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경상북도 청도군과 대구 달성군의 비슬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5년 04월 24일, 25일, 26일 (금요일에서 일요일까지 3일 연속 산행)
2015년 4월 26일(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맑고 조망도 좋았지만 갑자기 기온이 오르며 초여름 같이 무더웠던 산행 날씨
산행온도 : 영상 10도에서 영상 26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팔조령(30번 2차선 옛 지방도로, 산장휴게소)-이정표(최정산목장 12.5 Km, 헐티재 18.7 Km)-비포장 임도-산불감시초소-산불감시초소-북봉대 안내판-대원개발 출입금지 경고판-묘지지대-봉화산(474봉 정상석)-소나무 군락지-벤취2개-잣나무 등로-안전철봉과 로프구간-이정표(팔조령 1.4 Km, 최정산목장 11.2 Km와 헐티재 17.4 Km)-바위봉-봉암산(584.6봉) 삼각점-일출-이정표(팔조령 2.1 Km, 최정산목장 10.4 Km와 헐티재 16.6 Km와 녹동서원, 대바우봉)-대바우봉(583봉)과 전망데크-이정표(팔조령 3.3 Km, 최정산목장 9.3 Km와 헐티재 15.5 Km, 청도 이서면, 녹동서원과 우록1리마을)과 바람골 고갯길 안내판-이정표(팔조령 4.26 Km, 최정산목장 8.34 Km와 헐티재 14.54 Km)-바위봉-통점령(대구9산종주) 안내판-삼성산(668봉) 및 전망데크와 이정표(팔조령 5.1 Km, 최정산목장 7.5 Km와 헐티재 13.7 Km)-이정표(삼성산 정상, 용강서원 5 Km, 수야4리 1 Km)-소나무 군락지-역암바위-소나무 군락지-임도 안부 육각정과 이정표(팔조령 6.5 Km, 최정산목장 6.1 Km와 헐티재 12.3 Km, 우록리 2.5 Km, 이서면 수야리) 및 비슬산 둘레길 안내판-비포장 임도-이정표(팔조령 6.7 Km, 최정산목장 5.9 Km와 헐티재 12.1 Km, 청도 칠엽리)-이정표(팔조령 6.9 Km, 최정산목장 5.7 Km와 헐티재 11.9 Km)-벤취쉼터2개-입산금지 경고판-이정표(팔조령 7.7 Km, 최정산목장 4.9 Km와 헐티재 11.1 Km)-밤티재 벤취쉼터2개와 이정표(팔조령 8.4 Km, 최정산목장 4.2 Km와 헐티재 10.4 Km)-시멘트 포장도로-우미산 갈림 삼거리-우미산(747봉)-우미산 갈림 삼거리 복귀-이정표(팔조령 9.02 Km와 밤티재 0.67 Km, 최정산목장 3.53 Km와 헐티재 9.73 Km, 우미산 1.0 Km)-특용작물 출입금지 경고판-벤취쉼터 2개-백록생수 우록가는길 안내판-698.2봉 삼각점-694봉-이정표(우미산, 백록마을회관, 남지장사)-40번 송전탑-이정표(백록마을회관, 남지장사)-이정표(팔조령 11.3 Km, 최정산목장 1.3 Km와 헐티재 7.5 Km)-억새밭-청산(802봉) 정상석과 헬기장-이정표(팔조령, 백록마을회관, 남지장사)-억새능선-통점령 이정표(팔조령 11.6 Km, 최정산목장 1.0 Km와 헐티재 7.2 Km, 조망처 쉼터 0.2 Km와 녹동서원)-조망처 육각정-통점령 복귀-진달래 능선-비포장 임도-이정표(팔조령 12.2 Km, 최정산목장 0.4 Km와 헐티재 6.6 Km, 가창길 93길 쉼터 0.46 Km)-이정표(팔조령 12.4 Km, 최정산목장 0.2 Km와 헐티재 6.4 Km, 최정산목장 1.0 Km)-억새와 소나무 등로-최정산목장 이정표(팔조령 12.6 Km, 최정산목장와 힐링쉼터 0.98 Km, 헐티재 6.18 Km)-억새등로-비포장 임도-안전 철봉과 로프구간-벤취쉼터2개-전망바위-방화선-590.5봉 삼각점과 이정표(팔조령 14.8 Km와 최정산목장 3.06 Km, 헐티재 3.9 Km)-방화선-안전철봉과 로프구간-벤취쉼터2개-안전철봉과 로프구간-686봉-신뱅이산(688.6봉 정상석과 삼각점) 이정표(팔조령 16.1 Km와 최정산목장 4.3 Km, 헐티재 2.65 Km)-안전철봉과 로프구간-벤취쉼터2개-안전철봉과 로프구간-이정표(팔조령 16.9 Km와 최정산목장 5.1 Km, 헐티재 1.85 Km, 각북면 금천리, 대구미술광장 2.4 Km와 정대1리마을)-이정표(팔조령 17.34 Km와 최정산목장 5.54 Km, 헐티재 1.41 Km)-나무데크2개-안전철봉과 로프구간-조리봉(676.4봉) 삼각점-송전탑-이동통신 송전탑-헐티재(902번 2차선 포장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4월 24일(금) 약 22.29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4월 25일(토) 약 38.48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4월 26일(일) 약 19.73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4월 24일(금) 맑고 무척 무더웠던 초여름 같은 날씨에 08시간 00분 (10시 42분부터 18시 42분까지)
4월 25일(토) 맑고 무척 무더웠던 초여름 같은 날씨에 13시간 41분 (05시 14분에서 18시 56분까지)
4월 26일(일) 맑고 무척 무더웠던 초여름 같은 날씨에 07시간 00분 (05시 02분에서 12시 02분까지)
교통편 : 애마와 택시 이용 (서정수 동곡택시 010-8006-6997와 장상근청도개인택시 010-8290-5806)
비슬지맥이란???
낙동정맥 사룡산(683봉) 북쪽 400미터 지점에서 분기하여 서진하며 사룡산(683봉), 구룡산(674.8봉), 발백산(674.5봉), 대왕산(607봉), 선의산(756.4봉), 용각산(692.5봉), 상원산(674.1봉), 삼성산(668.4봉)등 600에서 700미터 대의 산들을 들어 올린 후 비슬산(1083.6봉)에 이르러 북쪽으로 청룡지맥을 분기한후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조화봉(1057.7봉), 수봉산(592.5봉), 묘봉산(514봉)을 지나 천왕산(619.2봉)에 이르러 남쪽으로 열왕지맥을 분기한후 동남진하며 호암산(611.2봉), 화악산(930봉), 형제봉(556.7봉), 종남산(663.5봉), 팔봉산(391.4봉), 붕어등(278.8봉)을 지나서 밀양시 상남면 외산리에서 낙동강에 발을 담그며 그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146.5 Km가 되는 산줄기로 최고봉인 비슬산의 이름을 빌려와 비슬지맥이라 칭한다.
비슬지맥은 낙동정맥 및 청룡지맥과 함께 금호강의 남쪽울타리를 분담하고 밀양강의 서쪽 울타리역활을 처음부터 끝까지 맡아와 밀양강을 낙동강에 합수시키고 동쪽 밀양강 건너로는 낙동정맥에서 온 영축지맥의 끝을 바라보고 남쪽 낙동강 건너로는 낙남정맥에서 온 무척지맥의끝을 바라보며 그 끝을 맺는다.
지나가는 산들은 사룡산(683봉), 구룡산(674.8봉), 발백산(674.5봉), 대왕산(607봉), 선의산(756.4봉), 용각산(692.5봉), 상원산(674.1봉), 봉화산(473.5봉), 삼성산(668.4봉), 우미산(-0.7 Km, 747.3봉), 비슬산(1083.6봉), 조화봉(1057.7봉), 수봉산(592.5봉), 묘봉산(514봉), 천왕산(619.2봉), 배바위산(607.1봉), 호암산(-0.7 Km, 611.2봉), 화악산(930봉), 형제봉(556.7봉), 종남산(663.5봉), 팔봉산(391.4봉), 붕어등(278.8봉)을 지난다.
지나는 행정구역은 사룡산에서 건천읍, 영천시, 청도군경계에서 시작하여 구룡산에 와선 건천읍과 영천시와는 작별하고 경산시와 청도군경계를 한동안 따르다가 상원산 근방에 와서 대구광역시와 경북도경계를 만나서부터는 도경계를 따라 비슬산, 조화봉, 수봉산, 천왕봉, 화악산까지 간다.화악산을 지나서야 그동안 처음부터 계속돼온 청도군경계를 벗어나 밀양땅으로 들어선다.
비슬지맥 전체 146.5 Km중 청도군경계를 109미터쯤 지난다.
비슬지맥에서 분기하는 지맥은 비슬산에서 북진하는 청룡지맥(약 37 Km)과 천왕산에서 남진하는 열왕지맥(약30.4 Km)이 있다.
내일을 생각하며 일찍 산행 종료 후 서울 귀경을 서둘렀던 아쉬움을 남겼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이틀 연속 장거리 산행 후 어제 늦게 이곳 진량으로 들어 와 돼지국밥 한그릇으로 저녁 식사 후 배낭 정리해 놓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2시 50분에 일어나 짐 정리하고 배낭 챙긴 후 아침식사를 위해 어제 들렸던 김밥집에서 다시 김치찌게 한그릇으로 허기를 달랜 후 김밥 두줄을 준비해 산행 날머리인 헐티재로 이동을 한다.
내일부터 외국인 친구와 함께 3일간 일을 봐야 하기에 오늘 산행은 비티재가 아닌 헐티재에서 일찍 마무리한 후 서울로 귀가를 해야 하기에 괜시리 마음만 바쁜 새벽 시간이다.
그렇게 산행 준비 후 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해 헐티재에서 만나기로 하고 출발하니 헐티재에 새벽 4시 10여분에 도착을 하고 잠시 주차장에 애마를 주차시킨 후 택시를 기다리니 택시도 곧이어 도착을 한다.
산행이 준비된 배낭을 둘러메고 택시에 올라 팔조령으로 가니 이제 새벽 4시 50여분을 넘기고 잠시 산행 준비 후 택시 기사에게 사진 한장 부탁해 남기고 곧바로 산장휴게소 식당 우측 능선방향으로 나 있는 등로를 따라 3일째 마지막 산행을 이어 가 본다.
연 3일간 장거리 산행을 하는 시간치고는 몸 상태도 좋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지만 이제 가파른 된비알을 타고 오르는 시간은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좋은 날씨에 무덥지 않은 새벽 시간에 맑은 공기를 마시며 진행을 하니 생각보다 편안하게 우미산 갈림 삼거리 직전 등로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등로 좌측으로 사면 우회 등로가 더 잘 발달되어 있다.
잠시 고민하다 우미산을 다녀오기로 하고 좌측 우회 등로를 버리고 직진의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몸과 마음 모두가 힘들지만 그래도 우미산에 올랐다는 희열이 넘치는 시간이 되었다.
다만 그렇게 힘들게 오른 우미산 정상은 잡목들로 인해 조망이 전혀 없어 안타까운 마음만 남겨 놓고 다시 갈림 삼거리로 뒤돌아 내려온다.
택시를 이용해 헐티재에서 팔조령으로 오니 새벽 4시 50여분이 지나고 그곳 30번 2차선 옛도로 위에서 산행 준비 후 사진 몇장 남기다 보니 새벽 4시 57분을 넘기고 있다.
사진 몇장 더 남기고 천천히 산장휴게소 식당 옆 등로로 오르니 온 세상이 어둠속에 고요히 젖어 있다.
비슬지맥 산행이 아니라면 이곳 팔조령에 올 기회조차 없었을 곳이기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기억을 남겨보려 노력해 보지만 역시나 시간이 지나면 그저 오늘 남긴 사진 몇장 바라보며 오늘을 희미한 기억 저편에서 되살리려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산장휴게소 식당 건물로 오르니 이곳 역시 불빛 하나 없는 암흑의 세상이다.
다만 이 산장휴게소 아래 30번 2차선 포장도로에서 졸고 있는 가로등 불빛이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며 이곳이 건물임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기계음을 들으며 혹시나 주인장이 이 산객 때문에 새벽잠에서 깨지 않을까 조심하며 자갈 등로를 따라 조심조심 능선 등로 방향으로 들어가며 3일째 마지막 산행을 시작해 보는 시간이다.
산장휴게소 건물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자마자 등로 바로 옆에 헐티재까지 18.7 Km 남아 있다는 거리와 방향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곳을 지나 오르니 등로는 생각보다 넓은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임도 우측 저 앞으로 산불감시초소가 희미하게 보인다.
이제 서서히 여명이 밝아 오는지 주위 사물들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사진 한장 담은 후 어제 걸어 온 비슬지맥 마루금을 뒤돌아 보니 그저 산의 형태만 실루엣으로 희미하게 들어오기 시작한다.
뜬금없이 나타나는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잠시 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오르다 뒤돌아 보니 조금 더 밝어 오는 세상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다가오고 그곳에서 등로 좌측으로 밝은 불빛이 들어 와 돌아 보니 묘지지대 넘어 저 멀리 청도군 이서면 팔조리에서 흘러 나오는 불빛이었다.
팔조리 마을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과 청도군 이서면의 경계 지역인 팔조령 아래에 위치한 마을로서 팔조령 아래 계곡 사이로 형성된 팔조리는 정확한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조선 시대 영남 대로의 여덟 번째 고개가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팔조라 전해지기도 하며 8명 이상 무리를 지어 넘어야 하는 팔조령 아래 마을이라고 하여팔조리라 불렸다고 하기도 한다.
본래 청도군 차북면 지역으로 상팔조동과 하팔조동이 있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에 두 마을을 합해서 팔조동이라 하고 이서면에 편입하였다가 1988년 팔조동에서 팔조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팔조저수지 아래에 신당이 있으며 아직도 마을에서 정월이면 제사를 지내는데 이 신당에는 다른곳에서 보기 드물게 많은 현액이 걸려있다.
수많은 보수를 하였으며 그리고 축수문(축문)이 현액을 하여 걸려있기도 한데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내용은 이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비는 말이 새겨져 있다.
상원산의 한 줄기가 대곡리와 팔조리 사이로 내려와 칠곡리 앞에서 끊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는 팔조리는 동과 서 및 북쪽은 산으로 막혀 있고 남으로만 트여 있는데 이 부근에서도 가장 좁을 골짜기를 형성하고 있다.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와 이어져 있는 산의 잘록이는 대구로 통하는 가장 짧고 낮은 길이어서 조선 시대에 한양에서 동래에 이르는 가장 짧은 길인 영남대로의 중심이 되었다.
팔조리와 팔조령에 관한 내용을 조금은 이해가 될만한 내용인 듯 하다.
팔조리 불빛을 감상한 후 다시 비포장 임도를 따라 오르니 또 다른 낡은 산불감시초소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임도 좌측에 넓은 공터같은 장소가 나타나는데 그곳에 안내판 같은 것이 보여 다가가 살펴보니 북봉대란 설명판이었다.
이곳 북봉대의 설명판을 읽어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이 북봉대는 청도군 이서면 팔조리 소재로서 봉수대는 변방을 침범하는 적의 동태와 지방의 민정을 봉수로서 중앙에 알렸던 고대의 군사적 통신방법으로 조선시대에는 전보요령, 봉수대시설, 근무요원 및 근무태만에 대한 벌칙등이 구체화 되었다.
홰는 밤에 불을 켜서 서로에게 알리는 것으로 불빛은 싸리나무 다발 속에 관솔을 넣어 만들었고 수는 낮에 연기를 올려 통신하는 형태로 재료는 섶나무를 태우고 그 위에 가축 똥으로 연기를 피웠다.
이곳 북봉대는 남으로는 청도 남봉대와 북으로는 대구 법이산봉수와 호응하였는데 북봉대 명칭은 1872년 제작된 조선후기 지방지도(서울대규장각)에 기록된 것으로 봉수대 형태는 산돌을 사방에 쌓고 중앙에 화구를 설치하였고 주변에는 봉군집터와 주막이 있었다.
규모는 담 두께가 0.8 미터이고 둘레는 20미터이다라는 설명이다.
이제서야 북봉대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북봉대를 넘어 다시 비포장 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무명묘지 한기가 나타나고 잠시 후 임도 우측으로 대원개발에서 설치한 출입금지 경고판이 연이어 나타나는데 살펴보니 채석장에서 발파를 자주하기에 출입을 금하는 내용인듯 하다.
다시 소나무 군락지가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많은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계속 걸어 진행하니 임도 좌측으로 약간 들어간 곳에 나무 탁상 2개가 설치되어 있는 봉화산 정상에 도착해 셀카 놀이를 하면서 사진 몇장 남겨 본다.
이곳 봉화산이란 이름 역시 방금 전 만났던 북봉대와 같은 의미로 붙여진 이름은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정확한 내용은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알 수가 없다.
그 봉화산을 나와 다시 관목과 소나무가 잘 어우러진 능선 등로를 따라 걸어가는 새벽 시간이 참으로 의미있고 새롭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수많은 생각을 하면서도 또 금새 그 세상사를 잊을 수 있는 산길이기에 이런 고통을 알면서도 또 이 산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아름다운 소나무 군락지로 나 있는 등로를 따라 한동안 걸어가니 등로 우측에 통나무를 잘라 만든듯한 벤취 2개가 보이고 다시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 철봉과 로프가 설치된 사면 등로를 타고 걸어 본다.
이제 팔조령에서 1.4 Km 지나 왔다는 이정표를 지나 바위속에 둘러 쌓여 어렵게 살아가는 나무 하나를 불쌍한 눈으로 바라본 후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등로 뒷편 저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붉은 하루해가 떠오르고 있다.
늘 맞이하는 일출이지만 이렇게 홀로 새벽 어둠을 헤치고 오르다 만나는 일출은 늘 새로운 세상으로 가슴속에 남겨지는 특별함이 있는 일출이다.
깨끗한 일출을 만나지 못하고 나뭇가지 사이로 만나는 것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음에 다시 등로를 따라 걸어 본다.
하얀 철쭉꽃이 만발한 등로를 타고 무명봉에 올라 넘으니 등로 우측으로 바위가 나타나는데 그냥 지나칠려다 살펴보니 그 바위 위로 올라간 흔적들이 많아 잠시 오르니 그곳 정상에 삼각점과 함께 584.6봉 이정판이 붙어 있다.
바위 위로 오르지 않했다면 만나지 못했을 삼각점이기에 그 만남이 예사롭지 않은 시간이다.
그 584.6봉 정상에서 잠시 머물며 삼각점과 이정판을 사진에 남기고 있으니 그 옆 소나무 한그루 사이로 저 멀리 붉게 떠오른 햇살이 밝게 웃으며 다가온다.
참으로 아름답고 황홀한 일출이기에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다시 한번 사진에 담아 본다.
오늘은 헐티재까지 20 여 Km만 걸으면 되기에 마음적으로 많이 편안함을 느끼며 여유롭게 걸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등로에 지고 있는 참꽃과는 달리 개꽃은 이제 막 만개를 하기 시작하는데 하얀색과 분홍색이 차례로 피어 이 산객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듯 하다.
잠시 더 진행하니 팔조령에서 2.1 Km 진행해 왔다는 이정표 한쪽으로 대바위봉 방향 표시가 되어 있지만 거리표시가 없어 살펴보니 그곳에도 역시 바위봉이다.
잠시 그 바위봉으로 올라 해발 583미터의 대바위봉 정상석을 만나 증명 사진 한장 남겨 본다.
하지만 왜 대바위봉인지는 자료를 찾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기도 하다.
대바위봉에서 눈 앞에 펼쳐진 마을과 앞으로 올라야 할 좌측 저 멀리 우미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아래 우록리가 아름다운데 그 우록리 북쪽으로는 비슬지맥에서 벗어난 740.4봉 산줄기가 아름답게 둘러쳐져 있다.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이곳은 원래 우미산 아래에 위치한 소 굴레 모양의 마을이란 뜻으로 우륵동이라 불렸다가 임란 때 이 마을에 정착한 김충선 장군이 사슴과 벗하는 마을이란 뜻으로 우록동이라 고쳤다고 한다.
마을에는 김충선 장군의 후손인 사성 김해김씨 일가를 비롯 25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이 우록도에는 또한 녹동서원이 있는데 조선시대 임진, 정유, 병자년의 난에 큰 공을 세운 모하당 김충선 장군을 모신 서원이다.
김충선 장군의 본명은 사야가로 일본인이었던 그는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의 선봉장으로 부산에 상륙했으나 전쟁이 대의에 어긋난다고 판단해 반기를 들고 평소 흠모하던 조선으로 귀화하였는데 임진왜란은 잘못된 전쟁이다는 신념 하나로 명예를 버리고 동료를 버리며 국가까지 등졌다.
이후 조총제작 기술을 조선에 전수한 후 경주와 울산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워 정 3품인 가선대부에 오르고 종 2품 자헌대부로 승진한 그는 이름도 얻게 되었는데 바다를 건너온 모래를 걸러 금을 얻었다는 뜻을 살려 성을 김으로 본관을 김해로 이름을 충선이라 하였다.
녹동서원은 1789년 지역 유림에서 그를 기려 건립한 것으로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84년 훼철됐다가 1914년 중건됐다.
서원의 왼쪽에는 임란 때 사용됐던 조총과 장군의 시문을 모은 모하당 문집 등이 전시돼 있는 충절관이 있고 오른쪽에는 사당이 있는데 사당의 지붕 안에는 1980년경부터 토종벌이 살고 있는데 장군의 영정을 모시는 호위군사라 생각해 없애지 않는다고 한다.
기념관 뒤 삼정산으로 20분 정도 오르면 그의 묘가 있다.
많은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는 우록리를 내려다 보는 시간이 새롭게 다가오는 순간이기도 하다.
대바위봉 우측으로는 방금 떠 오른 밝은 햇살을 받아 더욱 황홀한 참꽃이 보이고 그 참꽃 아래로는 연두빛 봄과 하얀 조팝나무 꽃이 또한 멋진 조화를 이루며 행복한 하루를 열어 주고 있다.
그 꽃송이들 넘어 저 멀리 어제 걸어 내려 온 상원산 넘어 비슬지맥 마루금이 넘실거린다.
기대하지 못했던 너무나 멋진 조망에 조금 더 시간을 보내며 그 아름다운 풍경들을 가슴과 사진에 남겨 본다.
그 대바위봉에서 우록리와 우미산 그리고 어제 걸어 넘었던 상원산을 조망한 후 내려 와 우측 헐티재 16.6 Km 방향으로 걸어가 본다.
철쭉꽃이 만발한 낙엽 등로를 따라 여유롭게 걸어가니 연두색 봄빛 속에 저 멀리 삼성산 방향의 봉우리가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인다.
조팝나무꽃을 지나 고사목들이 보이는 관목지대를 넘으니 완만하게 내려가 벤취2개가 놓여 있는 바람골 고갯길이란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헐티재까지 이제 15.5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기도 하다.
이 바람골 고갯길은 사성김해김씨의 시조인 김충선장군이 청도지역의 의병장들과의 교류를 위하여 넘나들었던 고갯길이라 전해지는데 이곳에는 주변에 작은 집이 있었으며 우록동 주민들이 청도의 5일장에 다닐 때 쉬어가는 고갯길이었다.
김충선장군께서 필마를 타고 넘나들면서 진심을 모하당 술회가에 글로서 남겼는데 필마를 다시몰아 우록촌 돌아올세 진세를 하직하고 산중에 들어오니 무정할사 산청이요 유의할사 백구로다라는 글이었다.
바람골 고갯길을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거목의 활엽수만이 지난 해 떨어진 낙엽을 채우기 위해 연두잎새귀를 만들기 바쁜 풍경이 펼쳐진다.
생각보다 잘 나 있는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잠시 분홍빛 참꽃이 산객의 눈길을 붙잡고 다시 가시덤불이 빠르게 등로를 침범하는 언덕을 넘어 눈 앞에 펼쳐진 연두빛 봄을 즐기며 걸어보는 시간이다.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비슬지맥 마루금이 저 멀리 넘실거리고 그렇게 즐기며 진행하니 둔덕 위에 헐티재까지 14.54 Km 남 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이정표를 지나 오르니 오랫만에 다시 등로 옆에 펼쳐진 바위들을 지나고 다시 연두빛과 참꽃의 분홍색이 잘 어우러진 등로를 따라 본다.
대구9산종주 통점령 가는 방향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판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상에 해발고도 668미터의 삼성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기고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을 즐겨본다.
삼성산이란 명칭은 현지에선 세 성인이 나서 삼성산이라고 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지만 정상부가 653미터에서 668미터와 663미터의 세 봉우리로 구성되어 붙여진 이름일 수도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삼성산 동편 653미터봉에서 내려서는 북릉은 395미터의 잘록하게 낮아졌다가 마지막에 438미터봉으로 되 솟아 우록리 당산이 되고 둘째이자 최고봉인 668미터봉에선 남릉이 내려서서 문수리와 수야리를 구분 짓고 있으며 세 번째 663미터봉 구간은 능선이 좁고 길면서 평탄해 마치 솔밭 산책로를 걷는 듯 하다.
전국적으로 많은 삼성산이란 산이 있는데 모두 같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이제 그 2개의 삼성산 정상석에서 내려 와 앞에 설치된 나무전망데크에 올라 조망과 풍경을 즐겨 본다.
남쪽으로 청도군 이서면의 아름다운 풍경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오는데 푸르게 변해가는 산하에 많은 저수지에 물이 가득 차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준비에 바쁜듯 보인다.
좌측으로 부터 풍양지와 수야지 그리고 우측으로 칠엽지가 바로 발 아래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청도의 이서면과 각남면 그리고 풍각면을 지나 다음 구간 올라야 할 청도의 화악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화악산 주위로 남산과 호암산 그리고 천왕산 줄기가 부르고 있는데 언제쯤 만날 수 있을련지 그 기회가 빨리 오기를 바래 본다.
다만 화악산 우측으로 보여야 할 창녕의 관룡산과 화왕산은 박무로 인해 몰 수가 없으니 그것이 아쉬울 뿐이다.
앞으로 진행 방향인 북서쪽을 살펴보니 제일 좌측으로 온화하게 다가 온 우미산이 가깝고 그 우측 뒤로 통점령과 최정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최정산 정상부의 통신탑고 올려다 보이고 그 우측 저 멀리 대구를 지나 가을에 다시 올라야 할 팔공산이 아련한 추억을 떠 올리며 다시 단풍이 지는 계절에 만나자 손을 흔들고 있다.
그 아름다운 풍경에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잠시 더 머물며 가슴속 깊이 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추억으로 남겨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삼성산 정상에서 머물다 헐치재 13.7 Km 란 방향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 옆을 통해 맥 잇기 산행을 이어 가 본다.
잠시 더 진행을 하니 삼성산방향과 좌측으로 용강서원 하산 갈림 이정판이 있어 사진에 담은 후 용강서원을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자료가 있다.
청도의 용강서원은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학산리에 있는 서원으로 충숙공(忠肅公) 박익(朴翊)[1332∼1398]과 임진왜란 당시의 14의사(義士)를 제향하기 위해 1780년에 건립한 서원이다.
전체적인 배치는 외삼문, 강당, 내삼문, 여충사를 동일 축선 상에 배치하였는데 강당의 우측에는 임진왜란 14의사를 모신 충렬사가 별도의 공간을 이루고 강당의 좌측에는 용강재와 주사를 우측에는 보인당을 각각 배치하였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5칸 규모의 팔작 기와집으로 평면 구성은 중앙의 3통칸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1칸 온돌방을 둔 중당 협실형으로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마루를 설치하였다.
담장 밖 우측 입구에는 방형의 토석 담장을 두른 별도의 공간 안에 14의사 묘정 비각이 있고 주변은 정비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또한 우측으로는 수야4리 하산 등로가 있는 사거리를 지나 한동안 소나무 군락지를 따르니 등로 옆에 큰 바위가 맞이해 준다.
그렇게 그림같은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간간히 피어난 철쭉꽃을 친구 삼아 걸어가니 등로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더니 저 멀리 육각정과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우록재에 도착을 한다.
우록재의 지명은 아마도 달성군 가창면에 있는 우록리란 마을 이름에서 유래된 듯 보이는데 북쪽의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와 남쪽의 청도군 이수면 수야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비포장 임도가 개설되어 있다.
청도 수야리의 옛 지명은 물야였는데 그 연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수야는 골짜기가 세 곳에서 내려와 계곡과 산의 모습이 야자 모양이라고 해서 수야라고 한다는 말도 있다.
마을로는 행정마을, 신기, 중리, 명곡, 덕령, 이천 등이 있는데 행정 마을은 박하담의 조부인 소고공 박건이 심은 은행나무가 자라서 정자를 이루어 행정 마을이라고 했다.
행정 마을 앞쪽에 생긴 새로 생긴 마을이 신기인데 신기는 행정과 덕령 등 다른 마을이 생긴 뒤에 새로 생긴 마을이고 신기 아래에 있는 마을이 중리로 들 가운데 있다고 해서 중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명곡은 발래미라고 하는데 그 뜻은 전해지지 않고 다만 발래미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명곡이라고 했다고 하며 덕령은 금촌리로 넘어가는 낮은 고개 아래에 자리 잡은 마을인데 아마도 이 고개와 관련되어 덕령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고 전한다.
골짜기 맨 안쪽에 자리 잡은 마을은 이천으로 이 마을 선비들의 문집이나 묘비에는 이화라고 쓰여 있으나 그 뜻을 알 수가 없다.
다른 이름으로는 귀일이라고도 하며 병재 박하징이 다른 곳에서 돌아왔다고 해서 귀일이라는 이름의 붙여졌다고 하고 소요당 박하담과 성와 박하청, 병재 박하징 3형제 중 위의 둘은 산동의 선마루로 가서 정착을 하고 막내를 이곳에 두고 가서 뒤돌아보았다고 해서 귀일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비포장 임도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려 살펴보지만 능선으로 오르는 등로가 없다.
한동안 능선 방향으로 들었다 내려오길 두어번 한 후 어쩔 수 없이 시멘트 포장도로 바로 좌측 위에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기로 한다.
좌측 능선으로 오르면 지맥 좌측 능선으로 가지친 곳에 조용히 자리잡은 홍두깨산 갈림 삼거리가 있는 분기봉을 오를 수 있는데 그곳으로 오르는 등로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우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는 마음이 아쉽기만 하지만 체력적으로는 즐거운 시간임에 분명하다.
그렇게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칠엽리 하산 갈림 이정표가 서 있는 공터에 도착을 한다.
짧게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오르니 등로는 다시 참꽃과 개꽃 군락지로 이어지고 푸르게 변해가는 봄빛을 따라 오르니 우측으로 지맥 등로가 이어지는 곳 좌측으로 이정표 하나가 서 있어 잠시 들려 본다.
이정표에는 팔조령에서 6.9 Km 진행해 왔고 헐티재까지 11.9 Km 가 남아 있다는 거리와 방향 표시가 되어 있는데 그 이정표에서 위로 올려다 보이는 능선이 홍두깨산을 분기시키는 분기봉으로 오르는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아쉬운 마음 남기고 다시 안부로 뒤돌아 나와 주등로를 타고 비슬지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하얀 철쭉꽃이 만개해 진행하는 산객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고 우측의 무명봉을 좌측으로 우회하며 부드럽게 진행하고 있다.
참으로 아름답고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걸어가는 이 아침이 이 산객에게는 너무나 힐링이 되고 있는 시간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이 시간만큼은 세상사 모두 잊고 그저 지금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초록의 자연과 하나되어 있는 이 산객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주변에는 통나무를 반으로 잘라 놓은듯 한 벤취들이 보이고 참꽃이 지고 개꽃이 그 등로를 대신하는 마루금을 따라 걸어간다.
잠시 더 진행하다 보니 등로 주위 거목에는 주인이 산나물보호구역으로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판이 여럿 보이는데 주인에게 피해되지 않토록 조심하며 진행하는 산행이길 바래 본다.
이제 헐티재까지 11.1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한동안 걸어가니 저 멀리 벤취들이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끝이 나는 밤티재에 도착을 한다.
이곳 밤티재나 밤치재 또는 방치재로 불려지는 고개는 우측의 달성군 우록리와 좌측 청도의 비슬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 달성쪽 도로는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으나 좌측 청도쪽으로는 작은 소로만 나 있어 그 고갯마루로서의 기능은 상실한지 오래된 듯 보인다.
밤티재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계속 이어지고 위로 오를수록 참꽃이 제법 남아 있어 굵은 땀방울 흘리며 오르는 산객의 어려움을 달래주고 있다.
잠시 더 오르니 뚜렷한 등로는 좌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는데 이상해 지도를 살펴보니 우측으로는 우미산을 들렸다 내려오는 우미산 오르막 등로였다.
길도 희미한 그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온몸에 비오듯 솟아지는 땀방울을 닦으며 오르니 드디어 주능선에 도착해 등로 우측에 자리잡은 우미산을 다녀오기로 한다.
크게 가파르지 않은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나즈막한 무명봉이 오르락 내리락하고 그 등로에는 아직 지지 않은 예쁜 분홍빛 참꽃이 반갑게 맞이해 주고 있다.
우미산(747봉) 은 가창 우록뒤산으로 달성군 가창과 경북 청도의 경계 시도 능선상에 우뚝 솟아있는 봉우리로 대구 신천 발원지의 한곳이며 임진왜란때 왜장으로 조선에 귀화한 김충선(1571-1642, 일본명 사야가) 공을 기리는 녹동서원이 자리한 우록리를 청산과 함께 병풍처럼 둘려쌓고있는산이다.
깊은 계곡과 명산답게 기슭에는 남지장사, 백련암, 청련암등 사찰과 고시원, 팬션, 전원주택마을등 새로운 주택지로도 각광받고있다.
산의 높이와 그 세에 비해 주위 잡목들로 인해 조망이 전혀 없음이 조금은 아수운 시간이다.
우미산 정상에서 셀카 놀이를 한 후 다시 뒤돌아 내려오며 참꽃을 구경해 본다.
고도가 낮은 곳에서는 참꽃이 모두 지고 개꽃이 피기 ㅅ작을 하였는데 이곳 우미산 등로에는 아직도 참꽃이 남아 피곤한 이 산객의 활력소 역활을 해주고 있다.
잠시 참꽃 구경을 하면서 내려가니 방금 전 만났던 우미산 갈림 삼거리의 잡목이 무성한 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이제 좌측 하산 등로를 버리고 우측 하산 등로를 타고 비슬지맥 마루금을 따라 본다.
우미산 갈림 삼거리에서 우측 등로를 따르니 잠시 잡목이 잡지만 진행에는 큰 지장이 없다.
잠 시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는 갑자기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변하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젖어 있는 등로가 미끄러워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그렇게 잠시 더 내려가니 등로 좌측에서 뚜렷한 등로가 합류되는데 살펴보니 그 뚜렷한 등로는 우미산 갈림 삼거리 오기 전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는 곳에서 갈렸던 우회 등로였다.
이곳에는 헐티재까지 9.73 Km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표시가 되어 있다.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부드러워지고 여전히 주인이 붙여 놓은 출입금지 경고판만이 나뭇가지에 붙어 흔들리고 있다.
약간의 바위를 지나 오르니 등로는 참으로 아름다운 마루금으로 변하고 봄이 왔다 여름으로 달려가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잣나무 지대를 지나니 벤취2개가 놓여 있는 봉우리에 올라 준비한 김밥 한줄로 허기를 달래 본다.
다시 고도를 높이니 이제 초록빛이 점점 줄어들고 회색빛 겨울이 나타나는데 그것도 잠시 햇빛이 잘 드는 곳에는 어김없이 계절이 변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한동안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에는 거목이 줄지어 늘어섰지만 우측으로는 키 작은 관목과 철쭉나무들이 도열해 울긋불긋 고운 철쭉꽃을 피우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다시 오르니 바위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 바위봉에는 백록생수와 우록가는 길이란 방향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판이 박혀있다.
우록가는 화살표 이정판을 지나 계속 오르니 이제 등로에는 참꽃과 개꽃이 혼재된 형태로 산객을 맞이해 주고 있다.
잠시 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 봉우리에 삼각점이 박혀있고 그 옆 나뭇가지에는 지봉 698.2봉이란 이정판이 붙어 있다.
지도에는 그냥 698.2봉이라 나와 있는데 서래야님이 지봉이라 정상 표시를 했기에 헷깔리기만 한데 이곳 정상도 지봉이 맞기를 바랠 뿐이다.
698.2봉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나와 지맥 등로를 따른다.
이곳 역시 아주 부드러운 등로가 이어지고 그 부드러운 등로 양쪽으로는 참꽃이 아름답게 피어 피로도를 줄이고 있다.
잠시 안부로 완만하게 내려가니 우측으로 백록회관 하산 갈림 이정표가 서 있는데 진행방향으로는 이제 남지정사 표시가 되어 있다.
그곳 이정표를 지나니 곧바로 40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그 송전탑을 지나니 다시 등로는 완만하게 오르는데 등로 주위에는 참꽃이 더욱 예쁘게 피어있다.
송전탑을 지나 소나무와 참꽃을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다시 남지정사와 우측으로 백록마을회관 하산 이정표가 나타난다.
그곳을 지나니 낙엽진 활엽수 등로가 완만하게 이어지는데 그곳에는 아직 봄의 빛깔이 엷게 시작되고 있다.
한동안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달래꽃의 환영을 받으며 오르니 등로 좌측 잡목 사이로 희미하게 지슬지의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다시 조금 더 오르니 등로는 낙엽 등로로 바뀌고 정상에 작은 바위 하나를 지나 다시 부드럽게 오르니 소나무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무명봉에 오른다.
그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등로는 이제 억새지대로 접어들고 진행하면 할수록 더욱 짙은 회색빛 억새가 바람을 타고 서걱서걱 울고 있다.
잠시 평탄한 등로를 따르니 헐티재까지 7.5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넓은 억새밭 한가운데에 예쁜 진달래꽃이 만개된 두그루의 나무에 마음을 빼앗겨 잠시 즐겨 본다.
이곳 위에서는 잘 몰랐는데 내려가 진행하다 이곳을 올려다 보니 억새밭 사면에 너무나 고운 진달래꽃이 예쁘게 피어 있어 천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었다.
그 억새밭에서 좋은 추억을 남기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오르니 갑자기 넓은 헬기장이 나타나는데 그 헬기장 한쪽에는 준.희님이 걸어 놓은 헬기장 802봉이란 표찰과 함께 비슬지맥 청산이라는 정상석이 크게 서 있다.
그 정상석 앞에서 셀카 놀이를 하면서 사진 한장 남기고 시원하게 펼쳐진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겨 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먼저 북쪽으로는 억새밭 지나 지금부터 걸어가야 할 비슬지맥 저 편에 최정산 농장이 펼쳐져 있고 그 뒷편 정상부에는 인공구조물이 높게 솟아 있는 최정산 정상부도 가깝게 다가와 있다.
다녀오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3일 연속 산행에 몸과 마음도 지쳐가고 오늘은 특히나 일찍 산행 마무리 후 서울로 복귀를 해야 하기에 마음과 눈으로만 다녀오고 발걸음은 지맥 등로로 진행을 하기로 한다.
등로 좌측인 서쪽 방향을 살펴보지만 잡목들과 산자락에 가려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비슬산과 조화봉은 아직 보여주지 않고 있다.
짧은 휴식 후 청산의 헬기장을 떠나 다시 시작되는 억새 능선을 따르니 등로는 이제 완만하게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소나무와 억새가 잘 어우러진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조망점쉼터와 녹동서원 가는 갈림 이정표가 서 있는 통점령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진행되는 지맥 등로를 버리고 우측 직진의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조망점으로 올랐다 내려가기로 한다.
잠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저 멀리 육각 정자가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이정표에서 봤던 조망처 쉼터란 정자처럼 보인다.
그곳 정자에서 바라보는 조망 역시 너무나 황홀하기에 한참을 머물다 진행하는 시간이 되었다.
오르자마자 등로 좌측 저 멀리 북쪽으로 최정산 정상부의 인공안테나가 높이 보이고 그 주위로 펼쳐진 넓은 최종산 농장이 한폭의 그림으로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북쪽으로는 여전히 최정산 농장과 정상이 가깝게 다가와 있고 그 최정산 정상부의 인공 구조물 역시 변함이 없다.
그리고 등로 좌측인 서쪽 방향으로는 다음 구간 올라야 하고 이 산줄기인 비슬지맥이란 이름을 낳게 한 비슬산이 또한 가깝게 다가 와 있다.
몇 번 다녀온 비슬산이고 또한 오를 때마다 많은 추억을 남겼던 곳이기에 그 옛 추억을 더듬어 보며 다음 구간에 아름다운 참꽃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도 해 보는 시간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비슬산을 조망한 후 그 좌측을 올려다 보니 방금 전 내려온 802봉의 헬기장 정상에 서 있던 청산 사면에 너무나 아름다운 참꽃 군락지가 펼쳐져 있고 그 사이에 아름답게 채워져 있는 회색빛 억새가 어우러지며 너무나 환상의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그냥 일반 사진에 담아도 보고 줌으로 당겨도 담아 봐도 여전히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그저 가슴속이 울렁거리고 마구 방망이 질을 하고 있을 뿐이다.
올해들어 제대로 된 아름다운 참꽃을 이곳 청산 사면에서 처음 맞이해 보는 것 같다.
참꽃과 파란 소나무 그리고 회색빛 억새가 잘 어우러진 청산 사면 등로를 살펴보고 다시 그 육각정자를 내려가 본다.
조망점쉼터로 다시 뒤돌아 내려 와 이정표를 만나고 그곳에서 좌측 청산가는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90도 꺽여 내려가는 등로를 따라 본다.
잠시 더 내려가니 방금 전 조망점 육각정자에서 봤던 청산 사면에 피어난 참꽃 군락지 하단부의 등로를 따라 내려가다 위를 올려다 보니 그곳에 너무나 아름다운 참꽃 군락지가 펼쳐져 있다.
억새와 어우러진 참꽃의 황홀함에 잠시 발걸음이 느려지는 시간이다.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눈 앞으로는 최정산 농장과 정상부의 인공 구조물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그렇게 억새 능선을 타고 내려가니 식흔이 보이고 이곳 역시 멧돼지들이 많이 서식하도 있는 장소처럼 다가온다.
그렇게 눈 앞으로는 최정산을 등로 좌측으로는 비슬산을 바라보며 걸어가니 우측으로 가창로93길 쉼터 가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직진 방향으로는 이제 헐티재까지 6.6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옆으로는 많은 보리수나무들이 반겨주고 보리수가 익는 계절에 오르면 새로운 먹거리를 맛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억새와 잡목 그리고 낙엽송이 있는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작은 개울가에 최정산목장까지 2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 하나가 낙엽송 아래 넘어져 있고 그곳을 지나 오르니 이제 등로 양쪽으로는 식재된 듯한 작은 소나무가 우거져 진행에 약간의 어려움을 느낀다.
소나무와 억새지대를 지나 오르니 다시 회색빛 억새 구간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억새밭 주위에는 목장의 목초지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금 더 오르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주위에는 3개의 넓은 나무목탁이 있으며 그 한쪽 옆으로느 ㅇ정표도 보인다.
이곳이 바로 최정산 목장과 최정산 정상으로 갈 수 있는 갈림 삼거리이다.
직진 방향으로는 최정산 목장이 바라다 보이고 90도 꺽여 진행 방향인 서쪽 방향으로는 억새밭 넘어 저 멀리 비슬산이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 와 있다.
이곳에서 오늘 처음으로 나물을 뜯으러 올라 온 부부를 만나고 잠시 인사 나눈 후 진행하니 억새 능선이 끝이나기 시작하고 보리수 나무와 참꽃 그리고 산벗이 곱게 피어 조화를 이루는 멋진 등로를 만난다.
잡목과 억새로 진행에 약간의 어려움을 느끼며 걸어가니 거대한 산벗나무 위에는 하얀 벗꽃이 피어 꽃비가 내리고 있다.
오랫만에 감성적인 청년의 기분으로 잠시 걸어 보는 시간이다.
잠시 억새와 잡목 그리고 아름다운 봄꽃이 어우러진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갑자기 넓은 비포장 임도로 바뀌는데 살펴보니 예전에 방화선으로 만들었던 등로같은데 관리가 되지 않아 그 방화선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는듯 보인다.
잠시 더 진행해 안전철봉과 로프가 달려있는 등로를 타고 가파른게 내려갔다 안부 지나 다시 오르니 등로는 여전히 방화선 등로인데 바닥에는 깊은 낙엽이 깔려있어 여간 신경이 쓰이질 않는다.
그렇게 한동안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바위 전망대가 보이고 잠시 올라 내려다 보니 각북면 지슬리와 지슬지가 아름다게 다가온다.
그렇게 지슬리 풍경을 구경한 후 전망바위를 나와 다시 방화선을 따르니 등로는 너무나 아름답고 편안하게 진행된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무념무상으로 걷다 보니 다시 깊은 낙엽 등로가 나타나고 몇번인가 미끄러지며 걷다보니 거꾸로 오는 두명의 산객을 만나는데 이야기 해 보니 가창환종주를 하는 산객들이었다.
방화선 말고는 특별히 볼 것도 없는 방화선을 따르기에 완만한 오르막 등로지만 발걸음은 무척 빠르다는 생각으로 걸어 오르니 다시 무명봉에 오른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계속 이어지는 방화선으로 인해 산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좌측으로 꺽여 완만하게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어느새 봉우리에 오르고 그 봉우리에는 헐티재까지 이제 3.9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어 시간적으로 약간은 여유를 느껴 보는 시간이다.
그 이정표 옆에는 준.희님이 달아 놓은 이정판에 590.5봉이란 글씨와 함께 그 밑에 삼각점이 박혀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여전히 방화선 등로라서 발걸음이 빠르다.
간간히 나타나는 각시붓꽃을 친구 삼아 빠르게 진행하니 무명봉에는 바위들도 보이고 가끔 선답자들의 띠지들도 만나며 그렇게 약간은 지루하게 걸어 본다.
다시 오르고 내림을 반복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오른다는 기분으로 걸어가니 안전철봉과 로프 구간을 타고 오르고 갑자기 많아진 참꽃나무 터널 밑에 설치된 벤취 2개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음료수 한모금 마셔 본다.
참꽃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다시 낙엽진 활엽수 등로에는 봄빛으로 변하려는 몸부림도 감지되고 또 다시 오르막 등로에 안전철봉과 로프가 달려 있는 등로를 어렵게 올라 본다.
그 로프구간을 오르면 정상이라 생각했는데 정상부는 다시 저 멀리 달아나 버리고 이곳은 그 정상으로 오르기 직전의 전위봉이었다.
이제 방화선도 끝이나고 좁은 마루금을 따라 걸어가니 연두빛 봄을 부르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688.6봉에 오르니 그곳 정상에는 거대한 정상석에 신뱅이산이라 적혀 있다.
왜 이곳 이름이 신뱅이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주위의 잡목으로 인해 조망이 없으니 정상석과 삼각점을 사진에 담고 곧바로 신뱅이산 정상을 출발해 본다.
신뱅이산 정상에서 헐티재 방향으로는 안전철봉과 로프구간이 나타나고 그 로프를 따라 가파르게 내려가니 다시 철쭉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안부로 내렸다가 오르니 그곳 정상에는 벤취 2개가 놓여 있다.
그곳 벤취에서 잠시 배낭 내려 쉬면서 음료수 한모금으로 목마름을 달래 본다.
얼마 남지 않은 헐티재까지의 거리를 생각해 여유를 부려 보지만 마지막 남아 있는 676.4봉이 있기에 여전히 몸과 마음은 힘들기만 하다.
벤취봉에서 그곳에 설치된 안전철봉과 로프를 따라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니 잡목 사이로 눈 앞에 676.4봉이 보일듯 말듯 다가오는데 등로는 자꾸만 좌측으로 돌고 돌아 진행되고 있어 혹시 저 높은 676.4봉을 오르지 않고 우회하는 등로가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 보지만 그 희망도 잠시 뿐 결국 돌고돌아 오르게 된다.
그렇게 한동안 내려가니 좌측으로 각북면 금천리와 우측으로 대구미술광장과 정대1리마을 가는 갈림 사거리 이정표가 서 있다.
윙계재라 생각되는 안부 고개로서 그곳을 지나니 한동안 멋진 관목 등로가 이어진다.
그렇게 한동안 평이하게 걷다보니 헐티재 1.41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평상 2개가 놓여 있는 등로를 지나 서서히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그곳에는 안전철봉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그렇게 한동안 온 몸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676.4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그 한가운데엔 조리봉이란 정상석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삼각점이 박혀 있다.
드디어 마지막 봉우리에 올라 큰 한숨을 내쉬며 식수 한모금으로 목마름을 달래보는 시간이다.
잡목 가지 사이로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비슬산 전위봉이 올려다 보이고 그외 다른 방향은 잡목으로 전혀 조망이 없어 잠시 쉰 후 조리봉을 내려가 본다.
완만하게 내려가는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송전탑이 나타나고 그 송전탑 밑을 통과해 계속 진행한다.
그 송전탑 밑에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등로 좌측 저 멀리 지금까지 걸어 온 비슬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송전탑을 지나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제법 넓게 펼쳐져 있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해 본다.
소나무와 잡목이 어우러진 멋진 등로를 따르니 등로 주변으로 차량들이 통행하는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이제 오늘 산행 목적지인 헐티재가 가깝게 다가와 있음을 직감한다.
시간을 보니 이제 막 12시를 넘어가고 있다.
그렇게 평이한 등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이동통신안테나가 설치되어 있고 그 통신안테나를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헐티재와 통하는 902번 2차선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도로 표지판에는 송내길이라 적혀있고 도로 건너 저편으로는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비슬산 등로가 굳게 닫히 철조망 위로 이어지고 있다.
멀고도 힘들었던 3일간의 비슬지맥 산행을 아무 사고없이 무탈하게 마무리하는 시간이기에 더욱 진한 감동이 밀려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등로를 따라 가파르게 내려가니 최정산 숲길 종합안내도가 902번 도로 옆에 서 있고 도로 좌측으로 조금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는 간이 매점이 보인다.
그곳으로 들어 가 시원한 사이다 2캔을 사 한모금에 모두 마셔 버리니 이제서야 정신이 들며 조금은 살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 간이 매점에서 나와 다음 구간 진행해야 할 마루금을 사진에 담고 U자로 꺽이는 도로 한가운데에 서 있는 헐티재 이정석 앞에서 여행객에게 부탁해 사진 한장 남기며 대단원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
3일간 약 80여 Km를 아무 사고 없이 무탈하게 산행 완료 후 헐티재 이정석 앞에서 마무리하는 시간이 행복하기만 하다.
이곳 헐티재는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에서 대구 가창면으로 넘어가는 여섯 개의 고개들 즉 헐티재, 원계재, 통점령, 무등재, 상심이 고개, 율치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한 고개로서 현재는 각북면 오산리에서 대구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로 연결되는 고개로 알려진 헐티재는 과거 금천리에서 정대리로 넘어가는 고개였다.
1980년대 가창면 정대리와 각북면 오산리를 연결하는 자동차 도로가 개설되기 전 1970년대까지 각북과 대구의 월배 또는 화원 지역으로 통하는 지름길로 사용되었다.
지명 유래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고 과거 조선 시대에는 이 일대를 토현으로 표기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헐티를 흙으로 표기한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일설에서는 고개가 험준하고 힘들어서 그 고개를 넘으면 숨을 헐떡이며 배가 고파온다고 하여 헐티재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헐티재는 비슬산(1083.6봉)과 우미산(636.2봉) 사이에 있는 고개로서 청도천의 지류인 각북천의 최상류에서 고개를 넘는다.
각북천 상류는 덕촌리에서 세 갈래로 나뉘는데 서쪽의 오산리를 택하면 헐티재에 이르고 중간의 금천리를 경유하면 원계재 그리고 동쪽의 지슬리를 거치면 율치를 각각 넘는다.
억새 또는 신갈나무 군락이 형성되어 있는 인근의 비슬산 정상부와는 달리 헐티재와 고개 일대는 소나무 군락으로 뒤덮여 있으며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 또는 고산 식물로 아름답다.
송서리에서 각북천을 거슬러 올라와 덕촌리에서 각북천 최상류를 택하여 오산리에서 고개를 넘게 되는데 헐티재는 창녕, 밀양, 부산 방면에서 각북면을 거쳐 대구로 가는 주요 고개 중에서 가장 높은 고도 540미터이다.
오산리 오이마을은 오동나무가 많으며 용천사 가는 길목에 공덕비문이 있고 또한 오산리에는 수령 310년의 버드나무인 당산나무가 있으며 방아타령, 나물노래, 도라지타령, 청도 차산 농악, 청도 삼베 짜기 등으로 유명하다.
오산리에서 남산리, 삼평리, 우산리, 명대리로 이어지는 20 Km는 각북 벚꽃길로 아름다운데 이 길을 지방도 902호선이 지나 헐티재를 넘는다.
헐티재의 정상에는 씨 없는 감 청도 반시라고 새겨진 조형물이 청도 방면 오른쪽 커브길에 세워져 있으며 왼쪽에는 헐티재 휴게실이 조성되어 있다.
휴게실은 청도군의 특산물인 감말랭이를 조그맣게 팔던 곳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커피 등과 같은 음료수에서 간단한 식사도 먹을 수 있는 장소로 바뀌었는데 휴게소에서 아래로 오산리 전경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배낭을 정리한 후 새벽에 주차시킨 애마를 타고 대구 수성으로 내려가 간단하게 샤워하고 서울로 복귀하니 저녁시간이 되었다.
내일부터 함께 할 자료를 정리하고 조금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 곧바로 꿈나라로 향한다.
남아 있는 구간도 조만간 내려 와 멋지게 산행 후 무탈하게 마무리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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