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전라북도 임실군과 순창군의 성수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1년 06월 02일 (수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흐렸다 개었다를 반복하며 약간의 바람이 불어 줬으나 무더웠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16도에서 영상 29도
산행인원 : 남양주 금곡님과 칠갑산 (총 2명)
산행코스 : 원치고개(학정고개, 세학로 2차선 포장도로)-논둑-관리부실의 묘지지대-비포장임도-능선진입-시루봉(334.6봉, 순창421 삼각점)-수원백공 묘지들-무명안부-송전탑(번호확인 못함)-426.3 무명봉-443.4 무명바위봉-전망바위-493.1봉-조망처-무명묘지-439.7 전망바위봉-429.9 무명봉-무명묘지-비포장임도-벌목 후 밤나무 조림지-사자바위 갈림삼거리-사자바위(486.1봉)-전망바위(470.9봉)-갈림삼거리 복귀-433.2 무명바위봉-463.3 무명봉-무명묘지-448.8 무명봉-불난지역 바위암릉 잡목등로-387 무명 바위암봉-바위암릉 내리막 가시잡목등로-과수원 비포장임도-시멘트 포장도로-거대한 한우축사-어치고개(717번 강동로 2차선 포장도로)-시멘트 포장도로(밤나무 과수원)-갈림삼거리(우측)-무명묘지(철망)-밤나무 과수원-비포장임도-능선진입-급경사 오르막 잡목등로-묵은 비포장임도(주능선)-390.6봉 갈림삼거리-390.6봉(금곡님 띠지)-갈림삼거리 복귀-증통정대부 남원양공묘지(철조망)-바위암릉 우회-전망암-바위 로프등로-철 계단-무량산(586.4봉, 정상석, 이정판)-공터 무인산불감시카메라와 이정표(용등마을 2.5 Km와 구미저수지 2.54 Km)-전망바위-안전목책과 로프-급경사 바위암릉 우회등로-큰 각시봉 갈림삼거리 안부 이정표(용동마을 1.74 Km와 구미저수지 1.78 Km, 무량산정상 0.76 Km)-녹슨 철조망 등로-마루금 복귀-녹슨 철조망-바위암릉-소나무 등로-무명묘지(조망바위)-밤나무 과수원-흥성장공 묘지-시멘트 포장도로-추동고개(21번 귀미로 2차선 포장도로)-시멘트 포장도로-흥정장씨 서윤공파 추동문중 제단과 열녀해주오순녀열행비-밤나무 과수원-무명묘지들(우측 축사)-귀미로 시멘트 포장도로-매실 과수원-잡목 둔덕봉-시멘트 포장도로-밤나무 과수원-구미고개(마상굴재)-능선진입-밤나무 과수원-가시잡목 등로-289.1봉(금곡님 띠지)-남원양공 묘지-소나무 등로-가시잡목 등로-무명묘지-비포장임도 무명안부-234.3봉 우회-벌목 후 밤나무 조림지(우측 원형 철조망)-멧돼지 목욕탕-바위암릉-280.2 무명봉-284.3 삼각점봉(순창422 삼각점, 이정판)-284.1 무명바위봉-소나무 등로-급격한 내리막 등로-비포장임도-능선진입(소나무 재선충방제사업 플랭카드)-지독한 잡목등로-286.3봉(이정판)-최악의 가시잡목 등로-무명안부-비포장임도(지맥 마루금 접속)-능선진입-무명안부-239.8봉(이정판)-잡목등로-묵은 비포장임도-남원양공 묘지들-시멘트 포장도로-열부증숙부인도강김씨-어은정-육각정자와 운동시설-양사형 조형물-평남길(섬진강 뚝방 포장도로)-섬진강 종주 자전거길-평남1호 배수암거-섬진강 도로표지판-구남교(오수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합수점)-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4.24 Km (원치고개 일명 학정고개에서 오수천 합수점까지 접속구간 없이 순수한 지맥 산행구간)
산행트랙 :
산행시간 : 08시간 47분 (06시 42분부터 15시 30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4시 00분 여관에서 기상 후 샤워하고 배낭 정리
05시 00분 금곡님 만나 참편한 39 콩나물 국밥식당에서 아침식사 (5,500.- x 2 = 11,000.-)
05시 35분 근처 편의점에서 빵과 식수 구매 (9,200.-)
06시 10분 산행 날머리인 구남교에 도착 해 애마를 주차시키고 금곡님 차량으로 원치(학정)고개로 이동
06시 42분 산행 들머리인 원치(학정)고개에 도착 해 금곡님 애마 주차 후 곧바로 산행 시작
올때 - 15시 30분 산행 날머리인 구남교에 도착해 오수천이 섬진강과 만나는 합수점에서 산행 종료
16시 05분 애마를 회수 해 산행 들머리인 원치고개까지 이동해 금곡님 차량 회수 후 헤어져 귀가
19시 10분 약간 막히는 도로를 타고 무탈하게 귀가 후 가족들과 저녁식사
성수지맥이란 ???
호남정맥 팔공산(1151봉)에서 섬진강 본류와 그 지류인 요천을 가르며 서쪽으로 내려선 산줄기는 마령치에서 올라선 펑퍼짐한 봉우리에서 오수천을 감싸며 내려가는 두 개의 산줄기로 나뉜다.
남쪽으로 개동산을 지나 요천과 오수천을 가르면서 내려가다가 요천 끝에 이르는 산줄기는 개동지맥이고 오수천의 서쪽 울타리를 이루며 성수산(875.9봉), 삼봉산(529.4봉), 고덕산(619봉), 봉화산(467.6봉), 매봉(609.8봉), 무제봉(558봉), 지초봉(571봉), 원통산(603.5봉), 무량산(586.4봉)을 거쳐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 구남마을의 어은정에 이르는 도상거리 56.8 Km되는 산줄기가 성수지맥이다.
초여름 무더위와 지독한 잡목지대로 고생을 하였지만 무탈하게 계획된 지점까지 산행을 마무리하며 기분 좋게 귀가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성수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전북 임실군과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및 네이버의 지식백과 그리고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지난 3주 전 원치고개 일명 학정고개로 내려서며 1주일 뒤 다시 이 자리에 서서 성수지맥 마지막 구간을 마무리하자고 약속을 했지만 계속 되는 비 소식에 다른 곳으로 가 또 다른 산줄기 잇기를 진행하고 어제 웅석지맥 첫 구간을 길게 잘 마무리한 후 남원으로 돌아 와 하룻밤 자고 조금은 여유있게 다시 원치고개에 서 있는 시간이 그저 감사하기만 하다.
선답자들이 걸었던 사진과 산행후기로 성수지맥 마지막 구간의 등로를 가늠해 보지만 역시나 직접 몸으로 부딪혀 보지 않으면 그 자료들조차 모두 허상임을 알기에 서두르지 않고 그저 즐기며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 걸어보리라 다짐도 해본다.
다만 어제 웅석지맥 첫 구간을 길게 타면서 산행 거리는 견딜만한 거리이지만 진행이 쉽지 않아 산행 시간은 참으로 길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는데 역시나 몸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평소와는 달리 무겁기만 하다.
날씨가 무더워지고 가시잡목들이 무성해지기 시작하며 거리가 짧다해도 쉽지 않은 산행이 되겠지만 지금까지의 경험과 특히 함께 걸어주는 남양주 금곡님이 계시기에 오늘 하루도 계획된 산행을 무탈하게 완료하고 기분 좋게 귀가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여유가 있어 새벽 조금 늦게 일어 나 남원시내의 24시 콩나물 국밥집에서 든든하게 아침식사까지 마친 후 산행 날머리인 구남교 앞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금곡님 차량을 이용해 원치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하니 약간의 잡목들이 박목을 잡지만 심하지 않아 꾸준하게 오르니 바위암릉으로 된 493.1봉 지나 무명묘지 좌측의 전망바위에서 등로 좌측인 북동쪽을 살펴보니 우측 제일 먼 곳으로 천황지맥 분기점인 팔공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좌측으로 선각산 앞으로 희미하게 성수지맥 분기점인 마령재 좌측의 성수산이 선각산과 겹쳐 보이고 그 바로 좌측으로 덕태산이 둥그런 어머니 품처럼 솟아 있다.
그 좌측으로 지난 구간 힘들게 올랐다 내려 온 고덕산과 그 뒤로 내동산이 보이고 좌측 앞으로 지난 구간 걸었던 봉화산과 응봉 지나 좌측 앞 지초봉으로 이어지는 성수지맥 마루금 좌우측으로 올망졸망 솟아 있는 남원과 임실의 산들이 보인다.
생각지도 못한 환상의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고 493.1봉 지나 잡목들을 헤치며 진행하니 비포장임도와 만나고 그 임도를 따르니 사자바위 갈림삼거리가 나타난다.
마루금은 우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지만 좌측 멀지 않은 곳에 사자바위가 있어 잠시 그 사자바위 정상으로 올라 진행 방향인 남서쪽을 살펴보니 좌측 앞으로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마루금이 좌측 뒤 무량산으로 이어지고 그 우측 옆으로는 마루금에서 벗어 나 있는 646.7미터의 용궐산이 바위암봉의 모습으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무량산과 용궐산 가운데 뒤로는 섬진강 넘어 벌동산 한자락과 두류봉이 솟아 있고 무량산 뒷쪽으로 보여야 할 무이지맥을 찾아 보지만 아직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다시 잡목 등로를 타고 467봉 지나 387 바위암봉은 우회할까 고민하다 오르니 예전에 불이 났던 지역으로 이제는 키가 큰 지독한 가시잡목들이 앞을 가로막고 어렵게 아무것도 없는 정상을 만나고 바위암릉을 따라 조심하며 내려가니 커다란 축사 지나 어치고개를 넘는다.
다시 이어지는 가파른 잡목등로를 타고 힘들게 올라 완만해진 마루금을 따라 무량산으로 진행하는 도중에 조망처에서 등로 좌측인 북동쪽을 살펴보니 바로 아래에 방금 전 넘어 온 어치고개 좌측으로 성수지맥 마루금이 돌아가고 우측 뒤로 지난 달 걸었던 천황지맥의 노적봉이 솟아 있으며 그 뒤로 백두대간의 고남산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 고남산 우측으로는 바래봉과 덕두산이 보이고 이제 고남산 좌측인 북쪽을 살펴보니 사진 정중앙 가장 먼 곳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만행산 천황봉 좌측으로 개동산이 보이고 좌측으로 분기점이 있는 팔공산 지나 선각산과 덕태산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산줄기가 펼쳐져 있어 한동안 많은 사진들을 남겨 본다.
이제 눈을 남동 방향으로 돌리니 우측으로 무량산 산줄기 좌측 앞으로 무량산을 넘어 진행해야 할 성수지맥 마루금이 길게 이어지고 그 뒤 가장 먼곳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바위암봉으로 이뤄진 천황지맥의 마지막 봉우리 방향인 고리봉에서 좌측으로 오르며 삿갓봉과 문덕봉이 톱날 형상으로 이어지고 비홍치 넘어 응봉과 풍악산 지나 봐측 보이지 않는 노적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온다.
그 천황지맥 마루금 뒷편으로도 또 다른 산줄기 하나가 보이는데 바로 만복대에서 분기한 견두지맥 산줄기로서 좌측부터 반야봉과 만복대 우측 아래로 견두산과 천마산으로 이어지는 견두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오늘 산행 중 최고봉인 무량산을 지나 우회하며 내려가니 추동고개 내려가기 전 바위에 묘지 하나가 보이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퍄보니 잠시 후 넘어야 할 추동고개 건너 무명봉과 구미고개 통과 후 우측으로 290봉과 240봉으로 이어지는 성수지맥 마지막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롭게 펼쳐져 있다.
그 뒤로 좌측의 남산에서 체계산 지나 우측 천황지맥의 삿갓봉과 고리봉 능선 우측으로 곡성의 산들도 보이는데 앞 능선에 막혀 정확한 이름까지 불러주기엔 어려움을 느낀다.
비포장임도가 지나는 무명안부에서 사라진 등로를 찾아 어렵게 286.3봉에 올라 추억 한장 남기고 내려오는데 사라진 등로에는 가시잡목이 우거지고 그 아래 간벌된 나무들이 썩어가며 최근 들어 가장 힘든 산행을 하며 지옥을 맛보며 내려오니 다시 비포장임도를 지나 마지막 239.8봉 지나 드디어 섬진강 옆 어은정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우측에 섬진강을 두고 강변로를 따라 오수천과 만나는 합수점에 도착을 하고 좌측의 오수천이 우측의 섬진강과 만나 진직 방향으로 내려가는 섬진강 본류를 사진에 담으며 3구간으로 나눠 진행한 성수지맥 산행도 무탈하게 마무리하며 자축하고 금곡님과 헤어져 귀가하는 시간은 늘 같은 마음으로 감사한 시간이다.
어제 웅석지맥 첫 구간을 길게 마무리하고 다시 차량을 운전해 남원으로 왔기에 오늘은 조금 여유있게 늦은 시간에 금곡님을 만나 콩나무 국밥집에서 아침식사를 든든하게 먹고 산행 날머리인 구남교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금곡님 차량으로 지난 구간 마무리를 한 원치(학정)고개에 도착을 하니 아침 6시 40여분을 가리키고 산행 준비 후 곧바로 산행을 시작하는데 벌써 더위가 몸을 감싸며 오늘 산행이 쉽지 않음을 예고하고 있다.
원치고개(학정고개, 세학로 2차선 포장도로)는 임실군 삼계면 학정리와 덕치면 가곡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원치고개는 가곡리 원치마을의 이름에서 차용된 이름으로 원치마을은 이웃마을과는 거리가 멀고 재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학정고개는 학정리 학정마을에서 차용된 이름으로 사람들이 마을 뒷산의 학이 놀던 곳에 정자를 짓고 학정이라고 이름 붙인 데서 연유한 것이다.
원치고개 또는 학정고개라 불려지는 세학로 2차선 포장도로 우측 옆 전봇대가 서 있는 곳에서 모내기가 막 끝난 논 둑을 타고 성수지맥 마지막 구간을 출발하는데 3주전과는 또 달리 기온이 오르면서 초반 출발부터 이마와 등줄기에 굵은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한다.
산행을 시작하며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모내기가 끝난 논둑 건너 남양홍공 묘지들이 보이는 좌측 등로를 타고 올라 비포장임도를 타고 주능선까지 오른 후 다시 잡목 능선으로 올라 우측으로 솟아 있는 334.6미터의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살펴보고 출발한다.
논둑을 지나 잡풀들이 무성한 묘지로 통하는 묵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따라 오르니 관리가 되지 않아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남양홍씨 묘지들이 많이 보이는 장소에 도착을 해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산행을 출발한 원치 또는 학정고개에 주차시킨 차량 뒷쪽으로 지난 구간 내려 온 444.5봉 좌측 뒤로 원통산이 올려다 보인다.
남양홍씨 묘지를 지나 오르니 등로는 묘지 좌측으로 이어지고 그곳에선 좌측에서 올라오는 넓은 비포장임도와 만나 한동안 그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길게 걸어 오른다.
굵은 소나무 사이로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임도 좌우측의 풍경들을 살펴보며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임도를 따르니 언덕으로 오르고 그곳에서 임도는 좌측 아래로 내려가고 등로는 우측 잡목으로 이어지는데 좌측 아래로 흐르는 비포장 임도 아래 보이는 묘지 위에서 진행 방향을 올려다 보니 잠시 후 만나야 할 송전탑 뒤 426.3 무명봉과 그 좌측 뒤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493.1봉이 차례로 올려다 보인다.
묘지 위에서 진행 방향을 확인하고 우측 잡목이 우거진 입구로 들어가니 평이한 잡몯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후 어렵지 않게 순창421이란 삼각점과 백두사랑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정상판 그리고 많은 선답자들이 걸어 놓은 산행 띠지들이 보이는 334.6미터의 시루봉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진행을 이어간다.
시루봉은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와 임실군 삼계면 학정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명칭 유래를 보면 시루봉은 풍수지리상 시루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오고 또한 산의 형상이 마치 떡 시루를 엎어 놓은 형상이라 하여 시루봉이라 불린다.
시루봉은 순창 북쪽에 솟구친 산으로 산줄기는 백두 대간 장수 영수산에서 북서쪽으로 가지 친 금남 호남 정맥의 장안산을 지나 장수 팔공산 마령치 부근에서 갈려나온 성수지맥(섬진 3지맥)을 나뉘어 놓는다.
이 지맥은 성수산과 임실 고덕산 및 응봉, 두만산에 이르면서 서쪽으로 나래산 줄기를 보내고 원통산과 시루봉을 지나 서쪽으로 용궐산(지명 변경 전 명칭: 용골산) 줄기를 보내고 무량산을 지나 적성면 평남리 어은정 앞 섬진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물줄기는 모두 섬진강에 합류하여 광양만에서 남해로 흘러든다.
시루봉 정상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임실 원통산과 백련산이 자리 잡고 있고 섬진 댐 너머로 호남 정맥의 오봉산과 경간산이 버티고 있다.
동쪽으로는 남원 만행산 천황봉 너머로 백두대간의 고남산과 봉화산이 우뚝 서 있고 남쪽으로 용궐산과 무량산 너머로 남원의 문덕봉과 고리봉이 서쪽으로는 성미산, 여분산, 용추봉 너머로 정읍 내장산과 고창 방장산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해발 384.3m의 시루봉이 있는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는 산줄기가 늘어지게 뻗어 있어 느재 또는 어치(於峙)로 불린다.
느재 남쪽에는 용이 나는 형상의 비룡산과 노점 마을 뒤에는 감투봉이 있고 시루봉 남쪽에 있는 점촌(店村) 마을은 놋그릇을 파는 가계가 있었으며 점촌 동남쪽에 있는 노점 또는 유점(鍮店)은 놋그릇을 만들었다고 한다.
수령 250년의 어치리 은행나무와 마을을 비보할 목적으로 돌을 쌓아 만든 어치리 어치 마을 돌탑과 장군목 유원지가 있다.
시루봉에서 추억을 남기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낸 후 천천히 내려가니 바로 눈 앞으로 수원백씨 묘지들이 보이는데 이곳 역시 관리가 되지 않아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봉분들은 무너지기 시작해 앞으로는 관리가 되지 않는 이런 묘지들은 쓰지 않는 것이 맞을 듯 싶다.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수원백공 묘지들 지나 저 멀리 228번 송전탑 넘어 뾰족하게 올려다 보이는 426.3 무명봉 뒤로 더욱 뾰족하게 솟아 있는 493.1봉이 차례로 올려다 보인다.
수원백공 묘지들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갑자기 좌우측으로 뚜렷한 등로가 보이는 안부가 나타나 지도를 확인해 보니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안부인데 좌측의 임실군 삼계면 학정리와 우측의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이다.
학정리는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에 있는 리로서 북쪽에는 깃대봉이 있고 남동쪽은 풍악산이 있으며 동쪽에는 오수천이 흐른다.
산간지역 내의 좁은 평야지역에 자리한 마을로서 13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어 교통은 비교적 편한 편이며 자연마을에는 학정마을이 있는데 이는 사람들이 마을 뒷산 학이 놀던 곳에 정자를 짓고 학정이라고 이름 붙인 데서 연유한 것이다.
임실군과 순창군의 경계를 이루는 무명안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228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그 송전탑을 지나 오르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426.1미터의 잡목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진행을 이어간다.
다시 이어지는 약간의 잡목 능선을 따라 전진하니 제법 굵은 소나무 아래 산객의 키보다 더 자란 잡목들이 등로를 메우고 있는 큰 고도차이 없이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바위들이 보이는 443.4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겨본다.
바위 무명봉을 지나 여전히 굵은 소나무 아래 키가 큰 잡목들이 등로를 가득 채우고 있는 등로를 헤치며 전진하니 바위암벽 앞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등로 우측인 남서쪽을 살펴보니 암봉으로 이뤄진 용궐산이 솟아 있고 그 우측 뒤로 백련산이 보이고 그 백련산 좌측 뒤 멀리로는 회문산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저곳은 빨치산으로 잘 알려진 산이기도 하다.
이제 지난 구간 걸어 넘었던 북쪽을 살펴보니 중앙 바로 좌측으로 원통산과 우측 뒤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지초봉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저곳은 제법 알려져 있는지 등로가 좋았기에 편안하게 진행한 기억이 있는 곳이다.
지난 구간 지났던 성수지맥의 원통산과 지초봉을 확인하고 다시 등로 우측으로 남서쪽을 살펴보니 용궐산이 아름답고 그 우측 저 멀리 회문산이 살짝 머리를 내밀기 시작하고 우측 뒤 뾰족하게 솟아 있는 백련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에 있는 용궐산은 높이 645m로서 금남정맥의 영취산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가 장수군 팔공산(1,151m)에서 원통산(603m)까지 벋은 뒤 북쪽의 갈담천에 막혀 방향을 남쪽으로 돌려 섬진강 기슭 어치리에 솟은 산이다.
과거 용골산(龍骨山)으로 불렸으나 2009년 용이 거처하는 산이라는 의미의 용궐산(龍闕山)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3면이 섬진강에 에워싸여 있고 기암괴석이 많아 경관이 빼어나다.
산행은 어치리 장구목에 있는 요강바위에서 시작하여 장구목재와 삼형제바위를 지나 정상에 오른 뒤 남릉을 지나 북서쪽 도로를 타고 내룡리로 내려서면 되는데 산행 시간은 4시간 정도 걸린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 정상에는 바둑판이 새겨진 너럭바위가 있는데 주민들이 신선바둑판이라 부르는 이 바위에는 옛날 이 산에서 수도하던 스님이 바둑을 두자는 내용의 서신을 호랑이 입에 물려 무량산에 있는 스님에게 보낸 뒤 이 바위에서 만나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정상에 오르면 동남쪽으로 지리산의 제2봉인 반야봉(1,751m)이 아스라히 보이고 북쪽으로는 원통산과 섬진강의 지류인 갈담천 너머 백련산(759m)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무량산(586m)과 섬진강 상류가 내려다 보이며 남서쪽으로는 멀리 강천산(584m)과 내장산국립공원의 연봉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이제 눈을 남동쪽으로 돌리니 소나무 가지 사이로 잠시 후 만나야 할 무량산이 아름답게 다가 와 있고 그 우측 뒤로 무이지맥과 가깝게 서 있는 두류산 앞으로 하얀 바위암봉으로 빛나고 있는 벌동산 우측 가장자리로 용궐산에서 흘러 내린 산줄기가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두류산 뒷쪽으로는 방향 상 무이지맥 마루금이라 생각되지만 무이지맥은 무량산 뒷쪽에서 시작되어 좌측으로 흐르기 때문에 노령 정도면 모를까 확신이 들지는 못한다.
그렇게 그 바위암벽 앞에서 많은 추억과 사진들을 남기며 주위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고 알고 있는 산줄기와 봉우리 이름들을 불러 준 후 다시 그 바위암벽을 넘어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좁은 등로를 따라 오르니 굵은 소나무에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놓은 493.1봉에 도착을 하는데 오늘 시루봉 오르기 전 묘지 뒤에서 봤던 뒤의 뾰족했던 바로 그 봉우리 정상이다.
그 493.1봉 이정판 앞에서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조금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솔갈비가 쌓여 있는 바위암릉들이 보이는데 그곳으로 올라 등로 좌측으로 북쪽부터 동쪽 지나 남동쪽을 살펴보며 사진에 담고 내려 와 바위들로 둘러 쌓여 있는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다시 나타나는 전망바위에서 생각지도 못한 환상의 조망들과 풍경들이 펼쳐져 있어 한동안 많은 사진에 담으며 그 이름들을 불러 본다.
제일 먼저 북쪽을 보니 493.1봉 줄기 우측 뒤로 지난 구간 만났던 원통산과 지초봉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힘들게 올랐던 고덕산 우측 뒤로 내동산이 뾰족하게 올라 와 있다.
그 앞으로는 봉화산과 응봉 지나 좌측으로 휘어지는 성수지맥 마루금과 우측 옆으로 높게 솟아 있는 오봉산과 영태산이 생각보다 높게 올려다 보인다.
다시 무명묘지를 지나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눈을 북동 방향으로 돌리니 가운데로 삼계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좌측으로 감은산과 노산이 아름답게 이어져 있고 그 뒤 좌측으로 성수지맥의 봉화산과 응봉이 좌측으로 흐르는 산줄기를 이어주고 있다.
노산 뒤 저 멀리 가장 먼 곳 좌측 끝으로 덕태산을 시작으로 우측으로 선각산이 솟아 있으며 그 바로 엎으로 성수지맥의 성수산이 겹쳐 보이는데 사진상으로는 잘 분간하기 어렵다.
그 선각산 우측으로는 팔공산과 그 우측 자고개로 내려가는 곳에 1010.9봉이 보이고 쭉 남쪽으로 내려 간 곳에 개동산과 상사바위 우측 옆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만행산 천황봉이 군계일학으로 보이고 있다.
너무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경들과 조망들을 즐기고 걸어 진행하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429.9 잡목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에 남긴 후 다시 출발하니 굵은 소나무 아래 키가 큰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등로가 펼쳐져 있다.
그 키가 큰 잡목들을 헤치며 진행하니 다시 무명묘지가 보이고 약간의 널부러져 있는 고사목 소나무 등로를 지나니 넓은 비포장임도로 내려 가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길게 이어간다.
잠시 더 걸어가니 소나무 임도가 너무 아름답고 사진에 담으며 여유롭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임도 우측으로 벌목 후 밤나무를 조림한 지점에서 진행 방향인 남서 방향을 살펴보니 좌측 위로 잠시 후 덜어 넘어야 할 448.8 무명봉이 보이고 우측 뒤 멀지 않은 곳에 잠시 후 올라야 할 오늘 가장 높은 무량산이 아름답게 올려다 보인다.
몇장의 사진에 담고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옆으로 붉게 익어가는 꾸지봉 열매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몇알 따 먹으니 맛은 좋은데 꼭지를 제거하는 것이 쉽지 않아 맛만 본 것으로 만족하고 진행을 이어간다.
진행 방향으로 무량산을 확인하고 조금 더 걸어 가 우측인 서쪽을 살펴보니 좌측으로 무량산이 솟아 있고 중앙 뒤 저 멀리 벌동산과 그 우측 뒤로 성미산이 보이고 우측 앞으로는 소나무 뒤로 용궐산의 암봉이 올려다 보인다.
몇장의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임도 우측 언덕 위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지도를 확인하니 직진 방향의 비포장임도 방향으로 사자바위를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이다.
이곳에서 성수지맥 마루금은 우측 언덕 위로 올라 남서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 되지만 비포장임도를 따라 좌측인 동쪽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사자바위를 들렸다 진행을 하기로 한다.
사자바위 갈림삼거리 나무 뒤에 배낭을 숨겨 놓고 비포장임도를 따라 동쪽의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사자바위 직전에서 비포장임도는 끝이나고 능선으로 올라 사자바위를 두고 좌측으로 돌아 오르니 금새 사자바위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북쪽 바위봉으로 오르니 약간의 조망이 열린다.
바로 앞으로 잠시 후 걸어 진행을 해야 할 448.8 무명봉 뒤로 무량산이 보이고 우측 가장자리로 암봉인 용궐산이 솟아 있으며 그 무량산과 용궐산 사이 저 멀리로는 성미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다만 낙엽이 진 겨울에 다녀간 선답자들의 사진을 보면 사자바위(지맥 등로와 주변산 조망)는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자처럼 보인다는데 오늘은 무성한 나뭇가지들과 넓은 잎들로 인해 제대로 된 모습을 볼 수가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진행해 온 북쪽 방향을 보니 좌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493.1봉이 생각보다 뾰족하게 솟아 있고 그 뒤로 지난 구간 걸어 넘었던 원통산과 우측으로 뾰족한 초지봉이 아름답고 그 우측 뒤 저 멀리로는 두만산과 우측으로 성수지맥의 봉화산이 보이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에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그 사자바위를 돌아 내려 와 다시 갈림삼거리로 복귀를 한다.
사자바위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와 숨겨 뒀던 배낭을 찾아 시원한 물한모금 마시고 어깨에 둘러메고 이제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잡목 등로를 따르니 433.2 무명바위봉이 나타나고 그 바위를 우회해 통과하니 꺽인 고사목이 보이는 조금은 뚜렷한 등로가 열린다.
잠시 후 둔덕을 넘어 걸어가니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무명묘지가 보이는데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아 과연 장례문화를 이대로 놔둬도 되는지 다시 한번 더 생각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무명묘지를 지나니 조금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소나무가 빼곡한 448.8봉에 도착을 하는데 선답자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다.
그 448.8 무명봉에서 등로는 우측인 서쪽으로 꺽여 진행되고 조금 더 전진하니 좌측 우회 사면 방향으로 뚜렷한 등로가 보이는데 우측 위로 373.7 바위무명봉이 올려다 보여 힘은 들지만 잠시 들렸다 진행하기로 한다.
우측 봉우리로 오르니 불이 났던 지역으로 시간이 지나며 가시잡목들이 자라 등로 자체가 사라지고 힘들게 오르니 정상에는 두어개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들과 커다란 바위들만이 보이는 373.7 무명바위봉이다.
우측 뒤로 약간의 조망이 열리지만 나무들에 막혀 제한적이기에 곧바로 뒤돌아 나와 이제는 남쪽 방향으로 보이지 않는 가시잡목 암릉을 따라 힘든 산행을 이어간다.
바위암봉을 내려가니 초반부터 꾸지봉과 산초 가시나무들이 커다란 바위암릉 사이로 보이고 그 사이로 사라진 등로를 만들며 내려가니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넘어지거나 다치지 않토록 조심하며 천천히 사라진 등로를 개척하며 방향만 잡고 내려가니 드디어 위험한 바위암릉 구간을 모두 내려 가 우측으로 자두 과수원이 보이고 그 과수원 좌측으로 비포장임도가 보여 조금은 편안하게 그 임도를 따라 내려가며 힘든 산행을 이어간다.
과수원 좌측 가장자리로 나 있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진행 방향 정면으로 잠시 후 올라 만나야 할 무량산이 빤히 올려다 보이고 그 정상으로 오르는 등로를 가늠해 보며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강동로라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저 앞 아래쪽으로 거대한 한우 축사 두동이 나란히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농로로 사용되고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내려가니 거대한 한우 축사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한우가 많이 비어있고 사진에 담다 보니 두어마리의 한우들리 쇠창살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이 산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어 괜시리 미안하다는 생각이다.
그 한우 축사를 지나 717번 강동로 2차선 포장도로 앞에서 방금 전 너무나 힘들게 올랐다 내려 온 373.7 무명 바위봉 방향을 살펴보니 생각보다 거대한 바위암봉의 모습으로 올려다 보인다.
지나 온 방향의 바위암봉을 사진에 담고 이어지는 강동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드디어 717번 강동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어치고개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기며 도로 따라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벌써 지열이 올라오며 무더운 열기를 실감하는 시간이다.
어치고개(717번 강동로 2차선 포장도로)는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에 속하는 자연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붙은 이름으로 어치리(於峙里)의 옛 이름은 느제이다.
1914년 이전에는 순창군 아동방에 속하였으며 행정 구역 개편 때 남원부 영계방과 순창군 아동방을 합하여 동계면에 편입되었다.
어치 마을은 1960년도만 해도 느제, 놋점, 점촌, 멀테, 돌무덤 등 5개 마을을 통칭하였는데 현재는 멀테가 무인촌이 되면서 4개 마을만 있고 2003년 하림에서 점촌에 대규모 양계 사육장을 지으며 양계촌이 되었다.
남쪽은 무량산(無量山, 해발 586m)이고 동쪽에는 홍암산(紅岩山, 해발 400m)과 북쪽은 놋점 뒷산 감투봉(해발 530m)이 있어 자연지반은 200m 이상 되는 곳에 있는 마을로서 어치리는 해발 630m 되는 용궐산을 서편으로 하고 용궐산 한 가닥의 산맥이 동편으로 내려와 있는 산맥의 중턱에 남동쪽을 향하여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다.
어치리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느제, 점촌, 돌무덤, 놋점, 멀테의 어치리를 형성하고 있고 청년층의 이촌향도로 노인들만이 살고 있는 실정이며 협동심이 강하고 도적이 없는 마을로서 집집마다 밖의 문이 없는 특수한 마을이다.
어치고개에서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밤나무 과수원이 나타나고 그 과수원을 관통하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인다.
그 밤나무 과수원 가운데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끝이 나고 좌측으로 녹색 철망을 한 잘 관리되고 있는 무명묘지 지나 다시 밤나무 과수원이 열리고 그 과수원 가운데 능선을 타고 좌측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밤나무 과수원이 끝나고 비포장임도와 만나는데 좌측으로는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그 방향으로 잠시 걸어 오르다 우측을 보니 꾸지봉나무와 우거진 잡목 사이로 선답자의 산행 띠지 하나가 걸려있어 그 능선 방향으로 오르며 어려운 산행을 이어간다.
우거진 잡목 능선으로 오르니 잡목들이 줄어들고 비로 인해 골이 패인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길게 이어지는데 경사도가 가파라 어려운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굵은 땀방울이 등로를 적실 정도로 쉴새없이 흘러내리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한동안 더 걸어 오르니 드디어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등로는 좌측으로 이어지지만 우측 가까운 곳에 390.6봉이 보이기에 잠시 다녀 오기로 하고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 아래 작은 바위들이 보이는 아무 표식도 없는 봉우리이다.
이곳 390.6봉 정상에도 금곡님이 높이를 적은 띠지 한장을 걸어 놔 장소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굵은 소나무와 바위들이 보이는 390.6봉을 뒤돌아 나와 어치고개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를 지나 넓은 비포장임도에 잡풀들이 푸르게 자라고 있는 마루금을 따르니 묘지 주위에 원형 철조망을 설치한 통정대부 남원양공 묘지가 보인다.
통정대부는 현재의 직책으로 치면 중앙부서의 비서실장이나 시장 정도되는 관직으로 조선시대 문신 정3품 상계(上階)의 품계명을 말한다.
정3품 상계부터 당상관이라 하였고 하계 이하를 당하관이라고 하였는데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가 제정될 때 정3품 상계는 통정대부로 하계는 통훈대부로 정하여져 경국대전에 그대로 수록되었다.
정3품 당상관에 해당하는 관직으로는 도정(都正)과 부위(副尉), 참의(參議)·, 지(參知), 도승지·좌승지, 우승지, 좌부승지, 우부승지, 동부승지, 판결사(判決事), 대사간, 참찬관(參贊官), 부제학, 규장각직제학, 대사성, 좨주(祭酒), 수찬관(修撰官), 보덕(輔德) 등이 있다.
통정대부 남원양공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무량산이 제법 알려진 산인 듯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지만 뚜렷한 등로가 열리고 그 등로를 따라 한동안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 거대한 바위암봉이 가로 막는다.
그 바위암봉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우회하며 걸어 오르니 등로는 다시 굵은 소나무와 관목의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어 긴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걸어 오른다.
그렇게 한동안 뚜렷한 등로 양쪽으로 굵은 소나무와 잡목들이 보이는 마루금을 따르니 둔덕 넘어 등로 좌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 나무 그늘 아래 전망바위로 가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 흐르던 땀방울을 식혀 주고 등로 좌측으로 환상의 조망과 풍경들이 펼쳐져 있어 잠시 배낭 내려 물 한모금 마신 후 많은 추억과 사진을 남겨 본다.
제일 먼저 북동쪽을 살펴보니 사진 정중앙부에 어치고개로 내려오기 전 불이 났다 키가 큰 가시잡목들이 우거져 힘들게 올랐다 내려 온 373.7 바위무명봉과 그 뒤로 448.8 무명봉 그리고 우측으로 사자바위 좌측으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넘어 온 성수지맥 마루금이 보이고 그 마루금이 좌측 뒤 저 멀리 고덕산과 그 우측의 성수산과 팔공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성수지맥 전 구간이 한눈에 들어 온다.
사진 우측 뒤 가장 먼 곳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천황지맥의 만행산 천황봉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개동산과 상사바위 그리고 팔공산으로 이어지는 천황지맥 마루금이 하늘금과 맞닿아 있고 그 팔공산 좌측으로는 선각산과 덕태산도 확실한 존재감을 알리고 있어 많은 사진으로 남기며 조금 더 확인도 해 보는 시간이다.
이제 눈 을 북동쪽에서 동쪽으로 돌리니 바로 발 아래로 717번 강동로 2차선 포장도로 건너 동심제1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 오능 이 산객이 걸어 넘어 온 성수지맥 마루금 우측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동심1저수지 뒷편으로 올려다 보이는 자라봉까지 연결되고 그 바로 뒷쪽 산줄기는 좌측 움푹 패인듯 보이는 노적봉 우측 사진 중앙부로 풍악산과 그 우측으로 응봉까지 연결되고 그 우측 아래로는 비홍치로 내려가는 천황지맥 산줄기가 보인다.
그 뒤 제일 뒷쪽 좌측 가장자리에 만행산 천황봉의 뾰족한 모습이 보이고 그 우측 아래로 약산까지 이어지는 천황지맥 우측으로는 백두대간의 고남산이 노적봉 봉우리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그 우측 아래 방향으로는 둔덕산과 배래봉 지나 세걸산과 만복대가 보이고 그 만복대 우측으로는 반야봉 지나 노고단까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바로 앞 동심1저수지 우측 뒷쪽으로는 동계 들판이 드넓게 펼쳐져 있어 그 뒤로 펼쳐진 산줄기들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제 눈을 남동쪽으로 돌리니 사진 중앙부로 동계들판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중간 산줄기 좌측으로 천황지맥의 응봉에서 비홍치로 내려 앉았다 그 우측 아래로 문덕봉과 삿갓봉 지나 고리봉으로 이어지는 천황지맥 마지막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천황지맥 마루금 뒷쪽 좌측으로 뾰족학 솟아 있는 반야봉이 우뚝하고 그 우측 아래로 노고단 우측 아래로 하동의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그 옛날 맺었던 고운 추억을 들춰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많은 추억과 사진을 남기고 흐르는 땀방울을 식힌 후 다시 평이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바위가 나타나는데 위험하지 않은 바위 등로에 짧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지나 등로 좌측으로 제한된 조망이 펼쳐진 등로를 따르니 짧은 철계단도 만난다.
이제 무량산 정상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느끼며 그 철계단을 따라 오른다.
그 철계단을 타고 올라 조금 더 걸어가니 드디어 오늘 산행 중 최고봉이자 제대로 된 이름이 붙어 있는 유일한 산인 무량산에 도착을 해 추억과 사진 남기고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
무량산(無量山.586.4m)은 전라북도 순창군의 동북쪽 동계면 어치(於峙)리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587m이며 대동지지에는 읍성 동북 30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서북쪽 2 Km 지점의 용골산과 함께 높은 산지를 구성하고 있는 무량산 지명의 뜻은 한량이 없는 산이라는 의미로서 대대로 문과에 급제한 어느 집안 이야기와 관계되는 전설이 있다.
그 내용으로는 활로써 산돼지를 잘 잡는 소년이 산돼지의 창자에서 무량이란 글자를 발견한 다음 책을 읽는데 열중함으로써 문과(文科)에 급제했을 뿐 아니라 대대손손에 걸쳐 과거에 급제(及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산의 남쪽 기슭에는 천태(天台)산이 있는데 무량산의 줄기에 해당되고 정상에서의 경관이 아름다워 호남의 절경으로 평가되어 왔으며 산 밑에는 산의 이름과 같은 암자가 있고 이곳에서 공부하면 과거에 급제한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어 이곳의 전설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동여도에 순창 읍치의 동북쪽에 지명과 함께 산지의 모습이 비교적 험준하게 그려져 있다.
무량산 정상에는 아담한 오석의 정상석과 또 다른 한쪽에 이정판 2개 사이로 이정표가 서 있는데 그 이정표는 누군가 글씨를 제거해 놔 방향과 거리를 전혀 알 수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잠시 더 그 무량산 정상에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물 한모금 마신 후 진행하니 몇 발자국 지나 공터에 무인산불감시카메라와 이정표가 서 있는데 진행 방향으로 용동마을과 구미저수지란 글자와 거리 표시가 보인다.
잡풀들이 무성한 공터를 지나니 등로는 생각보다 뚜렷하게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그렇게 천천히 그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등로에는 굵은 고사목들이 쓰러져 있어 진행에 약간의 방해를 주고 있다.
잠시 후 굵은 참나무 등로가 소나무 등로로 바뀌고 곧이어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또 다시 아름다운 조망이 열리는데 남동쪽으로 살펴보니 순창군 동계들판과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옆으로 섬진강이 휘돌아 흐르는 모습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온다.
그 동계들판과 마을 바로 뒤로 남산과 채계산 줄기가 펼쳐져 있고 그 줄기를 넘으면 천황지맥의 응봉에서 비홍치 넘어 문덕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길게 장벽을 만들고 다시 그 천황지맥 마루금을 넘으면 견두지맥의 견두산과 천마산 및 백두대간의 지리산 반야봉과 노고단이 여전히 길라잡이 노릇을 하면서 이 산객의 눈과 발길을 붙잡고 있다.
이제 눈을 동쪽과 동북쪽으로 돌리니 바로 발 아래 동계면 동심마을과 들판 가운데 동심1저수지가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 사자바위가 있는 성수지맥 마루금이 살짝 보이고 우측으로 돌아 동심1저수지 뒤로 364미터의 자라산이 아름답게 솟아 있고 그 뒤 저 멀리 좌측 끝자락부터 희미하게 금남호남정맥 서쪽으로 솟아 있는 덕태산과 선각산 우측 아래로 천황지맥과 성수지맥 분기점 부근의 팔공산이 우뚝하고 그 우측으로 개동산과 상사바위 지나 만행산 천황봉이 뾰족하게 길라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데 그 우측 앞으로 솟아 있는 자라봉 뒷쪽 노적봉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여전히 기억속에 남아 자꾸만 눈길을 붙잡고 있다.
너무 아름답고 환상적인 조망과 풍경에 다시 발걸음 멈추고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천천히 내려가니 소나무 등로 좌측으로 안전목책과 로프가 길게 설치되어 있어 살펴보니 천길 낭떨어지 절벽이 보여 주의가 필요한 구간이다.
한동안 그 안전목책과 로프를 따르니 그 목책 등로가 사라지고 등로는 절벽 옆 등로를 벗어나 우측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잠시 후 갈림삼거리가 있는 곳이아 주의하며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이제 등로 우측 앞으로 잠시 제한된 조망이 열리고 살펴보니 서쪽과 서남 방향으로 암봉으로 이뤄진 461.1미터의 벌동산과 그 바로 뒤로 545.9미터의 두류봉이 지척으로 다가와 있고 그 뒤 저 멀리 희미하게 일직선으로 펼쳐져 있는 산줄기가 보여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호남정맥의 추월산으로서 이제서야 조금씩 그쪽 산줄기와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그 추월산 좌측으로는 2년 전 다녀 온 무이지맥 분기점이 있는 강천산과 광덕산 및 산성산 등이 몰려있는 강천산 군립공원이 보이는데 그토록 찾았던 그림을 드디어 찾은 느낌이다.
하지만 사진 좌측 가장자리 옆으로 보여야 할 병풍지맥 마루금은 나뭇가지에 가려 더 이상 보여주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고 계속 이어지는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무량산을 벗어 난다.
이제 정상 마루금은 뚜렷한 등로를 따라 가다 좌측으로 빠져야 하기에 세심하게 확인하며 내려가지만 들머리같은 입구는 전혀 보이지 않고 띠지 하나 걸려있지 않아 그냥 그 편한 등로를 따라 한동안 내려가니 해발 460미터란 이정표가 서 있는데 무량산에서 0.76 Km 내려 왔고 직진 방향인 506미터의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큰각시봉이라 불려지는 방향으로 무량산에서 봤던 용동마을과 구미저수지로 이어지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되어있지만 정작 성수지맥 마루금과 합류해야 하는 동쪽 방향으로는 아무 표식도 없는 안부에 도착을 한다.
마음 같아서는 506미터의 큰각시봉을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체력적으로도 힘이 들고 무더위에 산행시간도 제법 걸리고 있어 아쉬운 마음만 보내고 좌측인 동쪽으로 마루금을 찾아 편안하게 진행을 이어간다.
506미터의 큰 각시봉 갈림삼거리 안부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낙엽이 발목까지 빠지는 뚜렷한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녹슨 철조망이 나타나고 그 철조망을 따라가다 보니 철조망은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돼 있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내려가며 등로 좌측 위를 살펴보니 거대한 바위암릉이 올려다 보이고 그 사이마다 잡목들이 보여 왜 정상 마루금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우측으로 우회하며 이렇게 진행이 되었는지 이해가 되는 풍경들을 살펴보며 계속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 등로를 따르니 드디어 정상 마루금과 만나 우측인 남동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한동안 뚜렷한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니 제법 굵은 소나무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뚜렷했던 등로가 희미해지기 시작하고 정상 마루금 찾기가 쉽지 않다.
이리저리 방향만 잡고 내려가다 보니 그래도 빛바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정상적인 마루금을 따라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어 감사한 마음 전해드리고 계속 그 희미한 등로를 찾아 내려간다.
계속 이어지는 희미한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무명묘지 한기가 나타나는데 그 바위 주변으로는 온통 너럭바위로서 도저히 묘지를 쓸만한 장소가 아니기에 의아한 마음으로 둘러보고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환상의 조망이 펼쳐져 있어 잠시 살펴보고 쉬었다 진행하기로 한다.
잠시 후 통과해야 할 추동고개 넘어 올라야 할 밤나무 과수원이 있는 무명봉이 올려다 보이고 그 우측 뒤로 구미고개 지나 다시 솟구친 290봉 우측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성수지맥 마지막 마루금이 펼쳐져 있고 그 뒤로 합수점 근처의 나즈막한 남산과 채계산 넘어 천황지맥의 문덕봉에서 고리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과 그 우측 뒤로 곡성의 최악산과 동악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진 모습이 살짝 눈에 들어온다.
성수지맥 마지막 마루금을 살펴보고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확인하니 바로 바위 앞으로 구호저수지와 그 주위로 좁은 구미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뒤 좌측 가장자리에 천황지맥의 문덕봉에서 고리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넘어 최악산과 동악산 줄기가 희미하고 다시 바로 앞 구호저수지 뒷쪽으로 284.3미터의 삼각점봉과 그 우측으로 너무나 힘들게 올랐다 내려 간 286.3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고 그 사이 안부 넘어 마지막 봉우리인 239.8봉이 보인다.
이제 성수지맥 산행도 막바지에 도착했음을 느끼며 이곳에서 잠시 배낭 내려 준비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며 쉬었다 진행하기로 한다.
너럭바위에 설치된 무명묘지 옆에서 배낭 내려 준비한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시원한 물 한모금으로 갈증까지 해결한 후 다시 배낭 둘러메고 잘려진 나뭇가지 사이로 나 있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마루금은 잡목들이 우거져 우측으로 약간 우회한 등로를 타고 급하게 내려가 밤나무 과수원을 만난다.
잠시 시원하게 불어오는 살랑바람을 맞으며 밤나무 과수원을 내려가니 눈 앞으로 묘지와 시멘트 포장도로 아래 추동고개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다시 보이는 밤나무 과수원 지나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다워 잠시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에 담으며 진행을 이어간다.
이제 밤나무 과수원 끝을 통해 내려가니 관리되지 않아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흥성장공 묘지 2기가 보이고 그 아래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가 좌측으로 걸어가니 도롯가에 검게 익어가는 뽕나무 오디가 보여 올해 처음으로 달달한 오디를 따 먹으며 진행한다.
잠시 더 걸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살펴보니 바로 아래 추동고개의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데 넓힌지 얼마되지 않았는지 새로 조성된 절개지가 보여 좌우측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도록 되어 있는데 우측 도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내려가며 우측인 남서쪽을 살펴보니 추동고개로 올라오는 2차선 포장도로 뒤 저 멀리 이제부터 걸어 넘어야 할 성수지맥의 마지막 나즈막한 봉우리들이 연달아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지만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은 풍경으로 다가 온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드디어 21번 귀미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추동고개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들을 사진에 담아 본다.
추동고개(21번 2차선도로)는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동심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중 한 곳인 추동마을에 있어 붙은 고개 이름으로 추동 마을의 본래 이름은 가라울이다.
가라울은 가래골의 음운 변화로 생긴 마을로 농기구 가래처럼 생긴 마을이란 뜻으로 이 마을의 지세가 농기구 가래를 닮았다는 것이다.
사자봉(獅子峰)에서 동남쪽으로 비아산(飛鴉山) 그리고 아독봉(兒犢峰)에서 서남쪽으로 덥재재를 지나 구덕이 고개에서 서북쪽으로 무량산에서 동북쪽으로 연결되는 곳이 동심리다.
원통산에서 뻗어 오다가 용궐산을 떨어뜨리고 무량산을 세워 남으로 내려가고 동으로 풍잔봉(덕가리봉)이 솟아 능선을 내린 문바위 기슭 아래 동심 마을 터가 형성되었다.
무량산에서 동남으로 내린 배 맨들 주룡으로 내린 기슭에 추동 마을 터가 그리고 후미에 아동 마을이 자라봉 옆구리에 오동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 귀미로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도로 우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가는데 이제 뜨거워지는 지열과 무더위로 인해 장거리 종주 산행도 어려워지고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흥성장씨서윤공파추동문중제단과 그 위로 열녀해주오순녀열행비가 보이는데 빼곡하게 적혀있는 내용들을 대충 읽어 보니 자손들을 잘 기르고 살았다는 내용으로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삶에 관한 관점이 완전히 달랐음을 느껴본다.
그 묘지지대를 지나 밤나무 과수원을 통해 오르니 개활지 지나 다시 잡풀들이 무성한 묘지 뒤 능선을 따라 걸어가다 우측 아래를 보니 커다란 축사가 내려다 보이고 그 아래로 용동마을과 구미저수지가 펼쳐져 있는데 바로 산행을 하면서 이정표에서 봤던 지명들이다.
그 축사 좌측 뒤로는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마루금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잠시 사진 한장 남기고 진행을 이어간다.
그렇게 축사 넘어 용동마을과 구미저수지를 살펴보며 묘지지대를 통과하니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우측의 용동마을 민가들을 가깝게 살펴보고 도로 건너 오르니 매실이 제법 굵게 영글어가는 과수원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생각보다 많이 달려있는 매실들을 살펴보며 그 매실 과수원 상단부로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걸어 올라 온 매실 과수원과 밤나무 과수원이 보이고 그 뒤로 묘지가 있던 무명봉 넘어 좌측으로 506봉의 큰 각시봉과 우측의 이정표가 보였던 해발 460미터의 무명안부 우측으로 무량산이 아름답게 이어지고 있다.
이제 그 매실 과수원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커다란 밤나무를 벌목해 널부러져 있는 어지러운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고 짧은 밤나무 과수원을 지나 잡목 능선으로 오르니 평범한 능선의 둔덕봉인 243.4 무명봉 넘어 다시 밤나무 과수원 가운데를 지나는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이곳 용동마을과 구미저수지가 궁금해 찾아보니 구미리는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에 있는 리로서 북으로는 586m의 우뚝솟은 돌산인 무량산(無量山)이 있고 남으로는 아담한 옥녀봉(玉女峯)이 있는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산악지형이다.
중동과 용동, 주서동 등의 자연마을이 있는데 구미(龜尾)의 이름은 구미리 남쪽의 거북바위로 인하여 얻어진 것이다.
무량산 아래에 남원양씨(南原楊氏)의 종대가 있는데 종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을 지칭하여 가운데골(中洞)이라 하고 동쪽마을을 장작골(龍洞)이라 하며 서쪽마을은 뒤주골 (注書洞)이며 이 3개 마을을 통칭하여 구미리(龜尾里)라 한다.
남원양씨(南原楊氏)의 집성촌인 이곳은 우리나라 집성촌으로서는 종가집이 종대에서 6백여 년을 그곳에서 살았고 100여 가구 넘게 살고 있는 희귀한 집성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우측으로 커다란 밤나무들이 보이는 과수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도로가 좌측으로 휘돌아 내려가고 그 아래 산막이 보이는 곳 우측 잡목 능선으로 오르며 마루금이 이어지는데 이곳이 바로 구미리에 있어 붙여진 이름처럼 보이는 구미고개라는 곳이다.
구미고개는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구미리의 명칭 유래를 보면 구미리의 주산 무량산이 일명 구악(龜岳)이라 하여 거북 형상인데 마을 근처에서 거북이 진흙 속으로 빠져드는 형상을 하고 있어서 거북 구(龜) 자와 꼬리 미(尾) 자를 합하여 구미리(龜尾里)라 부르게 되었다.
남원 양씨(南原楊氏)가 마을의 중앙에 살아서 가운데 마을이라는 뜻으로 중동(中洞)으로 표기하였으며 동쪽 마을인 장작골(龍洞)은 거북이 용으로 변하는 동물이라는 구변용체(龜變龍體)에 따라 붙인 이름이고 서쪽 마을은 뒤주골(注書洞)이라 불렀다.
1914년 이전에는 순창군 아동면에 속하였으며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남원군 영계방과 순창군 아동방을 합하여 동계면에 속하게 되었다.
구미리 동쪽으로 몰미재(馬上洞)가 있고 서쪽으로 용궐산과 두리봉 및 우두봉을 스쳐 흘러가는 섬진강 상류의 수심 깊은 소(沼)가 나오고 물 맑고 은어가 서식하는 만수탄(滿水灘)에 이른다.
동계면과 적성면의 경계가 되는 이 강을 건너면 적성면 석산리 일명 강경동 도왕동이 나오고 남으로 옥녀봉(玉女峯)이 있으며 이 산을 넘어가면 적성면 구남리에 있는 어은정(漁隱亭)이 있다.
이 바로 앞에서 섬진강과 동계천이 합류하여 섬진강 중류에 이르며 북쪽으로 우뚝 솟은 무량산(586m)이 있고 이 산의 남단에 매때기 바위를 정점으로 끝을 맺고 서 있는 별바위를 지나면 녹갈암(鹿葛巖)에 이른다.
녹갈암 밑이 남원 양씨(南原楊氏)의 종대이고 이 종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을 지칭해 가운데골(中洞)이라 하고 동쪽 마을을 장작골 서쪽 마을을 뒤주골이라고 하며 이 세 마을을 통칭해 구미리라 한다.
이곳은 동남 3방이 둘러놓은 듯한 산중 마을로서 물의 흐름은 대체적으로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아 서쪽으로 흘러 섬진강에 유입되고 토질은 식양토와 사양토로 이루어져 비옥한 편이며 공기가 맑고 공해가 없는 수려한 마을이다.
짧은 절개지를 넘어 잡목들이 보이는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밤나무 과수원이 나타나고 편안하게 그 가운데로 나 있는 오르막 등로로 걸어 진행하니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잡목들이 우거지기 시작하고 이리저리 피하고 헤치며 어렵게 전진하니 드디어 289.1봉에 도착을 해 주위를 둘러보니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들만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우거진 잡목들과 잡풀들을 확인하고 이제 진행 방향을 남쪽에서 서쪽으로 크게 꺽어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내려가니 지독한 가시잡목 등로가 나타나고 다시 온 몸에 작은 생채기를 만들며 힘들게 진행하니 바람 한점 불지 않는 등로에 굵은 땀방울만 등로에 떨어져 적시고 있다.
잠시 더 그 잡목등로를 뚫고 내려가니 남원양공 묘지가 나타나고 잡목이 사라진 그 묘지 마당에서 긴 한숨을 내쉬며 숨을 고른 후 제법 굵은 소나무 아래 지금과는 달리 뚜렷하게 나 있는 잡풀 등롱를 따라 진행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지독한 가시잡목들이 등로를 완전히 막고 길을 열어 주지 않아 이리저리 헤치며 전진하니 무명묘지 지나 소나무 등로로 이어지며 조금은 뚜렷한 길이 나타나고 묵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따르니 등로 양쪽으로 희미한 길이 보이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한다.
평남리에 있는 특이할 것 없는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잡목 사이로 썩어가는 굵은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이리저리 고사목들을 피해 어렵게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벌목지가 나타나는데 그 앞에는 원형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어 벌목지로 들어갈 수 없도록 하였다.
그 원형 철조망 앞에서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북쪽과 북서 방향으로 구미리 들판과 마을 뒤로 506미터의 큰각시봉 우측으로 460미터 안부 그리고 우측 끝자락으로 무량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뒤 저 멀리 지나 온 성수지맥 마루금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 무량산 좌측인 북서 방향으로는 조금 더 선명한 구미마을과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우측 뒤로 섬진강 넘어 461.1미터인 암봉의 벌동산과 그 좌측 뒤로 길게 펼쳐진 두류산이 보이고 그 두류산 앞으로는 섬진강 바로 뒷쪽으로 나즈막하게 솟아 있는 불암산도 정겹게 보인다.
그 벌동산과 두류산 사이로는 순창의 진산이자 빨치산으로 유명한 회문산이 살짝 보이고 벌동산 우측 뒤로는 백련산도 살짝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잠시 더 그 벌목지 위에서 등로 우측을 조망하며 많은 사진들을 남기고 이름까지 불러 준 후 등로로 복귀해 진행하니 멧돼지 목욕탕 지나 다시 지독한 가시잡목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생각보다 힘들게 그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커다란 바위암릉이 이어지고 조심하며 통과하니 고사목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무명 바위봉에 도착을 하는데 오룩스 맵 고도로 280.2 무명봉이다.
그 무명봉에서 지나 온 방향과 동쪽으로 열려있는 조망들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후 다시 남쪽으로 이어지는 소나무와 잡목들이 우거진 능선 등로를 따르니 멀지 않은 곳에 오랫만에 준희님 이정판이 걸려있고 바닥에는 순창422란 삼각점이 박혀있는 284.3봉에 도착을 해 몇장의 추억과 사진을 남겨 본다.
정상 주위는 온통 조선 소나무들과 잡목들로 막혀 있어 조망이 전혀 없기에 정상부만 사진에 담고 곧바로 우측인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284.3 삼각점봉을 지나 우측으로 내려가니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소나무 등로가 펼쳐지고 한동안 조금은 편안(?)하게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점점 더 가파라지기 시작하고 그렇게 한동안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니 넓은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하는데 임도 건너편으로 소나무재선충 예방 나무주사란 안내판과 플랭카드가 보인다.
이곳 비포장임도에서 잠시 고민을 하다 정상 마루금을 타고 286.3봉을 다녀오기로 하는데 들머리를 찾아보니 산행 띠지는 물론 들머리도 보이지 않아 그곳으로 오르는 등로가 결코 쉽지 않음을 직감한다.
2018년 소나무재선추병 긴급방재사업이라는 커다란 플랭카드 뒤로 오르니 희미한 족적이 나타나더니 금새 사라지고 지독한 잡목이 우거지기 시작하며 경사도도 점점 가파라져 최악의 등로로 이어진다.
몇번이나 오를까 말까 고민이 될 정도의 가파른 오르막 잡목 등로를 헤치며 오르니 그래도 286.3봉까지 올랐다 내려 올 마루금을 만나 한쪽에 배낭을 숨겨 놓고 우측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산너머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286.3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살펴보니 그래도 대부분의 지맥 선답자들이 다녀간 듯 띠지들이 걸려있다.
정상에서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다시 배낭을 숨겨 놓은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 배낭을 찾아 어께에 메고 내려가니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무지막지한 가시잡목 등로가 앞을 가로막기 시작하고 짧은 내리막 등로에서 금곡님과 헤어져 각자 하산하는데 오랫만에 밀림속에 홀로 갇혀있는 기분을 느껴보는 시간이다.
잠시 더 주능선을 타고 지독한 잡목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간벌된 나무더미들이 썩어가는 곳에 도착을 해 잠시 남서 방향으로 열려있는 풍경을 살펴보니 바로 눈 앞으로 성수지맥 마지막 봉우리인 239.8봉이 지척으로 다가와 있고 그 우측으로 섬진강 넘어 21번 귀미로 2차선 포장도로와 적성면의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잊고 즐겨본다.
하지만 그 조망을 즐긴 이후부터 지옥같은 지독한 가시잡목 내리막 등로를 만나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좁은 공간이라도 보이면 그곳을 헤집고 내려가며 사투를 벌여본다.
그래도 이 산객처럼 이곳에서 고생했던 선답자들이 있었는지 희미한 족적들이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고 그렇게 한동안 가시잡목 등로에 갇혀 사투를 벌이며 내려가니 원 마루금 바로 우측 아래 산딸기 가시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해 긴 한숨을 내쉬며 바로 눈 앞으로 올라가 보는데 이곳 역시 지독한 잡목들이 조그만 틈도 내주지 않고 있어 좌측으로 조금 돌아 너무나 힘들게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하니 비포장임도가 지나는 갈림삼거리이다.
금곡님도 다른 코스를 통해 내려오며 고생을 하신 듯 표정이 밝지 못하고 그렇게 그곳 비포장 갈림삼거리에서 물 한모금 마시며 정신을 차리고 남쪽으로 보이는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오르며 마지막 힘을 내 본다.
절개지를 올라 능선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가니 활엽수 낙엽이 깊게 깔려 있는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등로 좌측으로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관리가 되지 않은 묘지들을 지나 조금 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준희님이 걸어 놓은 이정판이 보이는 실질적인 성수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239.8봉에 도착을 해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기며 물 한모금으로 갈증을 풀고 진행을 이어간다.
그 봉우리를 지나니 굵은 소나무가 가끔 보이는 잡목 내리막 등로가 나타나는데 희미한 족적들이 보이고 잡목들이 우거지지 않아 그래도 진행에 큰 어려움은 없다.
자주 산행 트랙과 주위 풍경을 확인하며 방향만 맞춰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묵은 비포장임도 지나 잘 관리되지 않고 있는 남원장공 묘지들이 나타난다.
묘지 앞에서 남동쪽을 살펴보니 섬진강 넘어 적성면 내월리 들판 뒤로 채계산과 화산이 보이고 그 사이에 설치된 채계산 구름다리가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그곳 묘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또 다시 남원양공 묘지들이 나타나는데 그 묘지 아래로는 베어낸 나무들이 널부러져 있어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좌측으로 돌아 어렵게 다시 마루금에 복귀해 조금 더 전진하니 활엽수 낙엽이 ㅏㄹ려있는 묵은 비포장임도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이제 편안하게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돌아 내려가니 바로 아래 밭 경작지 지나 모내기가 끝난 논 경작지가 드넓게 펼쳐지고 섬진강과 오수천 합수점 뒤 좌측으로 채계산과 출렁다리 그리고 우측으로 화산이 아름답게 펼쳐진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채계산 출렁다리는 채계산에 설치된 출렁다리로서 채계산은 순창 적성면과 남원 대강면 일원에 자리하고 있는 해발 342m의 산으로 회문산 및 강천산과 더불어 순창의 3대 명산 중 하나로 일명 화산(華山)이나 적성산과 책여산 등 여러 이름으로불리우고 있다.
바위가 책을 쌓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책여산이러고도 하고 적성강변 임동의 매미 터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마치 비녀를 꽂은 여인이 누워서 달을 보며 창을 읆는 모습인 월하미인(月下美人)의 형상을 하였다고 하여 채계산이라 불리고 적성강을 품고 있어 적성산 으로도 불린다.
채계산 출렁다리는 24번 국도 사이에 적성 채계산과 동계 채계산으로 나뉘어지는 채계산을 하나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며 현재 국내에서 가장 긴 무주탑 산악 현수교로서 길이는 270m 이고 높이는 최고 75에서 90m이다.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이제 도로 좌측 옆으로 밭과 논 경작지 지나 섬진강 따라 합수점이 확실하게 보이고 그 뒤로 적성면 평남리와 괴정리 펼쳐져 있고 그 우측으로 채계산이 특이한 모습으로 이 산객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그 채계산 좌측 옆으로는 나뭇가지 사이로 나즈막한 남산이 보이고 그 중간 뒤 저 멀리로는 천황지맥 마루금이 살짝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그렇게 합수점 방향의 채계산과 화산 및 남산을 확인하고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 도로를 따르니 도로 좌측으로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에 있는 조선 후기 양시진 처인 강진(도강) 김씨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가 보이는데 관리가 부실한지 주위는 온통 잡풀들이 우거져 그곳으로 접근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 정려는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에 있는 조선 후기 양시진 처 강진(도강) 김씨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로서 양시진의 처 강진 김씨는 1577년(선조 10) 9월 4일에 지금의 정읍시 칠보면에서 김대립(金大立)의 딸로 태어났는데 김대립은 문행(文行)으로 천거되어 선무랑(宣務郞) 사포서 별제(司圃署別提)를 지냈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켰다.
강진 김씨는 구음(龜陰) 양시진(楊時晉, 1573~1615)과 혼인하였는데 양시진은 1605년(선조 38) 진사가 되고 이듬해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광해군 때 지평(持平)과 정언(正言) 등을 지냈다.
1615년 지평으로 있을 때 신경희(申景禧) 등과 함께 능창군(綾昌君) 이전(李佺)을 추대하는 반역을 도모하였다는 익산 출신 소명국(蘇明國)의 고발로 장형(杖刑)을 받고 함경도 종성으로 귀양 가던 중에 세상을 떠났으나 인조반정 후 누명이 밝혀져 관직이 복구되고 이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강진 김씨는 남편 양시진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3년 동안 하늘과 해를 보지 않고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고 하며 인조반정으로 양시진의 신원이 복관되자 하청송(河淸頌)을 지었는데 내용은 언제나 탁류만 흐르는 황하에 맑은 물이 흐르니 어진 임금이 나왔고 어진 임금이 원한을 풀어 주니 온 천지가 기쁨에 넘쳤다(黃河淸 星君出 雪人寃 乾坤闊)이다.
이 글을 이귀가 인조에게 외워 올리니 왕이 매우 기뻐하였다고 한다.
39세에 3남 4녀를 두고 남편이 죽는 참화를 당하였으며 이후 자식들을 올바르게 키우고 1650년(효종 즉위년) 74세에 세상을 떠났다. 구음공 처 숙부인 강진 김씨 정려(龜陰公妻淑夫人道康金氏旌閭)는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 435번지 섬진강 변에 있으며 옆에는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32호인 어은정(漁隱亭)이 있다.
어은정은 강진 김씨의 시아버지인 어은(漁隱) 양사형(楊士衡)이 1567년(명종 22) 동계면(東溪面) 구미리(龜尾里)에서 이곳으로 분가하여 살면서 지은 누각이다.
강진 김씨에 대해서는 1653년(효종 3) 나라에서 정려를 내렸고 양응수(楊應秀, 1700~1767)가 1761년(영조 37)에 정려 중수기를 써서 현재에 이른다.
정려각은 정면 1칸에 측면 1칸이며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조선 후기 건축 기법을 잘 보여 준다.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고 남원 양씨(南原楊氏) 문중 소유이며 관리는 순창 군청에서 한다.
강진 김씨 정려는 순창 남원 양씨 가계의 중심인물인 양사형의 며느리 강진 김씨의 충과 정절을 기리는 정려로서 순창군의 대표적인 정려로 상징되는 유적이다.
남편 양시진과 아버지 김대립 등은 모두 광해군 정권을 반대한 인물들로 인조가 즉위하자 신원되었다.
조선 후기 양시진 처 강진(도강) 김씨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를 잠시 들려보며 몇장의 사진에 남기고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몇 발자국 걸어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어은정이 보인다.
어은정(漁隱亭)은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에 있는 누각으로 1990년 6월 30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2호로 지정되었는데 어은(漁隱) 양사형(楊士衡)이 1567년(명종 22) 동계면 구미리에서 이곳으로 분가하여 살면서 지은 누각으로 원래 이름은 영하정(暎霞亭)이었다.
양사형은 1579년(선조 2) 사마시(司馬試), 1588년에는 문과에 급제한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워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봉해졌으며 영광군수와 병조정랑 등을 역임했고 사후에는 승정원(承政院) 도승지(都承旨)에 증직되고 화산서원(花山書院)에 배향되었다.
영하정은 그 뒤 후손들에 의해 여러 차례 중건되면서 이름도 어은정으로 바뀌었으며 현재의 누각은 1919년 중건된 것인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1991년에는 기와를 갈고 목재 부분도 일부 보수했으며 강 언덕에 자리잡은 누각주위에는 오래 된 백일홍이 수십 그루 심어져 있어 장관을이룬다.
어은전 안으로 들어가 둘러보고 싶었지만 문이 닫혀 있어 바깥 도로에서 이렇게 사진 몇장 담는 것으로 대신하고 다시 마지막 발걸음을 옮긴다.
어은정을 살펴보고 내려가니 도로 옆으로 노란 금계국이 만개하여 산객을 반겨주고 사진에 담으며 살펴보고 그 금계국 한쪽에 감성의강 섬진강이란 제목 아래 어은정 이야기란 표지석이 서 있다.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우측으로 운동시설과 육각정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은행나무 옆에 나무데크가 보여 그곳으로 올라 가 보니 바로 발 아래 섬진강이 내려다 보이고 그 한쪽으로 채계산을 바라보며 사색하는 양사형이란 제목의 조형물이 서 있어 사진에 담고 양사형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본다.
양사형은 조선 전기 순창 출신의 문관이자 학자로서 본관은 남원(南原)이고 자는 계평(季平)이며 호는 영하정(暎霞亭)과 어은(漁隱)으로서 증조할아버지는 양배(楊培)이고 할아버지는 양공준(楊公俊)이며 아버지는 사복시 부정(司僕寺副正)을 지낸 양홍(楊洪)이다.
어머니는 순흥 안씨(順興安氏) 안극함(安克諴)의 딸이고 아들은 양시진(楊時晉)이다.
양사형(楊士衡, 1547~1599)은 1547년(명종 17) 순창군 동계면(東溪面) 구미(龜尾)에서 출생하여 옥계(玉溪)의 노진(盧禛)과 미암(尾巖) 유희춘(柳希春)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특히 경학에 밝았다.
1579년(선조 12) 33세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588년 식년 문과에 급제한 이후 군자감(軍資監)의 봉사(奉事)와 직장(直長) 등을 역임하였다.
1592년(선조 25) 벼슬을 사임하고 남원으로 낙향하였는데 여름에 왜적이 침범하자 도보로 선조가 피난해 있는 의주 행재소(임금이 궁을 떠나 멀리 나들이할 때 머무르던 곳)까지 갔으며 또한 고경명(高敬命)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이대윤(李大胤) 및 최상중(崔尙重) 등과 함께 군량을 모아 금산의 전쟁터로 보냈다.
1594년(선조 27) 윤두수(尹斗壽)가 체찰사로 삼남 지방을 순시할 때 그를 참좌하였고 후에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변사정(邊士貞) 및 정염(丁焰) 등과 의병으로 활동하며 남은 왜적을 물리쳤다.
이러한 공로로 병조 정랑에 오르고 이어서 춘추관 기사관, 경기도사, 남평 현감(南平縣監), 예조 정랑을 역임하였으며 1599년(선조 32) 영광 군수(靈光郡守)가 되었다가 임지에서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에는 어은 유집(漁隱遺集)이 있다.
그 조형물 뒤 저 멀리 어수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합수점 넘어 채계산이 보여 그 채계산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며 이제 마지막 합수점 방향으로 이어지는 강변로를 살펴본다.
양사형에 관한 조형물 옆에서 섬진강과 어수천 합수점 그리고 채계산을 배경으로 고운 추억 한장 남기며 성수지맥 산행도 서서히 마무리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과 장수군 장수읍의 경계인 팔공산(八公山, 1,151m)에서 발원하여 전라남도와 북도의 동쪽 지리산 기슭을 지나 남해의 광양만(光陽灣)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섬진강유역은 한반도의 남부 중서부에 있고 유로 연장은 222.05㎞, 유역 면적은 4,914.32 Km2로 남한에서 네 번째로 큰 강이다.
지리적으로는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및 경상남도의 3도에 걸쳐 있고 역사적으로는 고대 가야문화와 백제문화의 충돌지대, 신라와 백제의 경계, 임진왜란과 정유왜란 때는 왜군의 침입경로였으며 조선시대 말기에는 동학농민전쟁이 승화되기도 한 장소이다.
명칭 유래를 보면 섬진강은 본디 모래가람과 다사강(多沙江), 사천(沙川), 기문화, 두치강 등으로 불릴 만큼 고운 모래로 유명하다.
1385년(우왕 11)경 왜구가 섬진강 하구를 침입하였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갔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불렀다 한다.
노령산맥의 동쪽 경사면과 소백산맥의 서쪽 경사면인 진안군 백운면의 팔공산에서 발원하여 백운면과 마령면 등에 충적지(沖積地)를 발달시키고 또한 성수면에서 구불구불하게 흘러 임실군 운암면에서 갈담저수지로 흘러든다.
순창군 적성면에서 오수천(獒樹川)과 남원시 금지면과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의 경계에서 요천(蓼川)과 곡성군 오곡면압록(鴨綠)에서 보성강(寶城江)과 합류하여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에서부터 경상남도와 전라남도의 도경계를 이루며 광양시 골약면의 광양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하동, 보성, 진안 등에는 편마암계 지질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고 남원, 오수, 순창 등에는 중생대 대보화강암과 백악기 화강암이 분포되어 있다.
갈담 등에는 중생대 사암과 혈암 또는 역암 등이 분포되어 있고 제4기충적층은 주로 구례와 남원 등 하천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
택리지에 구례 남쪽의 구만촌(九灣村)은 거룻배를 이용하여 생선과 소금 등을 얻을 수가 있어 가장 살만한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현재의 구례구(求禮口)로 추정되는 구만촌까지 수운(水運)을 이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오곡면 압록에서부터 하천 양쪽에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지류와의 합류 지점에는 한랭기에 이동된 암괴(巖塊)가 하천침식에 의하여 노출되어 하천 바닥에는 바위가 많다.
이러한 조건이 수운에 큰 장애가 되지만 풍부한 수량을 이용하여 하구에서 40 Km 거리의 구례구까지는 항행이 가능하나 현재는 이용되지 않고 있다.
이제 섬진강을 우측에 두고 강변로를 따라 어수천 합수점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우측으로 노란 금계국이 아름답게 피어있고 그 모습을 보니 마치 이 산객이 성수지맥을 무탈하게 마무리하는 시간을 축하라도 해 주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잠시 더 걸어가다 보니 섬진강이란 도로 표지판 뒤로 합수점과 채계산이 보이고 그 채계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니 많은 자료들이 보인다.
채계산(釵笄山, 342미터)은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괴정리와 남원시 대강면 입암리와 옥택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채계산처럼 많은 전설과 수식어가 붙은 산도 드물다.
예컨대 비녀를 꽂은 여인을 닮아서 채계산(釵笄山), 수만 권의 책을 쌓아 놓은 형상이어서 책여산(冊如山), 적성강을 품고 있어 적성산(赤城山), 화산 옹바위 전설을 간직하고 있어서 화산(華山) 등으로 불리지만 고시된 지명은 화산이다.
채계산은 적성강변 임동의 매미 터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마치 비녀를 꽂은 여인이 누워서 달을 보며 창을 읊는 모습인 월하미인(月下美人)의 형상을 하였다고 하여 붙은 이름으로서 그곳에서는 동편제와 서편제를 아우르는 소리꾼들이 많이 나왔으며 적성강에 배를 띄우고 풍류를 즐겼다.
순창의 3대 명산으로 일컫는 책여산은 섬진강 변에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켜켜이 쌓아 놓은 형상을 닮아 붙은 이름으로 지도상의 화산(송대봉: 341m)은 순창 책여산 및 북쪽의 361봉은 남원 책여산으로 구분했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나 지형도 1:25,000에 나와 있는 화산은 산의 들머리인 산기슭에 백발노인이 우뚝 서 있는 30m의 화산 옹바위 전설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유등면 체육공원에서 보면 서우유천(犀牛遊川) 즉 물소가 강가에서 한가로이 노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화산(花山)은 이 산의 기묘한 바위들을 꽃으로 비유해 붙인 이름이다.
채계산은 순창군의 동북쪽에 솟아 있는 산으로 백두 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분기된 금남 호남 정맥의 산줄기가 북서쪽으로 뻗어가다 팔공산을 지나면 곧바로 천황산 산줄기를 나누어 놓는다.
이 지맥이 남으로 내달리며 비행기재(지방도 718호선), 묘복산, 만행산 천황봉, 갈치(지방도 721호선), 밤재(국도 17호선)를 지나서 다시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데 좌측으로 교룡산과 노적봉을 지나서 풍악산 및 응봉을 거쳐 문덕봉으로 가기 전에 남쪽으로 뻗어나간 곳이 채계산이다.
적성면은 순창의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북쪽으로 동계면과 임실군 덕치면, 동쪽으로 동계면과 남원시 대강면, 남쪽으로 유등면, 서쪽으로는 인계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순창군과 남원시의 경계에 있는 풍악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비홍산에서 서쪽으로 뻗어온 산줄기가 섬진강 상류인 적성강에 가로막혀 멈춘 곳에 채계산이 자리하고 있다.
예로부터 채계산은 회문산 및 강천산과 함께 순창의 3대 명산으로 불려왔으며 채계산의 북동쪽으로 교룡산, 동쪽으로 문덕봉과 삿갓봉 및 고리봉 능선, 북쪽으로는 용궐산(지명 변경 전 명칭: 용골산)과 무량산 그리고 적성강과 적성 들녘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아슬아슬한 칼바위와 송림이 한데 어우러진 암릉이 매우 아름답고 용아 장성(龍牙長城)의 축소판을 방불케 하는 기이한 형상의 바위가 많다.
채계산의 물줄기는 섬진강의 원류인 적성강에 합류되어 광양만에서 남해로 흘러드는데 채계산을 휘돌아가는 섬진강 상류인 적성강에는 조선 시대에 중국 상선들이 복흥의 도자기와 적성의 옥 등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많이 드나들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서 채계산에 쇠말뚝을 박기도 하였다.
이제 마지막으로 도로 좌측으로 모내기가 끝난 논 경작지 뒤로 보이는 평남리의 구남마을을 살펴보니 작은 마을에 섬진강미술관과 특이한 모양의 가옥들이 모여 있어 구남마을에 대한 자료도 찾아 본다.
구남마을은 전북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평남리는 북으로 해발 352m 의 산이 솟아 동계면과 경계를 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내려가서 평지를 이루면서 적성강과 동계천이 마주치는 동계천변에 구남(龜南)과 평남 등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구남마을은 적성강과 동계천의 합수지점에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금거북이가 남수로 내려온다는 말로 금구남수(金龜湳水)형상이란 말로서 남수(湳水)란 중국 산서성(山西省)에 있는 시냇물의 상징으로 거북이가 남수에 내린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드디어 섬진강 강변로를 따라 좌측의 어수천과 우측의 섬진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남쪽의 우평교 넘어 채계산이라 불려지기도 하는 화산을 살펴보니 저 화산도 바위암릉처럼 보인다.
화산(華山, 342봉)은 전라북도 순창군의 동쪽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342m이며 아름다운 경치를 꽃에 비유하여 지명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속설에는 강변에 놓인 흰 바위가 마치 백발노인이 우뚝 선 모습과 같고 이를 화산옹(花山翁)으로 불러온 데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대동지지에는 동쪽 20리 지점에 적성산(赤城山)이 있는데 일명 화산(花山)이라 한다 라는 내용이 있다.
동여도에 적성산과 함께 남쪽 산록에 화연(花淵)이 묘사되어 있는데 화연은 꽃같이 아름다운 못이란 뜻으로 부른 것으로 대동지지에 이와 관련된 기록이 있다.
드디어 오수천 위에 설치된 구남교 위에 도착을 해 바로 아래 어수천과 우측의 섬진강이 만나는 우평교를 살펴보니 드디어 3구간에 걸쳐 걸었던 성수지맥 산행도 실질적인 마무리가 되고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다.
오수천은 전라북도 임실군의 남동부 지역을 흐르는 하천으로 장수군 산서면 동부에 있는 여러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여 하천을 이루고 임실군 내로 흘러 들어와 지산면과 오수면 및 삼계면을 거치며 다시 순창군 동계면으로 들어가고 순창 적성면의 평남리 아래에서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장수군 산서면의 초압천과 동화천이 순창군 지사면의 금평천과 원산천이 합류하고 또 오수면에서는 성수산에서 발원하는 둔남천과 남원 보절면에서 흘러온 율천이 오수천과 만나며 이외에도 삼계면에서 유천과 어은천이 오수천으로 흘러들어온다.
해동지도(남원)에 오수역 앞을 지나는 하천이 그려져 있으나 하천 이름은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지금의 오수천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지도에 표시된 덕고방(德古坊)은 지금의 남원시 덕과면과 오수면의 일부를 관할하던 방(坊)의 명칭이고 오른쪽의 지사방(只沙坊)은 지금의 지사면에 해당하며 지사방과 덕고방 중간에 표시된 현계서원(玄溪書院)은 지금의 현주서원(玄洲書院)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임실)에 평당원천(坪堂院川)은 현의 남쪽 15리에 있고 현의 동쪽 대용점(代用岾)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남원 오수역(獒樹驛)의 남쪽에 이르러 거령천(居寧川)과 합한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서 평당원천과 거령천은 각각 지금의 둔남천과 오수천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측되는데 오수천이 지나는 지사면의 옛 이름이 거령이었고 지금도 영천리라는 마을 이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수천의 이름은 원래 거령천이라고 하다가 나중에 오수역 이름을 따서 오수천으로 바뀌었거나 오수역 북쪽 상류를 거령천으로 그 이남을 오수천으로 각각 따로 불렀을 수도 있다.
드디어 어수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합수점을 확인하고 어수천 위에 설치된 구남교 위에서 성수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배낭 정리해 애마를 회수하여 오늘 산행을 시작한 원치고개로 이동을 하고 금곡님과 헤어져 곧바로 귀가를 서두른다.
어제 산청으로 가 웅석지맥 첫 구간을 길게 타고 2시간 가까이 운전을 해 남원까지 이동을 한 후 무더위에 가시잡목 등로를 따라 진행하다 보니 생각보다 산행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무탈하게 마무리하였음을 자축하는 시간이다.
늘 하던대로 저녁시간에 맞춰 귀가를 해 가족들과 소맥 몇잔으로 무탈한 산행을 자축하고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니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다음주에는 첫구간만 진행하고 올라 온 웅석지맥으로 내려가 이틀간 마무리하고 올라오면 금곡님과의 합동 산행도 2주만 남게 되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튼 남아 있는 금곡님과의 산행도 안전하고 즐겁게 마무리하고 신산경표 상 162 지맥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해 드릴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지맥산행(완료) > 성수지맥(호남.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수지맥 제3구간에서 만난 풍경들 (0) | 2021.06.02 |
---|---|
성수지맥 제2구간 말치에서 원치고개까지 산행후기 (0) | 2021.05.17 |
성수지맥 제1구간 대성목장에서 말치까지 산행후기 (0) | 2021.05.17 |
성수지맥 제2구간 산행 중 만난 풍경들 (0) | 2021.05.14 |
성수지맥 제1구간 산행 중 만난 조망과 풍경들 (0) | 2021.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