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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산행(완료)/호남정맥(완료)

호남정맥 제23구간 참샘이재에서 토끼재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1.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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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구례군과 광양시의 호남정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0년 09월 17일과 18일 (무박 2일 일요 산행)

산행날씨 : 새벽엔 짙은 안개로 시야 제로였다가 아침부터 야간의 바람과 함께 무척 더웠던 날씨

산행온도 : 영상 21도에서 영상 29도

산행인원B산악회 41명 따라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논실마을 주차장-한재 2.3 Km 이정표-공용버스 정류장-청기암골-도솔봉 갈림 삼거리-참샘이재(정맥 들머리, 따리봉 0.8 Km 이정표)-따리봉 0.6 Km 이정표-나무 계단 1-따리봉 0.5 Km 이정표-나무계단 2-안전로프 지대-나무계단 3-따리봉 0.3 Km 이정표-안전 철봉과 로프 지대-나무계단 4-따리봉 0.2 Km 이정표-안전 철봉 및 로프 지대-전망데크-나무계단 5-따리봉 전망데크-따리봉(1127.1봉)-따리봉 삼거리(밥봉 및 남도대교 갈림 삼거리)-헬기장-안전 철봉과 로프 지대-한재 1.0 Km 이정표-한재 0.7 Km 이정표-한재 0.4 Km 이정표-한재(논실 및 하천 하산 사거리)-나무계단 6-정상 2.1 Km 이정표-염창 매화랜드 갈림 삼거리-헬기장-바위 지대-정상 1.6 Km 이정표-정상 1.1 Km 이정표-나무계단 7-나무계단 8-목책 지대-정상 0.8 Km 이정표-1201 암봉지대-나무계단 9-계단 10-신선대-내리막 암봉지대-계단 11-바위 너덜지대-정상 0.4 Km 이정표-계단 12-정상 0.2 Km 이정표-계단 13-백운산 정상 암봉지대-백운산(1218봉)-매봉 3.6 Km 이정표-내회 3.5 Km 이정표-전망 바위-내회 2.5 Km 이정표-폐헬기장-1115봉-내회 갈림 삼거리-1016봉 폐헬기장-매봉 1.8 Km 이정표-매봉 1.3 Km 이정표-827봉-매봉 0.8 Km 이정표-매봉 0.4 Km 이정표-폐헬기장(군 표시물 95-707-64)-매봉(865봉, 아침식사, 관동 7.1 Km 이정표)-항동마을 갈림 삼거리(쫓비산 8.8 Km 이정표)-고사마을 갈림 삼거리(쫓비산 7.7 Km 이정표)-588봉(삼각점 및 헬기장)-512.3봉-게밭골(지도상 천황재, 관동마을 갈림 삼거리, 쫓비산 3.9 Km 이정표)-437봉-395봉-갈미봉(519.8봉)-물개바위-496봉 바위 전망대-538봉-쫓비산(536.5봉)-청매실농원 갈림 삼거리-506봉-소나무 군락지-느랭이골 휴양림 조망-토끼재(863번 지방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2.40 Km (정맥 20.10 Km와 접속구간 2.3 Km 논실마을에서 참샘이재까지) 

산행시간 새벽 안개와 한낮의 더위로 쉬엄 쉬엄 사진 찍으며 10시간 20분

             (03시 15분에서 13시 35분까지)  

             

 

호남정맥이란 ???

우리나라 서남부 문화권을 나누는 의미 있는 경계선으로 산경표를 보면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이 분기하고 그 산줄기가 다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으로 나뉘며 호남정맥은 그 시작점이 웅치(현재 지명으로 곰치재)라 적혀 있는 총 산행거리 398.7 Km의 산줄기이지만 어느 산꾼들은 백두대간 영취산이 호남정맥의 시작점이라 하여 총 산행거리 462 Km의 산줄기라 하기도 한다.호남정맥은 동쪽으로 섬진강을 서쪽으로는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을 가르고 있으며 주요한 산들을 살펴보면 3정맥 분기점인 주줄산(주화산)에서 남서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완주 만덕산(762m)을 지난 후 내장산(763m), 추월산(729m), 무등산(1,187m), 제암산(779m), 조계산(884m) 등 남도의 큰산을 지나 광양 백운산(1,218m)을 끝으로 섬진강과 남해바다가 만나는 곳 망덕산(197봉) 앞 바다로 흘러드는 산줄기를 말한다.

 

 

백운산에 올라 호남정맥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생각하며 추억을 만났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하여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오랫만에 온누리산친구들과 관악산에 오른 후 내려가는 호남정맥 산행이기에 마음의 부담이 적지 않았고 또한 다음 주 월요일부터 한국에 나오는 본사 회계 담당자와의 협의가 마음을 무겁게 만들지만 이렇게 건강한 몸을 이끌고 맥 산행에 나설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함께 산행을 하면서 가깝게 지냈던 산친구들과의 만남은 늘 아쉬운 추억속에 묻히고 이렇게 산행 후기를 정리하는 시간에나 다시 그 그리움을 토해내는 만남으로 남겨진다.

 

이제 호남정맥도 이번 구간 포함에 두 구간만 남겨두고 있다.

한발 두발 걸어 내려간 시간이 벌써 1년을 넘기고 전라북도 장수에서 시작한 맥 산행도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광양의 남쪽 바다에 그 맥을 내려 놓으며 사라지는 산줄기를 따라 이 산객의 마음도 잠시 내려 놓는 시간을 가져 볼 것이다.

그동안 만나고 헤어져야 하는 또 다른 산친구들이 아쉽고 안타깝지만 산을 좋아하는 산꾼들이니 산에 오르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만나 탁배기 한잔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토록 몸이 달아 한걸음에 치고 올라간 광양의 백운산을 앞에 두고 신신대 암봉에 오르니 한치 앞도 보여주지 않던 안개가 강한 바람에 살짝 뒤로 물러나며 한폭의 수묵화를 펼쳐 보이고 있다.

그 어두운 수묵화를 밝혀 주기라도 하듯 이미 떠 오른 일출이 두꺼운 구름에 막혀 빠져 나오지 못하고 동쪽 하늘에 걸려 환상의 운해쇼를 펼쳐 보이는 백운산 산상에 환상의 잔영으로 남겨진 수묵화를 내려다 보며 그 어둠을 몰아 내 주고 있다.

백운산 정상에 올라 만나려던 일출도 사라진 시간이기에 이렇게 신선대에 앉아 신선이 기분으로 한동안 멀고도 길었던 호남정맥 산행에 대한 감회를 뒤돌아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맑고 화창한 날씨에 아름다운 조망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렇게 비경의 수묵화를 보여주는 백운산 자락이 어쩌면 이 산객의 가슴속엔 더 오랫동안 남아 영원히 잊지 못할 호남정맥의 한자락으로 기억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관악산에서의 무더운 산행도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시간, 멀고도 긴 버스 탑승 시간을 뒤로 하고 꼬불꼬불 이어진 동곡계곡을 타고 지난 구간 내려 온 논실마을로 향하는 마음은 설레임과 걱정이 교차하는 시간으로 남겨진다.

2년전 매화꽃 구경을 왔다가 홀로 억불봉으로 올라 백운산과 호남정맥 마루금을 장장 12시간에 걸쳐 걸었던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기에 어둠속이지만 낯설지 않은 친근감으로 다가오는 공간이다.

산행 준비 후 한재까지 2.3 Km 이정표를 지나 시멘트 임도를 타고 산행을 출발하는 새벽 3시 10여분이 넘어가는 시간은 어둠속에 고요히 잠겨있다.

 

광양시 홈페이지에 들어 가 버스를 타고 지나 온 동곡계곡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다.

옥룡면 동곡리에 위치한 동곡계곡은 백운산(1218봉)과 한재, 따리봉 참샘이재, 도솔봉 남쪽 사면을 따라 흐르며 백운산 계곡 중 가장 크고 길며(약 10 여km) 계곡 주변을 따라 자연과 조화를 이룬 민박집들이 많다.

옥룡면 동곡리에 위치한 동곡계곡은 백운산 계곡 중 가장 크고 길며, 교통이 편리하고 폭이 넓어 가족 단위 피서지로 인기가 높다.

백운산 정상과 따리봉 사이의 한재에서 발원한 동곡계곡은 광양읍 동천을 거쳐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실제 길이가 10km에 이르고 학사대, 용소, 선유대 등의 비경이 있으며 가을철이면 울긋불긋한 단풍과 어울려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울창한 수림으로 우거진 백운산은 한라산 다음으로 식물분포가 다양하고 보존이 잘 되어 있어 자연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현재 980여종이 자라고 있는데 백운산에서만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희귀식물은 백운란, 백운쇠물푸레, 백운기름나무, 나도승마, 털노박덩굴 등이고 특히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고로쇠나무의 수액은 광양 백운산의 자랑이기도 하다.
계곡 초입에 있는 학사대 주변은 조선 중종때의 유학자 신재 최산두 선생께서 소년시절 10년 동안 학문을 닦았던 곳이다.
동곡계곡은 이외에 상백운계곡과 병암계곡이라는 지류를 품고 있는데, 특히 병암계곡의 병암폭포는 절경으로 손꼽을 만 하다.

 

 

 

늘 초반부 페이스가 중요하기에 중간 후미에서 홀로 오르는 산행이 되였다.

등로 좌측에서 들려오는 새벽 계곡 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오지만 그 소리를 음미하기도 전에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몸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굵은 땀방울이 시멘트 임도를 적시는 사이 그 시멘트 임도가 끝이나며 커다란 바위들이 널려있는 너덜지대를 지난다.

커다란 바위를 타고 조심하며 오르니 바위 틈 사이에 세워진 도솔봉 갈림 이정표 하나가 눈길을 잡으며 삼거리라 안내를 해 주고 있다.

여기에서 잠시 이곳 지명인 옥룡과 논실마을에 대한 공부를 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옥룡이란 마을 이름은 통일신라시대 이전에 옥룡면 추산리 동백림에 있었던 옛 옥룡사 이름을 따서 옥룡이라 하였다고 전해오는데 의미는 하늘로 비상하는 용을 지칭하며 고을지명이 될 때는 융성하는 고을 또는 날로 번영하는 고을이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풍수 지리설의 대가인 도선국사 또한 이곳 옥룡사에 와서 이곳 절을 중창하고 35년간 입적할 때까지 오래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오늘 종주대가 산행을 시작한 동네 이름이 논실인데 그 유래를 찾아 보니 광양12실중 한곳으로 옥룡면 답곡마을인데 이 마을은 동곡계곡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하면서도 논이 많은 마을이라 하여 논실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또 지리와 역사 공부를 해 보는 시간으로 남겨 본다.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다시 가파른 바위 너덜 등로를 타고 한동안 땀방울 솟아내니 저 멀리 종주대의 말소리가 들리고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벌써 참샘이재에 도착을 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 다가가 보니 바위 너덜이 끝나는 지점에서 모든 종주대가 쉬면서 후미를 기다리고 있다.

재빨리 배낭 내려 간단히 시원한 식수로 몸마름을 달랜 후 후미가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다시 오르기 시작해 더욱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참샘이재에 도착을 한다.

광양의 옥룡에서 구례를 가려면 넘어야 했던 고갯마루였는데 이제 교통이 발달해 사라져 가는 고갯마루로서 그 이름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듯 보이는 참샘이재이다.

약 1시간 가까이 줄기차게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접속구간을 통과한 후 이제부터 본격적인 정맥 산행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참샘이재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우측 가파른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천천히 걸어 본다.

잠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편안한 등로가 이어지고 아침 이슬 머금은 풀잎이 산객들의 움직임에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등로로 비산하고 있다.

짙은 안개로 인해 비에 젖은 듯 축축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점점 더 짙어지는 안개가 시야를 가리지만 길가에 세워둔 이정표가 길라잡이를 자청하며 길 안내를 해 주고 있다.

금새 따리봉까지 0.6 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자마자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이런 나무계단은 백운산 정상에 도착할 때까지 수없이 자주 나타난다.

 

 

 

다시 나무계단을 타고 올라 조금 더 걸어가니 이제 따리봉까지 0.5 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반기고 곧바로 긴 나무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가쁜 숨 몰아쉬며 그 나무계단을 오르니 이제는 안전철봉과 로프가 달려있는 등로로 변하면서 등로가 조금은 가파라지고 험악하게 변해가고 있다.

또 다시 이어진 나무계단을 올라 이제 따리봉까지 0.3 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니 절개지를 연상시키는 가파른 등로가 이어지며 등로 양쪽으로는 안전 철봉과 로프가 다시 달려 있다.

 

 

 

위험하지는 않지만 조금은 힘을 써야하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다시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고 이제 따리봉까지 0.2 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그 이정표를 지나자마자 아주 가파른 오르막 등로엔 커다란 바위가 놓여 있어 다시 한번 힘 한번 크게 쓰고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조금은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에 오르니 우측 저 아래로 펼쳐진 광양시의 야경이 아름답게 빛난다.

지나치지 못하고 캐논 DSLR 카메라를 꺼내 어렵게 야경 한장 건지고 돌아서니 벌써 구례에서 밀려오는 안개가 참샘이재쪽 고개를 넘어 광양으로 폭포수가 되어 흐르며 점점 더 세상을 안개속에 몰아 넣고 있다.

 

 

 

아래는 절벽처럼 보이는 그곳 전망대에서 광양시의 야경 한장 건진 후 다시 오르니 저 멀리 앞 따리봉에 오른 산우님들이 잠시 쉬며 사진도 찍고 고함도 질러 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다시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따리봉 정상에 도착하고 그 앞 넓은 나무데크 전망대에서 또 한번 광양의 야경을 담는 것으로 따리봉과의 만남을 대신해 본다.

정상석은 조금 높은 위치에[ 아담한 크기로 놓여 있고 그 옆에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형제봉과 한재쪽 이정표가 서 있다.

왜 따리봉일까 무척 궁금했는데 어렵게 자료를 찾다보니 광양의 향토사학자 김광호씨의 자료를 찾아 그 뜻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였다.
백운산 산줄기 속한 따리봉(해발 1127.1봉)은 1760년에 제작된 여지도서에 읍봉(揖峯)으로 돼있으나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제작된 광양군지에는 즙봉(楫峯)으로 잘못 표기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즙(楫)은 배를 저을때 쓰는 노의 아랫부분에 달린 넓적한 나무판을 가리키는 것으로 일명 따리라고 부르는데 지금의 따리봉은 여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본래 읍봉(揖峯)의 읍(揖)은 좌우의 손을 가슴에 모아 앞으로 내리며 예의를 나타내는 것으로 불경에서 다라니(多羅尼)경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따리봉이 아닌 다라봉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리있는 주장으로 생각되며 이런 것조차 일제의 잔재로 남겨져서야 되겠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 봉우리 이름이다.

 

 

 

너무나 짙어오는 안개로 인해 실루엣으로 그 모습을 보여주던 도솔봉도 완전히 안개속에 묻혀 버렸다.

이제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그런 새벽 시간, 그래도 이정표를 보고 육감에 의지해 나침판 하나를 믿고 다시 따리봉을 출발해 본다.

잠시 큰 바위를 어렵게 내려가 조금씩 가파라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다 보니 안개속에 금새 다시 이정표 하나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등로 좌측으로 밥봉을 지나 화개장터가 있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는 남도대교 하산 갈림 이정표이다.

이곳에서 화개장터까지 약 11 kM 거리임을 알 수 있는 이정표로서 언제 한번 꼭 걸어 화개장터로 내려 갈 기회가 주워지길 간절히 바라는 시간이다.

 

 

 

같이 진행하던 종주대 한명은 따리봉 정상의 나무데크에 서서 보이지도 않는 후미를 기다리며 함께 진행하겠다는 소식이기에 이제부터 홀로 걸어가는 시간이다

참으로 아쉬운 시간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에 조금씩 더 가파라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다 보니 넓은 헬기장처럼 보이는 공터가 보이지만 사진을 나기려 해도 안개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다.

다시 천천히 발길 돌려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왠일인지 발가락이 아파오기 시작하고 등산화를 벗어 보니 어제 관악산 오를 때 신었던 등산화가 잘못 되였던지 커다란 물집이 생겼다.

고통을 참으로 내려가니 점점 더 경사가 심해지며 얼마전 내린 비로 인해 등로에 작은 물골이 생겼다.

그래도 한발 두발 걸어가는 산객의 두 발걸음이 위대함을 알려주듯 이제 한재까지 0.7 Km 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반긴다.

 

 

 

그렇게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중간에 커다란 바위들이 보이고 그곳을 피해 내려가니 등로 우측에 커다란 통나무 의자가 보이는 듯 한데 짙은 안개로 인해 사진에는 잡히지도 않는다.

이제 한재까지 0.4 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 계속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한재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 보지만 안개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기에 그저 이정표 몇장 남기고 만다.

이 한재는 광양과 구례를 이어주는 주 교통로로서 그 역활이 컸었지만 지금은 황폐화 되어 버린 고갯마루로 변해 버렸다.

 

 

 

보이는 것이 없기에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한재를 떠나 평이한 등로를 따르지만 짙은 안개로 인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으니 넓은 등로 찾기도 힘이 든다.

그래도 천천히 오르니 다시 나무계단이 앞을 가로막고 그 계단을 타고 올라 조금 더 진행하니 한재에서 0.5 Km 올라왔고 정상까지 2.1 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다시 3분여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염창 및 매화랜드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다.

염창마을은 고려시대부터 이곳에 소금을 보관하고 출납하던 창고가 있어 이때부터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마을이름도 소금과 관련되어 염창이라고 하였다고 전해지는 마을 이름이다.

조선초기 광양지역의 소금 생산지인 노을도소(진월면 오사리), 고지포(골 약동 고길마을로 추정됨)에서 소금을 섬진강 수로를 이용하여 이곳으로 가져와 보관해 두고 다시 수로를 이용해 공물로 바치기도 했으며 구례 등 섬진강 상류로 운반하기 위해 강 건너 경남 화개장터로 실려 나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이다.

 

 

 

잠시 더 진행하니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자세히 살펴보지만 짙은 안개로 인해 잘 보이지도 않는다.

잠시 공터로 들어 가 보니 헬기장인 듯 보여 사진 한장 남기지만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그저 안개 물방울만 화면 가득 남아 있다.

그 헬기장에 피어 있는 억새꽃 두송이를 어렵게 담은 후 잠시 더 진행하니 등로 옆에 자라고 있는 키 작은 산죽이 물기를 한가득 머금은 채 조용히 아침을 기다리고 있다.

 

 

 

다시 그 산죽 등로를 타고 완만한 오르막 된비알을 진행하니 등로 좌측에 거대한 바위 하나가 서 있고 안개속에서도 자세히 살펴보니 누군가 박웅빈이란 이름을 페인트로 적어 논 곳이다.

다시 잡풀이 무성한 마루금을 타고 전진하니 또 다른 헬기장을 통과하고 이제 정상까지 1.6 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 전진하니 다시 정상까지 1.1 Km 남았다는 이정표도 지난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다시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그곳을 오르자 중간그룹의 종주대들이 언덕 위에 모여 잠시 휴식을 취하며 식수를 마시고 있다.

 

 

 

이곳에서 이 산객도 잠시 배낭 내려놓고 시원한 식수 한모금으로 목마름을 달랜 후 종주대가 건네는 떡 한조각으로 허기도 달래 본다.

이제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며 주위 사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여 이마에 찼던 헤드렌턴을 벗어 배낭속 깊이 넣어 둔다.

이제 목책과 안전로프가 걸려있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이제 정상까지 0.8 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 1201봉이라 생각되는 암봉에 도착한다.

눈사람처럼 생긴 바위 옆에는 거대한 집채만한 바위 하나가 더 올려져 있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1201봉의 암봉이다.

 

 

 

이제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는 것이 아닌 내려가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더니 금새 거대한 암봉이 앞을 가로막는다.

이곳에서 잠시 등로 찾아 왔다 갔다를 반복하다 암봉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돌아 오르니 정상 등로가 보이고 다시 계단을 타고 오르니 바위 우측에 계단 하나가 더 보인다.

그 계단 위에는 몇명의 종주대가 올라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간간히 보여지는 조망에 탄성을 지르고 있다.

그곳 신선대 바위에 올라 백운산을 앞 우측에 두고 두꺼운 구름속에 용틀임을 하고 있는 일출을 담아 본다.

 

 

 

안개가 북쪽의 구례에서 남쪽의 광양 방향으로 바람을 타고 무서운 속도로 넘어가고 그 바람의 흔들림속에 일출과 백운산 정상의 모습이 마치 한폭의 아름다운 수묵화처럼 살아나고 있다.

닭벼슬을 닮았다는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 능선 위에 자리한 안개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그 백운산 정상에서 우측으로 돌아 내려간 매봉으로 이어진 능선이 또한 환상적이다.

하늘에선 여전히 뜨거운 용광로처럼 붉게 타오르며 세상에 나오려는 강렬한 일출이 몸부림치듯 몸살을 앓고 있다.

 

 

 

안개의 춤사위와 두꺼운 구름속에서도 몸부림 치는 일출에 잠시 눈과 마음을 빼앗겨 바라보다 잠시 바람이 멈춘 사이 서쪽 하늘을 바라보니 너무나 푸른 하늘에 약간의 희 구름이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 사라지기 아쉬운듯 반달이 하늘 높이 떠 있다.

대조적인 풍경이면서 너무나 아름다운 파란 하늘과 사라지는 달 그리고 하얀 구름이 말문을 닫아 버린다.

바로 이런 맛을 느끼기에 또 그 어려운 발걸음 옮겨 맥 산행을 고집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백운산 우측 아래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매봉 우측으로는 이제 곧 타고 내려가야 할 갈미봉 마루금이 하얀 안개속에 살며시 그 속살을 보여 주고 잠시 찰나의 순간 섬진강 건너 하동의 구제봉쪽 산들도 잠시 눈에 들어 온다.

몇번인가 올라 만났던 풍경들과 조망이기에 조금은 덜 아쉽지만 그래도 좋은 날씨를 기대했기에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는다.

내려가 백운산으로 진행해야 하지만 어짜피 일출도 못보고 또 백운산에 오른다 해도 안개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기에 조금 더 머물며 천변만화하는 세상을 제한된 카메라에 담아 본다.

 

 

 

약 15분여 동안 신선대 암봉 위에 서서 변화하는 주위 조망을 즐기며 흐르던 땀방울을 식힌 후 내려 와 신선대로 이어지는 계단과 신선대 정상부를 담아 본다.

전국에 있는 수많은 신선대란 이름이 갑자기 오버랩되면서 저 정상을 바라보는 마음은 또 왠일인지...

신선이 놀았는지 아니면 신선이 쉬었다 가서 붙여진 이름인진 몰라도 오늘 이 산객이 저 정상에서 신선이 되였던 것은 아마도 사실일 듯 싶은 마음에 담아 본 것이리라

 

 

 

신선대에서 내려 와 이제 마루금을 타고 계속 백운산 정상으로 향해 본다.

갑자기 신선대 암봉을 등로 우측에 두고 가파른 내리막 급경사가 펼쳐져 있고 물기에 젖어 미끄러운 마루금을 타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이제는 큰 바위들이 널려있는 너덜지대로 바뀐다.

잠시 그 너덜지대를 지나니 계단이 보이고 그 계단을 통과하니 등로 좌측으로 바위골이 형성되어 있고 그곳을 통해 하얀 안개가 쉴새없이 솟아져 들어 온다.

 

 

 

이제 정상이 0.4 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 진행하니 다시 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통해 오르니 정상 0.2 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곳을 지나니 짧은 계단이 보이고 그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앞을 보니 거대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으며 백운산 정상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그 정상에는 먼저 오른 산객들이 추억만들기에 바쁘고 이 산객도 그들을 따라 오르며 멀고도 길었던 호남정맥 마지막 고봉에 올라 가슴앓이를 했던 그동안의 긴 여정을 뒤돌아 본다.

 

 

 

2년전 이른 봄, 홀로 내려 와 억불봉을 시작으로 이 백운산에 올랐다 매봉과 갈미봉을 지나 쫓비산에서 매화마을로 내려가며 즐겁게 보냈던 추억을 살며시 꺼내 본다.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지리연봉이 바로 코 앞에 보이듯 다가왔던 곳인데 오늘은 그저 정상석이나 많이 보고 내려가라는 듯 보이는 세상은 전혀 없다.

그저 이렇게 사진 한장 남기는 것으로 대신해 본다.

전남 광양시와 구례군의 경계를 이루는 백운산(1218봉)은 지리산 다음의 전남 제2의 봉우리며 호남정맥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백운산이 가을 산행지로 손꼽히는 이유는 962봉에서 억불봉 전까지 1km에 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날 억새를 만나기 위해 여유롭게 다시 한번 올라야 하는 이유가 생기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

 

 

 

 

신선대에서 쉬면서 동쪽으로 우뚝 솟아 있는 백운산의 안개 춤사위를 즐기는 시간에 백운산 정상에 먼저 오른 종주대는 그곳 백운산 정상에서 지나 온 신선대 방향을 바라보며 신선이 놀고 있는 모습을 담은듯 하다.

신선대 지나 보이지 않는 한재를 건너면 바로 따리봉이 보이는 풍경이 환상이다.

그저 이렇게 바라만 보고 있어도 왜 이곳에 올라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은 듯 하다.

 

 

 

잠시 시간이 변하면 세상도 변하고 산객이 내려다 보는 자연도 변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에도 천상만화하는 자연의 숨가쁜 변화에 그저 탄성을 지르기도 힘든 시간이다

그저 가슴에 담고 느끼며 오랫동안 지난 후 추억하며 꺼내 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을 무슨 욕심이 그리도 많아 모두를 가지려 하는지...

바람이 불면 바람에 몸을 맡기면 되고 안개가 피어 오르면 잠시 그 안개속에 몸을 숨겨도 좋을 것을...

 

 

 

백운산이란 이름이 잘 어울리는 날씨에 잠시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 맞으며 흐르는 땀방울 닦은 후 산객들과 나눠 먹는 사과 한쪽이 꿀맛이다.

암봉으로 이뤄진 정상에서 사진 한장씩 남기고 다시 조심해 내려오니 진틀과 억불봉 갈림 이정표가 서 있고 사진 한장 남긴 후 매봉과 관동 방향으로 몸을 돌려 내려가 본다.

백운산 정상보다는 매봉쪽으로 관목 숲을 뚫고 내려가면 지나가야 할 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진 조망을 즐길 수 있는 전망바위가 있기에 그곳에 한가닥 기대를 걸고 내려가 본다.

 

 

 

하지만 잡목 숲을 뚫고 내려 와 2년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식사를 즐겼던 등로 우측의 전망바위에 잠시 들리지만 짙은 안개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기에 담기지 않는 사진 한장 남기고 좁은 등로를 타고 매봉으로 향한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등로는 다시 유순하게 변하고 짙은 안개속에서도 완만한 1115봉을 넘어 계속 전진해 내려간다.

조금 빠르게 진행하니 정상에서 1.4 Km 걸어 왔다는 이정표를 지나 곧바로 다시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 한장 남기기도 힘이 들 정도로 아직까지 안개가 자욱히 피어 오른 등로이다.

 

 

 

곧이어 잡풀이 무성한 공터를 지나기에 혹시나 헬기장인가 하고 살펴보니 그저 평이한 등로의 공터에 잡풀이 자라 폐헬기장처럼 보일 뿐인 곳이다.

그 공터를 지나니 등로 우측으로 내회마을 하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어 사진 한장 남기며 잠시 가쁜 숨을 몰아 쉰다.

삼평평야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내회마을은 평산 신씨의 집성촌이다.

처음에는 종동리 구터 마을에 정착하다 생활터전이 너무 협소하여 이곳으로 이거하였다.

마을 이름은 주위에 둘러있는 회월, 월봉, 술마산 등 여러 산봉우리와 산 아래로 돋보이는 기암들이 마을 주위에 있어 칠암팔봉마을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 내회야리가 줄어서 내회로 되었다.

회야강의 굽어진 안쪽으로 평야를 이루고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여 내회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마을에는 주위 모두가 평야로 저 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주위에는 숲이 있는 작은 언덕이 2∼3곳이 있을 뿐이다.

언덕에는 소나무 숲이 무성하여 여름철 더위를 식혀 주는 곳으로 마을 서당이 있었던 곳의 뒷편 언덕이라 하여 서당등이라 하는 곳과 마을 동편으로 말랑등대가 있다.
조선조 때 이곳 평산 신씨의 세도는 대단하여 서생진과 울산병영의 관군들을 동원하여 마을 저수지를 축조하기도 하였다고 전해지는 마을이다.

 

이제 매봉까지는 2.3 Km 가 남아 있다.

아마도 그곳에서 아침식사를 할 모양이니 바삐 걸어야 제 시간에 식사라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은 빠르게 전진하니 다시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난 공터가 보이고 살펴보니 헬기장이다.

지도를 보니 아마도 1016봉쯤 되는 곳이라 판단되지만 아직도 오리무중의 안개속이라 판단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다시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니 매봉 1.8 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이고 다시 매봉까지 1.3 Km 남았다는 이정표도 지난다.

그리고는 다시 빠르게 전진하니 827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 근처에 이제 매봉까지 0.8 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제 서서히 허기가 지기 시작하고 허리에 차고 진행하는 캐논 카메라의 무게가 제법 무겁게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조금 더 오르다 똑딱이 카메라로 바꿔 잡목 터널을 걸어 올라 본다.

 

 

낙엽이 푹신하게 깔린 마루금을 타고 무심으로 걸어 본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매봉이 0.4 Km 남았다는 거리 이정표가 보이고 그곳에서 잠시 물 한모금 마시며 쉬었다 오르기로 한다.

다시 배낭 둘러메고 관목이 우거진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잡목이 우거진 폐헬기장이 보이고 그곳 한 구석에 95-707-64란 군용 표식의 시멘트 판이 박혀 있다.

 

 

그 헬기장을 지나 잠시 더 전진하니 넓은 헬기장으로 이뤄진 매봉 정상에 도착한다.

그곳 정상에는 이미 많은 종주대들이 모여 맛있는 산상 부페를 열고 이 세상 최고의 밥상을 차리고 있다.

한쪽 자리 만들어 동참 한 후 식사를 끝내고 준비한 호남정맥 완주 플랭카드를 들고 추억 한장 만들어 본다.

가슴 떨리는 시간이지만 그 영광은 다음 구간에 다시 만들어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우리나라에서 가장 맑고 깨끗한 강인 섬진강을 가운데 두고 지리산과 마주하고 있는 백운산은 광양시의 옥룡면, 다압면, 진상면과 봉강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주산인 백운산은 동쪽으로는 매봉(865봉)과 쫓비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서북쪽으로는 도솔봉(1123봉), 형제봉(1125봉), 따리봉(1153봉), 신선대(1115봉), 새재와 한재, 남동쪽으로는 억불봉(1000봉), 노랭이봉을 중심으로 남으로 내려 뻗치는 여러개의 지맥을 가진 호남지방에서는 두번째로 높은 산이며 호남정맥의 최고봉이다.그중 호남정맥 마루금을 타고 동쪽으로 흐르던 산줄기가 이곳을 막 지난 지점에서 다시 남으로 흐르며 섬진간과 남해바다에서 그 맥을 다 할 것이다.

 

 

그렇게 매봉에서의 좋은 추억을 남기고 다시 배낭 둘러메고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아직도 등로에 남아 있는 엷은 안개가 몽환적인 분위를 연출하고 그 환상적인 등로를 타고 천천히 소화를 시키며 전진하니 등로가 동에서 남으로 꺽이며 등로 좌측 섬진강쪽으로는 항동마을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다.

항동마을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마을이름이 잘못 기재되어 있는지 마을이름조차 찾기가 버겁다.

 

 

이제 남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2년전 어렵게 올라 멋진 조망을 즐겼던 암봉의 위력이 대단한 억불봉이 잡목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15분여 천천히 사진을 담으로 전진하니 다시 등로 좌측으로 고사마을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다.

호남정맥 등로 좌측으로는 섬진강이 등로와 같이 흐르며 그 강 주변에는 봄에 하얀 매화가 상춘객을 모으는 매화마을로 알려진 곳들이다.

고사마을은 1500년쯤 함안조씨가 처음 입촌하였고 뒤이어 김해김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면서 한지를 생산하여 부자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해지는 마을이다.따라서 지금도 지소골(절골)이란 지명이 남아 있으며 옛날 절이 있었다하여 절골이라고도 부르게 되였다.절골(지소골)에 부두거리(부도거리)라는 지명이 있고 현재 해당암이라 새겨진 부도가 남아있으며 그 외에 옛날 절과 관계되는 지명이 많이 남아있어 이곳에 옛날 절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으며 특히 불당골에는 미륵불이 있었다고 전해진다.고사마을의 본래 이름은 고사라고 하였는데 전하는 이야기로는 마을 앞에 건립연대를 알 수 없는 절터가 있었다 하여 고사라고 이름하였다고 전해지는 마을이다.

고사마을 갈림 이정표를 지나 계속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다 문득 잡목 사이로 등로 우측 뒤을 바라보니 그곳에 백운산 정상부가 드러나 있다.

종주대들이 수많은 희망과 꿈을 안고 오르며 일출을 기대했던 시간에는 하얀 안개구름이 몰려 와 온 세상을 감추더니 이제사 그 본 모습을 보여주며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암봉으로 이뤄진 험악한 정상부였는데 이렇게 거리를 두고 올려다 보니 여느산 못지 않게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산으로 다가온다.

 

 

다시 조금 더 내려가다 등로 우측 저 앞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정맥 등로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억불봉의 강인한 암봉이 그 뒤에 부드러운 정상을 두고 멋진 모습으로 서 있다.

2년전 눈 쌓인 저 암봉을 오르기 위해 얼어 붙은 철계단을 타고 올랐다 천상의 비경을 숨겨둔 조망을 확인하곤 다시 내려 와 안전 로프를 붙잡고 어렵게 억불봉 정상으로 향했던 추억이 되살아 나 잠시 주춤거려 본다.

직접 올랐을 때와 보는 각도에 따라 모두 다르게 보이는 산이기에 계절에 따라 한버씩 올라 땀방울을 흘려야만이 진정한 그 산의 친구가 될 수 있음을 알기에 언제 다시 오를 수 있을지 기약 없는 약속만 하고 있다.

 

 

금새 뒤따라 온 종주대들에게 등로를 내 주고 다시 급할 것 없는 발걸음으로 진행하다 보니 소나무 가지사이로 길게 늘어진 백운산에서 매봉으로 이어진 부드러운 능선이 다가온다.

등로를 벗어나 잠시 등로 우측의 절개지로 내려가 백운산 정상부에서 우측으로 흐르며 구비쳐 흐르는 호남정맥 마루금을 담아 본다.

능선으로 가려 보이지 않는 매봉 바로 전 1016봉까지의 능선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멋진 조망을 즐기며 많은 사진을 남기고 전진하니 부드러운 잡목 터널과 간간히 서 있는 거목의 소나무를 지나 진행한다.

어려운 등로도 아니고 길 잃을 염려도 없는 곳이기에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진행하지만 발가락에 생긴 물집이 여전히 신경을 건드리며 산행에 많은 제약을 두고 있다.

오랫동안 올라야 할 산행이기에 몸 관리에도 좀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며 진행하니 조금은 지루하게 밋밋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어느덧 588봉지나 다시 512.3봉이라 생각되는 헬기장에 도착하고 무성하게 자라난 억새풀 사이로 어렵게 삼각점 하나를 발견하여 담아 본다.

 

 

 

512.3봉 헬기장에 있는 삼각점을 담은 후 다시 계속 이어가는 정맥 마루금은 별 특징없이 지루함을 느낄 정도로 평이한 등로가 이어져 있다.

잠시 잡목 숲을 따라 그늘속을 걷다보니 나즈막한 안부에 도착해 깊게 패인 골짜기를 담은 후 진행하니 혹시 이곳이 지도상에 나타나 있는 천황재가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2년전 진행하면서 만났던 게밭골이란 안부가 있는데 그곳이 혹시 천황재는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그 또한 확실하지 않으니 어느것이 맞는지 도대체 이해하기 힘든 이정표이다.

다만 등로 우측의 광양 진상면 어치리와 동쪽으로 우측인 다압면 도사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였지만 지금은 지나다니는 사람의 흔적이 없으니 조만간 사라질 고갯마루처럼 보인다.

잡목 사이로 나즈막항 봉우리가 보이고 그곳을 향해 다시 땀방울을 흘려 본다.

 

 

나즈막한 봉우리를 향해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그 정상부에는 큰 바위 몇개가 박혀 있고 오랫만에 만나는 바위에 카메라 누르는 손길이 바쁘다.

별 특이한 봉우리도 아니지만 그냥 바위가 반가워 한장 담아 보는 시간이다.

이제 이 봉우리 넘어 내리막 등로를 타고 전진하면 도사리 관동마을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있는 게밭골에 도착할 것이다.

 

 

잠시 정상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저 아래 안부에서 몇명의 종주대가 앉아 쉬고 있어 내려가 합류하니 그곳이 바로 게밭골 안부이다.

등로 좌측으로는 섬진강쪽 매화마을 중 하나인 관동마을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고 게밭골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기에 휴식하기에는 충분한 공간이다.

저 관동마을은 매년 섬진강변 특히 다압면 도사리의 매화마을에서 매화꽃 축제가 한창이면 가장 많은 등산객들이 올라오는 산행 들머리로서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이제 커다란 카메라를 다시 베낭속에 넣고 갈미봉 오름 등로로 들어 선다.

개인적으로 무척 힘들게 올랐던 갈미봉이기에 조금이나마 발걸음에 짐이 되는 것들은 모두 배낭속에 넣고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완만하게 이어지던 등로가 잡목 터널이 나오면서 점점 더 가파르게 오르더니 막바지에 들어가니 코가 땅에 닿을듯 가파른 경사면이 햇살을 받아 저 멀리 아득하게 천천히 다가온다.

힘들게 오르니 2년전 만났던 정상과는 많이 변한 모습으로 진상면과 다압면 경계에 놓여 있는 갈미봉 정상부와 다시 조우한다.

잡목이 무성해 조망하나 없는 그곳에 앉아 다른 종주대와 함께 잠시 쉬어 가며 얼어있는 커피 한모금에 웃음꽃을 피워본다.

 

 

갈미봉 정상에서 쉬면서 시원한 식수 한모금으로 목마름을 달랜 후 다시 내리막 경사면을 통해 내려가니 안부에 몇개의 바위들이 등로 위에 너부러져 있고 그 중 하나가 꼭 물개를 닮아 물개바위란 이름이 붙어 있는 곳을 지난다.

늘 보면서도 신기한 형상에 홀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마도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인지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도 비슷하게 묘사되어 있는 듯 하다.

 

 

물개바위를 지나자 평이하게 이어져 오던 등로가 갑자기 암봉으로 막히면서 우측으로 우회하는 등로를 타고 어렵게 그 암봉을 오르게 되어 있다.

하지만 어렵게 도착한 그 442 암봉 전망대에서 처음으로 조망다운 조망을 마음껏 즐기며 또 한동안 쉬어 간다.

서쪽 저 멀리 거대한 암봉을 거느리고 있는 억불봉부터 북으로 치달아 달리던 산줄기가 백운산 정상에부 이르러 하늘에 맞닿아 있고 그곳에서 이곳으로 이어져 내려 온 호남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모습이 그대로 눈에 들어 온다.

 

 

바로 북쪽으로는 방금 전 지나온 갈미봉과 작은 봉우리가 아주 가깝게 보이고 그 갈미봉 넘어 저 뒷편에는 하동의 성제봉(형제봉)이 지리연봉과 이어지는 모습이 잘린 채 안개속에 희미하게 그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3년전 섬진강 벗꽃이 만발하던 시절 내려와 저 성제봉을 산행 한 후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인 토지의 배경이 되였던 하동의 평사리와 최참판댁 그리고 화개장터에 들려 참게탕으로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던 과거를 떠 올리며 미소를 지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한 모습이기에 넋을 잃고 바라보며 준비한 지도를 꺼내 그 이름을 불러 준다.

 

 

북동쪽으로는 봄이면 상춘객들로 넘치는 다압면의 매화마을 옆으로 도도히 흐르는 섬진강이 가깝게 내려다 보이고 그 강 넘어 저 멀리 경상도 하동의 구제봉이 우뚝 솟아 있다.

아직 올라보지 못한 미답봉이지만 하동의 산줄기를 오르며 자주 봤던 산줄기이기에 그 그리움이 더욱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순간이다.

꼭 한번 저 곳에도 올라 이곳을 바라보며 오늘을 추억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매봉을 지나 이곳으로 달려 내려오는 미끈한 호남정맥 마루금을 둘러보고 그 좌측 저 멀리 하얀 안개를 뒤집어 쓰고 아직까지도 그 모습을 인간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지리 주능선 남쪽의 왕시리봉도 만나 본다.

조망이 좋았으면 더 멋진 시간이였겠지만 이렇게 박무속에서도 그 이름 하나 하나를 불러 볼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좋은 시간이다.

 

 

다시 바위 전망대를 떠나 평이한 등로를 타고 한동안 오르고 내리며 급하지 않게 소그룹으로 진행한다.

잡목들이 자라나 이제 조금씩 따가워져 오는 햇살을 막아 주고는 있지만 바람 한점 불지 않고 기온이 올라가는 시간이다 보니 조금씩 몸들이 지쳐가기 시작한다.

한동안 그렇게 조망 하나 없이 잡목 숲을 헤치고 전진하니 496봉 정상의 바위에 도착하고 이후에도 평이한 능선은 한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부터 큰 안부도 없고 봉우리도 없는 그저 조금은 따분하게 여겨지는 등로를 타고 몇명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언뜻 538봉이 올려다 보인다.

2년전 오를 땐 느끼지 못했던 지루함이 조금씩 몸속으로 느껴질 쯤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올라 538봉 바위에 도착한다.

위협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잘 보지 못했던 정상부이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진행하니 이제 등로는 다시 좌측인 동쪽으로 꺽어 진행 된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아주 조심하며 내려가 본다.

생각보다 쫓비산 오르는 등로가 장난이 아니다.

조금씩 쌓여가는 낙엽이 더욱 내리막 등로에서 조심을 당부하고 그렇게 어렵게 안부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무명봉을 두어개 넘어가니 드디어 무인산불감시탑과 삼각점이 박혀 있는 쫓비산 정상에 도착한다.

억불봉과 백운산 환종주 및 매화축제 때 몇번 들려 만났던 곳이기에 더욱 반갑게 정상과 조우한 후 나무 그늘로 숨어 들어가 잠시 간식을 먹으며 함께한 종주대와 쉬어 본다.

한동안 쉬고 있으니 후미 선두 그룹도 도착해 이제 대 그룹으로 진행한다.

쫓비산이란 산 이름이 조금은 특이해 자료를 찾아 보니 산이 뾰족하고 섬진강의 푸른물결을 빗대어 파란하늘을 뜻하는 쪽빛에서 유래되어 쫓비산이 되였다고 전해지는데 조금은 아쉬운 전설인듯 하다.

 

 

나즈막한 안부로 내렸다가 무명봉을 지나고 다시 나타나는 나즈막한 봉우리는 우측 사면 등로로 우회하여 잡목 숲을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청매실 농원으로 하산할 수 있는 삼거리 갈림길에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봄철 매화꽃이 만발하는 시절에 참으로 많은 등산객들로 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이정표가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종주대는 등로 우측의 토끼재 방향으로 틀어 계속 맥 산행을 이어간다.

 

 

청매실농원 갈림길을 지나니 이제부터 소나무가 반겨주고 그 소나무 숲을 통해 계속 완만하게 진행한다.

이곳 역시 별 특징 없이 지루한 등로이지만 등로를 가로막고 인사를 나눈 후 지나라는 벌목된 나뭇가지들로 인해 신경이 쓰이는 구간이다.

내려가다 보니 등로 좌측에 쇠철조망이 쳐져 있고 살펴보니 느랭이골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등로를 모두 막아 놓았던듯 한 그런 철조망이지만 세월이 흐르며 그 철조망도 모두 부식되어 녹아 내리고 있다.

 

 

청매실농원 갈림 삼거리에서 30여분간 줄기차게 소나무와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타고 좌측으로 느랭이골 휴양림을 바라보며 전진하니 드디어 오늘 산행 들머리인 토끼재 바로 직전 느랭이골 휴양림 입구쪽으로 내려가 비포장 임도를 타고 863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토끼재로 내려가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다.

자연과 조금은 친숙한 모습으로 휴양림을 개발하면 안되는 것인지, 이곳 저곳 마구 파헤쳐진 산하가 붉은 심장을 내놓고 힘겹게 숨을 헐떡이듯 보인다.

 

 

 

전남 광양과 경남 하동을 이어주는 863번 지방도로인 이곳 토끼재에서 무거운 배낭 내려 놓고 물집이 생긴 등산화를 벗어 본다.

진상면과 다압면을 이어주는 고갯마루인 토끼재, 도로 우측인 진상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좌측으로 거대한 수어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한가로운 농촌마을들도 평화롭게 눈에 들어 온다.

이렇게 또 한구간 마무리를 하면서 이제 그 멀고도 길었던 호남정맥 산행도 이제 마지막 구간만 남겨 놓고 있다.

 

산경표에는 백운산이 실질적인 호남정맥 마지막이라 적혀 있지만 신산경표 저자인 박종률님은 어느 산줄기이든 그 맥이 다하는 곳에는 반드시 물이 있어야 한다며 외망포구로 명시하고 있어 이 산객도 신산경표 저자인 박종률님의 의견에 동참하는 시간이다

 

이제 낙남정맥만 졸업하면 그렇게 꿈꿔왔던 1대간 9정맥의 대단원을 졸업하게 될 것이다.

 

이 기분 이 몸 이대로 무탈하게 완주하는 그날까지 스스로에게 화이팅을 외치며 이번 산행을 마무리 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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