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맥산행(완료)/수도지맥(대간·완)

수도지맥 마지막 제6구간 산주리마을에서 청덕교 합수점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5. 9. 13.
728x90

산행지 : 경상남도 합천군과 고령군의 수도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5년 09월 12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새벽에 약간의 안개 후 아침부터 맑고 무더웠으나 저녁부터 흐렸던 산행 날씨

산행온도 영상 17도에서 영상 30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산주리 고령신씨 시도세덕비와 산불감시초소-시멘트 포장도로-무명교와 만대산 등산로 안내판-비포장 임도-사각정자-이정표(만대산

                 정상 2.3 Km, 만대산정상 2.0 Km)-사방댐-잡풀이 무성한 비포장 임도-능선진입 이정표(보상사 1.61 Km, 만대산정상 0.64 Km)-매화재

                 이정표(만대산정상 0.62 Km와 철쭉군락지, 메화재 합천)-무명묘지1기-무명묘지2기-녹대산 갈림 삼거리-매화재 복귀-돌계단과 나무계단-

                 벤취2개 쉼터-나무계단-이정표(보상사 2.59 Km, 보상사 2.41 Km)-만대산(688봉, 삼각점과 낡은 콘테이너 시설물)-잡풀이 무성한 비포장

                 임도-675 바위봉-648 굴뚝봉-헬기장-545.5봉(벤취2개 쉼터)-길주의 지점(직진의 비포장 임도 버리고 우측 잡목이 지맥등로)-가파른

                 내리막 등로-노태산(498봉)-소나무 등로-무명묘지1기-일출-너부러진 간벌된 나무등로-266.3봉-송전탑-274봉-342.8봉-304.6봉-

                 소나무와 잡목등로-멧돼지 목욕탕-거창조병중묘-지릿재터널위-지릿재봉(307.4봉, 삼각점)-잘 관리된 묘지지대-지릿재(33번 2차선

                 지방도로)-안부묘지-광산김태중묘-273.6봉-잡목지대-헬기장1-헬기장2-헬기장3-큰재(시멘트 포장도로)-산불감시초소봉(전망대)-

                 돌담봉-암봉-로프구간-시리봉(408봉) 전망바위-무명묘지1기-소나무등로-366봉-280봉-장등재(시멘트 포장도로와 비포장 임도

                 경계점)-228봉(간벌지대)-254.2봉(무명묘지)-간벌된 널부러진 나무지대-270.1봉-300봉(묘지4기)-305 잡목봉-288 공터봉-271봉-

                 무명묘지-너릿골산(278봉, 가선대부묘지)-금녕김공묘지-묘지지대-기미재(907번 2차선 지방도로, 대원휴게소 간이매점)-능선진입-

                 221.1봉-잡목지대-솜등산(270.5봉)-지독한 잡목지대-271.6봉-170.2봉-간벌지대-묘지지대-185봉-안부-비포장 임도-180봉(벌초된

                 묘지)-윤혈봉(177.3봉, 삼각점)-지독한 칡넝쿨-인동장씨 가족묘-율원고개(1034번 2차선 지방도로와 강북로 2차선 지방도로가 만나는

                 삼거리)-강북로 2차선 포장도로 따라 진행-능선진입(반사경과 전봇대)-230봉-삼면봉(254봉)-236봉(고사목과 조망)-서낭당고개-벌초된

                 묘지지대-지독한 칡넝쿨지대-고사리 밭-지독한 칡넝쿨지대-쓰레기 등로-민둥 전망처-비포장 임도-시멘트 포장도로-민가한채-능선진입-

                 잡목지대-바위지대-절골봉(267봉)-소나무등로-칡넝쿨등로-방화선 등로-부수봉 갈림 삼거리-소나무 등로-칡넝쿨 방화선 등로-331봉

                 삼각점-330봉 운동시설-필봉(327봉)-방화선 등로-작은필봉(261봉)-지독한 칡넝쿨 등로-271봉(웅덩이2개)-방화선 등로-

                 296봉(웅덩이1개)-시멘트 포장도로-171봉-소나무 등로-241봉-성산(250.7봉, 삼각점, 묘지2기)-황강조망-무명묘지들-101봉-강북로

                 2차선 지방도로-청덕교-산행종료-낙동강과 황강 합수점 

산행거리 : 무더위속에 멋진 조망으로 충분히 휴식 취하고 많은 식수를 마시며 꾸준히 진행하여 31.89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무더위로 인해 많은 식수를 마시고 휴식을 취하며 꾸준히 진행하여 14시간 16분 (03시 55분에서 18시 11분까지)

교통편 : -옆지기의 애마와 택시를 이용 다녀 옴

             - 쌍책개인택시 055 932 2992 

수도지맥이란?
백두대간이 전북 무주군과 경북 김천군과 경남 거창군등 삼도가 만나는 대덕산(1290.9봉) 남쪽의  삼도봉(일명 초점산, 1250봉)에서 남쪽으로  300여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시작하여 남동쪽으로 가지를 쳐 내려가며 경상남도와 북도계를 따라 봉산(902봉), 수도산(1317봉), 단지봉(1326.7봉), 좌일곡령(1257.6봉)을 지나  가야산을 목전에 두고 두리봉(1133봉)에서 도계를 벗어나 남쪽으로 거창군과 합천군경계를 따라 남산(1113봉), 마령(1006.5봉), 우두산(의상봉, 1046.2봉), 비계산(1130봉), 88고속도로, 두무산(1038.4봉), 오도산(1120봉) 등 1000미터 이상의 장쾌한 능선이 60여Km 이어진다.
오도산에서 거창군과는 작별을하고 온전한 합천땅으로 들어서며 고도를 낮춰 토곡산(644봉)를 지나면 다시 경상남도와 북도계를 만나 고령군과 합천군계를 따라 만대산(688봉), 시리봉(408봉)을 지나 솜등산(271봉)에 올라선 도계능선과는 작별을하고 마지막 여력으로 필봉(330봉), 부수봉(317봉), 성산(205.7봉)을 내려서며 맥을 다한다. 

수도지맥 동북쪽으로 흐르는 감천은 길이 69 Km 유역면적 10만 Km2로 수도산 북쪽에서 발원하여 김천시의 지명을 낳게하고 김천시일대를 지나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수도지맥 동쪽내지 동남쪽으로 흐르는 회천은 길이 78 Km,유역면적 78000 Km2로  수도산 동쪽기슭에서 발원하여 대가천을 이루어 성주호에 들었다가 다시 동으로 흘러 고령읍에서 소가천 및 안림천과 합류하고 고령군 덕곡면 율지나루에서 낙동강에 흘러든다.  

수도지맥 서쪽으로 흐르는 황강은 길이 111 Km,유역면적 13만 Km2로  남덕유산(1507봉)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합천호에 들었다가 합천군 청덕면 적포리 일대에서 낙동강에 흘러들며 맥을 다한다. 
수도지맥중 제일 높은산은 단지봉(1326.7봉)이지만 지맥의 이름을 수도지맥으로 한것은 아마도 수도산(1317.1봉)의 유명세일 듯 싶고
좌일곡령(1257.6봉)은 일부지도가 좌대곡령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壹(한일)자와 臺(돈대대)가 비슷하여 생긴 일은 듯하며 국토지리정보원의 25000지도는 좌일곡령으로  표기되고 있다.

 

 

무더위에 잡목을 헤치며 장거리 산행으로 인해 어려움이 있었지만 합수점에서 또 하나의 맥 산행을 마무리하며 고운 추억을 가슴에 새겼던  아름다웠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이번 주말에는 서해 바닷가 태안의 신두리 해변에서 처갓집 가족 모임이 계획 되어 있어 산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 금요일 저녁에 일을 마치고 수도지맥 날머리인 청덕교로 내려가 잠시 잠을 청하고 택시를 이용해 산행 들머리인 산주리로 가기로 했기에 쌍책의 택시 기사에게 연락을 해 새벽에 택배를 부탁하고 합천과 창녕의 경계지역인 청덕교로 내려가 본다.

청덕교에 도착을 하니 새벽 1시를 넘어가는 시간에 다리 주위로는 약간의 안개가 보이는데 산행에는 큰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이기에 마음 편히 차안에서 쪽잠을 자 본다.

알람을 새벽 3시에 맞춰 놓고 잠을 자는데 2시 50여분에 눈이 떠지고 어젯밤 예약된 택시에 전화를 하니 채 10분도 되지 않아 도착을 하고 그 택시를 이영해 산주리로 향한다.

산주리에 도착을 하니 약간의 택시비를 깍아 주시는 기사님으로 인해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고 조심히 안전 산행을 당부하는 기사님의 인사말을 마지막으로 어둠속에 산행을 준비하고 고령신씨 시조세덕비를 출발하는 시간이 정확히 새벽 3시 55분이다.

오늘 가능하면 수도지맥 산행을 완주하길 바래 보지만 힘에 부치고 어렵다고 판단되면 조금이라도 남겨 두고 대전으로 가 오늘 밤 모임 장소인 태안으로 가기로 한다.

무산 산행을 마음속으로 빌며 멀고도 긴 산행을 시작하는 마음이 비장하기만 하다.

 

전임 대통령의 선영이 있는 명당자리라 알려진 큰재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오르니 바위 전망봉에 도착을 하고 그 옆에 서 있는 산불감시초소를 살펴 본 후 잠시 전망대로 나와 지나온 수도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니 그곳에 환상의 조망과 풍경이 펼쳐져 있다.

오늘 걸어 온 노태산과 만대산이 아름답게 보이고 그 뒤로 지난 구간 어이없는 알바를 경험했던 토곡산이 붙어 있으며 그 우측 저 멀리 뾰족한 비계산과 그 좌측으로 두무산이 그 존재감을 확실히 알려 온다.

그 수도지맥 좌우측으로 펼쳐진 산그리메들이 또한 이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고 잠시 더 쉬었다 가라 유혹하고 있다.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진 황홀한 이런 풍경들 때문에 그 힘들고 어려운 산행도 마다하지 않고 또 다시 잡목을 헤치고 오르게 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청덕교에서 택시를 타고 산주리로 오는 도중 계곡이 가까이 있는 곳에는 제법 짙은 안개가 끼어 있어 등로에 깔려있을 이슬을 걱정 했는데 이곳 산주리 마을과 산에는 생각보다 이슬이 큰나무에 가려 내리지 않아 다행이다.

택시 기사의 배웅을 받으며 산행 준비 후 어둠속에 홀로 수도지맥 마지막 구간을 출발하는 시간이 왠지 모르게 쓸쓸함이 밀려 온다.

산숙주와 신경준이란 걸출한 조상을 두고 있는 고령신씨시조세덕비와 공터 좌측에 버려지듯 서 있는 산불감시초소를 사진에 담고 계곡 방향으로 나 있는 도로를 타고 몇발자국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다리가 보이고 그 다리 건너에 만대산 등산안내판이 서 있다.

 

다리를 건너 그 도로 옆에 서 있는 만대산 등산로 안내판을 사진에 담고 산주리와도 이별을 고하는 시간이다.

생각지도 못한 알바로 인해 산주리까지 다녀갈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주리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본다.

산주리는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로서 만대산(688봉) 밑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므로 산골(일명 산곡) 또는 산주라 하였다.
고령군에 있는 대부분의 마을 이름이 동이나 리로 되어 있으나 산주만은 고을 주자를 썼는데 그 이유는 옛날 적화현이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중심이었을 때 신라와 백제가 전쟁을 하면서 잠시 이곳으로 적화현을 옮겼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라고 여겨진다.
조선 말기 고령군 상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석사동과 부례동을 병합하여 산주동이라 하고 쌍동면에 편입하였다가 1930년 쌍동면과 임천면을 병합하여 쌍림면에 편입함에 따라 쌍림면 산주동이 되었고 1988년 5월 1일 쌍림면 산주리가 되었다.
만대산이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마을로서 산골 동쪽과 서쪽으로 방갓과 상봉이 솟아 있으며 남쪽에 버드나무징이들이 있다.
객기마 앞에는 객기마들이 펼쳐져 있고 산골 위쪽의 옛 규월사 남서쪽에 있는 매화현을 넘으면 경상남도 합천군이다.
문화 유적으로 산주리 고인돌과 산주리 불당고인돌 및 산주리 고분군 등이 있고 마을 보호수로 수령 500년 가량 된 산주리 은행나무가 있다.
산골 위쪽에 규월사가 있었으나 없어졌고 지금은 보상사가 새로 들어섰으며 산주리는 2005년에 녹색 농촌 체험 마을로 지정되었으며 2006년 9월부터 대구은행 고령지점과 자매결연을 하고 있다.

그 만대산 등산로 안내판을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며 길고도 먼 산행을 시작한다.

 

조금 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는 금새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임도 우측으로 사각정자가 보인다.

그 사각정자를 지나니 좌 우측 모두 만대산으로 갈 수 있는 방향과 거리 ㅍ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를 만나는데 우측 만대산정상까지 2.0 Km라 표기된 방향으로 올라가 본다.

그렇게 걸어 오르니 사방댐 안내판과 사방댐이 나타나고 녹색 철조망을 타고 올라 이제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폐허가 되어가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긴의자 2개가 있는 쉼터를 통과한다.

이제 본격적인 능선으로 접어 들어 조금 더 가파르게 오르니 비포장 임도는 직진의 좌측 방향으로 보내고 우측으로 90도 꺽여 만대산 오르는 등로에는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앞에는 만대산과 보경사로 갈 수 있다는 표기가 되어 있는 이정표가 서 있다.

 

더욱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나무계단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등줄기와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쯤 드디어 수도지맥 마루금 상 매화재에 도착을 해 잠시 긴 한숨을 내쉬고 배낭을 벗어 수풀속에 숨긴 후 몇장의 사진들을 남겨 본다.

매화재는 경남 합천군 합천읍 내곡리와 경북 고령군 쌍림면 산주리를 넘는 고개로 옛날에는 고령에서 합천으로 가는 중요한 고개였다고 하는데 매화재의 유래는 옛날에 어떤 풍수가 이 고개는 매화꽃이 떨어지는 형상이라 한데서 연유하여 매화재로 불리우다가 어음 변화로 매징이재라고도 부르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만대산 방향은 좌측이지만 지난 구간에 녹대산으로 진행하며 알바를 했던 녹대산 갈림 삼거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우측 등로를 타고 녹대산 갈림 삼거리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 올라가 본다.

 

녹대산 갈림 삼거리 방향으로 걸어가니 무명묘지를 지나 무너진 무명묘지 2기가 다시 나타나고 조금 더 오르니 드디어 녹대산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해 어둠속에서도 지난 구간 지나며 의심쩍어 했던 등로를 확인해 본다.

오늘이야 어둠속에 그래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 이렇게 편안하게 도착을 했지만 지난 구간에 이곳 녹대산 갈림길에 도착을 했을 땐 무더위와 체력적인 문제로 인해 많이 힘들어 했기에 대형 알바를 시작한 지점으로 어찌 보면 너무나 무더운 폭염 경보속에 미필적 고의로 알바를 묵인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곳에서 지난 구간 대형 알바를 했던 우측 녹대산 가는 등로를 확인하고 사진 한장 남긴 후 다시 올라갔던 마루금을 타고 뒤돌아 내려가며 매화재와 만대산 방향으로 향한다.

 

다시 매화재로 뒤돌아 내려 와 숨겨 놨던 배낭을 찾아 어깨에 메고 만대산으로 출발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매화재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

매화재를 영진5만 지도는 녹대산 갈림봉로 되어 있는데 국토지리정보원 2만5천 지도에는 녹대산갈림봉 아래의 둔덕에 적고 있어 조금 진행한 안부가 실질적인 고개로 생각되는데 이 안부에 있는 이정표엔 매화재를 녹대산 분기봉 쪽으로 하고 있어 헷깔리기만 하다.

하루 빨리 통일된 견해로 만들어 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매화재를 지나 계단을 타고 오르니 큰 거목 한그루 아래 긴 의자 2개가 설치되어 있는 쉼터에 도착을 해 가쁜 숨을 내쉰다.

 

그 벤취 쉼터를 지나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묘지 한기를 통과한 후 보상사로 내려갈 수 있는 하산 이정표가 서 있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금새 녹슨 콘테이너 위에 태양광 발전기가 달려있는 구조물이 보이는 만대산 정상에 도착을 해 잠시 배낭 내리고 시원한 물 한모금 마셔 본다.

만대산(668.7봉)은 경북 고령군 쌍림면 산주리와  경남 합천군 합천읍 내곡리 그리고 묘산면 거산리에 걸쳐있는 산으로서 고령신씨 시조이자 신숙주의 선조인 신성룡의 시조비와 묘가 있으며 고령신씨가 이 산에 시조 묘를 쓰면서 만대의 영화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만대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만대산 동쪽으로는 노태산과 시리봉이 있고 북쪽으로는 녹대산이 있으며 만대산 북쪽 사면은 묘산천과 합류되는 작은 개천들의 발원지들이고 묘산천은 부레마을에서 가야천과 합류하여  안림천을 형성하는 하천이다. 
만대산은 합천과 고령의 경계에 있는데 합천보다는 고령 만대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만대산은 명당으로 유명한데 재미있는 사실은 풍수가들이 말하는 등잔설로 등잔 바로 아래에는 어둡고 멀리 불을 비추므로 고령신씨들은 정작 시조 묘가 있는 산주리에는 한 사람도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모두가 외지에 산다는 것이다.

이곳부터는 남쪽은 합천읍이 끝나고 행정구역이 합천군 율곡면으로 바뀌는 지역이다.

만대산 정상에는 삼각점이 박혀있어 함께 사진 한장 더 남기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갈길이 멀기에 곧바로 출발을 한다.

 

만대산 정상을 지나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 저 멀리 고령의 야경이 반짝이고 있는데 똑딱이 카메라로 담아 보니 삼각대도 없어 도깨비 불처럼 흔들림이 심하다.

몇장의 사진을 어렵게 담고 진행을 하니 이제는 등로 앞으로 일출을 시작하려는지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 오기 시작을 한다.

그렇게 어둠속에서도 아름다운 산하를 친구 삼아 진행을 하니 곧이어 지금부터 올라야 할 675봉이 그 뒤로 붉게 물들어 오는 하늘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솟아 있다.

 

잠시 더 내려가니 등로는 이제 잡풀이 우거진 비포장 임도로 변하고 안부를 지나 바위 암릉지대도 넘는다.

암릉을 지나 진행을 하니 다시 바위봉이 나타나고 그 바위봉을 넘자 등로 좌측으로 하얀 굴뚝이 솟아 있는 굴뚝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무슨 용도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방지대에서 자주 만났던 군부대 굴뚝봉과는 다른 형태의 굴뚝봉이다.

 

굴뚝봉을 지나 잠시 더 내려가니 갑자기 넓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그곳에는 제법 웃자란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다.

어둠속에 이리 저리 불빛을 비춰보니 이곳은 넓은 헬기장으로서 사용을 하지 않다 보니 잡풀만 무성한 공터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곳에서 잠시 머물며 사진 몇장 남기고 지맥 마루금을 찾아 잠시 헤매였지만 금새 좌측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찾아 다시 헬기장을 출발해 본다.

 

그 헬기장을 지나 계속 완만하게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거목 한그루가 서 있는 안부를 지나 긴 의자가 2개 설치되어 있는 545.5봉 쉼터에 도착을 한다.

그 벤취 쉼터 주위에는 멋진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또 다른 멋진 등로가 열릴 것 같은데 아직은 어둠속에 걷다 보니 조금은 아쉬움이 남겨지는 시간이다.

나무계단을 지나 진행을 하니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가 잘 발달되어 있어 아무 생각없이 따라 내려가다 짧은 알바 후 뒤돌아 올라 와 진행 방향의 우측 잡목이 무성한 방향으로 어렵게 마루금을 찾아 진행을 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한동안 내려가니 참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등로를 만나 평이하게 걸어가니 여명이 밝아오며 등로 주위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 군락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봉우리 같지도 않은 평이한 등로 위에 498미터의 노태산 이정판이 나타나 잠시 물 한모금 마시고 출발을 한다.

노태산 (498봉)은 경북 고령군 쌍림면 산주리와 경남 합천군 율곡면 노양리에  걸쳐있는 산으로서 산세가 웅장하지만 오래되어 경사가 완만하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으로 국립지리원에서 발간하는 지도에는 노태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고령군지에는 어태산으로 표기가 되어있다.
노태산 북쪽 사면은 안림천 소지류의 발원지이며 이 지류는 쌍림면 신촌리 신촌숲 부근에서 안림천과 합류를 한다.
안림천의 지류인 소하천의 분수계에 위치하는 쌍림면 합가리는 중선 중기에 영남학파의 영수 점필재 김종직이 무오사화에 연류된 뒤 그의 자손들이 은거하면 살던 곳이기도 하며 한옥이 잘 보존된 지역으로 경상북도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된 곳이다.

 

노태산을 지나 걸어가니 등로는 여전히 넓은 비포장 임도처럼 잘 정비되어 있고 등로 주위에는 소나무와 활엽수가 조화롭게 자라며 거목으로 커가고 있다.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에는 간벌된 나무들이 널부러져 진행에 약간의 방해를 주고는 있지만 잡목이 많지 않아 큰 불편함은 없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이제 등로에는 완전히 멋진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피톤치드를 내뿜는지 기분마저 상쾌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무심으로 걸어가니 조만간 일출이 시작되려는지 소나무 가지 사이로 좌측 동녘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잠시 후 이장된 듯한 묘지지대를 지나 등로 좌측 저 멀리 소나무 가지 사이로 하루 해가 멋들어지게 올라오고 있다.

요즈음 안개로 인해 제대로 된 일출 한번 구경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소나무 가지 사이이지만 그래도 오랫만에 제대로 된 일출을 만나 한동안 쉬어 간다.

 

일출을 감상한 후 걸어가니 소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찬 가운데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기분 좋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다만 오늘 산행 거리가 길기 때문에 조금 더 많은 식수와 먹거리를 챙겨 진행하다 보니 두 어깨에 전해오는 무거움이 조금은 버겁게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무명묘지를 지나 다시 소나무가 빼곡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고 금새 266.3봉에 도착을 한다.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군락지 사이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우측 저 멀리 송전탑 하나가 보이고 곧이어 소나무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며 소나무 숲을 거닐 듯 걸어 보는 시간이다.

 

다시 완만하게 소나무 등로를 타고 오르니 274봉에 도착을 하고 여전히 빼곡하게 들어 찬 소나무 등로를 따라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편안하게 걸어 본다.

이제 어둠이 완전히 사라졌기에 헤드렌턴도 벗어 배낭에 넣고 출발하니 무명묘지 지난 안부를 건너 약간의 잡목이 같이 자라고 있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342.8봉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 더 마셔 본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342.8봉을 출발하니 소나무 등로는 동일한데 그 소나무 사이로 잡목들이 자라기 시작하며 또 다른 등로로 보이는데 진행에 약간의 방해를 주고 있다.

그렇게 잡목 숲을 따라 304.6봉을 넘고 더욱 잡목의 저항이 심해지는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멧돼지들이 목욕탕으로 사용했던 물 웅덩이를 만나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멧돼지들이 사용한 목용탕을 지나 진행을 하니 키 작은 소나무들이 식재된 듯한 비포장 임도를 만나 짧게 진행을 하고 밤나무들을 지나 걸어가니 창녕조공과 부인 함안조씨 묘지를 통과한다.

다시 쓰러져 가는 무명 묘지 몇기를 지나 잡목과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눈 앞에 거대한 칡넝쿨이 가로막고 길을 내주지 않는 곳에 도착을 해 난감해 한다.

지도를 보니 이곳 등로 바로 아래에는 새로 뚫린 4차선 지릿재 터널이 통과하는 지점으로 잠시 후 307.4봉 삼각점에 도착을 한다.

이곳 삼각점 봉을 영진 5만지도는 월미재로 표기하고 있으며 국토지리정보원은 308미터로만 표기 되어 있는데 실제 이곳 정상에는 서래야 박건석님이 지릿재봉으로 적어 놓아 헷깔리기만 하다.

하루 빨리 통일된 지명 이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삼각점이 박혀 있는 307.4봉을 지나 출발을 하니 간벌된 나무들이 등로에 널부러져 있는 소나무 군락지가 다시 나타나고 잠시 걸어가다 앞을 살펴보니 소나무 가지들이 사라진 공간으로 지금부터 걸어 올라야 할 산불감시초소봉과 그 뒤로 암봉인 시리봉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오늘 처음 만나는 너무나 아름다운 조망에 잠시 발걸음 멈춰 몇장의 사진을 남겨 본다.

 

사진 몇장 남기고 계속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벌써 깨끗하게 벌초된 묘지1기를 지나 또 다시 나타나는 묘지 2기를 통과하니 이제는 여러기의 묘지가 가족묘지처럼 보이는 곳도 통과를 해 내려간다.

생각보다 잘 관리가 되고 있는 묘지들을 보니 다음 주엔 시골에 내려가 이 산객도 부모님 묘지 좀 둘러보고 올라와야 되겠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더 내려가니 금새 33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지릿재에 도착을 하는데 그 아래 새로 뚫린 4차선 도로로 인해 이곳 옛 도로 위 지릿재에는 먼지만 쌓이고 있다.

지릿재(220미터)는 경북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에서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와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합천과 고령으로 연결되는 33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지루하도록 길고 험하여 지릿재 또는 장현이라고 부른다.
고령군에 있는 고개는 산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으로 도보나 우마에 의지하여 이동하던 시대에는 매우 중요한 교통로로 여겨졌으며 지릿재는 고령과 합천을 오고 가는 길목 중 가장 주요한 길목에 해당되며 고대부터 주요한 교통로였다.
특히 대가야는 미숭산(734.3봉) 주변의 야철지인 다락국(합천)의 철기 제작 집단을 바탕으로 철 교역권을 장악하고 주변 세력을 규합한 집단으로 다락국과의  철기 교역을 위한 교역로로서 지릿재를 이용하였다.
가야분지와 합천분지는 큰 산지에 의해 가로 막혀 있는데 지릿재, 장승재, 큰재, 매화재와 같은 고개들이 두 지역을 오가는 교통로로 이용되었으며 이곳은 진주와 사천 등지에서 대구·구미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특히 합천군 율곡면 와리에는 원촌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원촌은 예로부터 합천과 고령을 오가는 길목으로 관원의 행차 시 지릿재를 넘어가기 전에 머물다가 가는 원이 있었고 행인이 쉬어가는 주점도 있어 이 지역의 왕래가 많았다고 전해오고 있다.
이러한 길목은 교통의 요지일 뿐만 아니라 보안 및 치안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이렇게 중요했던 지릿재도 세월이 지나며 사람들과 동물들의 발길이 뚝 끊긴 적막강산의 잊혀지는 고갯마루가 되어가고 있어 왠지 모르게 쓸쓸함이 전해진다.

 

내고향 율곡면이란 빗돌이 있는 지릿재에서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조금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등로가 보이는데 그 앞에는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이란 도로 표지판도 서 있다.

우측 능선으로 제법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는데 그 등로를 타고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능선 안부 우측으로 잘 관리된 묘지들이 보인다.

그 묘지 위로 올라 등로 우측을 살펴 보니 지대가 낮은 마을쪽으로는 아름다운 운해가 깔려있고 그 뒤로 희미하지만 멋진 산그리메가 펼쳐져 있다.

살펴보니 운해가 깔려있는 곳은 합천쪽 황강이 흐르는 지역이고 그 뒤로 보이는 산줄기들은 대암산과 무월봉 및 천황산과 미타산들로 보이는데 확실하지는 않는다.

그 넘어로 보여야 할 진양기맥 산줄기를 찾아 보니 아직은 보이지 않고 꼭꼭 숨어 있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기에 잠시 더 머물며 그 아름다운 조망을 즐긴 후 안부로 뒤돌아 내려 와 이제 진행 방향 좌측으로 정상 마루금을 따라 걸어 오르기 시작한다.

잠시 오르니 273.6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자목의 저항이 심한 등로를 타고 생채기를 내며 걸어가니 갑자기 헬기장이 보이고 잠시 후 무명묘지를 지나 걸어가니 두번째 작은 헬기장이 나타난다.

두번째 헬기장을 지나 걸어가니 또 다른 세번째 헬기장을 넘어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큰재에 도착을 한다.

큰재는 경북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와 경남 합천군 율곡면 기리의 경계능선에 있는 고개로 고개 우측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선영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선영은 큰재 내려서기 직전 우측에 전두환 전 대통령 부친의 묘소가 있는데 둘레석의 12간지동물조각도 무궁화꽃에 양쪽으로 사슴조각 하나씩만 있으며 비문을 보면 묘를 쓴 시기도 단기 4311년이니 서기로 1978년인데 대통령이 되기 전의 일로서 완산전씨이고 어머니는 광산 김씨다.
대통령을 지낸 선친의 묘소치고는 상당히 소박하게 보이고 그 아래에는 또 다른 묘지 터가 마련되어 있는데 아무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가족들이 사후 사용할 터들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시멘트도로가 북쪽 33번도로에서 올라와서 고개를 넘어 남쪽으로 내려가고 묘지 쪽으로 들어가는 길 앞엔 묘소 가는 길을 알리는 작은 팻말이 있는 시멘트도로다.

전두환 전 대통령 선영이라도 찾아 볼까 생각을 해 보지만 오늘은 걸어가야 할 거리가 부담이 되어 포기하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마루금을 타고 오른다.

 

잡목의 저항이 제법 거센 오르막 등로를 타고 힘겹게 오르니 큰 바위들이 등로에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소나무와 잡목이 혼합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걸어 잡목이 앞을 가로막는 장소에 도착을 한다.

그 잡목을 헤치고 오르니 드디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시리봉 직전의 전망처에 도착을 해 일망무제로 펼쳐진 풍경들을 살펴 본다.

제일 먼저 지나온 마루금 좌측인 남서쪽을 살펴보니 합천호 지나 저 멀리 병풍처럼 둘러쳐진 진양기맥 마루금이 지난 날 추억을 이야기하자며 잡는다.

 

그 합천호와 황매산쪽 진양기맥이 보이는 운해에 잠겨있는 풍경이 있는 우측으로 서쪽을 살펴보니 오늘 걸어 온 수도지맥 토곡산과 만대산에서 노태산 지나 이곳 전망대로 이어진 마루금이 아름답고 그 만대산 뒤 저 멀리에는 여자의 유두와 같이 봉긋 솟아 있는 비계산을 두고 좌측으로 두무산이 어머니 품처럼 푸근하게 다가온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에 한동안 배낭도 벗지 못하고 그 아름다움을 즐겨보는 시간은 꿈결 같기만 하다.

 

이제 넘서서쪽으로 합천호와 비계산 사이로 흐르는 산줄기와 풍경들을 살펴 본다.

진양기맥 앞에 우뚝 솟아있는 월여산과 감악산이 보일듯 말듯 애간장을 태우고 그 뒤로 보여야 할 나즈막한 진양기맥 마루금은 박무속에 부끄러운지 얼굴을 숨기고 나오질 않는다.

가까이에 인덕산과 논덕산 그리고 소룡산이 또 다른 산줄기를 이루며 언젠가 한번 만나자고 약속이라도 하잔다.

 

지나 온 마루금 우측으로는 해인사를 지나 저 멀리 희미하게 가야산과 수도산 그리고 단지봉이 보일듯 말듯 그렇게 그 자리를 지키며 멀어지는 산객에 응원을 해 주는듯 하다.

그 가야산 가기 전 바로 앞으로는 조금 더 선명한 고령의 미숭산과 북두산이 반갑게 맞이해 주니 조만간 시간 내 다시 한번 올라보자 다짐도 해 본다.

한동안 휴식을 취하며 많은 사진을 담고 다시 그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전망대를 출발해 걸어가니 나즈막한 돌담이 쳐진 공터에 거목이 자라고 다시 부드러운 활엽수 등로를 따라 전진하니 약간의 잡목지대를 지나 거대한 암벽이 앞을 가로막는 시리봉 직전 안부에 도착을 한다.

어렵게 그 바위 사이로 나 있는 짧은 로프를 이용해 오르니 암봉으로 이뤄진 408.1봉인 시리봉에 도착을 한다.

시리봉은 경상북도 고령군의 쌍림면 합가리와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408미터인데 동쪽으로 솜등산과 노구산으로 연결되고 서쪽으로 노태산과 만대산으로 연결된다.
솜등산에서 노구산과 시리봉 및 노태산을 거쳐 만대산으로 연결되는 산줄기의 북쪽 사면은 안림천의 남쪽 분수계를 이루고 있으며 시리봉의 서쪽에는 지릿재와 큰재가 있는데 지릿재와 큰재는 과거 고령군과 합천군을 오가는 교통로로 이용되어 왔으나 현재 큰재는 거의 이용하지 않으며 지릿재는 33번 국도가 통과하고 있다.
시리봉의 북쪽에는 쌍림면 합가리가 위치하며 남쪽에는 합천군 율곡면 기리가 위치하고 있는데 합가리는 조선 전기 영남학파의 영수인 김종직(1431~1492)이 무오사화에 연루된 뒤 그의 자손들이 은거하며 살던 곳으로 한옥이 잘 보존된 지역으로서 경상북도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되어 있다.
시리봉은 조선시대 문헌과 지도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으며 일제강점기의 자료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는데 시리봉이란 이름은 산꼭대기가 떡을 찌는 시루 모양으로 생겨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그곳 시리봉 전망바위에서 바라 보는 조망과 풍경 역시 환상적인데 다만 서쪽으로 지나온 수도지맥 마루금 방향만 제법 조망이 열려있고 나머지 방향은 잡목들로 인해 막혀 있다는 사실이다.

지나 온 서쪽 방향으로 다시 한번 수도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니 바로 앞에 지릿재는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고 가운데 나즈막하게 노태산을 지나 저 멀리 오늘 산행을 시작한 만대산과 토곡산이 우뚝한데 그 만대산 우측 저 멀리 두무산과 비계산 지나 수도산과 단지봉 그리고 가야산 자락이 조금은 선명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지나온 수도지맥 마루금 우측인 북서쪽으로 펼쳐진 산줄기를 살펴보니 우측으로 마숭산이 제법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높이 솟아 있고 그 좌측으로 가야산이 넓은 어머니 품처럼 아늑하게 다가온다.

저곳을 지날 땐 그토록 짙은 안개로 보여주지 않더니 그 구간을 지나자 마자 이 산객의 눈에서 사라지지 않고 마지막 구간에서까지 이렇게 아름다운 산그리메를 보여주니 조만간 하얀 눈이 내리던 날 다시 한번 찾아 보리라 다짐을 해 본다.

 

그렇게 한동안 시리봉 바위 위에서 다시 조망과 풍경을 즐긴 후 넓은 등로를 타고 활엽수 사이를 걸어 출발을 해 본다.

잠시 후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소나무가 빼곡히 자라고 있는 등로로 들어가니 이제 등로 위에는 간벌 후 널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제법 산행을 방해하고 있다.

이장된 묘지같은 공터를 지나 계속 빼곡히 들어 찬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아침까지 밥상을 차렸던 멧돼지들의 식흔이 널려있고 잠시 후 나즈막한 안부에 도착을 한다.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잡목이 사라지고 소나무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366봉에 도착해 물 한모금 마셔 본다.

 

이제 조금 더 많은 잡목들이 소나무 등로 사이에 자라며 진행을 방해하고 곧게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소나무 사이를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니 관리가 안된 묘지를 지나 280미터의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곳을 지나 다시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묘지를 지나 잡풀과 키 작은 관목이 무성하게 자라는 비포장 임도를 만나 어렵게 잡목을 헤치며 내려가 본다.

그렇게 내려가니 한쪽은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고 다른 한쪽은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넓은 도로에 도착을 해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장등재라 표기된 안부이다.

이곳 장등재는 지도에 따라 다른 이름의 고갯마루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장승재(213미터)는 경상북도 고령군 합가리와 경남 합천군 쌍책면 상신리를 이어지는 고개로 현재는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는데 영진지도에는 장등재로 표기가 되어 있으나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도에는 장승재로 표기가 되어 있다. 
재가 길어서 장등재인지 장승이 있어 장승재인지는 모르겠는데 국토지리원 지명설명엔 고개가 길게 뻗쳐 있음으로 진등재 또는 장등재라 칭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던 등로는 이제부터 남쪽에서 북쪽으로 방향이 바뀐다.
좌측으로 내려가면 합가리 하개실마을에는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자 문신이었던 영남학파의 종조인 점필재 김종직이 생전에 지은 조의제문이 그의 제자인 김일손이 사관으로 있을 때 사초에 적어 넣은 일로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부관참시를 당하자 1650년경 그의 5대손이 이곳으로 은거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는데 점필재 종택과 함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성촌으로 이곳은 한옥이 잘 정비되어 있어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되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장등재는 갈림 삼거리인데 마루금 우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며 진행하다 좌측 능선으로 올라도 될 듯 하지만 확실하지 않으니 이 산객은 장등재 도로를 건너자 마자 비포장 임도 좌측으로 나 있는 능선쪽 잡목을 뚫고 능선으로 오르며 진행을 하기로 한다.

 

잡목을 뚫고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소나무 등로가 열리는데 얼마 전 간벌을 했는지 잘려진 소나무 가지들이 등로에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리 저리 조심하며 그 간벌된 등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무명묘지 한기가 서 있는 254.2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물 한모금 마신 후 출발을 하니 멋진 등로가 보인다.

소나무와 활엽수가 적당히 섞여 있는 등로를 타고 나즈막하게 올랐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다 보니 간벌된 나무들이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는 270.1봉에 도착을 한다.

 

그 270.1봉을 지나 계속 간벌된 나무들이 널부러져 있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또 다시 멋진 소나무들이 등로 양쪽을 빼곡히 채우는 아름다운 등로와 만나 편안하게 걸어 본다.

계속 이어지는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무명봉을 넘고 약간은 골짜기 같은 소나무 등로를 타고 무심으로 걸어 본다.

잡풀이 자라고 있는 묘지 몇기를 지나 잡목이 우거진 305봉과 309.3봉 갈림 삼거리를 지나는데 좌측으로 삼각점이 있는 309.3봉을 다녀올까 생각하다가 그냥 진행하기로 한다.

지도를 보니 이곳이 좌랑봉 갈림길로서 이곳에서 북쪽으로 약 1 Km 정도 거리에 있는 고령군 쌍림면에 있는 봉우리이며 지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좌랑봉은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신곡리에 있는 산이고 해발고도는 306미터로서 동쪽으로 만산 및 안산과 연결되며 남쪽으로 너릿골산과 장등재와 이어지는데 만산에서 안산과 솜등산을 지나 좌랑봉을 잇는 산줄기는 천박실개울의 분수계를 이루는데 이 하천은 안림천의 지류이고 좌랑봉이 위치한 신곡리에는 대가야시대의 고분들이 있다.
좌랑봉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33번 국도가 지나고 동쪽에는 907번 지방도가 남북으로 통과하며 조선시대 문헌과 지도에는 좌랑봉에 대한 언급이 없다.
좌랑봉이 처음 기재된 자료는 조선지지자료로 하동면 매촌동 남쪽에 있는 것으로 쓰여 있으며 좌랑산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좌랑을 지낸 신유한의 묘가 있어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다시 잡목이 거칠게 반항을 하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금새 271봉에 도착해 한숨을 내쉬어 본다.

 

다시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관리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묘지를 지나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등로에 널부러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안부를 지나 바위 등로를 우측으로 우회하며 걸어간다.

다시 잡목이 우거지기 시작하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약간의 바위 등로를 지나 무명묘지를 지나니 잡목 위에 278봉의 너릿골산이란 안내판이 붙어 있다.

너릿골산(산성터 같은 돌들이 널부러져 있는 278봉)은 그 어디에서도 자료를 찾지 못하였으나 영진지도에만 이곳을 너릿골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너릿골산이란 안내판이 붙어 있는 278봉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옆에 묘지들이 보이는데 살펴보니 가선대부를 지냈다는 묘비가 서 있다.

가선대부란 조선조 종2품인 문무관의 품계로서 가의대부의 다음 품계이다.

경국대전과 속대전에 종친은 중의, 정의, 소의대부로 그리고 의빈은 자의, 순의대부로 하였으나 대전회통에 이를 하나로 하였다.

즉 조선시대 각 도의 관찰사가 종2품이니 지금 시대의 도지사와 유사한 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 위세는 모두 어디로 가고 비석이 서 있는 묘지에는 잡목과 잡풀만 가득 우거져 있다.

 

그렇게 가선대부 묘지를 지나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또 다른 가선대부 묘지가 나타나고 그 바로 아래에는 통훈행현감 합천이씨 묘지가 보이는데 생각보다 높은 고위직을 지냈던 사람들이 예전부터 많은 고장이었나 보다.

그 지체 높은 분들의 묘지를 지나 내려가니 또 다시 멧돼지들이 목욕을 한 흔적이 있는 물 웅덩이를 지나 소나무 등로를 내려가니 무명 묘지들이 나타난다.

금녕김씨 묘지들을 지나 소나무 등로와 묘지들을 차례로 통과하며 내려가니 멀지 않은 곳에서 차량들의 소음이 들리더니 금새 기미재 위 지독한 칡넝쿨 위에 도착을 한다.

참으로 어렵게 그 칡넝쿨을 뚫고 내려가니 907번 2차선 지방도로 위에 간이 매점이 있는 기미재에 도착을 한다.

 

기미재에 도착을 하니 아침 10시 40여분을 지나고 있지만 마침 간이매점인 대원휴게소가 열려있어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따뜻한 국물의 국수 한사발 을 4000원에 먹고 가기로 한다.

물과 음료수를 합해 총 3.5리터를 준비하였지만 벌써 2리터의 물을 거의 마셨기에 이곳 간이 매점에서 물을 보충하려니 아주머니도 물을 사서 가지고 온다고 하여 1리터를 보충한 후 1000원을 더 주고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을 한다.

기미재(144미터)
기미재는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신곡리에서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상신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솜등산(269봉)의 서쪽에 위치하는 고개로 지방도 907호선의 도로가 있어 고령군 쌍림면과 합천군 쌍책면을 넘나드는 교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솜등산과 노구산으로 가는 등산로 입구가 있어 등산객이 많이 찾는 고개이다.
기미재는 쌍림면 신곡리의 북서쪽에 있는 해발고도 309미터의 봉우리와 동쪽의 솜등산 사이에 있는 해발고도 150미터의 낮은 안부에 있는데 지금도 고령군에서 합천군 쌍책면과 초계면 및 창녕군을 통해 남쪽으로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기미재의 북쪽은 천박실개울의 발원지로 천박실개울은 북류하여 쌍림면 신곡리 신기마을에서 안림천과 합류하는 개천이다.
기미재는 고령군과 합천군의 경계에 위치하며 쌍림면 신곡리와 합천군 쌍책면 쌍책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지방도 907호선의 도로가 지나고 있다.
이 도로는 고령군 대가야읍에서 떡곡재를 지나 쌍림면 안림리에서 신곡리를 지나 합천군 쌍책면 상신리를 이어준다.
대가야읍에서 합천군 합천읍 방향으로는 지릿재를 이용하는 것이 더 가까우나 고령군 쌍림면과 합천군 쌍책면을 왕래하는 데는 기미재를 이용하는 것이 더 가까우므로 두 지역을 왕래하는 교통로로 이용된다.
기미재를 통과하는데 세 군데의 돌무덤이 있어 오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3개의 돌을 던져서 안녕을 빌었다고 하며 기미재를 기점으로 솜등산에서 노구산과 듬말리 및 유산삼거리를 잇는 등산로가 발달되어 있어 기미재의 고갯마루에는 등산객을 상대로 하는 간이 휴게소가 있다.
또한 기미재 부근에는 1995년에 설치된 고령군 환경위생사업소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구간 애마를 이곳에 주차시켜 놓고 마령재에서 진행을 시작해 결국 녹대산 방향으로 대형 알바를 해 산주리로 내려간 후 근 한달만에 다시 들려 오늘은 결국 이곳 기미재에 도착을 해 국수 한그릇 먹고 기분 좋게 출발하는 시간이다.

 

기미재에 있는 907번 지방도로를 타고 좌측 고령쪽에 있는 쓰레기 처리장 반대 방향인 우측의 합천 방향으로 조금 걸어내려가면 도로 좌측 콘크리트 수로를 건너 절개지 위로 오르니 최근에 만들어진 듯한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난다.

살펴보니 등로 옆에 묘지 2기가 보이고 조금 더 오르니 허물어지고 있는 무명묘지 1기를 더 지나 능선으로 오른다.

소나무 등로에 자주 나타나는 묘지들을 지나 오르니 소나무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마루금에 도착을 하고 약간씩 더 거칠어지는 잡목을 헤치고 전진하니 봉우리같지 않은 곳 나뭇가지에 270.5봉인 솜등산 안내판이 걸려있다.

솜등산(270.5봉)
솜등산은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평지리와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솜등산은 구릉성 산지이며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경상계 진주층이다.
진주층은 하산동층을 정합적으로 덮고 있으며 이암과 셰일 및 사암이 주를 이루며 부분적으로 역질사암도 나타나는데 이 지층에 협재된 엷은 탄질셰일은 지층이 형성되던 당시 환경이 배후 습지성 소택지였음을 시사한다.
솜등산은 동쪽으로 노구산(324.7봉), 서쪽으로 시리봉(408봉)과 노태산(498봉) 및 만대산(688.7봉)으로 연결되며 이들 산지를 연결하는 산등성이의 북쪽 사면은 안림천의 남쪽 분수계를 이루고 있다.
솜등산의 북쪽에는 안산(247봉)이 위치하며 만산(267봉)에서 안산, 솜등산과 좌랑봉(306봉)을 잇는 산등성이는 고령군 쌍림면 신곡리에 있는 천박실개울의 분수계를 이룬다.
이 천박실개울은 고령군 쌍림면 소재지에서 안림천과 합류하는 안림천의 한 지류이다.
솜등산의 해발고도는 270.5미터로서 솜등산의 북쪽에는 쌍림면 신곡리가 위치하며 솜등산에서 약 1.5 Km 정도 서쪽에는 기미재가 있다.
이 기미재에는 지방도 907호선이 지나며 합천군 쌍책면 소재지에서 쌍책면 하신리와 기미재를 지나 쌍림면 신곡리와 쌍림면 소재지를 오가는 길목의 역할을 한다.
솜등산 일대는 현재 등산객이 방문하고 있으며 이들은 주로 고령군 솜등산과 기미재 및 시리봉을 잇는 등산로를 이용하고 있다.

이제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시간이 다가오면서 온 몸에선 굵은 땀방울이 쉴새 없이 등로에 떨어지고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잡목들로 인해 조망도 없고 바람 한점 없는 솜등산을 지나 약간의 바람이 불어 오는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솜등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물 한모금 마시고 출발을 하니 잡목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많은 생채기를 내면서 어렵게 그 잡목 구간을 지나니 다시 잡풀들이 자라고 있는 묘지를 지나 약간의 잡목이 자라고 있는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간다.

그렇게 계속 잡목을 헤치고 진행을 하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벌목지대가 나타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관목이 자라 진행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도 그 벌목지대에서 등로 좌측으로 살펴보는 좌랑봉 방향의 조망은 일품이다.

 

잠시 벌목지대를 걸으며 뜨거운 태양으로 열기는 높아지지만 탁 트인 조망을 즐기며 걸어가니 그것도 견딜만 하다.

진행하다 살펴보니 유천령 갈림봉(272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 좌측으로 고령군과 경계에 있는 유천령, 노구산, 소학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으로 이곳은 경상남도와 북도의 도계 능선으로 이곳부터는 경북과 이별을 하고 완전히 경남 합천군으로 접어든다.

등로 좌측으로 율원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아래로 율원리 마을이 한폭의 그린처럼 다가 온다.

이곳 율원리는 경상남도 합천군 덕곡면에 있는 마을로서 대부분의 지대가 완만한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 북쪽을 여러 갈래로 뻗어나온 산줄기가 감싸고 있다.

자연마을로 율원, 점깨울, 웃밤무지 마을 등이 있는데 율원 마을은 밤나무가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점깨울 마을은 옹기점이 있었다 하여 불리워진 이름이며 웃밤무지 마을은 율원 위쪽에 위치한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이 산객이 어렸을 적 살았던 고향과 비슷한 풍경이기에 더욱 가슴속에 남겨지는 풍경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등로 주위를 구경하며 거닐듯 걸어가니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무명묘지를 지나 많은 묘지들이 자리하고 있는 작은 공동묘지 지대 위에 올라 선다.

그 길게 이어지는 묘지들을 따라 내려가니 마지막 묘지 아래 철판으로 만든 상석 같은 시설물이 보이고 다시 넓은 수레길 같은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또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다.

등로 좌측 소나무 가지 사이로 살짝 펼쳐진 조망을 살피며 진행을 하니 또 다시 묘지와 소나무 군락지를 차례로 만나고 곧이어 185봉 넘어 무명 안부에 도착을 한다.

 

안부를 통과해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멋진 소나무들이 펼쳐져 있고 곧이어 수레길 같은 넓은 등로와 만난다.

아마도 묘지를 만들며 새로 조성된 듯한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한동안 오르니 역시나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이제부터 잡목과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방화선 같은 등로를 타고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방화선 같은 넓은 임도를 따라 걸어 오르니 예쁘게 벌초가 된 묘지 한기가 보이는 180봉에 도착을 한다.

다시 넓은 등로를 타고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176.8봉의 삼각점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도 역시 윤혈봉이란 전상 안내판이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이름이 왜 윤혈봉일까 고민도 해 보지만 알수가 없고 다만 이곳 봉우리 좌측에 율원리가 있어 윤월고개와 윤월재 등 율원리와 관계있는 이름들이 보이고 있어 혹시 윤월봉은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윤혈봉이란 176.8봉 삼각점을 지나니 지독한 칡넝쿨이 기다리고 어렵게 그 칡넝쿨을 지나니 몇기의 묘지들이 조성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내려가며 앞을 보니 저 멀리 창년의 화왕산과 열왕지맥 산줄기들이 하늘 아래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렇게 한동안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인동장씨 가족묘가 보이고 곧이어 1034번 2차선 지방도로와 운봉리로 이어지는 2차선 도로가 만나는 갈림 삼거리가 내려다 보인다.

그곳 그늘에서 잠시 쉬면서 남아 있는 과일로 목마름을 달랜 후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그곳 갈림 삼거리 도로가 만나는 율원고개에 도착을 한다.

 

율원고개는 1034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로서 좌측으로는 창녕으로 우측으로는 합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내고향 덕곡이란 빗돌을 사진에 담고 그 아래에 있는 스테인레스 물통 2개도 사진에 담은 후 남쪽으로 이어지는 강북로인 1번 군도의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율원재는 율원고개라고도 불리는 경남 합천군 쌍책면 사양리와 덕곡면 율원리를 잇는 고개로 1번 군도가 있고 저멀리 다남산 줄기가 높게 보인다.
좌측(동)은 덕곡면으로 우측은 쌍책면으로 1034번도로가 좌우로 넘고 있는데 고개 이름은 합천군 덕곡면 율원리의 마을 이름에서 얻은 듯한 느낌이다.
율원리를  밤무지라고도 부르는데 율원리는 밤머리인 율지리와 함께 밤나무가 많고 이곳에서 생산된 밤을 저장하는 큰 창고가 있어 밤무지라고 불렀다고 하며 율원리는 율원마을 1개의 행정리로 형성되어 있으며 장, 나, 안씨가 많이 살고 있고 마을에는 수정 나씨의 재실인 덕원정이 있다고 한다.

 

남쪽으로 강북로인 1번 2차선 군도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분홍색 연산홍이 예쁘게 피어 있다.

도로를 타고 한동안 완만하게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오랫동안 따라온 뒷쪽으로 노구산과 바로 좌측으로 소학산이 올려다 보이고 앞으로 더 자주 만나야 할 다남산은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한동안 도로를 타고 걸어 완만하게 오르다 고갯마루 직전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수도산에서 단지봉 그리고 가야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앞으로 두무산과 오도산 지나 앞으로 오면서 만대산과 녹대산까지 시원하게 조망된다.

다시 천천히 도로를 타고 올라 고갯마루를 넘으니 도로 우측에 반사경이 있고 반사경 지나 시멘트 옹벽이 시작되는 지점 우측 전봇대 있는 곳에서 이제 좌측으로 흐르는 1번 군도 2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시멘트 옹벽을 넘어 우측 능선으로 오른다.

지도를 보니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고랑큰음달산을 지나 다남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분기되는 장소인데 1번 군도가 개설되어 산줄기가 잘려져 있다.

즉 이곳 도로가 다남산 분기봉으로서 삼면봉인데 합천군 덕곡면, 쌍책면, 청덕면의 경계의 봉우리인데 이 봉우리를 1번 군도가 지나가는 도로가 되어 버렸으니 봉우리의 개념이 없어졌다.

앞으로도 오를 기회가 있을지 모를 다남산이기에 자료를 찾아보니 다남산(377.5봉)은 경상남도 합천군 청덕면 소례리 정산마을과 덕곡면 장리에 걸쳐 있는 높이 377.5미터의 산으로 다남산은 산 줄기가 남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 많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과 이 산에 와서 정성을 들이면 아들을 얻는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는 전설이 있는 산이다.

 

칡넝쿨이 가로막는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올라가니 소나무들이 빼곡히 자라고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와 만나고 잠시 후 소나무 한그루가 휘어져 있는 독립문 형상을 닮아 있는 230봉에 도착을 한다.

그곳을 지나 약간의 잡목이 발목을 붙잡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254봉의 삼면봉에 도착을 하는데 방금 전 만났던 1번 군도 부분이 삼면봉이라 알고 있는데 이곳에 다시 삼면봉이란 안내판이 있어 헷깔리기만 하다.

합천군 덕곡면, 쌍책면, 청덕면의 경계의 봉우리인데 정확한 위치에 대한 고증이 필요할 듯 하다.

 

 

잡목이 우거진 봉우리에 고사목 한그루가 서 있고 그 고사목에 254봉의 삼면봉이란 종이코팅지에 안내판이 붙어 있다.

그 삼면봉을 지나 오르니 잡목과 잡풀이 우거진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소나무 두 그루 사이에 그네같은 것을 만들어 놓고 우측 고사목 위에는 준.희님이 달아 놓은 수도지맥 236미터란 안내판이 붙어 있다.

이곳 236봉 정상에서 배낭 내려 잠시 쉬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일망무제 거칠것 없이 탁 트인 조망이 일품이다.

 

제일 먼저 북서 방향으로 지나온 수도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니 저 멀리 희미하게 수도산에서 단지봉 지나 가야산으로 아련한 산줄기가 보이고 그 앞으로 비계산과 우두산도 보이며 조금 더 가까운 곳에 두무산과 오도산도 보인다.

그 앞으로 토곡산과 만대산이 보이고 가까운 곳에 노태산과 시리봉도 아름답게 펼쳐진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너무나 환상적인 산그리메에 오늘 수도지맥 첫구간부터 마지막구간까지 볼 수 있다는 기대는 전혀 하지 못했기에 그 희열이 얼마나 컸던지 고함도 질러보는 시간이다.

 

북동쪽으로는 소학산 지나 저 멀리 지난 봄에 걸었던 비슬산과 비슬지맥이 아름답게 펼쳐져 옛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236봉에서 휴식을 취하며 주위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니 작은 소나무들이 식재된 듯한 등로를 지난다.

다시 잡목과 잡목이 어우러진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잘 벌초가 되어 있는 묘지 몇기를 만나고 그곳을 지나니 앞으로 전진이 불가능해 보이는 지독한 칡넝쿨 지대를 만나 개고생을 하면서 진행을 해 본다.

어렵게 통과해 살펴보니 이곳이 지도에 성황당고개라 표기된 장소라 생각되는 장소로서 너무나 어렵게 통과를 한다.
이곳 성황당고개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쌍책면 덕봉리로 이어지는 등로가 있다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졌는지 그 흔적도 찾기 힘든 고개가 되어 있고 좌측으로 내려가면 덕곡면 운봉리 파산동으로 연결되는 등로이다.
이곳에서 어렵게 칡넝쿨 지대를 지나 우측 소나무와 잡목이 섞여있는 희미한 등로를 타고 힘들게 진행을 해 본다.

 

그 지독한 칡넝쿨 지대를 어렵게 통과한 후 우측 숲속 희미한 등로를 차자 진행을 하니 무명묘지를 지나 214봉에 도착을 하는데 잡목으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기에 곧바로 출발을 한다.

그곳을 지나니 숲속 등로가 사라지고 어렵게 좌측 희미한 공터쪽으로 나오니 제법 넓은 고사리 밭이 나타나는데 그 아래 저 멀리 운봉리 마을도 내려다 보이고 그 넘어 다남산이 아름답게 눈에 들어 온다.

다시 나타나는 지독한 칡넝쿨 지대를 넘어 좌측 잡목과 잡풀이 무성한 넓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계속 운봉리와 다남산이 계속 따라오며 다양한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아직 기온도 높고 내려 쬐는 햇살도 강하지만 등로에는 벌써 억새가 활짝 펴 조만간 가을이 찾자 온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다시 그 잡풀이 무성한 넓은 등로를 타고 진행하다 우측 능선으로 들어가 어렵게 걸어가니 오래 전 사람들이 살았는지 많은 쓰레기들이 보이고 등로는 사라지듯 보이지도 않는다.

그곳을 지나 다시 어렵게 걸어가니 갑자기 소나무와 잡목이 사라지고 민등의 조망처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도 잠시 배낭 내려 쉬면서 주위 풍경을 살펴본다.

먼저 북서쪽을 살펴보니 저 멀리 수도산에서 단지봉 지나 우측의 가야산을 넘고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사진의 정중앙부에 펼쳐진 비계산과 우두산 그리고 오도산이 멋지고 그 앞으로 오늘 걸어 온 만대산부터 이곳까지 이어진 수도지맥 마루금 전체가 한눈에 들어 온다.

너무나 환상적인 풍경에 더 이상 진행을 하지 못하고 한동안 더 쉬며 조망을 즐겨보는 시간은 정말로 꿈결만 같다.

 

서쪽으로는 합천과 황강을 지나 저 멀리 진양기맥의 황매산과 월여산이 희미하지만 존재감을 확실히 알려주고 있다.

3년 전부터 시작한 진양기맥도 이제 막바지로서 2구간만 더 오르면 졸업을 하는데 아직도 들리지 못하고 있으니 아쉬운 시간이기만 하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올해가 지나기 전에 저 진양기맥 마루금 산행도 깨끗하게 마무리하고 기분 좋게 오르고 싶은 지맥 산행에 충실 할 수 있기를 바래 보는 시간이다.

 

남서쪽으로도 계속 이어지는 진양기맥을 살펴보니 앞으로 올라야 할 진양기맥 마지막 산줄기가 가슴속에 파고 들며 하루 빨리 만나자고 재촉을 하는듯 하다.

그렇게 그곳 민둥의 전망처에서 한동안 환상적인 조망을 즐긴 후 좌측으로 크게 꺽어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등로를 따르니 멋진 소나무 등로를 지나 풀이 웃자라고 있는 등로 넘어 앞으로 올라야 할 절골봉이 올려다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는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들이 보이고 계속 남쪽으로 넓은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진양기맥 산줄기가 계속 아른거린다.

그렇게 그 넓은 잡풀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타고 우측 민가 한채가 보이는 방향으로 걸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 곳이  절고개(시멘트 포장도로)라 표기된 곳으로 이곳에서부터 시멘트 도로를 타고 민가 뒤를 지나 고갯마루까지 진행을 해야 한다.

 

 

시멘트 포장도로 좌측으로는 밭이 펼쳐져 있고 그 밭에는 거대한 비닐하우스 한동이 보인다.

그 비닐하우스 지나 저 멀리 다남산이 깨끗하게 올려다 보이고 그렇게 운봉리 마을을 조망하며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어디에서 보이지 않은 강아지 몇마리가 심하게 울부짖는다.

조금은 빠르게 걸어 민가 뒤를 지나 고갯마루로 오르니 도로 좌측 능선으로 마루금은 이어지고 그곳으로 올라 잡목과 바위 그리고 소나무가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267봉인 절골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 절골봉에서 등로는 다시 좌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을 한다.

 

절골봉에서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뚜렷해지고 등로 주위에는 멋진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걸어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짧은 소나무 등로를 타고 오르니 칡넝쿨이 앞을 가로 막는다.

어렵게 그 칡넝쿨 지역을 통과하니 지금까지 보다는 더 큰 거목의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며 편안하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 소나무 군락지를 통과해 조금 더 걸어가니 다시 소나무는 사라지고 넓은 등로에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지기 시작하며 머리 위에서는 따가운 햇살도 비춘다.

그렇게 약간의 체력적인 어려움을 느끼며 걸어가니 그늘이 없어 따갑기는 하지만 주위 멋진 풍경을 살펴볼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기도 하다.

등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진양기맥 마지막 산줄기가 이어지고 그곳으로 오를 수 있는 기회만 생각을 해 본다.

등로 좌측으로도 나즈막한 산들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창녕 지나 멋진 산그리메들도 보이지만 약간의 박무로 인해 흐릿하기만 하다.

다시 앞으로 걸어가니 또 다시 나타나는 칡넝쿨 넘어 저 멀리 진행해야 할 필봉쪽 마루금이 빼꼼히 올려다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 보이는 다남산도 바라보며 덕곡천 넘어 우뚝 솟아있는 소학산도 바라본다.

그렇게 진행하니 잠시 잡풀이 사라지고 거대한 거목 한그루가 등로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어 잠시 쉬어 간다.

다시 잡풀과 잡목이 우거진 방화선 같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다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대암산에서 미타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멋진 산그리메를 이루며 펼쳐져 있는데 그 산줄기로 인해 지금까지 보였던 진양기맥 마루금은 눈길에서 사라져 버렸다.

 

다시 나타나는 지독한 칡넝쿨 지대를 지나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거대한 거목 두어그루가 서 있는 곳을 지나 다시 방화선을 뒤덮고 있는 칡넝쿨 지대와 만나 사투를 벌인다.

해발고도 300미터 전후로 방호선 같은 등로를 따라 계속 걸어가듯 이어지고 있는 수도지맥이다.

그 지독한 칡넝쿨 지대를 지나니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그곳에서 등로 좌측 앞을 살펴보니 저 멀리 창녕의 회색빛 도심이 보이는가 싶더니 그 뒤로 화앙산과 그 지맥들이 희미하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알려 온다.

 

이제부터의 등로는 소나무 등로와 잡목과 잡풀 그리고 칡넝쿨이 우거진 방화선 같은 등로가 번갈아 나타나는 마루금으로 변하고 있다.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르는가 싶으면 다시 방화선 바닥을 완전히 뒤덮고 있는 칡넝쿨이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부수봉 갈림길이 어디인지도 모르게 지나쳐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른다.

잠시 부수봉을 다녀오고 싶었는데 아쉬운 시간이지만 어쩔 수 없기에 다시 걸어가니 봉우리 같지 않은 등로 옆에 지도상 318봉이지만 삼각점에는 331봉 삼각점에 도착을 한다.

 

그 318봉 삼각점을 지나 좌우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을 살피며 천천히 걸어가니 세갈래 멋진 가지를 가지고 있는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321봉을 통과한다.

다시 약간의 조망을 즐긴 후 걸어가니 멋진 소나무 방화선이 이어지고 등로 양쪽으로 펼쳐진 들판에는 이제 가을을 알리는 황금빛 들녘이 막 시작되려는 듯 변하는 색깔을 알려주고 있다.

이제 등로 좌측 앞으로는 마지막으로 올라야 할 성산 방향을 지나 저 멀리 창녕과 그 뒤로 화왕지맥과 비슬지맥 산줄기들이 가물거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름다운 조망을 즐기며 여유있게 걸어가니 큰 고도 차이없이 칡넝쿨이 등로를 뒤덮고 있는 방화선 같은 마루금을 타고 여유를 부려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 좌측에 나무로 만든 철봉이 있고 우측에는 통나무 의자가 있는 쉼터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과 준비한 떡 한조각 먹고 출발을 한다.

그렇게 쉬고 출발하니 봉우리 같지 않은 정상 능선상의 큰 소나무 가지에 326미터의 필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 후 곧바로 출발이다.

326봉인 이곳 필봉은 영진 5만지도에 필봉으로 적고 있으나 국토지리원 2만5천 지도에은 이곳을 326미터만 표기되어 있고 조금 더 지난 곳인 함박산 갈림봉인 261미터봉을 필봉으로 표기하고 있어 헷깔리기만 하다.

 

필봉을 지나 다시 방화선 같은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봉우리 하나가 위압적으로 다가 와 지도를 살펴보니 313봉이지만 오늘은 그곳으로 가지 않으니 다행이란 생각이다.

이제 그 등로 우측 앞을 살펴보니 미타산 좌측 저 멀리 나즈막한 우봉지맥 마루금도 하늘 거린다.

언젠가는 올라야 할 마루금이기에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살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동안 주위 멋진 조망을 즐기며 걸어가니 나즈막한 돌담을 넘어 무명묘지가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 옆으로 높이 261미터의 작은 필봉이란 종이코팅지의 안내판이 달려있다.

살펴보니 이곳이 우측 313봉으로 갈 수 있는 등로가 갈리는 갈림 삼거리로서 수도지맥 마루금은 작은필봉에서 좌측 능선을 따라 진행을 해야 한다.

현지 마루금에는 이곳을 작은필봉이라 적어 놨는데 지도에는 이곳을 필봉이라 적고 있어 필봉을 살펴 본다.

필봉(261봉)은 경남 합천군 청덕면 소례리 정산마을 뒤편에 자리한 봉우리로 국토지리정보원 고시지명 유래에 의하면 봉우리가 붓처럼 생겼다 하여 필봉이라 붙여졌다고 하나 합천군 행정지도에는 필봉으로 표기돼 있다.
필봉이란 산 이름은 대체적으로 산봉우리가 붓끝처럼 뾰족하다고 하여 필봉으로 표기를 하는데 이곳 봉우리는 합천군 홈페이지에 보면 필봉으로 표기를 하였는데 조금 오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등로 옆에 조그만 봉돌에다가 누군가 필봉 326이라 매직으로 써놓았는데 이곳의 고도는 261미터이다. 우측으로는 유씨의 묘지들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이곳이 함박산 가는 갈림봉이기도 하다.

 

우측 등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을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지독한 칡넝쿨이 다시 나타나고 어렵게 그 칡넝쿨 지대를 통과하니 등로 우측으로 화동저수지와 성태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그 넘어 황강을 두고 펼쳐진 좁은 들판도 내려다 보인다.

아마도 그 넘어 낙동강도 보이겠지만 지금은 산줄기에 막혀 보이지 않는데 성태리 들판 좌측으로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해야 할 수도지맥 마지막 날머리인 청덕교 방향도 보일듯 말듯 그렇게 그 끝자락을 보여주고 있다.

성태리는 경상남도 합천군 창덕면에 있는 마을로서 마을 뒤쪽으로 산이 있는 농촌지역인데 자연마을로는 성태, 양촌, 궁동, 화동이 있다.

양촌은 임진왜란 당시 절충장군 겸 수군절제사를 역임한 차향리공의 자손이 터전을 잡아 인근 운봉리와 삼학리에 걸쳐 300여호가 집성촌을 이룬 400여년의 덕원서원 차씨문중의 본거지다.

경상남도 지정문화재 138호인 덕원서원과 유형문화재 257호인 쌍청당실기책판이 있고 궁동은 활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비닐하우스 특작재배가 활발하다.

 

어렵게 그 지독한 칡넝쿨을 지나 내려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약간의 잡목이 혼재된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다.

잠시 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다 완만하게 오르니 잡목이 우거진 무명봉 지나 웅덩이 2개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271봉에 도착을 한다.

그 271봉을 지나 다시 내려가니 등로 좌우측으로 멋진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방화선 같은 등로가 나타나고 한동안 그 방화선 같은 등로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 본다.

그렇게 한동안 그 방화선 같은 등로를 타고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잓은 필봉 넘어 반대쪽의 313봉도 올려다 보인다.

 

다시 힘들게 그 방화선 같은 등로를 타고 오르니 정상부에는 최근에 조성된 듯한 거대한 묘지가 보이고 그 묘지 우측으로 우봉지맥과 화왕지맥 산줄기가 비산비야를 이루며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잠시 그 묘지가 있는 정상에서 다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살펴보며 잠시 더 쉬어 가기로 한다.

오늘 밤 태안에서 가족 모임이 있지만 짧은 구간을 남겨 놓고 그냥 올라 갈 수 없어 가족 모임에 약간 늦더라도 오늘 수도지맥 산행을 마무리 하기로 한다.

 

그 묘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정상에 웅덩이 하나가 있는 296봉을 통과한다.

이제 완만하게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안부에 멧돼지 목욕탕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오르니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다.

한동안 오르니 무명봉을 넘어 내려가고 곧이어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에 도착을 하는데 이 도로는 최근에 만들어 졌는지 지도에는 표기가 되어 있지 않고 고개라는 표기도 없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도로 건너 이어지는 능선으로 진입하며 이어간다.

 

짧은 절개지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171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방화선 같은 넓은 소나무 등로를 타고 평이하게 걸어가니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고 평이한 등로를 지나 무명묘지 2기도 통과를 한다.

다시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평지같은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이곳이 마루금인지 아니면 식재된 소나무 조림지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멋진 마루금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부터 점점 체력적인 한계에 도달하기 시작하고 걷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만 가니 그것이 문제이다.

 

피톤치드를 폐 깊숙히 들어 마시며 여유있게 천천히 걸어가니 여전히 등로에는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함께하고 있다.

198봉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241봉까지 진행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고 물 한모금 더 마신 후 출발을 한다.

이제 등로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붉게 흘러가는 황강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며 오늘 이나 수도지맥 산행도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음을 직감한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옆에 삼각점이 박혀있는 250.7봉인 성산에 도착을 한다.

성산 좌측으로는 묘지 2기가 내려다 보이는 성산에서 잠시 더 쉬어 간다.

성산(250.7봉)은 경남 합천군 청덕면 성태리와 삼학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수도지맥 마루금 상 산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는 마지막 산이기도 하다.
산상에는 4등 삼각점이 있고 준.희님이 걸어둔 수도지맥 성산 250.7미터란 표지판이 있으며 그 밖에 2개의 또 다른 정상 안내판도 걸려있고 수많은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는데 정상 삼각점 좌측 아래에는 참봉을 지낸 파평윤씨 묘지가 있다.
정상 아래에는 성터의 흔적같은 돌담들이 보이는데 이곳이 가야시대의 성터이며 이곳에서 가까운 옥전고분군과 함께 다라국(옛 대가야와 인접한 작은 나라)의 유물들이 출토되기도 한 곳이라고 전해지는 성산이다.

 

성산 정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좌측 앞 파평윤씨 묘지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 살펴보니 수도지맥 마지막 날머리인 청덕교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마루금이 내려다 보이고 그 끝자락에 수도지맥 날머리인 청덕교도 보인다.

그곳 황강을 지나 좌측으로 조금 더 멀리 내려다 보니 수도지맥의 실질적인 산행 날머리인 낙동강과 황강이 만나는 합수점도 보이기 시작한다.

가능하면 저 낙동강과 황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 증명 사진 한장 남겨 보길 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성산에서의 시간을 뒤로 하고 이제 막바지 산행을 위해 조금 더 힘을 내 본다.

작은 돌들이 등로에 깔려있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아주 조심하며 내려가니 다시 멋진 방화선 같은 소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편안하게 큰 고도 차이가 없는 마루금을 따라 걸어 본다.

약간의 잡풀들이 보이고 금새 몇기의 무명묘지들도 보이더니 이제부터는 한동안 소나무 등로에 몇기의 무명묘지들이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마지막 101봉을 넘어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위에 작은 돌탑을 지나 이제 활엽수가 등로를 대신 하는 마루금도 만난다.

 

이제 수도지맥 마루금 산행도 막바지에 도착을 했는지 등로 우측으로 조금 더 가깝게 황강이 내려다 보이고 가끔 차량들이 통행하는 소음도 들리기 시작한다.
합천은 황강의 땅으로 북쪽에 해인사를 품은 가야산과 청량사를 안은 매화산 등 기운찬 산들이 버티고 있지만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살이로 보자면 합천은 황강의 땅이라 하는 편이 조금은 더 옳다.
먼저 황강은 이웃 고을 거창군에서 발원하지만 합천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강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합천읍 남서쪽에 있는 합천댐도 1988년 들어서기는 했지만 합천을 합천이게 하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게다가 가까운 대병면의 악견산, 금성산, 허굴산 같은 산들이 그다지 높지 않으면서도 명산으로 대접받는 까닭이 다 이 황강에 이어져 있어 골짜기와 들판 풍경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합천을 일러 황강의 땅이라 할 수는 없는데 합천 사람들의 삶이 황강과 깊숙이 연관돼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황강은 알려진 대로 강바닥이 둘레보다 높은 천정천이서 강변 이쪽저쪽에 기름진 논이 생겨났고 이는 사람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먹고 사는 바탕이 됐다.
또 정양 늪이나 박실 늪 그리고 연당지 따위 습지도 많으며 알려진 대로 습지는 사람을 비롯한 생물은 물론 무생물까지 풍성하게 머금는다.
더욱이 황강은 합천 역사의 큰 줄기를 이루고 넓이가 983.47 Km2로 서울의 1.6배에 이르는 합천은 일제 강점기인 1914년 삼가군과 초계군 둘을 아우르면서 오늘날의 합천군이 됐다.
지금 합천읍 일대에 해당되는 옛날 합천에 이르려면, 북쪽은 산악으로 막혀 있고 남쪽은 물길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동쪽 또는 서쪽에서 황강을 따라 들어오는 경로 말고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합천은 신라와 가야 사이(500년대)에서 신라와 백제 사이(600년대)에서 그리고 통일 신라 또는 고려와 후백제 사이(900년대)에서 군사 요충지 노릇을 톡톡히 했던 것이다.
합천읍 들머리 해발 100미터도 안 되는 취적산 마루에 산성 자취가 있고 기슭에 642년 대야성(합천의 옛 이름) 전투에서 백제군에게 성주 김품석이 죽고 나서도 계속 싸우다 전사한 화랑 죽죽을 기리는 빗돌이 있는 까닭이다.

처음 시작을 할 때만 해도 언제 황강에 닿을 수 있을지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좋은 추억을 남기며 마무리를 할 수 있어 기분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황강을 살펴 본 후 등로 좌측으로 급격ㅎ게 꺽어 가파르게 내려가니 간이 화장실 같은 건물이 보이고 곧이어 잘 벌초된 묘지들을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배낭 정리 후 우측으로 조금 걸어 나가니 강변북로와 덕진로가 만나는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해 도로 건너 청덕교와 조우를 한다.

참으로 멀고도 힘든 산행이었지만 이렇게 무탈하게 그 날머리에 서서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순간의 짜릿함이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모를 것이리라.

 

그 도로를 건너 드디어 청덕교 앞에 서서 멀고도 길었던 수도지맥 산행을 마무리하는 자축을 해 본다.

그 청덕교 아래로 도도히 흐르는 황강을 바라보는 마음이 아쉬움과 함께 ㅅ원함이 함께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를 일이다.

합천땅을 적시는 황강은 경상남도 거창군과 합천군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 드는 낙동강의 지류이며 길이는 119 Km이다.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 남덕유산(1507봉) 동쪽 계곡에서 발원해 동남쪽으로 흐르며 합천호를 이루었다가 심하게 곡류하여 합천군 청덕면 적포리 일대에서 낙동강에 흘러 든다.
주요지류로는 위천, 대천, 가천, 가야천 등이 있으며 유역에는 산간분지가 발달하고 있으며 하도의 경사가 급하고 토사의 퇴적이 많아서 하천 하류에서는 천정천이 나타난다.
유역 내에서는 쌀, 맥류, 잡곡, 사과, 누에고치, 완초 등이 생산된다.
해인사, 가야산국립공원, 덕유산국립공원 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88올림픽 고속도로가 강의 중상류유역을 가로질러 지난다.

이곳 수도지맥이 아니였다면 이렇게 상세하게 황강에 대한 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겠지만 아무튼 또 다른 강물과 산줄기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넘ㄼ혔으니 그것만으로도 산행을 한 의미가 충분할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 청덕교를 건너 애마가 있는 곳으로 가 공식적인 산행을 마무리하고 배낭을 정리해 애마에 실고 잠시 황강으로 가 손을 닦아 내지만 시원함보다는 아쉬움이 깊이 남아있는 시간이 되었다.

다시 그 황강에서 제방으로 올라 와 어렵게 셀카 놀이로 증명 사진 한장 남긴 후 애마를 몰아 황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이동을 해 본다.

태안의 가족 모임에는 언제 도착 가능하냐며 많은 전화가 빗발쳐 오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에 이해만 부탁을 해 본다.

 

애마를 몰아 황강을 떠나 1 Km 정도 동쪽으로 달리니 그곳에 오늘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던 황강이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합수점에 도착을 해 수도지맥 산행이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의식을 가져 본다.

낙동강은 유로연장 521.5 Km에 유역면적 23817 Km2으로 압록강 다음가는 한국 제2의 강으로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1573봉)에서 발원하여 상류부에서는 안동을 중심으로 반변천을 비롯한 여러 지류를 합치면서 서쪽으로 곡류하다가 함창 부근에서 다시 내성천과 영강 등 여러 지류를 구심상으로 받아들이고 물의 흐름을 남쪽으로 돌려 상주 남쪽에서 위천을 그릭 선산 부근에서 감천을 또 대구 부근에서 금호강을 남지 부근에서 남강을 합친 뒤 동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삼랑진 부근에서 밀양강을 합치고 나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남해로 들어간다.
낙동강은 가락국(또는 가야)의 동쪽을 흐르는 강을 의미하며 옛날 가야의 터전이었던 경북의 고령과 상주, 선산, 경남의 합천, 의령, 함안, 고성 지방은 모두 낙동강의 서쪽 지역에 자리를 잡았고 이들 지역에서 보면 낙동강은 동쪽 편에 위치한다.
고려시대 때 편찬된 삼국유사에는 낙동강을 황산진 또는 가야진으로 표기했으나 조선 초기의 역사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에는 낙동강을 낙수 혹은 낙동강이라고 썼으며 이 책에는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 36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18세기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에도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을 말함이다라고 적고 있고 이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낙동강이란 이름이 표시되고 있어 오늘날과 같은 낙동강의 이름은 조선 초기부터 사용됐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산행을 마무리하고 어렵게 셀카를 돌려 증명 사진 한장 남긴 후 곧바로 근처 목욕탕으로 달려 가 샤워로 피곤한 하루의 산행을 마감한다.

약간의 막힘이 있는 도로를 타고 태안으로 달려 가 가족들과 다음날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복귀하니 이틀이 참으로 길고도 멋진 시간이 되었다.

 

이제 다음에는 금오지맥이나 문수지맥을 생각해 보는데 언제 다시 새로운 산줄기를 찾아 떠나게 될지 괜시리 설레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