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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경수지맥(영산.완)

경수지맥 마지막 제2구간 희어재에서 주진천 합수점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21.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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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북도 고창군의 경수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1년 12월 23일 (목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맑았으나 가끔 구름이 있었으며 박무로 시야가 제한되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4도에서 영상 10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희어재(733번 희어재로 2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은진송공 묘지들-잡목등로-함양오공 묘지-바위암릉-252.7봉(이정판, 띠지들)-일출-비학산 갈림삼거리-무명봉(띠지들)-기암-암봉 이정목(선운 04-08, 쥐바위 0.65 Km, 희어재 0.65 Km)-로프 암릉-갈림삼거리 이정표(청룡산 1.07 Km와 낙조대 2.5 Km, 사자바위 1.09 Km와 투구바위 3.29 Km, 희어재 1.19 Km)-국기봉(335.5봉, 이정판) 이정목(04-07)과 이정표(청룡산 1.3 Km, 사자바위 1.0 Km, 희어재 1.3 Km)-도솔암갈림삼거리 안부 선운산도립공원등산로안내도(현위치 4-6~7)와 이정표(청룡산 1.17 Km, 사자바위 1.12 Km, 도솔암 1.7 Km)-돌탑들-쥐바위 암봉-로프등로-선운산도립공원등산로안내도(현위치 4-6)와 이정목(04-06) 및 쥐바위 이정표(청룡산 1.0 Km, 사자바위 1.3 Km와 희어재 1.6 Km)-잡풀등로-이정목(04-05, 청룡산 0.5 Km, 쥐바위 0.5 Km)-미확인 굴-도상 국기봉(273.4봉, 산행 띠지들)-갈림사거리 이정표(청룡산 0.2 Km, 쥐바위 0.8 Km, 도솔암 1.2 Km, 수락마을 0.8 Km)-우회등로 갈림삼거리-전망바위-청룡산(315봉, 정상판, 고창408 삼각점) 이정목(04-04)과 이정표(배맨바위 0.5 Km, 쥐바위 1.0 Km, 해리하련 1.50 Km)-이정목(04-03, 배맨바위 0.4 Km, 청룡산 0.25 Km)-배맨바위 이정목(04-02)과 이정표(낙조대 1.4 Km, 청룡산 0.5 Km)-공터 무명봉-무명안부-공터 자갈무명봉-이정목(04-01)과 이정표(도솔암 1.54 Km, 배맨바위 1.1 Km)-철계단-낙조대 사각탁자와 선운산도립공원등산로안내도(현위치 1-3) 및 낙조대 이정표(천마봉 200 m, 용문굴 0.57 Km, 배맨바위 1.4 Km)-천마봉(284봉, 정상석, 이정판) 선운산도립공원등산로안내도(현위치 1-4)와 사각탁자2-낙조대 복귀-나무계단-통나무 쉼터-용문굴 갈림삼거리 문화생태탐방로와 이정목(01-02) 및 이정표(소리재 0.6 Km, 낙조대 0.47 Km, 용문굴 0.1 Km와 도솔쉼터 2.92 Km)-나무계단-전망바위-천상봉(260봉 띠지들)-서해랑길 갈림삼거리 이정표(소리재 0.14 Km, 낙조대 0.85 Km와 도솔암 1.02 Km 및 용문굴 0.54 Km)-소리재 이정목(03-01)과 이정표(견치산 1.25 Km, 용문굴 0.70 Km와 낙조대 1.0 Km, 해리면 2.0 Km, 참당암 1.0 Km)-산죽터널-사각탁자와 선운산도립공원등산로안내도(현위치 3-2) 및 이정목(03-02) 이정표(견치산입구 0.24 Km, 소리재 0.51 Km)-사각탁자-바위 무명봉-견치산입구 갈림삼거리(사각탁자, 03-03 이정목, 현위치 3-3 선운산도립공원등산로안내도) 이정표(견치산 0.5 Km, 수리봉 2.03 Km와 참당암 2.9 Km, 소리재 0.75 Km와 용문골 1.35 Km)-산죽등로-무명안부-무명봉 산행띠지들-견치산 국사봉(322.4봉, 암봉)-견치산입구 갈림삼거리 복귀-개이빨산(346.6봉, 고창408 삼각점, 돌탑)-길주의 이정목과 이정표(수리봉 1.9 Km, 견치산 0.62 Km와 소리재 0.87 Km 및 도솔암 2.32 Km)-산죽등로-참나무 내리막등로-식흔등로-연천마을 갈림삼거리 이정목(03-06)과 이정표(선운산 수리봉 0.7 Km, 견치산 1.7 Km와 용문굴 2.61 Km, 연천마을 0.6 Km)-노거수 무명봉-선운산도립공원등산로안내도-바위암릉-참당암 갈림삼거리 이정목(03-07)과 이정표(수리봉 0.17 Km, 견치산 2.36 Km, 참당암 1.06 Km)-이정목(현위치 03-08) 전망바위-선운산 수리봉(334.7봉, 정상석과 이정판)-선운산도립공원등산로안내도(현위치 3-9)와 사각탁자 및 이정목(03-09) 수리봉 이정표(마이재 0.70 Km, 참당암 1.35 Km와 견치산 2.53 Km)-참나무 등로-이정목(03-10)-무명묘지-마이재 선운산도립공원등산로안내도와 이정목(03-11) 및 이정표(경수봉 2.2 Km, 수리봉 0.7 Km, 석상암 0.7 Km)-이정목(03-12)-335.7봉(띠지들)-로프암릉-무명안부-우체국수련원 갈림삼거리 이정목(03-13)과 선운산도립공원등산로안내도 및 이정표(경수봉 1.01 Km, 마이재 1.21 Km, 우체국수련원 1.50 Km)-잡목무명안부-이정목(03-14)-노거수 무명봉-바위 무명봉-이정목(03-15)-산죽등로-바위암릉-통나무 계단-철계단-경수봉 정상석(439봉, 선운산도립공원등산로안내도 03-16, 이정목 03-16)-바위암릉-경수산(445.3봉, 이정판, 부안308 삼각점) 이정표(하전갯벌체험마을 3.3 Km, 경수봉 0.2 Km)-기암등로-390.3봉(이정판) 돌탑-산죽등로-묵묘-바위 무명봉(가시잡목과 고사목)-노거수 무명봉-공터 무명봉-길주의(띠지들 좌측으로)-잡목등로-터널공사장 절개지 상단-시멘트 계단-고막재(22번 선운대로 2차선 포장도로)-잡목능선진입-드릅나무등로-묘지들-비포장임도-지독한 가시잡목등로-용기3길 비포장임도-갈림삼거리-주진천과 서해바다 합수점-지맥산행 종료-갈림삼거리 복귀-용기3길 비포장임도-갈림삼거리 이정표(미당시문학관 3.48 Km, 갯벌체험마을 3.81 Km)-나무데크와 팔각정 및 국가생태문화탐방로 안내도-좌치나루터-고막재-산행종료

산행거리 : 18.22 Km (희어재에서 주진천 합수점 지나 고막재까지)

             지맥산행 : 16.25 Km (희어재에서 주진천이 서해바다와 만나는 합수점까지)

             접속구간 : 01.97 Km (주진천과 서해바다가 만나는 합수점에서 고막재까지)

산행트랙 :

20211223 경수지맥 제2구간 희어재-주진천 합수점.gpx
0.20MB

산행시간 : 07시간 55분 (07시 06분부터 15시 01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5시 35분 히든모텔에서 기상 후 샤워하고 출발

                            05시 50분 산행 날머리인 고막재를 향해 히든모텔에서 출발

                            06시 40분 예약한 심원개인택시 기사와 통화 후 도착하자마자 희어재로 출발 (063-563-5445, 23,000.-)

                            07시 06분 산행 들머리인 희어재에 도착해 산행 준비 후 곧바로 출발     

                    올때 - 15시 01분 주진천과 서해바다가 만나는 좌치나루터에서 경수지맥 산행 종료 후 고막재로 복귀해 산행종료

                            19시 00분 막히는 도로타고 힘들게 귀가

경수지맥이란 ???

경수지맥은 영산기맥의 구황산 서봉(445봉)에서 남서쪽으로 250미터쯤 내려선 표고 약 395미터 되는 곳에서(묘 3기가 있는 곳) 서북 방향으로 가지를 쳐 내려가서 23번국도와 서해안 고속도로를 건너 비산비야지대의 태봉산(95.3봉), 삼태봉(197봉), 왕제산(151.1봉)등 얕은 산줄기를 이루며 무장배수지가 있는 106미터봉에 이른다.
106미터봉에서는 서북으로 송림산(295.3봉), 장사산(269봉), 덕림산(141.5봉), 망덕산(104봉), 봉대산(284봉), 금정산(263.7봉)으로 이어지는 길이 약 21 Km쯤되는 큰 산줄기 하나를 떨궈놓고  선운사가 있는 경수산을 향하여 북진하며 한제산(211봉), 지장제산(152봉)을 일구고 선운산도립공원으로 들어서서는 국기봉(336봉), 청룡산(314봉), 개이빨산(345.1봉), 천왕봉(327봉), 경수산(444.3봉)을 일구고 고막재와 20.6미터봉을 거쳐 용기마을옆 바닷가에 잠긴다.
이 산줄기에서 제일높은 경수산(444.3봉)에서 이름을 빌려와 경수지맥이라 부르며 도상거리는  약 35 Km되고 주진천(길이 29 Km에 면적은 228.68 Km2)의 우측 물막이가 되는 산줄기이다.

 

 

바위암릉을 따라 환상의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오래 전 가족들과 남겼던 고운 추억을 회상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경수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전북 고창군과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및 네이버의 지식백과,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어제 첫구간을 진행하면서 새로 바꾼 모바일 폰의 오룩스 트랙에 문제가 생겨 산행하기 전 해결하기 위해 40여분을 소비하고도 해결하지 못하고 기록없이 진행하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는데 부스터샷을 접종하고 곧바로 격한 운동을 해서 그런지 아니면 지난 주 운동을 하지 못하고 2주만에 산상에 들어서 그런지 산행거리와 시간으로만 봐서는 힘든 산행이 아니었는데도 많이 피곤하고 어려움을 느꼈기에 모텔에 들어 한시간 이상 모바일 폰으로 씨름을 하고 문제를 해결한 후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일어 나 보니 많은 식은 땀을 흘려 침구와 속옷이 흥건히 젖어 있을 정도로 힘들게 하룻밤을 보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힘들것으로 예상되면 곧바로 귀가를 하려고 했는데 새벽 4시까지 푹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몸 상태가 생각보다 좋아 조금 더 누워있다가 일어난다는 것이 새벽 5시 20여분에 어렵게 일어나고 재빨리 샤워 후 밖으로 나오니 새벽 5시 45분이 지나고 있어 입맛도 없기에 산행 날머리인 고막재로 출발하며 도착 예정시간을 보니 새벽 6시 25분을 가리키고 있어 아침식사는 포기하고 편의점에서 빵을 구입해 오늘 산행을 진행하기로 한다.

하지만 편의점이 없어 택시 예약시간보다 일찍 고막재에 도착을 해 집에서 준비한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기다렸다 새벽 6시 40분에 심원택시가 도착을 하고 택시로 희어재로 이동하다 보니 심원을 지나며 잠시 편의점에서 점심용으로 빵을 구입해 또 하루를 보내게 되었는데 걱정했던 모바일 폰의 트랙 문제가 해결되었고 걱정했던 몸도 좋아 즐거운 마음으로 또 하나의 지맥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 하루였다.

 

산행 들머리인 희어재에 도착을 하니 아침 7시 5분여가 지나고 택시가 돌아 간 후 산행 준비 후 곧바로 낮아진 콘크리트 옹벽을 타고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시작하는데 여명이 밝아오며 헤드렌턴 불빛이 없어도 진행이 가능할 정도로 밝아오기 시작한다.

몸이 완전히 풀리기 전 252.7봉까지 오르막 등로가 오늘 산행 중 가장 힘들게 오르니 예상만큼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이 펼쳐지기 시작하고 많은 사진과 추억을 담다 보니 산행 시간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지만 개의치 않고 즐기며 진행하기로 한다.

다시 우측의 비학산 갈림삼거리를 지나 무명봉을 지나고 기암을 통과한 후 무명암봉으로 올라 남쪽을 살펴보니 좌측으로 오늘 힘들게 올라 온 바위암릉이 옹골찬 모습으로 펼쳐져 있고 그 우측 아래로 산행 들머리인 희어재 지나 어제 오후에 내려 온 지장제산과 한제산 줄기가 보이고 그 좌측 뒤로 태봉산과 삼봉산 줄기가 있는 듯 없는 듯 엷은 안개속에 숨박꼭지 놀이를 하고 좌측 뒤 저 멀리 붉게 물들어 오는 하늘 아래 구황산과 경수지맥 분기점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돌아가며 고산과 고성산 지나 태청산과 정암산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 마루금이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남성미 물씬 풍기는 옹골찬 바위암릉을 타고 국기봉과 쥐바위를 지나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담고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진행하니 다시 도상 국기봉에 도착을 하는데 제대로 된 이정판이나 정상석 하나 없이 선답자의 산행 띠지에 표기가 되어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다시 무명안부 지나 잡목 등로를 타고 오르니 청룡산 정상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인 북쪽을 살펴보니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경수지맥 마지막 2구간의 전구간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진행 방향을 확인한 후 바로 눈 앞으로 다가 온 배맨바위를 잡아보니 보는 각도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는 변화무쌍한 풍경에 그저 감탄사만 연발하고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진 제일 뒤 가장 먼곳으로 솟아 있는 경수산이 제법 먼 거리처럼 다가오지만 즐기며 추억을 남기다 보면 금새 저곳에 올라 이곳을 살펴보며 벌써 과거의 추억이 되어 버린 기억에 홀로 웃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래 전 기억을 되살리며 배맨바위를 통과하고 무명봉에서 길게 설치된 철계단을 타고 내려가 낙조대와 천마봉을 둘러보고 우측으로 용문굴 갈림삼거리를 통과한 후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바위암릉을 타고 오르니 나무계단 지나 우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잠시 들려 허기를 달랜 후 지나 온 방향인 남쪽을 살펴보니 바로 앞 부드러운 능선을 타고 낙조대가 보이고 그 좌측으로 천길 낭떨어지 모습을 하고 있는 천마봉이 아찔하게 보이고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배맨바위와 청룡산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진 작은 모습으로 추억 하나를 더 만들고 있다.

천마봉 좌측 계곡 넘어로는 또 다른 무명봉이 삼각뿔 모습으로 천마봉과 대비되며 남성미를 뽐내고 있는데 저 산줄기는 방금 전 이 산객이 지나 온 쥐바위 직전 도상 335.5봉이자 현지에서는 국기봉이란 이정판이 붙어 있는 봉우리에서 북쪽 삼인리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끝자락에 솟아 있는 무명봉이다.

 

잠시 발길 머무는 곳 물 한모금 마시는 곳이 모두 전망대이자 조망처이다 보니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며 견치산 국사봉도 들리고 개이빨산과 선운산 수리봉 그리고 경수지맥에서 가장 높은 445.3미터의 경수산을 넘으니 드디어 고막재에 도착을 하고 우거진 잡목등로를 뚫고 서해바닷가로 내려간다.

그곳 마지막 지점에서 우측으로 흘러 내려 온 주진천이 서해바다와 만나는 합수점에 도착을 해 이틀간 많은 사연을 남긴 경수지맥 산행을 마무리하며 추억 몇장 남기다 보니 쌓여 있는 고운 추억 위에 또 다른 추억을 남기는 시간이 되었다.

두번 다시 이곳 주진천 합수점에 서 있을 기회가 없겠지만 있다면 조금 더 많은 여유를 가지고 자연을 진심으로 즐기며 찾아보는 시간이길 바래보는 순간이었다.

 

어제 아침 저녁으로 두번이나 찾았던 733번 희어재로 2차선 포장도로 상 희어재를 오늘 새벽에 다시 찾다보니 세번째인데 앞으로 다시 또 이곳에 서 있을 기회가 있을지 몰라 조금 더 세심하게 살펴보는데 아직도 어둠이 완전히 물러나지 않아 선명하지는 못하다.

원래 지도 상 희어재는 경수지맥의 252.7봉 위 비학산 갈림삼거리 무명봉과 비학산 사이의 안부를 말하는데 지금은 733번 희어재 2차선 포장도로의 고갯마루를 말하는 것으로 변형된 듯 싶다.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서 희어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아산면 성산리 월성에서 선운사로 넘어가는 고개가 희어재이고 희어재의 유래는 무장면과 해리면 쪽에서 선운사로 가는 고개에 얽힌 지명 유래담이다.

이 이야기는 1992년 고창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고창군지에 실려 있으며 2009년 고창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고창군지에 희어재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참당암을 지을 때 새끼 꼬는 것을 아산면 성산리 월성마을에 맡겼는데 참당암에서 절을 지으면서 새끼를 가지러 가니 그제야 짚을 추리고 있었다.

당장 써야 할 새끼를 이제야 꼴 채비를 하고 있으니 낭패였기에 발만 동동 구르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으니 짚배눌 밑에서 새끼 머리를 꼬아 주면서 끌고 가라고 하며 충분히 쓸 수 있도록 대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월성에서 새끼를 꼬고 참당에서 끌어당겨 썼기 때문에 고개가 닳고 닳아 희어져서 희어재라고 한다는 것으로 이러한 까닭에 월성에서 새끼를 꼬아 댄 사람을 도인이라고 한다.

희어재의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새끼를 꼬아 댄 도인, 끌어당긴 새끼로 닳아 희어진 고개로서 이 이야기는 새끼를 꼰 사람이 비범한 인물이었던 까닭에 새끼를 끌어당겨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꼴 수 있었으며 새끼를 끌어당겨 썼기에 고개가 희어졌다는 지명(고개) 유래담이다.

어제 내려 온 강릉김씨 지산군파 조상묘역이라는 표지석이 있는 아산면 성산리 방향에서 고갯마루 넘어 서쪽의 해리면 평지리 방향으로 걸어가면 우측으로 콘크리트 옹벽이 낮아진 지점이 바로 오늘 경수지맥 마지막 구간 산행 들머리이다.

 

헤드렌턴을 꺼내기 싫어 불빛의 도움 없이도 산행이 가능할 때까지 조금 더 그곳 희어재에 머물며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천천히 해리면 방향으로 고갯마루 넘어 우측 낮아진 콘크리트 옹벽 넘어 능선으로 오르니 서리가 하얗게 내린 잡풀 위로 많은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 좌측 뒤로 잠시 후 힘들게 올라 만나야 할 252.7벙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데 보기와는 달리 오늘 산행 중 가장 힘들게 오른 봉우리가 되었다.

잠시 더 그 묘지방향으로 오르니 은진송씨 가족묘지들로서 아침 7시 12분이 지나고 있는데 이제서야 서서히 어둠이 엷어지며 비석에 새겨진 글씨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는데 오늘이 동지이다 보니 밤의 길이가 가장 긴 계절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은진송씨 가족묘지 우측 위로 올라 뒤돌아 보니 고성리 들판 넘어 송림산과 장사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진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어제 어렵게 넘었던 한제산과 지장제산을 찾아 보지만 좌측 능선과 나뭇가지에 막혀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조망을 즐기고 주능선으로 오르니 희미한 등로도 사라지고 제법 굵은 소나무 아래 우거진 잡목들이 초반부터 이 산객의 몸뚱아리를 붙잡고 늘어져 진행이 쉽지 않는데 강한 찬바람으로 인해 한기를 느꼈던 몸이 경사도까지 급한 등로를 오르며 금새 온 몸에서 굵은 땀방울이 등로를 적시기 시작한다.

약간의 노간주나무를 지나 힘들게 오르니 함양오공 부부묘지가 나타나고 다시 희미한 등로를 타고 가파른 오르막 등로에 우거진 잡목들을 헤치며 조금 더 어렵게 진행하니 바위암릉 지나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좌측 뒤 소나무 가지에 준희님이 걸어 둔 빛바랜 이정판이 보이는 252.7봉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좌측으로 펼쳐진 환상의 풍경과 조망을 즐겨본다.

 

이정판을 사진에 담고 추억 한장 남긴 후 좌측 전망바위로 이동을 하니 남쪽과 남동 방향으로 방금 전 산행을 시작한 희어재가 바로 발 아래 잘록하게 내려 앉아있고 그 뒤로 어제 저녁에 내려 온 지장제산과 한제산 지나 좌측으로 엷은 안개가 내려앉아 있는 비산비야를 따라 좌측 끝자락 뒤로 눈길을 돌리면 어제 새벽에 힘들게 올랐던 구황산과 경수지맥 분기점이 붉게 물들어 오는 하늘 아래 아름답게 보이고 그 우측으로 암치재로 잘록하게 내려갔다 솟구친 고산과 고성산 우측으로 드디어 태청산과 장암산 지나 불갑산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 마루금이 새벽부터 환상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이제 눈을 경수지맥 마루금 우측인 남서 방향으로 돌리니 바로 발 아래 해리면 평지리의 작은 무명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새벽에 택시로 통과한 평지리마을과 733번 희어재로 2차선 포장도로가 아름답게 보이며 그 뒤로 고성리 들판을 지나면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는 송림산과 장사산이 솟아 있는 모습이 환상으로 다가온다.

그 뒤 저 멀리로는 좌측의 고창과 우측의 영광쪽 나즈막한 봉우리들과 산줄기들이 도토리 키 재기를 하듯 드넓게 펼쳐져 있고 하늘에서 이제 막 일출이 시작되려는지 동쪽에서 밝아오는 빛을 받아 붉게 변하기 시작한다.

 

이제 진행 방향인 북서쪽을 살펴보니 우측 앞으로 잠시 후 진행하며 만나야 할 비학산 갈림삼거리 무명봉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절벽을 이루고 있는 바위암봉으로 이뤄진 도상 335.5봉이자 현지에서는 국기봉이라 불려지는 봉우리 좌측 옆으로 쥐바위가 보이고 나즈막한 안부 지나 다시 오르면 도상 국기봉인 273.4미터의 바위암봉이 연이어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 높지는 않지만 결코 진행이 만만치 않음을 알려주고 있는 듯 보인다.

그 뒤로 보여야 할 청룡산과 배맨바위는 저 산줄기에 막혀 아직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지만 저곳으로 오르면 보고 싶었던 선운산과 경수산까지도 시원하게 조망이 될 것이기 때문에 기대를 가지고 천천히 그 252.7 첫봉을 지나 진행을 이어간다.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아름답고 멋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그 이름들을 불러 준 후 추위를 느끼는 시간에 다시 252.7봉을 출발하니 등로 우측으로 건운산 국립공원 중앙부와 오늘 오후에 만나야 할 선운산 수리봉과 경수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는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어 만나지 못한 비학산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사진에 담으며 완만하게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 우측의 비학산과 252.7봉 능선 사이 저 멀리 축령산이라 생각되는 산줄기 위로 너무나 선명한 아침해가 떠오르고 오랫만에 만나보는 깨끗한 일출에 잠시 발걸음 멈추고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는 시간이다.

 

오랫만에 만나는 황홀한 일출에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다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진행하다 우측을 보니 드디어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비학산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하는데 마음 같아서는 저 비학산도 잠시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지만 거리와 시간을 보니 최소한 1시간 이상 걸릴 것 같아 포기하고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하려니 아쉽기만 하다.

잠시 후 무명안부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넘어 온 252.7봉이 지척으로 보이고 사진에 담고 계속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이제 등로 좌측으로도 해리면 들판과 마을들 사이로 송림산과 장사산이 군계일학의 모습으로 자꾸만 눈길을 잡는다.

진행 방향의 바위암릉과 봉우리들 그리고 우측으로 박 떠 오른 일출을 감상하며 급할 것 없이 천천히 오르다 뒤돌아 보니 제법 많이 올라 왔는지 이제 방금 전 지나 온 252.7봉이 발 아래로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 뒤로 희어재 지나 지장제산과 한제산으로 이어지는 경수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 뒤 저 멀리로는 여전히 엷은 안개가 드리워진 고창의 들판 넘어 영산기맥 마루금이 환상을 노래하는데 그 위 하늘에서 붉게 떠오른 햇살이 시시각각 변하는 환상의 붉은 빛으로 다양한 풍경들을 선물해 주고 있다.

 

이제 등로를 타고 한발 두발 옮길 때마다 좌우측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이 자꾸만 발걸음을 붙잡고 자주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 보니 산행속도는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즐기며 진행하니 종주라는 종이 안내판이 등로에 깔려있는 비학산 갈림삼거리봉에 도착을 하고 우측으로 잠시 몇걸음 내려가니 우측인 동쪽으로 실제 희어재 넘어 학이 날아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비학산이 지척으로 솟아 있는데 마음은 벌써 저 비학산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발길이 선뜻 내주지 않으니 오늘은 눈으로만 그 비학산을 다녀오는 시간이다.

 

등로 우측인 동쪽으로 비학산을 살펴보고 약간의 잡목과 잡풀들이 보이는 등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오르니 다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은 국립공원답게 지맥 산행에서 만났던 띠지들 보다는 일반 산행에서 만났던 띠지들이 조금 더 많다는 생각이다.

그 무명봉을 지나니 드디어 진행 방향과 우측으로 오늘 걸어 만나야 할 선운산과 경수산까지 시원하게 펼쳐지고 지나 온 방향 우측 뒤로는 비학산이 조금 더 선명하게 솟아 있다.

키 작은 소나무들이 보이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해리면 마을과 들판 그리고 송림산과 장사산 지나 영산기맥 마루금이 아름답고 잠시 후 무명안부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 옆으로 기암이 솟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곳 지나 바위암릉 따라 조금 더 걸어 오르다 등로 좌측 뒤를 보니 방금 전 걸어 넘어 온 252.7봉이 저 멀리 낮게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 희어재 넘어 어제 만났던 지장제산과 한제산 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지나 온 남쪽과 남동쪽으로 어제 걸어 넘었던 경수지맥 전 구간과 영산기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해리면 마을과 들판도 사진에 담으며 천천히 바위암릉을 타고 오르며 우측을 보니 비학산 줄기와 그 우측으로 방금 전 올라 온 기암 넘어 저 멀리 영산기맥 마루금 위로 한참을 올라 온 햇살이 따스하게 세상을 밝혀주고 있다.

드디어 바위암봉 정상에 올라 등로 우측 앞을 살펴보니 좌측으로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경수지맥 마지막 산줄기가 저 끝자락의 경수산으로 이어진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아래 해제골 따라 도솔제가 물이 가득한 모습으로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노적봉과 구황봉 넘어 숨어있는 선운사를 지나면 주진천 지나 높게 솟아 있는 소요산과 그 우측으로 사자봉과 수강산 줄기도 마치 연봉처럼 보이며 이 산객의 눈길과 발걸음을 붙잡는다.

 

바위암봉 정상에서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다시 한번 더 남쪽과 남동 방향을 살펴보니 우축 아래 무명 저수지가 보이고 좌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방금 전 넘어 온 252.7봉 지나 우측으로 희어재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어제 타고 넘었던 지장제산과 한제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그 우측 뒤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꿔 비산비야를 타고 달려가면 사진 좌측 가장 먼 좌측으로 어제 새벽에 만났던 구황산과 경수지맥 분기점 우측으로 암치재와 고산 및 고성산 지나 태청지맥의 분기점이 있는 태청산과 장암지맥의 주산인 장암산 그리고 그 우측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영산기맥 마루금이 자꾸만 산객의 눈과 발을 붙잡고 늘어져 진행이 불가능해 보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나 온 방향인 남쪽과 남동쪽으로 경수지맥 전 구간을 확인하고 눈을 동쪽으로 돌리니 바로 눈 앞으로 학이 날아갈 듯 솟아 있는 비학산이 지척으로 보이고 그 우측 뒤 저 멀리 축령산 줄기 위로 방금 전 떠 오른 아침 햇살이 밝게 빛나고 비학산 뒤로는 엷은 안개가 뒤덮고 있는 방장산이 길게 이어지며 옛 추억을 소환하고 있다.

그 방장산 좌측으로는 조금 더 가깝게 호암산과 화시산 줄기가 뚜렷하게 다가 와 있어 몇장의 사진에 남기고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어 바위암봉을 출발한다.

 

바위암봉을 지나 소나무 등로로 진입하니 현위치 번호가 선운04-08이란 이정목이 서 있는데 진행 방향으로 쥐바위까지 0.65 Km 거리이고 지나온 방향으로 희어재까지가 0.65 Km 거리라는 표시가 눈에 들어 온다.

그 이정목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바위암릉에 굵은 로프가 설치된 장소에 도착을 해 조심해 내려간 후 뒤돌아 보니 거대한 바위암봉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진행 방향으로 남성미 넘치는 근육질 바위암릉을 살펴보고 좌측으로 해리면 마을과 등판도 내려다 본 후 계속 전진하니 잡목 사이로 뚜렷하게 나 있는 흙 등로가 펼쳐져 있는데 방금 전 조망을 즐겼던 바위암봉과는 완전히 다른 등로가 이어지고 있어 헷깔리기만 하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갈림삼거리 앞에 이정표가 서 있어 다가 가 살펴보니 진행 방향은 좌측의 청룡산과 낙조대 방향이고 우측 방향으로는 사자바위와 투구바위로 향하는 등로이다.

이곳에서 잠시 방향과 바로 위 335.5봉을 착각해 좌측으로 진행하다 다시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 결국 335.5봉으로 거꾸로 올라 이곳 갈림삼거리로 내려 와 좌측 등로는 두번이나 진행하게 되었다.

 

그 갈림삼거리 이정표에서 우측의 사자바위와 투구바위 방향으로 조금 걸어 오르니 바위들 지나 국기봉이란 이정표와 이정판 그리고 이정목이 서 있는 도상 335.5봉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판에는 국기봉 해발 314미터봉이라 적어 놨다.

이정표를 살펴보니 진행 방향으로는 청룡산 방향이고 우측으로는 사자바위로 이어지는 등로가 표기되어 있어 몇장의 사진과 추억으로 남기고 그 국기봉 정상을 넘어 청룡산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가는데 지도에는 무명의 335.5봉으로만 표기되어 있고 실제 도상 국기봉은 쥐바위를 지난 273.4미터봉을 말하는데 왜 무명봉인 이 335.5미터봉에 국기봉이란 정상판을 서리했고 해발고도도 다르게 표기가 되어 있는지 알길이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도상 335.5미터인 국기봉에서 남서 방향으로 내려가니 방금 전 좌측으로 우회하며 만났던 또 다른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직진의 내리막 등로를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나뭇가지 사이로 잠시 후 만나야 할 배맨바위가 마치 두꺼비인지 아니면 코브라 머리 형상으로 다가온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진행 방향의 마루금을 확인하며 조금 더 내려가니 등로 우측의 도솔암 방향으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이정표 옆으로 선운산도립공원 등산로안내도가 서 있다.

도솔암은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도솔산(兜率山, 선운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24대 진흥왕 당시 창건한 암자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禪雲寺)의 산내 암자인데 본래는 상하와 동서남북의 여섯 도솔암이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와 상과 하 및 북 세 도솔암만이 남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도솔암이라 불리는 암자가 하도솔이며 하도솔에서 365계단을 올라가서 있는 도솔암 내원궁(內院宮)이 상도솔암으로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상도솔암은 진흥왕 때 창건한 뒤 1511년(중종 6)에 지은(智誾)이 중창하였고 1694년(숙종 20)에 태헌(太憲)이 중수하였으며 1705년에는 보경(寶鏡)이 중종(中鍾)을 봉안하였고 1829년(순조 29)에는 경문(敬聞)이 중수하였다가 그 뒤 내원궁만 남기고 퇴락한 듯하다.

당우로는 내원궁만이 있는데 이곳에는 미륵이 아니라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보물 제280호로 지정된 이 선운사지장보살좌상은 턱 밑까지 내려온 귓밥과 이륜(耳輪), 가슴의 영락이 특이하고 의문(衣文)의 선이 부드러운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조선 초기의 5대걸작불상 중의 하나로 꼽힌다.

하도솔암은 1658년(효종 9)에 해인(海印)이 창건한 뒤 1669년(현종 10)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나한전 및 요사채 등이 있으며 상부 약 100m 지점에는 높이 25m, 너비 10m의 암각(巖刻) 석가여래좌상이 보물 제1200호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로 지정되어 있다.

옛날에는 이곳에 동불암(東佛庵)이 있었으나 조선 말기 폭풍으로 도괴되었다고 한다. 이 동불암지는 1994년에 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한 바 있으며 그 밖에 이 절의 입구에는 약수가 있다.

 

도솔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오르다 작은 전망바위에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한바퀴 돌아 내려 온 도상 335.5봉이자 정상에는 314미터의 국기봉이란 정상판이 설치된 봉우리가 보이고 그 우측 뒤로는 바위암봉과 252.7봉 우측 아래로 희어재가 보이고 그 뒤 저 멀리로는 방금 전 떠오른 태양 아래 영산기맥 마루금이 하늘금과 맞닿아 있는 모습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잠시 더 지나 온 방향을 살펴보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갑자기 작은 돌탑들이 보이고 자세히 보니 저 앞으로 제법 큰 돌탑 하나 포함해 몇개의 돌탑들이 늘어서 있는 곳도 통과한다.

 

돌탑 등로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전진해 나타나는 또 다른 전망바위에 올라 그곳에서 진행 방향인 서쪽 방향을 살펴보니 잠시 후 만나야 할 청룡산과 그 우측으로 배맨바위가 뚜렷하게 보이고 그 경수지맥 마루금 뒷쪽으로 이상산과 조지산이 나즈막하게 보이고 드디어 서해바다도 박무속에 보이기 시작한다.

몇장의 사진에 담고 진행 방향을 확인하며 다시 바위를 내려 와 진행을 이어가는데 새벽에 상당한 추위를 느꼈던 날씨가 해가 뜨면서 조금은 무더위를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서쪽으로 청룡산과 배맨바위를 확인하고 그 우측인 북서 방향을 살펴보니 배맨바위 지나 도솔계곡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그 계곡 넘어 낙조대와 천마봉이 사진 정중앙부로 뚜렷하게 드러나 있고 그 뒤로 개이빨산과 견치산이 펼쳐져 있으며 그 우측 뒤로 선운산 수리봉 지나 이 산줄기의 주산이자 이름을 부여 받게 만든 경수산까지 이어지는 남성미 넘치는 거친 바위암릉이지만 아름답게 펼쳐진 경수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저 끝자락의 경수산 좌측으로 마지막 고막재로 하산하는 산줄기도 살짝 보이는 거리가 가깝게 보이는데 저곳에 도착하려면 조망이 좋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잠시 더 진행 방향인 서쪽과 북서 방향을 살펴보고 많은 사진에 담은 후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진 한쪽에 추락주의 경고판 지나 바위암봉으로 이뤄진 쥐바위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쥐바위 정상에서의 풍경과 조망이 좋아 잠시 발걸음 멈추고 다시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며 지나온 산줄기와 진행 방향을 상세히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본다.

제일 먼저 지나온 방향인 동쪽을 살펴보니 바위암봉으로 이뤄진 335.5봉이자 현지에는 314미터의 국기봉이란 정상판이 박혀있는 봉우리 우측으로 거대한 단애를 이루고 있는 바위암봉 지나 비학산 줄기도 보인다.

그 비학산 좌측 뒤 저 멀리로는 호암산과 화시산 줄기가 옹골지게 솟아 있고 비학산 뒤로는 안개속에 숨어 있는 영산기맥 상 방장산이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남동방향으로는 지나 온 경수지맥 마루금이 저 멀리 구황산까지 이어지며 전 구간이 아름답게 보이고 남쪽과 남서 방향으로는 어제 넘어 온 지장제산과 한제산 넘어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는 송림산과 장사산이 펼쳐져 있으며 그 뒤 저 멀리 영산기맥 마루금이 하늘금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모습이 환상적으로 다가온다.

서쪽과 북서 방향으로는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청룡산과 배맨바위 지나 낙조대와 천마봉 넘어 견치산과 개이빨산 그리고 선운산 수리봉과 경수산까지 일망무제로 펼쳐져 있어 많은 사진과 추억으로 담은 후 로프를 타고 그 쥐바위를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쥐바위란 이정표가 서 있어 사진에 담아 본다.

전국적으로 몇 군데 산에 쥐바위란 이름의 바위들이 있는데 대부분 산 위에 솟은 바위의 형태가 쥐의 형태를 닮았기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쥐의 영리함과 재물을 상징하는 동물임에도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지명 이름으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듯 보이고 그 유래도 잘 전해지지 않는다.

 

쥐바위를 내려 와 이정표를 통과한 후 내려가며 등로 좌측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경수지맥 희어재에서 쥐바위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보이고 그 뒤로 고창의 비산비야가 드넓게 펼쳐져 있으며 그 위로는 엷은 안개가 드리워진 하늘에는 밝게 빛나는 태양이 세상을 비추고 있다.

남동쪽으로는 어제 걸었던 희어재에서 구황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보이고 그 뒤를 병풍처럼 감싸며 이어지는 영산기맥 마루금이 옛 추억을 들려주는 시간이다.

그렇게 바위암릉을 타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평이한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부드러운 등로로 바뀌고 한동안 흙길로 이어지는 빛바랜 잡풀 등로를 따르니 쥐바위에서 0.5 Km 지나왔고 청룡산까지 0.5 Km 남아 있다는 이정목이 서 있다.

그 이정목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환상의 조망을 즐긴 쥐바위 능선이 생각보다 뾰족한 모습으로 펼쳐져 있고 그 뒤로 무명안봉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어 사진에 담아 본다.

 

지나 온 쥐바위를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후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갑자기 바위에 제법 큰 구멍의 굴이 보이는데 물이 차 있는지 낙엽이 떠 있는 모습도 보이고 그 굴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관목의 소나무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만 걸려있는 도상 273.4미터의 국기봉에 도착을 하는데 띠지 이외에는 보이는 표식이 없어 아쉽기만 하다.

전국의 수많은 국기봉이 있는데 대부분 국기를 매달을 수 있는 국기대가 설치된 봉우리를 말하는데 이곳은 아무리 찾아봐도 국기대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데 왜 국기봉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국기봉 정상에서 좌측인 남서 방향을 살펴보니 아름다운 해리면과 상하면 그리고 무장면 방향의 드넓은 들판과 마을들이 보이고 그 중심부에는 경수지맥 마루금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송림산과 장사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우측 뒤 저 멀리로는 서해바다도 보이기 시작한다.

송림산은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송계리와 상하면 송곡리 및 공음면 두암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명칭유래는 소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고 따라서 송림산 주변에는 소나무와 관련 된 지명이 많이 있는데 예를들면 고창군 상하면 송곡리, 고창군 무장면 송계리, 고창군 해리면 송산리 등이다.

송림산은 호남정맥의 내장산 까치봉과 백암산 중간 지점인 순창새재에서 분기된 영산기맥(영산강 분수령)과 구황산과 고산 사이에서 갈려나온 선운지맥(선운산 줄기)이 뿌리다.

선운지맥은 삼태봉을 지나 왕제산에 이르면 두 갈래로 합쳐지는데 한 줄기는 전라남도 영광군 초포산과 오봉산 및 안의산으로 이어진다.

또 한 줄기의 선운지맥은 북쪽으로 가다 곧바로 서쪽에 송림산과 장사산 줄기를 나누어 놓고 선운산으로 뻗어나간다.

그리고 송림산을 지나면 장사산에서 두 갈래로 합쳐지는데 북쪽은 봉백산과 조지산에서 끝을 맺고 서쪽은 덕림산·망덕산을 지나 금정산과 계양산에서 맥을 다한다.

물줄기는 동쪽은 무장천을 통해 주진천(인천강)으로 흐르고 서쪽은 송곡저수지를 통해 서해, 남쪽은 두암저수지와 두암천을 통해 서해로 각각 흐른다.

장사산은 전라북도 고창군의 상하면 하장리와 송곡리 및 공음면 두암리 일대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269m이고 서쪽에 송림산, 남쪽의 덕림산과 산줄기가 이어져 있으며 서쪽사면에서 발원한 하천이 용대저수지를 이룬다.

대동지지(무장)에 장사산(長沙山)은 장사고현(長沙古縣)에 있다 라는 기록이 있으며 전선무장읍지에도 장사산(長沙山)은 송림산 서쪽에 있고 산 위에 석성 터가 있다 라고 수록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이를 통해 장사산이 장사현과 관계있음을 알 수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 읍치 서쪽 하리면에 장사산이 묘사되어 있고 그 아래로 고장사현(古長沙縣)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그 밖에도 해동지도, 청구도 (21층 16면), 조선팔도지도 등에 장사산이 읍치 서쪽에 그려져 있다.

 

도상 273.4미터의 국기봉에서 남서 방향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후 출발하기 전 남쪽과 남동방향을 살펴보니 어제 산행을 시작한 구황산에서 쥐바위로 이어지는 경수지맥 전 구간이 너무나 환상적인 모습으로 펼쳐져 있어 다시 사진에 담고 우측인 북서 방향으로 출발하려는데 남서쪽 저 멀리 영광의 백수풍력발전시설들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 와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보지만 거리감이 있고 약간의 박무로 인해 깨끗한 모슺은 담기 어렵다.

이제 그 국기봉을 출발해 북서 방향으로 내려가니 굵은 소나무 아래 키 작은 잡목들과 잡풀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더 평이하게 전진하니 작은 이정판들이 몇개 보여 살펴보니 우측으로 도솔암 방향이 좌측으로는 수락마을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사거리 안부의 이정판들이 세워져 있다.

수락마을은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평지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 곳으로 평지리는 북동부로 선운산도립공원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남부는 비교적 지대가 평평하다.

수락, 궁월, 평지, 신흥 등의 자연마을이 있으며 수락은 마을이 형성된 뒤 식수난으로 고생을 많이 하였는데 그 때 마을 이름이 수락이었고 그 뒤 은진 송씨가 들어와서 수락으로 한자명을 바꾼 후 식수난이 조금씩 해소되자 지금까지도 수락(水洛)으로 부르고 있다.

 

도솔암과 수락마을 하산 갈림사거리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작은 바위 전망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갈림사거리 지나 우측으로 273.4미터의 국기봉 지나 좌측으로 쥐바위와 335.5(국기봉)봉 그리고 우측 뒤 저 멀리 252.7봉이 부드러운 모습이면서도 남성미 넘치는 근육질의 바위암릉이 자꾸만 눈길을 사로 잡는다.

경수지맥 마루금 뒤 저 멀리로는 엷은 안개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방장산이 인상적이고 우측으로는 편백나무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장성의 축령산이 보이는데 오래 전 홀로 즐기며 걸었던 추억을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동쪽으로 방금 전 지나 온 경수지맥 마루금을 확인하고 그 우측인 남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오늘 산행을 시작한 아산면과 해리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희어재가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어제 내려 온 지장제산과 한제산이 부드러운 능선으로 보이고 그 뒤 저 먼 곳으로는 드넓은 아산면 들판 뒤로 좌측 끝자락의 방장산이 약간 잘린 모습으로 보이고 태양 아래 좌측으로 축령산이 그리고 그 우측으로는 어제 경수지맥이란 이름으로 산행을 시작한 구황산과 경수지맥 분기점도 보인다.

그 우측으로는 잘록한 암치재를 지나 고산과 고성산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보여야 할 태청산과 장암산은 잘린 모습이라 ㅗ 다른 사진으로 확인을 해야 한다.

 

그렇게 많은 사진과 추억을 담으며 일망무제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이정표와 이정목 및 정상판 그리고 고창408이란 삼각점이 박혀 있는 315미터의 청룡산 정상에 도착을 해 다시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담아 본다.

이곳 청룡산 역시 고창군 해리면과 아산면의 경계에 솟아 있는 산으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제대로 된 자료가 전혀 보이지 않는데 전국에 있는 대부분의 청룡산에 대한 자료를 보면 대부분 푸른 용 즉 청룡을 닮았다던가 아니면 청룡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이라는 자료이기에 이곳 역시 그런 연유로 붙은 이름은 아닐까 추측도 해 본다.

 

청룡산 정상에서 동쪽에서 남쪽 지나 서쪽까지는 지금까지 청룡산으로 진행하면서 살펴보며 담았던 많은 사진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기에 다시 사진으로만 담고 이제부터 진행 방향인 북쪽을 살펴보니 바로 눈 앞으로 배맨바위가 거대한 암봉의 모습으로 솟아 있고 그 뒤로 부드러운 능선을 타고 낙조대와 천마봉 지나 견치산과 개이빨산 그리고 선운산 수리봉과 제일 뒤 끝자락에 경수산까지 시원하게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도솔계곡이 보이고 사진 제일 뒤 중앙으로 제알 높게 솟아 있는 445.4미터의 소요산도 주진천 넘어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사방팔방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을 즐기고 천천히 청룡산을 출발하면서 등로 좌측 앞을 보니 궁산저수지와 좌측의 226.7미터의 조지산 뒤로 서해바다가 보이고 그 서해바다 건너편으로 희미하게 섬 하나가 눈에 들어 와 자세히 살펴보고 줌으로 당겨보니 오래전 낚시배가 전복되어 많은 희생자를 냈던 큰 사고가 있었고 그 이후 산친구들과 함께 종주 산행을 하고 해수욕도 즐겼던 위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위도는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에 속한 섬으로 변산반도에서 서쪽으로 약 14km 떨어져 있고 북쪽에 식도와 방조제로 연결된 정금도가 있으며 그밖에 큰딴치도와 딴달래섬 및 거륜도 등의 섬들이 있는데 섬의 모양이 고슴도치와 비슷하여 고슴도치 위(蝟)자를 써서 위도라고 했다.

최고봉은 섬 북쪽에 있는 망월봉(255m)이며 그밖에 도제봉(152m)과 망금봉(242m), 파장봉(162m) 등 200m 내외의 비교적 경사가 급한 구릉성 산지가 있다.

남동쪽 해안은 거의 직선상으로 단조롭고 북서쪽은 곳곳에 깊은 만과 길게 돌출된 갑이 이어져 있다.

모래해안이 대부분이며 간석지도 발달해 썰물 때는 큰딴치도·딴시름 등의 부속섬과 연결되기도 하는데 대체로 한서의 차가 크며 겨울철에는 눈이 많다.

농산물로는 보리와 마늘이 생산되는데 특히 마늘은 생산량이 많아 상인 직거래가 이루어지고 주민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하나 어업에 더 많이 종사한다.

연근해에서는 멸치와 새우 등이 많이 잡히고 김과 바지락 양식이 활발하며 취락은 남동쪽 해안의 대리와 치도 마을과 북서쪽 만 안의 벌금리와 파장금 마을에 집중 분포한다.

조선시대에는 유배지였으며 현재 면사무소가 있는 진리는 당시 수군첨절제사의 진영이기도 했다.

 

오래 전 많은 산친구들과 함께 고운 추억을 남겼던 위도를 찾아 확인하고 숨겨 놓은 보물을 찾은 기쁨으로 청룡산 정상을 내려가니 다시 바위암봉이 나타나 좌측으로 우회하니 이정목이 보이고 곧이어 배맨바위가 바로 눈 앞으로 다가 와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배의 앞부분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 배맨바위 정상부에 보이는 키 작은 소나무 한그루가 눈길을 잡는데 올라 확인을 할 수 없으니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배맨바위는 해리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뻗어 있는 산 등성이를 바라보며 밋밋한 산정에 우뚝솟아 있는 신비롭고도 괴이하게 생긴 계선암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높이 20여m에 둘레 100m나 되는 퇴적암 무더기로 민둥한 산 등성이에 위치하여 멀리서도 쉽게 시야에 들어온다.

주변에는 희귀한 산새들이 서식하고 수풀도 없어 우람하게 거대한 모습이 신비하고 거의 외경을 느끼게까지 하는데 멀리서 보기에는 아기를 업고 있는 사람모양 같기도하고 배를 정박하여 밧줄로 묶은 것 같게도 보인다.

이곳을 배맨바위라고 부르는데 그 연유를 살펴보면 지금은 이곳에서 십여리 떨어진 곳에 서해와 해안선이 접하여 있으나 예년에는 이산 정상까지 바닷물이 들어와서 배를 이 바위에 매어 달았다고 하는데서 배맨바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곳까지 배가 들어왔다니 지금 생각하면 거짓말 같으나 주변 산 계곡에서 가끔 조개 껍질이 발견되고 바위가 모두 퇴적암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연유를 증명해 주기도 한다.

그동안 지각의 변화가 수억년을 통해 변화했다는 일면을 보여주는 증거의 바위이기도 하다.

 

진행 방향으로 배의 머리처럼 보이는 배맨바위를 바라보며 걸어가니 배맨바위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 앞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우측으로 우회하며 전진하니 좌측 옆으로 거대한 바위암봉의 배맨바위가 바로 옆으로 다가 와 있다.

사진에 담으며 평이하게 이어지는 관목의 등로를 따르니 이정목과 이정표가 서 있는데 진행 방향으로 낙조대까지 1.4 Km 거리가 남아 있다는 거리와 방향 표시가 보이고 그 이정표 뒷쪽으로 배맨바위 방향으로 발자국들이 보여 다가가 보지만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다시 뒤돌아 나와 낙조대 방향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배맨바위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관목의 참나무 등로가 열리고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흙길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잠시 더 편안하게 이어지는 평이한 흙길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공터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부드러운 등로가 이어진다.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다시 조망이 열리기 시작해 사진에 담으며 걸어가니 진행 방향으로도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져 봉우리들을 확인도 해 본다.

그렇게 풍경과 조망을 사진에 담으며 걸어가니 바위가 보이는 무명안부도 통과한 후 이어지는 바위암릉을 따라 오르니 조망처가 나타나 그곳에서 지나 온 방향인 남쪽을 살펴보니 공터무명봉과 배맨바위 지나 좌측 뒤로 청룡산이 길게 펼쳐져 있다.

 

지나 온 방향을 사진에 담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공터에는 작은 자갈들이 깔려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공터 무명봉에서도 등로 좌측으로 조망이 열리고 사진에 담으며 다시 출발하니 바위 등로 지나 잡목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이정목과 이정표가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배맨바위에서 1.1 Km 지나 왔다는 거리 표시도 보인다.

이곳 무명봉 우측 병풍바위 아래로는 도솔계곡이 있는데 도솔계곡(高敞 禪雲山 兜率溪谷 一圓)은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산에 있는 명승으로 2009년 9월 18일 대한민국의 명승 제54호로 지정되었다.

선운산(禪雲山)은 도솔산(兜率山) 이라고도 했는데 선운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의 뜻으로 선운산이나 도솔산이나 모두 불도(佛道)를 닦는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도솔계곡 일원은 선운산 일대 경관의 백미로서 화산작용으로 형성된 암석들이 거대한 수직암벽을 이루고 있어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이 일대에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도솔천 내원궁, 도솔암, 나한전, 마애불) 와 천연기념물 등이 분포하고 있어 인문 및 자연 유산적 가치가 크다.

 

이정목과 이정표가 설치된 무명봉에서 출발하니 길게 설치된 철계단이 보이고 그 철계단을 타고 조심하며 천천히 내려가며 눈 앞에 펼쳐진 낙조대에서 우측의 천마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살펴보니 그 능선 아래로는 거대한 바위암릉이 마치 병풍처럼 이어지고 있고 그 뒤 저 멀리 좌측의 선운산과 경수산이 우측 제일 뒷쪽으로는 주진천 지나 소요산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좌측 앞의 낙조대에서 마루금은 직진의 능선으로 이어지지만 우측 천마봉을 잠시 다녀오기로 하고 산행을 이어가니 천마봉 능성 위에 등산객 한명이 느긋하게 주위 풍경들을 즐기며 진행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길게 이어지는 철계단을 조심하며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평이한 흙길로 이어지고 무명안부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낙조대라는 이정표와 그 옆으로 등산로 안내도가 보이는 낙조대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좌측으로 오르니 또 다른 낙조대 이정표가 서 있고 조금 더 오르니 사각탁자 위에 국가지질공원 지질명소의 선운산이란 설명판 뒤로 실질적인 두개의 암봉으로 이뤄진 낙조대가 올려다 보인다.

낙조대에서 보는 일몰은 주변의 저수지와 능선이 어울려 일대 장관으로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선운산은 원래 도솔산이라 불리던 곳으로 선운산이란 이름은 백제 때 창건한 선운사에서 따왔다.

선운산 산행코스의 백미는 선운사에서 시작해 도솔계곡을 따라 올라 진흥굴과 도솔암 마애불을 지나서 낙조대와 천마봉을 거쳐 도솔암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주차장에서 천마봉까지는 2시간쯤 걸린다.

진흥굴은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수행했다는 커다란 굴이고 높이 15m 되는 도솔암 마애불은 동학 운동의 중요한 시발점이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마애불을 지나 용문굴을 통과 하면 낙조대가 나오는데 낙조대는 해발 335m 밖에 안되지만 눈앞의 도천저수지와 칠산 앞 바다와 곰소만 등이 한 눈에 들어오며 특히 선운산의 낙조대는 접근하기가 쉬워 온 가족이 함께 서해로 떨어지는 장엄한 낙조의 장관을 만끽 할 수 있다.

선운산도립공원 내에 위치한 선운사가 있는데 백제 때 창건된 고찰로 천연기념물 184호로 지정된 동백나무 숲이 유명하고 또한 보물 290호인 대웅전과 279호인 금동보살좌상이 있다.

고창군 상하면의 구사포 해수욕장은 고운 모래사장이 펼쳐져 겨울바다를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낙조대에서 등로는 직진의 용문굴 방향이지만 우측으로 천마봉이 보여 잠시 들렸다 나오기로 하고 우측의 동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동쪽으로 잠시 걸어가니 넓고 뚜렷한 능선 등로가 열리는데 그 등로 한가운데에 바위 위로 돌무덤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 등로 우측으로 도솔계곡 넘어 무명 산줄기를 살펴보니 뾰족한 삼각뿔 모양의 무명바위암봉이 좌측 앞으로 솟아 있고 그 우측 뒤 저 멀리 국기봉이란 335.5봉과 쥐바위 사이로 분기되는 분기점도 확인해 본다.

이제 등로 우측 뒤인 남서쪽을 살펴보니 방금 전 무명봉에서 내려 온 길게 설치된 철계단이 타고 내려 올 때하고는 달리 아름답게 올려다 보인다.

 

지나 온 무명봉에 길게 설치된 철계단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후 이제 등로 좌측을 보니 용문암이 있는 천인바위 아래 선운사 도솔암마애불과 나한전 아래 도솔암과 그 뒤로 진흥굴과 장사송 지나 선운계곡으로 이어지는 골짜기가 길게 이어지고 그 좌측 능선으로는 경수산까지 펼쳐진 경수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뒤로는 소요산이 보인다.

선운계곡 우측으로는 삼인리 방향의 무명 산줄기 뒤로 노적봉과 구황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부르는데 저곳 역시 오래 전 두어번 다녀 온 곳이기에 그 추억을 소환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등로 좌우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들과 조망을 즐기고 계속 걸어 전진하니 사각탁자 2개가 보이고 드넓은 바위 암봉 위 한가운데에 커다란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 284미터의 천마산 정상에 도착을 해 제일 먼저 좌측인 북쪽 방향으로 가 보니 바로 발 아래 도솔암 전경이 환상의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도솔암은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도솔산(兜率山, 선운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24대 진흥왕 당시 창건한 암자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禪雲寺)의 산내 암자인데 본래는 상하와 동서남북의 여섯 도솔암이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와 상과 하 및 북 세 도솔암만이 남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도솔암이라 불리는 암자가 하도솔이며 하도솔에서 365계단을 올라가서 있는 도솔암 내원궁(內院宮)이 상도솔암으로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상도솔암은 진흥왕 때 창건한 뒤 1511년(중종 6)에 지은(智誾)이 중창하였고 1694년(숙종 20)에 태헌(太憲)이 중수하였으며 1705년에는 보경(寶鏡)이 중종(中鍾)을 봉안하였고 1829년(순조 29)에는 경문(敬聞)이 중수하였다가 그 뒤 내원궁만 남기고 퇴락한 듯하다.

당우로는 내원궁만이 있는데 이곳에는 미륵이 아니라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보물 제280호로 지정된 이 선운사지장보살좌상은 턱 밑까지 내려온 귓밥과 이륜(耳輪), 가슴의 영락이 특이하고 의문(衣文)의 선이 부드러운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조선 초기의 5대걸작불상 중의 하나로 꼽힌다.

하도솔암은 1658년(효종 9)에 해인(海印)이 창건한 뒤 1669년(현종 10)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나한전 및 요사채 등이 있으며 상부 약 100m 지점에는 높이 25m, 너비 10m의 암각(巖刻) 석가여래좌상이 보물 제1200호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로 지정되어 있다.

옛날에는 이곳에 동불암(東佛庵)이 있었으나 조선 말기 폭풍으로 도괴되었다고 한다.

이 동불암지는 1994년에 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한 바 있으며 그 밖에 이 절의 입구에는 약수가 있다.

 

도솔암을 내려다 보고 이제 눈을 동쪽 방향으로 돌리니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도솔계곡 건너 쥐바위에서 분기한 무명 산줄기를 타고 내려 와 솟아 있는 삼각뿔 모양의 거대한 바위암봉이 인상적이고 그 좌츠인 사진 중앙 제일 뒷쪽으로 안개속에 숨어 있는 방장산이 산객의 애 간장을 태우고 그 좌측 앞으로는 오늘 산행 내내 보였던 호암산과 화시산 줄기가 또 다른 산군을 이루며 멋지게 펼쳐져 있다.

화시산은 전라북도 고창군의 아산면 용계리와 운곡리 및 부안면 사창리 그리고 상등리 등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403m이고 신증동국여지승람(고창)에 화시산은 현의 서쪽 15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화시라는 지명과 관련해 여지도서(흥덕)에 화시산은 현 서쪽 10리에 있는데 반등산(현 방장산)으로부터 시작해 북쪽으로 소요산에 이르는데 전해지는 이야기로 산꼭대기에 큰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홀연히 저절로 쪼개져 불화살처럼 날아갔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대동여지도(18첩 5면)에 고창현과 흥덕현 경계에 있는 사슬치(沙瑟峙)에서 북서쪽으로 산줄기가 이어지다 화시산을 이루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그 밖에도 해동지도, 광여도 등의 지도에 두 현의 경계부에 화시산이 기재되어 있다.

북쪽의 소굴치와 최고봉인 화시봉(화실봉) 사이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지는 여러 암굴들이 줄지어 있는데 신라의 어느 왕자가 난을 피해 백제 땅인 고창으로 와서 가마를 타고 산을 오르며 투구를 벗어 놓았다는 투구바위(시루봉), 가마가 무거워 내려놓았다는 가마바위(상여바위), 촛불을 켜놓은 촛대바위, 수행한 장수가 호랑이를 몰아내고 왕자를 모셨다고 하는 왕자굴 등이 그것이다.

산의 남쪽 줄기 성틀봉 주변의 죽림리와 상갑리 일대에는 수백 기의 고인돌이 밀집해 있다.

 

 

천마봉 정상에서 일망무제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을 살펴보고 많은 사진과 추억에 담은 후 다시 드넓은 바위암봉 정상부에 세워진 천마봉 정상석에서 사진 한장 더 남겨본다.

천마봉은 도솔암 남쪽 천길 바위 위에 우뚝 솟은 봉우리로서 기상이 준엄하여 장군봉이라고도 하는데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도솔천의 비경이 발아래 내려다 보이며 인접한 낙조대와 함께 가장 많이 오르는 관광명소이다.

선운산 천마봉은 선운사 사찰 서쪽3.6km 지점에 위치한 해발 336m로서 정상에 올라서면 주위의 풍광에 감탄하게 하는 산이다.

매표소를 지나 들어서면 선운사 사찰이고 절을 둘러본 후 절 뒤 편 동백나무 숲에 동백꽃을 지나 남서쪽으로 20여분 가면 삼거리 휴게소가 나온다.

휴게소 건너편 도로로 계속 1km 올라가면 큰 소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장사송이라고 하고 그 장사송 바로 옆에는 진흥왕이 불교에 심취하여 왕위를 버리고 도솔왕비, 중애공주와 더불어 선운사로 와서 기도를 했다는 천연 바위굴인 진흥굴이 있다.

이곳에서 10여분이면 도솔암이 나오고 그 앞에 하늘을 가리고 있는 천마봉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하산 길은 반드시 낙조대을 거쳐 100m아래 용문굴 속을 빠져 나올 때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용문굴을 보고 계곡을 따라 곧장 내려서면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이 나오고 돌아서면 도솔암이다.

천마봉 산행은 매표소에서 출발 천마봉에 올라 낙조대와 용문굴, 마애불을 거쳐 주차장까지 돌아오는 데는 3시간이 소요 된다.

생각보다 환상적인 풍경과 조망으로 인해 많은 시간 천마봉 정상에서 머물다 이제 다시 낙조대 방향으로 천천히 복귀를 서두른다.

 

천마봉을 출발하니 좌측으로 커다란 사각탁자 2개가 보이고 진행 방향으로 소나무 위로 낙조대 바위가 머리를 내밀고 있고 그 좌측으로는 암벽의 무명봉에 설치된 긴 철계단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낙조대라는 이정표와 등산로안내도 넘어 암봉 2개가 보이는 낙조대가 빤히 보인다.

이곳 선운산 낙조대는 산행거리도 짧고 등로가 잘 정비되어 있으며 높이에 비해 황홀한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에 전국의 많은 등산객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낙조 명소 중 한곳이 되었다.

 

이제 낙조대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용문굴 방향으로 내려가니 예전에 보이지 않던 긴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그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흙길이 펼쳐지는데 등로 좌측으로는 통나무 쉼터도 보인다.

그 통나무 쉼터를 지나니 한동안 편안한 흙길이 길게 이어지고 곧이어 안내판과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살펴보니 우츩으로 용문굴 가는 갈림삼거리인데 용문굴은 두어번 다녀갔기에 포기하고 사진에 담은 후 곧바로 출발한다.

용문굴은 선운사 창건설화에 등장하는 굴로서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선운산 도솔암 지나 자리하고 있다.

이 굴에 얽힌 이야기는 577년(백제 위덕왕 24) 검단선사가 절을 세울 목적으로 선운산을 찾았다고 하는데 막상 와서 보니 선운사 자리의 연못에 용이 한 마리 살더라 는 것이다.

그 용은 검단선사에 의해 쫓겨났고 급히 도망치다가 바위에 부딪히며 굴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용문굴이다.

해발 336m의 선운산에는 용문굴 외에 신라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이 있으며 진흥굴, 도솔암, 용문굴, 낙조대, 천마봉 등을 두루 돌아보는 산행이 일품이다.

그리 힘들지 않고 시간도 약 3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데 오전에는 천마봉에 오르면 도솔암 마애불에 해가 들기 시작하고 앙다문 부처의 입이 빛을 받아 미소짓는 것처럼 보이며 해거름녘에는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주 그만이다.

 

용문굴 갈림삼거리를 지나 소리재 방향으로 조금 빠르게 걸어가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우측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난다.

그곳으로 들어 잠시 배낭 내려 허기를 달래며 지나 온 방향인 남쪽을 살펴보니 바로 아래 용문굴 갈림삼거리 안부 지나 낙조대가 보이고 그 좌측으로 천마봉 지나 도솔계곡을 건너면 무명 산줄기 끝자락에 삼각뿔 모양의 절벽 단애를 이루고 있는 바위암봉이 환상적이고 우측 지나온 마루금 뒤로는 배맨바위와 청룡산이 저 멀리 길게 보인다.

 

전망바위에서 멋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지나 온 경수지맥 마루금 우측인 남서 방향으로 해리면 마을과 들판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잠시 후 나타나는 전망바위에서 다시 비슷한 풍경과 조망들을 즐기고 오르니 굵은 소나무와 바위가 보이는 봉우리에 도착을 하는데 얼마 전 지나간 선답자의 산행 띠지에 이곳을 천상봉으라 표기를 해 놔 지도를 살펴보니 지도에는 아무 표시도 없는 무명봉으로서 우측 아래로 천인바위가 있는 봉우리이다.

 

천상봉이란 봉우리 지나 부드러운 흙길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 갈림삼거리를 만나고 그 한쪽에 서 있는 이정표를 확인해 보니 서해랑길 42구간으로서 지나온 방향으로 용문굴과 낙조대가 보이고 진행 방향인 서쪽 방향으로는 소리재까지 0.14 Km 남아 있다는 거리와 방향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이다.

아무 표시가 없는 우측으로는 삼인리 방향으로 내려 가 도솔암으로 이어질 듯 보이는 곳으로 진행 방향은 좌측인 서쪽으로 크게 꺽어 진행한다.

 

갈림삼거리 이정표 지나 좌측으로 크게 꺽어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는 MRB로 파였는지 물길이 나 있고 가끔 보이는 파란 잎이 남아 있는 동백나무들을 살펴보며 전진하니 다시 이정목과 이정표가 서 있는 소리재에 도착을 하는데 진행방향으로 견치산까지 1.25 Km거리이고 좌측으로는 해리면으로 우측으로는 참당암 하산 등로가 표기되어 있다.

소리재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아 지도로 확인해 보니 좌측의 심원면 도천리와 우측의 아산면 삼인리의 경계를 이루는 안부이다.

 

소리재 안부 지나 평이하게 걸어가니 이곳 역시 움푹 패인 물길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후 고인돌 같은 바위들을 지나 경사도가 심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키가 큰 산죽터널이 나타나고 그 산죽지대를 타고 오르니 오를수록 산죽은 더욱 빼곡히 등로를 채우고 있다.

약간의 트라우마가 있는 산죽지대를 완전히 빠져 나가니 다시 관목의 나무 아래 우거졌던 잡풀들이 말라있는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그렇게 잠시 더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넓은 사각탁자와 이정목 및 등산로 안내판 및 이정표가 보이는 곳에 도착을 해 살펴보니 진행 방향으로 견치산입구까지 0.2 Km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표시가 보인다.

 

그 이정표 지나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흙길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다시 사각탁자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계속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는 여전히 부드러운 흙길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능선으로 오르고 등로 좌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 잠시 그 바위 위로 오르니 등로 좌측의 북서에서 남서방향까지 시원한 풍경과 조망들이 펼쳐져 있다.

그곳에서 북서 방향을 보니 322.4미터의 견치산 국사봉의 암봉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심원면 도천리 지나 276.5미터의 할뫼와 무명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보이고 그 뒤로 서해바다도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 전망바위에서 몇장의 풍경과 조망 사진을 남기고 다시 조금 더 전진하니 등로는 완만하게 내려가 금새 넓은 공터에 사각탁자와 등산로안내판과 이정목 그리고 이정표가 서 있는 견치산입구 안부에 도착을 한다.

그곳 견치산입구 공터에서 좌측으로 0.5 Km 떨어져 있는 견치산을 다녀올까 포기할까 잠시 고민하다 언제 다시 들릴 기회가 있을지 알 수 없기에 시간이 더 걸리고 체력적으로 힘이 들어도 다녀오기로 하고 좌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금 내려가 우측의 굵은 나무 뒤에 배낭을 숨기고 가벼운 차림으로 빠르게 내려간다.

 

배낭을 벗어 놓고 가벼운 몸으로 빠르게 내려가니 키 작은 산죽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곧이어 산죽 등로가 끝이나며 관목의 참나무 등로가 나타나더니 무명안부를 통과한다.

그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참나무 등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318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우측으로 짧게 내려갔다 오르니 커대한 바위암릉이 시작되는 지점 바위 앞에 이정목과 346미터의 견치산 국사봉이라는 정상판이 붙어 있어 살펴보니 실제 정상은 바위암릉을 따라 그 끝자락으로 올라야 되는데 위험하기에 그 하단부에 정상판을 걸어 둔 듯 보인다.

그 바위암릉 정상에서 북동 방향을 살펴보니 심원면 연화리 마을과 들판 우측과 뒤로 잠시 후 걸어 넘어야 할 선운산 수리봉과 경수산이 이어지고 그 경수산 정상 좌측으로 마지막 하산 등로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선운산과 경수산 사이 마루금 뒷쪽으로 주진천 넘어 솟아 있는 소요산이 여전히 뾰족한 모습으로 이 산객의 눈길을 잡는다.

 

이제 눈을 남동 방향으로 돌리니 방금 전 넘어 온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던 318 무명봉이 우측 가깝게 솟아 있고 그 좌측 뒤 저 멀리로는 견치산입구로 복귀해 좌측 등로를 타고 올라 만나야 할 도상 346.6미터의 개이빨산 정상이 아름답게 솟아 있는 모습도 가깝게 다가 와 있다.

그 개이빨산 우측 뒤 저 멀리로는 우측 가장자리에 청룡산을 필두로 좌측으로 국기봉과 쥐바위 지나 335.5봉으로 이어지는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경수지맥 마루금이 박무속에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정상 우측 방향으로 잠시 후 진행하며 만나야 할 선운산과 경수산 그리고 새벽부터 걸어 만났던 청룡산과 335.5봉으로 이어지는 경수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눈을 남서 방향으로 돌리니 심원면 도천리 마을과 들판 지나 궁전저수지가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는 조지산이 우측으로는 할뫼산이 솟아 있는데 좌측으로는 무명의 나즈막한 산줄기 지나 저 멀리 송림산과 장사산이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이제 할뫼와 조지산 우측 뒤로는 서해바다가 지척인데 햇살이 비추고 기온이 오르면서 박무로 인해 선명한 서해바다는 아쉬움으로 남긴다.

 

바위암봉으로 이뤄진 그 견치산 국사봉 정상에서 일망무제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을 살펴보고 많은 사진에 담은 후 다시 올랐던 바위암릉을 따라 암릉을 내려오니 바위 끝자락에 346미터의 견치산 국사봉이란 정상판이 걸려있는데 지도에는 해발고도가 322.4미터봉으로 표기된 곳이다.

견치산 국사봉은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과 심원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322.4m이고 선운산도립공원의 주봉인 수리봉(선운산 천왕봉) 남서쪽에 위치한 높지 않은 산으로 국사봉(國師峰)으로도 불리는데 산의 생김새가 마치 개의 이빨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현지 정상판에는 346미터의 견치산 국사봉이라 했지만 지도에는 322.4봉으로 표기된 정상을 내려 와 318 무명봉을 통과하고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키가 작은 산죽 등로를 타고 오르니 금새 견치산입구 이정표가 서 있는 공터에 도착을 하고 이제 좌측인 북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우측으로 우회 등로가 보이지만 직진으로 올라 커다란 돌탑과 고창409란 삼각점이 박혀있는 346.6미터의 개이빨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몇장 남겨본다.

개이빨산(346.6m, 돌탑과 고창408 삼각점)은 선운산(336m) 주위에 솟아 있는 낮은 산으로 국사봉이라고도 하는데 서쪽은 절벽을 이루어 조망이 뛰어나고 내려오면서 보이는 도솔암 직전의 암릉과 암곡은 한국에서 보기 힘든 아름다운 곳이다.

선운산 능선을 따라 그다지 높지 않은 구황봉(298m), 경수산(444m), 청룡산(314m) 등과 함께 산군을 이루고 있어 다양한 조망을 즐길 수 있는 이 일대 43.7 Km2가 1979년 12월 선운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공원 안에는 유서 깊은 선운사를 비롯하여 주요 문화재들이 많이 있으며 황홀한 경치를 볼 수 있는 명소들이 곳곳에 있어 일년 내내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교통편은 정읍에서 고창으로 가거나 선운사행 버스를 이용한다.

다만 정상에 필요한 정상 이정판이나 정상석 하나 보이지 않고 지도 상 표기된 해발고도와 현지에서 적어 놓은 높이가 제각각 달라 헷깔리고 아쉬움으로 남긴다.

 

높이 346.6미터의 개이빨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서쪽이 유일한데 나머지 방향은 나무들로 막혀 전혀 풍경이나 조망이 없다.

절벽 단애 위 가장자리에서 좌측인 서쪽을 살펴보니 방금 전 다녀 온 322.4미터의 견치산 국사봉 정상의 암봉이 지척으로 보이고 그 우측으로 다녀오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270.6미터의 남산도 보인다.

그 견치산 국사봉 뒤로는 할뫼 지나 우측으로 동호해수욕장 근처의 서해바다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돌탑과 삼각점이 박혀있는 346.6미터의 개이빨산을 지나 우측인 동쪽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우측으로 우회하는 등로와 만나고 곧이어 등로 좌측으로 키가 작은 산죽 등로 지나 이정목과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이곳 역시 서해랑길로서 경수지맥 마루금은 좌측인 수리봉 1.9 Km라 표기된 북쪽 방향으로 90도 크게 꺽어 내려가며 이어지는 길주의 지점에 도착을 한다.

직진 방향으로는 등로가 막혀있는지 뚜렷한 등로가 보이는데도 아무 표시도 보이지 않아 지도를 확인하니 삼인리 방향으로 내려갈 수는 있을 듯 싶은데 등로는 안 나있는 듯 보인다.

 

좌측인 북쪽으로 내려가니 등로 주변으로는 관목의 참나무 아래 키 작은 산죽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잠시 후 등로 좌측 위로 방금 전 머물다 내려 온 346.6미터의 개이빨산 정상부의 거대한 바위암봉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사진에 담고 조금 더 내려가니 정상에서 직선 거리 방향의 좁은 공터에 도착을 하고 다시 나타나는 관목의 참나무와 키 작은 산죽들이 혼재되어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산죽이 끝나고 굵은 참나무 사이로 잡목들이 우거진 뚜렷한 흙길 등로가 나타난다.

한동안 편안하게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오늘 새벽까지 먹이 활동을 한 식흔들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좌측으로 연천마을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만나 사진 한장 남기고 진행을 이어간다.

 

고창군 심원면 연화리 연천골은 연화동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연화천(蓮花川)의 발원지이고 연천골에 약 네 아름드리나 되는 당산나무가 바위 사이에 서 있는데 나라에 큰 변란이 생기면 칡덩굴이 온 나무를 휘감는다고 전해지는 마을 갈림삼거리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뚜렷한 굵은 소나무와 관목의 활엽수 사이로 나 있는 흙길을 따르니 눈 앞으로 안부 지나 올라야 할 선운산 정상부가 저 멀리 드높게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굵은 활엽수 한그루가 서 있는 곳에서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무명안부 지나 등산로안내도가 보이는 나즈막한 안부 지나 다시 완만히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만나고 내려 온 개이빨산과 그 우측으로 견치산 국사봉 그리고 우측 가장자리로 남산이 차례로 올려다 보인다.

그곳부터 오르막 경사도가 가파라지기 시작하더니 좌측으로 커다란 바위암릉들도 보이고 힘들게 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주능선 위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살펴보니 우측으로 참당암 하산 갈림길로서 좌측 위로는 선운산 수리봉 정상까지 0.17 Km 남아 있다는 거리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참당암 갈림삼거리를 지나 좌측으로 평이하게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바위암릉들이 보이고 선운03-08이란 이정목이 서 있는데 선운산 수리봉까지 이제 0.6 Km 거리라는 표시가 힘을 주고 있다.

이정목을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넘어 온 무명봉 우측 뒤 저 멀리 346.6미터의 돌탑과 삼각점이 박혀있던 개이빨산 우측 뒤로 322.4미터의 암봉으로 이뤄진 견치산 국사봉이 아름다운 능선을 이루며 서 있다.

 

등로 좌측인 서쪽으로도 심원면 마을과 들판들을 살펴보고 서해바다를 다시 한전 더 사진에 담은 후 다시 전망바위를 내려 와 천천히 걸어 전진하니 금새 커다란 정상석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 정상판이 보이는 334.7미터의 선운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실데 정상에는 336미터의 수리봉이란 정상석과 정상판이 보인다.

선운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도솔산(兜率山)이라 하였으나 백제 때 창건한 선운사가 유명해지면서 선운산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주위에는 구황봉(298m)과 경수산(444m) 및 견치산(345m) 그리고 청룡산(314m) 등의 낮은 산들이 솟아 있다.

선운산 주봉은 도솔산, 수리봉으로 불리는 선운산 뒤 봉우리로 대부분의 자료에는 선운산을 336m로 표기하고 있으나 현재의 지형도에는 선운산 표기는 없고 천왕봉 329m로로 표기되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전국 산 높이 정비사업"에 의하여 2007년 12월 발행한 한국의산지 산명사전편에는 335m로 표기되어 있다.

선운산은 그다지 높지는 않으나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릴 만큼 계곡미가 빼어나고 숲이 울창하고 봄의 매화와 동백 그리고 가을 단풍이 절경을 이룬다.

골이 깊고 물이 맑으며 수림이 울창하여 절경을 이룬 하늘과 바다가 한 빛으로 붉게 물들어 태양이 바닷물 속으로 빠져드는 황홀한 경치를 볼 수 있는 낙조대, 신선이 학을 타고 내려와 놀고 갔다는 선학암 등과 봉두암, 사자암, 용문굴, 만월대, 천왕봉, 여래봉,인경봉, 구황, 노적봉 등 많은 명소가 있다.

 

도상 이름과 해발고도가 각기 다르게 표기된 336미터의 수리봉 정상석이 있는 곳에서 추억과 사진 몇장 남기고 몇발자국 더 걸어가니 넓은 사각탁자와 등산로안내판 및 이정목 그리고 이정표가 서 이는 또 다른 공터의 선운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이정표에는 이곳도 선운산이라 했으며 진행 방향으로는 마이재까지 0.7 Km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표시가 보인다.

선운산(천왕봉)은 전라북도 고창군의 아산면과 심원면 경계에 걸쳐 있는 선운산도립공원의 중심으로 천왕봉을 주봉으로 하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334.7미터이다.

주진천(인천강) 서쪽에 위치하여 천왕봉을 중심으로 개이빨산, 청룡산, 비학산, 경수산, 구황봉 등이 북서쪽으로 흐르는 선운천 골짜기만을 살짝 열어둔 채 말발굽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어 마치 천혜의 요새를 떠오르게 한다.

원래 도솔산(兜率山)이라고 하였으나 백제 때 창건한 선운사가 유명해지면서 선운산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하지만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을 의미하는 도솔이나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선운 모두 불교와 관련된 명칭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무장)에는 선운산은 선(禪)을 선(仙)으로도 쓰고 현에서 북쪽으로 20리 떨어져 있다 라는 기록을 볼 수 있고 동일 문헌에 소개되어 있는 선운산곡은 무등산가, 지리산가, 정읍사 등 다섯 편의 백제가요 중 하나이다.

고려사(악지)에 선운산은 장사 사람이 병역에 나갔는데 기한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서 그의 처가 남편을 생각하고 선운산에 올라가 바라보면서 부른 노래이다 라고 하였다.

조선 후기 대부분의 무장현 지도에 선운산이 묘사되어 있고 특히 해동지도에 무장현 북단에 선운산이 기재되어 있으며 도솔암과 선운사가 함께 그려져 있다.

 

선운산 정상에서 많은 추억과 사진들을 남기고 북쪽으로 이어지는 참나무 등로를 타고 편안하게 걸어가니 자갈들이 박혀있는 좁은 공터 무명봉도 넘어 다시 활엽수가 깔려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진다.

그렇게 한동안 내려가니 이정목이 나타나고 제법 굵은 소나무들과 관목의 참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로 바뀌더니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덮혀있는 무명묘지를 통과하고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과 또 다른 무명묘지 지나 등산로안내판과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마이재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으로는 희미한 등로가 보여 살펴보니 석상암으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로서 석상암으로 내려가면 선운산입구 방향으로 쉽게 내려갈 수 있을 듯 보이는데 실제 등로가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하였지만 이정표에 방향과 거리 표시가 되어 있으니 사용해도 문제는 없을 듯 보이는 고갯마루였다.

다만 왜 마이재라 했으라 궁금해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에 대한 자료는 찾을 수 없어 지도를 확인해 보니 좌측의 고창군 심원면 연화리와 우측의 아산면 삼인리를 이어주는 경계지점의 안부이다.

 

갈림삼거리인 마이재 안부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부드럽고 완만한 흙길의 관목 사이로 나 있는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가 점점 가파라지기 시작하고 나무들의 종류도 관목에서 굵은 소나무로 바뀌는데 오르는 도중에 나무 뒤로 숨어 있는 이정목 하나가 눈에 들어 와 살펴보니 마이재에서 벌써 0.5 Km 올라 왔고 경수산까지는 1.7 Km 남아 있다는 거리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급하지 않게 소나무에서 참나무로 변경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여유있게 오르니 굵은 참나무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확인해 보니 법광님이 335.7봉이란 고도 표시가 보여 지도를 보니 도상 335.7봉 정상인데 굵은 참나무 몇그루와 약간의 바위가 전부인 곳으로 자주 보이던 이정판도 보이지 않아 아쉽게 선답자들의 띠지들만 사진에 담고 다시 출발한다.

 

약간의 바위와 참나무들이 보이는 335.7봉 지나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며 진행 방향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드디어 경수산이 가깝게 다가와 있고 그 풍경들을 사진에 담으며 진행하니 안부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올라 굵은 참나무들과 바위들이 보이는 무명봉도 통과한다.

바위 무명봉을 지나 내려가니 로프가 설치된 바위암릉이 나타나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다시 관목의 참나무 아래 말라있는 잡풀들이 보이는 평이한 흙길 등로를 타고 무명안부를 지나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이정목과 이정표 및 등산로안내판이 서 있는 좁은 공터 무명봉에 도착을 해 이정표를 살펴보니 우측으로 우체국수련원으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공터 무명봉이다.

 

그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둔덕 넘어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 가시잡풀들이 보이는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본격적인 경수산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오래 전 가족들과 거꾸로 내려왔던 이 등로가 맞는지 도통 기억에서 사라진 느낌이다.

잠시 후 오르막 등로 양쪽으로 빼곡하게 자라는 관목의 소나무들이 아름답고 위로 오를수록 등로도 점점 희미해지더니 키 작은 가시잡풀들이 늘어나며 이곳이 정상 등로인지 의심되는 순간 다시 뜨렷한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마이재에서 1.5 Km 지나왔고 경수산까지 0.7 Km 남아 있다는 이정목이 서 있어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고 사진에 담은 후 산행을 이어간다.

 

이정목을 지나면서 뚜렷한 등로가 계속 이어지고 잠시 후 굵은 소나무 한그루가 잡목 사이에 독야청정 서 있는 무명봉 넘어 너럭바위 지대를 통과하니 등로 주변으로 키가 큰 나무들이 사라지고 관목과 잡목들이 보이기 시작하며 조금씩 풍경과 조망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잠시 후 작은 바위지대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올라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심원면 연화리 화산마을과 좁은 들판 그리고 연화봉과 무명산줄기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연화제가 보이고 그 우측 옆으로 심원면사무소가 있는 마을 뒤로 드넓은 서해바다가 펼쳐져 있는 풍경들도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 심원면 마을과 들판 그리고 서해바다를 확인하고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거대한 바위암봉들이 등로를 가로막고 있어 우회하며 어렵게 통과한 후 그 바위암봉으로 올라 뒤돌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경수지맥 제2구간 거의 전부가 한눈에 들어 온다.

우측 가장 가까운 곳으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만 걸려있던 335.7봉이 보이고 그 바로 좌측 뒤로 선운산 수리봉 지나 우측 가장 먼 곳으로 322.4미터의 견치산 국사봉과 그 좌측으로 346.6미터의 돌탑과 삼각점이 있던 개이빨산이 차례로 줄지어 늘어서 있고 선운산 뒤 저 먼곳으로는 국기봉이란 정상판이 걸려있던 335.5봉과 쥐바위 지나 좌측으로 도솔제 뒤로 들리지 못한 비학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한동안 더 머물며 많은 사진에 담고 그 이름들을 불러 본다.

 

햇살도 따뜻하고 허기도 져 잠시 배낭 내려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진행 방향을 올려다 보니 경수산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 무명봉이 가깝게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사진에 담은 후 힘을 내 출발하니 한동안 완만한 오르막 등로에는 수북한 활엽수 낙엽들이 쌓여 더욱 크게 바스락거리는 리듬감이 귓전을 때리기 시작한다.

잠시 후 경수봉까지 0.2 Km 거리라는 이정목을 지나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거대한 바위암봉들이 나타나고 등로에는 파란 앞이 무성한 키 작은 산죽들이 우거져 있는데 그 산죽 사이로는 통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조심스럽게 오른다.

잠시 후 다시 거대한 바위암릉 아래 더욱 더 가파라지는 오르막 바위 등로를 타고 어렵게 오르니 커다란 바위 위에 활엽수 낙엽들이 쌓여 있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보이고 넘어지지 않토록 천천히 전진하니 산죽들이 사라지고 촘촘하게 설치된 통나무 계단이 길게 올려다 보이고 그 끝자락에는 우측으로 다시 철계단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오래 전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족이 함께 올라 이곳을 통해 내려갔을 것 같은데 이곳은 전혀 기억이 없어 헷깔리기만 한데 결국 경수산 정상석이 설치된 무명봉에 도착을 해서야 이곳이 왜 기억이 없었는지 이해가 되어 홀로 피식 웃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가파른 통나무 계단을 타고 몇번이나 쉬어가며 오르니 드디어 통나무 계단이 끝이나고 우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철계단이 보여 그 계단을 타고 오르니 갑자기 커다란 경수산이란 정상석과 그 좌측으로 이정표 및 이정목 및 등산로안내판이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오래 전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4명이 올라왔을 땐 이곳 무명봉에도 정상석 없이 철로 만든 안전봉과 이정표만 있었으며 방금 전 올라 온 하산등로에는 계단들이 오늘처럼 많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등로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 기억속에서 사라진 듯 보였던 것이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관리사무소이자 선운사 방향으로 하산할 수 있는 등로이기에 저 정상석 뒤로 올라 좌측으로 진행해 조금 떨어진 실질적인 경수산 정상석 방향으로 진행을 하는데 왜 실질적인 경수산 정상이 아닌 이곳에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우측으로 선운산 관리사무소와 선운사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에 세워진 경수잔 정상석과 이정표를 확인하고 정상석 뒤로 올라 좌측인 북서 방향으로 오르니 관목의 활엽수 등로가 아름답게 펼쳐지고 잠시 편안하게 따르니 갑자기 눈 앞으로 바위암릉이 나타난다.

조심스럽게 그 바위암릉으로 오르니 등로 좌우측으로 환상의 풍경과 조망들이 펼쳐지기 시작하고 잠시 발걸음 멈추고 많은 사진과 추억에 담으며 그 이름들을 불러본다.

제일 먼저 동쪽을 살펴보니 바로 우측으로 경수산 정상석이 설치된 무명봉 지나 관리사무소로 통하는 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사자봉 능선이 흐릿하고 좌측으로는 주진천(인천강) 넘어 뾰족한 소요산 인상적이며 그 바로 좌측 뒤로는 흉물스런 채석장이 살짝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제 눈을 북쪽과 북동 방향으로 돌리니 이제부터 타고 걸어 내려가야 할 경수지맥 마지막 산줄기가 저 멀리 주진천과 서해바다가 만나는 지점으로 완만하게 고도를 낮추며 달려가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오고 그 합수점 뒤로는 부안면의 드넓은 경작지들과 마을들이 보이고 좌측 곰소만 넘어로는 젖갈과 수산물로 유명한 곰소항 지나 2년 전 겨울에 홀로 겨울비를 맞으며 힘들게 마무리를 하였던 변산반도의 변산지맥 마루금이 아련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까지 추위로 고생은 했지만 풍경과 조망이 좋았는데 햇살로 인해 기온이 오르면서 박무가 심해져 깨끗한 조망을 볼 수 없으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진처럼 환상의 풍경들을 살펴보고 그 이름들을 불러 줄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바위암릉에서 환상의 풍경과 조망들을 즐기고 다시 천천히 걸어가며 진행 방향을 보니 바위암릉 지나 큰 소나무들이 보이는 경수산 정상부가 손에 잡힐듯 가깝게 다가 와 있다.

등로 좌측으로 심원면 방향의 나즈막한 산줄기와 마을들 그리고 서해바다를 살펴보고 바위암릉을 통과한 후 약간의 잡풀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한쪽이 깨진 부안308이란 삼각점이 박혀있고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두고 많은 선답자들이 산행 띠지들을 달아 놓은 445.3미터의 경수산 정상에 도착을 해 몇장의 사진과 추억으로 남겨 본다.

경수산(445.3m, 부안308 삼각점)은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와 심원면 월산리에 걸쳐 있는 선운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서 명칭유래를 살펴보면 경수산에서 바라보는 곰소만(줄포만)의 바닷물과 주진천(인천강)의 물이 거울같이 맑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지리산은 전체를 지칭할 때는 지리산이라 하고 그 산에 소속된 모든 봉우리들은 산으로 부르지 않고 주봉은 천왕봉, 제2봉은 반야봉, 중봉, 하봉, 바래봉, 제석봉 등으로 부르지만 선운산은 봉우리마다 산과 봉을 함께 쓰고 있어 혼선이 되기에 따라서 산 전체를 지칭할 때는 선운산 그리고 선운산에 소속된 봉우리들은 모두 봉으로 표기해야 옳다고 여겨진다.

경수산은 고창 선운산 도립공원에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로 주진천(인천강) 하구를 가운데 두고 높이가 같은 소요산(444.2m)과 나란히 솟아 있으며 이 선운산의 경수산은 소요산과 높이가 같아서 형제봉으로도 불리고 있다.

산줄기는 호남정맥의 내장산 까치봉과 백암산 중간 지점의 순창새재에서 서쪽으로 분기한 영산기맥(영산강 분수령)의 구황산에서 북쪽으로 갈라져 나온 경수지맥(선운산 줄기)이 삼태봉-왕제산-선운산 청룡봉-천마봉-개이빨봉-도솔봉을 거쳐 경수산에 닿는다.

물줄기는 북동쪽은 줄포만(곰소만)과 주진천(인천강), 남쪽은 도솔천이 주진천(인천강)에 합류한 뒤 줄포만(곰소만)으로 흐른다.

1997년에 환경부에서 실시한 자연환경조사에 의하면 경수산 일대에 서식하는 포유류는 30과 36종 6변종 1품종 등 총 43종류이다.

경수산 일대는 선운산 도립공원의 최북단으로 주변에는 소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경수산 북쪽으로는 줄포만(곰소만)과 변산의 산줄기, 서쪽으로는 위도와 칠산어장, 남쪽으로는 선운산의 구황산과 비학봉, 청룡봉 및 투구바위와 도솔계곡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주진천(인천강)과 소요산이 바라다 보인다.

산행 코스는 선운산관리사무소-중촌마을-계곡-경수산-마이재-도솔봉-개이빨봉(견치봉)-소리재-천마봉-용문굴-관리사무소 구간으로 거리는 12.2 Km이며 약 5시간 정도 소요된다.

오래 전 가족들과 경수산 정상석이 설치되어 있는 무명봉까지는 올랐었는데 실질적인 경수산 정상은 오늘이 처음으로 이곳부터 고막재 지나 주진천이 서해바다에 합류하는 합수점까지도 처음 만나는 산줄기이니 기대가 큰 시간이기도 하다.

 

경수산 정상에서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주위를 둘러보나 이곳 정상 역시 나뭇가지에 막혀 풍경과 조망이 전혀 없기에 곧바로 출발해 내려가니 북쪽으로 관목의 활엽수들이 빼곡하고 그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나 있어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역시나 활엽수 낙엽들이 깔려있어 미끄럽기에 주의하며 진행한다.

내려갈수록 관목들은 사라지고 굵은 나무들 아래 키 작은 잡목들이 등로 주위에 산재되어 있고 등로에는 우거졌다 말라있는 빛바랜 잡풀들이 보여 등산화에 자주 걸리기에 다치지 않토록 조심하며 내려가니 갑자기 커다란 바위가 눈 앞에 나타난다.

그곳에서 우측을 보니 발 아래 용기리마을과 들판들 그리고 산행 후 달려가야 할 22번 선운대로 4차선 포장도로와 주진천(인천강) 뒤로 여전히 뾰족하게 솟아 있는 소요산이 눈에 들어오고 사진에 담고 조금 더 전진하니 굵은 소나무에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390.3봉에 도착을 한다.

 

그 390.3봉 이정판 앞에서 추억을 남기고 우측을 보니 작은 돌탑이 보이고 그곳으로 가 살펴보니 바로 눈 앞으로 용기리마을과 들판 및 도로 그리고 주진천 넘어 뾰족한 소요산이 여전히 강렬한 존재감을 알리고 그 좌측 뒤로는 두군데나 파헤쳐진 채석장이 훙물스럽게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용기리는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에 몇 개의 낮은 산이 있고 용기리의 지명은 앞산이 용의 형국이라 하여 용기라 하였다.

용기리의 자연마을은 수다동마을과 용기마을이 있는데 수다동마을은 마을 앞에 임내(인천)가 흐르며 물이 풍부하다 하여 명명하였고 용기마을은 앞산이 용의 형국이라 하여 명명되었으며 마을에는 오효자 정문(조선조 영조 때 효자 오 득인과 그의 아들 오성손의 정문)이 있다.

 

이제 가깝게 내려다 보이는 주진천(인천강)을 내려다 보며 다시 그 390.3봉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관목의 활엽수 아래 키 작은 파란 산죽 등로가 나타나고 한동안 산죽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다시 등로는 굵은 소나무들 사이로 키 작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잠시 후 잡풀들이 무성한 묘지를 지나 내려가지 잡목들의 저항이 심해지기 시작하고 조심하며 잡목들을 헤치며 전진하니 눈 앞으로 나즈막한 봉우리 하나가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활엽수 낙엽들이 푹신하게 깔려있는 무명안부 지나 다시 오르니 커다란 바위들이 나타나고 그 바위 사이로는 가시잡목들이 우거지고 쓰러진 고사목들도 보여 진행에 애를 먹는데 자세히 보니 예전에 불이 났었는지 커다란 고사목들이 아직도 정상부 바위 주위로 서 있는 모습이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커다란 바위들과 굵은 고사목들 그리고 가시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무명봉을 어렵게 통과하고 다시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나즈막한 무명안부 지나 평이한 잡목등로가 계속 이어진다.

잠시 후 금곡님의 산행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 지나 공터 무명봉도 통과하고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 진행하니 오래 전 살아 있을 때 자주 산행기를 탐독했던 신공식님의 빛바랜 산행 띠지 한장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

띠지를 사진에 담고 한동안 이어지는 잡목등로를 따라 조심하며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 우측으로 높은 절개지가 나타나고 공사자 두명이 보여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터널공사를 하고 있는데 지반 상황을 확인하고 있는 중이란 답변이 돌아 온다.

그곳에서 남동쪽을 살펴보니 주진천(인천강)이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위로 용선교 지나 솟아있는 소요산이 이제는 많이 변화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소요산은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용산리와 선운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명칭유래를 보면 소요대사가 창건한 소요사에서 따온 이름으로 소요사는 풍수지리상 제비가 보금자리에 깃든 형상의 연소혈(燕巢穴)로 소요산 목울대 부근(소요산 동쪽 암벽 아래)에 있다.

소요산의 별칭은 높이가 같은 경수산(경수봉)과 형제처럼 나란히 솟아서 형제봉으로 불리고 두 개의 산중에서 하나가 흥하면 하나는 쇠퇴한다는 속설이 있으며 또 소요산의 형상이 붓끝처럼 뾰족해서 문필봉으로도 불리고 있다.

선운산에서 가장 높은 경수산(경수봉)과 형제처럼 사이좋게 솟아 있는 소요산의 산줄기는 호남정맥의 내장산 까치봉과 백암산 중간 지점의 순창새재에서 서쪽으로 분기한 영산기맥이 뿌리다.

이 영산기맥은 정읍시 입암산과 고창의 방장산을 거쳐 벽오봉(방문산)에서 북쪽으로 소요지맥을 나누는데 이 소요지맥은 사실터고개와 화시봉 및 굴치를 지나 소요산을 솟구치고 주진천(인천강) 하구인 구룡동에서 그 맥을 다한다.

물줄기는 동쪽은 용산천을 통해서 주진천(인천강), 남쪽은 주진천(인천강)에 합류되어 줄포만(곰소만)의 서해로 흘러든다.

정상에 서면 북쪽은 줄포만(곰소만)과 그 너머로 드넓은 서해 바다와 변산의 산줄기, 서쪽은 선운산에 소속된 산봉우리, 동쪽에는 화시봉과 방장산·입암산·내장산이 한눈에 보이는 조망대이다.

소요산의 높이는 445.4m이고 흥덕현지에 따르면 옛날 소요산 산정에 기우제를 지내던 천제단이 있고 북쪽은 취은처사 황세기와 귀암 황제중 부자가 시를 짓던 명옥대와 유선대가 있으며 남쪽에는 김하익의 효행 일대기를 담은 백허당(白虛堂)이 새겨진 효자바위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소요산 동쪽에는 백제 위덕왕 때 소요대사가 창건한 소요사가 있는데 이 곳에 소요사를 창건한 소요대사 및 연기사를 창건했던 연기조사와 도선선사 등 당대의 고승들이 머물렀으며 북쪽에는 미당 서정주의 고향인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에 미당시문학관이 있다.

소요산 주변에서 미당 서정주, 인촌 김성수, 보천교의 창시자 차경석 등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며 서쪽에는 고창의 젖줄인 주진천(인천강)을 비롯한 선운산 도립공원 자락에 동백과 상사화로 유명한 선운사가 있다.

 

이제 눈을 북동 방향으로 돌리니 바로 발 아래 터널공사장과 22번 선운대로 4차선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 붙어 있는 주진천(인천강)이 보이고 그 주진천을 따라가면 서해바다와 만나는 합수점 우측으로 부안면 선운리의 드넓은 들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진천(인천강)은 전라북도 고창군의 성송면 판정리와 계당리에서 발원하여 곰소만으로 유입하는 하천이다.

유로는 발원지 일대에서 북쪽으로 흐르다 향산리와 괴치리를 지나 낙양리 소보 마을 앞에서 평지천을 합류하고 아산면 주진리의 주진 마을 앞에서 강남천을 합해 잠시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흐르다 하갑리의 아산교(하갑교) 아래에서 고창천을 합류한다.

계산리의 비석 마을 앞에서 두월천을 반암리의 영모정 마을 앞에서 용산천을 삼인리의 삼인교 인근에서 선운천을 각각 합류하고 부안면 선운리의 구룡동 마을 앞에서 서해의 곰소만으로 들어간다.

주진이란 지명은 하천을 이루는 여러 물길의 합류처가 주진(배날)이기 때문에 유래했다고 전해지는데 무장천이라고도 부르는 하천의 발원지나 그 유역이 대체로 조선 시대 무장현 지역에 속하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향토지에 의하면 판교천과 이진천으로도 불린다고 하는데 고창천을 합류한 이후의 구간은 특히 인천강 또는 태천으로 그리고 두월천, 용산천, 선운천 등을 합류한 하류 구간은 장숙강 또는 장연으로 구간마다 다른 이름이 있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한국지명총람에 소개된 인천강 또는 장수강은 곧 현재의 주진천을 말하는 것이다.

 

터널 공사장 상단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멋진 풍경과 조망들을 즐긴 후 다시 이어지는 잡목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잠시 후 나뭇가지 사이로 22번 선운대로 2차선 포장도로와 아침에 주차시킨 애마 그리고 통닭은 판매하는 커다란 텐트들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는데 도상 고막재로 표기된 고갯마루로서 그 고막재 뒤로도 여전히 나즈막한 마지막 봉우리가 보이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잡목등로를 헤치며 내려가니 우거진 잡목들과 잡풀들 사이로 편백나무들도 보이고 곧이어 잡풀에 뒤덮혀 있는 시멘트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금새 고막재라 표기된 22번 선운대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고막재는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용기리의 서쪽에 예전 막을 치고 살던 마을이 있었던 고막(古幕, 일명 고막이)와 고막 뒤쪽에 상고막이 및 고막 아래쪽에 하고막이 등의 들이 펼쳐져 있는데 그 지명 이름을 차용하며 붙여진 고갯마루 이름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막재 도로로 내려 와 차량 통행이 별로 없기에 손쉽게 도로를 건너 애마에 배낭을 남겨두고 물 한모금 마신 후 모바일 폰과 스틱만 들고 눈 앞에 보이는 나즈막한 야산으로 오르니 초반부터 지덕한 가시잡목들이 등산바지를 잡고 늘어져 애를 먹는다.

어렵게 능선을 오르니 이번에는 가시가 달려있는 드릅밭이 펼쳐지고 이리저리 가시에 찔리지 않토록 조심하며 진행하니 정상부에 선답자의 산행 띠지 한장이 걸려있어 어렵게 사진 한장 남기고 그 드릅 군락지를 빠져 나가 묘지지대로 어렵게 진행을 이어간다.

 

묘지들을 우측에 두고 좌측 가장자리를 타고 걸어가니 갑자기 좌측에서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한동안 그 임도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가니 그것도 잠시 지독한 잡목들과 말라있는 덩굴식물들이 앞을 가로막아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보인다.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마루금은 포기하고 우측 가파른 내리막 잡목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농막이 나타나고 그 앞으로 지나는 비포장임도를 만나 좌측으로 몇걸음 걸어가니 드디어 경수지맥 능선이 끝나는 갈림삼거리 임도에 도착을 하고 우측의 주진천이 서해바다와 만나는 합수점으로 걸어 들어가다 뒤돌아 보니 경수지맥 마지막 능선을반원형으로 감싸며 휘돌아 가는 비포장임도가 이제는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좌측으로 뻘밭을 두고 우측으로는 물을 저수한 웅덩이들을 살펴보며 합수점 방향으로 걸어가니 수많은 검둥오리들이 쉬면서 깃털을 손질하다 이방인의 출현에 군무를 하고 있어 괜시리 미안하기도 하고 멋진 군무에 감탄을 하기도 한다.

잠시 후 드디어 우측의 주진천(인천강) 물이 좌측의 서해바다와 만나는 합수점에 도착을 해 이틀에 걸쳐 걸었던 경수지맥이란 산줄기 산행을 마무리하며 사진 몇장 담으며 자축을 해 본다.

좌측 서해바다 뒤로는 2년 전 홀로 걸었던 변산반도의 변산지맥 마지막 산줄기들이 박무속에 희미하게 눈에 들어 와 잠시 옛 추억에 젖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변산반도의 동쪽은 김제시와 정읍시에 북쪽은 부안만에 남쪽은 곰소만에 그리고 서쪽은 황해에 접하고 범위는 대체로 부안군의 면적과 일치하며 북동쪽의 동진강에서 남서쪽의 반도해안 끝까지의 길이는 약 90 Km이다.

반도의 동반부는 광활한 호남평야의 일부가 되어 곡창지대를 이루고 서반부는 노령산맥에서 분리되어 생긴 산괴인데 숲이 우거진 산과 계곡이 모래해안 및 암석해안과 어울려 뛰어난 경승지를 이룬다.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지역을 외변산이라 부르고 내륙부를 내변산이라 부르며 중앙 내륙부는 199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격포리 해안의 채석강과 적벽강 및 신라 때 창건된 내소사와 직소폭포 및 고사포해수욕장, 월명암 낙조대 등 관광자원이 많다.이곳에서 자라는 곧고 큰 소나무인 변재와 야생 난초인 변란 그리고 이 곳에서 나는 자연산 꿀인 변청을 일컬어 삼변이라고 한다.

 

주진천(인천강)이 서해바다와 만나는 합수점에서 경수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서해바다 건너 펼쳐진 산줄기를 살펴보니 바로 2년 전 겨울에 홀로 어렵게 걸었던 변산반도의 변산지맥 마루금으로서 그때의 추억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변산반도 동쪽으로는 젖갈로 유명한 곰소항이 있는 곰소만이 있어 찾아보니 곰소만(줄포만)은 전라북도 부안군과 고창군의 경계를 이루는 만으로 만의 대부분에 갯벌이 매우 잘 발달되어 있으며 서해안의 만 가운데 원지형의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과거에는 대표 어항인 줄포(부안군 줄포면 줄포리)의 이름을 따서 줄포만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곰소(부안군 진서면 곰소리)가 가장 큰 어항이자 경제 활동의 중심이다.

곰소만의 명칭유래를 보면 과거에는 대표 어항이었던 줄포의 이름을 따서 줄포만이라고 하였으나 현재는 곰소만으로 불린다.

곰소라는 지명은 과거에 소금을 곰소라고 부른데서 유래한다는 설과 곰소 일대 해안의 형태가 곰처럼 생겼고 작은 소가 존재한데 서 유래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곰소만은 대체로 수심 10미터 미만의 얕은 바다를 이루며 대부분 갯벌로 이루어 졌고 곰소만의 조석은 1일 2회로서 평균 조차는 0.4338미터이며 조류는 창조류가 초당 1.115미터에 낙조류가 초당 1.5미터로서 낙조류가 우세하다.

평균 해면은 7~8월에 최고이고 1~2월에 최저로써 약 40 Cm의 차이를 보인다.

곰소만의 갯벌 퇴적물은 갯벌의 아래쪽으로 갈수록 굵어지는 경향이 있으며 모래를 중심으로 한 사질 퇴적물은 만의 남서 해안을 따라 만의 내부로 유입되고 있다.

곰소만의 갯벌은 점토질 갯벌, 혼성 갯벌, 사질 갯벌로 분류되는데 사질 갯벌은 주로 간조시의 해수면인 저조선 부근에 분포하고 점토질 갯벌은 만조시의 해수면인 고조선 부근에 분포하며 그 사이에는 혼성 갯벌이 나타난다.

해수면이 현재보다 약 120alxj 이상 낮았던 약 1만년 전의 지난 빙기 동안에 곰소만은 남쪽의 고창군에서 흘러오는 주진천에 갈곡천이 합류하는 동서 방향의 좁은 골짜기를 이루었을 것이나 1만년 전 이후부터 해수면은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고 약 5~6천년 전에는 현재와 거의 유사한 고도에서 해수면이 정체되면서 주진천의 골짜기에 바닷물이 들어와 현재와 같은 만의 형태를 이루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급격한 해수면 상승 시기에 하천의 유수와 바다의 파랑 및 조석 작용에 의해 침식 작용이 활발해지면서 만을 빠져나갔던 퇴적물들은 약 5~6천년 전부터 곰소만 내에 퇴적되기 시작하였고 해수면이 현재의 고도에 거의 안정되면서 완만한 지형 기복과 경사를 가진 곰소만은 서해안의 큰 조차와 주변으로부터 다량의 퇴적물 공급으로 인해 현재와 같은 넓은 갯벌이 형성되었다.

곰소만은 조선시대부터 어업과 염전이 성하였고 곰소만의 안쪽 깊숙이 위치한 대표적인 어항인 줄포는 해방 이후에도 조기잡이의 어항으로 호황을 누렸으나 갯벌의 매립으로 어선의 출입이 어려워지면서 곰소만의 북쪽 해안에 위치한 곰소가 성장하여 현재는 곰소만을 대표하는 어항이 되었다.

곰소만의 해안에는 과거에 염전이 많았으나 1980년대 후반에 들어 사양길을 걸어 염전이 많이 줄어들었고 최근에는 곰소를 중심으로 젓갈 생산과 판매가 활발해지면서 젓갈 생산에 필요한 소금이 주변 염전에서 생산되고 있다.

현재 곰소의 어항 주변에는 젓갈 시장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곰소만은 갯벌의 간척률이 약 21%로 우리나라 서해안의 다른 만들에 비해 낮은 편으로써 서해안의 함평만 및 가로림만과 함께 해안과 갯벌의 지형이 대체로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편이라서 환경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다.

 

이제 경수지맥 마지막 지점인 주진천(인천강)이 서해바다와 만나는 합수점에서 변산반도의 변산지맥 마루금과 곰소만을 살펴보고 사진과 추억을 남긴 후 비포장임도로 뒤돌아 나와 좌측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농막을 지나 걸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갯벌체험마을과 미당시문학관 가는 방향표시와 거리가 보인다.

그곳에서 우측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임도 좌측으로 주진천(인천강)이 바로 옆으로 보이고 그 주진천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목책들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오늘 하루종일 봤던 소요산이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올려다 보인다.

 

좌측으로 소요산과 주진천을 살펴보며 조금 더 걸어가니 팔각정이 나타나고 그 옆으로 국가생태문화탐방로 안내판이 서 있어 확인하고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긴 후 주진천 변을 따라 설치된 나무데크를 따라 걸어가니 좌치나루터와 기수역 및 인천강 기수역(하구)이라는 안내판들이 보야ㅕ 잠시 읽어 보는데 기수역이란 단어는 처음이라 너무 생소하기만 하다.

좌치나루터는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용기리와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고룡동을 연결하던 조선 시대 나루의 터로서 옛 무장현(현 무장면)과 흥덕현(현 흥덕면)의 해안을 연결하는 나루이고 외부 소금장수들이 질마재를 넘어 무장현의 해변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사러 다니거나 심원면 사람들이 부안면 난산장(알뫼장)을 오가는 데 이용되었다.

풍수로 꿩이 앉은 형국이어서 좌치나루터라고 하였고 나루 양쪽에 주막이 있었는데 심원면 용기리 쪽에는 나룻가 바로 위에 부안면 선운리 구룡동 쪽에는 독바위에 사공이 거주하는 주막집이 있었다.

만조 때에는 구룡동마을 소나무 근처 즉 가는쟁이 독바위까지 배로 건넜지만 간조 때에는 갯고랑만 건너고 개펄 지역은 노두라고 하는 징검다리를 이용하였다.

일제 강점기 무렵에 근처 마을 사람들은 나루를 이용하는 대가로 봄가을에 보리와 나락을 한 말씩 지불하였고 6·25전쟁 때에는 나루를 건너기 위하여 심원면 용기리 쪽 나루터에 있던 좌익 200여 명이 사살된 현장이기도 하며 1970년대 초반 배삯은 1인당 30원이었는데 용선교가 건설되던 1995년 무렵까지 운영되었으며 최후의 사공은 백정기였다.

현재는 좌치나루터 양쪽에 있는 주막도 철거되어 묵은 밭으로 변하였으며 갯고랑에는 장어잡이 그물이 가로질러 있고 구룡동 쪽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기수역은 하구역(河口域:estuary)이라고도 하는데 담수의 양은 집수역의 강수량에 따라 불규칙하게 변하고 바닷물은 조수의 간만으로 규칙적인 상하운동을 하므로 염분농도는 0.5∼30‰로 매우 광범위하며 계절이나 강수량 등에 따라 변화가 심하다(보통 염도 0.5‰ 이하의 물은 담수, 30‰ 이상을 해수라고 한다).

따라서 기수역에는 이러한 광범위한 염분농도에 적응할 수 있는 생물들이 분포하며 생물의 종류는 순수 해양생물이나 담수생물군에 비해 수가 적으나 해양생물에 속하는 종류가 대부분이며 담수생물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구(河口) 이외의 해안지대 호수나 늪지대에 바닷물이 주기적으로 들어와 기수생태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나무데크에 설치된 좌치나루터와 기수역에 관한 자료들을 읽어 본 후 모두 사진에 담고 다시 우측으로 설치된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다시 방금 전 지나간 22번 선운대로 2차선 포장대로가 지나는 고막재에 도착을 해 스틱을 접고 등산복만 간단히 갈아 입은 후 남아 있던 식은 커피로 갈증을 달래고 곧바로 귀가를 서두르는데 시간은 벌써 오후 3시를 훌쩍 넘어거고 있다.

예상과 달리 등로가 좋아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부스터샷을 접종한 후 너무 일찍 운동을 시작해서 그런지 아니면 지난 주 운동을 하지 못하고 내려 와 2주만에 다시 걸었던 체력문제인지 모르게 어렵고 힘들게 진행된 경수지맥이지만 이틀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귀가할 수 있어 오늘 하루도 감사한 마음으로 보내는 시간이다.

이제 다음주에는 연말연시이니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가능하면 호남지방의 지맥 몇군데를 마무리 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보지만 역시나 강추위와 눈 소식이 문제로서 순리에 따를 수밖에 없으니 좋은 날씨가 이어지길 바래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