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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수도지맥(대간·완)

수도지맥 제5구간 마령재에서 녹대산 갈림봉 지나 산주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5.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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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남도 합천군과 고령군의 수도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5년 08월 15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새벽에 안개 후 아침부터 맑고 화창하였으나 폭염경보속 너무나 무더웠던 산행 날씨

산행온도 영상 25도에서 영상 33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마령재(24번 2차선 포장도로 삼거리)-묘지1기-묘지2기-비포장 임도-헬기장-438봉-바위 암릉길-445 바위봉-잡목지대-안부-묘지1기-

                 잡목과 잡풀지대-가시덤불 등로-바위 암릉길-소나무 군락지-안부-소나무 군락지-벌목 후 호두나무 식재지-파란 물통-잡목지대-바위봉-

                 소나무 군락지-바위 암릉-토곡산(644봉)-전망바위-바위 암릉-안부-녹대산 갈림봉-대형알바시작-570.1봉-509.9봉-바위봉-소나무

                 등로-묘지1기-이장된 묘지-소나무 군락지-무명묘지-안부-지독한 칡넝쿨지대-소나무 군락지--무명봉-소나무 군락지-338.5봉-

                 녹대산(378봉) 삼각점-소나무 군락지-묘지2기-소나무 군락지-묘지2기-조릿대지대-광산김공 묘지-시멘트 포장도로-산주리노인회관-

                 산행종료

산행거리 : 안개와 무더위로 인해 충분히 휴식 취하고 많은 식수를 마시며 천천히 진행하여 07.47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안개와 폭염경보속에 무더위로 인해 무척 어렵게 알바까지 진행하여 05시간 58분 (06시 18분에서 12시 17분까지)

교통편 : -옆지기의 애마와 택시를 이용 다녀 옴

수도지맥이란?
백두대간이 전북 무주군과 경북 김천군과 경남 거창군등 삼도가 만나는 대덕산(1290.9봉) 남쪽의  삼도봉(일명 초점산, 1250봉)에서 남쪽으로  300여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시작하여 남동쪽으로 가지를 쳐 내려가며 경상남도와 북도계를 따라 봉산(902봉), 수도산(1317봉), 단지봉(1326.7봉), 좌일곡령(1257.6봉)을 지나  가야산을 목전에 두고 두리봉(1133봉)에서 도계를 벗어나 남쪽으로 거창군과 합천군경계를 따라 남산(1113봉), 마령(1006.5봉), 우두산(의상봉, 1046.2봉), 비계산(1130봉), 88고속도로, 두무산(1038.4봉), 오도산(1120봉) 등 1000미터 이상의 장쾌한 능선이 60여Km 이어진다.
오도산에서 거창군과는 작별을하고 온전한 합천땅으로 들어서며 고도를 낮춰 토곡산(644봉)를 지나면 다시 경상남도와 북도계를 만나 고령군과 합천군계를 따라 만대산(688봉), 시리봉(408봉)을 지나 솜등산(271봉)에 올라선 도계능선과는 작별을하고 마지막 여력으로 필봉(330봉), 부수봉(317봉), 성산(205.7봉)을 내려서며 맥을 다한다. 

수도지맥 동북쪽으로 흐르는 감천은 길이 69 Km 유역면적 10만 Km2로 수도산 북쪽에서 발원하여 김천시의 지명을 낳게하고 김천시일대를 지나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수도지맥 동쪽내지 동남쪽으로 흐르는 회천은 길이 78 Km,유역면적 78000 Km2로  수도산 동쪽기슭에서 발원하여 대가천을 이루어 성주호에 들었다가 다시 동으로 흘러 고령읍에서 소가천 및 안림천과 합류하고 고령군 덕곡면 율지나루에서 낙동강에 흘러든다.  

수도지맥 서쪽으로 흐르는 황강은 길이 111 Km,유역면적 13만 Km2로  남덕유산(1507봉)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합천호에 들었다가 합천군 청덕면 적포리 일대에서 낙동강에 흘러들며 맥을 다한다. 
수도지맥중 제일 높은산은 단지봉(1326.7봉)이지만 지맥의 이름을 수도지맥으로 한것은 아마도 수도산(1317.1봉)의 유명세일 듯 싶고
좌일곡령(1257.6봉)은 일부지도가 좌대곡령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壹(한일)자와 臺(돈대대)가 비슷하여 생긴 일은 듯하며 국토지리정보원의 25000지도는 좌일곡령으로  표기되고 있다.

 

 

폭염 경보속에 연 이틀 산행의 무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형 알바를 겪으며 체력적인 한계를 경험했던 아쉬웠던 산행 이야기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폭염 경보속에서도 전날 예상보다 잘 진행하여 마령재까지 왔기에 잘만 하면 남아 있는 2일 동안 수도지맥도 마무리하고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즐거운 상상을 해 보는 시간이다.

다만 이곳 합천에서 전국 어린이 축구대회가 열리기 때문에 지난 밤 합천읍에서 자지 못하고 멀리 대병면까지 가 냄새나는 여관방에서 잠을 자고 다시 이른 아침을 먹기 위해 합천으로 돌아오다 보니 지난 저녁부터 몸이 좋지 않아 몸살감기약까지 먹은 것이 조금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시간이다.

새벽 일찍 일어나 간단히 배낭 챙기고 감자탕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후 합천택시와 함께 산행 날머리인 기미재로 향하는데 오늘 새벽도 역시 짙은 안개로 인해 산행이 걱정을 하면서 애마를 몰아 가는 새벽이다.

그래도 생각보다 몸의 컨디션은 나쁘지 않아 오늘 역시 조금 늦더라도 예상한 이곳 기미재까지 무탈하게 완주 후 일요일까지 남아 수도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복귀를 할것인지 아니면 오늘 토요일 저녁에 귀가를 할 것인지 결정을 하기로 한다.

 

기미재 한쪽에 애마를 잘 주차시키고 택시로 갈아탄 후 오늘 산행 들머리인 마령재로 향하는데 이 산객이 알고 있는 도로가 아닌 먼 도로를 타고 가기에 불평 불만을 하니 그제서야 조금 미안한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이런 사소한 사건 하나가 이곳 합천에 대한 인상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택시 기사들은 알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조금은 기분이 좋지 않게 마령재에 도착을 하니 예상보다 2배 이상 시간이 걸렸고 요금도 예상보다 2배 가까이 더 나왔다.

아무 말없이 돈을 지불하니 미안했던지 30000원에 해결하고 거스름돈을 주기에 앞으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인사말을 남기고 산행 준비를 해 본다.

 

마령재에서 잡풀을헤치고 절개지로 올라가는데 제법 많은 물방울이 풀섶에 ㄴ려 앉아 또 다시 등산바지가 흥건히 젖어 오기 시작하고 오늘 산행도 쉽지 않음을 직감해 본다.

그렇게 올라 다시 우거진 잡목과 가시나무를 헤치고 오르니 희미하지만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고 묘지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생각보다 풀섶에 내려 앉은 물방울이 적어 조금은 안심이 된다.

그렇게 올라 헬기장과 438봉을 지나니 바위들이 보이고 그 바위에 오르기 직전 등로 좌측 소나무 밑으로 가 살펴보니 합천군 묘산면쪽 마을은 안개속에 잠겨 있고 그 뒤 저 멀리 희미하지만 뚜렷하게 어제 넘어 온 두무산과 오도산이 드 높게 솟아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에 잠시 발걸음 멈추고 더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약간은 기분이 상한 상태로 택시 기사와 헤어져 산행 준비를 하지만 오랜 경험으로 금새 상했던 기분을 풀고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열어 보는 새벽이다.

예상은 새벽 6시를 막 넘기며 산행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벌써 20여분이 더 지나 마령재 버스 정류장 건너편으로 도로를 건너 함양과 합천이 갈라지는 도로 표지판 옆으로 나 있는 잡풀이 우거진 곳에서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오르며 하루를 시작해 본다.

이곳 마령재 또는 마령은 경남 합천군 합천읍과 묘산면을 연결하는 24번 2차선 포장도로와 1034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삼거리로서 이곳 산의 형태가 말처럼 생겼다고 하여 마령재라고 하였다고 하며 도로 한쪽에는 어제 내려온 방향으로 마령재 버스 정류장과 그 옆 도로가에는 수준점 표지판 그리고 남실마을 입구 표시석이 서 있다.

 

합천읍에서 24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올라온 방향에서 좌측으로 장계리와 합천읍 방향이 직진 방향으로는 거창과 함양 방향으로 가는 24번 포장도로 표지판이 서 있는 바로 우측 잡풀이 우거진 시멘트 옹벽으로 오르니 생각보다 풀섶에 맺혀있는 물방울들이 많아 오르자 마자 등산화와 등산바지가 흥건히 젖어 들기 시작한다.

짧은 절개지를 타고 절개지 중앙으로 오르니 사람들 다닌 흔적이 희미해 잡목과 가시나무들이 웃자라 진행에 어렵고 잠시 중앙으로 이동하다 등로 좌측으로 내려다 보니 어제 내려온 산행 날머리와 버스정류장 그리고 오늘 아침 방금 전 올라 온 마령재 삼거리도로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그렇게 마령재를 뒤돌아 보고 오르니 금새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묘지 한기가 보이고 그 묘지를 지나 오르니 잡ㅁ녹이 우거진 희미한 등로를 지나 잡풀들이 우거진 묯기의 묘지들과 멋진 소나무들이 서 있는 등로가 나타난다.

그 묘지지대를 지나 오르니 이슬로 인해 등산화가 완전히 젖어 오기에 이제부터 스틱으로 물방울을 털며 진행하니 산행속도가 다시 늦어지고 있다.

그 묘지지대를 지나니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따라 잠시 오르니 등로는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함께 걸어 왔던 비포장 임도는 직진 방향으로 올려 보낸다.

 

좌측 소나무 옆 희미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넓은 헬기장이 나타나는데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는 준.희님이 걸어 놓은 426.6봉이란 이정판이 있다는데 찾는데 실패하고 다시 헬기장을 지나 오른다.

다시 짧게 오르니 소나무에 준.희님이 걸어 놓은 438봉이란 안내판이 반겨주고 그곳에서 잠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438봉 안내판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으로 진행하니 소나무와 잡목이 어우러진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바위 암릉지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바위 암릉지대를 지나 오르다 보니 등로 좌측 소나무 가지 아래로 멋진 운해와 지난 구간 걸었던 두무산과 오도산 자락이 희미하게 다가오며 아름다운 산그리메를 보여주고 있다.

잠시 그 풍경을 살펴본 후 운해에 잠겨있는 마을을 살펴보니 바로 묘산면의 관기리이기에 관기리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본다.

관기리는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에 있는 마을로서 화성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나온 산줄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산간 마을이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는 지형이며 대부분의 지대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관기, 대밭마, 심묘주막 마을 등이 있다.

관기 마을은 관터라고도 불리며 관청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대밭마 마을은 대밭이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으며 심묘주막 마을은 주막이 있었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다.

 

등로 좌측의 관기리와 저 멀리 어제 걸어 넘었던 오도산과 두무산을 살펴본 후 조금 더 우측인 북쪽으로 두무산 우측을 살펴보니 보여야 할 해인사쪽 산군들과 그 뒤 저 멀리 수도지맥 마루금과 가야산은 하얀 운해속에 묻혀 보여주질 않는다.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지만 그래도 이 산객이 제일 좋아하는 운해가 묘산면의 마을에 내려 앉아 있는 풍경은 새로운 추억으로 가슴속에 남겨지는 시간이기에 조금 더 그곳에 머물며 즐겨보는 순간이지만 역시나 오늘도 이 새벽부터 찜통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에 조금은 힘든 산행은 아닐까 걱정도 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그곳 소나무 옆 전망대에서 어제 걸었던 오도산과 두무산 자락을 살펴본 후 다시 정상 등로로 올라 와 바위 암릉구간을 타고 오르니 이제는 등로 우측 뒤 저 멀리 합천읍쪽 마을에도 하얀 운해가 내려 앉아 아름다운 산하를 이루고 있다.

그렇게 주위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며 암릉을 따라 오르니 거대한 바위 하나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450봉에 도착을 하고 잠시 흐르는 땀방울을 닦은 후 뚜렷한 직진 등로를 따르니 또 다시 나타나는 암릉 지대를 좌측 등로로 우회해 진행하다 보니 이상해 등로를 확인하니 알바중이다.

다시 450봉 바위로 올라 와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등로는 진행 방향으로 좌측 잡목이 우거진 방향으로 나 있다.

 

진행 방향으로 좌측 잡목이 우거진 곳에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있는데 나뭇잎이 자라면서 보이지 않아 짧게 직진 방향으로 진행하다 뒤돌아 올라 와 어렵게 이곳 정상 방향의 마루금을 찾으니 다시 긴장이 풀리며 물 한모금 마셔본다.

이제 그 잡목 등로를 헤치고 잠시 진행을 하니 키 큰 소너무와 그 아래로 키 작은 잡목과 관목이 자라는 등로로 이어져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 본다.

하지만 생각보다 등로가 희미해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나즈막한 언덕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와 잡목 구간을 타고 어렵게 등로를 찾아 진행을 하니 잡목이 사라지더니 등로는 자꾸만 좌측 사면 등로를 타고 등로 같지 않는 마루금으로 이어지고 있다.

약간은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안부가 나타나는데 벌써 굵은 땀방울이 빗물처럼 흘러 온몸이 완전히 젖어 오고 있지만 바람 한점 없는 등로에는 날파리가 귀찮게 주위를 맴돌며 신경을 거스리고 있다.

 

안부를 지나 좌측 능선방향으로 어렵게 희미한 등로를 찾아 오르니 묘지 한기가 보이고 그 옆 사라진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드디어 정상 등로와 만나는데 이곳 정상 등로 역시 희미한 발자국이 보일 뿐이다.

낙엽송과 소나무 그리고 잡목들이 우거진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갑자기 가시달린 잡풀지대가 나타나고 참으로 어렵게 그 가시 달린 잡풀 등로를 넘으니 온 몸이 따깝게 가시에 굵힌 자국들이 선명하다.

긴 바지에 긴 등산복을 입고 진행을 하지만 우거진 가시 넝쿨을 통과하면서 어쩔 수 없이 온 몸에 생채기가 다시 생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독한 잡목 가시넝쿨 지대를 어렵게 넘어 진행을 하니 나즈막한 잡목 안부를 지나고 잠시 후 등로 옆에서 잔나비걸상 버섯이라 생각되는 한무리의 버섯 군락지를 만난다.

하지만 살펴보니 병이 들어 있는 형태처럼 보여 채취하지는 못하고 사진만 담고 출발을 하는데 이곳은 잔나비걸상 버섯의 군락지인지 진행하는 동안 상당히 많은 버섯들을 만난다.

잔나비걸상 버섯은 활엽수의 살아 있는 나무 또는 죽은 나무에 연중 무리지어 나는 다년생 목재부후균으로 버섯갓의 너비는 10에서 50cm이며 그 이상인 것도 있으며 버섯갓은 반원형에 버섯갓의 높이는 30에서 40cm이고 전체적으로 원추 모양을 띤다.

표면은 각피로 덮여 있고 회백색이나 회갈색이며 매끈하고 살은 두께가 1에서 5cm이고 어두운 자주색이고 코르크질이다.
버섯갓의 아랫부분은 흰색이나 누런 흰색이며 만지면 갈색으로 변화하는데 관공은 다층구조를 가지며 각 층의 두께는 1cm 내외이다.

한국에서는 변산반도국립공원, 오대산, 지리산, 백두산 등지에 자생하며 전세계적으로 고루 분포하는데 식용버섯으로 상황버섯과 구름버섯 등과 함께 높은 항암 효과가 있는 버섯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 버섯에서 추출한 항암성분이 제품화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버섯 지대를 지나니 잡목이 줄어들고 홀엽수 지대가 나타나더니 곧이어 소나무 군락지로 변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도 불이 났었는지 소나무 밑둥에는 모두 검게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다.

약간의 바위들이 보이더니 조금 더 걸어가니 이제 제법 아름다운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 조금은 여유롭게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걸어가니 다시 몇개의 큰 바위가 등로에 산재되어 있고 그곳을 지나니 다시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다시 나타난다.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다시 몇개의 바위가 등로를 가로막고 가지치기가 되어 있는 나뭇가지들이 말라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내려가니 묘산면 관기리와 합천읍 외곡리를 잇는 희미한 안부 고개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최근에는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보이지 않고 낙엽만 수북히 쌓여 있고 잡목만 무성히 자라고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통과한.

안부를 지나 다시 무명봉에 오르고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다 보니 큰 바위를 지나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만나 걸어 본다.

 

다시 큰 고도 차이가 없는 잡목과 소나무가 공존하는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갑자기 등로 우측으로 벌목지대가 나타나는데 그 벌목된 경계를 따라 걸어가며 살펴보니 호두나무가 식재되어 있는 등로이다.

그 등로를 타고 걸어가다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아직도 낮은 지역에는 하얀 운해가 깔려있고 그곳 주위로 올망졸망한 산봉우리들이 고개만 내밀고 서 있다.

내곡리 마을을 따라 저 멀리 뒤로 합천읍쪽 마을로 이어지는 산하도 온통 하얀 운무와 올망졸망한 산군들이 눈길을 잡고 있다.

 

앞으로 이어지는 벌목 구간을 따라 걸어가니 다시 풀섶에 내려 앉은 물방울들이 비산하며 온몸을 적시고 완만하게 오르니 저 멀리 파란 물통지나 등로는 다시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능선으로 들어가기 전 물통 옆에서 등로 우측 앞을 살펴보니 이제부터 토곡산 지나 올라야 할 수도지맥의 만대산과 노태산이 올려다 보이는데 오늘 결국 저 마루금을 타고 걸어가지 못하고 좌측의 녹대산으로 대형 알바를 하면서 다음 구간으로 남겨두게 되었다.

조금 더 신중하게 확인하며 진행을 했어야 하는데 기온이 오르고 뜨거운 태양열이 내리쬐는 악조건 속에 트랙까지 잘못 받아 와 결국 아쉬운 산행 시간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한동안 머물며 잠시 더 주위 풍경을 살펴 본다.

그렇게 올라 파란 물통을 지나 뒤돌아 보니 저 멀리 합천읍쪽 마을이 아직도 하얀 운해속에 묻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살핀 후 이제 뜨거운 태양열을 피해 잡풀이 우거진 능선으로 천천리 걸어 진행을 한다.

합천읍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는 내곡리는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에 있는 마을로서 합천읍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지대가 높은 논이 있는 농촌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내곡과 소사가 있는데 내곡은 약 600여년 전 고려말엽에 합천이씨 10세손인 원경공이 처음 이주하여 마을을 이룬 후 지금까지 거의 합천이씨 단일성씨가 살고 있으며 마을 내에는 지방문화재 자료 제128호인 청금정과 충현사가 있다.

소사는 들목마을과 본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들목의 창건 유래는 알 수 없으나 그 위치가 내곡과 외곡주민들이 외지로 출입하는 길목이라 주변 마을과 거의 같은 연대에 주막 형식의 거주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본 마을은 약 500여년 전인 이중 중엽 성산이씨 16세손이 처음 이주하여 마을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마을 아래쪽 입구 교량 옆에는 수백년된 정자 나무 한 그루가 있어 여름철이면 온 동민들이 땀을 식히며 쉴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하고 있고 그 옆에는 조산(돌무덤)이 있는데 이곳은 매년 동지달 초이튿날 마을 당산제를 지내는 곳이다.


물통을 지나 잡목과 잡풀이 우거진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등로에는 가끔 제법 많은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고 곧이어 거대한 바위가 나타나는데 그 바위 사이에도 제법 굵은 소나무들이 자라며 끈질긴 생명력을 알리고 있다.

이곳은 누군가가 등로를 정리했는지 소나무 가지들을 정리한 흔적들이 보이지만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금새 잡목들이 우거지고 있는 듯 보인다.

 

그곳을 지나 무명봉을 넘으니 완만하게 내려가고 그 등로에는 등로 우측으로 멋진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다시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고 제법 멋진 소나무와 바위지대를 지나 오르니 등로는 계속 완만하게 오르도록 되어 있는데 오르다 가끔 내려가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게 된다.

이곳도 특별한 안부가 아닌 오르막 등로에 있는 안부이기에 잠시 배낭 내려 쉬면서 물 한모금 마셔 본다.

 

그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이제 등로에는 더욱 굵은 소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다시 밋밋한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살펴보니 등로 좌측으로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602봉 전망대로 갈 수 있는 삼거리인데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는 602봉 갈림 삼거리로 되어 있는 곳이다.

평범한 능선 위에 있는 갈림 삼거리로서 좌측으로 가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602봉이 나오고 우측 직진으로 가면 토곡산으로 가는 수도지맥 마루금인데 잡목도 우거져 있고 날씨가 무더워 602봉은 들리는 것을 포기하고 잠시 물 한 모금 마시며 쉰 후 토곡산으로 출발한다.

멋진 소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가끔 나타나는 작은 바위들은 장난감처럼 눈요기를 시켜주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등로에는 거대한 소나무들이 반겨준다.

하지만 이곳에서부터 기온이 오르고 지열도 올라오면서 최악의 산행 조건을 만들기 시작해 진행하는 시간보다 쉬었다 가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만 간다.

 

다시 소나무와 바위들이 적당히 산재되어 있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에 작은 바위들이 박혀있는 봉우리에 오르는데 정상에는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고 박달나무 가지에 토곡산이라 적혀 있는 나뭇판이 걸려 있는 토곡산 정상이다.

특별한 정상석 하나 없이 간단한 나뭇판 위에 적어 놓은 정상 표시가 전부인 토곡산 정상은 잡목들로 인해 조망도 없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한다.

토곡산((644)은 경남 합천군 합천읍과 묘산면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몇 개의 바위가 산재되어 있는데 제대로 된 정상석 하나 없이 나무판에 토곡산이란 이정판만 하나 나뭇가지에 달려있다.
토곡산이란 이름은 가야문화의 영향으로 산의 계곡 등에서 그릇을 만들었던 곳으로 옹기 터가 많다는 의미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지는 산이다.

 

토곡산 정상을 지나 평이하게 걸어가니 큰 바위가 등로에 박혀있고 그곳으로 올라 잠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쉬어가는데 이 때까지만 해도 우측 드높게 보이는 만대산이 아닌 좌측의 보이지 않는 녹대산으로 내려가며 대형 알바를 해 중도에 포기하고 귀가 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진행 방향으로 녹대산 갈림봉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매화재와 드높은 만대산이 올려다 보이고 직진 방향으로는 녹대산으로 이어지는 570.1봉이 아름답게 보인다.

 

잘못된 트랙을 다운받아 온줄도 모르고 이제부터 진행 방향을 트랙과 비교하며 살펴보니 수도지맥 마루금이라 착각을 한 직진 방향의 녹대산 갈림봉 지나 570.1봉이 우뚝하고 그 좌측 저 멀리 509.9봉이 완만한 능선을 이루며 보인다.

혹시나 하고 그 509.9봉 넘어 있어야 할 녹대산을 찾아 보지만 해발고도가 낮다보니 509.9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막혀 아직은 보여주질 못하고 있다.

참으로 한심하고 어이없는 대형 알바를 할 줄이야 아직까지도 꿈에도 생각을 못하고 있다.

 

그 509.9봉 좌측으로는 박무속에 고요히 내려다 보이는 거산리 마을이 아름답다

거산리는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에 있는 마을로서 토곡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산간 마을이다.

비교적 높은 고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는 지형으로 자연마을로는 거산, 거산 양지, 거산 음지 마을 등이 있다.

가산 마을은 큰 산 밑에 위치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거산 양지 마을은 거산 양지쪽에 위치한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으며 거산 음지 마을은 거산 음지쪽에 자리한다 하여 불리워진 이름이다.

이제부터 저 거산마을이 보이면 알바인데 그 거산마을을 따라 진행을 하였으니 이렇게 한심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 녹대산 가는 등로 좌측의 거산리를 살펴보고 잠시 물 한모금 마신 후 다시 천천히 살펴보니 그 거산리 좌측 나즈막한 봉우리 하나 넘어 묘산면 마을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안개인지 구름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어제 넘어 온 두무산과 오도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은 합천군의 북서부에 있는 면으로 전체적으로는 남서쪽이 높고 북동쪽이 낮은 지세이다.

그래서 묘산천이 산지에서 발원한 계류들을 받아들이고 북동쪽으로 흘러 야로면으로 들어가며 거창과 고령을 연결하는 국도로 하천의 방향과 나란히 남서에서 북동 방향으로 놓여 있다.

특히 북쪽에는 두무산(1036봉)과 오도산(1120봉) 등이 솟아 있어 험준한 산지를 이루어 골이 깊고 농경지는 매우 소규모로 분포하는데 조선시대에는 거을산면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큰 산이 많은데서 붙여진 지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1914년 거을산면에 심묘면, 현내면 2개 동리, 산어면 1개 동리가 합쳐져 묘산면이 되었고 심묘면과 거을산면에서 한 글자씩 빌어 조합한 것이다.
현재 면소재지인 산제리를 포함하여 11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고 지리적 위치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산제리오도산 밑, 광산리는 화성산, 가산리토곡산 밑, 팔심리상투재 밑이라는 지리적 위치에서 각각 유래하였고 관기리는 심묘면의 관 터에서, 도옥리옛 질그릇 굽던 터에 기초하고 있다.

다음에 다시 올라 와 살펴 볼 땐 조금 더 상세한 내용을 알고 살펴 볼 수 있어 특별한 의미가 있을 듯 하다.

 

그렇게 한동안 그 전방바위에서 주위 조망을 살펴 본 후 잡목 가지 사이로 보이는 녹대산 가는 등로를 마지막으로 확인 후 천천히 그 전망바위를 내려 와 걸어 본다.

계속 이어지는 바위 암릉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한동안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트랙과 산행지도를 살펴 보지만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 안부이다.

 

무명봉을 지나 다시 무명 안부를 넘으니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다시 바위 암릉 등로가 나타난다.

그 바위를 지나 걸어가니 무명 안부가 나타나고 이곳도 살펴보니 무명 안부로서 특별한 볼거리도 없다.

그곳을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에도 좌측에도 많은 띠지들이 달려있다.

 

그곳 무명 갈림 삼거리에서 지도를 꺼내 확실한 방향과 등로를 확인했어야 되는데 그저 트랙만 살펴보니 우측 매화재 방향으로 잠시 들렸다 다시 이곳 갈림 삼거리로 뒤돌아 와 녹대산 방향으로 진행을 하였기에 아무 의심없이 그 트랙만 믿고 트랙을 따라 보기로 한다.

그것이 대형 알바를 하는 계기가 되어 결국 산주리 노인회관까지 내려가서야 우측 수도지맥 마루금을 올려다 보며 대단히 잘못 되었음을 깨닭지만 이미 늦어 버리고 너무나 무더운 날씨에 체력적인 문제까지 있어 결국 포기하고 녹대산 갈림길까지만 진행하는 안타까운 시간이 되었다.

 

수도지맥 정상 마루금을 잃고 좌측 녹대산 방향의 능선을 따라 걸어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무명봉과 안부를 교대로 넘는다.

특별한 어려움 없이 약간의 잡목이 우거진 능선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이제 다시 아름다운 소나무 군락지가 보이기 시작하고 한동안 그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정상에 웅덩이 하나가 보이는 570.1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물 한몸금 마셔 본다.

 

그 웅덩이가 있는 570.1봉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또 다른 웅덩이가 있는 무명봉을 넘고 약간의 바위가 산재해 있는 평이한 등로를 따른다.

다시 잡목이 나타나고 그 잡목 구간을 지나니 소나무 몇그루가 아름답게 서 있고 그 중앙에는 웅덩이가 파여있는 509.9봉에 도착을 한다.

아직까지도 알바를 하고 있는줄도 모르고 룰루랄라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즐겨보는 시간이지만 산주리로 내려가서는 얼마나 허탈하던지...

 

509.9봉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잡목이 우거지기 시작하고 다른 형태의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난다.

약간의 바위가 산재되어 있는 무명봉을 지나 큰 바위를 넘으니 다시 멋진 소나무들이 빼곡히 숲을 이루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무명봉에 올라 선답자들의 띠지를 확인하곤 여전히 정상적인 등로를 타고 걸어간다고 굳게 믿고 있다.

완만하게 내려가니 무명 묘지 한기를 지나 가지가 2개인 소나무가 있는 능선을 걸어 본다.

 

그곳을 지나 다시 무묭묘지를 지나는데 이장된 듯한 묘지이다.

그곳을 지나 다시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헤치며 걷다보니 갑자기 얼굴이 따끔하고 찌릿한 느낌이 오고 처음에는 잡목가지오 맞기만 한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가시나무에 굵혀 얼굴에 큰 생채기를 만들고 말았다.

그 상처를 아물게 하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지만 다행이도 큰 흔적없이 치료를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무명 묘지 한기를 통과하니 다시 나즈막한 안부를 지난다.

 

그 안부를 지나니 또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안부를 만나는데 예전에는 제법 많은 민초들이 넘었을 것 같은 안부이지만 이제는 이렇게 산행을 위해 오르는 산객들에게 알려지는 사라지는 안부의 고갯마루가 되어가는 듯 보인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에 지독하게 엉켜있는 칡넝쿨이 등로를 완전히 가로막고 있어 참으로 난감하기만 하다.

수많은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오랜시간동안 그 칡넝쿨 지대를 통과해 능선으로 오르니 강렬한 햇빛을 막아주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다는 생각이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방금 전 어렵게 올랐다 내려 온 509.9봉이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다시 잡목과 아름다운 소나무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녹대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정상석은 없지만 이정표와 삼각점이 반겨주는 녹대산 정상인데 이곳에 도착을 하면서도 아직 알바를 하고 있다고 믿지를 못하고 있으니 그것이 큰 문제였다.

녹대산은 경상북도 고령군의 쌍림면 산주리와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및 묘산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녹대산의 남쪽에는 만대산이 위치하고 만대산과 녹대산 사이에는 매화재가 있으며 매화재는 과거에 군의 쌍림면 산주리와 신촌리 지역 사람들이 합천을 오가는 교통로로 이용되었으나 현재는 등산로로만 이용되고 있다.

녹대산의 남동쪽으로는 노태산이 연결되어 있는데 노태산에서 만대산과 녹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이고 안림천의 남쪽 분수계 역할을 한다.

녹대산의 동쪽 기슭에는 묘성암이 자리 잡고 있으나 조선시대 지리지와 지도에는 녹대산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옛날에 숲이 많이 우거져 있어 녹대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녹대산 정상에서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쉬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본다.

조만간 지릿재에 도착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기에 조금 더 힘을 내보자 다짐하며 출발하는 녹대산 정상이다.

이제 고도가 낮아지며 조금씩 더 많은 날파리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그 날파리들로 인해 사진 한장 남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다시 한동안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무너져 가는 무명 묘지 2기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또 다시 몇기의 무명 묘지지대를 지나 완만하게 내려간다.

 

조금은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 앞으로 빼곡하게 등로를 가로 막고 있는 산죽지대가 나타난다.

그래도 그 산죽지대를 많은 등산객들이 다녔는지 제법 멋진 등로가 열려 있어 어렵지 않게 그 등로를 따라 산죽지대를 통과한다.

산죽지대를 내려가니 많은 묘지들이 보이고 그 아래에는 이제 마을의 민가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조만간 지릿재로 내려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힘을 내 본다.

 

하지만 나무 그늘 하나 없는 퇴양볕에 잡풀을 헤치고 내려가는 시간은 참으로 고통스런 시간이다.

뜨거운 태양열과 지열이 올라오는 잡풀을 헤치고 내려가니 이 산객의 친척뻘이 되는 광산김공 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 우측 저 멀리 실제 수도지맥 마루금의 만대산과 노태산이 올려다 보이는데 이제서야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게 된다.

 

어렵게 잡풀을 헤치고 묘지를 지나 다랭이 밭을 내려가니 마을로 통하는 시멘트 포장도로 위로 내려서고 그곳 나무 그늘에서 잠시 배낭 내려 쉬면서 정확한 위치와 등로 그리고 실질적인 마루금을 확인해 본다.

그리고는 이곳은 탈출로로 이용되는 산주리 마을이고 정상 수도지맥 마루금은 이 산주리 마을 우측을 크게 돌아 병풍처럼 둘러치고 내려가는 산줄기이다.

혹시나 하고 그 수도지맥 산줄기를 따라 만대산 갈림 삼거리로 올라갈까 잠시 고민해 보지만 무더위와 체력적인 문제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배낭 정리하고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마을로 내려간다.

 

잠시 더 내려가다 너무나 아쉬워 지나온 등로와 좌측으로 흐르는 수도지맥의 만대산과 노태산 줄기를 올려다 보니 안타까움과 아쉬움만 가득 남겨진다.

남아 있는 구간을 살펴보니 하루에 걷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을듯 한데 두구간으로 나눠 진행하기엔 조금 짧아 아쉽다는 애매 모호한 거리이다.

이제 좋은 계절에 내려 와 한번에 걷는 것을 목표로 진행을 해 보지만 걷다가 어려울 것 같으며 두 구간으로 나눠 진행하기로 한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에 산주리노인회관 건물이 보이고 그 마당 옆 느티나무 그늘에서 배낭 내려 정리하고 노인회관에서 쉬고 있는 할머니들에게 택시를 어떻게 부르느냐고 문의를 해 보지만 잘 모르시는 것 같아 인터넷을 찾아 야로면의 택시를 어렵게 부른다.

택시를 부른 후 산주리노인회관 옆에 설치된 수돗가로 가 세수하고 옷가지를 정리하는데 얼굴이 상당히 따끔거려 살펴보니 좌측 뺨에 큰 상처가 나 있어 마치 칼을 맞은듯 보기 안타깝다.

산주리는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로서 만대산(688봉) 밑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므로 산골(일명 산곡) 또는 산주라 하였다.

고령군에 있는 대부분의 마을 이름이 동과 리로 되어 있는데 산주만은 고을 주자를 썼는데 그 이유는 옛날 적화현이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중심이었을 때 신라와 백제가 전쟁을 하면서 잠시 이곳으로 적화현을 옮겼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라고 여겨진다.

마을의 형성 및 변천은 조선 말기 고령군 상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석사동과 부례동을 병합하여 산주동이라 하고 쌍동면에 편입하였다가 1930년 쌍동면과 임천면을 병합하여 쌍림면에 편입함에 따라 쌍림면 산주동이 되었고 1988년 5월 1일 쌍림면 산주리가 되었다.

자연환경은 만대산이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산골 동쪽과 서쪽으로 방갓과 상봉이 솟아 있고 남쪽에 버드나무징이들이 있다.

객기마 앞에는 객기마들이 펼쳐져 있으며 산골 위쪽의 옛 규월사 남서쪽에 있는 매화현을 넘으면 경상남도 합천군이다.

문화 유적으로 산주리 고인돌, 산주리 불당고인돌, 산주리 고분군 등이 있고 마을 보호수로 수령 500년가량 된 산주리 은행나무가 있다.

산골 위쪽에 규월사가 있었으나 없어졌고 지금은 보상사가 새로 들어섰다.

산주리는 2005년에 녹색 농촌 체험 마을로 지정되었으며 2006년 9월부터 대구은행 고령지점과 자매결연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쉬고 있으니 콜 한 택시가 도착을 하고 그 택시를 타고 산행 들머리인 마령재로 가 애마를 회수한 후 주위 온천지대로 이동해 샤워 후 조금은 이른 시간에 서울로 복귀를 한다.

처갓집 식구들과 자녁을 먹고 이슬이 한잔 나누고 피곤해 일찍 잠자리에 들어 무더위도 잊은채 꿀잠을 자고 다음을 기약해 본다.

 

읽어 부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