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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기/전라도 산

목포 유달산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09.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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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목포시 유달산 노적봉에서 이등바위까지 왕복

산행일자 : 2009년 8월 16일

산행날씨 : 맑고 화창한 한여름 무더운 날씨

산행온도 : 영상 19도에서 영상 30도

산행인원 : 지기와 둘이서

산행코스 : 노적봉 주차장-유달산 이정석-목포항개항100주년기념 유달산정기 이정석-복바위(쥐바위)-이순신장군 동상-유달산 작은 이정석-

               오포대-대학루-이난영의 목포의눈물 노래비-유선각-투구바위-유선각-고래바위(두꺼비 바위)-종바위-사랑이 이루워지는 전망대-

               애기바위(두엄씨바위)-조대바위(낚시터바위)-마당바위 낙조 전망대-거북바위-나막신바위-입석바위-관운각-부동명왕석불-

               일등봉(일등바위)-유달산 정상(228봉)-UFO바위-얼굴바위-헬기장-소요정-수도바위-이등봉(이등바위)-노적봉 주차장-노적봉-

               새천년시민의 종-노적봉 다산목-노적봉 주차장

산행거리 : 약 5 Km

산행시간 : 약 2시간 (17:32분 부터 19:35분 까지)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목포 유달산에 올라 반갑게 인사 나누고

 

 

몇번인가 목포에 들렸다 오르려 했지만 기회가 되지 않아 오르지 못했던 유달산, 아주 어린 시절 흔적 없이 올랐던 희미한 기억만이 남아있는 곳이기에 더욱 그 오르는 발길에 힘이 들어 간다.

올 봄, 옆지기와 둘이서 왔다가 주차장에 애마를 주차 시키고 오르려다가 내리는 부슬비로 포기하고 다시 보성으로 되돌아 갔던 기억까지 더해져 이번만큼은 반드시 올라야 되겠다는 어떤 사명감 마저 들게 한다.

내일이면 우리나라 최서남단 가거도 일명 소흑산도를 들어가야 되기에 피치못하게 하룻밤 목포에 머물며 좋은 기회를 가져 본다. 

 

 해발 60미터의 높지 않은 노적봉은 유달산의 마루금이 그 맥을 다해 바다로 ㅃ져 들기 직전 솟구쳐 오른 암봉으로서의 의미뿐만이 아니라 이순신장군의 왜전 방어에 전술적으로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다는 이야기로 더욱 잘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왜적이 침입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이 노적봉 암봉에 섶을 둘러쳐 노적가리처럼 보이게 하고 영산강 상류에 백토를 풀어 우리 군사들에게 먹이려는 쌀뜨물이 이렇게 많음을 보여주어 왜군 스스로 물러나게 했다는 일화는 아직도 유명하게 회자되고 있는 설화가 되다 시피 하였다.

다만 일제시대 때 이런 우리의 역사를 말살시키기 위해 유달산과 노적봉 사이에 도로를 뚫어 그 맥을 끊으려 했으니 이 또한 일제의 간교함이 어디까지 진행되였는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곳 주차장에 애마를 세워두고 본격적인 산행이랄까 아니면 트레킹을 시작해 본다.

 

주차시킨 후 도로를 건너 계단을 타고 오르니 계단 좌측에 거대한 유달산 이정석이 서 있고 잠시 서서 그 모습을 담아 본다.

목포의 진산인 유달산은 유달동, 서산동, 죽교동과 동명동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228m이며 삼학도와 함께 목포를 대표하는 명승지로 전남의 소금강이라 불리워지고 있고 노적봉, 일등바위, 흔들바위 들의 기암 절벽으로 이루어진 공원산지이다.

 

계단을 타고 오르니 곧바로 우측에 복바위란 이정석이 서 있고 산책 나온 사람들이 모여 사진 찍기에 바쁘다.

왜 복바위일까 궁금하여 찾아 보니 이 복바위에는 많은 이름이 붙어 있다.

도로 건너 노적봉의 노적가리를 지키는 노인의 모습이라 하여 일명 노인봉이라 불리기도 하고 노적봉을 향해 두손을 내려 놓고 복을 비는 형상이라 하여 복바위라고 불리기도 하며 노적봉의 노적을 노리는 쥐의 모양이라 하여 쥐바위라 불리기도 한다고 전한다.

또한 어른들이 쓰고 다니던 탕건과 닮았다하여 탕건바위라고도 불리고 있다하니 목포 시민들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이해가 갈만도 하다.

 

그 복바위를 지나니 바로 앞 정문 위에 거대한 성웅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기상도 충천하게 서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유달산 및 노적봉과 많은 인연이 있으며 외세로부터 우리 금수강산을 지켜내신 위대한 위인이 거기에 서 있다는 자체로 큰 위안이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라를 걱정하고 목숨 바쳐 지킨 이런 성웅들이 계시기에 이렇게 후손들이 편안하게 다시 찾아 고개 숙일 수 있는 것을 고마워하는 시간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을 정면에 두고 좌측 계단을 타고 오르니 다시 등로 우측 암벽에 유달산이란 작은 이정석이 서 있어 잡아 본다.

왜 유달산인지에 대한 유래는 정확하지 않지만 목포 시민들의 유달산에 대한 사랑만큼은 알 수 있을 듯 하다.

 

 그 옆 좌측으로 옛날 사용하던 화약 총포 같은 물건이 전시되어 있어 전쟁 중 사용하던 무기라 생각했는데 이 물건은 무기가 아닌 시계가 없던 시절 12시 정각이 되면 화포를 쏴 시간을 알렸던 기구임을 알게 된다.

이제 모두 우리들 기억속에서 사라지는 물건이 되였지만 아이들에게 그 의미를 알려주는 시간은 뜻깊은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오포를 구경하며 오르다 문득 주위 경관을 살펴보니 목포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며 아름다운 도시를 알려 준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보는 서울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고층 빌딩이 적고 한강 대신 남쪽으로 남해 바다가 출렁이며 한강의 유람선 대신 바다의 화물선과 여객선의 운항이 다른 정도란 느낌이다.

마침 날씨도 좋고 깨끗해 멀리까지 보이는 조망에 마음마저 상쾌함이 든다.

 

오르다 보면 나즈막한 능선에 참으로 많은 정자가 세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두 산책이나 트레킹을 즐기다 쉬어 갈 수 있도록 벤취가 있고 그늘막이 있어 잠깐의 휴식을 취하기에는 그만인 장소들이다.

1984년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세워진 정자로 제일 아래부분에 위치한 정자이다.

대학루 앞에서 바라 본 남해 바다와 다도해 그리고 삼학도의 풍경은 가히 절경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하기까지 하다.

 

대학루를 내려 와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19세 꽃다운 나이에 이난영이 1935년 불렀던 목포의 눈물 시비가 서 있다.

그 옛날 일제 시대 때 기름진 호남에서 생산된 쌀과 목화는 목포항을 통해 일본으로 실려 나가고 가족들은 모두 뿔뿔히 흩어져 이별을 고해야 했던 곳, 일제 시대 때 항구는 이별이요 눈물은 곧 항구였던 것이다.

 

1절 :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깊히 숨어드는데 부두의 새악씨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음

2절 : 삼벽연 원안풍은 노적봉밑에 님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그려 우는마음 목포의 노래

3절 : 깊은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찌타 옛상처가 새로워진다 못오는 님이면 이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의 맺는 절개 목포의 사랑

 

대학루의 휴게소를 지나는 길에 오른쪽으로 어린이 헌장탑이 있고 그 어린이 헌장탑 위로는 매점들이 들어서 있었으며 조금만 더 오르면 우편의 큰 바위 위에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이 노래 비 위쪽으로 조성되어 있는 누각이 바로 달선각이며 이곳에도 몇몇 산책객들이 머물고 있다.
경사진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하얀색의 육각지붕을 한 달선각이 나오는데 바로 옆에는 유달산 제3휴게소가 위치하고 있다.

달선각은 대학루에서 유선각으로 올라가는 중간지점에 있는 누각으로 1959년에 건립되었는데 건립당시 유달산 입구에서 유선각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어 중간에 누각을 세울 것을 결의하였고 준공일이 8월 15일 즈음이라 광복 14주년 행사와 함께 기념식을 가졌었다고 한다.

달선각의 특징은 바닥에는 방위을 나타내는 나침반이 바닥에 그려져 있으며 이 나침반으로 방향을 짐작하면 목포 시가지 풍경을 관망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달선각에서 몇장의 사진과 주위 풍경을 조망한 후 내려 와 다시 일등바위쪽으로 걸어 올라가니 계단 좌측으로 투구바위가 보인다.

형태가 투구 형태라서 투구바위 또는 코뿔소 뿔 모양이라는데 그렇게 보이는지 ...

  

잘 포장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좌측으로 돌아 들어 간 곳에 유선각이 서 있고 이곳에도 몇몇 사람들이 쉬고 있다. 

유달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유선각은 목포항에 입항과 출항하는 선박과 시가지, 영산호 및 다도해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유달산 최대의 전망대라고 할 수 있는데 1932년 10월 1일에 건립되였다.

이 때가 목포가 개항된 지 35년이 지난 시기라서 현재 유선각 비문에는 개항 35주년 기념으로 건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유선각은 목포시민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지 개항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고 주심포양식에 전통적인 우리 건축양식의 형태를 하고 있다.
당시 누각의 명칭에 대해서는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현상 공모를 했는데 유달각, 등산각, 유선각 등이 거론되었으나 한말 유학자인 무정 정만조선생을 비롯해서 많은 선비들이 유달산에서 시회를 열고 풍류를 읊었던 곳이라 하여 유선각이라 정했다고 한다.
유선각 앞에는 유선각돌비가 있다.

흰 구름이 쉬어 가는 곳입니다. 세 마리의 학이 고이 잠든 푸른 바다의 속삭임을 새벽 별과 함께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어 이곳의 정취를 느끼는 데 도움을 준다.

유선각의 또 하나 볼거리는 누각의 정면에는 걸려져 있는 현판인데 이 현판글씨의 주인공은 독립운동가이자 광복 후 한국정치계의 거물이었던 해공 신익희 선생이기 때문이다.

 

유선각에서 멋진 목포 시내와 삼학도 그리고 다도해를 조망한 후 계단을 타고 오르니 고래바위가 안전철봉 좌측으로 서 있다.

처음 오르면서는 왜 고래바위인지 의심해 봤지만 올라서서 바라보는 바위 모양은 흡사 살아있는 고래 모습 그대로 였기에 몇장의 사진으로 남겨 본다.

각 바위마다 저마다의 특징을 살려 각자의 이름을 붙여준 목포 시민들의 사랑이 묻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다시 그 계단을 타고 오르며 조금씩 더 선명하고 넓게 보이는 목포와 주변 경치를 구경하며 오르니 계단 마지막 부근 좌측에 종바위가 서 있다.

절에서 볼 수 있는 범종과는 다른 서양식 종으로 아래에서 보니 꼭 옛날 학교에서 치던 종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 종바위 하나가 많은 어린 시절 옛 추억을 떠 올려 준다.

 

종바위를 지나니 목포 전경이 한누에 들어오고 일등바위와 이등바위도 시원하게 조망된다.

목포 시가지를 지나 저 멀리 북항과 압해도를 이어주는 공사중인 다리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한동안 머물며 쉬어 간다.

저 압해교가 완성되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다녀가야 될지 모를일이며 또 저 다리에서 바라보는 유달산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벌써 궁금해 진다.

 

종바위 지나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목포 전경과 다도해 그리고 삼학도를 조망한 후 사랑이 이루워진다는 전망대에 들려 다시 한번 절경을 감상해 본다.

그리고 다시 우측으로 나 있는 능선길을 버리고 좌측 암봉 능선으로 오르니 애기바위(두엄씨바위)가 서 있다.

그 바위보다 적어 놓은 설명이 마음에 와 닿는다.

큰엄씨가 애기를 업고 작은엄씨에게 등을 돌리고, 작은 엄씨도 애기를 업고 큰엄씨를 보려고 하는 모양이란다.

 

애기바위 남쪽으로 저 멀리 목포 앞바다와 삼학도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에는 조대바위(낚시터바위)가 눈길을 잡는다.

고하도 앞바다에 낚시대를 드리워 놓고 팔장을 끼고 조용히 않아 있는 낚시꾼의 모습이라는 설명이 더 그럴싸 하다.

그 조대바위 넘어 서서히 어둠이 밀려오며 하나 둘 어둠을 밝히려는 불빛이 켜지고 있다.

 

우측 저 멀리 서쪽 하늘에선 일몰을 위한 붉은 노을이 바다 위를 점점 붉게 물들이지만 두꺼운 구름으로 인해 일몰을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도 오랫만에 보는 붉은 노을에 가슴이 어린아이가 되어 간다.

주위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조망을 즐기며 조금 더 오르니 관운각이 보이고 그 아래 거북 바위가 다도해가 내려다 보이는 마당 바위 옆에 서 있다.

고하도와 용머리 그리고 화원반도와 시하바다가 시원스레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 사진도 서 있다.

 

거북 바위 반대쪽에는 나막신을 닮은 나막신바위가 눈길을 잡고 있다.

인공적으로 만들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디카에 담은 후 좀 더 조망이 좋은 관운정으로 향한다.

 

관운정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입석바위가 나도 있노라며 갈길 가로막는다.

속리산의 입석바위보다는 못하지만 그 모습만큼은 어느곳에 견줘도 절대 뒤지지 않을 모습들이다.

그 바위 하나 하나도 소중하고 아름답지만 그것들을 찾아 이렇게 그 이름을 붙여준 정성에 더욱 마음이 내려 앉음을 느낀다.

 

관운각은 일등봉 아래에 있는 누각으로 유달산의 누정 중 제일 위에 위치하고 있고 이곳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마당바위에 도착하게 된다.

관운각의 명칭에 대한 기록은 정확하게 전하지 않지만 비가 온 후 안개가 끼면 산허리에 구름이 멈춰있는 것처럼 보이는 위치여서 볼 관자에 구음 운자를 써서 관운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겠다.

관운각에서는 무엇보다 목포항 입구에 길게 용처럼 늘어서 있는 고하도가 잘 내려다 보인다.
목포 앞바다 하면 연상되는 풍경이 바로 이 고하도 용머리 해안의 아름다운 경관이라고 생각되는데 그 풍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관운각이다.

전국 어디를 가도 유달산에서 바라본 고하도 용머리의 풍경보다 아름다운 곳은 없다고 자부할 정도로 자랑할 만한 곳으로 목포팔경 중 하나인 고하도 용머리의 모습을 사진 촬영하고 싶은 분은 관운각 주변의 바위에 자리를 잡고 촬영을 하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장자도와 달리도 그리고 우측 구석으로 율도까지 시원하게 보이는 조망 아래 저녁 노을이 들며 또 새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사진 좌측으로는 용머리가 보이고 고하도로 연결되는 거대 다리 공사중인 교각들도 제모습을 들어내고 그 우람함을 과시하고 있다.

내일 아침이면 저 바다를 따라 남서쪽 끝에 있는 가거도로 향하겠지...

 

부동명왕이란 글자가 선명한 일등바위의 암봉을 바라보며 드디어 마지막 전망대에 올라 본다.

시원한 바람이 이마에 흐르는 굵은 땀방울을 씻어주고 주위의 빛깔이 붉게 노을지는 모습에서 또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음을 알린다.

오랫동안 머물며 목포의 야경이라도 구경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방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은 벌써 허기가 진다며 저녁을 보채고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저 멀리 무슨 암자가 있는지 부처님 그림이 뚜렷히 암벽에 그려져 있다.

너무 멀어 줌으로 당겨 간신히 한장 남겨보지만 그에 대한 암자나 절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없으니 아쉽기만 하다.

저곳에 올라가 볼 수는 있는 것인지...

 

다시 전망대를 내려 와 전망데크쪽에서 좌측 능선을 타고 조금은 빠르게 일등바위로 향한다.

오르다 보니 저 멀리 서쪽으로 이등바위 봉우리가 보이고 그 뒤로 목포시와 압해대교가 다시 시원하게 보인다.

사진 한장 남기고 이마에 땀방울 뿌리니 드디어 유달산 정상부인 일등바위에 오른다.

 

서남해안을 배경으로 오랫만에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구름이 없어 황홀한 일몰까지 볼 수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오늘도 참으로 복받을만큼 좋은 조건에 이곳에 올랐다는 생각이다.

높지는 않지만 사방이 시원하게 터진 조망에 그저 고봉준령을 넘어 온듯한 착각에 빠져드는 유달산 정상이다.

 

볼수록 아름답고 멋진 목포시와 서해바다 그리고 압해대교 이다.

저 압해대교를 통해 또 얼마나 많은 시간 신안으로 들어갈 것인지...

아마도 조만간 저 압해대교를 건너기 위해 다시 내려올 듯 싶다.

 

이등바위 가는 길에 사각모자를 닮은 바위 하나가 바위 위에 걸쳐져 있는 모습이 이채로워 시간 보내며 흔적 몇장 남겨 본다.

왜 이 바위에는 이름이 없는 것인지 의아해 하면서...

 

사람의 얼굴을 닮은 얼굴바위이다.

자세히 보니 위에서 내려다 보는 사나이 얼굴이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에 흠짓 놀라 본다.

자연의 신비에 다시 한번 고개가 숙여지는 시간이다.

 

헬기장 지나 소요정에 도착한다.

소요정은 일등봉에서 이등봉으로 가는 길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름 자체는 '거닐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소요정 건물은 1966년에 세워진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정자의 이름을 산책길에 들러 쉬는 곳이라 하여 소요정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실제 소요정이 있는 위치는 봉우리와 봉우리를 연결하는 곳에 해당하는데 평지처럼 산책하기 좋은 길이 나있으며 편액은 전라남도지사를 지낸 신용우의 글씨로 되어 있다.
등산객들에게 일명 다도해전망대라고 불리 울 정도로 잔잔한 바닷물과 점점이 흩어진 푸른 섬들의 퐁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다도해 멀리 저녁 해가 유달산너머로 빠져들 때 연출되는 저녘 노을 풍경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소요정까지 오면 유달산 관광을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곳에서 올라온 방향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바로 조각공원이나 난공원 쪽으로 산을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노적봉에 애마를 주차 시켰기에 원점 회구밖에 안되는 것이 아쉽다.

이등바위 오름길에 뒤돌아 보니 소요정과 일등바위가 아름답게 다가온다.

나즈막한 봉우리 전체가 어떻게 저런 암봉으로 되어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저 아름답게 보이는 풍경을 그렇게 느끼면 그만인 것을...

조금은 어두워지는 시간이기에 이제부터 발걸음을 빨리 해 본다.

 

드디어 이등바위 정상에 올라 사진 몇장 남겨 본다.

수도바위 일명 똥바위란 단어가 생소하게 다가온다.

정상의 평평한 장소에서 용맹 전진하는 수도자의 모습을 닮았다는데 어느 모습인지...

 

함께 오른 지기가 저 멀리 목포 시내를 응시하며 내려다 보고 있고 그 뒤로는 이등봉이 서 있다.

이등봉 저 멀리 우뚝 솟은 일등봉도 시원하게 함께 조망된다.

몇명의 산객들이 올라 불어오는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쉬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여유롭게 보인다.

 

다시 한번 용머리와 바다 그리고 섬들을 바라보고 붉게 물들어 가는 여명의 빛을 응시해 본다.

그 사이로 세워지는 거대 교각들 그리고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는 배들이 환상의 풍경을 만들고 있다.

 

이등봉을 배경 삼아 저 멀리 일등봉도 함께 잡아 본다.

이제 어둠이 깔리기 전 빨리 하산하기로 한다.

 

촘촘한 아파트와 가옥들이 즐비한 목포시내 전경, 서울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음을 말하는 듯 하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거대 도시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목포시의 허파와 같은 유달산에서의 즐거운 시간도 마지막 인가 보다.

 

하나 둘 저녁 불빛이 켜지며 어둠이 내리는 목포시, 야경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들었는데 그 야경은 다음으로 미뤄본다.

기다리는 아이들의 성화에 발걸음도 빠르게 하산 중이다.

 

마지막 노적봉 주차장으로 돌아 와 남아잇는 노적봉을 찾아 본다.

이순신장군의 기지가 숨어 있는 역사속의 봉우리인 노적봉, 그 의미를 되새기며 돌아 나오는 길에 다산목을 바라보니 실제 인간의 모습과 흡사해 사진으로만 남기고 올리지는 못하고 있다.

 

짧은 시간이였지만 긴 여운을 남긴 유달산, 다시 내려올 때에는 어둠속 불빛을 어루만지며 한가로운 발길이 되길 바래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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