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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비슬지맥(낙동·완)

비슬지맥 제2구간 비오재에서 팔조령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5.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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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북도 경산시와 청도군의 비슬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5년 04월 24일, 25일, 26일 (금요일에서 일요일까지 3일 연속 산행)

              2015년 4월 25일(토요일 당일 산행)

              2015년 4월 26일(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맑고 조망도 좋았지만 갑자기 기온이 오르며 초여름 같이 무더웠던 산행 날씨

산행온도 영상 10도에서 영상 26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비오재(4번 2차선 지방도로)-포도과수원-능선진입-묘지3기-시멘트 포장임도-비포장 임도-묘지 옆 능선진입-무명묘지-축사 이정표(비오재 0.3 Km, 석현교 2.9 Km)-비포장 임도-능선진입-소나무 군락지-감나무과수원-소나무와 철쭉 군락지-274.6봉-이동통신탑-표고버섯재배지-무명묘지지대-대천고개(919번 2차선 지방도로)-시멘트 포장도로-복숭아과수원-벌목지대-일출-비포장 임도-곡돌내재-소나무 군락지-안창산업 채석장-능선진입-이정표(곡돌내재 1.5 Km, 갈고개 4.1 Km)-327봉-소나무 군락지-이정표(곡돌내재 2.9 Km, 갈고개 2.7 Km)-시멘트임도 안부-비포장 임도-복숭아과수원-능선진입-파란색 물통 2개-간벌지대-안전목책과 로프지대-295.5봉-소나무 군락지-이정표(곡돌내재 4.3 Km, 갈고개 1.3 Km, 용산리 1.5 Km)-67번 송전탑-251봉-묘지지대-비포장 임도-발리무인텔-갈고개(69번 4차선 지방도로)-시멘트 포장도로-감나무과수원-삼성경로당-포도과수원-복숭아과수원-대추과수원-비포장 임도-감나무과수원-거목안부 이정표(갈고개 1.0 Km, 대왕산 1.6 Km, 김전소류지 1.5 Km)-안전로프구간-448.1봉 삼각점-소나무 등로-로프지대-478봉-567봉-대왕산(606봉)-598봉-641.2봉 삼각점과 이정표(대왕산 1.2 Km, 잉어재 3.9 Km, 학일산 6.2 Km)-벗고개 이정표(대왕산 2.1 Km, 잉어재 3.0 Km, 큰골산 0.7 Km, 사림리 1.2 Km)-로프지대-520 암봉-468봉 준.희님 응원판-로프지대-시멘트 포장임도-486.1봉 삼각점-466봉-잔디 공터-콘크리트 수로-잉어재(925번 2차선 지방도로)-이동통신탑 이정표(대왕산 5.1 Km, 선의산 3.0 Km, 금천리 1.5 Km, 신방리)-로프지대-돌봉(441봉)-로프지대-로프지대-이정표(잉어재 1.0 Km, 선의산 2.0 Km, 신방리 1.9 Km)-이정표(잉어재 1.6 Km, 선의산 1.4 Km, 신방리 3.7 Km)-659봉-705 암봉 전망대-이정표(신방리, 선의산 정상 0.7 Km, 금정골 도성사 3.0 Km)-암릉길-나무계단-선의산(756.4봉, 정상석과 삼각점 및 전망데크)-나무계단-이정표(선의산 정상, 용각산 5.0 Km, 도성사 3.3 Km)-701봉 이정표(선의산 0.7 Km, 용각산 3.3 Km, 두곡리)-596봉-이정표(선의산 1.7 Km, 남성현재 7.3 Km)-소나무 군락지-529봉 이정표(선이산정상 1시간거리, 용각산정상 30분거리)-용각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잉어재 7.5 Km와 선의산정상 4.2 Km, 용암온천과 상설투우장 6.0 Km와 남성현재 6.3 Km, 용각산정상 0.2 Km와 곰티재 4.1 Km)-진달래꽃 군락지-용각산(692.9봉)-용각산 갈림 삼거리-이정표(선의산 5.1 Km, 남성현재 3.8 Km, 청도소싸움장 4.2 Km, 곰티재 5.6 Km)-벌목지대-482.1봉 삼각점과 이정표(선의산정상 6.9 Km, 남성현재 4.0 Km, 용각산정상 2.5 Km, 응암온천과 상설투우장 3.7 Km)-이정표(선의산 6.4 Km, 남성현재 2.5 Km, 송금리 1.5 Km)-보리고개 이정표(선의산정상 7.6 Km, 남성현재 3.3 Km, 용각산정상 3.2 Km, 청도송금리숫골)-이정표(선의산 7.5 Km, 남성현재 1.4 Km)-501.7봉 삼각점-안산(490봉) 헬기장-이정표(선의산 8.6 Km, 남성현재 0.4 Km)-이정표(선의산 8.8 Km, 남성현재 0.2 Km, 남성현쉼터 0.2 Km)-이정표(선의산정상 10.5 Km, 용각산정상 6.1 Km)-남성현재 0.1 Km, 하도리)-남성현재(25번 2차선 지방도로) 이정표(선의산 8.9 Km, 동학산 5.5 Km와 청도송금리 2.0 Km, 하도리 5.9 Km)-소싸움동상-골동품경매장-270미터 수준점-비포장 임도-원형 군벙커-이정표(남성현재 1.0 Km, 동학산 5.1 Km, 칠곡리 3.5  Km)-이정판(성현, 남성현, 비슬지맥)-대적봉(472.4봉) 삼각점-헬기장-100번 송전탑-비포장 임도-경산공원묘지-이정표(남성현재 3.6 Km, 동학산 2.5 Km, 남천 임도)-철조망-능선진입-안전목책과 로프구간-작은샘터-이정표(남성현재 4.1 Km, 동학산 2.0 Km, 남천 임도)-로프구간-6번 송전탑-삼군경계봉(634봉) 이정표(남성현 4.57 Km, 팔조령 3.43 Km, 동학산 1.66 Km)-5번 송전탑-비포장 임도-공터-군부대 우회 시멘트 임도-군부대 정문 녹슨 철조망-상원산(673봉)-군부대정문-시멘트 포장임도-3번 송전탑-능선진입-송전탑-이철우박사 추모비-비포장 임도-소나무 등로-송전탑-송전탑-묘지지대-헬기장-팔조령(30번 2차선 옛 지방도로, 산장휴게소)-산행종료

산행거리 : 4월 24일(금) 약 22.29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4월 25일(토) 약 38.48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4월 26일(일) 약 19.73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4월 24일(금) 맑고 무척 무더웠던 초여름 같은 날씨에 08시간 00분 (10시 42분부터 18시 42분까지)

              4월 25일(토) 맑고 무척 무더웠던 초여름 같은 날씨에 13시간 41분 (05시 14분에서 18시 56분까지)

              4월 26일(일) 맑고 무척 무더웠던 초여름 같은 날씨에 07시간 00분 (05시 02분에서 12시 02분까지)

교통편 : 애마와 택시 이용 (서정수 동곡택시 010-8006-6997와 장상근청도개인택시 010-8290-5806) 

비슬지맥이란???

낙동정맥 사룡산(683봉) 북쪽 400미터 지점에서 분기하여 서진하며 사룡산(683봉), 구룡산(674.8봉), 발백산(674.5봉), 대왕산(607봉), 선의산(756.4봉), 용각산(692.5봉), 상원산(674.1봉), 삼성산(668.4봉)등 600에서 700미터 대의 산들을 들어 올린 후 비슬산(1083.6봉)에 이르러 북쪽으로 청룡지맥을 분기한후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조화봉(1057.7봉), 수봉산(592.5봉), 묘봉산(514봉)을 지나 천왕산(619.2봉)에 이르러 남쪽으로 열왕지맥을 분기한후 동남진하며 호암산(611.2봉), 화악산(930봉), 형제봉(556.7봉), 종남산(663.5봉), 팔봉산(391.4봉), 붕어등(278.8봉)을 지나서 밀양시 상남면 외산리에서 낙동강에 발을 담그며 그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146.5 Km가 되는 산줄기로 최고봉인 비슬산의 이름을 빌려와 비슬지맥이라 칭한다.
비슬지맥은 낙동정맥 및 청룡지맥과 함께 금호강의 남쪽울타리를 분담하고 밀양강의 서쪽 울타리역활을 처음부터 끝까지 맡아와 밀양강을 낙동강에 합수시키고 동쪽 밀양강 건너로는 낙동정맥에서 온 영축지맥의 끝을 바라보고 남쪽 낙동강 건너로는 낙남정맥에서 온 무척지맥의끝을 바라보며 그 끝을 맺는다.
지나가는 산들은 사룡산(683봉), 구룡산(674.8봉), 발백산(674.5봉), 대왕산(607봉), 선의산(756.4봉), 용각산(692.5봉), 상원산(674.1봉), 봉화산(473.5봉), 삼성산(668.4봉), 우미산(-0.7 Km, 747.3봉), 비슬산(1083.6봉), 조화봉(1057.7봉), 수봉산(592.5봉), 묘봉산(514봉), 천왕산(619.2봉), 배바위산(607.1봉), 호암산(-0.7 Km, 611.2봉), 화악산(930봉), 형제봉(556.7봉), 종남산(663.5봉), 팔봉산(391.4봉), 붕어등(278.8봉)을 지난다. 

지나는 행정구역은 사룡산에서 건천읍, 영천시, 청도군경계에서 시작하여 구룡산에 와선 건천읍과 영천시와는 작별하고 경산시와 청도군경계를 한동안 따르다가 상원산 근방에 와서 대구광역시와 경북도경계를 만나서부터는 도경계를  따라 비슬산, 조화봉, 수봉산, 천왕봉, 화악산까지 간다.화악산을 지나서야 그동안 처음부터 계속돼온 청도군경계를 벗어나 밀양땅으로 들어선다.
비슬지맥 전체 146.5 Km중 청도군경계를 109미터쯤 지난다.
 

비슬지맥에서 분기하는 지맥은 비슬산에서 북진하는 청룡지맥(약 37 Km)과 천왕산에서 남진하는 열왕지맥(약30.4 Km)이 있다.

 

 

오랫만에 홀로 자연을 느끼며 마음껏 달렸던 황홀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8시간 산행 후 어둠속에 애마를 회수 해 택시 기사님이 추천한 경산시 진량에서 저녁을 먹고 하룻밤 자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체되어 너무 늦어지기에 진량가는 길목에 있는 금호읍에서 어렵게 여관을 잡고 샤워 후 김치찌개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저녁 식사 후 곧바로 여관으로 돌아 와 곧바로 잠자리에 들어 새벽 3시에 일어 나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찾아보지만 찾지 못해 결국 새벽에 진량으로 넘어가 다시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고 김밥 2줄과 호빵 한봉지를 사서 배낭에 넣고 다시 산행 들머리인 비리재(비오재)로 간다.

오늘 산행 들머리인 비리재 일명 비오재에 도착을 하니 새벽 5시 15분을 넘기고 들풀애정원 옆 공터에 애마를 잘 주차시킨 후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새벽 5시 16분을 넘기고 있다. 

 

 

산행 첫날 계획했던 갈고개까지 진행을 못하고 비리재인 비오재에서 산행을 마쳤기에 오늘은 조금은 빨리 진행을 해 팔조령까지 가면 최상이겠지만 날씨가 더워져 팔조령까지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남성현재까지는 진행을 해 보려 노력하며 걸어 본다.

일출이 시작되기 전까지 여명의 빛을 받아 기분 좋게 시작을 하지만 해가 떠오르며 갑자기 날씨가 더워지면서 산행에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할 쯤 드디어 대왕산 정상에 도착해 주위 조망을 즐기며 셀카 사진 한장 남기는 시간은 참으로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이 기분 이대로 팔조령까지 진행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어젯밤 시간이 늦어져 밤 11시가 다 되어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3시 20분에 기상하여 산행 준비 후 진량으로 넘어가 아침식사와 점심 도시락 그리고 식수와 음료수를 준비한 후 산행 들머리인 비리재인 비오재에 도착을 해 산행 준비를 해 본다.

맑은 날씨에 기온도 적당해 산행하기 좋은 날씨이지만 일출 후 얼마나 높은 기온까지 오를지 걱정도 앞서는 시간에 비오재 도로 표지판이 있는 좌측 포도과수원 사이로 나 있는 등로를 따라 멀고도 긴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4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비리재엔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 한가한 모습의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기억되는 나즈막한 고갯마루이다.

 

 

비닐이 씌워진 포도 과수원을 지나 언덕으로 오르니 가시나무와 잡풀들이 우거져 등산복을 잡고 늘어진다.

초반부터 난해한 등로를 통해 어렵게 오르니 금새 멋진 묘지들이 있는 묘지지대에 도착을 해 어제 넘어 온 비슬지맥 마루금을 뒤돌아 보며 지나온 등로의 이름도 불러 준 후 진행하니 잘 발달된 비포장 임도를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우측으로 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른다.

포장도로를 오르며 뒤돌아 보니 어제 진행한 비슬지맥 마루금이 저 멀리 펼쳐져 있고 그 아름다운 조망을 가슴속에 남긴 후 진행해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다시 갈림 삼거리에서 좌측 가파른 비포장 임도를 따른다.

잠시 능선으로 오르니 언덕 정상부 우측에 무명묘지가 보이고 마루금은 그곳에서 좌측 직진의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우측 묘지 옆 희미한 능선을 타고 내려가며 이어지고 있다.

잠시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 앞 저 멀리 비닐하우스 같은 건물이 보이는데 살펴보니 하나는 축사 건물이고 또 하나는 볏짚을 덮어 놓은 비닐이 맞는듯 하다.

 

 

다시 잡목을 헤치며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비포장 넓은 임도와 만나고 그 임도를 따르니 금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조금 걸어 가 보니 그곳에 이정표 하나가 서 있고 그 이정표 저편에 볏짚을 덮어 놓은 비닐과 그 좌측 저 멀리 축사 건물도 나타난다.

이정표에는 비오재에서 300미터 진행을 하였고 진행 방향으로는 석현교 2.9 Km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되어 있다.

그 이정표를 사진에 담고 다시 되돌아 나와 넓은 비포방 임도를 따르니 비슬지맥 마루금은 소나무 옆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소나무 군락지로 통한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가는 아침 시간은 참으로 힐링되는 시간임에 틀림없다.

세상을 살면서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 모두를 잊고 그저 눈 앞에 펼쳐진 자연만을 바라보며 그 자연속에 하나되는 시간이기에 욕심도 없고 돈도 필요없는 그저 자연 그대로를 느끼는 시간이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그렇게 잠시 더 진행하니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조금은 희미해지는 등로가 나타나지만 주의해 진행하니 길찾기에 큰 어려움은 없다.

등로 좌측으로 열리는 석현쪽 마을을 내려다 보고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감나무과수원이 잠시 펼쳐지더니 다시 키작은 철쭉꽃과 소나무가 잘 어울려있는 등로에서 그 아름다움에 잠시 발걸음도 멈춰 본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니 평범한 등로 위에 274.6봉이란 준.희님의 이정판이 보이고 그 봉우리 앞뒤로는 소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다.

 

 

다시 274.6봉을 지나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따르니 간벌된 나무들이 보이고 그 소나무 밑에는 키작은 철쭉들이 경쟁하듯 피어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그곳을 지나 진행하니 갑자기 눈 앞이 열리면서 등로 우측 저 앞으로 대천고개에서 이어지는 919번 지방도로와 곡란리쪽 평화로운 마을의 화사하게 피어난 봄꽃이 화려한 색상을 펼치며 아름답게 다가 온다.

시골에서 자란 이 산객의 눈에는 왜 이리 저런 풍경들이 황홀하면서도 아름답게 다가오는지 그저 눈물이 날 정도의 황홀경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곡란리 마을을 바라보며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좌측에 이동통신탑이 보이고 곧이어 등로 우측에 보이던 비닐하우스의 표고버섯 재배 단지도 들여다 본다.

다시 능선으로 들어 진행하니 무명묘지지대가 나타나고 금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919번 도로 위에 도착을 한다.

이곳 대천고개는 운면면 대천리란 마을 이름에서 유래된 이름처럼 느껴지는데 대천리는 운문면의 중심지로 대천리 옛 터는 운문댐 건설로 모두 수몰이 되었고 현재의 대천리는 이주 단지를 만든 것으로 금천면 방지리를 나누어 운문면 대천리와 방지리가 되었다.

운문산과 가지산 및 문복산에서 흘러내려온 무적천과 마일리와 정상리에서 내려온 봉하천과 경상북도 경주시 산내면 지역에서 내려온 물들이 모두 합해져서 큰 내를 이룬다고 대천이라고 하였다.

운문댐 건설 전에는 자연 마을이 많았지만 지금은 모두 운문댐에 수몰되어 찾아볼 수 없는 지역이 되었는데 수몰되기 전의 마을로는 곡리, 평리, 원리, 창마가 있다.

이곳에서 919번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도로 옆 복숭아과수원으로 통하는 시멘트 포장임도를 따라 올라 가 본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복숭아과수원과 저 멀리 축사가 올려다 보이는데 도화가 막 피어나기 시작해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잠시 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니 계속 이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해도 될듯 한데 원지맥 등로는 좌측의 절개지를 따라 올라야 될 것 같아 벌목된 절개지로 오른다.

절개지를 올라 소나무가 있는 능선 앞에 서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라 온 대천고개와 곡란리와 대종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 낙동정맥의 단석산 근처 마루금에서 하루 해가 찬란하게 떠오르고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그 빛을 받아 본다.

 

 

아름다운 하루의 일출을 만난 후 능선으로 들어가니 멋진 소나무 등로에 등로는 넓은 비포장 임도같이 열려있다.

잠시 그 비포장 같은 임도를 타고 오르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등로는 우측 희미한 등로로 이어지는데 나뭇가지에 선답자들의 띠지가 달려있어 길찾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빼곡히 자라고 있는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진행하니 갑자기 기계음이 들리면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비포장 임도가 보이고 그 임도 건너편엔 천길 낭떨어지 같은 절개지 아래 거대한 안창상업이란 채석장이 산 하나를 통째로 갈아 먹고 있는 풍경이 멋진 아침 시간이 이 산객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고 있다.

그래도 그 안창산업 채석장 아래로 펼쳐진 희곡지와 곡란리 및 용산리 마을이 아름답게 다가 와 조금은 위안을 주고 있다.

 

 

천길 낭떨어지처럼 보이는 안창산업의 채석장과 희곡지를 내려다 보고 잠시 아찔해져 오는 머릿속을 정리하고 앞을 바라 보니 이제부터 걸어 올라랴 할 비슬지맥 마루금이 눈 앞에 빤히 올려다 보인다.

바로 눈 앞에 327봉이 보이고 우측 저 멀리 용산면의 진산으로 알려진 남산도 올려다 보인다.

수많은 용들과의 전설과 함께 민초들의 삶을 함께한 산이기에 이곳 주민들에게는 추앙받고 있는 산이다.

 

 

잠시 등로 우측으로 안창산업 채석장을 내려다 보며 걸어가니 등로는 이제 비포장 임도 같은 잘 나 있는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잡목이 우거진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좌측 능선으로 진입하기 전 직진의 방향을 바라보니 우측 천길낭떨어지 절개지가 보이고 그 좌측으로 언제 사라질지 모를 숲이 위태롭게 보인다.

능선으로 들어가니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갈고개까지 4.1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이정표를 지나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다시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희미한 등로를 따르니 그곳에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우측으로는 안창산업으로 통하는 등로인듯 보이고 지맥 마루금은 좌측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즈막한 둔덕처럼 보이는 327봉을 넘어 무명묘지를 지나니 간벌된 소나무 군락지가 다시 나타나고 이제 등로 좌측으로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이는데 좌측 앞으로는 과수원과 그 과수원을 관리하는 건물이 보이는듯 하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 방향으로 내려가니 갈고개까지 2.7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자마자 곧이어 시멘트 포장임도로 내려간다.

이곳 시멘트포장임도는 북쪽으로 경산의 용성면 용산리와 남쪽의 청도군 금천면 갈지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인데 이곳 갈지리에 과수원이 생기면서 시멘트 포장도로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유지라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판을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서고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는데 복숭아과수원과 그 과수원을 관리하는 작은 건물이 보인다.

과수원이 끝나기 직전 시멘트 포장도로는 이제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는 직진의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오른다.

진행하다 살펴보니 등로 좌측으로 방금 전 지나 온 과수원을 반원형 방향으로 돌ㄹ아 진행을 하는데 무명봉 정상부에는 과수원에서 사용하는 듯 보이는 파란색 물통 2개도 서 있다.

잠시 소나무 군락지와 간벌 지역을 지나니 304봉을 우측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우회 등로를 통해 통과한 후 잠시 더 오르니 금새 295.5봉의 삼각점이 나타난다.

 

 

이정판도 없는 삼각점만 남아 있는 295.5봉을 지나 다시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우측으로 용산리 하산 등로가 표기되어 있고 좌측으로 갈고개까지 1.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좌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을 하니 67번 송전탑을 지나고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무명묘지도 지난다.

나즈막한 무명봉을 올랐다 내려가니 몇기의 묘지들이 있는 비포장 임도길로 나오고 그곳에서 바라 본 청도쪽 방향에는 수많은 나즈막한 산군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묘지를 만들면서 생긴듯한 비포장 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 보니 이제 등로 우측으로 갈고개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뒷편으로는 많은 과수원 지나 448.1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도 시원하게 올려다 보인다.

원 마루금은 좌측 등로를 따라 바로 발 아래 펼쳐진 모텔을 우측에 두고 좌측 능선을 따를 것 같은데 실제 등로는 비포장 임도같은 마루금을 따라 곧바로 갈고개 방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잠시 더 내려가니 69번 4차선 지방도로가 바로 우측에 보이는 시멘트 포장 임도에 도착을 하고 좌측으로 그 포장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발리무인텔이 서 있고 곧이어 갈고개 횡단보도 앞에 도착을 해 도로 건너 갈고개휴게소로 69번 4차선 도로를 건넌다.

이곳 갈고개에 대한 자료는 정확히 찾지 못하였지만 이 고개가 있는 갈지리에서 그 유래가 온 듯 하여 갈지리를 찾아 본다.

갈지리는 삼성과 갈마리라고 부르지만 표기는 갈지라고 하는데 갈지는 산이 높지 않아 계곡이 깊지 않으며 따라서 땅이 메마르다고 해서 갈지라고 한다고도 전하고 있어 김전에는 한 마을에 저수지가 8개나 준비된 것이다.

구복은 길이나 개울이 구부러진 곳을 구복이라고 하는 곳이 많은데 갈지리 구복은 동곡천이 마을 앞을 흐름에 크게 굽어서 지나가므로 구복이라고 했다. 갈지는 경산시 남산면에도 갈지리가 있는데 옛날에 면리제가 실시되기 전에는 이곳이 한 마을로 불렸던 것이라고도 전한다.

조선시대 말까지 밀양군 고미면에 속해 있었고 1896년 청도로 이관되면서 일위면에 속해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금천면으로 이속되면서 삼성과 갈지 그리고 구복을 합해서 갈지리가 된 마을로서 갈지리에는 고인돌이 남아 있어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좋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갈고개휴게소에 들려 주인장과 몇마디 이야기를 나눈 후 라면이라도 끓여주면 먹고 가려고 했는데 불가능하다고 하니 시원한 음료수 한병 사 마시고 곧바로 휴게소와 좌측 모텔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삼성경로당 방향으로 올라가 그 경로당 앞에서 우측 축사 건물과 과수원을 따라 우측으로 진행 해 다시 만나는 시멘트 포장도로 삼거리에서 이제 좌측 도로를 따라 오른다.

한동안 이어지는 괏원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라 온 갈고개와 그 뒤로 비슬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올려다 보인다.

 

 

조금 더 오르니 시멘트 포장 임도 좌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갈리는 갈림 삼거리와 만나고 이곳에서 시멘트 포장 임도를 버리고 좌측 비포장 임도로 올라 간다.

오르니 등로 옆에 과수원을 관리하기 위한 작은 가건물이 보이고 곧이어 감나무 밭이 나타난다.

그 감나무 밭을 지나니 멋진 소나무 한그루와 느티나무 한그루가 서 있고 그 사이로 등로가 열려 있다.

이제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가파르게 오르니 등로는 좌측으로 우회하듯 이어지는데 소나무 대신 연두빛 잎새가 피어나기 시작하는 활엽수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안부에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좌측으로 김전소류지 하산 갈림 이정표가 서 있는 삼거리 안부에 도착을 한다.

 

 

김전소류지 갈림 삼거리인 느티나무 아래에서 잠시 물 한모금 마시고 이제 우측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에는 로프가 달려있어 그 가파른 오르막 등로의 경사도를 짐작하게 만든다.

한동안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로프를 따라 오르니 표식이 사라진 448.1봉의 삼각점봉에 도착을 한다.

동곡305라는 삼각점 표시가 되어 있지만 실제 삼각점에는 그 표식이 전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이제 대왕산까지 약 150미터의 고도차이를 극복해야 하기에 마음 느긋하게 먹고 천천히 올라 보는 시간이다.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무명봉을 지나 다시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로프 오르막 등로가 반겨준다.

힘들게 478봉을 지나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다시 급경사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567봉을 넘어 대왕산으로 전진한다.

한동안 굵은 땀방울 흘리니 벌목된 구간이 짧게 나타나고 곧이어 이전된 묘지터 같은 공터에 정상석과 이정표가 보이는 대왕산 정상에 어렵게 도착을 한다.

이곳 청도의 대왕산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니 부산일보에 연재되었던 자료가 있어 인용을 해 본다.

경북 청도군 금천면과 경산시 남산면에 걸쳐 있는 대왕산(606봉)은 소박한 겨울 산을 찾는 꾼들에게 안성맞춤으로 높지도 수려하지도 않지만 완만한 능선을 걷는 재미가 남다르다. 
대왕산은 600미터를 겨우 넘긴 작은 산으로 주변 봉우리와 연결된 능선도 부드럽고 완만하며 산세는 겸손한데 이름은 거창하기 이를 데 없다.

주변의 높은 봉우리들을 제치고 큰 임금을 뜻하는 이름을 얻었기 때문인데 그 이름 때문인지 이 산 아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왕산이 최고봉이라 확신하고 있다.
연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을 어르신들을 붙잡고 물어보니 사람 따라 다른 이야기를 해줬으나 아마도 기우제와 관련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금천 사람들은 옛날부터 큰 가뭄이 들면 대왕산 정상에 올라 산신에게 기우제를 올렸다고 하는데 이런 것을 따져 볼 때 대왕은 산신의 별칭일 가능성이 높다.

무속 신앙의 사례를 볼 때 유명한 산의 신을 백두대왕 또는 태백대왕으로 부르고 있는 까닭이다.

 

 

대왕산 정상에는 또한 항일대왕산죽창의거전적지란 표지석도 정상석 옆에 서 있어 자료를 다시 한번 찾아 보게 만든다.

항일대왕산죽창의거는 1944년 7월에 안창률과 김명돌 및 박재달 등 29인이 일제의 징용과 징병에 저항하기 위해 대왕산에 진지를 구축한 후 죽창으로 무장하고 대왕산 사월굴에 모여서 의거대를 조직해 일제의 무력 진압에 맞서 싸울 것을 결의한 것을 기리기 위한 표지석이다.

잠시 정상 주위를 둘러보고 정상석 뒷쪽으로 가 그곳에 펼쳐진 풍경들을 살펴보는데 경산시 남산면쪽 들판과 저 멀리 금학산과 경산시내가 아스라히 눈에 들어 온다.

 

 

경산쪽 풍경을 둘러 본 후 다시 방금 전 올라갔던 벌목된 나무들이 너부러져 있는 남쪽으로 가 청도쪽에 펼쳐진 풍경과 조망을 살펴 본다.

남쪽 좌측 저 멀리 잡목 가지 사이로 낙동정맥의 최고 구간중 한곳인 영남알프스의 가지산 줄기가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오고 바로 남쪽 방향으로는 억산이라 생각되는 산줄기와 운문지맥 마루금이 박무속에 아련하다.

언젠가는 모르겠지만 꼭 한번 더 올라야 할 마루금이기에 눈에 넣어 보지만 그 상세한 영상은 아직 눈에 익지 않다.

 

 

그렇게 한동안 그 대왕산 정상에서 멋진 풍경을 조망한 후 북서쪽으로 열려있는 등로를 따라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며 비슬지맥을 이어가 본다.

잠시 진행을 하니 등로 옆에 큰 바위 하나가 반겨주고 나즈막한 봉우리로 오르니 이제부터 올라야 할 598봉이 잡목 사이로 아스라히 올려다 보인다.

다시 평이하게 진행하다 우측으로 나 있는 우회 등로를 버리고 직진의 봉우리로 오르니 601봉에 도착을 하고 지나온 등로를 살펴보니 저 멀리 대왕산이 벌써 말없이 멀어지고 있다.

 

 

다시 연두빛으로 변해가는 자연의 빛을 따라 평이하게 걸어가니 금새 학일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와 만나고 살펴보니 641.2봉 정상이다.

삼각점이 박혀있고 이정표도 서 있는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학일산이고 우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하면 잉어재로 가는 비슬지맥 마루금 방향이다.

자료를 살펴보니 이곳 산꾼들은 가끔 대왕산과 학일산을 묶어 산행을 진행하는 코스도 있는듯 보이는데 이 산객에게는 먹 옛날 이야기나 평생 한번 다시 오르지 못할 것 같다는 그런 아쉬움을 남겨 보는 이정표이다.

 

 

학일산 갈림 삼거리를 지나 다시 평이하게 진행을 하니 활엽수림이 있는 좋은 등로를 따르고 다시 무명봉 두어개를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등로 좌측으로 큰골산이 우람하게 솟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약간의 잡목의 저항이 있는 등로를 지나니 다시 등로는 우측 봉우리를 좌측 우회 등로를 통해 진행되고 등로 좌측으로 큰골산으로 이어지는 갈림 사거리에 벗고개란 이정판이 반겨 준다.

이곳 벗고개는 일명 복고개라고도 하는데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금천리에서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사림리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복고개는 청도군 매전면에서 경산시 남산면으로 가는 유일한 고개이다.

벗고개 또는 벗곡재라고도 부르는데 금천리에서 동쪽의 마당 마을을 거쳐 오르면 복고개를 넘어 경산시 남산면에 이르고 금천리에서 서쪽의 이현재 마을을 거쳐 오르면 잉어재를 넘어 경산시 남천면에 도달한다.
복고개는 선의산(756.4봉)과 대왕산(606봉) 사이의 고개로서 복고개의 청도군 비탈에는 소나무 군락이 지배적이지만 경산시 남산면 방향으로는 신갈나무 군락이 널리 발달해 있다.
구동창에서 동창천의 지류인 관하천을 거슬러 올라 금천리의 동쪽 계곡을 택하면 마당 마을이 있고 여기서 산길을 오르면 해발 고도 420미터의 복고개에 이르는데 옛날 경산 자인장을 내왕할 때 이용하던 고개였고 금천리는 베틀 노래로 유명하다.

현재는 지방도 925호선이 훨씬 낮은 잉어재(373미터)를 통과하고 있으며 복고개는 이 산객처럼 산행을 위해 오르는 사람 이외에는 왕래하는 행인이 없어 점차 폐도가 되고 있다.

 

 

벗고개 안부로 내려갔다 다시 520미터 높이로 오르는 등로 역시 가파르기 그지없어 많은 땀방울을 요구하고 있다.

묘지 한기를 지나 오르니 다시 연이어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지대를 지나니 가파른 오르막 등로에 걸려있던 로프가 보이기 시작한다.

땀을 흘리며 어렵게 오르니 정상부에는 커다란 바위 하나가 앞을 가로막고 그 바위 옆 나뭇가지에는 준.희님이 붙여 놓은 비슬지맥 520미터란 이정판이 반겨 준다.

지나온 방향으로는 641.2봉 지나 좌측 저 멀리 대왕산이 아주 멀게만 느껴지는 거리로 달아 나 있다.

 

 

바위가 있는 520봉을 지나 좌측으로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경산시 남산면의 사림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큰 바위가 하나 더 보여 그곳에 앉아 잠시 준비한 김밥 한줄로 허기를 달랜 후 출발하기로 한다.

잠시 김밥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진행을 하니 등로 앞 우측으로 조곡재로 통하는 455봉이 보이고 곧이어 또 다른 바위 하나가 등로 옆에 서서 산객의 눈길을 잡는다.

 

 

그 바위를 지나 한동안 걸어가니 준.희님의 응원 이정판이 있는 468봉을 지나고 약간의 가시덤불이 있는 391 봉우리에서 다시 로프가 달려있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한동안 내려가 본다.

로프가 끝나고 약간의 잡목이 등산복을 잡아 채고 있지만 견딜만 하고 그렇게 잠시 더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비포장 임도를 잠시 내려다 보고 오르니 삼각점이 있는 486.1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이어지와 신방소류지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저수지 아래에는 많은 민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평이하게 걸어 내려가니 드넓은 잔디가 깔려 있는 공터에 내려서고 그 공터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큰 나무 한그루가 서 있고 그 나무를 지나 콘크리트 수로를 따른다.

등로 우측으로 이어지와 신방소류지가 더욱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으로는 455봉에 연두색 봄이 오는 빛깔이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조금 더 진행해 내려가니 잉어재로 올라오는 925번 2차선 포장도로 넘어 저 멀리 이제부터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올라야 할 선의산 줄기가 한누에도 꽤 높게 올려다 보인다.

 

 

그렇게 올라야 할 선의산 줄기를 올려다 보며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925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잉어재에 도착을 하고 그 도로를 따라 우측 고갯마루로 오르니 도로 좌측 콘크리트 옹벽 위에 경산시 남천면 도로 표지판과 이동통신탑 그리고 선의산까지 3.0 Km가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곳으로 콘크리트 옹벽을 뛰어 올라 방금 전 지나온 잉어재 도로를 내려다 본다.

잉어재는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금천리에서 경산시 남천면 신방리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이곳에 나 있는 두개의 고개중 하나이다.

금천리에서 선의산(756.4봉)의 동북 지맥을 넘으면 잉어재이고 구곡리에서 선의산의 서남 지맥을 넘으면 말마리 고개이며 잉어재란 명칭은 뒷산의 모양이 잉어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또한 잉어태 고개라고도 한다.
잉어재는 선의산과 대왕산(606봉) 사이에 있는 고개로서 잉어재의 청도군 기슭에는 소나무 군락이 지배적이지만 경산시 남천면 및 남산면 방향으로는 신갈나무 군락과 신갈나무 및 소나무 군락 그리고 낙우송 군락도 잘 발달해 있다.
매전면 동산리 구동창 마을에서 동창천의 지류인 관하천을 거슬러 올라 금천리의 서쪽 계곡을 오르면 이현재 마을에 이어 잉어재에 이르는데 대구 약령시에 약재를 팔러 등짐을 지고 넘던 고개였으며 조선시대에 매전면 동산리에는 매전역이 있었다.
마을은 금천리에서 가장 오지에 속했으나 현재는 지방도로 925번이 해발 고도 373미터에서 고개를 통과하고 있어 옛날보다 교통이 많이 좋아진 마을이기도 하다.

 

 

잉어재에서 잠시 능선 등로를 따라 오르니 다시 좁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부터는 로프가 달려있다.

좁은 공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물 한모금 마신 후 다시 그 로프를 타고 오르니 무명묘지를 지나 한동안 아름다운 연두빛 등로가 열려 있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들과 관목이 잘 어우러진 멋진 마루금이 이어지고 등로 옆에 서래야 박건석님이 종이 코팅지에 441봉을 돌봉이라 적어 놨다.

 

 

등로는 다시 좌측으로 진행되고 드넓은 등로가 마치 비포장 임도처럼 잘 나 있어 진행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다만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기온이 오르면서 많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기에 그것이 문제가 될 듯 하다.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로프 구간이 나타나고 사면 등로가 끝나자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에는 로프가 달려있다.

한동안 그 로프를 따라 오르니 우측으로 신방리 하산 갈림 등로가 있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이제 선의산까지는 2.0 Km 정도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신방리 갈림 삼거리를 지나 초록빛 등로를 따르니 다시 나즈막한 무명봉과 안부를 번갈아 타며 진행을 하게 된다.

좌측으로 봉우리 하나를 우측 우회 등로로 진행을 하고 잉어재에서 1.6 Km 선의산까지 1.4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잡목 사이로 올라야 할 마루금과 그 우측 저 멀리 선의산 자락을 올려다 보며 걸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더 진행을 하니 659봉우리의 선답자 띠지에 고동봉이라 적혀 있어 사진 한장 남긴 후 내려가니 연두빛 등로가 너무나 황홀하게 열려 있다.

 

 

다시 평이한 듯 걸어가니 등로 앞에 거대한 암봉이 나타나고 잠시 후 금붓꽃 군락지도 만난다.

로프를 타고 그 눈 앛에 펼쳐진 암릉을 오르니 일망무제의 멋진 조망이 열리고 다시 한번 더 설치된 로프를 따라 암봉 위로 오르니 바위 전망대가 나타난다.

그 전망대에서 지나 온 북동방향을 살펴보니 잉어재에서 어렵게 올라 온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앞으로 진행 방향으로는 500미터급 봉우리들이 보이고 저 멀리 진달래꽃이 아름다운 용각산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가야 할 방향 감각을 잃고 헤매였지만 자세히 살펴본 후 용각산 방향을 제대로 확인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전망대 주위에 곱게 피어 난 진달래와 산벗들이 봄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등로 좌측으로는 지나 온 비슬지맥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청도의 화양읍과 남천면쪽 마을이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좌측 저 멀리에는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비슬지맥의 상원공원묘원과 상원산 줄기가 보인다.

이곳은 이제 연두빛 봄이 찾아 오기 시작하며 너무나 맑고 밝은 빛으로 이 산객의 어려운 발걸음에 용기를 주는 듯 하다.

저 멀리 희미하게 낙동정맥 마루금이라 생각되는 산줄기가 눈에 들어오는데 잘 분간이 되지 않아 아쉽지만 아마도 영남알프스의 산군들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쉬워 다시 한번 지나 온 비슬지맥 마루금을 돌아보고 진행해야 할 등로 좌측으로는 등진산 줄기도 살펴 본다.

그래도 가야 할 길이 멀기에 그 전망 바위를 떠나 멋진 활엽수 등로를 따르니 이곳 능선부에는 이제 막 참꽃이 피어나 화사하게 인사를 건넨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우측으로 금정골 도성사와 좌측으로 신방리 하산 갈림 이정표가 서 있는 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금정골은 제법 이름이 있는 계곡인듯 하다.

금정골이 있는 청도의 두곡리는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에 속하는 법정리로서 두실과 숲실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

두실에서 두곡이 유래되었는데 두실은 선의산과 용각산의 사이에 형성되어 있어 두메산골이라는 뜻이며 한자로 두곡이라고 한다고 전해지며 디실이라고도 한다.

마을은 디실, 숲실, 중각단, 절골, 말마리, 암자골 등이 있는데 숲실은 두곡리에서 두 번째로 큰 마을로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이전에는 임곡동으로 독립된 마을이었다.

두곡리의 큰 골짜기 중 하나인 암자 골 입구에 자리하고 있으며 중각단의 각단은 동네에서 약간 떨어진 곳을 일컫는 말로 가운데 있다는 뜻이 된다.

암자골에서 양지 바른 곳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아랫마을과 암자골의 중간에 있다고 해서 중각단이라 한다.

절골은 옛날에 절이 있어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시누대밭으로 변하고 옛날 사람이 살 때의 감나무가 나이도 잊은채 대나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2013년 현재 2가구가 살고 있으며 옛터는 모두 비어 있고 절골 안쪽에 말마리라고 해서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하도리로 넘어가는 고개 마루에 몇 집이 살고 있었다고 하나 없어진 지 오래이다.

암자 골은 숲 실 안쪽 선의산 아래에 암자가 있어서 이름이 붙었는데 암자가 있었던 자리는 현재 농지로 바뀌었다.

암자 골은 선의산과 용각산의 중간에 있어 해방 전후로 해서 지역의 빨치산 때문에 마을을 비우고 현재의 숲 실 옆 새각단으로 옮겨와서 살았으며 경산시 남천면 송백리로 통하는 고갯길이 있다.

그 갈림 사거리 이정표를 지나 약간의 바위와 참꽃을 친구 삼아 오르니 많은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는 정상부로 오르는 철계단이 나타난다.

 

 

그 철계단을 타고 오르니 아래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넓은 공터 위에 정상석 2개와 삼각점 그리고 일제만행 쇠말뚝 뽑은곳과 나무 전망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정상부의 사진을 담고 셀카 놀이를 하면서 증명 사진도 한장 남겨 본다.

선의산(756.4봉)은 경산 남천과 청도 매전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마을 주민들은 마음산이라 고 불러왔다.
이 산을 바라볼때 편안한 마음을 준다고 하여 마음산이라한다고 주민들은 잘못 알고 있어 한문으로 표기하여 선의산이라 한 것이바뀌어 선의산으로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선의산은 마음산이 아니고 산능선의 형국이 말의 안장처럼 생겼다고하여 마안산이라고 하였던 것이 한자로 표기하면서 선의산으로 잘못되었다는 설이 신빙성이 있다.

사룡산에서 시작하는 비슬 지맥의 한 봉우리에 해당하며 동으로는 대왕산, 발백산, 구룡산, 사룡산으로 연결되며 남으로는 용각산이 우뚝 솟아 연결되며 비슬산으로 뻗어나간다.

산의 동쪽에는 소붓골산(비로봉), 큰골산, 천주산 등이 있고 관곡지, 신천지 등의 크고 작은 저수지가 많이 나타난다.

 

 

선의산 정상에서의 조망 역시 환상적인데 방금 전 바위 전망대에서 만났던 하도리쪽 풍경을 먼저 만나 본다.

봄이 오는 연두빛 자연속에 하얀 산벗과 붉은 참꽃이 어우러져 너무나 황홀한 풍경으로 이 산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곳 남천면과 화양읍에는 청도로 가는 남성현 아래로 긴 기차굴이 있다고 하였는데 여기는 바로 용각산과 선의산 사이에서 용마가 나왔다는 하도리 마을이 있다.

하도리 마을을 달리 굿골 혹은 구곡이라고 부르고 옛말로 굴을 굿이라고 하는데 이로 보면 오늘날의 긴 기차굴이 생길 것을 미리 알리기라도 한 미래지향적인 땅이름이라고 하겠다.

하긴 사람의 무덤도 일종의 굴의 형상을 한 구덩이이기에 땅이름에 드러난 선인들의 슬기로움이 새롭다고 하겠다.
이런 역사적인 이름을 떠나 선의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시간인듯 하다.

 

 

동쪽으로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봄빛으로 치장한 비슬지맥 마루금이 어서 오라 손짓하며 이 산객을 부르고 있다.

바로 앞으로는 705봉 지나 저 멀리 참꽃이 아름다운 659봉인 용각산이 높게 다가와 있다.

처음에는 저 산줄기가 진행해야 할 비슬지맥이 아닌 것으로 착각을 해 잠시 어리둥절 했지만 지도를 펴 놓고 확인해 보니 분명 저 건너에는 진달래꽃이 아름다운 용각산이 멋지다.

 

 

전망데크에서 서쪽과 남쪽의 아름다운 산하와 비슬지맥을 조망한 후 정상부로 뒤돌아 나와 북서쪽을 살펴보니 경산의 올망졸망한 산군들을 지나 저 멀리 올 가을부터 올라야 할 대구의 팔공기맥 산줄기가 아련히 펼쳐져 있다.

처음에는 이쪽 산줄기가 이어가야 할 비슬지맥이라 착각을 했는데 살펴보니 이곳은 비슬지맥이 아니라 저 멀리 옛날 많은 추억을 남겼던 팔공기맥 마루금이 어서 오라 손짓하는 모습이다.

가을날 저 팔공산에 올라 오늘 걸어가는 이 비슬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며 추억 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그렇게 한동안 그곳 선의산 정상에서 시간을 보낸 후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등로는 선의산을 좌측에 두고 좌측으로 크게 돌아 진행된다.

잠시 바위 너덜길을 지나니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그곳에 좌측 진행방향으로 용각산 이름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도성사 하산 등로가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 선의산 정상부의 암봉을 올려다 보고 가시덤불을 지나 진행을 하니 좌측으로 두곡리 하산 갈림 이정표를 지난다.

그 이정표 좌측으로는 705봉 정상인데 그곳 정상에는 몇명의 등산객들이 모여 식사를 즐기고 있어 오르지 않고 우측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내려가다 등로 앞으로 더 가깝게 다가 온 용각산 정상부를 사진에 담아 본다.

 

 

아주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온순해지면서 잡목도 많이 사라져 걸어 진행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연두빛 봄을 만끽하며 걸어 내려가니 평이한 등로 위에 596봉 이정판이 나뭇가지에 걸려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허기를 느껴 준비한 김밥에 김치 한조각으로 식사를 하고 출발한다.

예전엔 김밥은 준비를 하면서도 먹지를 않했는데 홀로 종주 산행을 진행하다 보니 자주 먹고 먹을 땐 마음 편히 김밥까지 모두 먹고 진행을 하니 역시 체력적인 소모가 심하긴 심한가 보다.

 

 

596봉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이곳 역시 봄이 오는 연두빛 자연이 아름다움을 넘어 황홀하기까지 하다.

남성현재까지 7.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잠시 평이한 등로로 이어지더니 또 다시 소나무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비석이 땅에 묻히는 묘지 하나를 지나 안부를 넘어 나즈막한 무명봉을 통과하니 또 다른 안부를 지나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안부 지나 우측 사면 등로를 따르는데 그 끝자락에 용각산 정상까지 30분 거리라는 이정판이 보인다.

 

 

그 이정판을 지나 평이한 소나무 군락지를 따르니 등로는 큰 굴곡없이 아주 편안한 마루금으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어려움도 잊고 봄이 오는 자연의 빛을 만끽하며 걸어가니 금새 많은 이정표와 이정판이 서 있는 용각산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살펴보니 용각산은 등로에서 약 2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데 오늘이 아니면 어제 다시 오를 수 있을지 기약도 없기에 힘이 들더라도 들렸다 진행하기로 한다.

이제 오후 2시이니 팔조령까지 5시간이면 충분하다는 판단이기에 힘은 부치지만 용각산으로 향한다.

 

 

용각산으로 오르다 보니 정상부 근처에는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운 진달래꽃 밭이 조성되어 있어 진행의 즐거움을 만끽해 본다.

용각산은 청도읍과 매전면 및 경산시 남천면의 경계를 잇는 해발 692.9미터의 산이다.
태백산줄기에서 분지한 주사산과 단석산을 지나 사룡산, 구룡산, 반룡산으로 뻗은 지맥중의 주산으로 여기서 분기한 곰티가 청도지방을 산동과 산서로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중요한 산이다.

청도읍의 북쪽에 위치하여 용각산에 실비가 내려 운무에 덮이는 광경을 용각모우라고 하여 청도팔경의 하나로 꼽을 만큼 청도사람과 친숙한 산이다.
용각산 정상 부근의 바위에는 말 발자국의 형상과 바위에 말고삐를 맬 수 있는 기묘한 바위 구멍이 있어 옛날 장수가 용마를 매어 두었다가 용마를 타고 청도 앞산인 즉 남산의 지맥인 와우산까지 날아갔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정상부 밑에는 용샘이라 부르는 우물이 있는데 옛날에는 명주실 한 꾸러미를 풀어 넣어도 그 바닥에 닿지 않을 만큼 깊었다하나 지금은 메워지고 흔적만 남았다.

산 정상부를 발로 구를때 땅의 울림이 있는것으로 보아 큰 동굴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으며 용각산에서 선의산으로 이르는 길은 평탄하고 억새밭이 더할수 없는 풍광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 주민들에게 참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에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산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용각산 정상에 오르니 조망이 참으로 멋지고 황홀하다.

아직 갈길이 멀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용각산 정상에 서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겨 본다.

지나 온 북쪽 방향으로 아름다운 진달래 등로가 붉게 핀 융단길을 만들고 596봉 지나 710봉 뒤로 선의산이 우뚝하고 그 뒤로 조금 더 진행하다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꺽어 저 멀리 대왕산까지 시원하게 조망된다.

다시 이곳 용각산에 올라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을지 기약은 없지만 온다해도 많은 시간이 필요 할 것이다.

 

 

용각산 정상석 좌측으로 동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 그곳 풍경을 살펴 본다.

두곡리 마을이 평화롭게 내려다 보이고 그 마을 저 멀리 잉어재와 대왕산이 보이고 그 대왕산 우측 뒤로 오늘 산행을 시작한 대천고개 지나 비오재는 비슬지맥 산줄기에 가려 짐작만 가능하다.

구불구불 돌고돌아 참으로 많이도 걸어 진행해 왔음을 한눈에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제 등로 우측으로 발걸음을 돌려 서쪽을 살펴보니 지금부터 내일까지 진행해야 할 비슬지맥의 삼성산과 우미산 그리고 그 남쪽으로 비슬지맥에서 벗어나 있는 홍두깨산 지나 비슬지맥이란 이름을 낳게 한 비슬산 자락이 저 멀리 희미하게 다가 와 있다.

그 비슬산 남쪽으로 눈을 돌리니 그곳에 있어야 할 청도의 화악산은 바로 눈 앞에 솟아있는 산줄기로 인해 보이지 않는다.

참으로 일망무제의 조망이란 이런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하며 많은 시간 용각산에서 즐긴 후 다시 진달래 밭을 따라 빠르게 내려가 본다.

 

 

하지만 그 진달래꽃 등로에 솟아 있는 나즈막한 바위가 유혹을 하고 그 바위로 올라 앞으로 진행해야 할 비슬지맥 마루금을 다시 한번 살펴 본다.

봉화산과 삼성산을 지나 저 멀리 비슬산이 우뚝한데 그 비슬산 가기 전에 새로 생긴 거대한 가족 납골당이 하얀 속살을 그대로 내보이며 펼쳐져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에 다시 시간을 더 지체한 후 아쉬움을 남기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어렵게 돌려 용각산 갈림 삼거리로 서둘러 복귀를 한다.

 

 

이제 갈림 삼거리에서 좌측의 남성현재 6.3 Km 방향으로 꺽어 빠르게 진행을 서둘러 본다.

이 속도로 진행을 한다면 남성현재에는 약 2시간 30여분 후에 도착이 가능할 것이다.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하니 등로 옆에 거대한 바위가 하나 보이는데 살펴보니 꼭 대포처럼 생긴 바위라 사진에 담아 본다.

 

 

대포바위를 지나니 간벌된 나무들이 등로에 널려있는 곳을 지나 다시 연두빛 봄빛이 가득한 멋진 등로를 따른다.

큰 굴곡이 없는 멋진 연두빛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금새 등로는 등로 좌측에 비포장 임도를 두고 진행되고 곧이어 그 비포장 임도와 잠시 만나는듯 가까워지는데 그 바로 옆에 이정표 하나가 보인다.

곰티재와 청도소싸움장으로 갈 수 있는 갈림 사거리 이정표로서 지도상으로는 좌측으로 용암온천 하산 갈림등로로 표기가 된 곳이다.

 

 

등로 좌측 임도따라 청도소싸움장 가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좌측에 비포장 임도를 두고 우측 벌목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어렵게 올라 본다.

벌써 모자 위로 솟아지는 뜨거운 햇살이 산행의 어려움을 가중시킴을 느끼며 힘들게 완만한 민둥의 능선을 오르니 다시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곳 정상에는 등로 좌측으로 용암온천과 상설투우장 가는 방향이 지나온 방향으로는 용각산과 선의산 가는 방향 표시가 그리고 진행방향으로는 남성현재 방향 표시가 되어 있다.

그 이정표 옆에 박혀 있는 이정표를 사진에 담고 지도를 살펴보니 482.1봉인듯 보인다.

 

 

그 482.1미터의 삼각점봉을 지나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따르니 금새 등로는 멋진 낙엽송 등로로 변하고 있다.

그 낙엽송 등로를 지나 소나무 군락지를 통과하니 등로는 넓은 비포장 같은 임도를 만나 편안하게 걸어 본다.

등로 좌측으로 송금리 하산 갈림 이정표를 통과하고 넓은 멋진 등로를 따라 한동안 걸어가니 사거리 안부가 나타나는데 그곳에 서 있는 이정표를 살펴보니 등로 좌측으로 청도송금리와 숫골 하산 방향 표시가 있는 안부였다.

등로 우측으로는 경산 하도리 하산 방향 표시도 되어 있는 사거리 갈림 안부인데 지도상에는 보리고개라 되어있다.

 

 

하도리와 송금리 하산 갈림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를 지나 다시 소나무가 등로를 채우는 마루금을 따르니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직진의 우측 방향으로 보내고 좌측 능선으로 나 있는 마루금을 따라 천천히 고도를 높혀 본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여전히 등로는 아름답고 편안하게 이어지고 다시 나즈막한 무명봉을 넘어 완만하게 내려간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오르니 남성현재까지 1.4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501.7봉의 삼각점봉에 도착을 하는데 서래야 박건석님은 이곳을 안산이라 적어 놨다.

 

 

청도 317이란 삼각점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갑자기 시멘트로 잘 만들어진 헬기장이 나타나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등로 옆에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작은 초소같은 구조물이 눈에 들어 와 의아한 생각으로 바라 본다.

이제 등로 우측으로 올라야 할 채석장과 경산공원묘원이 나타나고 나즈막한 무명봉에 올랐다 내려가니 남성형재까지 4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그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고 통나무 계단을 내려가니 남성현재까지 이제 2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다시 만난다.

남성현쉼터 방향을 좌측으로 보내고 남성현재 방향으로 내려가니 이제 남성현재까지 100미터 남아있다는 낡은 이정표가 눈길을 잡는다.

 

 

그 이정표를 지나 내려가니 지나온 방향으로 선의산이 진행방향으로 동학산이 그리고 우측 방향으로 하도리 방향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가 서 있는 남성현재에 도착을 한다.

남성현재는 남성현아라고도 불리는 고갯마루로서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과 청도군 화양읍을 연결하는 도로가 지나는데 국도 25호선이 이곳 지하의 남성현터널로 가로질러 지나갈 수 있으며 도로명은 남성현로이다.

이곳에는 청도의 소싸움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서 있고 화양읍 방향으로는 골동품을 경매할 수 있는 건물이 있어 골동품을 경매하고 있었다.

어렵게 이곳 골동품 경매장에서 식수 마시고 물통에 받아 나오며 잠시 고민을 하다 내일 조금 일찍 서울로 복귀해 월요일부터 외국 손님과 일을 해야 하기에 오늘 조금 더 무리를 해서라도 팔조령까지 가 보기로 한다.

 

 

이곳 청도는 와인과 소싸움이 유명한데 그 유명세를 알리듯이 곳곳마다 이런 소싸움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청도의 소싸움 그 정신은 바로 청도사람들의 뿌리에 밖힌 의지와 다름 없는데 가뜩이나 무릎이 꺽이는 힘든 요즘에 불굴의 의지로 힘차게 매진하는 청도 소싸움에서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정신을 배운다.
천년의 역사를 이어 내려온 소싸움은 이제 청도의 대표적인 민속행사로 한국농경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축제로 더 나아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세계적인 축제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올해 소싸움축제는 관람객의 흥미를 더하기 위해 개막일부터 3일 간은 전통 민속소싸움 방식인 체급별 대회 주말 2일 간은 갬블방식의 경기가 진행된다.
경기장에서는 우직한 황소들의 불꽃 튀는 한판 승부에 관람객이 갬블에 직접 참여하며 흥미와 긴장감을 더하고 야외광장에서는 공연행사, 문화전시행사, 추억을 남기는 체험행사, 특별행사, 우수 농특산품 특판전 등을 즐길 수 있다.

소싸움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문헌상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이땅에 농경문화가 정착한 시대에 목동들이 망중한을 즐기기 위한 즉흥적인 놀이로 시작하여 차차 그 규모가 확산되어 부락단위 또는 씨족단위로 번져 서로의 명예를 걸고 가세 또는 족세 과시의 장으로 이용되었다.

주로 추석 놀이로서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민족의 협동단합을 제압하기 위하여 이를 폐지시켰으나 그 명맥을 조심스레 이어온 터에 마침내 광복을 맞아 부활되어 그 맥을 이어오다가 70년대 중반부터 고유의 민속놀이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지난 90년부터 영남 소싸움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3.1절 기념행사로 자계서원 앞 넓은 서원천변에서 개최되는 소싸움이 해마다 규모가 커지게 되어 이제는 우리 나라 최대 규모의 소싸움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소싸움은 소가 한곳에 모여 풀을 뜯다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힘을 겨루게 되고 소의 주인도 자기네 소가 이기도록 응원하던 것이 발전하여 사람이 보고 즐기는 소싸움으로 변하게 되었다.

언제 한번 가족들과 청도 소싸움 축제 기간동안 들려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래 본다.

 

 

골동품 경매장에서 식수까지 공급 받아 부자된 느낌으로 벤취가 있는 등나무 쉼터를 지나 해발고도 270미터란 수준점이 있는 곳을 통해 잘 나 있는 능선방향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오르니 잡목과 잡풀이 무성한 공터같은 장소 옆에 군부대용 원형 벙커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한동안 올라 본다.

급한 경사도 아닌데 어제 오늘 장거리 산행을 연속으로 해서 그런지 피곤함이 몰려오며 속도는 전혀 나질 않는다.

한발 두발 어렵게 옮기니 남성현재에서 벌써 1.0 Km 올라왔다는 이정표를 만나는데 살펴보니 한동안 비슬지맥에서 벗어나 있는 동학산 이정표를 따라 진행하면 될 듯 싶다.

등로 좌측으로 칠곡리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오르니 지도상에 472.4미터의 삼각점이 나타난다.

 

 

서래야 박건석님이 대적봉이라 적어 놓은 472.4봉을 지나니 묘지 3기가 나타나고 그 묘지를 타고 진행하니 또 다시 시멘트로 잘 만들어 놓은 헬기장이 나타난다.

헬기장을 지나 잡목이 자라고 있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100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한동안 넓은 멋진 등로를 따라 여유롭게 걸어 본다.

이제 등로는 비포장 임도같은 수준으로 변하고 나즈막한 봉우리 지나 안부로 내려갔다 다시 오르니 이제 우측으로 가대한 경산공원묘지가 나타난다.

 

 

그 경산공원묘지를 우측에 두고 좌측 끝자락으로 나 있는 시멘트 임도를 따라 오르니 임도 우측으로 남천임도란 방향 표시가 되어 있고 동학산은 좌측 직진 방향으로 표시가 되어 있는데 원 지맥 등로는 우측 남천임도 방향으로 가 638봉을 들려야 될 것 같은데 몸도 어렵고 마음도 피곤해 아쉽게도 그냥 직진의 동학산 방향으로 오늘 처음 우회 등로를 따른다.

잠시 더 오르니 시멘트 임도가 끝자는 지점 좌측 능선 방향으로 녹슨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는 장소 앞에서 잠시 배낭 내려 쉬면서 식수 한모금 마셔 본다.

그 철조망을 넘어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곳을 지나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약수터가 있는데 물은 몇방울ㅆ기 나오지만 관리가 되지 않아 마시기에는 부적합한 물처럼 보인다.

그곳 지나 638봉을 좌측으로 우회하는 능선상에서 등로 좌측의 이서면 대곡리를 내려다 보니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다시 나타나는 낙엽 오르막 등로를 따라 굵은 땀방울을 흘리니 638봉에서 내려오는 등로와 만나는 삼거리에 동학산과 남천임도 이정표가 서 있고 그곳에서 동학산 방향인 좌측으로 진행을 하니 로프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 방금 전 올라 온 비슬지맥 마루금과 그 좌측으로 남성현재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 비슬지맥 마루금 우측으로는 대곡리의 대곡지가 한폭의 그림처럼 다가오는데 마음은 당장이라도 저곳으로 내려가 풍덩 빠지고 싶은 충동이 강한 시간이다.

 

 

잠시 더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6번 송전탑이 서 있고 그곳에서도 잠시 더 멋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나와 정상 마루금을 따른다.

방금 전 좌측 우회 등로를 따라 진행하다 들리지 못한 638봉이 지나온 방향으로 우뚝 솟아 벌써 그 봉우리를 넘어오지 못한 이 산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힘이 들어도 잠시 들려 사진이라도 한장 남겼으면 좋았을 것을 지나고 보면 늘 아쉽기만 하다.

다시 소나무가 멋진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동학산 가는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지도상 634봉으로서 우측으로는 동학산이 좌측으로는 비슬지맥이 이어지는 삼계면이 만나는 봉우리이다.

 

 

삼계면이란 경산시 남천면과 청도군 이서면 그리고 대구 달성군 가창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이기에 붙은 이름으로 전국적으로 몇심개는 되는 듯한 이름이다.

그곳 삼계면에서 우측으로 동학산을 보내고 좌측 팔조령 3.43 Km 방향으로 내려가니 등로는 잘 발달되어 있어 진행에 전혀 어려움이 없고 잠시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오르니 5번 송전탑을 지나 등로 좌측으로 방금 전 지나 온 경산공원묘지가 내려다 보인다.

잠시 더 올라 넓은 비포장 임도를 만나 오르니 갑자기 드넓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우측으로도 비포장 임도가 보여 이곳에서 잠시 헷깔린다.

 

 

이곳은 지도상 674.1봉인 상원산인데 이미 이전된 미국군부대가 있던 자리이기에 곧바로 정상으로 오르지 못하고 비포장 임도를 따라 좌측 능선으로 진행 후 군부대 철조망을 타고 상원산 정상으로 오르도록 되어 있다.

한동안 우측에 군부대 정상을 두고 좌측 비포장 임도를 따르다 올려다 보니 거대한 군부대 통산탑이 올려다 보이고 그 임도 바로 우측 위로는 군부대 출입을 금지하는 철조망이 높게 설치되어 있기도 하다.

한동안 비포장 우회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는데 살펴보니 이전된 미군군부대 정문으로 사용되던 길인 듯 보인다.

 

 

그곳 군부대 정문에서 지맥 등로는 좌측 직진 같은 도로를 따라 진행되는데 우측 군부대 정문 방향으로 올라 상원산에 잠시 들려 보기로 한다.

군부대 정문을 지나 나타나는 철조망을 좌측으로 타고 한동안 올라가니 드디어 삼각점과 정상석이 있는 상원산 정상에 도착해 인증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상원산대구광역시 달성군의 가창면과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의 경계지대에 위치한 산으로 고려시대 이 일대에 교통과 숙박기능을 가진 이 있어 마을 이름을 상원리라고 하였으며 상원산은 상원리에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어렵게 셀카 놀이를 하면서 사진 한장 남기고 주위 풍경을 살펴보지만 잡목과 군부대 시설들로 인해 조망은 전혀 없어 곧바로 뒤돌아 내려 온다. 

다시 그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정문으로 내려오고 굳게 닫히 군부대 정문을 사진에 담은 후 내려가니 이제부터 한동안 그 시멘트 포장도로와 비포장 임도를 번갈아 타며 편안하게 걸어 진행을 한다.

한동안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3번 송전탑이 보이고 계속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급하게 내려간다.

도로 우측으로는 계단식 묘지지대인지 모를 공사장이 나타나고 건물도 보이는데 소나무에 가려 그 용도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 내려가니 전봇대가 서 있는 곳에서 지맥 등로는 우측으로 휘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 직진의 능선 방향으로 나 있다.

능선으로 들어가 진행하니 파란 그물망이 나타나고 그 그물망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다시 등로 좌측으로 송전탑이 보인다.

이제 비포장 임도를 따라 룰루랄라 마음 편히 걸어가니 자연과의술을사랑한의인 이철우박사 추모비가 서 있다.

 

 

이철우 박사 추모비를 지나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또 다시 송전탑이 보인다

송전탑 지나 이제 막바지 팔조령으로 이어지는 지금부터 올라야 할 비슬지맥 마루금이 눈 앞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다만 한가지 수많은 송전탑들이 지맥 마루금을 따라 흉물스럽게 다가 온다는 사실이다.

이제 하루 일출을 시작한 산행이 일몰까지 만나면서 이어지는데 그래도 몸 아프지 않고 이렇게 걸어 올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기도 하다.

 

 

등로 좌측으로 팔조령 좌측의 도로 위 민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오늘 산행도 그 막바지에 도달하였음을 직감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나타나는 송전탑을 지나 나타나는 봉우리를 우측에 두고 좌측 사면 등로로 진행을 하니 또 다른 송전탑을 지나 묘지들이 많이 산재한 장소를 통과한다.

그 묘지들을 통과한 후 다시 나타나는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오르니 나즈막한 무명봉에 오른다.

 

 

그 무명봉을 지나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하니 날씨가 어두워지는지 카메라 셔터가 조금씩 느려짐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잠시 더 빠르게 진행하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헬기장이 나타난다.

지도를 살펴보니 헬기장 표기가 없어 새로 생긴 헬기장인듯 보이는데 이제 산행 날머리인 팔조령도 얼마 남지 않은듯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헬기장 지나 나 있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대곡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곧이어 저 멀리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팔조령 고갯마루에 도착을 한다.

반사경이 있는 곳 도로에서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오르니 산장휴게소 식당과 내일 새벽 올라야 할 다음구간 산행 들머리가 나타난다.

그 좌측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또 다른 휴게소가 있는듯 보이는데 부른 택시가 이미 와 기다리고 있기에 배낭 정리한 후 산장식당 옆 산행 들머리에서 사진 한장 남기며 산행을 마무리 한다.

팔조령이라는 지명은 1760년 여지도서 청도군편에 1834년 제작된 청도군지 내 청도군 지도 이후 제작된 1872년 지방 지도 경상도편 등 모든 도서에 팔조령이 표시되어 있다.

팔조령은 청도읍성을 기준으로 북쪽에 위치하며 청도천을 건너 대구와 경계를 이루는 지역으로 북산 봉수와 함께 대구의 경계선이 되는 지역으로 표시되었다.

정확한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팔조령은 한양에서 부산까지의 관도인 영남 대로 중에서 여덟 번째의 고개라는 설도 있고 고갯마루에 도적이 많아 적어도 행인 여덟 명이 모여 무리를 지어 서로 도우면서 넘어야 한다는 것에서 그 명칭이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이 전해진다.
팔조령은 봉화산(539.7봉)과 상원산(674.1봉)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조선 시대 괴나리봇짐을 맨 길손들이 이 고개 밑에서 큰 숨을 한 번 쉬어야 할 정도로 높았다고 전해지며 청도의 지명 유래집에서는 길이 워낙 벅차 화물은 소와 당나귀 등 짐승의 힘을 빌어야 했다고 전한다.

청도군 이서면에서 달성군 가창면으로 넘어가는 여섯 개의 주요 고개인 즉 우록재, 봉화재, 팔조령, 범재, 독지재, 상원산재 중에서 가운데 있는 팔조령은 가장 낮은 해발 고도 398미터의 고개로서 조선 시대 한양으로 향하는 큰길인 영남 대로의 일부분이었지만 팔조령 고개를 넘는 도로와 터널 개통 등으로 인하여 현재는 관광 코스로 활용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대부분의 길이 진흙길이었던 것과는 달리 팔조령 고갯길은 넓적한 돌을 깔고 그 틈새를 메운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박석 포장길이었다고 전하지만 현재는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고 흙이 아닌 박석 포장길이었을 당시 이곳의 통행량과 중요성을 대변해 주기도 한다.

조선 시대까지 팔조령은 한양에서 부산을 잇는 영남 대로의 가장 짧은 직선 도로로 알려져 있지만 팔조령을 잇는 길은 몇 번의 변화를 경험한다.

조선 시대에는 팔조리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봉화산 봉수대 서쪽 잘록이를 경유하여 왼편 산을 끼고 내려가는 길을 이용하였다.

16세기 초 기록에 따르면 영남 대로 상 17개 군현에 165개의 원이 분포하는데 이들 대부분은 도적떼의 출몰 및 도로의 훼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165개의 원 가운데 50개의 원이 팔조령을 비롯한 조령, 관갑천 잔도, 작천 잔도 등 해발 고도 200미터 이상의 험로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아 팔조령의 험로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고갯길의 4 Km 범위 간격으로 주막촌이 분포했던 것에 비해 조령을 비롯한 팔조령은 주막촌들이 1에서 2 Km 범위 내에서 분포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팔조령은 물자와 사람들이 지나는 도로 역할뿐만 아니라 군사적 요지 역할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조선은 파발 제도를 강화하면서 남한산성, 가산성, 팔조령 등 군사적 전략 요지 부근의 발소에 45명의 군사를 배치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데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대한 방어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부산에서 한양으로 이르는 영남 대로 상에 존재하는 여러 겹의 자연 방벽을 이용하여 방어선을 구축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영남 대로의 여덟 개 방어선 중 팔조령은 부산에서 올라오는 제3 방어선으로 대구 분지 남쪽의 팔조령과 성현이 연결된다.

팔조령의 중요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제기되었는데 승정원일기 1788년(정조 12) 6월 12일 기록에 따르면 선조 20년에 청도읍성을 쌓고 청도읍 주변의 신학성, 고읍성, 증성 그리고 남쪽의 오혜산성 등을 묶어 방어선을 구축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중 이 전략을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으며 결국 팔조령과 성현의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대구가 함락되는 결과를 낳았다.

일제 강점기에는 상원사 쪽으로 비스듬히 길을 내어 범골 깊숙이 들어갔다 내려오는 길로 신작로가 만들어졌는데 이 두 길이 팔조령을 잇는 영남 대로의 옛길이며 이곳을 따라서 팔조령 신당과 과객들의 쉼터 느티나무 군락지 등이 위치하고 이후 팔조령 산마루를 넘어가는 구 지방도 911호선이 개설되었다.

팔조령을 넘어가는 영남 대로는 구 지방도 911호선과는 달리 팔조지를 지나 양원리 샛별 장터에 이르기까지 직선으로 연결되는데 이 흔적으로 팔조지 아래에는 팔조령을 넘는 과객들의 안전을 비는 팔조령 신당이 위치하고 있다.

석주사 뒤편 산등성이를 타고 직선으로 내려가는 영남 대로 주변 산기슭 도로 좌우에는 짐터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데 산길을 오르내린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으며, 마을 주민들이 현재도 묘소 벌초 등을 위하여 이서로 넘어가는 길로 쓰고 있다.

팔조령을 넘어 대구 방면에는 주막걸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과거 이곳에는 기생들의 치맛바람도 제법 불었다는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번화한 거리가 조성되었다고 한다.

구 지방도 911호선은 인근 주민들의 부역으로 건설되었음이 주변 증언으로 전해지는데 자동차 도로가 개설되었지만 험준한 팔조령을 넘는 것에 있어서 어려움은 많았다.

빈번한 교통사고와 함께 눈과 비가 조금 내려도 미끄러운 도로로 인하여 교통이 빈번하게 통제되기도 하였고 만원 버스는 굽은 도로를 한 번에 돌지 못하여 애를 먹기도 하였으며, 늦은 밤 이곳을 지날 때는 굽은 도로와 앞이 볼 수 없는 어둠으로 인하여 늘 사고의 위험을 염두에 두었다. 이후 사고를 줄이고 직선화를 위하여 2000년 팔조령 아래에 길이 690미터의 팔조령 터널이 개통되었고 2011년 8월 2차선이던 현재의 국가 지원 지방도 30호선이 4차선으로 확장되었다.

이 도로의 개설로 청도와 대구 달성군 가창면은 20분 정도의 시간이 단축되었으며 구 지방도 911호선은 과거 팔조령을 기억하며 찾는 사람들의 관광 코스가 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에서 발췌).

 

 

참으로 길고도 먼 비슬지맥 제2구간이었지만 그래도 무탈하게 계획되었던 산행을 마치고 택시 기사에게 부탁해 사진 한장 남기는 시간은 희열이 넘치는 시간이 되었다.

산장식당 주인장이 나와 인사를 건네고 곧바로 배낭 정리 후 택시를 타고 산행 들머리인 비오재로 가니 벌써 하루해가 저물며 어둠이 밀려오고 있다.

오늘은 진량으로 들어가 마음 편히 쉬면서 돼지머리 국밥으로 저녁을 먹은 후 곧바로 잠자리에 들며 또 하루를 보낸다.

내일 새벽 2시 40분에 일어 나 무탈하게 산행 후 조금은 일찍 서울로 복귀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 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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