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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산행(완료)/호남정맥(완료)

호남정맥 제21차 접치에서 송치재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1.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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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순천시의 호남정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0년 09월 01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아침까지 짙은 안개 후 점심때부터 맑았으나 늦더위로 무척 고생한 날씨

산행온도 : 영상 24도에서 영상 33도

산행인원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접치(22번 지방도로 및 호남고속도로)-오성산(606봉, 헬기장)-안부사거리-391봉-401봉-

               안부사거리-474봉-한방이재-유치산(530봉)-닭재-뱃바위(잘못 설치된 유치산 정상석)-

               752봉(닭봉?, 헬기장 및 희아산 갈림길)-버들재-620봉(훈련봉?)-413.2봉(삼각점)-

               노고치(875 지방도로, 고도 350미터 및 이정석)-611봉(점토봉?)-622봉-

               고산삼거리(잘못된 문유산 이정표)-문유산 갈림 삼거리-문유산(688봉)-문유산 갈림길-

               만우재(조목과 이문 사거리)-도목목장임도-590봉-임도-500봉-사제사거리 임도-

               560봉(헬기장)-바랑산(619봉)-440봉-송치재(17번 구 지방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1.30 Km 

산행시간 새벽 안개와 한낮의 늦더위로 고생하며 10시간 25분

               (06시 00분에서 16시 25분까지)  

              

호남정맥이란 ???

우리나라 서남부 문화권을 나누는 의미 있는 경계선으로 산경표를 보면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이 분기하고 그 산줄기가 다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으로 나뉘며 호남정맥은 그 시작점이 웅치(현재 지명으로 곰치재)라 적혀 있는 총 산행거리 398.7 Km의 산줄기이지만 어느 산꾼들은 백두대간 영취산이 호남정맥의 시작점이라 하여 총 산행거리 462 Km의 산줄기라 하기도 한다.

호남정맥은 동쪽으로 섬진강을 서쪽으로는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을 가르고 있으며 주요한 산들을 살펴보면 3정맥 분기점인 주줄산(주화산)에서 남서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완주 만덕산(762m)을 지난 후 내장산(763m), 추월산(729m), 무등산(1,187m), 제암산(779m), 조계산(884m) 등 남도의 큰산을 지나 광양 백운산(1,218m)을 끝으로 섬진강과 남해바다가 만나는 곳 망덕산(197봉) 앞 바다로 흘러드는 산줄기를 말한다.

 

 

새벽의 짙은 안개와 한낮의 찌는 듯한 늦더위로 어렵게 이어간 조각 맞추기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하여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중단없이 이어가는 맥 잇기 산행이 얼마나 어려운지 지난 구간 몸으로 느끼면서 바쁜 회사일로 참여하지 못함에 위안을 삼아 본 시간이였다.

하지만 점점 다가오는 다음 구간에 대한 부담감으로 하루를 빼 오르지 못한 구간의 조각 맞추기를 준비하는 동안 뜻하지 않게 그곳에 살고 있는 사업 파트너로부터 좋은 제안을 받아 생각보다 좋은 시간에 무탈하게 완주 후 올라 올 수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다.

서울로 올라오면 어제의 호의를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며 많은 시간 함께하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와 사업이야기를 나눴으니 앞으로도 더 좋은 사업 파트너이자 친구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너무나 무더운 늦더위에 거의 녹초가 되어 힘들게 오른 문유산 갈림 삼거리에서 잠시 문유산을 들리지 않는 것을 고민했지만 지난 주 낙동정맥에서 들리지 못했던 정상들에 대한 아쉬움이 커 다시 정맥 등로에서 300여미터 떨어진 문유산으로 올라 뜨거운 태양을 온 몸으로 받으며 잠시 멋진 조망을 즐겨 본다.

지나온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또 앞으로 진행해야 할 590봉과 500봉 넘어 좌측으로 꺽여 다시 가파르게 올라 뾰족봉을 이루고 있는 바랑산을 바라보니 숨이 막혀 온다.

너무나 멋진 조망과는 달리 삼복 더위보다 더 무더운 날씨에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기도 하다.

 

새벽 어둠을 뚫고 어렵게 안개 자욱한 송치재에 올라 너무나 친절한 승주 택시를 불러 접치재에 도착하니 아침 6시가 다 되어가고 잠시 여명의 빛을 받아 지난 구간 어렵게 내려 왔던 접치재 주위를 사진에 담아 본다.

접치는 아래에 25번 4차선 호남고속도로가 지나는 22번 지방도로로서 신전리와 행정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이지만 이제 잘 뚫린 도로들로 인해 그 옛날 정취는 모두 사라지고 없다.

또한 이; 접치는 해발 210미터로서 1630년경 전주이씨 이조화공이 선산을 수호가기 위해 살았다고 하나 그 이 전부터 함씨들이 살았다고 구전되기도 하는 마을로서 처음에는 학동이라 부르다 1914년 접치로 개칭된 곳이다.

무엇이 이 산객을 새벽 어둠속에 이곳으로 오게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왔으니 생각했던 산행이나 잘 마무리했으면 하는 바램 간절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접치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며 많은 사진을 담다 보니 벌써 아침 6시가 가까워지고 이제 서서히 산행 준비 후 오늘의 산행 들머리 앞에 서서 마지막 점검을 해 본다.

접치를 떠나기전 잠시 순천시 주암면을 알아 본다.

주암면은 순천의 서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체의 형태는 마름모 꼴을 하고 있다.

광주로부터 남동쪽으로 50여 Km, 순천 시내로부터는 서북쪽으로 약 30여 Km지점에 있으며 서쪽에 밤실산(598봉), 서남쪽에 모후산(918봉), 동남쪽에 조계산(884봉)과 오성산(608봉), 동쪽에 유치산(530봉), 북쪽에 한동산 (648봉)이 병풍 처럼 둘러 있는 좋은 고장이다.

산행 들머리 위 좌측으로는 거대한 원형 인공 구조물이 있고 10여일 전 날머리로 내려 와 바라 봤을 땐 잡풀들이 무성해 오르는 것 조차 힘들어 했던 곳이 묘지에 벌초를 하려 올랐는지 사람들 오르내린 흔적과 함께 등로도 잘 정리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오르는 시간이 되였다.

아침 6시 정각, 조금은 늦은감이 있지만 그래도 멋진 하루를 생각하며 또 한구간 조각 맞추기 위해 출발해 본다.

 

잘 정리된 산행 들머리를 올라 좌측에 거대한 원향 구조물을 지나니 잘 벌초된 묘지들이 반기고 그곳에 올라 뒤돌아 보니 지난 구간 어렵게 내려 왔던 철탑과 542봉 넘어 조계산이 짙은 안개속에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몇번인가 올랐던 조계산이지만 이번 산행은 가슴에 남겨지는 것이 참으로 많았던 순간들, 이제 언제 다시 들릴 수 있을지 기약 없이 떠나기에 생각보다 더 빨리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아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할 수도 있기에 가슴속 깊이 그 모습을 담아 보는 시간이다.

 

묘지를 지나 서서히 고도를 높히니 더욱 짙어지는 안개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잘 벌목된 구간을 통해 나즈막한 봉우리를 넘으니 다시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본격적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생각보다 위험한 등로는 아니지만 지자체에서 준비를 했는지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에 안전 로프를 매어 놔 길라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

점점 더 가파라지는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짙은 안개속에 오르니 벌써 온 몸에선 굵은 땀방울이 떨어져 등로를 적시고 있다.

조금 더 오르다 등로 좌측에 있는 작은 바위에 앉아 준비한 음료수를 마시며 잠시 쉬어가지만 역시 흐르는 땀방울을 주체할 수 없다.

 

40여분 스스로의 페이스를 조절하며 급하지 않게 천천히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서 자주 봤던 돌탑과 그 뒤로 마당바위처럼 생긴 넓은 바위가 눈에 들어 온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몇장의 사진에 남긴 후 이 산객도 작은 돌맹이 하나 집어 들어 조심스럽게 돌탑 정상부에 올려 본다.

그저 오늘 하루 무탈하게 송치재까지 잘 완주 할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산신령에게 기도한 그런 시간이였다.

 

잠시 돌탑에서 사진을 찍으며 머무는 사이 등로 우측 동녘에선 어느새 떴는지 모를 일출이 안개가 엷어진 틈을 비집고 소나무 가지 사이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또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를 날씨를 잘 알고 있기에 잠시 머물며 늦은 일출이지만 또 몇장의 사진을 남겨 본다.

수많은 물방울이 가로막아 묘하게 빛나는 오늘의 늦은 일출은 평소와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생각지도 못한 일출까지 만난 후 다시 돌탑을 지나 오르니 가파른 오르막 등로에는 또 안전로프가 달려 있다.

그 안전로프 지대를 지나니 곧바로 넓은 공터에 잡초가 무성히 자라고 있어 지나치려다 자세히 살펴보니 헬기장이다.

이제 오성산이 아주 가까이 다가온 느낌으로 오르니 저 멀리 자욱한 안개속에 높게 솟아 있는 무인산불감시탑이 서 있다.

조금 더 오르니 금새 오성산 정상에 도착해 한가운데에 박혀 있는 정상석을 담은 후 주위를 둘러보니 산불감시초소는 정상 아래로 나뒹굴어 떨어져 있고 짙은 안개로 인해 조망은 전혀 없다.

오성산(606.2봉)은 고려시대 때 다섯 사람의 성인이 이곳에서 군사훈련을 하였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산으로 잡초가 무성한 정상에는 오성산 정상석과 넘어져 나뒹굴고 있는 산불감시초소 그리고 높게 솟아 있는 산불감시탑과 삼각점이 보이지만 조망은 안개속에 잠겨 있다.

지나온 마루금과 앞으로 올라야 할 등로가 시원하게 보인다는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읽었기에 더욱 큰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다.

 

조망이 없어 잠시 머물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오성산을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앞쪽에 가지가 많은 소나무 한그루가 눈길을 잡고 살펴보니 그 좌측으로 전망이 좋은 전망바위처럼 보이지만 역시 짙은 안개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다.

잠시 아쉬운 마음 내려 놓고 더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편백나무 숲을 지나 곧바로 행정 사거리에 도착하는데 등산로 보호를 위해 수종갱신중이라 출입을 금한다는 가로막이 설치되어 있다.

  

다시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올라 완만한 오르막을 타고 한동안 진행한다.

이곳 역시 편백나무 숲이 보이고 급하지 않게 천천히 오르니 갑자기 큰 나무들이 사라지고 잡목이 등로를 가로막으며 잡목에 매달려 있던 이슬방울을 산객의 몸으로 뿌려 축축하게 적시고 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391봉으로 삼각점을 찾아 보지만 무성한 잡목속에 숨어 있는지 아니면 아예 삼각점이 없는지 찾을 길이 없다.

 

잡목을 헤치고 한동안 진행하니 온몸이 완전히 젖어 우중 산행을 방불케 하고 있다.

그렇게 어렵게 진행하니 401봉이라 생각되는 나즈막한 봉우리에 오르지만 이곳 역시 지도상 나와 있는 삼각점은 찾을 수 없고 잡목들만 몇그루 서 있다.

그곳 정상 401봉을 지나니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 주암면 행정리와 승주읍 두월리를 이어주는 희미한 안부에 도착한다.

하지만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이곳이 고갯마루였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지나칠만큼 이제 완전히 잊혀져 가는 안부였다.

 

다시 안부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주위에 작은 구덩이들이 자주 눈에 들어 온다.

혹시 6.25전사자들의 유해발굴현장이나 문화재 발굴현장은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그 어디에도 정확한 설명이 없으니 그저 상상만 해 볼 뿐이다.

그렇게 서서히 고도를 높히니 474봉을 지나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 한방이재를 지난다.

좌로는 주암면 갈마리 상주마을과 우측으로는 승주읍 유흥리 유치마을을 이어주는 한방이재 역시 그 옛날 많은 민초들의 삶의 터전이였을 흔적조차 서서히 사라지고 있음을 실감한 안타까운 현장이다.

 

한방이재를 지나 다시 조금은 더 가파라지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옆에는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바위들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갑자기 민둥의 정상이 나타나고 그곳에는 잡풀들만 한가득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등로 찾기도 힘들만큼 무성한 잡풀들을 헤치고 그곳 정상을 통과하니 온 몸이 흠뻑 젖어 온다.

다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짧은 거리를 내려가 지도를 살펴보니 아니 그곳은 정상석 하나 없지만 유치산 정상이란 설명이 보인다.

다시 정상으로 뒤돌아 올라가 어렵게 잡목을 헤치고 삼각점을 담은 후 조금 내려 온 평편한 장소에서 준비한 김밥 한줄로 아침 식사를 해 본다.

유치산(530.2봉)은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붙여진 이곳에는 그저 삼각점 하나만 그 정상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한 것은 지도에는 이곳이 유치산 정상인데 유치산 정상석은 한참을 더 진행해 뱃바위 정상에 박혀 있다는 사실이다.

  

아침식사까지 마치고 유치산 정상의 삼각점도 잘 찾아 담은 후 진행하는 산행은 홀로가는 산행이지만 행복한 시간으로 남겨진다.

잠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바위지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앞을 바라보니 아직도 짙은 안개속에 희미하게 뱃바위가 보인다.

암봉의 멋진 모습은 안개속에 감춰져 있지만 그 위용만큼은 제대로 된 모습으로 이 산객의 가슴을 들뜨게 만들기에 충분한 모습니다.

조금은 빨라진 발걸음으로 내리막 등로를 재촉해 본다.

 

잠시 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보이던 뱃바위는 능선으로 인해 그 모습을 감추고 다시 잡목이 무성하게 자란 폐허가 되어 가는 임도만이 이 산객을 반겨 준다.

하지만 그 임도에 자라고 있는 잡목에 맺혀있던 이슬방울들이 다시 산객의 바짓가랑을 타고 흘러 내리며 등산바지와 등산화를 축축히 적시고 있다.

한동안 잡목이 자라고 있는 폐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좌측 능선으로 나 있고 계속 이어지는 이슬로 인해 등산복이 완전히 젖어 버렸다.

하지만 잠시 능선으로 들어가니 편백나무 숲을 지나 평이한 등로를 따르는가 싶은 시간에 드디어 유치고개 즉 닭재고개 이정표를 지난다.

이 유치고개는 유치산을 가운데 두고 그 반대편에 있는 한방이재와 함께 유치로 혼용하여 부르는 고갯마루로서 1914년 원정, 월평, 죽림 및 송전 등을 통폐합한 원정과 죽림의 한글자씩을 딴 곡성군 목사동면 죽정3구와 성주배씨 배성남씨가 임진왜란 당시 계곡이 깊은 이 마을에 피난 와 정착했다는 두월리의 유치마을을 이어주는 고갯마루인데 마을 뒷산이 닭혈이라 닭재몰이라 했다는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닭재고개 즉 유치고개 이정표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막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금새 무명봉 정상에 도착해 잠시 쉬어 간다.

그곳에서 앞을 바라보니 아직도 짙은 안개속에 나즈막한 무명봉 몇개가 오르락 내리락 이어지더니 저 멀리 끝자락 좌측에 우측이 칼로 잘린듯 절벽의 암봉으로 이뤄진 뱃바위가 폼으로도 당당히 서 있다.

안개로 인해 기대하지 않았던 조망이 터지니 그마나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 보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곳에서부터 또 다시 폐임도같은 등로가 열리면서 그곳에도 잡목들이 한가득 자라나 진행에 큰 어려움을 느낀다.

서서히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며 어렵게 마루금을 헤치며 진행하다 뒤돌아 보니 그곳에도 안개속에 희미하게 존재감을 보이고 있는 지나온 유치산이 눈에 들어 온다.

완만한 오르막 등로는 갑자기 급경사 된비알 오르막으로 변하면서 사면 등로의 잡목 가지 사이로 강렬한 햇살이 들어 와 묘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식탁바위를 닮은 바위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나타나는 조망 바위에 올라 잠시 뒤돌아 본다.

안개속에 잠겨 있는 조계산과 오늘 지나온 오성산 지나 이곳으로 이어진 올망졸망한 마루금이 가슴속 깊이 새겨지며 왜 산에 오르는지 답을 해 주고 있다.

 

등로 우측 저 앞으로는 가옥 한채와 창고 건물들이 보이고 그 주위엔 넓은 녹차밭이 펼쳐져 있다.

산행을 하면서 늘 동경하고 꿈꾸는 그런 풍경에 삶을 살아가는 주인장은 얼마나 행복하고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곤 하는 시간이다.

오늘 이 산객처럼 가끔 외롭기는 하겠지만 그 외로움도 자연속에 살다보면 수많은 친구들을 새로 새길때 까지일 것이리라.

그런 노후를 위해서라도 젊어서 조금 더 열심히 아니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오늘 이 순간만큼은 그저 앞에 보이는 자연속 풍경에 빠지기로 해 본다.

 

조금 더 오른 후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지난 구간 올랐던 조계산이 안개속에 봉우리만 하늘을 향해 솟아 있고 그 앞으로는 오늘 새벽에 올랐던 오성산과 나즈막한 무명봉들이 올망졸망 드러나 있다.

그렇게 홀로 오르며 자연을 벗삼아 오르니 다시 급경사 오르막 된비알이 나타나고 안전로프가 매달려 있다.

그 로프를 타고 된비알 오르니 우측으로 바위 정상이 있고 의미를 모를 유치산 정상석이 박혀있는 삼거리에 도착해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뱃바위 정상이다.

한참 전 잡풀 사이로 어렵게 찾았던 유치산 정상에 서 있어야 할 정상석이 왜 이곳 뱃바위 정상에 서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현실에 잠시 멍하니 바라만 본다.

배와 관련된 수많은 지명들이 보성땅을 지나며 이곳 순천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면 이곳도 그 옛날 배를 매놨던 바위란 뜻일텐데 이 높은곳까지 바닷물이 들었다는 것이 새롭게 다가오는 곳이기도 하다.

잘못된 유치산 정상석 저 멀리 752봉과 희아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낸 후 시원한 식수로 목마름을 달래고 등로 우측에 자리잡은 바위 전망대로 이동해 잠시 망중한을 즐겨 본다.

남쪽 저 멀리 조계산이 안개띠를 허리에 차고 봉우리만 솟아 올라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오늘 산행을 시작한 접치로 가라 앉았다가 오성산을 일으켰다 행정사거리로 내려 앉았다 다시 400미터에서 500미터로 이어지는 올망졸망한 마루금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산줄기가 환상의 잔영으로 뇌리에 박히는 시간이다.

그저 바라만 봐도 가슴속에 남아 있을 이런 풍경과 자연 때문에 그 무수한 고통을 견디며 또 그리워 할 것이다.

 

북동쪽으로는 오늘 올라야 할 752봉 헬기장과 그 좌측 저 멀리 곡성의 희아산이 푸른 하늘 위에 떠 있는 하얀 구름을 머리에 이고 당당히 서 있다.

저 희아산을 들릴 생각을 하고 있지만 들릴 수 있는 시간과 체력이 될련지...

오늘 못들린다 해도 언젠가는 섬진9지맥 산행을 위해 들릴 기회가 있기를 희망해 보는 희아산 정상이기도 하다.

 

남동쪽으로는 가까이에 드넓은 녹차밭이 있고 그 넘어 저 멀리 노고치 지나 우뚝 솟아 있는 문유산 방향의 호남정맥 마루금이 안갯속에 희미하지만 그 웅장함을 보여주고 있다.

한발 두발 걸어 저곳을 넘고도 또 한참을 더 진행해야 오늘의 산행 날머리인 송치재에 도착할 것이기에 벌써 한낮의 뜨거운 태양열과 지열 그리고 삼복 더위보다 더한 늦더위가 걱정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곳 뱃바위에서 오랫동안 쉬며 식수도 마시고 머물다 다시 배낭 둘러메고 752봉으로 향한다.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지만 가끔 나타나는 잡풀지데에선 등로 찾아 전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천천히 걸어 전진하니 다시 752봉 오름길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쉬며 주위 조망을 즐겼던 뱃바위 암봉이 우측에 우뚝 튀어 나와 있고 그 좌측 저 멀리 조계산에서부터 오성산 지나 유치산을 거쳐 이어져 온 호남 마루금이 안개속의 희미하지만 시원하게 조망된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니 많은 띠지들이 나풀거리는 곳에 도착해 살펴보니 이곳이 등로 좌측 752봉 지나 곡성의 희아산으로 이어지는 희아산 삼거리이다.

주저없이 등로 좌측의 짧은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넓은 헬기장이 나타나지만 관리가 안되어 잡목과 잡풀이 무성한 정상이 되어 보렸다.

정상 한쪽 나뭇가지에는 닭봉이란 종이 코팅지가 붙어 있고 그 아래 744봉이란 고도 표시가 되어 있는데 그 어느 지도를 찾아 봐도 나오지 않는 유령의 정상 이름과 고도표에 아쉬움이 묻어 나는 시간이다.

정확한 고증에 의해 정확한 정상 이름과 고도를 표기해 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은 이 산객만의 바램일련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닭봉이라 적혀있는 헬기장 정상의 잡풀을 모두 헤치며 삼각점을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하고 잠시 머물며 아쉬운 눈길로 북쪽에 위치한 희아산을 바라 본다.

오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오늘 산행 거리도 만만치 않고 더욱이 올해 들어 가장 무더운 날씨라니 몸조심이 필요한 생각에 아쉬움을 접는다.

산과 강이 어우러진 곡성은 섬진강과 보성강이 손잡고 흐르는 곳으로 효녀 심청의 고향인 이곳에 동악산, 통명산, 봉두산, 설산과 더불어 목사동면을 포근히 감싸는 희아산(764봉)이 있다.

이 희아산은 호남정맥에 연접하여 곡성의 목사동지맥으로 이어지는 산으로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 장군의 얼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옛적에 배를 매단 바위가 있었다는 산으로 지맥 상의 첫 봉우리인 희아산은 이른 봄에는 산벚꽃이 온 산을 하얗게 물들이고 나면 요염하고 화사한 진달래와 철쭉이 온 산을 불태우며 여름이면 원시림처럼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수려한 계곡과 수림이 멋들어지고 가을은 단풍과 야생열매 그리고 겨울이면 설경이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내 어느 계절에 올라도 멋진 산이 바로 곡성에 숨어 있는산 희아산이다.

 

희아산으로 달려가는 발길을 제지하며 아쉬움을 달랜 후 다시 희아산 갈림 삼거리로 내려 와 시원한 식수 한모금을 마시며 목마름을 달래본다.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10여분 내려가니 서서히 암봉과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등로 양쪽엔 제법 키큰 산죽들도 보인다.

지도상 암릉지대라 적혀 있어 의아해 했는데 직접 진행해 보니 왜 암릉지대란 이름이 붙어 있는지 실감을 해 보는 시간이다.

 

완만하게 이어지던 등로가 갑자기 급경사 내리막 등로로 변하면서 여간 조심그럽지 않다.

조금 더 진행하니 누군가 나뭇가지에 찌그러진 냄비 하나를 걸어 놨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사진에 담은 후 조금 더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잡목들이 사라지며 저 멀리 조계산에서 부터 이어져 온 호남정맥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온다.

그 마루금 위에 떠 있는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이 벌써 가을을 재촉하고 있지만 이 산객의 몸으로 느끼기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듯 보인다.

 

그러다 진행해야 할 앞쪽을 바라보니 노고치로 향하는 길목에 솟아 있는 413.2봉으로 연결된 산줄기가 예쁘게 다가온다.

평범해 보이는 산줄기이지만 이제 한낮의 열기가 온 세상을 들끓게 만드는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오기에 은근히 걱정도 되는 시간이다.

제법 많은 양의 식수와 이온 음료 그리고 맥주까지 준비를 했지만 왠지 모를 식수 부족 현상이 걱정도 되는 시간이기에 마음마저 무거워지는 시간이다.

이제 시간은 10시 30여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서서히 안개가 걷히면서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온 몸으로 파고 드는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그 흔적도 희미한 버들재에 도착해 사진 한장 남기는 것으로 만족한다.

배틀재라고도 불리우는 이곳 버들재는 순천시 월등면과 승주읍을 경계 짓는 고갯마루로서 그 옛날에는 민초들의 삶이 묻어 있는 제법 그럴듯한 고갯마루였다고 하나 이제는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의 흔적이 드물어 그 옛날 민초들의 애환도 함께 사라지는 듯 보였다.

맥 산행을 하면서 이런 사라지는 현장을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의 하나이지만 아음이 아파옴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버들재를 지나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한동안 진행한다.

완만히 고도가 높아짐을 느끼지만 심한 경급사 오르막이 아니기에 주위에 자라고 있는 잡목들을 살피며 여유있게 오르니 멋진 편백나무 숲을 지나게 된다.

그 편백나무 숲을 지나니 조금은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고 무심으로 걷더봏니 갑자기 무명봉이 나타나며 그곳 나뭇가지에 634봉 훈련봉이란 코팅 이정표가 나타난다.

아마도 지도상 나타나 있는 620봉으로서 훈련봉이란 정상이름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길 없으니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훈련봉이란 코팅지가 달려있는 620봉을 넘으니 이제부터 완만한 내리막 등로가 계속 이어지고 등로 주변엔 소나무와 제법 굵은 참나무 계열이 줄지어 늘어 서 홀로 진행하는 이 산객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그렇게 한동안 내려가니 다시 안부를 지나 짧게 올랐다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른다.

내려가다 보니 등로 우측으로 과수원이 보이고 잠시 사진 한장 담으려고 올라보니 아주 가까이에 민가 한채가 눈에 들어 온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과수원을 지나 내려가니 민가 한채가 있고 그곳으로 들어가 식수 좀 구하러 왔다고 하자 많은 연세가 드신 할머니 두분이 점심 식사 준비에 바쁘다.

이 산객이 태어난 고향에 살고 계시는 9순이 가까워진 어머님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시간으로 식수 좀 마시러 왔다고 하니 냉장고에 보관중이던 물 1리터를 모두 내놓고 마음대로 마시라 권하신다.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며 미안한 마음에 500미리 물통에 식수까지 채워 나오니 부자된 기분으로 고마운 인사를 건네고 돌아 나오니 가끔 종주대들이 들리는듯 아무렇지도 않게 고생한다며 격려까지 해 주신다.

 

그 민가 앞으로 나와 이제 식수 걱정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아래를 살펴보니 저 아래 노고치가 보이고 문유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마루금도 시원하게 조망된다.

저 노고치 가는 길에는 설산농원이 자리하고 노고치에 도착해 큰 이정석도 만날 것이다.

식수를 해결한 후 모든 걱정이 사라지니 아름다운 호남정맥 마루금이 다시 눈에 멋진 모습으로 다가오는 시간이다.

 

다시 과수원을 지나 정상 호남정맥 마루금으로 복귀해 짧은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 안부를 지난 후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잡풀이 우거진 413.2봉 정상에 도착해 박혀있는 삼각점을 사진에 담아 본다.

도상거리로 이제 반도 못왔는데 벌써 시간은 잘도 흘러 11시를 넘어가고 있다.

특히나 오늘 가장 무더운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는데 그것도 가장 덥다는 점심시간부터 오후 4시를 넘겨야 날머리에 도착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만 급해지기 시작한다.

 

소나무가 도열해 있는 등로를 타고 413.2봉을 넘어 전진하니 다시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고 이제 앞이 시원하게 펼쳐지며 노고치 지나 올라야 할 밤나무 및 매실 과수원과 그 넘어 우뚝 솟아 있는 611봉이 까마득히 올려다 보인다.

그래도 오랫만에 만나는 멋진 조망에 마음만은 편안하게 느긋한 발걸음으로 내려가는 시간이다.

이렇게 멋진 조망을 만나니 마음이 변해 늦으면 늦는대로 조망이나 마음껏 즐기자 생각하니 조금은 여유가 찾아든다.

 

그렇게 등로 좌측으로는 매실나무와 감나무가 조림된 과수지역이고 우측으로는 야산 그대로 남아 있는 경계를 타고 내려가니 금새 비포장임도와 만나고 그 임도를 타고 가파른 경사면을 내려가니 다시 시멘트 포장 임도로 바뀐다.

등로 우측으로는 편백나무 숲이 다시 기다리고 잠시 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차량 차단쇠사슬이 쳐져 있는 임도 삼거리를 만나 우측으로 진행하니 금새 875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노고치에 도착한다.

 

등로 우측엔 능선을 통해 노고치로 내려오는 능선 등로가 보이고 그 옆에 노고치란 이정목이 서 있고 거리표시가 되어 있다.

문유산(삼거리)까지 3.0 Km 가 남아있고 지나온 방향으로 유치산에서 4.6 Km 그리고 희아산에서는 4.0 Km 걸어 왔다는 거리 표시이다.

875번 지방도로를 만나 우측으로 진행하니 도로 옆 시멘트 옹벽 위에 커다란 노고치 이정석이 서 있고 그 뒤에는 벌써 곱게 물들어 가는 단풍이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다시 노고치 이정석을 담은 후 계속 진행하니 도로 우측 산 속에 대한불교미타종 덕암사란 입간판이 보이고 곧이어 설산농원 들어가는 임도지나 커다란 이정석이 서 있다.

매실농원과 축사도 겸하고 있는 듯 제법 큰 농장이 자리한 설산농원 저 위 방금 전 들려 시원한 식수도 얻어 마시고 물도 보충한 민가쪽 산들이 가깝게 다가온다.

여느 시골 풍경과 다를바 없지만 인심 좋은 할머님들로 인해 더욱 정답게 다가오는 마을 풍경이며 자연 경관이다.

 

그렇게 뜨거운 퇴약볕 아래에서 순천시 월등면 운월리와 승주읍 도정리를 이어주는 350미터 고도의 875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노고치와 이별을 고하고 좌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조용히 올라 본다.

조금 더 오르니 늘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서 봤던 농장지역이기에 등산객 출입금지란 안내판이 보이고 쇠봉이 등로를 가로 막는 지점에 도착한다.

주인에 대한 서운함 보다는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들이 이 농장에 피해는 주지 않았는지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드는 것은 왜 그런지...

안을 살피며 아주 조용히 그곳을 지나니 낡은 민가 한채와 그 옆에는 축사 두어동도 보인다.

다행히 주인장도 없고 아무도 보이지 않아 조용히 그곳을 빠져 비포장 임도를 타고 매실과수원 사이를 통해 오를 수 있어 다행이였다.

 

그렇게 잠시 더 오르니 나무 그늘도 없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면서 머리 위로 솟아지는 강렬한 태영 열기와 땅에서 올라오는 견디기 힘든 지열로 인해 제대로 된 산행이 힘들 지경이다.

등로는 과수원 우측을 통해 올라 좌측 능선으로 오르도록 되어 있는 듯 한데 주인장이 싫어하는 경로인듯 하여 계속 임도를 타고 올라가 본다.

두어번의 비포장 임도를 만나지만 늘 우측 임도를 타고 완만히 오르면 큰 무리는 없을 듯 하다.

 

그렇게 한동안 오르다 보니 벌써 무더위에 지쳐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매실나무 그늘에 배낭 내려 놓고 잠시 쉬면서 준비한 과일과 음료수 한병을 마시며 더위를 식혀 본다.

서쪽으로는 방금 전 지나 온 훈련봉이란 이정표가 있던 620봉과 413.2봉 그리고 등로 좌측으로 설산농원과 식수를 구한 민가가 있는 골짜기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 구름이 떠 있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에는 과수원이 존재하는 멋진 풍경이지만 이렇게라도 잘 보존되길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다.

 

다시 배낭 둘러메고 계속 완만한 임도를 타고 오르니 임도 좌측에 묘지 두어기가 있고 잘 벌초된 곳에 도착해 임도 좌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조망을 구경해 본다.

좌측에 닭봉이란 정상 이정표가 있던 752봉 헬기장을 중심으로 그 우측 능선을 타고 희아산이 시원하게 보이고 계속 북동쪽으로 이어져 가는 월등재와 삼산 그리고 비래봉과 신유봉 능선이 참으로 웅장하면서도 멋지게 다가온다.

언젠가는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꼭 한번 내려와 걸어 보고 싶은 산줄기들이다.

 

임도를 타고 끝까지 오르니 그 임도는 다시 직진의 능선으로 붙지 못하고 우측으로 길게 나 있다.

매실 과수원도 끝이나는 그 경계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그 능선속으로 들어가니 다행이도 주 호남정맥 마루금과 만난다.

그 주 능선을 타고 진행하니 처음에는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지던 등로가 서서히 가파라지기 시작하더니 한번에 오르지 못하고 두어번의 심호흡을 한 뒤 어렵게 점토봉 611봉이란 정상에 도착한다.

시간은 막 12시를 너기고 있어 이곳에서 남아 있는 김밥 한줄을 먹고 등산화까지 벗어 놓고 풍욕을 즐기며 한동안 쉬어 간다.

 

20여분 넘게 김밥도 먹고 여유를 가지고 풍욕도 즐기며 쉰 후 다시 배낭 둘러메고 611봉을 떠나는 발길이 가볍다.

잠시 내려가던 등로는 안부를 지나 다시 평이하게 이어지고 조금씩 고도를 높여 드디어 622봉에 도착하지만 특별한 표식은 없다.

다만 커다란 바위 하나가 정상을 지키고 그 정상에는 돌로 쌓은듯한 흔적이 정상 주위에 있어 특별한 봉우리인가 하고 찾아 볼 수 있는 그런 봉우리이였다.

그 622봉에서 앞을 바라보니 이제부터 올라야 할 고산 삼거리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실제로 올라가 보면 문유산 삼거리란 잘못된 이정목이 서 있어 헷깔리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잠시 더 머물다 622봉을 내려와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등로 우측에 묘하게 생긴 바위가 눈에 들어 와 사진으로 담은 후 다시 나즈막한 안부를 지난다.

조금씩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다시 많은 땀방울을 흘리니 생각보다 제법 큰 바위들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하고 그렇게 정신없이 땀방울을 등로에 뿌리니 갑자기 이정목 하나가 서 있는데 살펴보니 문유산이라 되어 있고 지나온 방향으로 노고재(치) 3.0 Km, 계월리(이문마을) 5.5 Km, 가야 할 좌측 방향으로 문유산 0.1 Km 및 바랑산 5.3 Km란 이정목상 거리표시가 되어 있는데 이 이정목부터 잘못된 것이니 믿을 수 없는 거리가 되어 버렸다.

 

다시 평이한 능선 등로를 타고 계속 진행하니 이제 조금씩 산들바람이 불어 와 흐르는 땀방울은 식혀주지 못하지만 그래도 살맛나는 산행 조건이 되였다.

잠시 더 전진하니 잡목 사이로 등로 좌측에 펼쳐진 월등면 계월리 마을이 눈에 들어 오고 우측 저 멀리 끝자락에 병풍산도 눈에 들어오지만 시원한 모습은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조금은 빠르게 진행해 본다.

 

다시 특이한 것 없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잡목 사이를 걸어 가니 드디어 저 멀리 문유산 갈림 삼거리가 눈에 들어 오고 등로 우측 나뭇가지에 매직으로 써 놓은 문유산 삼거리란 글귀와 우측으로 문유산 가는 희미한 등로가 열려 있다.

수많은 정맥 띠지들이 삼거리 좌측 등로가 어지럽게 붙어 있어 이곳에서 많은 종주대들이 쉬어 갔음을 짐작케하는 풍경이다.

고민 할 것도 없이 문유산 정상 방향으로 달려간다.

 

조금 완만한 등로가 이어지더니 서서히 고도를 높히기 시작하고 금새 등로 좌측으로 고사목들이 즐비한 민둥의 등로가 나타나더니 문유산 정상석이 있는 바위지대에 도착한다.

먼저 배낭 내려 놓고 순천 월등과 승주 사이에 솟아 있는 문유산 정상석에서 증명 사진 한장 남긴 후 뜨거운 태양빛이 내려 쬐고 있지만 느긋하게 주위 풍경을 감상해 본다.

오랫만에 즐기는 조망의 참 맛을 맛보는 시간이다.

 

먼저 남서쪽 저 멀리 가을 단풍과 천년 고찰인 선암사와 송광사로 유명한 조계산이 하늘에 맞닿아 있고 그 우측 앞쪽으로 오늘 산행을 시작한 접치가 내려 앉아 있으며 그 가운데 둥그스럼하게 올라온 오성산이 보이고 오성산 우측 저 멀리 호남정맥 산행을 하면서 오랫동안 함께 즐겼던 모후산이 우뚝 솟아 있다.

그 우측 산줄기를 타고 이어지는 나즈막한 연봉들의 호남정맥 마루금이 끊어질듯 이어지며 이 산객이 머물고 있는 문유산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조계산 좌측인 남쪽으로는 고동산을 비롯해 낙안면의 낙안읍성을 둘러싸고 있는 연봉들이 보이고 고흥반도로 이어지는 산줄기들이 끝도 없는 산그리메를 그리며 장관을 이루고 있다.

가까이 보이는 승주의 나즈막한 산줄기와 경작지들이 또한 평범한 민초들이 살아가는 평안한 모습을 보여 주지만 그곳 역시 숨기고 싶은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니 많은 서러움이 남겨진 땅이다.

 

동쪽으로는 도목목장 지나 바랑산으로 이어진 멋진 마루금이 보이고 좌측 뾰족봉으로 솟아 있는 바랑산이 오늘 산행의 마지막 목적지임을 알려 주고 있다.

그 뒤로 끝없이 펼쳐진 산그리메를 따라 가다보니 저 멀리 희미하게 지리연봉도 들어오고 호남정맥 마지막 높은 봉우리인 백운산도 가물거린다.

작년 홀로 매화 산행에 나섰다가 억불봉과 광양 백운산에서 좋은 인연을 맺었던 산객을 생각해 내곤 홀로 웃음 지어 본다.

 

북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그토록 찾아 헤매였던 지리 연봉이 아주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얼마만에 만나는 어머니 같이 포근한 산이던가

그저 상상만으로도 가슴 설레이던 지리산을 이렇게 또 만날 수 있음에 감사 드리며 하늘에 떠 있는 하얀 뭉게구름조차 오늘 이 인연을 소중하게 만들어 주는 듯 그렇게 그곳에 떠 있다.

 

더 머물고 싶지만 이제 또 발길을 돌려야 할 시간이다.

돌아 내려오기 전 남동쪽에 넓게 펼쳐져 있는 고사목을 담은 후 정상 바위와 잡풀들을 다시 찍고는 올랐던 등로를 타고 빠르게 내려가 문유산 갈림 삼거리로 뒤돌아 내려간다.

해발 662미터의 높이에 있는 문유산 갈림 삼거리란 이정표를 정성스레 남겨준 산님에게 감사한 마음 전하며 이제 우측 정맥 등로를 타고 빠르게 내려가 본다.

 

문유산 갈림 삼거리에서 다시 천천히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한다.

지도 상 만우재란 곳에 도착한 듯 유심히 살피며 진행하는데도 왜 만우재인지 알 수 없는 지명 이름에 헷깔린다.

다른 지도에는 도목 이문 임도 사거리란 표시가 되어 있는데 그 임도는 아직 멀은듯 한데 왜 이렇게 다른 내용의 지도들이 생겼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조금 더 신경을 쓰며 진행하지만 역시 만우재에 관한 자료를 찾지 못하니 아쉬운 마음 뿐이다.

 

만우재라 생각되는 안부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잡목 사이로 저 아래 임도가 나타나고 곧이어 그 임도위에 도착한다.

문유산에서 내려오는 쪽에 문유산방향임도란 이정목이 서 있고 임도로 내려서서 우측으로 5미터쯤 올라가니 임도 좌측 들머리에 또 다른 바랑산방향임도란 이정목이 서 있고 바랑산까지는 3.3 Km 가 남았다는 거리표시가 되어 있다.

너무나 뜨거운 태양열로 인해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빠르게 바랑산방향 능선으로 올라 계속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다시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굵은 땀방울을 흘려 본다.

약간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 주지만 오르막 사면 능선 등로로 붙으면 바람 한점 불지 않는 찜통 더위를 실감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어려운 조건을 헤치고 코가 땅에 닿을 듯 오르니 금새 잡목과 잡풀이 우거진 지도상 590봉에 도착한다.

590봉에 오르니 우측으로 도목목장이 보이고 앞쪽으로는 500봉의 사면이 보이는데 과수원을 만드는지 아니면 농원을 꾸미는지 최근에 사면이 온통 파헤쳐 진듯 붉은 산판도로가 그냥 드러나 있다.

 

혹시나 하고 590봉에 올라 삼각점이나 이정표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계속 이어간다.

조금 내려가니 최근에 개간된 듯한 농장지대가 나타나고 벌목된 좌측 저 멀리 군장마을 뒷편으로 오늘 올라야 할 마지막 봉우리인 바랑산이 높게 나타난다.

살펴보니 이곳부터는 좌측 가운데에 군장마을을 두고 우측 개간되고 있는 능선을 타고 반바퀴 이상을 돌고 돌아 바랑산으로 걸어가야 하는 마루금의 형태이다.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지만 농장과 목장까지 하고 있는지 왠지모를 부촌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곳이기도 한다.

 

590봉에서 안부로 내려가니 등로 좌측은 완전히 개간되어 묘목이 심어져 있고 지도상에 나타나지 않은 새로 생긴 산판도롱[ 도착해 앞으로 올라야 할 500봉을 바라보니 파란 물통이 보이고 개간지와 그 개간지 위 봉우리에 조금 남아 있는 산의 형태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붉게 피어난 백일홍 즉 배롱꽃이 산객의 어려운 순간을 웃음으로 맞이해 준다.

 

잠시 임도를 타고 진행할까 고민도 해 보지만 늘 지난 후 후회하기에 이번에는 배롱나무 사이로 난 등로를 타고 우측 능선으로 붙어 500봉 정상으로 향한다.

한동안 뜨거운 태양빛을 받으며 배롱나무 식재지를 지나니 다시 능선으로 등로가 이어지고 그 능선으로 들기 직전 잠시 뒤돌아 바라보니 방금 전 내려온 590봉과 저 멀리 좌측으로 봉우리만 내밀고 있는 문유산이 보인다.

진행하며 이렇게 그 이름을 불러 볼 수 있음에 얼마나 감사한 마음인지 모른다.

 

바위 몇개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고 그 위 잡목 가지에 정맥 띠지 몇개가 나풀거리는 500봉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좌측인 동쪽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고 내리막 사면길로 접어드니 등로 좌측으로 개간된 농장지대에 작은 묘목들이 심어져 있다.

그곳을 통해 다시 임도로 내려가는 도중 너무나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와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그곳에 자리펴고 남아 있는 시원한 캔맥주 하나와 포도 과일로 허기와 목마름을 달래는 시간이 꿈결같은 시간이다.

잠시 누워 땀방울을 식힌 후 다시 내려가니 새로 난 임도가 나타나고 위를 올려다 보니 등로 좌측으로 식재된 배롱나무들이 아쉬운 이별을 고하고 있다.

 

새로 난 임도에 내려서니 좌측으로 작은 민가 한채가 보이고 등로는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5미터쯤 가면 다시 좌측으로 난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한동안 오르니 그 임도도 잘려진 나뭇가지들로 막혀있고 등로는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며 급경사 오르막 된비알로 변한다.

다시 많은 땀방울들을 흘리며 오르니 다시 배롱나무가 식재된 정상부에 도착해 방금전 쉬면서 얼어있는 캔맥주 하나를 마셨던 지나온 500봉 능선이 시원스레 조망된다.

그 500봉 우측 능선으로는 배롱나무를 식재하기 위해 개간된 장면이 내려다 보이고 중간중간에 새로 만든 비포장 임도인 산판도로도 보인다.

 

이제 특별한 어려움 없이 평이한 등로를 타고 하염없이 걸어가는 시간이다.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계속 이어지지만 큰 어려움이 없기에 체력적으로 힘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은 생각보다 무척 빠르다.

그렇게 한동안 진행하니 등로가 다시 좌측인 북쪽으로 크게 휘돌아 진행되고 조금 더 진행하니 잡풀이 무성한 넓은 공터에 도착한다.

처음에는 그냥 무심코 지나치다 잡풀사이로 보이는 헬기장 표식을 보고 지도를 살펴보니 약 560봉 헬기장이다.

 

다시 올망졸망한 등로를 타고 큰 표시도 없이 올랐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니 갑자기 등로가 완만히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그렇게 진행되다 금새 바랑산 갈림 삼거리에 도착한다.

등로 우측으로 수많은 정맥 띠지들이 나풀거리며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지만 좌측 오르막 등로쪽에도 붙어 있는 띠지를 따라 바랑산을 잠시 다녀온다.

바랑산 정상에 오르니 정상석이 서 있고 그 바로 뒤에는 산불감시초소 2개가 나란히 서 있다.

너무나 뜨거운 열기로 인해 바랑산 정상을 가로질러큰 묘지를 지나니 나무 그늘이 보이고 그곳으로 들어가 잠시 쉬며 남아 있는 음료수와 식수를 마셔 본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정상으로 돌아 나와 주위 조망을 살피며 사진 몇장 남겨 본다.

남쪽으로 순천시와 상사호 그리고 고흥반도와 순천만쪽 풍경을 담아 보지만 역시 산줄기에 막혀 보이지 않는 조망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끝이 없이 구비쳐 흐르는 산그리메가 환상을 노래하는 시간이다.

 

남서쪽 저 멀리에는 여전히 그 고귀한 자태를 드러내며 오랫동안 종주대와 함께했던 조계산 줄기가 시원하고 그곳에서 오늘 걸어 온 오성산과 호남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 위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하얀 뭉게 구름이 햇살을 받아 더욱 뜨겁게 달궈지는 모습에서 오늘이 얼마나 덥고 뜨거운 하루인지 실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동쪽으로는 앞으로 두어번 남아 있는 호남정맥 마지막 구간으로 통하는 백운산 구간이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좌측 저 우 멀리에는 지리연봉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지만 잡목들과 산등성이로 인해 조망이 좋지 못하다

그래도 파란하늘과 그 위에 떠 있는 하얀 구름들 그리고 그 아래 펼쳐져 있어 이 산객을 부르는 호남정맥 마루금이 있어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는 순간이다.

 

뒤돌아 보니 배롱나무 식재지가 있는 파헤쳐진 500봉에서 부터 이곳으로 이어져 온 정맥 마루금이 또한 환상으로 남아 있다.

참으로 위대한 인간의 발걸음을 다시 한번 실감해 보는 시간이다.

저 500봉 내리막 등로에서 바라볼 때만 해도 까마득히 멀리 보였던 바랑산이였는데 어느새 이곳 바랑산 정상에 서서 그 500봉을 보고 벌써 추억에 잠겨 회상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이곳 바랑산에서의 조망도 너무나 뜨거운 태양열로 인해 마치고 배낭을 둘러메고 내려가며 바위 위에서 남쪽에 보이는 순천을 담아 본다.

오랫만에 보는 고층의 아파트 단지들과 수많은 민가들이 또 새롭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생태의 보고로 이름난 순천, 순천에 가 돈자랑하지 말라는 옛 선인들의 글귀가 문득 생각나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

 

바랑산에서의 멋진 조망을 즐긴 후 다시 바랑산 갈림 삼거리로 내려 와 좌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잠시 더 내려가니 잡목이 사라진 사이로 내려가야 할 등로와 17번 구 지방도로 및 송치재와 그곳에 세워진 연수원 붉은 건물도 한눈에 들어 온다.

그 뒤로는 다음구간 올라야 할 농암산과 백운산으로 이어진 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고 좌측으로는 정맥에서 벗어 나 있는 병풍산의 암벽이 햇살에 빛나고 있다.

 

구례와 순천을 이어주는 순천터널 위로 구 17번 지방도로와 송치재에 위치한 붉은 건물의 어느 교회 연수원을 줌으로 당겨 담아 본다.

제법 가깝게 자리한듯 보이지만 저곳으로 내려가기 위해 1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이기에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송치재 연수원 건물 위 좌측으로 병풍산 가는 길목에도 무슨 전망대인지 대형 버스도 서 있는 모습도 보인다.

이제 정말 멀고도 길었던 하루가 마무리 될 순간이다. 

그러다 다시 내려가는 길목에서 바라 본 앞으로 마무리될 백운산으로 이어진 호남정맥 마루금이 환상이다.

하늘에 떠있는 하얀 구름이 파란 하늘과 대비되며 환상을 노래하고 그 아래 끝도 없이 펼쳐진 호남정맥 마루금이 이 작은 산객의 가슴에 파고 들며 또 켭켭히 쌓이는 추억을 만들고 있다.

저곳에 올라 오늘 이 시간을 추억하는 시간이 곧 올 것이기에 오늘의 생생한 영상을 다시 돌려 볼 것이다.

 

이제부터 내리막 등로로만 생각을 했는데 어디 정맥 산행이 그렇게 쉽게 호락 호락 넘겨주겠는가.

내리막 등로를 한동안 내려가니 다시 440봉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마지막 투혼을 더해 어렵게 오르니 이제부터는 진짜 내리막 등로로만 이어져 있다.

잡목 터널도 이제 아름답게 등로를 단장하는 풍경으로 남는다.

이런 풍경조차도 가슴속에 남아 추억이 되는 시간이다.

 

이제 순천터널을 지나는 차량들의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는 묘지 2기가 있는 장소에 도착하니 급경사 내리막 등로도 순하게 변하면서 북동쪽으로 암봉의 병풍산이 눈 앞으로 펼쳐진다.

잠시 배낭 내려 놓고 식수를 마시며 주위 조망을 마지막으로 즐겨 본다.

참으로 늦더위로 인해 고생하며 어렵게 진행한 맥 잇기 산생이였지만 마지막 장소에 도착하고 보니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다.

 

다시 잡목이 우거진 사이로 시원하게 뚫려있는 터널을 타고 빠르게 진행해 본다.

노고치까지는 잡목과 안개 그리고 이슬방울로 인해 조금은 늦은 진행을 하였지만 그 이후로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을 하였는지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멋진 나무들을 지나 이제 막바지 산행 날머리를 향해 전진한다.

 

마지막으로 송치재 넘어 다음구간 마루금을 살펴보고 저 멀리 끝임없이 이어져 가는 산그리메가 절경으로 다가오는 시간이다.

이제 곧 송치재에 도착할 시간, 5분여만 지나면 마무리 될 것이다.

조금은 무거워진 발걸음이지만 이제 마지막 힘을 짜내는 시간이다.

다음 구간에 저곳에 올라 이곳을 바라본다 해도 어둠속에 지나야 하기에 아쉬움이 남을 것이기에 한동안 가슴에 담아보는 풍경이다. 

이제 송치재로 내려서기 직전 우측으로 순천터널을 지나 순천으로 향하는 도로와 아파트촌을 담아 본다.

참으로 자주 들렸던 곳이지만 이렇게 맥 잇기 산행을 하면서 바라보는 풍경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또 언제 저곳을 통해 애마를 달리며 오늘을 생각해 볼 수 있을련지, 그래도 꿈을 가지고 내려가 본다.

 

그렇게 나즈막한 평이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어두운 안개속에 만났던 송치재 이정목에 입맞춤하며 오늘 산행의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일요일 새벽 다시 내려 와 만날 것을 약속하며 간단히 배낭 정리한 후 폭포수처럼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애마를 몰아 계곡으로 향한다.

 

순천시 서면 학구에서 황전면 송치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사람들은 소련재라고 부른다.

소련재 동쪽 산봉우리에서 황전면 쪽으로 내려가자면 묘비가 있는데 거기엔 솔연치로 새겨 있으며 고개 정상 주유소가 있는 곳엔 송치라 새겨 놓았고 황전면의 마을을 송치(촌로들은 산골내기라 부름)라고도 한다.

고개는 하나인데 그 이름은 여러 가지이다.

난중일기에는 정유년(1597년) 4월 27일에 순천 송원에 이르다란 기록이 있으며 이수광은 승평지에 송현원이라 기록하였다.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912)에 송원리와 와요리가 보인다.

고개의 이름이 솔재인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뜻옮김을 해 송치와 송현으로 적었고 그 고개에서 서면 계곡에 나라에서 경영하던 원을 설치하고 송원과 송현원으로 이름했지만 사람들은 한자대로 부르지 않고 솔원이라 불렀던 것 같다.

그리고 솔원이 있는 재란 뜻으로 솔원재라 부르면서 옛 이름인 솔재는 잊어 리고 말았다.

다만 문헌에 송치라고 기록되어 있어 도로를 확, 포장하며 송치라 새겨 세운 것이다.

그리고 재 아래 마을이름으로 사용된 것이다.

솔원재가 소련재로 바뀌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한 사람들이 어째서 소련재라고 하였을까 궁금해하며 한국전쟁 때 소련군이 이 재를 넘어왔다고 소련재라고 하였을까 하고 의아해 했다고 한다.

요컨대 솔재가 원이름이고 이를 한자로 송치와 송현으로 표기했으며 관리나 나그네가 머물다 가는 원을 설치하고 송원이라 이름했다.

한자대로 부르지 않고 솔원이라 불러오다가 솔원이 있는 재란 뜻으로 솔원재라 불렀으며 거기서 소리가 변해 소련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역원제가 폐지되면서 그곳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그대로 눌러 살기 때문에 마을이름이 되었다.

래서 일제의 자료에 송원리로 기록된 것이다.

 

송치재에서 17번 구도로를 타고 구례쪽으로 달려 계월리 계곡으로 들어가 시원하게 알탕으로 몸의 땀방울을 닦아내니 살것 같다.

옷을 갈아 입고 사업 파트너를 만나 잠시 이야기 더 나눈 후 황전 IC를 통해 서울로 복귀한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조건에서도 무탈하게 한구간 조각 맞추기를 끝내며 스스로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본다.

 

이제 호남정맥도 세구간만 남겨 놓고 있다.

이번 주 일요일 다시 한구간 더 오르면 10월 첫째주에 그 대단원의 막도 내릴 것이다.

이제 하나 남아 있는 낙남정맥 산행을 위해 준비한 후 낙동정맥 산행과 함께 9정맥도 무탈하게 완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시간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