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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산행(완료)/호남정맥(완료)

호남정맥 제20차 석거리재에서 접치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1.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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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순천시의 호남정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0년 08월 06일과 07일 (토요 무박 산행)

산행날씨 : 태풍으로 인해 강한 바람과 짙은 구름이 낀 산행하기 좋았던 날씨

산행온도 : 영상 19도에서 영상 27도

산행인원B산악회 35명 따라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석거리재(27번 지방도로)-530봉-백이산(584봉)-500봉-임도-두번째 임도-빈계재(58번 지방도로)-편백나무지대-등로 좌측에 철조망-519봉-물봉굴재-511.2봉-철쭉군락지-첫번째 임도-두번째 임도-고동치-억새군락지-고동산(709봉, KT 이동통신탑과 산불감시초소)-고동산유래비 및 헬기장-헬기장-조계산 장군봉 6.0 Km 이정표-696봉(송전탑)-700.8봉-산불감시초소봉-장안치(임도)-큰굴목재(선암굴목재)-663봉-작은굴목재-배바위-조계산 장군봉(887봉)-접치 갈림 삼거리-산죽지대-542봉-송전탑-송전탑 2-접치(22번 지방도로 및 호남고속국도)-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7.80 Km 

산행시간 몸살감기로 강한 바람속에서도 08시간 15분

             (03시 35분에서 11시 50분까지)             

 

호남정맥이란 ???

우리나라 서남부 문화권을 나누는 의미 있는 경계선으로 산경표를 보면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이 분기하고 그 산줄기가 다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으로 나뉘며 호남정맥은 그 시작점이 웅치(현재 지명으로 곰치재)라 적혀 있는 총 산행거리 398.7 Km의 산줄기이지만 어느 산꾼들은 백두대간 영취산이 호남정맥의 시작점이라 하여 총 산행거리 462 Km의 산줄기라 하기도 한다.호남정맥은 동쪽으로 섬진강을 서쪽으로는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을 가르고 있으며 주요한 산들을 살펴보면 3정맥 분기점인 주줄산(주화산)에서 남서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완주 만덕산(762m)을 지난 후 내장산(763m), 추월산(729m), 무등산(1,187m), 제암산(779m), 조계산(884m) 등 남도의 큰산을 지나 광양 백운산(1,218m)을 끝으로 섬진강과 남해바다가 만나는 곳 망덕산(197봉) 앞 바다로 흘러드는 산줄기를 말한다.

 

 

몸살감기로 어려웠지만 태풍 영향으로 강한 바람속에 무탈한 완주를 해낸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하여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사람들이 만나 살아가는 사회이다 보니 많은 사연과 추억을 남기는 세상이지만 역시 믿음이란 두 글자만큼 그 사회를 대변해 주는 것은 없을듯 하다.

믿음을 믿음으로 만나지 못하는 세상에서 이슬이로 친구를 하면서 2주간 지내다 보니 몸에 탈이 생기면서 호남정맥 제20구간을 오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시간, 그래도 그 들머리까지는 가기로 하고 그곳에서도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하루쯤 버스에서 자기로 하고 떠나는 시간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인 시간이다.

 

이번 구간에는 뜻하지 않는 산친구 한명이 합류해 한결 마음이 편안하지만 역시 몸이 문제이다.

지난 구간 역사의 비극을 대하 소설로 풀어 낸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고향인 보성을 떠나 생태도시로 유명한 순천으로 들어가는 구간이다.  

개인적으로 여러번 들렸기에 많이 안다고 생각했던 순천에서 또 다른 모습과 풍경으로 다가 온 그곳 남도의 숨결을 느꼈기에 몸은 힘들었지만 머리만은 시원하게 깨어난 그런 시간으로 기억해 본다. 

 

 

몸살감기로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뚱아리를 이끌고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식은 땀방울을 흘리며 어렵게 도착한 매바위 앞에서 잠시 로프를 타고 오를까 말까를 고민도 했지만 역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정상에 올라 지나온 마루금을 뒤돌아 보는 순간, 그동안의 고통과 어려움은 모두 사라지고 그저 가슴속에서 터져 울리는 환희만 온 산하에 퍼지고 있다.

그 마루금 좌측인 서쪽으로 천년고찰인 송광사가 조용히 앉아 있고 작은 마을을 지나 주암호가 선명하며 그 뒤 저 멀리 이 산객이 지나 온 호남정맥 마루금이 다시 병풍처럼 둘러쳐 산객의 심금을 울리는 시간이다.

 

 

무이파 태풍이 다시 올라 온다는 일기예보에 하루종일 기상청을 들락날락해 보지만 비가 내리던 내리지 않던 어짜피 떠나는 길이기에 산행중이라도 비가 내리지 않기를 바라며 좋지 않은 몸으로 잠에 취하다 보니 어느덧 낙성리와 화전리를 이어주는 옛날 지도엔 27번이지만 요즈음 지도에는 15번 2차선 지방도로라 표기된 도로 옆 석가리재 휴게소 앞에 내려 지난 구간 만났던 이정석과 산행 들머리 이정표를 담는 시간이 새벽 3시 30여분이다.

간단히 산행 준비 후 처음 보는 국제와이즈멘에서 세운 커다란 빗돌을 담고 개인적인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후 새벽 3시 35분 가파른 된비알 오르막 등로를 타고 긴 여정을 시작하는 순간이다.

 

 

잠시 오르니 묘지 하나가 보이고 곧이어 무명봉 정상에 오르는가 싶더니 다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 안부를 지난다.

어둠속에서도 벌목지임을 알리는 지대를 지나 다시 안부 사거리를 지나는데 지도상에는 아무 표식이 없지만 고도표에는 영내사거리라 표기된 곳이란 생각이다.

다시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많은 땀방울을 흘리니 어둠속에서도 억새밭이 장관인 백이산 전위봉인 530봉에 올라 긴 호흡 한번 가다듬은 후 다시 코가 등로에 닿을만큼 가파른 오르막 마루금을 타고 오르니 4시 40여분에 첫번째 봉우리인 백이산에 닿는다.

이 백이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로 우측으로 채석장이 있어 산 하나가 잘려 나가고 있는 현장이 있지만 어둠속에 보이지 않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으로 오른 안타까운 시간이기도 하였다.

 

낙안읍성에 대해 알아 본다

삼한시대 마한, 백제시대 파지성, 고려시대엔 낙안군이였으며, 조선시대의 성과 동헌, 객사, 임경업 군수 비, 장터, 초가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성과 마을이 함께 국내 최초로 사적 제302호로 지정되었다.

지금도 성안에는 108세대가 실제 생활하고 있는 살아 숨쉬는 민속고유의 전통마을로서 민속 학술자료는 물론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민박도 가능하며 가까운곳에 있는 용산봉에 올라 내려다 보는 S자형 순천만 갈대밭이 일품인 곳이기도 하다.

 

 

 

백이산은 순천시 외서면과 낙안면 그리고 봉성군 벌교읍을 경계로 서 있는 584봉의 산으로서 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전국에 세개정도 있는 백이산 중에 유독 이곳 순천에 있는 백이산에 관한 자료만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많은 아쉬움을 남긴 산이기도 하다.

다만 백이와 숙제란 상나라 말기의 두 형제에서 유래한 한임금을 섬긴다는 유래에서 기인한 산이름은 아닐까 상상해 보지만 그저 상상일 뿐이다.

정상에 서니 순천 낙안쪽 불빛들이 넓은 들판에 듬성듬성 빛나고 특히 어둠속에서도 낙안읍성민속마을에서 뿜어내는 불빛이 더욱 멋지게 다가오는 조망처이지만 불빛 이외에는 모두 숨어 버린 시간이 야속하기도 하다.

무이파 태풍으로 인해 강한 바람이 불어 생각보다 좋은 산행 조건이지만 이 산객은 몸이 좋지 않아 한기를 느끼니 참으로 안타까운 시간이기도 하였다.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넓은 초원인지 아니면 억새밭을 타고 내려오니 두번의 비포장 임도를 만나는데 그 임도에는 어김없이 입산통제란 안내판이 서 있어 의아한 생각이 들었던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와 가파른 등로를 번갈아 타며 내려가니 하송리와 신덕리를 이어주는 58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빈계재에 도착해 잠시 심호흡 한번 해 본다.

올라야 할 고동산까지의 거리가 5.5 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어둠속에 빛나고 그 한쪽에는 낙안민속자연휴양림까지 4.6 Km 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뚜렷하다.

빈계재에 관한 자료를 어렵게 찾아 보니낙안읍성 주위에 오공재와 빈계재가 있는데 순천만 울트라 마라톤 코스에 속한 곳으로 서로 상극인 지네와 싸움을 위해 닭을 키운것이 그 유래라 전해진다는 소식이다.

 

 

빈계재에서 잠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커다란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그곳에서 식수를 구해 오르는 산님들이 많이 보인다.

계속 오르니 편백나무 군락지가 반기고 편백나무에서 내뿜는 피톤치드 냄새가 몸살감기로 고생하는 이 산객의 몸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전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천천히 오른다.

잠시 더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고 이제 철조망을 타고 한동안 진행해야 하는 마루금이다.

 

 

이제 등로 좌측으로는 개인 사유지가 있어 철조망이 쳐져 있고 벌목된 흔적이 있지만 등로 우측으로는 자연 그대로의 산림이 보존되어 있는 경계 지역을 타고 진행해 본다.

새벽 5시 30여분이 지나자 이제 서서히 어둠이 사라지며 주위 사물들이 눈에 들어 오지만 아직은 헤드렌턴 불빛의 도움을 받아 진행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래도 어렵게 뒤돌아 보니 지난 구간 내려온 존재산 줄기와 오늘 산행 들머리인 석거리재가 움푹 들어가 있고 백이산이 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 모습이 아픈 몸을 이끌고 맥 잇기 산행을 진행하고 있는 이 작은 산객의 눈가를 촉촉히 적시고 있다.

 

 

등로 좌측으로 계속 함께하는 사유지를 막아 놓은 철조망이 보기 민망하지만 그곳이 벌목되어 있어 조망하기에는 그만인 곳으로 남겨져 있다.

한동안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 저 멀리 주암호는 산그리메에 묻혀 보이지 않고 혹시나 하여 지나온 호남정맥 마루금인 구봉산과 천운산 그리고 두봉산 줄기를 찾아 보지만 그 앞에 버티고 서 있는 망일봉과 옥녀봉 산줄기에 막혀 아직은 그 모습을 드러내 놓지 못하고 있다.

다만 산줄기 우측 저 멀리 언젠가는 한번쯤 올라 이곳을 그리워 해야 할 모후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와 아쉬움을 달래 보는 시간이다.

 

 

첫번째 500봉을 오르며 어둠이 사라지고 헤드렌턴의 불빛이 없어도 진행 할 수 있을만큼 날이 밝아 오고 있다.

진행하다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잠시 등로 좌측 뒤로 철조망 넘어를 바라보니 순천 외서면 장사리 마을이 선명하게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오늘 올랐다 내려온 뾰족 봉우리인 백이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산줄기를 타고 우측 저 멀리 돌아 지난 구간 어렵게 진행해 온 존재산과 이어진 산줄기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아름다운 조망이 제대로 펼쳐진 모습에서 잠시 몸이 아픈 것도 잊고 즐겨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500봉을 하나 넘어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519봉으로 오르며 뒤돌아 보니 선명한 밝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씩 드러나는 지나온 등로의 푸르름이 가슴속에 남겨지는 시간이다.

특별한 농장이나 목장이 없는데 왜 그렇게 철조망까지 쳐 그곳에 출입을 막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저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는 산하는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답게 그곳에서 빛나고 있다.

자연을 벗삼아 자연속에 살아 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잠시 꿈을 꿔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철조망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철조망을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의 나즈막한 봉우리로 오르니 다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여 이어져 오는 철조망과 조우해 진행하고 있다.

이제 등로 우측인 동쪽 하늘에선 짙은 구름속에서도 붉은 빛이 강렬하게 빛을 발하고 조금 더 빨리 진행 해 잡목이 없는 곳에 이르니 조금 늦은 시간에 찬란하게 떠 오르는 일출을 맞이한다.

일출하는 햇살을 받아 그 웅장함을 더욱 강렬하게 드러내 놓고 있는 낙안읍성민속마을을 감싸고 있는 금전산과 그 뒤로 오봉산 그리고 우산의 모습이 뚜렷히 머릿속에 각인되는 시간이다.

 

 

줌으로 당겼던 일출을 조금 더 멀리 바라보니 금새 햇살은 두꺼운 구름속으로 숨어 버리고 그 아래 끝없이 펼쳐진 산그리메만이 이 작은 산객의 가슴에 남아 오랜 시간 지난 후 꺼내 볼 추억으로 남겨지는 시간이다.

늘 보고 만나는 일출이지만 왜 그리 산상에서 만나는 일출에 그토록 열광하고 큰 희열을 느끼는 것인지... 아마도 조금 더 일찍 그리고 깨끗한 모습으로 볼 수 있기에 그곳에 희망을 담아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두번째 500봉 직전에서 다시 등로 좌측의 산그리메를 쫒아 한없이 그리움을 던지고 있다.

바로 앞의 철산을 지나 망일봉과 옥녀봉이 가물거리고 보이지 않는 주암호를 상상속에 그려 넣으며 지나온 호남정맥 마루금을 찾아 보지만 아직도 이 산객의 눈에는 들어 오지 못하고 있다.

오늘 특히 큰 카메라를 두고 올랐기에 똑딱이 하나로 모든 것을 담다 보니 조금은 답답하고 뿌연 시야가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방법이 없어 안타까운 시간이기도 하다.

 

 

아무 표시도 없는 519봉을 넘어 지도상 물봉굴재를 지나면서 잠시 뒤돌아 보니 지나온 519봉 넘어 저 멀리 백이산이 멀어져 가고 있다.

온 몸에선 식은 땀이 비에 젖은 몸보다 더 많은 물방울을 뿌리며 더위를 호소하지만 잠시 쉬고 있으면 혹독한 한기가 밀려 와 오랫동안 쉬지도 못하는 그런 최악의 상황이 오고 말았다.

잠시 탈출로를 확인하고 진행하다 안되면 탈출하고자 생각하며 천천히 페이스를 조절하며 진행하니 생각보다는 참을만한 순간이 지나가고 있다.

 

 

그렇게 벌목 지대를 지나 511.2봉 정상 부근으로 오르니 드디어 등로 좌측으로 나즈막한 쌍룡리와 월암리를 지나 문덕면의 산줄기를 타고 넘고 넘어 드디어 오래전 지나 온 호남정맥 마루금이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희미하게 지나온 호남정맥 마루금이 보이는듯 한데 그 위에 있어야 할 무등산과 모후산은 벌써 구름속에 숨어 정확한 풍경은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 위 하늘에 떠 있는 먹구름과 일출로 반사되는 햇빛만이 아름다운 산하의 한조각이 되어 다가오는 아침이다.

 

 

다시 온몸에 흐르는 식은 땀을 닦으며 급하지 않게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게 스스로의 페이스를 조절하며 걸어가니 멋진 편백나무 군락지를 통과한다.

그러고 보면 이곳 남도에는 편백나무가 참으로 많다는 생각이다.

녹화사업이란 미명아래 마구잡이로 심었던 쓸모없는 낙엽송보다는 훨씬 값지고 유용한 나무가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진행해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니 준.희님이 걸어 놓은 511.2봉 이정표가 반갑다.

 

 

이제 등로 우측으로 아주 가깝게 보이는 금전산과 그 좌우측으로 솟아 있는 우산과 오봉산을 조망하며 그 아래 펼쳐진 푸른 들판을 바라보는 즐거움 또한 큰 시간이다.

다만 그 금전산 우측 아래로 펼쳐져 있을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이미 산줄기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남아 있는 시간, 완만하게 내렸다가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이제 우측 저 멀리 정상에 높은 통신탑을 이고 있는 고동산이 조망되기 시작한다.

그 우측 저 멀리 보여야 할 백운산을 찾아 열심히 둘러보지만 아쉽게도 박무가 가려 그 모습은 보이지 않고 다만 이제부터 올라야 할 호남정맥 마루금이 나즈막하게 본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다음 구간 저곳을 지나며 오늘을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등로 우측으로 벌목된 민둥의 모습이 계속 나타나고 등로 좌측으로는 벌목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는 그 경계를 타고 진행한다.

벌목된지 오래되지 않은듯 벌목된 나무들이 등로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어 밟고 지나기 어려운 구간도 있지만 그보다는 한낮 햇살에 고생했을 구간을 태풍으로 인한 강한 바람과 구름으로 인해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다.

 

 

계속 등로 우측 저 앞으로 보이는 고동산을 바라보며 벌목된 산 능선의 경계를 타고 한동안 진행하니 저 앞으로 민둥의 비포장 임도길이 보인다.

그 임도가 보이는 곳에 잠시 서서 강한 바람을 맞으며 고동산을 올라보는 시간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였다.

하지만 금새 한기가 돋기 시작하고 온 몸에선 식은땀이 강물이 되어 흐르기에 지체하지 못하고 다시 발걸음 옮기며 천천히 몸의 열기를 높이고 있다.

 

 

처음으로 호남정맥에 합류한 산친구인 공작산 친구, 오랫동안 산에 오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기에 둘도 없는 산친구가 되였지만 사회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친구이기도 하다.

날다람쥐처럼 산행도 아주 잘하는 산친구인데 오늘 이 산객 때문에 홀로 도망도 못가고 앞서가다 이 산객이 보이지 않으면 기다렸다 눈치 못채게 몸 상태를 확인하고 그저 묵묵히 위안을 주는 친구의 마음을 알기에 그저 말없이 고마움을 표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진행하니 처음에는 고동치라 생각했던 비포장 임도에 도착해 잠시 이야기 나누며 천천히 걸어 본다.

 

 

임도를 만나 이제 고동치까지는 임도를 타고 진행한다.

중간에 임도 좌측으로 난 능선을 따라 무명봉인 600봉의 삼각고지를 지나야 될 것 같지만 이 임도가 생긴 이후로 모든 산객들이 이 임도를 타고 진행한듯 능선으로 오르는 등로는 희미하게 사라지기 일보직전이다.

순천시 송광명 장안리와 낙안면 하송리를 이어주는 일부 포장된 비포장 임도로서 승용차의 통행이 가능한 고갯마루이다.

고동치는 고동산 정상아래 넓은 너덜경에서 임진왜란 발발 직전에 난을 예고하듯이 산고동이 울었다고 전해온다.

또한 날씨가 흐리면 산고동이 울어 주민들은 비나 눈이 오겠구나 하면서 일기를 예측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연유로 이 고개를 고등재 또는 고동치라 부르고 고동치가 있는 산이라 고동산이라 부른다는 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제 고동치를 지나 서서히 높아지는 고도를 타고 고동산으로 향하는 등로는 드넓은 초원을 연상시키는 푸른 갈대밭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등로 주위로 식재된 나무들이 있지만 아직은 어린 나무들이기에 사방팔방 막힘없이 시원한 조망을 안겨주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올라야 할 갈대밭 저 멀리 끝자락에 드높은 통신탑이 우뚝 솟아있고 그곳으로 향하는 많은 종주대들의 작은 움직임이 또한 예쁘게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같이 오르던 산친구는 벌써 자취도 없이 사라져 저 멀리 고동산 정상으로 달아나고 있다.

 

 

완만하지만 꾸준한 오름길을 걸어 올라 다시 능선으로 이어지는 지점에 올라 잠시 뒤돌아 보니 지나온 벌목지대와 고동치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똑딱이로 담다보니 무겁지만 큰 카메라를 놓고 온 아쉬움이 큰 시간이기도 하다.

늘 풍경과 조망 사진을 좋아하기에 무리가 되더라도 가지고 다니던 DSLR 카메라를 무더위에 지쳐가며 근래에는 종주 산행에 들고 다니지 않다보니 이런 풍경을 담을 땐 무척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다.

그래도 시원하게 펼쳐진 지나온 마루금이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지나온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잠시 더 진행하다 등로 좌측을 내려다 보니 그곳에 생명줄인 주암호의 푸른 물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그 넘어 우측 저 멀리 모후산이 가깝게 다가와 있고 좌측 저 멀리에는 얼마전 지나온 나즈막한 호남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들고 온 지도를 꺼내 그 이름 하나 하나를 불러 주는 이 시간이야 말로 이 산객이 산에 오르는 이유일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 다 못 불러준 이름은 다음에 다시 올라 찾아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제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지점에서 고동산 좌측 저 멀리 앞을 바라보니 그곳에 그토록 보고 싶어 안달을 했던 조계산 연산봉과 장군봉을 이어주는 웅장한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늘 가을 단풍이 곱게 필때 선암사에서 올라 송광사로 내려갔던 많은 추억이 깃든 곳이기에 벌써 그 옛날 함께했던 많은 산친구들을 떠올려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때 함께했던 산친구들은 벌써 과거의 추억에 묻히고 오늘 이렇게 새로운 추억을 만들며 올라 먼 훗날 또 다시 꺼내 볼 하나의 사진첩이 남겨질 것이다.

 

 

다시 아름다운 조계산을 담은 후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는 고동산 능선과 그 정상을 담아 본다.

태풍이 아니고 구름이 없었다면 참으로 고생스런 산행이 되였을 것을 날씨가 도와주는 바람에 참으로 복받은 산행을 하고 있는 호남정맥 종주대들이다.

그저 눈 앞에 펼쳐진 푸른 처원과 잡목들까지도 오늘 따라 살갑게 다가오는 것은 또 무엇인지...

몸이 무겁고 불편하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모를 일이지만 모든 자연이 더욱 아름답게 가슴속을 파고 드는 시간이다.

 

 

다시 조금은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금새 고동산 정상에 도착한다.

무의파 태풍의 영향으로 매우 강한 바람이 산상을 송두리째 뽑아갈듯 불고 있다.

모두들 시원하다며 즐기고 있는데 몸살 감기로 고생하는 이 산객만이 한기를 느끼고 방풍의까지 꺼내 입었지만 온몸이 부들부들 떨고 있다.

그래도 잠시 산상을 돌아가며 조망을 즐겨 본다.

서쪽으로 주암호 넘어 저 멀리 모후산이 희미하게 다가와 있고 그 좌측으로 돌아가며 호남정맥의 나즈막한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쳐 이곳으로 이어져 있다.

 

 

고동산 정상에 자라고 있는 목초인지 잡초가 푸르게 덮고 있고 그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정상석이 앙증맞다.

고도가 709미터이니 제법 높은 산이지만 가평에 있는 고동산보다도 덜 알려져 있는 아니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산이란 표현이 맞을만큼 자료 자체가 없는 곳이다.

다만 이곳 주민들에게만 활공장과 가을 억새밭 그리고 조망 좋은 산으로 알려져 있고 고등재 또는 고동치가 있는 산이라 하여 고동산이라 불린다는 설이 있는 산이기도 하다.

정상에는 정상석과 이정표 그리고 KT 통신탑이 서 있고 조망이 일품인 곳이다.

 

 

정상에서 우측인 동쪽을 조망하니 낙안면 평사리 들판이 푸르게 펼쳐져 있고 그 뒤로 낙안읍성을 감싸고 있는 금전산과 조산 및 우산이 보이지만 보고 싶은 낙안읍성은 역시 산줄기에 파묻혀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 가득하지만 태풍속에서도 비를 맞지 않고 이렇게나마 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담아 본다.

언젠가는 저 금전산뿐 아니라 낙안읍성을 둘러싸고 있는 4개산을 돌아 오르며 오늘 올랐던 이곳을 그리워 할 날이 있을 것을 기대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먼저 올라 온 공작산 산친구와 둘이서 산불초소 옆 바람이 잦아든 곳에 간단히 아침 식사를 펼치니 갑자기 한기가 들기 시작하고 온 몸이 부들거리며 떨려 온다.

안타까워하는 산친구의 도움을 받으며 어렵게 아침 식사를 끝내고 한방 소화제와 감기 몸살약을 먹고 곧바로 일어나 방풍의를 입은채로 조계산쪽으로 걸어 내려가며 몸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내려가다 바라 본 조계산 연산봉과 장군봉이 그 옛날 추억을 뒤살리며 고운 단풍이 들때 다시 한번 만나자 약속하라 재촉한다.

 

 

조금 더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넓은 공터가 보이고 그곳 한쪽에 고동산 유래비가 서 있다.

그곳에서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고동산 유래비를 읽어 보니

고동산은 조계산 (해발 884미터)남단 봉우리이며 순천시 송광면 장안리와 낙안면 목촌리 경계를 이룬다

고동산은 해발 709미터로 장안마을에서 목촌마을로 넘어가는 재를 꼬등재라 부르고 한자로는 고등치 또는 고동치라 적기도 하였다.

그리고 조선말 어느 시인은 나발산이라 표현하기도 하였다.

고동산 정상 아래 약1 ha정도 너덜경에서 임진왜란 발발직전에 난을 예고 하듯이 산고동이 울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또한 날씨가 흐리면 산고동이 울어 주민들은 비나 눈이 오겠구나 하면서 일기를 예측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연유로 이 고개를 꼬등재 또는 고동재라 부르고 고동재가 있는 산이라 고동산이라 부른다.

 

 

고동산 유래비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그 유래비를 읽어 본 후 넓은 임도를 타고 내려오니 임도 좌측으로 헬기장이 보인다.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전 올라 아침 식사를 끝내고 내려온 고동산 정상부가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풍경이지만 제한된 똑딱이로 담으려니 조금은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안부를 지나 완만히 오르니 임도 좌측으로 또 다른 통신사인 SK 통신탑이 서 있고 이곳에서 등로는 우측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고동산에서 0.6 Km 지나왔고 조계산 장군봉까지 6.0 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이는 능선길이 정맥길이다.

늘 아쉬운 점은 같은 나라 좁은 땅에서 각 회사별로 똑같은 통신 기지국을 세우면서 이중 삼중으로 경비를 지출하고 소비자에게 그 모든 비용을 전가한다는 사실이다.

경쟁사이지만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은 공유하며 조금이라도 절감할 수 있는 대책은 없는 것인지...

 

 

다시 능선으로 들어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폐헬기장을 지난다.

처음에는 헬기장인지도 모르게 지나다 아래를 살펴보니 보도블럭으로 헬기장 표시가 되어 있지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했는지 잡풀만 무성히 자라나 그 존재조차 잊혀져 가고 있는 듯 하다.

그곳 헬기장 지나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696봉 송전탑을 향해 다시 오르막 등로를 오른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송전탑이 지나는 696봉을 지나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다시 내려간다.

내려가다 등로 우측 저 앞으로 바라보니 조만간 올라야 할 호남정맥 마지막 봉우리인 광양의 백운산과 억불봉이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 온다.

작년 봄 미친듯 내려가 억불봉에서 시작해 백운산과 매봉 그리고 쫒비산을 거쳐 광양 매화마을로 내려갔던 추억을 떠올리며 고달픈 몸 상태속에서도 홀로 웃어 본다.

그때에는 이렇게 빨리 호남정맥 마루금을 타고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꿈도 못꾸고 있었는데 ...

앞을 바라보니 663봉 넘어 조계산 장군봉이 조금은 가까워진 거리로 다가와 있다.

 

 

계속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푸근한 등로가 열리고 활엽수가 나타나더니 나즈막한 안부에 도착한다.

혹시나 하고 지도를 살펴보니 장안치라 적혀 있는데 아무 표식도 없도 특별히 눈에 띄는 풍경도 아니기에 대부분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처럼 생각되였다.

하지만 그 지도상 표기가 잘못되였는지 아니면 이정표가 잘못 되였는지 장안치는 700.8봉 지난 임도가 장안치로 표기되어 있었다.

어느곳이 진짜 장안치인지 확실한 고증이 필요한 장소이다.

그렇게 다시 한동안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삼각점이 있는 700.8봉 정상에 오른다.

 

 

700.8봉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철쭉나무 군락지대를 타고 느긋하게 진행하니 갑자기 키큰 활엽수들이 나타나고 저 멀리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주위 조망이 가려져 산불감시초소로서 그 기능을 전혀 할 수 없는 위치에 왜 세워져 있는지 궁금하지만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이 세웠으니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조금만 신경 쓰고 조금만 국민편에서 생각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작은 것들이 너무나 무심하게 버려지고 있어 안타까운 장면이기도 하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진행하니 잣나무들이 식재된 장소를 지나고 완만한 오르막 오르니 바위들이 보이는 정상을 지나 다시 내리막 등로로 이어져 있다.

한동안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다 등로 우측 저 망ㅍ을 바라보니 줄지어 서 있는 송전탑을 지나 상사호가 내려다 보이고 옥녀봉과 수리봉 지나 좌측 저 멀리 다음 구간 지나야 할 호남정맥 마루금이 보인다.

오늘 이곳에서 만났으니 저곳을 걸어가며 이곳을 바라본 후 그 이름 한번 불러 줘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다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금새 넓은 임도가 지나는 장안치에 도착한다.

송광면과 낙안면을 이어주는 비포장 임도인 이곳 장안치도 그 옛날 민초들의 통행로로서 많이 이용되였을 고개이겠지만 이제는 산림자원을 수확하고 관리하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하고 가끔 이 산객처럼 맥 잇기 산행이나 하러 들리는 산객들에게나 그 이름이 유지될 정도로 빈약한 고갯마루가 되어 가고 있는 듯 보였다.

사용하지 않고 버려지면 금새 사람들 뇌리에서 잊혀져 가는 세상, 왜 장안치이고 그 유래는 무엇인지 정리가 필요한 시점은 아닐까 많은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다.

 

 

이제 조금만 더 진행하면 이 산객이 몇번인가 들렸던 큰굴목재 즉 선암굴목재가 나타날 것이기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진행하면서도 마음만은 푸근하다.

이곳부터는 또한 지금까지와는 달리 산죽밭이 제대로 열려있는 곳이기에 오랫만에 사진으로 담아본다.

또한 고동치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 남도삼백리길이 이곳 장안치에도 보이고 계속 이어지는 이정표에 나타나기에 한번 살펴 본다.

 

남도의 문화와 생태가 스며있는 남도 삼백리길이란

순천시가 (사)한국체육진흥회 한국걷기연맹과 남도삼백리길 활성화 협약식을 갖고 앞으로 국내외에 적극적인 홍보를 실시하기로 했다.남도삼백리길은 총 11개코스 223km를 2010년말까지 조성 완료하고 지역별, 테마별 스토리를 엮어 생태 탐방객을 유인한다는 계획이다.시는 이를 위해 자연 생태 환경을 훼손하지 않은 상태에서 등산로 및 임도, 옛길 등을 그대로 활용하여 노선을 정비하고 종합안내판 및 안내사인 설치, 편의시설 신축 및 정비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남도 삼백리길 홈페이지 및 가이드북 제작을 통해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적극 홍보한다는 계획이다.

또 (사)한국체육진흥회 한국 걷기연맹은 전국 최초의 녹색성장 박람회인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의 성공 개최를 위해 상호 협력하기로 하고 국내외 홍보에도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한번쯤 시간되면 걷고 싶은 길이 될듯 하다.

 

 

호젓한 등로를 타고 산죽과 이야기 나누다 보니 어느덧 선암굴목재 일명 큰굴목재에 도착한다.

몇번인가 선암사에서 이곳으로 올라 장군봉과 연산봉을 거쳐 송광사로 내려간 기억이 있는 곳이기에 얼마나 반가웠던지...

앞서 꼬리도 보이지 않던 산친구 공작산이 저 멀리 벤취에 앉아 열심히 등로를 살피다 이 산객이 멀쩡하게 걸어 오는 모습을 보자 안도를 하였는지 다시 슬그머니 일어나 도망갈 채비를 한다.

이곳 선암굴목재는 우리나라 3대 고갯길중 하나로서 선암사와 송광사를 이어주는 약 8 Km 의 고갯길로서 급하지 않게 느릿하고도 여유를 가지고 사색하며 걷기 좋은 길이다.

특히 단풍이 들면 천상만홍이 드리워져 나가고 싶지 않은 길로 변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 아름다운 고갯길이 역사의 비극을 조용히 간직한 채 오늘도 무심하게 산객들을 맞이해 주고 있다.

 

 

이제 완만한 등로를 타고 산죽이 넘실거리는 호젓함을 맛보는 시간이다.

강한 바람이 커다란 활엽수의 가지 사이를 뚫고 들어 와 산죽잎을 깨우면 서걱거리며 울어 대는 산죽 울음소리에 졸린 혼이 다 깨어 날 지경이다.

이곳에서 선암사를 잠시 이야기 하고 넘어 가 본다.

선암사는 전라남도 순천시의 조계산에 위치한 사찰로서 한국불교태고종의 본찰이다.

소설가이자 태백산맥으로 더 잘 알려진 조정래 작가가 이곳에서 태어났으며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많은 부분이 이곳과 관련된 지명들이다.

백제 성왕 7년인 527년에 이도화상에 의해 창건되어 해천사라 부른것이 선암사의 기원이라 하니 1400여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고찰이다.

유일하게 선암사에 있는 해우소가 무화재로 남아 있어 유명세를 타고 있기도 한 곳이다.

 

 

다시 한동안 산친구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다보니 작은굴목재에 도착해 잠시 배낭 내려 놓고 준비한 과일로 목마름을 달랜다.

연인과 손잡고 사랑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으면 좋을듯한 그런 길, 오랫만에 잊었던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으로 남겨 본다.

오늘처럼 쫒기듯 걸어가는 시간이 아닌 선암사와 송광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들으며 준비된 벤취에서 사랑 이야기 나누다 잠시 쉬어가도 좋을 그런 시간으로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은 이 산객만의 마음일련지...

 

 

이제 20여분간 제법 고도를 높이며 바위가 박혀 있는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굵은 땀방울을 흘려 본다.

몸이 좋았을 때엔 그저 평이한 등로도 오늘처럼 무거워진 몸으로 오르기엔 무척 고통이 수반되는 시간이다.

그래도 어렵게 매바위 앞에 도착해 배낭 내려 놓고 로프를 타고 매바위 정상에 오르니 신선이 따로 없다.

지나 온 마루금이 길게 줄지어 늘어서 있고 그 끝자락에 고동산이 우뚝하다.

멀리도 그리고 참으로 용케도 잘 걸어 왔다는 환희가 밀려오는 시간이다.

 

 

매바위 정상에서 내려다 본 서쪽의 송광사가 고요히 자리하고 그 아래 민가와 주암호 넘어 넘실거리는 지나온 호남정맥 마루금이 산객의 가슴에 고운 추억으로 쌓이는 시간이다.

 

백과사전에서 송광사를 찾아 본다

송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의 본사로서 이전에는 대길상사 또는 수선사라고 했다.

한국 선종의 대수도도량으로서 유서깊은 승보사찰이며 통도사 및 해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사찰로 꼽히는 절이다.

송광사 창건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으나 송광사사적비와 보조국사비명및 승평속지에 의하면 신라말 체징이 길상사라는 소규모 절을 지은 것에서 비롯되어 고려 인종 이후 거의 폐허화되었는데 1200년 보조국사가 수행결사인 정혜사를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길상사로 옮긴 다음부터 대규모 수도도량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고려 희종은 정혜사의 이전과 때를 같이하여 송광산 길상사를 조계산 수선사로 개명하라는 제방을 내렸고 이후 조선초에 이르기까지 180여 년 간 진각, 각엄, 태고, 나옹, 환암, 찬영, 각운, 무학 등 15명의 국사를 배출하는 소위 수선사시대를 열게 되었다.

1395년(태조 4)에 고봉화상이 전당을 중건했고 그의 뒤를 이은 중인이 1420년(세종 2)에 당우를 증축하는 한편 절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정종의 윤지로 설립된 수륙사를 폐지하고 선종사찰로 복귀했다.

그후 수선사가 언제 송광사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폐사 직전에 놓인 송광사는 응선과 부휴 등의 노력에 힘입어 명맥을 유지했다.

1842년의 화재와 6·25전쟁 등으로 많은 전각들이 소실되거나 파괴되고 다시 중건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현재 한국 선종을 이끄는 중심사찰의 역할을 하고 있다.

6·25전쟁 전의 가람배치는 의상의 법계도와 같았다고 하며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 국사전(국보 제56호), 하사당(보물 제263호), 약사전(보물 제302호), 영산전(보물 제303호), 청량각, 척주각, 우화각, 천왕문, 해탈문, 대장전 등 50여 동이 있어 대가람의 면모를 짐작하게 해준다.

 

이제 매바위에서 내려 오기 직전 올라야 할 조계산 장군봉을 한번 올려다 본다.

제법 땀을 흘려야만 도착할 수 있는 장군봉이지만 지금까지 잘 걸어 왔으니 조금만 힘을 내면 닿을 수 있을 것이다.

강한 바람이 불며 나뭇가지가 흔들려 사진으로 남기는 사이에도 많은 흔들림 현상이 발생하였다.

조심하며 로프를 타고 내려오니 함께 진행하던 산객들은 모두 떠나고 이 산객의 배낭 하나만이 달랑 그곳을 지키고 있다.

 

 

조금은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오르니 등로 옆 바위 위에 돌탑을 쌓아 소원을 빈 장소가 나타난다.

이 산객도 조심스럽게 돌 하나를 올려 놓으며 접치까지 무탈한 산행을 빌어 본다.

무교이기에 그 어느 신도 믿지 않지만 직업상 종교를 알아야 하기에 바이블과 사찰에 관한 서적은 많이도 읽었다는 생각이지만 큰 관심없이 읽었기에 남아 있는 것은 별로 없는 듯 하다.

언젠가는 의지가 약해지고 삶이 팍팍해지면 종교를 갖는다는데 이 산객에도 그런 날이 올련지...

 

 

헐떡거리는 숨을 참으며 한발 두발 오르니 드디어 조계산 장군봉이 저 멀리 시야에 들어 오고 그곳에서 한숨 돌리며 뒤돌아 보니 그곳에 선계가 펼쳐져 있다.

우측 저 멀리 주암호 끝자락을 지나 구름속에 진면목을 감추고 있는 광주의 진산인 무등산이 가물거리고 그 아래 안양산부터 쭉 이어져 내려온 호남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오래 전 지났다고 생각된 무등산인데 아직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신기한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가깝게 있는 백운산이 보이지 않아 안타까운 시간이기도 하다.

 

 

드디어 조계산 장군봉에 인사를 한다.

이제 4번째 오르는 조계산 장군봉, 대부분 가을 단풍철에 올랐기에 이렇게 푸르름이 가득한 산은 새롭게 다가 온다.

한국의 산천에서 조계산ㅇ늘 배워 본다

선암사와 송광사라는 두 거찰을 끼고 있는 조계산(884.3봉)은 전남 순천시 승주읍과 송광면에 위치하고 있는 비교적 낮은 산으로 산세가 부드럽고 아늑하다.

선암사 둘레에는 월출봉, 장군봉, 깃대봉, 일월석 등이 줄지어 솟아있고 조계산을 중심으로 선암사와 송광사 등을 포함하며 1979년 12월 26일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98년 12월에는 사적 및 명승 제8호로 지정되었다.
산세가 수려하고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따뜻해 관광의 중심인 송광사는 승보사찰로 유명하며 가람의 규모도 국내 유수이고 뛰어난 문화재가 많아 문화재의 보고를 이룬다.

송광사의 개산 당시에는 송광산이라 하였는데 그 후의 개창과 더불어 조계종의 중흥 도장으로 삼으면서 조계산으로 바뀐 것이다.
정상에서 남해를 바라보는 맛이 그만으로 좌우의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소장군봉(우측)과 연산봉(좌측) 등 조계산 도립공원 전체가 발 아래에 펼쳐진다.

송광사와 선암사의 유명세 탓에 절을 찾는 관광객이 사시사철 끊일새 없을 뿐더러 등산을 목적으로 조계산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조계산 산행은 송광사나 선암사 어느 쪽에서 시작해도 비슷한 시간에  다양한 코스를 즐길 수 있으며 산세가 험하지 않고 평탄한 길이 많아 가족단위 소풍코스로도 알맞다.
산 동쪽에는 선암사, 서쪽으로는 송광사가 있다.

산속의 깊은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며, 만수봉과 모후산이 송광사 일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선암사 계곡의 맑은 물은 죽학천과 합류하여 이사천으로 흘러간다.

 

 

많은 종주대들과 어울려 남아 있는 막걸리며 간식을 먹지만 아직도 몸이 좋지 못한 이 산객은 그저 접치를 향해 다시 출발을 서두르는 시간이다.

몇몇 종주대들이 등로 확인을 위해 분주하지만 이 산객에게는 몇번 올랐던 곳이기에 이제부터 눈에 선한 길이다.

2년전 가을 단풍이 곱게 피어 있던 계절에 올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인사를 나눴는데 채 2년이 지나지 않아 호남정맥 종주를 위해 다시 들린 것이다.

내리막 나무 계단 등로를 타고 잠시 내려가니 안부가 나타나고 다시 산죽이 종주대 키만큼 자란 등로를 타고 완만히 오르니 스피커 봉 바로 직전 우측으로 접치 하산 갈림 삼거리에 이정표가 서 있다.

직진하면 연산봉을 거쳐 송광사나 선암사로 원점 회귀하는 등로가 되는 곳이다.

 

 

조금은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활엽수가 무성한 마루금을 내려가니 다시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남아 있는 간식을 꺼내 마지막 휴식을 취해 본다.

생각보다 많은 등산객들이 접치에서 장군봉으로 오르는 모습에 의아해 물어 보니 이곳 산객들은 이렇게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전해 준다.

처음에 걱정했던 것보다 등로는 참으로 양호하고 잘 정비된 느낌이다.

 

 

그렇게 한동안 내려오니 등로 우측 저 멀리 대왕산쪽에 붉게 핀 백일홍이 가득하고 그 풍경을 감상하며 내려가니 멋진 소나무들과 활엽수 지대를 지나 2개의 송전탑을 만나고 곧바로 다음 구간 올라야 할 오성산을 만난다.

불방에서 알고 지내던 방초님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내려가니 금새 접치가 내려다 보이는 산행 날머리에 도착을 한다.

 

 

22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접치에 도착해 선암사로 내려간 산우님들을 데리러 간 버스를 기다리며 잠시 배낭 정리를 하는 동안 참았던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곳 접치도 역시 순천터널이 뚫리며 이제는 옛 영화는 그저 한낮 꿈으로 사라지고 폐 도로가 되다시피한 그런 도로로 남아 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허기가 지기 시작하고 남아 있는 빵 한조각으로 허기를 달래니 드디어 버스가 도착하고 내려가다 계곡물에서 땀을 씻은 후 진일식당에서 보시해 주신 산우님의 수고로 맛난 점심을 먹고 서울로 복귀한다.

 

개인적으로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산행이였지만 처음 산행에 참여한 공작산 친구님의 도움으로 무탈하게 완주 할 수 있어 다행이였던 시간들, 이제 산행 이외의 것들로 힘들고 어려워 하지 말자는 생각을 정리하며 처음 산에 올랐던 마음 그대로 산만 보고 산에 들자는 다짐을 가슴속 깊이 새겼던 시간으로 남겨 본다.

 

이제 호남정맥도 4구간만 남겨 놓고 있다.

멀다고 생각되던 첫걸음이 벌써 10개월이 지났다.

무탈한 완주를 기대하며 계속되는 맥 잇기 산행의 즐거움을 생각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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