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강원도 양구군과 인제군의 도솔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7년 05월 03일 (수요일 석가탄신일 휴일 산행)
산행날씨 : 맑고 화창하였지만 약간의 박무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었고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위로 너무나 어렵게 산행한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15도에서 영상 29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양구휴게소(31번 2차선 포장도로, 청정양구농특산물휴게소)-광치터널 위 절개지-광치령(비포장임도와 이동통신탑)-헬기장-차량 차단기-산사태 경고판-산불감시초소-공터 전망대-헬기장-능선진입-903봉-벙커봉-고사목봉-838봉-폐헬기장 공터-807.5봉-개골령-909.2봉 헬기장-좌측 벌목지대-군부대 철조망-901.2 삼각점봉 우회(군부대 내)-907.5봉 우회(군부대 내)-비포장 임도-좌측 벌목지대(양구 국유림 관리소 2014 조림지)-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675.9 삼각점봉-고중사김대훈추모비-폐헬기장-능선진입-두무동고개(관대두무로, 4번 2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폐헬기장 공터-583.2봉-580봉-539.9봉-601.7봉-벌목지대-헬기장과 산불감시초소-이정표(국토정중앙 삼거리 2.32 Km, 두무리 4.84 Km)-이정표(국토정중앙삼거리 2.22 Km, 두무리 4.94 Km)-565봉 벤취 쉼터 이정표(국토정중앙삼거리 2.06 Km, 두무리 5.1 Km)-안전목책과 로프구간-양구터널 위 헬기장과 이동통신탑-비포장 임도 이정표(두무리 5.48 Km)-갈림 삼거리 임도 이정표(국토정중앙삼거리 1.64 Km와 봉화산정상 5.7 Km, 두무리 5.52 Km)와 봉화산생태등산로 안내판-안전목책과 로프구간-546.8봉 벤취쉼터와 이정표(국토정중앙삼거리 1.3 Km, 두무리 5.86 Km)-작은도라지고개-도라지고개-이정표(국토정중앙삼거리 0.68 Km, 두무리 6.48 Km)-607.5 삼각점봉(삼각점2개와 전망데크)-국토정중앙점 갈림삼거리 벤취 쉼터와 이정표(봉화산정상 3.4 Km, 국토정중앙점 0.7 Km, 원리터널 1.66 Km와 두무리 7.16 Km)-공터-공터-682.2봉 벤취 쉼터와 이정표(봉화산정상 2.52 Km)-57번 송전탑-벤취 쉼터와 이정표(봉화산정상 1.96 Km, 국토정중앙점 2.14 Km)-벤취 쉼터와 이정표(봉화산정상 1.66 Km, 국토정중앙점 2.48 Km)-659.4봉 우회-신설된 송전탑-통나무계단-벤취 쉼터와 이정표(봉화산정상 1.06 Km)-716.6봉-구암리 갈림 삼거리 이정표(봉화산정상 0.66 Km, 구암리 1.88 Km, 국토정중앙점 3.44 Km)와 벤취 쉼터 및 양구10년장생길 안내판-통나무계단-안전로프구간-봉화산(874.5봉, 봉수대와 삼각점)-벌목지대 안전목책과 로프구간-헬기장-헬기장-이정표(심포리와 석현리선착장, 봉화산정상)-874.3봉 군부대경고판-이정표(심포리와 석현리선착장, 봉화산정상)-통나무계단과 안전로프 구간-벤취 쉼터와 심포리 갈림삼거리 이정표(석현리선착장 4.54 Km, 심포리 2.24 Km, 봉화산정상 1.12 Km)-급경사 내리막 등로-녹슨 철조망지대-비포장 임도-갈림삼거리 임도(제2083 군부대장 경고판)-1차선 포장도로 갈림삼거리-능선진입-비포장 임도-356.9봉-377.4 바위봉-비포장 임도-민가와 밭 경작지-항일의병전적비-공리고개(소양호로, 46번 2차선 포장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4.84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도솔지맥 산행 약 24.14 Km와 양구휴게소에서 광치령까지 접속구간 00.70 Km )
산행트랙 :
산행시간 :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고사리를 꺽고 많은 사진을 담으며 여유롭게 진행하여 10시간 36분 (05시 27분부터 16시 04분까지)
교통편 : 애마와 히치 하이킹 그리고 택시를 이용해 편안하게 진행하였음
광치터널 앞 양구휴게소까지 애마 이용
공리고개에서 양구읍 버스터미널까지 그곳에 살고 있는 농민의 트럭을 히치 하이킹으로 이동
양구읍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로 광치터널 앞 양구휴게소까지 이동 (12,000.- 원)
도솔지맥이란???
도솔지맥은 백두대간이 금강산 비로봉(1639미터)에서 남진하여 20.4 Km를 내려와 매자봉(1144미터)에서 우측으로 한줄기를 떨구고 좌측으로 크게 휘어 동해안쪽으로 내달리며 무산(1319.7미터)을 지나고 남한땅으로 넘어와 향로봉(1287.4미터)을 일구고 설악산에 이른다.
매자봉(1144미터)에서 우측으로 가지친 한줄기는 남진하며 매봉(1290.6미터), 가칠봉(1242.2미터), 대우산(1178.5미터), 도솔산(1147.8미터), 대암산(1304미터)등 1000미터 이상의 산들을 일구고 봉화산(874.9미터)에 이르러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사명산(1198.6미터), 죽엽산(859.2미터), 부용산(882미터), 오봉산(779미터)을 일구고 다시 방향을 남쪽으로 바꿔 수리봉(656미터)을 올린후 소양강이 북한강에 합류하는 우두산(133미터)에서 끝나는 도상거리 약 124.1 Km의 산줄기다.
산줄기 서쪽으로 흐르는 물은 북한강 본류로 들고 동쪽으로 흐르는물은 소양강으로 흘러들었다 북한강 본류에 합류한다.도솔지맥의 명칭은 도솔산(1147.8미터)에서 따온듯 싶은데 분기봉도 아니고 산줄기중 최고봉도 아니어서 좀 어패가 있긴 하지만 일부에선 소양북기맥으로 표기하고 있기는 하나 이미 도솔지맥 혹은 도솔기맥이라는 명칭으로 일반인에게 친숙하게 굳어져 있는 상태이니도솔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높이로 따지면 대암산(1304미터, 1.3 Km 거리), 가칠봉(1242.2미터), 사명산(1198.6미터)이 있고 최초 분기점도 아니지만 아마도 일반인이 갈 수 있는 실질적인 시작점인 산이라서 도솔이라는 명칭을 붙였는 듯 싶다.매자봉(1144미터)부터 우두산(133미터)까지의 거리는 도상거리 124.1Km가 되나 돌산령 북쪽의 36Km는 갈 수 없으니 실 산행거리는 88.1Km가 된다.
도솔산(1147.8미터), 대암산(-1.3km.1304미터), 봉화산(874.9미터), 사명산(1198.6미터), 죽엽산(859.2미터), 부용산(882미터), 오봉산(779미터), 수리봉(656미터), 우두산(133미터)을 지나고 양구군, 인제군, 화천군, 춘천시등 4개 시군을 지난다.
새로운 산줄기에서 분단의 아품을 느끼면서 제대로 된 철쭉 산행을 즐겼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아이들이 다 컸고 부모님은 두분 다 이미 소천을 하셨지만 5월이 되니 괜시리 바쁘면서도 자꾸만 가족을 생각하게 만든다.
엊그저께 잠시 부모님 산소와 비어있는 시골집을 다녀 와 일상으로 복귀를 하는데 징검다리 연휴이다 보니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족 여행을 다녀오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산에 들 생각에 잠긴다.
진행하던 영월지맥 산행을 이어가면 가장 좋겠지만 곧은치 탐방 안내소에서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과 약간의 실랑이가 있어 경방기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하고 그 옆으로 흐르는 춘천지맥을 생각해 보지만 그 역시 교통편이 불편해 잠시 더 뒤로 미뤄 놓는다.
그리고 생각해 낸 곳이 도솔지맥인데 도솔지맥은 첫구간부터 군사지역으로 묶여 양구군청이나 인제군청에 출입허가를 받은 후 산행이 가능하기에 제1구간은 출입이 허락되는 시기에 따라 다녀오고 제2구간부터 시작하여 연휴기간에 마치려고 준비해 본다.
도솔지맥의 산들은 개인적으로 거의 모두 다 올랐지만 이렇게 도솔지맥이란 이름으로 오르려니 그 의미부터가 다르게 느껴지고 두 다리에 느껴지는 무게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만큼 큰 차이를 만들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비포장 임도와 시멘트 도로를 타고 조금은 빨리 진행하다 보니 등로 옆에 피어나기 시작하는 고사리가 자꾸만 눈에 들어 와 한 주먹씩 꺽으며 걸어가니 속도가 나질 않는다.
그래도 양구터널까지는 잘 진행을 하였지만 그곳에서 봉화산 오르막 등로는 생각보다 된비알로 온 몸의 진을 빼내고서야 드디어 정상석 하나 없는 봉화산 정상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는 조망은 이 산객의 가슴이 터질듯한 환희로 물결치고 있다.
오늘 머렵게 진행해온 마루금이 초록바다를 이루며 길게 이어지고 그 끝자락 좌측으로 조만간 올라야 할 대암산과 도솔산 그리고 군사지역이라 오르지 못하는 대우산과 이북에 위치해 눈으로만 다녀와야 하는 북쪽의 산줄기가 희미하게 보여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그 아름다운 마루금을 가슴속에 채우고 또 채웠던 시간이다.
전날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2시에 일어 나 준비한 배낭속에 물과 과일 그리고 빵을 넣고 걱정하는 옆지기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서 김밥집에서 김밥 한줄 사 곧바로 산행 들머리인 광치터널 앞 양구휴게소로 달려간다.
텅 비어있다 시피한 경춘고속도로를 타고 달려 터널 앞 청정양구농특산물휴게소란 커다란 입간판이 서 있는 양구휴게소에 도착을 하니 새벽 5시 30여분을 막 지나는데 벌써 날이 밝아 와 헤드렌턴 없이 진행한다.
애마를 주차시킨 후 산행 준비를 하는데 휴게소 주인장이 벌써 일어나 주위 텃밭을 살피고 있어 인사 나누고 애마를 부탁한 후 곧바로 도로 좌측 위로 보이는 광치터널를 향해 걸어가며 새로운 산줄기인 도솔지맥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산행 후 양구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이곳 양구휴게소는 국가소유로서 현재 살고 있는 양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주인이 장기 임대를 하여 음식점도 하고 토속 임산물들을 팔아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잠시 좌측인 인제 방향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31번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도로 우측으로 등로가 희미하게 보여 그곳으로 올라가 보지만 곧바로 좌측 31번 포장도로쪽으로 다시 내려 온다.
이제 아무 생각없이 31번 2차선 도로를 타고 광치터널 방향으로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커다란 빗돌과 작은 건물들이 보이는데 아마도 터널을 관리하기 위한 시설물들로 보인다.
잠시 후 저 멀리 터널안에서 붉은 빛이 새어 나오는 광치터널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터널 입구까지 간 후 좌측 콘크리트 옹벽을 타고 오르며 진행한다.
광치터널 바로 앞 입구까지 걸어가 좌측 콘크리트 옹벽으로 오르니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전선들이 보이고 곧이어 좌측 암벽 사이로 청아한 작은 물줄기가 흐르는 모습이 보인다.
광치터널은 양구군 남면과 인제군 인제읍을 연결하는 터널로서 예전에는 이 고갯마루를 넘는데 무척 힘들었다는데 이제는 직선화되어 편안하게 넘을 수 있는 고갯마루가 되었다.
전선을 이어주는 전봇대를 따라 오르니 완만한 언덕을 넘어 곧바로 광치령 비포장 임도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는 이동통신탑이 서 있다.
이곳에서 조금 전 떠 오른 일출을 감상하고 비포장 임도를 따라 우측인 남쪽으로 빠르게 출발한다.
광치령은 강원도 양구군 남면에서 인제군 원통으로 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한 고개로 해발고도는 800미터이다.
크고 작은 능성으로 사면이 둘러싸여 첩첩 산중을 이루고 있다 하여 광치령이라고 하였는데 해동지도에는 광치라고만 표기되어 있고 상당히 우뚝 솟아 있는 고개로 묘사되어 있다.
양구군과 인제군을 가르는 분수령으로 예전에는 험한 고갯길이었으나 지금은 터널과 국도가 개통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광치령 아래에 있는 광치계곡은 남면 가오작리 광치령 아래 위치한 계곡으로 가오작리는 가오자기라고 부르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연애골, 웃광치, 아랫광치를 통합하여 남면 가오작리가 되었다.
해동지도에 지명이 수록되었는데 광치령 아래의 계곡을 이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군부대가 많아 생각보다 넓은 비포장 임도가 자주 보이는데 이곳 광치령 역시 처음부터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진행하니 큰 어려움은 없지만 일출이 시작되고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온 몸에선 굵은 땀방울들이 흘러 내리기 시작한다.
잠시 더 완만하게 오르니 금새 넓은 헬기장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지금부터 올라야 할 마루금을 살펴보니 제법 울퉁불퉁한 봉우리들이 보이지만 실제로 진행을 해 보면 봉우리 정상은 넘지 않고 그 사면 등로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게 되어 큰 어려움 없이 걸을 수 있다.
헬기장에서 출발하려는데 등로 좌측인 동쪽으로 막 떠오른 햇살 아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살펴보니 가까운 산줄기들만 보이고 기대했던 설악의 주봉들은 역시나 박무가 있는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조만간 올라야 할 도솔지맥 제1구간의 마지막 산줄기들도 한번 올려다 보고 그 헬기장을 떠나니 등로는 여전히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있다.
등로 우측으로는 길고 좁게 형성된 가오작리 마을이 고요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들어가니 갑자기 눈 앞에 차량 출입을 막는 바리게이트가 설치되어 있다.
잠시 후 인제국유림관리소장의 안전 경고판을 지나 산불감시초소를 통과하니 등로는 이제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면서 자주 토치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임도를 타고 오르니 등로가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는 듯하여 올라 보지만 잡목과 원형철조망으로 막혀있어 다시 내려 와 비포장 임도를 따른다.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지난 주 봉수지맥에서 만났던 초록물결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이제서야 연두빛으로 변하고 있는 산하를 감상할 수 있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넓은 공터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박무속에서도 군계일학으로 빛나는 사명산과 그 우측 저 멀리 일산이 아름답게 솟아 있다.
개인적으로 올랐었지만 조만간 이 도솔지맥이란 맥 잇기 산행으로 다시 올라야 할 사명산과 홀로 떨어진 일산\이기에 다시 한번 더 가슴속에 담아보는 풍경들이다.
다만 그 가운데 보여야 할 파로호는 보이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이제부터 걸어야 할 벌목지대 위 지맥 등로를 살펴보고 그 넓은 공터를 출발하니 이제 햇살은 벌써 온 세상을 비추며 제법 중천으로 떠 오르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금새 또 다른 헬기장에 도착을 하고 주위 풍경을 살펴본 후 지나온 무명봉을 사진에 담고 곧바로 출발하여 나즈막한 능선으로 진입한다.
일시적으로 비포장 임도와 헤어져 연두빛이 물들기 시작하는 자연의 품으로 온전히 들어가는 시간이다.
연두빛 봄빛이 완연한 능선을 따라 걸어가니 이곳이 전방의 군부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려주듯 곧바로 교통호가 길게 이어지고 있는데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는 듯 보인다.
잠시 후 정상에 유해발굴지였는지 웅덩이가 파진 903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준.희님이 달아 놓은 산패(이정판)이 산객들에게 산행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고개숙여 경의를 표하고 사진 한장 남긴 후 출발한다.
903봉을 출발해 천천히 걸어 진행을 하니 이곳은 이제서야 분홍빛 진달래가 만개하여 지나는 산객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등로는 아주 편안하고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할만큼 평이하기에 산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그렇게 진행해 금새 분홍빛 진달래가 활짝 피어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유해발굴 현장처럼 느껴지는 커다란 웅덩이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어 안타까우면서도 뒤늦게나마 유해를 찾는 노력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 진달래가 피어있는 무명봉을 지나 걸어가니 여전히 등로는 연두빛이 무르익어가고 그 옆으로는 진달래꽃이 만발해 있다.
그 만발한 진달래꽃 옆으로는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철쭉꽃이 조만간 진달래꽃을 대체해 주인이 될 것임을 알려주고 있는 듯 하다.
잠시 후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커다란 고사목이 쓰러져 밑둥만 남아 있는 무명봉에 올라 사진 한장 남겨보는데 오늘 날씨도 무처ㅏㄱ 무더울 듯 벌써 온 몸이 땀으로 완전히 젖어 버렸다.
다시 그림같은 낙엽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금새 또 다른 무명봉을 넘고 다시 안부로 내려갔다 또 다른 무명봉으로 오르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다 잡목 사이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뾰족한 909.2봉이 올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 통신탑들이 보이는 군부대 정상부가 보이는데 안타깝게도 저 군부대 정상에 있는 901.2봉 삼각점은 만나지 못할 것이다.
다시 깊은 낙엽이 깔린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진달래꽃들의 환영을 받으며 걸어가니 길게 이어지는 안부 능선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른다.
유해발굴된 웅덩이가 있는 무명봉을 지나 다시 낙엽 등로를 걸어가니 등로는 이미 멧돼지들의 식흔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고 곧이어 소주병이 나뒹굴고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제발 맥 익시 산행을 하는 산님들의 행동이 아니길 바래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교통호가 눈에 보이는 812.3봉을 지나 넓은 공터에 도착을 하는데 혹시나 폐헬기장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보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그 공터를 지나니 다시 깊게 패인 교통호가 이어지고 곧이어 깊은 낙엽이 깔린 활엽수 등로를 따르는데 등로가 마치 한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 너무나 아름답다.
그리고는 다시 나타나는 깊은 낙엽지대를 걸어가니 낙엽이 발목 위까지 덮어 마치 가을철 낙엽 산행을 연상시키는 시간이지만 그 낙엽 주위로는 연두빛 봄빛이 아름다워 두 계절을 한곳에서 공유하듯 즐겨보는 시간이다.
다시 보이는 교통호와 유해발굴 현장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유해발굴 현장이 있는 807.5봉에 올라 잠시 쉬어 간다.
다시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는 등로를 따라 여유롭게 걸어가니 등로 옆으로는 활짝 피어있는 고사리 옆으로 이제 막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여린 고사리도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고사리엔 전혀 관심없이 걷기에만 집중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안부같지 않은 안부에 여영님이 붙여 놓은 개골령이란 이정판이 보여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개골령(갯골령)은 인제군 인제읍 남북리 갯골에서 양구군 남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예전에는 민초들의 삶에 터전이었을 곳이었겠지만 이제는 이렇게 도솔지맥 산행을 위해 오르는 산꾼들에게만이 이곳이 고개였음을 알 수 있는 한적한 장소가 되었다.
이 근처부터는 등로 아래 깊은 골짜기로부터 멧돼지들의 울음소리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가깝게 들리면서 출입한 이방인에게 경고를 보내는듯 들려 온다.
다시 진달래꽃이 활짝 피어있는 등로를 타고 잠시 무심으로 걸어가니 교통호가 있는 무명봉을 통과하고 다시 평이한 낙엽 등로를 만난다.
참으로 아름다운 등로가 아닐 수 없다.
유명한 명산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인공적으로는 도저히 만들어 놓을 수 없는 평이하지만 바범한 등로가 좋고 바람소리와 이름모를 산새소리만 들리는 등로에서 잠시 명상을 즐기는 시간이 있기에 치열한 삶을 현장을 잠시 벗어나도 좋을 듯 싶다는 생각이다.
잠시 후 무슨 약초를 심어 놨는지 얇은 끈으로 출입을 금지하는 장소를 지나 오르면 다시 만개한 진달래가 반겨주는 교통호가 있는 무명봉을 지나 큰 바위를 통과한다.
바위를 지나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넓은 헬기장이 나타나는데 한쪽 나뭇가지에는 신선님이 붙여 놓은 909봉 이정판이 반갑기만 하다.
이제 군부대가 가까워진 헬기장으로서 등로 좌측으로는 벌목된 지대로 그곳의 풍경이 좋아 잠시 이곳 헬기장에서 더 머물고 출발한다.
그 909봉 헬기장에서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벌목지대 쪽을 살펴보니 길고 좁은 골짜기가 이어져 있고 그 끝자락에 인제의 한석산과 응봉산들이 보이지만 그 끝자락에 있어야 할 설악산과 방태산은 박무로 인ㄹ해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많이 아쉬운 시간이지만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꺽여 진행되는데 좌측으로 흐르는 등로도 살펴보니 제법 멋있는 등로처럼 보인다.
아쉬움에 다시 한번 더 인제군의 산군들을 살펴 본 후 예쁜 진달래꽃이 만개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잠시 후 소나무와 진달래꽃이 혼재된 등로가 나타나고 등로는 마치 비포장 임도처럼 넓게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평이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우측 901.2봉으로 오르는 오르막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도록 되어 있는데 잠시 후 군부대 철조망을 만나 왜 등로가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이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인공 구조물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군부대 철조망을 만나 더 이상 마루금을 타지 못하고 좌측 철조망 아래 우회하는 가파른 경사 등로를 따라 그 군부대를 빙 둘러 우회하게 된다.
가파른 절개지와 냄새나는 계곡 그리고 철조망과 원형 철조망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타고 어렵게 군부대 지역을 우회해 간다.
올랐다 내리기를 몇번이나 하고 흙이 굴러가는 사면 등로도 따라 걸어가며 어렵게 진행을 하니 드디어 군부대 정문의 넓은 비포장 임도를 만나 우측의 군부대에 작별 인사를 건네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한동안 룰루랄라 걸어 보는 시간이지만 역시나 딱딱한 등로는 발바닥이 아프기만 하다.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아마도 이 임도는 군부대ㅐ가 생기면서 만들어진 임도는 아닐까 생각된다.
또한 임도 좌측으로는 벌목 후 새로운 수종을 식재한 듯한 풍경이 눈에 들어 오는데 이 국유관리를 위해서도 함께 필요했던 임도는 아니였을까 생각해 본다.
한동안 걸어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가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면서 꾸불꾸불한 도로 직전의 가드레일 옆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마루금이 좌측으로 돌고 돌아 우측 드높게 솟아 있는 봉화산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온다.
가까운 듯 보이지만 저 봉화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아직도 몇십리는 더 걸어가야 도착할 것이기에 마음 비우고 천천히 한걸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는 시간이다.
봉화산 좌측 저 멀리에는 춘천지맥의 산군들이 펼쳐져 있지만 박무가 있어 그 이름 하나 하나를 불러주기는 어려운 시간이다.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는 다시 비포장 임도로 바뀌는데 임도 양쪽으로는 너무나 아름다운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자라고 있다.
산사태취약지구안내판과 멋진 소나무 그리고 마루금을 살펴보며 계속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의 나즈막한 언덕에 675.9 삼각점봉이 있어 잠시 올랐다 내려 온다.
이곳 역시 준.희님의 이정판이 산객들에게 위치를 알려주고 있어 고마운 인사를 드리고 출발한다.
다시 임도로 내려오니 비포장 임도는 콘크리트 포장도로로 변해있고 다시 경음기 사용을 권장하는 안내판 근처에서 비포장 임도로 변하고 있다.
잠시 뒤 갈림 삼거리가 눈에 들어 오고 우측으로 흐르는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들어가니 그 앞에는 고중사김대훈추모비가 세워져 있는데 그 아래에는 제21보병사단 정보통신대대란 글자가 보여 인터넷에서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고 김대훈 중사는 육군 백두산부대 정보통신대대 다중무선 전송조장으로 2008년 사단에서 실시한 통신망 구성 훈련간 원활한 무선통신 임무를 위해 3개소를 이동하며 통신이 양호한 지점을 찾으려 했으나 산악이 발달하고 골짜기가 많은 지형의 특성상 무선통신이 잘 잡히지 않자 원활한 소통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해발 900미터가 넘는 고지로 올라가 임무를 완수했다.
이후 복귀를 하려고 산을 내려오던 중 급경사에서 제동장치의 이상을 인지하고 3차례에 걸쳐 벽면 충돌로 속도를 줄이려고 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동승한 4명의 병사들의 안전과 대형사고의 방지를 위해 자신의 방향으로 핸들을 돌려 본인은 순직하고 4명의 전우를 구했다.
아마도 앞서 우회한 군부대가 정보통신대대로서 그곳에서 근무하던 김대훈중사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추모비처럼 보인다.
넓은 공터를 지나 헬기장과 타이어 벙커를 통과하니 잡목이 보이는 능선으로 이어지고 잠시 후 무명묘지 2기를 지난다.
잠시 후 무명봉을 넘어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만나 조심하며 내려가다 중간에서 준비한 김밥으로 허기를 달랜 후 다시 가파른 내리막 급경사를 내려가니 앞에 2차선 포장도로가 보이는데 그 앞을 높은 철조망이 가로막아 난감하다.
하지만 그 철조망 우측으로 돌아가니 도로 위로 이어지고 잠시 후 2차선 도로로 내려가니 청리 두무리 관대리라는 커다란 이정석이 보이고 좌측 아래에는 두무리 산촌생태마을이란 입간판과 우측 임도 방향으로는 차량 출입을 통제하는 바리게이트가 보인다.
이곳이 바로 두무동고개로서 두무동 고개는 원동지골과 모래둥지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두무리는 강원도 양구군 남면에 있는 리로서 밭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마을인데 두무동이라고도 부르며 자연마을로는 곧은골, 아랫두무리, 턱골등이 있다.
두무동고개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들머리를 찾아 보니 우측 끝자락의 청리와 두무리라는 커다란 이정석이 서 있는 방향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몇발자국 들어가 좌측 능선으로 오르면 된다.
그곳에서 경방기간 산불예방을 위해 지키고 있는 동네 어르신 한분을 만났는데 산에 들어가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어 담배도 안피우고 불도 없으며 산행하기 바빠 임산물은 처다 보지도 않는다며 공리고개까지 가야한다고 하니 안전한 산행을 하라며 쉽게 허락을 해 준다.
소나무 등로를 타고 오르니 넓은 공터를 지나 올 들어 처음으로 구슬봉이를 만나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용담과에 속한 구슬봉이는 전국의 양지바른 들에 자라는 두해살이풀로 세계적으로 중국, 몽골, 인도, 일본, 러시아 동북부 등지에 분포하고 줄기는 밑에서 여러 대가 모여나며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높이는 2-10cm다.
잎은 마주나며 뿌리 부근에 나는 잎은 2-3쌍으로 십자가 모양으로 늘어서며 피침형이고 끝이 까락처럼 뾰족하고 잎자루는 없으며 줄기에 나는 잎은 넓은 난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꽃은 가지 끝의 짧은 꽃자루에 달리며 연한 보라색이다.
꽃받침은 5갈래로 갈라지고 난형이며 끝이 가시처럼 되고 화관은 종 모양이고 화관 갈래 사이에 작은 갈래가 있으며 수술은 5개, 암술은 1개인데 열매는 삭과이며 긴 자루가 있어 화관 밖으로 나와 2개로 갈라진다.
두해살이풀로 줄기는 밑에서 여러 대가 모여나며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높이 2-10cm인데 잎은 마주나고 뿌리 부근에 나는 잎은 2-3쌍으로 십자가 모양으로 늘어서며 길이 1-4cm의 피침형이고 끝이 까락처럼 뾰족하다.
잎자루는 없으며 줄기에 나는 잎은 길이 5-10mm의 넓은 난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꽃은 가지 끝의 짧은 꽃자루에 달리며 연한 보라색이며 꽃받침은 5갈래로 갈라지고 난형이며 끝이 가시처럼 된다.
화관은 종 모양으로 길이 12-15mm이며 화관 갈래 사이에 작은 갈래가 있고 수술은 5개, 암술은 1개며 열매는 삭과이며 긴 자루가 있어 화관 밖으로 나와 2개로 갈라진다.
전국의 각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용담속의 식물로서 동아시아 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본 분류군이 속한 용담속 식물의 꽃에는 부화관이라고 불리는 구조가 있는 것이 특징인데 통 모양으로 생간 화관이 5개의 열편 사이에 주름져서 겹쳐 있다.
용담속 이외에는 울릉도와 제주도에만 분포하는 덩굴용담이 이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용담속의 줄기가 곧추서며 열매가 삭과인 반면 덩굴용담은 줄기가 덩굴성이고 장과의 열매를 갖는다.
잎이 선형이고 작은 것을 좀구슬붕이라고 하는데 2007년 발간된 한국속식물지는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구슬붕이와 같은 분류군으로 보았다.
한편 좀구슬붕이의 학명은 기재 없이 발표된 이름이어서 정당 공표된 이름이 아니어서 명명법상으로도 정당성이 없는 분류군이다.
어렵게 구슬봉이를 사진에 담고 다시 연두빛이 피어나는 활엽수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다시 유해발굴된 소나무 무명봉을 통과하고 더욱 녹음이 짙어지는 자연속으로 들어간다.
이곳은 지금보다 더 많은 고사리들이 피어나기 시작해 잠시 한주먹 꺽어 본다.
그렇게 오르니 큰 소나무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583.2봉에 도착을 해 살펴보니 소나무에 파란 철사들이 감겨져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다시 약간의 낙엽송 구간을 지나 진행하니 계속하여 소나무에 파란 철사줄이 묶여있어 그 이유가 궁금해 진다.
이제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키 작은 참나무와 혼재되어 잇는 등로를 따르니 금새 580봉에 도착을 하는데 큰 소나무 가지에 여영님이 이정판을 걸어 놨다.
사진 몇장 남기고 출발하니 이곳부터 등로는 진달래가 지고 철쭉이 피어나기 시작하며 또 다른 등로의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키 큰 진달래꽃과는 달리 철쭉꽃은 키 작은 나무에서 꽃잎과 함께 피어나는데 이곳 등로가 바로 그런 풍경을 선사하고 잇는 것이다.
키 큰 소나무와 키 작은 철쭉 꽃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조금씩 힘들어 가는 시간에 이 산객에게 힘을 주는 것 같아 기쁜 마음으로 걸어 본다.
다시 무명봉을 넘어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는 등로를 통과하니 잡목과 소나무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539.9봉에 도착을 한다.
천천히 그 539.9봉을 출발하니 키 큰 활엽수 등로가 나타나더니 등로 우측으로는 새로 식재된 듯한 키 작은 잣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활엽수들을 간벌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소나무 한그루가 정상을 지키는 601.7봉에 오르고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벌목된 구간이 보인다.
뜨거워진 햇살을 받으며 빠르게 오르니 곧바로 넓은 헬기장과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해 멋지게 펼쳐진 주위 조망을 살펴 본다.
제일 먼저 지나 온 방향인 북쪽을 살펴보니 방금 전 지나온 601.7봉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오늘 걸어 온 마루금이 희미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제 완전히 성하의 계절로 달려가고 있음을 알리는 연두와 초록의 산하가 아름답고 그 자연속을 걸어 이곳까지 온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시간이기도 하다.
무엇이 그리도 이런 자연속으로 이끌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좋아 오르다 보니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자꾸만 이 자연속에 몸을 맡기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등로 우측으로는 양구의 좁은 들판이 내려다 보인다.
그 뒤로 보여야 할 대암산과 사명산은 박무로 인해 숨어 버려 아쉬움이 큰 시간이기도 하다.
양구읍의 파로호 일대에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어 오랜 옛날부터 인간의 거주가 시작된 곳임을 알 수 있는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요은홀차 또는 양구군이었다가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양록군으로 개칭했고 이때 삼령현(양구군 방산면 일대), 희제현, 치도현 등을 영현으로 관할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양구현으로 개칭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춘천의 속현이 되었다가 1106년(예종 1)에 양구현으로 개칭하고 낭천 감무가 함께 다스렸다.
조선에 들어 1393년(태조 2)에 양구현을 분리하여 감무를 파견했다가 1413년(태종 13)의 군현제 개편으로 현감이 파견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424년(세종 6)에는 회양 소속 방산현과 춘천 소속 해안소가 편입되어 서북쪽과 동북쪽 영역이 넓어졌고 지방제도 개정에 따라 1895년에 춘천부 양구군 1896년에 강원도 양구군이 되었다.
1906년의 월경지 정리 때 회양의 두입지였던 수입면이 편입되어 군의 면적이 북쪽으로 확대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에 의해 북면, 방산면, 해안면, 수입면은 그대로 두고 군내면, 서면이 군내면으로 남면, 하동면이 남면으로 상동면이 동면으로 통합 또는 개칭되었다.
1917년에 군내면이 양구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63년 북면이 양구면에 편입되었고 양구면은 1979년에 읍으로 승격되었고 1945년 해방되면서 양구군은 북한에 속했다가 1953년 휴전협정으로 수입면을 제외한 6개면에 군정을 실시했으며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 시행으로 해안면이 인제군으로 이관되었다.
1973년 행정구역 조정으로 지금의 해안면 일대가 다시 양구군에 편입되어 해안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83년에 해안면으로 승격했다.
1986년에 평화의 댐 건설을 위해 화천 댐의 물을 방류함에 따라 드러난 파로호 바닥에서 한반도 구석기문화를 해명하는 데 중요한 구석기 유적이 대량 발굴되었다.
특별히 산행이 아니면 들릴 이유가 없는 양구이기에 오늘은 산행 후 잠시 들려 샤워를 한 후 저녁이라도 한끼 먹고 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보는데 양구의 먹거리는 무엇인지 언뜻 떠오르는 것이 없어 아쉽다.
그렇게 한동안 그 헬기장과 산불감시초소에서 조망을 즐긴 후 뜨거워지는 태양 빛을 피해 내리막 등로로 내려가니 멋진 소나무와 자작나무가 혼재된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오늘 처음 만나는 이정표가 반가운 시간이다.
국토정중앙삼거리와 두무리란 이정표의 글씨가 두렷한 방향 표시와 거리표시이다.
발 옆에 깔려있는 철쭉꽃을 살피며 조심해 걸어가니 금새 거리만 달라진 똑 같은 이정표가 보이고 등로 좌측으로 멋진 소나무가 도열해 있는 등로와 만나 여유롭게 걸어 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통나무를 반으로 자른 벤취 쉼터들이 보이고 한쪽에 이정표가 서 있는 565봉에 도착을 해 잠시 간식을 먹으며 쉬어 간다.
하지만 이곳에서 출발을 하면서 정상 등로가 아닌 좌측 양구터널 방향으로 잠시 내려가며 알바를 한 후 다시 올라 와 물 한모금 마시고 이정표가 서 있는 옆 계단을 타고 정상 마루금으로 내려가 본다.
양구터널 방향으로 잠시 알바를 한 후 다시 이정표가 서 있는 정상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급경사 내리막 등로이다.
잠시 내려가니 이곳 등로에도 여전히 멋진 소나무와 그 아래 화사하게 피어있는 철쭉꽃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이다.
벙커이 보이고 잠시 후 깃대가 서 있는 타이어 벙커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양구터널을 지나온 46번 4차선 도로가 길게 뻗어 있고 그 도로 좌우측으로 청리와 창리가 내려다 보인다.
그렇게 주위 풍경을 살피며 진행하니 금새 넓은 헬기장이 보이고 곧이어 앞으로 진행해야 할 비포장 임도와 봉우리를 올려다 본다.
이동통신탑이 서 있는 비포장 임도로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원리가 내려다 보이고 그 끝자락에는 소양호도 잠시 얼굴을 내밀고 있다.
갈림 삼거리 임도로 내려가니 봉화산생태등산로 안내판과 사격장의 사격 안내판이 서 있고 등로는 그 옆 계단을 타고 오르도록 되어 있다.
양구와 인제를 이어주는 4차선 양구터널 위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주위 풍경과 조망을 살펴보고 이제부터는 봉화산을 향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본다.
봉화산정상까지 5.7 Km란 거리 표시를 확인하고 안전목책과 로프를 타고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벙커들이 보이고 금새 평이한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다.
가끔 나타나는 통나무 계단을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 옆으로는 교통호가 따라 올라오고 있다.
그렇게 오르니 몇개의 벤취 쉼터들이 설치되어 있고 이정표가 서 있는 546.8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하게 된다.
교통호에 설치된 나무 다리를 통해 능선으로 걸어 내려가니 유해발굴 현장이 보이고 곧이어 철쭉이 만개한 등로 옆에 키 작은 소나무들이 식재된 ㅍ ㅜㅇ경이 눈에 들어 온다.
등로 좌측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파란색 지붕을 한 민가도 내려다 보고 그 위로 병풍처럼 줄지어 있는 산줄기도 살펴보며 걸어가니 바위가 보이는 안부를 지나는데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작은도라지고개라는 안부인데 좌우측으로 등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작은도라지고개는 작은 되레지고개(소도촌현)로 되레지고개 아래쪽에 있는 작은 고개를 말하는데 도촌리에 있는 마을의 고개 이름이다.
작은도라지고개를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잠시 잡목과 나무들이 사라지며 지나온 등로가 보이길래 살펴보니 중앙에 움푹 패인곳의 양구터널을 중심으로 등로 양쪽으로 솟아 오른 봉우리들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조망된다.
잠시 후 멋진 소나무들이 서 있는 작은 공터봉을 지나고 다시 철쭉꽃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금새 깊은 안부가 보이는 도라지고개에 도착을 한다.
도라지고개는 되레지고개(도촌현)로 되레지에서 원리로 넘어가는 큰 고개로서 지금도 뚜렷한 길이 등로 양쪽으로 열려 있는 듯 보인다.
작은도라지고개와 도라지고개 그리고 국토정중앙이 있는 도촌리는 강원도 양구군 남면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를 이루는 산촌인데 서쪽으로 작은 하천이 흐르며 하천 근처에 배나무들이 있다.
자연마을로 되레지, 도리관, 흐릿골이 있는데 되레지와 도리관은 모두 도촌리에서 변형된 이름이고 흐릿골은 되레지 남쪽에 있는 마을이며 산48번지 일대는 한반도 국토의 정중앙이다.
도라지고개 안부를 지나 오르니 국토정중앙삼거리까지 68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고 낙엽 깔린 통나무 등로를 타고 계속 된비알 오르막 등로를 올라 본다.
한동안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오르니 정상 등로는 우측으로 꺽이는데 좌측으로 전망데크가 설치되어 잇고 그 옆으로 삼각점이 두개나 박혀있는 606.5봉에 도착을 한다.
기온이 오르며 흐르는 땀방울이 많아지고 몸은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하는 시간이 되어 가는 지점이다.
전망데크로 올라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살펴보니 양구읍과 그 주변 마을들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그 좌측 저 멀리에는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사명산이 드높게 솟아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사명산은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과 양구군 양구읍에 걸쳐서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1199미터이다.
전형적인 토산(흙산)으로 파로호와 소양호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사명산 정상에서 양구군, 화천군, 춘천시 일대와 소양호와 파로호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이유로 사명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가뭄이 들면 첩바위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나오며 이곳은 임진왜란 때 왜군과 싸우던 전장이기도 하는데 춘천읍지에 따르면 부의 동북쪽 90리에 있는데 계곡은 깊고 산봉우리는 높아서 절험하여 병자호란 때 많은 사람들이 피하여 숨어들어 보전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여지도서에는 도솔산 즉 지금의 동면 팔랑리에 있는 산으로부터 산줄기가 이어진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강원도지에 사명산은 군 동북쪽 9리에 있으며 골짜기가 깊고 봉우리들이 높고 험해 병자호란 때 사람들이 많이 피해 은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국지명사전에는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방천리와 양구군 양구면 웅진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1198미터 꼭대기에 오르면 동쪽에 양구, 남쪽에 춘천, 서쪽에 화천이 그리고 북쪽에 철원이 보인다고 기록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서면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고 산자락 양쪽 끝에 읍치에서 사천현(지금의 양구읍 공리 시락고개)과 수인역을 거쳐 춘천으로 가는 길과 읍치에서 서천과 낭천강(지금의 북한강) 강변을 따라 낭천(지금의 화천)으로 가는 길이 각각 표시되어 있다.
청구도와 동여도에는 사명산에 청량사가 있었던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잠시 쉬고 있는 동안에도 그늘도 없이 바람도 불지 않아 온 몸에선 굵은 담방울이 쉴새 없이 흘러 내려 배낭을 둘러메고 출발하려는데 전망데크 앞쪽으로 지금부터 올라야 할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바로 앞 봉우리로 오르면 큰 고도 차이없이 진행되고 그 중간에 송전탑이 보이며 봉화산 정상부는 이곳에서 봤을 때도 제법 뾰족한 봉우리의 모습으로 오르려면 제법 많은 땀방울을 흘려야 됨을 알려주고 있다.
이제 저 봉화산 정상을 향해 천천히 전망데크를 내려와 내려간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중간에 벤취 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잇고 그 앞에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이곳 부근에서 부터 날파리들이 몰려들며 사진 한장 남기기에도 어려움이 있는 곳이다.
이정표에는 우측 벤취 방향으로 국토정중앙 지점까지 700미터 거리라는 방향과 거리표시가 보이는데 마음은 가고 싶지만 몸은 피하자고 해 결국 이정표만 사진에 담고 국토정중앙점은 다음 기회가 가 보기로 하고 곧바로 출발한다.
국토 정중앙은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4 극지점을 기준으로 한 +자 또는 X자의 교점이 우리 국토의 정중앙점 지점이며 그 좌표는 동경 128° 02′ 02.5″, 북위 38° 03′ 37.5″로 이 지역은 강원도 양구군 남면 도촌리 산48번지 일대이다.
섬을 제외한 내륙을 기준으로 한 정중앙 점 좌표는 127° 28′ 55″ E, 38° 39′ 00″ N으로 북강원도 회양군 현리 부근에 해당되나 대한민국 헌법3조에 근거한 우리나라 영토의 개념이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인 점을 고려할 때 섬을 포함한 정중앙좌표가 보다 합당하다.
기회되면 꼭 한번 들려 사진 한장 남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제 봉화산 정상까지 3.4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바라본 후 국토정중앙점을 다녀오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2083부대장이 걸어 놓은 경고 플랭카드가 보이는데 살펴보니 불발탄의 수집이나 접촉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날파리들이 진행에 방해가 될 정도로 얼굴 주위를 맴돌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여 나즈막한 무명봉을 넘고 다시 안부를 지나 넓은 공터를 지나는데 이제는 주위 잡목들로 둘러쌓여 잠시 쉬어가기 좋은 장소로 변한듯 하다.
잠시 후 또 다른 폐헬기장 같은 공터를 지나 활엽수 등로를 따르니 벤취들이 놓여 있는 쉼터에 도착을 하는데 그 벤취 옆에는 이제 봉화산정상까지 2.52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도 서 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682.2봉으로 이제부터 봉화산 정상까지는 특별한 장소없이 꾸준히 200미터 정도를 올라가야 하는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물 한모금 마신 후 걸어 진행하니 등로에 잘 보이지 않던 작은 바위들이 널부러져 있는 특이한 풍경도 눈에 들어 오고 잠시 후 57번 송전탑을 만나는데 그곳에서 살펴보는 등로 우측의 양구쪽 풍경이 다시 이채롭게 다가온다.
워낙 산이 많은 고장이다 보니 이런 나즈막한 분지형 마을과 그 마을 사이로 녹지같은 나즈막한 산줄기가 채워주는 모습이 마치 이 산객이 나이들어 살고 싶은 그런 장소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조금은 여유롭게 자연과 벗삼아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그런 기회가 올련지 모르겠다.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 안부를 지나고 잠시 더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659.4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그 봉우리는 우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하고 잠시 후 또 다른 봉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도 또 다른 벤취 쉼터들이 보이고 한쪽에는 봉화산정상까지 1.96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 마셔 본다.
온 몸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쉴새 없이 등로를 적시고 있기에 이곳에서 잠시 배낭 벗어 놓고 풍욕을 즐기는데 항문 주위에는 이미 많은 땀방울로 인해 헐었는지 따갑기 시작한다.
기능성 옷을 입고 진행을 해도 워낙 더워 많은 땀방울들을 흘리다 보니 그런 기능성이 큰 효과가 없는 듯 하다.
잠시 옷가지와 몸을 말린 후 다시 안부를 지나 활엽수가 여름을 준비하는 나름 멋진 등로를 타고 무심으로 걸어가니 봉화산정상까지 1.62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와 벤취 쉼터들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쳐 계속 완만하게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최근에 신설된 듯한 송전탑이 나타나는데 아직 전선도 연결되지 않은 번호도 부여 받지 못한 송전탑이다.
주민들과의 마찰이나 없기를 바라며 다시 통나무 계단을 타고 오르니 또 다른 나무벤취 쉼터들과 봉화산정상까지 1.06 Km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다시 철쭉이 등로 옆에 아름답게 피어 어렵게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는 산객에게 응원을 하듯 웃어주는 만남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오르니 교통호인지 아니먄 유해발굴 현장이었는지 모를 커다란 웅덩이가 있는 무명봉에 오른다.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금새 분홍빛 철쪽꽃이 만개한 716.6봉에 도착을 해 그 아름다운 철쭉과 잠시 눈을 맞춰 본다.
아무 표식도 없는 716.6봉을 지나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니 안부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으로는 구암리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길이다.
1729부대장과 양구군수가 세워 놓은 사격장 경고판 옆으로 양구10년장생길 중 소지섭길 5 Km라는 안내판이 보이는데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
그 옆으로는 이정표와 벤취 쉼터가 있어 잠시 배낭 벗어 놓고 간식을 먹고 출발한다.
구암리는 강원도 양구군 남면에 있는 리로서 밭농사를 주로 하는 산지 마을인데 마을에 거북바위가 있어 거북바우 또는 구암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구암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밧막골 등이으며 밧막골 막골 바깥쪽에 있는 마을로 외막동이라고도 한다.
구암리 갈림 안부를 지나 통나무 계단을 타고 다시 올라 무명봉을 지나고 다시 안전로프가 설치된 등로와 만나 그 로프를 따라 오른다.
다시 통나무 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지나 오르니 벌목지대 같은 봉화산 정상부가 눈 앞에 나타나고 불발탄 경고판을 지나 잠시 주위 풍경을 살펴보니 약간의 박무로 인해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일망무제 오랫만에 맛 보는 환상의 풍경에 그동안의 어려움도 잊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쁜 시간이다.
지나 온 마루금 뒤 좌측 저 멀리 조만간 올라야 할 도솔지맥 남한지역의 제1구간인 대암산과 도솔산이 보이고 그 뒤로 대우산과 가칠봉으로 이어지는 가지 못하는 산줄기가 파도치듯 이어져 있다.
저 도솔지맥 첫구간은 합수점까지 산행을 마무리한 후 양구군청에 출입허가 신청을 한 후 6월쯤 오를 예정이다.
등로 우측으로는 양구군 양구읍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양구군 남면도 펼쳐져 있다.
그 뒤 저 멀리에는 도솔산에서 분기하여 최근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 받은 성골지맥의 산줄기들이 보이는데 저 성골지맥 마루금은 또 언제나 걸어 볼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으니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이렇게 한발 두발 걸어 오르다 보면 분명히 저 성골지맥 마루금에 올라 오늘을 추억하며 웃어 볼 수 있는 기회도 있으리란 생각이다.
다시 거대한 바위들을 좌측으로 우회해 오르니 드디어 봉수대가 서 있는 봉화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제대로 된 정상석 하나 없어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제일 먼저 지나 온 마루금 방향을 살펴보니 방금 전 지나 온 거대한 암봉들 우측 옆으로 멋진 분재형 소나무 두 그루가 눈길을 잡는다.
그 뒤 저 멀리 이어지는 도솔지맥이 다시 이 산객을 부르며 조만간 다시 재회하자 약속을 하는듯 하다.
양구읍 좌측인 진행방향의으로서쪽을 살펴보니 나즈막한 산줄기를 타고 진행하여 드높게 솟아 있는 사명을 지나 우측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죽엽산으로 이어지는 도솔지맥 마루금이 환상적이다.
오늘 하룻밤 양구에서 묵고 내일 새벽에 저 사명산과 죽엽산을 오를 수 있기를 바라는데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내일이 아니라면 이번 주 연휴기간에 다시 찾아 와 이 도솔지맥 산행도 마무리하고 경방기간이 끝나 개방되는 도솔산과 대암산은 6월쯤 걸어 볼 수 있기를 기대도 해 보는 시간이다.
남쪽으로는 소양호가 바로 발 아래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그 뒤로 희미하지만 뚜렷하게 춘천지맥의 산줄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올해 안에 오르려고 준비중인 춘천지맥이기에 요즈음 도솔지맥을 오르며 관심있게 살펴보는 산줄기가 되었다.
오래전 가리산과 대륭산 모두를 오르며 대룡산에서 가리산까지 종주 산행 후 배를 타고 돌아오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데 조만간 실행에 옮겨볼까 계획중이기도 하다.
이렇게 맥 잇기 산행도 좋지만 시간과 등로에 관계없이 좋아하는 등로를 따라 발길 닿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걸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한동안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정상석 대신 봉화산 정상을 지키고 있는 삼각점과 봉수대를 사진에 담은 후 셀카 놀이를 하면서 추억 한장 남겨 본다.
몸무게를 줄이고 뱃살이 빠지면서 예전보다 산행 속도가 상당히 붙었다고 생각을 하는데 사진을 보니 많이 말랐다는 느낌이기도 하다.
전국적으로 많은 봉화산이 있으며 이곳 봉화산(875봉)은 강원도 양구군 남면 심포리와 명곤리 및 원리 그리고 죽리에 걸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875미터이다.
1604년(선조 37)에 봉화대가 설치되어 봉화산이라고 불렀다고 하고 여지도서 부도에 남면의 사천현(지금의 양구읍 공리 시락고개) 위쪽에 고봉수 즉 예전에 봉수가 있던 터로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봉대산파 즉 봉대가 있던 산이고 지금은 폐지되었다고 표시되어 있어서 이 봉화산의 봉수대는 잠시 동안만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를 계기로 산 이름이 봉화산으로 바뀌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전의 이름에 대해서는 문헌에서 확인할 수 없다.
정상에 오르면 소양호와 양구 남면일대와 인제군 일부가 시야에 들어오며 경사면이 수 Km에 달한다.
제대로 된 정상석 하나 세워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던 봉화산 정상에서의 아쉬운 시간이다.
아무도 없는 봉화산 정상에서 전세를 낸 듯 여유있게 주위를 둘러보고 이제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서쪽 방향의 민둥의 산줄기를 살펴 본다.
중간에 헬기장이 보이고 저 멀리 874.3봉 직전에도 또 다른 헬기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헬기장 뒷쪽으로는 높은 봉우리인 874.3만 넘으면 오늘 산행도 마무리가 될 것이기에 마지막 힘을 내 본다.
하지만 나무 그늘이 없다 보니 머리 위로 솟아지는 강한 햇살에 벌써 그늘이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민둥의 정상부에 설치된 안전목책과 로프를 타고 여유있게 걸어 내려가니 금새 헬기장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헬기장을 지나 완만하게 오르며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온 봉화산 정상부가 생각보다 뾰족한 모습으로 이 산객을 배웅하고 있다.
진행 방향으로도 계속 이어지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민둥의 등로를 타고 오르다 뒤돌아 보니 점점 멀어지는 봉화산 정상부와 그 뒤로 펼쳐진 도솔지맥 마루금이 너무나 환상의 풍경으로 이 산객의 가슴속에 남겨진다.
조금은 더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면서 등로 좌우측을 살펴보니 여전히 양구쪽 마을과 소양호가 아름답고 곧이어 또 다른 헬기장에 도착을 해 지나온 방향의 마루금을 확인해 본다.
이제부터 심포리와 석현리선착장에 대한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하고 멧돼지들의 식흔이 밭 경작지처럼 되어 있는 평이한 등로를 따라 군부대장의 불발탄 경고판을 통과하니 활엽수 몇그루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874.3봉에 도착을 해 남아있는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 본다.
바람이 불어오는 정상에서 잠시 더 머물며 허기를 달래고 풍욕을 즐긴 후 내려가니 안전로프가 보이고 철쭉 등로로 이어지는 듯 하더니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안전 로프가 보이는 통나무 계단으로 진행된다.
생각보다 가파른 내리막 게단을 조심하며 내려가니 다시 등로는 평이하게 변하면서 예쁜 철쭉을이 등로를 메우고 있다.
잠시 후 우측으로 심포리 하산 갈리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정표와 함께 나무벤취 쉼터 그리고 경고판과 이정판들이 보인다.
이곳에서 다시 많은 땀방울이 흐르기에 조금 더 쉬면서 풍욕을 즐겨보는 시간은 참으로 꿈만 같은 시간이다.
심포리는 강원도 양구군 남면에 있는 리로서 밭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마을이며 깊은 골짜기 개울가에 있으므로 지픈개 또는 심포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심포리라 하였고 자연마을로는 봉웃말 등이 있다.
다시 완만하게 올라 교통호가 보이는 무명봉을 넘고 공터를 지나 철쭉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또 다른 교통호를 지난다.
고사목이 있는 무명봉과 활염수와 철쭉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또 다시 날파리들의 습격으로 인해 진행이 어려울 지경이다.
벙커가 있는 곳도 지나 소나무 등로를 잠시 따르니 안부 지나 등로 좌측으로 녹슨 철조망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오래되었는지 어떤 나무는 그 철조망이 거목의 중간쯤까지 파고 들어가 있는 슬픈 풍경도 보인다.
잠시 그 녹슨철조망과 소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는 이제 소나무가 사라지며 일반 잡목과 관목들이 채우고 있다.
진행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지만 속도가 나질 않는 잡목 등로를 헤치며 진행하니 낙엽송 지대를 지나 곧바로 비포장 임도에 내려선다.
그곳에서 나물 채취를 위해 올라 온 SUV 차량 주인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내려가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한쪽에는 불발탄에 대한 군부대 경고판도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잠시 더 걸어 내려가는 시간은 참으로 지루하고 어려운 시간이었다.
장거리 산행 후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딱딱한 도로를 따라 걷는 시간은 차라리 그늘 속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는 시간보다 더 힘든 시간이다.
그렇게 걸어 내려가니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는 그 1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우측 옆으로 나 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진행한다.
이곳 나즈막한 산줄기에도 유해발굴 현장이었다고 생각되는 구덩이가 보이고 잠시 후 소나무 등로를 지나 낙엽송 등로와 만나 진행을 한다.
낙엽송 지나 웅덩이가 있는 무명봉을 오르니 헬리콥터 소리가 가깝게 들리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가까운 거리까지 물건을 나르고 있어 봉화산에서 하산하면서 부터 지금까지 들려오고 있는 소음이었다.
잠시 알바도 한 후 정상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잡목지대와 만나 힘들게 뚫고 지나가고 다시 보상이라도 받듯 넓은 비포장 임도를 만나 편안하게 걸어 본다.
잠시 아카시아 가시나무 지대를 통과하고 비포장 임도를 만나 걸어가니 등로 우측 능선 방향으로 좁은 등로가 보이는데 그곳 정상에는 아무 표식도 없는 356.9보 있어 잠시 들렸다 내려오기로 한다.
정상에는 역시 큰 웅덩이가 보이고 그 가운데에는 말라 죽은 고사목 한그루가 서 있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볼 것이 없다.
다시 여름으로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초록의 물결들 사이로 내려가니 소나무들이 보이는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한동안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 본다.
나즈막한 안부에서 다시 마지막 봉우리인 377.4봉을 다녀오기 위해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이곳에는 큰 바위 위에 누군가 쌓아 올려 놓은 작은 돌탑들이 앙증맞게 보여 사진에 남겨 본다.
이제 오늘 산행도 막바지인 듯 차량 소음들이 가끔 들려오기 시작한다.
마지막 봉우리에서 내려오니 무명묘지가 보이고 그 묘지 옆을 통해 내려가니 안부를 만난다.
그 안부를 만나 걸어가니 또 다시 비포장 임도와 만나 편안하게 진행을 하는데 금새 잡목 사이로 등로가 이어지더니 얼마 안 가 또 다른 비포장 임도와 만난다.
살펴보니 임도 주위로는 밭 경작지가 보이고 그 끝자락에 작은 민가 한채가 보여 물을 구하기 위해 찾아 가 보지만 농장 관리용 민가인 듯 오늘은 문이 굳게 잠겨있고 아무도 없어 아쉬움만 남긴다.
그 민가 뒷쪽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실제 마지막 봉우리로 오르니 바위들이 보이고 우측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 등로를 지나 잠시 성하의 계절로 달려가는 잡목지대를 지나 잣나무 등로를 만난다.
그 잣나무 지대를 지나니 드넓은 초지지대가 나타나는데 저 멀리 한쪽에 산불감시 아저씨가 의자에 앉아 쉬고 있어 다가 가 물 마실 곳을 확인하니 아저씨가 얼음물을 준비하였는데 많이 남아 있다면서 얼음물 1리터를 주신다.
감사한 마음에 500미리 정도의 물을 마시니 다시 빈 병을 채워주며 더 마시라고 좋은 인심을 보여주시기에 감사한 인사 드리고 잠시 아저씨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배낭을 정리해 본다.
배낭 정리 후 바로 옆에 있는 항일의병전적비로 올라가 사진 한장 남기고 내려와 안내판을 읽어 본다.
공리 항일의병전적비는양구읍 공리와 석현리 경계지점의 실학고개 정상에 있는 항일의병 전적비로 팔도창의대장 유인석을 비롯해 이강년, 최도환 등의 의병장들이 이곳 군민과 더불어 침략군을 무찌른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김무연 강원도지사가 1978년 11월에 건립한 것이다.
비의 높이 3.11m, 두께 0.3m, 부지 1만2000평에 건립된 전적비 비문에는 유인석 선생은 1896년 7월 방산에 의진을 치고 그달 24일에는 조백룡을 선봉장으로 삼아 양구면 전투에서 대첩을 거둠으로써 전국에 항일의 세를 떨쳤고 이 고장 출신 최도환선생은 1906년 이후 강원 경지지방 곳곳에서 일제 침략군을 격파하여 용맹을 떨쳤으며 특히 방산과 양구, 양구와 춘천, 그리고 양구와 문등으로 연결된 교통로는 혈전의 길목이었다라고 적혀 있다.
항일의병전적비를 다녀 와 이제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공리고개를 사진에 담아 본다.
공리고개는 46번 2차선 구 포장도로가 지나는 나즈막한 고갯마루로서 공리와 석현리를 이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석현리는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에 있는 리로서 밭농사를 주로 짓는 농촌마을이며 서쪽으로 소양호가 있다.
돌고개 밑이라 하여 석현이라 하였는데 돌이 많아 돌고개라고도 하며 자연마을로는 바깥지푼개가 있다.
이곳 석현리에는 소양호 변의 석현리선착장이 있어 배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도 보이는 곳이다.
지난 1973년 동양 최대의 사력댐인 소양강 다목적댐 건설로 생긴 소양호는 춘천과 양구 간 주요 교통로이자 수상관광의 명승지이다.
소양댐은 1967년 4월에 착공하여 6년 6개월만인 1973년 10월에 준공되었으며 당시 총 공사비가 268억원 투입됐고 저수량 269억 톤에 발전시설 용량이 20만Kw이다.
이 댐의 건설로 춘천과 양구 간 44 Km의 도로가 수몰된 대신 소양호 뱃길이 생기고 1974년 양구읍 석현리에 선착장이 신설되었는데 소양댐까지 30분이면 닿을수 있는 공기부양식 여객선 쾌룡호가 정기적으로 운항되고 있으며 소양댐에서 양구간 27 Km는 호수를 달리며 폭염도 잊고 내륙수운 관광을 즐길 수 있는 국내에서 드문 관광코스이다.
자동차로 1시간 걸리는 춘천과 양구간을 30분이면 주파하는 쾌룡호에 올라서면 관광객들의 환희가 뱃전에 가득하며 공기를 배 밑으로 쏟아내면서 일으키는 무지개 빛의 상쾌한 물보라를 맞으면 짜릿한 냉기 속에 환호성이 절로 난다.
녹염을 마음껏 뽐내는 계곡을 비집고 들어가면 드문드문 떠 있는 섬 사이로 가두리 양식장과 월척의 꿈을 안은 낚시꾼들의 한가로운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데 향어, 잉어, 뱀장어, 빙어 등 50여종의 민물고기가 잡히는 호수주변은 계곡마다 낚시터로 한창 낚시꾼이 모일 때는 불야성을 이룬다.
수위가 늘어나면 인제 신남까지로 뱃길이 늘어나 호숫가로 펼쳐진 내설악의 절경도 맛볼 수 있어 수많은 관광객과 지역 주민들이 여객선을 이용하고 있으며 소양호의 사시사철 변해가는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여객선 안에서 느끼는 감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절묘하다.
공리는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에 있는 리로서 밭농사를 주로 짓는 농촌마을이다.
옛날에 곰이 많이살아 곰골의 골이라 불렸다가 공골로 불리기도 했으며 자연마을로는 구렛말, 구렁말, 돌방울이 있다.
공리에 있는 고개라서 공리고개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인심 좋은 아저씨의 트럭을 히치 하이킹하여 양구버스터미널로 이동해 광치터널로 가는 버스편을 알아 보니 버스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이용해 광치령으로 가 애마를 회수하여 다시 양구로 복귀하여 샤워 후 갈비탕 한그릇으로 허기를 달랜 후 내일 건강 검진을 위해 곧바로 귀경한다.
이제 남아 있는 구간은 첫 구간 포함하여 총 3구간으로 나눠 진행할 예정으로 이번 연휴기간에 첫 구간을 제외하고 모두 완주할 수 있기를 바라며 첫 구간은 경방기간이 끝나면 6월 중 여유있게 올라 보려고 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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