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서울시의 관악산
산행일자 : 2013년 10월 09일 (수요일)
산행날씨 : 맑고 화창하였으나 약간의 박무가 있었던 가을 날씨
산행온도 : 영상 18도에서 영상 10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관악산 입구-호수공원-아카시아숲-아카시아동산-옥류샘-연주대갈림 삼거리-
제4야영장-무너미고개 능선-무너미고개-현위치 관.1(팔봉 제2국기봉 0.48 Km,
무너미고개 0.81 Km)-삼성천 계곡-KBS 송신소-제3깔딱고개-마당바위-말바위-
전망데크-연주대-관악산 정상(629봉)-솔봉-지도바위-관악문-사당능선-
마당바위-하마바위-까치고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1 Km
산행시간 : 약 06시간 10분 (15시 05분에서 20시 15분까지)
일몰 및 야경 찍으며 시간 지체 됨
지루한 일상을 깨우는 관악산 해넘이와 야경에 마음을 빼앗겼던 시간들
오늘도 지방을 다녀 와 조금 일찍 집에 돌아 왔기에 가볍게 배낭 챙겨 관악산으로 향한다.
엊그제 올랐다가 제대로 된 야경 사진을 담지 못한 아쉬움이 있기에 오늘은 자주 오르지 않았던 삼성천 계곡으로 올라 사당능선으로 하산을 결정한다.
멀리 있는 산에 올라 하고자 하는 종주 산행은 못하고 있지만 이렇게나마 가깝게 자리한 관악산에 올라 저녁 시간을 즐길 수 있음에 살 맛 나는 세상을 느껴보는 시간이다.
하루도 쉬지 않고 올랐던 집 뒷산인 장군봉 둘레길을 걸어서 인지 이제 몸도 많이 좋아지면서 산행의 매력에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관악산
예로부터 경기 5악의 하나로서 경관이 수려하며 도심지 가까이 위치한 도시자연공원(1968년 지정)으로 수도권 주민들의 휴식처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하였으며 주봉은 연주대(戀主臺)로서 정상에 기상 레이더 시설이 있다.
신라시대 의상이 창건하고 조선 태조가 중수(1392년)한 연주암과 약사여래입상이 유명한 산이기도 하다.
옛 과천현의 진산이지만 정면은 서울쪽이다.
거기다 산세가 화성(火星)의 극치를 이뤄 불꽃 너울이 상봉으로 수렴, 하늘을 태우는 듯하다.
해질녁에 뚝섬쪽에서 보면 정말 불 붙은 듯한 바 광화문 앞에 해태상을 둔 이유는 그 불기운이 경복궁으로 옮겨붙을까 우려해서다.
과천쪽은 그러나 지릉들의 기세가 너무 센 중구난방의 산세인데 올려다보는 시선이 급해 벌떼에 쏘인 까까머리 같지만 들판이 좁아 저으기 바라볼 수도 없다.
봉만미가 너무 빼어나 계곡미는 별로다.
남북에 암반계류는 있으나 수량이 적어 폭포와 담소(潭沼)를 이루지 못한다.
북쪽 서울대 입구에서 신림사거리까지는 굽이굽이 계곡에 간간이 암반이 드러나지만 주변이 일찌기 개간되고 시가화되면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반면 한강 너머로 남산과 보현봉, 아득히 삼각산 세 뿔이 그림 같으니 가히 명산이라 할 만하다. 맑은 날에는 서해바다도 보이는 "큰 강과 바다를 끼고있는 산" 이다.
관악산은 서울시 관악구와 금천구, 경기도 과천시와 안양시에 걸쳐 있어 북한산,도봉산과 더불어 누구나 쉽게 찾는 친근한 산이다.
멀리서 보면 온통 바위로 뒤덮여 있는 산세를 가진 관악산은 해발은 낮으나 등산로 곳곳에 위험한 암릉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
관악산은 예로부터 불의 산(火山)이라 하여 조선 태조가 궁터를 지금의 경복궁 자리로 옮길 때, 무학대사가 이곳은 관악산과 마주 보이는 자리로 관악산의 화기가 궁을 눌러서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정도전의 남쪽에 한강이 가로질러 있어서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받아 들여 지금의 경복궁을 창건하였다 한다.
그후 태종때 왕자의 난, 세조의 왕위 찬탈, 임진왜란, 병자호란, 그리고 경복궁에 발생한 수차례의 화재가 발생한 것을 풍수지리설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대원군은 경복궁을 재건할 때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에 바다의 신으로 상상의 동물인 해태 조각상을 만들어 세웠다.
관악산 연주대는 고려가 망하자 남은 유신 열 사람이 관악산 절에 숨어살며 경복궁을 바라보며 통곡을 했다 하여, 임금을 사모한다는 뜻으로 연주대(戀主臺)라 불려 지게 되었다 한다.
이성계가 연주암을 중창한 뒤, 태종의 두 아들인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은 태종이 왕위를 셋째 충녕대군(세종)에게 물려줄 뜻을 알고 관악산에 입산하였다 한다. 예전에 관악산을 삼성산이라 부른 것은 신라의 고승 원효,의상,윤필이 이 산에서 세 승려가 일막,이막,삼막의 세 암자를 짓고 따로 수도하여 득도하였다 하여 붙여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때 일막,이막은 소실되고 삼막사(三幕寺)만 남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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