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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산행(완료)/호남정맥(완료)

호남정맥 제16구간 곰치에서 감나무재(갑낭재, 시목치)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1.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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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장흥군과 보성군의 호남정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0년 06월 18일과 19일 (무박 2일 일요 산행)

산행날씨 : 새벽과 아침엔 짙은 안개 후 낮부터 한여름 삼복더위로 무척 무더웠던 날씨

산행온도 : 영상 18도에서 영상 31도

산행인원B산악회 28명 따라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곰치휴게소-곰치(839번 지방도로)-옛 깃대봉 이정표-백토재-헬기장-국사봉(499봉)-

               깃대봉(448봉)-운곡마을 갈림삼거리-헬기장-바람봉(노적봉, 땅끝기맥 분기봉, 헬기장)-

               삼계봉(503.9봉, 삼계봉 3봉 490봉)-삼계봉 2봉(503.9봉)-삼계봉 1봉(450봉)-장고목재-

               철탑-가지산 북봉(509.9봉)-가지산 삼거리-가지산 암봉(삼개봉, 510봉)-가지산 삼거리-

               전망암-장평우산 갈림길-427봉-청주한씨 가족묘-피재(820번 지방도로 공사중)-

               김해김씨묘지-삼나무 군락지-병무산(513.7봉, 헬기장)-헬기장-헬기장-부산관한임도-

               471봉-금장재-용두산(551봉)-헬기장-453봉-임도 공사중-305.1봉-부산만년임도-

               371봉-224.9봉-350봉-갑낭재(감나무재, 시목치, 2번 지방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2.90 Km (갑낭재에서 시목치관광농원까지 600미터 제외) 

산행시간 꾸준한 속도로 식사 및 휴식시간 포함해 11시간 53분 (03시 08분에서 15시 01분까지) 

               시목치관광농원까지 10 여분 시멘트 도로 도보 제외 

              

호남정맥이란 ???

우리나라 서남부 문화권을 나누는 의미 있는 경계선으로 산경표를 보면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이 분기하고 그 산줄기가 다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으로 나뉘며 호남정맥은 그 시작점이 웅치(현재 지명으로 곰치재)라 적혀 있는 총 산행거리 398.7 Km의 산줄기이지만 어느 산꾼들은 백두대간 영취산이 호남정맥의 시작점이라 하여 총 산행거리 462 Km의 산줄기라 하기도 한다.

호남정맥은 동쪽으로 섬진강을 서쪽으로는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을 가르고 있으며 주요한 산들을 살펴보면 3정맥 분기점인 주줄산(주화산)에서 남서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완주 만덕산(762m)을 지난 후 내장산(763m), 추월산(729m), 무등산(1,187m), 제암산(779m), 조계산(884m) 등 남도의 큰산을 지나 광양 백운산(1,218m)을 끝으로 섬진강과 남해바다가 만나는 곳 망덕산(197봉) 앞 바다로 흘러드는 산줄기를 말한다.

 

 

안개와 무더위로 최악의 산행 조건에서도 무탈한 완주를 이룬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하여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날씨가 더워지고 안개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기에 계획된 맥 잇기 산행이 조금씩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계절이다.

세계적인 기상 이변이 그렇게 무관심하게 이 산객에게도 기상 예보와 날씨가 중요한 것이 되어 가는 세상, 많은 식수 준비와 완벽에 가까운 여름 산행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역시 한달여 빠르게 찾아 온 불볕 더위에는 장사가 따로 없었던 시간들이였다.

 

산행을 하면서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힘들게 걸었던 시간들, 그래도 함께한 종주대가 마지막 봉우리에서 시원한 영지버섯 끊여 얼린 물을 가지고 기다려 주던 시간은 사막의 오아시스 그 자체였다.

1대간 9정맥 산행을 하다보면 수많은 추억과 고통 그리고 우정을 나누는 기회가 있지만 어제의 시간들은 왜 그렇게 그 맥을 이어 산행을 하는지에 대한 약간의 답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으로도 남겨 진다.

 

부산만년임도, 즉 지도상에 나와 있는 만년고개를 지나 371 암봉으로 오르면서 갑자기 체력적인 방전이 느껴지고 발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쉬엄 쉬엄 한발 두발 걸어 암봉 가까이 오르니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삼정 마을 지나 저 멀리 영암의 월출산이라 생각되는 스카이 라인이 참으로 멋지게 드러난다.

하지만 그곳이 월출산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너무 가깝게 보이고 또 그 방향으로 장흥 부산의 수인산 역시 바위산으로 멋진 스카이라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월출산이면 어떻고 수인산이면 어떻랴 그저 이 시간 이렇게 가슴에 품고 너를 기억하면 그것으로 족한 것을...

 

산행거리도 멀고 또 일찍 찾아온 무더위로 인해 조금은 빠르게 산행 들머리인 곰치휴게소에 도착하니 채 새벽 3시도 안된 시간이다.

2주전 어렵게 도착해 샤워한 후 식당에서 먹었던 점심을 추억하며 산행 준비를 한다.

온 세상이 적막에 쌓여 있지만 강아지 몇마리가 그 정적을 깨며 밤하늘 저 멀리 종주대가 도착했음을 알린다.

화순에서 장흥쪽으로 나 있는 839번 지방도로를 타고 진행하다 도로 좌측 수풀속에 숨어 있는 곰치휴게소 간판을 담아 본다.

이곳 역시 이 도로 아래로 터널이 뚫리기 때문에 얼마 안 있으면 호남정맥을 타는 산꾼들과 이곳이 그리워 역부러 찾아드는 여행객이 아니면 발길을 주기 힘든 곳이 될 곳이기에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도록 어둠속에서도 많은 것들을 담으려 노력해 본다.

 

100여미터 839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장흥쪽으로 고개를 넘으니 도로 우측으로 오늘 올라야 할 산행 들머리가 보이고 많은 이정표와 산행 안내도가 서 있다.

제암산까지 약 30.7 Km이니 시목치까지 도상거리 22.9 Km보다 더 길으면 길었지 짧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다.

산행 준비 후 모두 이곳으로 도착한 종주대의 인원파악을 한 후 새벽 3시 8분 드디어 또 한구간의 산행을 위해 능선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잠시 가파른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에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지만 봉분이 없이 비석 하나가 서 있다.

사진으로 담았다 내려 와 찾아 보니 곰치 산행 들머리에 서 있던 화천처사여흥민영복 묘소 들어가는 입구라 적혀 있더 바로 그 주인공의 묘지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일제시대 교육자이며 대한민국 초기의 정치인이였는데 이곳 장흥에서 벼슬을 하며 치적을 쌓아 그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공덕비 비슷한 것으로 이해가 된다.

10여분 올라 묘지 하나 있는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크게 꺽어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한동안 진행하다 다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짙어지는 안개속을 걷다 보니 잘못된 깃대봉 이정표가 있던 정상에 올라 세워진 이정표를 바라보지만 이곳 이정표상 거리 표시도 잘못된 느낌이다.

잘 정비된 등로와 이정표는 지자체에게 감사한 일이지만 하루 빨리 잘못된 거리 표시는 바로 잡아 주기를 간절히 바라보는 시간이다.

 

서북쪽으로 향하던 등로가 어느새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특이한 것 없이 진행된다.

단지 나침판 하나만이 이 산객이 진행하는 방향을 어둠속에 알려주고 있다.

오르고 내리기를 몇번 안부로 내려가니 그곳에 이정표 하나가 서 있고 사진을 찍으며 살펴보니 사기그릇을 만드는 백토가 많이 나 붙은 이름인 백토재이다.

옛날에는 화순군과 장흥군에 사는 민초들이 자주 넘나들던 고갯마루였겠지만 교통이 발달한 요즈음엔 그 지나다닌 흔적조차 희미해진 고갯마루가 되어 있다.

 

백토재 지나 펑퍼짐한 능선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지만 안개속에 바람 한점 없이 굵은 땀방울만 흘리기에 다시 바람이 불어 오는 정상으로 올라간다.

잠시 진행하니 어둠속에 헬기장이 나타나고 그 헬기장 지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산죽밭 지나 첫번째 정상석이 서 있는 국사봉에 도착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전국의 산 이름중에 가장 흔하고 많은 산 이름중 하나인 국사봉이다 보니 이곳 호남정맥 구간의 나즈막한 국사봉은 그 어디에도 설명이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완만한 등로를 타고 국사봉을 내려가니 등로 주위엔 키작은 산죽들이 청초한 잎을 내밀고 반겨준다.

조금씩 안개가 짙어지는지 바로 곁에 있는 산죽과 잡목만이 어둠속에 이 산객의 친구가 되어 주고 안부에 도착했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금새 깃대봉 정상의 정상석과 입맞춤을 한다.

이 깃대봉 역시 바로 직전 만났던 국사봉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흔한 이름이다 보니 이곳 호남정맥 마루금에 있는 이 깃대봉에 관한 자료는 찾을 수 없다.

 

깃대봉에서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짧은 산죽밭이 끝나고 잡목과 잡풀들이 등로를 좁게 열어 주고 있다.

5분여 진행하니 등로에 운곡마을 하산 갈림 이정표가 서 있다.

장흥은 아시아 최초로 느리게 살기마을로 슬로시티 국제 인증을 받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지자체로 유명한 곳이다.
느려서 아름답고 불편해서 즐거운 곳 장흥슬로시티, 이름마저 여유로운 ‘장흥슬로시티’는 화려한 볼거리가 기다리는 건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전통문화와 역사가 있으며 도시의 속도를 벗어나 고향의 속도에 기꺼이 보폭을 맞출 수 있는 곳이다.

한번쯤 다시 장흥에 여유있게 내려와 그 느림의 미학을 배워 보고도 싶은 마을이기도 하다.

평이하던 등로가 서서히 오르막 등로로 바뀌고 그 등로를 타고 안개가 짙어지는 산행을 진행한다.

한동안 진행하니 헬기장을 만나 통과하고 등로 좌측을 바라보니 이제 어둠이 물러가며 서서히 여명이 밝아 오지만 아직도 그 어둠이 사라지기엔 시간이 더 필요한듯 하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다 등로 좌측을 바라보니 희미하게 지나 온 국사봉과 깃대봉이 실루엣으로 산객의 가슴에 아름다운 자태로 투영되며 깊게 남겨진다.

 

산죽과 잡풀이 등로를 가로막고 있는 완만한 오르막 마루금을 타고 전진하니 또 다시 헬기장이 나타나고 키큰 잡풀들 사이로 많은 이정표와 띠지들이 산객을 반기며 특별함이 있는 곳이라 알려주고 있다.

지도 상에 나타나있는 430봉 헬기장이자 노적봉 또는 바람봉이라 불리우는 땅끝기맥 분기봉이기도 한 곳이다.

9정맥 완주 후 내년 4월쯤 가장 먼저 달려 내려오고 싶은 곳이 바로 이곳이기에 구석 구석 그 모습을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시간이기도 하다.

 

땅끝기맥이란 ???

호남정맥상에 있는 국사봉(499봉)과 삼계봉(504봉) 사이 430봉(바람봉과 노적봉이라 불리는 봉우리)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소반바위산(493봉), 계천산(400봉), 궁성산(482봉), 차일봉(382봉), 국사봉(615봉), 활성산(498봉), 월출산(810봉), 도갑산(401봉), 월각산 (456봉), 별매산 (465봉), 서기산 (511봉), 복덕산(276봉), 첨봉(354봉), 두륜산(703봉), 달마산(470봉), 떡봉(422봉), 도솔봉(405봉) 과 사자봉을 거쳐 땅끝마을 토말에서 남해바다로 가라 않는 산줄기를 땅끝기맥이라고 부른다.

땅끝기맥은 비교적 낮은 고도의 산줄기로 이어지지만 월출산, 별매산, 두륜산, 달마산 등 작은공룡능선이라 불리울 정도로 암릉미가 뛰어난 바위산을 지나게 되고 최고봉은 월출산(810봉)이며 총 산행 거리는 약 123 Km의 산줄기를 땅끝기맥이라 부른다.

 

땅끝기맥 분기봉인 430봉에서 많은 사진 찍으며 후미를 기다려 20여분 넘게 쉬어 간다.

이제 여명은 밝았지만 안개가 서서히 짙어지기 시작하는 시간에 다시 노적봉을 떠나 내리막 등로를 따라 진행한다.

잠시 내려가다 앞을 보니 앞으로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조금씩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안개로 인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풍경이기에 잠시 종주대를 앞으로 보내고 사진 몇장 남겨 본다.

 

다시 20여분 평이한 등로를 타고 여유있게 진행한다.

약간의 생리현상이 있어 제일 후미로 쳐져 천천히 진행하며 사진 몇장 남기지만 역시 안개로 인해 조망이 전혀 없기에 진행하는 등로 옆 잡목과 산죽 그리고 이름없는 잡풀이 전부이다.

그래도 그 신선하고 야생의 모습이 즐거운 시간으로 남기며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금새 삼계봉 정상이다.

지도에는 삼계봉이 하나만 나와있지만 이곳 첫 정상의 정상석에는 503.9봉이라 적혀있지만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이정표에는 삼계봉 3봉과 490봉이라 적혀있다.

어느것이 정확한 표기인지 바로잡아 주는 것이 필요할듯 하다.

 

삼계봉 정상에서 사진 몇장 남기는 사이 등로 뒷쪽의 잡목 사이에서 붉은 일출이 시작되고 있다.

전혀 기대를 하지 못한 일출이기에 재빨리 앵글을 맞춰 몇장 남겨 보지만 역시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이렇게 그 장엄한 일출 모습을 담을 수 있어 행복한 시간으로 남겨보는 삼계봉 정상이다.

 

다시 정산 능선을 타고 큰 오르내리막 등로가 없는 평이한 등로를 걸어 본다.

종주대 모두가 떠났고 이 산객 홀로 걸어가는 호젓한 마루금이다.

그렇게 5분여 진행하니 금새 삼각점이 있는 정상에 도착하고 살펴보니 삼계봉2봉이란 정상 이정표와 503.9봉이란 표식이 걸려있다.

그 옆에는 철판에 붉은 글씨로 삼계봉이란 정상 이정표도 붙어 있다.

무엇인 맞는 표시이며 어느곳이 진짜 삼계봉 정상인지 헷깔리기 시작한다.

 

다시 삼계봉2봉을 지나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희미하지만 뚜렷한 장흥 우산리 월곡마을의 논과 밭 그리고 민가가 눈에 들어 온다.

이 산객이 살았던 시골 풍경 그대로가 투영된 그리움이 남아 있는 농촌의 평화로운 모습에 잠시 흐르던 땀방울 닦아 본다.

이제 앞으로는 올라야 할 삼계봉3봉이 우뚝 솟아있고 그 봉우리를 향해 느긋하게 오르니 삼계봉1봉이란 정상 이정표와 만난다.

이제 가지산까지 2.8 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 온다.

 

이제 안전로프가 매달려있는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가 본다.

짧은 시간 그렇게 진행해 내려가니 다시 평이한 등로로 바뀌고 그림같은 마루금을 따라 내려가니 종주대원들의 말소리가 멀리에서 들리기 시작하고 곧이어 장고목재 임도에 도착해 잠시 쉬어 간다.

장고의 목처럼 잘록하게 생긴 모양 때문에 그 이름이 붙여진 고개로서 넓은 비포장 임도로 이뤄져 있다.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며 암릉도 넘어 걷다 보니 오랫만에 하늘나리를 만난다

올해 들어 처음 만나는 하늘나리이기에 잠시 쉬어 사진에 담아 본다.

산에 들며 봄에서 초여름까지 가장 많이 만나는 야생화중의 하나로서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멋진 꽃이다.

그 꽃잎에 그려진 모양은 피어나는 지역에 따라 모두 다른 느낌이고 토양에 따라 그 크기도 천차만별이란 생각이다.

 

다시 완만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점점 더 안개가 짙어진다는 느낌이다.

특히 높이가 높아질수록 짙은 안개가 더욱 몰려들고 한치 앞도 보기가 힘들 정도로 시야가 탁해져 있다.

그렇게 한동안 오르니 갑자기 무명봉 정상을 지나 앞으로 가야 할 마루금에 높은 철탑하나가 보이고 그 뒤로 버티고 서 있는 가지산은 짙은 안개속에 숨어 희미하게 그 실루엣만 보여주고 있다.

참으로 멋진 조망이 있는 곳이라 알고 있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더욱 커지는 시간이다.

 

다시 계속 그 철탑을 지나며 그 번호를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하고 내려갔다 안부 지나 오르니 암봉이 나타나고 암봉 좌측으로 안전로프가 달린 곳으로 우회하며 오르니 잠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지나 가지산 북봉과 509.9봉이란 정상 이정표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이곳이 지도상 나와 있는 가지산 510봉인 곳이다.

그 봉우리 지나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갑자기 넓은 임도처럼 잘 정비된 등로가 나타나고 무명봉 지나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져 있다.

 

그렇게 그 넓은 임도같은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저 아래 많은 종주대들이 모여 있고 내려가 보니 그곳이 가지산 삼거리이다.

호남 마루금은 등로 좌측으로 진행해야 되지만 잠시 등로 우측 가파른 오르막 정상에 있는 가지산 암봉과 제1봉인 가지산 주봉을 들렸다 진행하기로 한다.

생각보다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가지산 암봉을 오르는 시간이 생각 보다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 정상으로 오르니 더욱 짙어진 안개가 발목을 붙잡고 그 암봉 정상에 누워있는 가지산 정상 삼개봉 515봉임을 알려주는 철판 이정표 하나가 반겨주고 있을 뿐이다.

그 정상이 바로 가지산 제3봉으로 바로 앞에 있는 제2봉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의 세상이다.

사진 몇장 남기고 내려오며 혹시나 하고 등로 좌측으로 돌아가 가지산 제2봉과 제3봉으로 가 사진 몇장 남기고 싶었지;만 보이는 것이 없기에 다음 기회로 남겨 본다.

 

다만 이 가지산 아래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는 보림사를 만나지 못하고 구경조차 할 수 없음이 안타까운 시간이다.

가지산 제3봉에서 제2봉쪽을 바라보니 그저 안개가 자욱한 암봉만이 눈 앞에 있는 모습이다.

 

보림사를 찾아보니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인용함)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가지산에 있는 절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원표가 세운 암자에다 860년경 신라 헌안왕의 권유로 보조선사 체징이 창건하여 선종의 도입과 동시에 맨 먼저 선종이 정착된 곳이기도 하다.

가지산파의 근본도량이었으며 인도 가지산의 보림사, 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함께 3보림이라 일컬어졌다.

경내에는 국보 제44호인 3층석탑 및 석등, 국보 제117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155호인 동부도, 보물 제156호인 서부도, 보물 제157 ·158호인 보조선사 창성탑 및 창성탑비 등이 있다. 

 

다시 가지산 삼거리로 뒤돌아 내려 와 벗어 던졌던 배낭을 둘러메고 정맥 등로를 따른다.

곰치에서 9.6 Km 걸어 왔고 용두산까지는 9.4 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반가운 시간이다.

하지만 그 용두산 이후부터 정맥산행, 아니 맥 잇기 산행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제대로 그 본 모습을 보여준 시간이였기에 이곳 가지산에서의 좋은 추억은 그저 한조각 구름과도 같은 그런 순간이였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봉우리를 우측으로 우회해 사면 마루금을 따라 진행하니 멧돼지가 만들어 놓은 식흔도 보인다.

아침 7시 30여분이 가까워지며 뱃속에서 허기가 진다고 소식을 전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동안 진행하니 짧은 암봉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계속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장평우산갈림길 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난다.

그곳 이정표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능선 마루금에 자리펴고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종주대를 만나 30여분간 꿀맛같은 식사 자리를 가져 본다.

 

아침 식사 후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며 종주대들 사진도 찍어 드리며 그 그림같은 등로를 걸어 간다.

참으로 운치있는 마루금을 타고 걸어가는 이런 시간이 개인적으로 가장 즐기는 시간중 하나이다.

그렇게 진행하니 다시 완만한 등로가 이어지고 그 정상부에 전망대의 암봉이 나타난다.

그곳 바위에 올라 주위를 살펴 보지만 역시 짙은 안개로 인해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다.

 

다시 완만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아무 표식도 없이 그저 큰 소나무 한그루와 활엽수 한그루가 정상을 지키는 427봉 정상을 넘는다.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 저 앞으로 붉은 황토가 환히 드러나 있는 공사현장이 내려다 보인다.

그것을 바라보며 잠시 더 내려가니 넓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고 그 임도를 타고 한동안 내려가 본다.

 

그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 옆으로 많은 묘지들이 보이고 처음에는 공동묘지라 생각하고 다가가 보니 청주한씨 가족묘처럼 보인다.

추모비와 시도 있는 것으로 봐 제법 잘 가꾸며 관리되고 있는 청주한씨 가문의 중요한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곳처럼 느껴지는 그런 묘지들이였다.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지나온 427봉이 드러나 있고 앞으로 올라야 할 피재 건너 병무산으로 이어진 마루금도 안개가 조금씩 걷히며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청주한씨 가족묘지를 지나 묘지 앞에서 우측의 넓은 비포장 임도를 다시 따르도록 되어 있고 그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임도 우측 산속으로 표고버섯 재배 단지가 눈에 들어 온다.

이 산객이 어렸을 적 살던 충남 청양이 주산지로서 아주 어릴적부터 비가 내리는 날에는 새벽 일찍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고 아버님을 따라 산에 올라 그 많은 참나무를 모두 눕혔던 고통의 순간들 때문에 커서 어른이 된 지금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버섯재배 단지이다.

다만 어릴적 그토록 어려웠던 표고버섯 재배단지가 이제는 이렇게 추억으로 남아 가슴에 새겨져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다.

 

다시 그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가 시멘트 임도로 바뀌고 그 시멘트 임도 끝자락엔 820번 지방도로인 피재가 있지만 현재 공사중이라 난장판이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또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개발이 필요하겠지만 꼭 이토록 산자락을 모두 잘라내며 만들어야 하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공사현장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공사가 마무리 된 후 제대로 그 현장을 원상 복귀시켰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공사장 한가운데를 타고 반대편 절개지를 올라 김해김씨세장산이란 커다란 묘지 옆에서 배낭 풀고 식수를 마시며 잠시 쉬어 간다.

 

하지만 그 김해김씨 묘지가 있는 위쪽으로는 등로가 없고 간벌된 편백나무 군락지만 남아있다.

아무리 등로를 찾아 봐도 보이지 않는 그 능선을 타고 종주대들이 하나 둘 오르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아니기에 지도를 꺼내 살펴보니 묘지 우측으로 있는 편백나무 군락지를 타고 사면으로 올랐다 진행해야 될 것 같아 그리 오르니 그곳에 정상 등로가 열려 있다.

즉 공사중인 절개지로 오를 때 절개지 가장 높은 곳이 아닌 올라가며 약간 우측방향으로 오르던가 아니면 김해김씨 묘지 앞까지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올라 그 묘지 위로 올라가지 말고 그 아래에서 묘지를 지나쳐 조금 더 진행해 편백나무 숲을 지나 정상 등로를 타고 좌측으로 오르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정상등로를 찾아 오르니 다시 능선으로 이어지고 그 능선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 오르니 다시 평이한 등로와 만난다.

이곳에서부터 병무산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나즈막한 봉우리와 안부를 번갈아 타며 지루한 산행이 이뤄진다.

편백나무 군락지가 나타나다 다시 소나무 군락지로 변하는가 싶더니 또 다시 잡목들이 등로를 채우는 그런 모습의 연속이다.

 

820번 자방도로 공사장에서 한시간 넘게 이런 지루한 등로를 타고 걸어 올랐지만 아직도 병무산까지의 거리는 제법 남아 있는 듯 하다.

특히 안개가 사라지며 주위 조망이 조금씩 눈에 들어 오지만 이 구간은 녹음이 우거지며 조금씩 보이던 그 조망마저 사라져 버렸다.

서서히 날씨가 무더워지며 처음 산행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땀방울을 쉴새 없이 흘리고 있다.

 

그렇게 한발 두발 어렵게 발걸음 옮기니 드디어 병무산 정상이다.

청풍24 1990재설이란 삼각점과 '93-6-14' 헬기장 표지가 있는 병무산 정상에는 준.희님이 달아 놓은 병무산 513.7봉이란 정상이정표가 있는데 그 옆에는 개인이 붙여 놓은 병무산 남봉 511봉이란 정상 이정표 하나가 더 달려 있어 헷깔린다.

이 병무산 정상은 넓은 헬기장으로 이뤄져 있고 장흥군 장평면과 부산면과 유치면의 경계를 이루는 봉우리다.

 

병무산 정상에서는 잡목들로 인해 조망도 없고 또 안개가 사라지며 뜨거운 한낮의 퇴약볕이 내리기에 곧바로 출발해 진행한다.

잠시 능선을 타고 진행하다 등로 우측을 바라보니 다리가 보이고 그 다리 지나 제법 큰 저수지도 내려다 보인다.

잠시 지도를 꺼내 살펴보니 탐진강을 막아 만들어진 탐진댐이다.

 

탐진강 (백과사전에서 발췌)

총 길이 56㎞인 탐진강은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궁성산(484봉) 북동쪽 계곡에서 발원해 남동쪽으로 흐르며,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 앞을 지나면서 유로를 남쪽으로 바꾼다.

유치천과 제비내를 합류하고, 장흥읍을 관류해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금강을 합류한 다음 강진군 강진읍 남쪽에서 남해 도암만으로 흘러든다.

하천명은 탐라의 사자가 신라에 조공할 때 배가 이 강 하구의 구십포에 머물렀다고 해서 탐라국의 탐자와 강진의 진자를 따서 탐진이라 한 데서 유래되었으며, 예양강 또는 수녕천이라고도 불렸다.

강유역에는 용반평야를 비롯해 부산평야, 장흥평야, 강진평야가 분포하며, 영산강·섬진강과 더불어 전라남도의 3대강으로 손꼽힌다.

탐진강의 하구인 구십포는 수심·수온 등이 장어가 살기에 알맞아 장어의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은어도 서식하나 하천오염으로 인해 줄어들고 있다.

 

능선을 타고 계속 진행하니 제법 높은 무명봉이 나타나고 하늘기둥님이 힘을 북돋아 주는 아크릴 안내판이 붙어 있다.

계속 진행하니 다시 안부로 내려가고 앞으로 올라야 할 뾰족봉이 나타나느데 아마도 511봉으로 생각되는 봉우리이다.

그 봉우리 지나 계속 진행하니 저 멀리 잡목 사이로 용두산 정상의 무인산불감시탑이 살며시 나타난다.

제법 먼 거리처럼 보이지만 한발 두발 걷다 보면 금새 그곳에 도착할 것이다.

 

약간의 암봉을 지나 등로 우측으로 계속 보이는 탐진강과 탐진댐을 조망하며 진행하니 병무산 지나 첫번째 헬기장이 나타나고 93-6-14 표시석이 보인다.

더위에 사진 한장 남기고 재빨리 진행하며 종주대 개인 사진을 담아 드리고 전진하니 두번째 헬기장이 나타난다.

이곳 역시 사진 한장 남기고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와 만나 이정표를 담아 본다.

지도상에는 아무 표식도 없이 그냥 임도 표시만 되어 있는 곳인데 이곳 이정표에는 부산관한임도란 이정표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이 장흥군 부산면이다 보니 지명이름을 따 부산임도라 이름 붙은 곳인것 같다.

 

다시 10여분 조금은 벅찬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471봉 정상의 활엽수 두그루를 만나고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다 보니 잎이 무성한 잡목 사이로 용두산 정상이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다.

고사목도 보이는 사이로 용두산을 조망하며 한동안 내려가니 생각보다 산행에 큰 어려움은 없다.

다시 10여분 내려가니 저 아래에서 종주대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곳으로 내려가 잠시 합류해 본다.

 

계속 종주대의 목소리를 따라 내려가니 생각보다 낮지 않은 안부에 이정표 하나가 서 있고 금장재라 적혀 있다.

용강리의 여의동과 용반리의 관한을 이어주는 고갯마루인데 그 이름만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듯 등로 양쪽으로는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다.

이곳 역시 도로가 뚫리기전에는 민초들의 애환이 남겨져 있던 고갯마루였겠지만 이제는 그 희미해지는 흔적조차 찾아주는 이 없는 고갯마루가 되어가고 있는 곳중 한곳이다.

이곳에서 남아 있던 시원한 포도 과일을 나눠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해 본다.

 

금장재를 떠나 천천히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넓은 등로로 바뀌고 잠시 그 임도같은 등로를 따라 오르니 등로는 직진의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그 능선을 따라 다시 꿈결같은 마루금을 걷다 보니 이곳이 천국은 아닐까 생각이 드는 시간이다.

하지만 서서히 더위가 심해지며 산행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힘들게 오르니 저 멀리 무인산불감시탑이 서 있는 용두산 정상이 보이지만 그곳은 나무 그늘 하나 없는 퇴약볕이 강하게 내려 쬐는 정상이다.

그곳에서 동료 종주대가 올라오는 것을 기다려 사진 한장 남기고 잠시 지도 펴 놓고 주위 조망을 즐겨 본다.

온 몸에는 비오듯 흘러 내리는 땀방울로 정신 없지만 그래도 오랫만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주위 산군들의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면 큰 아쉬움이 남을듯 하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태양빛이 더위를 먹게 하였는지 이 이후로는 산행하면서 처음으로 가장 힘들고 괴로운 시간으로 기억되는 구간이 되였다.

 

북쪽으로 우측 저 멀리 무등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산줄기를 타고 좌측으로 흐르며 영광의 불갑산까지 보이는 듯 한데 아무리 지도를 찾아 봐도 그곳이 불갑산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무등산과 월출산 사이에 제법 높은 산세를 가진 산이 없기에 중앙 좌측의 높은 산이 혹시나 영광의 불갑산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오랫만에 만나는 멋진 조망에 이 산객도 더위를 먹는지도 모르게 신나게 즐기고 있다.

 

남쪽으로는 좌측의 사자산 지나 저 멀리 천관산이 보여야 하지만 박무로 인해 그 아름다운 천관산은 숨어 버렸다.

그 천관산으로 이어진 올망졸망한 산줄기들만이 민초들이 살아가는 마을로 이어지며 그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몇번인가 들렸던 가을 억새가 유명한 천관산을 먼 발치에서라도 볼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있었는데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다.

 

남동쪽으로는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보성의 작은산과 제암산 그리고 사자산이 우뚝 솟아있다.

봄철 철쭉으로 유명한 산이고 특히나 그 산줄기를 타고 내려오다 보면 보성녹차밭과 연결되어 수많은 등산객들과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산이기에 이 산객도 몇번 다녀왔던 곳이기도 하다.

그 중앙의 제암산 정상에 우뚝 솟아 있는 임금바위가 그 위용도 당당하게 구름 사이로 당당하게 빛나고 있다.

  

아쉬워 잡목 사이로 약간 얼굴을 내밀고 있는 서쪽의 영암 월출산은 그 울퉁불퉁한 암봉의 남성미만 약간 가슴에 남기고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재빨리 나무 그늘속으로 숨는다.

그곳에서 잠시 배낭 벗어 남아 있는 막걸리 한잔씩 마시고 다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헬기장을 지나고 편백나무 숲도 지난다.

잠시 벌목된 장소를 지나며 앞을 바라보니 임도 지나 올라야 할 봉우리가 아직도 빨래판을 이루고 쉽지 않은 마지막 산행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까지 걸어 왔던 등로와는 다르게 이곳에서 부터는 약간의 퇴약볕이 산객의 고통을 더해주는 구간이다.

삼복 더위보다 더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그 열기를 피해 잠시 그늘로 들었는가 싶으면 다시 퇴약볕의 강렬한 햇살로 밀쳐내기를 몇번인가 반복하는 사이 넓은 임도를 만나 진행하니 그곳에 오랫만에 보는 지무시 짚차가 서 있다.

어릴적 무척 많이도 봤던 지무시 짚차, 이런 곳에서 이런 귀한 차를 볼 수 있는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일 것이다.

 

이제 지도상에 나타난 만년고개가 가까웠다고 생각하는 순간, 만년고개는 아직도 높은 봉우리 하나를 더 넘어야 보이는 고개이고 이곳은 새롭게 임도를 만들고 있는 공사 현장이다.

사거리 임도로서 오늘 이 종주대가 걸어 가야 할 등로는 넓은 임도를 가로 질러 능선으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를 타고 올라야 하는 시간이다.

이곳에서부터 조금씩 몸의 체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고 갑자기 근육에 있던 모든 힘이 빠져 나가는듯 무기력증에 빠진다.

 

가파른 등로를 타고 오르다 너무 힘에 겨워 어깨에 메고 오르던 DSRL 카메라는 배낭에 넣고 조금은 편안하게 진행하지만 역시나 한번 고갈된 체력은 쉽게 회복될리 만무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산행 경험을 바탕으로 쥐가 난 것은 아니기에 필요한 약 하나 먹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 오른다.

작은 무명봉에 오르니 종주대들이 남아 있던 막걸리와 맥주를 마시며 쉬고 있고 이 산객도 맥주 한모금으로 목마름을 다래 본다.

다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진행하니 눈 앞에 거대한 305.1봉이 가로막으며 산객의 의욕을 꺽어 놓는다.

 

다시 천천히 그 305.1봉 지나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시멘트 임도로 된 부산만년임도 이정표가 서 있다.

이정표를 보니 갑낭재까지는 아직도 4.3 Km 가 남아 있고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

한낮의 열기가 점점 더 대지를 데우고 이 산객의 몸도 데우는 시간, 온 몸은 이미 축 늘어져 천근만근 한발자국도 걷기 힘든 최악의 상태가 되였다.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짧은 암봉들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는 찰나의 시간에도 강렬한 햇살로 인해 온 몸은 자꾸만 더 쳐지고 있다.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참으로 괴로운 시간만 흐르고 있다.

그래도 무명봉 하나를 넘어 벌목지대를 지나 묘지 하나를 통과한 후 그 371 암봉으로 오르며 앞을 바라보니 남쪽 저 멀리 장동의 마을들을 지나 철쭉으로 유명한 제암산 임금바위가 우뚝하다.

좋은 카메라는 배낭속에 넣었지만 똑딱이를 꺼내 오랫만에 풍경 씬에 놓고 최선을 다해 사진을 담아 본다.

 

제암산 우측 남쪽으로는 사자산 두봉이 보이고 그곳으로 이어지는 중간에는 장동면의 마을들과 들판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바로 앞으로는 오늘 산행 날머리인 시목치와 이어지는 2번 지방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몇번인가 애마를 이용해 지나 다녔던 도로이기에 그때의 고운 추억을 꺼집어 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계속 이어지는 암릉지대를 타고 암봉과 나무 그늘을 번갈아 타며 오르다 보니 몸은 점점 더 늘어지며 한발자국 옮기기도 힘에 부친다.

산행 하면서 처음 경험해 보는 고통이기에 조금 늦더라도 아주 천천히 몸이 견딜만한 속도로 꾸준히 올라 본다.

그러다 너무 어려워 잠시 쉬며 뒤돌아 보니 서쪽 저 멀리 부산의 좁은 들판 넘어 처음에는 월출산이라 생각했던 수인산 암봉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일반 산꾼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지만 이곳 호남의 산꾼들에게는 제법 그 입소문이 나 있는 산이듯 하다.

 

어렵게 371봉 정상부의 암봉에 올라 남쪽 저 멀리 장동면 지나 제암산 정상부를 담아 본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몸이 천근만근 말을 듣지 않으니 그저 이렇게 후기글을 쓰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사진 한장 담는 것에 의미를 두는 시간이다.

왜 이런 무모한 산행을 하는지 아니면 산행을 하면서 후기를 정리한다는 것이 무엇이기에 이렇듯 더위를 먹으면서도 모든 것 털어버리지 못하고 가슴속에 욕심을 남기고 있는지 참으로 스스로에게 이해되지 않는 시간이기도 하다.

 

몸도 좋지 않은데 특히나 더위까지 먹었다고 생각되는 시간에도 발 아래 펼쳐진 사진 한장 더 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모습에서 어이없는 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였지만 산행 후 의자에 앉아 바라보는 사진 한장 한장에는 고통과 괴로움이 섞여 더욱 찬란한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장동면 마을을 가깝게 담아보며 모내기가 끝나 푸르게 변해가는 들판과 시원스레 뻗어 있는 도로도 함께 찍어 본다.

그 마을 저 멀리 사자산 우측 아래 남쪽으로 이어진 올망졸망한 산줄기들도 물론 함께 담으면서...

 

참으로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의 연속이다.

이제 이 산객 뒤로는 아무도 없다.

오랜 세월 후미를 보면서 후미의 고통을 잘 알고 있지만 막상 스스로가 후미가 되어 걸어가는 이 시간이야 말로 최악이다.

그래도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몸이기에 움직이지 못하는 몸을 추스리며 정상 지나 안부로 내려가니 저 멀리 우측 앞으로 갈지자로 이뤄진 산판도로가 흉물스럽게 다가오고 그 뒤 저 멀리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인 350봉과 시목치가 잘룩하게 보인다.

아직도 멀고도 먼 등로가 남아 있는 거리이다.

 

그곳 정상에서 잠시 등산화와 양말을 벗어 던지고 몸을 거꾸로 한채 배낭 베고 약 3분 정도 마음 편히 쉬어 간다.

불타듯 뜨겁던 발바닥이 조금은 시원해지며 훨씬 기운을 차리기 편안하다.

다시 천천히 일어나 남아 있는 맥주 한모금 마신 후 시원한 맥주로 발을 닦아내니 생기가 돌며 조금은 힘을 낼 것 같다.

어렵게 224.9봉까지 진행하니 제법 많이 왔다는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지며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북교리와 반산리쪽 마을과 2번 지방도로도 이제사 다시 눈에 들어 온다.

 

잠시 그늘 숲길을 걷다 보니 등로 앞으로 보성의 제암산 능선이 시원하고 바로 앞으로는 마지막 올라야 할 350봉이 산객의 의지를 꺽어 놓고 있다.

그래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내디디며 천천히 걸어가니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와 이어지고 있지만 벌목된 곳에 카 직은 관목들만 자라고 있어 뜨거운 태양빛이 직접 온몸에 전달되고 있다.

참으로 고통스럽고 괴로운 시간의 연속이다.

 

나즈막한 안부로 내렸다가 다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그곳에 편백나무 숲이 기다리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와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산행대장님이 피재에서 탈출해 시목치에서 거꾸로 올라오며 부르고 있다.

몸은 조금 더 쉬고 싶은데 마음이 허락하지 않아 천천히 걸어 올라가니 물 반통을 들고 편백나무 숲이 끝나는 지점에서 산행대장님이 기다리다 전해 준다.

단숨에 그 물을 모두 마시고 다시 천천히 오르니 또 다른 종주대 한분이 얼어 있는 영지버섯 물을 건네기에 또 정신없이 그 물을 마시니 조금은 살 것 같다.

마지막으로 350봉을 어렵게 넘어 내려가니 저 아래 2번 신도로와 그 옆으로 구도로가 보이고 그 도로 건너 제암산과 사자산도 아주 손에 잡힐듯 가깝게 다가와 있다.

 

약간은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한동안 내려오니 드디어 2년전 봄에 만났던 갑낭재, 즉 시목치라고도 하고 감나무재라고도 하는 오늘 산행 날머리에 도착을 한다.

뜨거운 태양열이 대지를 달구고 이 산객의 몸도 달구는 시간, 그래도 그 어려운 산행 조건에서도 몸에 큰 무리없이 완주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그 뜨거운 시멘트 도로를 타고 시목치관광농원까지 걸어 내려가는 시간은 천국에서의 휴식 시간처럼 다가온다.

그곳에서 이곳이 고향이라는 종주대 한분의 봉양으로 뜻하지 않은 맛난 점심 식사를 끝으로 멀고도 힘들었던 최악의 산행 조건을 이기고 또 한구간 마무리 할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으로 남겨 본다.

 

수많은 산행을 하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최악의 시간이였던 이번 구간을 뒤돌아 보니 역시 카메라가 문제였고 그 다음에 그 카메라로 주위 조망을 담는다고 오랫동안 강렬한 햇볕에 노출된 몸이 문제였다는 결론이다.

앞으로 당분간은 똑딱이를 이용해 사진을 남기기로 하고 큰 카메라는 쉬는 시간 중간에 먼 조망을 담는데 잠시 이용하기로 해 본다.

그렇게 했는데도 몸에 문제가 있다면 전체적인 부분에서 다시 한번 체력적인 부분을 전검해 봐야 할 시점은 아닌지 결론을 내 본다.

 

다음 구간은 두번이나 올랐던 구간이지만 맥 잇기 산행으로 홀로 올라야 할 구간이니 체력과 시간 안배 잘 해 멋지게 마무리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