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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제1차(산행완료)/백두대간 산행 후기

제2기 백두대간 제4차 산행(4월 6일과 7일 무박 2일, 복성이재에서 무령고개까지)

by 칠갑산 사랑 2007.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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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백두대간 제4차 산행 일지 (복성이재에서 영취산, 무령고개까지) 


산행날짜 : 2007년 4월 6일부터 7일까지 (무박 2일)
산행날씨 : 맑았으나 약간 구름으로 시야
산행
온도 : 새벽 영하 5도에서 영상 10도
참가인원 : 총 47명(존칭생략) 칠갑산, 김현우, 이철주, 산하, 솜이, 금강산, 조산보, 피그, 자우롬, 하이킹, 우산, 정우, 희수, 일여, 기분존날, 은수, 쑤꿀, 무시로, 운수대통, 고산자, 좋은느낌, 그자리에, 바드, 민비, 강태공, 명화, 행자, 베짱이, 청목, 설총, 사하라, 석불산, 볼켄 물사맨, 강고집, 왕언니, 따스, 양형렬, 돈반구리, 독불장군, 료가, 산사람, 가형, 마취, 거울, 아이스맨, 산오름
산행코스 : 복성이재-치재-꼬부랑재-다리재-봉화산-광대치-월경산-중치-중고개재-백운산-영취산-무령고개(접속구간)
산행거리 : 19.64 Km, 접속구간 1.00 km (영취산에서 무령고개)
산행시간 : 선두 8 시간, 후미 10 시간
준비물 : 물 1.5 리터, 이온음료 0.6 리터, 복분자주 1병, 처음처럼 0.4 리터, 과일 젤 3봉, 육포, 아침 밥, 반찬 3종류, 빵, 생 고구마 2봉, 방수방풍의, 모자, 땀수건, 목수건 2개, 장갑, 스틱, 헤드렌턴 2개 및 예비건전지, 가위, 칼, 압박붕대, 테이핑, 에어파스, 구급약, 프랭카드 및 띠지, 디카 및 예비 건전지, 모발폰 및 예비 건전지, 무전기 3대, 휴지 2봉, 키친 타올 1롤
버스에 두고 간 준비물 : 갈아 입을 옷 한 벌
교통수단 : 45인승 버스 및 25인승 버스 2대, 신평고속관광 양기중 기사님, 011-788-7023 

상세일정 :
6일
23:00 사당역 출발
23:10 양재역 출발
23:20 경부고속도로 TG 통과
23:30 신갈 정류장 출발 

7일
00:11 안성 휴게소
02:35 함양 휴게소
03:40 복성이재 도착 후 출발 준비
03:55 복성이재 출발
04:05 목장 철조망 지대
04:13 치재 전망대와 진달래 밭 (길주의, 좌측 역적재길 버리고 직진이 대간길)
04:25 묘2기
04:30 꼬부랑재
04:37 보리수 군락지
04:40 770봉
04:47 다리재
04:58 봉화산 갈림길 (길주의, 좌측 산불감시 초소 길이 아닌 우측 봉화산 길)
05:13 봉화산 (919.8 mtrs)05:30 백두대간 안내 판
05:37 870봉 및 묘 2기 (길 주의, 우측길 버리고 직진이 대간길)
05:43 제1 암릉구간
05:50 제2 암릉구간
05:59 944봉
05:20 936봉 (암릉구간)
06:27 일출
06:47 광대치
07:13 월경산 (981.9 mtrs, 길주의, 월경산 버리고 좌측 대간길로)
07:18 암릉 1,2 구간
07:20 아침식사
08:31 산사태 지역
08:42 로프지역
08:47 중치 (정자나무 지대)
08:52 695봉
08:45 사거리 (길주의, 사거리에서 직진이 대간길)
08:56 우측 목장지대
09:24 755.3봉
09:32 중고개재 (길주의, 우측 백운목장 길 버리고 직진이 대간길)
10:49 암릉구간 (백운산 바로 앞에서 우측으로 우회)
11:00 백운산 (1278.6 mtrs, 길주의, 좌측이 대간길)
11:45 산죽(조리대) 지대
11:52 암봉
12:39 싸리나무 지대
12:41 1066봉
12:51 선바위 고개
12:59 영취산 (1075.6 mtrs, 길주의, 좌측 무령고개 쪽으로, 대간 산행 종료)
13:13 무령고개 주차장 (산행 종료)
19:00 서울 사당 도착 후 해산


변화하는 계절 따라 백두대간 길의 진달래꽃과 산죽을 그리워 하며


3주간의 휴식을 취한 후 맞이하는 제4차 백두대간 산행일,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설레 임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나는 취소자의 명단이 눈에 들어옴에 따라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모두 함께하는 대간 길이길 바랬는데 얼마나 가고 싶고 걷고 싶었으면 산행 일까지 기다리다 취소를 하였을까 하는 아픈 마음까지 발길을 잡는다.
 

의암 주논개 생가지에서 단체 사진 
 
하지만 기다리고 같이 산행을 해야 하는 산우님들이 훨씬 많기에 기분 전환하며 사당으로 달려가니 벌써 마음 급한 몇몇 산우님들 반갑게 맞이해 주시고 잠시 후 우리가 함께 동고동락해야 할 버스까지 도착하니 정신 없이 바쁘다.
밤 11시를 조금 넘긴 시간 총 45인을 태운 두 대(45인승과 25인승)의 버스가 사당을 벗어나 서울 TG에서 양형렬님 태우고 신갈 정류장에서 마지막 산우 행자님을 태우니 이제사 총 47인의 멋진 종주대가 꾸려졌다.
 
산우님들 편한(?) 잠자리를 위해 일찍 안성 휴게소에서 잠시 멈춘 버스는 다시 경부와 대진 고속도로를 달려 함양 휴게소에서 마지막 굶주린 배 채우고 88고속도로 지리산 인터체인지에서 아영면으로 접어드니 얼마 안가서 흥부가 박씨를 얻어 부자가 되었다는 “흥부 마을” 표지가 늘어선 성리 마을이다.
 

제4차 산행 들머리 복성이재에서 왕언니님  
 
성리마을은 윗성리 아랫성리로 나뉘어 있고 두 곳 다 흥부 발복지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서로가 원조라 하여 두 마을 간 반목도 심했다 하는데 조사해 보니 한곳은 태어난 곳이요 또 한곳은 자란곳이라 하여 둘다 흥부마을로 하여 지금은 서로 돕고 협력하는 좋은 마을 관계가 되였다고도 한다.
 
흥부는 지리산자락 인월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실재 인물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판소리를 통해 운봉과 연재(현재의 여원재) 팔랑치 등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곳 태생이 확실하고, 성리 부락에 박씨 성을 가진 큰 부자가 살아 어려운 이웃을 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그 뜻을 기리기 위해 매년 정월 보름에 흥부대제를 지낸다고 하며 남원이 이를 관광자원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차는 어둠을 뚫고 성리마을을 지나 복성이 고개(짓재)에 도착한다.
남원시와 장수군 경계에 위치한 복성이재, 지난 3차 대간길에 돈반구리대장님이 만들어 주신 아막성의 전설, ‘돌고 돌아’를 회상하며 산행 준비를 하니 시간은 새벽 3시 55분을 가리키고 있다.
 
산방에서 처음으로 준비해 준 3개의 무전기를 리딩대장님이신 볼켄님과 후미대장님이신 강태공님께 나눠 드리고 잠시 설명 후 곧바로 산행 들머리로 발길을 옮긴다.
잠시 하늘을 처다보지만 구름에 숨었는지 희미한 둥근달만이 우리들 앞길 바추고 보고 싶은 별들은 자취를 감추웠다.
 

목장 지나 진달래 밭으로 들어서며 조산보님과 행자님 
 
오늘 산행은 무척 빠르다는 느낌이다.
순식간에 목장길 지나 진달래 밭에 서서 땀 훔치며 바라보니 유성이 흐르듯 한줄기 빛이 반짝이며 가까워졌다 멀어져 갔다를 반복한다.
진달래꽃이 만개했다면 그 향기에 취해 대간길을 잃어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다음에 시간이 되면 아막성과 이곳을 연계하여 멋진 진달래 산행으로 산우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왔으면 하는 바램을 가슴에 품고 어둠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간다.
 
진달래 밭이 끝나고 치재를 지난 봉우리에서 내려다 보는 밤 풍경이 이국적이고 참으로 아름답다.
 
가까이로는 성리부락의 불빛과 멀리 운봉쪽 시가지 불빛, 그리고 왼쪽으로는 장수군 번암면 소재지의 불빛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머리 위에 떠 있는 둥그런 달이 우리를 반겨준다.  
 
복성이재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임진왜란 전 지리천문에 도통한 변도탄이란 관리가 있었는데 어느 날 하늘을 보니 머지않아 나라에 변란이 있을 징조가 감지되어 이에 대비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더욱이 공연히 민심을 불안하게 한다고 하여 관직을 삭탈 당한다.
 
이에 변도탄은 복성(福星)이 떨어져 전란을 피할 수 있다고 점지된 이곳 복성이를 찾아 전 재산을 정리하고 가솔들과 함께 숨어들어 집을 지으면서 벽과 천정은 쌀로 풀을 쑤어 발랐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예견처럼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다른 곳은 전화에 휩싸였지만 이곳 만은 안전할 수 있었다.
 
변도탄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숨어든 의병들이 이곳을 본거지로 삼아 나라를 위해 충의 행동을 보여 주웠으며 집을 지을 때 발랐던 벽과 천정을 뜯어 풀을 쑤어 식량으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지금도 오지중의 오지로 남아 있다.
 
 

진달래 밭에서 피그대장님과 강고집님
 
온몸에 전해 오는 새벽 공기가 생각보다 더욱 시원하고 상쾌하다.
아마 이런 대간길이 아니면 맛보지 못하는 최고의 바람과 달빛과 희미한 야경이며 산우님들의 헤드렌턴 빛이리라.
 
어둠 속에서도 보름 지난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인지 구름 속에 희미하게 얼굴 내민 달빛이 꼬부랑재 지나 보리수 군락지에 들어서며 바라보니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봉화산 실루엣을 살짝 보여준다.
 
제1차 대간 산행을 시작할 때 이 시간이면 온 세상이 먹물 속에 잠겨 나와 함께하는 앞뒤 산우님들만 보였을 것을 벌써 계절의 변화는 이렇게 빠르게 내 옆을 스쳐 지나고 있다.
 

봉화산 정상석 
 
봉화산 정상에 이르는 길은 키 작은 잡목과 싸리와 억새 그리고 진달래와 철쭉 숲이 계속 이어진다.
 
드디어 봉화산 정상, 처음으로 받아 간 무전기로 리딩대장과 후미대장과의 교신을 시도해 본다.
리딩대장님으로 부터는 소식이 없고 후미대장님은 밝고 맑은 목소리로 상세한 산행 내용을 전해 들을 수 있다.
생각보다 성능은 괘 좋다는 느낌으로 앞으로 대간길의 필수품이 될 것 같으나 좀 더 많은 개수의 무전기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은 순간이기도 했다.
 
919.8 mtrs의 정상석 표지 앞에 서서 올라오는 산우님들 하나하나 사진에 담아 드리다 보니 등줄기에 흘렸던 땀이 식으면서 한기가 밀려온다.
추위를 이기려 재빨리 뛰어본다.
산하님과 자우롬님의 세상 사는 이야기에 취해 끝없이 이어진 억새 군락지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가다보니 임도와 만나고 커다란 백두대간 안내도가 서 있다.
 

백두대간 안내판 및 임도에서 대간 들머리
 
잠시 상념에 취해 정담을 나누고 다시 대간 띠지가 널려 있는 좁은 산길로 올라간다.
 
6시가 가까워 지면서 동쪽 하늘은 먼동이 터오는지 붉게 변해가고 이제부터 멀리에 보이는 능선의 실루엣이 점점 뚜렷해지면서 함께 달려왔던 어둠이 서서히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광대치 가기 전 구름속에 일출을 바라보며 
 
석불산님과 설총님 그리고 베짱이님을 따라 잡으니 환상의 둥근 해가 구름 속에서 얼굴을 살짝 내미는가 했더니 금새 원형으로 변해 간다. 간신히 나뭇가지를 피해 한 두 컷 사진기에 남기고 여명이 움터오는 동녁 저편으로 보이는 일품의 조망을 즐겨 본다.
 
일출은 해가 반쯤 올랐을 때 절정을 이룬다고 했는데 구름에 가려 완전한 일출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러한 형언할 수 없는 광경을 직접 높은 봉우리에서 보고 접할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하리라.
 
누군가가 그 경외로운 일출에 신음하고 좀더 좋은 모습 담기 위해 이리 저리 분주하기만 하다.
 

936봉 지난 전망대에서 지나온 지리산 반야봉을 그리워하며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함양군 백전면 대안리 부락이 평화롭고 옅은 산안개 위로 첩첩이 이어진 능선의 파노라마와 지평선처럼 끝을 감춰 버린 산하가 너무나 아름답다.
 
열심히 짧은 지식 총 동원하여 찾아 보지만 황매산과 영남 알프스는 찾을 길 없고 다지 민망스런 자태를 드러낸 지리산 반야봉 만이 이 마음을 위로해 주고 있는 듯 하다.
 



광대치에서 중간 팀 미니 단체 사진 
8시쯤 광대치에 도착하여 아침을 하기로 했는데 이 속도라면 7시 전에 광대치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선두와 연락을 시도해 보지만 연락이 안되고 강태공 후미대장님께만 연락하여 광대치 지나 식사를 할 것이란 이야기를 전한다. 가는 길에 조금씩 피어 있는 진달래꽃이 이제 정말 대간길에도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광대치에 도착하니 6시 45분, 중간팀이 이 속도이니 아마 선두팀은 벌써 월경산 지나 중치 근처까지 갔으리라 예상된다.
 
광대치에서 중간 팀 미니 단체 사진 찍고 월경산 깔딱을 올라 가니 암릉 구간이 나오고 조금 오르자 약초재배 지역이란 입간판과 함께 쇠 철조망이 앞길 막아 선다.
 

월경산 지나 아침 식사 후 중간 후미 팀 미니 단체 사진
 
이곳 지나 7시를 조금 넘긴 시간, 옹기 종기 앉아 따스한 아침 햇살 받으며 맛난 아침 식사를 즐긴다.
 
이제사 선두 사하라님과 연락이 되고 선두팀도 지금 막 중치에 도착하여 아침 식사 준비 중이란다.
선두와 후미의 시간차이가 벌써 1시간 이상 벌어진 것이다.
 
이곳에서 한 20여 산우님들과 아침 식사 끝내고 이제부터 후미대장이신 강태공님을 중간으로 보내 드리고 후미에서 왕언니님 모시고 완연한 봄바람 맞으며 대간길을 음미해 본다.
 
중간 후미 모두 합하니 한 20여 산우님, 이 산우님들 만으로도 한 팀의 대간 팀 이거늘 이산우님들이 오늘 함께한 산우님들의 반도 안된다는 사실에 다시 양 어깨가 무거워 진다.
 
한장의 미니 단체 사진으로 다시 하나된 추억 만들고 이제부터 둘 셋 아니면 여섯 일곱 소그룹으로 다시 떠나고 후미에서 소녀 같은 왕언니님과 이런 저런 세상 이야기 나눠본다.
 

중치에서 왕언니님
 
연세에 비해 어찌 그리 젊음과 정열을 유지하고 계신지 그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산행과 웃음으로 보여 주고 계시는 대간길의 귀염둥이 막내(사실은 최고참임)임을 자랑스러워 하신다.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꾸준한 지구력으로 최선을 다해 산행하시는 왕언니님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내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과연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저 연세에 다시 대간길에 도전해 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진다.
 
너무나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일 때 사진기만 보여 드리면 어느새 방끗 웃으시며 앞서간 산우님들에게 미안하다면서도 사진을 무척 좋아하시는 왕언니님, 대간 완주하는 그 자리에 함께하는 막내(?)가 되어 주시리라 다시 한번 굳게 믿어 봅니다.
 
마지막 후미로 중치를 지나는 시간이 8시 45분여, 아직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하고 매우 순조롭다.
 

중치 사거리 지나 우측 중기 마을 방향
 
잠시 다른 산꾼들의 후기글을 떠 올리며 멀리 앞쪽을 바라보니 장안산과 영취산 사이로 잘록한 무령고개가 보인다.
직선거리로는 빤히 보이는 저 고개를 옆으로 돌고 돌아 백운산을 지나고 영취산에 도장 찍은 후 앞으로도 몇시간을 더 가야 한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더위가 벌써 이마엔 땀방울이 맺히고 잠시 걸음을 멈추고 휴식을 취할 때마다 어김없이 물을 마신다.
한 여름이 되면 또 얼마나 많은 식수를 넣고 대간길에 올라야 되는지 벌써 걱정이 앞선다.
 
오늘 구간에서 유일하게 물을 구할 수 있는 중재, 바로 밑에 중기마을이 있고, 또 샘이 있으나 그냥 지나친다.
오른쪽으로 잘 정리된 밭과 마을을 보며 중재로 향하는데 왼쪽으로 빈집이 하나 보인다.
 
백두대간을 연속 종주하는 사람들의 숙소로 때로는 악천후 시 대피장소로 요긴하게 쓰이는 집이라 들었지만 확인 할 길은 없고 단지 저 멀리서 바라본 백운산이 이제 코앞에 다가와 있다.
 

중재 지나 좌측 무령고개로 이어지는 공사 중인 도로 
 
중기마을에서 올라왔다는 산사람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조용하고 한가로운 중기마을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좌측엔 무령고개까지 이어지는 공사중인 비포장 도로가 시뻘건 입을 벌리고 뜨거운 열기를 뿜어 내고 그 뜨거움을 길 양쪽에 자라고 있는 산죽으로 식혀 본다.
 
중재에서 왼쪽으로는 번암면 지지리로 가는 갈림길이 너무 뚜렷하고 리본까지 달려있어 안개가 끼거나 하면 자칫 알바하기 쉬운 길이라 알고 있지만 오늘은 전혀 걱정 안해도 될 듯 싶다.
 
중재(중고개재)를 지나자 이제 백운산이 눈앞에 다가오지만 이미 상당한 고지까지 올라 왔기에 고도표에서 보았을 때 보다는 높지 않게 느껴진다.
 

백운산 오르기 전 시루 떡 처럼 겹겹이 쌓인 암릉 구간 
 
한참을 걸어 드디어 시루 떡처럼 켭켭히 쌓여 있는 바위 암릉 구간을 지나 마지막 목마름 달래니 정확히 11시에 백운산 정상이다.
오늘 최고 높이의 백운산 정상, 백운산에 관한 한 수의 시를 떠 올리며 많은 산우님들과 단체 사진도 찍고 마지막 남은 먹거리를 비우며 한가롭게 망중한을 즐긴다.
 
백운산
 
- 안명수 글
 
 
미끼골 묵계암 지나 가파른 암벽길
 
전북 경남 경계선 그림 같은 삼각산
 
상련대(上蓮臺)
 
단애 위 암자
 
백운산 명승지다
 


학승(學僧) 같은 중년 스님 경내를 거닐다가
 
저 멀리 지리산에 눈길을 멈추었다
 
천왕봉
 
봄빛에 겨워
 
가부좌를 틀었다
 


중봉에 올라서니 고도감(高度感) 대단하다
 
정상 능선 뒤로 두고 백운사로 향하다.
 
하산길
 
거대한 협곡
 
물소리 요란하다
 

백운산 정상에서 최선두 팀이 제외된 단체 사진 
 
어느 산우님은 따스한 햇살 받으며 누워 잠을 청하고 또 어느 산우님은 영원히 잊지 못할 대간 마루금과 지나온 대간길 그리고 앞으로 진행할 대간길을 담기 위해 이리 저리 분주히 디카 셔터를 누르고 계시고 또 어느 산우님들은 한잔의 정상주로 피로 풀며 엔도르핀을 팍팍 생산해 내고 있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워낙 빠른 선두팀 산우님들을 볼 수 없고 또 함께 단체 사진 한장 찍을 수 없음이 안타깝지만 어짜피 많은 산우님들과 함께 하기에 모두 만나기는 힘이 들 것으로 생각하며 그 아쉬움 달래 본다.
 
1,278.6m의 백운산 정상에 서서 바라보는 조망은 운무로 인해 그리 시원하지 못하지만 아쉬운 대로 열심히 많은 봉우리를 찾아 나서 본다.기온이 상승하며 뿌옇게 흐려진 원경, 그래도 오늘 지나온 월경산과 봉화산, 지난 3차 구간에 통과한 고남산과 가물거리는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이 지나온 긴 여정을 떠올리게 했고, 영취산 넘어 우람한 자태로 당당히 서있는 덕유산이 5월은 너무 긴 시간이라며 어서 오라 재촉하듯 손짓한다.  
많은 시간 휴식 취하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4차 산행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다시 전진하니 후미는 완전히 새로운 얼굴로 대체되어 있다.  
백운산 지나 영취산 가는 길에 자라고 있는 산죽 밭에서  
 
산죽
  
- 글 정삼희
 
굽이치는 능선이 그리울 땐 
꽃도 피우지 못할 서러움 
달빛 시린밤

이름 모를 들꽃이 되어
속살 부비다가 
장당 옥류 푸른 물에
 
진달래 산수유 
몇 송이로 떠내려와 
시가 되고 눈물이 되고..
 
한밤 치근대는 
비로 내린다.
  
급 경사 암릉 구간을 지나니 키 높이 보다 더 울창한 산죽이 어느 남쪽 나라의 이국적인 풍광을 만들고 여기에서 후미팀들 멋진 추억을 사진에 담아 드린다.
 
오르락 내리락 몇 봉을 지나면서 석불산님의 구수한 창소리 노랫가락 장단과 행자님의 맛깔스런 입담이 어려움 이겨내고 있지만 매 산행 매 구간에서 다른 산우님들을 위해 봉사해 주시던 피그님의 컨디션 난조가 약간의 걱정을 주고 있다.
 

싸리나무 지역 지나 1066봉에서 중간 후미 팀 미니 단체 사진
 
그래도 그 어려움 잘 참고 전진하니 싸리나무 지역이 나오고 오랜만에 산토끼의 정겨운 나들이를 목격한다.
 
1066봉에서 마지막 후미조 미니 단체 사진 찍고 선바위고개 넘어 산죽 밭을 오르니 이제 오늘의 대간 산행의 종료를 알리는 영취산의 돌탑과 이정표를 만나고 수많은 대간 띠지를 만난다.
 

영취산 정상 이정표 
 
이곳에서 좌측 급경사 길을 내려오니 나무 계단이 반갑게 맞아 주고 한참 도로 공사중인 절개지를 바라보며 내려오니 우측에 작은 간이 매점과 그 밑에 반가운 관광 버스 및 산우님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한가한 시간 보내고 있다. 오후 13시 14분.
 
무령고개 정상에는 간이휴게소가 있어 간단한 먹거리를 판매한다.
또 호남금남정맥이 갈라지는 분수령으로 백두대간 종주자나 호남금남정맥 종주자, 장안산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장수군에서는 주차장과 화장실을 설치해 놓아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무령고개로 하산 후 산우님들 기다리고 있는 신평고속관광 버스 
 
하지만 이곳에서 많은 산우님들이 알바할 줄이야??? 분명 영취산 정상에서 접속구간인 무령고개로 내려오라 했는데 많은 산우님들이 영취산을 오르지 않고 선바위고개에서 무령고개로 내려와 장수군 장계쪽의 버스 주차장이 아닌 도로 공사중인 남원 방향으로 내려갔단다.
 
여기에서 다시 약 30여분 알바하는 산우님들 찾아 헤매이다 마지막으로 쑤꿀님 만나 논개 생가가 있는 사당에 들려 처음으로 단체 사진 한장 찍고 늦은 오후 점심으로 허기 달래본다
 
돌아오는 길 장수 삼절 중 으뜸이라 불리는 의암 주논개 생가 터를 찾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19세의 꽃다운 나이에 나라를 위해 순절한 논개의 생애를 회고하며 의미는 다르지만 백두대간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15시 15분, 남원의 논개 사당을 출발하여 신탄진에서 잠시 휴식 취한 후 서울 사당에 돌아오니 저녁 7시, 좀 이른 시간이지만 함께 무사히 제4차 백두대간 산행 마치고 돌아온 산우님들께 감사 드리며 후기글을 마침니다.
 


의암 주논개 생가지에서 행자님 
여기에 논개에 대한 설명을 함께 올려 본다.
 
의암 주논개는 아버지 주문달과 어머니 밀양박씨 사이에서 1574년 태어났다.
그 해가 갑술년이었고 갑술 월 갑술일 갑술 시에 태어나 개를 뜻하는 사주라 하여 ‘개를 놓다’는 의미의 논개로 이름하였다.
 
서당을 운영하던 아버지께 글을 배우고 예절을 배운 논개는 영특하였으나, 1587년 논개 나이13세에 아버지 주문달이 죽고 가세가 기울어 갈 때 동리 토호 김풍헌이 백치불구인 자기의 아들이 혼인을 못하자 논개를 민며느리로 맞을 것을 궁리하던 중 논개 작은 아버지 주문무가 주색잡기에 빠져 있는 것을 이용해 주문무에게 논 세마지기와 엽전 삼백냥, 당백포 세필을 주고 혼사를 성사시키려고 하였다.
 
이에 논개 모녀가 반발하자 작은 아버지는 도망갔고 김풍헌의 고발로 관가에 잡혀간 논개 모녀는 그 죄가 인정되어 어머니가 노비로 되자 논개가 자신이 노비가 되겠다고 하여, 이를 기특히 여긴 장수현감 최경회에 의해 방면되었다.
 
오갈 곳 없는 논개 모녀는 최경회의 부인이 병석에 있는지라 병수발을 하며 그 집에 기거하다가 부인이 죽자, 최경회의 후실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최경회가 경상 우병사가 되어 진주로 가고 거기에서 임진왜란을 맞았다. 온 주민이 왜군에 대항하여 항거하였으나 진주성이 함락되자 최경회는 패전을 분개하며 자결하였다.
 
진주성을 함락시킨 왜장 게다니무라 로꾸스께는 칠석날을 맞아 전승를 축하하는 잔치를 촉석루에서 열었고 이때 남편 최경회의 원수를 갚기 위해 기녀로 변장한 논개는 잔치가 무르익을 무렵 왜장을 유인하여 허리를 껴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하였다.
 
왜란이 끝나고 이를 전해 들은 선조께서 진상을 조사하라 일렀더니 사실을 조사하던 관리가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주논개는 관기였다고 조정에 보고하여 지금껏 의기로 알려져 왔으며 또한 주논개의 묘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가 1975년 향토사학자 오치황과 유기열에 의해 이런 진실이 하나 둘 발견 되었다.  
논개가 순절한 후 장수 출신 의병들이 남강 하류 창원 지수목에서 최경회와 논개의 시신을 수습하고, 150여리를 운구하여 출생지인 장수지역에 장사 지내려 하였으나 일본군의 추격과 보복을 두려워한 주씨 문중의 반대로 주논개의 묘가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방지에 있다는 것을 수소문하여 확인한 후 문화공보부에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그후 국고 보조등 재정적 지원으로 이곳을 성역화 하도록 하였고 지금의 오동지 자리에 있던 생가를 저수지 위쪽으로 이전하여 복원한 후 생가 터에 기념관을 짓고 추모하고 있으며 지금도 매년 사당에서는 제례도 행한다고 한다.
 
오늘도 선등에 고생하신 볼켄님과 사하라님 그리고 선두팀 일여님, 양형렬님 이철주님,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 후미도 좀 봐 주시면서 함께하는 대간길이길 바래 봅니다.
 
늘 후미에서 수고해 주시는 강태공 후미대장님과 왕언니님, 정말 수고하셨구요. 늘 하시던 산행만큼 열심히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 너무 고맙습니다.
 
모든 잔심부름 도 맡아 해 주시는 우산대간총무님과 무사 운행해 주시는 양기중 기사님 모두 감사 드리며
 
피그님, 건강 빨리 회복하시고 다음회차엔 건강한 모습으로 뵐 수 있기를 기다려 봅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고생하며 때로는 즐기며 무사 안전하게 제4차 백두대간 산행을 마무리한 47인의 대간 종주자 여러 산우님들, 고개숙여 진심으로 축하와 함께 감사 드리며 다음 구간에도 변함없이 반갑게 뵙겠습니다.
 
꽃피는 계절, 환상의 대간길이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2007년 4월 8일

백두대간 산행대장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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