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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산행(완료)/호남정맥(완료)

호남정맥 제13구간 어림고개에서 돗재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1.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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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화순군의 호남정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0년 04월 16일과 17일 (무박 2일 일요 산행)

산행날씨 : 새벽과 아침엔 찬바람 불어대던 한겨울 날씨였으니 점심부터 따쓰한 봄 날씨

산행온도 : 영하 05도에서 영상 10도

산행인원B산악회 22명 따라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어림고개(897번 지방도로)-소나무 보호수-별산 (오산, 687봉)-594.6봉-

               묘치고개(15번 지방도로)-385.8봉-주라치-천왕산(427.3봉)-통신기지국-

               구봉산 갈림길-서밧재(15번 지방도로)-광주학생교육원-276번 송전탑-568봉-제1쉼터-

               천운산제1봉-천운산(604.7봉)-512봉-돗재(822봉)-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8.50 Km (접속구간 : 00.00 Km) 

산행시간 꾸준한 속도로 식사 및 휴식시간 포함해 08시간 25분 (03시 55분에서 12시 20분까지) 

              

호남정맥이란 ???

우리나라 서남부 문화권을 나누는 의미 있는 경계선으로 산경표를 보면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이 분기하고 그 산줄기가 다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으로 나뉘며 호남정맥은 그 시작점이 웅치(현재 지명으로 곰치재)라 적혀 있는 총 산행거리 398.7 Km의 산줄기이지만 어느 산꾼들은 백두대간 영취산이 호남정맥의 시작점이라 하여 총 산행거리 462 Km의 산줄기라 하기도 한다.

호남정맥은 동쪽으로 섬진강을 서쪽으로는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을 가르고 있으며 주요한 산들을 살펴보면 3정맥 분기점인 주줄산(주화산)에서 남서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완주 만덕산(762m)을 지난 후 내장산(763m), 추월산(729m), 무등산(1,187m), 제암산(779m), 조계산(884m) 등 남도의 큰산을 지나 광양 백운산(1,218m)을 끝으로 섬진강과 남해바다가 만나는 곳 망덕산(197봉) 앞 바다로 흘러드는 산줄기를 말한다.

 

 

남녘에서 호남 마루금을 걸으며 봄 맞이 산행을 겸했던 여유로웠던 시간들

 

 

유럽 출장 건으로 홀로 내려왔던 어림고개에 다시 3주만에 찾아오니 싸늘했던 밤공기마저 봄의 재촉에 멀리 달아나고 보이지 않던 가로수 벗꽃이 참으로 화사하게 피어 종주대의 삭막한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이제 남쪽으로 달리고 달린 호남정맥 마루금도 조만간 방향을 크게 틀어 동으로 진행하면 그곳에 남해 바다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번 구간은 생각보다 길지도 않고 또 특별히 어려운 구간도 없으니 주위 조망과 등로 옆에 고개를 내밀고 올라오는 야생화와 친구를 하면서 진행하면 될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등로를 타고 한동안 땀방울 흘리니 별산지나 594.6봉의 삼각점을 지난다.

잠시 산죽밭을 지나 부드러운 능선을 타고 내려가니 저 멀리 차량이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며 묘치재가 얼마남지 않은듯 느껴지는 시간, 등로 좌측 저 멀리 동녘 하늘에선 오늘도 두꺼운 구름을 뚫고 하루해가 떠 오르고 있다.

앞서 진행하던 종주대는 이미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그곳에 홀로 남아 박무로 인해 깨끗하지는 않지만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는 일출을 바라보며 이 작은 산객의 삶과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어 본다.

 

 

새벽 3시 40여분, 어김없이 호남 종주대를 태운 애마는 897번 지방도로 위 어림고개에 도착하고 산행 준비 후 내리니 생각보다 새벽 공기가 춥지 않고 기분 좋은 시간이다.

보름이지만 두껍게 낀 구름으로 인해 주위 사물을 분간하기 조차 힘든 칠흙같은 어둠이다.

어림마을 빗돌과 버스정류장 그리고 동면과 이서면을 가르는 도로 이정표를 담으며 산행 들머리로 이동하는데 머리 위에서 한들거리는 벗꽃이 어둠속에서도 환한 미소를 띄고 종주대를 반갑게 맞이해 준다.

 

잠시 인원 파악하고 산행 준비하는 사이, 마을 견공들은 어김없이 울부짖으며 종주대의 출발을 재촉하고 도로 옆 능선으로 오르며 긴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 새벽 3시 55분이다.

잠시 등로를 타고 오르니 청궁리 마을 이장이 관리하는 커다란 보호수인 200년된 소나무 한그루가 멋지게 서 있지만 어두운 밤이기에 그저 상상으로만 확인하고 안내판 한장 담는 것으로 만족하는 시간이다.

 

다시 생각보다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계속 진행하니 잡목들이 잠시 성가시게 굴더니 낙엽이 푹신한 부드러운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20여분 오르니 제법 평탄한 능선에 도착하지만 여전히 암흙같은 어둠으로 인해 등로 좌우의 안심리와 마산리의 불빛들만 세상에 남아 있는 듯 하다.

다시 나즈막한 내리막 안부로 내렸다 오르니 첫번째 임도를 만나 가로 질러 오르며 계속 정맥 산행은 이어지고 있다.

 

보이는 것이 없기에 앞서 진행하는 종주대의 뒷모습만 따라 오르니 다시 조금은 가파라지는 등로를 타고 전진하고 두번째 무명봉에 올라 잠시 한숨을 길게 내쉬어 본다.

잡목이 길을 막는 등로를 헤치고 조심스럽게 진행하니 평탄한 두번째 임도를 만나 이제부터 제법 넓은 등로를 타고 올라 본다.

생각보다 급경사 오르막 등로도 아니고 날씨마저 산행하기 좋은 기온이니 산행 속도는 무척 빠르다고 느껴지는 시간이다.

 

두번째 임도를 지나 계속 진행하니 금새 억새가 울창한 억새밭에 도착해 별산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40여분 쉴틈도 업시 오르다 보니 두 다리에 느껴지는 묵직함이 기분좋게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폐헬기장 같은 넓은 공터를 지나 넓은 마루금을 타고 오르며 등로 양쪽으로 늘어 선 억새의 호위를 받으며 오르니 갑자기 암벽이 나타나고 잠시 주춤하며 정체 현상이 일어 난다.

 

그렇게 그 암봉을 오르니 드디어 첫번째 봉우리인 별산 즉 오봉에 올라 신선한 호남의 공기를 폐부 깊숙히 마셔 본다.

어둠속에서도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정상석을 찍은 후 반대쪽 암봉으로 올라 배낭 내려 놓고 잠시 흐르는 땀방울을 식히며 주위 조망을 해 본다.

앞쪽으로 많은 불빛이 보이는 곳이 아마도 동북호라 생각되지만 어둠속에 보이는 것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 가득하다.

특히 이곳 별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지나온 무등산과 안양산 마루금이 시원하고 앞으로 올라야 할 마루금 역시 멀리 보인다고 알기에 아쉬움은 더욱 커지고 푸르른 동북호의 물결 한번 보지 못하고 반짝이는 불빛만으로 대신하려니 안타까운 마음 커진다.

 

다시 별산 정상부의 암봉을 내려 와 계속 이어지는 억새밭을 타고 진행하니 무인산불 감시탑이 서 있다.

안내문을 한번 읽어 보고 다시 조금 더 진행하니 커다란 암벽을 지나 내려가도록 되어 있다.

이곳에서도 잠시 정체 현상이 일어 나 약간의 시간을 지체 한 후 내려 서서 진행하니 헬기장이 나타난다.

그곳 헬기장을 지나 계속 평이한 등로를 타고 어둠속에 앞으로 전진한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진행하니 진양하씨 비석이 넘어진 묘지를 지나 등로는 이어지고 금새 종주대 키 높이로 자란 무성한 산죽밭을 타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한동안 산죽밭과 씨름을 하다 다시 평이한 등로가 나타나고 임도같은 넓은 등로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산죽밭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조금씩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고 머리에 찬 헤드렌턴의 불빛이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잠시 짧은 구간 산죽밭을 타고 사각거리는 산죽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594.6봉 정상에 박혀 있는 삼각점에 올라서게 된다.

이제 어둠이 서서히 물러가고 헤드렌턴의 도움 없이도 산행을 진행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기에 배낭에 넣고 DSRL 카메라를 꺼내 목에 걸고 산행을 시작해 본다.

조금씩 진분홍의 진달래꽃들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하고 안전 로프가 달린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내려가 넓은 공터에서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해 본다.

 

멋진 소나무가 줄지어 늘어 선 아름다운 등로를 타고 무심으로 걷다 보니 묘지지대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바라 본 등로 좌측의 동북호 방향에는 보고 싶은 동북호는 보이지 않고 묘치재로 이어지는 2차선 지방도로와 그 뒤 저 멀리 화순의 산들이 구비 구비 이어져 있다.

가까이에는 조팝나무꽃과 산벗꽃 그리고 진달래가 피어 너무나 황홀한 풍경을 만들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몇장의 사진에 담은 후 계속 맥 잇기 산행을 진행한다.

 

다시 평이하지만 간간히 간벌을 해 놓은 소나무 등로를 타고 제일 후미에서 무심으로 걸어 본다.

특별히 사진 찍을만한 풍경도 아니고 또 이렇게 홀로 걷다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 놀라기 전까지 온통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아무 생각없이 걷고 있음을 느끼곤 흠칫 놀라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진행하다 앞을 보니 등로 좌측 잡목 사이로 어렵게 두꺼운 구름속을 뚫고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과 마주하게 된다.

늘 만나는 일출이지만 이렇게 홀로 등로에 서서 맞이하는 일출은 언제나 신선하고 새롭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많은 사진을 찍으며 한동안 그곳에 머물러 아름다운 일출을 맞이한 후 다시 안전 로프가 달린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15번 지방도로와 동북호 방향으로 갈라지는 2차선 포장도로가 만나는 묘치재에 도착해 몇장의 사진으로 남겨 본다.

동북호 가는 2차선 포장도로가에 곱게 피어난 벗꽃이 종주대의 발길을 붙잡고 아침인사를 나누자고 앙탈을 부리는듯 멋지게 맞아 준다.

 

도로 건너기 직전 묘치재 해발 200미터 화순군이란 이정석이 있어 몇장의 흔적을 남긴 후 내려 와 동북호쪽으로 가다보면 만나는 적벽가는 길 이정석 앞에서 단체 사진 한장 남긴다.

이곳 화순은 적벽과 방랑시인 김삿갓 그리고 천운산 자락에 있는 화순탄광이 공부 재료가 될 듯 하다.

적벽에 관한 자료를 조사해 보니 이 근처를 흐르는 동복천 상류인 창랑천은 약7 Km에 걸쳐서 수려한 절벽경관이 있으며 대표적으로 노루목적벽, 보산리적벽, 창랑리적벽과 물염적벽으로 나뉜다.

아쉽게도 김삿갓을 비롯한 많은 시인과 묵객 들이 좋아했던 상류의 노루목적벽은 1985년 동복댐 준공으로 수몰되어 25미터 가량 잠겨버렸다.

노루목적벽과 보산리적벽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출입이 제한되어 광주 상수도사업본부에서 허가를 받아야만 방문이 가능하다.

다만 동복댐 우회도로 물염적벽에서 옛선비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다.

김삿갓의 초분지가 보존되어 있고 그가 생전 동복에서 고향영월을 바라보며 그리워하였을 자리에 현재 망향정을 건립중이며 전통문화의 계승과 지방문화의 개발을 위한 적벽문화제가 매년 10월 종합문화예술 행사로 열리고 있다.

한번쯤 들려보고 싶은 곳이지만 오늘이 아닌 또 다른 하루를 생각해 보는 순간이다

 

마음 같아서는 화사한 벗꽃이 만발한 지방도로를 타고 동북호에 다녀오고 싶었지만 함께하는 산행이기에 참고 다시 15번 지방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도로 표시판에는 경치리라 적혀 있고 화순과 광주 도로 이정표가 보이니 또 새롭게 다가오는 묘치재이다.

잠시 삼나무 군락지를 지나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굽어진 굴뚝이 보이고 아름다운 진달래 등로를 따라 오르다 뒤돌아 보니 그곳에 방금 전 오른 묘치재에서 594.6봉 지나 별산으로 이어진 멋진 마루금이 펼쳐져 있다.

 

구불 구불 이어진 마루금을 타고 느긋하게 진행하니 조금씩 허기가 져 오기 시작하고 그렇게 오르니 저 멀리 묘지들이 보이고 그 옆에는 너무나 화사한 산벗꽃이 피어 있다.

그 벗꽃 아래에서 산우님들이 꽃을 담기 위해 잠시 앉아 정성을 드리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흘러 나온다.

그만큼 오늘의 산행이 여유가 있고 즐기는 시간이기 때문이리라.

 

그곳에서 잠시 완만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민둥의 정상이 나타나는데 모두들 그냥 지나쳐 걸어 가길래 처음에는 무명봉이 아닐까 생각하며 지나친다.

하지만 지도를 보니 이곳이 385.8봉임을 알아차리고 잠시 뒤돌아 가 보니 그곳에 삼각점이 박혀있고 그 삼각점 위에 385.8봉이라 누군가 적어 놓았다.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진행하니 삼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더욱 화사한 진달래꽃 길이 기다리고 있다.

등로에는 이제 제비꽃을 비롯한 야생화들이 막 꽃망울을 터트리며 종주대의 발길을 붙잡는다.

넓은 임도를 지나 다시 평이한 소나무 지대를 지나니 저 멀리 천왕산에서 구봉산 지나 천운산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마루금이 산객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며 조망이 아닐 수 없다.

 

다시 진달래 꽃 터널을 지나 계속 앞으로 전진하다 발 밑을 보니 그곳에 황홀한 붓꽃이 다시 발길을 붙잡는다.

올해 들어 처음 보는 붓꽃이기에 잠시 가던 길 멈추고 자리잡고 앉아 사진으로 담아 보지만 역시 사진 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색이 변색되어 버렸다.

이별과 신비로운 사람 그리고 존경이란 꽃말을 가지고 있는 붓꽃은 그 모양이 붓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계속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많은 묘지들이 있는 곳에 도착해 야생화와 고사리를 채취하며 잠시 망중한을 즐겨 본다.

생각보다 많은 고사리로 인해 금새 한봉지를 뜯고 계속 진행하다 앞을 보니 천왕산으로 이어진 마루금이 멋들어 진다.

많은 소나무 사이로 하양과 진분홍 봄꽃들이 피어 더욱 아름다운 산하를 만들고 있다.

 

묘지지대를 지나 다시 넓은 임도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주라치를 지나니 더욱 허기가 지기 시작하고 등에 달라 붙는 뱃가죽을 부여 잡고 능선으로 오르니 보라 현호색과 진분홍 제비꽃 그리고 분홍의 진달래꽃이 반겨주고 있다.

몇장의 사진으로 야생화를 남긴 후 다시 완만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바위지대를 넘어 금새 천왕산 정상이다.

왜 천왕산인지 그 의미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방랑시인 난고 김병연 즉 김삿갓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왜 김삿갓이 이곳과 관련이 있는지 이번에 제대로 공부를 한듯 하다.

조선 후기 시인으로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성심 그리고 호는 난고이다.

속칭 김삿갓 혹은 김립이라고도 부르는데 아버지는 김안근이며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하였다.
1811년(순조 11)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로 있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에게 항복하였기 때문에 연좌제로 인해 집안이 망하였는데 당시 6세였던 그는 하인 김성수의 구원을 받아 형 병하와 함께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냈다.

후에 사면을 받고 과거에 응시하여 김익순의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답을 적어 급제하였다.

그러나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벼슬을 버리고 20세 무렵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던 그는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전국을 방랑하면서 각지에 즉흥시를 남겼는데 그 시 중에는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조롱한 것이 많아 민중시인으로도 불린다.
아들 익균이 여러 차례 귀가를 권유했으나 계속 방랑하다가 전라도 동복(현 전남 화순)에서 객사하였다.

유해는 영월군 태백산 기슭에 있으며 1978년 그의 후손들이 광주 무등산에 시비를 세우고 1987년에는 영월에 시비가 세워졌다.

작품으로 김립시집이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발췌)

 

특별히 조망도 없는 천왕산 정상이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저 멀리 묘지 두기가 보이고 그곳에 오르니 앞으로 올라애 할 밤나무 단지와 거대한 두개의 송전탑 그리고 정맥에서 벗어나 있는 구봉산과 저 멀리 천운산 제2봉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걸어 가야 할 마루금을 타고 전진한다.

 

다시 호젓한 등로가 한동안 이어지더니 비석이 세워진 묘지 두기를 지나 넓은 임도같은 등로 위를 터널로 덮어 버린 잡목 사이를 걸어 간다.

특별한 봄꽃이 없어도 또한 멋진 조망 하나 없지만 산객이 걸어가는 그 등로가 얼마나 아름다운 등로인지 알려 주는 듯 하다.

저 앞에서 걸어가는 종주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을지 궁금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다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금새 콘크리트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돌아 오르니 바로 눈 앞에는 밤나무 단지가 거대하게 펼쳐져 있고 그 과수원 가장자리엔 하얀 벗꽃이 활짝 펴 꽃 눈이 흩날리고 있다.

동네 아주머니 한분이 그 과수원을 다니며 봄나물 캐기에 여념이 없다 종주대의 출현에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계속 콘크리트 임도를 타고 저 앞에 보이는 거대 통신탑과 구봉산 정상을 보며 진행한다.

잠시 우측 능선으로 등로가 연결되지만 곧 다시 임도와 만나 구봉산 초입 능선까지 이어진다.

거대 KT 송신탑 2개를 지나 한동안 콘크리트 임도를 타고 계속 진행하다 구봉산 능선 직전에서 뒤돌아 보니 장전리 마을 위로 방금 전 올랐다 내려온 천왕산이 연두빛 봄 빛깔을 두루고 아름답게 서 있다.

 

이제 넓은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 구봉산 갈림길로 오르기 직전 지나 온 마루금을 살펴보니 사진 좌측 위로 콘크리트 마루금이 이어지고 그 아래 우측으로 거대한 밤나무 단지가 펼쳐져 있다.

그 아래에는 장전리 마을이 봄꽃이 만발한 사이에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이 산객이 태어나 살았던 칠갑산 자락의 고향 풍경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무슨 연유인지...

 

능선으로 올라 조금 더 진행하니 구봉산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꺽여 내려간다.

구봉산에 들리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인해 나즈막한 봉우리로 오르지만 아무 흔적도 없기에 다시 정맥 마루금으로 복귀해 산행을 이어간다.

쭉쭉빵빵의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내려가니 앞이 트이며 좌측의 모후산과 우측의 천운산 사이로 주암호쪽 산군들이 넘실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다시 넓은 임도같은 도로도 건너고 그 임도같은 넓은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진달래꽃과 소나무가 멋진 조화를 이루는 등로를 지난다.

그렇게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이제부터 올라야 할 마지막 봉우리인 천운산 자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등로 옆 산하는 소나무 몇그루만 남긴채 벌목되어 있다.

바로 발 밑으로는 15번 4차선 지방도로가 지나고 문성석재가 자리하고 있는 서밧재도 내려다 보인다.

 

이제 15번 지방도로가 내려다 보이는 절개지 위에서 화순 동면쪽을 바라보며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바로 아래에는 문성석재가 보이고 그 앞으로 지하통로를 이용해 도로를 건널 수 있는 도로와 15번 주도로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 끝자락 저 멀리에는 지난 구간 지났던 어림고개쪽 마루금이 선명하고 그 넘어 저 멀리에는 유둔재에서 북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도 보이는 듯 하다.

 

절개지 앞에서 우측 등로를 타고 내리막 도로를 내려가니 등로 바로 옆 우측에 문성석재 공장이 있다.

수많은 돌들이 쌓여있고 바쁜 석공의 손놀림도 아름답다.

어릴적 저 석공들을 바라보며 예술이 무엇인지 생각했던 추억이 생각 나 잠시 웃음을 지어 본다.

 

그냥 4차선 도로인 15번 지방도로를 무단횡단하려 했지만 리딩대장의 불호령으로 조금 돌아가지만 지하통로를 이용해 건너 다시 잘 벌목된 등로를 타고 천운산을 향해 올라 본다.

오르다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 닦으며 뒤돌아 보니 저 멀리 보성쪽 산군들이 춤을 추고 있다.

조만간 저곳을 통해 외망포구로 달려 갈 것이다.

 

이제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 뒤돌아 본다.

자꾸만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밟혀 진행하지 못하고 뒤돌아 보는 시간이다.

벽송리쪽 좁은 들판 넘어 남면을 지나 보성쪽 산군들이 가깝게 다가온 조망이다

 

다시 계속 민둥의 능선을 타고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내려와 건넜던 절개지와 15번 지방도로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제 잡목이 있는 능선으로 올라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안전로프가 매달린 암봉에 도착하고 우회해 어렵게 그 암봉을 오르니 바위전망대 구실을 하고 있다.

잠시 들려 사진 몇장 담은 후 다시 오르니 지적경계점이 있는 첫번째 무명봉에 도착한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전방경계점이란 이정목이 나타나고 곧이어 넓은 임도와 만난다

이곳에서 후미 기다리며 잠시 휴식 취한 후 다시 배낭 메고 넓은 임도타고 좌측으로 진행하니 금새 광주학생교육원 건물이 보인다

이제 막 공사가 끝나려는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A동부터 C동까지 있으니 완공된 후에는 또 많은 학생들이 다녀 갈 곳이기도 하다

 

그 광주학생교육원 건물을 지나 진행하니 능선으로 오르는 초입에 천운산 등산 안내도와 정상을 가리키는 이정목이 서 있다.

다시 사진 한장 담으며 주위 풍경을 담아 본다.

아직 공사중이라 몇몇 인부들이 토요일인데도 건축자제들을 나르고 있고 콘테이너 박스에도 몇명의 사람들 모습이 보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천운산 오르막 등로가 시작될 모양이다.

 

광주학생연수원을 지나니 우측으로는 능선길이 좌측으로는 넓은 임도를 따라 진행 할 수 있는 갈림길이 나타나지만 잠시 후 다시 만나기에 그냥 넓은 임도를 타고 진행해도 무방하다.

그곳을 지나 진행하니 고속도로처럼 넓은 임도를 타고 한동안 편안하게 진행한다.

생각보다 가파르지 않은 등로를 타고 산들바람에 흐르는 땀방울 식히다 보니 어느덧 제법 가파른 등로에 굴참나무 숲이 무성한 등로로 변한다.

 

276번 송전탑을 지나고 등산로 이정판을 통과하니 대한광업진흥공사에서 만들어 박아 놓은 커다란 삼각점이 눈에 들어 온다.

제법 넓은 굴참나무 등로를 타고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다시 진달래 꽃이 반겨 준다

그렇게 가파르게 오르니 제2쉼터 갈림길인 제1쉼터 정상에 도착해 잠시 쉬어 간다

하지만 이곳에서 정상가는 등로는 막아 놓고 제2쉼터로 빠지는 우측 등로만 열어 놓았다.

아마도 학생들 트레킹을 위한 등로를 개설하기 위한 조치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시 가파른 등로를 타고 오르니 활엽수 등로 이곳 저곳에 분홍빛 진달래꽃이 피어 삭막함을 감추고 있다.

그저 편안하게 걸어 가기만 해도 아름답고 멋진 마루금이다

이제 마지막 천운산 오름길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아니면 진달래꽃 때문인지 더욱 발걸음이 무거워짐을 느끼며 한발 두발 천천히 걸어 올라간다.

 

그렇게 힘들게 오르니 등로 한쪽에 제2쉼터로 가는 갈림 이정표가 서 있고 중간 중간에 다시 등로 이정표가 붙어 있다.

그 이정표들을 지나니 누군가 쌓았는지 제법 높은 돌탑 하나가 서 있다.

그곳에 돌 하나를 더 올려 놓고 소원을 빌어 보는 시간이다.

이제 천운산 정상도 멀지 않다고 생각을 했는데 저 봉우리에 올라 그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였는지 알게 된다.

아직 천운산 제2봉도 오르지 못했는데 천운산 정상을 생각햇으니 ...

 

돌탑을 지나 오르니 안전 로프가 달려있는 가파른 등로가 다시 나타나고 어렵게 그곳을 오르니 무명봉에 도착해 주위 조망을 즐겨 본다.

등로 좌측 저 멀리 모후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모후산을 둘러싸고 흐르는 산줄기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이곳에서 다시 모후산에 대해 알아 보고자 한다

 

호남정맥의 중간 지점인 무등산 북쪽에서 동남쪽으로 흐르는 산줄기를 따라 가다 솟은 산이 모후산(918.8봉)으로 본디 이름은 나복산이였다가 고려 공민왕 이후 산명이 모후산으로  변경되었는데 그 이유는 왕이 왕비와 함께  홍건적의 난을 피한 산이라는 뜻에서이다.
모후산은 광주의 무등산과 순천시의 조계산 그늘에  가려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유마사, 화순물염적벽, 주암호, 사평폭포등의 명소가  곳곳에 있고 항상 맑은 계곡물이 넘쳐 관광객과 등산객에게 각광을 받을만한 산세를 가지고 있는 산이다.
모후산의 원래 이름은 나복산이었는데 그 산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은 공민왕 10년(1361년) 홍건적을 피해 나복산까지 피신한 왕이 이곳에 머물렀기 때문으로 왕비와 태후를 모시고 내려온 왕은 이곳의 수려한 산세에 반해 1년간 머무른 뒤 개성을 탈환하며 난을 평정했다.

그 뒤부터 이 산을 황태후와 함께 난을 피했던 곳이라 하여 모후산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또한 6.25때에는 빨치산이 유마사에 은거하면서 활동한 활동 근거지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꼭 한번 저 모후산에 올라 이곳을 바라보며 오늘을 추억할 수 있기를 기대했던 순간이기도 하다

 

모후산 우측으로는 호남정맥을 이루는 산줄기쪽으로 그 꼬리를 내리고 있고 그 앞으로는 남면쪽 작은 들녘이 아름답게 놓여 있다.

그 작은 들녘 우측으로는 산을 깍아 만든 멋진 벗꽃 등로가 무슨 골프장을 연상시키듯 보이고 그 넘어 보이지 않는 곳에는 보성의 거대한 주암호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저 이렇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시원하고 짜릿한 순간이다.

 

평탄한 능선을 걸어 바위들이 박혀있는 등로를 지나 등로 우측을 바라보니 진분홍 진달래꽃 저 멀리 오늘 걸어 온 별산이 그곳에 우뚝하다.

어둠속에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온 별산을 이렇게 먼 발치에서나마 바라볼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움직일 수 없는 발길을 붙잡고 그 아름다운 조망을 감상하는 시간이다

 

다시 등로 옆에 곱게 쌓아 놓은 돌탑을 지나 진행하니 광주학생교육원에서 1.7 Km 올랐다는 안내판을 통과하니 등로 좌측 저 멀리 앞으로 올라야 할 호남정맥 마루금이 넘실 거린다.

하나 둘 그 이름을 찾아 천천히 모든 산 이름을 불러보고 싶지만 오늘은 그럴만한 기회가 아닌 듯 하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계속 전진하니 성덕마을 하산 갈림길에 능선삼거리란 이정목이 서 있다.

 

그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마을과 산군들이 먹져 잠시 계단을 타고 내려가 사진으로 담아 본다.

동면쪽 제법 큰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15번 지방도로가 터널을 지나는 모습도 보이며 그 넘어 저 멀리 아파트 단지들 뒤에는 지금까지 걸어 내려 온 호남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 아름다운 조망에 잠시 넋을 잃고 내려다 본 후 다시 능선삼거리로 복귀해 천운산으로 향한다.

 

능선삼거리에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잠시 더 전진하니 가파른 등로가 이어지더니 금새 천운산 제2봉 정상에 도착한다.

삼각점도 없이 그저 천운산 제2봉 안내판 하나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것이 전부이다.

지도를 꺼내 살펴보니 아마도 568봉이 바로 천운산 제2봉으로 표기된 봉우리가 아닐까 생각되어지는 곳이다.

 

이제 활엽수 무성한 등로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천운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깝게 보였던 천운산도 구비 구비 돌고 돌아 몇개의 무명봉을 지나 드디어 그 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늘 걸으면서 느끼는 것은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 피로와 피곤함이 밀려들고 발걸음이 무척 무거워진다는 사실이다.

 

한동안 조망도 풍경도 없는 활엽수 등로를 따라 걷다보니 한순간 등로 좌측에 멋진 산줄기가 보여 담아 본다.

좌측 끝자락에 모후산에서 흘러 내려 와 우측 저 멀리 호남정맥 마루금으로 흐르는 중간 지점을 만들고 있는 산줄기이다.

앞에 보이는 산줄기 넘어 저 멀리 희미하게 앞으로 올라야 할 마루금이 보이는 듯 가깝게 다가와 있다.

저곳에 올라 이곳을 바라보며 천운산을 기억해 낼 수 있을지 궁금한 시간이기도 하다.

 

함께 산행하는 산우님중 한명이 엘레지를 그렇게 찾아 헤매였는데 찾지 못하다가 천운산 정상 가는 등로에서 무수히 많은 엘레지 군락지를 만나 잠시 망중한을 즐겨 본다.

광대와 바람난 여인이란 꽃말을 가진 엘레지, 수많은 사연과 애환을 가진 꽃이기에 더욱 자세히 살펴보는 습관이 생긴 꽃이기도 하다.

왜 바람난 여인이란 꽃말을 가졌을까 무척 궁금한 시간이다.

 

수많은 엘레지를 담은 후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다 바위전망대에 올라 잠시 등로 우측을 바라보니 그곳에 황홀한 추억이 담겨져 있다.

오늘 새벽 어둠속에 걸어 지났던 별산이 그곳에 서 있고 좌측으로 흘러 내려가면 오늘 산행의 시발점인 어림마을로 이어지는 잘록한 고갯마루도 보인다.

그곳에서는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했던 멋진 등로와 아름다운 산하를 이렇게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순간이다.

 

바로 뒤 가까이에는 방금 전 타고 올라 온 등로가 멋지게 누워있다.

그 등로 바로 앞에는 봄을 알리는 진홍빛 진달래가 멋지게 잡혀있다.

그 등로 저 멀리 끊어질듯 이어진 산줄기 역시 그 자태를 마음껏 내 보이며 멋을 자랑하고 있다.

 

다시 고개를 조금 돌리니 오르 걸어 온 모든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온다.

좌측 저 멀리 높은 봉우리를 하고 있는 오늘 산행중 가장 높은 봉우리인 별산에서 구비쳐 우측으로 흐르며 천왕봉을 올리고 그 아래 서밧재를 거쳐 이곳 천운산까지 이어진 마루금을 타고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것이다.

봄을 알리는 연두빛 변색을 시도하려는 산하에 힘이 넘치는 듯 강인하게 각인되는 하루이다.

 

다시 한동안 주위 조망을 둘러 본 후 조금은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드디어 오늘 마지막 봉우리인 천운산에 도착해 배낭 내려 놓고 단체 사진 한장 찍으며 잠시 쉬어 간다.

산불감시 무인탑과 카메라가 돌아가고 그 옆 모퉁이에 아담한 천운산 정상석이 서 있다.

그 정상 바로 아래에는 다시 정상목이 서 있고 그 주위로 넓은 공터를 이루고 있다.

이곳 천운산으로 오는 도중 등로 우측 아래 저 멀리 시커먼 흙들을 봤기에 그것이 곧 이곳 화순의 무연탄임을 직감했지만 그렇게 광범위하게 넓은 지역에 형성된 탄광임은 오늘 처음 알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화순탄광, 강원도와 경북 등지에서 발견되는 석탄 지질 구조가 잔남에서는 유일하게 화순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화순군 동면 복암리 주암호 가는 국도변에 시커먼 철망들이 모두 탄광지대를 알리는 표식들이다.

1904년 처음 발견된 화순탄광은 1918년 동암탄광으로 문을 연 후 1927년 일본지질학자의 지질 조사 후 본격적인 채탄 작업이 시작 되였다.

그 후 일제 시대를 거쳐 해방 후 1970년대와 80년대에 최고의 부흥기를 거쳐 석탄 소비가 줄면서 자연스럽게 화순의 탄광촌도 퇴색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종사자와 화순 지역의 경제에도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으며 채탄된 대부분은 서천 화력발전소로 보내지고 적은 양만 석탄으로 새로 태어나 일반에게 공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천운산은 화순군 동북호와 주암호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자락에는 한천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는 그곳에서 그렇게 한동안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등로를 타고 마지막 하산로로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다 등로 우측 앞을 바라보니 그곳에 아름다운 산줄기들이 멋지게 줄지어 늘어서 있어 잠시 지도를 꺼내 살펴 보니 그곳이 바로 다음 구간 올라야 할 호남정맥 마루금이다.

태악산과 노인봉 그리고 성제봉 지나 두봉산으로 이어지다 계당산을 넘어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마루금을 타고 넘어야 할 산줄기이다.

 

다시 제일 후미로 쳐져 있기에 지도를 넣고 조금은 빠르게 내려가니 한천자연휴양림이 바로 내려다 보이고 곧이어 벤취 두개가 보인다

시야가 탁 트인 그곳에 서서 다시 한동안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마루금을 바라보며 하나 둘 그 이름을 불러 본다.

저곳에 오르는 시간이 어둠속 시간이기에 이곳을 볼 수는 없겠지만 오늘 머릿속에 그려 넣은 멋진 마루금이 있기에 오늘을 추억하는 시간은 있을 것이다.

 

한동안 그곳 벤취 있는 곳에서 멋진 조망을 즐기는 사이 낯선 산꾼 한명이 앞서 진행하고 그 뒤를 따라 내려가니 한천휴양림으로 하산 할 수 있는 능선삼거리 이정목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니 앞서 내려가던 산꾼 한명이 조심스럽게 식스ㅜ가 남았느냐며 물어 와 남아 있는 식수 500미리를 전달하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니 고향은 광주인데 일 때문에 동해에 가 있는데 고행 산줄기가 그리워 호남정맥 산행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준다.

더운 날씨를 예상하지 못해 고생했다면 몇번이나 고마움을 표시하는 산꾼과 함께 잠시 더 진행을 해 본다.

 

이제부터 가파른 등로는 유순하게 변했지만 그대신 수많은 바위들이 등로를 가로막고 너덜지대를 이루고 있다.

그 바위 중간마다 고운 진달래꽃이 피어 아름다운 등로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내려가니 등로 한가운데에 작은 돌탑이 서 있고 그 위에 앙증맞은 작은 돌탑이 다시 올라가 있다.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내려가는 길목에서 아쉬운 마음에 다시 한번 다음 구간 마루금을 담아 본다.

같은 산줄기이지만 보는 각도와 높이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마루금, 땀 흘리며 오른 다음 이곳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련지...

아마도 칠흙같은 어둠속에 오늘 봤던 마루금만 떠 올리며 안타까워 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바위 너덜 구간을 지나니 더욱 온순해진 등로에는 수많은 진달래가 만개해 화사함을 더해주고 있다.

부드러운 등로에는 제법 많은 낙엽이 쌓여 폭신한 양탄자를 연상 시킨다.

늘 바위를 지나 왔기에 색다른 느낌으로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진행하니 같이 진행하던 산객은 멀리 달아나고 저 앞에 팔각정이 보이면서 몇명의 산우님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제 다 내려왔다는 안도감이 조금은 여유있게 휴식 시간도 주는가 본다.

그곳에 올라 사진 몇장 남긴 후 남은 과일로 목마름을 달랜 후 다시 하산길로 내려간다.

 

잠시 더 내려가다 등로 우측을 보니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마루금 우측 저 멀리 작은 저수지가 있는 언도리쪽 산줄기가 아름답다.

이미 이곳 남녘의 빛깔은 갈색에서 연두빛으로 변색중인 시기이다.

이 산객이 가장 아름답게 바라보는 연두빛 봄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다시 나타나는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저 앞으로 U자를 그리며 구불어진 822번 지방도로가 보여 잠시 사진에 담아 본다.

돗재 역시 도로가 뚫리기전 그 옛날에는 무척이나 높아 민초들이 넘나들기 어려웠던 고개임을 알려 주는 듯 하다.

어느 강원도 골짜기를 돌아 가는 도로처럼 저렇게 심한 굴곡을 이루고 있는 오지중의 오지 산행을 하고 있음을 실감한 시간이다.

 

드디어 오늘 산행 날머리인 돗재에 도착한다.

대부분 822번 도로쪽으로 내려가 한천자연휴양림 입간판을 보며 내려가지만 원 정맥 등로는 자연휴양림쪽으로 10여미터 들어가 천운산 등산안내판이 서 있는 곳이 정상 날머리인듯 보였다.

돗재주차장이란 이정목이 서 있고 정상까지 2.1 Km 올라야 한다는 거리 표시도 되어 있다.

 

동해에서 왔다는 또 다른 산악회 버스가 앞에 서 있고 그 앞에 우리의 애마가 주차되어 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도로 우측 한쪽에 돗재 이정석이 높게 앉아 있다.

한천 영내와 영외 반곡리를 연결하는 고개인 돗재로서 돗재골에는 장군대좌가 있다고 전해지며 돗재장군이 천운산에서 천자를 모시고 있으며 천운산 아래 문바위가 있어 거기에서 병사들이 문을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822번 지방도로 위 돗재에 도착해 조금은 빠르게 산행을 종료하고 애마에 올라 822번 지방도로를 타고 한천면 한계리로 이동하며 도로가에 화사하게 피어 있는 벗꽃길을 버스안에서 몇장 담아 본다.

생각지도 못한 멋진 벗꽃 구경을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진행하며 본 것이다.

 

이제 한계리로 내려 가 계곡에서 알탕으로 몸을 씻고 오리 주물럭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며 우애를 다져 본다.

한번이 두번이 되고 두번이 세번이 되어 벌써 열세번을 만났으니 이제 제법 정이 들어 많은 이야기를 나눠본다.

얼큰한 취기가 오르고 많은 이야기를 남긴 채 버스에 올라 세상 모르게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생각보다 빠른 저녁 7시에 사당에 도착해 또 의미있는 하루를 마감한다.

열 세번 중 반 정도는 일이 있어 함께하지 못하고 홀로 내려가 진행을 하였지만 거리도 멀어지고 또 자주 만나 얼굴들도 익혔으니 이제부터는 함께 오르는 호남정맥 산행이 되길 기대도 해 보는 시간이였다.

 

다음 구간은 좀 긴 구간이기에 체력 훈련 잘해 또 멋진 산행이 되길 바라면서 후기글을 마무리 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