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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제3차(미완성 완료)/백두대간 제3차 산행후기

3450온누리산악회 5기 제1차 백두대간 사치재에서 중치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4.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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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북도 남원시와 장수군 그리고 경상북도 함양군의 백두대간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4년 05월 09일과 10일 (금요 무박 토요일 산행)

산행날씨 : 맑고 화창했지만 새벽에 약간 춥고 한낮엔 약간 무더위를 느꼈던 날씨

산행온도 : 영상 08도에서 영상 23도

산행인원 : 3450온누리산악회 제5기 백두대간 종주대 30명과 함께

산행코스 : 지리산휴게소(88올림픽고속도로)-사치재(아실재, 88올림픽고속도로에서 백두대간 산행시작)-620봉 헬기장-693봉-새목이재 안부-헬기장-

                   시리봉(776.8봉)-남근석(781봉)-철쭉군락지-복성이뒷재(아막성터 돌탑)-아막성터-임도-601.4봉-복성이재(2차선 포장도로)-목장지대-

                   매봉(712.2봉)-철쭉군락지-치재-보리수군락지-봉화산(919.8봉)-봉화산쉼터(시산제) 임도-무명봉(870봉) 전망처-묘지봉-전망바위-944봉-

                   큰봉(935봉)-전망바위-출입금지 안내판 안부-광대치-약초시범단지-월경산 갈림삼거리-월경산(981.9봉)-월경산갈림삼거리 복귀-

                   철쭉나무터널-소나무 군락지-중치(백두대간 산행종료)-백운계곡 지지천-743번 2차선 지방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0.00 Km

산행시간많은 사진 찍고 시산제까지 지내며 꾸준한 속도로 10시간 30분 (03시 40분부터 14:10분까지)

교통편백두대간 제5기 40인승 전용버스 이용

백두대간이란 ???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으로 맥을 뻗어 내리다가 태백산을 거쳐 남서쪽의 지리산에 이르는 국토의 큰 줄기를 이루는 산맥을 백두대간이라 부르는데 이 산줄기를 이루는 주요 산은 백두산(2750봉)을 기점으로 포태산(2289봉), 두류산(2309봉) 등 해발고도 2000미터 내외의 고봉으로 이어져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을 양분한다. 

산줄기는 다시 남쪽으로 차일봉(1742봉), 철옹산(1085봉), 두류산(1324봉), 추가령(752미터)으로 이어지며 또한 동해안을 끼고 금강산(1638봉), 진부령(529미터), 설악산(1707.9봉), 오대산(1563.4봉), 대관령(832미터), 두타산(1352.7미터)을 거쳐 태백산(1566.7봉)에 닿는다.

여기서 방향을 남서쪽으로 돌려 소백산(1439.5봉), 죽령(689미터), 이화령(548미터), 속리산(1058.5봉)으로 뻗어내리고 이로부터 추풍령(221미터), 황악산(1111.4봉), 삼도봉(1177봉), 덕유산(1614봉), 지리산(1915봉)으로 이어지면서 산줄기는 끝이 난다.

신경준의 산경표에 따르면 한국의 산맥은 1개 대간과 1개 정간 및 13개 정맥 체계로 되어 있고 이러한 산줄기(산경)의 개념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잘 나타나 있다.

즉 제일 굵은 선으로 표시한 것은 대간이고 두번째 굵은 선으로 표시한 것은 정맥이며 세번째 굵은 선으로 표시한 것은 지맥 그리고 기타는 골짜기를 이루는 작은 산줄기 등으로 나타냈다. 

이렇듯 대간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산줄기들은 지역을 구분짓는 경계선이 되었으며 삼국의 국경과 조선시대의 행정경계를 이루었다.

따라서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자연적 상징이며 동시에 한민족의 인문적 기반이 되는 산줄기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출발점에 서서 옛 추억을 찾아 그리움을 채웠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만나 안기면 편안하고 떨어져 보이지 않으면 그리운 어머니 품처럼 이 산객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는 백두대간 산행이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다른 맥 잇기 산행에 빠져 자주 오르지 못하다 보니 다시 그 그리움이 커져만 가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다시 발길을 돌려 찾은 마루금은 이 산객의 심란했던 마음을 힐링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 되어 주었다.

원래 목표는 남진으로 마음 놓고 걸어 보는 것이였는데 온누리산악회에서 그 기회를 잃어 버리고 나니 당분간 홀로 오르지 않는 한 남진으로 걸어 볼 기회는 달아 난 느낌이지만 그래도 이어지는 북진 산행이 있으니 당분간 참여를 결정해 본다.

 

늘 익숙했던 무박산행이였지만 그것도 경험에서 멀어지니 어딘지 모르게 낯설게 다가오고 생각보다 잠 못드는 밤을 보낸 후 어렵게 도착한 지리산휴게소에서 한기를 느끼는 새벽에 처음 백두대간 마루금을 대하듯 조심스레 악수를 청해 보는 시간이다.

지금은 부끄럽고 서먹한 시간이겠지만 그 품에 안겨 잠시 찰나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언제 그랬냐는듯 한 몸이 되어 뒹굴고 부대끼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또 그렇게 산사나이의 찐한 우정을 쌓아갈 것이다.

 

늘 마무리는 새 출발로 이어지고 새출발을 시작하면 곧이어 그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기에 그 끝자락도 금새 보일 것이다.

그 끝자락이 보이기 전에 큰 그리움을 털어내고 인생에서 그토록 크게 꿈꾸고 도전하고자 하였던 젊은 시절의 추억을 생각하며 오늘도 이 산객이 걸었던 발자국 위에 다시 새로운 발자국을 보태는 시간이 되였다. 

 

하루에 한번씩 늘 만나고 기억하는 일출인데 왜 이리 오늘 아침은 흥분을 하면서 나뭇가지를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허둥대고 있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만나는 일출은 큰 감흥 없이 그냥 지나치기 일쑤지만 이렇게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산새 소리를 들으며 맞이하는 일출은 온 세상이 다시 태어나는 새로운 기분으로 숭고하게 맞이하기에 그 의미와 상황이 완전히 다름을 오늘도 다시 느끼는 시간이다.

아무리 두꺼운 구름이 막아도 짙은 안개가 앞을 가로막아도 여전히 시간에 맞춰 떠오르며 온 세상을 밝게 비추는 저 태양처럼 이 산객도 세상을 밝히는 한알의 밀알이 되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을 담아 빌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벌써 다섯번째 들리는 88올림픽고속도로 위 지리산휴게소에서 오랫만에 다시 시작하는 온누리산악회 5기 제1차 백두대간은 이 산객에게 참으로 의미가 색다른 산행으로 다가온다.

아직 오르고 싶고 들리고 싶은 마루금이 많지만 만 4년여를 제대로 들리지 못한 백두대간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면서 다시 그 그리움을 채우려 이곳으로 다려온 시간이기에 게절이 바뀌고 세월이 흐른 후 오랫동안 추억될 멋진 시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간단히 체조를 하면서 몸을 풀고 고속도로를 따라 고속도로 옆 사치재에서 멀고도 긴 백두대간 제5기 1차 산행을 시작하는 마음은 처음 백두대간 산행을 시작한 만 8년전 그 시절로 돌아 간 느낌 그대로 출발을 하는 시간이다.

사치재는 해발고도 498미터로서 697봉과 618봉 중간의 고갯마루인데 지금는 88올림픽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으며 2차선 도로를 4차선 도로로 확장하면서 한창 공사가 진행중인 곳이다.

서쪽에는 사치마을이 동쪽에는 인월면 아곡리 마을이 있는데 사치재 즉 아실재란 뜻은 모래언덕고개라는 뜻이다.

이 지역은 암릉은 전혀 없고 고속도로 주변과 사치재 아래로 논과 밭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서 풍수설에 의하면 비안낙사 즉 기러기가 모래밭에 앉은 형국이라 한다.

이렇듯 이 산객이 자주 들릴 수 없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을 배우고 바라보며 나와 다른 삶이 있음을 알아가는 것 역시 백두대간 산행을 하는 이유중의 하나일 것이다. 

 

초반부터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오르니 약간 한기를 느꼈던 몸이 달아 오르며 등줄기와 이마에서 금새 굵은 땀방울이 흐르며 등로를 적시고 있다.

특히나 왕사가 많은 오르막 등로이다 보니 생각보다 미끄러워 진행에 어려움이 있고 더욱이 처음 이곳 백두대간 산행을 함께 시작하는 오래된 인연의 산객 한분과 함께 오르다 보니 오랫동안 산행을 즐긴 이 산객도 약간은 긴장을 했는지 처음 출발이 버겁기만 하다.

어둠이 아니였다면 불난 지역이기에 큰 나무들이 사라진 관목지대에서 멋진 조망을 즐기며 진행 할 수 있는 곳인데 어둠속에 모두 묻고 진행해야 하는 시간이 아쉬움을 더해 주는 시간이다.

그래도 꾸준히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금새 620봉의 헬기장에 도착해 옷가지 정리하고 물 한모금 마시며 목마름을 달래 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밝음이 찾아 오기전까지는 후미에서 천천히 홀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 산우님들을 뒤따라 가니 앞서 진행하는 산우님들 불빛이 어둠속에 빛나며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관목과 지난해 자랐다 말라버린 억새 줄기를 따라 잘 발달된 등로를 따르니 선두그룹에서 길주의 지점을 알려 주지만 어둠속에 함께 진행하다 보니 좌측 갈림 등로를 찾지 못해 짧은 알바로 인해 선두와 후미가 뒤바뀌는 웃지 못할 헤프닝도 일어난다.

일상 생활에서는 쉽게 웃을 수 없었던 기회가 이렇게 짧은 알바로 인해 엔돌핀이 솟아나는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다시 정상 등로를 찾아 진행하다 등로 우측을 내려다 보니 방금 전 시작한 88올림픽고속도로 상 지리산휴게소가 밝은 불빛속에 빛나고 있다.

 

정상 등로로 진행을 하면서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따르지만 다시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놓치고 짧은 알바 후 잠시 웃음으로 그 미안함을 달래고 오르니 평이한 등로가 열려있다.

다시 후미로 빠져 천천히 오르니 앞에서 오르는 산우님들 옆으로 거대한 바위가 올려다 보이는데 어둠속에 언뜻 최전방 군부대에 서 있는 탱크처럼 보이길래 사진에 담아 본다.

몇번이나 지나다녔던 곳이지만 기억에 없던 바위가 오늘은 어둠속에 이 산객의 기억속에 뚜렷히 살아났으니 이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라 할 것이다.

 

바위를 지나 오르니 다시 등로 우측으로 지리산휴게소의 불빛이 유령의 불빛이 되어 오랫동안 산객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다음에 다시 들릴 땐 저 지리산 휴게소에서 시원한 음료수 한잔 마시며 어둠속에 보지 못했던 추억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693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를 넘어 다시 거목들이 등로를 지키는 평이한 마루금을 따라 걸어가니 지금까지 이 산객이 걸었던 기맥과는 달리 고속도로에 선답자들의 띠지들 역시 나뭇잎 만큼이나 많이 달아 놔 큰 어려움 없이 룰루랄라 걸어 보는 시간이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등로 옆에 사시나무의 하얀 껍질이 헤드렌턴에 빛나고 그렇게 뚜렷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다 보니 오래전 걸었던 추억이 되살아나고 잠시 그 때의 감흥에 젖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에 넓은 공터인지 헬기장이 나타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거대한 소나무들이 반겨주는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부러진 소나무 가지를 조심하며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묘지 한기가 푸릇하게 자라난 푸른 둥굴레 옷을 입고 자리를 지키고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옛날 새목이재라고 적혀있는 안내판이 반겨주던 임도를 만나는데 오늘은 아무리 찾아봐도 그 안내판이 사라지고 휭하니 비어 있다.

새목이재는 693봉우리와 시리봉 사이의 임도 안부에 자리한 고개로서 남동쪽 임도와의 사이에 샘터가 있다는데 아직까지 본적은 없고 다른 지명의 새목이재와 마찬가지로 새의 목에 해당되는 고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 새의 목을 확인할 방법이 없을 정도의 어둠이 내려 앉아 있기에 그저 아쉬운 발길만 돌린다.

 

새목이재 안부 임도를 건너 다시 나타나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에 눈사람을 닮은 바위가 자리를 지키고 그 바위를 지나 오르니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며 등로 옆에 피었다 시들어가는 철쭉꽃들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철쭉꽃을 바라보며 나즈막한 무명봉에 오르니 드디어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시리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시리봉 넘어 저 멀리 봉화산과 백운산 자락도 서서히 고개를 내밀며 다시 만나는 반가움을 표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일출 전후의 시간으로 생각이 제일 확실하게 깨어 있으면서도 큰 욕심없이 펼쳐진 산하를 가장 잘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기에 무심으로 걸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무명봉을 넘어 진행하니 다시 키 작은 철쭉 관목과 키 큰 소나무들이 잘 어우러져 멋진 등로를 열어주고 조금 더 걸어가니 철쭉 관목이 사라지며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가 보이는데 그 소나무 사이로 줄지어 걸어 올라가는 종주대의 뒷모습이 한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진행하는 사이 구름과 박무로 인해 기대하지 않았던 일출이 등로 우측 소나무 사이에서 시작되고 뛰다시피 걸어 어렵게 확보한 작은 공간에서 하루의 성스러운 의식을 황홀하게 바라 본다.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빛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평등의 빛으로 다가오는 일출일 것이기에 오늘도 이 산객은 저 일출을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점점 붉은 빛이 강해지는 해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소나무 군락지 가운데로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니 다시 무명봉에 오르고 그 무명봉을 넘자마자 화사한 철쭉이 미소를 짓고 있다.

시리봉 줄기 옆으로 떠오른 둥근 햇살을 잡목 가지 사이로 바라보며 여유롭게 걷다보니 다시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는데 이곳 역시 제멋대로 자란듯 하면서도 조화롭게 살아가는 소나무 사이를 걸어 인생을 반추해 보는 시간이다.

잘났으면 잘난대로 못났으면 못난대로 제 역활에 충실하며 사회의 일부로서 열심히 살아 갈 수 있다면 그것이 잘 살은 인생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소나무 군락지를 오르니 등로 좌측 앞으로 이제부터 올라야 할 백두대간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지기 시작하고 제일 먼저 오늘 올라야 할 제일 높은 봉우리인 봉화산부터 찾는다.

두어장의 사진을 남기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철쭉나무를 지나니 보여야 할 헬기장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너울진 산그리메가 저 멀리 남덕유산까지 아우르며 이 산객의 마음을 모두 빼앗아 가 버린다.

봉화산 우측으로는 백운산 자락이 그리고 좌측으로는 오래전 올랐던 금남호남정맥 산줄기가 우리들의 인연을 이야기하며 가슴속 깊이 쌓여있던 추억을 들추게 만든다.

 

해발고도 777봉인 시리봉을 그렇게 지나 다시 앞으로 전진하니 이제 온 세상을 비추기 위한 아침 해는 더욱 붉게 물들며 781봉 전망대 우측 능선으로 높이 솟아 오르고 있다.

다시 나즈막한 안부로 내려갔다 가쁘게 오르니 눈 앞에 거대한 남근석이 보이고 그 남근석에는 덩쿨식물이 자라 온몸을 감싸고 있다.

10여년 전 처음 백두대간 산행 리딩을 하면서 전체를 이끌다 보니 새로운 산객 한명이 산행의 속도에 대해 불만을 표기하고 그 산객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사치재에서 부터 제대로 속도전을 벌여 불만을 잠재운 후 진부령까지 무탈하게 이끌었던 추억이 깃든 곳이기에 오늘도 이 멋진 남근석을 지나며 아무도 모를 혼자만의 미소를 지어 보는 시간이다.

남근석의 모습과 주위 풍경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그곳을 찾는 산객들의 모습과 산행 풍경은 많이도 변한채 다시 오르고 있다.

  

남근석을 지나 오르니 금새 781봉 조망처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남근석 상부를 넣어 지나온 마루금을 담아 본다.

바로 앞에 시루봉이 보이고 그 뒤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마루금이 시원하며 저 멀리 좌측 끝자락에 덕두산과 바래봉 능선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자주 올라 아름다운 철쭉을 벗삼아 지리 서부 능선을 탐닉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오늘 이 시간도 웃으며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자주 만났고 봤던 산그리메인데 왜 이리 그 그리움이 커지면서 다시 이 마루금으로 이끌었는지 정확하게 설명은 할 수 없지만 그것이 백두대간 산행의 묘미이자 의미는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이제 진행방향으로는 새로운 정상석이 박혀있는 매봉을 지나 봉화산이 우뚝하고 그 우측으로 연비지맥이 자세를 낮추며 날렵하게 이어진다.

그 연비지맥 저 멀리에는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백운산이 아스라히 멀리 보이지만 인간의 위대한 두 발로 걷다 보면 금새 저 백운산과의 만남도 그리 멀지 않으리란 믿음이 있다.

그 백운산 우측 자락으로는 함양의 괘관산과 천황봉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이 산객을 부르고 있다.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계절에 저 괘관산에 올랐다 함양의 상림숲을 거닐다 올라 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조망처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멋진 철쭉 군락지가 펼쳐지지만 철쭉은 이미 사라지고 성하의 계절을 향해 달려가는 파란 잎사귀만 무성하게 이 산객을 맞이해 주고 있다.

내려가면서도 눈 앞으로 펼쳐진 봉화산과 백운산 줄기를 조망하며 그 산줄기 우측으로 더욱 강렬해지는 아침 햇살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시간은 그저 황홀하기만 하다.

그렇게 한동안 철쭉 군락지를 내려가니 다시 안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파란 잔디밭을 연상시키는 푸른 철쭉밭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안부를 지나 전진하니 키 작은 철쭉은 아직 완전히 지지 않고 지나는 산객에게 화사한 웃음을 선사하고 그렇게 진행해 나즈막한 안부인 복성이 뒷재를 지나 오르니 아막산성 터 직전의 돌탑에 도착해 앞서 진행하던 산우님들과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잠시 기다리며 많은 사진을 담고 또 도착하는 산우님들 사진을 담아 준 후 제일 후미로 천천히 그 돌탑을 출발하니 다시 그림같은 등로가 펼쳐져 있다.

파란 풀들이 등로 바닥에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고 그 위로 키 큰 소나무와 활엽수들이 파란 잎새귀를 틔우며 힐링을 시키고 있는듯 하다.

 

많은 사진을 담으며 급할 것 없이 진행하니 여산우님 두분이 앞서 걸어가고 그 뒷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불러 세운 후 사진 몇장 남겨 본다.

그저 유명한 나무가 없어도 또한 유명한 장소가 아니어도 아무 꾸밈없이 자연 그대로 생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삶의 본모습을 보는 것 같아 더욱 강렬하게 그 아름다움이 가슴속에 남겨지는 시간이다.

이 시간만큼은 살아가는 환경이나 조건도 필요 없이 그저 자연의 일부로서 이곳에 서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해 하는 시간은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 그대로의 등로에서 여심을 사진에 담고 다시 천천히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아막성터가 나타나고 곧이어 아막성 설명판이 서 있다.

오래전 함께 이곳을 지나면서 검게 익어가는 작은 알갱이의 오디를 따 먹으며 손과 얼굴에 검정 물감을 칠했던 추억을 떠 올리며 다시 그 오디를 찾아 보지만 오늘은 너무 이른 계절이기에 그 추억을 되살릴 수는 없다. 

아먹성터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니 삼국시대엔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국경지역이였는지를 공부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였다.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운봉은 신라 때 모산현이라 하였으며 따로 이 아막성, 아영성, 경덕, 운성이라 이름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를 보면 운봉은 신라 후기에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이 무렵에 백제의 군사기지는 남원에 있었고 신라의 군사기지는 모산(운봉)에 있어 이때 신라는 백제를 막기 위해 수정산성, 준향산성, 합민성, 가산산성, 성리산성의 여러 성을 두었고 백제는 운봉 가산으로부터 정령치에 이르기까지 이중으로 순라로를 설치하였으니 이로 미루어 두 나라 사이에 국경분쟁이 치열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 아막산성은 옛날 백제에서는 아막성이라 신라에서는 모산성으로 불렀던 곳으로 백제와 신라가 주도권을 잡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던 곳중 한곳이다.

백제 무왕3년에 4만의 백제군사가 이 곳에서 신라군에게 전멸 당했다고 하는데 성 둘레는 약 630여미터에 이르고 성 주변에서는 기와조각과 백제 토기 편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현재 북문지와 수구가 있었던 곳으로 보이는 동쪽에 직경 1.5 미터의 정호지가 있다.

모산성은 삼국사기에서 아막산성이라고도 하며 지금의 운봉으로 신라 때 모산현 또는 아영성, 아막성이라고도 적었다.

판소리 동편제의 발상지인 운봉의 옛 이름은 지금도 땅이름에 널리 쓰이는 아막이란 말과 잇닿아 아막골/아막재였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 우리 종주대는 그저 허물어져 가는 아막성터를 걷고 있지만 먼 옛날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끊이지 않았던 국경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서 백두대간 산행 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는 계기는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아막성터의 성곽을 따라 조금 걷다 등로는 좌측 성벽 아래로 이어지는데 이곳에서도 제1기 백두대간 산행 시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나 지금도 미스테리로 남아 있는 전설을 떠 올려 본다.

산행도 잘하던 산행대장 한명이 이곳 아막성터를 도착하여 먼저 앞서 진행 한다며 출발을 하였는데 복성이재에 도착을 해 보니 그 산행대장 한명만 보이지 않고 후미까지 내려 와 있다.

의아해 알아보니 그 산행대장을 본 종주대가 없어 다시 복성이재를 출발해 아막성터 쪽으로 걸어 올라가니 아막성터에서 종주대 한명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고 어렵게 전화 통화를 해 보니 성곽 위에서 이곳 하산 성곽을 찾지 못하고 벌써 세바퀴째 그 성곽을 따라 걷고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설명을 해 줘도 이해를 못하고 다시 한바퀴를 더 돌고 난 후 스스로에게 화가 치밀어 육두문자를 쓰면서 어렵게 하산 성벽을 찾아 30여분 늦게 복성이재를 출발한 에피소드가 생각나는 시간인데 그 종주대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성곽을 내려와 만나는 이정표에는 아막성에서 0.2 Km 지나왔고 복성이재까지 1.2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를 확인하고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우측 사면 등로를 타고 오르니 다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안부를 통과하니 평이한 등로가 펼쳐져 있다.

그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내리막 계단이 나타나고 그 아래에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인다.

고남산에서 15.5 Km 지나왔고 봉화산까지 4.2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에는 우측으로 성리(흥부마을)까지 1.5 Km 거리라는 표시도 보인다.

이곳에서 잠시 흥부마을에 대해 알아보고 진행하기로 한다.

고대소설에서 춘향전과 더불어 대표적인 흥부전의 작품배경이 된 흥부 출생지를 놓고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와  아영면 성리가 서로 자기마을이 흥부출생지라고 분쟁이 있었으나 이보형(문화재 전문위원)박사와 경희대민속학연구소의 고증(동아일보 1992.1.30자 참조)에 의하면 인월면 성산리는 흥부와 놀부의 출생지인데 흥부가 복덕촌으로 이사를 했다가 아영면 성리에 살게 되었다고 알려져 두마을 모두가 흥부전의 배경이 있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인월면 성산리 마을 앞 큰 느티나무 옆에는 남근석 그리고 조그만 연못 흥부각 등이 자리잡고 있으며 흥부의 생가 터는 있으나 흥부의 후손은 없다고 한다.
인월과 함양을 잇는 24번도로인 팔랑치 건너편에는 흥부의 묘소가 있으며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일년에 한번씩 제사를 지낸다고 하며 또한 팔랑치 도로변에는 흥부마을이라 쓰인 표지석이 두개가 있었고 지금까지 흥부 일가족의 성씨를 연씨로 알고 있었으나 박씨라고 하였다.
남원시 아영면 성리마을에서 흥부제의 일환으로 매년 10월 5일쯤이면 흥부마을 터울림, 산신제, 흥부제사, 성황당 탑돌이 등의 행사가 열리고 있다고 하니 한번쯤 들려 즐겨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그 시멘트 임도를 가로 질러 다시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묘지들이 보이고 곧이어 이제 이곳은 막 봄이 시작되려는 듯 낙엽 등로가 펼쳐져 푹신하게 걸어 보는 호사도 누려 본다.

다시 차량통제 바리게이트가 있는 비포장 임도를 만나 올랐다 내려가니 금새 751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복성이재에 도착해 아침 식사를 하고 진행하기로 한다.

해발고도 550미터인 복성이재는 기인 변도탄이 천기를 보니 삼년 내에 국가에 큰 전란을 예시하여 국방을 튼튼히 할 것을 상소하였으나 평화로운 기운을 어지럽게 한다하여 삭탈관직을 당해 전란을 대비하여 피난처를 탐색하던 중 천기의 기운이 북두칠성 중에 복성이 남쪽으로 비처 별빛을 따라 지리산으로 향하는데 복성별빛이 멈춰 그 멈춘 자리를 잡고 움막을 지었다 하여 복성이재가 되였다는 설이 전해오는 고개이다.

원래 계획은 봉화산 정상까지 진행한 후 그곳에서 백두대간 5기 제1차 산행의 시산제를 지내고 아침식사를 하기로 하였으나 시간이 지체되어 이곳 복성이재 도로 한쪽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한다.

 

한동안 만나지 못해 나누지 못했던 즐거운 산행과 개인 일상사를 이야기하며 맛난 아침식사를 즐긴 후 다시 추위를 느끼는 몸을 데우려 배낭 둘러메고 도로 건너 복성이재 이정표가 서 있는 능선을 통해 출발을 해 본다.

8년 전 오늘도 함께한 수송대장과 산행 후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며 사진을 남겼던 추억을 생각하며 능선으로 들어가니 등로 좌측에 복성이재에 대한 설명판이 서 있다.

아는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읽어 보고 우측에 묘지를 두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올라 본다.

  

이제 사치재에서 7.2 Km 지나왔고 중치까지 12.1 Km가 남아 있으니 오후 2시 전후면 내려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멋진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오르니 다시 등줄기에선 땀방울이 솟아오르고  오랫만에 그 숲 가운데를 타고 조잘거리며 오르는 종주대의 뒷 모습을 올려다 보는 풍경이 다시 오래전 추억과 오버랩 되며 즐기는 시간이 되였다.

잠시 더 오르니 녹슨 철조망이 등로 좌측으로 나타나고 그 넘어에는 고사리 밭과 드넓은 초지를 이루고 있는 목장지대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우측 저 멀리에는 새롭게 단장한 매봉이 뾰족하게 올려다 보인다.

 

한동안 좌측에 녹슨 철망을 따라 오르니 가끔 보리수 나무들과 철쭉나무들이 나타나고 그곳을 올라 민둥의 등로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지나온 백두대간 마루금이 환상으로 펼쳐져 있다.

그 마루금 넘어 저 멀리에는 지리연봉의 서쪽 끝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만복대와 좌측으로 반야봉이 하늘 높은줄 모르게 치솟아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바로 눈 앞에는 고사리 밭과 목장지대의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고 그 바로 아래에는 방금 전 식사를 하고 올라 온 751번 2차선 지방도로가 꼬부랑 도로를 만들며 아름답게 이어져 있다.

 

다시 조금 더 오르니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거대한 매봉 정상석이 서 있는데 많은 종주대들이 사진을 담고 있기에 잠시 주위 풍경을 돌아 보니 동쪽으로 남원시 아영면 일대의 마을과 전답들이 내려다 보인다.

그 들판 넘어 우측 저 멀리에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만복대로 이어지는 지리연봉이 넘실대는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가기를 반복하고 좌측인 동쪽으로는 웅석봉 지나 엊그제 다녀 온 황매산까지 강렬한 아침 햇살 아래 기지개를 펴고 있다.

흥부로 유명해진 남원시 아영면은 1910년까지는 운봉군 관할의 북상 북하면 지역이었는데 그 옛날 신라 경덕왕 16년(757)까지는 모산현에 속해 천령군(지금의 경남 함양군)에 예속되었다가 모산현이 운봉현으로 개칭되었고 고려 태조 23년(940)에 운봉현이 남원부의 관할이 되어 남원에 예속되어 아용곡 또는 아영, 아막이라 하였는데 이 지역에는 북상면과 북하면이 있었다.
1895년 운봉현이 군으로 승격되기 전부터 아영면은 운봉현 내에 함양군 백전면에서 매치(정치), 일대저수지, 복성치과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로 통하는 길을 경계로 북쪽은 상면 그리고 남쪽은 북하면 지역이었으며 북상면의 소재지는 갈계리이고 북하면의 소재지는 일대리에 있었다.
그후 1910년에 북상면의 아곡, 점촌, 당동, 봉대, 임곡, 갈계, 인풍, 매산, 고인, 청계, 월산, 구지, 신지 등 13개 리와 북하면의 일대, 구상, 두락, 성리, 송리, 부동, 의지, 월성, 이동 등 9개 리가 병합되어 아영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으로 운봉군이 면으로 되면서 소속 4개의 면이 각각 남원군에 편입되어 아곡, 봉대, 갈계, 인풍, 청계, 월산, 성리, 구상, 일대, 의지, 두락 등 11개 마을을 관할하게 되었다.

남원 시내에 들려 광한루를 돌아 보는 것이 전부였던 이 산객에게 흥부로 유명한 이곳 아영면을 둘러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 시간이다.

 

그렇게 주위 조망을 즐기는 사이 앞서 사진을 담고 있던 산우님들이 하나 둘 떠나고 이제부터 이 산객 홀로 남아 마음껏 712.2봉인 매봉 정상석을 담아 본다.

예전에 올랐을 땐 그저 붉은 깃발이 나무끼는 철봉 하나만이 이 정상을 외롭게 지키고 있었는데 그 사이 정상의 풍경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듯 싶다.

이곳 매봉에 대한 자료를 찾지 못했기에 지도상 나타나 있는 조망처라 생각해 보며 이제부터 철쭉 군락지로 내려가 본다.

등로 바로 옆에 서 있는 이정표를 보니 봉화산 정상까지 이제 3.3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기도 하다.

 

매봉을 출발해 진행하니 금새 철쭉 군락지가 길게 펼쳐져 있지만 계절이 변하면서 이곳 철쭉들은 벌써 화려하게 피었다 져  버린 시간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화려한 분홍빛 철쭉은 보지 못했지만 푸르른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길게 펼쳐진 풍경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 철쭉 군락지를 지나 앞으로 달려 올라가면 저 멀리 한가운데에 봉화산 정상이 우뚝하고 그 뒤로 보여야 할 백운산과 남덕유산은 아직은 부끄러운듯 얼굴을 숨기고 있지만 좌측 능선으로는 장안산 지나 사두봉과 신무산으로 이어지는 멋진 금남호남정맥의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철쭉꽃이 없으니 군락지를 타고 내려오며 담을 사진도 없어 빠르게 내려오고 전망데크와 사각정자를 지나 치재 안부를 통과하니 조망처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방금 전 내려온 봉화산 철쭉 군락지를 뒤돌아 보니 마치 보성의 녹차밭에 와 있는듯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녹색 들판이 펼쳐져 있다.

그 철쭉 군락지 한가운데로 나 있는 등로는 몇년 전보다 훨씬 더 넓게 드러나 있고 그로 미뤄 얼마나 많은 등산객들과 여행객들로 철쭉이 피는 동안 몸살을 앓았을까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철쭉 군락지에서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라 오르락 내리락 걷다보니 소나무와 활엽수가 혼재되어 있는 등로가 나타나고 일렬로 줄맞춰 걸어 본다.

한동안 이야기 나누며 진행하니 등로 좌측에 소나무가 몇그루 서 있는 공터가 나타나는데 몇 년 전 이곳 철쭉 구경을 하기 위해 기획테마 산행으로 왔다가 점심식사를 했던 기억에 잠시 그때를 회상하며 지금은 보이지 않는 산우들을 생각하는 시간도 가져 본다.

 

다시 안부를 지나 푸른나무 터널을 통해 전진하니 조금씩 보리수 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자세히 살펴 보지만 이곳 역시 보리수는 이제 막 열매가 열리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보리수 나무 넘어 나즈막한 무명봉을 올려다 보며 조금씩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다시 무명봉 지나 내리막 등로가 열리고 그곳에서 이제부터 땀을 흘리며 올라야 할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마루금이 올려다 보인다.

다시 보리수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는 등로를 따라 등로에 땀방울을 흘리며 가끔 같이 오르는 산우님들 모습을 사진에 담다 보니 약간은 평이한 등로가 이어진다.

 

그 보리수 군락지를 완전히 벗어나니 가파른 오르막 등로에는 이제 막 피어난 화사한 산철쭉이 반겨주고 그곳에서도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올라 드디어 조망이 터지는 장소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남동쪽의 아영면과 지리연봉을 살펴 본다.

아영마을 넘어 두어번의 산그리메를 지나면 구비치는 지리산 천왕봉이 우뚝하고 그 좌측으로는 중봉과 써래봉도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반야봉 지나 만복대로 이어지는 장쾌한 지리산 연봉들이 조만간 다시 조우하자며 웃음으로 반겨주는 듯 하다.

너무나 아름다운 조망에 다시 발걸음 멈추고 그 이름 하나 둘 모두를 불러 본다.

오르고 또 올라도 이렇게 바라보면 것만으로도 그리움이 쌓이는 지리산은 언제쯤 그 그리움을 털어내고 마음 편히 바라볼 수 있을련지...

 

한동안 그곳에서 주위 조망을 즐기고 다시 진행을 하니 이제 봉화산 우측 남쪽 사면에는 예쁜 철쭉이 만개한 모습으로 지금까지의 아쉬움을 달래주고 있다.

이제 봉화산 정상부가 빤히 올려다 보이는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다시 철쭉 터널이 나타나고 그곳에서도 함께하는 여심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 준다.

철쭉 터널을 지나니 연두빛 새잎을 터트리며 이제서 봄맞이를 하는 잡목을 만나고 곧이어 푸른 활엽수가 등로를 뒤덮어 그늘을 만들어 주는 호젓한 마루금과 만난다.

그곳에서 조금 더 걸어가니 작은 공터가 나타나고 다시 꽃잎을 바닥에 떨구고 있는 철쭉을 만나 아쉬움을 달래 보는 시간이다.

 

그곳에서도 주위 조망을 즐기고 잠시 그늘 아래에서 후미를 기다렸다 다시 치고 오르니 금새 봉화산 정상부이다.

유적지 복원 사업을 한다고 파헤쳐진 정상에는 몇 년 전 만났던 풍경과는 달리 많은 인공 구조물들이 설치되어 있고 전망데크까지 보여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하지만 갑자기 불어대는 강풍으로 인해 흙먼지가 날리고 그 먼지들을 피해 이리저리 돌아가며 어렵게 주위 풍경을 살펴보며 함께하는 단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강한 바람으로 인해 시산제는 조금 더 진행하여 임도 공터에서 지내기로 하고 그저 즐기는 시간이 되였다.

봉화산(919.8봉)은 남으로 뻗은 백두대간이 남해 바다에 이르기 전 장중하게 꿈틀대며 솟아오른 곳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 고적조사자료에 따르면 남원시 번암면 동화리 장안산 주140 석축 남원 함양 경계라 하여 곧 봉수대는 번암면 동화리 장안산에 있고 봉수대의 둘래 약 140(252미터)이 되는데 돌로 쌓은 것으로 남원과 함양 간의 경계선에 있다.

이 봉수대는 대체로 통일신라이후부터 폐지된 것으로 보이며 백제와 신라의 국경 분쟁이 잦았던 운봉과 아영면 부근에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특히 봉화산은 위 기록에서와 같이 봉화산은 전에는 장안산으로 불리워졌고 봉화와 봉수대가 봉화산으로 불리운 것이 확실하다. 지자체에서 2010년에 새로이 봉수대를 축조하였고 5월이면 철쭉 군락이 봉화산 봉수대에 횃불이 타오르는 듯이 펼쳐진다.

정산에 서면 북쪽으로 장안산과 남덕유산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지리산의 영봉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제일 먼저 봉화산 정상석을 지나 앞으로 진행해야 할 방향으로 보이는 나무데크와 계단 앞에 서서 백두대간 마루금을 살펴보니 바로 앞에 월경산이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백운산이 머리를 내밀기 시작한다.

그 백운산 좌측으로는 금남호남정맥의 분기봉인 영취산이 보이고 그 영취산 바로 뒷쪽으로는 장수덕유라는 서봉과 남덕유산이 그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으며 좌측으로 더 돌아가니 장안산 지나 사두산과 신무산 그리고 중앙부에 인공 구조물을 이고 있는 팔공산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백운산 우측으로는 함양 괘관산이 우뚝 솟아 올 가을이 지나기 전 한번 만나자며 손짓을 보내고 있는듯 하다.

 

남쪽으로는 철쭉동산이 펼쳐져 있고 그 아래 아영면이 분지처럼 펼쳐져 있으며 그 마을을 넘으니 지리산 써래봉부터 시작되어 중봉 그리고 천왕봉을 지나 반야봉과 만복대로 이어진 장쾌한 지리 연봉이 조만간 다시 만나자며 재회를 약속하는 시간이다.

그 만복대 지나 북으로 방향을 바꿔 고남산을 지나 이곳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오며 종주대의 가슴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멋진 추억을 담아주고 있다.

 

그렇게 그곳 봉화산 정상에서 한동안 사진도 찍고 주위 조망도 즐긴 후 강하게 불어 오는 바람으로 인해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천천히 출발을 해 본다.

키 작은 관목과 철쭉나무들 그리고 지난 가을 곱게 피었다 시들어 버린 회색빛 갈대줄기가 흔들거리는 등로를 따라 내려가며 다시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풍경들을 사진에 담기 바쁘다.

그렇게 한동안 내려가다 뒤돌아 보니 봉화산 정상부는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바람에 흔들리는 빛바랜 갈대줄기만이 종주대의 가슴에 남아 추억으로 쌓이고 있다.

 

큰 나무들이 없는 초원같은 등로를 따라 걸어가면서도 등로 우측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지리연봉이 그리워 자꾸만 고개가 그쪽으로 돌려진다.

그 지리산 천왕봉 좌측으로는 서왕등재와 웅석봉 능선이 강렬한 햇살을 받아 희미하게 보이지만 사진속에서는 그 자취를 감추고 있어 아쉽기만 하다.

바로 앞 우측으로는 연비지맥 산줄기가 고도를 낮추며 아름답게 뻗어 있는데 처음에는 모르고 진행하다 같이 산행하는 산친구와 이야기하다 알게되어 스마트폰으로 확인해 보니 맞다.

언젠가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꿈은 모든 지맥까지 오르는 것이니 그런 기회는 올 것이라 기대를 해 본다.

다시 앞서 가는 산우님들 뒷모습과 우측 앞 저 멀리 괘관산을 조망하며 걸어 진행하니 백두대간 안내판과 팔각정자인 봉화정 그리고 임도가 올라 와 있는 봉화산 쉼터 가까이에 도착해 지나온 봉화산 줄기를 다시 한번 올려다 본다.

 

그곳 봉화산 쉼터 가까이에 도착하니 이제 등로 좌측으로 아름다운 금남호남정맥 마루금이 환상적으로 펼쳐지고 지난날 홀로 오르며 황홀한 조망을 즐겼던 추억을 꺼내며 이야기나 나누자고 졸라댄다.

정북 방향으로 장안산이 우뚝하고 그 좌측으로 돌아가며 사두봉과 신무산 그리고 팔공산이 환히 올려다 보인다.

굽이쳐 흐르는 삼그리메가 다시 산개의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눈 맞춤을 한 후 내려가니 봉화산 쉼터의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앞서 내려간 산우들은 시산제 준비에 바쁜 모습이다.

  

봉화산 쉼터에 도착해 주위 사진 몇장 남기고 시산제 준비를 마친 후 정성드려 산신령님께 1년하고도 6개월동안 무탈하게 진부령까지 산행 할 수 있도록 제를 올려 본다.

산행대장의 축문과 각 산우님들의 소원 그리고 지난 4기때 백두대간 산행을 완주 후 다시 5기에도 참여를 약속했지만 무엇이 그리 바쁜지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옛 산우님의 명복을 빌어보며 뜻깊은 시산제를 마치고 탁배기 한잔씩 들면서 이야기꽃을 피워 본다.

종교와는 무관하게 그저 산에 들면서 무사 산행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받아 들이기에 모두 한마음으로 즐겁고 뜻깊은 시간을 가진 시간이였다.

 

시산제를 지내고 탁배기 한잔 마신 후 출발에 앞서 팔각정자 우측 옆 임도에 서 있는 봉화산에서 바라 본 지리산 봉우리들이란 안내판 앞에서 지리연봉의 각 봉우리마다 이름을 불러보며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고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먼저 생각나는 지리연봉들, 좌측 세봉우리인 세레봉과 중봉 그리고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하여 우측으로 달려 저 멀리 반야봉이 우뚝하고 만복대는 몸통을 숨기고 얼굴만 내밀고 있다.

그 앞쪽으로 지리산 철쭉으로 유명한 세걸산과 바래봉 그리고 덕두산 줄기가 아름답게 너울져 춤을 추고 있다.

 

이제 봉화산에서 0.7 Km 지나왔고 광대치까지 3.2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사진에 남기고 봉화산등산로종합안내도 옆 계단을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기 위해 출발한다.

잠시 오르니 산철쭉이 군데군데 피어 환영해 주고 구상나무와 빛바랜 갈대숲을 따라 걷기도 하면서 진행을 하니 등로 옆에 무명봉이란 안내판이 보이는데 살펴보니 현위치 해발고도 870미터 지점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흘러가는 연비지맥 출발지점을 찾아 보니 찾을 수 없어 그냥 진행하니 몇 발자국 지나지 않아 나뭇가지에 연비지맥 이정판이 붙어 있다. 

 

오르고 싶은 산줄기가 너무나 많기에 언제 한번 이곳에 다시 올라 이 연비지맥 산줄기를 타고 걸어 볼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평생의 꿈이 백두대간과 모든 정맥 그리고 기맥과 지맥을 올라보는 것이기에 이 연비지맥을 위해 다시 올라 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연비지맥은 백두대간 봉화산(919.8봉) 북쪽 1 Km 지점인 전라북도 장수군과 남원시 및 경상남도 함양군의 경계인 약 945봉에서 남동쪽으로 가지를 쳐 전북과 경남도계를 따라 옥잠봉(680봉), 88고속도로, 연비산(842.8봉), 오봉산(879봉), 팔량재를 지나 삼봉산(1186.7봉)에서 전라북도경계를 벗어나 경남 함양군으로 넘어가 동북진하여 지안재, 팔두재,  화장산(586.4봉)을 지나 임천이 남강에 합류하는 함양군 유림면 장항리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8.2 Km의 산줄기로서 임천의 우측 분수령이다.

그리 길지 않은 산줄기이니 마음 먹고 오른다면 하루에도 마무리가 가능하기에 생각보다 빨리 걸어 볼 수도 있을 것 같은 예감도 드는 산줄기이다. 

 

연비지맥 분기봉을 지나 올려다 보니 묘지봉으로 오르는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은 종주대의 뒷모습이 다시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 종주대 우측 저 멀리에는 앞으로 가야 할 월경산 넘어 백운산이 길게 펼쳐져 있고 다시 조금 더 우측으로 내려가니 여전히 함양의 괘관산이 부르고 있다.

등로 우측으로 아름답게 뻗어 내려간 연비지맥 마루금도 다시 한번 내려다 보고 걸어 오르니 짧은 갈대 등로를 지나 묘지가 정상을 차지히고 있는 묘지봉을 지난다.

 

묘지봉을 넘어 오르니 이제 가야할 백두대간 마루금이 저 멀리 남덕유산까지 시원하게 조망되고 그 좌측으로는 백운천 넘어 금남호남정맥 산줄기가 황홀하게 춤을 추고 있다.

월경산 지나 백운산이 가깝게 그리고 뚜렷하게 하늘금을 긋고 그 좌측으로 금남호남정맥 분기봉인 영취산이 보이는데 그 영취산 봉우리를 가운데 두고 덕유산 서봉과 남덕유산이 걸쳐있듯 보인다.

그 남덕유산과 서봉을 지나니 장안산이 우뚝하고 그 장안산 지나 신무산과 팔공산이 너무나 강렬하게 유혹하고 있다.

그렇게 백두대간 마루금을 조망하며 진행하다 등로 우측을 내려다 보니 이제 전라북도를 지나 경상북도의 함양군 백전면 마을과 그 우측으로 연비지맥 산줄기가 너무나 멋지게 펼쳐져 있다.

그 연비지맥 저 멀리 우측으로는 여전히 지리산 연봉들이 헤어지는 아쉬움을 인사로 대신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그리움에 연비지맥을 다시 한번 살펴보니 직진의 남동쪽으로 흐르던 마루금이 오봉산을 지나면서 우측으로 반원형을 그려 삼봉산을 지나 다시 남동쪽으로 내려가며 남강으로 흐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조망을 즐기며 진행하니 다시 연두빛 싸리나무 등로를 짧게 지나 억새 등로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진행 방향의 백두대간 마루금이 환상이다.

 

이제 백두대간 주등로의 조망을 가로막는 나무를 피해 좌우측의 조망을 즐기며 전진하니 녹음이 우거진 등로 옆에 분홍빛 철쭉이 만개한 모습으로 환하게 반겨준다.

그렇게 조금 더 진행하니 등로 우측에 바위지대가 나타나고 등로는 그 바위지대를 피해 좌측 사면으로 나 있어 여유롭게 따라 본다.

 

그 바위지대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철쭉과 녹음이 우거진 평이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나뭇가지 사이로 다시 백두대간 마루금이 조망되더니 갑자기 바위전망대가 나타난다.

앞서 진행하던 산우님들은 그 바위 위에서 추억 남기기에 열중하고 이 산객도 그곳에 동참해 잠시 여유를 가져 본다.

가야 할 백두대간 마루금과 우측으로 보이는 산골마을과 연비지맥 그리고 지리연봉을 구경하고 뒤돌아 보니 화사하게 웃으며 즐기는 산우님들 등 뒤 저 멀리 방금 전 지나 온 944봉이 보인다.

 

그 전망바위에서도 많은 시간 지체하며 주위 조망을 즐기고 산우님들과 사진으로 추억을 담은 후 그늘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갑자기 등로 우측 나뭇가지에 해발고도 935미터의 큰봉이란 종이 코팅지가 나타난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은 지도상 936봉쯤 되어 보이는 곳으로 큰봉이란 이름은 금시초문이기에 어리둥절 해 본다.

정확한 고증을 거쳐 이정판을 달아 놨기를 기대해 보는 시간으로 요즘들어 마루금 잇기 산행을 하다보면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은 이상한 봉우리 이름을 붙여 놓은 정상이 많아 혼란스럽기까지 한다.

 

큰봉이란 종이코팅지를 지나 진행하니 금새 봉화산에서 2.5 Km 지나왔고 백운산까지 10 Km가 남아 있다는 빛바랜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이정표를 사진에 담고 출발하니 금새 또 다른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멋진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주위 조망을 즐겨 본다.

등로 우측 등 뒤로는 여전히 지니연봉이 보이고 연비지맥도 가깝게 자리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괘관산 좌측으로 가야 할 백두대간 마루금의 월경산과 백운산 그리고 영취산과 남덕유산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 좌측으로는 금남호남정맥의 장안산과 신무산 그리고 팔공산이 또한 아름답게 펼쳐져 생각보다 좋은 조망에 산행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장안산과 백운산 사이에는 지지터널과 도로 그리고 계곡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데 오늘 산행 날머리이기도 하기에 반갑기 그지 없다.

 

전망바위를 내려와 마루금을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출입금지 안내판이 서 있는 안부를 지나고 잠시 올라 다시 등로 우측으로 바위지대를 지난다.

바위 틈에 자라난 키 작은 철쭉나무에서 피어난 몇송이의 철쭉꽃이 너무나 아름다워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바위지대를 좌측으로 우회해 넘으니 다시 녹음이 짙은 그늘 등로 위에 몇개의 바위들이 산재해 있는 등로를 따른다.

 

한동안 평이한 등로 위에 가끔 나타나는 바위를 넘으며 걸어가니 이제 막 연두빛 잎들이 돋아나고 있는 활엽수 지대를 지나 안부를 내려갔다 무명봉을 향해 빠르게 진행을 해 본다.

조망도 없고 별 특별한 특징도 없기에 4명의 종주대가 한팀을 이루듯 지금까지와는 달리 빠르게 진행되고 ㅡ렇게 땀방울을 흘릴쯤 940봉 이정표를 만나는데 봉화산에서 3.8 Km 지나왔고 중치까지 아직도 4.1 Km가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약간의 중압감을 주고 있다.

다시 빠른 속도로 4명의 종주대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걸어가니 드디어 광대치 안부 이정표에 도착해 잠시 숨을 고르고 쉬어 간다.

광대치는 장수군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지지리계곡과 함양군 대안리를 나누는 고갯길로서 광대치 쉼터에서 대안리 대상동으로 내려서는 길이 갈라진다.

남쪽으로 봉화산을 앞두고 만나는 870봉에서 대간은 경상남도와 헤어져 전라북도 땅으로 진행하다 다시 경상도를 만나는 것은 지리산 반야봉 남쪽의 삼도봉이다.

광대치는 넓고 큰 고개라는 뜻으로 동서 양쪽에 계곡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쪽의 능선과 동쪽의 능선도 해발이 높아 산 속에 갇혀 있는 형상이다.

잠시 숨을 고르며 쉬어 보지만 햇살이 뜨겁기에 다시 힘을 내 4명의 종주대가 발길을 돌린다. 

 

광대치를 지나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4명의 종주대가 쉼없이 발길을 돌리니 녹음이 점점 짙어가는 등로엔 어느새 그늘이 지고 그 그늘이 고맙게 느껴질 정도로 오늘 기온이 올라가 있는 느낌이다.

전혀 조망도 없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이기에 앞사람 발자국만 보며 오르니 등로가 평이하게 변하고 그곳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오는 작은 공터에서 배낭 내려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어 간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니 힘이 생기고 다시 배낭 메고 출발해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빠르게 진행해 본다.

하지만 점점 더 가파라지는 오르막 된비알 등로가 발목을 잡고 숨이 목구멍까지 차 오를쯤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앞에 철망이 보이고 그 옆에는 봉화산에서 5.3 Km 지나왔고 중치까지 2.6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약초시범단지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철망을 우측에 두고 좌측 오르막 등로를 따라 조금 더 힘을 내 보는 시간이다.

 

잠시 평탄한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따르니 철망이 우측으로 꺾여 사라지는 지점에서 등로는 점점 더 가파라지더니 된비알 오르막 등로로 변하고 있다.

오르막 등로가 가파르기는 하지만 잘 발달된 등로이기에 큰 어려움 없이 오르니 무명봉 지나 조금은 편안한 등로로 변하고 그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갑자기 앞에서 산우님들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다가가 보니 월경산 갈림 삼거리의 이정표 밑에서 몇명의 산우님들이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살펴보니 봉화산에서 6.0 Km 지나왔고 이제 중치까지는 1.9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이다.

이곳에 배낭 내려놓고 우측 월경산 정상으로 통하는 등로를 따라 빠르게 월경산으로 향한다.

 

처음에는 평이한 등로로 이어지던 월경산 오름 등로는 무명봉 하나를 넘더니 가파라지기 시작하고 어렵게 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잠시 평탄하게 이어지더니 정상 바로 직전에서 다시 한번 된비알 오르막으로 변하고 있다.

정상부로 오르니 옛날에는 넓은 공터였던 장소가 이제는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잡목들이 자라나 공터였다는 사실조차 사라지고 그 끝자락에 981.9미터의 월경산 정상 이정판이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대간이 백운산을 거치면서 중치에서 그 기운이 잠시 떨어지는 듯하다가 월경산에서 다시 원상을 회복하는데 월경산 정상은 대간에서 150 미터쯤 벗어나 있다.

백운산을 한 발치 떨어져서 관찰 할 수 있는 정상으로서 산 아래 동북쪽에 위치한 백운리에서 바라보면 달이 기우는 뜻한 산이란 뜻이다.

함께 오른 산우님들과 사진 몇장 남기고 올랐던 등로를 타고 빠르게 월경산 삼거리로 복귀해 배낭 둘러메고 마지막 중치로 향한다.

 

이제 1.9 Km 남아 있는 중치까지의 등로는 지루하기 그지없는 등로이다.

보이는 조망도 없이 나즈막한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철쭉과 단풍나무 터널속을 걸어야 하고 더욱이 가끔 등로를 가로 막는 바위들이 있어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지루함을 느낀다.

한동안 우측 사면 등로를 타고 철쭉나무 터널을 걸어가니 잠시 공터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내리막 등로로 이어진다.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니 다시 평탄한 등로로 이어지고 한동안 지루하게 그 철쭉나무 터널지대를 통과하니 이제부터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쭉쭉 뻗어 자라고 있는 소나무 군락지가 반기고 안전로프가 설치된 등로를 따라 조심하며 내려가 본다.

그렇게 한동안 그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내려가니 다시 소나무 군락지가 끝이나더니 활엽수 그늘 등로가 나타난다.

 

잠시 평탄한 활엽수 그늘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금새 오늘 산행 날머리인 중치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겨 본다.

중치는 서쪽으로 장계와 번암면을 연결하는 도로가 남북으로 진행하는 고갯마루로서 백운산의 남쪽 사면과 중치 부근은 목장이 여러 군데 여서 목초를 나르기 위한 임도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으며 중치와 중기마을 역시 임도로 연결되어 있다.

가운데에 있는 고개라는 뜻을 가진 중치에서는 백운산과 월경산의 가운데라는 의미가 있으며 운산리에 이 고개 이름을 딴 중재마을이 있다.

하지만 이곳 중치는 백두대간 산행의 날머리로서 실제 산행 남러리는 좌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백운천 지지계곡으로 내려가 지지터널 앞 743번 2차선 포장도로까지 내려가야 마무리가 될 것이다.

 

중치에서 좌측 비포장 임도를 따라 잠시 내려오다 임도가 우측으로 약간 휘어지는 지점에서 좌측 내리막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벌써 잡목이 우거져 진행에 어려움을 주는 곳이 나타난다.

한동안 빠르게 진행하여 작은 실개천도 건너고 능선 사면 등로도 따라가며 내려가니 드디어 콘케이너 박스들과 밭이 보이고 곧이어 지지계곡이 나타나는데 수량이 풍부해 한시라도 빨리 그 계곡속으로 뛰어 들고 싶다.

버스에 올라 준비한 옷을 들고 그 지지계곡으로 내려가 알탕을 해 보니 생각보다 춥지 않아 시원하게 정리한 후 남원으로 가 흑돼지 삼겹살로 하루의 피로를 풀며 5기 제1차 산행을 마무리 해 본다.

 

지지계곡은 장계에서 육십령 가는 중간에서 남쪽(장안산쪽)으로 접근 하면 되는데 즉 백두대간 산행 시 접속구간으로 자주 사용하는 무령고개를 넘어 743번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지지터너를 통과하면 좌측으로 나오는 계곡이다.

수량이 풍부하고 깨끗한 반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계곡이기에 가족끼리 쉬기에는 최적의 여름 피서지중 한곳으로 계곡에는 지지폭포도 있는데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폭포 이정표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약간 막히는 도로를 타고 사당으로 복귀해 그곳에서 다시 이슬이 한잔에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데 또 다른 산친구 한명이 오늘 1+9 산행을 마무리하고 올라온다는 소식에 잠시 기다렸다 생맥주 몇잔으로 축하를 해 주고 집으로 돌아 오니 벌써 하루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간이다.

 

이제 새로 시작을 하였으니 큰 일 없이 진부령까지 가기를 원하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될련지는 아직 장담하지 못하는 시간이 되였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