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맥산행(완료)/유봉지맥(팔공.완)

유봉지맥 제1구간 수도사에서 팔공산 비로봉 찍고 월부령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22. 1. 9.
728x90

산행지 : 경상북도 영천시와 대구시 동구의 유봉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2년 01월 05일 (수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흐리고 구름이 많았으며 바람이 불어 추위를 느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7도에서 영상 06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수도사(비포장임도)-시멘트 포장도로-팔공산탐방지원센터 치산지구-이정표(동봉 5 Km, 수도사 0.5 Km)-다리(수도골 통과)-이정표(동봉 4.5 Km, 수도사 1.0 Km)-공산폭포 갈림삼거리(공산폭포 안내판과 설명판)-안전목책-망폭정과 망폭대-공산폭포는 어둠속에 보자 못함-시멘트 포장도로 복귀-신령재 갈림삼거리 이정표(진불암 1.7 Km와 동봉 3.4 Km, 신령재 2.9 Km, 수도사 1.6 Km)-나무계단과 현수교-이정표(진불암 1.5 Km와 동봉 2.75 Km, 수도사 2.15 Km)-은수교 이정표(동봉 2.7 Km, 진불암 0.7 Km와 동봉 3.0 Km, 수도사 2.2 Km)-능선과 계곡 갈림삼거리 이정표(능선 등봉 2.5 Km, 계곡 동봉 2.4 Km, 수도사 2.5 Km)-능선등로 선택(개울통과)-거대암봉 우회 로프-진불암 갈림삼거리 이정표(동봉 2.0 Km, 진불암 0.5 Km, 수도사 3.4 Km)-이정표(동봉 1.5 Km, 수도사 4.0 Km)-암릉 로프등로-연속된 나무계단-나무데크 및 로프등로-일출(현위치번호 동봉 05.06)-계곡등로 갈림삼거리 이정표(동봉 0.5 Km, 수도사 5.0 Km, 수도사 계곡 4.2 Km)-나무계단-헬기장과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서봉 갈림삼거리 이정표(비로봉 0.23 Km, 서봉 0.84 Km, 동봉 0.31 Km)-통신탑 공터 이정표(비로봉 0.1 Km, 팔공산하늘정원 1.04 Km, 군위삼존석굴 10.96 Km, 동봉 0.44 Km와 서봉 0.79 Km)-팔공산 제천단-팔공산 비로봉(1192.9봉, 유봉지맥 분기점, 정상석, 군위11 삼각점, 방송통신탑)-팔공산 제천단-통신탑 공터 이정표(비로봉 0.1 Km, 팔공산하늘정원 1.04 Km, 군위삼존석굴 10.96 Km, 동봉 0.44 Km와 서봉 0.79 Km)-서봉 갈림삼거리 이정표(비로봉 0.23 Km, 서봉 0.84 Km, 동봉 0.31 Km)-헬기장(수도사 갈림삼거리) 이정표(동봉 0.2 Km, 비로봉 0.3 Km, 수도사 5.3 Km)-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나무계단-팔공산 동봉(1167봉, 정상석) 나무데크와 이정표(도마재 또는 신령재 2.7 Km, 갓바위 7.3 Km, 서봉 1.1 Km와 파계재 6.2 Km, 한티재 8.3 Km)-바위암릉-나무계단-현위치번호 084-1120.4 삼각점봉(건설부309 삼각점) 우회-나무계단들-바위암릉 로프등로-현위치번호 077번(나무데크 공사중)-나무계단-안전목책과 로프등로-염불암과 동화사 갈림삼거리 이정표(갓바위 6.6 Km, 동봉 0.7 Km, 염불암 0.8 Km와 동화사 2.8 Km)-현위치번호 072번(1042미터의 염불봉 우회)-나무계단-안전목책과 로프등로-나무계단-현위치 번호판 064번-육각정자 조망처-안전목책과 로프등로-동화사 갈림삼거리 이정표(현위치번호 058번, 갓바위 5.7 Km, 동봉 1.6 Km, 동화사 2.6 Km)-1034.3봉 우회-현위치번호051 무명봉-수도사 갈림삼거리 이정표(갓바위 4.5 Km, 동봉 2.7 Km, 수도사 4.5 Km)-신녕재(도마재, 방향 표지석, 팔공산자연공원 안내도, 공산폭포와 수도사 및 동화사 갈림사거리 안부) 이정표(갓바위 4.6 Km, 동봉 2.7 Km, 동화사 3.8 Km, 공산폭포 3.0 Km와 수도사 4.5 Km)-안전목책 등로-신녕봉(996.5봉, 삿갓봉 갈림삼거리)-갈림삼거리 무명안부-전망바위-소나무와 바위암봉-기암괴석 암봉-코끼리바위(990.3 암봉)-암릉로프 등로-암릉 우회등로-바위암릉 통과-무명안부-984.6 잡목봉-공터무명봉-갈림삼거리(우측)-전망바위-잡목등로-갈림삼거리(우측)-식흔등로-출입금지 경고판(송이채취구역)-왕사등로-파란 그물망-바위암릉 로프등로-부귀사 갈림삼거리 안부 이정표(신원리캠핑장 4.5 Km, 부귀사 0.5 Km)-561.4봉-부귀사 갈림삼거리 안부 이정표(신원리캠핑장 3.7 Km, 부귀사 1.3 Km)-무명봉(독도 띠지)-부귀사 갈림삼거리 안부 이정표(신원리캠핑장 2.7 Km, 부귀사 2.3 Km)-무명봉(여영)-부귀사 갈림삼거리 안부 이정표(신원리 캠핑장 2.44 Km, 부귀사 2.56 Km)-부귀사 갈림삼거리 안부 이정표(신원리캠핑장 2.39 Km, 부귀사 2.61 Km)-416.3 삼각점봉(이정판, 화북457 삼각점)-철망등로(철망통과)-비포장임도 갈림사거리(철문)-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좌측)-336.5봉(공터봉)-얼부러진 간벌목등로-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철망)-소나무와 가시잡목등로-비포장임도-가시잡목등로-묵은 비포장임도 사거리 안부(쓰러진 철문)-무명묘지들과 영천이공 부부묘지-관목의 소나무와 잡목등로-길주의(우측, 기차산꾼 띠지)-멧돼지 목욕탕-멧돼지 목욕탕1-잣나무 무명봉-인동장공 묘지-영천이공 묘지-

무명안부(노간주나무)-226.8봉(묘지들과 성도김상규 부부묘지)길주의(좌측, 보만식계 띠지)-무명봉-경주이공 부부묘지-묘지들-구디티(터)고개(신원고개, 신원길 1차선 포장도로, 조양향단 표지석)-능선진입-밀양박공 부부묘지-멧돼지 목욕탕-묘지 무명봉-199.6 삼각점봉(이정판, 인식불가 삼각점)-철망(통과)-무명묘지-철망(통과 후 이별)-비포장임도-갈림삼거리(우측 신원리 마을, 탱자나무 울타리)-소나무 능선진입-183.3봉-넓문이고개(919번 금송로 4차선 포장도로, 넓문이못, 금강조각원과 훈성)-능선진입-경주이공묘지-묘지들-192.8봉 갈림삼거리(하늘색 띠지)-192.8봉(금곡 띠지)-갈림삼거리 복귀-무명묘지-통나무 벤취 무명봉-묘지들-시멘트 포장도로-망지1길 시멘트 포장도로(우림농장)-능선진입-잡목등로-묘지들-망지1길(민가 주택단지)-하나전원길 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비포장임도-능선진입(잡목등로)-봉화산(163.7봉, 금곡 띠지)-청주한공 부부묘지-그물망-용내길 공장지대-밭경작지-성동고개(용내길 2차선 포장도로)-비포장임도-묵은 밭경작지-능선진입-벽진이씨 평장들-비포장임도-갈림삼거리(시멘트 포장도로)-이전된 군부대터(용내길 174)-165.5봉(신산경표 띠지)-무명묘지들-214.2 삼각점봉 갈림삼거리(붉은 띠지)-214.2 삼각점봉(이정판, 삼각점 손실)-갈림삼거리 복귀-밤나무 등로-무명봉-무명묘지-대왕산 갈림삼거리(하늘색 띠지)-대왕산(174.8봉, 금곡 띠지)-갈림삼거리 복귀-묘지지대-쓰러진 고사목등로-무명묘지-CS영천1공장-대왕산(166.1봉, 이정판)-무명묘지-멧돼지 목욕탕-무명안부-무명묘지-월부령(909번 청통로 2차선 포장도로, 월부령 도로표지판, 유제이테크)-산행종료

산행거리 : 30.32 Km (수도사에서 팔공산 비로봉 분기점 찍고 909번 청통로 2차선 포장도로 상 월부령까지)

             지맥산행 : 25.44 Km (유봉지맥 분기점인 팔공산 비로봉에서 909번 청통로 2차선 포장도로 상 월부령까지)

             접속구간 : 04.88 Km (수도사에서 팔공산 비로봉 분기점까지)

산행트랙 :

20220105 유봉지맥 제1구간 수도사-팔공산 비로봉-월부령.gpx
0.33MB

산행시간 : 11시간 51분 (05시 54분부터 17시 45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1시 20분 유봉지맥 제1구간 날머리인 월부령을 향해 집에서 애마로 출발

                            05시 00분 909번 청통로 2차선 포장도로 상 월부령에 도착 해 약 준비한 떡과 커피로 아침식사

                            06시 25분 예약한 청통택시로 산행 들머리인 수도사로 이동(010-8852-1133,  27,000.-원=메타요금에 5,000.-원 추가)

                            05시 54분 수도사 일주문 지난 공터에서 산행 준비 후 곧바로 산행 시작

                    올때 - 17시 45분 909번 청통로 2차선 포장도로 상 월부령에 도착해 유봉지맥 제1구간 산행 종료

                            17시 55분 영천시 쇼모텔에 예약 후 도착(30,000.- 홀로 투숙용 작은 방이나 만족)

                            19시 50분 모텔 근처 국밥집에서 소머리국밥 특과 맥주 한병으로 저녁 해결 후 모텔로 복귀 (16,000.-)

유봉지맥이란 ???

유봉지맥은 팔공지맥의 팔공산 정상인 비로봉(1192.9봉)에서 동남쪽으로 분기하여 동봉(1167봉), 염불봉(1042봉), 월부령, 봉화산(291.1봉), 봉화산(276.8봉), 유봉산(245.2봉)을 지나 신령천이 금호강에 합류하는 영천시 오수동에서 기룡지맥을 마주보며 끝나는 도상거리 33.7 Km되는 산줄기로 신령천의 좌측 분수령이 된다.

 

 

오랫만에 팔공산에 올라 옛추억을 더듬고 멋진 바위암릉을 따라 자연을 즐긴 후 급격하게 낮아지는 비산비야를 타고 산줄기 잇기 산행의 묘미를 느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유봉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경상북도 영천시와 대구시 동구 및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그리고 네이버의 지식백과,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지난 연말연시에는 매년 다녀왔던 년말 해넘이와 새해 일출 산행을 포기하고 오랫만에 가족들과 집에서 놀이를 즐기며 맛 있는 음식을 먹으며 편안하게 보냈더니 몸무게만 늘어나 고민인데 마침 새해부터 경산쪽에 일이 생겨 내려가며 산행 준비하여 경산에서 가까운 유봉지맥을 마무리하고 올라 오기로 한다.

종주 산행으로 두번 올랐고 가팔환초 산행을 위해 한번 지났으며 팔공지맥을 진행하면서 산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남겼던 팔공산이기에 낯설지 않지만 도립공원을 벗어나면 급격하게 산세가 낮아지며 비산비야를 이루며 영천시를 관통하는 산줄기이기에 가시잡목들이 우거지거나 주민들과의 마찰은 없을지 걱정이지만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확인해 보면 그런 고민들은 없을 것 같아 마음 편히 정하게 되었다.

다만 아직도 하루해가 가장 짧은 계절이기에 구간 나누기에 신경이 쓰이는데 첫날은 일찍 산행이 끝난다고 해도 특별히 할 일이 없으니 어둡기 직전까지 가능하면 멀리 갈 수 이기를 희망하며 월부령까지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이용할 택시를 확인해 보니 청통면의 택시 전화번호가 보이고 어렵게 새벽시간에 예약을 하고 시간에 맞춰 또 하나의 새로운 산줄기를 찾아 출발하는 시간이 설레임과 걱정으로 공존하는 시간이다.

 

팔공산을 마지막으로 오른것이 2015년 10월 중순이니 6년이 훌쩍 지나 다시 만나게 되는 인연이니 설레임이나 걱정은 없지만 어떻게 변해있을지 궁금하기는 한 시간이다.

몇번인가 오르면서 팔공산 비로봉이 유봉지맥 분기점이란 사실은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몇년 전부터 신산경표 상 162지맥을 완주해야 되겠다는 집념이 생기면서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팔공산 정상이란 의미뿐 만이 아니라 유봉지맥 분기점이란 사실이 더욱 깊게 뇌리에 들어오는데 다만 몇번인가 통과하면서도 유봉지맥 분기점이란 어떤 이정판이나 띠지도 확인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진들을 찾아 봐도 아쉽기만 하다.

오늘은 초반 수도사에서 팔공산 비로봉까지 ㅜ준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극복하고 코끼리바위까지 이어지는 바위암릉을 통과하면 그 이후로는 급격하게 낮아지는 산세와 좋은 등로로 인해 힘든 구간은 없을 듯 보이는데 늘 느끼는 것은 자료로 아는 것과 실제 몸으로 체험하는 상황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오늘도 조금 이른 시간에 어둠을 뚫고 찬바람을 맞으며 이마에 땀방울이 흐를 쯤 드디어 팔공산 정상이자 유봉지맥 분기점인 비로봉에 도착을 해 몇장의 추억과 사진을 남기며 시원하게 펼쳐진 풍경과 조망을 즐기는 망중한도 즐겨본다. 

대구광역시 북부를 둘러싸고 있는 팔공산은 중악산과 부악산, 공산산 및 동수산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해발고도는 1,192.3미터로서 1980년 5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양쪽에 동봉과 서봉이 있으며 그 줄기가 칠곡군과 군위군, 영천시, 경산시 및 구미시에까지 뻗어 있는데 위천의 지류인 남천이 북쪽 사면에서 발원한다.

산세가 웅장하고 하곡이 깊어 예로부터 동화사와 파계사, 은해사 등 유서 깊은 사찰과 염불암, 부도암, 비로암 등의 암자가 들어서 있다.

영천시 청통면의 은해사거조암영산전(국보 제14호), 군위군 부계면의 군위삼존석굴(국보 제109호)을 비롯한 국보 2점, 보물 9점, 사적 2점, 명승지 30곳이 있으며 명아주와 원추리, 은난초, 옥잠화 등 690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유봉지맥 산행을 준비하면서 수도사에서 능선등로를 타고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 앞 헬기장으로 올라 팔공산 비로봉 정상이자 유봉지맥 분기점을 다녀오기로 계획을 세워 진행하니 예상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비로봉에 도착을 하고 멋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다시 팔공산 동봉을 지나고 코끼리 바위까지 바위암릉을 타고 조심스럽게 진행하니 갑자기 산세가 낮아지기 시작해 비산비야로 변하고 있다.

예상보다 좋은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니 구디터(신원고개)와 넓문이고개 지나 다시 나즈막한 능선으로 올라 묘지를 지나 오르다 지나온 방향인 서쪽으로 뒤돌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유봉지맥 마루금 따라 저 멀리 팔공산 군부대와 하늘정원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비로봉이 앞의 신녕봉과 코끼리바위능선에 막혀 머리만 보이며 그 좌측으로는 갓바위와 동화사로 이어지는 팔공산 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환상의 풍경에 잠시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을 담고 그 이름들을 불러 준 후 얼마 남지 않은 봉화산을 향해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시간이 힘은 들지만 마음만은 깃털처럼 가벼운 시간이기도 하다.

 

이번 유봉지맥 산행 역시 첫날 날머리를 어디로 정하고 택시는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문제인데 택시비로 인해 월부령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수도사에서 산행을 시작하기로 했는데 선답자의 산행후기에 청통택시 전화번호가 보여 어렵게 새벽 5시 30분에 예약을 하고 시간 맞춰 내려가니 정확한 시간에 택시도 도착을 해 생각보다 편안하게 수도사로 이동하게 되었다.

수도사에 도착을 하니 새벽 6시가 조금 안 된 시간으로 수도사 일주문을 지나 능선으로 진입할 수 있는 넓은 공터까지 택시기사가 이동을 해 줘 수도사를 사진에 담아 보지만 빛이 부족해 보이지 않기에 선답자의 사진 한장 빌려 와 본다.

수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로서 647년(신라 진덕여왕 1) 자장(慈藏)과 원효(元曉)가 함께 창건했다고 하나 원효는 648년에 승려가 되었으므로 자장이 창건한 것으로 추정된다.

1296년(고려 충렬왕 22)에 중창했으며 1805년(조선 순조 5)에는 징월(澄月)이 중창하였는데 본래 이름은 금당사(金堂寺)였다고 한다.

건물로는 원통전과 산신각 및 승방 등이 있는데 원통전 안에는 관세음보살이 좌상으로 모셔져 있고 불상 뒤에는 후불탱화와 지장탱화 및 신중탱화가 걸려 있으며 또 꽤 오래된 괘불도 전하는데 본래는 산문(山門)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다.

약사신앙의 성지인 관봉 갓바위로 오르는 등산코스에 있고 산 위쪽 1km 지점에 3단으로 된 치산폭포가 절경을 이루어 등산객이 사시사철 붐비는데 2001년에 영천시청에서 이 절 일대를 치산관광지로 꾸몄다.

능선으로 들어가니 어둠속에 활엽수 낙엽이 수북하고 곧이어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오르며 유봉지맥 산행을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찬바람이 강하게 불며 두 뺨에 스치는 촉감이 한기를 느끼게 만들고 있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에 치산계곡의 청아한 물소리를 들으며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얼마지나지 않아 팔공산도립공원 종합안내도와 팔공산탐방지원센터인 치산지구 건물이 보이는데 너무 이른 새벽 시간이라 근무자는 보이지 않는다.

치산계곡은 팔공산 주봉 북쪽 자락에 들어앉은 계곡으로 치산 저수지에서 약 1km 올라가면 신라 선덕여왕 14년에 원효대사와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 수도사가 있으며 상류에는 신령재와 고려 문종시대에 흥암 혼수대사가 창건한 진불암을 만날 수 있다.

수도사에서 계곡을 따라 약 1.6km 올라가면 공산폭포 또는 치산폭포라 불리는 폭포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 폭포는 팔공산에 산재해 있는 폭포 가운데 가장 낙차가 크고 낙수율이 풍부하다. 팔공산 남쪽과 서쪽으로부터 에워싸고 있는 광활한 일대의 원시림지대에서 흘러내리는 폭포는 3단을 이루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

온갖 형상의 기암석과 울창한 숲으로 풍치미 또한 뛰어나며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을 자랑하는 계곡의 맑은 물과 호수는 주변의 산세와 조화를 이루에 경관이 좋다.

또한 주변 관광지로는 제 2석굴암과 팔공산 순회도로와 연결되어 있으며 등산로는 수도사에서 치산폭포 지나 동봉과 동화사를 거쳐 갓바위로 연결되어 있다.

지금은 추운 겨울철이라 한산하기만 하지만 무더운 여름철에는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는 계곡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 치산지구를 지나 계속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른다.

 

치산지구를 지나 오르니 동봉까지 5 Km 거리라는 이정판이 보이고 곧이어 치산계곡물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나타난다.

그 다리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동봉까지 4.5 Km 남아 있다는 이정판이 나타나고 곧이어 우측으로 공산폭포가 있다는 이정판과 공산폭포에 대한 설명판이 좌측으로 보이는데 이 어둠속에 가 봐도 보이는 것이 없어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할까 잠시 고민하다 그래도 직진의 공산폭포 방향으로 걸어 오르니 우측인 계곡 방향으로 안전목책이 길게 설치되어 있다.

공산폭포(公山瀑布, 팔공폭포 또는 치산폭포)는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 치산계곡의 중턱에 위치한 폭포로서 명칭유래를 보면 1980년 대구시가 경상북도와 분리될 때 팔공산(八公山)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공산 폭포로 표기가 통일되었으나 폭포 인근 지역인 대구에서는 팔공산에 있다 하여 팔공폭포라 부르며 영천에서는 신녕면 치산리 치산 계곡의 지명을 붙여 치산폭포라 부르고 있다.

공산 폭포는 약 6 Km에 걸쳐 있는 치산 계곡의 중턱에 위치하는데 영천시 신녕면과 대구광역시 동구 그리고 군위군 부계면에 걸쳐 있는 팔공산(1,193m)은 주요 산지가 동서로 길게 이어져 분수계를 이루고 주봉인 비로봉과 신령재에서 발원한 물길이 북쪽 사면을 따라 흘러내리면서 하나로 모여 치산 계곡을 형성한다.

공산 폭포는 팔공산 북쪽 자락에 형성된 폭포로 팔공산에 산재하는 폭포 가운데 가장 낙차가 크고 낙수가 풍부한 3단 폭포인데 폭포 주변에는 다양한 형상의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분포하고 있으므로 경관이 수려하다.

공산폭포에서 약 1.6 Km 하류부에는 647년(신라 선덕여왕 14) 원효대사(元曉大師)와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천년 고찰 수도사(修道寺)가 있는데 창건 당시에는 금당사(金堂寺)라 불렸다가 큰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세워진 뒤 수도사라 명명됐다.

또한 공산 폭포에서 약 2 Km 상류부에는 고려 문종 때 환암(幻庵) 혼수대사(混修大師)가 창건한 진불암(眞佛庵)이 있다.

다만 공산폭포 앞에 도착을 해도 아직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는 시간이라 청아한 폭포물소리는 귓전을 맴돌지만 눈으로 확인은 불가능하니 아쉽기만 하다.

 

안전목책을 따라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갑자기 눈 앞으로 팔각정이 나타나고 그 입구에는 망폭정이란 액자가 걸려있고 그 안으로 올라가 보니 옛선조들이 이 망폭대에서 남긴 시 몇 편이 액자로 걸려있어 읽어 본 후 내려오니 좌측으로 망폭대에 대한 설명판도 보여 있어 잠시 읽어 본다.

망폭대(望瀑臺)란 폭포를 바라보는 장소라는 뜻으로 팔공산 치산십경(雉山十景)의 하나이며 1698년에 공산폭포를 찾았던 이담로(李聃老)의 누가 이 경치에 빠져 이 대(臺)를 만들었나(誰耽此景臺斯築)하는 시구와 하성징(河聖徵)의 태수는 누구라 이 대(臺)의 이름을 지었는가(太守誰爲臺號命) 라는 시구로 보아 당시 신녕현감(新寧縣監)이 이 자리에 석축(石築)을 쌓아 대를 만들고 망폭대(望瀑臺)라고 명명(命名)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하성징의 신룡(神龍)이 노해 뿜는 백충의 파도(神龍怒噴百層波)라는 시구와 정민장(丁敏章)의 돌을 치는 힘센 파도 옥빛 물결 뒤집는데(擊石雄濤倒玉波)라는 시구는 망폭대(望瀑臺)에서 바라본 공산폭포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팔공산 내 치산계곡 십경(十景) 중 하나인 망폭대(望瀑臺)는 조선시대 각 고을의 현령과 시인묵객이 공산폭포의 뛰어난 절경을 감상한 뒤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기던 정자로 팔공산의 명소로 손꼽힌다.

청아하게 들리는 공산폭포를 이 망폭대에서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을 노래한 싯귀를 읽으며 옛선조들의 여유로운 삶이 그리워지는 시간이지만 오늘 이 산객에게는 보은 풍경이 없으니 그 선조들의 생각을 모두 느끼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망폭정과 망폭대를 지나 보이지 않는 청아한 공산폭포 소리를 듣고 아쉬움을 달래며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금새 다시 방금 전 헤어진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오른다.

잠시 후 좌측으로 신령재로 직접 오를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현수교가 설치되어 있는데 다리 양쪽으로는 진불암에서 설치한 듯한 등도 보이는데 불은 밝혀 두지 않았다.

다시를 건너지 진불암까지 1.5 Km에 동봉까지는 2.75 Km 거리라는 이정표 지나 다시 나타나는 은수교를 통과하니 우측으로 진불암과 좌측으로 직접 동봉으로 오르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난다.

아직도 어둠이 깔려있는 새벽시간이기에 진불암은 포기하고 좌측 동봉으로 직접 오를 수 있는 능선으로 진행하니 이곳도 역시 활엽수 낙엽이 발목까지 뒤덮고 잠시 더 걸어 계곡을 건너니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데 좌측은 계곡으로 이어지는 동봉가는 등로이고 우측은 능선으로 동봉까지 이어지는 등로이기에 원래의 계획대로 우측의 능선 등로를 타고 진행하기로 한다.

 

얼음이 두껍게 얼어있는 계곡을 조심스럽게 건너니 곧바로 능선으로 등로가 이어지고 그 능선으로 오르니 갑자기 눈 앞으로 거대한 바위암봉이 가로막아 좌측으로 어렵게 우회하며 통과하니 좌측에서 올라오는 뚜렷한 등로가 나타난다.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급경사 오르막 등로를 타고 힘겹게 오르니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 두 뺨이 얼어 붙을듯 시리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벌써 이마와 등줄기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 내려야 할 시간인데도 아직 땀이 흐르지 않아 방풍의를 입은채 계속 걸어 오르니 눈 앞에 현위치번호 동봉05-23번이 보이고 그 옆으로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는데 우측으로 진불암 가는 갈림삼거리로서 직진 방향으로는 동봉까지 2.0 Km 란 거리 표시가 반가운 지점이다.

진불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로서 고려 문종(재위 1046∼1083) 때 국사를 지낸 혼수(混修)가 창건하였지만 이 인물이 보각국사(普覺國師) 환암혼수(幻庵混修:1320∼1392)인지는 알 수 없는데 혼수라는 이름으로 국사를 지낸 사람이 보각국사밖에 없어 창건 연대에 다소 의심이 간다.

1637년(조선 인조 15) 이응선(李應善)이 중창하였고 1920년 석담(石潭)이 다시 중창하였으며 현재 건물로 법당 등이 있으나 특별히 전해지는 유물은 없다.

 

진불암 갈림삼거리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참나무 오르막 등로를 타고 이마에 약간의 땀방울이 맺힐쯤 드디어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고 주위 사물들이 보여 헤드렌턴을 끄고 방풍의를 벗어 배낭에 넣고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활엽수 낙엽들이 진 앙상한 참나무 가지 사이로 등로 좌측 저 멀리 날카로운 능선이 실루엣으로 다가오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잠시 후 팔공산 비로봉과 동봉 지나 유봉지맥이란 이름으로 걸어 넘어야 할 염불봉에서 신녕봉으로 이어지는 바위암릉이 길게 펼쳐져 있다.

사진에 담고 이제 우측 앞을 보니 드디어 팔공산 공군부대의 인공구조물들과 그 주위로 조성된 하늘정원이 거대한 암벽 위로 올려다 보이고 그 좌측 옆으로는 많은 통신탑들이 세워져 있는 팔공산 주봉인 1192.9미터의 비로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잠시 후 등로 위에 쓰러져 있는 커다란 고사목들과 바위들을 지나 동봉까지 1.5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통과하니 우측 팔공산 정상부의 불빛들이 조금 더 선명하가 다가오고 좌측의 유봉지맥 마루금 위로는 일출이 시작되려는지 하늘이 붉게 물들어 오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짧은 로프가 설치된 바위암릉 지대를 올라 길게 이어지는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 정상부로 오르며 우측 앞으로 보니 팔공산하늘정원과 공군부대 그리고 좌측으로 팔공산 비로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 우측 앞으로 팔공산 정상부를 올려다 보며 사진에 담고 계속 걸어가니 바위 좌측으로 나무데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 좌측 뒤를 살펴보니 신녕봉 지나 코끼리바위 능선 뒤 저 멀리 동쪽 하늘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하고 그곳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일출을 기다려 보는데 시간이 벌써 7시 40여분을 지나고 있어 일출이 시작되었어야 하는데 두꺼운 구름을 뚫지 못해 오늘 일출은 이것이 전부인 듯 보여 몇장의 사진에 더 담은 후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현위치번호 동봉05-06번이 서 있다.

 

두꺼운 구름속에 갇혀 그 빛을 발산하지 못하는 아쉬운 일출을 나뭇가지 사이로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후 이어지는 능선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오르니 조금 더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더니 금새 현위치번호 동봉05-05번이 나타나고 우측으로는 이정표도 서 있는데 살펴보니 좌측에서 올라오는 계곡 등로와 만나는 갈림삼거리이다.

이제 직진 방향으로 동봉까지는 0.5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데 헬기장은 동봉 전이기에 잠시 후면 팔공산 주능선에 도착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좌측의 계곡 등로와 이 산객이 어렵게 걸어 올라온 능선 등로가 만나는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키 작은 산죽의 푸른 잎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말라있는 사초잎을 따라 오르니 현위치번호 동봉05-01번 지나 마지막 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타고 오르니 좌측으로 이정표와 팔공산동봉석조약사여래입상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팔공산 비로봉이 올려다 보이는 공사자재들이 쌓여있는 1124.7미터의 팔공산 주능선 상 헬기장에 도착을 한다.

그 헬기장 한쪽에 쌓여 있는 공사자재 뒷편에 배낭을 숨기고 우측인 북서 방향을 살펴보니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높은 여러개의 방송통신탑들이 설치되어 있는 팔공산 주봉이자 유봉지맥 분기점인 비로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완전한 유봉지맥 산행을 위해 우측의 많은 인공통신탑들이 올려다 보이는 팔공산 정상인 비로봉을 다녀 와야 하기에 좌측의 팔공산동봉석조약사여래입상은 지맥산행을 진행하며 살펴보기로 하고 우측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바위들을 지나 좌측으로 서봉가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잠시 옛추억에 젖어본 후 공터 지나 전진하니 이정표가 보이는 나무데크 전망대와 인공통신탑들이 보이는 넓은 공터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우측 바위암릉을 타고 오르니 드디어 팔공산의 최고봉이자 유봉지맥 분기점인 1192.9미터의 비로봉에 도착을 하는데 옛날과 같이 커다란 바위에 페인트로 정상 표시가 되어 있고 그 앞에 군위11이란 1등 삼각점이 솟아 있으며 좌측 철망에는 1193미터의 비로봉이란 이정판도 걸려있어 사진과 추억 몇장 남겨 보지만 유봉지맥 분기점이란 이정판은 만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팔공산은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과 군위군 부계면 및 대구광역시 동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명칭 유래를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는데 신라 말 견훤(甄萱)이 서라벌을 공략할 때 고려 태조가 5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정벌하러 나섰다가 공산(公山) 동수(桐藪)에서 견훤을 만나 포위당하였다.

그때 신숭겸(申崇謙)이 태조로 가장하여 수레를 타고 적진에 뛰어들어 태조가 겨우 목숨을 구하였으나 신숭겸과 김락(金樂) 등 여덟 명의 장수가 모두 전사하여 팔공산(八公山)이라 하였다 한다.

팔공산은 중악(中岳)과 부악(父岳) 및 공산 등으로 불려져 온 영남 지역의 명산으로 중악이나 공산의 명칭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등의 기록에 분명하게 나타나며 공산은 현재의 팔공산을 칭하는 것이고 중악이라는 것은 신라 오악(五岳)의 하나로 불리던 명칭이었다.

신라는 산악을 신격화하여 호국신군으로 받드는 산악 숭배 사상으로서 삼산오악을 두었는데 신라 오악은 동쪽 토함산(동악), 서쪽 계룡산(서악), 남쪽 지리산(남악), 북쪽 태백산(북악) 그리고 중앙의 공산(중악)을 지칭하며 공산은 현재의 팔공산을 칭하는 것이다.

팔공산이 하나의 맥을 이루므로 이 자체를 팔공산맥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팔공산맥은 팔공산을 가운데 두고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의 경계에 형성된 환상(環狀)의 산지로 대구분지의 북쪽을 동서 방향으로 가로지르고 있으며 남동쪽의 초례봉(醮禮峰, 648m)에서 시작하여 환성산(環城山, 811m), 인봉(印峰, 887m)을 지나 팔공산과 북서부 쪽의 가산을 연결하면서 팔공산맥을 이룬다.

팔공산의 최고봉인 비로봉과 동봉(東峰) 및 서봉(西峰)은 양 날개를 펴고 있는 듯한 형상을 보여 주고 있다. 팔공산 인봉에서 가산까지는 팔공산맥의 주형으로 길이가 약 20㎞에 이르며 전체 배열이 주변의 구릉군과는 대조적으로 급경사진 종상의 산형을 이루고 있다.

팔공산의 북쪽에는 위천(渭川)의 상류인 남천(南川)과 여러 계류들이 흐르고 동쪽에는 한천(漢川)과 신령천(新寧川) 등이 흐른다.

팔공산의 남쪽은 완만하여 응해산(鷹蟹山, 526m)과 응봉(456m) 등의 구릉성 산지가 솟아 있고 그 사이에 계류들이 남류하여 동화천(桐華川)을 이루며 금호강(琴湖江)으로 흘러든다.

팔공산 곳곳에는 사찰이 많은데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의 본산인 동화사(桐華寺)는 신라 때의 고찰로서 동화사는 임진왜란 때 유정(惟政)이 승군(僧軍)을 지휘하던 곳이며 보물 제243호인 마애불좌상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팔공산 비로봉 정상부를 사진에 담고 제일 먼저 북쪽을 살펴보니 군부대 주변으로 팔공산 하늘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몇 년 전 팔공지맥 산행을 하면서 군부대 철망을 따라 편안하게 진행을 했던 기억을 떠올려 홀로 웃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그 군부대 정상과 하늘정원 좌측으로는 오도암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끝자락으로 천길 낭떨어지 형상의 거대한 바위벽이 눈길을 사로잡는데 몇번인가 들렸지만 저 능선은 만나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궁금증만 남긴다.

팔공산을 오르면 마치 하늘 속에 있는 거 마냥 상쾌한 느낌이 드는데 대구 팔공산엔 하늘을 담은 듯한 하늘정원이 있다.

하늘정원 외에도 케이블카 정상역으로 대구의 전경이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 사랑의 터널, 피톤치드 쉼터, 꽃 그늘 정자, 산책로, 산림욕길, 다섯 가지 테마가 있는 열쇠고리 장소 등으로 다양하게 조성되어 있어 팔공산 전망과 더불어 산림욕이 가능하다.

한 때 군사 시설로 인해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지만 경북 군위군에서 군부대와 협의하여 출입이 가능해져 그곳 팔공산 하늘정원에서 노을을 바라보면 정말 황홀한데 이를 촬영하기 위해 많은 사진사들이 다녀가고 노을 외에도 정상에서 구름을 입고 신비로운 느낌을 내는 산들을 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팔공산 3개의 봉우리는 각기 다른 기를 받을 수 있는데 신림1봉은 신체적 기력 회복에 좋고 신림2봉은 심기의 불안해소와 안정, 긍정마인드, 행복감을 얻는데 특효가 있으며 신림3봉은 영적 수련자들의 기도처이다.

하늘정원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직접 걸어서 등산을 하거나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으며 등산을 하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즐기며 갈 수 있지만 체력이 많이 부족한 분들은 케이블카를 추천한다.

등산만의 자연경관이 있다면 케이블카 역시 그것만의 특별한 자연경관이 있는데 아무래도 케이블카가 경사가 있고 긴 코스이기에 높은 곳에서 자연을 내려다보고 케이블카 특유의 스릴도 함께 누릴 수 있다.

케이블카 정상역은 신림봉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으며 비로봉 정상에 있는 제천단과 동쪽 갓바위 부처님과 함께 기복신앙의 대표적인 장소이다.

케이블카 정상역은 제천단과 대구월드컵경기장과 일직선상에 위치하며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형상에서도 몸통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풍수지리적으로도 아주 좋은 기운을 가진 곳이다.

 

북쪽으로 군부대와 하늘정원을 살펴보고 이제 눈을 서쪽으로 돌리니 바로 앞 넓은 공터 끝자락에 허물어져 가는 흉물스런 작은 건물 지나 거대한 통신탑과 관리 시설들이 보이고 그 좌측 뒤로 서봉 지나 우측 저 멀리 끝자락에 작년 말 올랐던 기산과 기산산성 및 황학지맥 마루금이 먹구름 아래 희미하게 펼쳐져 있는데 저 산줄기는 팔공지맥과 팔공산 종주 산행 시 두번이나 걸었던 기억이 있어 여전히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팔공산(팔공지맥)은 경상북도 군위군의 부계면 동산리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193m이고 지명은 세종실록지리지(의흥)에 공산석성(公山石城)은 부계현 남쪽 10리에 있는데 본현(本縣)과의 거리는 40리이다 라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며 당시의 지명은 공산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고 유사한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의흥)에 나타난다.

여지도서(의흥)에는 공산(公山)은 부계현 남쪽 42리에 있고 화산에서 뻗어 나와 칠곡부 가산의 으뜸 줄기를 이루며 동일 문헌의 고적조에 공산성(公山城)은 돌로 쌓았다 (중략) 이제는 못쓰게 되었다 라고 기재되어 있어 산줄기의 근원과 함께 산 정상에 산성이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표기자의 변화 없이 해동지도(의흥)의 주기에 공산성(公山城)과 공산(公山)이 표기되어 있고 대동여지도에는 현재의 산 지명인 팔공산(八公山)이 기록되기 시작했으며 1872년지방지도(의흥)에는 팔공산구산성(八公山舊山城)으로 기재되어 있고 조선지지자료(의흥)의 부동면에 팔공산(八公山)은 황청동(黃淸洞)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동일 문헌의 하천명에는 공산천(公山川)이 표기되고 있어 팔공산 지명의 존속과 함께 하천지명으로서의 공산천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의 팔공산(八公山, 公山, 父岳, 中岳)은 신라 때 부악(父岳) 또는 중악(中岳)이라 하여 제천단(祭天壇)을 두고 중사(中祀)로 제사를 지냈던 곳으로 처음에는 공산(公山)이라 하였는데 신라 제42대 덕흥왕 7년(832)에 심지(心地)가 동화사(桐華寺)를 중창하고 팔공산(八公山)으로 고쳤음이라는 기록을 통해 이칭인 공산과 부악 및 중악과 함께 팔공산으로의 지명 변경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잠시 더 그곳 팔공산 정상이자 유봉지맥 분기점인 비로봉에 머물며 많은 사진을 남기고 분기점 이정판을 찾지 못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올랐던 등로를 따라 본격적인 유봉지맥이란 이름으로 산행을 시작해 본다.

 

팔공산 정상이자 유봉지맥 분기점인 비로봉 정상을 내려오자 마자 등로 우측 옆으로 작은 팔공산 제천단이란 글씨가 보이는 표지석 하나가 눈길을 잡아 잠시 읽어보니 아래와 같은 내용들로서 자료를 찾아 본다.

팔공산 제천단은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 있었던 제사를 지내던 단으로 팔공산은 옛날부터 산천에 제사를 지내던 큰 산으로 중악(中岳)이라 불리기도 해 신라가 삼국 통일 이후 팔공산에서 국가 단위의 제사를 지냈는데 팔공산 제천단은 산천에 제사를 지내던 모습을 알 수 있는 장소이다.

그렇지만 최근 동봉 표지조사에서 제사관련 유물과 유적으로 추정되는 것이 발견되어 팔공산 비로봉 제천단이 통일신라시대부터 제사를 지내던 장소였는지는 검증이 필요하다.

팔공산 제천단은 팔공산 정상부인 비로봉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비로봉은 행정구역상 대구광역시 동구로 경상북도 영천시와 군위군 등과도 맞닿아 있는 곳이다.

팔공산 제천단은 나지막하게 자연석을 원형으로 쌓아올린 형태이고 선돌 모양의 신위석 2개와 남근공물(男根供物)을 함께 갖춰 치성을 드릴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신라는 삼국통일 이후 3개 산에 큰 제사(대사-大祀)를 올리고 5악(五岳)에는 중간급 제사(중사-中祀)를 지냈는데 중사가 올려진 산은 동쪽의 토함산, 서쪽의 계룡산, 남쪽의 지리산, 북쪽의 태백산, 중앙에 있는 팔공산이다.

팔공산에서 지낸 제사가 천신에 올리던 것인지 산신에 드리던 제사인지 불명확하고 팔공산 어디에서 제사가 행해진지도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팔공산 밑에서 산신제 형태로 지냈거나 산 정상부에서 천신제로 지냈을 가능성 등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천신제 형태로 정상부에서 제사가 올려졌을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는데 팔공산 정상부에는 남북간에 걸쳐 봉우리가 3개나 있어 그 중 어느 곳에서 제사가 올려졌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현재 민간단체가 새해 첫날 팔공산 제천단에서 행사를 하는데 통일신라시대부터 팔공산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팔공산이 우리 민족이 중요하게 여긴 명산임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옛날 제사를 지내던 단인 팔공산 제천단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후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동봉까지 0.44 Km 거리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 공터 좌측으로 보이는 나무데크로 내려가니 여전히 녹슨 3중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는 통신탑 지나 저 멀리 남쪽과 남동방향으로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유봉지맥의 팔공산 동봉이 높게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 대구시 동구 방향의 마을들과 나즈막한 산줄기 넘어 가팔환초를 이루고 있는 초례산과 환성산이 보이지만 갓바위로 유명한 관봉과 팔공산골프장은 바로 앞 동봉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잠시 더 머물며 진행 방향을 살펴보지만 제한된 시야로 인해 아쉬움을 남기고 눈을 다시 남쪽과 남서 방향으로 돌려본다.

 

이제 눈을 남쪽과 남서 방향으로 돌리니 좌측으로 동봉이 우측으로는 서봉이 솟아 있고 그 사이 저 멀리 수태골과 나즈막한 거저산과 삼마산 및 문암산 줄기 넘어 박무속에 거대한 대구시가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는데 흐린 날씨로 인해 선명한 풍경을 내려다 볼 수 없음이 안타까운 시간이다.

대구는 구릉의 의미를 안은 지명으로 본래 달구화(達句火)로 출발함으로써 불의 뜻이 담긴 화(火)가 많은 신라문화권에 속한 땅 이름이며 삼국이 통일된 이후 전 국토에 대하여 행정구역을 재편성하던 경덕왕 때에 대구(大丘)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 이름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조에 들어와 유교의 교주라 할 수 있는 공자의 휘자와 같다 하여 구자의 한자를 丘에서 邱로 바뀌었을 뿐 언덕의 의미는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구릉제방(丘陵堤防)이라는 말처럼 언덕은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으면서도 험준한 산지보다 낮은 것에 특성이 있는데 대구 역시 예로부터 중악(中岳)으로 통용하던 팔공산(1,192m)의 줄기가 동북쪽으로 비슬산(1,084m) 줄기가 남쪽으로 차단되고 있으므로 등줄산맥의 정상도 아니고 해수면에 가까운 저지대의 해안도 아니다.

중간을 흘러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금호(琴湖) 유역에 광활한 분지를 이루며 강 유역에서 양쪽의 분수령 사이에는 구릉지대가 발달하는 특색을 갖는다.

구릉지대는 평지보다 높고 높은 지대의 땅은 건조하므로 매장의 장소로 알맞은데 구묘지향(丘墓之鄕)이란 조상의 묘지가 있는 고향을 의미하므로 간척지와 같이 묘역 조성이 불가능하고 망망한 지평선이 보이는 토지와 차별된다.

여기에다 신혼비양(神魂飛揚)이라는 말처럼 망자의 영혼은 승천(昇天)을 전제하므로 풍수설이 도입되기 이전의 무덤일수록 구릉의 꼭대기를 차지하게 된다.

비산(飛山)동을 중심으로 산재한 고분군은 가야 문화의 유적지로 알려지고 고령과 함안 등지에 산재한 고분군과 함께 구릉의 정상에 조성되고 있음으로 승천과 비양을 염원해 온 흔적이다.

구릉의 다른 이용은 과류의 생산에 알맞아서 1902년에 일본인 사카모토(坡本)에 의해서 사과 재배가 이루어졌는데 이후 주로 구릉지를 이용한 과원 조성이 본격화되면서 한국 제일의 사과 산지라는 확고한 지위를 굳히게 했다.

대구는 세조 때에 경주에 있었던 관찰사영을 옮겨오면서 영남의 중심 도시로서 성장 기반을 닦기 시작했고 이후 도청소재지로서 지방행정의 중심 기능을 발휘했으며 급기야는 1981년에 한국 유수의 직할시(오늘의 광역시)로 승격되었다.

시역(市域)은 공교롭게도 금호강을 사이에 두고 강의 남북을 통합했지만 시 경계 북쪽으로 팔공산과 남쪽으로 비슬산의 능선을 각각 넘지 못했다.

경내의 구제 분할은 전통적인 5방제를 적용하여 동서남북과 중방을 기본 골격으로 삼아왔으며 현재 수성구와 달서구 등 외곽지대를 합하여 대구는 223만의 인구 규모를 갖는 광역시다.

중구는 다섯 방위의 중심인 중방(中方)답게 시청과 은행 등 업무 기구가 집중되어 도심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있고 특히 이곳에는 전통이 있는 약령시(藥令市)와 달성공원이 자리하여 옛 것과 새 것이 공존하는 도시 공간을 이루고 있다.

 

남쪽과 남서 방향으로 거대한 대구광역시를 살펴보고 우측으로 공터 지나 서봉을 확인하고 그 나무데크로 이뤄진 전망대를 내려 와 바위들이 박혀있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거대한 전봇대 3개가 등로에 보인다.

그 전봇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에 이정표가 보이는데 우측으로 서봉가는 방향과 거리가 보이는 갈림삼거리로서 팔공지맥 산행 시 걸었던 등로이기에 잠시 살펴보며 옛날 생각에 젖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6년 전 함께 이 등로를 걸으며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힘들어 등로 옆에 주저 읹아 간식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던 추억이 떠 올라 피식 웃어 보는데 이제 그때 함께 이 등로를 걸었던 산친구들이 그리워지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서봉 갈림삼거리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진행 방향으로 잠시 후 올라야 할 동봉이 가깝게 다가 와 있고 사진에 담고 바위 등로를 지나 걸어가니 금새 방금 전 수도사에서 힘들게 올라 온 팔공산동봉석조약사여래입상이 있는 헬기장에 도착을 해 공사자재 뒤에 숨겨 둔 배낭을 찾아 물 한모금 마시고 어깨에 둘러메고 조금 더 걸어가니 동봉까지 0.2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 지나 입상이 나타나는데 그 입상 주위와 등로는 누군가 깨끗하게 청소를 해 놔 관리를 잘 하고 있는 듯 보인다.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은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전체 높이는 6m이고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로서 해발 1,155m의 고지(高地)에 위치하고 있는 이 불상은 거대한 화강암의 서쪽 면에 거의 원각에 가까운 고부조(高浮彫 : 높은 돋을새김)로 조각되어 있다.

불상이 새겨진 바위 자체가 거대한 광배의 역할을 하며 머리 주위로는 두광(頭光 : 부처나 보상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머리는 소발(素髮)이며 넓고 편평한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를 가졌다.

반쯤 뜬 눈은 가늘고 길게 표현되었는데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고 두 볼은 살이 찐 편이고 입가엔 미소를 띠고 있어 온화하고 자비스러운 불심을 느낄 수 있다.

신체에 비해 얼굴은 좀 크게 표현되어 있는데 거대한 불상을 올려다보며 예불을 드리는 예배자들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생각된다.

귀는 길어 어깨에 닿을 듯하고 목은 너무 짧아서 삼도(三道)의 표현이 뚜렷치 않으며 불상은 양손과 발이 모두 신체에 비해서 지나칠 정도로 크게 표현되었다.

오른팔은 아래로 길게 늘어뜨려서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였지만 조각 수법은 고르지 못하고 왼팔은 가슴 위로 들어 올려 외장(外掌 : 손바닥을 바깥으로 함)했으며 엄지와 장지를 맞대어 지물(持物)을 가진 듯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는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이고 옷자락은 무릎 아래까지 내려뜨렸으며 단순한 호선(弧線 : 활등 모양으로 굽은 선)형 옷주름만이 표현되었다.

법의 밑으로는 군의(裙衣)의 표현이 희미하고 직립한 두 발끝과 발가락이 뚜렷하게 남아 있으며 좌우측 옷자락도 양팔에 걸쳐 넓게 늘어뜨려졌는데 마치 도포 자락을 연상케 한다.

이 불상은 손과 발에서 기형적 조법이 나타나기는 하나 거대한 입상에 잘 조화되어 있는 옷주름이나 얼굴 모습 등의 조각 솜씨로 보아 경산시의 관봉석조여래좌상(冠峰石造如來坐像, 보물 제431호)과 양식적으로 유사함을 알 수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잘 정리되고 관리되고 있는 듯 보이는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을 살펴보고 좌측에 서 있는 설명판도 읽어 본 후 우측으로 돌아 우회하며 통과하니 길게 이어지는 오르막 계단이 보이고 그 계단을 따라 오르니 금새 넓은 나무데크 전망대와 이정표 그리고 오석의 앙증맞은 정상석이 바위 위에 세워진 팔공산 동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이곳 팔공산 동봉(1167m)는 미타봉이라고도 불리는데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에 관한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생각보다 강한 바람이 불고 기온이 많이 내려가 바위에 오르니 바위가 얼어 마끄럽기에 생각보다 산행 시간이 많이 걸리고 앞으로 만나야 할 1120.4 삼각점봉과 1042미터의 염불봉은 결국 좌측 우회 등로를 이용해 통과하다 보니 정작 정상은 만나지 못하고 진행하게 되어 아쉬움도 남았다.

팔공산 동봉 또는 미타봉에서 북쪽과 북동 방향을 살펴보니 군부대 시설물과 하늘정원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오늘 이 산객이 힘들게 올라 온 진불암과 수도암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능선과 치산계곡 그리고 그 우측 뒤로 무명의 산줄기와 그 뒤 저 멀리 아미산과 방가산 우측 뒤로 보현산과 면봉산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데 조만간 만나야 할 기룡지맥의 기룡산을 찾아 보지만 확실하게 구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북쪽과 북동쪽을 살펴보고 이제 눈을 북쪽과 북서 방향을 살펴보니 방금 전 지나 온 팔공산동봉석조약사여래입상이 있는 공사중인 헬기장이 바로 발 아래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약간의 바위 등로 중간 좌측으로 서봉가는 갈림삼거리 지나 넓은 공터와 통신탑들이 있는 곳을 지나 군부대 3중 철조망과 통신탑이 있는 팔공산 정상이자 유봉지맥 분기점인 비로봉이 바로 눈 앞으로 다가 와 있다.

그 팔공산 비로봉 우측 뒤로 보였던 군부대와 하늘정원은 그 짧은 사이에 짙은 안개가 밀려 와 완전히 뒤덮어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는 변화무쌍한 날씨에 약간은 걱정도 되는 시간이다.

 

팔공산 동봉 북쪽으로 팔공산 정상부인 비로봉과 팔공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이정표가 서 있는 나무데크로 된 전망대를 지나 오석의 앙증맞은 정상석이 서 있는 바위 위로 걸어가니 생각보다 많이 미끄러워 자세히 살펴보니 얇은 얼음막이 껴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몇 번이나 확인하며 어렵게 그 정상석 앞으로 가 힘들게 사진과 추억 몇장 남기고 다시 나무데크 방향으로 후퇴해 살펴보지 못한 나머지 방향을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팔공산은 경상북도 군위군의 부계면 동산리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193m이고 지명은 세종실록지리지(의흥)에 공산석성(公山石城)은 부계현 남쪽 10리에 있는데 본현(本縣)과의 거리는 40리이다 라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며 당시의 지명은 공산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고 유사한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의흥)에 나타난다.

여지도서(의흥)에는 공산(公山)은 부계현 남쪽 42리에 있고 화산에서 뻗어 나와 칠곡부 가산의 으뜸 줄기를 이루며 동일 문헌의 고적조에 공산성(公山城)은 돌로 쌓았다 (중략) 이제는 못쓰게 되었다 라고 기재되어 있어 산줄기의 근원과 함께 산 정상에 산성이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표기자의 변화 없이 해동지도(의흥)의 주기에 공산성(公山城)과 공산(公山)이 표기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현재의 산 지명인 팔공산(八公山)이 기록되기 시작했으며 1872년지방지도(의흥)에는 팔공산구산성(八公山舊山城)으로 기재되어 있고 조선지지자료(의흥)의 부동면에 팔공산(八公山)은 황청동(黃淸洞)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동일 문헌의 하천명에는 공산천(公山川)이 표기되고 있어 팔공산 지명의 존속과 함께 하천지명으로서의 공산천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의 팔공산(八公山, 公山, 父岳, 中岳) 에서는 신라 때 부악(父岳) 또는 중악(中岳)이라 하여 제천단(祭天壇)을 두고 중사(中祀)로 제사를 지냈으며 처음에는 공산(公山)이라 하였는데 신라 제42대 덕흥왕 7년(832)에 심지(心地)가 동화사(桐華寺)를 중창하고 팔공산(八公山)으로 고쳤음이라는 기록을 통해 이칭인 공산과 부악 및 중악과 함께 팔공산으로의 지명 변경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곳 팔공산 동봉 또는 미타봉이라 불려지는 봉우리에 대한 자료가 없어 조금은 아쉬움도 남는다.

 

팔공산 정상부이자 유봉지맥 분기점인 비로봉 방향을 살펴보고 이제 다시 나무데크 전망대로 이동 해 서쪽을 살펴보니 바로 앞으로 팔공산 서봉이 솟아 있고 그 뒤로 파계봉이 보이며 서봉 뒷쪽으로 낮아지는 한티재 넘어 서봉 우측 뒤 저 멀리 지난해 연말에 만났던 가산과 가산산성 및 황학지맥 마루금이 벌써 고운 추억이 되어 그 시간을 소환해 본다.

저 능선을 타고 진행하면 오래 전 홀로 걸었던 팔공지맥 마루금이 이어지는데 그 팔공지맥에 대한 자료 역시 오랫만에 찾아 본다.

백두대간의 매봉산(태백)에서 분기한 낙동정맥이 주왕산과 통점재를 지나 가사령에 내려서기전 1.1 Km 지점에서 서쪽으로 큰 산줄기 하나를 가지치고 가사령으로 내려서 침곡산으로 간다.

서쪽으로 가지친 큰 산줄기는 베틀봉(934m), 면봉산(1121m), 보현산(1126m)을 지나 석심산(石心山 750.6m)에 이르러 다시 두갈래로 갈라지는데 분기점에서 39.4 Km지점이다.

한줄기는 남서진하며 방가산(755.8m)과 화산(828.1m) 및 팔공산(1,192.8m)을 지나고 가산(901.6m)에서 북진하여 좌베틀산(369.2m)과 청화산(700.7)을 지나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 새띠마을에 이르는 길이120.7 Km되는 산줄기다.

석심산(石心山 750.6m)에서 또 한줄기는 북서진하며 어봉산(634.2)과 갈비봉(672m) 및 산두봉(719), 구무산(676.3), 푯대산(천제봉359), 삼표당(443.7m), 해망산(400m), 삿갓봉(290.7m), 골두봉(314.8m), 곤지산(330m), 비봉산(579.3) 등을 지나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팔공산쪽으로 온 산줄기를 마주보며 끝을 내는 길이 127.4 Km 되는 산줄기다.

두 산줄기는 위천을 남과 북으로 애워싸고 서로 마주보고 달리다가 다시 위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위천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며 만나게 되는데 위천의 북쪽 울타리가 보현지맥(普賢枝脈)이고 위천의 남쪽 울타리가 팔공지맥(八公枝脈)이 된다.

이제 신산경표 상 162지맥을 모두 완주하고 나면 다시 저 팔공지맥이란 이름으로 산줄기를 따라 걸어 볼 기회가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바위가 얼어있어 미끄럽기에 팔공산 동봉 정상석 앞에서 사진과 추억을 담고 다시 나무데크 전망대로 후퇴해 이제는 남서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앞으로 무명 산줄기 지나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가 살짝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 팔공산자연공원 지나 저 멀리 좌측의 문암산에서 삼마산과 거저산 지나 그 뒤 우측으로 응해산과 도덕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뒤로 거대한 대구시가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는데 오늘 날씨가 흐리고 미세먼지인지 박무가 껴 있어 조금은 아쉬움도 남긴다.

 

남쪽으로는 가팔환초의 끝자락인 초례산과 환성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보이고 그 좌측으로 대구골프장과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유봉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그 중간으로는 우측의 갓바위지구의 관봉 지나 동화사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동쪽과 동남 방향으로는 이제부터 진행해야 할 유봉지맥 마루금 좌측인 북동 방향으로는 오늘 새벽에 수도사에서 출발해 공산폭포 지나 치산계곡 옆으로 이어지는 능선 등로를 타고 올라온 접속구간이 길게 펼쳐져 있어 잠시 사진에 담으며 살펴본다.

치산계곡 뒤로는 팔공지맥 상 화산줄기가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뒤로 보여야 할 보현산과 면봉산은 그 사이 더욱 짙어진 안개로 인해 그 모습을 숨겨 버렸기에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이미 사진으로 담은 풍경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이제 팔공산 동봉이자 미타봉이란 정상에서 많은 시간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얼어있는 바위를 조심스럽게 지나 진행을 이어가니 이제 진행 방향인 남동 방향으로 유봉지맥 마루금과 그 우측으로 갓바위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넘어 저 멀리 가팔환초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다시 발걸음 멈추고 잠시 사진에 담으며 그 이름들을 불러본다.

바로 앞으로 바위암릉 지나 1120.4 삼각점봉과 염불봉 지나 신녕재와 신녕봉에서 유봉지맥은 좌측인 종쪽으로 흐르고 우측으로는 갓바위지구로 이어지는 능선이 분기하는데 그 산줄기 뒤로도 환성산과 초례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산줄기가 2중으로 펼쳐져 있어 잠시 옛 추억을 더듬어 보는 시간도 가져본다.

 

바위암릉을 따라 전진하니 해가 떠 있을 시간이지만 흐린 날씨에 두꺼운 구름으로 인해 해가 사라지고 기온이 오르지 못해 여전히 바위 위에 얼음막이 생겨 미끄러워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두어번 미끄러워 위험한 순간이 있었기에 스틱으로 두세번 확인하며 전진하니 산행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고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눈 앞으로 길게 설치된 나무계단이 보이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팔공산 동봉과 그 뒤로 비로봉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그곳에서 님쪽에서 남동 방향을 살펴보니 좌측으로 대구골프장 뒤로 갓바위지구의 관봉이 솟아 있고 그 뒤 저 멀리 무학산과 그 우측으로 높게 솟아 있는 환성산 지나 바로 우측 뒤로 초례산이 확실한 존재감을 알려오고 그 우측 아래로는 능천산과 용암산 지나 문암산 방향의 신숭겸장군 유적지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마치 한몸으로 이어진 듯 길게 펼쳐진 모습도 눈길을 잡는다.

 

진행 방향 우측인 남쪽과 남동 방향으로 환성산과 초례산 줄기 그리고 그 앞으로 갓바위지구로 이어지는 종주 능선을 확인하고 계단을 내려가니 나무데크가 이어지고 곧이어 현위치번호 084 이정목이 보이는데 진행 방향으로는 갓바위 화살표가 지나온 방향으로는 동봉 방향 표시만 있고 거리 표시는 없는 이정목이다.

그 이정목 지나 안부로 내려가고 그곳에서 직진의 바으ㅟ암릉을 따라 잠시 오르는데 바로 앞의 바위암봉이 1120.4 삼각점봉이기에 잠시 다녀오기로 했지만 여전히 바위에 얼음막이 형성되어 있어 미끄럽기에 위험부담이 너무 커 포기하고 좌측 사면으로 설치된 나무계단 위에 고무판이 보이는 우회 등로를 따라 우회하게 되니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방금 전 내려 온 동봉 끝자락에 설치된 계단과 암봉을 사진에 담고 우회 계단을 따라 1120.4 삼각점봉을 통과한다.

 

이어지는 계단 우회 등로를 따라 걸어가며 우측의 1120.4 삼각점봉을 올려다 보지만 이미 만나기는 어렵기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강한 시간이다.

잠시 후 계단을 따라 걸어가다 좌측 앞으로 보니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유봉지맥의 신녕봉과 코끼리바위로 이어지는 장쾌한 산줄기가 길게 이어지고 그 풍경이 생각보다 험준하게 느껴져 오늘 초반 산행이 쉽지 않음을 느낀다.

잠시 후 암봉 좌측 아래 바위벽으로 로프가 보이고 트레버스하듯 그 로프를 타고 바위암벽을 통과하니 다시 눈 앞으로 거대한 바위벽이 나타나고 그 옆으로 우회할 수 있는 나무계단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 거대한 바위암벽 좌측 옆으로 우회하는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공사자재들이 수북히 쌓여 있는 나무데크가 나타나고 그 한쪽으로는 현위치번호 077번이 서 있는데 그 나무데크 뒷쪽을 보니 방금 전 얇은 얼음막으로 바위암릉을 포기한 능선 등로로 이어지는 입구가 보이는데 그곳에도 계단을 설치하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사진 한장 남기고 삼각점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그 나무데크를 출발하니 진행 방향으로 유봉지맥이 좌측으로 길게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신녕봉 지나 갓바위지구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분기되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생각보다 남성미 물씬 풍기는 바위암릉이 저 멀리 길게 이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펼쳐져 있다.

 

진행 방향으로 유봉지맥 마루금과 그 우측으로 갓바위지구로 이어지는 관봉 능선 그리고 그 뒤 저 멀리 남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환성산과 초례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환상으로 펼쳐져 있어 미끄러운 바위를 핑계로 천천히 걸어 전진하며 많은 사진에 담아 본다.

다시 나타나는 평이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으로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치산계곡이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 뒤로 공산폭포 옆으로 이어지는 무명 산줄기 지나 팔공지맥의 화산줄기가 보이고 그 화산 뒤 저 멀리 붉게 물든 하늘 아래로는 봉림산과 방가산 지나 보현산과 면봉산 라인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유봉지맥 진행 방향과 그 마루금 좌우측으로 펼쳐진 환상의 조망들을 사진에 담고 이름들을 불러주며 천천히 걸어가니 다시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길게 설치된 안전목책과 러ㅗ프등로가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거대한 바위암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075 현위치번호판을 통과하고 출입금지 경고판을 확인하고 진행을 이어가니 등로 우측 위로도 안전목책과 로프가 올려다 보이고 그 위로 거대한 바위암릉이 이어지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그 바위암봉이 바로 도상 1042미터의 염불봉인데 바위가 얼어있다는 핑계로 좌측으로 우회하다 보니 삼각점과 마찬가지로 염불봉도 우회하게 되었다.

계속 이어지는 안전목책과 로프 등로를 따라 조금 더 전진하니 현위치번호 074번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하고 살펴보니 우측으로 염불암과 동화사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안부인데 진행 방향으로는 갓바위까지 6.6 Km란 방향과 거리 표시가 눈에 들어 온다.

 

염불암과 동화사 갈림삼거리 안부를 지나 눈 앞에 펼쳐진 바위암릉을 살펴보며 조심해 넘어가니 현위치번호 072번이 보이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방금 전 우회한 등로 좌측으로 높게 보이는 바위암릉 방향으로는 굵은 로프 2개가 설치되어 출입을 금지하듯 보이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 바로 앞에 보이는 바위암릉이 바로 도상 1042미터의 염불봉이 보인다.

이곳에서 잠시 갈등을 해 보지만 아직도 날씨가 흐려 해가 보이지 않아 바위암릉에 생긴 얼음막이 녹지 않았을 것 같아 정상 바위암릉으로 이뤄진 바위암릉을 버리고 좌우측 우회 등로를 타고 안전하게 진행을 하기로 한다.

 

염불봉으로 오를 수 있는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나타나는 계단을 따라 전진하니 등로 좌측 뒤로 오늘 이 산객이 진행해 온 팔공산 주능선과 유봉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사진에 담으며 그 이름을 불러 본다.

사진 우측 제일 가장자리로 팔공산 군부대와 하늘정원이 보이고 한가운데로 통신탑들이 여러개 세워져 있는 팔공산 주봉이자 유봉지맥 분기점이 있는 비로봉이 올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 팔공산 동봉 지나 바위가 얼어 있어 우회한 1120.4 삼각점봉이 차례로 올려다 보이는데 저 동봉과 비로봉 사이로는 치산계곡에서 올라간 팔공산동봉석조약사여래입상이 서 있는 헬기장 안부도 살짝 보이고 있다.

 

날씨가 좋았으면 바위암릉으로 이어진 주능선을 따라 도상 1120.4 삼각점봉과 염불봉을 따라 진행했을텐데 바람도 강하게 불고 기온까지 낮아 바위에 얇은 얼음막이 생겨 미끄럽기에 우회하다 보니 조금의 아쉬움도 남지만 그것이 산행임을 알기에 아쉬움을 달래며 천천히 전진하니 다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야재매트가 깔려있는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나무계단도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계단과 안전목책이 설치된 야쟈매트 등로를 교대로 오르니 현위치번호 064번이 나타나고 곧이어 등로 좌측으로 2층의 팔각정이 나타나는데 지도를 보니 1042미터의 염불봉을 막 지난 지점이다.

아직도 그 팔각정 주변으로는 공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는지 공사자재들이 널려있어 사진에 담고 잠시 그 팔각정자 2층으로 올라 가 본다.

 

2층 팔각정자로 오르니 아름다운 풍경과 시원한 조망이 펼쳐져 있어 다시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잠시 더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들을 남겨 본다.

제일 먼저 방금 전 우회등로를 따라 통과한 남서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눈 앞으로 계단과 안전목책으로 이어지는 우회등로가 보이고 그 뒤 위로 거대한 바위암봉이 솟아 있는데 처음에는 저 봉우리가 1042미터의 염불봉이라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저 암봉은 무명봉으로 염불봉은 그 뒤 우측 저 멀리 바위암봉이 살짝 드러나 있는 곳으로 생각된다.

바위가 얼지 않았으면 저 바위암릉을 따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즐기며 진행을 했을텐데 동봉 정상에서 미끄러워 위험한 순간을 경험한 이후로는 아예 우회 등로를 따라 진행하다 보니 아쉬움도 남는다.

 

북서 방향으로는 무명암봉 넘어 1042미터의 염불봉으로 이어지는 바위암릉 지나 1120.4 삼각점봉이 올려다 보이고 그 우측 바로 옆으로는 우뚝 솟아 있는 팔공산 동봉 또는 미타봉이라 불리는 봉우리가 눈길을 잡고 그 우측 뒤로 통신탑이 여러개인 팔공산 정상이자 유봉지맥 분기점인 비로봉 그리고 그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는 아직도 군부대 인공구조물들이 보이고 하늘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봉우리가 아름다운 능선 등로를 만들며 길게 이어지고 있다.

북쪽으로는 치산계곡을 두고 좌측으로 오늘 새벽에 올라 온 능선 등로가 공산폭포 방향으로 이어지고 그 뒤 저 멀리 화산과 산성 능선 넘어 조림산이 보이고 그 사이 가장 먼 방향으로는 지난해 올랐던 선암산과 뱀산으로 이어지는 선암지맥 산줄기도 보인다.

화산 우측 뒤 끝자락으로는 조만간 다시 올라야 할 보현지맥의 주산인 보현산과 면봉산 라인이 하늘금에 맞닿아 있는 모습으로 아름답고 그 우측인 동쪽으로는 잠시 후 만나야 할 유봉지맥 마루금도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그 팔각정을 내려 와 다시 안전목책과 로프 등로를 따라 야자매트를 따르니 다시 계단 지나 059 현위치번호목이 서 있는 동화사 갈림삼거리 안부에 도착을 해 이정표를 사진에 담으며 확인해 보니 진행방향으로 갓바위까지 5.7 Km 거리란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동화사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 지나 이어지는 안전목책과 로프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055 현위치번호판과 054 이정목을 연속으로 통과한 후 좌측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관목의 참나무 등로에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있는 사초들이 자꾸만 눈길을 잡는다.

다시 053 이정목이 서 있는 무명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051 이정목 지나 공터에 050 이정목이 설치된 공터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8각정자를 지나면서부터 바위암릉이 사라지고 관목의 참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지는데 그동안 속도가 나자 않았던 산행에 속도가 붙어 산행 시간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

 

공터 무명봉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수도사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고 살펴보니 수도사까지 4.5 Km 거리라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눈길을 잡는다.

그 수도사 갈림삼거리 지나 몇 발자국 더 걸어 내려가니 좁은 공터에 이정표와 표지석 그리고 팔공산자연공원 안내판이 서 있는 신녕재에 도착을 하는데 현위치판에는 도마재라 표기가 되어 있다.

이곳 신령재(도마재)는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과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의 경계에 위치하는 고개로서 명칭 유래를 보면 신령봉(해발고도 996.5m)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고개라 하여 신령재라고 불리나 과거에는 도마재라는 명칭으로 불리었는데 도마재는 도마를 거꾸로 엎어 놓은 형태라 하여 그 명칭이 유래된 것이다.

신령재의 남쪽 사면은 도마재골이라는 동화천의 최상류부에 해당하는 계곡의 발원지인데 이 계곡에는 버들치와 가재 등 1급수의 맑은 물에서 서식하는 수생 생물이 발견된다.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과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의 경계를 이루는 능선에 해당하는 신령재는 대구 지역에서 신녕면 지역으로 오가는 길목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해발고도가 높은 고개이나 영천시 신녕면 일대에서 동화사로 가는 최단 경로이므로 과거 교통로로서 이용 빈도가 비교적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팔공산 종주 코스의 일부로서 현재는 등산객들이 많이 방문하고 있으며 동봉과 갓바위로 향하는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 역할을 하는 나무 푯말에는 현위치번호 048이라고 적혀 있고 누군가가 손으로 도마재라고 적어놓았다.

신령재 능선은 모래가 드러나 있고 화강암 암석도 노출되어 있으며 암석이 노출된 지점에 동화사 방향을 표시하는 표시석이 세워져 있고 능선 정상에는 수고가 높은 수목이 우거져있지 않아 비교적 산 아래쪽 조망이 좋은 편이다.

 

등로 우측으로는 동화사로 좌측으로는 공산폭포와 수도사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사거리인 신녕재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직진의 갓바위 4.6 Km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양쪽으로 목재를 쌓아 둔 등로가 이어지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좁은 공터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위험. 주의라는 경고판 위로 신령봉이라는 이정판이 걸려있는 도상 996.5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이 바로 신령봉이다.

신령봉(996.5m)은 대구광역시 동구와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사이에 위치한 산으로 팔공산(1,192.9m)에서 남동쪽으로 뻗어나온 산줄기 도중에 솟은 산이며 신령봉의 남동쪽에는 계속해서 삿갓봉(931m)과 인봉(886.9m) 등의 봉우리가 이어지면서 점차 고도가 낮아진다.

신령봉의 북서쪽은 신녕천과 남동쪽은 동화천의 유역권에 해당하고 북쪽으로 이어진 골짜기로는 팔공산 도립공원 내 천이점에 공산(치산) 폭포가 있는 신녕천이 발원하며 기반암은 팔공산의 산체를 이루는 중생대 백악기 경상누층군 불국사층군의 흑운모화강암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신령봉은 산줄기의 능선을 따라 조성된 북서에서 남동 방향의 탐방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남쪽으로는 팔공산 C.C가 들어서 있다.

이곳 신령봉에서 북동 방향으로는 유봉지맥 마루금이 이어지고 우측인 남동 방향으로는 삿갓봉과 은해봉 지나 노적봉과 관봉 지나 갓바위지구 지나 갓바위와 동화사로 진행했던 팔공산 종주능선으로 오래 전 산친구들과 걸었던 추억을 소환해 보지만 이곳 신령봉에 관한 기억은 전혀 없어 아쉽기만 하다.

 

해발고도 996.5미터의 신령봉에서 우측 아래로 이어지는 갓바위와 동화사로 이어지는 등로를 아쉬운 마음으로 살펴보고 다시 북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급격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진행 방향 좌측 앞으로 잠시 후 갈림삼거리 지나 만나야 할 소나무와 바위 무명봉이 보이고 그 우측 뒤 저 멀리 코끼리바위가 있는 990.3봉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코끼리바위봉을 제외하면 보기에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부드러운 능선 등로처럼 보이는데 실제 능선 등로는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늘은 여전히 잿빛으로 물들어 있고 두꺼운 구름을 뚫지 못해 세상에 얼굴도 내밀지 못하는 햇빛이 그리워지는 시간이지만 오늘은 햇살 한번 만나기 어려워 보인다.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는 사면등로를 따라 좌측으로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크게 휘돌아 내려가는데 방금 전 내려온 신령봉 방향을 올려다 보니 커다란 암봉이 박혀있어 곧바로 내려오지 못하고 우회하듯 내려온 등로가 보인다.

잠시 후 갈림삼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좌측으로 신령봉을 우회하며 이어지는 등로와 만나는 삼거리로서 그 안부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 올라 등로 좌측을 보니 치산계곡 아래 상주영천고속도로 상 군위군 산성면 방향의 마을과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고 지나 온 방향인 서쪽과 북서 방향으로 1034.3봉 넘어 동봉과 팔공산 비로봉 그리고 그 우측으로 안개속에 숨어 있는 군부대와 하늘정원이 있는 봉우리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생각보다 멀리 걸어 왔다는 생각이다.

 

전망바위에서 몇장의 사진을 담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바위가 보이고 그곳에서 남서 방향으로 뒤돌아 보니 소나무 뒤로 갈림삼거리 무명안부 넘어 방금 전 지나 온 신령봉이 빤히 올려다 보여 사진에 담고 다시 오르니 커다란 바위들 사이로 소나무들이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방금 전 걸어 넘어 온 남서 방향을 뒤돌아 보니 무명봉과 갈림삼거리의 무명안부 지나 좌측 뒤로 996.5미터의 신령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 우측 뒤 저 멀리 서쪽과 북서 방향으로 염불봉과 1120.4 삼각점봉 및 동봉 넘어 팔공산 비로봉과 하늘정원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신령봉에서 등로가 크게 꺽여 이어지기에 사진 한장으로 전체 그림을 담기에는 역부족이다.

 

전망바위에서 지나 온 방향을 살펴보고 다시 북서 방향으로 팔공산 정상부를 살펴보니 그곳은 이미 안개속에 묻혀 전혀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어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다시 천천히 전진하니 거대한 바위암봉이 눈 앞으로 다가오고 조심스럽게 그 바위암릉을 타고 오르니 또 다른 거대한 바위암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멀리에서 보면 이곳 암봉도 코끼리바위에 포함되는 듯 보였는데 실제 가까이 올라 와 보니 코끼리 같은 모습의 바위도 없고 전체 모습도 코끼리 모습이 아니기에 궁금했는데 아마도 거대한 바위암릉이 마치 동물 중 가장 큰 코끼리를 닮아있어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첫번째 만나는 바위암봉에 올라 살펴보니 좌측으로 이어지는 지네를 닮은 바위능선이 완만하게 내려가고 진행 방향으로는 두개의 커다란 바위암봉이 연봉처럼 이어지고 있어 더욱 더 코끼리 모습과는 관계없이 거대한 바위암봉을 가리켜 가장 큰 동물인 코끼리를 대입시켜 부르는 듯 보이는 모습이다.

첫번째 바위암봉을 지나 내려갔다 다시 오르니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지나 온 방향인 남서에서 서쪽 그리고 북서 방향을 살펴보니 무명봉과 신령봉 그리고 그 우측 뒤로 염불봉과 동봉 지나 안개속에 숨어 있는 팔공산 주봉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전망바위에서 조망을 즐기며 많은 사진을 담고 이어지는 바위암릉을 따라 걸어가니 바로 눈 앞으로 990.3 암봉이 나타나고 그곳으로 힘들게 오르니 일망무제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이 보상을 해 주듯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제일 먼저 남쪽을 보니 방금 전 지나온 996.5미터의 신령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한 삿갓봉과 갓바위지구의 관봉 지나 저 멀리 환성산이 일직선 상으로 너무 황홀한 모습으로 다가 오고 좌측으로는 무학산으로 우측으로는 문암산과 응해산 방향으로 펼쳐진 산줄기가 마치 커다란 새가 날개를 펴고 날고있는 듯한 착각속에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지나온 신령봉과 진행해야 할 984.6봉을 살펴보고 로프가 설치된 바위암벽을 내려가니 다시 눈 앞으로 거대한 바위암봉이 보이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바위 옆 좌측으로 우회 등로가 보여 조심스럽게 그 사면 등로를 타고 어려운 진행을 이어간다.

진행하다 좌측 가파른 경사지로 잠시 내려가며 알바도 경험하며 좁은 사면 등로를 타고 그 거개한 바위암봉을 통과하니 나즈막한 안부 지나 다시 눈 앞으로 거대한 바위암봉이 다시 나타나고 그곳으로 잠시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좌측으로 우회한 바위암봉 하산 등로에는 얇은 로프도 보이는데 이곳에서도 코끼리를 열심히 찾아보지만 코끼리는 보이지 않는다.

 

눈 앞으로 다가 온 또 다른 바위암봉도 타고 넘기가 어려워 보여 살펴보니 좌측으로 우회 등로가 보이고 그곳으로 조심스럽게 전진하니 우회 등로 역시 만만치 않은 바위벽 사이의 아슬아슬한 좁은 등로가 이어지고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우회하며 진행 방향과 그 좌측인 북동 방향을 살펴보니 984.6봉 좌측에서 공산폭포로 이어지는 톱날등로가 이어지고 그 뒤 저 멀리 팔공지맥의 화산과 그 좌측으로 독립된 조림산이 솟아 있으며 그 사이 더 먼 곳으로는 선암지맥의 주산인 선암산과 뱀산이 마치 하나의 평범한 능선 등로처럼 길게 펼쳐진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잠시 후 드디어 길게 이어지는 코끼리바위 지대를 무사히 통과하고 관목의 참나무 아래 빛바랜 사초들이 말라있는 평이한 능선 등로가 예쁘게 펼쳐져 잠시 편안하게 걸어가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고 좌측으로 바위 사이로 꼬부랑 소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긴 한숨을 내쉬고 산행을 이어간다.

 

꼬부랑 소나무들과 바위들이 보이는 무명봉 지나 다시 관목의 활엽수들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나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관목들이 사라지고 빛바랜 사초들이 말라있는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관목의 활엽수들과 잡목들이 나타나고 그 아래 활엽수 낙엽들이 발목까지 빠지는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우측으로 우회등로가 너무 잘 나 있고 좌측으로 잡목들이 우거진 도상 984.6봉이 보여 잡목들을 뚫고 올라가 보니 무한도전 띠지 두장만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잡목봉에 도착을 한다.

 

이제 이곳 984.6봉에서 해발고도가 떨어지기 시작하고 등로에 특별할 것도 없이 참나무와 소나무 등로가 교대로 나타나며 지루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한동안 진행을 해야 하는 구간이 시작된다.

잡목봉을 내려가니 금새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선답자의 산행띠지를 확인한 후 그 공터무명봉을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관목의 활엽수와 잡목등로가 이어지는데 등로에는 미끄러운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잠시 후 낙엽들이 순식간에 사라진 무명안부를 지나 둔덕을 넘고 다시 활엽수 낙엽들이 쌓여있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자세히 살펴보니 직진의 뚜렷한 내리막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크게 꺽어 가파르게 내려가야 할 길주의 지점이지만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로 인해 편안하게 정상 등로를 찾아 진행을 순조롭게 이어간다.

 

우측으로 잠시 걸어 내려가니 그동안 잘 보이지 않던 굵은 소나무 사이로 관목의 활엽수들과 잡목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다시 커다란 바위들이 등로 주위에 산재되어 있는 풍경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바위지대를 지나 내려가며 등로 좌측을 보니 무명 골짜기 건너 공산폭포 옆으로 흐르는 제법 옹골차게 보이는 톱날등로가 북쪽으로 길게 이어지고 그 우측 뒤 저 멀리 화산과 조림산 그리고 그 사이로 선암산이 박무속에 희미하게 펼쳐진 모습들도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한동안 더 굵은 소나무와 관목의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측의 주능선을 버리고 우측으로 우회하는 등로 방향으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여 살펴보니 좌측 무명봉을 우회하는 사면등로이다.

 

우측 우회등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굵은 소나무들이 조금 더 보이면서 잡목들이 사라져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는 멋진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굵은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소나무들이 사라지고 관목의 활엽수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곧이어 소나무 몇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지점 지나 길게 이어지는 참나무 능선 등로가 뚜렷하게 나 있다.

잠시 후 다시 굵은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기 시작하고 잠시 더 걸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멧돼지들이 땅을 파헤친 식흔들이 드넓게 분포하고 주위를 살피며 전진하니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그 나뭇가지에는 송이채취구역이니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판들이 자주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송이채취지역이니 출입금지라는 경고판들이 자주 눈에 들어 오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중간에 짧은 참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그 사이로 커다란 바위들도 혼재되어 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니 다시 굵은 적소나무들이 빼곡한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주위를 살피며 전진하니 왕사로 미끄러운 등로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 좌측 옆으로 공산폭포 방향으로 이어지는 톱날 같은 등로가 올려다 보이고 그 우측 앞 저 먼쪽으로 조림산이 확실한 모습으로 존재감을 알려오는데 그 우측으로 보여야 할 화산은 우측 유봉지맥 마루금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생각보다 넓게 이어지는 왕사등로를 지나니 굵은 소나무와 관목의 참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짧은 등로 지나 또 다른 왕사등로가 넓게 나타나고 등로 좌측 앞으로 북동쪽을 살펴보니 여전히 조림산과 화산 그리고 그 사이로 선암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있다.

등로 좌측으로는 생각보다 높고 까칠한 무명 산줄기가 길게 이어지고 사진에 담고 그 왕사 등로를 통과하니 갑자기 굵은 소나무 등로 우측으로 신상처럼 보이는 파란 그물망이 길게 설치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사이 굵은 소나무 가지에는 출입금지 경고판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굵은 소나무 등로 우측으로 신상의 파란 그물망이 설치된 풍경을 살펴보며 한동안 걸어 진행하니 등로가 동쪽으로 틀더니 금새 다시 북동 방향으로 이어지고 곧이어 신상의 그물망이 낡은 그물망 등로로 바뀌고 있다.

잠시 후 그물망 등로가 끝이나고 등로 좌측 앞으로 조림산이 뚜렷하게 보이고 진행 방향으로는 이제부터 걸어 올라 만나야 할 561.4봉이 부드러운 모습으로 부르듯 반겨준다.

그 561.4봉 우측으로는 낮아지는 유봉지맥 산줄기 넘어 저 멀리 신녕면 마을과 들판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저 561.4봉을 넘으면 등로 좌측으로 자주 내려다 보게 될 듯 싶다.

 

잠시 후 너럭바위 위에 설치된 로프를 타고 내려가니 다시 빼곡한 소나무 등로가 평이하게 펼쳐지는데 갑자기 산불조심이란 영천시에서 걸어 둔 플랭카드 옆으로 진행해야 할 방향으로 신원리캠핑장과 좌측으로 부귀사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다.

부귀사는 경상북도 영천시 신령면 팔공산 자락에 위치하며 신라 진평왕 13년에 창건한 고찰로서 불기 1135년(서기 591년, 신라진평왕 13년)에 혜림법사가 거조암과 동시에 창건한 1400년의 역사를 가진 고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며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 절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도중에 폐사되지 않고 명맥을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

1873년(고종 10)에 담운(曇雲)이 중창한 바 있으며 1882년에 현재의 자리로 이건하였는데 건물로는 극락전, 보화루, 신검당, 산신각과 요사채 등 7채가있으며 2000년에 아미타도량을 세우기 위하여 중창불사 발원기도를 올린 뒤 불사를시작하였다.

첫번째 부귀사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뚜렷한 우측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잡목 등로로 오르니 금곡님이 산행 띠지에 561.4봉이란 고도 표시만 있을 뿐 다른 산행 띠지나 이정판 하나 보이지 않는 561.4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내려온다.

 

그 561.4봉을 내려 와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소나무가 빼곡한 등로로 바뀌고 다시 참나무가 많아지며 등로에는 미끄러운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어 진행에 주의가 필요한 구간도 통과한다.

다시 활엽수 낙엽이 사라진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라 편안하게 진행하다 보니 내려오기 전 등로로 걱정하던 마음은 모두 사라지고 이제 조금은 마음의 평온을 되찾으며 바위암릉도 보이지 않아 속도를 내보는 시간이다.

잠시 후 푸른빛이 남아 있는 잡풀등로를 따라 굵은 소나무들을 확인하며 전진하니 다시 플랭카드가 걸려있고 이제 신원리 캠핑장까지 3.7 Km 남아 있다는 부귀사 갈림삼거리를 다시 통과한다.

 

두번째 부귀사 갈림삼거리 이정표와 플랭카드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참나무 아래 활엽수 낙엽들이 수북히 쌓여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이제 등로는 북동에서 남동 방향으로 크게 바꿔 이어지고 있다.

갑자기 참나무와 잡목들이 사라지고 굵은 소나무 아래 잡풀까지 사라진 뚜렷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멋진 소나무 능선 등로가 길게 이어져 무심으로 걸어 보는 시간이다.

잠시 후 좌측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무명봉이 보이는데 등로는 그 무명봉으로 오르지 않고 우측 사면등로로 이어지고 그 무명봉을 완전히 통과하니 굵은 소나무 등로 가운데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사진에 담아 본다.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지점을 통과하니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신녕면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데 흐린 날씨와 나뭇가지들로 인해 선명하지는 못하다.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계속 이어지는 굵은 소나무 사이로 잡목들이 보이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다시 신원리캠핑장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지점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으로 봉우리가 올려다 보이는데 우측으로 우회 등로가 너무나 선명하게 나 있어 고민하다 좌측 봉우리로 오르니 굵은 소나무가 정상을 지키고 있고 선답자의 빛바랜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351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무명봉 지나 우측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방금 전 헤어진 뚜렷한 우회등로와 다시 만나고 그 등로를 타고 좌측으로 조금 걸어가니 신원리캠핑장까지 2.44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와 국가지점번호판을 지나 다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지점도 통과를 하는데 그 앞 전방으로는 다시 신원리캠핑장까지 2.39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신원리캠핑장은 등로 좌측의 신원리에 있는 신원휴양림 내 캠핑장으로서 신원리는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에 있는 리이고 팔공산 끝자락에 자리한 산촌마을로 동쪽 방향으로 작은 하천이 흐르며 고개와 골짜기가 발달한 곳이다.

내신동, 외신동, 신기동, 유룡동을 병합하면서 신원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호암동, 광대정, 새터, 술래바탕마을 등이 있다.

호암동마을은 범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광대정마을은 호암동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귀빈들이 오면 광대들이 그들을 환영하기 위해 막을 짓고 기다린 곳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새터마을은 신원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임진왜란 때 폐촌되었다가 다시 이룩된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고 술래바탕마을은 새터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나무꾼들이 이곳에서 술래잡기를 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등로 좌측으로 신원리캠핑장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굵은 소나무 사이로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평이한 등로가 보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굵은 소나무에 준희님이 걸어 둔 이정판과 그 아래 화북457이란 삼각점이 박혀있는 416.3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긴다.

사진을 담고 출발하니 바로 눈 앞으로 제법 높은 철망이 가로막아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이리저리 살펴보니 한쪽이 낮아진 철망이 보이고 그곳을 통해 어렵게 철망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임도 우측에 철망을 두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비포장임도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고 살펴보니 우측으로 문이 열려있는 철문이 보이는데 어느 선답자들은 이 철문을 통해 내부로 들어 와 진행을 한 후기를 읽었는데 이곳까지 철망 밖을 통해 진행하는 등로가 편안하지 않아 이 산객은 416.3 삼각점봉에서 철망을 통과해 진행하고 있다.

갈림사거리를 지나 우측에 철망을 두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좌측 굵은 소나무가 보이는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도상 336.5봉에 도착을 하는데 아무 표식도 없는 넓은 공터봉으로서 소나무 가지에는 빛바랜 선답자의 산행 띠지 한장이 걸려있는 것이 전부이다.

 

그 공터봉으로 이뤄진 336.5봉에서 등로는 다시 방향을 바꿔 동쪽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데 이제 우측으로 흐르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버리고 직진의 능선으로 들어가니 굵은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아래 간벌된 나무토막들이 널부러져 있는 난해한 등로로 이어지고 있어 많은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

잠시 더 힘든 가시잡목과 널부러진 간벌목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거어 내려가니 다시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잠시 후 우측으로 비포장임도로 내려서는데 임도 우측으로는 철망이 따라 오는 방금 전 헤어진 그 비포장임도이다.

그 비포장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공사중인 비포장임도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마침 공사가 중단되어 농장 주인을 만나지 않아 편안하게 그 비포장임도를 지나 다시 소나무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갈림사거리에서 우측으로 철망과 함께 내려가는 비포장임도를 버리고 직진의 소나무 능선 방향으로 오르니 다시 넓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잠시 더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비포장임도를 버리고 직진의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가 사라진 능선으로 어렵게 내려간다.

내려갈수록 가시잡목들이 더욱 우거져 있고 널부러져 있는 간벌목들로 인해 한발 걷기도 힘들어 조심하며 천천히 전진하니 갑자기 신설된 듯한 넓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그 도로 위에는 유기농비료가 놓여있다.

그 비포장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걸어 오르니 쓰러진 철문이 나타나고 이제 그 철문을 통과하며 한동안 타고 진행을 한 농장을 벗어나 산행을 이어가게 된다.

 

쓰러진 철문을 지나니 갈림사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고 좌측 방향으로 잠시 오르니 무명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뒤로 등로가 이어지는데 올라가려고 살펴보니 나무들과 잡목들이 우거져 진행이 불가능해 보여 우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묘지를 타고 오르며 진행하기로 한다.

잠시 더 그 묘지지대를 따라 걸어 오르며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농장 내 무명봉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청통면 신원리와 계지리 마을과 들판이 길게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영천이공 부부묘지와 무명묘지들을 지나 그 끝까지 오른 후 묘지 좌측 뒤 잡목 등로로 오르니 관목의 소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서 등로는 다시 북쪽에서 남동 방향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며 진행을 해야 할 길주의 지점이다.

 

관목의 소나무들이 보이는 무명봉에서 남동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물이 말라있는 멧돼지 목욕탕이 나타나고 곧이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뚜렷한 등로가 나타난다.

가지가 많은 소나무 등로를 따라 계속 직진으로 내려가니 또 다른 멧돼지 목욕탕이 나타나고 그 목욕탕을 지나니 또 다른 관목의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그 소나무 등로를 지나니 묵은 비포장임도를 건너 또 다른 잣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빛바랜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주위는 온통 관목의 잣나무 군락지이다.

 

무명봉 지나 계속 이어지는 남동 방향으로 걸어가니 인동장공 묘지를 지나 동쪽으로 바뀌고 다시 굵은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평이한 등로로 이어지는데 그 옆으로 잡목이 우거진 무명묘지 한기도 보인다.

다시 나타나는 영천이공 묘지를 지나 등로는 동쪽에서 남동으로 바뀌고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내려가니 다시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남쪽에서 동쪽으로 휘돌아 진행되는 등로가 난해하게 이어지고 있다.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 지나 조금 더 잡목 등로를 따르니 노간주나무가 보이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한다.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굵은 소나무 아래 약간의 자복들이 보이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갑자기 묘지2기가 눈 앞에 펼쳐지고 그 묘지를 지나 오르니 또 다른 묘지2기가 나타난다.

그 묘지를 지나 정상으로 오르니 아무 표식도 없는 도상 226.8봉인데 이정판은 물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한장 보이지 않아 조금은 서운함이 드는 지점이다.

그 226.8봉에서 등로는 다시 우측인 남동 방향으로 휘어져 완만하게 내려가며 진행된다.

 

묘지봉인 226.8봉을 지나 우측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니 아직 낙엽들이 떨어지지 않은 관목의 참나무 등로가 드넓게 펼쳐지고 편안하게 전진하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갈림삼거리에서 좌측 등로를 따라 주의하며 진행한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이제 굵은 아카시아나무 등로로 바뀌고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무명봉 지나 다시 내려가니 교인 묘지2기가 나타나고 다시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이어지는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버리고 직진의 능선으로 진입하니 활엽수 낙엽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다시 경주이공 부부묘지를 지나니 등로는 남동 방향에서 남쪽으로 꺽여 진행되고 다시 동쪽 방향으로 크게 휘돌아 걸어가니 또 다른 묘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묘지들을 지나자마자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고 조양향단이란 공장 건물이 보이는 구디터 일명 신원고개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기며 주위를 둘러본다.

구디터고개(신원고개)는 경북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와 신녕면 완전리 및 매양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서 신원리의 이름을 따 신원고개 또는 완전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인 구디터의 이름을 따 구디터고개라고도 한다.

구디터(군인터 또는 구돋터)는 조선초기 군인들이 있었다 하여 군인터라 전하기도 하며 또는 9마리의 돼지가 죽을 먹는 형상이기에 구돈(九豚)터라고 한 마을이다.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 로 걸어 내려가니 우측으로 조양향단이라는 공장 건물 지나 우측의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조양향단이란 공장건물과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구디티(터) 또는 신원고개에서 공장 건물을 지나 다시 나타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좌측 능선 위로 오르니 밀양박공 부부묘지 지나 관목의 소나무와 잡목들이 보이는 능선으로 이어지고 곧이어 물이 말라있는 멧돼지 목욕탕도 통과한다.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무명묘지봉에 도착을 하고 우측인 남쪽으로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고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있는 199.6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삼각점봉을 지나 멧돼지들이 몸을 문질러 죽어가는 소나무 흔적이 있는 등로를 따르니 관목의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어수선한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특징없는 무명봉 넘어 다시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간벌된 나무토막들이 널부러져 있는 등로 지나 최근에 설치된 듯한 신상의 철망이 앞을 가로막는다.

이리저리 아무리 찾아봐도 철망을 통과할 방법이 보이지 않아 난감해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등로 우측 옆으로 철망 위에 나무토막이 걸쳐있어 조심스럽게 그 나무토막을 타고 어렵게 철망을 통과한다.

 

다시 널부러져 있는 나무토막 등로를 지나니 뚜렷한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둔덕봉 넘어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무명묘지 지나 또 다시 철망이 앞을 가로막는데 이곳 역시 통과할 방법이 없는 듯 보인다.

철망 바로 건너편으로는 몇기의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들이 보여 이리저리 살펴보니 철망이 연결된 부분에 묶여있는 철사를 열어보니 통과가 가능해져 어렵게 그 철방을 통과하고 다시 철사로 철봉을 묶어 놓고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어렵게 철망을 통과한 후 넓게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진행 방향 앞으로 신원리마을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니 우측의 신원리 호암동마을과 광대정 마을이 가깝게 보이고 그곳으로 가는 임도 옆으로는 탱자나무 울타리도 보이는 갈림삼거리 안부도 통과한다.

호암동과 광대정마을은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에 있는 자연마을들로서 팔공산 끝자락에 자리한 산촌마을이고 동쪽 방향으로 작은 하천이 흐르며 고개와 골짜기가 발달한 곳이다.

내신동, 외신동, 신기동, 유룡동을 병합하면서 신원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호암동, 광대정, 새터, 술래바탕마을 등이 있는데 우측으로 보이는 호암동마을은 범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광대정마을은 호암동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귀빈들이 오면 광대들이 그들을 환영하기 위해 막을 짓고 기다린 곳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신원리 호암동과 광대정 마을 갈림삼거리 안부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신원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잠시 후 굵은 참나무가 보이는 무명봉 넘어 다시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보이고 잠시 후 우측으로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지만 좌측으로 봉우리가 올려다 보여 잡목들을 헤치고 오르니 아무 표식도 없이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몇장들만 나부끼고 있는 183.3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봉우리 지나 우측으로 크게 휘어져 소나무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방금 전 헤어진 우회등로를 만나 좌측으로 진행되고 곧이어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곳에서 직진의 등로를 따라야 하는데 좌측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를 따라 잠시 알바 후 다시 정상 등로로 복귀한다.

약간의 잡목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눈 앞에 거대한 축사건물이 나타나고 우측으로 돌아 전진하니 폐허된 민가 앞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919번 금송로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넓문이고개에 도착을 한다.

넓문이고개(919번 금송로 4차선 포장도로)는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계지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인 넓문이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넓문이마을은 계지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신령군이 있을 때 이곳이 하양현으로 통한 큰 길이어서 크고 넓은 관문을 달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넓문이고개에도 역시나 중앙분리대가 설치되어 있어 중앙분리대가 없는 우측 앞으로 통과하기로 하고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작은 넓문이못이 보이고 곧이어 좌측으로 중앙분리대가 사라진 곳에 도착을 해 4차선 금송로를 통과한다.

 

도로를 통과하니 도로 우측으로 (주)훈성 건물이 보이고 그 건물을 통과하니 금강조각원이 나타나는데 비석과 표지석들을 제작하는 석물공장으로 강아지가 이방인의 출현에 울부짖으니 주인장이 나오면서 등로가 없으니 돌아가야 한다고 알려주지만 일단 올라 가 본다고 인사 드리고 그 석물공장 건물 지나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뚜렷한 등로가 좌측에서 올라오고 있다.

그 등로를 따라 전진해 경주이공 묘지와 진주강씨 및 많은 묘지지대를 통과해 오르다 그 묘지 정상부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서쪽 저 멀리 군부대와 하늘정원이 있는 팔공산 정상부가 보이고 그 바로 좌측으로 비로봉은 앞 봉우리에 막혀 높은 통신탑들만 보인다.

그곳에서 이곳 넓문이고개 방향으로 이어져 온 유봉지맥 마루금 전구간이 급격하게 산세를 낮춰 비산비야로 이어져 온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고 진행을 이어간다.

 

묘지 ㄲㅌ자락에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팔공산 비로봉에서 넓문이고개로 이어지는 유봉지맥 마루금을 확인하고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는 다시 참나무 아래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등로로 변하고 있다.

한동안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 등로를 교대로 갈아타며 전진하니 드디어 하늘색 띠지가 걸려있는 192.8봉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가까이 있는 도상 192.8봉을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올라가 보니 역시나 금곡님이 산행 띠지에 고도 표시를 해 놔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뒤돌아 나온다.

 

갈림삼거리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좌측으로 보이는 무명봉은 우측 사면 등로로 우회하는데 잡풀들이 무성한 무명묘지도 통과한다.

등로 좌측으로는 나뭇가지 사이로 신녕천이 가깝게 내려다 보이고 그 넘어 신덕리마을과 들판이 드넓게 펼쳐져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잠시 더 뚜렷한 능선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오르니 통나무 벤취들이 설치되어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우측으로 크게 휘어져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평이한 능선 등로를 타고 좌측으로 보이는 신녕천과 신덕리 들판을 살펴보며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는 특이할 것 없는 굵은 참나무와 소나무들 그리고 잡목들이 어우러져 있는 뚜렷한 등로가 길게 이어진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묵은 밭경작지 같은 잡풀 공터가 나타나고 우측 아래로는 거대한 우림농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인다.

잠시 후 나타나는 묘지지대를 지나 좌측으로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내려가니 또 다른 망지1길이란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는데 후곡고개라 불려지는 안부이다.

후곡고개는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계지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인 후곡(뒷골 또는 성리)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후곡(뒷골 또는 성리)마을은 망지리 뒤쪽에 있다 해서 붙인 이름이며 모두 예부터 인류가 정착했던 곳이다.

 

우림농장에서 키우는 개 몇마리가 이방인의 출현에 울부짖고 있어 시멘트 포장도로인 후곡고개를 건너 재빨리 능선으로 오르니 아카시아 관목 사이로 우거진 잡목들이 앞을 가로막으며 조금은 난해한 등로가 나타난다.

어렵게 그 가시잡목 구간을 통과해 오르니 교인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지대 지나 둔덕봉을 넘으니 간벌된 굵은 소나무들 사이로 멋진 전원주택 같은 민가들이 보이는 마을길로 이어지고 있다.

커다란 물통 지나 민가들이 근접한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서니 이곳 역시 망지1길로서 좌측으로는 잘 지어진 민가들이 나타나고 우측 망지1길을 타고 내려가니 갈림삼거리에서 좌측인 하나전원길을 따라 마을 가운데를 통과하는데 계지리 후곡마을이다.

계지리는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에 자리한 곳으로 경지가 넓게 분포하여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고 상계동과 지동을 병합하면서 두 마을의 이름을 따 계지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널문이, 망지동, 계림, 평지마마을 등이 있는데 널문이마을은 계지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신령군이 있을 때 이곳이 하양현으로 통한 큰 길이어서 크고 넓은 관문을 달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망지동마을은 계지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고 계림마을은 망지동 서쪽에 있는 마을로 앞 냇가에 숲이 많았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평지마마을은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하나전원길이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계지리 후곡마을을 통과하는데 민가들이 모두 넓은 정원과 공터들을 가지고 있는 옛날 전원주택처럼 보이는 집들이 대부분으로서 초반에 전원주택단지로 개발 된 듯 보인다.

하나전원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소나무 등로를 타고 우측으로 내려가니 다시 비포장임도와 만나 우측으로 오르니 작은 개울이 끝나는 지점 좌측의 능선을 통해 산행을 이어간다.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등로가 사라지고 우거진 잡목이 보이는 급경사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는데 오늘 산행 중 가장 힘들게 오르는 시간이다.

이리저리 잡목이 조금 덜한 공간을 찾아 힘들게 오르니 드디어 관목의 소나무들 사이로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봉화산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이정판 하나 없이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몇개가 반겨주는데 금곡님이 띠지에 163.7미터의 봉화산 정상임을 알리는 표시를 해 둬 감사한 마음으로 목례를 한다.

봉화산(163.7m)은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봉우리 이름 중 하나로서 통신시설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 신호를 전달하기 위한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던 봉우리를 지칭하는데 연기나 불로 신호를 전달하다 보니 정상은 조망이 좋은 곳이 대부분이지만 이곳 계지리의 봉화산에 관한 자료는 찾을 수 없다.

다만 청통면 계지리의 망지리(望芝里)마을에 그 이름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망지리는 약 500년전에 이현중이라는 선비가 이 마을을 개척했다 하며 그후 이현필이라는 선비가 봉화산(峰火山)을 바라본다는 뜻에서 망지리라 했다고 전해진다.

잡목들이 우거져 있고 관목들이 빼곡해 풍경이나 조망은 전혀 없기에 아쉬움을 남기고 사진 몇장 찍은 후 곧바로 출발한다.

 

나무들과 잡목들이 우거져 풍경이나 조망이 전혀 없는 봉화산 정상을 출발하니 잡풀들이 우거진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 지나 능선으로 내려가니 청주한공 부부묘지가 보인다.

묘지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파란 그물망이 나타나고 그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니 중장비들이 보이는 공장 건물 옆을 지나 밭경작지를 통과하니 용내길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성동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처음 산행을 시작할 때 날머리를 이곳으로 해야 하는지 고민을 했던 고갯마루에 도착을 하는 시간이 오후 16시 13분으로서 월부령까지 진행하면 어둠이 시작되는 적당한 시간에 마무리가 될 것 같아 기분 좋게 살펴보는 시간이다.

이곳 성동고개는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계지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인 성동마을에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지금은 성동이란 마을조차 사라진 듯 보인다.

 

용내길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성동고개를 건너 능선을 살펴보니 잡목들이 우거져 도저히 직접 오를 수 없을 듯 보여 살펴보니 도로 좌측 아래 저 멀리 우측으로 시멘트 다리가 보이고 그곳으로 오르면 될 듯 싶다.

그곳으로 도로 따라 내려가며 도로 좌측인 북쪽과 북서방향을 살펴보니 방금 전 지나 온 봉화산에서 건설 중장비가 보였던 공장 건물 지나 밭경작지와 성동고개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성동고개에서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 오르니 넓은 공터와 밤나무 단지들이 길게 이어지고 그 끝자락으로 올라 우측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능선으로 오르니 잡목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열리고 곧이어 벽진이씨 평장을 지나 넓은 비포장임도가 길게 이어진다.

걱정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등로는 너무 잘 나 있어 걱정 없이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잠시 후 좌측에서 올라오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삼거리를 만나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의 직진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이곳 역시 아직도 영천시 청통면 계지리 마을 뒤 시멘트 포장도로 등로로서 그 포장도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견고한 철조망이 보이는데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듯 녹이 쓸어있고 여름철 우거졌던 잡풀들이 자란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렇게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에 철망을 두고 걸어 오르니 콘크리트 교각 3개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예전에 군부대였다가 이제는 이전을 해 폐허가 된 듯 허물어져 가는 콘크리트 건물들도 보인다.

용내길이란 도로표지판이 달려있는 교각3개 앞에서 등로는 우측 아래 급경사 내리막 등로로 내려가고 나즈막한 무명안부 지나 다시 이어지는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정상으로 오르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 한장 달랑 걸려있는 도상 165.5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이정판이나 고도 표시 한장 없는 165.5봉 지나 출발하자마자 무명묘지 몇기가 나타나고 다시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난해한 등로를 뚫고 전진하니 붉은 띠지가 걸려있는 214.2 삼각점봉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고민도 필요 없이 잠시 좌측의 214.2 삼각점봉을 다녀오기로 하고 출발한다.

평이하게 진행하다 막바지에 가파르게 오르니 넓은 공터 한쪽에 214.2 삼각점봉임을 알리는 이정판과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고 사진과 추억을 남긴 후 활엽수를 헤쳐 삼각점을 찾아 보지만 소실되었는지 보이지 않아 찾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내려간다.

 

삼각점을 찾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갈림삼거리로 복귀해 남서 방향으로 말라있는 잡풀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뚜렷하게 이어지고 있다.

별 특징없는 뚜렷한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밤나무 단지가 짧게 나타나고 다시 굵은 소나무 등로를 따라 전진하니 무명묘지 지나 등로가 훤히 드러난 활엽수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그 지점을 통과하니 쓰러진 고사목들이 등로에 널부러져 있어 조심스럽게 진행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더 평이하게 걸어가니 갑자기 하늘색 띠지가 걸려있는 174.8미터의 대왕산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잠시 다녀와야 하는지 고민해 보지만 의심할 것 없이 배낭 벗어 놓고 재빨리 남동 방향으로 보이는 대왕산으로 향한다.

 

갈림삼거리 옆에 배낭을 벗어 놓고 평이한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활엽수 낙엽이 발목까지 빠지는데 낙엽 아래로는 자갈들이 깔려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한동안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무명안부 지나 다시 내려 온 만큼 완만하게 걸어 오르고 드디어 도상 174.8미터의 대왕산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독도님과 금곡님의 산행 띠지 2장이 걸려있고 금곡님 띠지에 이곳이 174.8미터의 대왕산임을 알리는 글자를 적어 놨다.

이곳 174.8미터의 대왕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어느곳에서도 보이지 않아 다른 대왕산을 확인해 보니 큰산이라 대왕산이라 불려졌다는데 이곳도 그런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사진에 담고 주위를 살펴보니 정상 역시 나무들이 빼곡해 풍경이나 조망이 전혀 없어 아쉬움만 남기고 걸어 온 활엽수 등로를 타고 곧바로 갈림삼거리를 향해 출발한다.

 

대왕산을 다녀 와 벗어 놓은 배낭을 찾아 좌측인 서쪽으로 출발하니 이곳 역시 굵은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는데 다만 등로 중간에 잡목들이 몸을 잡고 늘어져 주의가 필요한 지점들이 나타난다.

조금은 난해한 등로를 지나니 다시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니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휘어지며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이제 어둠이 시작되려는지 사진이 많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잠시 더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몇기의 묘지가 일렬로 쭉 설치되어 있는 등로도 만난다.

 

그 묘지지대를 통과한 후 나타나는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묘지들이 보이고 곧이어 고사목들과 관목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등로를 만나 어렵게 빠져 나가니 무명묘지 지나 등로는 다시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내리막 등로에 활엽수 낙엽들이 수북히 쌓여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잠시 더 완만히 걸어 내려가니 뚜렷하던 등로가 희미해지고 다시 뚜렷해지기를 반복하고 곧이어 등로 좌측으로 CS영천1공장이란 커다란 공장이 올려다 보이는 무명안부를 통과하는데 조금 더 어둠이 짙어지는지 사진 한장 담는데도 시간이 걸리는 순간이다.

 

무명안부 지나 굵은 소나무들과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사라진 등로를 찾아 어렵게 오르니 금새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는 도상 166.1미터의 또 다른 대왕산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씩 남겨 본다.

대왕산(166.1m)에 관한 자료는 보이지 않는데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보성리에 그 이름이 보이며 내용을 보니 보성리는 봉화산과 삼모산 아래의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경지가 넓게 분포하는 농촌마을이고 대왕산(大王山)의 동남쪽으로는 구릉 야산이 형성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흐르는 물이 거적제(巨積堤)에서 발한 소하천과 합류되어 목성 앞을 흐르고 마을 주위는 구릉 야산과 밭이 많다는 내용이다.

서서히 어둠이 밀려오는 시간이지만 이제 월부령까지 남아 있는 거리가 멀지 않기에 어둡기 전 도착이 가능하리란 희망으로 또 다른 대왕산을 출발한다.

 

대왕산을 출발하니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다시 잡목들이 길을 막고 있는 활엽수 낙엽이 쌓여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물이 얼어 있는 멧돼지 목욕탕을 지나고 좌우측으로 등로가 보이는 무명안부를 통과한 후 사라진 등로를 찾아 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관목의 참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다시 나타나는 굵은 참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지점을 지나 무명묘지도 통과하니 드디어 909번 청통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고 도로 옆으로 월부령이라는 도로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월부령에 도착을 해 배낭을 정리한다.

월부령(月負嶺, 909번 청통로 2차선 포장도로)은 좌측의 경북 영천시 청통면 보성리와 우측의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학리를 이어주는 고개인데 이 월부령에 관한 자료는 찾을 수 없다.

유제이테크라는 공장 건너편에 주차해 둔 애마로 이동해 배낭 정리하고 영천시내의 모텔을 예약한 후 출발하려니 완전한 어둠이 내리며 가장 적당한 시간에 하산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다.

 

연말연시를 포함해 2주동안 몸만 불리고 다시 내려 와 긴 산행을 진행하면서 걱정을 했지만 ㅇ상보다 좋은 날씨와 등로로 인해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계획된 월부령까지 도착을 해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정리한다.

영천시내로 이동해 작은 방을 저렴한 가격에 예약하고 모텔근처의 국밥집에서 만찬을 즐긴 후 다시 모텔로 복귀해 잔무를 처리하고 곧바로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밤 10시가 되기 전 시간이다.

오늘 30여 Km를 걸어 월부령까지 내려왔기에 내일은 조금 이른 시간에 신녕천 합수점에서 유봉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귀가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또 하루를 보낸다.

내일의 날머리는 영천시내이기에 카카오택시를 이용할 수 있어 조금은 느긋하게 일어나 확실한 아침식사를 하고 여유롭게 진행하기로 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