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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제2차(미완성 완료)/제2기 백두대간 산행후기

백두대간 제20차 고치령에서 도래기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0.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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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북 영주시와 봉화군 및 강원도 강월군 일대 백두대간 마루금

산행일자 : 2010년 03월 12일과 13일 (무박 2일 산행)

산행날씨 : 새벽에는 약간 쌀쌀했으나 아침부터 따뜻한 초봄 같았으나 약간의 황사 현상이 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5도에서 영상 10도

산행인원 : 3450온누리산악회 40명 (40인승 버스 1대)

산행거리 : 약 26.30 Km (접속구간 : 04.00 Km, 좌석리에서 고치령까지는 서갑수 이장님 소형 트럭으로 이동) 

산행시간 : 총 12시간 10여분(03:30시에서 16:40시까지)

산행코스 : 고치령(산행 들머리)-950봉-미내치-헬기장-이정표 헬기장-1096.6봉 헬기장-마구령-894봉 헬기장-1057봉 헬기장(아침식사)-갈곶산(966봉)-늦은목이-선달산(1236봉)-오전리 갈림길-헬기장-발달령-987봉-문수지맥 갈림길-옥돌봉(옥석산, 1244봉)-철쭉 군락지(550년생 철쭉)-진달래터널-도래기재(금정터널, 산행 날머리)

 

 

양백지간에서 느낀 슬픈 역사속 단종의 비애와 굽이처 흐르는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웃음꽃 피운 시간을 회상하며

 

 

백두대간 산행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많은 것들중에 역사를 배우고 또 그 지명에 대한 이해를 하면서 옛날 선조들의 지혜와 혜안을 얻는 것 또한 중요한 일과가 되어간다.

이곳 고치령에서 도래기재까지의 산행 역시 역사의 비애가 깃든 곳으로서 5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비운 속 임금의 영혼을 달래고 역사의 비애를 이어가려는 지역 주민들의 애환이 있는 곳이기에 더욱 산행의 의미가 큰 곳으로 남는다.

 

3년전 백두대간 완주를 목표로 진행하던 산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료 산우를 탈출시켰던 태백산 구간에서 그 탈출했던 산우가 이제 백두대간 완주를 위해 이번 길을 나선다기에 축하 겸 종주대와의 만남을 위해 길을 나서 본다.

찬바람이 휭하니 불어대는 좌석리, 이제 세번이나 이곳에 왔으니 잊혀질만도 한데 아직도 이곳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찾아 올 것이다.

엊그제 내렸다는 눈은 보이지 않고 영롱하게 빛나는 별빛이 머리위로 솟아져 내리는 밤, 작은 트럭에 몸을 맡기고 좁은 산비탈 시멘트 도로를 타고 오르니 인간세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소복한 눈이 맨먼저 반기고 그곳에 역사의 비애를 알려주는 수많은 장승들과 신령각이 또한 겨울 찬바람속 종주대들 가슴에 더욱 차가운 시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 

 

 

대부분의 마을과 고을이 험한 고산준령인 백두대간 마루금을 중심으로 나눠지는 것과는 달리 이곳 고치령은 조금 다른 지형을 가지고 있어 일단 놀랍다.

고치령 남쪽은 경북 영주시이고 북쪽은 단양군인데도 고치령 넘어 북쪽 마락리는 단양이 아닌 영주시 단산면에 속해 아직도 이곳 고치령 신령각에 제를 지내고 있다니 그 의미가 궁금하다.

고치령 신령각은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올라 그 꿈을 펼쳐 보기도 전에 수양에게 권좌를 빼앗긴 단종이 영월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중 영주 순흥의 순흥도위부로 역시 귀양중이던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를 시도할 때 단종과의 소통이 제일 빨라 이용하던 고갯마루로서 그 거사가 실행되기도 전에 관노의 고발로 인해 발각돼 목숨마저 잃게 된 비극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건물이다.

이곳에서 새로운 백두대간 한구간을 마무리하고 시작하는 종주대의 마음이 한겨울 찬바람보다 더한 추위로 떨고 있는 시간이다.

 

 

이곳은 또한 지난 구간 넘어온 소백산과 앞으로 올라야 할 태백산의 중간지점으로서 양백지간이라 불리우는 곳이기도 하다.

단종과 금성대군으로 대변되는 역사의 비운이 숨어 있고 풍요로움과 활력이 넘치는 기운이 서려 있는 양백지간, 십승지중 제1로 치는 곳이며 비로자나불로 대변되는 화엄종단의 중심지인 부석사가 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유교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이 자리잡고 있는 불교와 유학의 성지로 유명하기도 한 곳이다.

그 양백을 두눈 부릅뜨고 지키는 장승들의 호위를 받으며 산행 준비를 하는 종주대야말로 이 세상 최고의 전투 무사들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몇 주일 동안 늘 홀로 여명이 트는 시간에 오르다 갑자기 무박 산행을 하다보니 생각보다 어색하고 무거워지는 몸을 느낀다.

또한 선두에서 리딩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약간은 부담으로 다가오지만 늘 해오돈 그대로 진행을 한다.

잠시 등로 오르니 넓은 공터 같은 헬기장이 나타나고 등로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90도 꺽여 가파른 절개지를 타고 시작한다.

하지만 발목까지 빠지는 하얀 세상에 처음 발자국을 남기며 러쎌하는 발길이 자꾸만 무거워짐을 느껴 뒤따르는 산우에게 선두를 양보하고 그 몇 발자국 뒤에서 따라간다.

각 500미터 마다 잘 정리된 이정표가 서 있어 어둠속 눈 위를 걸어가는 산행에도 전혀 길 잃을 어려움은 없다.

그러다 만나는 미내치에서 잠시 숨 고르며 짧은 휴식 시간을 가져 본다

 

 

다시 어둠속을 걸으며 내 삶과 산악회 그리고 백두대간 마루금을 생각해 본다.

답은 없지만 그저 이곳에 올라 마음의 평온을 찾고 그저 내 삶을 뒤돌아 보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일지 모를 일이다.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무심으로 걸어가니 헬기장이 보이고 앞서간 선두의 발자국 두개만이 뒤따르는 산우님들을 위한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

누군가는 앞서 흔적을 남기며 힘들게 진행하지만 힘든만큼 아무도 지나지 않은 하얀 설원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것이 마치 인생의 한 단면을 보는 것도 같다는 생각이다.

 

 

다시 두개의 헬기장을 지나지만 그저 사진 한장에 남겨진 평편한 하얀 눈으로 대신한다.

하지만 몇년전 오늘보다 더 깊이 내린 눈속에 산우님들과 어울려 그 어려운 백두대간 산행을 하면서 잠시 짬을 내 눈싸움하며 뒹굴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된 한 산우의 미소를 떠 올리며 가슴 저며 오는 감정도 느껴 본다.

그러는 사이 발길은 벌써 마구령에 도착해 잠시 쉬어 간다.

남대리와 임곡리를 이어주는 마구령, 그 옛날에는 죽령과 고치령과 함께 3대 고갯길로 알려졌던 곳으로 죽령이 일반인들 보다 양반들의 통행이 잦았다면 이곳은 민초들의 애환이 깃든 길로 더 잘 알려진 그런 고갯마루이다.

지금은 이곳도 영월과 영주를 잇는 옛길 둘러보기 코스도 개설 되였다니 시간되면 다시 찾고 싶은 고갯마루가 되리라

 

 

마구령에서 다시 찬바람 맞으며 잠시 주춤하며 등로를 헤맸지만 금새 정상 등로를 찾아 오르니 894봉 헬기장이다.

이곳에서 부터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며 주위 사물들이 눈에 들어 온다.

앞으로 올라야 할 1057봉 봉우리가 나즈막하게 들어오지만 저 봉우리를 넘기 위해 또 얼마의 땀방울을 흘려야 되는지 알 수 없는 수많은 경험이 있기에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 들이는 시간이다.

 

 

한동안 눈속을 걸으며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힐쯤 1057봉 정상을 넘어 헬기장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후미 기다리며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처음에는 바람도 없고 등줄기에 흐르는 땀방울로 추위를 몰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차가워진 산상의 공기가 폐부를 찌르며 강렬한 추위를 몰고 온다.

출발하기 전 저 멀리 좌측 앞으로 보이는 선달산을 담아보니 이제사 두꺼운 구름을 뚫고 때늦은 일출이 시작된다.

그 늦게 올라 온 햇살을 받아 선달산 좌측 뒷편으로 영월의 어래산 줄기를 타고 곰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선명하다.

 

 

오직 앞서간 산우의 발자국 하나만이 남겨진 등로, 호젓함과 동시에 쓸쓸함이 밀려오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

수많은 시간을 걸었던 이런 등로가 이제 평이하게 다가 올만도 하지만 아직도 이런 등로가 그립고 또 가슴 설레이게 하는 것을 보면 천생 백두대간 산행이 내 산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특별하지 않으면서 유명하지 않아도 그곳에서 찾는 아름다움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백두대간 마루금이라 생각된다.

 

 

이제 좌측으로 보이는 선달산과 우측으로 보이는 부석사를 품고 있는 봉황산(819봉)이 아름다워 사진으로 담아 보려 노력하지만 잡목들로 인해 전혀 그런 기회를 주지 않는다.

한동안 눈과 낙엽이 뒤섞인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가 좌측으로 90도 꺽이는 갈곶산에 도착한다.

이곳 이정표에는 갈곶산이라 적혀있고 백두대간 산행지도에도 갈곶산이 맞지만 어느 지도에는 각곳산이란 이름도 나오는 것을 보면 분명한 정의가 필요한 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 산상이다.

정상은 이곳 갈림길이 아니고 조금 더 능선을 타고 올라 봉황산 가는 쪽으로 올라야 정상이지만 백두대간 마루금이 이곳에서 선달산으로 꺽이는 바람에 변변한 정상석 하나 없이 그저 평범한 이정표 하나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만 한가지 왜 이런 첩첩 산중에 갈곶이라는 산 이름이 생겼을까 찾아보지만 정확한 내력은 찾지 못하고 다만 운해님의 의견인 구름과 안개로 만들어진 운해로 인해 이런 이름이 붙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뿐이다.  

 

 

갈곶산 정상 이정표에서 90도 꺽어 가파른 경사면을 내려오니 늦은목이이다.

영월과 봉화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 옛날에는 민초들이 자주 넘나들었을 고개이지만 이제 그 이름만으로 명맥을 유지시키고 있는 듯 하다.

한여름 식수가 모자라는 종주대들에게 물맛 좋기로 유명한 식수를 제공하는 샘이 있어 종종 쉬어 가는 고갯마루이지만 오늘은 남아 있는 물도 충분하기에 그냥 지나친다.

이제 본격적인 선달산 오름길이 시작되며 고도 차 약 500미터를 넘어야 하는 고달픈 시간이기도 하다.

 

 

급하지 않게 또 서두르지 않고 쉬엄쉬엄 올라 본다.

일찍 오른다 해도 어짜피 선달산 정상에서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려야 하니 일찍 올라 추위에 떨고 있는 것보다는 쉬엄 쉬엄 오르는 편이 좋다는 사실을 많은 경험으로 터득했기에 여유를 부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도 지나간 흔적과 이 흔적을 따라 올라올 산우님들을 생각하며 저 앞에 힘들게 오르는 산우님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면서 오를까 궁금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저 과거급제를 했지만 아직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선달처럼 그렇게 걸어 올라야 하는 등로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드디어 경북 봉화와 강원의 영월 도계에 걸쳐 있는 1236미터의 선달산 정상이다. 

벌써 3번째 오르는 산행이지만 늘 겨울 눈 내린 시기에 올랐기에 그 느낌은 비슷하게 다가 온다.

서쪽으로는 영월의 어래산과 곰봉 그리고 마대산이 가물거리고 그 아래로 남대천이 굽이쳐 흐르고 동쪽으로는 박달령 넘어 옥돌봉과 문수산이 높은 하늘을 향해 치솟은 모슴이 장관이다.

남쪽으로는 양백지간의 의미를 새겨 볼 수 있는 불교의 부석사와 유교의 소수서원이 자리잡은 십이지승 중 최고의 장소로 왜 뽑혔는지 이해가 될 듯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넓은 공터에서는 전위봉과 잡목들로 보이지 않던 지나온 마루금과 저 멀리 소백의 아름다움이 조금 남쪽 사면으로 내려오니 한눈에 들어 온다.

우측 끝자락에 하얀 눈을 뒤집어 쓰고 당당하게 자리잡은 소백산 국망봉에서 비로봉 능선이 햇살에 빛나고 그 줄기를 타고 좌측 남쪽으로 내려오며 솟구친 연화봉이 보인다

그 연화봉 좌측으로 죽령이 잠시 가라앉힌 산줄기가 삼형제봉과 도솔봉을 일으킨 후 문경의 운달산으로 치달아 내려가는 장엄한 마루금이 경외롭게 들어 온다.

 

 

남동쪽으로는 이제부터 타고 내려 가야 할 옥돌봉으로 이어진 마루금이 내린 눈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그 끝자락에 높고 높은 옥돌봉과 옥석산이 언제 오느냐며 손짓하고 있다.

그 우측으로는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약간 비켜 서 있지만 문수지맥으로 살아 난 문수산이 우뚝하다.

그 사이로 봉화의 청옥산과 각화산이 보이고 저 멀리 동쪽으로 낙동정맥 마루금도 그 봉우리를 내밀고 존재감을 확인시키고 있다.

  

 

옥돌봉 가는 능선 저 멀리 동쪽으로는 다음 구간 올라야 할 구룡산과 신선봉 줄기를 타고 동으로 달리던 마루금이 깃대배기봉을 지나 다시 북으로 달리며 부소봉과 태백산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태백산 정상의 장군단에서 천재단 사이의 능선 역시 하얀 설원이 내려 멀리 떨어진 이곳 선달산에서도 선명하게 그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백두대간 마루금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눈을 남쪽으로 돌리니 물야 저수지 저 멀리 물야면의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사방팔방이 모두 높은 고봉으로 둘러 쌓인 마을답게 주위 산군들 역시 장관이다.

남동쪽 저 멀리 청량산과 일월산이 보이고 남서쪽으로는 구름 위에 솟아 있는 대구의 팔공산이 보이지만 사진으로는 보이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시계가 좋다면 낙동정맥 마루금과 주왕산 그리고 금오산까지 조망이 가능한 선달산이지만 황사속에 이 정도의 선물로도 감사한 시간을 즐겨 본다.

 

 

한동안 선달산에서의 풍경을 즐기고 단체 사진 한장 남긴 후 다시 많은 눈이 쌓인 등로를 타고 천천히 내려가 본다.

우회 등로가 있는 암릉구간을 지나면서 그 암릉 위로 진행하니 1246봉 이정표가 나뭇가지에 달려 있다.

대부분의 산우님들은 우측으로 나 있는 우회 등로를 타고 진행하기에 한동안 만나지 못하고 몇백미터 진행 후 다시 만나게 된다.

 

 

조금 더 내려오니 좌측으로 잡목이 잠시 사라지고 저 멀리 우측 하얀 산상으리 매봉산 천의봉을 중심으로 다다음 구간 올라야 할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함백산과 금대봉도 보이고 대덕산과 좌측으로 동강 위 백운산이 시원하게 보인다.

모두 올라 본 산들이지만 다시 그 정상이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이제 박달령으로 내려가는 마루금을 타고 진행하는 시간은 좌측의 태백산과 매봉산 천의봉을 잡목 사이로 바라보는 기회이다.

우측으로는 물야 저수지와 마을들이 다시 눈길을 잡지만 이곳 역시 잡목들로 인해 사진으로 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다음 구간 올라야 할 구룡산과 깃대배기봉 그리고 남쪽으로 각화산 가는 산줄기가 장엄하게 줄지어 서 있고 그 중앙 저 멀리 부소봉과 태백산이 환상의 모습으로 서 있다.

잡목 사이로 보이기에 더욱 아름답게 다가오는지도 모를 일이다.

 

 

태백산 좌측 저 멀리 북쪽으로는 낙동정맥 분기점이 있고 바람개비가 펄럭이는 매봉산 천의봉이 또한 산상에 하얀 설원을 펼치고 서 있다.

앞으로 두 구간을 더 가야만이 만날 수 있는 매봉산 천의봉, 그곳이 이렇게 가깝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해 본다.

계속 이런 풍경에 취해 서서히 녹아 질척이는 등로를 걸어 본다.

 

 

그렇게 한동안 진행하니 높이가 1009미터인 박달령이다.

선달산과 옥돌봉 중간지점에 위치한 박달령은 경상북도 봉화군과 강원도 영월군을 이어주는 고갯길로서 수 많은 사람들이 울고웃는 사연을 만들며 넘었을 박달령은 현재 임도가 개설되어 있고 고갯마루에는 산령각이 있어 매년 4월 초파일에 고사를 지내고 있다.

옛날에 부보상과 같은 민초들이 많이 드나들었다고 전해지며 그 부보상에 의하여 발견된 약수가 오전약수라고 전해진다.

고갯마루에 있는 산령각을 잠시 둘러보고 정자에서 휴식 취한 후 다시 마지막 봉우리인 옥돌봉을 향한 발걸음을 시작한다.

 

 

출발 전 화장실 앞 공터에서 잡아 본 매봉산 천의봉과 다다음 구간 백두대간 능선들이다.

보고 또 봐도 늘 황홀하고 종주대의 마음을 이끄는 그 무엇이 있는 곳이다.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 이런 환상이 살아있는 한 백두대간 마루금은 늘 내 마음속에 살아 함께 인생을 논하게 될 것이다.

 

 

 1105봉에 올라 잠시 쉬어 간다.

그리고 다시 더 진행 후 숲안내판이 있고 밴취가 준비된 곳에서 다시 휴식을 취해 본다.

새벽에 선두에서 러쎌을 하며 진행한 시간이 다리와 몸에 무리를 가하며 점점 체력적으로 힘들어 지는 시간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선두에서 무리하게 러쎌을 했던 철각을 자랑하는 산우도 오후가 되면서 급격한 체력 저하와 피곡함으로 지쳐가는 모습이다.

보는 것보다 훨씬 힘들고 고통이 따르며 체력 고갈이 심한 심설 러쎌임을 다시 한번 경험하는 순간이다.

 

 

옥돌봉 오름길에 잠시 잡목이 적은 곳에서 뒤돌아 보니 선달산에서 부터 반원을 그리며 내려 선 마루금이 아름답고 멋지다.

그 선달산 좌측으로는 저 멀리 소백산이 이제 많이 사라진 눈으로 갈색의 풍경으로 남아 있고 가까이에는 갈곶산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이 황량한 산하도 눈이 녹고 푸른 나뭇임이 피면 다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녹음으로 변할 것이다.

 

 

다시 산우님들과 남아 있는 간식 비우고 천천히 완만한 경사를 타고 오르니 우측으로 문수지맥 갈림길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산행 총 길이가 약 115 Km로서 낙동강의 서쪽과 내성천의 동쪽을 흐르는 산줄기로서 언젠가는 다시 올라야 할 지맥 능선이기에 사진으로 담아 본다.

백두대간 박달령과 도래기재 사이에 솟은 옥돌봉(1244봉)에서 남으로 갈래친 산줄기는 문수산(1207.6봉)으로 내려와 봉화군을 북에서 남으로 가로질러 명호의 만리산(791.6봉), 도산의 용두산(665봉)을 거쳐 녹전의 봉수산(569.6봉), 북후의 불로봉(482봉)으로 이어진 뒤 안동의 조운산(635봉)을 지나 학가산(874봉)에 이른다.

학가산으로 향하는 문수지맥은 조운산에 이르기 전에 다시 한갈래를 나누어 봉정사가 있는 천등산(575.4봉)을 만들어 놓는다.

그러나 문수지맥의 원 흐름은 학가산에서 보문산(641.7봉)으로 이어진 뒤 풍천의 검무산(331.6봉)을 거쳐 예천군 지보면의 나부산(334봉)을 지나 내성천과 금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삼강리를 돌아 예천의 명물인 의성포의 맞은편 절벽인 회룡대에서 끝난다.

언제나 오를 수 있을지 기약은 없지만 그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시간이다.

 

 

그렇게 몇번의 휴식과 멈춤을 이어 진행하니 드디어 옥돌봉 정상이다.

높이 1242봉으로 북동쪽 2km 부근인 도래기재(도역령)에는 긴 터널로 경북 춘양과 강원 상동을 연결하는 국도가 통한다.

정상은 둔봉을 이루나 능선이 방사상으로 뻗어 있고 특히 남쪽으로 뻗은 말단봉은 노암의 대지를 나타내며 남사면 일대는 수십 갈래의 깊은 계곡이 발달하여 아름답다.

이곳에 올라오며 만났던 옥석산이 아닌 옥돌봉이 정상을 차지하고 그 이름도 아직 바뀌지 않고 있지만 이곳으로 통하는 모든 이정표에는 옥석산으로 되어 있어 지명의 통일이 시급한 곳으로 생각되는 곳이기도 하다.

 

 

옥돌봉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그 앞에 펼쳐진 넓은 헬기장 지나 잠시 들어가니 그곳에 허름한 옥석산 정상 이정표가 서 있다.

오늘 종주대 중 어느 한사람 들린 흔적이 없지만 이렇게라도 찾지 못하면 아쉬움이 너무 클 것 같아 찹았는데 금새 찾아 함께하는 산우님들 사진으로 남겨 드릴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다.

이 옥석산에 대한 설명은 위에 있는 사진으로 대신해 본다. 

다만 옥석산은 남류하는 낙동강과 북서하는 남한강의 분수령이 되는 중요한 산중의 한곳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제 마지막 봉우리까지 올랐으니 내려가면 그 끝자락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남사면에는 눈이 녹으며 등산화에 달라 붙어 산행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북사면에는 아직도 제각각 놀고 있는 눈으로 인해 상당히 미끄럽다.

그 등로 곁에 껍질을 벗으며 서 있는 자작나무가 또한 마지막 눈길을 잡는다.

 

 

이제 완만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우측으로 만수산이 우람하고 그 좌측으로 도래기재와 맞닿아 있는 88번 지방도로와 서벽리 마을이 한가롭다.

백두대간 산행이 아니라면 올 수 없었을 곳, 그리고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으로도 만나지 못했을 고장이기에 이런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백두대간 산행을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리라.

 

 

다시 조금 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오니 철쭉군락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천상의 조망을 관찰한다.

잠시 잡목 가지들이 길을 터준 자리에 어렵게 올라 우측 매봉산 천의봉에서부터 금대봉과 그곳으로 이어진 대간 마루금을 만난다.

지금까지 몇시간을 내내 이렇게 만나면서 내려왔는데도 아직도 가슴에 설레임이 남아 있는 마루금, 이제 이 시간이 지나면 이 풍경을 그리워하며 또 다시 달려 올 날이 있으리란 생각이다.

 

 

이제 마지막 등로에서 주는 선물인 550년된 철쭉과의 만남을 준비한다.

그 길고도 장구한 세월 살아 남아 이곳을 지나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계절별로 다른 선물을 줬을 나무 한그루에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철쭉 나무에서 피워낸 아름다운 철쭉꽃을 보지 못하고 꼭 이렇게 인공적인 눈만을 봤다는 사실이리라

 

 

이제 진달래터널을 지나 앞으로 올라야 할 깃대배기봉을 바라보며 지난 세월의 추억에ㅐ 젖어 드니 어느새 산행 날머리인 도래기재에 도착한다.

춘양터널이란 터널이 뚫려있고 산행 날머리 계단 옆에는 이정표와 도래기재에 대한 유래가 적힌 설명판이 서 있다.

도로 건너 다음 구간 들머리를 확인하고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목마른 목을 축인 후 하루의 산행도 마무리를 한다.

 

 

길고도 멀었던 구간도 많은 산우님들과 웃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하다 보니 그 날머리에 도착하고 모두 무사히 완주함을 자축하는 시간이다.

단종의 비애가 깃든 산행이 모자랐는지 저녁을 먹을 식당도 단종이 잠들어 있는 장릉 앞 식당에서 허기를 채우니 이 또한 이곳이 단종과는 떨어져 생각 할 수 없는 영월임을 실감한다.

 

이제 어려웠던 산악회도 수습과정에 접어 들고 다시 만난 종주대와의 시간이 즐거움과 행복함으로 남았기에 자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피곤한 육신을 눕히며 길고도 멀었던 20회차 백두대간 산행을 마무리 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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