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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비슬지맥(낙동·완)

비슬지맥 마지막 제6구간 덕곡리고개(골안마을고개)에서 외산교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5.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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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남도 밀양시의 비슬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5년 05월 09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맑았지만 약간의 박무로 시야가 제한되었고 기온이 올라 무척 무더웠던 산행 날씨

산행온도 영상 13도에서 영상 28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골안마을고개(덕곡리마을고개)-비포장 임도-능선진입-무명묘지봉-317.2봉(오례봉)-310봉(함몰된 봉우리)-316봉-일출-마흘리

                고개(날뒤고개, 1080번 2차선 지방도로)-비포장 임도-이정표(우령산 3.3 Km와 종남산 5.8 Km 및 덕대산 9.2 Km)-189봉(서기관 충주석공

                묘지)-70번과 29번 송전탑-이정표(마흘리고개 1.7 Km, 우령산 1.3 Km, 백안지 1.7 Km)-우령산(596봉) 정상석과 이정표(마흘리

                고개 3.0 Km, 종남산 2.3 Km, 신생마을 4.6 Km)-나무전망데크-나무계단-복호암-나무계단-483봉 이정판-안부-방동고개 이정표(마흘리

                고개 4.5 Km, 종남산 0.93 Km, 꽃새미마을 2.0 Km)-약수터 갈림 삼거리-나무계단-종남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마흘리고개 5.4 Km와

                우령산 2.2 Km 및 샘물터 0.15 Km, 종남산정상 0.23 Km, 헬기장 0.325 Km와 팔봉산 5.9 Km 및 관음사 2.81 Km)-나무계단-

                종남산(663.5봉)과 남산봉수대-종남산 갈림 삼거리 복귀-나무계단-송전탑부근 이정표(종남산 0.43 Km, 성남보건지소 3.45 Km와

                노고실마을 4.03 Km, 성남보건지소 3.84 Km와 노고실마을 4.43 Km)-능선삼각지 이정판(헬기장 100미터와 종남산정상 봉수대 400미터)-

                575봉 헬기장 이정표(종남산 0.58 Km, 필봉산 5.45 Km, 상남보건지소 2.7 Km)-시멘트 포장도로-이정표(종남산과 헬기장, 대동아파트,

                남산연금, 우곡마을)-전주이공묘지-363봉 전망바위-이정표(꿍꿍이골, 연금마을, 상남면사무소)와 상남면사무소 3 Km 이정판-묘지지대-

                이연고개-267봉-평리고개-유대등(342봉, 송전탑)-340봉-밤나무과수원-도르레 철탑-자갈등로-송전탑-팔봉산(391.4봉, 필봉산, 돌탑)-

                묘지지대-여시태고개(25번 4차선 지방도로, 밀양대로)-동일산업(주)밀양지사와 제5870부대2대대 예비군 훈련장 이정판-대동농기계 간판-

                25번 지방도로 지하통로-조음로-천주교 남밀양성당 남산공소 6 Km와 덕대산 관덕산 이정판-평촌부대앞 버스정류장 삼거리(작원관과

                만어사 및 효심추모관 이정판)-감나무 과수원 철대문-감나무과수원 시멘트포장임도-감나무과수원-155봉(갓봉)-비포장임도-비포장임도

                갈림 삼거리-밭 가장자리-콘테이너 박스-시멘트 포장도로-묵밭-묘지지대-마산고개(비포장 임도)-감나무과수원-146봉(파란물통)-

                묘지지대-배죽고개(1차선 포장도로)-감나무과수원-129봉-묘지2기-214봉-208봉(인산)-비포장임도-감나무과수원-비포장임도-물통과

                건물-철조망봉-붕어등(278.8봉) 삼각점-226봉-감나무과수원-외산 처녀묘등(221봉, 육각정과 운동시설 및 무명묘지)-묘지지대-

                대나무지대-비포장임도-3번 2차선 지방도로-외산교(산행종료)-상남제방-낙동강-비슬지맥 산행종료

산행거리 : 05월 09일(토) 약 23.09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맑고 무더운 날씨에 꾸준히 그러나 조금은 빠르게 KTX 시간에 맞춰 08시간 31 (04시 51부터 13시 22분까지)

교통편 : 무궁화 열차와 KTX 및 택시 이용 (밀양 개인택시부 055-354-4842) 

             갈때-무궁화호 열차 용산역에서 23:00 열차로 밀양행

                     밀양역에서 덕곡리고개(골안마을고개)까지 택시 (9,000.- 원 나왔으나 10,000.-)

                     외산교에서 산행 종료 후 밀양 개인택시부 010-3879-6552번 (19,000.- 원 나왔으나 20,000.-)

             올때-KTX로 밀양역에서 15시 23분 열차

비슬지맥이란???

낙동정맥 사룡산(683봉) 북쪽 400미터 지점에서 분기하여 서진하며 사룡산(683봉), 구룡산(674.8봉), 발백산(674.5봉), 대왕산(607봉), 선의산(756.4봉), 용각산(692.5봉), 상원산(674.1봉), 삼성산(668.4봉)등 600에서 700미터 대의 산들을 들어 올린 후 비슬산(1083.6봉)에 이르러 북쪽으로 청룡지맥을 분기한후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조화봉(1057.7봉), 수봉산(592.5봉), 묘봉산(514봉)을 지나 천왕산(619.2봉)에 이르러 남쪽으로 열왕지맥을 분기한후 동남진하며 호암산(611.2봉), 화악산(930봉), 형제봉(556.7봉), 종남산(663.5봉), 팔봉산(391.4봉), 붕어등(278.8봉)을 지나서 밀양시 상남면 외산리에서 낙동강에 발을 담그며 그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146.5 Km가 되는 산줄기로 최고봉인 비슬산의 이름을 빌려와 비슬지맥이라 칭한다.
비슬지맥은 낙동정맥 및 청룡지맥과 함께 금호강의 남쪽울타리를 분담하고 밀양강의 서쪽 울타리역활을 처음부터 끝까지 맡아와 밀양강을 낙동강에 합수시키고 동쪽 밀양강 건너로는 낙동정맥에서 온 영축지맥의 끝을 바라보고 남쪽 낙동강 건너로는 낙남정맥에서 온 무척지맥의끝을 바라보며 그 끝을 맺는다.
지나가는 산들은 사룡산(683봉), 구룡산(674.8봉), 발백산(674.5봉), 대왕산(607봉), 선의산(756.4봉), 용각산(692.5봉), 상원산(674.1봉), 봉화산(473.5봉), 삼성산(668.4봉), 우미산(-0.7 Km, 747.3봉), 비슬산(1083.6봉), 조화봉(1057.7봉), 수봉산(592.5봉), 묘봉산(514봉), 천왕산(619.2봉), 배바위산(607.1봉), 호암산(-0.7 Km, 611.2봉), 화악산(930봉), 형제봉(556.7봉), 종남산(663.5봉), 팔봉산(391.4봉), 붕어등(278.8봉)을 지난다. 

지나는 행정구역은 사룡산에서 건천읍, 영천시, 청도군경계에서 시작하여 구룡산에 와선 건천읍과 영천시와는 작별하고 경산시와 청도군경계를 한동안 따르다가 상원산 근방에 와서 대구광역시와 경북도경계를 만나서부터는 도경계를  따라 비슬산, 조화봉, 수봉산, 천왕봉, 화악산까지 간다.

화악산을 지나서야 그동안 처음부터 계속돼온 청도군경계를 벗어나 밀양땅으로 들어선다.
비슬지맥 전체 146.5 Km중 청도군경계를 109미터쯤 지난다.
 

비슬지맥에서 분기하는 지맥은 비슬산에서 북진하는 청룡지맥(약 37 Km)과 천왕산에서 남진하는 열왕지맥(약30.4 Km)이 있다.

 

 

무탈하게 비슬지맥 완주를 자축하며 또 새로운 마루금 산행을 생각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주말을 맞이하여 남아 있는 비슬지맥 마지막 구간 산행을 위해 야간 열차에 몸을 실는다.

영등포역에서 밤 11시에 출발하는 무궁화 열차에 몸을 실고 출발을 하는데 심야 버스와 달리 불이 훤하게 켜져 있고 정차역마다 방송을 하기에 제대로 된 잠을 청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밀양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잠이 들어 내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에 더욱 깊은 잠을 자기가 어려운 상황이기에 알림을 맞춰 놓고 두어시간 자는둥 마는둥 누웠다가 일어나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렇게 내려가 새벽 3시 10여분 드디어 목적지인 밀양역에 도착을 하고 황량한 밀양역 앞으로 나오니 24시 편의점 두군데만 불이 훤하고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문을 연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다.

30여분 돌아 다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24시 편의점으로 들어가 햇반과 컵라면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햇반 하나와 김치 그리고 호떡을 사 배낭에 넣고 밀양역 부근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에 올라 보덕사 지난 골안마을 즉 덕곡리 고개 위 시멘트 포장도로에 내리니 새벽 4시 50여분이 다가오고 있다.

택시를 보내고 산행 준비 후 마음속으로 비슬지맥 마지막 구간도 아무 사고 없이 무탈한 산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며 산신령에게 빌어 보고 어둠속에 묻혀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멋진 산행을 시작해 본다.

 

무더운 기온과 강렬한 태양으로 인해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게 외산교에 도착한 후 예약한 택시를 기다리며 배낭을 정리하고 사진 몇장 남긴 후 도착한 택시에 올라 오우진나루로 가지만 막혀있는 방조제로 인해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그 방조제 위에서 낙동강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원래 오우진나루터로 가 밀양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곳에서 산행을 마무리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에 대부분 외산교에서 산행을 마무리해도 별 이상이 없지만 그래도 잠시 더 시간을 할애해 오우진나루에 가 마지막 사진을 남기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무탈하게 비슬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이렇게나마 추억을 남길 수 있음에 감사하며 또 다른 마루금 걷기를 생각했던 시간으로 남겨 본다.

 

토요일 밤에 대전 처갓집에 일이 있어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금요일 일을 마치고 퇴근해 산행 준비 후 늦은 무군화 열차로 밀양역으로 내려간다.

개인적으로 잠자기가 너무 어렵고 불편해 열차를 별로 선호하지 않지만 이번만큼은 밀양으로 내려가는 버스가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역시나 예상대로 제대로 된 수면도 없이 장거리 산행을 하려니 컨디션은 별로이다.

새벽 4시가 넘어 밀양역에 있는 택시로 보덕사로 가니 지난주 진행했던 도로 포장공사는 말끔히 종료되었고 택시 통행에도 큰 지장이 없어 덕곡리고개 일명 골안마을고개까지 무탈하게 잘 도착을 하였다.

연세 드신 택시 기사님에게 감사한 인사를 건네고 조금 남은 거스름돈을 드린 후 산행 준비하여 비포장 임도를 타고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정확히 새벽 4시 50여분을 지나고 있다.

 

오늘은 밀양역에서 대전역 가는 오후 4시 KTX 열차를 예매한 상황이기에 조금은 빠르게 산행을 진행하면서 시간적인 압박을 받지 않토록 산행 초반부터 노력해 보는 시간이다.

한동안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는 이제 넓은 비포장 임도를 좌측으로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비포장 임도보다 더욱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이어진다.

간벌된 지역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무명묘지 한기가 있는 268봉에 올라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본다.

여전히 어둠이 깔려있는 등로이지만 벌써 여몀이 밝아 오며 주위 사물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묘지가 있는 268봉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는데 등로는 완전히 소나무 군락지로 채워져 있고 이제 헤드렌턴 불빛의 도움 없이도 진행에 큰 어려움이 없을 전도이다.

다시 완만하게 계속 오르니 등로에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바위지대를 지나자 마자 317.2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박건석님이 오례봉이라 적어 놨다.

 

그 317.2봉을 지나 다시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다시 잠시 오르막 등로로 올라 함몰된 310봉을 지나 다시 한동안 이어지는 소나무 군락지를 통해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간벌된 나무들이 섞어가는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갑자기 직진의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사면 등로로 이어지고 그 사면 등로를 따라 가파르게 내려가 본다.

한동안 내려가니 다시 등로가 우측으로 크게 꺽이는 갈림 삼거리에서 좌측 능선 방향으로 잠깐 들어가니 밀양시 지난 운문지맥 산줄기 위로 하루 해가 떠오르고 있다.

 

일출을 구경한 후 우측으로 크게 꺽여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1080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마흘리고개에 도착을 한다.

도로 우측으로는 부곡온천가는 표지판이 보이고 도로 건너 좌측으로 조금 걸어 올라 고갯마루쪽으로 가니 무안면에서 헤어지는 이정석이 서 있다.

고갯마루 지나 밀양 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따라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게 되어 있다.

이곳 마흘리고개는 날뛰고개 또는 날재라고도 불려지는 고개로서 무안군 마흘리와 부북면 제대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이다.

마흘리고개는 마흘리 어은동에서 새각단을 거쳐 부북면 제대리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고려시대에 밀성군이 2군 4현을 관내로 두고 있었는데 수령이 창녕군, 청도군, 풍각현, 영산현 등으로 넘어갈 때 이 고개를 통하여 나갔다고 하여 날재 혹은 출령이라 부르게 되었다.

또한 이 고개는 수령이 다닌 곳이라 하여 옛날부터 서민들이 결혼을 할 때 이 곳을 지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풍습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이 고개의 정점은 무안면과 부북면의 경계지점이 되기도 한다.

아마도 마흘리고개라 불려진 이유는 무안면에 마흘리라는 마을이 있어 그 마을 이름에서 붙여진 연유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마흘리고개에서 비포장 임도를 따라 오르는데 등로 좌측으로 떠 오른 아침 햇살이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 와 다시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천천히 오른다.

오르자 마자 등로 우측에 우령산까지 3.3 Km가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고 사진에 담은 후 오르니 소나무가 나타나고 그곳부터는 비포장 임도가 일반 능선 등로로 변하고 있다.

서기관충주석공 묘지들을 지나 안부를 넘으니 또 다시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곧이어 소나무 군락지가 펼쳐진다.

소나무 등로를 따라 봉우리같지 않은 252봉도 넘는다.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 옆에 70번과 29번이란 두개의 숫자가 적혀있는 송전탑을 지나고 또 다시 나타나는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통해 맥 잇기 산행을 이어 간다.

274봉이라 생각되는 무명봉을 지나 다시 봉우리인지 아닌지 모를 능선을 타고 계속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른다.

조금 더 진행하니 선답자들의 띠지가 등로에 나풀거려 정상적인 등로를 따라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더욱 큰 잡목들과 소나무들이 함께 자라고 있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진행하니 이제 등로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그렇게 조금 더 오르니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등로 우측으로 백안지 도원사 하산 갈림 삼거리로서 우령산까지는 이제 1.3 Km 남아 있는 거리의 이정표이다.

이제 등로는 더욱 거칠게 자라난 잡목들로 인해 산행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풍경들이다.

 

두번째 만나는 이정표를 지나 계속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는 여전히 소나무 군락지로 이어지고 있다.

위로 오를수록 잡목은 줄어들고 소나무가 더욱 멋지게 자라고 있는데 등로도 조금 더 뚜렷하게 나 있다.

그렇게 한동안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오르니 등로에 바위가 나타나고 그 바위를 지나 진행하니 우령산 정상부가 얼마 남지 않은 듯 보인다.

 

바위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이정표가 보이고 곧이어 공터에 정상석이 서 있는 우령산 정상이다.

정상 주위에는 잡목과 소나무가 우거져 조망이 전혀 없고 정상석 하나만이 공터에 박혀 있다.

다만 우령산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곳 우령산 역시 크게 보면 종남산의 일부라 생각했기에 별도의 산으로 구분된 자료는 없는 듯 보인다.

이곳 우령산에서는 우측으로 봉황리 방동마을로 하산 할 수 있는 등로가 보인다.

방동마을이 있는 봉황리는 초동면 안지대에서 보면 마을 주변이 산으로 둘러 쌓여 마치 봉황이 활개를 치는 것 같다고 하여 지명을 붙였다고 전해지는 마을로 방동마을은 와지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서 초동면에서 해발이 제일 높은 곳이다.

교통이 발달되지 아니한 옛날에는 방동고개(일명 방울재)를 넘어서 밀양으로 통행하는 교통의 요충지였으므로 그 당시에는 상당히 번화하였으나 지금은 작은 산골마을로서의 특성을 간직하고 있으며 방동과 부북면 사포리를 잇는 임도가 개설되어 등산로와 드라이브 코스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이제 우령산을 지나 우측의 봉황리 방동마을과 신생마을 하산 등로를 버리고 좌측 종남산 방향으로 출발을 한다.

좌측으로 진행하자 마자 바위 전망대가 나타나고 그곳에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밀양강이 휘돌아 가는 밀양시가 아름답게 다가온다.

밀양강은 총 길이 99 Km로 경주시 산내면 대현리 892 미터 지점 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청도군 운문면과 밀양시 상동면을 지나 밀양군 삼랑진읍 삼랑리와 상남면 외산리 사이에서 낙동강에 흘러드는데 상동면과 내호리 경계부에서는 지류인 청도천이 합류한다.

이 강은 유로에 비하여 유역면적이 넓어 낙동강과의 합류지점에는 너비 4 Km에 이르는 넓은 충적평야(밀양평야)가 발달했rh 수리시설이 잘 되어 있어 쌀 생산량이 많으며 시설채소와 사과, 감, 복숭아 등의 과수재배도 활발하다.

강유역의 중심도시인 밀양시에는 밀양강의 용수를 이용한 섬유와 양조 등의 각종 공업이 발달했다.

저 밀양강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이 비슬지맥을 가르는 강이며 저 밀양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이 비슬지맥 산줄기도 끝이 나기 때문이다.

바위 전망대 바로 앞에는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그곳으로 올라도 같은 멋진 풍경과 조망이 펼쳐져 있다.

밀양을 지나 저 멀리 동쪽으로 보여야 할 낙동정맥과 영남알프스를 이루는 산군들을 살펴 보지만 그곳에서 떠 오른 강렬한 아침 햇살과 박무로 인해 시야가 매우 제한적이라 안타까운 시간이다.

한동안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그 계단 우측으로 솟아 있는 복호암으로 올라 다시 주위 풍경을 즐겨 본다.

왜 복호암일까 궁금해 산행 후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복호암 정상에서 이제부터 가야 할 남동쪽으로 종남산 줄기를 담아 본다.

바로 앞으로 471봉과 483봉을 지나 방동고개를 지나면 한동안 오르막 등로를 타고 종남산으로 이어지는 비슬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종남산 정상을 다녀 온 후 좌측으로 575봉 헬기장으로 이어지는 등로까지 펼쳐져 있어 가슴속에 그 그림을 담고 천천히 복호암을 내려가 본다.

 

복호암을 내려 와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 복호암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우회하니 등로에는 제법 큰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큰 바위들이 보이고 그 바위를 넘어 진행하니 큰 소나무 봉을 지나 다시 거대한 소나무 군락지를 통과한다.

다시 조금 더 걸어가니 큰 소나무 옆에 483봉이란 이정판이 숨어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이제부터 큰 오르내림도 없는 지루한 등로를 타고 한동안 걸어 본다.

 

키 작은 관목과 키가 큰 소나무가 어우러진 지루한 등로를 따라 한동안 무심으로 걸어 본다.

한동안 아무 생각없이 소나무와 잡목 구간을 걷다 보니 저 멀리 안부가 나타나고 그 안부 옆에는 우측으로 꽃새미마을 하산 갈림 이정표도 보인다.

지도를 보니 이곳이 바로 방동고개인듯 보이는데 아마도 우측의 봉황리 방동마을에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이제 종남산정상까지는 채 1 Km도 남지 않았으니 30여분이면 오를 수 있는 거리이다.

 

방동고개를 지나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는 작은 수로 같은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조금 더 가파라지는 등로를 타고 힘들게 오르니 등로 양쪽으로 키 작은 철쭉꽃이 반겨주고 금새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살펴보니 등로 우측으로 약수터가는 길이 표기되어 있는데 오늘은 식수도 충분하고 아직 목마름도 덜하기에 약수터는 생략하고 직진의 오르막 등로를 타고 종남산 방향으로 올라가 본다.

 

약수터가는 갈림 삼ㄴ거리를 지나 가파르게 오르니 등로 양쪽으로 키 큰 철쭉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시기가 조금 늦어 철쭉꽃은 거의 지고 제대로 피어 있는 나무들은 없다.

원래 비슬산 참꽃과 이곳 종남산의 철쭉꽃을 보기 위해 시작한 비슬지맥 산행이었는데 모두 만나지 못하고 다만 용각산의 참꽃만 구경했을 뿐이다.

그렇게 다시 가파르게 오르니 등로 우측 위로 종남산 정상부가 빤히 올려다 보이고 곧이어 나무 계단을 올라 등로 좌측으로 팔봉산 그리고 우측 위로 종남산 가는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비슬지맥 마루금은 좌측 등로를 타고 내려가며 진행이 되지만 우측의 종남산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종남산을 들렸다 내려오기로 한다.

 

팔봉산 갈림 삼거리에서 우측 등로를 타고 오르니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곧이어 저 멀리 돌탑과 119 산불감시초소 그리고 정상석과 남산봉수대가 올려다 보이는 종남산 정상이다.

종남산은 밀양시 중심에 솟아있는 산으로 동쪽으로는 만어산, 북쪽은 화악산, 서쪽으로는 화왕산과 영취산, 남쪽으로는 덕대산이 병풍처럼 자리잡고 있인데 원래 이 산의 이름은 자각산으로 불렸지만 이후 밀양땅 남쪽에 있어 남산으로 불리다가 다시 종남산으로 변했다고 한다.

종남산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인데 종남산 서면 섬마을인 삼무동을 감싸는 밀양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유장한 흐름과 너른 들녘과 영남알프스 산군이 시원하게 펼쳐진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탁월하다.

산행을 시작해 3시간 정도 땀 흘려 오르면 밀양 시가지와 낙동강 들녘이 한눈에 들어오는 능선에 올라서고 여기서 조금 더 오르면 철쭉 군락지인 정상부다.

봄이면 만발하는 어른 키가 훌쩍 넘는 철쭉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는데 산행을 하다 보면 임도와 만나는 곳이 많아 길 찾기가 쉽고 언제든지 하산할 수 있어 초보자들이 등산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우령산(중봉)으로 가는 길은 암릉 구간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지만 암릉을 우회할 수 있다.

종남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참으로 일망무제이다.

사방팔방 막힘 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생각보다 많은 시간 이곳 종남산에서 보내본다.

다만 약간의 박무로 인해 멀리 보고 싶은 산들을 볼 수 없어 조금은 아쉬움이 있었던 시간이었다.

 

종남산 정상석에서 셀카 놀이를 하면서 사진 한장 남기고 그 종남산 정상에 세워져 있는 남산봉수대로 올라가 다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종남산 정상부에 위치한 남산봉수대는 봉화를 올렸던 돈대는 남아 있지 않으나 봉화시설에 사용된 많은 석재와 토기, 자기, 기와 조각들이 많이 흩어져 있으며 토기조각 중에는 삼국시대의 것도 있어 이곳이 일찍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으로 사용되어 온 것으로 생각된다.

산 정상의 아랫쪽에는 봉수대와 관련한 건물터가 있어 조선시대 봉수대 연구에 중요한 학술적 자료이다.

통신시설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엔 아주 중요한 통신 시설로서 그역활이 중요했겠지만 이제는 그저 역사적인 자료로서 받아 들이는 봉수대이다.

 

제일 먼저 남동쪽으로 끊어질듯 이어지는 비슬지맥 마루금을 살펴 본다.

저 멀리 팔봉산 일명 필봉산이 우뚝 솟아 보이고 그 팔봉산 지나 감나무 과수원을 넘으면 다시 마지막 붕어등이 우뚝 솟아 잇고 그 붕어등 넘어 낙동강이 있을 거이지만 그 낙동강은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그 비슬지맥의 마지막 산줄기를 바라 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나머지 마루금도 무탈하게 완주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 보는 시간이다.

 

종남산 북동쪽으로는 저 멀리 우령산에서 부터 계속 등로 좌측으로 조망했던 밀양시와 밀양강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몇 번인가 저 밀양 땅을 지나친 기억이 있는데 늘 어둠속에 밀양역을 지나다 보니 이 아름다운 풍경은 이제서야 만나게 된 것이 괜시리 미안한 생각이 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도심속의 도심이 있는 밀양시와 밀양강이 이국적인 풍경으로 이 산객의 가슴속 깊이 남겨지는 순간이다.

 

종남산 남서쪽으로는 한번쯤 올라보고 싶은 덕대산이 우뚝 솟아 있다.

지도를 보지 않고 주위 조망을 살펴볼 땐 혹시 저곳이 진행 방향이 아닐까 생각 될 정도로 우람하고 멋진 산세를 자랑하는 덕대산이다.

산림청 자료를 찾아 보니 종남산에서 남릉을 따라 4 Km 지점에 종남산과 같은 형태의 산봉이 솟아있는데 이 산이 덕대산으로 산 아래에 있는 초동면에 이 산의 정기를 받아 인물이 많이 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산의 전체적인 형세는 종남산과 더불어 내륙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북릉은 종남산에 중봉을 거쳐 연결되고 동릉은 남산마을 쪽으로 급하게 쏟아지고 있으며 서릉은 무안면 쪽으로 길게 뻗어나가면서 완만한 산세를 펼치고 있지만 산세를 열고 있는 쪽은 남쪽사면으로 초동면을 품고 있다.

다음에 다시 내려 와 올라 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곳 종남산과 연계해 진행하는 산행으로 오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북서쪽으로는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비슬지맥 우령산 지나 저 멀리 화악산 줄기가 아스라히 올려다 보인다.

비슬산도 찾아 보지만 박무로 인해 눈으로는 희미하게 보였지만 카메라속에는 잡히지 않아 더욱 아쉬운 시간이다.

참으로 많이도 걷고 걸어 이제 비슬지맥 산행도 마무리를 한다고 하니 짧은 기간이었지만 아쉬움이 깊게 밀려 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동안 종남산 정상에서 주위 조망과 풍경을 즐긴 후 다시 올랐던 등로를 타고 팔봉산 갈림 삼거리로 뒤돌아 내려 온다.

이제 등로 좌측으로 우령산 가는 등로를 버리고 직진의 팔봉산 방향으로 내려가니 등로 옆에 예쁜 철쭉나무에는 탐스런 철쭉꽃이 피어 있어 눈길을 잡는다.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며 이제부터 진행해야 할 575봉 헬기장을 사진에 담으며 계속 내려가 본다.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 나무 계단을 타고 조금은 가파르게 내려가니 이제 올라야 할 575봉 헬기장이 부드럽게 다가온다.

그렇게 내려가니 계단이 끝이나고 부드러운 등로가 이어지더니 등로 우측으로 성남보건지소가는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이정표 우측 아래에는 능선 삼각지 헬기장 100미터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전판도 보이는데 이정표를 자세히 보니 이곳이 송전탑부근이라 적혀 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헬기장 우회 등로를 따라 잠시 진행하다 후회할 것 같아 다시 삼거리로 뒤돌아 와 직진의 헬기장 방향으로 진행을 해 본다.

 

직진 방향으로 진행해 다시 완만하게 오르막 등로를 따르다 뒤돌아 보니 송화가 피어있는 소나무 가지 위 저 멀리 방금 전 올랐다 내려온 종남산 가는 등로와 그 끝자락의 정상부에 서 있는 정상석과 봉수대가 아련히 올려다 보인다.

다시 그렇게 종남산을 돌아 본 후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금새 파란 잔디가 깔린 드넓은 헬기장에 도착을 한다.

 

공터로 되어 있는 575봉 헬기장에 도착을 하니 헬기장 좌측 끝자락에 이정표가 서 있고 살펴보니 이제 지나온 방향으로 종남산이 그리고 비슬지맥 마루금 방향으로는 팔봉산이 좌측 하산 등로로는 성남보건지소 방향이 표기되어 있다.

다시 그 헬기장을 가로질러 우측 팔봉산 방향으로 돌아가니 헬기장이 끝나는 지점 소나무 가지에 준.희님이 걸어 놓은 헬기장 575봉 이정판이 붙어 있다.

 

팔봉산 방향으로 헬기장을 출발해 진행을 하니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고 다시 나타나는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평화롭게 걸어 본다.

다만 송화가루가 날리면서 지나는 발걸음마다 노란 송화가루가 날리며 온 몸에 노란 물감을 새기듯 다가온다.

그렇게 한동안 평이하게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눈 앞에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곳 도로가에는 부처님 오신날 등불이 걸려있다.

이 근처에 암자인지 절이 있을 것 같아 찾아 보지만 탖지 못하고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가로 질러 건너 다시 능선으로 내려가며 맥 잇기를 이어가 본다.

 

내려가자마자 등로 옆에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진행방향으로 남산연금이라 적혀 있고 우곡마을과 대동아파트 방향 표시도 보인다.

상남면 기산리는 종남산 기슭에 자리잡은 마을인데 오래된 마을이라 하여 고실이라고도 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푹실(우곡)과 고늬실(고로곡)을 합하여 기산리가 되었다.

동으로는 삼랑진읍, 서로는 남산리, 남으로는 연금리, 북으로 예림리와 인접해 있는데 단위 부락으로는 기산, 우곡, 대성동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기산리 우곡(푹실)마을은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본래는 골짜기로 이루어진 터전이었으나 아주 오랜 옛날에 큰비가 내려 산사태가 지는 바람에 골짜기가 온통 메워져 평지와 같이 되었다.

푹실이란 지명은 골짜기에 산이 푹 내려앉아 마을이 이루어 졌다는 데서 생긴 것이고 우곡이란 표기는 큰비로 인하여 동네가 된 골이라는 뜻이다.

조선 광해군 때 윤홍이 이 곳에 터전을 잡아 파평윤씨가 살았고 그 후 숙종 때는 주부 이산수가 청도에서 이 마을로 옮겨 살아 경주이씨의 세거지가 되었는데 그 후손들이 선산 아래 용운재를 지어 선조를 추모하고 있다.이정표를 지나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전주이공 묘지2기가 보이고 우측 주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고즈넉한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난다.

봉우리는 아닌데 지도를 보니 363봉쯤 되는 곳이라 생각되는 곳이다.

 

 

그곳을 지나 잠시 더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조망이 펼쳐지고 잠시 살펴보니 등로 좌측 저 뒤로 밀양시가 멀어지고 그 밀양시 남쪽으로 밀양강이 내려다 보이고 상남면의 비닐하우스가 거대한 공단단지처럼 펼쳐져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모내기 계절이 다가오는 시기이라 아마도 벼 모종을 키우고 있는 비닐하우스가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그 상남면 들녘 넘어 저 멀리 밀양의 올망졸망한 산군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그렇게 잠시 밀양시와 상남면 방향을 조망한 후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제선충제 방제를 위해 벌목 후 훈증하는 많은 나무더미가 널려있고 다시 조금 더 걸어가니 이제 등로 우측 뒤로 방금 전 내려 온 종남산이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다시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부드럽게 걸어가니 연금마을과 꿍꿍이골 갈림 이정표가 보인다.

그 이정표 아래에는 상남면사무소까지 3 Km 거리라는 이정판도 보인다.

 

그 이정표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이제 조금은 지루하게 걸어가니 소나무 군락지 사이에 길게 몇기의 묘지들이 이어져 있다.

그 묘지지대를 지나 우측으로 휘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이제부터 올라야 할 비슬지맥 마루금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그곳을 지나니 안부가 나타나고 지도를 살펴보니 이연고개인듯 보인다.

이연고개는 등로 좌측의 연금리 이연마을에서 그 이름이 불려진 것은 아닐까 추측되는 고개이다.

연금리는 종남산의 지맥이 남으로 뻗어 내린 등성이의 동쪽 기슭에 자리하여 전면에는 넓은 들을 끼고 있는 역사가 깊은 동리이다.

1914년 행정 구역을 정비할 때에 이연과 금동 및 용연의 세 부락을 합하여 연금리로 한 것인데 이연의 연자와 금동의 금자를 취하여 법정리의 이름을 정하였다.

이 동리 일대에는 석기와 패총 유물 등 매장 문화재가 발견되는 사례가 많아 선사시대 이래 취락이 형성된 곳으로 추정할 수 있고 중세시대부터는 이동음부곡이 있었던 지역으로 이동음과 이듬 그리고 이연 등의 지명이 전래하는 구지이다.

또 금동역을 중심으로 주위에는 백족역, 마산원, 무량원, 팔량적원, 조화원 등 교통 통신의 유적이 산재하여 조선시대 영남 대로상의 도회 요충지였다.

연금리는 이듬을 중심으로 옛날 금동을 분활한 내금과 외금의 두 부락이 국도 변에 이어져 있고 말림까지 모두 4개의 자연 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으로는 삼랑진읍, 서로는 남산리, 남으로는 조음리와 평촌리, 북으로 기산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곳 연금리의 이연(이듬, 이드미, 이담)마을은 내금 부락의 북서쪽에 위치한 고촌으로서 지명을 이듬, 이드미, 이담이라 한 것은 옛날 이동음부곡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연이란 한자 표기는 옛날 이곳에 가연이라는 못이 있어 이동음과 가연이라는 이동음과 가연 두 지명을 아울러 취한 듯하다.

조선 초기 이래 창녕 조씨의 세거지로서 명종 때 이 곳의 큰 부호였던 가연 조말손은 삼남에 큰 기근이 있자 수 만금을 희사하여 백성을 구휼하였다.

그 공으로 나라에서 이 곳 가연과 동산리의 석제진을 사패지로 받아 기념으로 낙사정을 세웠다. 또 그 손자인 조계상은 임진왜난 때 창의하여 이등공신이 되었는데 만년에 그가 세운 정관당은 후인들이 강학소로 삼아 지금도 보존되고 있으며 그 아들인 중추 조응원을 추모하기 위한 이척재도 이 곳에 있다.

 

이연고개를 지나 다시 펼쳐지는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조금은 지루하게 걸어 본다.

길 잃을 염려도 없고 주위 조망도 없으며 큰 고도 차이도 없으니 산행 속도는 무척 빠르지만 그래서 진행에는 더욱 지루함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군락지를 통해 한동안 걸어가니 276봉과 266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도 지난다.

 

다시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지대를 지나 약간의 잡목을 헤치니 이제는 잡목도 없이 소나무만 자라고 있는 군락지가 나타난다.

그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한동안 지루하게 걸어가니 다시 낙엽이 쌓여 있는 안부를 통과하고 지도를 살펴보니 평리고개라 생각되는 곳이다.

평리고개 역시 등로 우측의 상남면 남산리 평리마을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생각되는 고개로서 남산리북쪽으로 종남산이 서쪽으로 덕유산이 병풍처럼 둘려 지고 동쪽에만 들판이 전개된 산중 마을이라 할수 있다.

종남산 아래쪽 에 있다고 하여 남산리가 되었는데 옛날에는 남산에 영은사와 봉수대가 있어 비교적 마을에 사람의 왕래가 많았다고 하며 본래의 동명은 구법리 혹은 구박리하고 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동, 평리, 새마를 아울러 남산리가 되었다.

평리마을은 남산 동남쪽의 평지에 있는 마을이라 지어진 이름이다.

 

평리고개를 지나도 여전히 소나무 군락지가 이어지고 이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걸어 올라 본다.

한동안 진행을 하니 민둥의 활엽수봉우리에 도착을 하고 조금씩 소나무가 사라지고 활엽수가 늘어나는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갑자기 눈 앞에 거대한 송전탑이 나타나는데 그 송전탑 한쪽에 준.희님이 유대등 342미터봉이란 이정판을 붙여 놨다.

왜 유대등일까 하는 의문이 있어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아쉽다.

 

유대등 지나 앞을 보니 이제 올라야 할 마루금이 잡목 사이로 좁게 그 모습을 보여준다.

다시 훈증을 하는 비닐지대를 지나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따르니 함몰된 지역도 나타난다.

그렇게 힘들게 잡목을 헤치고 진행을 하니 산머슴이란 띠지를 사용하는 선답자의 띠지에 이곳이 340봉이라 적어 놨다.

 

340봉을 지나 진행하니 멧돼지들이 얼마 전 파헤쳐 놓고 정리도 못한 식흔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곳 식흔을 지나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키 큰 밤나무 과수원이 보이기 시작한다.

밤나무 단지를 타고 조금 더 오르니 과수원으로 물건을 실어 나를 때 사용하는 도르레 장치가 설치되어 있는 곳도 통과를 한다.

가을철 밤 수확이 있는 계절에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예상되는 과수원 지대이다.

 

밤나무 과수원을 지나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밀양강이 저 멀리 내려다 보이고 낙동강도 보일듯 말듯 다가와 있다.

옛날 집터인지 아니면 성터인지 모를 무너진 작은 바위들이 있는 곳을 지나 능선 등로를 따르니 높은 송전탑을 지나 다시 소나무와 잡목이 섞여 있는 평이한 등로가 나타난다.

다시 가파라지는 짧은 오르막 등로를 타고 많은 땀방울 흘리니 드디어 정상에 돌탑이 있는 팔봉산 일명 필봉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이곳 밀양의 팔봉산 일명 필봉산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해 역시 아쉬움이 남는다.

 

팔봉산 일명 필봉산 정상 좌측의 동쪽을 살펴보니 상남면 들판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넘어 밀양강이 보이며 그 우측 저 멀리 낙동강도 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 밀양강 넘어에는 언젠가 꼭 한번 올라야 할 영축지맥 마루금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조망을 즐기며 물 한모금 마시고 배낭 둘러메고 다시 동쪽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가파르게 내려가 본다.

 

가파르게 팔봉산을 내려가니 다시 등로는 소나무와 잡목이 어우러진 평이한 등로로 바뀌고 그 등로를 따르니 좁은 공터 구간도 지난다.

다시 소나무와 잡목이 조화를 이루는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무명묘지 한기를 만나고 그 묘지 앞으로 좁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그 공터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감나무 과수원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비슬지맥 마지막 산줄기가 아름답게 다가온다.

 

잠시 잡목이 우거져 등로 찾기에 어려운 구간을 지나 평이하게 진행을 하니 허기가 지기 시작하고 그곳 한쪽에 자리를 펴고 준비한 김밥과 빵으로 허기를 달래 본다.식사 후 등로를 살펴보니 분명 정상 등로는 직진의 방향으로 진행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등로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크게 꺽여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나중에 살펴보니 25번 4차선 차량전용도로가 지나며 절개지를 이루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우측 사면 등로를 타고 내려 와 지하통로를 통해 그 25번 4차선 도로를 건너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가파르게 내려가니 등로 앞으로 많은 공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고 조금 더 내려가니 묘지지대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 25번 4차선 도로가 지나는 절개 옆으로 나가게 된다.

그곳에서 25번 도로 방향으로 조심해 내려가니 25번 4차선 도로 우측으로 동일산업과 제5870부대 2대대 예비군훈련장이란 도로 표지판이 있는 갓길을 타고 지하통로 방향으로 걸어 내려간다.

한동안 내려가니 25번 4차선 도로를 건널 수 있는 지하통로가 좌측으로 보이고 그 지하통로를 통해 25번 4차선 지방도로를 건넌다.

지도를 보니 이곳이 여시태고개인데 여시태 고개는 연금리와 평촌리를 이어주던 고개였다.

이곳 여시태고개 역시 연금리에 있는 여시태 마을에서 유래된 고개 이름이란 생각이다.

여시태(여히태)는 외금마을 남쪽 여시태의 고개 밑 마을터 인데 지금은 집이 없어졌고 옛 기록에 호현으로 되어 있으며 금동역 아래쪽에서 수산현에 이르는 고개라 하였고 여시는 여우이고 태는 티 곧 치의 변화된 음이다.

옛날에 이 고개를 넘나들면서 생긴 길손들의 설화와 전설이 많이 남아 있다.

 

좌측으로 25번 4차선 지방도로를 건너 걸어가니 조음로라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천주교남밀양성당 남산공조와 덕대산 관덕사란 입간판을 지나 2차선 지방도로를 타고 올라 본다.

오르다 뒤돌아 보니 25번 4차선 도로 위에는 밀양대로라 되어 있다.

2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도로 표지판에는 상남로와 밀양과 진영 그리고 삼량진과 평촌리 가는 갈림 표시가 되어 있다.

그 삼거리 한쪽에는 만어사 도로 표지판도 보이고 그 옆으로 평촌부대앞이란 버스 정류장이 보이는데 우측으로는 무량원 그리고 좌측으로는 평촌 가는 방향 표시도 되어 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 평촌부대앞 갈림 삼거리는 평촌고개라 되어 있는데 이 평촌고개란 이름 역시 이곳 마을 이름인 평촌에서 유래된 듯 하다.

상남면 평촌리는 마을이름과 같이 평평한 들판에 있는 마을로서 종남산 줄기에서 내린 나지막한 야산 한 자락이 무량리와 경계를 이루었고 남쪽 마산리와의 사이에도 작은 산봉우리 하나로 구분되어 있으며 그런 대로 산을 등지고 넓은 들을 바라보는 오랜 옛날로부터의 아늑한 동이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지금의 평촌을 중심으로 응천강 건너의 삼랑진읍 숭진리 일부와 용성리 일부를 편입하여 법정리로 삼았다.

동으로는 삼랑진읍, 서로는 조음리, 남으로는 마산리, 북으로는 연금리와 경계를 이루었으며 단위 부락은 평촌 본동과 대흥동으로 나누어지고 있다.

평촌부락의 평촌이란 지명은 평평한 들 가운데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것으로 서북쪽 낮은 산기슭에 등을 지고 응천강의 흐름을 동남쪽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배산임수의 평화스러운 부락이라 할 수 있다.

동명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임진왜란을 비롯한 크고 작은 국난을 당했을 때 이 마을만은 피해를 당하지 않고 평화를 지킬 수 있었다는 데서 평촌이 되었다고도 한다.

그래서 동네는 평안하고 살기가 좋아 날이 갈수록 인구가 늘어났는데 1982년에는 단위 부락으로는 너무 커서 일구, 이구, 삼구로 행정 단위를 구분하였다

옛날에 응천강 제방이 축조되기 전에는 예림에서 오산까지의 강변에는 홍수가 잦아서 지금의 넓은 들판은 경지보다는 늪과 갈대밭으로 자욱한 황무지가 많았다.

삼랑진  낙동에서 밀양시내로 통하는 30리의 벌판길이 마을 앞으로 나 있었는데 그 때만 해도 읍면의 경계가 애매하여 귀찮은 사건이 발생하면 읍면간에 경계 분쟁도 자주 일어났다고 한다.

조선 영조 때 호군 진대곤이 이 마을에 정착한 이후 여양진씨의 세거지가 되었고 진주강씨도 대대로 살고 있다.

이곳 평촌고개에서 마루금은 평촌부대앞이란 버스 정류장 옆 녹슨 철조망으로 가로막고 있는 감나무과수원으로 통하는 시멘트 포장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며 진행을 한다.

 

시멘트 포장임도를 타고 감나무 과수원으로 들어가니 등로는 감나무 과수원 제알 위 꼭대기 능선으로 이어지고 잡목으로 진행이 어려울 정도인 능선 등로를 따르다 도저히 진행이 어려워 우측 감나무과수원으로 다시 나가니 그곳 감나무 과수원 좌측 가장자리로 진행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 감나무과수원과 능선의 경계선을 타고 정상부로 오르니 갓봉이라는 155봉 이정판이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그 155봉에서 이제 올라온 우측 과수원 등로를 버리고 좌측 가장자리 등로를 타고 내려가며 방금 전 지나온 등로를 바라보니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저 머리 팔봉산이 보이고 여시태고개 및 평촌고개를 지나 이곳 155봉 감나무과수원으로 이어지는 비슬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한동안 감나무과수원을 우측에 두고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가니 갈림 삼거리 임도가 보이는 곳에서 우측 임도를 버리고 좌측 임도를 따라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여전히 팔봉산과 여시태고개 그리고 25번 지방도로 옆 공장 건물들과 평촌고개를 조망하고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이제 등로 좌측으로 밭이 나타나고 우측으로는 잡목과 잡풀이 있는 능선지대이다.

잠시 더 내려가니 임도 좌측 밭 가장자리에 콘테이너 박스가 보이고 그 콘테이너 박스를 지나니 비포장 임도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이어지고 있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다시 그 시멘트 포장 임도가 좌측으로 휘어 내려가는 곳에 우측 묵밭으로 이어지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 갈림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 묵은 밭을 타고 진행을 한다.

 

그 묵밭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앞으로 올라야 할 또 다른 감나무과수원이 눈 앞에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묵밭 끝자락에는 몇기의 묘지들이 보인다.

그 묘지지대를 지나 내려가니 다시 비포장 임도와 만나는데 마루금은 그 비포장 임도를 가로질러 건너 다시 나타나는 감나무과수원을 타고 저 멀리 높아만 보이는 봉우리 방향으로 올라야 한다.

 

지도를 보니 이곳 비포장 임도가 있는 곳이 미산고개로서 마산고개 역시 이곳 마을 이름이 마산리이기에 그 마을 이름에서 유래된 고개 이름처럼 느껴진다.

상남면 마산리는 동네 안산이 말처럼 생겼다 하여 말미라 불리어 오고 있 는 고촌으로 이마을 서쪽에 이웃해 있는 무량원이란 관영 여숙이 조선 초기에 폐쇄되어 옮겨온 후 마산원이 되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금동역이 백족으로 옮겨지고 백족에서 다 시 이 마을로 옮겨짐에 따라 마산원이 역으로 승격된 바 도 있다.

옛날에는 이 마을 산천의 경색도 매우 아름다워 서 조선 초기의 큰 학자인 사계 서거정은 밀양 팔경의 하 나로써 마산의 지나가는 비를 시로 읊었다.

자연부락으로 누르미, 갓골미, 똥매 등의 명칭이 있고 단감 주산지이며 수도작과 시설채소 재배하는 농가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나타나는 감나무과수원을 좌측에 두고 우측 가장자리를 타고 가파르게 오르니 기온이 오르면서 지열이 올라 여간 어렵지 않다.

 

그렇게 한동안 그 감나무과수원을 타고 어렵게 오르니 감나무과수원 정상부에 도착을 하고 살펴보니 묘지2기가 눈에 들어 온다.

그 묘지를 지나 좌측에 감나무과수원을 두고 우측에 능선을 두고 걸어가니 등로 좌측 뒤 저 멀리 팔봉산과 25번 4차선 지방도로 그리고 방금 전 올랐다 내려온 155봉이 환히 펼쳐져 있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지독한 잡목 지대를 지나 파란 물통이 보이고 지도를 살펴보니 146봉 정상이다.

이곳 정상은 또한 개복숭아가 많이 자라고 있고 각 복숭아 나무에는 가지가 찟어질 정도의 많은 개복숭아가 빼곡히 달려있다.

그곳 146봉 파란 물통을 지나 진행하니 등로는 이제 감나무과수원과 헤어져 우측 잡목이 무성한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감나무과수원과 헤어져 우측 잡목이 우거진 능선으로 진행하니 잠시 희미한 등로로 인해 길찾기가 쉽지 않다.

다시 잠시 더 희미한 등로를 따르니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고 눈 앞에 보이는 묘지지대에서 앞으로 진행 방향의 비슬지맥 마루금을 조망해 본다.

저 멀리 붕어등과 226봉 그리고 마지막 봉우리인 처녀묘등이 일렬로 줄을 서 있듯 그렇게 펼쳐져 있다.

조금 더 내려가니 저 아래 배죽고개의 1차선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그곳 넘어 또 다시 이어지는 감나무과수원과 129봉이 올려다 보인다.

 

민둥의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심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큰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고 조금 더 내려가니 밭이 나타난다.

그 밭 가장자리를 타고 내려가니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배죽고개에 도착을 한다.

배죽고개 역시 이곳 상남면 동산리의 인산마을 일명 배죽마을에서 연유된 이름이라 유추가 가능할 것 같다.

상남면 동산리는 대덕산 줄기가 남으로 길게 퍼져 내려온 곳에 다시 야산으로 솟은 크고 작은 봉우리를 등에 지고 동쪽으로 넓은 들을 거느린 큰 마을이다

이곳은 중세 이래 운막향 또는 운포향의 옛 터전으로서 그 중심은 백족리라는 옛 마을인데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 때에 이웃한 세천리와 동산마을을 합쳐서 이룬 법정리이다.

이름을 동산리라 한 것은 백족리 앞에 있었던 마산, 모산, 동산이란 세 개의 독뫼(독산)에서 연유하였다.

현재 동산리의 중심 부락은 인산이라고도 불리우는 배죽 마을이며 당곡과 소배죽 그리고 세 땀으로 나누어진 세천과 동산리 등으로 자연 부락이 나누어져 있으며 동으로 삼랑진읍, 서로는 마산리, 하남 파서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배죽(백족, 백죽, 인산)마을은 중세천 동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에는 운막향의 옛터라 하여 속칭 백족이라고 표기하였다.

배죽은 백족에서 변화된 음으로 옛날 마산 앞에 있는 돌더미에서 백마가 나타나 강물을 마시고 사라져버린 뒤에 그 발자국을 남겼다 하여 생긴 이름이라 한다.

그 백마 발자국은 마산리 누리미산에 지금도 자취가 남아 있다고 하며 또 이 마을을 인산이라고도 하는데 종남산 줄기가 밋밋하고 산뜻하게 어진 모양으로 뻗어 내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전기에 군수 박곤과 만호 박옥형이 이 마을에 살았는데 박곤은 용력이 크게 뛰어나 무과로 입신하였는데 중국 사신의 종사관으로 명나라에 들어가 화녀에게서 얻은 자손이 임진왜란 때에 명장을 따라 종군하여 이곳으로 와서 친족을 찾았다는 전설이 있고 봉보부인(임금의 유모)이 이 마을에서 출생했다는 설화도 있다.

 

배죽고개를 지나 콘크리트 포장 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올라가다 감나무과수원을 타고 우측 가장자리를 이용해 오른다.

더욱 뜨거워진 지열을 받으며 어렵게 오르니 등로 좌측 저 멀리 동산리와 외산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지만 밀양강은 나즈막한 산줄기에 막혀 잘 보이지 않는다.

이제 비슬지맥 산행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며 힘을 내 본다.

 

그렇게 해발고도는 높지 않지만 기온이 높아지고 새벽부터 진행하며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한지 체력적으로 약간의 부담을 느끼며 힘들게 올라 뒤돌아 보니 벌써 배죽고개가 저 아래 발 밑으로 멀어져 있고 파란 물탱크가 있었던 146봉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곳 146봉 우측 저 멀리에는 밀양강 넘어 영축지맥의 만어산과 구천산이 아름답게 보인다.

그렇게 감나무과수원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무명묘지 두기가 나타나고 그곳 지나 어렵게 오르니 해발고도 208미터의 인산에 도착을 한다.

 

인산을 지나 다시 감나무과수원을 만나 그 과수원을 좌측에 두고 우측 능선 경계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건너 저편에도 역시 감나무과수원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이제 등로 좌측 앞 저 멀리 밀양강이 내려다 보이고 그 끝자락에 낙동강도 아름답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숨이 멈출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며 다시 천천히 그 감나무과수원 등로를 따라 내려간다.

 

감나무 과수원 등로를 타고 내려갔다 안부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감나무과수원 우측 가장자리를 따라 오르니 비포장 임도 좌측으로 건물 한채가 보인다.

정확히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감나무과수원에 필요로 하는 도구나 물건을 보관하고 농약을 칠 때 사용 될 식수를 보충하기 위한 목적처럼 보인다.

극돗에서 등로 좌측 아래 저 멀리 낙동강 쪽을 살펴보니 영축지맥의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건물을 지나 계속 오르니 다시 잡목 능선이 나타나고 그 오르막 등로를 따라 완만히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녹슨 철조망이 나타난다.

다시 조금 더 오르니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안부로 내려가 훈증을 하는 곳을 지나 다시 오르니 또 다른 무명봉을 지난다.

지도를 살펴보니 어느 지도에는 이곳이 인산의 208봉 이라 되어 있어 방금 전 지난 인산과 헷깔리기만 하다.

 

이제부터 큰 고도차이가 없는 잡목이 우거진 지루한 등로를 타고 다시 한동안 걸어 본다.

제선충제 방지를 위해 벌목 후 훈증을 하는 나무더미가 자주 보이고 그곳 안부를 지나 벌목된 나무들이 나뒹구는 무명봉을 지나니 다시 등로는 완만하게 내려가는데 이제 등로 앞 저 멀리 올라야 할 붕어등도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나즈막한 안부로 내려가 물 한모금 더 마시고 다시 오르니 좁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 한쪽에 삼각점과 해발고도 278.8봉의 붕어등이라는 두개의 이정판이 보인다.

이곳 붕어등도 잡목으로 가려 조망이 없기에 한쪽에 앉아 남아 있는 떡과 과일로 허기와 목마름을 달래 본다.

시간을 보니 이제 12시 25분을 지나고 있기에 열차 시간에 여유를 느끼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붕어등이다.

 

그렇게 붕어등에서 간식을 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배낭 둘러메고 출발을 해 본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등로는 큰 고도차이 없이 빠르게 진행되고 나무를 훈증하는 비닐포장을 지나 등로 좌측으로 보이는 외산면 들판도 조금씩 즐겨본다.

다시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봉우리 같지 않은 일반 등로에 226봉 이정판이 붙어 있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226봉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감나무과수원 넘어 저 멀리 외산리 들판과 밀양강 그리고 낙동강이 아주 가깝게 보이기 시작한다.

 

멋진 조망을 즐기며 진행하니 금새 눈 앞에 육각정자가 나타나고 그 육각정자 뒷편에는 운동기구도 보인다.

그 운동기구를 지나니 커다란 묘지 하나가 보이는데 그 크기에 비해 아무런 표식이 없어 의아해 하는 시간이다.

그곳 옆 나뭇가지에는 이곳이 해발고도 221미터의 처녀묘등이라 되어 있다.

처녀묘등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한데 혹시 그 육각정자 넘어 있던 커다란 묘지 한기가 이 처뇨묘등이란 이름과 관련은 없을까 괜시리 궁금해지는 시간이다.

 

그 처녀묘등을 지나 가파르게 내려가니 이제 등로는 비포장 임도같은 뚜렷한 등로를 타고 갈지자로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내려가게 된다.

낙엽도 있고 작은 돌맹이들도 깔려 있는 등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니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이곳에서 밀양택시에 전화를 해 외산교로 오도록 하고 여유롭게 등로를 따르니 이제 낙동강이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와 있다.

그렇게 조금 더 내려가니 등로 위에는 이제 많은 묘지들이 나타나고 뜨거운 태양 빛을 받아가며 어렵게 걸어 내려간다.

 

그 묘지지대를 타고 한동안 내려가니 다시 등로는 묘지와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조심스럽게 그 마루금을 따라 천천히 걸어간다.

한동안 그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바로 눈 앞에 제법 높은 마지막 봉우리가 보이는데 등로는 그 봉우리를 넘지 못하고 우측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잡목과 잡풀을 헤치고 어렵게 내려가니 또 다시 묘지들이 나타나고 짧게 능선을 통해 걸어 전진하니 좌측에 대나무 밭을 두고 무성하게 자라난 잡풀을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 선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바로 코 앞에 외산교가 올려다 보인다.

 

그 외산교 밑으로 가 좌측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드디어 3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외산교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배낭 정리하며 부른 밀양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물을 마시고 있는데 동산리와 외산리 방향에서 군내버스가 오고 마음 같아서는 올라타고 싶지만 택시를 불렀고 또한 오우진나누에 잠시 들리고 싶어 그냥 보낸다.

 

잠시 더 기다리니 밀양 택시가 다가오고 그 택시에 올라 오우진나누 방향으로 가지만 역시나 상남제방에 차량통제 바리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어 그 제방 입구에서 낙동강을 배경으로 사진 몇장 남기는 것으로 비슬지맥 산행을 마무리 한다.

오우진나루까지 가지 못해 조금은 아쉽지만 사진으로 대신하기로 하고 다음 영축지맥 산행 시 꼭 이곳 오우진나루도 한번 들려보기로 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이제 진행하고 있는 대동금강기맥 산행에 열중을 하면서 하고 싶은 수도지맥이나 문수지맥 쪽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기를 기대 해 본다.

 

이것이 마무리가 아닌 새로운 출발점이 되길 바래 보면서 밀양역 근처의 목욕탕으로 이동해 새워 후 옷을 갈아 입고 다시 밀양역 근처의 식당에서 시원한 물냉면 한그릇으로 허기를 달래 본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이제 시간은 오후 3시를 넘기고 있어 밀양역으로 가 표를 교환 할 수 있는지 확인을 하니 마침 운좋게도 3시 23분 역방향의 자리가 있어 4시 2분 열차 표를 반환하고 40여분 빠른 열차로 무탈하게 대전으로 돌아 가 처갓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무탈하게 집으로 복귀를 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