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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경수지맥(영산.완)

경수지맥 제1구간 암치리에서 분기점찍고 희어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21.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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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북도 고창군의 경수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1년 12월 22일 (수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맑았으나 가끔 구름이 있었으며 박무로 시야가 제한되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5도에서 영상 08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암치리(평림암치로 시멘트 포장도로, 민가)-능선진입(비포장임도)-묘지들-잡목등로-시멘트 포장도로-잡목능선진입-광산김씨 묘지-잡목 및 바위등로-경수지맥 분기점(395봉, 준희님 이정판)-구황산 서봉(445봉, 잡풀묘지, 항공무선표지안테나)-경수지맥 분기점 복귀-시멘트 포장도로-잡목등로-묘지들-시멘트 포장도로(평림암치로)-갈림삼거리-능선진입(산죽터널)-무명묘지2-산죽등로-밀양박공 묘지-길주의(좌측으로)-무명묘지들-잡풀등로-밭경작지-비포장임도-장흥고씨 가족묘지-밭경작지-893번 평림암치로 2차선 포장도로-성송초등학교-밭경작지-민가-백토1길 시멘트 포장도로-신라농원 표지석-비포장임도-나무 조림지-무명 묘지들-밭경작지-대성로 2차선 포장도로(춘강식물원 이정판)-대성로 시멘트 포장도로-지하통로(23번 고인돌대로 4차선 포장도로 통과)-비포장임도(봄 무우가 파종된 비닐하우스 단지)-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임도-잡목 능선진입-189.1봉(이정판, 무명묘지)-소나무 등로-무명묘지-벤취쉼터2-연치재 안부 이정표(매봉산 1.0 Km, 제비봉 0.5 Km, 고현마을, 중산제)-비포장임도-산죽터널-무명묘지들-무인산불감시카메라 무명봉-산죽터널-자작나무 조림지-벤취쉼터2와 남창마을 갈림삼거리 안부 이정표(매봉산 0.5 Km, 오소리봉 0.2 Km, 남창마을 0.9 Km)-삼태봉 갈림삼거리(비포장임도, 무명묘지3)-삼태봉(197.8봉 이정판, 인식불가 삼각점, 벤취쉼터2)-갈림삼거리 복귀-무명묘지-양판길 1차선 포장도로(무명묘지, 광산김씨 세장비)-소나무 잡목등로-188.9봉(이정판)-미륵봉 갈림삼거리-미륵봉(184.7봉, 띠지)-갈림삼거리 복귀-무명묘지-소나무 등로-송파진주정공 묘지-무명봉(큰 소나무)-묵은 비포장임도-갈림삼거리(전의이공 묘지들, 좌측)-비포장임도(우측 두리농장)-갈림삼거리(폐 축사)-갈림삼거리-시멘트 포장도로(덕림정동길)-초지와 정리된 밭경작지-갈림삼거리(좌측)-갈림삼거리(좌측)-갈림사거리(우측)-양파밭과 인삼포-734번 칠거리로 2차선포장도로-칠거리 버스정류장(덕림리 정동마을 표지석)-성남1육교(15번 서해안고속도로 통과)-남부권농기계임대사업소-성남 표지석과 버스정류장 및 이정표(영취정)-해림종돈과 대산양돈-우성목장 표지판-진영목장 표지판-갈림삼거리(시멘트 포장도로, 성동마을 표지석과 버스정류장, 좌측 대성농원 방향)-성동길 시멘트 포장도로-성동보건진료소-김해김공 묘지들-민가와 인삼포-밭경작지-능선진입-산죽터널-과수원-능선진입 절개지-무명묘지들-태봉산(94.8봉, 이정판과 고창445 삼각점)-비포장임도-씨앗등로 2차선 포장도로-김해김씨 세장산-한울농장 표지판-옥산신월길 시멘트 포장도로-갈림삼거리(좌측)-민가와 광산김공 합동제단-비닐하우스 단지-갈림삼거리(우측)-쪽파재배 비닐하우스 단지-갈림삼거리(우측)-태양광 발전시설과 비닐하우스 단지-갈림삼거리(좌측)-밭경작지-무명묘지들-잡목과 가시잡풀 능선진입-120.6 삼각점봉(이정판과 고창308 삼각점)-무명묘지들-고라송암길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직진)-갈림삼거리(우측)-갈림삼거리(우측)-갈림삼거리(좌측)-갈림삼거리(우측)-능선진입(무명묘지들)-벌목 후 편백나무조림지-이천서공 부부묘지-녹색철망 따라 우회-시멘트 포장도로-갈림사거리(우측)-비포장임도-양파밭-비포장임도-청보리로 2차선 포장도로-시멘트 포장도로(좌측)-무명묘지들-가시잡목등로-무명안부-태양광 발전시설-신촌농장길 1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거대 양계장-밭경작지-무명묘지 능선진입-벌목 잡목등로-무명묘지-126.3봉(이정판)-묵밭-석동길 1차선 포장도로-과실재(796번 왕제산로 2차선 포장도로)-석동 표지석-갈림삼거리(만화리 표지석, 우측 왕제산로 2차선 포장도로)-예향천리마실길 이정표(무장읍성 1.5 Km와 무장향교 3.4 Km, 축동마을 2.6 Km와 동학농민혁명기포지 7.1 Km)-갈림삼거리(좌측, 동학농민군로 2차선 포장도로)-갈림삼거리(우측 동학농민군로)-104봉(무장배수지)-무장배수지 철망잡목등로-대나무 등로-밭경작지와 비닐하우스 단지-절개지 위 지독한 가시잡목 등로-밭경작지-비석골길 시멘트 포장도로-갈림삼거리(좌측)-월림정동길 도로표지판-갈림삼거리(용전길 시멘트 포장도로)-청보리밭과 묘지들-밭경작지-용전길 시멘트 포장도로-갈림삼거리(우측)-참재(무장교차로, 796번 동서대로 4차선 포장도로)-15번 4차선 신설포장도로-궁동교차로 갈림사거리(좌측, 송림산로 2차선 포장도로)-갈림삼거리(우측, 양곡길 1차선 포장도로)-밭경작지(우측 공장)-풍산홍씨세장비와 묘지들-능선진입-무장석산 철망-지독한 가시잡목등로-무장석산 절개지-집사 상산김씨 묘지-김해김공 묘지-한제산(211.3봉 이정판, 고창410 삼각점)-잡목과 고사목 등로-벤취쉼터2와 이정표(희어재입구 1.7 Km, 배촌마을 0.8 Km, 한제산 0.3 Km와 무장석산 1.0 Km 및 궁동마을 1.8 Km)-무명안부-지장제산(152.2봉 이정판)-산죽등로-소나무 등로-희어재(733번 희어재로 2차선 포장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28.01 Km (암치리 평림암치로 시멘트 포장도로에서 구황산 서봉과 분기점 지나 733번 희어재로 2차선 포장도로 상 희어재까지)

             지맥산행 : 26.14 Km (경수지맥 분기점에서 733번 희어재로 2차선 포장도로 상 희어재까지)

             접속구간 : 01.87 Km (암치리 평림암치로 시멘트 포장도로에서 구황산 서봉 지나 분기점까지)

산행트랙 : 모바일 폰을 바꾼 후 절전모드를 해제하지 못해 산행트랙의 저장없이 진행

산행시간 : 10시간 18분 (07시 11분부터 17시 29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2시 00분 경수지맥 제1구간 날머리인 희어재를 향해 집에서 애마로 출발

                            05시 20분 733번 희어재로 2차선 포장도로 상 희어재에 도착 해 약 1시간 정도 차박

                            06시 35분 어렵게 연락된 고창콜택시로 산행 들머리인 암치리로 이동(063-562-1500,  30,000.-원)

                            07시 11분 산행 들머리인 암치리 평림암치로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

                            07시 45분 최근에 바꾼 모바일 폰의 오룩스 웹 문제로 30여분 소비했으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기록없이 산행 시작)

                    올때 - 17시 29분 733번 희어재로 2차선 포장도로 상 희어재에 도착해 제1구간 산행 종료

                            18시 10분 고창읍 히든모텔 투숙(40,000.-)

                            19시 20분 모텔 근처 횟집에서 회정식과 맥주 한병으로 저녁 해결 후 모텔로 복귀해 일찍 취침 (30,000.-)

경수지맥이란 ???

경수지맥은 영산기맥의 구황산 서봉(445봉)에서 남서쪽으로 250미터쯤 내려선 표고 약 395미터 되는 곳에서(묘 3기가 있는 곳) 서북 방향으로 가지를 쳐 내려가서 23번국도와 서해안 고속도로를 건너 비산비야지대의 태봉산(95.3봉), 삼태봉(197봉), 왕제산(151.1봉)등 얕은 산줄기를 이루며 무장배수지가 있는 106미터봉에 이른다.
106미터봉에서는 서북으로 송림산(295.3봉), 장사산(269봉), 덕림산(141.5봉), 망덕산(104봉), 봉대산(284봉), 금정산(263.7봉)으로 이어지는 길이 약 21 Km쯤되는 큰 산줄기 하나를 떨궈놓고  선운사가 있는 경수산을 향하여 북진하며 한제산(211봉), 지장제산(152봉)을 일구고 선운산도립공원으로 들어서서는 국기봉(336봉), 청룡산(314봉), 개이빨산(345.1봉), 천왕봉(327봉), 경수산(444.3봉)을 일구고 고막재와 20.6미터봉을 거쳐 용기마을옆 바닷가에 잠긴다.
이 산줄기에서 제일높은 경수산(444.3봉)에서 이름을 빌려와 경수지맥이라 부르며 도상거리는  약 35 Km되고 주진천(길이 29 Km에 면적은 228.68 Km2)의 우측 물막이가 되는 산줄기이다.

 

 

비산비야로 끊어질듯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지맥 산행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더 마음속에 새겼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경수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전북 고창군과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및 네이버의 지식백과,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지난주에는 업무가 바빴고 이번주 월요일 부스터 샷이 예정되어 있어 무리한 활동을 자제하라는 권고와 더불어 오랫만에 대천에서 가족 모임이 예정되어 있어 산행하기가 어려웠는데 코로나19 사태가 나빠지며 가족 모임이 취소되고 업무도 일찍 잘 마무리 되어 지맥 산행을 계획해 보는데 전국적으로 눈 예보가 있어 지난주는 쉬어가기로 한다.

얼굴을 다친 이후 홀로 나서는 산행에 대해 가족들이 느끼는 조금은 과도한 걱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마찰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세심한 산행계획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이번 주 초에 부스터샷까지 맞고 나니 백신을 맞은 팔이 뻐근해 걱정을 했는데 하루가 지나니 많이 완화되어 수요일 새벽에 늘 하던대로 고창으로 내려가 조금은 짧은 거리의 경수지맥을 마무리하고 올라올 계획을 잡아 보는데 몇번이나 올랐던 곳들이고 산의 높이도 높지 않아 어렵지 않게 마무리가 되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진행하다 보니 부스터샷을 맞고 곧바로 산행을 해서 그런지 아니면 지난주 산행을 하지 못한 탓인지 생각보다 많이 힘들고 어렵게 마무리를 한 산행으로 기억될 듯 싶다.

 

늘 하던대로 새벽 일찍 고창의 희어재로 내려 가 한시간 정도 차박을 더 하고 집에서 준비한 떡과 커피로 아침을 대신하고 택시를 부르는데 메타를 이용하지 않고 출발지부터 메터를 꺽고 온다는 사실에 몇군데 더 전화를 하다 잘 협상이 되어 예상보다 늦게 암치리에 도착해 택시를 먼저 보내고 트랙을 확인해 보니 트랙은 정상적으로 보이는데 기록이 되지 않아 살펴보니 절전모드라는데 모바일 폰을 교체한 후 처음 사용하는 트랙이다 보니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갑자기 난감하기만 하다.

40여분간 여러가지 고민하고 살펴봐도 해결될 기미가 없어 그냥 능선으로 오르니 지독한 잡목이 앞을 가로막고 어렵게 경수지맥 분기점에 도착을 하는데 가까운 곳에 구황산 서봉이 있어 그냥 뒤돌아 내려오기 아쉬워 구황산 서봉으로 오르니 진행 방향인 남서 방향으로 아름다운 풍경과 환상의 조망이 펼쳐져 있어 살펴보니 방금 전 산행을 시작한 암치리와 그 우측으로 무명의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사진 정중앙부로 성송초교와 삼태봉 및 미륵봉 넘어 우측 뒤 저 멀리 오후 늦게 만나애 할 무장석산과 한제산 및 지장제산으로 이어지는 경수지맥 제1구간 전 구간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많은 사진과 추억으로 남겨 본다.

 

트랙을 살피며 산행을 이어는 가지만 기록이 되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한데 더욱이 온 몸의 피로도가 평소와 달리 일찍오고 심하다는 생각인데 아마도 부스터샷을 맞고 조금 일찍 무리한 운둥을 해서 그런것은 아닐지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하다.

그래도 구황산 서봉에서 경수지맥 분기점 지나 밭경작지와 도로를 따라 삼태봉과 미륵봉을 넘고 다시 길게 이어지는 드넓은 드판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서해안고속도로까지 통과한 후 대산면 성남리 성동마을 뒤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태봉산으로 오르는 도중에 과수원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준비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 후 뒤돌아 보니 성동마을 지붕 뒤 저 멀리 삼태봉능선이 보이고 그 뒤 끝자락으로 구황산 서봉과 경수지맥 분기점이 보이는데 그 우측으로는 여전히 뾰족하게 솟아 있는 영산기맥 상 구황산에서 고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여전히 길라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데 저 구황산 오를 때 무척이나 힘들게 바위암릉을 올랐다는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살펴보니 대부분 산행거리에 비해 걸린 산행시간은 짧아 확인해 보니 고도차이가 적고 잡목 등로도 길지 않고 또한 드넓은 밭경작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는 구간이 길어 나타난 현상이기에 오늘은 날이 밝은 후 진행하기로 결정한다. 

산행 날머리인 희어재에서 택시를 타고 산행 들머리인 암치리에 도착을 하니 아침 7시 10여분이 지나고 트랙을 작동시키니 보이기는 하는데 기록이 되지 않아 원인을 찾아 보니 절전모드로 되어 있어 해제를 하라는 내용인데 모바일 폰을 바꾼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사용하는 트랙이다 보니 갑자기 나타난 문제 해결에 애를 먹는다.문제 해결을 위해 알고 있는 이것 저것을 만져 보지만 해결이 되지 않고 시간만 30여분이 훌쩍 지나고 있어 기록없이 트랙만 살펴보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구황산 방향인 동쪽으로 걸어가며 살펴보니 전방에 보이는 전봇대 우측 뒤로 경수지맥 분기점과 좌측 뒤로 무선항공표지 안테나가 서 있는 구황산 서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데 시간은 벌써 아침 7시 40여분이 지나고 있어 날은 완전히 밝아져 있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평림암치로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끝까지 오르니 등로는 비포장임도로 변하고 그 임도를 타고 오르니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들이 보이는데 그 묘지 한쪽에 배낭을 벗어 숨겨 놓고 간편하게 묘지 뒤 능선으로 오르니 지독한 잡목들이 앞을 가로막는데 그 잡목들 사이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여 등로는 맞는 듯 보인다.

잠시 후 활엽수 낙엽들이 수북히 쌓여 있는 바위들이 나타나고 어렵게 그 잡목과 바위 사이로 희미하게 나 있는 등로를 따라 오르니 갑자기 또 다른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조금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위쪽으로 무선항공표지안테나가 서 있는 구황산 서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데 등로가 나 있지 않아 우측으로 빙 돌아 올라야 하니 보이는 것보다 거리와 시간은 더 많이 걸리는 듯 보인다.

 

산판도로처럼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그곳으로 들어가니 이곳 역시 지독한 가시잡목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조심해 오르니 가선호판 정부인 광산김씨 묘지가 나타나고 그 마다에서 진행 방향인 서쪽을 보니 새벽에 택시로 지나온 무명저수지 좌측 뒤로 약 140 무명봉과 그 좌측 뒤 저 멀리 삼태봉과 미륵봉으로 이뤄진 나즈막한 산줄기와 그 사이를 이어주는 드넓은 밭경작지와 도로들이 보이고 그 우측 뒤 저 멀리 보여야 할 경수지맥 마루금은 박무속에 아직은 뚜렷히 나타나질 못하고 있다.

그래도 기대하지 못했던 환상의 풍경에 잠시 더 머물며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겨보는 시간이다.

 

광산김씨 묘지를 지나 오르니 여전히 잡목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큰 바위들이 등로에 박혀있는 풍경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곳을 지나 가파르게 오르니 능선 등로에 도착을 하는데 그 능선 등로에도 바위들이 보이고 조심하며 걸어 오르니 굵은 소나무 사이로 지독한 잡목들이 보이는 오르막 등로가 나타난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이제 활엽수 관목들이 보이고 조금은 미끄러운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드디어 준희 선생님이 걸어 둔 이정판이 붙어 있고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약 395미터의 경수지맥 분기점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몇장 남기는데 지도를 보니 북동 방향으로 말지 않은 곳에 구황산 서벙이 보여 시간은 많이 지체되었지만 후회될 것 같아 잠시 다녀오기로 한다.

 

경수지맥 분기점과 구황산 서봉은 2013년 3월 31일날 올랐으니 9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구황산 오름길이 힘들었고 이곳 구황산 서봉에서는 경수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면서도 지맥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으니 아마도 지맥까지 산행을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고 올라선 듯 보인다.

분기점 지나 북동 방향으로 걸어가니 평이한 낙엽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잠시 후 바위들이 보이면서 경사도가 급해지더니 빛바랜 억새들이 무성하게 자란 무명묘지 한기가 보이는 구황산 서봉에 도착을 하는데 8년 전 기록을 보니 이곳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많은 사진들을 남긴 흔적들이 보이는데 저 무인항공표지 안테나에 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보니 안테나는 그 이후 설치된 듯 보인다.

영산기맥의 구황산 서봉(445m, 묘1기와 조망처)은 전라북도 고창군의 고수면 두평리와 성송면 암치리 및 전남 장성군 삼계면 죽림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445미터쯤이며 북쪽사면에서 고수천이 발원하고 남쪽 사면에서는 평림천이 발원해 평림호를 이루고 서쪽 문수산에서 뻗은 산줄기가 살우치를 거쳐 구황산과 연결되며 다시 서쪽의 고산과 이어진다.

9대에 걸쳐 임금이 나온다는 명당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고 산의 북쪽 성송면 계당리의 선동 마을은 구황산의 신선이 놀았다는 곳으로 가뭄이 들면 마을사람들이 구황산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정상 서쪽에는 1894년 동학농민군이 전투에서 패하자 장성과 함평으로 퇴각하던 암치재가 있으며 여지도서(고창), 해동지도(고창), 대동여지도(18첩 5면) 등에 고사면(지금의 고수면) 남쪽이자 문수산 서편에 있는 구왕산(九王山)으로 기재되어 있다.

구왕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 등의 조선 시대 지리지에 남쪽 25리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한편 1872년지방지도에는 구황산으로 기재되어 있고 한국지명총람에 소개된 구황산은 군의 아산면 삼인리와 구암리에 걸쳐 있는 구황봉(298미터)을 말하는 것이다.

 

빛바랜 억새로 덮혀 있는 무명묘지가 보이는 구황산 서봉에서의 조망이 아름다운데 제일 먼저 남서 방향을 살펴보니 방금 전 걸어 올라 온 등로 좌측으로 경수지맥 분기점은 나뭇가지에 막혀 보이지 않고 그 뒤로 나즈막한 산줄기 따라 암치재로 낮아졌다가 고산으로 솟구친 영산기맥 마루금이 멋지게 펼쳐져 있고 그 고산 좌측 뒤로는 고성산이 머리를 내밀며 존재감을 알려오는데 그 뒤로 보여야 할 얼마 전 다녀 온 태청지맥의 주산인 태청산과 장암지맥의 주산인 장암산은 앞의 고산과 고성산에 막혀 보이지 않는데 이제 먼 발치에서나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더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큰 시간이다.

 

이제 눈을 서쪽과 북서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발 아래쪽으로 방금 전 산행을 시작한 암치리 무명저수지 좌측 앞으로 갈림삼거리의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좌측 가장자리 방향으로는 주민들과 마찰이 심했던 축복건설의 채석장이 흉물스럽게 파헤쳐진 모습으로 남아 있는데 요즈음은 공사가 중단되었는지 오늘은 조용하기만 하다.

사진 중앙부로 성송초교 지나 삼태봉과 미륵봉이 있는 산줄기가 좌우측으로 펼쳐져 있고 그 우측 뒤 저 멀리로는 오늘 저녁에 만나야 할 무장석산과 한제산 지나 지장제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보이는데 그 우측으로 보여야 할 선운산 도립공원의 산줄기들은 박무속에 흐릿하기만 하다.

 

이제 눈을 북서 방향으로 돌리니 경수지맥 마루금 우측으로 보이는 계당리의 무명저수지가 바로 발 아래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 뒤로 삼태봉과 미륵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뒤 저 멀리 무장석산과 한제산 지나 지장제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박무속에서도 확실하게 존재감을 알려준다.

그 우측 뒤로 내일 걸어야 할 선운산 줄기가 희미하게 펼쳐져 있는데 한제산 지나 하늘금과 맞닿아 있어 산줄기인지도 희미하기만 한데 그 우측으로 펼쳐진 고창의 300-400미터급 독립된 산들이 마치 길게 이어진 살줄기처럼 펼쳐져 있어 처음에는 그곳이 경수지맥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경수지맥 마루금은 희미하게 보일듯 말듯 드러나 있다.

 

그 구황산 서봉 정상에서 잠시 더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다시 올랐던 등로를 타고 빠르게 내려가니 금새 다시 경수지맥 분기점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몇장 더 남겨 본다.

유명세로 보면 경수산보다는 선운산이 훨씬 더 많이 알려져 있고 산행도 대부분 선운산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높이는 경수산이 월등히 높으니 산줄기 중 가장 높고 공식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산이나 봉우리 이름을 따 붙인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지만 어느 산님들은 선운지맥으로 부리기도 하는 듯 보이고 물줄기를 가지고 작명을 하는 산님들은 주진지맥으로도 불리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 산객은 신산경표에서 작명한 경수지맥이란 이름으로 이틀간 걸어 볼 계획으로 오늘은 초반부터 트랙에 문제가 생겨 시작부터 늦게 출발하니 마음만 급한데 1주일 쉬었다고 체력적으로 벌써 힘이 드는 느낌이라 걱정도 앞서는 시간이다.

 

준희님 이정판이 붙어 있는 영산기맥 상 경수지맥 분기점을 지나 올라 간 잡목 등로를 타고 빠르게 내려가니 광산김씨 묘지 지나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에 내려서고 그곳에서 올려다 보니 방금 전 만나고 내려 온 경수지맥 분기점과 구황산 서봉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니 좌측 잡목 사이로 선답자들이 지나간 희미한 흔적들이 나타나고 잡목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다시 바위 너덜길이 짧게 나타난다.

어렵게 주능선 등로를 따라 잡목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묘지지대 지나 비포장임도로 내려서고 곧이어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며 살펴보니 잠시 후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야 할 140 무명봉 능선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잠시 후 만나야 할 삼태봉과 우측으로 미륵봉 줄기가 빤히 보이기 시작한다.

 

분기점과 구황산 서봉을 다녀 와 다시 평림암치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며 진행 방향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후 계속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걸어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농막 지나 민가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곳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만나고 내려 온 중앙부의 나즈막한 경수지맥 분기점 좌측으로 무인항공 표지 안테나가 솟아 있는 구황산 서봉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그 영산기맥 마루금 우측 능선 뒤로 오늘 하루를 밝혀 줄 햇살이 붉게 물들어 오는데 잠시 방향 감각을 잃고 해가 떠 오르는 방향을 서쪽이라 착각도 해 본 시간이다.

 

지나 온 방향으로 구황산 서봉과 경수지맥 분기점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후 다시 산행을 출발한 민가 옆 갈림삼거리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절전모드를 풀어 보려고 10여분 간 씨름을 해 보지만 해결 방법을 모르니 난감하기만 하다.

이제 산행 기록은 포기를 하고 보이는 트랙만이라도 문제 없이 희어재까지 산행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절히 빌며 그 갈림삼거리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도로를 따르니 고갯마루가 눈 앞에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는 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키가 큰 산죽이 보이는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우측 산죽 능선으로 오르니 생각보다 키가 큰 산죽터널이 나타나고 조심하며 통과하니 이제 산죽이 아닌 대나무 밭이 펼쳐지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산죽과 대나무 군락지 사이로 사람 한명이 다닐 수 있는 충분하고 뚜렷한 등로가 보인다는 사실로서 그 대나무 군락지를 지나자마자 무명묘지가 연속으로 나타난다.

그 묘지들을 지나니 또 다른 대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짧은 대나무 군락지를 통과하니 굵은 소나무 아래 잡목들이 보이는 평이한 등로로 변하고 곧이어 밀양박공 묘지와 무명묘지가 있는 곳을 지나자마자 등로가 좌측으로 크게 꺽여 내려가야 할 길주의 지점에 도착을 하는데 해발고도가 약 140미터쯤 되는 무명 소나무봉이다.

 

좌측으로 크게 꺽이는 길주의 지점에서 평이하게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다시 무명묘지들이 보이고 곧이어 키가 큰 산죽 군락지도 다시 통과한다.

짧은 산죽 등로를 지나니 묵은 잡풀 등로가 나타나고 진행 방향을 보니 밭경작지 지나 성송초등학교와 23번 고인돌대로 넘어 올라야 할 189.1봉과 삼태봉 및 우측으로 미륵봉이 차례로 보이기 시작하고 그 좌측인 남쪽을 보니 드넓은 밭경작지 지나 저 멀리 영산기맥의 고산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데 햇살이 비추며 약간의 박무가 낀 듯 올려다 보인다.

고산은 전라북도 고창군의 성송면 상금리와 산수리 및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생촌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528m로서 지형적으로 높을 고(高)자를 쓸 만큼 평야지대에 우뚝 솟아 있어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무장)에 고산은 현에서 북쪽으로 25리 떨어져 있고 산 위에 용지(龍池)가 있는데 하늘이 가물 때마다 비를 빌면 응답이 있으므로 그 산 아래 사람들은 흉년에도 굶주리지 않는다 라는 기록이 있다.

고려 시대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산산성이 있는데 같은 문헌에 고산성(高山城)은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8,100척이고 가운데에 3개의 샘물이 있다라고 하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후 여지도서, 대동지지 등의 지리지에도 고산과 고산성을 찾아볼 수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읍치 남단과 영광과의 경계에 고산이 묘사되어 있으며 그 아래로 고무송현(古茂松縣)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며 그 밖에도 호남지도, 대동여지도 (18첩5면), 청구도 (22층 15면) 등에 고산 혹은 고산성이 표기되어 있다.

 

좌측인 남쪽으로 영산기맥 상 고산 방향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후 빛바랜 잡풀 등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좌측으로 공사가 중단된 절개지가 보이고 곧이어 묘지가 보이는 곳에서 진행 방향인 서쪽과 북서쪽을 살펴보니 드넓은 밭경작지 뒤로 성송초등학교가 보이고 그 뒤로 좁은 산림지대가 이어지고 곧이어 도로 건너 만나야 할 189.1봉과 삼태봉 그리고 미륵봉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경수지맥 마루금이 애처롭게 서 있는 듯 보이고 있다.

이곳 암치리는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있는 리로서 낮은 산과 암치고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암치리는 바우고개의 이름을 한자 표기하여 암치리라 명명하였다.

암치리의 자연마을은 금사, 남산, 백토, 운암, 암치 마을이 있는데 암치마을은 전남 장성군 삼계면에 통하는 재가 있는 마을로서 바위가 많은 재라고 하여 암치라고 불렀다.

백토마을은 마을 앞에 옥녀봉이 있는데 마치 옥녀가 베틀에 앉아서 베를 짜는 형태와 같다 하여 베토말(베의 날줄을 감는 것)에 비유하여 마을 이름을 베토말이라 부르다가 차차 변하여 베토물이 백토물로 다시 백토라고 부르게 되었다.

암치리에는 민속자료제182호로 지정된 선각석불좌상이 있다.

 

잡풀지대를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진행 방향으로 우거진 잡풀들과 소나무 조림지로 인해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우측 수확이 끝난 밭경작지로 내려가 걸어가니 진행 방향으로는 비산비야로 이어지는 경수지맥 마루금이 여전히 두 눈에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잠시 더 밭경작지를 따라 걸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이제 등로 우측으로 몇동의 비닐하우스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밭경작지 사이로 민가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 펼쳐져 있는 성송면 방향이다.

성송면은 전라북도 고창군의 남쪽에 위치한 면으로 동부는 노령산맥 서쪽 사면에 해당하여 산지가 나타나고 그 외 지역은 구릉이 발달해 있고 대산면과 무장면 및 고수면과 이어져 있으며 남쪽은 전라남도 장성군 및 영광군과 경계한다.

현재 면 소재지인 판정리를 비롯해 괴치리와 산수리 등 11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는데 본래 조선 시대 무장현의 성동면(星洞面)과 원송면(元松面) 지역이다.

1895년 전주부 무장군으로 1896년 전라북도 무장군에 속하게 되었다가 1914년 성동면과 원송면을 중심으로 대사면, 전남 영광군 대안면 등의 일부 동리를 합쳐 고창군 성송면이 되었으며 1983년 상금리가 대산면에 편입되었다.

성송이라는 명칭은 성동면과 원송면의 각 이름을 따 합친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호구총수(무장)에 성동면과 원송면이 기재되어 있고 그 관할로 낙양과 사내, 판정, 무송 등의 동리명이 확인된다.

여지도서(무장)에 성동면은 관아에서 (동쪽) 20리이다. (중략) 원송면은 관아에서 (남쪽) 25리이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지승에는 무송고현(茂松古縣) 일대에 원송면이 묘사되어 있고 그 북쪽에 성동면이 표기되어 있으며 그 밖에도 해동지도, 광여도 등에 읍치 남동쪽 고창과 영광 경계부에 두 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 밭경작지를 지나니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가니 많은 묘지지대를 통과하고 다시 수확이 끝난 드넓은 밭경작지를 타고 걸어가니 성송초등학교 앞 893번 평림암치로 2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건너자마자 성송초등학교 입간판과 건물이 보인다.

성송초교(893번 포장도로)는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로서 1918년 4월 1일 암치사립학교로 개교하였으며 1923년 5월 10일 성송공립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은 후 1999년 12월 25일 학천초등학교를 통폐합하였다.

교목은 소나무이고 교화는 국화이며 유치원 1학급과 초등 7학급(특수학급 1학급)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한자 급수제 등의 특색교육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보면 계절에 따라 학교를 통과한 선답자들도 있고 학교를 빙 돌아 우회한 선답자들도 있는데 오늘은 겨울방학이라 학생도 없을 것 같아 마음 편히 교정을 통해 산행을 이어가기로 한다.

 

그 성송초등학교 교정을 통해 걸어가며 살펴보니 제법 많은 승용차들이 주차되어 있고 교실들도 불이 켜져 있어 혹시 수업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더욱 조심하며 조용히 걸어가니 거대한 느티나무 보호수들이 보이고 곧이어 학교 뒤 언덕 넘어 밭경작지를 통과하니 등로는 민가 앞으로 이어지고 있다.

민가를 지나 좌측으로 진행하니 백토1길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 갈림도로 입구에는 신라농원이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눈에 들어 온다.

 

계속 이어지는 백토1길이란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좌측으로 인삼포가 보이고 우측으로 민가 한채를 통과하여 도로 우측과 우측 뒤를 살펴보니 저 멀리 경수지맥 분기점과 구황산 서봉 좌측인 마재봉과 추산봉이 차례로 솟아 있는데 좌측 272.1미터의 추산봉이 높이에 비해 특이한 뾰족봉으로 보여 오늘 산행 중 길라잡이 노릇을 하게 되었다.

잠시 후 언덕으로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나무들이 조림되어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등로는 좌측 비포장임도로 이어지고 곧이어 우측의 드넓은 밭경작지 방향으로 꺽여 진행된다.

그 밭경작지를 따라 걸어가며 나무 조림지와 묘지를 통과하니 다시 드넓은 밭경작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진행방향을 살펴보니 저 멀리 눈 앞으로 189.1봉이 올려다 보이고 우측 뒤 저 멀리로는 미륵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수확이 끝난 드넓은 밭 고랑을 타고 진행하다 문득 생각해 보니 농사철에는 이곳을 통과하기에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 오늘은 겨울철 수확이 끝난 빈 밭경작지이기에 눈치보지 않고 마음 편히 걸어가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그 밭경작지를 타고 걸어가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라 만나고 내려 온 구황산 서봉과 경수지맥 분기점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 분기점 우측으로는 고산과 고성산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 마루금이 아름답고 그 위로 막 떠오른 태양이 더욱 밝게 빛나고 있는데 추운 날씨에 비해 약간의 박무가 있어 아쉬움도 남긴다.

그렇게 한동안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조망을 즐기며 진행하니 춘강식물원이란 커다란 입간판이 서 있는 대성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우측을 보니 거대한 고창군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 건물들이 보이고 그 뒤 멀리로는 추산봉이 여전히 특이한 모습으로 솟아 있다.

 

대성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조금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시멘트 포장도로 지나 지하통로가 나타나는데 지도를 보니 23번 고인돌대로 4차선 포장도로를 통과할 수 있는 지하도로이다.

그 지하통로를 통해 23번 고인돌대로 4차선 포장도로를 통과하자마자 좌측으로 거대한 비닐하우스가 나타나고 마침 작업을 하고 있는 농민이 보여 확인해 보니 봄 무우를 파종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곳에서 등로는 좌측 23번 고인돌대로와 우측의 비닐하우스 사이로 나 있는 절개지를 타고 진행을 해야 하는데 주인장의 눈치가 보여 그냥 마음 편히 직진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가 없다며 조금은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잠시 더 걸어 오르며 진행 방향을 보니 저 멀리 잠시 후 올라 만나야 할 189.1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작업중인 농부들과 인사를 나누며 걱정스런 눈빛을 피해 빠르게 걸어 오르니 더 이상 진행이 힘들 것 같아 농부들이 보이지 않는 비닐하우스 사이의 공터를 통해 비닐하우스를 통과하니 넓은 비포장임도가 원 마루금을 통해 올라오고 있어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올라간다.

잠시 후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으로는 천막창고와 민가가 나타나고 등로는 직진의 비포장임도로 이어지고 있어 잠시 더 걸어 올라 능선으로 들기 전 뒤돌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구황산 서봉과 경수지맥 분기점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비산비양의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는다.

 

지나 온 방향으로 마루금을 사진에 담고 다시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타고 오르니 임도 좌측 관목의 나뭇가지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우측으로 올라가는 비포장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잡목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약간의 잡목들과 잡풀들이 우거졌다 말라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멋진 소나무들이 보이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굵은 소나무 가지에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189.1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주위를 살펴보니 이곳 역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이정판 주위로 많이도 걸려있어 살펴ㅑ보고 출발한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189.1봉 지나 북서 방향으로 진행하니 아름다운 노송 등로가 펼쳐지고 잠시 가벼운 발걸음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니 무명묘지들이 나타난다.

그 묘지들을 지나니 다시 소나무 등로는 관목의 활엽수 낙엽 등로로 변하고 미끄러지지 않토록 조심하며 내려가니 설치된지 오래되어 먼지가 뽀얗게 내려 앉아있는 벤취쉼터 2개 지나 가시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진 연치재 안부에 도착하는데 좌측으로 썩어 쓰러진 이정표가 눈길을 잡는다.

살펴보니 지나온 방향의 189.1봉을 제비봉이라했고 진행 방향으로는 매봉산이라 했으며 좌측으로는 고현마을로 우측으로는 중산제로 하산할 수 있는 방향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인데 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은 봉우리 이름들을 지자체 마음대로 붙여 놔 아쉬움을 남긴다.

다만 고창군 성송면 판정리와 하고리 사이의 고갯마루인 연치재에 관한 자료가 보이지 않아 왜 연치재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연치재 안부 지나 조금 걸어 오르니 등로는 넓은 비포장임도처럼 잘 정비되어 있어 편안하게 걸어 오르고 그렇게 잠시 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키 큰 산죽터널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등산객이 지나갈 정도의 공간이 열려있는 산죽터널을 따라 오르니 산죽등로 좌측으로 무명묘지 몇기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올라 뒤돌아 보니 산죽지대 넘어 방금 전 넘어 온 189.1봉 뒤 좌측 저 멀리 구황산 서봉과 경수지맥 분기점이 보이고 우측으로 뾰족한 모습을 하고 있는 영산기맥 상 고산이 무송리 마을 뒤를 드높게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아름답게 솟아 있다.

 

고산 우측으로는 상금리의 드넓은 밭경작지 뒤오 고성산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고 그 우측 옆으로 영산기맥 상 457.7미터의 월랑산 줄기가 보이는데 그 뒤로 보여야 할 태청산과 장암산은 여전히 앞으로 펼쳐져 있는 산줄기에 막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몇장의 사진에 더 담고 묘지 뒤 산죽터널을 타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어느 지도와 선답자는 이곳을 오소리봉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공식적인 이름은 아닌듯 싶다.

 

산죽에 둘러쌓여 있는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설치된 무명봉 지나 북서 방향으로 우거진 산죽터널 사이로 나 있는 좁은 등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산죽터널이 짧게 끝이나고 다시 하얀 껍잘을 보이고 있는 관목의 자작나무 조림지가 짧게 나타난다.

약간의 잡목들이 발목을 잡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사용되지 않는 벤취쉼터들이 보이고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설치된지 오래된 썩어가는 이정표가 쓰러질 듯 애처롭게 서 있어 확인해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무명봉을 오소리봉으로 표기하고 진행방향으로는 매봉산까지 500미터 거리란 방향과 거리 표시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남창마을까지 900미터라는 방향과 거리 표시도 보인다.

이곳 안부 역시 연치재처럼 성송면 하고리와 판정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남창(南昌)마을은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의 자연마을 중 한 곳으로 고려조에 무송현의 창고가 있었으며 무송현의 남쪽 창고터라 하여 남창이라 하였다는 마을이다.

 

남창마을 갈림삼거리 안부에 세워진 이정표를 확인하고 다시 이어지는 관목의 참나무와 잡목등로를 뚫고 가파르게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좌우측으로 뚜렷하게 나 있는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만나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이곳저곳에 걸려있고 우측 앞으로는 무명묘지 3기도 보이는 능선등로에 도착을 한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마루금은 우측인 북쪽으로 진행을 해야 하지만 좌측인 서쪽 방향으로 멀지 않은 곳에 197.8미터의 삼태봉이 있어 잠시 다녀 오기로 하는데 이곳은 바로 삼태봉 갈림삼거리 지점쯤 되는 곳이다.

 

삼태봉 갈림삼거리에서 좌측인 서쪽 방향으로 잘 정비된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등로를 따르니 금새 무명묘지 한기 지나 굵은 소나무들과 약간의 잡목들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197.8미터의 삼태봉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에는 벤취쉼터들과 준희님의 이정판 그리고 한쪽에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있어 어렵게 사진과 추억 몇장 남겨본다.

이곳 삼태봉에 관한 자료는 보이지 않는데 다만 이 삼태봉이 속해있는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에 삼태마을이 있고 그 삼태마을은 마을 뒷산이 삼태성과 같다 하여 산 이름을 삼태봉이라 하고 마을이름도 삼태라 하였다라는 자료가 보여 차용해 본다.

 

삼태봉에서 잠시 머물며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다시 갈림삼거리로 복귀한 후 좌측인 북쪽 방향으로 묘지 3기를 지나 좌측으로 크게 꺽어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이곳 역시 굵은 소나무 아래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멋진 등로가 이어지고 편안하게 내려가니 금새 잘 관리되고 있는 무명묘지 지나 양판길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판정리의 무명 고갯마루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건너편으로는 광산김씨 세장비가 세워져 있다.

광산김씨는 광주광역시 광산(光山)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시조는 김알지의 후손인 신라 신무왕의 아들 흥광공이다.

신라 신무왕의 셋째아들 김흥광을 시조로 하는 광산김씨는 한국의 대표적인 가문의 하나로서 광김으로 일컫는데 이 가문은 조선시대에 총 265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여 본관별 서열로 제5위가 되었다.

여기에서 정승이 5명, 대제학이 7명, 청백리가 4명, 왕비가 1명이 나왔는데 특히 대제학 7명은 광산김씨를 더욱 빛나게 한 사계 김장생의 자손이다.

광산김씨는 고려 초기 삼중대광에 오른 3세손 김길로부터 8대에 걸쳐 평장사를 배출하여 명문 가문의 기반을 이루었으며 15세손으로 대광에 오른 김정의 아들인 약채, 약항, 약시 3형제대에서 더욱 번창하기 시작하였다.

김장생은 예학의 태두로서 그의 학문은 이조판서를 지낸 아들 집에게 계승되어 부자가 문묘에 배향되는 전무후무한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는데 집의 아우 반의 여섯 아들은 모두 출중하고 후손이 크게 번창하여 광김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양판길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고 광산김씨 세장비와 무명묘지가 보이는 무명 고갯마루를 지나 광산김씨 세장비 뒷쪽으로 나 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굵은 소나무 아래 잡목들이 보이는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데 진행에 큰 어려움을 줄 정도는 아니기에 잡목들을 헤치며 전진하니 다시 뚜렷한 등로가 나타난다.

잠시 더 이어지는 멋진 소나무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굵은 참나무에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188.9봉에 도착을 해 고운 추억과 사진 한장 남기고 물 한모금 마신 후 곧바로 출발한다.

 

이제 등로는 북쪽에서 북서 방향으로 바뀌고 조금 더 전진하니 다시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는 지점에 몇개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들이 이곳저곳에 붙어 있어 지도를 확인해 보니 마루금은 우측인 북쪽으로 이어지지만 좌측인 서쪽 방향으로 도상 184.7봉이 보여 잠시 다녀오기로 하는데 이 산객이 서 있는 이곳이 바로 그 184.7봉 갈림삼거리 지점이다.

좌측인 서쪽으로 빠르게 걸어가니 식재된 듯한 벗나무와 활엽수 사이로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가 나타나고 약간의 가시잡목들을 주의하며 빠르게 걸어가니 굵은 소나무들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184.7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몇장만이 다양한 장소에 걸려있는 것이 전부인 초라한 정상이다.

 

약간의 실망감과 아쉬움을 남기고 그 184.7봉에서 추억과 사진 몇장 남기고 곧바로 뒤돌아 내려오니 소나무와 벗나무 등로 지나 다시 184.7봉 갈림삼거리에 복귀를 한다.

약간의 허기를 느끼기에 준비한 떡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다시 출발하는데 새벽에 느꼈던 추위는 해가 떠 오르면서 기온이 빠르게 올랐는지 약간의 무더위를 느끼며 많은 땀방울을 흘리는 시간으로 변해있어 진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산행하기 좋은 시간이다.

 

이제 진행 방향 좌측인 북쪽으로 보이는 선답자들 띠지를 확인하고 그곳으로 나 있는 뚜렷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무명묘지 지나 걷기 좋은 소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소나무 아래 말라있는 키 작은 잡풀들을 밟으며 빠르게 진행하니 솔갈비가 부드러운데 3주전 황학지맥 산행 시 다친 오른쪽 무릎에서 조금씩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해 긴장을 하게 되었는데 이틀 내내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약간의 통증은 다시 으틀을 쉬고 나니 좋아져 일시적인 현상처럼 보여 다행이었다.

잠시 후 등로는 완전히 비포장임도로 바뀌고 짧은 잡목과 잡풀지대를 통과하는데 그곳에서 등로 좌측 뒤를 보니 방금 전 다녀 온 184.7봉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빤히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에 담고 송파진주정공 묘지를 지나니 굵은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무명봉을 통과하니 묵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말라있는 잡풀들이 무성하게 남아 있어 조심하며 걸어가니 임도는 점점 더 좋아져 잡풀들도 사라지기 시작한다.

한동안 편안하게 비포장임도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더 뚜렷한 비폰장임도와 만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으로는 전의이씨 묘지들이 보이는데 그곳에서 마루금은 좌측인 서쪽으로 크게 꺽어 비포장임도를 따라 진행된다.

잠시 더 전진하니 좌측으로 폐허가 된 커다란 축사가 나타나고 우측 아래로는 몇개의 거대한 축사가 드넓게 펼쳐져 있는 두리농장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무장면 들판 지나 잠시 후 만나야 할 한제산과 지장제산으로 이어지는 경수지맥 마루금이 끊어질듯 이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좌측에 폐허가 된 축사와 우측 아래로 거대한 두리농장을 두고 나 있는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측의 폐허가 된 축사로 이어지는 비포장임도가 갈리는 곳으로 그곳을 지나 완만하게 더 걸어 내려가니 잠시 임도 좌우측으로 관목의 활엽수들과 잡목들이 보이기도 한다.

그곳을 지나니 임도 우측으로 드디어 거대한 두리농장이 끝이나고 눈 앞 진행 방향으로는 드넓은 초지가 펼쳐져 있고 그 우측 아래로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황톳빛 드넓은 밭경작지들도 펼쳐져 있다.

 

거대한 축사를 임도 좌우측으로 두고 진행을 하는데도 겨울철이라 그런지 아니면 위생처리가 잘 되어 있어서 그런지 냄새로 인한 불쾌감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진행하니 이 한겨울에 파란 초지를 만날 수 있음에 이국적인 정취에 취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동안 편안하게 좌측의 거대한 초지지대와 우측으로 드넓은 황토 밭경작지를 두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의 드넓은 밭경작지 넘어 좌측 저 멀리 오늘 오후에 넘어야 할 무장석산과 내일 걸어 만나야 할 선운산 줄기가 살짝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동안 주위 풍경을 살펴보며 완만하게 걸어 전진하니 갈림삼거리 지나 눈 앞으로 송림숲이 살짝 나타나는 언덕으로 오르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저 멀리 두리농장과 그 우측 위로 잠시 전 내려 온 무명봉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드넓은 황톳빛 밭경작지와 파란 초지지대를 좌우측으로 두고 탁 트인 풍경과 조망들을 살피며 많은 사진에 담고 여유롭게 진행하니 빛바랜 잔디와 굵은 소나무 몇그루가 서 있는 언덕을 넘어간다.

언덕을 넘어가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계속 이어지는 덕림정동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크게 꺽어 전진하니 좌측으로 복분자 밭을 지나 우측으로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는데 그 잔디밭 좌측으로는 잠시 후 지나야 할 경수지맥 마루금 뒤 저 멀리 청보리밭으로 유명한 공음면 선동리 방향의 뾰족한 삿갓산이 옛 추억을 들려주고 있어 사진에 담아 본다.

잠시 후 다시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이제 우측으로 꺽어 진행하며 좌측 뒤를 보니 이곳 역시 드넓은 파란 초지지대 넘어 저 멀리 방금 전 만나고 내려 온 184.7봉과 그곳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름답게 올려다 보인다.

 

지나 온 삼태봉을 살펴보고 서쪽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걸어가니 도로 좌측 밭에 굵은 무우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 아까운 마음에 들어가 굵은 무우 하나를 잡아 먹어 보니 맵지도 않고 맛도 좋아 잠시 먹으며 걸어가니 도로 주위의 밭에 무우들이 그대로 방치된 모습들이 자주 눈에 들어 온다.

다만 무우청은 수확을 별도로 했는지 알 무우만 남아 있고 무우잎은 전혀 보이지 않아 무우청을 수확하기 위해 재배된 무우는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이다.

도로 좌측의 무우밭 아래로는 저수지도 내려다 보이는데 지도를 보니 미동제란 저수지로 햇살이 반사되어 반짝이고 그 뒤 저 멀리로는 새벽부터 바라봤던 영산기맥의 고성산이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잠시 후 나즈막한 언덕으로 오르며 뒤돌아 보니 지나온 시멘트 포장도로가 드넓은 밭경작지 가운데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뒤 좌측으로 두리농장 뒷산인 무명봉과 우측으로 184.7봉이 보이고 그 184.7봉 우측 뒤로는 197.8미터의 삼태봉이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어 잠시 사진에 담고 살펴본 후 산행을 이어간다.

 

지나 온 방향으로 경수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이어지는 마루금과 함께 펼쳐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도로 좌우측으로 드넓은 밭경작지를 바라보며 걷다 보니 마치 유럽의 어느 시골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있는 착각속에 걸어가는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다 도로 좌측을 보니 드넓은 황톳빛 밭경작지 한가운데에 기와 지붕을 한 민가 한채가 눈에 들어 오는데 유럽에서 봤던 고즈넉한 풍경과는 다른 또 다른 매력의 풍경으로 기억속에 남겨진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가니 좌측으로 드넓은 무우밭이 펼쳐져 있는데 농부 가족들이 무우청만 수확하고 수확하지 않은 무우는 트랙터로 갈아 뒤집는 모습에서 안타까움도 묻어난다.

그곳에서 농부에서 허가를 받아 작은 무우 하나 더 입에 물고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드넓은 양파밭이 펼쳐져 있고 좌측으로는 인삼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루금 좌우측으로 펼쳐진 거대한 밭경작지와 양파밭 그리고 인삼포를 살펴보며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다시 도로 우측으로 드넓은 무우밭이 보이는데 이곳 역시 무우청은 모두 제거된 민둥의 알 무우만 밭에 뽑지도 않은 채 남아 있는데 일가족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무우청을 별도로 수확하고 남아 있는 무우를 뽑는 작업을 하고 있어 궁금하기만 하다.

그 무우밭 좌측으로는 거대한 비닐하우스 단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민가들과 창고들이 있는 734번 칠거리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해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우측으로 덕림리 정동마을 표지석과 칠거리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다만 고창군 대산면 중산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인 칠거리와 무장면 덕림리의 정동마을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자료가 보이지 않는 칠거리 버스정류장과 정동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을 통과하고 잠시 후 도로 우측으로도 파란 초지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좌측으로 칠성농원과 오월농장을 알리는 커다란 입간판을 지나니 도로 우측으로 파란 초지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넘어 온 경수지맥 마루금이 길게 펼쳐져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계속 이어지는 734번 칠거리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성남1육교(석남1육교)가 나타나고 그 중앙으로 가 내려다 보니 서해안고속도로가 거침없이 길게 뻗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잠시 서해안고속도로를 살펴보고 있으니 고속도로 끝자락 우측 뒤로 멋진 산줄기 하나가 구름 위에 떠 있는 모습으로 다가오는데 지도로 확인해 보니 바로 고창읍 뒤로 솟아 있는 영산기맥과 변산지맥의 분기점이 있는 방장산이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통과하며 방장산을 살펴보고 조금 더 칠거리로를 따라 전진하니 우측으로 대산양돈과 해림종돈이란 거대한 축산단지가 펼쳐지고 도롯가에는 볏짚을 쌓아 둔 긴 볏짚더미들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니 도로 좌측으로 신설된 듯한 남부권농기계임대사업사라는 건물과 농기구들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니 도로 우측으로 대산양돈의 축사가 조금 더 뚜렷하게 보이는데 이곳 역시 그 규모에 비해 냄새는 정혀 나지 않아 계절적 요인인지 아니면 기술이 발달해 냄새를 제거하는 축사인지 궁금하디만 하다.

 

거대한 축사와 농기계임대사업소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측으로 성남마을 가는 커다란 표지석과 영취정이란 이정표가 서 있고 도로 건너편으로는 성남이라는 버스정류장이 보이는데 이곳 주위 역시 거대한 볏짚이 하얀 비닐 포장에 쌓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성남버스정류장이 있고 성남 표지석이 있는 성남마을은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성남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성남리는 마을 서남쪽으로 산등성이가 있고 논이 넓은 지형이며 토성산의 남쪽이 된다 하여 성남이라 이름 붙여졌다.

자연마을로는 관동마을, 성남마을, 성동마을이 있는데 성동마을은 300년 전 김해김씨들이 거주하였고 토성을 축조함과 함께 마을이 이루어졌는데 토성의 동쪽 마을이라 하여 성동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반면 성남마을은 토성의 서쪽 마을이라 하여 성남이라 부르게 되었다.

 

성남 표지석과 버스정류장이 있는 갈림삼거리에서 영취정 이정표가 보여 찾아 보니 영취정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 있는 풍류를 즐기고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기능을 가진 다락식의 집을 말하는데 이 누정은 마룻바닥을 지면보다 높게 지어 사방을 볼 수 있도록 하여 풍류를 즐기고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기능을 가진 누각이나 정자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이름 뒤에 누(樓)나 정(亭), 각(閣), 당(堂), 정사(精舍), 대(臺), 원(院), 헌(軒), 재(齋), 와(窩) 등의 명칭이 붙는데 누정의 형태는 정방형부터 장방형과 육각형·팔각형·십자형 및 부채꼴 등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다.

누각 내부는 온돌방보다 개방된 마루를 위주로 꾸미며 높은 대 위에 짓기 때문에 누대(樓臺)라고도 하는데 대체로 높은 언덕이나 관청의 안팎에 많이 지었다.

이에 비해 정자는 수려한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대개 마루와 온돌방으로 구성되며 수려한 자연 경관과 어우러져 선비들의 휴식과 학문을 행하던 공간으로 건축되었다.

조사된 바에 따르면 고창 지역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누정의 개수는 전라북도에서 가장 많은 수를 기록하고 있다.

1994년 발간된 전북향교원우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는 고창 지역에 산재한 누정의 수를 무려 116곳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고창 지역에 현존하는 누정은 그렇게 많지 않다.

참고로 관련 읍지(邑誌)에 나타난 고창 지역 누정의 대부분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소개된 것들로 건립 시기는 대부분 조선 전기다.

전북전래지명총람에 나타난 고창 지역의 누정은 모두 36채(11개 터)이고 조사 결과 현재 고창 지역에 현존하는 전통 누정은 9채였다.

그 성남 갈림삼거리를 지나 칠거리로를 타고 ㄱ속 걸어가니 진행 방향 좌측 앞 저 멀리 잠시 후 올라야 할 나즈막한 마루금이 보이기 시작하고 사진에 담으며 전진하니 민가와 비닐하우스 단지 지나 우측으로 무성목장 입간판이 보인다.

그 우성목장 갈림삼거리를 지나니 진행 방향으로 도로 지나 성동마을 뒤편으로 이어지는 태봉산 줄기가 조금 더 가깝게 다가오고 이제 도로 좌측으로 갈림삼거리를 다시 통과한다.

 

좌측으로 나 있는 갈림삼거리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734번 칠거리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이곳 역시 도로 옆 밭경작지에는 드넓은 양파밭과 인삼포 그리고 초지들이 펼쳐져 있다.

잠시 후 민가들이 눈 앞으로 다가오고 도로 우측으로 진영목장이란 입간판을 지나 좌측으로 나타나는 비닐하우스들을 살펴보니 이곳 역시 무우들을 재배한 곳으로 남아 있는 무우들이 비닐하우스 내에 널부러져 있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성동마을 가는 표지석과 버스정류장 앞으로 대성농원 가는 입간판이 보이는 곳에서 좌측 성동마을 방향으로 들어가며 길게 걸어 온 734번 칠거리재 2차선 포장도로와 헤어진다.

 

좌측 성동마을 방향으로 걸어 오르니 좌측으로 신축된 듯한 깨끗하고 작은 성동보건진료소 건물이 보이고 그 옆으로 민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곳 성동마을은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성남리의 자연마을로서 300년 전 김해김씨들이 거주하였고 토성을 축조함과 함께 마을이 이루어졌는데 토성의 동쪽 마을이라 하여 성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성동보건진료소 건물을 지나니 사각정자와 운동기구들이 나타나고 계속 이어지는 성동길 1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 우측으로 드넓은 밭경작지 지나 오늘 저녁에 만나야 할 지장제산 넘어 내일 만나야 할 청룡산으로 이어지는 경수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성동마을을 좌측에 두고 우측 위로 이어지는 성동길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우측으로 김해김씨 묘지들이 나타나고 저 멀리 민가 앞 도롯가에는 할아버지 한분과 아주머니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잘 들리지 않는지 목소리가 쩌렁쩌렁 이곳까지 울리고 있어 그곳까지 진행하지 못하고 묘지를 지나자마자 보이는 우측의 진디밭으로 들어가니 곧바로 인삼포가 보이고 그곳으로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살펴보니 최근에 신축된 듯한 민가인지 공장 건물을 좌측에 두고 그 벽과 인삼포 사이로 나 있는 좁은 소로를 따라 걸어 전진하니 무우밭을 지나 눈 앞으로 잡목능선이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성동마을 뒤 저 멀리 두황산 서봉과 경수지맥 분기점에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진행해 온 모든 마루금이 박무속에서도 아름답게 펼쳐진 모습이 잠시 여유를 되찾게 만들고 있다.

 

무우가 수확된 밭경작지를 지나 오르니 굵은 소나무와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능선이 나타나고 곧이어 우거진 산죽지대가 펼쳐져 있어 이리저리 등로를 찾아 보니 뚜렷한 등로는 보이지 않고 희미하고 좁은 등로의 흔적들이 보여 힘들게 오르며 산죽지대를 통과한다.

다시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키가 큰 산죽지대를 빠져 나가니 키가 작은 과실수들이 식재되어 있는 과수원에 도착을 하고 살펴보니 진행 방향으로는 제법 높은 절개지가 보여 그곳으로 올라야 하지만 바람이 없고 따스한 햇살이 비추고 있어 이곳 과수언 상단에서 배낭 내려 준비한 떡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갈증까지 해결한 후 지나 온 방향을 보니 분기점과 구황산은 좌측 시누대와 민가들에 막혀 잘 보이지 않고 그 우측인 남쪽으로 고산과 고성산 지나 태청산과 정암산이 보이기 시작해 사진에 담으며 얼마 전 올랐던 고운 추억들을 꺼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과수원 상단에서 허기를 달래고 다시 절개지를 타고 올라 능선으로 진입하니 활엽수 낙엽들이 수북히 덮혀있는 무명묘지 2기를 지나 참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그 낙엽 등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고창445란 삼각점과 준희님의 이정판을 걸어 둔 94.8미터의 태봉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몇장 남긴다.

태봉산(95.3m, 삼각점-고창 445 1984재설) 고수면 예지리와 아산면 봉덕리와의 경계를 이루는 태봉산 정상 부근에는 고성 터가 있는데 현재 태봉산 정상에는 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약간의 흔적만이 있다.

태봉산 정상부에는 소로가 나 있으며 민묘군이 조성되어 있고 주위에 많은 양의 기와편과 토기편이 산재해 있다.

고성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옛날 이곳에 토성이 있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이 마을을 고성마을 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문헌비고 산천조에 고성봉재서십오리일봉특출대야중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록으로 보아 이곳 주민들에게 전해오는 이야기대로 이곳에 토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잡목들과 참나무에 가려 조망도 없기에 나즈막한 태봉산 정상을 지나 약간의 잡목들과 참나무들이 보이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하는데 원 마루금은 그 비포장임도를 건너 우측 앞으로 보이는 능선으로 올라야 하지만 잡목들이 우거져 있고 잠시 후 다시 도로로 내려와야 하기에 그냥 편하게 도로를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우측으로 비포장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씨앗등로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하고 그곳ㅇ서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좌측 위로는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올려다 보이고 그 비닐하우스 위로 원 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모습도 보인다.

 

그 씨앗등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서쪽 방향으로 걸어가며 도로 우측을 보니 드넓은 황톳빛 밭경작지가 펼쳐져 있고 그 뒤로 비닐하우스 단지들이 보이며 그 뒤 저 멀리 선운산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고창군 아산면의 산줄기들이 보이는데 병풍산과 화시산 등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좌측으로 보여야 할 한제산과 지장제산 넘어 내일 만나야 할 청룡산과 선운산 지나 경수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은 좌측 능선에 가려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잠시 더 걸어가다 보니 우측으로 김해김씨세장산비가 보이고 드넓은 양파밭 지나 거대한 비닐하우스 단지 사이로 타작하는 소리가 들려 자세히 살펴보니 부부가 앉아 콩을 털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씨앗등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이제 진행 방향 우측 뒤 저 멀리 거대한 비닐하우스 지나 120.6 삼각점봉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가 눈에 들어오는데 저 거대한 비닐하우스에서는 어떤 작물들이 자라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잠시 후 도로 우측으로 공음면과 대산면의 경계임을 알리는 도로표지판이 보이는데 지도를 보니 공음면은 무장면인데 왜 공음면이란 도로 표지판이 서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도로 우측으로 한울농장이란 입간판이 보이고 그 방향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분기하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난다.

 

갈림삼거리 우측으로 보이는 한울농장 입간판이 서 있는 방향으로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지금까지 걸어 온 씨앗등로 2차선 포장도로와 헤어져 내려가니 우측으로 묘지들과 민가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거대한 비닐하우스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우측으로 광산김씨 합동제단이 보이고 민가에서는 아주머니가 밭에서 배추를 뽑고 있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겨울에도 배추를 노지에서 수확해 식재료로 사용한다는 소식에 서울과는 많이 다름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해 보는 시간이다.

민가를 지나 다시 나타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옥산신월길이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비닐하우스 내의 작물들이 보여 살펴보니 쪽파들로서 어렵게 사진 몇장 담고 계속 그 비닐하우스 주위로 나 있는 칠거리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을 이어간다.

다시 콘테이너 박스가 서 있는 갈림삼거리에서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이제 도로 좌측으로 거대한 태양광발전시설을 지나 나타나는 갈림삼거리에서 드디어 옥산리의 거대한 비닐하우스와 태양광발전시설을 뒤로 하고 수확된 배추밭을 지나 오르다 뒤돌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구황산과 경수지맥 분기점에서 이곳 옥사리까지의 전 구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성동마을 뒤 수확된 배추밭에서 지나 온 경수지맥 제1구간을 살펴보고 몇장의 사진에 담은 후 밭경작지 우측을 보니 우측 뒤 저 멀리 방장산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호암산과 화시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진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이제 그 배추밭을 지나 잡풀들이 우거져 있는 능선입구에서 이제는 등로 좌측을 보니 지나 온 태양광발전시설과 비닐하우스 단지 지나 분기점과 구황산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고산과 고성산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 산줄기도 제법 고도감을 자랑하며 솟아 있다.

 

그렇게 잠시 더 머물며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잡목들과 잡풀들을 헤치며 능선으로 오르니 낙엽이 뒤덮혀있는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 뒤로 오르니 지독하게 우거졌다 말라있는 가시잡목 등로가 눈 앞에 드넓게 펼쳐져 있어 진행이 난감하기만 하다.

그래도 그 우거졌던 가시잡목 등로를 따라 천천히 진행하니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우측 관목들이 보이는 방향으로 탈출해 오르니 선답자들도 이곳을 이용했는지 희미한 오르막 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지독한 가시잡목이 우거졌던 등로를 피해 우측으로 우회하니 관목의 소나무 사이로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진행에 어려움이 없어 천천히 걸어 오르니 솔갈비들이 깔려있는 조금은 수월한 등로로 바뀌고 있다.

그렇게 다시 오르니 소나무 아래 잡목들이 보이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고 그 등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고창308이란 삼각점이 박혀있고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120.6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추억과 사진 한장 남겨본다.

이곳 120.6봉 역시 나뭇가지에 막혀 풍경이나 조망이 전혀 없기에 정상부에 대한 사진과 추억만 남긴 후 곧바로 방향을 틀어 북서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내려가는 등로는 관목의 활엽수들이 보이고 그 아래 낙엽들이 수북히 쌓여있어 등로가 완전히 보이지 않아 길찾기가 쉽지 않기에 방향만 보고 내려가니 등로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다 우측을 보니 많은 묘지들이 보이고 그 묘지가 보이는 방향으로 진행하니 잘 관리되고 있는 여러기의 무명묘지들이 나타나고 잠시 편안하게 그 묘지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가니 무장면 고라리의 송암마을 위 고라송암길 1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송암마을은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고라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고라리의 지명은 무장읍 내고을 아랫마을이라 해서 골아래로 불리다가 고내리(古乃里)를 거쳐서 고라리(古羅里)로 칭하였다.

고라리의 자연마을은 고라, 반송(盤訟), 송림, 송암(訟岩), 안정, 옥동 마을이 있는데 송림(松林)마을은 소나무가 울창했다 하여 명명하였고 송암(松岩)마을은 뒷산에 소나무와 바위가 많았다 하여 명명하였으며 반송마을은 반송나무가 있었던 것에 연유하여 명명하였다.

 

고라송암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걸어가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능선에서 내려 온 지독한 가시잡목 능선이 보이고 그 좌측인 북쪽 방향으로는 고라리 송암마을이 생각보다 크게 펼쳐져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잠시 더 걸어가다 도로 좌측을 보니 밭경작지와 비닐하우스 단지 지나 저 멀리 청보리밭과 메밀밭으로 유명한 학원농장이 있는 공음면 선동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데 학원농장은 억덕 넘어로 있기에 보이지는 않는다.

등로 우측으로는 고라리 송암마을과 그 뒤 저 멀리 선운산 자락을 살펴보며 사진에 담고 계속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 거대한 축사 뒤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축사 뒤로 나 있는 고라송암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언덕으로 오르니 우측으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주위로는 지난 가을에 수확한 배추와 무우밭들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지나 온 방향으로는 나즈막한 120.6미터의 삼각점봉 좌측으로 고라리 송암마을이 그림처럼 놓여있다.

다시 우측으로 드넓은 무우밭에는 아직도 수확하지 않은 무우들이 보이고 저 멀리 고창방향으로는 선운산의 동쪽 방향으로 솟아있는 봉우리들이 마치 연봉처럼 이어진 모습도 보인다.

잠시 후 도로 좌우측으로 잡목들이 보이는 언덕 넘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고라송암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 좌우측으로는 다시 드넓은 황톳빛 밭경작지들이 펼쳐져 있는데 도로 양쪽으로는 지난 가을에 무성하게 자랐다 이제 숨이 죽어 있는 빛바랜 억새들이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고 있다.

 

한동안 그 빛바랜 억새가 도로 좌측으로 우거져 있는 모습을 살펴보며 걸어가니 눈 앞으로 도로 건너 올라야 할 능선 마루금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능선 좌측으로는 많은 묘지들이 늘어 서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사진에 담으며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곳 역시 이름은 고라송암길이다.

그곳에서 능선으로 오르기 직전 지나 온 방향을 뒤돌아 보니 고라리 송암마을 우측으로 120.6 삼각점봉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구황산 우측으로 솟아 있는 고산과 고성산 지나 태청봉과 장암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영산기맥 마루금이 여전히 아름다운 풍경으로 이 산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좌측으로 묘지로 오르는 등로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한동안 걸어 온 고라송암길을 우측으로 버리고 좌측 능선 방향의 묘지지대로 오르니 많은 무명묘지들이 줄지어 잠들어 있다.

그 무명묘지를 지나 오르니 벌목 후 편백나무들을 심어 놓은 조림지가 나타나는데 잘려진 잡목들이 뾰족하게 튀어 나와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잠시 후 이천서공 부부묘지를 지나고 조금 더 진행하니 갑자기 눈 앞으로 녹새 철망이 설치되어 있어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살펴보니 등로는 그 녹색 철망 좌우측으로 내려가 이어지고 있다.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나즈막한 논경작지놔 태양광발전시설 지나 비산비야의 산줄기가 이어지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땅을 정지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철망에서 좌측으로 내려갔으면 조금 더 좋았을 것을 가까운 우측으로 진행하니 진흙길로 변하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짧은 구간은 다시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다.

힘들게 내려가니 작은 수로가 나타나고 그 수로와 녹색 철망 사이로 공사중인 등로를 타고 좌측으로 오르니 도랑을 건널 수 있는 작은 다리가 보여 그 다리를 넘으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그 도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오르니 우측으로는 논경작지가 펼쳐지고 곧이어 전봇대 지나 갈림사거리가 나타나는데 직진 방향 좌측 위로는 거대한 백양농장 건물들이 보이는 곳에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자갈이 깔려있고 진행 방향으로 인삼포가 보이는 방향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자갈들이 깔려있는 곳을 지나니 양파밭이 나타나고 그 끝자락까지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어렵게 진행한 녹색 철망 단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온다.

 

이제 그 양파밭을 완전히 통과하니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 좌측으로는 또 다른 비포장임도가 올라오고 있어 그 임도를 따라 오르니 금새 청보리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백양리는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있는 리로서 백양리의 지명은 백양마을의 지명을 취하였다.

백양리의 자연마을은 율곡마을, 백양마을, 새터마을이 있는데 백양(白羊)마을은 마을 형체가 원님을 향해 절하는 형국이라 배임동이라 불리어오다 원님의 찬으로 양을 기르는 곳이라 해서 백양으로 개칭하였고 율곡(栗谷)마을은 밤나무가 울창해서 율곡이라 명명하였으며 새터마을은 백양동 북쪽에 새로 된 마을이란 뜻으로 명명하였다.

그 청보리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걸어 언덕을 넘으니 눈 앞으로 이동통신탑이 보이고 좌측으로 이제부터 올라야 할 송전탑이 서 있는 나즈막한 산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청보리로 2차선 포장도로 좌측으로 이동통신탑이 서 있는 곳 좌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우측으로는 여전히 거대한 비닐하우스들이 보이고 곧이어 잔디들이 잘 자라고 있는 무명묘지 3기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지독한 가시잡목들이 앞길을 완전히 막아선다.

이리저리 피해 몇발자국 전진하지만 쉽지 않아 살펴보니 등로 우측 아래로 묵은 비포장임도가 보이고 조심스럽게 그곳으로 내려가 좌측으로 전진하니 주능선보다는 좋기만 여전히 약간의 잡목들이 발목을 잡는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조금 더 전진하다 등로 우측을 보니 드디어 무장면 마을과 그 뒤로 잠시 후 만나야할 무장석산과 한재산 넘어 지장제산 줄기가 보이고 그 뒤로 거대한 선운산 줄기가 내일을 약속이라도 할 듯 가깝게 다가 와 있다.

갑자기 벌목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는 무명안부 지나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좌측으로 거대한 태양광발전시설들이 보이고 곧이어 능선이 끝이나며 좌측으로 거대한 태양광발전시설이 있는 우측 가장자리로 내려서게 된다.

 

이제 등로 좌측으로 거대한 태양광발전시설들을 두고 우측 가장자리로 넓게 만들어진 등로를 따라 걸어가며 등로 우측을 보니 발 아래로 거대한 공사장이 펼쳐지는데 이곳 역시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ㅏㅇ을 정지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듯 보인다.

그 뒤로 거대한 비닐하우스들이 드문드문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무장읍과 잠시 후 만나야 할 한제산과 지장제산이 보이고 그 뒤로 하늘금과 맞닿아 있는 선운산 줄기가 오랫만에 제대로 된 산의 모습으로 이 산객의 가슴속에 남겨진다.

무장면은 전라북도 고창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이고 주변 여러 면들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곳으로 뚜렷하게 산지와 평야가 구분되지 않는 지세를 이룬다.

무장읍성과 무장동헌 및 객사 등이 있으며 현재 면 소재지인 성내리를 비롯해 무장리와 도고리 등 16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본래 조선 시대 무장현 읍치 일대의 일동면(一東面)과 이동면(二東面) 지역이었는데 1895년 전주부 무장군으로 다시 1896년 전라북도 무장군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이동면과 일동면을 중심으로 청해면의 일부 동리를 합쳐 고창군 무장면이라고 하여 12개 동리를 관할하게 하였으며 1935년 석곡면의 강남리와 목우리 및 옥산리 등 4개 동리를 편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무장이라는 명칭은 1407년(태종 7) 고려 때의 무송현(茂松縣)과 장사현(長沙縣)을 합쳐 각 이름을 딴 것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세종실록지리지(무장)에 본조 태종 7년(1407) 정유에 두 현(무송현과 장사현)을 합하여 무장이라 하고 이어 진(鎭)을 두어서 병마사로써 현사를 겸하게 하였다 라고 하는 관련 기록이 등장한다.

장사현과 무송현은 삼국사기지리지에 장사현은 본시 백제의 상로현(上老縣)으로 경덕왕이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하고 있다. (중략) 무송현은 본시 백제의 송미지현(松彌知縣)으로 경덕왕이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한다 라고 하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호구총수(무장)에 동면(東面)과 일동면이 기재되어 있으며 그 관할로 신촌리와 덕림 및 성내 등의 동리명이 확인되는데 이후 여지도서(무장), 대동지지 등의 지리지에 일동면과 이동면으로 기록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읍치 남쪽에 홍문제(紅門堤)와 남산이 묘사되어 있으며 이동면이 기재되어 있으며 또한 읍치 북서쪽에 이동면이 표기되어 있다.

그 밖에도 1872년지방지도, 광여도 등에 무장 읍치 일대에 두 면이 기재되어 있어 그 위치를 추정할 수 있다.

 

좌측으로는 거대한 태양광발전시설들을 두고 우측으로는 드넓은 밭경작지와 비닐하우스 단지들 그리고 무장읍 마을 뒤로 잠시 후 만나야 할 지맥 마루금과 내일 만나야 할 선운산 줄기를 확인하며 계속 전진하니 잠시 후 건너야 할 신촌농장길 뒤로 126.3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진행 방향을 확인하며 조금 더 전진하니 눈 앞에 공사하단 중단되어 놀고 있는 거대한 포크레인이 보이고 주위를 살펴보며 걸어가니 눈길은 자꾸만 우측의 무장읍과 무장석산 그리고 선운산 방향의 산줄기들과 암봉들이 눈에 들어 온다.

잠시 후 포크레인을 지나며 뒤돌아 보니 능선에서 내려 와 태양광발전시설 옆으로 걸어 온 등로와 그 좌측으로 공사장 절개지가 시원하게 보이고 있다.

 

지나 온 마루금과 진행해야 될 방향 그리고 우측으로 무장읍과 무장석산 및 선운산을 확인하며 걸어가니 평소와 달리 몸이 무겁고 3주 전 다친 오른쪽 무릎에 약간의 통증을 느끼는데 연골이 아닌 뼈 자체에 대한 타박상으로 느껴지는 통증이기에 조심하며 조금 더 진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후 태양광발전시설이 끝이나고 신촌농장길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곳에 도착을 해 진행 방향을 보니 지독한 잡목들로 인해 진행이 불가능하고 좌측은 거대한 양계장 시설이 있어 우측으로 조금 걸어가 전봇대 옆 좌측으로 보이는 비포장임도를 타고 산행을 이어가는데 그곳에서 우측을 내려다 보니 드넓은 논경작지 역시 농경지 정리를 하는지 아니면 다른 용도로 개발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드넓은 공사 현장이 보인다.

 

비포장임도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금새 임도가 끝이 나고 굵은 밤나무가 나타나는데 좌측으로는 거대한 양계장 시설에서 닭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조심해 그 나즈막한 잡목과 밤나무 능선을 통과하며 좌측을 보니 거대한 비닐 양계장이 보이고 능선을 벗어나니 밭경작지와 함께 붙어 있는 복분자 과실수 식재지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등로 우측을 보니 복분자 나무가 보이는 밭경작지 넘어 드넓은 비닐하우스 지나 저 멀리 고층의 아파트 단지들이 보이는 아산면 마을 뒤로 화시산과 호암산 줄기가 자꾸만 눈길을 잡는다.

그곳 밭경작지 끝자락이나 무명묘지 앞에서 남아 있는 과일과 식수로 허기와 갈증을 달래고 묘지 뒤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지나 온 방향으로도 거대한 양계장 뒤 좌측 저 멀리 오늘 산행을 시작한 구황산과 경수지맥 분기점이 보이고 사진에 담고 묘지 뒤 능선으로 오르니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 사이로 가시가 달려있는 노간주나무가 자꾸만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그래도 높지 않으니 땀 한번 흘리고 나니 경사도가 완만해지고 곧이어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기 시작하며 등로 좌측으로 벌목지가 좁게 나타난다.

그곳에서 좌측으로 남쪽과 남동쪽을 보니 저 멀리 고산과 고상산에서 우측으로 태청산과 장암산 지나 이어지는 영산기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진 모습이 보이고 바로 발 아래로는 대산면의 마을과 들판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잠시 더 그 벌목지대를 타고 오르니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무명안부 지나 평이하게 걸어가니 드디어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126.3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몇장 남겨 본다.

 

그 봉우리 지나 다시 관목의 활엽수들이 보이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지독한 가시잡목들이 우거져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우측으로 살짝 우회하며 내려가니 드넓은 밭경작지가 나타나고 그 밭 가장자리를 타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석동길 1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좌측에 과치마을이 있는 신촌리는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있는 리로서 신촌리의 지명은 신촌마을의 지명을 그대로 취하였다.

신촌리의 자연마을로는 신촌, 과치, 석동, 영기, 평장 마을이 있는데 신촌마을은 마을 뒷산 봉우리가 왕봉과 같다 하여 왕재산이라 칭하고 산은 왕이고 마을은 신하라는 뜻으로 왕신동으로 명칭하였다가 후에 난세를 겪으면서 다시 일어선 마을이라 해서 신촌으로 명하게 되었다.

석동마을의 석동은 뒷산에 바위돌이 많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그곳에서 석동길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내려가며 산행을 이어간다.

 

석동길이란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도로 주위로 많은 묘지들과 논경작지 및 거대한 비닐하우스 단지들이 보이고 사진에 담으며 내려가니 우측으로 관음사 가는 도로도 보이지만 직진으로 내려가니 금새 796번 왕재산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과치재에 도착을 하는데 그 도로 입구에는 석동입구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보인다.

과치재(796번 왕재산로 2차선 포장도로, 우 관음사와 성동입구표석)는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신촌리 과실재에서 독골(일명 석동)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조선 시대에 이곳에 임씨 성을 가진 정승의 묘를 썼는데 그 후손이 묘를 찾지 못하여 이 고개 밑에서 과실을 차려 놓고 망배를 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란 설이 있는 고개이다.

 

그 과치재에서 원 마루금은 도로 건너 보이는 능선으로 진행을 해야 하지만 부스터샷 때문인지 아니면 오랫만에 산정에 드는 체력문제인지 모르게 몸이 피곤하고 힘도 들어 능선을 포기하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왕재산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동학농민군로 2차선 포장도로에서 원마루금과 만나 진행을 이어가기로 한다.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조금 내려가니 우측으로 만화리란 표지석이 있는 방향으로 왕재산로 2차선 포장도로가 갈라지고 그 도로 건너편으로는 축사와 민가 그리고 비닐하우스가 보이는데 강아지 한마리가 이방인의 출현에 울부짖고 있어 재빨리 산행을 이어간다.

만화리는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있는 리로서 지명유래는 알기가 어렵다.

만화리의 자연마을은 소정마을, 사미마을, 복흥마을, 만화마을, 안마을이 있는데 복흥마을은 윗동네 박매, 아랫마을 봉촌, 뒷동네 박산 등의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었으나 1980년대 박산마을은 자연 소멸되었다.

박매는 연꽃 봉오리같다 해서 연방이라 부르고 봉촌은 새 형국이라 하여 봉촌이라 칭한다.

사미마을은 마을 중앙에 샘물이 잘 나오는 곳이 있다 하여 샘동이라 하다가 아름다운 미자를 넣어 사미동으로 개칭하였다.

 

과치에서 796번 왕제산로 ㅈ차선 포장도로 건너 능선으로 진행을 해야 하지만 만화리란 표지석이 서 있는 우측으로 갈라진 또 다른 왕제산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농막이 나타나고 그 농막 앞에 가실재라는 오석의 표지석과 그 옆으로 이정표가 보이는데 예향천리마실길이란 이름이 눈길을 끈다.

그곳 농막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며 우측을 보니 양파밭이 드넓게 펼쳐지고 그 뒤로 거대한 비닐하우스 단지가 보이는데 원 마루금은 그 뒷쪽으로 이어지는 듯 보인다.

한동안 더 걸어 오르니 우측으로 나즈막한 원 마루금이 보이고 곧이어 갈림삼거리 지나 우측의 원 마루금 능선이 내려오는 곳에서 또 다른 동학농민군로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걸어 오르며ㅜ 산행을 이어간다.

 

동학농민군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1차선 포장도로가 갈리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직진의 동학농민군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오르는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작은 콘크리트 건물이 굳게 닫혀있는 철문안에 보이고 그 앞에 안내판이 서 있어 확인해 보니 무장배수지로서 그 중앙부에 있는 104봉은 원천적으로 들어 갈 수 없는 금단의 땅이 되어 있어 철망 외부에서 사진 몇장 남기는 것으로 대신하고 철망 따라 우측으로 돌아가며 어려운 산행을 이어간다.

 

무장배수지 안에 있는 104봉은 사진으로 대신하고 배수지 철망을 따라 우측으로 돌아가니 철망 근처로 가시잡목들이 자라고 있어 아래로 돌아가다 보니 여간 힘든 산행이 아니다.

그래도 조심하며 진행하니 드디어 배수지 철망과 헤어져 우측으로 진행되고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대나무 군락지를 타고 걱정하며 전진하니 갑자기 눈 앞으로 높은 절개지가 나타나고 발 아래로는 드넓은 보리밭과 거대한 비닐하우스 단지가 내려다 보이는데 도저히 내려갈 방법이 없어 다시 후퇴해 지독하게 우거진 대나무 군락지 사이를 뚫고 내려가니 절개지가 낮아진 지점이 나타난다.

 

대나무 군락지에서 우측 드넓은 보리밭으로 어렵게 내려가 걸어가니 벌써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질척이고 잠시 후 비닐하우스 사이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통과하니 다시 파란 보리밭이 펼쳐진다.

그 보리밭 끄타지 걸어가니 다시 높지 않은 절개지가 나타나는데 부서지는 흙이다 보니 오르기도 쉽지 않아 네발로 힘들게 오르니 가시잡목들이 우거진 곳에 파란 그물망까지 설치되어 있어 힘들게 통과하니 묵은 밭경작지에는 지난 여름 우거졌던 잡풀들이 숨을 죽이고 있지만 발에 걸리는 것들이 많아 진행에 애를 먹는다.

그래도 천천히 그 묵밭을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인 북쪽과 북동쪽을 살펴보니 잠시 후 만나야 할 무장석산과 한제산 지나 지장제산이 보이고 그 뒤로 내일 걸어 만나야 할 청룡산에서 선운산 지나 경수산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마루금의 암봉들이 햇빛에 빛나고 있다.

 

진행 방향을 살펴보고 비석골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걸어가니 비석골이란 도로표지판이 보이고 콘테이너 박스도 보이는 곳을 지나 민가와 비닐하우스들이 보이는 마을 뒷길로 이어지고 있다.

마을 뒷길로 이어지는 비석골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며 이제 도로 좌측을 보니 296.4미터의 송림산이 지척으로 다가 와 있고 우측으로 보여야 할 무장읍 마을은 앞 능선에 막혀 보이지 않아 아쉬움도 남긴다.

오래 전 한번 들렸던 무장읍성이 생각 나 찾아 보니 무장읍성은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있는 조선전기에 축조된 성곽과 읍성 및 사적 제346호로서 지정면적 182,596 m2이고 고려시대까지 무송과 장사의 두 고을이었던 것을 효과적인 왜구의 방비를 위하여 1417년(태종 17) 합하여 두 고을 첫자를 떼어 무장이라 하고 성과 관아를 새로 마련하였다.

전라도의 여러 고을에서 장정과 승려 2만수천명이 동원되어 둘레 1,470척에 높이 7척의 성벽을 쌓고 성 위에 높이 1척짜리 여장(성위에 낮게 쌓은 담) 471개를 만들고 옹성(성문의 앞을 가리어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작은 성)을 갖춘 남문과 동문과 북문을 세웠다.

성벽 밖으로는 둘레 2,127척의 해자(성 밖으로 둘러 판 못)를 파서 견고히 하고, 병마사가 현감을 겸직하는 진을 베풀었던 곳이다.

이후 성은 더욱 넓혀 축조되었던 듯하니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둘레가 2,639척이라 하였고 성안에는 뱀의 두 눈처럼 생긴 지형에 두 곳의 샘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읍성은 사두봉이라 부르는, 남북으로 기다란 구릉을 중심으로 하여 평원을 마름모꼴에 가깝게 네모지게 성벽이 감싸고 있다.

둘레가 대략 1.2 km이고 성벽은 바깥의 돌이 흙 속에 묻힌 채 높이 1∼2m로 확연하게 남아 있고 해자는 너비 4m, 길이 574m가 남아 있다.

성에는 남문인 진무루가 있으며 성안에는 옛 고을의 풍모를 알 수 있는 객사와 동헌이 있는데 객사는 송사관이라 하여 옛 무송과 장사의 끝자를 따서 이름 지었다.

성안에는 조선시대의 각종 건물터와 사직단과 여단 및 성황단 등의 터전이 그대로 남아 있다.

조선시대의 읍성으로는 그 유례를 보기 어려운 확실한 연혁을 가지고 있어 학술적, 역사적 중요성이 매우 크며 성안의 중요한 건물들은 별도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무장읍성은 고창읍성과 함께 고창에 들리면 한번쯤 돌아봐도 좋을 역사적 성터임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해 본다.

 

잠시 더 그 비석골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좌측으로 월림정동길 가는 도로 표지판이 걸려있어 사진에 담고 계속 걸어가니 발바닥에서 불이 날듯 뜨겁기만 하다.

도로 좌측으로 녹색 철망이 설치된 곳을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지도를 보니 용전길로서 그곳에서는 도로 건너 눈 앞에 펼쳐진 드넓은 보리밭으로 들어가 산행을 이어간다.

보리밭 한가운데에 있는 묘지지대를 지나 묵은 밭 둑을 따라 걸어가니 우측으로 커다란 무명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다시 이어지는 민가와 밭경작지 사이로 나 있는 용전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또 다른 갈림삼거리를 만나 우측으로 내려가니 금새 796번 동서대로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참재(창재)에 도착을 한다.

참재(창재)는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도곡리의 양곡마을 남쪽에서 교흥리 서우내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양곡(良谷)마을은 마을 뒷산에 백토(白土)가 나옴으로 백토치로 부르다가 흰 백자 들어있는 양(良)자를 넣어 양곡(良谷)으로 개칭을 한 자연마을이다.

 

참재에 있는 796번 동서대로 4차선 포장도로는 차량통행이 거의 없기에 편안하게 통과한 후 새로 신설된 듯한 15번의 또 다른 동서대로 4차선 포장도로로 올라 걸어가니 최근에 참재에서 접속하는 접속로가 신살되었는지 정상부근에는 아직도 공사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이제 동쪽과 북동 방향으로 곧게 뻗어 있는 15번 동서대로 4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궁동교차로까지 걸어가게 되는데 허기가 져 남아 있는 육포와 과일로 허기를 달래며 진행을 이어간다.

걸어가며 진행 방향 좌측 앞을 보니 잠시 후 올라야 할 무장석산 뒷쪽의 한제산과 지장제산 지나 내일 만나야 할 청룡산에서 선운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바위암봉과 암릉이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햇살에 빛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최근에 신설된 15번 동서대로인지 지나다니는 차량도 많지 않아 편안하게 그러나 조금은 지루하게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교흥리 방향으로 드넓은 밭과 논경작지들이 펼쳐지고 그 한가운데로 아름다운 시멘트 포장도로가 뚫려있어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 뒤 저 멀리 멋진 산줄기가 길게 펼쳐져 있어 잠시 지도로 확인해 보니 사진 정중앙 제알 먼 곳으로 구황산과 경수지맥 분기점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축령산과 방장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 산줄기가 길게 이어지고 구황산 우측으로는 고산과 고성산 지나 우측 가장자리로 희미한 태청산과 장암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그렇게 도로 우측으로 영산기맥과 경수지맥 마루금을 확인하고 계속 이어지는 15번 동서대로 4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300미터 전방에 갈림사거리가 있다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데 등로는 좌측의 동호해수욕장과 해리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잠시 후 중앙분리대가 사라지고 궁동교차로란 도로표지판이 붙어 있는 갈림사거리에서 도로를 건너 좌측인 해리 방향으로 꺽어 들어가니 그곳에도 역시 도로표지판이 서 있는데 이 산객이 걸어 온 방향으로는 공음과 무장 방향이 표기되어 있다.

궁동마을은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교흥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 곳으로 교흥리는 낮은 산도 많고 논이 넓은 지역인데 지명 이름은 행정구역 폐합 당시 병합된 지역 중 교촌과 덕흥의 이름을 따서 교흥리라 하게 되었다.

교흥리의 자연마을로는 교촌(校村), 궁동(弓洞), 서원(書院), 덕흥(德興) 마을이 있는데 교촌(校村)마을은 세종 2년 마을에 향교가 설립되었고 1920년 이후 향교마을이라 해서 교촌으로 이름하였다.

궁동(弓洞)마을은 지형이 황궁형이면서 향교터를 지켜주는 것은 활이란 무기가 있어야 한다 하여 중간에 위치한 마을의 이름을 궁동이라 하였다.

 

궁동교차로에서 좌측 해리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면 송림산로 2차선 포장도로가 열리고 잠시 더 걸어 들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다시 나타나는데 좌측으로 상하농원과 동호해수욕장 그리고 해리 방향으로 가는 도로표지판이 보이고 이 산객이 진행해야 할 직진 방향으로는 양곡길 시멘트 포장도로가 열려있는데 아무 도로 표지판도 보이지 않는다.

언덕 넘어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커다란 공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고 좌측으로는 넓은 황톳빛 밭경작지 지나 진행해야 할 능선이 빤히 보이기 시작한다.

 

좌측으로 비포장임도가 갈리는 갈림삼거리 지나 좌측의 밭경작지를 타고 능선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니 풍산홍씨세장산과 많은 묘지들이 보이고 그 옆에 자리펴고 앉아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시원한 물 한모금 더 마신 후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는 보이지 않고 무명묘지 한기가 나타난다.

사라진 등로를 버리고 방향만 보며 굵은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철망이 나타나고 지독한 가시잡목들이 우거져 있는데 조금 더 전진하니 무장석산 절개지가 나타나고 눈 앞으로는 거대한 채석장이 흉물스럽게 펼쳐져 있다.

도저히 좌측으로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뒤로 후퇴해 우측으로 우회하며 걸어가니 여전히 잡목들이 우거져 있지만 가시들이 사라져 그 잡목들을 헤치며 천천히 조심하며 어렵게 진행을 이어간다.

 

한동안 지독한 잡목들과 씨름하며 천천히 내려가니 잡목들은 조금 덜해지지만 커다란 바위들이 등로를 막고 그곳을 지나 절개지 좌측 능선을 따르니 무너지는 흙과 가시잡목들로 진행이 어려워 우측 아래로 보이는 비포장임도로 내려가 진행하며 진행방향을 살펴보니 우측으로 무장석산의 거대한 채석장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잠시 후 올라야 할 한제산 정상부로 이어지는 등로가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그렇게 채석장 좌측 상단의 등로를 타고 걸어가며 진행 방향으로 한제산으로 이어지는 등로도 확인하고 뒤돌아 지나온 절개지와 암벽도 살펴본 후 우측의 채석장 방향을 내려다 보니 저 멀리 남쪽 방향으로 영산기맥 상 좌측의 축령산에서 구황산 지나 가운데 ㅏㅇ봉처럼 보이는 고산과 고성산 지나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태청산과 장암산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 마루금이 빛나고 그 우측 앞으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넘었던 비산비야의 경수지맥 마루금이 이어져 오는 모습도 눈길을 잡는다.

 

무장석산 위 절개지에 만들어진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타고 우측으로 영산기맥 산줄기를 확인하고 북쪽으로 계속 전진하니 다시 절개지 능선으로 오르는데 절개지 좌측으로 지독한 가시잡목들이 우거져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보인다.

조금 더 걸어 올라 절개지 상단부까지 도착한 후 무너진 철망을 넘어 가시잡목들을 통과하니 다시 평이한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집사 상산김씨 묘지 지나 평이한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김해김공 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 넘어 오르니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놓은 211.3미터의 한제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이정판 옆에는 고창410이란 삼각점도 박혀있다.

다만 한제산에 관한 자료가 없고 정상 역시 나무들로 막혀 전혀 풍경이나 조망이 없기에 정상부에 대한 사진과 추억만 남기고 곧바로 한제산 정상을 출발한다.

 

한제산을 지나 북동 방향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니 활엽수 아래 잡목들이 보이는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후 쓰러져 썩어가는 고사목들이 등로를 가로막고 있는 모습들도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동안 뚜렷한 등로를 타고 큰 고도차이 없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다시 등로는 완만하게 내려가는데 갑자기 눈 앞에 벤취쉼터 2개와 이정표가 나타난다.

살펴보니 좌측 진행방향으로는 희어재까지 1.7 Km에 지나온 방향으로는 한제산과 무장석산이 그리고 우측 방향으로는 배촌마을로 내려갈 수 있는 방향과 거리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이다.

그곳에서 좌측 희어재 1.7 Km 방향으로 내려가니 솔갈비가 수북히 깔려있는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어 마음 편히 진행하는 시간이다.

 

편안하게 깔려있는 솔갈비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굵은 소나무가 서 있는 무명안부 지나 멋진 소나무 등로가 길게 펼쳐져 있는데 그 아래 등로에는 말라있는 잡풀들이 발걸음에 걸리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 뒤 저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오늘 하루 세상을 밝혀줬던 햇살이 송림산과 장사산 능선 위로 기울어져 가며 어둠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이제 희어재까지 남아 있는 거리가 그리 멀지 않기에 어둠이 내리기 전에 내려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다시 굵은 소나무 아래 우거졌던 잡풀들이 말라있는 등로를 따라 족믕 ㄴ빠르게 걸어가니 보이지 않던 바위들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 좌측 뒤 저 멀리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넘이를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금새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152.2미터의 지장제산에 도착을 해 추억과 사진 몇장 더 남기고 주위를 살펴보니 나무들이 가득차 있어 풍경이나 조망은 전혀 없다.

잠시 더 머물며 이정판 주위에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까지 확인하고 다시 굵은 소나무 아래 우거졌던 잡풀들이 남아 있는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산화에 잡풀 줄기들이 걸려 주의가 필요해 보여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내려간다.

 

그렇게 한동안 부드러운 소나무 아래 잡풀이 보이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다시 키가 큰 산죽등로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하자마자 짧은 바위 너덜등로도 보인다.

그 바위너덜등로를 지나니 다시 부드러운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한동안 무심으로 내려가다 진행 방향을 보니 내일 아침에 올라야 할 252.7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이고 넓은 공터를 지나니 등로 우측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많은 묘지들 지나 인삼포와 논경작지가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 성산리와 학산리 방향의 학산과 무명봉이 보이고 그 넘어 가장 먼 방향으로 좌측의 방장산에서 우측의 축령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 마루금이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등로 좌측을 확인하고 사진에 담은 후 다시 이어지는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등로 우측 앞으로 새벽에 주차해 둔 애마가 내려다 보이고 그 옆으로 오늘 산행 날머리인 733번 희어재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희어재에 도착을 해 오늘 하루 힘든 산행을 마무리 한다.

희어(여)재(이정표)는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서 희어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아산면 성산리 월성에서 선운사로 넘어가는 고개가 희어재이고 희어재의 유래는 무장면과 해리면 쪽에서 선운사로 가는 고개에 얽힌 지명 유래담이다.

이 이야기는 1992년 고창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고창군지에 실려 있으며 2009년 고창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고창군지에 희어재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참당암을 지을 때 새끼 꼬는 것을 아산면 성산리 월성마을에 맡겼는데 참당암에서 절을 지으면서 새끼를 가지러 가니 그제야 짚을 추리고 있었다. 

당장 써야 할 새끼를 이제야 꼴 채비를 하고 있으니 낭패였기에 발만 동동 구르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으니 짚배눌 밑에서 새끼 머리를 꼬아 주면서 끌고 가라고 하며 충분히 쓸 수 있도록 대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월성에서 새끼를 꼬고 참당에서 끌어당겨 썼기 때문에 고개가 닳고 닳아 희어져서 희어재라고 한다는 것으로 이러한 까닭에 월성에서 새끼를 꼬아 댄 사람을 도인이라고 한다.

희어재의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새끼를 꼬아 댄 도인, 끌어당긴 새끼로 닳아 희어진 고개로서 이 이야기는 새끼를 꼰 사람이 비범한 인물이었던 까닭에 새끼를 끌어당겨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꼴 수 있었으며 새끼를 끌어당겨 썼기에 고개가 희어졌다는 지명(고개) 유래담이다.

아직 완전한 어둠이 내리기 전이라 새벽에 확인하지 못한 희어재 정상부를 살펴보고 애마 옆에 세워진 표지석을 확인해 보니 강릉김씨 지산군파 조상묘지란 글자들이 보인다.

 

산행거리와 산행시간을 생각해 보면 그리 힘들거나 어려운 산행은 절대 아닌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웠다는 느낌인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3차 부스터샷을 맞은 후 너무 빨리 격한 운동을 하거나 지난 주 운동을 하지 못하고 2주만에 산상에 들어 체력적으로 힘든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는 시간이다.

배낭 정리하고 고창읍에 있는 모텔과 여관을 찾아 몇군데 전화를 해 예약하고 출발하니 이제서야 어둠이 내리면서 또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다.

고창읍성 옆에 위치한 히든모텔에 들어 샤워하고 근처에 있는 횟집에서 정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모텔로 돌아 와 일처리하고 사진 정리하니 밤 10가 지나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에 일어 나 보니 흥건히 땀을 흘리며 세상 모르게 꿀잠을 자고 나니 어제 피곤했던 몸이 많이 좋아진 느낌이라 남아 있는 경수지맥 산행도 마무리하고 올라가기로 한다.

내일 하루도 의미있는 시간이길 바라며 오늘보다 더 즐거운 내일이길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