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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장원지맥(호남.완)

장원지맥 제1구간 지맥 분기점인 서석대에서 도동고개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20.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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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광주광역시와 화순순의 장원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0년 12월 12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한겨울 한파가 몰아치고 강한 바람이 불어 추웠으며 흐렸다 맑았다를 반복하고 약간 박무가 있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6도에서 영상 08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무등산국립공원 증심사(첨단09번 버스 회차지, 광주시 운림동)-국립공원 무등산 표지석-새인봉 갈림삼거리-증심사-

               능선진입-오방수련원-당산나무 이정표(중머리재 1.7 Km, 천제단 1.0 Km, 증심교 1.0 Km)-이정표(중머리재 0.5 Km,

               증심사 1.5 Km)-중머리재(617미터) 이정표(장불재 1.5 Km,  새인봉 1.7 Km, 토끼등 1.7 Km와 증심사 2.0 Km)-중봉

               갈림삼거리 이정표(용추갈림길 0.9 Km와 장불재 1.5 Km, 중봉 1.0 Km)-이정표(장불재 1.1 Km, 중머리재 0.4 Km)-

               용추삼거리 이정표(장불재 0.6 Km, 중봉 0.7 Km, 중머리재 0.9 Km)-광주천 발원지-장불재(919미터) 이정표(

               입석대 0.4 Km와 서석대 0.9 Km, 중머리재 1.5 Km, 안양산 3.1 Km, 규봉암 1.8 Km)-무등산 주상절리대-입석대

               이정표(서석대 0.5 Km, 전망대 20 m, 장불재 0.4 Km)-입석대 전망대-입석대 표지석(1017미터)-승천암-승천암에서

               바라 본 백마능선-서석대(1100미터) 이정표(중봉 1.2 Km, 입석대 0.5 Km)-무등산 정상 안내판-전망대(무등산에서

               바라 본 광주)-상고대-서석대 전망대 이정표(원효분소 6.8 Km, 서석대 0.2 Km와 입석대 0.7 Km)-목교 비포장임도

               이정표(누에봉 1.6 Km, 서석대 0.5 Km와 입석대 1.0 Km, 중머리재 1.6 Km)-중봉복원지 비포장임도(군부대 이전지

               복원) 이정표(중봉 0.4 Km, 서석대 0.7 Km와 입석대 1.2 Km, 장불재 0.7 Km와 중머리재 1.4 Km)-억새 초원지대-

               중봉(910.3미터) 이정표(동화사터 1.5 Km, 서석대 1.1 Km, 중머리재 1.0 Km)-헬기장-KBC 광주방송 무등산 송신소-

               MBC 광주문화방송 무등산송신소 이정표(동화사터 1.1 Km, 중봉 0.4 Km)-천제당 암봉(911.1미터)-억새와 관목등로-

               동화사터상단 이정표(동화사터 0.6 Km, 중봉 0.9 Km와 서석대 2.0 Km, 중머리재 1.6 Km와 장불재 1.9 Km)-산죽등로-

               억새등로-818.8 무명봉-동화사터 갈림삼거리 이정표(늦재 1.5 Km, 중봉 1.5 Km와 장불재 2.5 Km, 동화사터 20 m와

               토끼등 1.0 Km 및 증심교 2.4 Km)-동화사터-산죽등로-745.2 삼각점봉(광주433 삼각점)-이정표(바람재 0.7 Km,

               늦재 1.1 Km, 중봉 1.9 Km와 서석대 3.0 Km)-전망대 비포장임도 이정표(동화사터 0.5 Km, 장불재 3.2 Km)-전망대(

               무등산에서 바라 본 광주)-이정표(바람재 0.5 Km, 전망대 30 m, 동화사터 0.7 Km, 원효분소 2.2 Km)-이정표(

               바람재 0.3 Km, 늦재 0.7 Km, 동화사터 0.9 Km, 백운암터 1.7 Km)-바람재(470미터) 비포장로 이정표(토끼등 0.8 Km,

               늦재 0.7 Km와 원효분소 2.4 Km)-바람재 쉼터와 증심사지구 탐방안내도-헬기장-낙타봉 갈림삼거리 헬기장-돌탑-

               무명안부-매봉(445.9미터)-이정표(장원봉 3.7 Km, 바람재 1.0 Km, 주차장 1.7 Km)-395.7 무명봉-이정표(

               장원봉 3.1 Km, 바람재 1.6 Km)-346.1봉-이정표(장원봉 2.6 Km, 바람재 2.1 Km, 주차장 1.5 Km)-이정표(

               장원봉 2.4 Km, 바람재 2.3 Km, 주차장 1.4 Km)-향로봉(365.9미터)-빛고을 산들길 이정표(장원봉 1.8 Km,

               바람재 2.9 Km)-향로봉(광주를 품은 산) 안내판 이정표(장원봉 1.7 Km, 팔각정 0.3 Km, 바람재 3.0 Km)-무등산

               모노레일-오솔길 카페-리프트카 타는곳-사거리 안부 이정표(장원봉 1.2 Km, 바람재 3.5 Km, 지산유원지 0.5 Km,

               충민사 2.0 Km)-운동기구-이정표(장원봉 0.7 Km, 바람재 4.0 Km)-326.1 무명묘지봉-335 묘지 무명봉-이정표(

               장원봉 0.2 Km, 바람재 4.5 Km, 장원정 옛길3구간 0.2 Km)-돌탑 이정표(무진고성 0.9 Km, 전망대 2.1 Km)-

               장원봉(387.5미터, 정상석, 삼각점, 장원봉 지명유래) 이정표(전망대 1.0 Km, 바람재 4.7 Km)-전망바위(점심)-

               돌탑-332.6 무명묘지봉-이정표(전망대 0.9 Km, 장원갈림길 0.5 Km, 장원봉 0.5 Km)-이정표(잣고개 0.4 Km,

               장원봉 0.5 Km와 충장사 5.0 Km)-운동기구-무진고성-잣고개(무등로 2 차선 포장도로) 무진고성 이정표(

               군왕봉 1.9 Km와 원효사 옛길1구간 6.9 Km, 산수동 1.5 Km)-광주의 옛이른 무진주 설명판과 무진고성지 설명판-

               무진고성 위-능선진입-준희님 응원판-304봉-사각쉼터-이정표(군왕봉 1.7 Km, 무진고성 0.5 Km)-운동기구와

               사각정자 이정표(군왕봉 1.2 Km, 무진고성 0.7 Km)-이정표(군왕봉 0.9 Km, 무진고성 1.0 Km)-306.1 무명봉

               이정표(군왕봉 600 m, 무진고성 1.4 Km, 두암주공3단지 1.1 Km)-사각쉼터와 무명묘지(무등산 조망) 이정표(

               군왕봉 0.6 Km, 무진고성 1.3 Km)-사각쉼터 이정표(군왕봉 0.2 Km, 무진고성 1.7 Km)-군왕봉(356.9미터봉,

               정상석, 인식불가 삼각점) 이정표(각화제 1.6 Km, 등촌마을 1.7 Km, 무진고성 2.2 Km)-무인산불감시카메라-

               무명안부 이정표(바탈봉 1.7 Km, 군왕봉 0.6 Km, 등촌마을 1.1 Km, 각화제 1.0 Km)-무돌길에서 바라 본 무등산

               정상 이정표(바탈봉 1.4 Km, 각화저수지 1.0 Km)-사각쉼터 이정표(각화제 1.2 Km, 군왕봉 0.8 Km)-261.6봉-

               벤취쉼터4 이정표(바탈봉 1.2 Km, 각화저수지 1.4 Km, 각화저수지 0.9 Km)-255.6 나무등걸 무명봉-21번 송전탑-

               무명안부 이정표(바탈봉 0.6 Km, 각화저수지 0.9 Km)-280.4 소나무 무명봉-벤취쉼터2 안부-벤취쉼터2 이정표(

               태봉 0.2 Km, 각화저수지 0.8 Km, 각화저수지 2.4 Km)-태봉(301.3봉, 정상석과 돌탑)-이정표(노고지리산 1.4 Km,

               바탈봉 0.2 Km, 각화사 0.9 Km)-291.7봉 전망대-이정표(노고지리산 0.9 Km, 바탈봉 0.7 Km)-272.6 벤취쉼터2

               무명봉-이정표(노고지리산 0.5 Km, 바탈봉 1.1 Km)-이정표(노고지리산 0.3 Km, 바탈봉 1.3 Km,

               분토마을 0.9 Km)-분토마을 설명판-노고지리산(257봉과 256.9 삼각점봉, 정상석, 인식불가 삼각점,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설명판)-안부-경렬사 설명판과 이정표(버스타는곳 0.9 Km, 노고지리산 0.4 Km,

               경렬사 0.6 Km)-대나무 등로-이정표(버스타는곳 0.4 Km, 노고지리산 0.9 Km)-묘지들-도동고개(빛고을 산들길,

               91미터 수준점, 동문대로 8차선 포장도로, 장등동 버스회차지)-산행종료

산행거리 : 22.13 Km (증심사 앞 버스 회차지에서 지맥 분기점인 서석대 지나 도동고개까지)

               지맥산행 : 15.98 Km (장원지맥 분기점인 무등산 서석대에서 도동고개까지)

               접속구간 : 06.15 Km (증심사 앞 버스 회차지에서 장원지맥 분기점인 무등산 서석대까지)

산행트랙 :

20201212 장원지맥 제1구간 증심사-도동고개.gpx
0.14MB

산행시간 : 08시간 41분 (06시 48분부터 15시 30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2시 00분 센트럴시티 호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로 출발 (33,700.-)

                                 05시 05분 유스퀘어광주버스통합터미널 도착

                                 05시 50분 어렵게 터미널 뒷편 식당에서 아침식사 및 점심 공기밥 구매 (9,000.-)

                                 06시 15분 유스퀘어광부버스터미널 앞 버스정류장에서 첨단09번 버스로 증심사 앞 버스 회차지까지 이동

                                 06시 48분 첨단 09번 버스 회차지에서 하차 후 산행 준비 후 곧바로 산행시작

                       올때 - 15시 30분 도동고개에서 잠시 고민하다 오늘 산행 종료

                                 15시 51분 도동고개 아래 장등동 버스회차지에서 송정19번 버스 탑승

                                 16시 17분 말바우시장 앞 하차 후 시장과 근처 구경하며 두암동 여관 모텔촌까지 도보 이동

                                 17시 05분 모텔2000에 투숙 후 근처 식당에서 곰탕으로 저멱 해결 후 취침 (숙박비 25,000.- + 식비 8,000.-)

장원지맥이란 ???

장원지맥은 신산경표 개정증보판 당시 30 Km 이상되는 146지맥에서 주행변경이나 재측정으로 지맥반열에 합류한 11개 지맥(백하, 무성, 사금, 칠보, 철성, 청명, 오토, 봉화, 분적, 쇠치, 용천북) 이후 최근에 주행변경이나 연장으로 다시 추가된 5개지맥(와룡, 주읍, 장원, 만덕, 선은)중 하나다.

장원지맥은 호남정맥 무등산 서석대에서 분기하여 (중봉), 장원봉, (노고지리산), 삼각산, (잘봉산), 운암산, 대마산을 지나 유촌동 유덕마을로 이어지고 유덕마을에서 직선거리로 3 Km를 더 가야 광주천이 영산강과 합류하는 곳에 이르게 되지만 마루금이 분명치 않아 신산경표에서도 이곳 유덕마을을 산줄기의 끝지점으로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 광주천을 따라 포장도로가 개설되어 광주천이 영산강에 합류하는 합수점까지 다녀와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어 이 산객은 상무대교 아래 합수점까지를 장원지맥이라 생각하고 걸어 볼 예정이다.

신산경표는 대마산 아래 도로까지를 29.8 Km로 보고 30 Km이상 지맥 명단에 포함하지 않았지만 도로에서 유덕마을 입구 고목(느티나무)까지 0.9 Km는 마루금을 확인할 수 있다.

유촌동 유덕마을의 380년생 느티나무 보호수에서 직선거리로 3 Km를 더 가면 광주천이 영산강에 합류하는 장원지맥의 끝이고 여기서 다시 직선거리로 5.7 Km를 가면 황룡강이 영산강에 합류하는 병풍지맥의 끝이 되고 여기서 다시 직선거리로 6.7 Km를 더 내려가면 지석천이 영산강에 합류하는 분적지맥의 끝이 된다.

 

 

광주시 북쪽을 휘돌아 가는 산책로 같은 등로를 따라 산행 내내 도심을 살펴보고 고운 추억을 남기며 여유롭게 즐겼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장원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화순군 및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와 네이버의 지식백과 그리고 다음의 백과사전과 산림청 및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날씨가 추워지며 다시 호남지방의 지맥 산줄기로 향하는데 그 이유는 산줄기 높이가 낮고 가시잡목들과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여름철에는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겨울철 그 기세가 꺽인 시점에 남아 있는 호남쪽 산줄기 산행을 가능하면 많이 진행하려고 준비를 해 본다.

특히 이곳 장원지맥과 분적지맥은 광주의 진산인 무등산에서 분기하여 광주를 가운데 두고 장원지맥은 동쪽에서 북쪽을 감싸고 서쪽으로 이어지고 분적지맥은 동쪽에서 남쪽을 감싸며 서쪽으로 이어져 광주를 감싸듯 이어지는 산줄기이기에 교통편이 좋고 식사나 숙박에도 편리함이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진행하기로 한다.

이곳 무등산은 개인적으로 한번 올라 멋진 눈꽃과 상고대를 만났고 한번은 옆지기와 함께 올랐으나 진눈개비로 인해 원성만 듣고 내려왔으며 마지막 한번은 호남정맥 산행을 위해 올랐다 환상의 조망을 즐겼던 기억이 생생한 곳이기에 다시 한번 더 그 추억을 더듬으며 네번째 만남이 이뤄지게 되었다.

이번 만남에서는 또 어떤 추억과 인연이 만들어질지 궁금하기도 하기에 기대가 큰 산행이기도 하다.

 

오랫만에 심야 우등버스를 타고 광주로 내려가니 새벽 5시를 막 넘어가고 오래 전 들렸던 식당을 찾아보니 코로나 영향인지 문을 닫아 식당을 찾아 30여분 어렵게 돌아다니다 종합버스터미널 뒷쪽으로 아파트 공사장 옆으로 어렵게 문을 연 식당을 찾아 따뜻한 청국장에 아침을 해결하고 보온 도시락에 점심까지 챙겨 나와 다시 버스 정류장에서 증심사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해 화차지에 도착을 하니 아직도 어둠속에 묻혀있는 시간이지만 장원지맥 분기점인 서석대까지는 넓은 도로와 같은 등로를 따르기 때문에 일찍 산행을 시작한다.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 오는 산상으로 오르니 코로나 영향인지 생각보다 등산객이 적어 아쉬움을 느끼고 옛추억을 더듬으며 오르다 보니 오래 전 옆지기와 오르며 오늘 진행하는 등로를 거꾸로 진행하는데 눈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진눈개비로 원성을 샀던 기억이 생생해 쓴 웃음을 지어 본다.

그렇게 중머리재와 장불재 지나 입석대로 오르니 눈이 없어 아쉬움을 남기고 승천암 지나 서석대로 오르니 멋진 상고대가 피어있고 그곳에서 살펴보는 시원한 조망과 풍경에 불어 오는 찬바람에 한기를 느껴가면서도 한동안 많은 추억과 사진들을 담아 보는 시간은 언제나처럼 장원지맥도 무탈하게 완주하고 귀가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어보는 시간이다.

서석대 정상석 넘어 보이는 인왕봉과 지왕봉 그리고 무등산 천왕봉은 또 언제나 오를 수 있을지 안타까운 마음만 남기고 내려간다.

 

오늘과 내일까지 진행해야 할 장원지맥 분기점인 서석대를 지나 내려가니 상고대 터널이 반겨주고 기대하지 못했던 환상의 풍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겨보지만 마음만 바빠 잠시 서석대 전망대에 들려 다시 많은 사진을 남겨 본다.

목교와 군부대이전지 복원지를 지나 부드럽게 이어지는 억새능선을 넘으니 금새 앙증맞은 정상석이 서 있는 중봉에 도착을 해 방금 전 들렸다 내려 온 서석대와 무등산 천왕봉을 배경으로 추억 한장 남기는 시간도 역시 강한 바람으로 인해 머리가 날리면서 못생긴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이곳 중봉은 두번째 방문인데 옆지기와 오를 땐 진눈개비로 인해 사진 한장 남기기 어려웠고 주위 풍경도 안개속에 숨어 보이지 않았는데 오늘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느낌이다.

 

어둠속에 무등산 서석대로 오른 이후 고속도로 같은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다 보니 해발고도가 벌써 400미터대로 떨어지고 큰 어려움 없이 주위 조망과 풍경을 즐기면서도 빠르게 진행이 되고 있다.

바람재까지는 옆지기와 함께 걸었던 등로이기에 옛 추억을 더듬으며 진행한 후 그 이후부터는 새로운 산줄기를 찾아 전진하니 생각보다 많은 등산객들이 올라오고 있어 조금은 의아한 생각이 들지만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등로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별 특징없는 매봉과 향로봉을 지나 생각지도 못한 모노레일과 리프트 카 탑승지를 지나니 바로 눈 앞으로 장원봉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드디어 이 산줄기의 이름을 부여하게 만든 장원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차가워 두 뺨이 상기되어 있고 눈가엔 촉촉한 물기가 보이지만 가슴이 탁 터지는 시원함을 만끽하며 걸었던 시간이 고운 추억으로 가슴속에 쌓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래전인 2009년 초에 옆지기와 무등산 눈꽃을 보기 위해 심야 우등버스를 타고 들린 이후 다시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 들리기까지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때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아쉬웠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미친듯이 산행을 이어가다 옆지기에게 미안해 함께 무등산 눈꽃 구경을 가기 위해 오래전부터 눈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전날 제법 많은 눈이 내려 환상의 눈꽃 구경을 기대하며 심야 우등버스를 타고 내려갔지만 생각지도 못한 진눈개비에 기온이 올라 눈이 녹으면서 시야는 제로인데 등로는 질척이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 옆지기의 원성만 듣고 올라 온 기억이 워낙 강렬하게 남아 있는 광주의 유스퀘어 버스종합터미널이다.

새벽 2시 심야버스로 광주 유스퀘어 버스종합터미널에서 하차하니 새벽 5시가 넘어가고 옛 기억을 살려 식당을 찾아 보지만 이미 문을 닫아 보이지 않고 터미널 근처의 다른 식당들을 찾아 보지만 코로나19의 영향인지 불이 켜진 식당을 찾기가 참으로 어렵기만 하다.

터미널 주위를 한바퀴 돌아 뒷편으로 돌아가니 아파트 공사장 옆으로 대왕24시감자탕이 보이고 그곳으로 들어 가 청국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보온 도시락에 점심까지 챙겨 나오니 이제서야 마음이 놓이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면서 방금 전 버스에서 내려 지나 온 광부버스종합터미널인 유스퀘어 입간판을 사진에 담아 본다.

 

광주버스종합터미널인 유스퀘어 앞 버스 정류장에 다시 뒤돌아 가니 아침 6시 5분이 지나고 첨단09번과 좌석 02번의 운행 상황을 확인하니 첨단 09번 버스가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을 해 기다렸다 버스에 탑승하는 시간이 아침 6시 15분을 넘기는데 생각보다 제법 사람들이 보인다.

오래 전 옆지기와 버스를 타고 증심사로 가던 기억을 되살리며 미소를 짓고 어둠속에 광주의 도심을 살펴보며 흔들리는 버스에 앉아 있다 보니 드디어 도심을 벗어나 시골스런 풍경들이 펼쳐지고 곧이어 아침 6시 45분 쯤 증심사 앞 버스 회차지에 도착을 해 하차하니 생각보다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 옷깃을 여미게 만들고 있다.

 

아직 바깥 찬공기에 적응하지 못했기에 두꺼운 패딩과 방풍의를 껴 입고 배낭 정리하여 출발하니 등산객 두명이 앞서 빠르게 올라가고 천천히 그들을 뒤따라 출발하는 시간이 아침 6시 48분을 넘기는데 아직도 주위 어둠이 사라지지 않아 사물을 분간하기도 힘든 시간이다.

증심사로 향하는 도로로 내려 서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국립공원 무등산이란 커다란 표지석이 반겨주고 사진에 담은 후 옛 추억을 더듬어 보지만 11년 전 기억에 저 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커다란 무등산 표지석을 지나 흔들리는 가로수 등불을 도움을 받으며 도로를 타고 천천히 걸어 오르니 운동하러 나온 주민들이 가끔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장불재까지 4.6 Km 거리라는 이정표를 만나 사진에 담으며 다시 전진하니 증심교 지나 등줄기와 이마에선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여 잠시 배낭 내려 방풍의와 패딩을 벗어 배낭속에 넣고 가벼운 차림으로 진행하니 한기가 몸속을 파고 들지만 몸이 데워지며 산행하기 좋은 조건이 되었다.

잠시 후 좌측의 증심사와 우측의 약사사가 갈리는 갈림삼거리에서 편안한 약사사 등로를 버리고 좌측 증심사 방향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좌측 증심사 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증심사 일주문이 나타나고 그 일주문을 통과하니 도로 좌측으로 증심사가 펼쳐져 있는데 이른 새벽이고 어둠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시간이기에 증심사는 멀리에서 살펴보고 들리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고 통과한다.

증심사는 광주 동구 무등산 서쪽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서 1986년 11월 1일 광주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며 철감선사 도윤이 개창하고 1094년(고려 선종 11)에 혜조국사가 중수했다.
1443년(조선 세종 25)에 김방이 다시 중수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09년(광해군 1)에 석경과 수장 및 도광의 3대 선사가 4창했다고 하며 그 후 신도들의 정성으로 몇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으나 6 ·25전쟁 때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다가 1970년에야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이 복구되었다.
경내에는 오백전과 3층석탑, 5층석탑, 7층석탑, 오백나한 및 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131)과 석조보살입상 등이 보존되어 있으며 2008년에 템플스테이 사찰로 지정되어 운영되고 있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새벽 시간에 청량한 목탁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차분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의 무사 산행을 기원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도로 좌측 위로 보이는 증심사는 사진으로만 남기고 우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를 타고 본격적인 무등산 산행을 시작하니 앞 서 저 멀리 등산객 두명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잠시 후 증심사앞 이정표에 중머리재까지 2.6 Km 거리임을 알리고 곧이어 대나무 등로가 나타나더니 좌측으로 장로회 신림교회의 오방수련원 건물이 나타나고 잠시 가파른 계단을 타고 걸어 오르니 커다란 당산나무가 나타나는데 이곳에는 벌써 몇명의 아주머니들이 올라 와 소원을 빌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설명판을 읽어보니 예전에는 당산나무 주변으로 보리밥집들이 있어 요기를 해결했던 곳이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이곳을 지나며 잠시 쉬면서 주민들과 담소를 나눈 곳으로 무등산노무현길이라 명명되어 있다는 설명들도 보인다.

 

당산나무를 지나 평이하게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어느 순간 바위 너덜길로 바뀌고 등로 양쪽으로 안전목책과 로프들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초반부터 발바닥에 불이 나게 바위 위를 걷게 되었다.

한동안 낙엽 진 멋진 활엽수와 주목나무 그리고 편백나무들을 살펴보며 계속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이틀동안 진행해야 할 옷가지와 먹거리를 넣은 배낭의 무게가 자꾸만 두 어깨를 처지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천천히 걸어 오르니 드디어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대는 중앙에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고 주위에 안내판들이 보이는 중머리재에 도착을 해 잠시 사진 한장 남기는 사이 흐르던 땀방울이 마르며 한기를 느낀다.

중머리재(617m, 장불재, 중봉, 새인봉, 분적지맥의 만연산 조망)는 광주광역시의 동구 학운동 관할 운림동과 지원동 관할인 용연동 사이의 고개이며 무등산봉에서 서석대를 거쳐 중봉으로 내려선 능선이 삼광대 아래로 이어지면서 잿등을 이룬다.
남서쪽으로는 서인봉으로 향하는 등산길이고 유서석록에 중령(中嶺)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고갯마루가 넓은 초원지로 마치 스님의 머리 닮아 중머리(중두봉)이라 한다.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더 남기고 중머리재 표지석 뒤 진행 방향으로 중봉과 장불재 방향을 배경으로 마지막 사진 한장 담으며 강한 바람이 불어대는 중머리재를 출발한다.

 

중머리재를 지나 억새밭 사이로 뚜렷하게 나 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좌측으로 중봉가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오늘 이 산객은 우측의 용추삼거리와 장불재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기에 중봉은 서석대를 지나 만나기로 한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야자매트가 깔려있어 푹신한 등로를 타고 부드럽게 진행되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중머리재 뒤로 서인봉과 그 서인봉 우측 뒤 저 멀리 새인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내려다 보이고 서인봉 좌측 아래 숨어 있을 용추폭포는 상상으로만 그려 본다.

다시 샘터 갈림길을 지나 장불재 방향으로 서서히 고도를 높이며 바위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으로 용추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고 용추폭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다.

용추폭포는 개방된지 오래되지 않은 장불재에서 펼쳐진 해발 900미터의 널따란 고원지대로부터 흘러내린 물이 모여서 이루는 곳의 폭포로서 발원지는 장불재의 서쪽 200미터 지점 아래에서 시원하게 솟는 샘물이다.
계곡의 길이는 약 4 Km 정도이고 계곡 양쪽으로는 기암절벽 사이에 울창한 숲이 있고 다래나무 넝쿨이 계곡을 덮어 낮에도 하늘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울창한 천연림이 운치를 더해주는 곳이다.

용추삼거리를 지나니 등로는 이제 완전히 커다란 바위 등로로 이어지고 그 등로 양쪽으로는 파란 잎이 한들거리는 산죽밭들이 펼쳐져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작은 설명판이 보여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광주천 발원지라는 설명판이 서 있어 읽어보고 자료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보인다.

광주천은 무등산 샘골에서 발원되어 도시의 심장을 흐르듯 광주지역의 복개된 지류천들의 물을 받아 영산강 합수지점까지 흐르는 총길이 24.2 Km의 하천으로 무등산 장불재 800m 지점인 샘골에서 용트림을 시작한 물줄기는 용추계곡을 따라 제2수원지로 모아지고 증심사천을 만나 광주천으로 이어지는데 숱한 역사를 함께 해왔던 만큼 크고 작은 다리들도 30여개에 이른다.
광주천이라는 명칭은 일제강점기부터 부르기 시작했는데 1916년 일제가 전국의 하천 명칭을 정리하면서부터다. 지금의 광주천이란 이름이 탄생하기 전까지는 하천이 지나가는 인근 동네와 연관시켜 건천, 한강, 용추천, 금계, 조탄 등 각기 다르게 불렸다고 한다.
옛 사람들은 명칭을 하나로 모아 부르는 데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지만 없어서는 안 될 하천이었던 점은 분명하며 동네사람마다 다르게 불렸지만 오래토록 시민들의 생활 속에 젓줄 같은 역할을 해왔다.

이제 오늘부터 내일까지 장원지맥이란 이름이 붙어 있는 산줄기를 따라 이 광주천을 좌측에 두고 걸어 영산강과 만나는 합수점까지 걸어 다시 만나야 할 물줄기이기에 가슴으로 담으며 무탈한 산행을 다시 한번 더 기원해 본다.

 

광주천 발원지 설명판을 지나면서 우측의 물줄기를 찾아보지만 겨울철이라 그런지 발원지 물줄기가 보이지 않아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돌 계단을 타고 두 어깨에 전해지는 무게를 느끼며 걸어 오르니 드디어 장불재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의 쉼터는 코로나19로 인해 모두 폐쇄되어 있고 KBS 중계탑들만 드높이 하늘ㄴ을 향해 솟아 있는 모습이 을씨년스럽게 다가온다.

장불재는 광주광역시의 동구 지원동 관할 용연동과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 사이의 고개로서 무등산 정상인 천왕봉에서 남서쪽으로 서석대와 입석대를 거쳐 내려선 고개마루가 있고 억새 군락이 장관이며 고개 서편 샘골에서 광주천이 발원한다.
대동지지에 장불치(獐佛峙)로 기록되어 있고 긴골 또는 장골을 한자로 장불치(長佛峙)로 표기했으며 말 잔등 같은 능선이라 백마능선이라고도 칭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장불동에서 철이 생산되었고 유서석록에 장불천은 그 상류에서 쇠를 씻기 때문에 언제나 탁한 물이 흐르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장불재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입석대와 서석대 방향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남기고 바람을 피해 재빨리 억새가 하늘거리는 야자매트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출발하며 잠시 남동쪽으로 보이는 몇동의 건물들오 이뤄진 쉼터들과 그 뒤로 솟아 있는 중계탑을 살펴보니 모두 폐쇄된 쉼터들이 찬바람에 더욱 가슴을 차갑게 만들고 오래 전 옆지기와 잠시 휴식 취하며 간식을 먹던 기억을 되살려 보지만 복잡했던 옛 기억은 이제 가슴 한편으로 숨겨 놓은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언제나 예전처럼 많은 등산객들로 붐비는 쉼터로 돌아 올 수 있을지 많은 걱정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더 야자매트를 타고 부드럽게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아름다운 백마능선 좌측 끝자락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낙타봉이 눈길을 잡고 그 좌측 뒤를 살펴보니 안양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마루금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며 오래 전 추억을 들려주고 있다.

다시 눈 앞으로 올려다 보이는 입석대와 서석대 방향의 갈색 억새 능선을 살펴보며 조금 더 부드럽게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무등산 주상절리대라는 설명판이 서 있어 읽어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들이 보인다.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용암이 식을 때 수축되어 생기는 절리 중에 단면의 형태가 오각형이나 육각형의 기둥모양인 것을 말하는데 무등산 주상절리는 약 7천 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서석대, 입석대, 규봉이 대표적이며 입석대와 규봉은 풍화가 많이 진행되어 기둥모양이지만 서석대는 풍화가 덜 진행되어 병풍모양을 하고 있다.
정상을 중심으로 산비탈에 있는 너덜겅은 이러한 돌기둥이 무너져 쌓인 것이고 서있는 바위나 너덜겅들은 암석의 생성과 풍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희귀한 자연유적이므로 서석대와 입석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바위 등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뒤따르던 등산객이 빠르게 앞지르며 지나간다.

 

잠시 후 드디어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는 거대한 돌기둥들이 암괴를 이루며 눈 앞에 서 있는 입석대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 옆으로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그 전망대에 올라 눈 앞에서 입석대와 마주한다.

입석대 석축으로 된 단을 오르면 5~6각형 또는 7~8각형으로 된 돌기둥이 반달같이 둘러 서 있는데 이를 입석대라 부르는데 이런 절경은 다른 산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어 온 입석대는 석수장이가 먹줄을 퉁겨 세운 듯 하늘에 닿을세라 조심스럽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 우람하기만 하며 옛날에는 이곳에 입석암이 있었고 주변에는 불사의사와 염불암 등의 암자들이 있었다.

신들만이 빚어 놓을 수 있는 오묘한 돌기둥에 한동안 많은 사진으로 담으며 옛 추억을 소환해 보기도 하는데 돌 기둥마다 하얗게 피어 난 눈꽃이나 상고대가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전망대에서 가까이 입석대를 살펴보고 뒤돌아 내려 와 등로를 타고 잠시 겅어가니 등로 좌측 입석대 앞에 작고 앙증맞은 입석대 표지석이 서 있는데 이 표지석은 예전이나 다름없이 같은 모습이다.

입석대(973m)는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산에 있는 자연 형성된 5에서 8면체 각석형태의 선돌로서 무등산의 정상 1017미터 지점에 있는 돌기둥의 무리이다.
무등산의 대표적인 절경의 하나로 장불재(長佛峙)에서 동쪽으로 약 200미터 올라가면 정상의 서쪽에 있다.
높이 10에서 15미터의 돌기둥이 반달모양으로 둘러서 있는 석경은 다른 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아름다운 경관이다.
돌기둥은 5-8면체의 각석이고 하나의 암주(巖柱)나 3-4단의 석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쪽 바위에 立石(입석)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축단을 통해서 이곳이 가뭄이나 질병의 전염이 심할 때 지방관리들이 하늘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 제를 지내던 제천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까지만 하여도 이곳에 입석암을 비롯하여 주변에 많은 암자와 절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추억 한장 더 남기고 입석대를 올려 다 본 후 넓은 오르막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입석대를 지나 걸어 오르니 입석대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굵은 바위 기둥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 회색빛 억새가 하늘거리는 등로를 타고 여유롭게 걸어 오른다.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지나니 승천암 안내판이 서 있고 그 옆으로 이무기가 하늘을 향해 올라가려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바위가 인상적으로 나타난다.

승천암은 천연기념물 제465호 중 이무기가 승천하는 모습을 상징하는 바위로서 옛날 이 부근의 암자에 무엇엔 가 쫓기던 산양을 스님이 숨겨준 일이 있었는데 어느 날 스님의 꿈에 이무기가 나타나 산양을 잡아 먹고 승천해야 하는데 네가 훼방을 놓았다며 만약 종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너라도 잡아 먹었야겠다 고 했다.
그런데 얼마 후 난데없이 우렁찬 종소리가 들였고 이무기는 곧장 스님을 풀어 주고 승천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얽힌 바위다.

 

승천암을 살펴보고 불현듯 한겨울에 뱀이 살아 움직인다는 착각에 빠졌다 깨어나 오르니 승천암에서 바라 본 백마능선에 대한 설명판이 서 있어 잠시 읽어 본다.

백마능선은 장불재에서 낙타봉과 안양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해발 8백에서 9백미터의 고도에 길이는 약 2.5 Km에 이르는 대규모 능선으로 말의 잔등을 닮은 지형 위 억새의 모습이 백마의 갈기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위성 사진으로 보면 백마능선 남서쪽 사면은 크고 작은 너덜이 해발 5백에서 9백미터 사이에 많이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반면 북동쪽 사면에는 너덜이 거의 관찰되지 않는데 이러한 현상은 겨울철에 바위틈 사이의 물이 반복적으로 얼고 녹는 작용에 의한 물리적 풍화가 햇볕이 쪼이는 남서쪽 사면에 집중되어 너덜을 구성하는 암괴가 잘 생성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오래 전 호남정맥 산행이란 이름으로 걸었던 장불재에서 낙타봉 지나 안양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다시 추억을 들려주며 다시 한번 더 조우를 희망하지만 언제 다시 만나 옛 이야기를 나눠볼 수 이을지 현재로서는 기약도 할 수 없으니 아ㅣ쉬움만 남긴다.

 

백마능선과 호남정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진행 방향으로 서석대와 무등산 천왕봉 방향을 올려다 보니 아침 햇살에 반짝임이 느껴지고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살펴보니 무등산 정상부인 지왕봉과 천왕봉 근처로는 하얀 상고대가 피어 있어 올해들어 처음 만나는 상고대를 올려다 본다.

그 무등산 정상부로 이어지는 중간 지역에는 빛바랜 회색빛 억새들이 부는 바람에 한들거리며 가을철 절정기에 많은 등산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음을 알려주고 있는 듯 하다.

잠시 후 커다란 바위가 박혀 있는 급경사 오르막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안전목책과 로프들이 설치되어 있는 곳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좌측으로 안양산과 낙타봉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마루금과 중앙부의 장불재 그리고 우측으로 중머리재 지나 서인봉과 새인봉이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 증심사에서 올라 온 등로 우측으로 광주의 모습이 살짝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이제 몇번인가 오르면서 많은 추억과 사진을 남겼던 곳들이기에 알고 있는 이름들을 불러주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원지맥 끝자락쪽을 살펴보니 먼거리로는 박무로 인해 분간조차 하기 어려워 내일 걸어야 할 나즈막한 장원지맥 산줄기는 분간조차 하기 어려워 보인다.

다시 이어지는 뚜렷하고 넓은 등로를 따르니 다시 나무데크가 깔려있는 안전목책 등로를 만나 편안하게 걸어가고 곧이어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는 서석대에 도착을 해 고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서석대(1110m)는 무등산의 최고봉인 천왕봉(1,187m)의 남서쪽에 위치한 서석대(1,050m)는 임석대(950m)와 함께 천연기념물 제465호인 무등산주상절리대에 속하며, 높이 약 30m, 너비 1~2m의 다각형 돌기둥 200여 개가 마치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무등산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주상절리대를 구성하는 암석은 무등산응회암이라고 명명된 화산암으로서 중생대 백악기 후기(약 8,700~8,500만년 전)에 분출된 화성쇄설물로 형성된 용결응회암이다. 

이 응회암이 천천히 식는 동안 부피가 줄어들며 수축될 때 인장력이 작용하여 주상절리가 만들어졌으며 이곳에서는 무등산이 광주를 품 듯 시가지의 전경과 멀리 월출산을 조망할 수 있고 해질녘 서석대에 비치는 노을이 장관을 이룬다.

표지석에도 하얀 눈꽃이나 상고대가 달려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렇게 오래 시간 만나지 못하다 다시 만난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다시 불어 오는 바람을 견디며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호남정맥 상 중요한 봉우리이자 장원지맥의 분기점인 서석대 표지석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북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작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 앞으로는 출입을 금지하는 목책이 설치되어 있고 그 앞에 무등산정상이라는 설명판이 서 있는데 성애가 내려 앉아 글씨는 읽어 보지도 못할 정도이다.

그곳에서 오르지 못하는 인왕봉과 지장봉 그리고 무등산 천왕봉 방향을 배경으로 추억 한장 남기며 하루 빨리 저 정상부도 마음 편히 오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무등산은 무돌뫼(무진악), 무당산, 무덤산, 무정산, 서석산 등의 별칭을 갖고 있다. 무진악이란 무돌의 이두음으로 신라 때부터 쓰인 명칭이다. 무돌의 뜻은 무지개를 뿜는 돌이란 뜻이다. 무등산이란 명칭은 서석산과 함께 고려 때부터 불려진 이름으로, 비할 데 없이 높은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란 뜻이다. 무등산에는 수많은 볼거리가 많이 있는데, 어떤 것은 멀리서도 바라볼 수 있도록 우뚝 솟아있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가까이 가서야 볼 수 있는 것도 있다. 무등산은 오르기에 가파르지 않다. 그래서 휴일이면 무등산의 경승을 즐기려는 인파가 끊이지 않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간편한 옷차림으로 산을 찾는다. 볼만한 풍경이 있는 구경거리는 서석대, 입석대, 세인봉, 규봉, 원효계곡, 용추계곡, 지공너덜, 덕산너덜 등이 있다. 전망을 즐기려면 중머리재, 장불재, 동화사터, 장원봉 등이 있다. 이 중 화순쪽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입석대, 규봉, 지공너덜, 장불재, 백마능선, 규봉암에서의 동복호 조망 등이 있다.

 

무등산 정상부를 사진으로만 만나보고 아쉬움을 남기고 뒤돌아 서석대 표지석으로 걸어가니 이제 등로 우측인 북서 방향으로 하얀 상고대가 피어있어 환상을 노래하게 만든다.

올 들어 처음 만나는 환상의 하얀 상고대에 많은 사진들을 남기며 그 아래 펼쳐진 희미한 광주시내를 살펴보니 방금 전 구름을 뚫고 올라 온 강렬한 태양 아래 회색빛 광주시내는 뿌옇게 내려다 보여 분간조차 하기 어렵지만 눈 앞에 펼쳐진 하얀 상고대가 그 아쉬움을 달래주고 있다.

 

이제 서석대 표지석을 지나 우측으로 보이는 나무데크 전망대로 가니 무등산에서 바라 본 광주라는 설명판이 서 있고 그 아래 북서 방향으로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장원지맥 상 중봉과 방송국 송신시설 우측으로 산세를 낮추며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지고 그 좌측 뒤로는 드넓은 광주시내가 한눈에 보이는데 아침이라 그런지 추위에도 약간의 박무 현상으로 인해 깨끗한 조망이 아니라 아쉽기만 하다.

하는 마음으로 광주시내 지나 내일 걸어야 할 장원지맥 산줄기를 찾아 보지만 오늘 이 시간에는 찾기 어려워 보여 광주에 대한 자료만 살짝 찾아 본다.

이곳 광주광역시를 일명 빛고을이라 부르는데 그 이유를 살펴보니 빛고을이란 수식어도 서석대에서 유래했는데 주상절리 서석대가 햇빛을 받으면 반짝인다고 하며 반짝이는 상서로운 돌이 있는 동네란 뜻으로 빛고을이란 명칭이 붙은 것이다.

너무 아름다워 강하게 불어대는 바람에 한기를 느끼면서도 조금 더 머물며 사방팔방 둘러보고 아름답게 피어 난 상고대를 살펴본 후 천천히 계단을 타고 본격적인 장원지맥이란 이름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진행 방향으로 장원지맥과 광주시내를 살펴보고 그 나무데크로 이뤄진 전망대를 나와 무등산 천왕봉 정상부를 다시 한번 더 살펴보고 북서 방향으로 내려가니 커다란 바위 너덜겅 좌우측으로 예쁘고 하얀 상고대 터널이 만들어져 있어 마치 왕자가 되어 걸어가는 기분으로 그 황홀한 상고대를 관찰하며 여유롭게 걸어 내려간다.

그렇게 정신이 없을 정도로 환상의 풍경에 취해 천천히 진행하니 추락주의라는 경고판이 서 있는 작은 돌기둥들이 모여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좌측 옆으로 보이는 전망대로 들어가니 드디어 아름답고 거대한 서석대와 그 우측으로 길게 병풍처럼 둘러친 바위벽이 아름다운 서석대 앞에 서게 되었다.

장불재(해발 900m)의 고산 초원을 헤치고 동북쪽으로 800m 쯤 올라가면 거대한 병풍을 둘러쳐 놓은 듯한 장엄한 선돌바위인 돌무더기가 펼쳐진다.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있어서 저녁노을이 질 때 석양에 반사되어 수정처럼 빛나기 때문에 서석대를 수정병풍이라 불렀다고 전하고 무등산을 서석산 이라 부른 것은 이 서석대의 돌 경치에서 연유한 것이며 서석대의 병풍바위는 맑은 날 광주 시가지에서도 그 수려함을 바라볼 수 있다.

다시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그 나무데크로 이뤄진 전망대를 나와 이제 본격적인 장원지맥 산행을 해 본다.

 

오늘 이곳 서석대에 오르기 전 총 3번의 산행을 했었는데 모두 다른 환경과 조간에서 올라 와 다른 추 억과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다만 가장 심혈을 기울여 계획한 옆지기와의 산행이 진눈개비로 엉망진창이 되어 지금도 무등산하면 고개를 절로 흔들고 있는 옆지기를 위해 좋은 날자를 택해 다시 한번 올라 환상의 눈꽃과 상고대 산행이 될 수 있기를 바래 보며 그 서석대 전망대를 나와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도 여전히 멋진 돌기둥이 반겨 준다.

이제 고도를 낮추며 돌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전망바위 지나 상고대가 사라지고 곧이어 탐방지원센터이자 안전쉼터가 있는 목교에 도착을 해 그 앞을 지나는 비포장임도에서 잠시 뒤돌아 보며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목교 안전쉼터 앞 비포장임도를 건너 이정표가 서 있는 곳으로 내려가니 잡목 사이로 길게 이어지는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그곳을 지나니 등로 양쪽으로 빛바랜 회색빛 억새가 하늘거리며 반겨주는 이국적인 풍경에 또 다른 세상과 접한다.

그렇게 잠시 더 뚜렷한 등로를 타고 억새 능선을 내려가니 이정표에는 중봉복원지라는 글씨가 보이고 한편에는 군부대 이전지 복원이라는 설명판이 서 있는 비포장임도와 만나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길게 이어지는 안전목책과 로프 등로를 따라 저 멀리 중봉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진행해야 할 방송국 송신기가 드높게 솟아 있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이제부터 억새가 하늘거리는 이국적인 등로를 타고 주위 풍경을 관찰하며 여유롭게 걸어가니 강하게 불어오던 바람도 억새 군락지에 막혔는지 춥지 않아 콧노래를 불러 본다.

코로나19로 인해 말 한마디 없이 가끔 지나가는 등산객을 피해 서로 멀리 교행하고 나즈막한 안부 지나 중봉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올라 젊은 친구들이 몇명 모여 시끄럽게 소리치며 추억을 남기는 언덕으로 오르며 뒤돌아 보니 드넓게 펼쳐진 억새 능선을 타고 두번의 비포장임도 지나 서석대가 빤히 올려다 보이고 그 좌측 뒤로 무등산 천왕봉 방향의 정상부와 그 정상부 주위에 피어 난 하얀 상고대가 아름다운 추억으로 뒤돌아 온다.

 

많은 추억과 사진을 남기고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강한 바람이 두 뺨을 붉게 물들이는 중봉 정상에 도착을 해 앙증맞게 서 있는 정상석 앞에서 무등산 정상부인 천왕봉과 서석대 방향을 배경으로 추억 한장 더 남겨 본다.

바람이 강해 머리를 정리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싶어도 금새 헝클어지니 있는 그대로 사진 한장 남기기도 쉽지 않고 특히나 코로나19로 인해 다른 등산객에서 사진 한장 부탁하기도 난감하니 여러가지로 아쉬움을 남긴다.

 

강하게 불어 오는 한겨울 찬바람에 어렵게 중봉 정상석 앞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직진의 중머리재 가는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동화사터 방향을 살펴보니 잠시 후 만나야 할 무명 헬기장이 바로 발 밑으로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KBS와 MBC 송신탑들이 드높게 솟아 있으며 그 뒤로 천제당이 살짝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그 뒤로 아직도 희미한 광주시내가 펼쳐져 있는데 오늘 중 깨끗한 광주시내의 풍경을 살펴 볼 기회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중봉을 출발하기에 앞서 남남동쪽과 남쪽을 살펴보니 조만간 다시 내려 와 걸어야 할 장불재 통신탑 우측 뒤 저 멀리 분적지맥의 만연산과 지장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이 산객을 부르고 있어 조금만 더 기다리라 약속하고 북서 방향의 송신탑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걸어 내려가다 등로 좌측을 보니 갈색의 억새 들판 위에 몇그루의 파란 주목나무들이 눈길을 잡고 그 아래 조금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광주광역시가 드넓게 펼쳐져 있어 잠시 살펴본다.

광주광역시는 대한민국의 남서부에 있는 광역시이고 남동쪽으로 전라남도 화순군, 북동쪽으로 담양군, 서쪽으로 함평군, 서남쪽으로 나주시, 북쪽으로 장성군과 접하며 시청 소재지는 서구 치평동이고 행정 구역은 5구 95동이다.
광주 학생 항일 운동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발생한 지역이고 전남대학교, 조선대학교, 광주과학기술원 등 고등 교육기관이 있으며 2년마다 광주 비엔날레가 열리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사업이 국책으로 진행됐다.
무진(武珍)은 한자어가 아니라 한자의 음과 새김을 빌려 한국어를 적은 것으로 진(珍)의 옛 한자 새김이 들, 돌인 것에서 무진(武珍)의 원래 발음은 무들, 물들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하며 이는 물+들(물이 많은 들판)일 것으로 보고 있다.
차자표기이기 때문에 무진(武珍)외에 무진(茂珍)이란 표기도 썼으며 광주의 명산인 무등산의 이름인 무등(無等)도 같은 말의 차자표기로 추정되는데 광주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주 영산포 일대를 이두로 수입이(水入伊: 물들이)라한 것으로 보아 옛날에 이 지역일대에 늪지대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삼한시대 마한에 속했고 백제 시대에는 노지(奴只)라는 이름이 보이며 신라 신문왕 6년에 무진주라고 하였다가 신라의 백제 병합이후 경덕왕이 무진주에서 무(武)자를 취하여 무주로 개칭하였다.
현재 쓰이고 있는 광주(光州)란 이름은 고려 태조 시기에 등장하고 이후 행정구역의 변동에 따라 목(牧), 부(府), 현(縣), 군(郡) 등의 행정단위위계의 변동은 있었으나 명칭은 이어져 오게 된다.

맛과 멋과 예술의 고향인 광주는 일 때문에 몇번 내려 온 기억이 있지만 밤을 지새우며 보낸 시간이 많지 않아 추억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기에 오늘 저멱은 조금 더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기를 기대도 해 본다.

 

잠시 더 광주광역시를 내려다 보며 문득 드는 생각이 전세계적으로도 1000미터 이상되는 산을 끼고 100만명이 넘는 거대 도시가 형성된 예가 많지 않아 찾아 보지만 쉽지 않기에 이곳 광주가 얼마나 복 받은 도시인지 다시 한번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남쪽 방향과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중머리재 가는 방향의 능선과 등로 역시 갈색으로 변한 등로가 환상이고 그 뒤 저 멀리 나즈막하게 솟아 있는 서인봉과 새한봉 그리고 호남정맥과 분적지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름답기만 하다.

잠시 후 송시탑 방향에서 역으로 걸어 오는 등산객을 지나 금새 헬기장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으로 솟아 있는 방송국 송신탑을 살펴보며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은 다시 강한 바람이 불어오며 한기를 느끼게 만들고 있다.

 

헬기장을 지나 여전히 등로 양쪽으로 강한 바람에 울음소리가 나는 억새밭을 통과하니 그동안 눈에 들어오지 않던 이정목도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KBC 광주방송이라는 앙증맞은 표지석이 보이는 송신탑 앞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앞 건물 뒤로 돌아 진행하니 KBC 광주방송 무등산송신소 지나 MBC 광주문화방송 무등산송신소도 통과하는데 그곳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서 살펴보니 등로는 건물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동화사터 1.1 Km 방향으로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KBC광주방송 송신탑은 우측에 두고 MBC 무등산송신탑은 좌측에 두고 돌아 건물 뒷편으로 오르니 커다란 바위군들이 보이는 정상 옆으로 커다란 원통형 구조물이 서 있는 911.1미터의 천제당에 도착을 해 잠시 천제당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본다.

천제단(911.1m)은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을 천제당 또는 천제단이라고 하는데 본래 제단은 입석대에 있었으나 점차 인가에 가까운 곳으로 내려와 현 위치를 배천(拜天)의 제단으로 정한 듯하다.
현 위치는 조선총독부 소유였으나 광주청년회가 기금을 모아 매수했으며 의재 허백련은 천제단을 민족의 제단으로 신성시하고 단군신전을 건립하기 위해 기금을 마련하여 무등산개천국건립위원회를 발족하고 기공식까지 가졌으나 이루지는 못했다.
현재 매년 개천절날 연진회에 이어 광주민학회가 중심이 되어 의식을 갖고 있다.

보기에는 별것 없어 보이던 천제단인데 자료를 찾아보니 의미있는 봉우리이기에 사진 몇장 더 남기고 출발한다.

 

이제 원통형 인공구조물과 바위가 보였던 911.1미터의 천제당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억새 능선을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는 또 다른 작은 원통형 인공구조물이 보이고 등로 좌측으로 여전히 드넓은 광주광역시가 펼쳐져 있고 진행 방향인 북북서 방향으로는 향로봉과 장원봉으로 이어지는 장원지맥 마루금이 산세를 낮추며 길게 이어지고 있는데 그 넘어로는 박무로 인해 분간하기조차 어려우니 이것만으로도 만족해 보는 시간이다.

천천히 걸어 내려가며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이제 등로 우측으로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키 작은 억새 능선을 타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주위 풍경과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져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고 그렇게 많은 사진과 추억을 만들며 전진하니 잠시 후 동화사터상단이란 이정표가 서 있어 살펴보니 진행 방향은 우측의 동화사터 0.6 Km 방향이다.

지나 온 방향으로는 중봉과 서석대 가는 방향이 표기되어 있고 그 우측 옆으로는 중머리재로 갈 수 있는 등로 표시가 보이는데 그곳으로 가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다음에 기회되면 한번쯤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동화사터상단 이정표를 지나니 등로 양쪽으로 파란 산죽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그렇게 한동안 그 산죽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빛바랜 갈색 억새 능선이 펼쳐진다.

억새와 키 작은 잡목들이 한들거리는 사이로 돌길이 뚜렷하게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전진하다 진행 방향을 보니 동화사터가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 옆으로 이어지는 장원지맥 마루금도 시원하게 보인다.

다시 거칠어지는 잡목과 산죽등로를 따라 전진하니 다시 억새 등로로 바뀌고 곧이어 무명바위들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818.8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천제당과 방송국 송신탑 좌측 넘어로 무등산 정상부의 천왕봉도 올려다 보여 사진에 담고 진행을 이어간다.

 

바위 무명봉에서 지나 온 무등산 정상부와 진행 방향을 가늠해 보고 등로 좌우측으로 펼쳐진 광주광역시와 주위 산줄기도 살펴 본 후 내려가니 좌측으로 동화사터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고 그곳에서 20미터 떨어져 있는 동화사터는 예전에 두번이나 들렸기에 오늘은 포기하고 우측 소나무와 벤취쉼터들이 보이는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이정표에는 늦재로 표기된 방향인데 저 늦재 역시 장원지맥 마루금에서는 벗어 나 있는 고개이기에 중간에 늦재가는 등로와도 헤어져 진행을 해야 하는 곳이다.

둔덕 정상으로 오르니 이정목과 벤취쉼터들이 보이고 작은 돌탑들도 억새속에 보이는데 그 둔덕을 넘어 산행을 이어가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둔덕 넘어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곳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이곳 역시 커다란 참나무 아래 파란 키작은 산줄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그 등로에는 커다란 바위 너덜겅이 이어지고 있어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간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다 지도를 보니 이곳 근처에 745.2 삼각점 표시가 되어 있어 삼각점을 찾아 보지만 찭을 수 없어 주위를 둘러보니 삼각점은 등로 좌측 커다란 바위 뒤 키 작은 산죽속에 숨어 있어 어렵게 찾아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낙엽을 헤치고 삼각점을 살펴보니 광주433이란 삼각점으로 그 삼각점 옆 나뭇가지에는 준희님이 걸어 놓은 745.2봉 이정판이 산객을 반겨 줘 추억 한장도 함께 남긴 후 그 산죽지대를 빠져 나온다.

 

삼각점봉을 지나 내려가니 낙엽진 활엽수 아래 돌길이 갈자자로 길게 이어지고 있어 새로운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 아름다운 돌길을 타고 갈지자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금새 등로 우측으로 늦재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마루금은 직진 방향의 바람재 0.7 Km 란 방향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계속 이어지는 돌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안전철봉과 로프가 나타나고 곧이어 넓은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전망대란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을 보니 도로 옆으로 전망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니 도로는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그 도로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지점 좌측으로 나무데크로 만들어진 전망대가 나타나 그곳으로 올라 살펴보니 광주광역시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그 전망대 옆에는 무등산에서 바라 본 광주라는 설명판이 있어 그 설명판에 나와있는 방향으로 사진을 담아 설명판과 비교하며 그 이름들을 불러 본다.

바로 앞 중앙부로 진행해야 할 낙타봉과 향로봉이 일직선으로 보이고 그 우측 옆으로 장원봉 지나 군왕봉이 길게 이어지고 있고 좌측 옆으로는 증심사 지구도 내려다 보이는데 저곳에서 무등산으로 올랐다 이곳으로 오는 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향로봉 좌측 뒤 저 멀리 광주시를 지나면 올해 걸었던 병풍지맥의 어등산 방향의 산줄기가 희미하게 보이는데 실제 병풍지맥 산줄기는 연무로 흐릿해 정확하게 가늠하기 어렵다.

 

전망대에서 진행 방향의 장원지맥 마루금과 광주시를 살펴보고 좌측 아래로 내려가니 급경사 자갈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동화사터와 원효분소 갈림사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데 바람재까지 이제 0.5 Km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계속 이어지는 바위 너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이곳 등로 역시 생각보다 많은 등산객들이 이용하고 있는지 계속 올라오고 서로 거리를 두고 교행하며 내려가니 바람재까지 0.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다시 서 있다.

이정표를 지나 한쪽은 파란 산죽이 펼쳐지고 한쪽은 낙엽진 활엽수가 보이는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드디어 넓은 비포장임도와 만나 좌측을 보니 이정표가 서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바람재 표지석과 사각 쉼터가 보이는데 그 쉼터에는 몇명의 등산객들도 보인다.

바람재(485m)는 대부분 두 봉우리 사이 고도가 낮은 안부에 있는 고개로서 편서풍이나 북서 계절풍이 통과하면서 풍속이 매우 빨라지는 곳이며 이 같은 지형 조건으로 풍속이 빠른 바람이 부는 곳을 바람재 또는 풍령이라 부르고 있는데 백두대간의 황학산과 월출산의 바람재가 대표적인 안부이다.

이곳 바람재까지가 11년 전 옆지기와 오르며 걸었던 등로로서 이제부터는 새로운 등로를 찾아 진행하는 장원지맥 마루금이 될 것이다.

오래 전 오르면서는 이곳이 지맥 마루금인지도 모르고 그저 옆지기와 무등산 눈꽃 산행이 좋아 어렵게 꼬드겨 올랐는데 오는날이 장날이라고 진눈개비가 내려 고생만 시킨 추억에 피식 웃어 본다.

 

바람재 지나 비포장 임도를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인 서쪽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같은 넓은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484.9미터의 헬기장에 도착을 하고 이제부터는 오솔길 같은 뚜렷한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진 묵은 폐헬기장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으로 멀지 않은 곳에 545.2미터의 낙타봉이 있어 잠시 다녀오기로 마음먹고 진행을 하였으나 이곳 낙타봉 분기점에서 쉬고 있는 등산객들이 숨어 담배들을 피우고 있어 낙타봉 다녀오는 것을 포기하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산행을 진행한다.

낙타봉분기점은 506.6미터의 헬기장으로 분기점 우측으로 솟아 있는 낙타봉은 멀리에서 봤을 때 마치 낙타의 등처럼 생겨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지는 봉우리이다.

 

낙타봉을 들리지 못하고 진행하게 되어 조금은 아쉬움을 남기고 잡목 헬기장을 지나 내려가니 등로 옆으로 돌탑이 보이는데 지나다니는 등산객들이 하나 둘 던져 쌓인 돌탑처럼 보인다.

돌탑을 지나 약간의 잡목들과 커다란 참나무가 보이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플랭카드가 걸려있는 무명안부를 통과하는데 그 안부를 지나자마자 등로 좌측으로 커다란 참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우측으로는 잡목들이 보이는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등로를 걸어가는 시간이 참으로 행복하기만 하다.

 

멋진 참나무 등로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생각보다 많은 등산객들이 반대로 내려 와 기다렸다 거리를 두고 교행하며 오르니 도상 445.9미터의 매봉인데 이곳 역시 몇사람의 등산객들이 쉬고 있어 사진 한장 남기기 어렵다.

조금 기다렸다 등산객들이 조금 빠지고 난 후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띠지를 확인해보니 신상의 남양주 금곡님 띠지인데 산행후기에 이곳 장원지맥 산행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지 못했는데 언제 지났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잡목들이 우거진 매봉 정상에서 어렵게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평이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여전히 거꾸로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도 드는 시간이다.

 

매봉을 지나 내려가니 장원봉까지 3.7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평이하게 전진하니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오늘 새벽에 어둠속에 산행을 시작한 증심사로 올라오는 계곡쪽 마을이 빤히 내려다 보인다.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와 참나무가 혼재된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고 약간의 바위구간을 지나 커다란 참나무 두그루가 보이는 395.7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장원봉까지 3.1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고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346.1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며 심호흡 한번하고 진행을 이어간다.

 

도상 346.1봉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잡목들이 커다랗게 자라고 있는 무명묘지를 지나 작은 바위들이 보이는 무명봉도 넘는다.

그 무명봉을 지나니 멋진 소나무 내리막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그 끝자락으로 진행하니 나타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장원지맥 마루금은 직진의 주차장 가는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크게 꺽어 장원봉 2.6 Km 방향으로 진행한다.

한동안 평이한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주차장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만나 여전히 장원봉 방향으로 이어가고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 묘지가 나타나는데 그 묘지 위로 도상 365.9미터의 향로봉 표시가 나타나는데 그곳으로 올라 준희님이 걸어 놓은 이정판 앞에서 추억과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뒤돌아 나온다.

 

향로봉을 들렸다 묘지로 다시 뒤돌아 나와 우측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는 여전히 멋진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 무명안부를 지나고 다시 평이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벤취쉼터와 이정표 그리고 그 옆으로 빛고을 산들길이란 이정목이 서 있는데 광주를 빛고을이라 불리는 이유가 궁금해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보인다.

광주광역시를 빛고을 광주로 부르는데 빛고을이란 단어는 주상절리 서석대가 햇빛을 받으면 반짝인다고 하며 반짝이는 상서로운 돌이 있는 동네란 뜻으로 빛고을이란 명칭이 붙은 것이다.

 

장원봉까지 1.8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와 빛고을산들길이란 이정목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향로봉(광주를 품은 산 무등)에 대한 설명판이 서 있어 잠시 읽어 본다.

향로봉은 무등산 아랫녘에 위치해 나지막한 높이에 완만한 산세를 형성하고 있어 하루에도 수백명의 등산객을 맞이하는 관문이 될만한 친숙한 봉우리이다.

향로봉에는 광주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팔각정 전망대가 있고 그 기슭에 유원지가 조성되어 있어 사람들의 발걸음을 더욱 이끈다.

산은 산이되 어쩐지 우리의 일상으로 더 가까이 내려 와 있는 듯 느껴지는 곳이다라는 글이 보인다.

그 설명판을 지나 우측으로 오르니 갑자기 모노레일이 나타나고 그 모노레일 위에는 사람들이 타고 즐기는데 그 모노레일을 탑승하는 시설이 나타나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모노레일 탑승지를 지나니 또 다른 건물이 나타나고 음식을 판매하는 오솔길이란 카페인데 지금은 폐쇄되어 있어 아쉽기만 하고 그곳을 지나 넓은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또 다른 건물들이 보이는데 다가 가 살펴보니 리프트카를 탑승할 수 있는 건물이다.

사람들도 별로 보이지 않는데 이용하고 있는 시설인지 그리고 왜 이런 시설들이 이곳에 있는지 궁금하지만 궁금증을 해결할 수 없어 사진에 담고 우측으로 빙 돌아 완만하게 내려가며 산행을 이어간다.

 

리프트카 탑승지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소나무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안전철봉과 로프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한동안 내려가니 좌측으로 지산유원지와 우측으로 충민사로 갈 수 있는 갈림사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그 옆에 서 있는 이정표를 살펴보니 바람재에서 3.5 Km 지나왔고 진행 방향으로는 장원봉까지 1.2 Km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지산유원지와 충민사 갈림사거리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운동기구들이 설치된 장소를 지나 오솔길 같은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진다.

잠시 후 소나무들이 보이는 325.7 무명봉 넘어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이제부터 올라야 할 이 산줄기의 이름을 낳게 한 장원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에 담고 조금 더 걸어가니 샛길출입금지 플랭카드가 걸려있고 그곳을 지나니 장원봉까지 0.7 km  남아있다는 이정표도 통과한다.

그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무명묘지가 보이고 우측 옆으로 작은 바위와 잡목들이 보이는 326.1봉에 도착을 해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그 봉우리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휘어져 이어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이정목이 서 있는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글씨가 보이지 않는 비석이 서 있고 봉분에 진디가 사라진 묘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나뭇가지 사이로 올라가야 할 장원봉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이제 이 산줄기의 이름을 갖게 한 장원봉도 바로 눈 앞으로 다가 온 느낌이다.

 

진행 방향으로 장원봉을 확인하고 완만하게 내려가 안부를 지나 오르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으로 장원정 옛길3구간 가는 길이 갈리는 삼거리 이정표를 만나 오른다.

잠시 후 등로 양쪽으로 안전목책과 로프 구간이 나타나고 곧이어 돌탑을 지나 이정표를 통과하니 장원봉 지명유래와 이정표 및 정상석이 서 있는 장원봉 정상에 도착을 해 많은 추억과 사진들을 남겨 본다.

장원봉은 광주광역시의 동구 지산동과 북구 석곡동 관할인 청풍동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389미터이며 무등산 북서쪽 능선은 동구와 북구를 나누면서 내려서다가 장원봉에 다시 오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장원봉(壯元峯)은 무등산 지봉으로 속설에 향교가 옛날 봉우리 아래 있었고 고을 사람 중 장원하는 자가 많아 이름이 생겼다고 기록되어 있고 1872년지방지도(광주)에 장원봉이 그려져 있다.
무등의 작은 뫼인 꼬막뫼가 꼬두뫼>꼬두매>호두(虎頭)가 된 것으로 추정되고 향교는 현재 광주공원 성구산 동쪽 기슭에 있으며 본래 풍향동 또는 산수동에 있다가 호환(虎患)으로 광주읍성 안 즉 성내면 고향교평(古鄕校坪)으로 이전했다가 1488년에 현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장원지맥이란 이름의 산줄기를 낳게 한 봉우리이기에 조금은 특별한 의미로 추억을 남기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조금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 그곳으로 가 점심식사 후 출발하기로 한다.

 

바람이 잦아 든 전망바위쪽으로 이동해 자리잡고 식당에서 준비한 보온밥통과 집에서 옆지기가 준비한 볶은 김치로 맛난 점심식사를 마치고 잠시 배낭 정리한 후 아름답게 펼쳐진 주위 풍경과 조망들을 살펴보고 출발하기로 한다.

제일 먼저 남동쪽을 살펴보니 저 멀리 끝자락에 오늘 아침에 잠시 올랐다 내려 온 무등산 정상의 천왕봉과 인왕봉 및 지장봉이 보이고 그 우측 아래로 서석대를 지나 안부를 통과하면 조금 더 가까운 곳의 송신탑이 보이는 중봉과 광주방송의 송전탑 우측으로 장불재 방송탑도 살짝 보인다.

좌측으로는 낙타봉 지나 우측으로 향로봉이 보이고 그곳에서 이곳 장원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나뭇가지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생각보다 더 황홀하고 멋진 풍경과 조망에 넋을 잃고 한동안 많은 사진을 담아보고 눈길을 무등산 우측 아래인 남쪽으로 돌린다.

 

눈을 남쪽으로 돌리니 바로 발 아래에는 지산유원지의 무등파크골프연습장과 호텔무등파크가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골프연습장 뒷편으로는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장원지맥의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저 멀리 끝자락으로 증심사에서 무등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호텔무등파크 뒷쪽으로는 무명봉이 뾰족하고 그 뒤 저 멀리로는 조만간 다시 내려 와 이제는 광주광역시를 남쪽으로 휘돌아 내려가닌 분적지맥 마루금이 끝없는 산그리메를 이루며 길게 이어지고 있다.

우측 뒤 저 멀리로는 분적지맥이란 이름을 낳게 한 분적산도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와 몇장의 사진을 더 남겨 본다.

 

이제 눈을 남서쪽으로 돌리니 지산유원지 우측인 남쪽으로 광주제2순환로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광주시 동구의 조선대학교와 그 뒤로 분적지맥 마루금과 금당산 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뒤 저 멀리 하늘금에 맞닿아 있는 곳으로 조만간 내려가 걸어야 할 태청지맥의 끝자락도 보일듯 말듯 다가온 듯 한데 거리가 멀고 박무로 인해 정확한 이름까지는 불러주지 못하고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천천히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 선다.

 

잠시 쉬며 조망을 즐기는 사이 두명의 등산객만 간단한 산행 복장으로 올라오고 그 뚜렷한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바위 암반 등로가 짧게 나타난다.

그바위암반 지대를 지나 내려가니 다시 돌탑이 보이고 그곳에서 등로 좌측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무등산 정상에서 이곳 장원봉으로 이어지는 장원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잠시 멋진 참나무 등로를 타고 부드러운 마루금을 편안하게 걸어 전진하니 332.6미터의 무명묘지봉을 지나고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는 좌측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크게 휘어져 이어가야 할 전망대 0.9 Km 방향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이제 잣고개까지 0.4 Km 남아 있다는 또 다른 이정표를 지나 내려가니 벤취쉼터가 나타나고 곧이어 넓은 공터에 커다란 참나무들이 듬성듬성 보이고 그 나무들 사이로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는 265.3 공터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그 운동기구가 보이는 참나무 공터에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는 곳을 지나 돌탑을 통과하니 커다란 아카시아나무들이 나타나고 그 무명봉을 넘으니 등로 우측으로 최근에 새로 복원된 듯한 성터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긴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무등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잣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으로는 카페와 무등산 전망대가 있는 곳의 건물들도 보인다.

잣고개(2차선 포장도로)는 광주광역시의 북구 두암동과 석곡동 관할 청풍동 사이의 고개로서 무등산 아래 장원봉에서 북쪽으로 내려선 곳으로 동구 산수동과 북구 두암동에서 무등산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고갯마루에 무등산도립공원 표지석과 함께 복원된 성터가 있으며 대동지지에 무등산 고성이라는 백제 때 성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옛날 성터가 있는 곳에 잣(잿)과 작이 쓰였으므로 성치(城峙) 또는 척현(尺峴)이고 최근의 발굴 기록에 의하면 무진고성은 장원동을 중심으로 잣고개의 장대봉과 제4수원지 안쪽 산 능선을 따라 남북 1 Km에 동서 0.5 Km 및 둘레 3.5 Km의 타원형으로 축조되었다.
성안은 도둑골로 관과 국성 같은 명문이 새겨진 유물이 나왔으며 이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시대 중기 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법 많은 등산객들이 보이는 잣고개를 건너 이정표와 빛고을 산들길 및 광주의 옛이름 무진주 그리고 무성고성지 설명판이 보이는 성벽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잣고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무진고성이 길게 복원되어 잇고 우측으로 돌아 오르니 광주의 옛 이름 무진주 설명판과 무진고성지 안내판이 보이고 성벽 위에는 군왕봉까지 1.9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사진에 담고 복원된 무진고성 위를 타고 걸어 가며 산행을 이어가는데 성벽 위를 타고 진행하다 중간에서 우측 능선으로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신경을 ㅡ며 걸어간다.

무진고성은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포곡식 산성으로 무등산의 지맥인 장원봉(해발 386m)을 중심으로 잣고개의 상태봉(해발 350m)과 제4수원지 안쪽에 축조된 장타원형상의 산성이다.
이 성의 동문지에서 초축과 수축 성벽이 확인되었는데 초축은 자연과 계곡 및 암반층 위에 장방형으로 잘 다듬어진 석재를 정연한 수평면을 유지하면서 쌓았고 건물지와 동문지에서 출토된 기와편과 막새기와 및 순청자와 상감청자 등의 자기류가 발견되었는데 이 유물들로 보아 수축은 8세기 말에서 9세기 초에 축조되었다가 9세기 중반에 폐성이 되었고 다시 9세기 후반경에 수축되어 고려 초(12세기)까지 사용된 성으로 추정된다.
잣고개 정상에 있는 서문은 광주시내에서 무등산으로 가는 도로의 통과로 심하게 훼손되어 있으며 잣고개와 석곡수원지 중간쯤에 위치한 동문도 일부 훼손되었다.
남문과 서문지 주변에는 건물지가 있는데 건물지는 성을 따라 능선상에 배치되어 모두 17개소에서 확인되었다.
성벽의 축성은 능선의 진행방향을 따라 편축하는 방법으로 능선의 7~9부 지점을 L자 형태로 다듬고 기점부에 5단 정도의 석축을 1미터 내외 높이로 쌓은 후 석축과 능선경사면 사이의 공간에는 잡석을 채워 다진 것이며 이러한 축성법은 백제의 축성법과 동일하지만 한편 성벽 상부를 잡석 채움식으로 쌓아 흙을 판축한 백제와는 다른 방법이다.
성벽 전체를 정연하게 쌓은 고구려나 신라와는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어 백제축성법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새로운 유형의 백제식 축성법을 보여준다.

 

복원된 무진고성벽 위를 타고 걸어가다 등로 우측을 보니 좁은 소로의 능선 진입로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해 무진고성 위와 헤어져 능선으로 들어가니 작은 바위들을 지나 무명묘지를 만나 통과하고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넘어 온 장원봉과 잣고개로 이어지는 장원지맥 마루금이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인다.

다시 가파른 활엽수 낙엽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미끄러지기 시작하고 너무 힘들게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 가지에 준희님의 응원판이 걸려있어 목례를 하고 계속 미ㅡ러운 오르막 등로를 따라 힘든 산행을 이어간다.

 

준희님의 응원판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다 미끄러워 긴 한숨을 내쉬고 뒤돌아 보니 우측 앞으로 장원봉이 보이고 그 좌측 뒤 저 멀리 무등산 정상부와 서석대 그리고 중봉과 광주방송 송신탑에서 좌측으로 휘돌아 오는 장원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펼쳐져 있다.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그 이름들을 불러 준 후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미끄러운 활엽수 낙엽 등로를 오르니 금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과 무명묘지가 보이는 봉우리에 도착을 한다.

 

무명묘지 뒤에는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곳에 서서 살펴보니 이곳 묘지들은 모두가 봉분도 낮고 마당도 넓지 않으며 어깨는 더욱 더 보이지 않아 특이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를 살펴보니 남양주 금곡님의 깨끗한 산행띠지에 이곳을 304미터봉이라 적어 놨는데 지도를 보니 정확한 해발고도이다.

다시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 온 장원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다시 한번 더 사진에 담으며 확인하고 그 304봉을 넘어 산행을 이어간다.

 

무명묘지봉을 넘어 완만하게 내려가다 등로 우측인 동쪽을 보니 제4수원지 물이 푸르게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잠시 후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 부드러운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평상과 사각쉼터가 보이고 사진에 담고 우회하며 그 사각쉼터를 통과하니 진행 방향의 나뭇가지 사이로 군왕봉 넘어 261.6봉과 태봉 지나 좌측 뒤로 노고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장원지맥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진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사진에 담고 군왕봉 1.7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니 평이한 등로 지나 길게 이어지는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곧이어 군왕봉 1.2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통과하니 운동기구와 사각쉼터 넘어 갈림삼거리 이정표와 만난다.

그곳을 지나 안전목책과 로프가 살치된 야자매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306.1미터의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는 거대한 참나무와 벤취쉼터 및 군왕봉까지 600 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보이는데 좌측으로는 두암주공3단지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삼거리이다.

 

두암주공3단지 갈림삼거리를 지나 우측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낙엽진 활엽수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다시 안전철봉과 로프가 설치된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정상부로 오르니 잡목들이 보이는 무명묘지봉에 쉼터와 이정표가 서 있는 317.7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 정상 우측으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장원지맥 산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무등산 천왕봉과 서석대에서 중봉과 광주방송 송신탑봉 지나 낙타봉과 매봉 및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장원지맥 산줄기가 시원하고 그 무등산 정상 우측으로는 다음에 걸어야 할 분적지맥 마루금이 살짝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무등산과 지나 온 장원지맥 마루금이 시원스럽게 조망되는 317.7 무명묘지봉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군왕봉까지 0.2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와 사각쉼터가 보이고 곧이어 길게 이어지는 오르막 나무계단을 타고 걸어 오르니 금새 356.9미터의 군왕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앙증맞은 정상석과 이정표가 서 있다.

군왕봉(359.8m)는 무등산에서 서북능선을 따라 뻗은 산줄기로서 정상에 서면 광주시가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데 군왕봉에 대한 공식기록은 없고 다만 광주 일곡동에 소재한 모룡대의 모룡대기 시문과 광주지도에 군왕봉이라는 지명이 나온다.
모룡대기 시문에 이 동의 지형을 살펴보면 이른바 군왕봉이라는 높은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고 그 아래에 이를 에워싼 여러 산록이 줄지어 있어 그 모습이 흡사 임금을 중심으로 여러 신하가 줄지어 모시면서 조석으로 임금을 첨모하는 듯한 형국으로 되어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제 등로는 좌측의 각화제와 우측의 등촌마을 사이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진행하게 된다.

 

그곳 군왕봉 정상에서 추억과 사진을 남기고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박무와 미세먼지가 사라진 시원한 광주광역시가 내려다 보이고 그 시내 넘어 저 멀리 내일 걸어야 할 장원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장원지맥 마루금 좌측 뒤로는 올 봄에 걸었던 병풍지맥 마루금도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데 그 마루금을 함께 걸었던 대전의 산지산인님은 잘 지내시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제 눈을 돌려 서쪽과 남서쪽을 살펴보니 사진 우측인 서쪽으로 호남정맥 상 영광의 불갑산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나즈막한 태청지맥이 나주로 향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사진 좌측 앞으로는 조만간 걸어야 할 분적지맥 마루금이 건물 사이로 살짝 보이고 그 뒤로 나주의 금성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제법 드높게 솟아 있는데 저 나주 땅은 또 언제나 들릴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오전만해도 박무로 인해 아쉬움을 남겼던 시야가 깨끗해지며 이렇게나마 광주광역시를 내려다 볼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다.

 

이제 눈을 돌려 남동쪽을 살펴보니 제4수원지 넘어 향로봉과 매봉 그리고 마루금에서 살짝 벗어 나 있는 낙타봉 지나 우측 뒤로 천제당 및 광주방송 송신탑 그리고 중봉이 보인다.

그 중봉 능선 뒤로는 무등산 정상부인 인왕봉과 지장봉 및 천왕봉이 보이고 우측 아랴인 중봉 넘어로는 서석대가 살짝 내려가며 존재감을 알려준다.

 

이제 눈을 등로 우측인 동쪽으로 돌리니 청풍동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뒤로 덕봉산과 무명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아담하게 느껴진다.

청풍동은 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는 법정동으로서 원래 광주군(光州郡) 상대곡면(上大谷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촌리(新村里)와 등촌리를 통합하여 석곡면 청풍리가 되었다.

1955년 광주시에 편입되어 청풍동이 되었으며 1986년 광주직할시 북구 청풍동으로 1995년 광주광역시 북구 청풍동이 되었다. 청풍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석곡동(石谷洞) 관할하에 있으며 동 이름은 맑은 물이 흐른다는 데 유래한다.

가매바우와 호랑이바위 등의 바위, 곰말과 웃대실 및 새터, 등촌, 아래대미, 신촌, 웃대미, 큰뜸 등의 옛마을, 꽃남정과 대밭골, 도장골, 불당골, 옻밭골 등의 골짜기, 너븐보와 비암쑤보 및 중리보 등의 보(洑)가 있다. 꽃남정은 꽃나무 정자가 있었다는 데서 불당골은 사찰이 있었다는 데서 옻밭골은 옻나무가 많았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하며 신촌마을에서는 해마다 대보름 전날 400여 년 된 느티나무에서 당산제를 지냈다.

기대하지 못했던 멋진 조망과 풍경들을 감상하고 다시 군왕봉을 지나 산행을 이어간다.

 

이제 길게 이어지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관목들과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평이한 뚜렷한 등로가 열리고 잠시 더 걸어가니 눈 앞으로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보이고 그 앞에서 진행 방향인 북쪽을 살펴보니 우측으로 이어지는 장원지맥의 바탈봉인 태봉과 노고지리산 지나 좌측의 도동고개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아파트 단지 지나 내일 걸어야 할 마루금이 이어지고 있는 풍경이 가슴을 들뜨게 만든다.

그 마루금 좌측으로는 광주광역시 북구 각화동 방향의 아파트 단지들과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잠시 더 그 무인감시카메라에서 진행 방향과 광주시 북구의 풍경들을 살펴보고 다시 길게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광주시 북구마을이 조금 더 깨끗하게 내려다 보이고 시내 아파트 단지 우측으로는 진행해야 할 장원지맥 마루금이 이어지고 그 뒤 저 멀리로는 병풍지맥의 불태산과 병풍산쪽 높은 산줄기가 벌써 옛 추억이 되어 가슴속에 쌓아 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많은 사진을 담고 병풍지맥 마루금도 다시 한번 더 확인한 후 천천히 내려가니 많은 등산객들로 붐비는 좌측의 각화제와 우측의 등촌마을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사거리 안부에 도착을 해 등산객들이 지나갈 때까지 잠시 기다려 본다.

 

그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우측으로 무돌길에서 바라 본 무등산이란 안내판이 보이고 그 뒤로 돌아 남동쪽을 살펴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장원지맥 제1 전구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끝자락에 무등산이 우뚝 솟아 있다.

좌측 끝자락으로 무등산 북봉이 보이고 중앙부로 무등산 천왕봉과 지장봉 및 인왕봉 그리고 그 우측 아래로 서석대가 아름답게 보인다.

그 우측 앞으로는 중봉과 광주방송 송전탑이 솟아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뚜렷하게 다가 와 다시 몇장의 사진에 더 담고 천천히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무등산에서 이곳 군왕봉까지 이어지는 장원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사각쉼터 방향으로 오르다 옆을 보니 진행 방향으로 바탈봉까지 1.4 Km 남아 잏ㅆ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정작 정상에 오르면 바탈봉은 태봉으로 변경되어 있어 헷깔리게 만드는데 아마도 영진지도에는 바탈봉으로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태봉으로 표기되어 있어 처음에는 바탈봉으로 했다가 덧붙혀 바탈봉을 덮고 태봉으로 최근에 변경을 해 놓은 듯 싶다.

벤취쉼터와 사각정자 쉼터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커다란 벗나무 한그루와 잡목들이 보이는 지도 상 261.6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남양주 금곡님이 따뜻한 산행 띠지에 이곳이 261.6봉임을 알리는 표식을 해 놨는데 귀가해 확인해 보니 금곡님은 이 산객이 진행하기 2일 전 통과하며 새로운 띠지들을 걸어 놓은 듯 하다.

다시 이어지는 안전목책과 로프 등로를 타고 여유롭게 진행하니 바탈봉까지 1.2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와 벤취쉼터 4개가 보이는 무명봉 넘어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평이하게 전진하니 잘려진 나무 등걸이 보이는 255.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진행을 이어간다.

길게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에 설치된 나무 계단을 타고 동네 주민이라 생각되는 아주머니 한분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내려가니 평이한 안부 지나 21번 송전탑을 통과하고 바탈봉까지 0.6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 지나 오르니 몇번의 벤취쉼터들을 지나 드디어 작은 돌탑과 이정판 그리고 커다란 정상석이 서 있는 태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이곳에서 왜 바탈봉이 아닌 태봉일까 궁금해 확인해 보니 영진지도와 국토지리원의 지명 이름이 달라 변경된 해프닝이었다.

 

바탈봉이나 태봉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해 아쉬움을 달래고 이미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낸 후 조망도 없기에 다시 배낭 정리해ㅔ 출발에 앞서 등로 좌측 앞을 살펴보니 이제 박무인지 미세먼지 모를 가스가 찬 광주시가지가 흐릿하게 내려다 보이고 방금 전까지 보였던 시내 지나 지맥 산줄기들은 자취를 감춘지 오래된 모습이다.

아쉬움을 남기고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완만하게 내려가는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길게 이어지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각화사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고 이제 마지막 노고지리산까지는 1.4 Km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반가운 모습이다.

우측으로 크게 꺽어 노고지리산 방향으로 내려가니 여전히 나무계단이 이어지고 그렇게 한동안 더 내려가니 무명안부 지나 다시 안전목책과 로프 구간이 이어진다.

안부 지나 이어지는 오르막 계단을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에 전망대가 보이고 우측으로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진 291.7미터봉에 도착을 해 전망대로 나가 보니 바로 앞으로 제2순환로와 휴먼파크서희스타힐스아파트 단지들이 내려다 보인다.

그 뒤로 펼쳐진 광주시내의 풍경은 이미 박무로 인해 제대로 된 풍경을 내려다 보기는 힘들어 보인다.

 

전망대가 있는 291.7미터봉에서 잠시 광주광역시를 살펴보고 내일 걸어야 할 장원지맥 마지막 구간도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박무로 인해 분간하기 어려우니 사진에 남기고 우측 잡목이 우거진 정상 옆으로 나 있는 등로를 따르니 노고지리산까지 0.9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 지나 뚜렷하지만 평이하게 마루금이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벤취쉼터 2개가 보이는 무명 둔덕봉을 넘어 짧은 나무계단을 내려가니 걷고싶은 누리길 안내판이 서 있고 다시 등로는 나무계단을 통해 완만하게 오르게 이어진다.

한동안 그렇게 걸어 오르니 다시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를 따르고 우측으로 분토마을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는데 이제 노고지리산까지는 0.3 Km 거리로 좁혀져 있다.

그곳 갈림삼거리를 지나자마자 분토마을과 경열사에 관한 설명판이 서 있어 바쁘지만 잠시 읽어 보고 진행을 이어간다.

경열사는 고려말에 왜구를 무찔러 나라를 지킨 명장 정지장군(鄭地將軍, 1347 - 1391)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우(祠宇) 및 묘역(墓域)을 말하는데 경열공(景烈公) 정지장군은 1347년(忠穆王 3年)에 나주에서 출생하여 1365년(恭愍王 4年)에 사마지(司馬지)에 장원하고 1366년(恭愍王 15年) 문과에 급제하였다. 1374년(恭愍王 23年)에 중랑장(中郞將)이 되어 수군의 현책을 올려 왕의 신임을 받아 전라도 안무사(按撫使)로 특명되고 1377년(禑王 3年)에 예의판서로서 순천 도병마사가 되어 순천 낙안 등지에 침입한 해구를 쳐 부셨다. 1382년 (禑王 8年)에 해도원수가 되어 진포에 침입한 적들을 소탕하고 전선을 건조한 공으로 왕으로부터 금대와 백금 50량을 받았다. 이후 수차에 걸쳐 해구를 물리치고 특히 남해 관음포의 대승첩을 거두어 우리 해군의 위용을 과시한 공으로 지문하부사 해도원수 양광, 전라, 경상, 강릉도 도지휘 처치사 문하평리를 역임 하였다. 1388년(禑王 14年)에 이성계와 같이 요동정벌 때는 안주도 도원수로서 출전하였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자 그 틈을 타서 왜구가 남원까지 쳐들어 옴으로 양광, 전라, 경상도 도절제체찰사가 되어 왜구를 소탕하였다. 1389년(昌王 1年)에 우왕복위사건 김저 등과 관련되었다 하여 경주로 유배 되었으나 곧 풀리고 또 다시 윤이 이초 등의 옥사에 연좌되어 청주 옥에 갇혔으나 대홍수로 인하여 면죄되었다. 위화도 회군의 공으로 이등공신이 되어 광주에 있었는데 판개성부사에 소명되었으나 부임치 않고 1391년(恭愍王 3年)에 정년 45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

분토마을은 광주광역시 북구 석곡동에 있는 마을로서 현재는 망월동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곳이고 분토라는 이름은 무등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형국이 토끼의 발모양이라 해서 분토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분토마을과 경열사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고 다시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커다란 정상석과 인식불가인 깨진 삼각점 그리고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란 안내판들이 보이는 장원지맥 제1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인 노고지리산에 도착을 한다.

노고지리산(257m)에는 동창이 밝았으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란 커다란 안내판이 서 있는데 이 시는 조선 후기의 문신 남구만의 시조로서 약천 남구만이 말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전원생활의 풍류를 즐기며 쓴 작품이다.
주제는 농가의 부지런한 생활로 밝아오는 아침과 하늘 높이 날며 지저귀는 종달새를 통해 보이는 평화로운 시골 풍경이며 농촌의 아침 정경을 여유있게 표현해 운치와 멋을 살린 대표적인 권농가 중의 하나로서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가르침과 부지런히 일하는 건강한 모습이 작품 전반에 잘 나타나 있다.

안내판을 읽어 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지만 아무튼 노고지리산이란 명칭에 걸맞는 내용을 찾다 보니 그런 안내판이 세워진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고 또한 노고지리는 종다리 일명 종달새이니 옛날 이곳에 종달새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하는 내용들이다.

 

마지막 봉우리인 노고지리산에서 남아 있던 간식으로 허기와 목마름을 달래고 추억 한장 담은 후 평이하게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무명안부 지나 경열사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한쪽에는 경열사에 관한 설명판이 서 있고 버스타는곳까지 0.9 Km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보이는 이정표도 서 있다.

경열사에 관한 설명을 읽어 보니 방금 전 분토마을 설명판이 서 있던 곳에서 찾아 봤던 경열사 내용과 대동소이한 내용으로 보인다.

 

그곳 경열사 갈림삼거리를 지나 버스타는곳 방향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니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나무계단이 길게 이어지고 국가지점번호와 함께 버스타는고사지 0.7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다시 통과한다.

계속 이어지는 안전목책과 로프 등로를 따르니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고 버스타는곳까지 0.4 Km 남아있다는 이정표를 지나자마자 등로는 다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내리막 나무계단이 길게 이어진다.

잠시 후 묘지들을 지나 내려가니 드디어 오늘 산행 날머리인 동문대로 8차선이 지나는 도동고개에 도착을 하고 날머리 우측 옆으로 서 있는 수준점을 찾아보니 해발고도 91미터 지점이다.

 

수준점을 확인하고 드디어 도로로 내려서며 도동고개에서 잠시 더 진행을 할까 고민하다 오늘은 마음 편히 이곳에서 산행을 마무리하고 광주 시내로 나가 잠시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구경 좀 하기로 한다.

도동고개(도선사 또는 장등동에서 승하차)는 광주광역시의 북구 문흥동과 석곡동 관할인 장등동 사이의 고개이고 무등산에서 북서쪽으로 향한 능선이 대봉과 노고지리산에서 내려서 이 고개를 거쳐 삼각산으로 이어지며 광주와 담양을 잇는 중요한 재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해동지도에 저원(猪院)과 저원현(猪院峴)으로 기록되어 있고 대동여지도에도 저치(猪峙)로 표기되어 있다.
광복 이후 산적이 많아 도둑고개라 불렀는데 가파르고 솟은 곳은 돋보인다 하여 돋>돛으로 되어 한자로 옮길 때 저(猪)를 취하는 사례가 많다.
1922년 광주와 담양을 잇는 광담철로가 부설되었다.

오늘 산행은 대체적으로 등로가 좋아 생각보다 일찍 무탈하게 마무리를 하였으나 가시거리가 멀고 조망이 깨끗해 쉬는 시간도 덩달아 늘어나 계획보다는 조금 더 걸린 듯 하다.

 

도동고개 바로 아래 장등동 버스회차지가 있어 그곳으로 가 여관 모텔촌을 확인하니 아는 사람이 없어 무작정 번화가를 찾으니 말바우시장을 알려주고 그곳을 통과하는 송정19번 버스에 탑승하여 느긋하게 주위 풍경들을 감상하며 훤한 대낮에 말바우시장에서 하차해 주위 풍경과 말바우시장을 구경해 본다.

광주시 북구에 위치해 있는 말바우시장의 이름은 우산동 근처 야산에 있던 바위에서 유래되었는데 시장 이름에 얽힌 두 가지 이야기가 숨어 있다.
하나는 시장 이름의 말바우라는 뜻은 김덕령 장군의 말이 훈련을 하면서 바위를 힘껏 내 디뎌 바위가 말발굽 모양으로 움푹 패어 말바위라고 불렀다고 전해지는데 주변에 시장이 형성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말바우시장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고 또 다른 유래는 도시개발로 동문로가 확장되기 전부터 있던 말처럼 생긴 큰 바위가 지금의 통일로 약국 부근에 있었는데 그 당시 어린아이들이 말을 타는 시늉을 하며 놀았으며 그 바위를 말바위라고 불리다가 주변에 시장이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말바우시장으로 불려지게 되었다는 유래도 있다.

 

 

말바우시장 근처에는 숙박할 곳이 없어 시장 구경을 하면서 두암동으로 이동해 모텔2000에서 싼값에 방을 구하고 샤워 후 근처 국밥집에서 곰탕으로 저녁을 해결하며 여유있는 하루 산행을 마무리 한다.

ㅡ로 고속도로 같은 등로를 따라 편안하게 진행을 하였지만 예상과 달리 장원지맥 전 구간이 동네 주민들의 산책로와 등산로로서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을 만나 교행하다 보니 마스크에 대한 귀찮음과 어려움이 있었으나 그래도 지맥 산행치고는 너무 편안하게 진행된 하루였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어 새벽 일찍 일어나 모텔에 있는 컴퓨터를 이용하려고 했으나 용량도 부족하고 접속시간도 늘어져 포기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가격대비 가성비가 좋아 참을만 하였다.

 

남아 있는 내일 제2구간도 광주천이 영산강과 합류하는 합수점까지 무탈하게 완주 후 비가 내리기 전 서울로 귀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