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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와룡지맥(낙남.완)

와룡지맥 제1구간 대곡산 지맥분기점에서 비운치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21.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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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남도 고성군과 사천시의 와룡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1년 02월 16일 (화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대체적으로 맑았으나 강한 바람과 기습한파로 매우 추웠으며 산행 후 진눈개비와 비가 내렸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6도에서 영상 07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감치재(33번 상정대로 4차선 포장도로)-이당6길 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시멘트 계단)-밀양손공 묘지-잡목 바위등로-

               526.6 웅덩이봉-대곡산(544.9봉, 무량산, 충무401 삼각점, 돌탑과 무량산 정상판, 와룡지맥 분기점)-통영지맥 분기점-

               와룡지맥 분기점 복귀-감치재 복귀-33번 상정대로 4차선 포장도로 통과-시멘트계단-잡목 능선진입-209.2봉(벙커와

               억새)-군부대 훈련장-222.9봉(준희님 이정판)-323.5 통신탑과 폐초소봉-잡목등로-374.5봉(준희님 이정판)-전망바위-

               354 노거수 무명봉-387.6 무명봉(좌측)-407.4봉(맨발님 이정판)-기암들-전망바위-이화공동묘원-능선진입-경주최공

               묘지2-삼산면 달막동산 표지석과 팔각정 및 전망대(장치로 2차선 포장도로)-50번 송전탑-좌측 철망등로-열린 철망-

               46번 송전탑-378 간벌목 무명봉-돌구산(405.1봉, 벤취쉼터, 묘지) 이정표(수태산 2.1 Km와 무이산 2.4 Km,

               무선저수지 1.3 Km)-378.1 무명봉(국제신문)-381.3 무명봉-391.3봉(약사전 황금부처상)-해동제일약사도장-무선2길

               2차선 포장도로-이정표(약사전 750m와 보현암 1.2 Km, 문수암 500m)-수태산 진입 이정표(수태산 0.6 Km와

               향로봉 5.2 Km, 무이산 0.6 Km)-무이산 진입 이정표(무이산 0.6 Km와 문수암 0.8 Km, 문수암 0.5 Km, 수태산 0.6 Km)-

               편백나무 군락지-전망바위-고성문수암소방무선중계소-무이산(545.6봉, 정상석, 산불감시초소, 이동통신탑, 바위암봉)

               이정표(문수암주차장 0.6 Km와 수태산1.2 Km, 무선저수지 1.4 Km)-문수암-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수태산 등산로

               진입-마루금 접속 이정표(수태산 0.3 Km와 향로봉 4.9 Km, 무이산 0.9 Km와 문수암 1.1 Km, 보현암 약사전 0.6 Km)-

               폐초소-수양 SK이동통신탑 기지국-바위너덜구간-척번정 갈림이정표(수태산정상 45m, 문수암주차장 0.6 Km,

               척번정 2.8 Km)-무인산불감시카메라-수태산(574.8봉, 정상석, 사천11 삼각점) 이정표(향로봉 4.6 Km, 무이산 1.2 Km,

               상리연꽃공원 2.9 Km)-바위암릉-전망바위-수태재(비포장임도와 시멘트 포장도로 경계지점) 이정표(향로봉 3.7 Km와

               상리동산, 수태산정상 0.5 Km, 문수암주차장 임도)-비포장임도(벤취쉼터2) 이정표(학동재 1.4 Km와 향로봉 3.7 Km,

               수태산 0.9 Km와 무이산 2.1 Km)-415.2봉(준희님 이정판)-바위암릉지대 우회-354.8봉(준희님 이정판)-바위암릉-

               학동치(학동로 2차선 포장도로와 1찻ㄴ 포장도로 사거리) 이정표(향로봉 2.3 Km, 수태산 2.3 Km와 무이산 3.5 Km)-

               비포장임도-능선진입-임도 이정표(향로봉 1.8 Km, 수태산 2.8 Km와 무이산 4.0 Km)-송전탑-354.8 무명봉-신설된

               비포장임도-능선진입-무명봉-전망너럭바위-바위암릉 로프구간-백암산 갈림길 이정표(향로봉 0.5 Km, 수태산 4.1 Km와

               무이산 5.3 Km, 학동치 1.8 Km, 백암산 0.9 Km)-바위암릉-무명안부-쉼터 이정표(운흥사 2.9 Km, 수태산 4.5 Km와

               무이산 5.7 Km, 쉼터)-향로봉(578.3봉, 정상석, 사천308 삼각점, 팔각정, 헬기장) 이정표(운흥사 2.8 Km, 운흥사 2.2 Km,

               수태산 4.6 Km와 무이산 5.8 Km, 학동치 2.3 Km, 문수암)-534.8봉(국가지점번호판)-전망바위-진분개 갈림길

               이정표(운흥사 1.6 Km, 향로봉 1.2 Km)-무명안부-월부산(482.9봉, 공터, 맨발님 이정판)-453.8 무명봉-화성재 안부-

               400.5봉(준희님 이정판)-바위암릉-무명묘지-봉암산(434.6봉, 맨발님 이정판, 삼천포414 삼각점)-금녕김씨 가족납골묘-

               비운치(1001번 삼성로 2차선 포장도로, 계양마을 표지석2개, 계양 버스정류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22.39 Km (감치재에서 대곡산 지맥분기점 지나 비운치까지)

               지맥산행 : 19.28 Km - 대곡산 지맥분기점에서 비운치까지

               접속구간 : 03.11 Km (총 2 지점 합산 거리)

                              01.71 Km - 감치재(33번 상정대로 4차선 포장도로)에서 대곡산 지맥 분기점(대곡산 또는 무량산)까지

                              01.40 Km - 무선리 삼거리 2차선 포장도로에서 무이산과 문수암 왕복

산행트랙 :

20210216 와룡지맥 제1구간 대곡산-비운치.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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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시간 : 10시간 25분 (06시 37분부터 17시 03분까지 접속구간 모두 포함하여)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2월 15일(월요일) 11시 30분 서울 남부버스터미널에서 경남 통영행 심야우등버스 (34,100.-)

                                 2월 16일 03시 00분 고성버스터미널에서 하차 후 고성 시내 구경 및 도보 배회

                                 04시 40분 고성읍내 공룡김밥식당에서 땡초김밥과 라면으로 아침해결 및 점심용 땡초김밥(9,000.-)

                                 06시 25분 고성읍 버스터미널까지 도보 이동 후 장치 행 군내버스에 탑승(1,000.-)

                                 06시 37분 산행 들머리인 감치재에서 하차 후 곧바로 산행 시작

                       올때 - 17시 03분 비운치(1001번 삼성로 2차선 포장도로) 계양버스정류장에서 1구간 지맥 산행종료

                                 17시 30분 거제에서 왔다는 화력발전소 관계 일을 하는 회사원의 도움으로 삼천포농협까지 차로 이동

                                 18시 20분 삼천포버스터미널 근처의 동금동 천궁여관에 투숙 (35,000.-)

                                 19시 30분 여관 근처의 국밥집에서 돼지국밥과 소주 및 맥주로 저녁 해결 (16,000.-)

                                 20시 20분 여관으로 복귀 해 어렵고 길었던 하루를 마감

와룡지맥이란 ???

신산경표는 고성의 낙남정맥 무량산(구 대곡산)에서 시작해서 사천의 노산에서 마치는 산줄기를 도상거리 30km미만(29.2km)이라고 해서 지맥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으나 맥사랑의 홀뮈(임규진)께서 이곳 산줄기는 강과 관련이 없어 산줄기의 세력을 따라 가장 긴 곳으로 간다면 수태산을 지나 와룡산 정상을 거치지 않고 봉대산을 거쳐 법도 앞까지 가는 산줄기의 도상거리가 33km이상이 된다고 했으며 이후 부산의 준·희님과 맨발(윤상대)님 및 서울의 죽천(서영구)님 세 분께서 이 곳을 다녀간 기록이 에이원님을 통해 와룡지맥이란 이름으로 홀대모 카페에 올라 와 상의해 보니 준·희님께서는 노산으로 가는 줄기를 와룡지맥으로 보고 봉대산을 거쳐 죽천교에 이르는 산줄기를 분맥이라고 했다.

그래서 노산까지의 도상거리를 다시 측정해 봤지만 30km미만으로 부산의 조은산님께 트랙을 보내 자문을 구하고 다시 몇 개의 산줄기를 답사하면서 노산으로 가는 줄기 대신 도상거리가 확실히 30km를 넘는 실안마을과 영복원으로 날머리를 정하면 될 듯 싶었는데 실안마을은 마지막 구간이 너무 거칠어 거리가 비슷한 영복원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도상거리가 31km인 영복원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도상거리가 33km인 와룡산 어깨만 밟고 법도 앞으로 갈 것이냐의 선택이었는데 노산과 삼천포 대교 앞, 영복원, 법도 앞에 이르는 산줄기를 모두 답사한 준·희님의 의견을 참고하여 와룡지맥의 끝은 영복원으로 하기로 한다고 되어 있다.

 

 

오랫만에 찾아 온 강풍과 강추위에 몸은 힘들었지만 환상의 조망과 풍경에 취해 마음만은 부자가 되었던 와룡지맥에서의 아름다웠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와룡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경남 고성군과 사천시 및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그리고 네이버의 지식백과,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과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지난 주 토요일과 일요일은 구정 연휴였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지방으로 내려가지도 못하고 가족끼리 모임도 할 수 없으니 집에서 가족끼리 조촐한 명절을 보내고 할 일이 없어 사무실로 출근 해 잡무들을 처리하며 이번 주중에 추워진 날씨에 와룡지맥 산행을 다녀오기로 한다.

바닷가로 이어지고 삼천포의 진산인 암릉으로 이뤄진 와룡산을 지나기에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이 그리워 갑자기 추워진 날씨를 택해 박무와 미세먼지의 방해없이 산행을 즐기기 위해 오랫만에 주중 산행을 ㄱ획하게 되었다.

산행 거리가 짧아 큰 걱정은 안하지만 새벽 일찍 고성에 도착을 해 3시간 이상 어덯게 시간을 보낼지와 와룡산 암릉을 통과하며 예고된 강풍에 사고없이 무탈하게 잘 통과나 가능할지 그것이 문제가 될 듯 싶다.

그래도 오래 전 잠시 삼천포에 들려 고운 추억을 남겼던 시간들을 회상하며 즐겁고 무탈한 완주를 한 후 귀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심야우등버스를 이용해 고성으로 내려가 김밥집에서 시간을 보낸 후 시간 맞춰 버스를 타고 열흘 전 만났던 감치재에서 다시 대곡산으로 올라 통영지맥과 와룡지맥 분기점에서 추억 하나 더 만들고 감치재로 내려오며 본격적인 와룡지맥 산행을 시작한다.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한동안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군부대 훈련장을 지나 374.5봉과 407.4봉 넘어 괴암들을 통과하니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남쪽으로 남해바다를 살펴보니 저 멀리 사량도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남서 방향으로는 좌이산이 우뚝 솟아 있으며 그 우측 뒤로는 하이화력발전소에서 하얀 수증기가 쉴새없이 뿜어져 나오는데 저 풍경들은 내일 산행이 끝날때까지 계속 내려다 보인다.

이제 서쪽을 살펴보니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와룡지맥 상 돌구산 지나 마루금에서 우측으로 약간 떨어져 있지만 다녀온 무이산과 수태산이 쌍봉처럼 솟아 있고 그 좌측 뒤로는 향로봉 지나 우측 중앙 뒤로 암봉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는 와룡산이 너무나 아름답게 이어져 있어 한동안 발걸음 멈추고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보는 시간이다.

 

멋진 조망들을 즐기고 이화공동묘원을 지나 달막동산 도로 안부를 넘어 꾸준히 오르니 405.1봉을 통과하고 큰 고도차이가 없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금새 커다란 금빛 불상이 인상적인 약사전을 만난다.

이제 무선2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무이산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한쪽에 배낭을 숨겨 놓고 무이산으로 오르니 일망무제로 펼쳐진 황홀한 조망과 풍경들이 다시 갈길 바쁜 산객의 발길을 붙잡아 박무와 미세먼지가 사라진 환상의 풍경들을 사진에 담으며 보이는 산줄기와 봉우리들의 이름들을 불러 본다.

동쪽에서 북동쪽을 살펴보니 방금 전 지나 온 이화공동묘원과 이곳을 살펴 본 전망바위 지나 좌측으로 감치재 넘어 와룡지맥 분기점인 대곡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뒤 저 멀리로는 고성읍 지나 벽방산으로 이어지는 통영지맥 산줄기가 너무나 선명하게 다가온다.

벽방산 좌측 위이자 감치재 지난 저 멀리 뾰족하게 솟아 있는 봉우리는 통영지맥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거류산으로 시간이 되면 한번쯤 올라보고 싶은 산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나 온 동쪽과 북동쪽으로 고성과 통영의 산줄기들과 이곳 무이산으로 이어지는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ㅇ화룡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눈길을 남해바다가 드넓게 펼쳐져 있는 남쪽으로 돌리니 몇번인가 다녀오며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던 사량도가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앞으로는 아직 미답봉으로 남아 있는 하이면의 좌이산이 생각보다 환상의 모습으로 이 산객을 유혹하고 있는데 생각같아서는 지맥 산행을 포기하고 여유롭게 저곳이나 올랐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오래 전 봄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족 나들이로 통영에 베이스 캠프를 차리고 그 앞에 떠 있는 몇군데 섬을 여행하는데 사량도 역시 하루 들려 가족 모두 지리망산까지 올라 단체 사진 남기며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기에 아직까지 그 기억이 선명하다.

 

무이산 정상에서 한동안 머물며 황홀한 조망을 즐기고 문수암을 잠깐 둘러본 후 이름도 특이한 수태산 넘어 수대재와 학동치를 통과하고 향로봉으로 오르니 이곳 역시 환상의 조망이 사방팔방으로 펼쳐져 있어 배낭 내리고 한동안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먼저 진행 방향인 서쪽을 살펴보니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부드러운 마루금 뒤 저 멀리 오늘 마지막 봉우리인 봉암산이 보이고 그 아래 잘록한 안부인 비운치를 넘어 내일 빡세게 올라야 할 671.1봉과 민재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 민재봉 좌측으로 와룡산 주봉인 새섬봉과 그 좌측으로 천왕산 그리고 바다에 접해있는 각산이 길게 이어지고 그 뒤 저 멀리 하동의 금오산도 머리를 내밀고 다시 한번 더 고운 추억을 나누자고 유혹을 하고 있다.

갑자기 추워진 나리와 태풍보다 강한 바람으로 인해 오후시간까지도 박무나 미세먼지의 방해없이 이렇게 시웒스런 조망을 즐길 수 있으니 바로 이런 이유로 내려오길 잘 했다는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었다.

 

오늘도 남서울 터미널에서 심야우등버스를 이용해 경남 고성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새벽 3시가 막 넘어가는 시간인데 열흘 전 열려있던 난방이 되는 임시 화장실이 오늘은 굳게 닫혀있고 버스터미널은 이 새벽까지도 바닥 공사가 진행중이라 들리는 것을 포기하고 도로를 타고 지난 번 아침식사를 했던 공룡김밥 식당이 있는 곳으로 간다.

열흘동안 두번이나 심야버스를 타고 고성으로 내려왔는데 앞으로 또 다시 들릴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에 고성에 대한 공부를 해 본다.

고성읍은 경상남도 고성군의 남동부에 있는 읍으로 동쪽은 거류면, 서쪽은 삼산면과 상리면, 북쪽은 대가면 그리고 남쪽으로 통영시 광도면과 접하며 읍의 서부지역은 대곡산(545m)에서 철마산(417m), 무량산(193m)으로 이어지는 산지가 분포하고 남쪽으로는 고성만에 면한다. 

북쪽에서 동남쪽으로 흐르는 고성천과 암전천 및 남쪽에서 북서쪽으로 흐르는 용산천이 읍 가운데에서 합류하여 북동쪽 당항만으로 이어지며 이들 하천 주변에 구획정리가 이루어진 농경지가 넓게 분포한다. 

호구총수에서 동리를 살펴볼 때 동읍면(東邑面)과 서읍면(西邑面), 가동면(可洞面) 일부에 해당하는 지역이었고 신구대조에 따르면 1914년 서읍면과 동읍면을 합쳐 철성면(鐵城面)으로 개편하였는데 철성은 고성의 다른 이름이었다. 

1918년 군소재지이므로 군의 이름을 따서 고성면으로 개칭하였고 1938년 읍으로 승격하였으며 현재 17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이 중에서 성내리(城內里)와 서외리(西外里), 동외리(東外里), 수남리(水南里)는 예전 고성 읍성과의 위치 관계에서 지어진 이름이고 읍성에 대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석성이며 둘레가 285보이다 라고 하였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석축이며 둘레는 3,524척이고 높이는 15척이며 성안에 우물 넷과 못 하나가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를 살펴보면 읍성 내에 아사(衙舍)와 객사(客舍)가 표시되어 있고 여지도서에는 읍성 남문 누각은 안청루(晏靑樓)이고 동문 누각은 진동루(鎭東樓)이며 향교와 사직단이 관아 서쪽 5리에 있다고 하였다.

한편 여러 지리지와 고지도에는 읍성 북쪽의 무기산(舞妓山)과 무기정(舞妓亭) 그리고 남쪽의 죽도(竹島)와 낙열정(樂悅亭)을 빠트리지 않고 언급하고 있는데 무기산은 예전에 고주자사(固州刺史)가 기생을 데리고 여기에서 노래하고 춤추었다는 것에서 죽도는 대나무가 많은 섬이라 하여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죽도에 있던 낙열정은 여지도서에 이미 정자는 허물어졌다고 수록하였으며 이후 죽도도 간척되어 현재는 해안에 작은 돌산으로 남아 있다.

시간이 너무 일러 김밥집으로 곧장 들어가지 못하고 고성읍내를 걸어 돌아다니며 이곳저곳 구경하다 보니 새벽 4시 40여분이 지나고 드디어 김밥집으로 들어가 양해를 구하고 땡초김밥 한줄에 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한 후 땡초김밥 한줄을 더 구매해 점심대용으로 준비한 후 TV를 시청하며 새벽 6시까지 머물다 나온다.

코로나19가 아니라면 24시간 영업을 하는 식당으로 들어가 시간을 보내면 되었는데 영업제한이 있고 사람들이 모일 수 없으니 아침밥 한끼 먹기도 쉽지 않아 고민이 커지는 시간이다.

 

고성 버스터미널로 가니 새벽 6시 10여분이 지나고 난방도 되지 않는 터미널 안쪽 이중 공간으로 들어 가 TV를 시청하다 20여분에 승차장으로 나가 열흘 전 탔던 버스를 기다렸다 홀로 추위에 떨며 커다란 버스에 오른다.

버스 번호를 보니 21번 부포가는 버스로서 6시 25분 버스이지만 손님이 없으니 늘 1분 정도 빨리 출발하여 쉼없이 달리니 산행 들머리인 감치재엔 예상보다 이른 6시 36분 쯤 도착을 해 기사님에게 인사 드리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폐부 깊숙히 들이 마시며 또 다른 산행을 시작한다.

 

어둠속에 이 산객을 내려 준 버스는 찬바람을 가르며 금새 떠나가고 또 홀로 외롭게 산행 준비를 하는 시간은 늘 아쉬운 시간으로 남는다.

스틱을 펴고 버프와 귀마개 그리고 장갑을 장착한 후 열흘 전 올랐던 대곡산 일명 무량산 또는 천왕산을 다시 올라야 하는지 짧은 시간 고민을 해 보지만 역시 운동을 하러 그 먼 거리를 내려왔고 또 오늘 일찍 산행을 마무리한다고 해도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며 시작을 분기점이 아닌 중간에서 시작하면 그 의미도 퇴색될 것 같아 금새 마음 편히 대곡산을 다녀 오기로 한다.

우측에 고성에서 버스를 타고 온 33번 상정대로 4차선을 두고 좌측 언덕 방향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오르며 와룡지맥 산행도 이틀 간 무탈하게 진행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어 보는 시간은 늘 걱정과 함께 설레임이 기득한 순간이기도 하다.

도로 저 멀리 고성 방향으로는 하늘이 불게 물들기 시작하며 어둠도 금새 사라질 것 같은 풍경으로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한다.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동쪽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우측 아래로 방금 전 고성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올라 온 33번 상정대로 4차선 포장도로 방향에서 가끔 빠른 차량들이 달리는 소음이 들리고 그렇게 오르다 시멘트 계단이 있는 수원백공 창효문이 있는 곳 가까이까지 오르니 도로 우측 저 멀리 고성 방향으로 벌써 여명이 밝아오며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서 낮의 길이가 조그믹 길어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며 사진 몇장 남기고 창효문 좌측의 시멘트 계단 옆에 배낭을 숨겨 놓고 와룡지맥 분기점이 있는 대곡산 정상으로 향한다.

 

열흘 전 올라왔었고 배낭을 숨겨 놓고 빈몸으로 오르다 보니 조금은 수월한데 역시나 산행 초입부에 가파른 오르막 등로는 언제나 어렵고 힘든 시간이다.

시멘트 계단 방향으로 웃자란 잡목들의 방해를 뚫고 오르니 간벌된 나무들이 널부러져 있고 가시잡목들이 앞을 가로막아 우측 옆 시멘트 도로 방향으로 내려가 공사자재들이 널부러져 있는 좌측 위 소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능선으로 향한다.

아마도 수원백공 창효문 앞 시멘트 포장도로를 더 지나 올라오면 이 시멘트 포장도로까지 이어지는 듯 보이는데 이곳으로 진행하면 조금 더 수월할 듯 보인다.

한동안 잡목들을 헤치며 올라 밀양손공 묘지 우측으로 급경사 잡목 구간을 타고 어렵게 오르니 얼굴은 차갑게 얼어 붙지만 이마와 등줄기에선 굵은 땀방울이 흐르며 등로를 적시고 그렇게 다시 한동안 오르니 나뭇가지 사이로 일출이 시작되고 곧이어 급경사 오르막 등로가 끝나는 지점 우측으로 얼마 전 걸었던 통영지맥의 벽방산부터 미륵산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산줄기와 그 앞으로 통영 앞바다가 황홀한 모습으로 펼쳐져 있으며 그 황홀한 풍경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태양이 하늘을 붉게 수놓고 있어 바쁜 발걸음이지만 잠시 멈추고 많은 사진으로 남겨본다.

 

등로 우측 앞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들을 가슴에 담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있고 바위들과 웅덩이가 보이는 무명 잡목봉에 도착을 하고 좌측으로 휘어져 오르니 관리가 전혀 되지 않는 잡풀 무명묘지를 지나 열흘 전 통영지맥이란 이름으로 만났던 오늘 이 산객이 걸어야 할 와룡지맥 산줄기의 분기점인 대곡산 정상에 도착을 해 의미있는 와룡지맥 분기점이란 이정판에서 고운 추억 한장 더 남겨 본다.

산행 전 이곳 대곡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거의 보이지 않고 가끔 무량산과 천왕산에 관한 자료만 접할 수 있었는데 우연히 고성인터넷뉴스에서 이곳에 위치한 대곡산과 철마산 및 무량산 그리고 천왕산에 관한 상세한 이름 변천과 그 역사를 알리는 내용이 보여 정리해 본다.

와룡지맥과 통영지맥의 분기점(낙남정맥의 대곡산-大谷山, 545m, 충무401 삼각점)이기도 한 대곡산은 고성군의 상리면과 대가면 및 고성읍의 경계를 이루는 삼면봉이자 낙남정맥 상 남쪽 끝자락에 있는 산으로 이곳 봉우리들은 무량산과 천왕산 및 대곡산 그리고 철마산의 위치가 다르게 표기되어 있어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무량산(無量山,武良山)과 천왕산(天王山, 天王岾, 天皇山)은 고성의 대표적인 산으로 무량산(無量山)은 고성의 옛 문헌인 지리지(地理志)나 읍지(邑誌)에 의하면 산천조(山川條)에 고성의 진산(鎭山)으로 나와 있고 천왕산은 제일 높은(583m) 산이기 때문에 사랑을 받았던 산들이다.

무량산(無量山)은 현(縣)으로부터 서쪽으로 10리 지점에 있다고 되어 있으며 천왕산은 현으로부터 북쪽으로 15리 지점에 있다고 되어 있으나 이렇게 조선시대 수백년 동안을 모든 사서(史書)나 고지도(古地圖)에 무량산과 천왕산의 위치가 그대로 적혀 내려왔던 것이 일본의 식민지 강점하에 있었던 1926년도의 일본사람들이 만든 지도(大正15年6月)에 의하면 그동안 천왕산으로 표기되었던 583m의 산은 무량산으로 그리고 무량산으로 표기되어 있던 산은 대곡산(大谷山 : 545m)으로 그 아래에 있는 철마산(鐵馬山, 417m)을 천왕산(天王山)으로 표기함으로 인해 이로부터 고성의 진산(鎭山)인 무량산(無量山)과 천왕산(天王山)의 위치가 바뀌어지고 대곡산(大谷山)이 별도로 새로운 산명(山名)으로 표기되어 버렸다.

즉 이곳 대곡산을 비롯해 천왕산과 철마산 그리고 무량산이란 4개의 산 이름이 일제시대를 지나며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현실이 안타깝고 아쉬울 따름이기에 자료를 찾아 어렵게 정리를 해 본다.

다음지도에도 대곡산으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실제 정상에는 무량산이란 이정판이 걸려있어 헷깔리는 산명인데 하루 빨리 통일된 기준이 필요해 보인다.

 

와룡지맥 분기점 이정판에서 동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통영분기점 이정판이 걸려있어 그곳도 잠시 들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사진과 추억을 남기는 시간은 참으로 의미있는 시간들이 되었다.

통영지맥은 지리산 영신봉에서 부산쪽으로 가는 낙남정맥의 대곡산(545봉)에서 남쪽으로 가지를 쳐 고성반도 긑으로 가는 산줄기로 고성읍내를 관통하여 고성과 통영 일대에서 가장 높은 벽방산(651봉)을 넘어 통영시가지를 감싸안고 서쪽으로 돌아가 통영시 갈목마을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40여 Km되는 산줄기로 호미와 땅끝, 고흥, 여수지맥 처럼 반도의 끝으로 가는 능선이라 지맥의 이름도 지역명을 따 통영지맥이라 칭한다.

오래 전 낙남정맥 산행을 하면서 분명히 지났을 이곳이지만 기억속에서 지워져 있어 아쉬움을 남기는데 옛날 자료를 찾아보니 조각난 파편들이 조금씩은 제자리를 찾으며 기억을 되살려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통영지맥 분기점에서 추억을 남기고 다시 와룡지맥 분기점인 대곡산 정상부로 올라 와 정상부 풍경을 사진에 담고 이곳 근처에 흩어져 있는 4개산의 이름에 관한 자료를 조금 더 정리해 본다.

대곡산과 근처에 솟아 있는 각기 다른 이름으로 표기된 4개의 산 이름과 관련된 자료를 추가로 올려 정리해 본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그들이 경제적이나 정치적으로 수탈 지배하기 위하여 식민지 초기에 시행되었던 조선의 토지조사사업과 세부측량사업을 하면서 그 지방의 산세와 정기를 억누르기 위해 산의 정상부에 쇠말둑을 박기도 하고 지명을 변경하는 일이 허다 하였다.

이와 같은 일제의 만행으로 인하여 고성의 진산(鎭山 )이 다른 곳으로 바뀌게 되므로서 고성(固城)의 정체성과 주체성에 큰 상처를 입히게 된 것이다.

천왕산(天王山)은 그 후 1996년도 국립지리원에서 인쇄 발행한 25,000분의 1 지도인 고성지도(지도9)에 의하면 무량산(無量山)이 있던 자리는 대곡산(大谷山)으로 되어 있고 천왕산(天王山)이 있던 자리는 무량산(無量山)으로 천왕산(天王山)의 위치를 다시 193m의 산으로 옮겨서 표기해 놓고 있다.

다시 말하면 천왕산(天王山)이 있었던 자리는 무량산(無量山)으로 무량산(無量山)이 있었든 자리는 대곡산 (大谷山)으로 다시 천왕산(天王山)의 위치는 철마산(鐵馬山)으로 정하였다가 다시 193m의 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 후 국토지리정보원에서 간행한 2011년도 1:25000 지도에서는 193m의 산을 천왕산(무량산)으로 표기해놓고 있고 그 외 1895년의 영남읍지(嶺南邑誌)의 고성부읍지(固城府邑誌) 1930년의 철성지(鐵城誌), 1934년의 固城誌, 1940년의 嶠南地 등에 모두 무량산은 현의 서쪽으로 10리 지점에 있으며 진산으로 되어 있고 천왕산은 현북 쪽으로 15리 지점에 있다고 되어있다.

이 내용들은 이미 열흘 전 통영지맥을 진행하면서 철마산과 지맥 마루금에서 벗어 나 있는 무량산 또는 천왕산 서재봉과도 관련이 깊어 그곳을 들리며 정리를 한 곳이기에 이곳에서는 이것으로 헷깔리는 사 지명에 대한 정리를 마무리 한다.

 

열흘 동안 두번이나 올랐고 9년 전인 2012년 3월 초에 낙남정맥 산행을 하면서 가랑비를 맞으며 한번 더 올랐으니 총 3번을 오른 통영지맥과 와룡지맥 분기점인 대곡산을 평생 다시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알 수가 없기에 조금 더 머무르며 나뭇가지 사이로 빼꼼히 보이는 북쪽 방향을 살펴보니 좌측으로 송구산과 그 뒤 저 멀리 진주의 회색빛 고층 건물들이 살짝 얼굴을 내밀고 우측으로는 나뭇가지 뒤로 낙남정맥 상 천왕산이 보이는데 그곳까지가 한계이기에 조금은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올랐던 등로를 타고 빠르게 감치재 방향으로 내려간다.

9년 전 낙남정맥 산행기를 찾아보니 2012년 3월 2일 홀로 내려 와 겨울비를 맞으며 걸었으며 통영지맥 분기점이란 이정판을 만나 사진에 담았지만 그때만 해도 와룡지맥은 지맥 반열에 들지 못해 이름 자체가 없었던 시절처럼 보인다.

다시 가시잡목 지대를 뚫고 시멘트 계단을 타고 내려가며 배낭을 찾아 어깨에 짊어지고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가니 드디어 밝은 낮에 수원백씨 창효문과 시멘트 계단으로 이어지는 산행 들머리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수원백공 창효문과 시멘트 계단 들머리를 지나 감치재 방향으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드디어 새벽 어둠속에 버스에서 하차한 33번 상정대로 4차선 포장도로 옆 시호등에 도착을 하고 서쪽 방향을 살펴보니 마루금에서 벗어 나 있는 좌측 가까운 곳의 선당산 지나 저 멀리 잠시 들렸다 내려온 무이산과 문수암이 빤히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뒤로 보여야 할 수태산은 무이산에 가려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이곳 감치(티)재(33번상정대로 4차선 포장도로)는 경상남도 고성군의 고성읍 이당리에서 상리면 부포리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대곡산(545m) 남쪽에 있고 지금은 33번 국도가 지나며 여지도서에는 감치산(甘峙山)을 수록하였는데 관아의 서쪽 15리에 있고 의소묘(懿昭墓)에서 둔전을 설치했으며 무량산에서 뻗어 나온다고 하였다.

대동지지에는 감치는 서쪽 20리에 있고 사천현(泗川縣)으로 통한다 라고 수록되었으며 해동지도와 1872년지방지도 등에 읍치에서 사천을 향하는 서쪽 길에 표시되어 있지만 조선팔도지도에는 읍치 서쪽에 대치산(大峙山)과 동쪽에 감치산으로 잘못 표시하고 있다.

감티라고도 부르며 통영과 진주에서 각각 70리 되는 지점으로 이곳에서 옛날 사천과 진주 및 지리산의 산적과 통영과 마산 및 부산 등의 산적이 서로 만나 감투 싸움을 한 고개여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33번 상정대로 4차선 포장도로엔 횡단보도 없이 신호등만 설치되어 있어 신호가 바뀐 틈을 타 도로를 건너 다시 좌측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는 긴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절개지 상단부로 올라 마루금을 이어가게 된다.

 

신호가 바뀐 틈을 타 33번 상정대로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1차선 포장도로를 조금 더 타고 걸어 들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좁은 시멘트 계단이 길게 설치되어 있고 그 주변으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그 계단으로 오르니 등로 좌측인 북쪽 방향으로 방금 전 건너 온 상정대로 넘어 오늘 새벽부터 지금까지 잠시 다녀 온 와룡지맥과 통영지맥 분기점인 대곡산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데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며 박무와 미세먼지 없이 너무나 청명한 하늘 풍경과 조망에 추위도 잊고 좋은 기분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등로 좌측으로 상정대로와 대곡산 방향을 살펴보며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계단을 타고 오르니 드디어 계단이 끝이나고 콘크리트 수로가 나타나며 절개지 정상부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 능선 방향으로 몇장의 선답자들 띠지들이 걸려있어 잡목들을 헤치며 능선으로 조심해 올라간다.

원마루금에 복귀하는 지점에 삼각점이 있다고 하였는데 확인하지 못하고 능선으로 오르니 군부대 벙커같은 시설물 주변으로 잡풀들과 억새가 우거졌다 말라있는 공터가 나타나고 지도를 확인해 보니 이곳이 바로 도상 209.2봉인데 아무런 표식도 보이지 않는다.

 

그 209.2봉을 지나 뚜렷하고 부드러운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군부대 훈련장인 듯 여러가지 시설물들과 이정표들이 보이는데 군생활을 한지도 너무 오래되어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용어들이다.

큰 고도차이도 없이 평이하지만 뚜렷한 군부대 훈련장으로 사용되는 듯한 등로를 따르니 군부대 시설물 지나 커다란 소나무에 준희님이 걸어 놓은 이정판이 보이는 222.9봉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기고 우측으로 급격히 휘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찾아 산행을 이어간다.

 

봉우리를 내려가니 묘비가 땅에 묻혀있는 묘지를 지나 리끼다 소나무가 줄지어 아름답게 서 있는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고 콧노래를 부르듯 진행하니 등로는 나즈막한 안부와 둔덕봉을 오르락 내리락 이어진다.

잠시 후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고 활엽수들이 나타나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잡목들과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있는 폐초소와 녹슨 통신탑이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을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폐초소와 녹슨 통신탑을 지나 그 통신탑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철망이 무너진 곳을 통해 산행을 이어가니 지금까지와는 달리 잡목들의 저항이 나타나고 얼굴이 다치지 않토록 조심하며 그 잡목지대를 지나며 등로 좌측 뒤를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와룡지맥 분기점인 대곡산이 조금씩 더 멀어지고 있다.

선답자의 산행후기를 보면 이곳 어딘가에 응원판이 있다는데 확인하지 못하고 계속 온 몸을 때리는 잡목가지들을 조심하며 오르니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374.5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한다.

 

사진을 담으며 얼굴을 보니 등줄기에선 땀방울이 흐르지만 찬바람을 직접 만나는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모습이다.

잠시 후 돌로 쌓은 듯한 벙커를 지나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 전진하니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남해바다에 떠 있는 자란도와 사량도가 지척으로 다가와 있고 그 주변으로 흩어져 있는 섬들을 살펴보고 진행하니 다시 등로는 빼곡한 나무 터널속으로 이어진다.

잠시 후 나타나는 바위를 우측으로 우회해 통과한 후 그 바위 위로 오르니 남동 방향으로 시원스런 풍경들이 펼쳐져 있어 살펴보니 바로 앞에 갈모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길고 아름답게 이어지고 그 뒤 저 멀리 열흘 전 넘었던 통영지맥의 벽방산에서 우측 뒤 저 멀리 뾰족하게 솟아 있는 통영의 미륵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가 벌써 고운 추억이 되어 가슴속에 쌓이고 있다.

사진 우측 가장자리로는 통영 앞바다인 남해바다가 산빛인지 물빛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닮아 있는 모습으로 산객의 눈길을 잡는다.

 

전망바위를 내려오기 전 남쪽 방향으로는 여전히 자란도와 사량도 그리고 그 주변으로 점점이 떠 있는 남해안의 섬들이 자꾸만 이 산객의 발길을 붙잡는데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사진에 담고 등로로 내려 와 전진하니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무명봉 넘어 소나무와 잡목 등로가 번갈아 나타나고 곧이어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387.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좌측으로 꺽어 완만하게 내려간다.

약간의 관목들이 내리막 등로를 가득 채우고 있지만 등로는 뚜렷하기에 천천히 걸어가니 등로 우측 앞 나뭇가지 사이로 이화동동묘원 넘어 저 멀리 잠시 들렸다 내려 올 무이산과 문수암 그리고 좌측으로 진행해야 할 수태산이 쌍봉의 모습으로 다가 와 있다.

다시 뚜렷해진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에 맨발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407.4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긴다.

 

봉우리를 지나 우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하니 기암괴석들이 나타나고 살펴보며 사진에 담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옆 좌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 올라가 보니 시원한 풍경들이 다시 발목을 붙잡는다.

먼저 진행 방향인 북서쪽을 살펴보니 송전탑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상 돌구산 넘어 약사전의 금빛 불상의 머리가 살짝 보이기 시작하고 그 우측 끝자락에 솟아 있는 마루금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무이산과 문수암이 뚜렷하고 그 좌측 뒤로 진행해야 할 수태산이 쌍봉의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그 수태산 좌측 뒤로는 향로봉이 높게 솟아 이고 그 수태산과 향로봉 사이 중앙 뒷쪽으로는 내일 올라 만나야 할 와룡산의 주봉인 새섬봉도 암봉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향로봉 좌측 아래로는 무등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좌측 끝자락으로 좌이산이 보이는데 내일 와룡산 넘어 만나야 할 천왕산과 각산을 찾아 보지만 그곳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 눈을 남쪽에서 남남서쪽 방향을 살펴보니 장치리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자란만과 임포항 뒤로 좌이산이 우뚝 솟아 있으며 그 좌측 뒤로는 몇번인가 들려 고운 추억을 남겼던 사량도가 좌우측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황홀하기만 하다.

지리망산과 옥녀봉 산행을 위해 산친구들과 두어번 들렸고 가족들과 여행 겸 산행을 위해 한번 더 들려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준 사량도이기에 감회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사진 우측 좌이산 뒤로는 화이면 화력발전소에서 내뿜는 하얀 수증기가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 있는데 저 화력발전소는 내일까지 계속 등로 좌측으로 길라잡이 하듯이 ㅏ라 왔다.

 

잠시 더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전망바위를 내려 와 정상 마루금을 타고 전진하니 지금까지 남도 지방의 산행을 하면서 가장 춥게 느껴지는 기온과 태풍보다 강한 바람으로 인해 체력 소모가 극심함을 느끼는 시간이다.

잠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눈 앞으로 거대한 이화공동묘원이 펼쳐지고 그 며원 좌측 위 가장자리를 타고 내려가다 우측을 보니 생각보다 넓은 공동묘원이다.

지나 온 방향의 와룡지맥 마루금도 올려다 보고 조금 더 좌측 가장자리를 타고 진행하니 도로가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곳 직진의 잡목 능선으로 등로가 이어지고 이어 조심스럽게 진입한다.

 

능선으로 들어가니 짧은 구간 잡목들이옷깃을 붙잡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경주최공 묘지2기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잠시 후 통과해야 할 장치로 2차선 포장도로 건너편으로 부드러운 마루금이 올려다 보이고 사진에 담으며 묘지를 지나 내려가니 금새 장치로 2차선 포장도로 위 짧은 절개지 위에 도착을 한다.

사진 몇장 남기고 조심하며 짧은 절개지를 내려가니 드디어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차량 통행은 많지 않아 편안하게 도로를 건너 육각정과 삼산면 달막동산이라는 커다란 표지석 앞으로 가 본다.

누군가는 이곳의 지명 이름을 차용해 장치고개란 명칭으로도 불려지는 이곳은 장치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개로서 좌측의 고성군 삼산면 장치리와 우측의 상리면 자은리의 경계이다.

장치리는 경상남도 고성군 삼산면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의 지대가 평탄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고 마을 중심부에는 작은 실개천이 흐르고 있으며 북쪽 방면에 산지가 조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숲안땀, 능골, 들땀, 은곡 마을 등이 있는데 숲안땀 마을은 숲 안쪽에 자리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능골 마을은 능골산 아래에 위치한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들땀 마을은 들이 넓다 하여 불리워진 이름이며 은곡 마을은 은이 났다는 의미에서 명명되었다.

 

달막동산이 평범하지 않아 찾아보니 다음지도에는 이곳 지명이 아닌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능선 상 봉우리 이름으로 표기가 되어 있고 실제 이곳 고갯마루에는 이름이 없는데 이곳 사람들은 이 고갯마루를 달막동산으로 부르며 산이 아닌 동산이라 생각하는 듯 보인다.

그 삼산명 달막동산 표지석 뒤로는 나무데크로 만들어진 작은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가 보니 남쪽으로 보이는 12개의 섬 이름들과 위치를 안내하는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을 참고로 그림같이 펼쳐진 장치리 마을 지나 우측으로 거대한 사량도를 중심으로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가슴에 담고 다시 지맥 산행을 이어가기 위해 전망대를 출발하는 시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장치로 달막동산 또는 장치고개에서 다도해를 살펴보고 정자 우측의 능선으로 오르니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지만 진행에는 큰 지장을 주지 않아 편안하게 진행되고 곧이어 50번 송전탑을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녹슨 철망이 제법 높게 따라 오는데 농장이었는지 모르겠다.

한동안 녹슨 철방을 좌측에 두고 뚜렷하게 나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철망이 등로를 좌우측으로 가르며 이어지는데 등로에는 작은 문이 보이지만 이미 그 역활을 상실한 폐쇄된 철망 사이로 오르며 그 철망과도 이별을 한다.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46번 송전탑을 만나 사진에 담고 오르니 간벌목들이 정상에 널부러져 있고 좌측으로 꺽여 진행되는 등로 쪽으로 몇명의 선답자들이 걸어 놓은 산행 띠지들이 보이는데 지난해 다녀 간 대전의 산지산인님의 신상 띠지도 바람에 나풀거리고 있다.

약 378미터의 무명봉으로 우측 안땀마을 방향의 301.9봉으로 가는 등로도 뚜렷하게 나 있어 길주의 지점으로 보이는 봉우리이다.

 

좌측으로 꺽어 평이하게 진행하니 커다란 소나무와 관목들이 혼재되어 있고 그 사이로 잡목들이 자라면서 등로를 조금씩 침범하는 형상으로 마루금이 이어지고 있어 조만간 잡목으로 인한 진행에 어려움이 예상되기도 한다.

잠시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 앞 나뭇가지 사이로 좌이산과 사량도가 계속 보이고 우측 앞으로는 잠시 후 만나야 할 약사전과 무이산 및 수태산 줄기가 가깝게 다가오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전진하니 벤취쉼터와 좌측 뒤로 묘지 한기 그리고 이정표와 준희님이 걸어 놓은 이정판이 보이는 405.1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정판에는 누군가 이 봉우리를 돌구산이라 하였는데 다음지도에도 동일한 이름이 보인다.

이곳 돌구산에 관한 자료는 찾을 수 없었는데 지명 이름인 무선리를 찾아보니 무선리는 경상남도 고성군 상리면에 있는 리로서 무이산(武夷山) 자락에 자리잡은 마을로 마을 뒷산이 울창하고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산수가 맑고 풍부하여 농사 짓기에 좋다. 

자연마을로는 무선(武仙)과 선동(仙洞) 2개의 마을이 있는데 선동마을에서는 청량산(靑凉山) 밑에 신령님과 선비가 마을에서 많이 배출되었다 하여 신선 선(仙)자를 따서 마을 이름을선동이라 하였으며 특산품으로는 수년 전부터 재배한 고성 인삼이 있다.

 

돌구산 정상인 405.1봉에서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우측으로 무선저수지 하산 등로를 확인한 후 좌측으로 돌아 진행하니 등로는 어느 명산처럼 반질거리는 등로로 변하며 진행에 어려움이 전혀 없다.

한동안 편안하게 걸어가니 국제신문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 넘어 다시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조망이 펼쳐지기 시작해 잠시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바로 아래 하일면 수양리와 용태리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그 마을을 지나 다도해가 드넓게 펼쳐져 있는데 우측으로는 여전히 사량도가 추억을 소환하고 좌측으로는 삼산면의 바닷가를 지나 저 멀리 통영의 미륵산이 뾰족하게 솟아있는 모습이 여전히 아름답게 다가온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듯 등로 좌측으로 다도해와 사량도를 살펴보고 여전히 뚜렷한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강풍에 휘날리는 381.3 무명봉이 나타나고 사진에 담고 멋진 소나무와 약간의 관목들이 보이는 뚜렷한 등로를 ㅏ르니 갑자기 눈 앞으로 나무계단 위에 금빛부처상이 보이기 시작해 지도를 살펴보니 약사전이라는 암자로서 지도에는 391.3봉으로 표기된 봉우리이다.

이곳 약사전은 보현암 약사전으로 약사여래불상을 모신 곳으로 약사여래는 질병을 고쳐주고 고통을 없애주며 목숨을 연장시켜 주는 부처이기에 건강을 비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 설명들이 보인다.

금빛 부처의 뒷태를 사진에 담고 나무계단을 타고 약사전으로 오르니 391.3미터봉을 약사전으로 개창한 듯 보이는데 금빛 불상은 지붕 위에 앉아 있어 정작 약사전에서는 3층으로 오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다.

약사전 건물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돌아가니 우측 저 멀리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와룡지맥 마루금이 길게 펼쳐지고 좌측 끝자락에 대곡산도 보이는데 그 대곡산 우측 뒤 저 끝자락에는 삼각형 모양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거류산이 눈길을 잡는다.

저 거류산은 통영지맥 산행 시에도 한동안 길라잡이를 해 주던 사이기에 아직도 기억속에 뚜렷하다.

 

바로 앞 돌구산이라는 405.1봉 넘어 저 멀리에는 통영시를 지난 통영지맥 마지막 산줄기 지나 거제쪽 산줄기들도 보이는데 거리가 멀어 생각보다 이름을 살펴 볼 정도는 아니다.

이제 진행 방향인 북쪽으로는 와룡지맥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는 무이산과 그 아래 문수암이 아름답게 조망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잠시 다녀오기로 한다.

그렇게 약사전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빙돌아 진행하니 약사전으로 들어오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따라 걸어가며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앞 일주문 지나 우측의 수태산 전위봉과 좌측의 수태산 정상이 지척으로 다가 와 있다.

 

약사전으로 들어 오는 넓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여유롭게 걸어가니 출입문은 다른 절에서 봤던 일주문이 아닌 해동제일약사도장이란 글씨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니 넓은 주차장에 차량 몇대만이 보이는데 이 산객이 지나는 시간에도 부부인듯한 여행객 두분이 차량을 이용해 와서 사진들을 찍고 있다.

계속 도로 따라 걸어 오르니 직진 능선 방향이 실제 와룡지맥 마루금이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무선2길은 무이산과 문수암으로 가는 도로이기에 부득이 우측 도로를 따라 진행하게 된다.

그 와룡지맥 능선 방향으로는 대형관광버스 한대가 주차되어 있어 살펴보니 마루금 입구 쪽에 2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산신제를 지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는데 평일날 그것도 코로나19로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시기에 이렇게 모여 산신제를 지내는 것이 마딱치는 않다.

도로를 타고 진행하기 앞서 잠시 뒤돌아 보니 약사전 지붕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 금빛 불상의 크기가 대단함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이다.

 

이제 도로 좌측 능선으로 원 마루금을 두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 앞으로 잠시 후 올라 만나야 할 무이산정상부의 높은 안테나가 보이고 그 우측 아래로 유명한 문수암이 서 있으며 그 문수암으로 통하는 도로가 바로 아래 나 있는 모습이 한눈 에 들어 온다.

도로를 타고 걸어가며 거의 같은 풍경이 계속 나타나기에 몇장의 사진에 담으며 걸어 들어간다.

 

그렇게 도로를 타고 한동안 걸어가니 도로 우측 아래 보현식당과 드넓은 주차장이 보이는데 주차된 차량은 산책 나온 주민이 타고 온 승용차 한대가 전부이고 식당문은 굳게 닫힌 듯 조용하기만 하다.

그 보현식당 출입구를 지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좌측 능선으로 수태산 들머리가 보이지만 지금은 우측 무이산을 다녀오기로 했기에 우측 도로 표지판 지난 숲속에 배낭을 숨겨 놓고 빈손으로 편안하게 무이산 방향으로 향한다.

 

우측으로 휘어지는 도로를 타고 조금 더 전진하니 도로 좌측 능선 방향으로 이정표가 서 있고 살펴보니 좌우측 모두 문수암과 무이산으로 오를 수 있는 등로로서 좌측은 능선 등로이고 우측은 도로이다.

막 등로는 좌측 능선으로 올라 우측 도로를 타고 내려오기로 하고 좌측 이정표 뒤 능선으로 오르니 멋진 편백나무 군락지가 펼쳐지고 잠시 그 군락지를 지나 주능선으로 오르니 활엽수와 관목들로 이뤄진 평이한 등로가 열리고 편안하게 걸어 오르니 금새 아담한 정상석과 바위들 및 산불감시초소 그리고 높은 통신탑이 서 있는 545.6미터의 무이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몇장 남겨 본다.

무이산(武夷山.545.6m, 산불초소)은 경상남도 고성군의 상리면 무선리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546m이고 남서쪽 수태산(575m)과 능선이 서로 이어져 있다. 

여지도서에는 무이산(武夷山)은 관아의 서쪽 25리에 있고 무이산 아래에 사수(泗水)와 백록동(白鹿洞)이 있으며 감치산(甘峙山)에서 뻗어 나온다고 하였고 대동지지에는 현의 서쪽 25리에 있고 북쪽에는 백악동(白岳洞)이 있으며 서쪽에는 내원사(內院寺)가 있다고 수록하였다. 

동여도에는 무이산 북쪽에 백악동 그리고 서남쪽에 내원사를 표시하고 있으나 광여도, 영남지도, 1872년지방지도 등에는 내원사가 무이산 근처가 아니라 사천과의 경계에 있는 것으로 표시하고 있고 삼국시대부터 해동의 명승지로 유명하였으며 국선 화랑들이 이 산에서 심신을 연마했다고 전해진다. 

호구총수를 살펴보면 상리면(上里面)의 동리 중에서 무이산이 있고 조선지형도에는 무이산으로 기록하였고 조선지지자료에는 무이동(武夷洞) 문수산(文洙山)으로 기록하고 있어 무이산과 문수산을 같은 산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여지도서와 조선지도, 대동여지도 등에는 두 산을 따로 수록하고 있다. 

무이산 정상의 남쪽에 위치한 문수암(文殊菴)은 688년(신라 신문왕 5)에 의상대사가 문수보살을 친견한 후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경상도읍지에는 문수암은 부(府) 서쪽 60리에 있다고 하였다.

 

어렵게 무이산 정상에 도착을 해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담는 사이 산불감시원이 나와 인사 나누고 주변 산들을 살펴보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제서야 감이 잡히기 시작하고 한동안 그 정상에 머물며 많은 사진들을 남겨 본다.

제일 먼저 북북서쪽 방향을 살펴보니 무선리와 상리면으로 이어지는 좁은 들판을 따라 형성된 마을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또 다른 대곡산과 봉대산 같은 나즈막한 산줄기 넘어 산줄기를 타고 길게 끈처럼 펼쳐진 회색빛 건물들이 빼곡한 진주시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진주 우측의 산그리메들이 아름다운 북쪽으로 눈을 돌리니 바로 발 아래 무선리와 상리면 마을들이 환상으로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대곡산 지나 천왕산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 마루금이 올망졸망 끝없는 길을 만들며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 황홀하기만 하다.

너무 오래 전 걸었던 산줄기들이기에 기억속에 온전히 남아 있지는 않지만 조각 조각 흩어졌던 파편들이 한곳으로 모이듯 그 기억들을 떠 올려 보려고 노력하는 시간이다.

 

이제 눈을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왔던 와룡지맥 마루금이 펼쳐진 동쪽으로 돌리니 좌측 끝자락에 와룡지맥 분기점인 대곡산과 그 우측 아래로 철마산으로 이어지는 통영지맥 산줄기가 펼쳐져 있고 그 와룡지맥 방향인 남쪽 아래로는 부포리 마을 지나 이화공동묘원과 우측으로 나즈막하게 이어져 온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뒤 저 멀리에는 오늘 새벽 잠시 머물렀던 고성읍이 보이고 그 고성 읍 뒷편으로는 뾰족하게 솟아 있는 거류산과 그 좌측 옆으로 구 절산 줄기가 시원하ㅣ고 이화공동묘원 뒷쪽으로는 통영지맥의 진산격인 벽방산에서 도덕산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산줄기가 다시 이 산객을 부르고 있다.

 

이제 눈을 남동 방향으로 돌리니 고성에서 통영으로 이어지는 해안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고 좌측 끝자락에 뾰족하게 솟아 있는 통영의 진산인 미륵산이 군계일학으로 눈에 들어 오고 다도해에 떠 있는 많은 섬들을 지나 우측으로 눈을 돌리니 바 로 앞 자란도 지나 저 멀리 뒷쪽 우측으로 길게 펼쳐진 사량도가 환상이고 그 사량도 뒷쪽으로도 희미하게 욕지도와 남해쪽 산줄기들이 눈에 들어 온다.

 모두 한번 이상씩 오르며 고운 추억을 남겼던 곳들이기에 그 추억을 더듬으며 이제 마지막으로 지리산 방향을 살펴보지만 거리감이 너무 멀어 희미하게 윤곽만 잡힐 뿐으로 사진으로 담기에는 역부족이다.

잠시 후 진행해야 할 서쪽의 와룡지맥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앞 능선으로 잘 보이지 않지만 머리만 내밀고 있는 민재봉과 와룡산 새섬봉이 거대한 암봉의 모습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잠시 더 그 무이산 정상에서 일망무제로 펼쳐진 아름답고 환상적인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보고 이름들을 불러 준 후 무선저수지 방향의 가파른 바위 내리막 등로를 타고 문수암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생각보다 거치른 바위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드디어 문수암 상단부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지나 온 방향의 와룡지맥 산줄기와 그 뒤 저 멀리 통영지맥 산줄기를 살펴본 후 문수암 방향으로 완전히 내려가지 않고 우측 능선으로 돌아 수태산 방향으로 진횅을 이어간다.

문수암은 경상남도 고성군 상리면 무이산(武夷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암자오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다. 706년(성덕왕 5) 의상(義湘)이 창건하였으며 무이산은 삼국 시대부터 해동의 명승지로서 화랑들의 수련장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창건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하고 있는데 의상이 남해 보광산(普光山 : 지금의 錦山)으로 기도하러 가던 길에 무선리의 민가에 묵게 되었고 꿈속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내일 아침에 걸인을 따라서 보광산보다 무이산을 먼저 가보라고 하였여 날이 새자 걸인을 따라 무이산으로 가서 보니 눈앞에 수많은 섬들이 떠 있고 남대와 북대, 동대, 서대는 웅장한 바가 있어 마치 오대산의 중대(中臺)를 연상하게 하였다. 이 때 한 걸인이 또 나타나서 두 걸인은 서로 손을 잡으며 바위 틈새로 사라져버려 의상이 석벽 사이를 살펴보았으나 걸인은 보이지 않고 문수보살상만이 나타나 있었다. 꿈속의 노승은 관세음보살이고 두 걸인이 문수와 보현보살임을 깨달은 의상은 이곳에 문수암을 세웠는데 지금도 석벽 사이에는 천연의 문수상이 뚜렷이 나타나 보인다. 창건 이후 이 암자는 수도도량으로서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으나 중창 및 중건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다. 현존하는 암자는 사라호 태풍 때 건물이 붕괴된 뒤에 지은 현대식 건물이며 이 절에서 수도한 청담(靑潭)의 사리를 봉안하여 1973년에 세운 청담대종사 사리탑이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문수암에는 평일인데도 제법 사람들이 보여 부득이하게 사람들이 없는 능선 등로를 따라 배낭을 숨겨 놓은 갈림삼거리이자 수태산 들머리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문수암 위 암자 앞에서 지나 온 와룡지맥과 열흘 전 걸었던 통영지맥 산줄기을 살펴보고 통영과 그 우측으로 펼쳐진 남해바다를 둘러 본 후 문수암으로 내려가지 않고 문수암을 좌측 바로 아래에 두고 우측 사면 등로가 개설되어 있어 호젓하게 그 사면 등로를 따르니 운치있는 산책로 같은 등로이다.

사람들을 피해 이렇게나마 좋아하는 산행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한동안 걸어가니 산책로는 드디어 수태산 들머리와 문수암 중간쯤 되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접속되어 편안하게 진행을 해 본다.

 

이제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수태산 진입 들머리가 있는 갈림삼거리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니 좌측으로는 보현식당 건물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진행 방향 우측으로는 잠시 전 무이산 오름길에 올랐던 편백나무 군락지 들머리 지나 갈림삼거리에서 수태산 들머리로 들어가면 원 마루금을 만나 통신탑 우측 뒤로 수태산 정상부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숨겨 놨던 배낭을 찾아 어깨에 메니 두 어깨에 전해지는 무게감이 장난이 아니고 갈림삼거리 우측 콘크리트 옹벽 위로 올라 전봇대 옆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고 수태산정상까지 0.5 Km 거리라는 이정표와 출입금지 안내판이 서 있는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에 보이는 관목들과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을 지나 짧지만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이마에 땀방울을 흘리며 오르니 좌측 산신제를 지내던 버스가 가로막던 곳에서 이어지는 원마루금이 올라 오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한쪽에는 우측으로 수태산정상까지 0.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반겨 준다.

 

이제 원 마루금을 만나 우측으로 편안하게 걸어가니 이곳 등로 역시 진달래 나무가 우거져 있지만 지나가는 등로는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진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이제 12시가 넘으면서 바람은 더욱 차가워졌는데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남사면은 얼었던 서리가 녹으면서 약간은 질척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잠시 더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폐 군초소가 다시 나타난다.

 

폐 군초소를 지나 평이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눈 앞으로 녹슨 철망과 함께 거대한 통신탑이 서 있고 그 양쪽으로는 건물들이 보이는데 직진의 통신탑 방향으로는 철망문이 잠겨있어 우측 철망을 타고 우회하며 진행한다.

철망 문 옆에 붙어 있는 안내판을 보니 SK수양 기지국으로서 우측으로 돌아가는 철망에는 그동안 지맥산행을 하면서 자주 만났던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잠시 살펴보고 진행한다.

 

SK 수양 기지국을 우측으로 우회하니 바위암릉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조심하며 올라 뒤돌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방금 전 우회한 SK 수양지기국의 높은 통신탑 넘어 또 다른 통신탑이 서 있던 무이산 정상부가 이제 조금씩 멀어지며 제법 거리감이 생겼다.

사진에 담고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척번정 하산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수태산정상까지는 45미터 거리이다.

이름이 범상치 않아 척번정을 찾아 보니 수태산 근처에 있는 청량사란 암자에 옛날 신라시대 화랑들이 수행하던 척번정(몸과 마음을 청결히 수행하는 곳)의 전설이 전해지며 또한 척번정리란 마을 이름도 보여 찾아보니 척번정리는 경상남도 고성군 상리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 뒷산이 병풍처럼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지형으로 마을 앞에는 동산리에서 원류하는 하천이 북으로 흐르고 있다.

척정()마을과 조동() 및 평촌()의 3개의 마을이 있는데 척번정리는 마을이 보기에는 평평하지만 비가 오면 빗물이 깨끗이 씻은 듯이 없어지기 때문에 씻을 척(), 번뇌 번(), 정자 정()자를 따서 척번정리로 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며 마을의 특산물로는 옛날부터 재배하여 온 감(물감-봉옥)이 있다.

 

척번정 갈림 삼거리를 지나 바위 등로를 넘으니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서 있고 곧이어 좁은 공터에 앙증맞은 정상석과 사천11이라는 1등 삼각점 그리고 이정표가 서 있는 574.8미터의 수태산 정상에 도착을 해 배낭 내리고 준비한 땡초 김밥 한줄과 과일로 점심식사를 즐기고 진행하기로 한다.

수태산(秀泰山, 574.8m, 사천11 삼각점)는 경상남도 고성군의 하일면 수양리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575m이고 하일면 수양리와 상리면 동산리 및 무선리에 걸쳐 있으며 서북쪽 무이산과 능선이 이어져 있다.

옛 지명은 문수산(文殊山)으로 여지도서에는 문수산은 관아의 서쪽 25리에 있고 감치산(甘峙山)에서 뻗어 나온다고 하였다.

문수라는 지명은 688년(신라 신문왕 5)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문수암(文殊菴)에서 유래하였는데 문수암이 북쪽에 인접한 무이산(546m) 정상 남쪽에 있고 조선지지자료에는 무이동(武夷洞) 문수산(文洙山)을 기록하고 있어 무이산을 문수산으로 보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여지도서에 문수산과 무이산을 따로 수록하였고 조선지도, 대동여지도, 동여도 등에도 무이산과 그 남쪽에 문수산을 각각 표시하였다.

또한 경상도읍지를 살펴보면 문수암은 문수산(文殊山) 동쪽에 있다고 수록하고 문수산과 무이산을 지도에 각각 표시하고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수태산(洙泰山) 조선지형도에는 수태산(秀泰山)으로 기록하였다.

 

이곳 수태산 정상 역시 남쪽 방향으로 조망이 좋아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새벽에 준비한 땡초김밥 한줄로 허기를 달래며 살펴보니 하일면 학림리마을과 임포항 그리고 좌이산이 먼저 눈에 들어 오고 그 뒷쪽으로 남해바다 지나 사량도의 분리된 2개의 섬이 마치 하나로 길게 연결된 듯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으며 아이들과 쌓았던 지리망산에서의 추억도 꺼내 본다.

 

이제 눈을 동쪽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돌리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감치재에서 약사전 지나 이곳으로 이어진 와룡지맥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통영지맥에서 벗어나 있는 거류산이 뾰족하게 사진 좌측 뒷쪽에 자리하고 중앙부 좌측 뒤로는 고성읍 지나 통영지맥에서 가장 높은 벽방산에서 도덕산 지나 우측 통영시내 및 미륵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벌써 고운 추억이 되어 버린 열흘 전 추억을 들려준다.

 

그렇게 한동안 그 수태산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며 허기를 달래고 따뜻한 햇살에 몸도 녹인 후 다시 힘을 내 배낭 둘러메고 출발하니 커다란 바위암릉이 연이어 나타나고 조심하며 그 바위암릉을 넘어가니 드디어 진행해야 할 향로봉 넘어 우측으로 봉암산과 비운치 지나 내일 걸어 올라야 할 민재봉에서 좌측의 와룡산 정상부인 새섬봉 그리고 머리만 내밀고 있는 천왕봉이 보이기 시작하며 발걸음을 붙잡기 시작한다.

또한 마루금 우측 옆 동산리에는 제법 높은 봉우리 하나가 계속 신경을 쓰이게 만드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520미터급 높이의 봉우리로서 이름이 없는 무명봉이다.

 

진행 방향과 와룡산 그리고 그 좌측 뒤로 보이는 남해바다와 좌이산 및 사량도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진 남해의 산줄기들이 환상의 모습으로 자꾸만 눈길을 잡아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살펴보며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바위 암릉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방금 전 만났던 풍경과 유사한 못ㅂ들이 펼쳐져 다시 몇장의 사진으로 대신하고 내려가니 커다란 참나무와 자갈 등로를 지나 부드러운 등로로 변하고 곧이어 시멘트 포장도로와 비포장임도가 만나는 수대재에 도착을 하는데 진행 방향으로 향로봉까지 3.7 Km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눈길을 잡는다.

수대재 임도는 좌측의 고성군 하일면 수양리와 우측의 상리면 동산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자료를 찾아 봐도 설명된 자료가 없어 고갯마루를 이어주는 좌우측 동네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수양리는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의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고 수태산 남쪽에 있는 마을이며 마을 앞의 수양천(洙陽川) 주변에 형성된 들판은 경지정리가 된 비옥한 토질로 조성되어 있다.

수양천 상류(上流)에 수양저수지가 있어 수원은 비교적 양호한 편이며 자연마을로는 살만과 점땀 마을이 있다.

살만 마을은 수양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점땀 마을은 쇠를 불리어 솥과 농기구를 만들던 점이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동산리는 경상남도 고성군 상리면에 있는 리로서 수태산 줄기가 뻗어 있으며 향로봉이 솟아있는 산골 마을이다.

본동(本洞)과 모정골 및 어전골(於田谷, 느랏골)과 점터로 구성되어 있고 특산품으로는 어성초와 보리수가 있으며 마을 내에는 오효일부(五孝一婦)의 정여비(碑)와 열녀비(烈女碑)가 세워져 있다.

 

수대재 임도에 서 있는 이정표를 확인하고 좌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조금 걸어 내려가니 임도 옆 공터에 벤취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곳 우측 능선 방향으로 이정표와 함께 들머리가 보이는데 이제 학동재까지 1.4 Km에 향로봉까지 3.7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갑다.

그 이정표 옆 들머리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생각보다 넓고 뚜렷한 등로가 완만하게 이어지고 멋진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에 국가지점번호판이 서 있다.

그곳을 지나니 바위암릉이 짧게 나타나고 곧이어 커다란 참나무 3그루가 서 있는 봉우리에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놓은 415.2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그 415.2봉을 지나 진행을 이어가니 생각보다 커다란 바위암릉이 연속으로 이어지고 조심하며 그 바위들을 넘어 전진하니 등로 좌우측으로 제법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들 사이로 커다란 바위들이 박혀 있는 등로가 펼쳐진다.

잠시 더 그 바위암릉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등로는 다시 부드럽게 변하고 그렇게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커다란 참나무에 가지가 4개가 보이는 위에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놓은 354.8봉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겨 본다.

 

그 봉우리를 넘어 우측으로 꺽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이제 잠시 후 올라야 할 향로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바로 아래 학동치 넘어 이어지는 우측의 낮으막한 산줄기도 보이기 시작한다.

진행 방향 우측으로는 또 다른 봉우리 하나가 높게 솟아 있는데 그 무명봉 때문에 등로를 확인하는데 헷깔리고 지도를 보니 동산리쪽 520미터급 무명봉이다.

그렇게 진행 방향의 봉우리들과 산줄기를 살펴보며 내려가니 등로 옆으로 커다란 바위들이 나타나고 조심하며 우회하며 진행하니 등로는 점점 더 가파르게 내려가고 곧이어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학동치에 도착을 하는데 그 입구에는 이정표가 서 있고 몇걸음 진행하니 갈림사거리가 보이는데 그 아래 지하차도로는 학동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데 가끔 지나다니는 차량들의 속도가 빠르게 느껴진다.

학동치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니 보이는 것이 전혀 없는데 아마도 이곳 지명이 학동마을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추측을 해 보면서 학동마을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니 학동마을은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구전에 의하면 전주최씨 선조의 꿈에 하늘에서 학이 내려와 이 곳 9(학동마을)에 앉아 알를 품고 있는 현몽을 하고는 날이 밝아 그 곳을 찾아 가 보니 과연 산수수려하고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곡이 필연적으로 세장지지(世庄之地)로 판단이 들어서 천년대계할 명지라 믿고 이곳을 학동이라 지명을 지었다고 전하고 있다.

 

학동치 사거리를 건너 나타나는 시멘트 포장도로 우측의 능선으로 오르며 진행을 이어가야 하지만 오르려고 살펴보니 짧은 절개지와 그 위로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잡목들로 인해 오르기가 쉽지 않아 그냥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잠시 더 걸어 들어가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끝이나고 비포장임도로 바뀌는 지점에 문이 열려있는 차량 통제용 바리게이트가 설치되어 있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다 임도 좌측인 남쪽을 살펴보니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의 학동저수지와 학동로가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 뒤로 좌이산이 솟아 있으며 남해바다 뒷쪽으로는 사량도가 빤히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비포장임도를 따라 계속 걸어 오르니 임도 좌측으로는 여전히 남해바다와 그 위에 떠 있는 수많은 섬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사진에 담으며 오른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 오르니 임도 우측 위 능선으로 높은 송전탑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그 송전탑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으로 오를 수 있는 등로가 우측으로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능선 위로는 국가지점번호판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드디어 우측 주능선인 마루금으로 복귀할 수 있는 들머리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인도가 좌측으로 완만하게 휘어져 가는 지점 우측으로 들머리가 보이고 그곳 능선으로 오르니 국가지점번호판과 함께 임도 이정표가 서 있는데 향로봉까지 1.8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그 이정표를 만나 좌측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금새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지나 온 방향을 살펴보니 저 멀리 수채산 정상부가 빤히 올려다 보이고 좌측으로는 여전히 남해바다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물 한모금 마시고 송전탑을 출발하니 약간의 바위들이 박혀있는 관목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힘들게 오르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평이하게 걸어가니 간벌목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짧은 절개지를 올라 최근에 새로 생긴듯한 넓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는데 우측 위를 보니 이제부터 올라야 할 향로봉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임도를 가로 건너 짧은 절개지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시원한 조망이 펼쳐지고 바쁜 발걸음이지만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살펴보니 학동저수지 넘어 벽방산에서 우측 통영 ㅡㅌ자락에 솟아 있는 미륵산으로 이어지는 통영지맥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고 우측 바닷가에는 고성에서 통영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런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게 이어지고 있다.

지나 온 방향으로 수태산과 우측 북쪽으로는 520미터급의 무명봉이 솟아 있는 모습들을 사진에 담으며 간벌된 뚜렷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많은 띠지들이 버려져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무명봉을 지나니 커다란 바위들이 자주 눈에 띄기 시작하고 곧이어 전망바위에 도착을 하는데 진행 방향 좌측을 살펴보니 좌이산이 바로 발 아래 솟아 있고 그 뒤로 사량도가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길게 누워있다.

그 좌측으로는 금단소류지 지나 하일면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그 앞 바다에는 자란도와 육섬을 비롯해 많은 작은 섬들이 점점이 떠 있는 풍경이 가슴 시원하게 뚫리도록 황홀하기만 하다.

 

그렇게 그곳 전망바위에서 조금 더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제법 넓은 너럭바위들도 자주 나타나기 시작하며 등로 좌측으로는 계속 멋진 풍경이 그려지고 있다.

잠시 후 거대한 바위암릉이 앞을 가로막고 조심해 설치된 로프를 잡고 어렵게 오르니 사방팔방 시원하게 조망이 터지는 488.6 무명봉인 백암산 갈림길 공터에 도착을 해 잠시 주위 풍경을 둘러보며 심호흡 한번 해 본다.

이제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는데 그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이정표 뒤로 향로봉이 지척으로 다가 와 있다.

 

백암산 갈림길이란 이정표 때문에 백암산을 찾아 보니 국토지리원에는 남쪽 403미터봉을 백암산이라 했는데 다음지도에는 표기조차 없다.

진행 방향으로 향로봉을 확인하고 남서 방향을 살펴보니 하이면 사곡리 마을 뒤로 고성의 화력발전소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 남해 바다를 넘으면 창선도 지나 남해지맥이 약간의 박무속에 펼쳐져 있어 오래 전 3일간 머물며 남겼던 추억을 회상도 해 본다.

그때만 하더라도 지맥 산행은 생각도 못하고 그저 섬 산행이 좋고 풍경과 조망이 좋아 종주 개념으로 산행지도와 나침판만 들고 몇번의 알바를 경험하며 걸었었는데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이런 지맥 산행까지 몸속에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조금 더 그곳 백암산 갈림 삼거리에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공터에 자라고 있는 멋진 소나무도 살펴 본 후 북서 방향으로 보이는 향로봉 방향으로 진행하니 바위암릉이 나타나고 그곳에 설치된 얇은 로프를 타고 조심하며 내려가 다시 낙엽 깔린 평이한 등로로 이어진다.

커다란 활엽수 사이로 관목들과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쉼터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이정표가 세어져 있다.

이곳에서 좌측 운흥사 방향으로 꺽어 산행을 이어간다.

 

이정표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육각정이 보이고 곧이어 넓은 헬기장에 도착을 하는데 커다란 정상석과 사천303이란 삼각점 그리고 이정표가 서 있는 578.3미터의 향로봉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들과 추억을 남겨 본다.

향로봉(香爐峰, 578.3m, 사천303 삼각점)은 경상남도 고성군의 하이면 와룡리와 상리면 동산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578m이고 동서 방향의 능선이 서쪽 무이산(546m)과 수태산(575m), 동쪽의 봉암산(436m)과 사천시 와룡산으로 이어지며 능선 아래에는 산지를 개석하는 여러 계곡들이 분포하는데 하이저수지와 내원저수지 등으로 유입한다.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유정(惟政)이 승병을 거느리고 왜군과 싸웠다고 전해지는 운흥사(雲興寺)가 산 정상의 남쪽에 있으며 옛 지명은 와룡산이었는데 여지도서(고성)에는 와룡산(臥龍山)은 관아의 서쪽 60리에 있고 모려곡(茅廬谷)과 남양동(南陽洞)이 있으며 무이산에서 뻗어 나온다고 하였다.

호구총수에서 하이운면(下二運面)의 동리 중에서 와룡동(臥龍洞)이라는 지명을 찾을 수 있고 경상도읍지와 영남읍지에는 운흥사는 관아의 서쪽 100리에 있고 와룡산 남쪽에 있다 라고 수록하고 있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진주) 그리고 여지도서(고성)에 모두 와룡산을 수록하였고 대동지지(사천)에는 와룡산은 진주 그리고 고성의 경계에 있다고 기록한 것을 볼 때 조선시대에는 서쪽에 인접한 사천시 와룡산에서 비운치(飛雲峙) 그리고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산지를 하나의 산으로 인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지지자료에도 하이면(下二面) 와룡리(臥龍里)와 1906년(광무 10) 진주에서 편입된 남양면(南陽面) 분계동(分界洞)의 산을 모두 와룡산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조선지형도에는 두 산을 각각 향로봉과 와룡산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것은 1912년 남양면이 고성군에서 사천군으로 이관되면서 지명의 혼선을 막기 위해 새로 향로봉이라는 이름을 만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곳 향로봉 정상에서의 조망과 풍경 역시 일망무제로 펼쳐져 있어 잠시 배낭 내리고 많은 추억을 남겨 본다.

 

제일 먼저 동쪽에서 남동쪽 방향을 살펴보니 좌측 끝자락에 통영지맥의 벽방산부터 도덕산 지나 통영시 방향으로 이어지며 낮아지는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우측 사진 정중앙 제일 뒷쪽으로 통영의 진산인 미륵산이 우뚝 솟아 있다.

통영에서 고성 지나 이곳으로 펼쳐진 바닷가 풍경이 환상을 노래하고 바로 앞으로는 학림리의 임포항과 그 넘어 자란도와 점점이 떠 있는 많은 섬들이 가슴을 뛰게 만들고 있다.

 

이제 눈을 남쪽으로 돌리니 백암산과 무등산 지나 다북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름답게 남해 바다로 빠지고 그 좌측으로 오방리 마을 넘어 좌이산이 독립된 모습으로 아름답게 솟아 있다.

그 뒤 남해바다 건너로는 사량도가 좌우측으로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옆으로는 작은 우수도의 나즈막한 은박산도 내려다 보인다.

그 우측으로는 창선도의 모상개해수욕장과 장포항이 희미한 박무속에 보이기 시작한다.

 

남서 방향으로는 고성군 하이면의 신축된 화력발전소의 굴뚝 3개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얼비춘 햇살에 반짝이는 남해바다가 빛나고 있다.

그 남해바다 건너로는 신수도와 창선도가 보이고 그 뒤에서 좌측 아래로 돌아가며 오래 전 3일간 머물며 남해지맥이란 이름으로 걸었던 추억이 되살아 나며 모든 지맥 산행이 마무리되면 다시 한번 걷고 싶은 곳으로 예약을 해 놓은 곳이기도 하다.

또한 내일 각산 전망대에서 사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선정된 창선도ㅇㅘ 남해로 이어지는 다리를 내려다 보며 꿈길을 걷는 듯한 착각을 해 보는 시간도 가져 볼 예정이다.

 

이제 진행 방향인 서쪽을 살펴보니 봉암산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마루금이 끝나는 지점에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해야 할 비운치로 내려 앉고 내일 아침에 가파르게 올라야 할 민재봉과 그 좌측으로 와룡산의 주봉인 새섬봉 그리고 도암재 지나 좌측으로 우뚝 솟아 있는 천왕산이 너무나 아름답게 이어지고 있는 풍경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다만 그 천왕산 좌측으로 있을 각산은 앞으로 무명 산줄기에 막혀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한동안 더 그 향로봉 정상에서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한기를 느끼기에 천천히 배낭 메고 운흥사 방향으로 출발하니 커다란 나무들과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열려있고 편안하게 전진하니 바위가 나타난다.

그 바위에 올라 우측 뒤를 살펴보니 520미터대의 무명봉이 바로 옆으로 솟아 있고 그 무명봉 우측 뒤 저 멀리 수태산을 가운데 두고 좌측 뒤로는 낙남정맥이 우측 뒤로는 거류산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이 눈길을 잡는다.

다시 바위를 지나 진행 방향으로 나즈막하게 솟아 있는 둔덕봉이 올려다 보이고 우측 저 멀리 자세히 살펴보니 산그리메 중간에 회색빛 줄무늬가 길게 보이는데 줌으로 당겨 보니 진주시의 고층 빌딩들이 스카이 라인을 이루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멋진 풍경들을 살펴보며 조금 더 부드러운 등로를 따르니 국가지점번호판이 서 있는 도상 534.8봉에 도착을 하는데 아무 표식도 없어 사진 한장 소중하게 남기고 다시 출발한다.

 

아무 표식도 없고 국가지점번호판만 외롭게 서 있는 534.8봉을 넘으니 등로는 여전히 뚜렷하게 열려있는데 그 등로 좌우측에는 커다란 나무들과 관목들 그리고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풍경속에 가끔 고사목들도 보인다.

가끔 보이는 커다란 바위들과 제법 굵은 고사목들 그리고 잘려진 나뭇토막들을 살펴보며 걸어가니 등로 우측 옆으로 전망바위가 보이고 잠시 그곳으로 내려 가 배낭 내려 시원한 물 한모금 마시며 아름다운 풍경들을 담아 본다.

제일 먼저 진행 방향인 동쪽으로 마지막 봉암산이 지척으로 다가 와 있고 그 뒤 저 멀리 내일 걸어 넘어야 할 민재봉부터 좌측으로 와룡산의 주봉인 새섬봉 그리고 무명 산줄기 넘어 우뚝 솟아 있는 천왕산이 커다란 그리움만 남긴다.

 

이제 눈을 북쪽으로 돌리니 봉원리의 좁은 골짜기를 따라 형성된 마을 아래로 내원 저수지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 400터급의 무명 산줄기가 길게 이어지며 환상적인 풍경을 선물하고 있다.

그 뒤로는 사천시와 진주시 방향으로 드넓게 펼쳐진 나즈막한 산그리메가 산객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이제 눈을 동쪽으로 돌리니 바로 앞에 편백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오늘 산행동안 장시간 봤던 520미터급 무명봉이 솟아 있으며 그 바로 우측 뒤로는 수태산 정상이 솟아 있으며 그 정상 우측 바로 아래로는 약사전의 금빛 부처사의 머리부분이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그 뒤 저 멀리로는 통영지맥에서 벗어 나 있는 거류산이 보이고 그 거류산 우측 아래로는 벽방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벌써 옛 추억이 된 듯 느껴지는 시간이다.

무명봉과 수태산 좌측 뒤로는 대곡산 좌측 뒤로 이어지는 천왕산 방향의 낙남정맥 마루금이 아름답기만 하다.

 

조금 더 그 전망바위에서 쉬면서 남아 있는 거리와 현재 시간을 보니 여유있게 진행을 해도 되겠지만 갑자기 하늘이 검게 변하면서 바람이 강해지는데 살갗에 전해지는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져 새벽보다 더 추위를 느끼는 시간이다.

이제 다시 배낭을 메고 전망바위를 떠나 마루금으로 복귀해 우측으로 편안하게 전진하니 진분개 갈림길 이정표가 서 있고 진행 방향으로는 운흥사까지 1.6 Km 남아 있다는 표시가 반갑다.

진분계(晋分界)는 경상남도 사천시 사남면 계양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계양동과 같이 서쪽 뒤에 와룡산을 두고 동쪽으로 시내물이 흘러 마을 앞에는 숲이 울창하여 휴식공간으로 아주 좋으며 여름철에는 수영장을 개장하여 많은 시민들이 모여든다.

옛날에 진주와 고성 및 사천의 경계로 진주의 경계란 뜻의 지명이다.

 

이름도 평범하지 않은 진분개 갈림 이정표를 지나니 약간의 잡목들이 나타나고 어렵게 내려가니 커다란 웅덩이가 보이는 안부를 통과한다.

안부를 지나 둔덕으로 오르니 잡목들이 옷깃을 붙잡아 끌고 회초리로 때리듯 고통을 수반하는데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상당히 조심스럽게 진행하는 시간이다.

잠시 후 맨발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482.9봉에 도착을 하니 보도 블록이 깔려있는 공터봉으로 이정판에 누군가 이곳을 월부산이라 적어 놨는데 그 어디에서도 이름을 찾기 쉽지 않은 월부산이다.

월부산은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 봉현리에 있는 산으로 자료가 없어 아쉬움을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월부산이란 482.9봉을 지나 우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하니 잡목 등로가 열리고 제법 굵은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이리저리 잡목들을 피해 전진하니 강한 바람이 불며 나뭇가지들의 습격에 고통이 유발되고 선답자들이 걸어 놓은 띠지는 90도로 휘날리며 글씨도 읽기가 힘들 지경이다.

붉은 무명 띠지가 휘날리는 잡목과 커다란 소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무명봉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꺽여 진행되고 곧이어 완만하게 걸어 잡목들을 헤치며 전진하니 준희님이 걸어 놓은 이정판이 보이는 화성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월부산과 마찬가지로 하이면 봉현리에 있는 고갯마루로서 지명 유래는 찾을 수 없다.

 

화성재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잡목 등로를 타고 오르니 태풍보다도 더 강한 찬바람이 불며 아무리 조심을 해도 나뭇가지들이 뺨을 햘퀴고 지나 여간 고통스럽지 않다.

그렇게 잠시 더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 위에 준희님이 걸어 놓은 이정판이 붙어 있는 400.5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봉우리를 지나 우측으로 약간 휘어져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봉현리와 봉현저수지 및 계양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다시 잡목과 고사목들이 보이는 등로를 지나니 등로에는 제법 굵은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조심스럽게 바위암릉을 통과하니 무명묘지 한기가 보인다.

그 묘지를 지나니 관목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희미한 등로가 열리고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니 잡목들이 우거진 삼천포414란 삼각점이 박혀있는 434.6미터의 봉암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보지만 이곳 봉암산 역시 봉현리에 있다는 사실 이외에는 자료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봉암산에서 사진을 남기고 잡목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민재봉과 와룡산 새섬봉을 살펴 본 후 우측 진달래 나무가 빼곡히 자라고 있는 희미한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경상남도 사천시 사남면 사촌리 마을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홍무산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사남면 사촌리는 봉암산과 흥무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고 마을 앞으로 죽천천이 흐르며 사촌소류지와 가곡소류지 등 소류지가 많은 산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사촌(사월), 갈마산부락, 구릿골, 대산, 새땀, 송암 등이 있는데 사촌은 예전에 사기점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사월이라고도 하며 후에 사촌리가 되었고 갈마산부락은 갈마산 밑에 있는 마을이며 새땀은 대산 북쪽에 새로 된 마을이다.

 

등로 우측으로 사촌리 마을을 내려다 보고 사진에 담으며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지독한 잡목 등로에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어 막판에 고생을 하며 내려간다.

진행 방향으로는 내일 아침에 힘들게 올라야 할 와룡산 능선이 나뭇가지 사이로 드높게 올려다 보이고 그렇게 희미한 족적을 찾아 어렵게 내려가니 멋진 소나무 등로를 만나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를 찾아 천천히 진행하니 금녕기미 가족 납골묘가 크게 조성되어 있는 곳을 통과한다.

그곳을 지나자마자 1001번 삼성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고 도로 옆으로는 계양마을 표지석이 2개 그리고 계양 버스정류장이 보이는 비운치에 도착을 해 와룡지맥 첫 구간을 무탈하게 마무리 한다.

비운치는 경상남도 사천시의 사남면 계양리에 위치한 고갯길로서 와룡산 주봉에서 동쪽의 사남면 계양리 진분계와 고성군 하이면 봉원리 봉암산 사이에 있다. 

남해쪽 사천시 이홀동(耳笏洞) 홀곡(笏谷)에서 사남면 계양리 진분계마을을 지나 고갯마루에 이르면 사남면 계양리 계양마을과 고성군 하이면 봉원리이고 구삼천포쪽에는 상당히 높은 고갯길이지만 사남면 계양마을 쪽에서는 그렇지 않다. 

비운치(飛雲峙) 지명은 구름이 피어오르는 높은 고갯길에서 유래했다고 보이는데 비운치 지명이 기록된 문헌은 찾을 수 없고 다만 조선지형도(삼천포)에는 비운치가 표기되어 있으며 이 고갯길은 구삼천포와 남해지역 및 사천시 사남면 동부지역 그리고 고성군 상리면을 이어주던 한길(大道)에 위치하였다.

조선지형도(삼천포)에는 연로(聯路)를 나타내는 실선과 점선으로 표기하였으며 지금은 1016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비운치의 양쪽 길은 고성군과 사천시를 경계 짓는 길이고 군계(郡界)가 복잡한 곳이었는데 사남면 계양리의 진분계(晋分界)마을 지명도 옛날 고성과 사천이 진주와 경계를 나눈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비운치 계양 버스정류장에서 와룡지맥 제1구간 산행을 마무리하고 버스정류장으로 들어 가 배낭 정리하고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는데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하기에 무조건 도롯가로 나가 버스를 기다리며 가능하면 히치 하이킹을 해 보기로 한다.

하지만 싸락눈인지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잠시 방향 감각을 잃고 삼천포나 사천으로 가는 방향을 놓쳐 사천 반대 방향으로 오는 버스를 세워 기사분에게 문의하니 반대편에서 탑승을 하면 된다는데 잠시 후 그 버스가 뒤돌아 나오니 탑승하라는 알려준다.

그 사이 기다리며 지나가는 차량을 히치 하이킹 해 보는데 운 좋게도 얼마되지 않아 승용차가 멈추고 탑승해 사천 방향으로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거제도에서 발전소 관계 일을 하는 분으로 고성 하이면의 새로 건설된 화력발전소의 마지막 점검 차 방문한다는데 초행길이라 어려움을 겪는 듯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달려 어딘지도 모르고 번화가가 나타나 인사하고 하차하니 제법 굵은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바로 삼천포농협 앞으로 처음 내릴 때 생각은 이곳이 고성군 하이면이라 여겼는데 이제보니 제대로 삼천포 시내로 이동하게 되었다.

한동안 삼천포농협 앞 버스정류장에서 비를 피하며 여관촌을 확인하니 동금동쪽에 제법 보이고 걸어 그곳으로 가 가격이 저렴한 천궁모텔로 들어가 방을 예약하고 근처의 국밥집에서 소맥으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모텔로 복귀하니 비는 그쳤지만 더욱 차가운 바람이 강하게 불며 내일 바위암릉을 넘어야 할 와룡산 산행이 걱정되는 시간이다.

 

내일 하루도 멋진 조망과 풍경을 즐기며 무탈한 산행을 마무리하고 귀경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