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전라북도 남원시와 경상남도 구례군 그리고 하동군의 백두대간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4년 06월 13일과 14일 (금요 무박 토요일 산행)
산행날씨 : 전날 비내린 후 맑고 화창했으며 바람이 불어 산행하기 좋았던 날씨
산행온도 : 영상 17도에서 영상 29도
산행인원 : 3450온누리산악회 제5기 백두대간 종주대 30명과 함께
산행코스 : 성삼재-이정표(만복대 5.5 Km, 천왕봉 28.1 Km)-화엄사 갈림 이정표(성삼재 1.5 Km, 노고단고개 1.1 Km, 화엄사 5.9 Km)-이정표(성삼재 1.9 Km, 노고단고개 0.6 Km)-노고단대피소-노고단고개 갈림 이정표(노고단고개 1.05 Km, 천왕봉 25.9 Km)-노고단고개 이정표(삼도봉 5.5 Km, 천왕봉 25.5 Km)-이정표(노고단고개 1.0 Km, 천왕봉 24.5 Km)-이정표(노고단고개 1.5 Km, 반야봉 4.0 Km)-돌탑-헬기장-이정표(노고단 고개 2.0 Km, 천왕봉 23.5 Km)-돼지령 헬기장 이정표(노고단고개 2.1 Km, 반야봉 3.4 Km)-돼지평전-이정표(노고단고개 2.5 Km, 반야봉 3.0 Km)-피아골대피소 갈림 이정표(노고단고개 2.8 Km, 천왕봉 22.7 Km, 피아골대피소 2.0 Km)-임걸령 샘터-이정표(노고단고개 4.0 Km, 천왕봉 21.5 Km)-노루목 이정표(노고단고개 4.5 Km, 반야봉 1.0 Km, 천왕봉 21.0 Km)-천왕봉 갈림 이정표(노고단고개 4.7 Km, 반야봉 0.8 Km, 천왕봉 20.5 Km)-전망바위-철계단-반야봉(1732봉)-천왕봉 갈림 이정표 복귀(노고단고개 4.7 Km, 반야봉 0.8 Km, 천왕봉 20.5 Km)-반야봉 갈림 이정표(노고단고개 5.2 Km, 천왕봉 20.3 Km, 반야봉 1.0 Km)-아침식사-삼도봉(1499봉) 이정표(노고단고개 5.5 Km, 천왕봉 20.0 Km)-240미터 나무계단-이정표(노고단 6.1 Km, 천왕봉 19.4 Km)-화개재(1316미터) 반선 갈림 이정표(노고단 6.3 Km, 연하천대피소 4.2 Km, 반선 9.2 Km)-이정표(화개재 0.8 Km, 천왕봉 18.4 Km)-토끼봉(1534봉) 이정표(화개재 1.2 Km, 천왕봉 18.0 Km)-이정표(노고단 8.5 Km, 연하천대피소 2.0 Km)-이정표(토끼봉 2.0 Km, 연하천대피소 1.0 Km)-나무계단-명선봉(1586.3봉) 이정표(화개재 3.8 Km, 연하천대피소 0.4 Km)-나무계단-연하천대피소 이정표(노고단 10.5 Km, 천왕봉 15.0 Km)-삼각고지 이정표(연하천대피소 0.7 Km, 벽소령대피소 2.9 Km, 음정 7.5 Km)-이정표(연하천 대피소 1.2 Km, 벽소령대피소 2.4 Km)-계단-형제봉(1453봉)-전망바위-형제바위-이정표(노고단 12.6 Km, 벽소령대피소 1.5 Km)-전망바위-이정표(연하천대피소 2.9 Km, 벽소령대피소 0.7 Km)-벽소령대피소 이정표(의신마을 6.8 Km, 취사장)-바위너덜구간-이정표(벽소령 대피소 0.7 Km, 의신리 6.1 Km)-나무육교-이정표(벽소령대피소 1.3 Km, 의신마을 5.5 Km)-해발 999미터 이정목-해발 962미터 이정목-이정표(벽소령대피소 3.1 Km, 의신마을 3.7 Km)-급경사 내리막 등로-해발 655미터 이정목-삼정마을-이정표(벽소령 4.0 Km)-시멘트 포장 임도-이정표(벽소령대피소 4.1 Km, 의신 2.7 Km)-해발 573미터 이정목-해발 535미터 이정목-의신마을-산행종료-계곡에서 샤워 후 뒷풀이 파티-서울 복귀
산행거리 : 약 24.84 Km (스마트 폰 GPX 기준)
산행시간 : 많은 사진 찍고 여유롭게 꾸준한 속도로 10시간 00분 (04시 45분부터 14:45분까지)
교통편 : 백두대간 제5기 40인승 전용버스 이용
백두대간이란 ???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으로 맥을 뻗어 내리다가 태백산을 거쳐 남서쪽의 지리산에 이르는 국토의 큰 줄기를 이루는 산맥을 백두대간이라 부르는데 이 산줄기를 이루는 주요 산은 백두산(2750봉)을 기점으로 포태산(2289봉), 두류산(2309봉) 등 해발고도 2000미터 내외의 고봉으로 이어져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을 양분한다.
산줄기는 다시 남쪽으로 차일봉(1742봉), 철옹산(1085봉), 두류산(1324봉), 추가령(752미터)으로 이어지며 또한 동해안을 끼고 금강산(1638봉), 진부령(529미터), 설악산(1707.9봉), 오대산(1563.4봉), 대관령(832미터), 두타산(1352.7미터)을 거쳐 태백산(1566.7봉)에 닿는다.
여기서 방향을 남서쪽으로 돌려 소백산(1439.5봉), 죽령(689미터), 이화령(548미터), 속리산(1058.5봉)으로 뻗어내리고 이로부터 추풍령(221미터), 황악산(1111.4봉), 삼도봉(1177봉), 덕유산(1614봉), 지리산(1915봉)으로 이어지면서 산줄기는 끝이 난다.
신경준의 산경표에 따르면 한국의 산맥은 1개 대간과 1개 정간 및 13개 정맥 체계로 되어 있고 이러한 산줄기(산경)의 개념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잘 나타나 있다.
즉 제일 굵은 선으로 표시한 것은 대간이고 두번째 굵은 선으로 표시한 것은 정맥이며 세번째 굵은 선으로 표시한 것은 지맥 그리고 기타는 골짜기를 이루는 작은 산줄기 등으로 나타냈다.
이렇듯 대간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산줄기들은 지역을 구분짓는 경계선이 되었으며 삼국의 국경과 조선시대의 행정경계를 이루었다.
따라서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자연적 상징이며 동시에 한민족의 인문적 기반이 되는 산줄기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지리산에 들어 황홀한 풍경과 조망에 빠졌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오래전부터 잡혀있던 고향에서의 죽마고우들과의 약속으로 인해 산행 하루전까지도 참여가 불투명하였던 이번 산행이 마침 약속이 연기되며 참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해 어렵게 동참하는 시간이다.
지리산을 알고 난 이후부터 살아가면서 어렵거나 산이 그리우면 계획없이 훌쩍 떠나 하루 종일 지리산에 머물다 복귀하면 새로운 삶에 대한 활력을 얻을 수 있던 곳이기에 참으로 많이도 올랐던 곳이지만 백두대간 산행이란 목적으로 오르는 기회도 벌써 4번째이니 적은 기회는 아니였다.
늘 그곳에 들면 마음이 편해지고 세상살아가며 느꼈던 시름을 덜어 낼 수 있으니 그 많은 등산객들이 또 로망을 하면서 이렇게 오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에는 좋은 몸 상태를 만들어 오르기에 노고단과 반야봉을 들렸다 하산할 수 있기를 바래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두어번 경험을 해서 그런지 흔들리는 버스에서도 두어시간 달콤한 단잠을 자고 일어나니 벌써 함양휴게소에 도착을 하고 상쾌하게 느껴지는 밤공기를 폐부속 깊숙히 들이마시며 멋진 하루를 예감하는 시간이다.
반야봉을 올랐다 진행하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운 리더의 생각으로 성삼재에서 출발부터 속도를 내어 달리다 시피 진행을 하니 무척 빠른 산행이 되어간다.
그래도 시원하게 불어주는 바람과 전날 내린 비로 인해 깨끗한 조망 그리고 낮게 드리워진 운해가 산객의 마음을 사로 잡으며 빠른 속도에도 불구하고 전혀 피곤함을 느낄새도 없이 반야봉까지 오른다.
그곳에서 바라본 오늘 이 종주대가 걸어 온 성삼재에서 노고단 그리고 돼지평전이 한누에 들어 오고 그 노고단 뒤 운해 저 멀리 광주의 진산인 무등산이 아스라히 솟아있고 산행시에는 이름을 불러주지 못했던 모후산이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 모후산 좌측으로는 호남정맥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조계산이 그 옛날 추억을 들려주며 구름속을 뚫고 하늘과 맞닿아 있는 풍경에 가빠오는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고 한동안 가슴속 깊이 그 아름다움을 담아 보는 시간이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주위 산군들의 이름을 불러 줄 수 있음에 스스로에게 대견함의 박수를 보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꼬불꼬불한 861번 지방도로를 타고 힘들게 오른 성삼재 정상에는 약간의 바람이 불어주며 생각보다 산행하기 좋은 날씨이다.
새벽 4시 30여분을 넘기는 시간이지만 하루 해가 길어지며 벌써 여명이 밝아오고 주위 사물들이 흐릿하지만 눈에 들어 올 정도로 하루해가 길어진 것을 몸으로 느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버스에서 내려 제일 먼저 861번 도로 건너 구례군 산동면쪽 지리산온천랜드 방향을 내려다 보니 밝게 빛나는 불빛들이 오랫만에 들린 이 산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몇번인가 들려 고운 추억을 남겼던 곳이기도 하고 이곳 성산재에 오르면 늘 내려다 보던 습관이 있어 오늘도 산동쪽 내려다 보이는 불빛을 보며 길고도 먼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861번 지방도로에서 산동쪽 불빛을 내려다 보고 주차장 방향으로 복귀하려는데 벌써 여명이 밝아오며 성삼재휴게소 건물이 흐미하게 들어 온다.
삼각대는 없지만 철 난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어렵게 담아 보니 약간의 흔들림은 있지만 그런대로 봐 줄만 하다.
이곳 성삼재는 참으로 많이도 들렸던 곳으로 다양한 유래와 전설이 전해오는 고갯마루이기도 하다.
지리산 성삼재(1017미터)는 구례군 산동면과 남원시 산내면을 잇는 지방도 861번이 넘는 고개이며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은 서향으로 거침없이 달려와 이곳 성삼재에서 잠시 숨을 고루고 덕유산, 오대산, 소백산, 태백산, 설악산을 향해 북으로 방향을 바꾸어 이어간다.
성삼재라는 지명 유래는 삼한시대에 진한대군에게 쫓기던 마한 왕이 전쟁을 피하여 지리산으로 들어와 지금의 남원시 산내면 덕동리 근처에 왕궁을 세우고 적을 막으며 오랫동안 피난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그때 임시도성 이었던 달궁을 지키기 위하여 사방으로 장군을 배치하여 지키게 하였다고 한다.
북쪽능선에 8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지키게 하였다고 하여 팔랑치라 하였고 서쪽능선은 정장군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고 하여 정령치라 하였으며 동쪽은 황장군이 맡아 지키게 하였으므로 황령치라고 하였다고 한다.
남쪽은 가장 중요한 요지이므로 성이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방어케 하였으므로 성삼재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주차장을 지나 천왕봉 28.1 Km란 이정표가 서 있는 성삼재 분소를 지나 화장실 옆에서 인원 점검 후 곧바로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새벽 4시 45분이다.
화장실 옆 좌측의 나무 전망데크로 오르니 그곳 저 멀리 동녘 하늘에선 벌써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일출이 시작되는듯 온통 붉게 물들어 온다.
이곳에서 인원 점검 후 산행을 시작하는데 반야봉을 다녀올지 말지를 놓고 약간의 고민이 있는듯 선두만 다녀 오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몇명의 산우님들과 선두에서 무척 빠르게 진행을 한다.
넓은 임도를 따라 빠르게 오르니 금새 화엄사 갈림 이정표를 만나 그곳에서 좌측 나무계단을 타고 노고단으로 향한다.
화엄사를 통해 대원사까지 걸어가는 지리산 종주를 몇번인가 해 봤던 추억을 떠올리며 이곳 주위의 코재와 무넹기 그리고 종석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차일봉은 노고단의 자매봉으로 그 모양이 마치 차일을 쳐 놓은 것 같다 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다.
또 차일봉은 우번대, 관음대, 종석대 등 여러 이름을 갖고 있으니 그 유래와 전설을 살펴보면 수려한 차일봉의 남쪽 아래 즉 수석이 아름다운 천은사계곡 상류 깊은 산중의 비경엔 오랜 옛날부터 상선암이란 이름난 선원이 조용히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에 신라의 도승 우번조사에 대한 전설이 내려오는 곳으로 우번조사가 도통한 그 토굴 자리를 우번대라 부르게 되었으며 또 우번조사께서 도통하는 순간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석종 소리가 홀연히 들려왔다 하여 이곳을 종석대라 부르고 관세음보살께서 현신하여 서 있던 자리를 관음대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 후 이곳에서 수도하여 도통한 고승이 많이 나왔으며, 특히 근세의 고명한 진응도사를 비롯하여 용화스님, 호음선사 등 많은 도승이 배출되어 불도의 영지로 손꼽히게 되었다.
또한 집선대에서 본격적인 가파른 길이 이어지는데 그 가파름에 코가 땅에 닿는다 하여 코재라고 하기도 한다는데 또 다른 의견은 코재의 유래는 노고단을 얼굴 전체로 보면 코에 해당하는 부분의 위치에 있어서 코재라 불려진다고 한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이 코재 위에 눈썹 바위가 있고 무넹기를 전라도 방언으로 데망생이( 표준어로는 이마)라 하니 코가 땅에 닿는다 하여 코재라는 유래 보다 현재의 위치가 코에 해당한다는 유래가 더 신빙성이 더 있지 않나 싶다.
하늘이 열린는 곳이 무넹기인데 일제 강점기 시절 구례의 가뭄을 해결하기 위해 진주 남강으로 흐르는 지류를 섬진강 방향으로 인공수로를 개설하여 끌어 내렸는데 한편으로는 백두대간의 맥을 끊기 위한 술책이었다고 한다.
무넹기는 물을 넘긴다는 뜻으로 해발 1300미터에 만들어 놓은 인공 수로다.
무넹기란 지명의 유래는 1929년 구례군 마산면 소재에 큰 저수지를 준공하였으나 유입량이 적어 만수를 하지 못해 가뭄이 들었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그 이듬해인 1930년에 해발 1300고지 노고단에서 전북으로 내려가는 물줄기의 일부를 구례 화엄사 계곡으로 내려올 수 있도록 유도수로 224미터를 개설해 저수량을 확보하여 지금까지도 매년 풍년농사를 이루고 있다.
무넹기는 물이 부족하여 노고단 부근 계곡물의 일부를 화엄사 계곡으로 돌렸다고 하여 물을 넘긴다는 뜻에서 무넹기라 불리고 있다.
이곳 주위에 남아 있는 많은 유래와 전설을 잠시 생각해 본 후 나무계단을 타고 노고단으로 향한다.
나무계단을 따라 오르니 방금 전 헤어졌던 넓은 임도길과 다시 만나고 그 임도를 가로 질러 이어지는 돌계단 앞에는 성삼재에서 1.9 Km 지나왔고 노고단고개까지 0.6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 돌계단을 따라 잠시 땀방울을 흘리니 금새 노고단대피소 앞에 도착을 하는데 이제 날이 완전히 밝아 헤드렌턴 없이도 진행이 가능한 밝음이다.
이곳은 성삼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대피소이기에 지금까지 머물며 하룻밤 지샌적은 없고 늘 아침식사나 늦은 점심을 하고 지나쳤던 대피소중 하나이다.
오늘도 대피소 전경 하나를 사진에 남기고 노고단대피소를 지나 좌측의 계단을 타고 올라 취사장 옆으로 나 있는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하는데 그 입구에는 반야봉까지 5.9 Km 그리고 노고단고개까지는 0.4 Km 거리란 거리 표시가 보인다.
노고단대피소를 지나 노고단고개로 오르며 잠시 뒤돌아 보니 여명이 밝아오며 주위 사물들이 뚜렷히 보이는데 화엄사계곡 저 멀리 아름다운 운해가 온세상을 뒤덮고 있고 그 한가운데에 모후산이라 생각되는 산 하나가 하늘 높은줄 모르게 솟아 있다.
오늘 산행 중 멋진 조망과 풍경을 예고하는 듯 가슴 설레이는 시간이다.
우측의 돌아가는 노고단가는 시멘트 포장임도는 몇 년전 홀로 이곳으로 와 오르면서 짙은 안개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시절 저곳으로 올라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반야봉으로 올랐던 길이기에 한번 더 눈길을 줘 본다.
그렇게 돌계단을 타고 오르니 금새 노고단고개에 도착해 좌측의 돌탑을 돌아 보고 노고단지킴이 넘어 우뚝 솟아있는 노고단을 담아 본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출입금지된 곳이지만 몇몇 등산객들은 그곳으로 오르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선두는 이미 반야봉에 오른다고 일찍 출발을 하지만 잠시 후 반야봉 위에서 떠오를 일출을 기다리며 주위 풍경을 조금 더 사진에 남겨 본다.
노고단 정상을 다녀올까하는 고민이 되지만 몇 번 올랐던 곳이고 오늘은 가야 할 거리가 만만치 않기에 노고단고개에 머물며 조금 더 기다리니 드디너 반야봉 남쪽 사면 옆으로 찬란한 아침 햇살이 떠 오른다.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의신마을까지 내려가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며 몇장의 사진을 담은 후 곧바로 등로를 따라 돼지령 방향으로 출발을 준비한다.
반야봉 우측 일출이 시작되는 저 멀리에는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과 중봉이 우뚝하고 그 우측으로 촛대봉과 영신봉이 이어져 있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온다.
노고단은 신라의 화랑들이 이곳에서 수련을 하면서 탑과 단을 설치하고 천지신명과 노고 할머니께 나라의 번영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노고란 원래 지리산의 여신인 마고할미을 의미하며 노고단은 마고할미에게 제를 지내던 곳으로 노고단이라는 명칭도 지리산 신령인 선도성모를 마고할미로 존칭하며 부르게 된데서 유래한다. 통일신라시대까지 할미당으로 불렸으나 고려시대에 한자어인 노고단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곳은 신라시대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셔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노고단(길상봉)은 해발 1507미터로서 천왕봉(1915봉), 반야봉(1732봉)과 더불어 지리산 3대 봉우리의 하나이며 옛날에 지리산 신령인 산신할머니(노고)를 모시는 단이라 하여 노고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또한 이곳은 고산지대로서 전망이 매우 좋고 시원해 신라시대에는 화랑들의 심신 수련장으로 이용되었다고 하며 과거 1920년대에는 선교사들이 풍토병을 치료하기 위해 건물을 짓고 여름을 보냈다고 한다.
노고단 돌탑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신라시대 당시 화랑들이 쌓은 탑과 단은 1000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초석으로 짐작되는 몇 개의 큰 돌만이 남아 있었으나 지난 1961년 7월 갱정유도(1928년 창교된 민족종교) 72인이 다시 축조하여 오늘의 모습으로 조성되어 보존되고 있다고 전해진다는 자료만이 남아 있어 인용해 본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돼지령 가는 등로는 오늘도 역시 그 바램을 저버리지 않고 있다.
적당히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들이 우거진 등로 사이로 막 떠오른 아침햇살이 들어 와 또 다른 세상을 만들고 있고 그 색다른 세상의 한가운데를 향해 걸어가는 이 산객의 마음에도 또 다른 신비의 세상이 열리고 있는 시간이다.
잠시 후 벌써 노고단고개에서 1.0 Km 지나왔고 천왕봉까지 24.5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진행하니 잠시 하늘이 열리는 등로에 도착해 남쪽으로 흐르는 왕시루능선과 그 주이로 짙에 드리워진 운해를 바라보는 시간은 그저 황홀하기만 하다.
그 왕시루봉 지나 저 멀리에는 호남정맥의 마지막 고봉인 백운산과 따리봉 그리고 도솔봉이 1200미터대의 해발고도를 자랑하며 너무나 선명하게 다가오며 어렵게 진행하였던 호남정맥 산행에 대한 그리움을 전해주고 있다.
모두 올랐던 산들이기에 이제 그 이름마저 올바르게 불러 줄 수 있음에 조금은 그 미안함이 예전보다는 덜한 시간으로 남는다.
같이 진행하던 산친구들도 더 이상 진행을 못하고 발걸음 멈춘 채 그 아름다운 산하를 눈으로 보며 가슴으로 남기기에 바쁜 시간이다.
다시 조금 더 진행 해 나무숲으로 들어가니 이제 노고단고개에서 1.5 Km 진행을 했고 반야봉까지 4.0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그 이정표를 지나 오르니 다시 하늘이 열리면서 이제 남쪽으로 왕시루능선 우측의 형제능선도 선명하게 보이고 저 멀리 우뚝 솟아있는 백운산 자락이 너무나 강렬하게 가슴속으로 파고 들며 아름다운 추억 하나를 묻고 있다.
잠시 돌탑이 보이는 바위에서 뒤돌아 보니 지금까지 걸어 온 등로와 그 등로 좌측으로 우뚝 솟아 있는 노고단이 아침햇살을 받아 환하게 웃으며 멀어지는 산객들에게 손짓으로 인사를 하고 있다.
한겨울 눈이 소복하게 내렸던 시절에 이곳에서 바라 본 노고단 능선은 오늘과는 또 다른 야누스적 두 얼굴오 산객의 가슴속에 많은 추억을 남겼기에 한동안 발걸음 멈춰 고운 추억까지 꺼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돌탑에서의 추억을 남기고 오르니 넓은 헬기장을 지나 평이한 등로를 따르고 곧이어 피아골삼거리까지 0.8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난다.
그곳을 지나 다시 조망이 터지는 등로에서 바라보는 남쪽의 왕시루능선과 불무장등능선 사이의 피아골과 그 아래 마을위를 덮고 있는 운해가 또 다시 산객의 발길을 붙잡고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을 걸어 온다.
피아골 계곡 우측으로는 왕시루능선이 운해 넘어 백운산을 배경으로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좌측으로는 불무장릉능선의 통곡봉과 황장산의 끝자락에 펼쳐진 그 운해 넘어 형제봉 능선이 아름다웠던 철쭉의 추억을 꺼내며 바쁜 산객의 발목을 붙잡는다.
아무리 바쁜 산행 시간이지만 그 아름답고 황홀한 조망과 풍경을 외면하지 못하고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피아골 골짜기 넘어 저 멀리에는 우듬지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이제 곧 올라야 할 금오산이 하얀 구름속에 희미하게 그 존재감을 알려오니 더욱 가고 싶은 마음 간절하기만 하다.
아침재까지는 걸었기에 이제 한나절이면 마무리가 될 백두대간 우듬지 산행도 조만간 다시 마무리를 해야 하기에 금오산을 바라보는 마음이 반갑기만 하다.
그렇게 조망을 즐기며 고운 추억을 만들다 보니 헬기장으로 이뤄진 돼지령에 도착해 이곳에서도 잊지 못할 멋진 추억을 담아 본다.
왜 돼지령이고 돼지평전일까 궁금해 자료를 찾아 보니 조금은 억지스런 유래같다는 생각이지만 그래도 이 유래가 정석처럼 되어 있으니 옮겨 본다.멧돼지가 종종 출몰하기 때문에 돼지령과 돼지평전이라고 불리는데 실제로 이곳에는 멧돼지가 좋아하는 원추리 뿌리며 둥글레 뿌리가 많다고 한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등산로에 멧돼지 출몰 조심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어 곰 출현 주의 사항이란 안내판과는 다른 분위기가 나는 곳이기도 하다.
헬기장인 돼지령에서 잠시 더 조망을 즐긴 후 내려가니 금새 돼지평전에 도착을 하는데 그 돼지평전 넘어 저 멀리 올라야 할 반야봉이 어서 오라 손짓을 하고 있는듯 올려다 보인다.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돼지평전 한가운데 우측으로 전망처가 보이기에 들어가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나와 돼지평전을 떠나는데 뒤따르던 산친구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내려오고 있다.
지리산이 그리우면 야간 열차 타고 내려와 성삼재에서 삼도봉 거쳐 반야봉에 올랐다 출입금지 구역인 묘향대를 지나 이끼폭포를 구경한 후 뱀사골계곡으로 자주 하산했던 추억이 있는 곳들이기에 오늘 하루 역시 그 추억단지에 하나 더 포개 보는 시간이 되였다.
돼지평전을 걸어 오르며 등로 좌측인 북쪽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다음구간 올라야 할 만복대 능선이 또한 아름답게 펼쳐지며 조만간 다시 만나야 할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다시 숲으로 들어 진행하니 이제 노고단고개에서 2.5 Km 진행해 왔고 피아골삼거리까지 0.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멋진 등로에서 함께 오르는 산친구들의 사진을 담아 본다.
그렇게 즐기며 진행하니 금새 등로 우측으로 피아골대피소와 직전마을 하산 갈림 이정표가 서 있는 피아골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이곳 역시 가을 단풍이 고운 시절에 직전마을에서 피아골 계곡을 따라 올랐다 화개재에서 뱀사골 계곡을 타고 내려가며 아름다운 단풍 산행을 즐겼던 추억에 잠겨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곳 피아골은 아름다운 이름과는 달리 역사적으로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는데 한국전쟁 직후 이곳 피아골을 무대로 활동하던 빨치산들의 아지트여서 이들을 토벌하려는 군경과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그렇게 죽어간 이들의 피가 골짜기를 붉게 물들여서 피아골이 되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피아골이라는 지명은 옛날 이곳에서 오곡의 하나인 식용인 피를 많이 가꾸었기 때문에 피밭골이라 하였다가 피아골이 되었는데 마을이름이 직전으로 직자를 보면 바로 식용인 피이기 때문에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피아골은 옛날 연곡사 승려들이 식량으로 피(기장/직)를 많이 심어 피밭골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직전마을 역시 그기서 유래된 말이다.
가을 단풍이 고운 계절에 다시 한번 올라 세월을 낚듯 그렇게 거닐어 볼 수 있기를 바래보는 시간이다.
피아골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진행을 하니 금새 임걸령에 도착해 등로 좌측에 있는 임걸령 샘터로 내려가 시원한 약수물 두어 바가지를 마셔 본다.
언제 마셔 봐도 전국 최고의 물맛을 자랑하는 선비샘과 임걸령샘물인데 오늘도 역시 그 기대감을 버리지 않는 시원한 물맛이다.
물 맛을 보고 임걸령으로 올라 와 소나무 한그루 넘어 펼쳐진 새로운 세계를 담아 본다.
왕시루봉과 불무장릉능선 사이로 갚고 길게 이어진 피아골 계곡이 아름답고 그 넘어 하얀 운해를 지나 백운산 자락이 우뚝한 풍경은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환상의 풍경으로 가슴속 깊이 간직될 것 같은 시간이기도 하다.
산친구들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갈길 바쁜 발걸음을 옮겨 보는 시간이다.
임걸령은 지리산 노고단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중간 지점에 있는 고개로 높이 1320미터이다.
높은 고개임에도 불구하고 우뚝 솟은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노고단 쪽 능선이 동남풍을 막아주어 아늑하고 조용한 천혜의 요지가 되었다.
옛날에 임걸 또는 임걸년이라는 이름의 의적이 은거하던 곳이어서 임걸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는데 이곳의 샘에서는 언제나 차가운 물이 솟으며 물맛 또한 좋기로 유명하다.
조선 선조때의 의적인 임걸년은 지금의 시천에서 태어난 인물로 그의 활동무대는 반야봉 일대였다고 하는데 그는 화계장터에서 넘어오는 보부상을 털거나 인근 사찰을 털었는데 연려실기술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한참 강성했을 때의 임걸년은 지리산의 모든 사찰을 털었다고 한다.
이고개는 그가 활동한 장소라 해서 임걸령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숲이 울창해서 고갯마루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샘터에서 피아골쪽 암벽밑에 막터가 있으니 이곳을 황호랑이 막터라 부르며 옛날에 약초꾼 황장사가 눈이 내리던 겨울밤에 이곳에서 천막을 치고 자다가 지혜와 용기로 큰 호랑이를 잡았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들이 진실임을 떠나 많은 유래와 전설이 남아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민초들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는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임걸령을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천왕봉까지 21.5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금새 해발고도 1498미터인 노루목에 도착을 한다.
노루목 우측 전망바위로 오르니 저 멀리 노고단에서 이곳 노루목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 오고 남쪽으로는 이제 저 멀리 피아골 계곡 넘어 왕시루봉과 좌측으로 불무장등능선이 아름답게 다가오고 그 넘어 저 멀리 호남정맥의 백운산이 가깝게 다가와 있다.
많은 산친구들 사진을 담아 주고 노루목으로 나와 이제 주등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을 타고 반야봉으로 오르는 시간이다.
노루목은 삼도봉에서 노고단 방향으로 2 Km 떨어진 주능선 상에 위치하는데 노루의 목처럼 높고 길게 솟아오른 고개마루란 의미로 명명되였는데 반야봉의 지형이 피아골 방향으로 가파르게 흘러내리던 도중에 이곳에서 잠시 멈춰 머리를 지켜든 한 마리의 노루와 같은 산세를 이루고 있다.
반야봉이 노루 몸통이고 토끼봉을 머리에 비유하면 그 사이가 노루목임으로 붙여졌다고 생각되며 특히 이곳은 겨울철에 눈이 많이 내리는 곳으로 이곳 허리 깊이 눈밭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노루로 실감나는 지형 이름인 노루목으로 노루목은 살아있는 생명체 처럼 역동적인 산세를 지니고 있다.
노루목은 반야봉에서 내려지르는 산줄기가 산중턱에서 잠깐 멈추었다가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피아골을 내려다 보는 것 같은 천연의 바위머리인 암두
전망대에서 눈 밑에 펼쳐지는 피아골 원시림 계곡을 내려다 보노라면 원시림 속의 정적에서 풍겨 나오는 유적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아름다운 유래인듯 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슬프게 다가오는 전설은 무슨 연유인지 모를 일이다.
노루목에서 정상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반야봉으로 오른다.
잠시 오르니 천왕봉 갈림 삼거리 이정표에 도착을 하는데 반야봉까지는 0.8 Km란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이곳 삼거리에 배낭을 벗어 두고 빈몸에 사진기 하나만 들고 오르니 조금은 살 것 같다는 느낌이다.
잠시 더 올라 전망바위에 도착을 하니 남쪽 저 멀리 피아골계곡을 사이에 두고 우측은 왕시루능선이 좌측으로는 불무장등능선이 호위하고 그 넘어 저 멀리에는 운해속에 우뚝 솟아 오른 광양의 백운산과 도솔봉 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다시 몇명의 산친구들 사진을 담아 주고 반야봉 정상으로 행한다.
오르면서도 자꾸만 고개는 뒤로 돌려 아름다운 조망을 바라보는 횟수가 늘어만 간다.
이제 철계단을 올라 내려다 보니 바로 발아래로는 불무장등능선이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며 운해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그 다음을 백운산에게 인계하고 있다.
남해바다를 병풍처럼 가로막고 봄으로다 당당하게 남쪽 끝자락을 지키고 있는 백운산과 그 좌측 저 멀리 하동의 금오산이 이 산객의 잠자던 산행 본능을 다시 깨우고 있다.
백운산과 금오산 사이에는 남해의 망운산과 남해지맥을 이루는 산줄기들이 운해속에 희미하게 그곳이 육지임을 알려주고 있다.
당장이라도 다시 내려가 걷고 싶은 남해지맥의 산줄기들이기에 내년 봄에는 다시 한번 그 기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다.
다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등로를 타고 조금 더 오르니 금새 해발고도 1732미터인 반야봉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몇장 더 남겨 본다.
3년 전 비 내린 다음날 홀로 올라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던 반야봉이기에 오늘 다시 한번 그날의 추억을 더듬으며 주위 조망을 살펴보니 오을도 역시 3년 전 그때와 별반 차이없이 황홀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지리산 반야봉은 해발 1732미터로 지리산 3대 주봉의 하나로 천왕봉 다음으로 높은 봉인데 반야란 불교의 반야심경에 나오는 지혜를 뜻하는 말로 지리산의 지리와 음이 동일한 말이다.
반야봉은 노고단에서 임걸령으로 뻗어 나가는 높은 능선으로 이어지는 동북방 약 8 Km지점인 지리산권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지리산의 전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반야봉에서 바라 본 낙조는 지리산 8경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지리산 어느곳을 가더라도 오뚯이 솟아 있는 두 봉우리를 볼 수 있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다소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나 대개 여인의 엉덩이와 흡사하다는데 공감한다. 구름과 안개가 낀 날은 한국화를 보는 듯 아름답고 5월이면 정상에 철쭉과 야생화가 많이 핀다.
주봉(1732미터)과 중봉이 절묘하게 빚어낸 지리산의 대표적인 봉우리답게 노고단은 물론 멀리 천왕봉에서도 선명하게 조망돼 그 독특한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많이 한다.
특히 여름날 작열하던 태양이 지루한 하루를 보내고 저편 너머로 숨어들 무렵이면 반야의 하늘은 온통 진홍빛으로 물들어 보는 이들을 감동케 한다.
지리산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가 있는지를 끝없이 되뇌여도 반야봉의 낙조는 모자람이 없으며 화려한 불꽃잔치와 더불어 반야봉은 운해와 함께 우리에게 인식된다.
늘 발아래 운해를 거느리고 우뚝 솟아 있는 반야봉의 장관은 비경 그것이다.
태산준령들 사이 사이에 걸려있는 지리산의 운해는 아마도 주봉인 천왕봉과 반야봉에 얽힌 마고할미와 반야의 애틋한 마음을 그대로 전해주려는 듯 심오함을 갖고 있다.
반야봉에는 지리산 산신 중 여신인 천왕봉의 마고할미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그 여신은 선도성모 또는 마고할미 및 노고라 불리는데 바로 천신의 딸이다.
그 천신의 딸인 마고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도사 반야를 만나 결혼해 천왕봉에서 살았는데 그들은 딸만 8명을 낳았다.
그러던 중 반야는 더 많은 깨우침을 얻기 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반야봉으로 떠났고 그리고 마고할미가 백발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마고할미는 반야봉에서 깨우침을 얻기 위해 외로이 수도하는 남편 반야를 그리며 나무껍질을 벗겨 남편이 입을 옷을 만들고 마고할미는 딸들을 한명씩 전국 팔도에 내려 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린다. 기다림에 지친 마고할미는 끝내 남편 반야를 위해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 숨지고 마는데 갈기갈기 찢겨진 옷이 바람에 날리어 반야봉으로 날아가니 바로 반야봉의 풍란이 되었다고 전한다.
후세 사람들은 반야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이라 불렀고 그의 딸들은 8도 무당의 시조가 됐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선지 반야봉 주변에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는데 하늘이 저승에서나마 반야와 마고할미가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한다.
반야봉의 애틋한 전설과 장엄한 낙조의 경관을 찾아 나서는 길은 여러 갈래이지만 대개 종주등반길에 잠시 들르는 방식을 택한다.
주릉상의 노루목 또는 삼도봉에서 오를 수 있는데 모두 2 Km 거리에 해당되며 종주산행을 하면서 반야봉은 어쩌면 선택사양 품목과도 같다. 종주등반 과정에서 반야봉을 생략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곳에 오를 경우 1시간이라는 시간적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지만 지리산의 진면목을 살리기 위해서는 반야봉은 반드시 올라야 한다.
반야봉을 오르지 않고는 지리산의 참된 모습을 보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해지는 유래와 전설처럼 오늘 우리도 이곳 반야봉에 오르지 않았다면 많은 후회를 남겼을 시간으로 생각되는 황홀한 풍경과 조망이다.
반야봉에서의 조망 중 제일은 역시 반야봉 정상석 뒷쪽으로 동쪽을 바라보면 안전목책 넘어 토끼봉에서 저 멀리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까지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 온다.
영신봉 우측으로는 아름다운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 산줄기가 지리산의 주릉 못지 않게 아름답게 펼쳐지며 이 산객의 마음을 더욱 설레이게 만들고 있다.
일출이 되고 기온이 오르면서 조금씩 더 박무가 짙어지고 있지만 6월 중순이란 계절을 생각하면 복받은 종주대는 아닐까 생각 될 정도로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지리산 주능선의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반야봉 서쪽으로는 오늘 우리 종주대가 산행을 시작한 성삼재휴게소에서 노고단을 지나 돼지령과 임걸령이 한누에 펼쳐져 있다.
그 노고단 우측 운해 지나 저 멀리에는 광주의 진산으로 대접을 받고 있는 무등산이 우뚝하고 그 노고단 좌측 옆으로는 산행하며 그 이름을 부르고 싶어 안달을 했던 모후산이 우뚝하다.
그 모후산을 지나 좌측으로 조금 더 가 보니 그곳에는 호남정맥 산행의 백미 구간중 한곳인 조계산이 거대한 산군을 이루며 솟아 있다.
어렵게 올랐던 호남정맥 마루금이지만 호남 지방의 이름있는 거의 모든 산들을 돌아 진행했기에 오늘도 이렇게 반야봉 정상에 서서 보이는 산 이름을 불러 볼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산에 올랐던 보람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반야봉 정상에서 한참을 머물며 많은 사진을 남기고 다시 올랐던 등로를 따라 내려가며 살펴보니 시시각각 변해가는 운해와 풍경이 또 다시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고 조금 더 놀자고 이야기를 한다.
바로 눈 앞에 펼쳐진 안전목책과 로프가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주고 그 넘어 저 아래쪽으로 불무장등능선을 타고 내려가면 우측의 왕시루능선과 저 멀리 백운산과 도솔봉이 가깝게 다가와 있고 좌측으로는 낙남정맥 마루금과 그 우측 끝자락에 하동의 금오산과 남해의 일부 산군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펴쳐 놓고 바라보는 산객들의 영혼을 빼앗고 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이곳 이 자리에서 조망과 풍경을 즐기는 산객들 모두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각기 다른 추억으로 이 시간을 간직한 후 먼 훗날 아름다운 이야기로 풀어 놓을 것이다.
이제 노루목 갈림 삼거리 이정표로 뒤돌아 내려 와 벗어 놨던 배낭을 찾아 이제는 우측의 노루목 방향 등로를 버리고 천왕봉 방향인 좌측 등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잠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지리산 주능선과 만나고 그곳에 서 있는 천왕봉 20.3 Km 방향인 좌측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해 본다.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안부가 나타나고 그곳에는 반달가슴곰 출현지역이란 안내판이 눈길을 잡는다.
그곳 안부를 지나 바위를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반야봉 능선이 아름답게 다가오는데 그곳 지나 삼도봉쪽으로 걸어가니 선두조가 등로 좌측 공터에서 아침상을 펼치고 식사를 즐기고 있다.
그곳으로 들어가 함께 아침식사를 즐기며 쉬어간다.
아침식사를 즐긴 후 다시 배낭메고 주등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금새 삼도봉 정상에 도착해 사진 몇장 남겨 본다.
이곳 삼도봉은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그리고 경상남도의 경계면이 만나는 곳이라 해서 삼도봉이라 불리고 있는데 원래 삼도봉은 이곳 모양이 낫의날 같다하여 낫날봉이라 불리다가 닐리리 맘보를 연상시키는 날라리봉으로 바뀌었는데 지금은 삼도의 경계면에 있다하여 삼도봉으로 명명되었다.
이삼도봉 정상에는 정상석 대신 삼각 철제뿔로 만들어진 인공 구조물이 세워져 있는데 3개 도 방향으로 그 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삼도봉 정상의 남쪽 끝자락에도 전망바위가 있어 그곳으로 가 잠시 주위 조망을 즐겨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이곳 삼도봉은 또한 남쪽으로 불무장등능선을 가지친 봉우리로서 오래 전 한번 올랐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만 해도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하고 지리산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면서 무척 고생을 했던 기억 뿐이기에 언젠가 다시 한번 천하를 주유하듯 올라 흔적 한번 남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불무장등이란 이름은 산세가 대장간의 화로인 불무와 같이 생긴 형상이라 생긴 지명 또는 불무의 한문을 불무(없는 것이 없다)로 적은 것도 잘못 적은 것으로 즉 불교에서 생긴 지명이다.
반야는 불교에서 최고의 지혜를 뜻하고 다른 말로는 불모라고 하는데 불무장등은 반야봉에서 시작하고 반야장등에 있는 높은 산인데 반야라는 중복되는 글자를 피하여 같은 뜻인 불모장등이라고 불렀다.
옛날 인근의 지명에서 같은 한자는 되도록 피하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으로 이해가 된다.
다시 반야봉을 한번 더 조망하고 지나온 노고단도 돌아 본 후 남쪽 전망바위로 가 목통골을 내려다 보이 이곳 역시 환상의 운해가 발길을 붙잡는다.
우측으로 불무장등능선이 아름답고 좌측으로는 팔백능선 지나 낙남정맥이 멋지게 뻗어 지난날의 추억을 들려주고 있다.
그 줄기 넘어 저 멀리에는 금오산과 남해의 산군들이 점점히 떠 있고 조만간 그곳에 올라 오늘 이곳에서 만들었던 추억을 그리워 할 날도 오리란 생각이다.
오랫만에 그 아름다운 지리산의 속살을 이름만이라도 불러 줄 수 있어 좋은 시간으로 기억되는 순간이다.
좌측으로는 토끼봉 넘어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올려다 보이는 멋진 사진 몇장 더 남기고 삼도봉을 출발해 거꾸로 오르면서 지루하고도 힘들게 올라 오는 550계단을 타고 오늘은 여유롭게 걸어 내려가 본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다 잡목 사이로 보이는 등로 좌측을 보니 이제부터 올라야 할 토끼봉이 평범하지만 제법 높은 고도를 보이며 올려다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노고단에서 6.1 Km 지나 왔고 화개재까지 0.2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도 지난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금새 화개재에 도착을 하는데 그 화개재 평전 넘어 무명봉과 토끼봉이 저 멀리 올려다 보인다.
화개재는 삼도봉과 토끼봉 사이의 잘록한 고갯마루로서 지리산 주능선에서 가장 고도가 낮은 고개이다.
화개재는 우리말로 풀이하면 꽃피는 고갯마루란 의미인데 화개장터와 같은 의미의 이름으로 화개재는 먼옛날 하동의 화개장터와 남원의 산내장터 봇짐장수들이 물물교환을 했던 고갯마루를 말한다.
화개재에는 먼 옛날 산내장터에서 올라온 70대의 소금장수가 이 고개를 넘다 너무 힘들어 죽었는데 그 손자가 묘를 만들어 모셨는데 이곳 화개재 주위에 있는 그 큰 묘지를 두고 그 소금장수의 무덤이라 해 운봉무더미라 부른다는 가슴 아픈 전설이 서려있는 고개이다.
이곳 화개재는 또한 등로 우측으로 정중앙에 헬기장이 있고 좌측으로는 반선으로 하산하는 반선 갈림 이정표가 있는 곳이다.
반선은 본래 반산이었으며 일명 금포정이라고도 하였는데 옛날 반선 입구인 지금의 전적기념관 위치쯤에 송림사라는 절이 있었다.
송림사에는 매년 칠월 백중날 불심이 가장 두터운 스님 한 사람이 신선대에 올라 기도를 하면 실제로 신선이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었다.
어느 날 송림사에 들렀던 한 고승이 이 일을 괴이하게 여겨 신선대에 올라 기도를 하던 스님의 장삼에 몰래 명주실과 독을 매달아 두었더니 다음날 뱀소 부근에 용이 못된 이무기가 죽어 있었다.
그동안 신선이 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던 스님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반절쯤 신선이 되었다 하여 반신선이라 하였다가 이를 줄여 반선이라 하였으며 뱀이 죽은 계곡이라는 뜻으로 뱀사골이라고도 한다.뱀사골은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있는 지리산 줄기의 계곡으로 돌돌골이라고도 하는데 지리산 반야봉에서 반선까지 산의 북사면을 흘러내리는 길이 14 Km의 골짜기를 말하며 지리산의 칠선계곡, 피아골계곡, 한신계곡, 백무동계곡, 중산리계곡, 구룡계곡, 대원사계곡, 대성계곡 중의 하나이다.뱀사골하면 한국의 명수로 통하는데 지리산의 깊고 깊은 산록에서 맑고 깨끗한 물줄기가 빚어져 즐비한 담을 거쳐 거침없이 흘러내리는 뱀사골의 청정계류는 가히 손색없는 우리나라의 으뜸 물줄기라 부를 만하다.반야봉, 삼도봉, 토끼봉, 명선봉 사이의 울창한 원시림 지대에서 발원된 물줄기는 기암괴석을 감돌아 흐르면서 절경을 일구어 놓아 뱀사골의 계곡미 또한 장관이다.
대부분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곡을 따라 약 8 Km까지는 크고 작은 폭포와 연못이 연이어 있다.
요룡대, 탁용소, 뱀소, 소, 병풍소, 단심폭포, 간장소 등의 명소가 이어지며 곳곳에 100여 명이 한자리에 앉을 수 있는 넓은 암반이 있으며 봄의 철쭉,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으로 계절에 따른 색다른 절경을 이룬다.특히 뱀사골의 한여름은 15도 이하의 냉기를 항상 유지하며 가을의 단풍은 피아골 단풍보다 더 아름답다고 하는데 뱀사골이라는 이름은 배암사라는 절이 있었고 골짜기가 뱀처럼 사행하고 있어서 붙여졌다고 한다.실제로 약뱀이 많다고 하며 인근 주민들은 한해에 2만 마리 정도의 약뱀을 잡아 가계소득을 올리고 있는 계곡으로서 남원과 전주 및 함양 등지에서 계곡 입구까지 버스가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많이도 찾았던 뱀사골 계곡이였는데 맥 잇기 산행에 빠지면서 한동안 들리지 못해 괜시리 미안한 시간이 되여 버렸다.
화개재에서 나무데크를 타고 능선으로 들면서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삼도봉 지나 우측으로 반야봉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능선으로 들어 완만하게 오르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화개재에서 0.8 Km 지나 왔고 연하천대피소까지 3.4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이정표를 지나 새로 조성된 등로를 타고 오르니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구간을 지나 금새 토끼봉 이점표에 도착을 한다.
화개재에서 1.2 Km 지나 왔고 연천대피소까지 3.0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토끼봉 이정표 뒷편에는 넓은 헬기장도 보인다.
토끼봉은 정상이 믿믿한 초원지대와 구상나무 상록수림 지대로 정연하게 구분되어 있어 마치 인공적으로 조성한 훌륭한 정원처럼 그 경관이 매우 우아할 뿐만 아니라 반야봉의 웅장한 모습이 서쪽에 솟아 있고 북쪽은 뱀사골, 동남쪽은 화개골의 광활한 지역을 덮고 있는 울창한 나무바대인 수해의 전망이 누구나 잠시 발길을 멈추고 쉬어가기에 알맞은 고봉이다.
정상 초원에 지보초(식용산채류)가 군생하고 있어 지보등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곳 이정표가 서 있는 곳은 실질적인 토끼봉은 아닌듯 보이며 조금 더 오르면 바위가 있는 실질적인 정상부가 따라 나타난다.
다시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 오고 그 아름다운 조망을 즐기며 걸어 진행을 한다.
잠시 더 내려가니 다시 등로 좌측의 조망이 펼쳐지고 그곳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에서 바로 앞 삼각고지까지 펼쳐진 아름다운 마루금을 살펴 본다.
많이도 걸었고 앞으로도 또 얼마나 많이 걸어야 할지 모를 산줄기이기에 오늘도 가슴 한쪽에 남겨 둔 그리움이란 방에 그 아름다운 지리산의 주능선을 나겨 보는 시간이다.
다음에 다시 지리산에 올 때에는 오늘보다 조금은 더 쉽게 걸어 볼 수 있기를 기대로 하면서 걸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지리산 주능선을 살펴 보며 걸어 내려가니 다시 좁은 등로가 연이어 나타나고 안부를 지나 잠시 휴식을 취해 본다.
휴식 후 걸어 진행하니 지나 온 토끼봉이 올려다 보이고 그곳에 연하천대피소까지 2.0 Km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다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기 시작하니 좁은 안부가 나타나고 그 안부를 지나니 오르막 바위 너덜구간이 나타난다.
연하천대피소까지 1.0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드디어 명선봉 정상 안부에 도착을 해 심호흡 한번 더 해 보고 출발한다.
원래 명선봉 정상은 이 안부 우측 봉우리로서 그 정상에는 작은 삼각점 하나가 박혀 있는데 그곳은 오를 수 없는 금기의 땅이기에 이곳 안부를 편의상 명선봉이라 부르고 있다.
명선봉 정상 안부를 지나 진행하니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반야봉이 보이지만 사진에 담을만한 조망이 아니기에 아쉽기만 하다.
계속 작은 바위너덜을 타고 진행하니 등로 우측 앞으로 지리산 주능선이 다시 조망되어 잠시 그 풍경을 눈으로 담아 본 뒤 걸어 본다.
바위 자갈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이제 연하천대피소까지 0.4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반갑고 내리막 계단을 타고 천천히 내려가니 저 멀리 연하천대피소 건물이 내려다 보인다.
이곳 연하천대피소 역시 많은 추억을 남긴 곳이고 하룻밤 지샜던 곳이기에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
연하천은 명선봉의 북쪽 가슴턱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은 고산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숲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구름속에서 흐르고 있다 하여 연하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연하천은 언제나 수림속의 맑은 공기와 싱그러운 풀향기와 꽃향기가 그윽한 지대이며 여기서 오른편으로 접어들면 약 2 Km 지점의 삼각고지에 이른다.
이곳에서 시원한 샘물을 마음껏 마시고 준비한 물통의 물을 비운 후 새롭게 연하천 샘물로 채워 출발한다.
이제 천왕봉까지 15.0 Km 남아 잇다는 이정표를 지나 준비된 벤취에서 함께하는 산친구들과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출발하니 등로는 나무그늘로 덮혀 너무나 아름답기만 하다.
특별히 조망도 없이 나무 그늘 등로를 따라 한동안 무심으로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시원한 낙남정맥 마루금이 구름속에 숨어 숨바꼭질 하자고 졸라대고 있다.그 낙남정맥이 갈라지는 삼신봉에서 우측으로 향하는 지능선은 성제봉을 이루고 섬진강에서 가라 앉는데 그 등로를 타고 진달래가 곱게 피어있는 계절에 쌍계사로 내려가 걸었던 추억이 떠 오르는 시간이다.다시 조금 더 진행하니 삼각고지 이정표가 보이는데 등로 좌측으로는 음정마을까지 7.5 Km란 거리 표시가 반가운 이정표이다.삼각고지는 해발 1470미터의 돌출봉으로서 좌우로 탁트인 백무동과 화개골을 시원스럽게 볼 수 있어 저절로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곳이며 이곳에서 좌측으로 북쪽 능선을 타고 내려가면 영원재와 삼정산을 거쳐 실상사로 내려갈 수 있다.
삼각고지에서 다시 종주 코스를 따라 능선길로 내려가다 형제봉으로 오르는 길목 왼족 능선위에 형제 바위라 불리는 10여미터 높이의 우뚝솟은 큰 선바위(입석)를 보게 되는데 언뜻 보기에는 한 개의 큰 석상처럼 보이나 자세히 살펴보면 서로 등을 맞대고 서 있는 두개의 석상임이 분명하다.
이 형제 바위에 얽힌 전설은 옛날 지리산에서 두 형제가 수도하고 있을 때 산의 요정 지리산녀의 간곡한 유혹을 받았으나 형제가 다 같이 이를 물리치고 도통성불하고 성불한 후에도 집요한 산녀의 유혹을 경계하여 도신을 지키려고 형제가 서로 등을 맞대고 너무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서 있었기 때문에 그만 몸이 굳어서 그대로 두 개의 석불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잠시 산친구와 삼각고지와 지리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천천히 등로를 타고 올라 본다.
언제 한번 삼정능선을 타고 이곳 삼각고지로 올라 올 기회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도 해 보는 시간이였다.
음정 갈림 이정표가 서 있는 삼각고지를 지나 계속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민둥의 무명봉 정상에 올라 천왕봉까지 14.0 Km 남아 있다는 이정목을 만난다.
이제 제법 뜨거워진 햇살을 피해 곧바로 나무 그늘로 들어가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거대한 바위가 있어 우측으로 우회해 통과하니 벽소령대피소까지 이제 2.4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반갑다.
그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바위 아름 등로가 나타나는데 그곳 좌측으로 저 멀리 천왕봉에서 이곳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이 다시 한눈에 들어 온다.
이제 천왕봉 정상부에는 약간의 하얀 구름이 덮기 시작하며 고봉의 날씨 변화를 몸으로 느끼고 눈으로 보게 만들고 있다.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한 후 암릉 사이로 설치된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다시 평이한 그늘 등로로 이어지고 곧바로 이제 올라야 할 형제봉이 바로 눈 앞으로 다가와 있는 풍경이 보인다.
그 형ㄹ제봉 좌측 저 멀리 조금 더 뚜렷한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이 아스라히 보이고 그 봉우리 위에는 하얀 뭉게 구름이 걸려 마치 하늘이 지리산과 연결된 듯 보인다.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조망이 아닐 수 없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거대한 바위가 앞을 가로 막아 우회하고 너덜길을 타고 진행하니 해발고도 1462미터란 이정목과 두개의 갈라진 바위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형제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형제봉 정상에도 나무 한그루 없어 뜨거운 햇살이 머리 위로 내려 쬐지만 그 정상 우측의 전망바위엔 안 들릴 수 없어 잠시 올라 보니 그곳에도 멋진 조망이 펼쳐져 있다.
중산리에서 올라 벽소령에서 하룻밤 머물고 진행하던 종주산행 시에는 이곳 형제봉에 올라 아침 일출을 보던지 아니면 늘 어둠속에 지났던 기억이 나 잠시 더 머물며 아름다운 주위 조망을 즐겨 본다.
먼저 가야 할 방향으로 바라보니 바로 발 아래 형제바위가 위풍당당하게 내려다 보이고 그곳 넘어 1403봉 지난 지점 바로 아래에 오늘 백두대간 산행의 종착지인 벽소령대피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곳을 지나면 덕평봉 지나 영신봉이 올려다 보이고 그 우측 능선으로 낙남정맥 마루금이 멋지게 뻗어 내려가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촛대봉 지나 다시 제석봉을 넘으면 지리산 천왕봉이 아스라히 서 있고 그 뒤로는 중봉과 하봉이 부끄러운듯 다소곳이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형제봉이란 이름은 자료를 찾을 수 없었는데 이 산객이 생각하기에 봉우리 아래에 두개의 바위가 마치 형제처럼 의좋게 서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형제바위에서 유래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형제봉 전망바위를 내려오기 전 남동쪽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잠시 후 벽소령대피소에서 내려가야 할 대성리 의신마을이 박무속에 모습을 드러내고 그 빗점골 좌측으로는 낙남정맥 마루금을 따라 내려 온 산줄기가 삼신봉에서 갈라져 내삼신봉을 일으키며 쌍계사로 흘러가는 풍경도 한눈에 들어 온다.
참으로 많은 추억과 발자취를 남겼던 곳들이기에 오랫만에 다시 내려다 보는 조망 역시 남다르기 그지없다.
언제 다시 저 능선을 다시 타고 걸으며 이곳 지리산 주능선을 올려다 볼 수 있을지 기약은 없지만 이렇게 간절하게 희망을 하다 보면 금새 다시 그곳에 올라 오늘을 추억할 수 있는 시간도 가져 볼 것이다.
이제 벽소령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조금 더 여유를 부리며 주위 조망을 즐겨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함께 종주하는 많은 산친구들의 사진을 담아 준 후 그 형제봉 전망바위를 내려 와 내리막 등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늘 어둠속에 네발을 이용해 기어 오르듯 올랐던 작은 암릉들이 산재해 있고 그 옛날 함께 지리산을 걸었던 친구들을 생각하며 그리움을 표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잠시 더 내려가니 방금 전 전망바위에서 내려다 봤던 거대한 형제바위를 만나 잠시 사진 몇장 남겨 보지만 그곳 정상에 오르지 못함이 아쉬운 시간으로 남는다.
예전에는 저 형제바위 정상에 올라 북동쪽으로 가깝게 자리하듯 다가왔던 비슬산과 팔공산까지 조망을 즐기곤 하였는데 오늘은 그 아래에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푸른 소나무와 의좋은 형제처럼 붙어 당당하게 서 있는 형제바위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시간이다.
종주시에는 잘 느끼지 못하고 지나쳤던 지리산의 속살을 조금이나마 더 알아보고 즐기는 오늘 같은 산행이 더 즐거운 이유는 이제 나이가 조금 더 들어서 일련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홀로 웃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형제바위를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돌아 내려가니 그 옆에는 이제 노고단에서 12.6 Km 지나왔고 벽소령대피소까지 1.5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보이고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는 시간이다.
이제 오늘 산행도 종착지를 향해 걷다 보니 얼마 남지 않은 거리이기에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는 시간이 되였다.
그 형제바위를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키큰 산죽들이 잠시 등로를 가득메우고 옛추억을 생각하며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또 다른 전망바위가 나타나 그곳으로 올라 잠시 더 망중한을 즐겨 본다.
지나 온 방향으로 형제봉 좌측 저 멀리 노고단과 반야봉이 얼굴만 내민채 멀어져 가는 종주대를 아쉬워하고 남동쪽으로는 낙남정맥의 마루금이 박무속에 그 위용을 뽐내고 당당히 서 있다.
바로 앞에 있는 전망바위에 올라 있는 산친구의 사진을 저 멀리 천왕봉을 배경으로 담아준 후 그곳 전망바위를 내려 와 여유롭게 벽소령대피소로 향한다.
그 전망바위를 지나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연하천대피소에서 2.9 Km 진행해 왔고 벽소령대피소까지 0.7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는데 선두조에서는 이미 중간조까지 벽소령대피소에 도착을 했다며 어디쯤 진행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무전기 소리가 들려 온다.
살펴보니 너무 여유를 부렸는지 마지막 후미조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음을 인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이정표를 지나니 등로 양쪽에 거대한 암벽이 서 있는 개선문 같은 등로를 지나 다시 바위들이 산재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하는 시간이다.
그 바위틈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저 멀리 덕평봉이 보이는가 싶더니 금새 벽소령대피소가 눈 앞에 다가와 있다.
그렇게 함께하는 산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어느새 오늘 백두대간 산행의 종착지인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해 추억 몇장 남기며 단체사진으로 백두대간 산행을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해발고도 1400미터 부근에 위치한 벽소령의 유래는 이곳에서 보는 달빛이 너무도 희고 맑아서 푸른빛으로 보인다해서 벽소령이란 이름이 붙었으며 그후 이곳에 대피소를 만들어 지리산을 찾는 많은 등산객들의 쉼터 및 안식처로 자리잡게 된 계기가 되였다
벽소령대피소에서는 지리산 종주 코스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곳으로서 지나 구간 우리 종주대가 하산한 북쪽으로 음정마을 하산로와 오늘 내려갈 남쪽의 의신마을 하산로가 있는 중요한 위치이기도 하다.
많은 추억과 사연을 남겼던 벽소령이기에 잠시 둘러보고 금새 남쪽 방향인 취사장 가는 길목 좌측의 의신마을 이정표 있는 곳에서 하산을 시작해 본다.
몇번의 밤을 지새웠던 벽소령대피소, 저 의신마을 하산 이정표가 서 있는 우측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면 취사장이 있고 그곳에서 민생고를 해결한 후 취사장 옆 하늘의 달빛이 잘 올려다 보이는 곳에서 밤새 독주 몇잔을 마시며 인생을 이야기하고 청춘을 불사랐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머리엔 하얀 염색을 한듯 변해있고 가뿐하게 올랐던 발걸음도 자꾸만 무거워짐을 느끼는 것을 보면 이제 이 산객의 발걸음도 예전만큼은 아님을 몸으로 느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도 좋은 산친구들과 아무 셈도 없이 그저 산만 바라보며 이렇게 발걸음을 맞출 수 있음에 감사하며 아쉬운 눈길로 다시 한번 벽소령대피소를 담아보고 하산을 서둘러 본다.
의신마을 6.8 Km란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내려가니 금새 바위너덜길이 이어지고 발바닥에 불이나는듯 뜨거워져 온다.
오래전 산행도 잘 모르던 시절 친구따라 삼정에서 한번 올랐던 기억이 있는 곳이지만 산행을 제대로 즐기기 시작한 이후에는 한번도 찾지 않았던 곳이기에 새롭게 살펴보며 내려가니 해발 1196미터란 이정목을 지나 벽소령대피소에서 0.7 Km 지나왔고 의신마을까지 6.1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지만 등로는 여전히 바위 너덜길이 이어진다.
그곳을 지나니 등로 우측으로 지계곡이 나타나는데 살펴보니 덕평골로서 생각보다 수량은 제법 흐르고 있다.
계곡 물소리라도 들으며 내려가니 조금은 지루함이 덜해질쯤 다리 하나를 건너 이제부터 계곡을 좌측에 두고 진행을 하게 된다.
선비샘의 유래를 낳게했던 이씨 노인에 관한 이야기를 떠 올리며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등로는 온순해지기 시작하고 잠시 계곡물에 손한번 담구고 내려가는 여유도 부려 본다.
의신마을에서 대부분 거림골을 거쳐 세석대피소 방향으로 등산을 하고 있기에 이곳 덕평골 등로는 생각보다 좋지 못하다.
계속 이어지는 덕평골 바위 위에는 파란 이끼가 끼어 있어 등산객들의 발길이 별로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계속 소로의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바위 너덜길이 사라지고 평이한 등로가 나타나는데 그곳 좌측에 이제 벽소령대피소에서 1.3 Km 내려왔고 의신마을까지는 아직도 5.5 Km 가 남아있다는 이정표를 다시 만난다.
이제 키 작은 산죽과 홀엽수가 그늘을 만들어 햇빛도 쉽게 들지 못하는 등로를 따라 덕평골 계곡 물소리를 친구삼아 걸어 보는 시간이다.
해발고도 999미터란 이정목을 지나 해발고도 962미터란 이정목을 통과하니 등로 좌측에 너럭바위가 보이고 그곳에서 갑장 친구 한명과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중간 그룹의 산친구들이 단체로 내려오고 이제부터 많은 산친구들과 함께 줄지어 내려가는 시간이 되였다.
그렇게 한동안 이야기 나누며 걸어 내려가니 이제 벽소령대피소에서 3.1 Km 내려왔고 의신마을까지 3.7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난다.
그곳 이정표가 서 있는 지점을 통과해 진행하니 잠시 후 등로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변하면서 급격하게 고도를 낮추고 있다.
한동안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온순한 등로로 변하는가 싶더니 짧은 바위 너덜길을 지나 해발고도 655미터란 이정목을 지난다.
고도가 많이 낮아졌다고 느낄쯤 드디어 등로 앞으로 삼정마을 민가가 보이기 시작하고 저 앞으로 시멘트 포장 임도가 나타난다.
민가 옆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벽소령대피소까지 4.0 Km거리란 이정표를 만나고 이제부터 시멘트 포장 임도를 타고 내려가 본다.
임도 옆에는 제법 많은 자가용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어 이곳 덕평골이나 빗점골을 통해 산태골이나 절골을 타고 주능선으로 올랐다 내려오는 계곡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들의 차량으로 생각된다.
의신 윗마을 삼정은 삼각등과 말안장터 등 세 곳의 길지가 있어 이곳에 묘를 쓰면 세 사람의 정승이 나올 것이라 하여 삼정 혹은 삼점이 되었다 한다.
삼정에는 벽소령 등산로 말고도 빗점골, 왼골, 사태골, 절골 등의 샛길이 주능선까지 이어지는데 그 중 빗점골은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의 최후 격전지이기도 하다.
언젠가 무더운 여름날에 능선이 아닌 이곳 계곡을 타고 진행하며 가슴 아픈 역사가 남아 있는 빨치산 루트에 대해 알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걸어 내려가 본다.
이제 뜨거워진 기온과 태양열로 인해 내려가는 등로 위에서도 굵은 땀방울이 온몸을 적시는 시간에 당장이라도 시원한 계곡물에 들어가 보고 싶지만 계곡으로 통하는 등로가 없으니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지루한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본다.
잠시 더 내려가니 빗점골로 갈리는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만나고 살펴보니 의신마을까지는 아직도 2.7 Km의 시멘트 포장임도를 타고 더 내려가야 된다는 거리 표시가 한숨만 나오게 만든다.
그 이정표 지난 그늘에서 마지막 배낭 털이를 하는 산친구들을 남겨두고 홀로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금새 도로 옆 개울가에선 시원한 계곡물이 이 산객을 유혹하고 있다.
잠시 세수 한번 하고 손수건을 적신 후 목에 두르고 내려가니 그나마 살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내려가니 해발고도 535미터란 이정목을 지나 눈 앞에 삼신능선이 바라다 보일쯤 등뒤에서 트럭 한대가 내려오는데 이 산객 옆에서 멈추고 살펴보니 뒤따르던 산친구들이 모두 그 트럭을 타고 내려오며 어서 타라고 재촉이다.
갑자기 횡재를 만난 기분으로 트럭 짐칸에 올라 또 다른 추억 하나를 만들며 내려가다 만나는 산친구들 모두를 태워 무사히 의신마을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차량을 수배하고 거금까지 내준 산친구님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한 마음 전해 드린다.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의신마을은 화개면지에 따르면 의신은 대성리의 중심 마을로 화개에서도 사찰이 가장 많았던 불교의 요람지였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의신사 혹은 의신의 암자에서 도를 닦은 의신조사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럭 아저씨에게 감사한 인사 남기고 의류를 챙겨 도로 옆 계곡물로 가 오랫만에 우리들만의 넓고 깨끗한 대중목욕탕에서 소위 알탕을 즐기며 하루의 피로를 씻어 본다.
그렇게 몸 단장을 하고 집행부에서 준비한 소고기를 구워 잔치상을 벌리니 이 세상 모두가 내것이 되였다.
욕심을 조금만 버리고 자연과 벗삼아 이렇게 또 하루를 보내고 나니 심신이 맑아지며 복잡했던 세상 시름이 눈녹듯 사라지는 시간이다.
홀로 오르면 홀로 오르는대로 또 오늘처럼 함께 오르면 함께 오르는대로 그 멋에 취하고 사람에 취하면서 자연이 주는 만큼 받다보면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본 멋진 백두대간 산행이 되였다.
늘 계획하고 준비하며 리딩하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지를 알기에 상황봉대장님과 정이 총무님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감사한 인사를 전해 드립니다.
후미에서 생기는 것 없이 자기 희생하며 묵묵히 전체를 아우르는 주윤발 후미대장님과 선두에서 길라잡이로 수고해 준 바다사랑 대장님의 수고에도 큰 박수를 보내고 차량 수배와 거금까지 보태주신 겨울애님의 배려와 많은 고기를 준비해 주신 나마스테 대장님에게도 지면을 빌어 감사한 마음 전해 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백두대간 산행을 사랑하고 직접 참여하면서 함께 즐겨준 많은 산친구님들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하며 제3차 백두대간 산행 후기를 마무리 해 봅니다.
제 4차 산행에도 변함없는 성원과 참여를 부탁 드리며 무더위에 늘 건강 챙기시기 바랍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대간제3차(미완성 완료) > 백두대간 제3차 산행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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