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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산행(완료)/호남정맥(완료)

호남정맥 제24차 마지막 구간 토끼재에서 망덕(외망)포구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1.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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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광양시의 호남정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1년 10월 01일과 02일 (무박 2일 일요 산행)

산행날씨 : 새벽엔 약간 싸늘했지만 아침부터 맑고 화창해 산행하기 좋았던 가을 날씨

산행온도 : 영상 08도에서 영상 21도

산행인원B산악회 46명 따라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토끼재(863번 지방도로)-288봉-원통사거리-340봉-불암산(431.3봉)-무량사 사거리-

               300봉 삼각고지-탄치재(2번 지방도로)-249봉 헬기장-신촌사거리 안부-철탑-286봉-

               평정사거리-국사봉(445봉)-413봉-340봉-너덜지대-37번 철탑-상도재 임도-

               정박산(167.2봉)-뱀재(2번 지방도로)-잼비산(117봉)-진목마을-항동마을-중산마을-

               남해고속도로 굴다리-천왕산 암봉(225.6봉)-194봉-2번 지방도로-망덕산(197.2봉)-

               사거리 안부-망덕(외망)포구(섬진강 하구)-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4.70 Km (실제 산행거리는 약 17.80 Km) 

산행시간 새벽 어둠속에서는 조금 빠르게 아침식사 후 조망 즐기고 사진 찍으며 08시간 50분

               (03시 40분에서 12시 30분까지)  

              

호남정맥이란 ???

우리나라 서남부 문화권을 나누는 의미 있는 경계선으로 산경표를 보면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이 분기하고 그 산줄기가 다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으로 나뉘며 호남정맥은 그 시작점이 웅치(현재 지명으로 곰치재)라 적혀 있는 총 산행거리 398.7 Km의 산줄기이지만 어느 산꾼들은 백두대간 영취산이 호남정맥의 시작점이라 하여 총 산행거리 462 Km의 산줄기라 하기도 한다.

호남정맥은 동쪽으로 섬진강을 서쪽으로는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을 가르고 있으며 주요한 산들을 살펴보면 3정맥 분기점인 주줄산(주화산)에서 남서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완주 만덕산(762m)을 지난 후 내장산(763m), 추월산(729m), 무등산(1,187m), 제암산(779m), 조계산(884m) 등 남도의 큰산을 지나 광양 백운산(1,218m)을 끝으로 섬진강과 남해바다가 만나는 곳 망덕산(197봉) 앞 바다로 흘러드는 산줄기를 말한다.

 

 

외망포구에서 호남과의 이별과 함께 새로운 출발을 생각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하여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그저 산이 좋아 오르고 산을 오르면서 되찾은 건강으로 인해 조금씩 대자연 품에 안기려던 순간, 탐욕스런 욕심을 앞세워 이해타산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산에 오르는 것조차 힘겹게 만드는 사람들로 인해 홀로 외롭게 떨어져 다시 산에 미친 듯 오르며 장대한 꿈을 꾸웠던 시절에 만났던 좋은 사람들과 1년여 동안 도전과 좌절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약속한 망덕(외망)포구 앞에 서서 쿵쾅거리는 가슴으로 바라보는 섬진강 끝줄기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새로운 새로운 산줄기를 알아가려는 탄생의 시발점임을 다시 알려주고 있다.

 

2010년 9월 18일, 안개가 자욱히 내려 앉아 있는 진안의 모래재에서 한치 앞도 분간하지 못하는 어둠과 안개속에 잡목 숲을 헤치고 오르기 시작한지 1년하고도 2주일이 지나 한달에 두번씩 어김없이 찾아 들었던 호남정맥 산행도 이렇게 오늘로서 그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는 시간이라니 많은 아쉬움과 함께 지나온 추억이 머릿속을 스치며 앞으로 다시 올라야 할 새로운 마루금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어 오르게 만드는 순간이기도 하다.

 

오늘 망덕(외망)포구에 서면 어떤 느낌과 무슨 생각이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 올려 지려는지 스스로에게 궁금해 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둠을 헤치고 차디찬 철대문으로 가로막은 토끼재의 들머리를 도둑고양이가 되어 어렵게 통과한 후 불암산 정상에서 흔들리는 광양의 야경을 가슴에 담고 다시 어렵게 오른 국사봉 지나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빛에 이 작은 산객의 원대한 꿈도 함께 실어 빛으로 발산을 해 본다.

다시 상도재에서의 맛난 아침식사를 마치고 정상같지도 않은 장박산과 잼비산을 통과한 후 남해고속도로를 지나 천왕산 오름 등로에서 만난 전망바위에서 뒤돌아 본 지나온 나즈막한 산줄기가 끊어질듯 이어져 내려온 끈질긴 생명력으로 그 주위를 황금빛 들녘으로 물들이고 저 멀리 우뚝 솟아오른 1대간 9정맥의 시발점인 지리산 천왕봉을 가슴으로 받아 들이는 이 시간이야 말로 말 못할 환희와 기쁨이 상존하는 최고의 시간으로 남아 있다.

 

863번 2차선 지방도로인 토끼재 일명 할매재에 도착 해 어둠속에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며 민족의 아픈상처인 6.25 동란 후 남부군 빨치산이 주둔하면서 양민을 심판하던 흔적이 살아있는 역사적으로 군사적인 요충지라는 이곳을 잠시 생각 해 보며 호남정맥 산행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곳에 들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 자부해 보는 시간이다.

지난 구간 내려오면 봤던 등로 좌측의 느랭이골이란 명칭은 암고라니 및 암노루를 부르는 호남지방의 사투리라고 하며 휴양림이 위치한 골짜기가 길게 늘어져 있다고 하여 느랭이라고도 한다는데 도로 하나를 두고 올라야 할 반대쪽 들머리에는 무시무시한 경고문과 함께 거대한 철대문이 산객의 앞길을 막으며 스산한 날씨보다 더 차가운 새벽을 안겨주고 있다.

모든 호남정맥 종주자들에게 악명 높은 이곳 사유지 주인장과는 조우할 시간이 아니기에 그래도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그 철문을 통해 마지막 호남정맥 산행을 시작해 본다.

토끼재란 유래는 순조로운 산행을 위하여 토끼처럼 뜀뛰며 덕칠이 체조를 마친 고개 모습이 토끼가 막 뛰어가려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또는 옛날에 토끼가 이 고개를 올라가다가 굴러 떨어져 죽은 적이 있다는 설이 있어 토끼재라 했다는 설이 있는 고개이지만 지금은 이런 전설보다는 조경수 개인 사유지 주인장의 몹쓸 통행 제한이 종주대들에게 더욱 회자되고 있는 고갯마루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주인이야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는지는 몰라도 순수하게 산행만을 즐기는 종주대들에게까지 이렇게 대문을 걸어 잠가서야 되겠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행이도 그 막아 놓은 철 대문의 쇠창살 간격이 종주대가 힘 한번 쓰면 통과할 정도의 간격이라 몇몇 종주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곳 철대문을 무사히 통과해 넓은 공터 우측으로 서 있는 창고형 건물을 지나니 좌측으로 높은 모래더미가 잡초속에 묻혀있고 이제부터 넓은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임도 우측으로 수어저수지의 불빛이 반짝이며 따라 오지만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못하는 아쉬운 시간이다. 

잠시 더 진행하니 임도 우측에 거대한 바위 하나가 외롭게 서 있고 계속되는 임도 가장자리에는 조경수처럼 보이는 분재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그렇에 조금 더 진행하니 그 임도가 끝이나며 등로는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능선으로 오르자마자 좌측에 다시 무시무시한 경고문이 쓰러져 있고 곧이어 등로를 폐쇄한 녹슨 철조망이 종주대의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철조망 좌측을 통해 조심히 오르며 조경수 개인 사유지에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호남정맥 산행을 즐기는 종주대들과 함께 공존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 가슴 아픈 새벽 시간이다.

 

막아 놓은 철조망을 좌측으로 우회하여 조심스럽게 통과하니 정상 등로가 다시 열리고 이제부터 가파른 오르막 경사로가 종주대의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게 만든다.

그래도 생각보다 좋은 산행 조건에 시원한 바람마저 불어 주니 입고 오르는 방풍의가 조금은 거추장스럽게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잠시 평이한 등로가 열리는가 싶더니 다시 고도를 높이며 거칠어진 등로는 등로 좌측에 녹슨 철조망을 두고 이어지더니 금새 거대한 바위 두개 사이로 난 대문없는 출입문을 지나게 된다.

 

대문없는 출입문을 통해 오르니 다시 잠시 평이한 등로가 열리는가 싶더니 등로 정면에 거대한 바위가 나타나고 다시 바위 우측 으회 등로를 타고 오르니 20여분만에 드디어 오늘 첫봉우리인 불암산 정상에 도착해 잠시 후미 기다리며 휴식을 취해 본다.

한쪽에 무인산불감시 카메라가 있고 삼각점과 정상 이정석이 있는 불암산 정상의 높이는 높지 않지만 주위 산세가 모두 낮기에 이곳 불암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참으로 멋지다고 알고 있는 데 오늘은 어둠속이라 보이는 조망하나 없으니 조금은 아쉬움이 남지만 그대신 이곳 불암산성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으니 그것으로 대신해 본다.

진상면 비평리 해발 231미터에 자리한 불암산 주변의 불암산성은 백제시대인 600년경에 돌을 쌓아 만들어진 둘레 500미터인 석성이지만 이제 문헌상에 그 이름만 전해 올 뿐 산성은 상당부분 훼손되어 뻐른 복구가 요구되는 곳이기도 하다.

 

앙증맞은 정상석을 담은 후 다시 흔들리는 억새 숲에 놓여 있는 바위 위에 카메라를 올려 놓고 어렵게 등로 우측 앞면에서 흘러 나오는 야경이 아름다운 광양시를 담아 보지만 앞에 서 있던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며 기묘한 형상으로 남아 있지만 삼각대 없이 담은 사진 치고는 봐 줄만 한 모습이다.

광양시에 들어가 광양 소개를 읽어 보니 다음과 같이 소개되고 있다.

광양시는 백제시대에는 마로로 통일신라시대에는 희양으로 그리고 고려시대부터는 광양으로 불려왔는데 마로는 우두머리란 뜻이고 희양과 광양은 따스하게 빛나는 햇살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지난 1989년 당시 광양군의 일부지역이 동광양시로 분리되었으나 1995년에 통합을 이루어 도시와 농촌 복합형 도시인 광양시로 새출발 하였으며 21세기 해양시대를 맞아 동북아시아의 물류거점 항만도시로의 커다란 도약이 기대되는 고장이다.

광양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역시 광양제철소가 아닐까 생각해 보며 열심히 찾아 보지만 어둠속에 찾지 못하고 있다.

 

5분여 불암산 정상에서 주위 야경을 바라보며 잠시 흘렀던 땀방울을 식히는 동안 후미가 도착하고 후미에게 불암산 정상부를 넘긴 채 다시 억새가 우거진 등로를 찾아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해 본다.

불암산 정상에서 5분여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선답자들이 고생했다는 잡풀들은 이미 제거돼 아주 편안한 등로로 바뀌어 있고 곧이어 나타나는 백학광장 이정표도 잡풀속에 어렵게 담았다는데 오늘은 아주 시원하게 그 이정표만 남아 있다.

이 이정표는 광양시 진상면에서 몇년전부터 백학광장에서 이곳 불암산 정상까지의 등산로를 새로 개설하여 새해 해맞이 행사등을 실시하고 또한 호남정맥 중 진상면쪽 등로를 정비하여 고향 이미지 쇄신을 위해 노력했다는 소식이 광양지에 소개된 곳이기에 잠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백학광장 갈림 이정표를 지나 계속되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많은 묘지들이 어둠속에서도 등로 주위에 산재해 있는 모습이 들어 온다.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던 마루금이 급하게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어둠속에서도 조심하며 내려가니 높은 골재야적장이 있는 2차선 포장도로인 탄치재에 도착을 한다.

좌측으로 거대한 건물이 보이고 2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 고겟마루로 올라가다 보니 철조망이 시작되는 옹벽 위에 불암산. 토끼재 가는길이란 이정표 밑에 3.1 Km라 표시가 되어 있다.

도로타고 10여미터 올라가면 다시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 있고 그곳 우측에 광양시 진월면과 진상면 경계를 이루는 탄치재란 이정석이 서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좌측의 시멘트 도로쪽으로 들어가니 들어가는 길목에는 작은 화단이 있는데 그 화단에는 성원산업 레미콘 공장 입간판과 해발 168미터란 수준점과 삼각점이 박혀 있다.

그곳 바로 지난 지점 우측 능선으로 다시 국사봉 가는길 2.8 Km란 이정표가 서 있다.

 

탄치재에서 작은 봉고차를 타고 이동한 종주대 축사 사절단도 다시 만나 인사 나누고 다시 우측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의 능선으로 오르며 다시 숨가쁜 국사봉 오르막 산행이 시작된다.

좁은 능선 등로를 타고 묘지 하나를 지나니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다시 등로는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부터 정신없이 앞사람 등산화만 바라보며 조금씩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어느새 이마와 등줄기에서는 다시 땀방울이 솟아 흐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땀방울 닦으며 꾸준히 오르니 249봉의 넓은 헬기장에 도착하고 어둠속에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내려가 본다.

 

내리막 등로인지 모를 정도의 완만한 등로가 계속 이어지고 주위에는 잘 자란 소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간 형상이 어둠속에서도 밫을 발하는 등로이다.

잠시 더 진행하니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와 만나 안부로 내려가니 등로가 우측으로 꺽이며 오르막 등로로 변하는 지점에 등로 좌측으로 대리마을과 경모정으로 하산하는 갈림 이정표가 서 있다.

고도표에는 신촌사거리라 표기된 장소에 서 있는 대리경모정 하산 이정표를 사진에 담고 이제부터 서서히 고도를 높히는 오르막 등로로 접어 든다.  

 

대리마을을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되어 있다.

문바구 남쪽에 있는 마을로 원래는 월포마을 이었으나 중간에 대리로 개칭되었다.

약 400년전에 김해 허씨가 이곳에 정착하였다.

현재는 김해 허씨 18호, 이천 서씨 16호, 김해 김씨 15호, 곡부 공씨 8호의 순으로 분포되어있다.

월포는 마을 앞에 개(浦)가 있어 붙여졌던 이름으로 후에 마을이 크다는 뜻의 대리로 개칭되었다.

대리가 마을이 크다는 의미가 아니라 대나무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 마을의 대나무는 질이 좋기로 유명하여 궁중에 진상되었다는 것, 죽사라는 절도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대(竹)촌의 '대'가 음 그대로 사용되어 대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죽사(竹寺)는 국사봉에 있는 비구니 절이었는데 도둑이 자주 들어 자주 옮겨 다니던 끝에 절이 아주 없어졌다 한다

 

아주 가파른 등로가 열리고 코가 등로에 닿을 듯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는 발길에 묵직한 무게가 전해지며 다시 이마와 등주기에선 굵은 땀방울이 솟아지기 시작한다.

금새 등로 아ㅑㅍ에 석축이 나타나고 올려다 보니 거대한 철탑이 보이며 그 철탑을 좌측으로 우회해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살펴보니 45번 송전탑이고 곧이어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계속해 이어지고 있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는 이곳을 지나면 우측에 개인고사리밭이란 안내판이 보인다 했는데 그 안내판을 찾지 못하고 계속 전진해 오르니 위험하지는 않지만 등로 좌측에 안전로프가 매어져 있는 구간을 지난다. 

 

그렇게 10여분 힘들게 땀방울 흘리며 오르니 다시 평이한 등로가 열려있고 잠시 더 진행해 무명봉을 넘어 나즈막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묘지 한기가 있는 곳에 선두팀이 모여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곳에서 배낭 내려 놓고 속이 불편하기에 소화제를 먹은 후 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함께 쉬어 간다.

다시 우측으로 열려있는 등로를 타고 진행해 나즈막한 봉우리인 286봉을 지나니 편백나무 숲이 짧게 이어지더니 다시 오르막 등로로 접어 들어 한동안 진행 된다.

오르다 보니 큰 바위 두개가 등로 양쪽에 서서 지나는 산객을 검문하듯 서 있고 그곳을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전망바위가 보인다.

 

전망바위로 들어가 보니 선두팀이 사진 몇장 담은 후 사라지고 그곳 바위에 올라 한동안 주위 풍경을 담으며 빛과의 사투를 벌여 본다.

일반 똑딱이 카메라로는 도저히 잡을 수 없는 풍경이기에 DSLR 카메라를 꺼내 담아 보지만 이번에는 빛이 모자라 자꾸만 흔들림 현상이 일어난다.

삼각대를 가지고 오르지 못했으니 그저 최선을 다해 흔들림이 적게 담을 수 밖에 없는 아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바로 앞으로 월길리와 송금리 지나 섬진강이 내려다 보이고 그 강 건너 하동읍 뒤로 끝없이 펼쳐진 산그리메가 새벽을 깨우는 순간이다.

 

5분여 신선바위에서 주위 조망을 담아보지만 역시나 빛이 모자라 제대로 된 사진 몇장 건지지 못하고 뒤돌아 나와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정상이정표와 감각점 그리고 거대한 무인산불감시 카메라가 서 있는 국사봉 정상에 도착해 주위 조망을 즐겨 본다.

그 어디에도 이곳 국사봉에 관한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남아있는 다른 지역의 국사봉 자료를 비교해 보면 이곳 국사봉도 비슷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해발 445미터인 국사봉은 옛날 국가의 사적을 보관했던 산으로 국사봉이라 하며 또는 측량할 당시 이 산 꼭대기에 기를 꽂아 기점으로 하였다 해서 때로는 깃대봉이라고도 많이 불려지는 산으로 알려져 있다

정상 좌측의 동녘 하늘에선 일출이 시작되려는 듯 두꺼운 구름속에서 붉은 태양이 용솟음치며 사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 들어 와 재빨리 국사봉을 떠나 조금 더 좋은 장소에서 일출을 감상하자 생각해 본다.

 

다만 이곳 국사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북서쪽의 뾰족봉인 억불봉의 위용이 대단하고 그 우측 북쪽으로는 백운산이 솟아 있으며 구 우측 능선을 타고 내려온 호남마루금이 살짝 보인다는 것에 큰 위안을 삼아 본다.

바로 아래에는 조경수사유지로 들어 보였어야 할 수어젓구지가 살짝 그 존재감만 알리고 있고 그 골짜기를 타고 저 멀리 억불봉과 이어진듯 가깝게 다가오고 있다.

이제 아쉽지만 국사봉을 떠나 완만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이제부터 잡목과 잡풀을 제거하지 않아 산행에 제법 어려움을 겪는 구간으로 기억된다.

 

한동안 평이하지만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안부를 지나 다시 짧은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그 등로를 타고 오르는 사이 등로 좌측 잡목 사이로 더욱 뚜렷히 아침 일출이 시작되려 한다.

마음이 급해 잡목이 덜한 장소에서 아쉽지만 사진에 한장 담은 후 조금은 빠르게 치고 올라 413봉에 도착해 우측으로 꺽여 진행하는 등로 반대편인 좌측으로 들어가 혹시나 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출을 기대해 보지만 역시나 잡목과 잡풀들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기에 포기하고 다시 정상 등로로 복귀해 산객의 키보다 더 웃자란 잡풀들을 헤치고 빠르게 진행해 본다.

  

다시 마음이 급해 조금은 빠르게 잡목과 잡풀을 헤치고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자꾸만 잠복이 발목을 잡고 늘어져 갈길 바쁜 산객의 마음만 더욱 바쁘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진행해 밋밋한 봉우리인 340봉을 넘어 내리막 등로에서 이제 제대로된 일출이 시작되고 등로 좌측 작은 잡목들이 있어 일출 감상이 용이한 지점에 자리를 잡고 두꺼운 구름을 헤치고 찬란히 떠 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는다.

떠오르는 태양 우측으로는 정상에 인공 구조물을 한아름 이고 서 있는 하동의 가야산이 우뚝 솟아 있다.

 

그곳에서 한동안 중간 그룹과 후미 그룹이 지나갈 때까지 아름다운 일출과 다시 구름속으로 숨으며 하늘에 펼쳐 놓은 황홀한 그림을 감상하며 급하지 않게 진행한다.

잠시 종주대들을 앞으로 보내고 뒤 따르며 앞을 내려다 보니 이제 황금 들녘을 지나 우측의 천왕산과 194 암봉 그리고 좌측의 호남정맥 마지막 봉우리인 망덕산이 삼각고지를 이루며 마지막 바다로 떨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그 넘어 광양만을 지나 여수반도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섬진강이 끝나는 좌측에는 하동을 지나 남해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산하가 놓여있다.

 

이제 그 아름다운 풍경들과 조망을 뒤로 하고 제일 후미에서 마지막 종주대의 뒤를 따라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내려가니 등로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지점에서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반긴다.

몇장의 사진으로 담은 후 계속 내려가니 이제 임도 수준의 잘 정비된 등로가 반겨주지만 군데 군데 썩어 잘려진 나뭇가지들이 눈에 들어오며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없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게 진행해 내려가다 문득 잡목이 사라진 등로 우측으로 황금빛 들판과 백운산과 억불봉에서 남해바다를 향해 떨어지는 산줄기가 보이는가 싶더니 우측 뒤 저 멀리 뾰족 튀어 오른 억불봉과 그 뒤로 정상부만 아침 햇살에 눈부신 백운산 정상부가 빼꼼히 보인다.

2년전 매화 축제 기간동안 종주 산행을 하면서 만났던 추억 한자락 꺼내 다시 뒤돌아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참으로 아름다운 산하이며 마루금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또 조금 더 내려가니 이제는 등로 앞과 좌측으로 잡목이 사라지고 멋진 조망이 펼쳐져 있다.

바로 아래에는 하동 화력발전소에서 뿜어내는 하얀 연기가 보이고 그 뒤로 광양만 넘어 하동과 남해의 산줄기가 보이고 그 좌측인 위쪽으로는 하동의 가야산이 우똑 솟아 있는 정상에 인공구조물을 이고 그 아래쪽인 암쪽으로 제법 그럴듯한 산줄기들을 거느리고 있다 

하동 가야산에 관한 자료를 한국의 산천에서 빌려 와 본다.

가야산은 진안 장안산(1237봉)에서 시작해 광양 백운산(1217.8봉)에서 끝을 맺는 듯하던 호남정맥이 남으로 국사봉(531.8봉)과  봉화산(394봉)으로  뻗어 내리다가 동쪽으로 다시 한 번 여세를 몰아 일으킨 산이  가야산이다.
광양시청 뒤에 우뚝 솟구친 가야산은 광양시 어디서든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교통의 지리적 요건 덕분이기도 하지만 산정에 서면 남해바다를 비롯해  백운산과 지리산까지도 한눈에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키울 수 있는 산이다.
가야산은 호남의 전문산악인들에게는 암벽훈련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정상 남쪽 사면에 위치한 가야암장은 동벽, 중앙벽, 적벽, 서벽 등 여러  암장으로 나뉘어 있고 루트도 여러개 개척돼 있다.
또한 산 어디에서나 내려다 보이는 광양만은 예로부터 전남 동부권과 경남  서부권을 잇는 해상교역의 요충지이자 수산물의 보고였다.
또한 임진왜란 때는 명나라 수군과 함께 왜적을 맞아 해상봉쇄 작전을 펼쳤던 해상전적지인 근대화의 상징이기도 한 산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동안 다시 내리막 급경사를 타고 내려오니 잡목이 우거진 등로로 이어지고 37번 송전탑을 지나 우측으로 감나무 과수 단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계속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오면 금새 정면으로 제법 자란 대나무 밭이 보이고 등로는 그 대나무 밭 앞에서 우측으로 꺽여 내려가 넓은 비포장 임도를 만나 좌측으로 임도를 따르도록 되어 있다.

이곳이 바로 상도재로서 상도재에 얽힌 유래는 진월면에서 진상면(예 이름은 상도면)으로 들어오는 어귀가 되므로 상도재(123미터 해발)라 하였으며 또한 이 상도재가 자리잡고 있는 부근의 산 형태가 독수리 모양이라서 수리치라고도 불렸다는 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삼거리 시멘트 포장도로이다.

 

아침 7시를 막 넘긴 시간이니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즐긴 후 출발하기로 한다.

몇몇 종주대는 산소 앞에서 또 몇몇은 도로변 시멘트 포장 위에서 각자 준비한 반주를 들면서 아침식사를 마친 후 주위에 널려 있는 감나무와 밤나무에 열려있는 과일을 앵글에 담아 본다.

30여분가 먹고 쉰 다음 단체 사진 한장 남기고 삼거리에서 시멘트 도로를 건너 묵은 밭처럼 보이는 감나무와 밤나무 과수 단지의 밭둑을 타고 앞으로 진행하면 된다.

아침 일찍 밤을 주우러 산으로 들어가는 동네 오르신들을 태운 경운기 한대가 어렸을적 시골에서 자란 이 산객의 추억을 들추고 있다.

 

잠시 밭둑을 타고 진행하다 등로 좌측 아래로 펼쳐져 있는 상도재로 향하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황금들녘 그리고 오늘 마지막으로 올라야 할 망덕산을 조망해 본다.

직선 거리로는 아주 가깝게 위치해 있지만 남으로 달려 천왕산에 오른 후 194 암봉을 지나 동쪽으로 꺽여 진행하다 다시 북동쪽으로 가야 하니 이제부터도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뒤로 도도히 흐르는 섬진강이 보이고 그 바로 뒤에는 하동의 가야산이 멋진 산줄기를 이루고 한번 만나자 유혹하고 있다.

 

그렇게 감나무와 밤나무 단지를 지나 밭둑을 타고 오르니 금새 다시 잡목이 우거진 능선으로 등로가 이어져 있다.

그 능선으로 들기 직전 뒤돌아 보니 철탑 하나가 보이고 그 넘어 오늘 봉사하는 종주대가 운전해 내려온 봉고차 하나와 종주대들이 서 있는 상도재 시멘트 도로가 보이고 그 뒤로 대나무 밭으로 이어진 지나온 호남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그 위로 37번 송전탑고 340봉이 올려다 보이며 잘가라 이별을 노래하고 있다.

 

능선으로 들어가니 잡목과 잡풀이 다시 등로를 어지럽게 만들지만 진행하는데에는 큰 어려움을 주지 않는다.

그렇게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우측에 넓은 야생화 밭이 펼쳐져 있고 들어가 보니 쑤ㅠㄱ부쟁이인지 아니면 구절초와 비슷하게 생긴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고 피어 있다.

그곳을 지나 다시 칡넝쿨이 우거진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등로 우측 저 멀리 진상면의 마을과 나즈막한 산줄기를 타고 저 멀리 멀어지는 억불봉이 뾰족하게 봉우리를 내밀고 있는 모습도 들어 온다.

그러다 봉우리 같지도 않은 봉우리에서 불쑥 나타나는 장박산 정상이정표와 그 아래 삼각점이 눈길을 잡고 그 좌측 나뭇가지에는 준.희님이 붙여 놓은 삼각점봉 167.2봉이란 이정표도 보인다.

그 어느곳에서도 장박산에 관한 자료를 찾지 못하였으니 이곳 역시 제대로 된 고증을 거쳐 붙여 놓은 산 이름인지 의심이 가는 곳이기도 하다.

 

장박산 즉 삼각점봉이란 봉으리를 넘으니 제법 넓은 밤나무 단지가 보이고 그 밤나무 아래를 통해 호남정맥 마루금이 이어지고 있다.

연세 드신 노부부가 올라 떨어진 밤을 주우며 산객들을 바라보기에 인사를 드리고 어려운 농사일에 대해 몇마디 나누다 보니 주름살만 깊어가는 농사의 어려움과 고민을 얏볼 수 있었다.

오늘 시작한 토끼재의 조경수 사유지 땅을 갖고 있는 사람과 너무나 대조되는 두 노부부에 경의의 인사를 건네고 함께 진행하는 종주대들에게 단 한톨의 밤이라도 주우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조심스럽게 진행한다.

밤나무 단지 우측으로 보이는 제법 큰 마을을 물어 보니 그곳이 바로 진상면 소재지가 있는 마을이라 친절하게도 알려 준다.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빌어 드리며 그 밤나무 단지를 빠져 나온다.

 

밤나무 단지를 빠져 나오니 이제 감나무인지 아니면 매화나무인지 다시 과수원처럼 보이는 밭을 지나 진행된다.

나뭇가지를 피하며 조심해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다시 황금 들판이 보이고 그 뒤로 당당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망덕산과 하동의 가야산 줄기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그저 이렇게 바라만 봐도 좋을 우리 강산들, 이제 이곳 호남정맥 마루금은 언제 다시 오를 지 기약없는 이별의 마루금이 되어 간다는 사실에 조금은 아쉬움이 깊게 묻어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 과수원을 빠져 나오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뱀재에 도착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 도로 역시 2번 지방도로이다.

뱀재는 배암재라고도 하는데 아마도 뱀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예상을 했는데 아닌가 아니라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 뱀재는 광양의 진월면과 진상면 경계지점의 고갯마루로서 이 고개에 뱀굴이 있어 이름지어졌다는 설이 전해지는 고개이다.

도로로 내려 와 우측으로 10여미터 걸어 가 도로를 건너면 철조망이 끝나는 지점에 서 있는 전봇대 있는 곳에서 올라 진행하면 된다.

 

가파른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금새 다시 과수원이 나타나고 그곳을 통해 오르니 넓은 공터에 묘지석 4개가 나란히 보이는데 제40대, 제41대, 제43대 및 제44대란  묘지석이 있어 몇몇 선답자들이 의미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나 살펴 보지만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그곳 묘지를 지나 뒤돌아 보니 뒤따르는 종주대들이 올라오고 그 뒤로는 뱀재를 지나 정막산으로 이어지는 지나온 마루금이 보이기 시작한다.

 

4개의 묘지석이 있는 묘지를 지나니 시멘트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타고 오르니 임도 우측으로 잘 가꿔진 가족묘가 보이고 그 가족묘 뒤로 돌아 오르니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난다.

 그 갈림길에서 우측 시멘트 임도를 타고 오르면 우측으로 저 멀리 국사봉 지난 무명봉에서 이곳까지 지나온 마루금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이제 다시 시멘트 임도가 끝이나며 등로는 좌측 밤나무 단지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는데 그 직전에 바라 본 진상면 마을과 산줄기들 그리고 저 멀리 머리만 보이는 억불봉이 아름답다.

 

다시 밤나무 단지로 들어가 진행하면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잼비산이란 정상이정표가 발길을 붙잡는다.

지도상에는 그저 117봉이란 표기만 되어 있어 많은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안타까운 산이기도 하다.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을 법한 이름의 잼비산이기에 더욱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나중에라도 자료를 찾으면 보충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잼비산을 지나니 다시 잡목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더 진행하니 바위 하나가 있는 무명봉을 지나 밤나무 밭이 이어진다.

제법 많은 밤들이 떨어져 있지만 줍지 않아 그대로 땅바닥에 굴러 다니고 있다. 

손이 없어 그런지 안타까운 농촌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전진해 내려가니 이제 등로 우측으로 묘지 하나가 보이는데 그곳으로 내려가 보니 내려가야 할 황금들녘 가운데로 남해고속도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좌측 저 멀리 올라야 할 천왕산 산줄기가 보이듯 말듯 산 허리에 감춰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저 바라만 봐도 아름답고 멋진 황금 들녘이며 가을의 풍성한 계절감이다.

 

묘지 위에서 한동안 앞으로 펼쳐진 황금 들녘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정상 등로로 복귀해 전진하니 낙엽 져 앙산한 나뭇가지만 남아 있는 매실나무 과수원을 지나 곧바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삼정치에 도착해 내려간다.

이곳이 지도 상의 삼정치로서 일면 할미당 고개라 하는 곳이다.

우측으로 삼정마을이 보이고 좌측으로 진정리가 보이는 고갯마루로서 시멘트 도로로 내려 선 후 우측으로 가면 곧바로 다시 좌측으로 시멘트 도로가 나 있는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삼거리에서 좌측 시멘트 도로를 타고 오르며 정맥 마루금은 이어지고 있다.

 

아주 가파른 시멘트 임도를 타고 고갯마루를 넘으니 우측으로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나지만 계속 직진의 시멘트 임도를 타고 진행한다. 

계속 전진하니 이제 등로 우측 저 앞으로 올라야 할 천왕산이 가깝게 다가오고 그 우측으로는 수어천과 선포 마을 그리고 수어천 넘어 진월쪽 마을도 보이기 시작한다.

고도를 보면 거의 제로 베이스 가까이 떨어져 걷고 있는 시점으로 228미터의 천왕산이 그렇게 높이 보이기는 아마도 근래에 처음이란 생각이다.

 

시멘트 임도를 타고 한동안 계속 진행하니 저 앞에 삼거리 갈림길이 보이고 그곳에서 우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며 밭둑을 걷게 된다.

등로에 피어 있는 야생화도 구경하고 또한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진정리 마을도 구경하며 천천히 진행한다.

진월면이란 고을 이름은 기존에 있던 행정구역 지명인 진하면과 월포면을 일제 시대 때 통합하는 과정에서 각각 첫글자를 따서 진월면이라 하였고 이들 지명이 처음으로 사료에 나타난 문헌은 1760년경 펴낸 여지도서로서 당시 면이름과 함께 각 호구 및 남과 여자 인구수가 기록되어 전하는데 진하면은 당시 진상면 청암리에 위치한 숭어쏘 나루터를 중심으로 나루터 아래쪽에 위치한 고을이라 하여 진하면이라 하였으며 당시 이 지역은 진월면 차사리와 진정리에서부터 신아리에 이르는 지역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삼거리에서 우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우측에 잘 정비된 가족 묘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자 밤나무 단지를 통과해 밭둑을 타고 전진하며 등로 우측 아래를 보니 수어천이 말라 모래톱이 보이고 그 넘어 옥곡쪽 마을들도 보인다.

잠시 후 우측으로 공동묘지인지 아니면 대가족 묘지인지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잠시 들어 갔다 고갯마루를 넘으니 밤나무와 감나무 단지가 다시 나타난다.

감나무 밑에는 잘 익은 감들이 떨어져 있어 두어개 주워 먹으니 달콤하니 참으로 목마름에도 좋다.

그 감나무 단지를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망덕배수장 건물이 보이고 다시 이어진 밤나무 단지로 들어 간다.

 

다시 밤나무 단지를 지나 잠시 앞으로 올라야 할 천왕산 조망을 보여준 후 이어진 밤나무 과수원을 지나니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 자주 등장하는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난다.

살펴보니 방금 전 지나 간 선두 그룹은 희미한 우측 등로를 타고 진행한 듯 보여 이 산객은 직진의 조금 뚜렷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기로 한다.

왜냐하면 어짜피 이쪽으로 진행하나 저쪽으로 진행하나 중산마을의 민가 마당을 통해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기 때문이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잠시 직진으로 오르니 넓은 헬기장이 반겨준다.

헬기장을 지나자 마자 우거진 산죽밭이 나타나는데 너무나 우거져 길을 내지 않았으면 통행하기조차 힘이 들 그런 등로이다.

그 산죽밭을 지나니 갑자기 민가 뒷쪽을 통해 앞마당으로 이어지고 정문을 통해 나가니 앞서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한 선두가 방금 전 도착해 기다리고 있다.

잠시 그곳에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마을 맢으로 나 있는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가 저 앞에 보이는 남해고속도로 지하통로를 통해 고속도로를 건너기 위해 출발한다.

 

원 호남정맥 마루금은 삼정치에서 중산마을로 내려오지 않고 중산마을을 좌측에 두고 우측 마루금을 타고 내려와야 하는데 중산마을 앞 우측에 남해고속도로가 생기면서 마루금이 절단되고 절개지가 만들어져 오래전부터 정식 마루금이 아닌 우측 중산마을의 민가를 통해 내려 와 이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되어 왔기에 이제 정상 호남 마루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헬기장 오르기 직전의 우측으로 나 있는 희미한 등로를 타고 진행한다 해도 어짜피 정상 마루금이 아니기에 좁게 나 있는 그곳 등로 보다는 직진의 등로를 타고 중산마을로 내려와도 무방하다는 결론이다.

이제 저 남해고속도로릐 지하통로를 건너기 위해 출발한다.

 

저 남해고속도로를 건너는 방법도 좌측 자동차 통로와 우측의 사람을 위한 통로가 있지만 사람이 지나는 통로를 통해 진행하니 다시 나타나는 절개지를 내려 서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인도를 만들어 놨으면 쉽게 내려 갈 수 있는 길까지 만들어 놔야기 이렇게 통로만 만들고 도로로 다시 내려가는 길이 없으니 탁상행정의 대표적인 곳은 아닐까 괜시리 짜증이 나는 시간이다.

어렵게 도로로 내려 와 좌측의 옹벽을 타고 시멘트 수로를 타고 오르며 뒤돌아 보니 이 산객이 내려온 우측의 중산마을과 좌측의 붉은 절개지를 타고 내려 와야 할 정상 마루금이 제대로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수로를 타고 천왕산 오름 등로로 올라가니 밤나무 단지가 이어져 있고 잠시 뒤돌아 보니 지나 온 마루금과 저 멀리 뾰족하게 보이는 억불봉은 아직도 방향타 구실을 하고 있다.

밤나무 단지에는 천지가 굴러다니는 밤으로 가득하다.

일손이 모자란 탓인지 이렇게 떨어져 굴러 다녀도 줍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으니 농촌에 일손이 얼마나 모자란지 실감이 나는 시간이다.

이 산객의 고향인 충남 청양과 공주에도 밤으로 유명한 고장인데 이곳 광양의 남해바다 근처에도 이렇게 밤나무 단지가 많았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몰랐었다.

처음으로 밤 몇알을 주워 까 먹어 본다.

그것조차도 농부에게는 미안하고 후답잗들에게는 누가 되는 일은 아닌지 걱정을 하면서 말이다.

 

밤나무 단지를 통과하니 다시 시멘트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따라 올라 본다.

한동안 그 시멘트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오르니 이제 좌측으로는 감나무 단지가 펼쳐져 있고 우측 아래로는 잡풀지대가 펼쳐져 있다.

잠시 시멘트 임도를 타고 오르니 시멘트 임도가 끝이나며  등로는 좌측 과수원 식재단지 쪽으로 오르게 되어 있다.

그곳으로 오르니 다시 밤나무 단지가 나타나는데 그 밤나무 단지를 타고 오르니 다시 비포장 임도와 만난다.

그 비포장 임도에서 뒤돌아 보니 지나온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다시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올라가니 비포장 임도가 좌측으로 크게 휘어져 올라가는 도중에 우측 감나무와 밤나무 단지쪽으로 나 있는 좁은 나무 계단을 타고 오르도록 되어 있다. 

 

그곳으로 올라 잠시 뒤돌아 보니 다시 지나온 마루금이 시원하게 조망되고 저 멀리 억불봉까지 조망된다.

이제 등로 좌측으로 밤나무 단지를 보호하기 위한 파란 그물망이 나타나고 그 그물망을 따라 우측으로 오르니 그 그물망과 밤나무 사이로 등로가 열려 있다.

그곳을 통해 오르니 나즈막한 봉우리 넘어 묘지 하나가 보이고 잠시 그곳에서 쉬어 간식을 먹는 시간을 가져 본다.

중간 그룹이 올라오고 다시 천왕봉 정상에서 잠시 더 쉬어 가기로 하고 파란 그물망이 쳐진 들깨 밭둑을 통해 천왕봉으로 향한다.

 

10여분 그 묘지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오르니 갑자기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코가 등로에 닿을 듯 그렇게 다시 땀붕울 흘리며 진행하니 전망이 트이는 전망바위에 올라 잠시 뒤돌아 보며 흐르는 담방울을 닦아 본다.

남해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우측 중산마을과 그 좌측의 절개지인 정상 마루금이 시원하게 조망되며 그 뒤 좌우로 황금 들녘을 끼고 끊어질듯 이어지는 호남마루금이 저 멀리 국사봉으로 이어져 있고 좌측 저 멀리에는 희미하게 억불봉과 그 우측으로 이어져 온 마루금이 넘실거린다.

보이는 등로 좌측으로는 수어천이 모래톱을 드러내고 펼쳐져 있다.

 

다시 잠시 더 오르다 바위가 나타나 뒤돌아 보니 그곳에 그토록 그리움에 찾아 헤매였던 지리연봉이 북쪽에 펼쳐져 있고 그 좌측으로 흐르며 하동의 형제봉 일명 성제봉 봉우리가 뚜렷히 보인다.

그 좌측으로는 왕시루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도 저 멀리 희미하게 드러나 있고 그 좌측으로 돌아가며 백운산 자락과 억불봉이 펼쳐져 있다.

바로 그 지리산 연봉 앞에는 오늘 올라 처음 만났던 불암산이 벌써 저만치 멀어진 거리로 존재감을 나타낸다.

 

이제 호남 마루금을 우측에 두고 그 아래로 시원하게 뚫려있는 남해고속도로와 수어천의 모래톱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 싼 황금 들녘이 산객의 발길을 붙잡고 놔주질 않는다.

그 뒤로 광양에서 억불봉을 통해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뚜렷하게 펼쳐져 있고 그 아름답게 펼쳐진 조망에 다시 많은 사진을 담아 본다.

산행 거리도 짧고 또한 어려운 마루금도 아니기에 그저 쉬엄 쉬엄 많은 사진을 남기며 좋은 추억을 쌓기 위해 노력해 본다.

 

다시 조금씩 발걸음 돌려 오르니 다시 등로 우측으로 전망바위가 보이고 그곳으로 가 광양쪽 시내와 광양만을 돌아 본다.

광양시는 1995년 동광양시와 광양군이 통합되어 도농통합시 광양시가 되었다.

광양제철소의 입지가 결정된 1981년 전까지는 광양만을 중심으로 김과 조개류의 양식업이 활발했으나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산업구조가 2, 3차산업 중심으로 전환되어 우리나라 철강공업의 중심지이자 해외무역의 전진기지로서 발전해왔다.

이 지역은 1989년부터 광양군 골약면 앞바다(지금의 광양시 중마동 일대)를 메워 도시로 조성하여 국내 최대 규모인 컨테이너 항의 건설과 함께 도시화가 가속화되었다.

광양읍, 봉강면, 옥룡면, 옥곡면, 진상면, 진월면, 다압면, 중마동, 금호동, 광영동, 태인동과 골약동 등 1개읍 6개면 5개동이 있다.

 

그렇게 많은 시간 보내며 천천히 여유까지 부려 오르니 정상 부근에 도착을 하고 바로 앞에는 묘비석이 서 있는 묘지 한기가 보인다

그 묘지 바로 뒤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암봉으로 이뤄진 천왕산 정상에 도착한다.

일망무제, 시원하게 펼쳐진 조망이 압권인 이곳 정상에서 잠시 쉬어가며 여유를 부려 본다.

천왕산은 이 산에 천자봉조혈의 명당이 있으며 높이 솟아 있어 천왕산 또는 천황봉이라 불리운다는 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빙 돌아가며 많은 사진을 담았지만 지나온 마루금과 광양시쪽 풍경은 오르면서 많이 설명이 되였기에 천왕산 동쪽의 망덕산과 그 좌측의 남해고속도로 및 진월 IC 그리고 섬진강과 그 뒤 하동의 가야산을 조망해 본다.

그저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답고 황홀한 멋에 한동안 말없이 감탄가만 연발해 본다.

가슴으로 느끼고 추억으로 담아도 들떠 있는 기분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남쪽으로는 지금부터 올라야 할 호남정맥 마루금의 끝자락을 담아 본다.

완만한 마루금을 타고 오르면 저 정남쪽으로 뾰족하게 올라온 194 암봉이 솟아 있고 그 좌측으로 흐르며 망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마루금 저 멀리에는 광양시 북쪽에 우뚝 솟아있는 무명봉이 바닷발함을 막아주며 서 있고 그 아래에는 광양시의 거대한 도심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 194 암봉을 지나면 2번 지방도로를 뚫기 위해 잘려진 마루금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그 넘어 섬진대교가 훤히 드러나 있으며 이제 섬진강과 남해바다가 만나는 합수점도 가물거리며 조망된다.

그 2번 지방도로를 건너면 다시 완만하게 이어진 망덕산 정상으로 향해 있고 그 넘어 하동의 화학발전소와 남해의 산줄기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제 호남정맥 산행도 마지막 발걸음만 남아 있는 실정이다.

 

다시 10여분간 천왕산 정상에서 조망과 풍경을 즐긴 후 식수 한모금으로 모마름을 다래 본다.

그리고는 나중에 도착하는 산님들이 많아 천천히 바위를 타고 내려 와 다시 마지막 봉우리인 망덕산을 향해 출발한다.

잠시 바위를 돌아 조심하며 내려가니 이제 평이한 등로로 이어지고 등로 좌측에 잠시 조망이 펼쳐진 바위가 나타난다

그곳으로 들어가 바라보니 전라남도 광양과 경상남도 하동을 이어주는 섬진강 최하류의 섬진대교를 담아 본다.

그 아래로 펼쳐진 광활한 남해바다 위에 점점히 떠 있는 섬들과 그 넘어 길게 펼쳐진 남해지맥을 그리워 해 본다.

몇년 전 저곳에 올라 아름다운 3일의 여정을 마친 곳이며 이곳을 바라보며 오늘을 그리워했던 곳이기에 더욱 그 그리움이 깊게 남아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 더 내려가니 편백나무들 몇그루가 멋지게 자라고 있고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오르니 바위 하나가 정상을 지키는 봉우리를 넘는다.

다시 계속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을 걷다보니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고 한동안 진행하니 등로 우측에 광양시와 수어천 그리고 그 넘어 황금 들판을 넘어 저 멀리 다시 억불봉이 다가와 있다.

그 아름다움에 다시 발길을 멈추고 잠시 더 쉬어 간다. 

그렇게 오르니 194 암봉에 오르고 다시 그림같이 펼쳐진 주위 조망을 살펴보며 한동안 쉬어 간다.

우측으로 호남정맥 마지막 봉우리인 망덕산과 남해고속도로 그리고 하동의 가야산이 눈 앞에 들어 오고 북쪽 뒤쪽으로는 방금 전 지나 온 천왕산으로 이어진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한동안 휴식을 취하며 많은 사진을 담은 후 다시 천천히 194 암봉을 떠나 잘 정비된 소나무 군락지로 나 있는 마루금을 따라 걸어 본다.

이어지는 남쪽 광양만과 남해바다를 바라보며 계속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걷다 보니 다시 등로 좌측으로 작은 전망바위들이 나타나고 그곳에 올라 지나온 천왕봉과 194봉 암봉을 조망해 보는 즐거움도 작지 않다.

다시 한동안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여유작작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암릉과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걸어가니 제법 붉은 단풍이 보이고 곧이어 우측 갈림길이 선명한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난다.

우측 등로에는 나무 가로막이 놓여 있고 좌측 정상 호남정맥 마루금엔 쇠철조망이 쳐져 있었지만 이미 정맥 종주대들의 출입으로 인해 그 흔적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였다.

이곳에서 좌측 등로를 타고 희미한 등로를 따라 전진한다.

 

그렇게 한동안 희미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시멘트로 만들어진 수로가 나타나고 그 수로를 타고 우측으로 진행하니 좌측 가파른 내리막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다시 시멘트 수로를 만나 우측으로 진행하니 또 한번 좌측 가파른 내리막 능선으로 등로가 열려 있고 그곳으로 내려가니 토사 방지용 녹색 방지망이 깔려있다.

그곳을 타고 아주 조심스럽게 그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아주 가까운 곳에서 차량 통행이 이뤄지는 소음이 크게 들린다.

 

그렇게 잠시 그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바로 앞에 넓은 4차선 2번 지방도로가 보이는데 그곳으로 내려갈 문이 없고 좁게 철조망을 뚫어 놓은 개구멍이 보인다.

그곳으로 어렵게 통과 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높은 중앙분리대를 차량이 뜸한 사이에 어렵게 넘어 도로 반대편으로 간다.

그곳에는 차량 봉사를 해 주시는 대장님 한분이 반갑게 맞이해 주고 오랫동안 병상에서 무릎으로 인해 고생한 산친구님이 반갑게 서 있다.

인사를 나누고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도로를 건너 우측에는 진주기업이란 고물상 안내판이 보이는 콘크리트 임도에서 속도 단속구간 도로 표지판이 있고 하동 19 Km란 도로 표지판이 있는 곳으로 오르면 등로는 다시 좌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하는 비포장 임도로 이어져 있다.

그 비포장 임도 앞에서 망덕산으로 오르기 전 예쁘게 피어 있는 코스모를 사이로 보이는 호남정맥 마지막 봉우리인 망덕산을 올려다 본다.

 

잡풀이 무성한 임도를 타고 잠시 더 오르니 임도 우측에 감나무 밭이 보이고 그 아래에는 익은 감들이 많이 떨어져 있다.

그 감 몇개를 주워 먹으니 목마름도 달래지고 허기도 가시면서 달콤함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그렇게 오르니 묘지 몇기가 보이고 그 묘지를 지나니 다시 능선으로 마루금이 이어지고 그 능선으로 들기 직전 지나온 마루금을 내려다 보니 저 아래 진주기업과 2번 지방도로 그리거 감나무 밭이 보인다.

저 2번 지방도로를 타고 내려가면 섬진강 지나 광양으로 이어질 것이다.

 

잠시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등로 좌측으로 절개지가 나타나고  그 아래 거대 공장 건물이 바로 발 아래 내려다 보이며 바로 앞으로 2번 지방도로가 지나고 있다.

그 뒤로 장재마을이 그림처럼 내려다 보이고 그 장재마을을 감싸고 우측 저 멀리 천완산에서 좌측의 뾰족봉인 194 암봉까지 병풍처럼 감싸고 둘러쳐져 있다.

저 산줄기를 타고 돌고 돌아 이제 마지막 봉우리인 망덕산으로 향하며 바라보는 이 산객의 가슴은 부풀어 올라 터질듯 커지고 있다.

 

다시 등로를 타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망덕산 오름길오 접어 드니 잘 가꿔진 묘지 한기가 보이고 그 묘를 돌아 진행하니 나즈막한 안부로 내려가는 도중에 앞으로 망덕산 정상이 빼꼼히 올려다 보인다.

그곳을 지나 다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타고 전진하니 두개의 바위가 놓여 마치 망덕산 오름길의 출입문 역활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그곳을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파란 그물망이 따라 붙고 한동안 그 그물망과 함께 오르다 보니 거대한 암봉이 등로 앞을 가로 막는다.

좌측으로 우회해 오르니 멋진 전망바위 구실을 하고 있는 바위로서 방금 전 지나온 마루금을 지나 2번 지방도로와 절개지를 따라 올라온 등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그곳에서 다시 천천히 오르니 두 갈래 등로가 있는데 순간적으로 정상 등로인 좌측 등로를 버리고 우측 등로를 타고 오르니 그곳에도 간간히 띠지들이 나풀거리고 계속 타고 오르니 중간 중간 전망바위가 나타나며 광양과 광양만이 한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다시 힘겨운 오르막 등로를 타고 땀방울을 흘리니 묘지가 보이고 좌측으로 올라오는 정상 등로와 만난다.

그 묘지를 지나자 마자 소나무에 망덕산 197.2봉이란 정상 이정표가 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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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을 지나 짧게 능선을 타고 전진하니 금새 호남정맥 마지막 봉우리인 망덕산 정상석이 서 있다.

이곳을 호남정맥의 시발점이란 글귀가 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끝나는 지점이란 말이 더 근사하고 맞다는 생각이다.

망덕산은 옛날부터 이 곳 정상에서 외적의 침입과 선박의 출입을 파수하는 장소로 망을 보던 곳이어서 망덕산이라 한다.
구전에 의하면 망덕산은 천자를 받드는 천자봉조형 명당자리가 있다하여 풍수들이 많이 찾는 산이였다.

아울러 호남정맥의 끝인 백운산의 최장맥이 망덕산 즉 백두대간으로 볼 때 땅 끝에 해당되는 산이기도 한 곳이다.

이곳은 옛날 왜적의 침입 때 망을 보았던 산으로 이 산에 오르면 한려수도의 여러 섬들이 한 눈에 보여 전망하기 좋아 망덕산이라 하였다는데 오늘은 잡목으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고 덕석바위즉 부석에 오르니 그 뛰어난 조망이 펼쳐져 있다.

 

망덕산 정상에서 한동안 사진도 찍고 남아 있는 탁배기 한사발 나눠 마신 후 내려오니 파평윤씨 쌍묘가 보이고 그곳에서도 남해바다와 광양만이 시원스레 조망된다.

계속해 내려가니 안부가 나타나고 정상 등로는 그 안부에서 우측으로 꺽어 내려가 야지만 그 앞에 보이는 부석을 안들리고 갈 수 없어 오르니 그동안 고생하며 걸어 진행해온 호남정맥의 마지막 선물이라도 주려는 듯 덕석바위 일명 부석에서의 조망이 너무 눈부시게 아름다워 한동안 머물며 많은 추억을 담아 본다.

50여분 머물렀던 부석에서의 시간은 오랫동안  이 산객의 가슴에 남아 잊혀지지 않을 고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게 부석이란 바위에 올라 많은 종주대들 사진을 담아 주고 멋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50여분이 지나 이제 서서히 배낭을 메고 마지막 내리막 등로를 향해 출발한다.

하지만 안부로 내려가 잠시 등로 우측의 부석정을 들렸다 가기로 하고 들리니 벌써 4명의 다른 등산객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양해를 구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부석정 앞에는 부석정이란 간판 현액이 보이고 그 안에는 부석정기가 적혀 있는데 읽어 보니 다음과 같다.  
백운산의 높은 정기 망덕산에 맺혀있고 괴암절벽 벼랑위에 부석정을 세웠도다 神仙山은 못미처도 명산이라 이름났네
진월들녘 기름진 땅 오곡백화 풍년이라 부석정에 올라앉아 남도山川 그려보니 남해안 고속도로 하동市는 지척이라
섬진강 팔십리에 굽어도는 맑은 물은 망덕 선창 돌고돌아 광양만에 끼어든다.

 

부석정은 조선시대(1770년경) 부호군을 역임하였던 이채환옹이 주변 경치에 매혹되어 반구정이란 정자를 세우고 송시열의 5대손인 송환기 의정부 우찬성이 반구정기를 지었는데 세월이 흘러 정자는 흔적이 없고 반구정기는 문헌으로만 전해져 오고 있다고 한다..                

 

이 부적정 정자는 2001년 IMF위기를 맞아 실직근로자의 생계지원을 위한 공공근로사업의 일환으로 정자를 복원하였으며 정자의 이름은 지역 원로들이 모여

곁에있는 흔들바위가 떠있는 모습을 하고있다 하여 부석이라 하고 이곳을 부석정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부석정 뒤를 돌아 바라보니 멋진 바위 하나가 보이고 그 뒤로는 장재와 중산마을의 황금 들판이 펼쳐져 있고 남해고속도로로 잘린 호남정맥 마루금이 끊길듯 이어지며 저 멀리 뾰족봉으로 우뚝한 억불봉 위로 이어지는 백운산까지 펼쳐져 있다.

그 황금 들판 좌측으로는 수어천이 흐르고 억불봉에서 광양으로 이어졌다 사라지는 산줄기가 선명하다.

그 아름다움에 다시 한동안 조망을 즐겨 보는 시간이다.

 

이제 부석정까지 구경을 하였으니 다시 안부로 뒤돌아 나와 정상 등로를 타고 망덕포구로 향한다.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진행하니 정상 200미터 이정표가 서 있고 잠시 더 내려가니 등로 좌측에 멋지게 쌓아 놓은 작은 돌탑이 이 산객의 눈길을 잡는다.

다시 조금 더 내려가니 등로 우측에 전마바위가 보이고 그 앞에는 조망 안내판이 서 있다.

들어 가 앞을 내려다 보며 그 이름을 불러 본다.

섬진강 우측에 배알도란 작은 섬이 떠 있고  정면으로 섬진대교가 보이며 섬진대교가 닿는 좌측의 하동땅엔 갈사리가 보이고 섬진대교 저 멀리에는 남해지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봄철 철쭉으로 유명한 망운산이 길게 누어 있다.

 

그곳 전망대에서 나와 다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약수터 170미터 및 정상까지 510미터란 이정표를 만나고 잠시 더 내려가니 오늘 산행 날머리인 망덕포구 일명 외망포구가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 많은 민가들도 보인다.

요즈음 이곳이 바로 가을 전어 축제 기간이라 너무나 많은 차령들이 밀려 각 음식점마다 별로 친절한 기색이 없는 듯 하다.

 

다시 조금 더 내려가니 등로 좌측에 호남정맥의 시발점 망덕산이란 안내판이 서 있고 등산 안내도가 보인다.

그곳에서 오늘 1대간 9정맥을 끝마치는 산우님의 사진 한장 담아 드리고 이 산객의 증명 사진도 한장 남겨 본다.

언제 다시 이곳으로 내려 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기약은 없지만 기회가 되면 한번쯤은 꼭 다시 한번 내려 와 이 망덕산이라도 오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드디어 오늘의 산행 들머리, 아니 호남정맥 산행 들머리인 망덕포구 일명 외망포구에 내려서는 순간이다.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 등로 우측으로 좁은 공터가 보이는 마지막 허름한 민가 담벼락에 한반도 최장맥 시발점 망덕산 등산로란 글귀와 함께 화살표 표시가 되어 있다.

저 진월부동산과 우측 붉은 색 건물 사이가 바로 오늘 산행을 마치고 도로로 내려온 마을 골목이다.

요즈음 가을 전어 축제 기간이라 생각보다 많은 차량들로 북적이고 있다.

 

마지막 2차선 도로를 지나 섬진강 변에 세워진 남해바다와의 합수점에 도착해 호남정맥 완주 플랭카드를 들고 대장정에 마침표를 담는 순간이다.

많은 추억과 고통 그리고 인연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렇게 또 하나의 정맥 산행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또 새롭게 시작할 마지막 정맥에 대한 출발선으오 뒤돌아 가는 마음은 시원하면서도 아쉬움이 교차하는 마음이다.

이곳에서 잠시 섬진강에 대한 자료를 찾아 올려 본다.

섬진강은 길이 225㎞, 유역면적 4,896㎢로서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팔공산(1,151m)의 북쪽 1,080m 지점 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정읍시와 임실군의 경계에 이르러 갈담저수지(일명 옥정호)를 이룬다.

순창군과 곡성군 그리고 구례군을 남동쪽으로 흐르며 하동군 금성면과 광양시 진월면 경계에서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이 강의 상류에서 갈담저수지까지를 오원천(烏院川), 곡성군 고달면과 오곡면 부근을 순자강(鶉子江)이라 부른다.

주요 지류로는 정읍시 산내면에서 합류되는 추령천을 비롯해 일중천(임실군 덕치면), 오수천(순창군 적성면), 심초천(순창군 적성면), 경천(순창군 유등면과 풍산면 경계), 옥과천(곡성군 옥과면), 요천(남원시 송동면), 수지천(남원시 송동면), 보성강(곡성군 죽곡면과 구례군 구례읍 경계), 황전천(구례군 문척면), 서시천(구례군 구례읍과 마산면 경계), 가리내(구례군 간전면), 화개천(하동군 화개면) 및 횡천강(하동군 하동읍) 등이 있다.

본래 이 강의 이름은 모래가 고와 두치강(豆恥江:또는 豆直江), 모래가람, 모래내, 다사강(多沙江), 대사강(帶沙江), 사천(沙川), 기문하 등으로 불렸으며 고려시대 1385년(우왕 11)경 섬진강 하구에 왜구가 침입하자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갔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 이때부터 '두꺼비 섬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했다고 한다.

 

산행 후 복잡한 외망포구 한켠에 종주대중 한명이  준비한 종산제 제물을 놓고 조촐한 종산제를 지낸 후 예약되어 있는 지리산 구곡산 등산로입구이며 삼광사가 근처에 있는 우천정으로 이동해 곰취로 싸 먹을 수 있는 보쌈 고기와 이슬이 한잔으로 자축한 후 산채 비빔밥 정식으로 허기를 달래 본다.

가족 식당과 펜션 그리고 샤워장까지 갖춘 휴양지로서 바로 앞으로는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이 바로 올려다 보이는 곳이기도 하였다.

 

식사와 이슬이 한잔을 마시고 축하연을 마친 후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 와 지리산 천왕봉을 배경으로 마지막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렇게 해 1년여를 중단 없이 달려온 호남정맥 산행도 마무리를 해 본다.

이제 공식적으로 1대간 9정맥 중 7정맥을 마치고 낙동정맥은 진행 중이므로 이제 하나 남은 낙남에 오르면 모두 마무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주부터 다음주까지 유럽 출장이 잡혀 있어 낙동정맥 한 구간과 낙남정맥 첫구간은 또 다시 홀로 올라야 할 구간으로 남겨지는 아쉬운 시간이 될 것 같다.

 

그동안 함께 걸어 오며 좋은 인연을 만들었던 모든 종주대 여러분들에게 감사한 마음 전하며 산을 좋아하는 산객들이니 언제 어디서든 만나면 다시 산행 이야기를 나누며 탁배기 한사발 마실 수 있기를 기다려 보는 시간이다.

 

오랫동안 졸필로 엮어 간 호남정맥 산행기를 읽어 주신 분들에게도 감사한 인사 드리며 대장정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