보인다.


그 전봇대가 서 있는 안부를 지나 낙엽이 발목까지 빠지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많은 땀방울을 흘려 보는 시간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꼬깔봉으로 오르는 오르막 등로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오늘 산행 중 최고로 어렵고 힘든 구간이 눈앞에 다가 온 시간이기도 하였다.

한동안 많은 땀방울을 등로에 뿌리며 힘겹게 거어 오르니 참나무들이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특이하게 생긴 바위도 통과한다.

다시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에 세가닥의 가지가 자라고 있는 373 무명봉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낸 후 조금 더 힘을 내 걸어 오르니 지도에 표기도 되어 있지 않은 372 삼각점봉에 도착을 하는데 삼각점은 흙속에 파묻혀 인식을 전혀 할 수 앖는 상태이다.


그 인식되지 않는 삼각점봉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거대한 자작나무 한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352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지도를 살펴보니 꼬깔봉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가파르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가 산객의 진을 다 빼내가는 느낌이다.

자작나무봉을 지나니 잠시 넓고 뚜렷한 등로가 반겨주다 금새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이제 자작나무와 잡목들이 앞을 가로막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신음소리를 내며 어렵게 오르니 드디어 삼각점과 정상석이 보이는 420.2미터의 꼬깔봉 정상에 도착을 해 배낭 내려 놓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추억 한장 남기고 출발하기로 한다.

꼬깔봉(420.2미터)은 대부분 꼬깔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경우가 많으며 그만큼 경사가 급해 오르기도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곳 꼬깔봉은 옛지도에 변봉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훈차 표기로서 고리봉을 환봉으로 표기한 경우와 같은 이치인 듯 싶다.

꼬깔은 고깔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북생각된다.


어렵게 꼬깔봉에 도착을 해 추억을 남기고 후미까지 올라 와 단체 사진 한장 남긴 후 잠시 등로 주위를 살펴보니 등로 우측 저 멀리 강촌역 쪽 마을이 뿌연 미세먼지 속에서도 옛 추억을 알려주고 멋지게 펼쳐져 있다.

그 우측으로 솟아 있는 등선봉과 삼악산이 우뚝하고 좌측으로 보이는 강선봉과 검봉산 줄기가 멋진 추억을 꺼내 들려주며 다시 언제 만날 수 있는지 추억 놀이를 하자고 하는 듯 다가온다.

이제는 폐쇄가 되어 아쉬움이 남아 있는 강촌역이지만 이 산객에게 강촌역은 젊음 자체였고 낭만이었으며 사랑을 나누는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한동안 쉬었으니 이제 배낭 둘러메고 다시 그 꼬깔봉을 지나 능선으로 들어가 뒤돌아 보니 꼬깔봉 정상 뒤에 솟아 있는 무인산불감시 카메라가 올려다 보이고 곧이어 내리막 등로에는 깊은 낙엽이 쌓이면서 등로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어렵게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거대한 바위들이 보이고 살펴보니 그 바위들로 인해 우회하기 위해 등로가 사라진 듯 보였던 것이다.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있는 지점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작은 바위가 박혀 있는 357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긴 후 빠르게 내려가 본다.

잠시 후 등로 우측 잡목 사이로 오너스골프장이 내려다 보여 잠시 바쁜 발걸음 멈추고 아름다운 골프장을 사진에 담아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다시 등로는 조금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잣나무와 그 아래 쌓여 있는 낙엽이 덮혀 있는 마루금으로 바뀌고 있다.

한동안 평이하게 걸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다시 잣나무 군락지 사이로 등로가 이어지고 그렇게 한동안 걸어 진행을 하니 갑자기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좌측 한쪽에는 죽어 고사목이 되어 있는 앞에 작은 돌무덤이 보인다.

소위 말해서 성황당이 있던 흔적 같은 곳으로 성황당은 서낭당의 다른 말로서 서낭신을 모신 당집이나 제단을 말하는데 지방에 따라 할미당, 천황당, 국사당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서낭신은 토지와 마을을 수호하는 신으로 최근까지 전국에 널리 퍼져 있었으며 서낭당은 보통 신수에 잡석을 쌓은 돌무더기나 신수에 당집이 복합되어 있는 형태로 고개 마루, 길옆, 부락입구, 사찰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서낭당은 서낭신의 봉안처인 동시에 거소가 되며 이 신은 천신과 산신의 복합체로 보여진다.

서낭신의 신앙에는 내세관이나 인간 정신세계의 이상 같은 것이 없고 현실적인 일상생활의 문제가 중심을 이룬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액
, 질병, 재해, 호환 등을 막아주는 부락수호와 인간의 현실적인 생계문제 해결에 목적이 있으며 신수에는 아이들의 장수를 위해 걸어 놓는 헝겊조각, 상인의 장사를 잘되게 해 달라고 걸어 놓는 짚신 , 신랑신부가 새살림을 차릴 때 부모계의 가신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신부가 자기 옷을 찢어서 걸어 놓는 색 헝겊 조각 등이 있다.

또 통행인이 길을 안전하게 가기 위해 돌을 주워서 돌무더기 위에 던지거나 침을 뱉는데 이는 길가에 배회하는 악령의 피해를 막기 위함으로 이처럼 서낭당은 현실적인 문제를 기원하는 곳이다.

정초에는 부인들이 간단한 제물을 차려 놓고 가정의 평안을 빌기도 하며 동해안 별신굿이나 강릉단오제는 규모가 큰 서낭제의 일종이다.


그 성황당 흔적이 있는 비포장 임도로 내려서자마자 등로는 다시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그 능선을 타고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다시 별 특징 없는 나즈막한 능선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이어가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343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걸어 전진하니 잣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346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계속 빠르게 전진하니 이제는 등로 우측으로 그물망이 쳐져 있고 등로는 그 그물망 좌측으로 뚜렷하게 나 있어 진행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는 지점을 통과한다.


그 그물망을 따라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352.5봉이 올려다 보이지만 특별한 것이 없기에 그곳으로 오르는 등로만 사진에 한장 남기고 곧바로 우측 아래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타고 걸어 내려가 본다.

멋진 잣나무들이 보이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멋진 등로를 따르니 오래된 고사목이 나뒹굴고 있는 336 무명봉을 지나 이장된 듯한 묘지지대도 넘어 밭 경작지 옆으로 나 있는 등로를 따라 금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고 충효의고장 남면이라 적혀 있는 커다란 이정석이 보이는 추곡고개에 도착을 해 배낭 내리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준비한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출발하기로 한다.

추곡고개 (280미터)에는 총효의고장 남면이라는 표지석이 있으며 뒷면에는 의민지향이라 새겨놨는데 남면은 의병장 의암 유인석 선생의 고향(남면 가정리)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고장이기도 하다.

유인석 선생은 한말의 의병장으로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을 계기로 의병활동을 시작하여 1910년 국권피탈 후에도 독립운동을 지속하다가 1915년 중국에서 순국했다.

아랫마을 남면 추곡리라 고개이름도 추곡고개이고 추곡리에서 수동리 아랭이로 넘어가는 고개라 아랭이고개로도 불린다.


한동안 그 추곡고개에서 휴식을 취하고 시원한 식수도 마시며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 후 도로를 건너 시멘트 옹벽이 잘려진 곳으로 올라 능선으로 진입하니 평이한 등로가 길게 이어지며 완만하게 오르고 있다.

잠시 후 잔디가 잘 자라고 있는 무명묘지 한기가 있는 뒷쪽으로 올라 능선으로 진입하니 금새 주 마루금과 만나 좌측으로 이어지고 잡시 관목들이 진행을 방해하는 구간을 통과하니 등로 좌측으로 다시 서울양양고속도로와 그 뒤를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들이 아름답게 조망되기 시작한다.


잠시 후 벌목된 구간은 나뭇가지들로 진행이 어려워 묵은 비포장 임도로 이뤄진 좌측 사면 등로를 따라 통과하고 잠시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금새 343.8 삼각점이 나타난다.

원형 소삼각점으로서 이곳 역시 보이는 것이 없기에 삼각점과 주위 풍경만 사진에 담고 곧바로 출발해 얼마 남지 않은 오늘 하루 산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마지막 힘을 짜 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간이 정오로 흐르며 온 몸에선 더욱 많은 땀방울이 흘러 내리고 그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기 바쁜 시간이기도 하다.

 

삼각점봉을 지나 잠시 완만하게 내려가니 잣나무들이 보이고 잠시 잡목사이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금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도로 고갯마루에 도착을 한다.

지도를 보니 도로 우측마을이 듣기도 정겨운 흰도라지마을이고 좌측은 버들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우측 바로 옆으로는 더존IT그룹 강촌캠퍼스라는 입간판과 건물이 눈에 들어 온다.
이곳 고개가 있는 후동리는 강원도 춘천시 남면에 위치한 리로서
청평호 상류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골말, 옹장골, 의실, 소실촌 등이 있는데 골말은 고촌이라고도 부르는데 마을이 골짜기 안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옹장골은 마을이 가래나무가 많은 가래버덩 부근에 있다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후동리는 뒷골이라고도 하는데 발봉 뒤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후동리가 되었다고 하고 후동리에는 춘천지역에서 일어난 화서학파 의병과 충절을 기리는 의병기념비인 충의현비가 있다.

또한 도로 우측 옆으로 보이는 더존IT그룹 강촌캠퍼스라는 입간판이 눈에 들어 와 찾아보니 더존IT그룹은 1977년 설립되어 세무회계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성장했으며 더존비즈온이 모태이며 더존다스를 지주회사로 하고 있다.

회사명칭인 더존은 세무회계 소프트웨어의 대명사로도 사용된다(2017 1월부터 회사 CI 개편으로 기존 영문명인 DUZON에서 DOUZONE으로 변경되었으나 한글 사명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대한민국 ERP 점유율 1위 기업으로 2018년 대한민국 소프트웨어기업 최초로 2000억원대 매출을 기록했다.

기업시장(B2B)을 주요 고객군으로 하며 MISERP와 같은 주력 제품 외에 포렌식을 비롯한 각종 보안서비스와 공인전자문서센터, 샵메일서비스, 전자세금계산서, 간편결재시스템, 그룹웨어, FAX 시스템, e러닝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2011년에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수동리에 위치한 더존 강촌캠퍼스로 본사를 이전하고 데이터 센터를 개관하여 본격적인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에 진출했다.

더존 강촌캠퍼스는 SBS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2011)와 영화 동창생(2013) 등의 촬영장소로도 사용되었다.


가파른 절개지로 이뤄진 도로 양쪽을 살펴보며 뜨거운 태양열과 바람 한점 없는 열기로 인해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곧바로 절개지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 본다.

이곳 역시 절개지 오르는 도중에 잘 익은 오디들이 보여 한주먹 따 먹고 오르니 멋진 참나무와 낙엽송이 보이는 평이한 등로와 연결되고 그렇게 한동안 진행하며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 옆으로 금강초롱이 보여 잠시 눈맞춤을 하고 진행을 이어가 본다.

금강초롱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산속의 하나로 가평의 명지산 이북에서 자란다.

금강산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금강산에서 자라는 초롱꽃이라는 뜻에서 금강초롱이라고 하였으며 겉으로 보기에는 초롱꽃같이 생겼으나 꽃밥이 붙어 있고 잎에 털이 없으며 윤채가 있는 것이 다르다.

꽃이 순백색인 것을 흰금강초롱, 흰바탕에 자주빛이 도는 것은 설악초롱, 붉은빛이 도는 것은 오색금강초롱, 붉은빛이 도는 자주빛인 것은 붉은금강초롱이라고 하는데 이 가운데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것은 설악초롱이며 화채봉 능선을 따라 대청봉으로 오르는 능선상에서 흔히 자라고 있다.


금강초롱을 사진에 담고 다시 출발하여 오르니 작업을 했던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한동안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조금은 편안한 산행을 이어가 본다.

커다란 참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을 통과하고 잣나무 군락지도 지난 후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오르니 커다란 벗나무 한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34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심호흡 한번 하고 출발한다.

이제 날머리가 가까워졌음을 느낌으로 직감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진행하니 무명 안부를 지나 오르고 이제 등로 우측 잡목 사이로 남면 창촌리쪽 마을과 고속도로가 내려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풍경이 마치 그림같이 다가온다.

잠시 후 산행 날머리에서 애마를 몰아 저 고속도로를 타고 산행 들머리였던 모래재로 가야하는데 고속도로가 막혀 한동안 고생했던 기억이 벌써 저 멀리 사라지며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잠시 후 41번 송전탑을 지나고 등로 우측으로 보이는 조망을 즐기며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금새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355.5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자작나무와 참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특별한 것도 없고 조망도 없으며 날머리도 그리 멀지 않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그 마지막 355.5봉을 출발하니 등로는 완만하게 내려가 무명 안부를 지나는데 그 안부에도 커다란 참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 외롭지 않게 통과를 한다.


안부를 지나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 두가지가 자라고 있는 진짜 마지막 339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넘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약간의 조망이 터지기 시작하고 살펴보니 정상적인 마루금은 절개지로 막혀 좌측 잣나무 군락지가 보이는 곳으로 우회하며 날머리인 소주고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따가운 가시에 찔려 살펴보니 산딸기가 먹음직스럽게 익어가고 잠시 발걸음 멈추고 그 산딸기를 따 먹다보니 갈증도 해소되고 기운도 나는 기분이다.

이제 날머리가 가까운 곳이기에 먼저 하산한 산친구들을 불러 정상적인 등로를 확인한 후 내려가니 커다란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들어진 물통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통 옆으로 나 있는 잡목과 잡풀을 헤치며 내려가니 드디어 아침에 잠시 들려 애마를 주차 시켜 놨던 403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소주고개에 도착을 한다.

소주고개(소주현, 260미터)는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창촌리에 위치한 고개이며 강촌에서 황골유원지로 오는 도중에 있는 고개로 소가 고개를 넘다 너무 힘이 들어 죽었다하여 소 죽은 고개라 부르던 것이 소주고개로 와전되어 부르게 되었다.

강원향토대관에 후동리로 가는 고개로 한국전쟁 당시 어머니가 아들을 감싸고 동사한 것을 기리는 살신성모비와 의병들의 충절을 기리는 충의현비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후미까지 기다렸다 모두 하산한 후 날머리에 모여 단체사진 한장 남기고 새벽에 주차를 시켜 놓은 도로 좌측으로 조금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기계유씨 충목원 표석이 있는데 사육신의 한 분인 유응부의 시호가 충목이다.

경기 포천에 유응부의 위패를 모신 충목단이 있는데 소주고개의 충목원은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건너편의 기계유공경재충효비와 관련이 있는 듯 보인다.

기계유씨가 자랑하는 유응부는 세종과 문종 대에 평안도 병마절제사와 동지중추원사에 이르렀으나 성삼문과 박팽년 등과 더불어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화를 입었다.

세조에 의해 처형을 당한 후 역적이라 하여 가산을 몰수하라는 명이 떨어졌는데 집달관이 갖고 간 것은 짚자리 한 장 뿐이었다 한다.

한말 한성부민회장을 지낸 유길준과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선생도 기계유씨다.

이렇게 또 한구간을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7월 초에 남아 있는 마지막 구간을 산행한 후 맛있는 춘천의 먹거리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로 한 후 산행 들머리인 모래재로 출발한다.





하지만 산행 들머리인 모래재로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다.

일요일 오후 이른 시간인데도 서울로 향하는 나들이 차량들이 몰리면서 강촌IC로 향하는 도로마다 차량들이 가득해 긴 정체가 일어나고 있다.

골목으로 돌고 돌아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고속도로를 버리고 국도를 통해 어렵게 산행 들머리인 모래재에 도착을 해 애마를 회수한 다음 홍천의 대표적인 먹거리인 화로구이로 식사를 한 후 귀경하려던 계획은 갑자기 걸려 온 고객의 전화 한통화로 산산히 부서지고 이 산객 홀로 막히는 도로를 타고 어렵게 귀가를 해 저녁에 벌어진 일을 수습하고 나니 또 하루가 지나고 있다.


이제 다음주에는 중국 출장을 다녀 와 7월 초에 남아 있는 마지막 구간을 진행하게 되는데 옆지기와 협의해 애마없이 새벽에 옆지기 도움으로 간 후 산행 마무리 후 이슬이 한잔으로 회포를 풀고 올라 올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