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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산행(완료)/호남정맥(완료)

호남정맥 제22구간 송치재에서 참샘이재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1.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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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순천시와 구례군 및 광양시의 호남정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0년 09월 03일과 4일 (무박 2일 일요 산행)

산행날씨 : 구름 끼고 맑았으나 무척 무더웠던 날씨

산행온도 : 영상 21도에서 영상 29도

산행인원B산악회 31명 따라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송치재(17번 구 지방도로)-연수원 주차장-병풍산 갈림 삼거리(도 표지석 및 이정표)-장철사거리-농암산(476.2봉, 삼각점)-376봉-

               장사굴재-477봉-죽정치-갈매봉(508.2봉)-502봉-마당재-636봉 헬기장-전망바위-갓거리봉(688봉)-708봉-쉰질바위(전망바위)-

               황천터널-마사치-헬기장-송전탑-여수지맥 분기봉-깃대봉(858.2봉)-880봉-833봉-헬기장 억새밭-월출재 임도-월출봉 갈림

               삼거리-월출봉 헬기장(768.1봉)-삼거리 복귀-임도-형제봉(844봉)-헬기장 억새밭-삼각점-형제봉(861봉)-철계단-새재(성불사

               사거리)-등주리봉(840봉, 성불사 갈림 삼거리)-안부사거리-도솔봉 헬기장(1123봉)-989봉 헬기장-참샘이재-청기암골-논실 버스

               정류장-한재 2.3 Km 이정표-주차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4.80 Km (정맥 22.50 Km와 접속구간 2.3 Km 참샘이재에서 논실마을 주차장까지) 

산행시간 더위로 쉬엄 쉬엄 사진 찍으며 11시간 50분

               (03시 15분에서 15시 05분까지)  

              

호남정맥이란 ???

우리나라 서남부 문화권을 나누는 의미 있는 경계선으로 산경표를 보면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이 분기하고 그 산줄기가 다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으로 나뉘며 호남정맥은 그 시작점이 웅치(현재 지명으로 곰치재)라 적혀 있는 총 산행거리 398.7 Km의 산줄기이지만 어느 산꾼들은 백두대간 영취산이 호남정맥의 시작점이라 하여 총 산행거리 462 Km의 산줄기라 하기도 한다.

호남정맥은 동쪽으로 섬진강을 서쪽으로는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을 가르고 있으며 주요한 산들을 살펴보면 3정맥 분기점인 주줄산(주화산)에서 남서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완주 만덕산(762m)을 지난 후 내장산(763m), 추월산(729m), 무등산(1,187m), 제암산(779m), 조계산(884m) 등 남도의 큰산을 지나 광양 백운산(1,218m)을 끝으로 섬진강과 남해바다가 만나는 곳 망덕산(197봉) 앞 바다로 흘러드는 산줄기를 말한다.

 

 

호남의 진산인 백운산과의 만남을 그리워하며 늦더위로 어렵게 걸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하여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이번 구간은 산행 들머리인 송치재의 고도가 280미터에서 시작해 최고봉인 백운산 도솔봉의 고도가 1123.4봉이나 되니 약 850미터나 오르게 되고 또한 등로가 갈지자로 돌고 돌아 올라야하고 올랐던 등로를 우측과 좌측으로 계속 조망하며 진행해야 하는 특이한 지형의 마루금을 타고 걸어가야 하는 구간이다.

특히나 9월 초가 되였는데 아직도 늦더위로 많은 식수와 음료수가 필요하고 또한 체력적인 문제도 대두되는 구간이다 보니 걱정이 되는데 개인적으로 3일전 바로 전구간인 접치에서 송치재까지 10시간 30여분간 산행을 하였기에 더욱 조심스런 산행이 되였다.

스스로 산행 페이스를 조절하며 완주에 목표를 두고 진행하지만 생각보다 몸의 컨디션이 좋아 아주 즐겁고 상쾌한 하루의 시간이 되였다.

 

3일전 올해 들어 가장 무더웠던 날, 땀 범벅이 되어 어렵게 내려왔던 송치재 들머리를 어둠속에 찾아 내리니 구 17번 지방도로 우측으로 주인이 몇번인가 바뀐 교회 연수원에서 붉은 불빛이 유령의 건물처럼 다가오고 하늘엔 생각보다 맑은 날씨에 오랫만에 별빛이 총총하다.

생각보다 밤바람이 살랑거리며 걱정했던 안개도 보이지 않으니 산행하기에는 참으로 좋은 시간인듯 하다.

이곳에서 지난번 송치재는 알아 봤기에 순천시 서면과 월등면의 경계인 이곳에서 월등면을 알아보는 것도 좋을듯 싶다. 

월등의 월자는 옛 장평마을(현 대평리 월평) 뒷산 옥녀봉에서 마을에 이르는 지세가 둥그런 달을 닮았다 하여 달월자를 따왔고 등자는 월용리에 있는 두류봉이 선인독서형으로 생겨 전방 1Km지점에 있는 둥그런 남두류봉을 책상삼아 산신이 독서를 할 때 두류봉 일부 능선지점에 있는 등잔 혈에 등불을 밝혀 독서를 한 형상이라 하여 등자를 붙여 월등이라 칭하였다고 전해 오며 월등의 월자를 인용해 월룡, 월평, 신월, 운월, 월림, 계월 등 월자를 붙인 마을이 많다고 전해지는 지역이다.

그곳 교회 건물 주차장 옆에 서 있는 송치재 해발 280미터란 이정석을 사진에 담으며 길고도 험한 또 한 구간 산행을 위해 출발하는 시간이 새벽 3시 15분을 넘기고 있다.

 

좌측에 교회 주차장을 두고 우측 끝자락에 나 있는 시멘트 임도를 타고 천천히 오르니 생각보다 시원하게 불어 오는 밤바람이 종주대의 온몸에 부드럽게 다가온다.

잠시 오르니 임도 우측으로 절개지가 나타나고 몇개의 띠지들이 우측 능선으로 붙어 있지만 어둠속에 특별히 올라야 할 의미도 없고 또한 잠시 후 다시 이 시멘트 임도와 만나는 삼거리로 내려 와야 하기에 그냥 시멘트 임도를 타고 오르기로 한다.

10여분 오르니 임도 우측에 메화동산 우측으로 160미터란 입간판 하나가 서 있고 다가 가 사진에 담으니 이곳이 바로 임도 삼거리이다.

 

다시 한동안 더 오르니 시멘트 임도는 이제 비포장 임도로 바뀌며 계속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오르게 되어 있고 등로 잡목이 등로 좌우측으로 무성한 지역을 지나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많은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다.

아마도 방금 전 올라 온 교회 연수원쪽 건물과 가로등에서 반짝이는 불빛으로 생각되는 지점을 지나 잠시 더 오르니 펴가가 된 듯한 민가 한채가 보이고 등로는 이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오르며 그 민가 뒷쪽으로 나 있다.

10여분 조금은 빡 쎄게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서 자주 봤던 도자가 새겨진 도경계석이 서 있고 그 옆에 병풍산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데 송치재에서 벌써 4.6 Km나 올랐다는 거리표시에 잠시 헷깔려 한다.

날이 밝았으면 잠시 다녀오고 싶은 마음 간절하겠지만 아기도 오둠속에 잠겨 있는 시간이기에 자료로 병풍산은 대신해 본다.

병풍산은 고도가 500미터의 산으로 순천에서 구례로 가는 송치재의 송치터널 북쪽에 위치하며 송치재를 가운데 두고 서쪽으로는 호남정맥 상 바랑산과 대칭으로 서 있는 산이기도 하다.

 

병풍산 삼거리에서 병풍산은 등로 좌측으로 가야하고 호남정맥 마루금은 우측으로 꺽여 내리막 길로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나즈막한 안부에 도착하고 등로는 다시 북쪽으로 완만하게 꺽여 오르막으로 이어져 570봉에 올랐다 남동쪽으로 크게 꺽여 다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완만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다 봉우리 같지도 않은 봉우리로 오르니 길고 넓은 공터같은 정상이 나타나고 종주대들이 앉아 식수를 마시며 쉬고 있다.

살펴보니 이곳이 농암산 정상으로 중앙에는 구례464란 삼각점이 박혀 있고 올라오는 등로 옆 나뭇가지에 정상 이정표가 달려 있다.

순천시 서면과 황전면의 경계에 솟아 있는 이 농암산은 그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설명을 볼 수 없으니 아쉬운 산으로 남겨진다.

 

농암산 정상에서 잠시 배낭 내려 놓고 얼음 식수를 마신 후 종주대들이 출발하는 뒤를 따라 천천히 출발한다.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어둠속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천천히 걷는다 해도 무척 빠른 발걸음으로 생각되는 시간이다.

벌써 가을이 시작도고 있는 듯 등로에는 많은 낙엽들이 떨어져 쌓이며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정겹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진행하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한 오르막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니 안개가 자욱히 밀려오고 등로 우측으로는 밤나무 과수원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곳이 장사굴재라 알고 있어 사진 몇장을 담아 보지만 안개로 인해 보이지 않아 조금 더 진행하니 편백나무 지대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440봉 직전 작은 쉼터를 담아 본다.

 

다시 계속 진행하니 안부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고 그곳을 타고 오르니 종주대들이 잠시 쉬어 간다.

지도를 살펴보니 440봉 넘어가는 곳이다.

다시 물 한모금 마신 후 종주대의 뒤를 따라 걸어 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오르막으로 이어지고 477봉 지나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여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50여미터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갑자기 등로는 급경사 내리막 마루금으로 변하며 그곳에는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등로 우측으로는 순천시에서 뿜어내는 불빛이 반짝이고 서서히 여명이 밝아 오는지 죽정치 지나 저 멀리 갈매봉과 가야 할 정맥 마루금이 밝아 오는 하늘의 먹구름속에 또 다른 멋진 풍경으로 다가 온다.

 

배낭속에 넣어 두웠던 무거운 캐논 커메라를 꺼내 죽청치 건너편 갈매봉과 마루금을 담다 보니 오느새 종주대들은 모두 떠나가고 보이지 않는 후미 몇명만 남은듯 하다.

조금은 빠르게 급경사 안전로프를 타고 내려오니 등로 우측으로 그 빛을 서서히 잃어가는 순천시의 야경이 아쉽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그렇게 내려가니 갑자기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죽정치임도정상이란 이정표가 서 있다.

죽청치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니 특별히 언급된 자료는 찾을 수 없고 다만 등로 좌측의 순천시 황전면 죽청리의 죽청마을 이름이 있어 그곳 고갯마루를 죽청리라 부르지 않았을까 추측만 해 볼 수 있는 고갯마루이다

죽청리는 1580년경에 함평 노씨에 의해 마을이 성립되었으며 마을 뒤쪽을 병풍같은 대나무가 두르고 호두산과 송실봉 사이에 흐르는 맑은 물을 상징하여 죽청이라 불렀다 하며 설촌 당시에 심은 정자나무 세그루가 아직도 마을을 수호하고 있다고 한다.

죽청치 우측 임도를 타고 내려가면 승주청소년수련원이 있어 이곳을 산행 들머리와 날머리로 이용하는 종주대도 있는 듯 보인다.

 

사진 몇장 남겨 보지만 역시 어둠속에 잘 보이지 않는 아쉬움을 남기고 짧은 가파른 절개지를 타고 그 임도를 가로 질러 능선으로 오른다.

오르면서 바라보니 등로 좌측으로 조금씩 여명이 밝아 오고 있지만 아직 사진으로 남기기에는 빛의 양이 역부족이다.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양쪽으로는 키 작은 관목들이 줄지어 열병하듯 자라고 있고 그 한가운데에 고속도로처럼 넓찍한 등로가 열려 있는 그런 풍경이다.

그렇게 15분여 오르니 갑자기 넓은 공터같은 봉우리가 나타나고 후미에서 오른 몇명의 종주대들이 잠시 쉬며 사진을 찍고 있는 갈매봉 정상이다.

이곳은 갈미봉이라고도 하고 어느 산객들은 이곳 우측에 별도 독립된 봉우리인 수리봉이라고도 하는 갈매봉 정상으로 몇기의 묘지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한쪽에 삼각점(구례468/1985 재설)이 설치되어 있다.

 

갈매봉에서도 어둠으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기에 잠시 물한모금 마시고 다시 출발하니 등로는 평이하게 이어져 있어 여유로운 산행이 되어 간다.

잡목들이 등로 주위에 자라고 있는 그곳을 통해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니 후미 그룹 몇명의 종주대들이 저 앞에서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하고 등로 우측 저 멀리에서는 계족산과 비봉산 줄기로 이어지는 여수지맥 마루금 위로 붉은 아침 일출이 시작되려는 듯 온 세상을 물들이고 있지만 두껍게 자리한 구름으로 인해 제대로 된 일출은 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모두 잠들어 있는 이 새벽에 산상에 올라 이 붉은 태양의 일부라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남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마음은 급한데 발길은 따라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시간의 연속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달리기를 하듯 앞에 보이는 무명봉을 향해 뛰어 오르지만 그 500봉 정상에 올라도 여전히 두꺼운 구름속에 세상으로 나오려는 햇살의 몸부림이 더 지독해지고 있는 순간이다.

마당치를 지나 우뚝 솟아 있는 636봉 헬기장까지 오르기에는 너무 시간이 촉박하고 또 그렇다고 이곳에서 마냥 기다리며 언제 떠 오를지도 모를 일출을 기다리는 것도 어려워 진퇴양난의 신세가 되였다.

그래도 그곳에서 바라 본 등로 좌측으로 순천의 황전과 구례쪽 골짜기에 하얀 운해가 들어차 있고 그 위로 솟아 오른 산그리메가 일출의 아쉬움을 달래주고 있다.

 

일출은 이제 포기하고 머리에 매달린 헤드렌턴을 배낭에 넣은 후 다시 500봉 넘어 계속 진행하니 철쭉나무 터널지대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하는 시간은 다시 어둠이 찾아들듯 그렇게 울창한 나무 터널이 만들어져 있다.

급하지 않게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어느새 철쭉 군락지는 사라지고 저 아래 많은 종주대들이 쉬고 있는 마당재가 나타나며 그곳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져 본다.

순천시 서면 청소리와 황전면 죽청리를 연결하는 고갯마루인 죽청리 역시 그 옛날 많은 민초들의 애환이 남겨져 있을 법한 고갯마루였겠지만 이제는 도로가 발달되어 오늘처럼 맥 잇기 산행을 즐기는 산꾼들이나 약초를 캐기 위해 오르는 동네 주민들의 발길만이 사라져 가는 고갯마루를 이용하는 듯 하다.

이정표에 갓걸리봉까지 0,7km, 수리봉까지 0.5km 그리고 등로 우측으로 청소리 2.0 Km란 거리표시가 되어 있다.

 

마당재에서 다시 배낭 챙겨 오르막 등로를 오르면서는 힘을 내 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636 헬기장까지 제법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빠르게 올라 일출을 기대해 보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10여분 빡쎄게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다 완만한 등로로 바뀌는 능선에 도착해 긴 함숨을 내쉬며 뒤돌아 보니 등로 좌측 뒤로 너무나 황홀한 운해와 끝없는 산그리메가 펼쳐져 있다.

다시 완만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금새 636봉 넓은 헬기장에 도착해 일망무제로 펼쳐진 아름다운 우리 산하를 조망해 본다.

먼저 남서쪽으로 840번 지방도로를 타고 송전탑고 줄을 따라 순천시가 이어져 있고 그 끝자락엔 벌써 남해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새로 생긴 남원 순천간 고속도로가 수많은 터널을 통과하며 또 다른 모습으로 그 풍경속에 담겨져 있기도 하다.

 

남동쪽으로는 여수지맥 마루금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그 넘어 순천과 광양에 산재되어 있는 거의 모든 산들이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고요한 아침 풍경에 산객의 마음을 살레이게 만든다.

말이 필요 없는 시간, 그저 바라만 보고 가슴에 담기만 해도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선두는 벌써 저 멀리 갓거리봉 오르막을 향해 오르고 있지만 후미도 한참이나 늦은 시간이기에 이곳에서 조금 더 멋진 조망을 즐기며 여유를 찾아 본다.

 

한참을 돌아보며 주위 조망을 즐긴 후 이제 앞으로 올라야 할 방향의 마루금을 담아 본다.

가까이에 갓거리봉 오름  암릉 등로에 설치된 계단이 보이고 그 능선을 타고 오르면 갓거리봉 정상이 나타난다.

그 좌측 능선을 타고 진행하면 지도상에는 시선바위라고 하지만 현지 이정표에는 쉰질바위라 칭한 멋진 전망대 바위가 있는 708봉도 뾰족하게 솟아 있다.

 

그렇게 636봉 헬기장에서 주위 조망을 즐긴 후 전진하니 금새 바위 구간이 나타나고 그 끝자락에 전망바위가 보인다.

그곳에 올라 종주대들 사진을 담아 드린 후 다시 주위 풍경을 담아 본다.

아침 일출은 일찍 올라 온 듯 하지만 구름속에 숨어 아직도 동녘 하늘만 붉게 물들이고 있을 뿐 그 햇살은 보이지 않는다.

그 아래 앞으로 올라야 할 백운산으로 이어진 마루금이 갈지자를 만들며 구비쳐 흐르고 있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첫사랑을 만나는 기분처럼 설레임으로 가득찬 시간이다.

 

이제 마지막 전망바위에서 올라야 할 갓거리봉 정상부를 바라보니 암릉구간에 설치된 계단을 타고 오르는 종주대의 작은 모습들도 눈에 들어 온다.

그 뒤 저 좌측 멀리 보이는 708봉 역시 아직도 그곳에 서서 종주대를 부르고 있다.

천천히 출발하려는데 종주대 한명이 찾아 와 순천시와 광양시 그리고 마루금에 관해 다른 의견을 표출하고 지도를 꺼내 지명 확을 하다보니 다시 제일 후미로 쳐져 진행하게 되였다.

 

전망바위에서 좌측 능선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잡목속으로 진행하니 금새 갓거리봉 오름 암릉 구간에 설치된 나무계단 앞에 서고 그 계단을 통해 오르니 지나 온 마루금 우측으로 환상의 풍경이 다시 펼쳐져 있다.

지난 구간 내려 온 바랑산이 사진 좌측 저 멀리 보이고 오늘 새벽에 오르기 시작한 송치재도 안개속에 보이며 방금 전 지나 온 마루금도 역시 아침 햇살을 받아 좌측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등로 우측으로는 순천의 황전과 구례 그리고 저 멀리 곡성의 산그리메가 끝도 없이 펼쳐진 골짜기 사이 마다 하얀 안개가 피어 올라 환상의 풍경으로 남겨지는 시간이다.

 

계단을 다 올라 뒤돌아 보니 그곳에 인간세상과는 다른 세상이 열려 있다.

그 이름 하나 둘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고 설레이는 마음이 높은 파도처럼 출렁이는 순간이다.

방금 전 지나 온 전망바위 옆 암봉과 636봉 헬기장 지나 갈매봉과 농암산이 우측으로 완만하게 꺽이며 줄지어 서 있고  송치재로 가라 앉았던 마루금은 다시 바랑산을 타고 올랐다 저 멀리 조계산을 지나 우측으로 크게 돌고 돌아 광주의 진산인 무등산과 안양산도 가물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모두들 갓거리봉에 앉아 아침식사를 즐기는 시간이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더 시간을 투자해 그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아 두는 시간이다.

 

계속 이어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담으며 진행하니 암봉 구간이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해 완만하게 이어지는 마루금을 지나니 금새 갓거리봉 정상에 도착한다.

선두와 중간 종주대가 모두 갓거리봉 정상에 모여 맛난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어 자리 하나 차지해 합석해 본다.

식사 후 살펴보니 중앙에 삼각점과 무인산불감시탑 그리고 초소가 있고 남쪽으로 절벽이 있는 쪽에 각거리봉이란 정상석이 서 있다.

688봉인 갓거리봉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지는 정상이지만 이곳 정상석을 갓거리봉으로 만들어 세웠기에 이 산객은 일단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

그 이름 유래를 찾아 보니 갓걸이봉에서 시작되어 갓거리봉, 갓고리봉 그리고 갓꼬리봉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 되는데 왜 이렇게 많은 이름들이 불리우게 되였는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 유래를 찾아 보니 옛날 어떤 사람이 이 산을 지나가는데 바람에 갓이 날려 산꼭대기에 걸렸다 하여 갓걸이봉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어 갓걸이 봉이란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까 생각되는 정상이기도 하다.

 

                         

20여분간 갓거리봉에서 맛난 아침 식사를 즐긴 후 단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리고는 곧바로 잡목이 우거진 능선을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잠니 내려갔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다 등로 좌측을 보니 그곳에 천국의 마을이 열려 있다.

순천의 황전마을이 바로 발 아래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저 멀리 지금까지 어렵게 진행해 온 강천산과 내장산쪽 마루금 옆으로 백아산도 가물거린다.

좌측 남쪽으로는 광주의 진산인 무등산과 안양산도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너무나 황홀한 조망에 잠시 발걸음이 멈춰진다.

 

앞쪽으로는 완만하게 이어지다 갑자기 뾰족봉으로 변하는 708봉이 완만한듯 가파르게 막아서고 있다.

그 708벙 넘어 저 멀리에는 아침 햇살을 받아 희미한 도솔봉과 백운산 마루금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구례쪽 밥봉이 우뚝하고 그 저 멀리에는 희미하지만 뚜렷한 지리연봉이 눈 앞으로 다가온다.

참으로 황홀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708봉 오름길에 자주 조망을 즐기고 풍경을 담다보니 산행 속도가 나질 않는다.

그래도 너무 늦게 진행하는 것은 아니기에 후미와의 간격을 생각하며 멋진 풍경이 나타날때마다 자꾸만 담아 본다.

등로 좌측으로 이제 남원 순천간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황전쪽 마을과 산그리메 저 멀리 강천산과 내장산쪽 호남정맥 마루금도 멋지게 조망되고 있다.

모두 이 산객의 두발로 걸어 지났던 산줄기이기에 남다른 눈길로 바라보며 잠시 고정시켜 본다.

 

이제 708봉 정상 가까이 진행하다 뒤돌아 보니 636봉 헬기장과 688봉 갓거리봉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그 멋진 산이란 한자를 만들어 내는 무한한 능력의 자연 앞에 경외로움을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방금 전 밟아 지나온 마루금이란 사실이 전혀 믿기지 않을만큼 아름답고 멋진 풍경과 시간들이다.

 

이제 특이한 볼 것도 이정표도 없는 708봉 오름길에 바위지대도 지나 정상을 넘으니 다시 철쭉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하며 몇번인가 인사를 나누다 보니 등로 좌측으로 황전면쪽 들판과 민가 그리고 그 뒤로 드넓게 펼쳐진 산그리메가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지나치지 못하고 이름 맞추기를 하다보니 계족산 지나 저 멀리 서부 지리산의 한 귀퉁이가 가깝게 다가와 있다.

참으로 수없이 올랐던 지리 서부 능선들을 이곳에서 이렇게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이제사 조금씩 실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평생의 추억으로 남을만한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708봉 넘어 천천히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 옆에 쉰질바위란 이정표가 보이고 지도를 살펴보니 도상에는 신선바위라 적혀 있는 곳이다.

잠시 등로 좌측으로 들어 가 보니 시원하게 펼쳐진 황전을 내려다 보며 우측 저 앞으로 지리산까지 조망되는 조망바위가 그곳에 보인다.

배낭 내려 놓고 다시 천천히 신선이 노닐만한 풍경으로 다가오는 황전과 주위 조망을 즐겨 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하지만 자꾸만 왜 쉰질바위란 이름이 붙었을까 생각해 보니 쉬는 질을 하는 바위 즉 휴식할 수 있는 바위란 뜻은 아닐까 억측을 해 본다.

 

우측 동쪽으로는 지금부터 올라야 할 황전터널과 미사재 지나 철탑이 보이고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마루금을 타고 깃대봉과 월출봉 그리고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시원하다.

또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등로에 뿌려야 저 능선을 넘어 도솔봉으로 향할 수 있을지 짐작도 않되는 풍경이다.

그래도 위대한 발걸음으로 한발 두발 걷다보면 저곳을 넘어 또 한 구간이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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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질바위에서 한동안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정상 등로로 나와 이제부터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미사재를 향해 내려가 본다.

멋진 철쭉나무 군락지가 나타나지만 왕사가 깔려있는 등로가 미끄러워 조심하며 내려가다 보니 온 몸에서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렇게 내려가니 840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황전터널을 지나 곧바로 몇명의 종주대가 쉬고 있는 미사재에 도착해 식수 한모금 마셔 본다.

순천 서면 청소리 심원마을과 황전면 덕림리 미초마을을 이어주는 미사고개는 조선시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갈 때 자주 이용되던 고개라 전해지는 곳이다.

미사치의 남쪽 방향은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을 끼고 있어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심원마을이 있는데 지리산 북부에 있는 심원마을과는 다른 마을이름이며 마을 아래쪽에는 신라시대 혜조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정혜사가 자리잡고 있다.

 

산행을 하다보면 사찰을 자주 만나고 그 사찰을 배우다 보면 혜조국사 담진 스님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이번 기회에 공부 한번 해 보기로 한다.

담진 스님은 고려시대 선종사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최근에 와서야 어느 정도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국사까지 지낸 인물이면서 비나 저술 등이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담진은 혜조국사라는 스님과 동일인으로 1107년(예종 2)에 왕사로 또한 1114년(예종 9)에 국사로 각각 책봉되었던 당대 최고의 고승이었다.

스님은 국사와 왕사를 지내면서 고려 초 이래로 침체에 빠졌던 선종을 중흥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이 때의 선종계 분위기가 지눌스님 이후에 크게 부흥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따라서 혜조국사 담진은 그 동안 공백기로 남아 있던 고려중기 선종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인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확한 생존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체로 11세기중반부터 12세기초반까지 생존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정혜사는 전국적으로 몇군데 존재하며 특히 이 산객의 고향인 충남 청양에도 있는 절이기에 관심이 있었던 곳인데 이곳 계족산 자락에도 있다니 새로운 사실을 접하게 된다.

정혜사는 신라 경덕왕 때 보조국사가 세웠다는 설과 혜조국사가 세웠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한 사실을 알 수는 없다.

오래된 절이란 뜻에서 고사로도 부르는데 대웅전은 조선시대 건물로 추정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가 굵직하게 치켜 올라간 것이 조선 전기의 수법을 보이고 있다.

또한 바깥쪽 벽을 널판지로 만든 점과 건물의 세부 처리 기법 역시 조선 전기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안쪽은 천장 속을 가리기 위해 우물 정자 모양의 우물천장으로 꾸몄으며 건물에 입힌 단청이 바래 있긴 하지만 조선 전기의 문양과 색채를 간직하고 있다.
오래된 건물이 가지는 격이 살아 있고 조선시대 목조 건축의 여러 양식을 찾아 볼 수 있어 중요한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갈길 바쁜 일정이기에 잘 준비된 벤취에도 앉아보지 못하고 미사치를 떠나 짧은 절개지를 타고 쓰러진 나무를 피해 어렵게 주능선으로 오른다.

잠시 진행하다 뒤돌아 보니 아직도 벤취에 앉아 여유를 부리는 종주대가 보이고 그 뒤로 방금전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어렵게 내려 온 708봉이 저 위로 올려다 보이는데 이곳은 이제 서서히 가을을 준비하는 듯 푸르름의 빛깔이 변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헬기장을 지나 계속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등로 옆에 송전탑 하나가 서 있는데 번호를 확인하려니 확인 할 방법이 없다.

그곳을 지나 계속 진행하다 560봉 쯤 되는 중간 봉우리에서 준비한 탁배기 한잔 나누며 쉬어가는데 연세 드신 고문님이 처음이라며 자꾸만 발에 쥐가 난다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소금 사탕을 건네 드리고 사형침으로 사혈을 해 검붉은 피를 조금 빼 낸 후 음료수와 준비한 과일로 목마름을달랜 후 다시 배낭 둘러메고 출발한다.

조금은 빠르게 출발 해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들어 보니 고문님이 함께 오르자 부탁하는 소리이다.

 

조금은 바쁘게 옮기던 발걸음의 속도를 조절 해 이제부터 고문님을 모시고 고문님 보폭에 맞춰 진행하기로 무언의 약속을 하고 나니 이제부터 일정한 속도로 진행하게 된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논실마을 내려올 때까지 두번 다시 쥐가 나는 일은 없었기에 무탈하게 잘 내려 올 수 있었다.

멋진 소나무와 철쭉나무를 보며 여유있게 오르니 깃대봉과 계족산 오름 이정표가 서 있고 685미터란 거리 표시도 보인다.

지도를 살펴보니 철탑 지난 갈림길 표시가 되어 있는 지점이지만 좌측 덕림리 반향으로는 등로 아님이란 표시가 있는 이정표이였다.

이정표를 지나 계속 오르니 작은 암릉 구간을 지나고 그곳에 서서 바라보는 지나온 호남정맥 마루금이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560봉과 철탑봉을 지나 미사치가 보이고 그 뒤로 708봉과 갓거리봉, 636 헬기봉 넘어 갈매봉까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그 넘어 조계산까지도 멋지게 드러나 있다. 

 

다시 뒤에서 따라 올라오고 계시는 고문님을 살피며 계속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우측 잡목 사이로 여수지맥의 계족산쪽 능선과 봉우리들이 보이고 저 멀리 순천시의 높은 건물들과 회색화된 도시의 풍경도 가끔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빡쎈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금새 3개면 경계 삼거리에 도착해 잠시 배낭 내려 놓고 쉬어 간다.

순천시의 서면과 황전면 그리고 광양시의 봉강면이 만나는 3개면 경계이정표가 서 있다.

이곳은 또한 우측 남쪽으로 여수지맥이 시작되는 곳으로 여수지맥은 계족산(720봉)를 거쳐 순천시내를 지나 여수반도의 남단까지 가는 지맥이다.

 

여수지맥이란 ???

여수지맥은 주화산에서 백운산으로 이어지던 호남정맥이 미사치를 지난 깃대봉 직전에서 가지를 쳐 동쪽 백운산쪽으로 2.2km 떨어진 3개면 경계봉(약 820봉, 순천시 서면과 황전면 그리고 광양시 봉강면)에서 호남정맥은 북으로 올라가고, 남으로 한줄기 가지를 쳐  서쪽으로는 순천 동천, 동쪽으로는 광양 서천으로 물길을 가르면서 남쪽으로 이어져 여수반도의 끝단인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 힛도마을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81 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땅끝기맥, 호미지맥, 고흥지맥, 변산지맥등과 같이 산이름이 아닌 지형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지맥의 명칭을 붙였다.

지맥의 길이로는 인근의 고흥지맥이 더 길으나 한반도에서 가장 길게 이어지는 산줄기라는데 큰 의미가 있겠다.

 즉 함경도끝 연두봉에서 남쪽끝 여수의 힛도마을까지는 도상거리 2394 km로 한반도에서 가장 긴 산줄기다.

즉 연두봉에서 131.8km 지나 온성기맥, 다시 조두봉분기점에서 264.8 km의 관북정맥을 지나 설령봉분기점에서 1434.2km의 백두대간을 걸어 영취산 분기점에서 또 다시 482.2km의 호남정맥을 걷다 미사봉 분기봉에서 81 km를 달려 여수지맥을 완주하면 그 끝자락인 힛도마을에서 남해바다로 그 맥을 다 하는데 총 길이가 약 2394km로서 대한민국 땅에서 가장 긴 마루금이란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분단된 상황에서 모두 걸을 수는 없고 실질적으로 갈수있는 남한땅 향로봉에서 힛도마을까지만 계산해도 도상거리는 1176.3 km가 된다.

언젠가는 걸어 볼 수 있는 산줄기로서 이곳 분기봉도 다시 들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 보는 시간이다.

 

한동안 삼거리 즉 여수지맥 분기봉에서 쉰 다음 나즈막한 안부로 내렸다가 깃대봉으로 향하는데 진행하는 도중 등로 우측 저 앞으로 뾰족하게 보이는 봉우리 하나가 눈길을 잡는다.

살펴보니 작년 봄 매화 축제가 한창이던 시절 저곳 억불봉으로 올라 백운산으로 돌아 내려가며 호남정맥 한구간을 완주했던 추억이 뒤살아 나는 억불봉에서 눈길이 멈춘다.

무던히도 고생하며 올랐던 억불봉, 하지만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 황홀한 조망과 풍경에 고생하며 올랐던 고통은 봄 눈 녹듯 사라졌던 추억속에 미소 짓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급하지 않게 천천히 오르니 다시 금새 깃대봉 정상에 도착해 넓은 정상 공터에서 잠시 쉬며 사진을 담아 본다.

제법 넓은 공터 한가운데에 삼각점(△하동24/1991재설)이 설치되어 있고 동쪽의 한쪽 구석에는 깃대봉 정상 이정표와 등산 안내도가 서 있다.

하지만 주위에 서 있는 키 큰 잡목들로 인해 조망은 별로 보이지 않아 조금은 아쉬움을 남긴다.

전국적으로 수많은 깃대봉 중 하나이지만 이곳은 깃대가 보이지 않는 이상한 깃대봉으로 기억되는 곳이기도 하다.

 

다시 깃대봉을 지나 이제부터는 큰 고도차이 없이 동주리봉까지 진행 할 것이다.

생각보다 좋은 날씨이지만 역시 늦더위가 문제이며 체력적으로 얼마나 잘 견뎌줄지가 관건인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소 그룹을 이뤄 진행하니 잡목이 잠시 사라진 우측 등로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호남정맥 마지막 큰 산인 백운산이 우뚝 솟아 있고 가까이에는 그곳 백운산으로 가기 위해 걸어 가야 할 나즈막한 마루금이 끝없이 이어지며 어서오라 손짓하고 있다.

동으로 갔다 북으로 가고 남으로 갔다 북으로 진행해야 하는 특이한 지형은 추월산을 두고 빙글 빙글 돌았던 구간과 비슷한 느낌으로 걸어 본다.

 

833봉으로 향하다 잡목 사이로 보이는 우측을 바라보니 바로 발 아래에 황전면의 덕림리와 두룡리 마을이 예쁘게 다가오고 그 뒤 천황봉 줄기에서는 채석장인지 아니면 공원묘지를 조성하는지 산 허리를 잘라먹고 있어 붉은 빛을 내며 흉칙하게 속살을 드러내 놓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아쉬운 풍경이지만 개인 사유지라면 어쩔 수 없는 현실에 가슴만 아파오는 시간이다.

그렇게 진행하니 그저 바라만 보고 걷기만 해도 기분 좋은 아름다운 등로가 열려 있다.

마치 천국이 있다면 그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인 듯...

 

이제 833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를 좌측에 두고 우측 우회 등로를 타고 한동안 진행하니 잡목이 우거진 지역을 지나 억새가 곱게 피어난 헬기장에 도착해 띠지와 등로를 확인하고 곧바로 우측으로 돌아 내려오니 넓은 비포장 임도와 이어져 있다.

한동안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며 지도와 정치시켜 살펴보니 약간의 알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마도 정상 등로는 833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를 넘어 월출재를 지나 월출봉으로 진행하는 것이고 그 이후 선답자들이 걸었던 등로는 833봉을 우측으로 우회 후 억새가 피어 있는 헬기장에서 우측이 아닌 등로가 보이지 않더라도 좌측 능선 안부로 오르면 그곳에 월출재가 있으리란 그런 생각이였다.

하지만 몇명의 종주대와 함께하고 특히나 다리에 쥐가 나 고생한 고문님이 계시니 그냥 임도를 타고 진행하다 우측 절개지를 타고 조금 더 진행하니 다시 임도와 만나 헬기장에서 올라오는 정상 등로를 만나 월출봉 갈림 삼거리로 곧장 오른다.

 

임도를 타고 진행하다 능선으로 갈아타고 다시 임도를 만나 좌측으로 계속 오르니 우측 월출봉 오르는 능선의 정상 등로를 만나 이곳에서 우측 능선의 가파른 오르막 경사를 타고 진행한다.

생각보다 높지는 않지만 이제부터 체력적인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하고 산행속도도 많이 줄어 든 상황이기에 걱정이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도 큰 어려움 없이 잘도 치고 올라가는 종주대를 바라보며 무탈한 완주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녀오지 못한 월출재를 찾아 보니 그곳 월출재는 순천시와 광양시 그리고 구례군이 만나는 지점으로 실제로는 정맥길에서 300m 정도 벗어나 있다.

진행 할때에는 극심한 피로도와 고통으로 가까운 곳도 다녀오기 꺼려지는 상태이지만 다녀 와 자료를 정리하다 보면 늘 후회하게 되니 다음부터는 무조건 모두 다녀 오기로 마음 먹어 본다.

 

그렇게 급경사 오르막 등로를 치고 오르니 봉우리 하나가 나타나는데 그곳에는 아무 표식도 없다.

이곳에서 지도를 살펴보니 종주대가 걸어 온 등로가 잘못 되였음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월출봉은 이곳에서 좌측에 존재하고 올라야 할 형제봉은 등로 우측에 있으니 월출재와 월출봉을 빼 먹고 약간의 알바를 한 다음 월출봉 갈림 삼거리봉으로 직접 오른 것이다.

나머지 종주대는 그곳에서 쉬고 있고 이 산객만 빈 몸으로 월출봉을 오르지만 역시나 정상에 삼각점 하나를 제외하고는 아무 표식도 없어 잠시 실망하고 뒤돌아 나온다.

768.1미터의 고도를 가진 월출봉은 달을 맞이한다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곳에 올라 본 현실은 전혀 달을 볼 수 있는 그런 봉우리가 아니였다.

아마도 오래 전 나무들이 크기 전에는 이 이름이 맞았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곳이 월출봉인지도 모를 그런 봉우리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다만 그 정상에 박혀 있는 삼각점(하동 429/1985재설) 하나에 마음의 위안을 삼아 보는 시간이다.

 

다시 월출봉 삼거리로 복귀해 나오니 아직도 많은 종주대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마음의 여유는 생겼지만 체력적인 부담이 서서히 밀려드는 시간이기에 걱정도 되지만 역시 종주대들이니 그저 믿어 보는 수 밖에...

이 산객도 얼음물로 타들어 가는 목을 달래며 먼저 출발하는 종주대 뒤를 따라 평이한 능선을 걸어 본다.

 

월출봉 삼거리 갈림길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우측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중간에 작은 돌탑 하나가 서 있고 주위에는 단도 세워져 있는 듯 하여 살펴보니 이곳 임도를 만들었던 공병부대의 도로개통 기념비를 세웠던 축대였는데 관리가 되지 않아 지나다니던 호남정맥 종주대들이 하나 둘 돌을 쌓아 제법 그럴듯한 돌탑이 된듯 하다.

수많은 불행한 사건속의 군부대였지만 이 나라 발전을 위해 수없이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간 젊은 목숨에 고개숙여 감사의 묵념을 올리는 시간이다.

그곳을 내려 오니 계속 따라 다니던 임도와 다시 만나고 좌측으로 잠시 진행하다 우측 능선으로 붙어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계속 이어간다.

 

짧은 절개지를 가파르게 타고 올라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일렬로 걸어 올라 간다.

처음 만나는 무명봉 직전에 앞서가던 종주대 한명이 잠시 서성이며 사진을 찍는데 살펴보니 두개의 나무가 한자리에 태어나 서로 자리 타툼을 벌이며 적자생존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제법 자라 나 누군가 한 나무가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 아닌 공존 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는 상황처럼 보여 다행이란 생각으로 이 산객도 한장 남겨 본다.

 

무명봉 정상에 오르니 이번에는 정상적으로 곧게 자라지 못하고 주위에서 자라는 것을 방해하는 줄기 식물의 올가미에 갇혀 보기에도 힘든 삶을 살다간 가지와 그 어려운 고통속에서도 튼튼하게 뿌리를 박고 자라나 한 세대를 풍미하고 있는 질긴 생명력에 고개를 숙여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자연은 새 생명력으로 태어나고 또 그 생명에 자양분을 주기 위해 사라져 가는 윤회를 하면서 지켜지고 있는 것이리라...

 

그 무명봉을 넘어 진행하니 이제까지 잘 보이지 않던 파란 산죽이 종주대의 가슴까지 자란 모습으로 등로를 덮고 있다.

조화롭게 살아가고 가꿔지는 자연의 힘에 그저 감탄사만 연발하는 보잘것 없는 종주대의 발걸음이다.

건강한 모습으로 후대 만대까지 이어지는 멋진 산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걷고 또 걸어가는 순간이다.

 

그렇게 자연과 하나되어 무심으로 걷다보니 다시 나즈막한 봉우리 하나에 도착하고 잠시 둘러보니 나뭇가지 사이에 누군가 형제봉 844봉이란 이정표를 매달아 놓았다.

지도를 꺼내 살펴보니 지도상 나타나 있는 844봉인데 이곳에도 형제봉이란 코팅지가 붙어 있어 돌아 와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이 설명이 되어 있다.

844봉은 형제봉 중에서 아우봉이라 불리우는 봉우리로서 전남 구례군 간전면 금산리와 광양시 봉강면의 경계에 있는 형제봉은 두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병립한다고 하여 형제봉이라고 부르는데 첫번째 만나는 이곳이 아우 형제봉이란 설명이다.

이것이 맞는지 틀린지를 떠나 봉우리마다 그 의미를 부여하고 지키려는 노력이 가상하다는 생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제대로 된 고증을 거쳐 이름을 붙였으면 하는 바램 또한 간절한 시간이다.

 

아우형제봉이라 불리우는 844봉을 지나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앞으로 시원한 조망이 펼쳐지고 이제부터 올라야 할 진짜 형제봉인 861봉과 840봉인 동주리봉 넘어 좌측으로 돌아 올라가야 하는 도솔봉이 뾰족하게 솟아 있다.

보기에는 가깝게 보이지만 이제 체력적인 문제도 있고 또한 하루 중 가장 무더운 시간에 올라야 하기에 약간의 부담감도 다가오는 시간이다.

그래도 등로에 피어있는 억새꽃을 바라보며 곧 무더운 여름이 사라지고 풍성한 결실의 계절인 가을을 지나면 오늘 이 무더위가 그리워질 날이 있으리란 희망으로 걸어 내려가 본다.

 

그렇게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에도 역시 가을을 알리는 억새밭이 조성되어 갈색의 억새꽃이 하늘거리고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그곳을 통과해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오르며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전 내려온 아우형제봉에서 이곳 억새밭까지의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온다.

꾸미지 않아도 가슴속 깊이 오래 간직될 많은 추억을 담아 주는 호남정맥 마루금이다.

 

다시 잡목 숲으로 조망이 전혀 없는 등로를 타고 한동안 진행하니 갑자기 평범한 등로에 삼각점 하나가 박혀 있다.

왜 이런 등로 한가운데에 이런 삼각점이 박혀 있을까 궁금해 자세히 살펴보니 그 삼각점은 이제 하동이란 지역명이 들어 가 있다.

즉 삼각점 (하동 △426)이란 표식이 들어 있다.

기나긴 순천땅을 돌고 돌아 이별을 고하고 이제 하동땅으로 들오 온 모양이다.

잠시 더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광양 봉강면 성불계곡을 타고 내려가며 형제의병장군 사당과 묘가 있는 신룡리와 조령리가 그림처럼 내려다 보인다.

형제의병장군에 관한 자료를 광양시지에서 찾아 보니 강희보(형)와 강희열(동생)은 1560년 경에 봉강면 신촌마을에서 강천상(진주강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강희보는 광양에서 100여명의 의병을 모아서 그때 당시 영호남을 잇는 군사적 요충지인 단성(지금의 경남 산청)에서 적과 싸우고 있던 백부 강인상을 구원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달려 갔다.
무과에 급제한 동생 강희열은 그때에 역시 영호남의 군사요충지인 구례군 토지면의 석주관을 지키던 중에 휘하 군사를 이끌고 단성으로 달려가 백부를 구원 하였으며 싸움이 끝나자 다시금 돌아와 석주관을 수비하였다.

그 후 진주성의 위급한 상황을 전해들은 강희보, 강희열은 휘하 장수들을 이끌고 김천일 장군의 지휘아래 들어와 싸우다 593년 6월 27일(강희보 전사)과 29일(강희열 전사) 각각 장렬히 전사 하였다.

뒷날 조정에서는 희보,희열 형제를 진주 창열사에 배향하였고, 영조 40년에 강희보에게는 형조좌랑(정6품), 강희열에게는 병조참의 (정3품)가 추증되었다. 1970년에는 강씨문중과 광양의 유지들이 [강희보, 강희열 형제장군 숭모회]를 창립하여 봉강면 신룡리에 묘소와 묘비를 보수하였고 사당을 건립하였으며, '98년 동재, 서재 삼눈등을 신축하고 사당과 관리사를 이축하여 규모를 갖추었다.

그렇게 멋진 조망을 구경하며 진행하니 드디어 진짜 형제봉에 도착해 정상에 서 있는 이정표와 정상석을 담아 본다.

전국에 수많은 이름을 갖고 있는 형제봉과 성제봉(성제봉은 경상도 발음의 형제봉이라 한다)중 하나인 이곳 광양 백운산의 형제봉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이 형제봉 아래 작은 봉우리가 또 하나 있지만 그것보다는 방금 전 지난 844봉의; 아우 형제봉과 쌍을 이뤄 두개의 봉우리가 형제처럼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생각되는 곳이다.

이곳 정상에서 바라 보는 조망 역시 일망무제 거칠 것 없는 풍경이다.

 

형제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많은 사진을 담은 후 출발하기에 앞서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한번 이제부터 올라야 할 능선을 담아 본다.

바로 앞에 무명봉 하나가 보이고 다시 부드러운 듯 이어지던 마루금은 중간의 등주리봉을 지나 내려갔다 가파르게 오름길로 시작되어 도솔봉으로 이어지고 있다.

참으로 멋진 조망이지만 저 고지를 위해 또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등로에 흘려야 하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이다.

 

뜨거운 태양열로 인해 배낭 둘러메고 다시 진행하니 금새 철계단 하나가 놓여 있고 그곳을 지나 오르니 좁은 등로에 종주대들이 앉아 잠시 과일로 목마름을 달래고 있다.

그냥 지나쳐 무명봉에 오르니 지나 온 철 계단과 형제봉 그리고 아우형제봉을 지나 월출봉을 넘어 좌측으로 흐르며 지나온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오늘 걸어 온 등로가 확연히 드러나느데 갈지자 마루금이 그려진다.

 

무명봉에서 내려 오기전 다시 등주리봉 지나 도솔봉으로 이어지는 멋진 마루금을 담아 본다.

몇번 올랐지만 늘 남쪽에서 올랐던 기억들이라 이고에서 오르는 능선은 어딘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진다.

비오듯 흘러 내리는 땀방울이 온 몸을 타고 등로를 적시며 맥 잇기 산행의 고통과 어려움을 온 몸에 전해 준다.

이제부터 조금씩 등산객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역시 광양의 백운산은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산이 분명해 보인다.

 

다시 뜨거운 햇살을 피해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저 아래 안부가 보이고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내려가 살펴보니 등로 우측으로 성불사 하산 갈림 안부이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지도상 새재이며 그 유명한 성물사로 내려 갈 수 있는 하산로가 있는 곳이였다.

성불사는 백운산 도솔봉 아래 위치한 전남지역 유일한 용화종파 사찰로서 원래 성불사는 천년 전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여 40여 개의 암자를 간직했던 거대 사찰이 였다고 전해지나 소실되어 터만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의 사찰은 30여년전 무현스님이 중건하였고 큰 법당인 대자보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극락전과 관음전이 있고 양 옆에서 요사체가 자리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소실이자 문화재의 유실이 아닐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다시 새재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고 많은 땀방울을 흘려 본다.

잡목들이 등로 주위를 둘러쳐 있고 그 밑에는 푸른 잡풀들이 부드럽게 등로를 닦아 놓고 있다.

잠시 더 오르니 다시 철계단 하나가 더 나타나고 그곳을 넘어 오르니 도솔봉까지 2.2 Km 가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840봉인 등주리봉에 도착해 잠시 배낭 벗어 놓고 목마름을 달래 본다.

등로 우측으로는 이곳에서도 새재와 마찬가지로 성불사로 내려 갈 수 있는 하산 등로가 있는 곳이다.

이제부터 등로에는 도솔봉과 성불사 거리표시가 잘 되어 있는 이정표가 서 있기에 큰 어려움 없이 도솔봉에 갈 수 있을 것이다.

 

벗어 놓은 배낭을 둘러 메고 좌측으로 꺽어 등주리봉을 출발하니 평이한 등로가 계속 이어져 있고 다시 나즈막한 봉우리 하나를 넘으니 바위지대와 고사목 지대를 지난다.

그리고는 다시 도솔봉까지 1.9 Km남았다는 거리 이정표가 반겨 준다.

아마도 좌측으로 속초봉 가는 등로가 열려 있는 곳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다시 거칠어지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계속 오르막을 치고 올라 본다.

가끔 등로 우측으로 광양만 바닷가가 눈에 들어 오고 광양시도 조금씩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몇번인가 들렸던 곳인데 이렇게 또 맥 산행을 하면서 들리니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시간이다.

 

계속 쉬지 않고 진행하다 도솔봉 0.7 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자 마자 허기가 지기 시작하여 함께 진행하던 공작산 친구와 둘이 잡풀에 주저 앉아 남아 있는 커피와 빵으로 허기를 달래고 나니 그나마 살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제 허기도 면했으니 힘을 내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니 억새가 자라고 있는 헬기장을 지난다.

도솔봉 0.4 Km남았다는 거리 표시 이정표 바로 직전의 헬기장이다.

 

그렇게 힘들게 오르니 드디어 도솔봉 정상에 도착해 반갑게 해후를 해 본다.

왜 도솔봉일까 ???

소백산의 한 봉우리를 차지하고 있는 도솔봉도 불교의 미륵불과 연관이 있음을 백두대간 산행을 통해 배웠는데 이곳 광양의 백운산 자락의 한 봉우리도 바로 도솔봉이고 이 산객이 그 정상에 서 있는 것이다.

 

도솔천에 관한 내용을 사전을 통해 알아 보니 다음과 같다.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은 수미산의 꼭대기 위에 있는데 도솔은 만족시킨다는 뜻으로 한자로는 지족천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이곳에 사는 사람(천인)들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 욕심(재물욕, 명예욕, 식욕, 수면욕, 색욕)을 마음껏 누리며 만족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이 도솔천은 외원궁과 내원궁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외원궁은 천인들이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가는 곳이고 내원궁은 미륵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지상에 내려올 때를 기다리며 깊이 생각에 잠겨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 도솔천에는 미륵보살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모든 부처와 보살이 이 도솔천에 머물면서 성불한다고 한다.
흔히 우리가 얘기하는 윤회 사상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곳과 저승이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했는데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겉으로는 이러한 생각들을 부정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러한 저승관과 내세관을 믿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러한 도솔천은 칠보로 장식되어 아름다운 빛이 넘치며 그 속에서 천녀들이 갖가지 악기를 뜯으면서 노래부르고 춤추며 날아다닌다고 한다.

천녀들은 감로수를 먹고 살기 때문에 4천 살까지 사는데, 도솔천의 하루는 인간세상의 400년에 해당한다.

지나 온 호남정맥 마루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등주리봉과 형제봉 지나 우측 저 멀리 월출봉으로 이어가던 마루금은 이제 산줄기를 바꿔 한켭 더 멀리 깃대봉과 갓거리봉으로 이어지며 좌측으로 흐르며 오늘 산행을 시작한 송치재로 이어지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마루금이 탄성이 절로 나오고 그 멀리 희미한 지나온 마루금이 고생했노라 위로를 해 주는 듯 싶다.

조계산과 무등산 그리고 내장산과 저 멀리 덕유산까지도 가물거리지만 제한된 사진 앵글에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동쪽으로는 따리봉 지나 백운산 정상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산자락에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그림자를 만들어 더욱 묘한 풍경으로 다가오고 있다.

다음 구간 저곳으로 올라 붉은 일출을 가슴에 담고 매봉과 갈미봉을 지나 쫒비산을 거치면 토끼재로 내려가 마지막 구간만 남길 것이다.

두어번 올랐던 곳이기에 이제 마음도 편안하게 즐기는 일만 남겨 놓은 듯 뿌듯하다.

온 몸에선 멈출줄 모르는 땀방울이 흘러 내리고 있지만 그 아래 곱게 피어 있는 억새가 계절의 흐름을 알려주고 있는 듯 하다.

 

성불계곡과 동곡계곡을 가르는 산줄기가 광양을 지나 남해 바다로 향하면서 그 맥이 다하는 아쉬움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산이 높은 만큼 골도 깊은 백운산은 다압면 금천리로 흐르는 금천계곡과 진상면 수어저수지로 흐르는 어치계곡, 도솔봉 남쪽 봉강면으르 흐르는 성불계곡, 옥룡면의 젖줄이 라고 할 수 있는 동곡계곡 등 백운산 4대 계곡을 품고 있다.
그 중 동곡계곡의 계류는 광양읍 동천을 거쳐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백운산의 계곡 중 가장 큰 계곡으로 교통이 편리하고 폭이 넓어 여름 휴가철이면 가족 단위 피서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동곡계곡은 백운산 정상과 정상 서편 또아리봉 사이 한재에서 발원하며 답곡십리라고도 일컫는다.
실제 길이가 10km에 이르는 동곡계곡에는 학사대, 용소, 장수바위, 선유대 등의 비경이 있어 가을철이면 울긋불긋한 단풍과 어울려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계절에 맞게 오르면 더 좋겠지만 이렇게 사계절 언제 올라도 좋은 곳이 바로 이곳 백운산 도솔봉이다.

 

열심히 사진에 풍경을 담고 있는 이 산객을 친구님이 잘 담아 주웠다.

마음에 쏙 드는 그런 사진이다.

오랫만에 마음껏 사진 한장 올려 본다.

광양만과 순천만 그리고 광양쪽 풍경과 조망을 담고 있는 이 산객을 억새와 어울리게 잘 담아 준 친구에게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해 본다.

 

떠나기 전 아쉬움에 지나온 마루금을 다시 한번 담아 본다.

보고 또 봐도 역시 아름답고 황홀한 우리 산하이다.

또한 한발 두발 걸어 50여리길을 이렇게 달려 와 뒤돌아 보며 감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는 시간이다.

저 끝자락에 희미하게 덕유산 자락도 가물거린다.

 

이제 정상마루에 올라 다시 한번 지리 주 능선을 담아 본다.

좌측의 만복대와 반야봉 정상은 안개인지 구름이 가려 있고 주 능선을 타고 진행하다 우측 천왕봉에 이르니 다시 안개가 정상을 가리며 직접 올라오라 이야기 하는 듯 하다.

겨울 추운날 올라 바라 보던 풍경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강렬하게 마음속에 각인되는 풍경이다.

 

이제 철계단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 시간이다.

동료 산꾼들과 남아 있는 간식도 모두 털었으니 이제 조심하며 내려가는 일만 남아 있다.

더위에 고생을 하였는데 자연을 보면 어김없이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며 또 한 계절의 바뀜을 준비하고 있다.

평온한 산줄기를 타고 내려갔던 마루금은 다시 따리봉으로 오르며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고 그 넘어 암봉으로 이뤄진 백운산으로 달려가며 고통의 신음소리를 토해해는듯 하다.

 

그렇게 잠시 내려가니 자연의 거대한 분재 소나무 한그루가 산객의 발길을 붙잡으며 쉬었다 가라 한다.

산우님 사진 한장 담아 드리고 다시 몇장 더 담아 본다.

바위틈에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예쁜 모습으로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참을 더 내려가니 바위봉 지나 철 계단이 보이고 그곳을 내려가니 우측으로 논실내려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하지만 오늘 이 종주대는 이곳이 아닌 참샘이재까지 가 그곳에서 논실마을로 내려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맥 잇기 산행인지 아닌지가 판가름 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약속했으면 약속한 지점까지 가야하고 또 그 다음 구간에 내려간 그곳에서 다시 올라 이어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내려가니 조금은 거칠은 잡목들이 등로를 가로막고 방해하고 있지만 어려운 구간은 아니다.

잡목을 헤치고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봉우리 하나를 오르니 그곳에 억새가 가득 피어 있는 헬기장에 도착하고 뒤돌아 보며 내려온 도솔봉을 담아 본다.

그곳에 있을 땐 몰랐는데 제법 가파른 경사면에 멀리만 보이는 도솔봉 정상이다.

 

다시 억새로 가득찬 헬기장을 지나 내려가니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니 도솔봉에서 1.1 Km 내려왔고 따리봉까지는 0.9 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그곳을 지나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안부에 도착하고 살펴보니 이곳이 오늘 맥 잇기 산행의 종착지인 참샘이재 고갯마루이다.

고도 941미터인 참샘이재는 전남 구례군 간전면 금산리와 광양시 옥룡면 답곡리 논실마을 이어주는 고개로서 이 지역 사람들은 친감재라고도 부른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한쪽에는 이정표가 서 있고 논실까지는 2.3 Km 남았다는 이정표의 거리 표시가 보인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우측 논실마을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가파른 경사면을 조심하며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는 계속해서 방금 전 내려온 도솔봉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고 논실가는 등로는 생각보다 가파른 내리막 경사로에 바위 너덜길이라 생각보다 더 어려운 등로 조건을 만들고 있다.

그래도 이런이야기 저런이야기 나누다 보니 논실까지 1.7 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고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이곳 이정표는 큰 비가 내려 이곳이 넘치면 어떻게 하라고 이곳에 설치를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유발한 것이다.

 

어렵게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오니 등로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도로 주위에는 잣나무가 줄지어 식재된 모습이 들어 온다.

그렇게 한동안 이야기 나누며 내려가니 드디어 논실마을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고 조금 더 내려가 버스를 만난다.

그저 평범하게 보이는 이곳 논실마을도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과 군, 경의 치열한 교전으로 3000여명이 사망한 백운산 초입에 있다는 백운산희생자정령비를 알고는 기겁을 할 정도로 한국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 있음에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다.

다음 구간 오름길에 잠시나마 찾아 묵념이라도 올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그곳에서 우측 병암계곡으로 들어가 시원한 계곡물에 흘린 땀방울 닦아내고 차량을 이용해 그곳 전통 음식조리가로 부터 맛난 음식을 대접 받으니 호사도 그런 호사가 없다.

특히나 종주대 중 한분이 점심을 사신다 하니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다.

이렇게 멀고도 길었던 호남정맥도 마지막 두 구간만 남기고 있다.

 

맛 난 식사를 즐기고 음식점 앞에서 솟아지는 빗속에 장독대며 그 위쪽에 자리잡은 백운산자연휴양림 올라가는 길의 풍경을 담아 본다.

아이들 손잡고 조용히 쉬었다 가기에는 최고의 장소가 아닐까 생각해 본 시간이다.

이렇게 또 한 구간 잘 마무리하고 올라오는 버스에서 단잠에 취해 있다보니 어느새 서울로 복귀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 간다.

 

다음 구간은 두어번 종주를 했던 구간이니 조금은 수월한 마음으로 그리고 계절과 날씨도 많이 변해 선선한 기분으로 즐겁게 완주 할 수 있기를 빌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