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맥산행(완료)/오토지맥(보현.완)

오토지맥 마지막 제2구간 만천고개에서 쌍계천 합수점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20. 12. 7.
728x90

산행지 : 경상북도 의성군의 오토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0년 12월 05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한겨울 한파로 무척 추웠지만 바람이 잔잔해 산행하기 좋았고 맑아 조망이 뛰어났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6도에서 영상 08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만천고개(만천길 2차선 포장도로, 만천2리 표지석)-묘지들-173.6 무명봉-소나무 등로-묘지들-167.8 고사목봉-185.3

               무명봉-187.6 무명봉-비포장 임도-시멘트 포장도로(승방지)-비포장 임도-길주의(띠지들-우측)-172.2 참나무 관목봉-

               157.3 무명봉-묘지들과 밭 경작지-중앙선 철로-28번 동부로 2차선 포장도로-통사랑의금부도사 순천장공 묘지-일출-

               170.2 무명봉-잣나무 간벌목-173.4봉-잣나무 식재지-잡목과 잡풀지대-가시잡목 등로-150.4 무명봉-파평윤씨 가족묘-

               참나무 등로-농막과 과수원-풍리비봉길 2차선 포장도로(의성마늘소작목회 이삭농장)-송계산유공비-비포장 임도-

               준희님 응원판-비포장 임도-밭 경작지-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비포장 임도)-57번 송전탑-158.3 무명봉(길주의-

               우측)-경주이공 묘지2-무명안부-박문수송계비-170.5 무명봉-184.4봉 갈림삼거리(와의길 띠지)-184.4봉-갈림삼거리

               복귀-소나무 등로-178.6 멧돼지 목욕탕 무명봉-소나무 등로-무명안부-태봉산(216.1봉과 215.3봉, 이정판)-무명안부-

               소나무 등로-무명안부-멧돼지 목욕탕-236.6봉(이정판)-238.2 큰참나무 무명봉-가시잡목 등로-플랭카드 안부-참나무

               등로-216.9봉-길주의(우측)-185 무명봉-243.3 펫트 무명봉-254.5 무명봉-270 삼각점봉(의성461 삼각점)-가시잡목

               등로-잡목 안부-시멘트 포장도로-180.3봉-잡목등로-과수원-시멘트 포장도로-파란물통 과수원-구미교(927번 조문로

               2차선 포장도로)-뚝방 비포장 임도-합수점(쌍계천과 남대천)-구미교 복귀-산행종료

산행거리 : 16.44 Km (만천고개에서 쌍계천과 남대천이 만나는 합수점까지 다녀 와 구미교까지)

               지맥산행 : 15.83 Km (만천고개에서 쌍계천과 남대천이 만나는 합수점까지)

               접속구간 : 00.61 Km (쌍계천과 남대천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구미교까지)

산행트랙 :

20201205 오토지맥 제2구간 만천고개-쌍계천 합수점.gpx
0.11MB

산행시간 : 05시간 43분 (06시 47분부터 12시 31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4시 30분 명품여관에서 기상 후 산행 준비하여 출발

                                  05시 30분 의성역에서 가까운 골목에서 곰탕식당을 발견해 아침식사 후 공기밥 구매

                                  06시 25분 의성역 근처의 버스 터미널에서 131-1번 버스에 탑승하여 만천고개까지 이동

                        올때 - 12시 31분 쌍계천과 남대천이 만나는 합수점을 다녀 와 구미교에서 산행 종료

                                  12시 35분 구미삼거리 앞 버스 정류장에 도착 해 배낭 정리하고 13시 40분 쯤 오는 버스 기다림

                                  13시 15분 일하러 왔다 의성으로 돌아가는 SUV 차량을 히치하이킹에 성공해 쉽게 의성역으로 복귀

                                  16시 25분 약간 막히는 도로를 타고 무사히 귀가

오토지맥이란 ???

오토지맥이란 보현지맥 구무산(674.7봉, 혈산)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북쪽엔 보현지맥을 남쪽엔 선암지맥을 마주보며 서진하여 비봉산(670.5봉), 오토산(475봉)곁을 지나 태봉산(216.1봉)을 통과한 후 남대천이 쌍계천에 합류하는 경북 의성군 봉양면 구산리 구미교에서 끝이나는 도상거리 33.1 Km 산줄기로 남대천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이 산줄이에서 산이름이 붙은산은 분기봉인 구무산을 빼면 태봉산(216.1봉)뿐이고 비봉산(670봉)은 1.4 Km이 오토산은 0.5 Km 거리가 맥에서 떨어져 있어 어쩔 수 없이 지맥 마루금에서 벗어 나 있는 오토산의 이름을 따 오토지맥이라 하였는데 금오지맥과 같은 이치이다.

 

 

약간의 가시잡목 구간도 있었지만 근래들어 가장 좋았던 수렛길 같은 등로를 따라 또 하나의 새로운 산줄기를 마무리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오토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경상북도 의성군과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및 네이버의 지식백과 그리고 다음의 백과사전과 산림청 및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지맥 산행을 하다 보면 등로 자체가 워낙 어렵고 힘들어 진행에 애를 먹는 등로도 있지만 이곳 오토지맥처럼 등로처럼 등로로 인한 진행에는 난관이 없지만 마루금 자체가 각종 약초와 임산물 그리고 송이재배지로 인해 인위적인 출입금지로 묶여 진입 자체가 어려운 곳들이 몇군데 있어 어느 계절에 어떻게 통과해야 할지 고민이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산줄기가 바로 이 오토지맥이다.

 몇 년 전 산친구들과 보현지맥을 진행하면서 화목재에서 구무산으로 올라 사곡령으로 하산하면서 선두 3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화목리 주민에게 출입을 제지당해 구무산은 오르지도 못하고 도로를 타고 사곡령으로 내려 온 기억이 있어 어제는 또 어떻게 진행을 해야 주민들과 마찰없이 진행이 가능할지 많은 고민으로 힘들었지만 계절적으로 겨울이다 보니 다른 3계절보다는 제지가 심하지 않고 특히 사과 수확이 끝난 시점이라 주민들이 약간의 의심의 눈초리는 보냈지만 큰 제지없이 잘 진행하게 되어 다행이었던 하루였다.

특히 산행 전 의성에서 이용한 대중교통인 버스 탑승이 순조로웠고 산행 종료 후 만천고개에서 비봉까지 도보 이동 후 어둠속에 지나가는 SUV 차주님의 도움으로 편안하게 의성으로 나올 수 있어 기분 좋게 새로운 산줄기에 대한 추억을 남겼던 시간이기에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하면서 또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생각보다 깨끗하고 가성비 좋았던 명품여관에서 따뜻하게 꿀잠을 자고 느긋하게 새벽 4시 30여분에 일어 나 산행 준비 후 애마를 끌고 의성읍내를 한바퀴 도는데 의성초등학교 옆 부자소머리곰탕이라는 작은 식당의 불빛이 보여 그곳으로 들어가니 마침 아저씨 한분이 곰탕 재료를 손질하면서 반갑게 맞이해 줘 기분 좋게 따뜻한 곰탕 한그릇에 커피까지 마시고 점심 보온도시락에 머슴 쌀밥을 채워 나오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버스 번호 때문에 조금은 신경을 썼지만 131-1번 버스에 잘 탑승해 비봉에서 내리려고 하니 이 버스는 마침 만천2리를 들어갔다 뒤돓아 나오는 코스이기에 정확하게 만천고개에서 하차해 또 다른 하루도 기분 좋게 출발하는 시간이다.

높지 않은 나즈막한 수렛길 같은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니 중앙선철로와 28번 동부로 건너 능선으로 오르고 그곳에서 등로 우측으로 어제 걸어 넘었던 비봉산과 오토산 사이의 526.6봉 근처로 떠 오르는 일출과 그 빛을 받아 아름답게 펼쳐진 오토지맥 라인을 살펴보며 오늘도 무탈하게 오토지맥을 마무리한 후 귀가할 수 있도록 빌어 보는 시간이다.

 

오토지맥 제2구간인 만천고개에서 쌍계천과 남대천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대체적으로 무난하였고 고도 편차도 별로 없어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를 하게 되었는데 마지막 지점으로 생각하는 구미교 앞에서 남대천 둑방을 타고 합수점으로 잠시 이동하면서 뒤돌아 보니 둑방길 지나 저 멀리 오토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180.3봉이 보이고 그 우측 뒤로 270미터 삼각점봉이 연봉처럼 겹쳐 보이는데 늘 산줄기 이어가기 산행을 하면서 마지막 산줄기를 내려 와 합수점으로 가면서 뒤돌아 보는 이런 풍경이 가장 가슴속으로 파고 들며 환희와 기쁨의 절정을 맛보는 것 같아 늘 힘들지만 마지막 합수점으로 향하는지도 모르겠다.

오토지맥 산행이 아니라면 이곳에 와 이런 시간을 갖지 못했을 것이기에 이 시간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고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것까지 오롯이 내것으로 만들어 추억으로 남겨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침식사 때문에 고민이 있었는데 의성역에서 가까운 의성초교 근처 골목에서 부자소머리곰탕 식당을 발견하고 뜨거운 국밥에 믹스커피 한잔까지 마시고 보온 밥통에 점심 도시락까지 준비하고 나니 괜시리 부자된 기분으로 식당을 나와 다시 의성역으로 이동해 애마를 자 주차시키고 오늘은 6시 25분에 출발하는 131-1번 버스를 타고 비봉정류장까지 가야 하기에 조금 이른 시간인 6시 15분 쯤 정류장에 도착을 해 버스 번호를 확인해 보니 아무리 찾아도 131-1번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한번 더 인터넷으로 131-1번을 확인하니 정확히 첫차가 버스터미널에서 6시 25분 출발이고 그렇게 잠시 더 기다리니 6시 27분 지나 131번 버스가 지나가기에 손을 흔드니 정차하는데 비봉벙류장으로 가는 버스인지 확인하니 맞다고 대답한다.

재빨리 탑승해 기사분에게 왜 131번으로 입력하고 운행하는지 문의하니 입력할 땐 분명 131-1번으로 입력했는데 왜 131번으로 표기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별 대수롭지 않게 대답해 사정을 이야기하니 운행 후 확인해 보겠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131-1번 버스를 전세내듯 홀로 탑승해 10여분 후 비봉정류장에 도착을 해 하차하려는데 버스 방향이 만천리 방향으로 중앙선 철로를 건너려는 모습이고 이곳에서 다시 문의를 하니 만천2리를 들렸다 나오니 만천고개에서 내리면 된다는 대답이 들려 와 어제 저녁과는 다른게 정확하게 만천2리 표지석이 있는 갈림삼거리의 만천고개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찬바람이 불어 두빰이 얼어 붙는 만천고개에서 잠시 산행 준비를 하면서 여명이 밝아오길 기다려 어제 내려 온 비포장임도와 만천길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남기는데 만천2리로 들어갔던 버스가 금새 뒤돌아 나와 이 도로를 타고 지나간다.

만천고개란 지명을 찾아보니 보이지 않아 아마도 이곳 지명이 만천리이기에 나즈막한 고갯마루인 이곳도 편의상 만천고개로 부르는 듯 보이는데 정식 지명이름은 아닌 듯 싶다.

만천리는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의 면적이 평야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며 마을 남동쪽으로 비봉산의 줄기가 뻗어 있다.

나방못, 가장못, 골못이 각각 서쪽, 남쪽, 북쪽에 분포해 있으며 자연마을로 가정골, 논골, 신기 마을이 있는데 가정골 마을은 만내 남쪽에 있는 마을이고 논골은 예로부터 논이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신기 마을은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이곳 만천고개에서 지도를 보니 남서쪽으로 나 있는 1차선 만천2길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을 해도 승방지 근처에서 정상 마루금과 합류하기에 잠시 고민하지만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 등로가 좋다고 하니 정상 마루금을 따라 진행하기로 하고 갈림삼거리 사이의 그물망과 작은 과수원이 있는 북서 방향의 능선으로 오르며 오토지맥 마지막 제2구간 산행을 시작해 본다.

 

기온은 어제와 비슷하게 추운 듯 싶은데 바람은 어제보다 심하지 않아 더 춥지는 않게 느껴지는 새벽 공기를 마시며 짧은 과수원을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몇기의 묘지들이 길게 보이고 그 묘지 뒤로 올라 서리가 하얗게 내린 활엽수 낙엽이 푹신한 넓은 수렛길 같은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북서쪽에서 서쪽으로 다시 남서쪽으로 거의 180도 휘어지며 진행이 되는데 그곳 능선에서 등로 좌측을 보니 아직 완전히 어둠이 물러가지 않은 세상 저 멀리 우측의 금성산에서 좌측으로 비봉산과 오토지맥 상 526.6봉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라인이 여명의 빛을 받아 성서롭게 다가 온다.

 

이제 아침 6시 50여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어둠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으니 동지가 그리 멀지 않았음을 느끼고 그렇게 잠시 더 전진하니 등로 좌우측으로 관목의 활엽수들이 인위적으로 식재된 듯 줄지어 있는데 진행하다 보니 조상들 묘지를 가기 위해 낸 등로이다.

조금은 편안하게 큰 고도 차이도 없는 고속도로 같은 등로를 따르니 오래되어 빛바랜 띠지 하나가 걸려있는 소나무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173.6 무명봉을 지나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남쪽으로 방향 전환을 하니 다시 무명묘지들을 지나 작은 소나무 가지가 잘려 쓰러져 있는 167.8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북서쪽과 남서쪽으로 방향을 수시로 바꿔가며 진행되던 등로는 이곳 무명봉에서 다시 남서쪽으로 크게 방향을 바꿔 완만하게 내려가고 안부같지 않은 안부 지나 활엽수 낙엽이 푹신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 옆에 잔솔가지들이 잘려 죽어있는 185.3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아래로도 묘지들이 보인다.

산세는 나즈막한데 생각보다 묘지들이 많이 조성되어 있어 명당자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지만 최근들어 전혀 관리되지 않는 이런 묘지들이 왜 필요한지 그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에 하루 빨리 자연으로 돌아가길 바래 본다.

무명봉과 묘지들을 지나 다시 푹신한 낙엽 등로를 따라 상쾌하게 여유를 가지고 발걸음을 옮기니 관목의 소나무 가지 3개가 보이는 187.6 무명봉에 도착을 해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그 소나무 무명봉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가니 등로 우측 아래에서 개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해 살펴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민가가 보이고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이제 등로는 넓은 비포장임도같은 등로로 변하면서 거칠것 없이 이어지고 등로 좌측으로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무명봉 지나 우측으로 조금 더 전진하니 커다란 승방지가 눈 앞으로 펼쳐지고 그 바로 앞에는 넓은 비포장 임도가 개설되어 있어 편안하게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더 걸어 전진하니 전봇대 하나가 나타나고 우측으로 방금 전 개가 짖어대던 민가쪽으로 내려갈 수 있는 소로가 보이는데 민가는 나뭇가지들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이제 승방지라는 저수지를 좌측에 두고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진행하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 임도를 따른다.

등로 좌측인 남쪽으로 금성산에서 비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고 사진에 담으며 완만하게 오르니 일반 산판도로처럼 드넓은 비포장 임도가 마치 고속도로처럼 이어져 편안하게 힐링하듯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전진하니 임도가 좌측으로 휘어지는 곳 우측으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ㅣ지들이 걸려있어 지도를 확인해 보니 이곳이 길주의 지점으로 좌측으로 흐르는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우측 소나무들이 빼곡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방향을 바꿔야 하는 210.6 미터 지점이다.

 

희미하게 사라진 소나무 등로에 쌓여 있는 솔갈비를 밟으며 조심해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니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솔갈비와 활엽수 낙엽이 두껍게 덮혀있는 무명묘지를 통과하는데 이곳 묘지들은 모두 어깨가 없이 봉분과 앞 마당만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잠시 후 나즈막한 안부 지나 관목의 참나무 한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172.2 무명봉을 넘고 다시 묘지들을 지나 평이하게 걸어가니 진행 방향 앞쪽 저 멀리 어제 어렵게 올랐다 내려 온 이 산줄기의 주산이기도 한 오토산이 정면으로 보이기 시작해 지도를 확인해 보니 방향이 북쪽과 북동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잠시 후 평범한 참나무 등로를 타고 여유롭게 거닐듯 걸어가니 관목의 참나무들 사이로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157.3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선답자의 산행 띠지 하나가 반겨준다.

 

그 무명봉을 지나니 가끔 차량들이 지나는 소음이 가깝게 들리기 시작하고 등로 방향은 이제 북쪽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크게 바뀌고 있어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으며 걸어 본다.

가끔 소나무들이 보이지만 등로는 활엽수 낙엽으로 수북히 쌓여 있는 완만한 내리막 마루금을 따르니 무명묘지들이 연달아 나타나고 그 묘지들을 지나 내려가니 다시 두기의 묘지 뒤로 검정 비닐이 씌여진 밭 경작지가 나타나는데 중간에는 과실수들도 보인다.

 

그 묘지와 밭 경작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밭을 관리하는 연장들을 보관하는 작은 통을 지나 커다란 소나무 관상수들이 심어져 있는 곳을 지나는데 관리가 잘못되었는지 죽어가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곳을 지나자마자 중앙선 철로가 나타나고 기차가 없는 사이에 그 철로를 통과하며 사진 몇장 남겨 보는데 사진 방향인 북쪽으로는 폐역이 된 비봉역이 가깝게 있고 아랫쪽으로는 금성면 탑리역이 있는 중간지역이다.

중앙선철로는 서울 청량리역과 경주시 경주역을 잇는 철도선으로 총 길이 386.6km로서 1939년 4월 청량리와 양평 구간이 개통되고 1940년에는 양평과 원주 구간이 개통된 후 1942년 4월 1일 전구간이 개통되었다. 

양평과 원주, 제천, 영주, 안동을 지나 영천에서 대구선과 접속하며 경주까지 이르는 간선철도로 제천에서 충북선과 태백선이 교차하고 영주에서 경북선과 영동선이 교차하여 경부선과도 직접 연결된다. 

중앙선은 경부선에 이은 한국 제2의 종관철도로 연선 일대의 광산과 농산 및 임산 개발을 목적으로 부설되었다. 경북, 충북, 강원 및 경기의 4도를 거쳐 가는 중앙선의 연선에는 금, 동, 아연, 흑연, 석탄, 목재, 쌀, 땔감 등이 풍부하게 존재했고 때마침 일본은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도발하여 자원의 수탈과 전략물자의 확보에 지력하고 있었으므로 중앙선의 부설은 중요한 과업이었다. 

중국대륙에 군수물자와 군대를 수송할 때도 함포의 사정거리로부터 벗어나 있는 중앙선이 주요했다. 현재 중앙선은 수도권 지역에서 전철과 함께 운행이 되고 있다.

 

중앙선 철로를 건너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생각보다 차량 통행이 빈번한 28번 동부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고갯마루가 시작되는 지점에 철망이 설치된 곳이 보인다.

비봉고개(옛 마을이름인 비정고개, 28번 동부로 2차선 포장도로)에 대한 자료는 찾을 수 없었는데 아마도 이곳이 비봉리이고 고개이다 보니 편의산 비봉고개로 불리는 듯 보여 비봉리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본다.
비봉리는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 있는 리로서 산간지역이나 비교적 평야지대가 많은 의성읍에 속하며 남대천이 흐르고 수많은 저수지가 있는 중앙선 철도가 통과하며 28번 국도가 가까이에 있어 교통이 편리한 지역이다.
비봉리란 이름은 봉정과 비정이 합하여 지어진 것으로 자연마을에는 웃비정인 상비, 아래비정인 하비, 쌀막골, 불물골, 집골, 부처골, 무쇠골, 배골, 지짐들이 있다.

상비와 하비는 각각 위와 아래에 있다는 의미이고 쌀막골은 산적이 많아서 쌀과 양식을 이곳 땅에 보관하였다 하여 불린 이름이고 불물골은 부처님을 보셨던 곳, 집골은 옛날에 집을 묻었다는 곳, 부처골은 절이 사라진 후 미륵이 남아있어 붙은 이름이다. 무쇠골은 기암에 철분이 많이 돌이 무거워 붙은 이름이고 배골은 배나무가 있어서 지짐들은 잡초인 지심이 많아 붙은 이름이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들어가자마자 우측으로 커다란 참나무 등로가 열려있고 그 아래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수렛길 같은 능선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는데 오르다 보니 이 등로는 묘지를 쓰면서 만든 등로였다.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어 미끄러운 참나무 등로를 타고 오랫만에 숨이 차도록 걸어 오르니 통사랑의금부도사 순천장공 묘지가 나타나는데 이 묘지를 쓰면서 낸 등로가 마치 수렛길처럼 넓어 편안하게 오를 수 있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통사랑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품계명 중 하나로서 조선시대에는 문신 정8품의 품계에 해당되며 의금부도사는 조선 시대 의금부에 속한 종오품의 벼슬이었으나 뒤에 종육품과 종팔품으로 나뉘었던 품계이다.

그 묘지를 지나 키작은 잡목들과 잡풀들이 말라있는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 우측인 동쪽의 어제 걸었던 오토지맥 마루금 위로 찬란한 아침 햇살이 따스하게 퍼져 잠시 넋을 잃고 많은 사진에 담아 본다.

좌측으로 솟아 있는 오토산과 그 우측 중앙으로 이어지는 오토지맥 마루금 지나 우측 햇살이 비추는 526.6봉과 비봉산 사이의 능선이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한동안 많은 사진을 남기고 가시잡목들과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있는 완만한 오르막 능선 등로를 따르니 참나무 등로가 짧게 나타나고 곧이어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170.2 무명봉에 도착을 해 등로를 살펴보니 등로는 이제 북쪽에서 다시 남서쪽으로 방향을 크게 바꾸고 등로도 참나무 등로에서 잣나무인지 소나무인지 모를 침엽수 등로로 바뀌고 있다.

그곳에서 등로 우측인 북쪽 방향을 살펴보니 비봉리의 좁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고 그 뒤로 나즈막한 야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데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는 새로운 도로가 개설되는지 터널을 뚫고 있는 모습도 보여 지도를 확인해 보니 아직 공식적인 표시가 없는 도로이다.

 

진행 방향인 남서쪽으로는 관리되고 있는 잣나무인지 소나무 등로 지나 키작은 참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듯한 모습으로 시원하게 펼쳐 보이고 저 멀리 잠시 후 만나야 할 농막이 보이는 능선도 조금은 가깝게 다가 와 있는 모습도 보인다.

가지치기가 되어 있고 잡목들을 제거하여 잘 관리되고 있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과수원과 민가 및 창고건물들이 보이고 곧이어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는 참나무 등로를 타고 어렵게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에 준희님이 이곳이 173.4미터봉임을 알리는 이정판을 걸어 놔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173.4봉을 지나 등로는 다시 남서에서 북서 방향으로 바뀌고 잘 관리되고 있는 소나무인지 잣나무인지 헷깔리는 지역을 벗어나니 진행 방향으로는 키큰 나무들이 모두 사라지고 키작은 관목들과 잡목들 그리고 잡풀들이 자랐다 마르면서 회색빛으로 변한 모습이 조금은 이국적인 풍경을 선물한다.

진행 방향 저 멀리 나즈막한 안부 넘어 능선으로 농막 한채가 길라잡이 노릇을 하는 그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갑자기 고라니 몇마리가 쉬고 있다 이방인의 출현에 놀라 달아나기에 이 산객도 놀란 가슴 진정시키며 잠시 쉬어 간다.

 

시원하게 조망되는 관목 등로를 타고 고라니들이 달아나는 모습을 살펴보며 천천히 진행하니 등로 우측 앞 북서 방향으로 나즈막한 보현지맥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문수지맥의 학가산을 중심으로 좌우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산줄기가 시선을 사로 잡는데 잠시 옛 추억을 더듬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더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마사토라서 잡목과 잡풀들도 생존하기 어려운지 비어있는 공간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빛바랜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지독한 잡목지대를 짧게 통과하니 나즈막한 무명안부 지나 다시 고라니 가족들을 만나고 인사하고 오르니 파평윤씨 가족묘지들을 통과한다.

묘지를 돌아 오르니 다시 관목의 참나무 등로가 열리고 그 정상부로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는 159.4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등로는 다시 북서에서 남서 방향으로 휘어지고 곧이어 잘 관리되는 것처럼 보이는 무명묘지 2기를 지나 약간의 잡목 사이로 나 있는 좁은 등로를 따르니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는 우측으로 진행해야 하지만 좌측으로 과수원과 밭 경작지 한가운데에 오늘 산행을 하면서 봤던 농막이 보여 잠시 그 농막이 보이는 과수원으로 가 주위 풍경들을 살펴보고 진행하기로 한다.

 

농막이 보이는 곳으로 잠시 나가보니 현재 사람은 없는 듯 조용한데 주위에 나무들이 사라져 일망무제로 펼쳐진 조망과 풍경이 아름다워 한동안 많은 사진들을 담아 본다.

동쪽으로 좌측 저 멀리 오토산이 박무속에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 비봉산과 금성산으로 이어지는 오토지맥 마루금이 강렬한 햇살을 받아 반짝 빛나고 있다.

어제 저 능선을 타고 걸어 진행하면서 멋진 조망과 풍경이 발걸음을 잡아 많은 추억과 사진을 남겼던 시간은 벌써 고운 추억으로 남겨진다.

 

남서 방향으로도 제법 높아 보이는 봉우리 하나가 눈에 들어 와 지도를 찾아 보니 의성군 금성면의 오동산인데 높이를 보니 단지 313미터인데 주위에 높은 산이 없어 제법 높게 보이는 듯 하다.

오동산은 경상북도 의성군의 금성면 초전리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313미터이고 지명은 여지도서(의성)에 학산서원은 금학산 아래에 있다. (중략) 1730년(영조 6)에 오동산() 아래에 옮겨 세웠다 라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한다.

이후 표기자의 변화 없이 대동여지도와 1872년지방지도(의성)에 오동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조선지지자료(의성)의 봉양면에는 오동산()은 오산동()에 있다는 기록이 있어 지명의 강한 존속성과 함께 산 지명에서 촌락 지명인 오산동이 파생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에는 오동산()은 금성면 초전리, 하리, 구현리와 봉양면 장대리, 풍리에 걸쳐 있는 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우측 뒤 저 멀리로는 쌍계천과 남대천이 만나는 합수점을 찾아 보지만 아직은 정확한 지점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잠시 더 그 농막이 있는 곳에서 멋진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보며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와 북서쪽으로 나 있는 등로를 따르니 잘 관리되고 있는 능성구씨 묘지2기와 그 바로 아래 잡풀이 무성하여 관리가 되지 않은 무명묘지 한기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서쪽 저 멀리 합수점 방향을 살펴보니 정확한 지점은 확인하기 어렵지만 방향은 충분히 읽을 수 있어 사진에 담고 다시 출발하니 잣나무 군락지가 짧게 나타난 후 등로 좌측으로 몇기의 묘지들이 보인다.

그 묘지 위에서 진행 방향을 확인하니 저 멀리 합수점 부근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거리상으로는 이제 제법 많이 진행해 왔음을 느낀다.

그곳 묘지지대를 지나 조금 더 전진하여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앞 좌측으로 축사 건물이 내려다 보이고 우측뒤 저 멀리 태봉산도 모습을 드러내는데 높이가 높지 않아 능선처럼 보이고 있다.

 

진행 방향을 확인하고 천천히 잡풀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갑자기 눈 앞에 밭 경작지가 나타나고 가축 먹이로 이용한 초지를 재배한 지역을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방금 전 내려다 봤던 거대한 축사 건물들이 나타나는데 강아지 몇마리가 이방인의 출현에 경계를 하면서 울부짖고 있다.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풍리비봉길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 축사가 보이는 방향으로는 의성마늘소작목회 이삭농장이란 입간판이 눈길을 잡는다.

이곳을 어느 선답자는 백고산고개라 하였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자료는 전혀 없고 이곳이 퐁리리 지역에 있는 고개이다 보니 자의적으로 붙인 이름이 아닐까 생각되어 퐁리리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본다.
풍리리는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 있는 리로서 산간지역이나 평지가 많은 봉양면에 속하나 하천에서는 어느 정도 떨어져있어 저수지가 많고 지대도 약간 높다.

자연마을에는 상리, 중리, 장대동, 풍림이 있는데 과거에는 이 마을들이 모두 붙어있어 신예곡(新禮谷)이었으나 분리되면서 윗동네는 상리가 되었고 상리와 장대동의 가운데에 있는 마을은 중리가 되었다. 풍림(豊林)은 산골짜기 마을로서 주변에 나무가 많이 있었으므로 붙은 이름이고 산 모양이 나는 까마귀가 죽은 시체를 쫓는 모양이라 하여 까마구재라 불리는 고개가 있다.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측에 축사 건물이 보이고 조금 더 진행하니 도로 우측으로 대교농장 들어가는 이정판과 도로가 보이고 그곳으로 들어가니 바로 옆으로 송계산유공비라는 오석이 서 있어 찾아 보니 봉양면 풍리3리(의성비봉과 접경) 풍림이에서 의성가는 방향으로 왼쪽 등성이오래된 길가에 세워져 있으나 지금은 이용치 않음으로 샛길쪽에 다시 비를 세웠다는 자료가 보인다.

송계산공적비를 살펴보고 그 좌측으로 이어지는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는 비포장임도가 보여 그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산세를 확인해 보니 원 마루금은 이 비포장임도 우측으로 보이는 나즈막한 마루금인 듯 보이는데 그곳이나 이곳 비포장임도가 크게 다르지 않아 편안하게 그냥 비포장임도를 따르기로 하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에 준희님의 응원판이 붙어 있어 사진에 담고 인사를 한 후 산행을 이어간다.

 

그 응원판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주능선 마루금에 접속하고 이제 좌측으로 마루금을 따라 걸어가니 잘 관리되고 있는 넓은 마당이 딸려있는 무명묘지를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눈 앞에 밭 경작지와 그 넘어 저 멀리 묘지들과 콘테이너 박스가 보이는데 그 밭 경작지 가장자리로 그물망이 설치되어 있어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좌측 묘지 방향으로 내려가 바로 옆으로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하기로 한다.

함창김공 묘지지대를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묘지들과 콘테이너 박스가 보이고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따르니 도로 우측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들 넘어 저 멀리 어제 넘었던 오토산이 우뚝하고 그 오토산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급격하게 낮아진 산세의 오토지맥 마루금이 박무속에 보인다.

 

이제부터 한동안 그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오토산부터 이곳으로 이어지는 오토지맥 산줄기가 계속 따라오고 진행 방향인 북쪽으로는 좌측으로 빙돌아가는 도로 중앙 저 멀리 능선 위로 송전탑 하나가 올려다 보이는데 지도를 보니 57번 송전탑이다.

잠시 더 진행 방향으로 송전탑을 살펴보며 걸어가니 도로가 갑자기 우측인 동쪽으로 휘어지고 잠시 진행 방향 정면으로 오토산과 우측으로 홀고개로 낮아지는 산줄기가 선명하게 보인다.

다시 도로가 좌측인 북쪽으로 휘어져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도로 좌측으로는 그물망이 설치된 밭 경작지 지나 바로 코 앞으로 57번 송전탑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가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우측 능선 방향으로 잡풀들이 보이는 넓은 비포장 임도가 보이고 이제부터는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몇기의 묘지들을 지나 57번 송전탑 아래도 통과한다.

송전탑을 지나니 넓은 비포장임도 좌우측으로 멋진 소나무들이 보이고 그렇게 그림같은 마루금을 타고 힐링하듯 걸어가는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기만 하다.

 

길게 이어지는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여유롭게 힐링하듯 걸어가니 관목의 소나무와 솔가지가 보이는 158.3 무명봉을 지나 경주이공 묘지 2기도 통과한다.

그 묘지를 지나니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 박문수송계비란 이정목과 그 좌측으로 오석이 서 있어 자료를 찾아 보니 아래와 같은 내용들이 보인다.

암행어사 박문수의 심판으로 빼앗긴 송계산을 되찾은 기념으로 송계산 공적비가 경상북도 봉양면 풍리리 풍림이 마을 동쪽 진밭골 저수지 안쪽 골짜기에 세워져 있으며 우리들 기억에는 암행어사의 정의롭고 통쾌한 활약상들이 너무도 익숙하게 기억되고 있다.
임금의 특사로 은밀하게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선량한 백성들을 괴롭히는 지방 관속들의 비리와 학정을 발본색원하여 부당함을 징벌하였다.
정확하지는 않으나 영조대왕 시대 사건으로 추측되는데 당시 의성지방 세도가인 김모가 군수를 배경으로 경계 무시하고 타인의 소유인 송계산을 강압적으로 탈취하게 되자 이에 억울한 생각에 고 이기영, 김기진, 최운경의 삼씨가 항쟁하게 되고 그러자 이들을 하옥하고 여러차례 모진 악형을 가하였다.
이같은 소식을 접한 박문수 어사는 군수를 비롯한 일당을 엄벌하고 본래의 소유자에게 환원하였으며 이같은 쟁송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송계원을 구성하고 경계지에 공적비를 세웠다.
비석의 건립연도는 왜정시대 소화 8년 8월로 되어 있고 또한 비문의 내용으로 미루어 봐서 조선조 영조대왕 시대의 사건이며 서기로는 1725~1776년 사이에 있었던 일로 보여진다.
아무튼 우리들의 기억 속에는 암행어사 하면 박문수를 연상케 하고 암행어사 출도야 라고 하는 소리에 산천초목이 떨었다는 속설은 차지하고라도 어사의 명령은 곧 어명과 같은 것이고 보면 그 위엄은 짐작할 만하다고 하겠으며 더구나 너무도 유명한 박문수 어사의 행적이고 보니 더욱 관심이 모아진다.
변화무상한 세월의 풍광 속에 잡초와 송림에 쌓여있는 송계산 공적비는 먼 훗날까지도 보는 이로 하여금 권력의 무상함과 사필귀정의 진리를 터득하는 성찰의 계기가 되어 주리라 기대된다.
송계산 유공비에 관한 기록은 풍리 3리 리장이었던 김수암이 답사하고 정리하였다.

자료를 찾아 보고는 그 의미를 조금은 이해가 가능하였는데 오래전에도 이런 송사가 있었음에 놀라운 일인데 그 판결관이 어사 박문수였음에 더욱 놀랐던 시간이다.

 

갑자기 나타난 박문수 송계비에 대한 자료를 찾아 읽어 본 후 왜 이런 송계비가 이곳에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털어내고 활엽수 낙엽이 두껍게 깔려있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어렵게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아름답게 열려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전진하니 소나무 등로 옆으로 처음보는 왕의길이란 주황색 띠지가 눈길을 잡는데 왕의길은 경주에 있는 산책로로 알고 있는데 그럼 이 띠지의 주인공은 경주분이 맞는지 궁금하다.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170.5 무명봉을 넘어 계속 좌측으로 휘어지는데 잠시 후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휘어지며 이어진다.

그렇게 한동안 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184.4봉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 앞에는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눈길을 잡는다.

 

그 갈림삼거리에서 잠시 고민하다 그리 멀지도 않고 시간도 충분하기에 배낭 내려놓고 잠시 184.4봉을 다녀 오기로 한다.

넓은 활엽수 낙엽이 깔려 있고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평이한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가니 금새 184.4봉에 도착을 하는데 단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몇장만 걸려있고 다른 표식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나온다.

 

남쪽으로 있었던 184.4봉을 들렸다 뒤돌아 나와 이제는 북서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여전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고 곧이어 낮은 봉분을 가지고 있는 무명묘지 한기를 통과한다.

그 무명묘지를 지나니 솔갈비가 폭신하게 깔려있는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를 따라 진행되고 잠시 후 커다란 소나무가 쓰러져 있고 한쪽에는 여름철 멧돼지들이 목욕탕으로 이용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 178.6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휘어져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고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힐링하듯 걸어가니 갑자기 소나무의 수종이 변하면서 키가 작은 소나무들로 인해 진행에 약간의 어려움을 느낀다.

제멋대로 구불구불 자라고 있는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종주 산행이 아닌 힐링산행의 느낌으로 어제의 피로를 풀듯 걸어 본다.

다시 등로가 우측으로 약간 휘어져 진행되니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 무명안부도 지나간다.

 

무명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소나무 등로가 참나무 등로로 변하고 곧이어 무명묘지를 통과한다.

그곳에서 등로는 다시 서쪽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이 바뀌고 이제부터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 사이에 제법 많은 잡목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잡목들을 헤치며 걸어 오르니 무명묘지를 다시 지나 이제 등로는 잡목등로에서 멋진 소나무 등로로 변하고 있어 편안하게 걸어 오르니 216.9미터의 태봉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이점ㅇ목과 이정판이 보이지만 삼각점은 보이지 않고 태봉산에 관한 자료 역시 찾기 힘들다.

태봉산(216.1m, 의성465 삼각점)에 대한 자료는 찾을 수 없었는데 이 태봉산이 속해 있는 길천리의 자료에서 잠시 이곳 태봉산에 대한 언급이 되어 있어 자료를 정리해 본다.
길천리는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 속하는 법정리로서 명칭유래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병합된 길부동(吉阜洞), 천동(泉洞), 호상동(湖上洞)에서 길부동과 천동의 이름을 한자씩 따서 길천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길부(길부치)는 좋은(길-吉) 마을과 언덕(부-阜)이 되라고 붙여진 이름이고 샘골(천동-泉洞)은 마을 남쪽에 장군수(將軍水)라는 샘이 있어 이름지어졌다고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의성군 금뢰면(金磊面)의 천동과 길부동, 호상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길천동으로 개칭되었다가 1988년 5월 1일 군 조례 제1225호에 의거하여 길천리로 개칭되었다.

마을 남쪽 태봉산(胎峰山)에서 남서쪽으로 낮게 이어져 내려온 구릉성 산지가 마을의 남부를 둘러싸고 있으며 마을 북쪽으로 쌍계천의 지류인 남대천이 흐르고 있다.
남대천 유역 평야의 폭이 좁아지기도 하고 넓어지기도 하는데 자연 마을 길부와 샘골은 비교적 폭넓게 펼쳐진 남대천 유역 평야 지대를 앞에 두고 산언저리에 위치해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봉우리 같지도 않은 능선 상 태봉산 정상에서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다시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뚜렷한 등로는 아니지만 등로 찾기가 어렵지는 않다.

잠시 후 등로는 다시 남쪽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는 무명안부를 두 곳 지나 수렛길 같은 소나무 등로가 펼쳐져 편안하게 걸어 본다.

최근에 걸었던 지맥 마루금 중 가장 좋은 등로가 가장 길게 이어지고 있는 오토지맥이 아닐까 생각하며 무심으로 전진하니 다시 등로는 완만하게 오르며 잡목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잘 관리되지 않은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그 주위로는 낮은 돌담들도 보여 이곳 지방에서 특이한 묘지 모습에 잠시 살펴보고 진행을 이어간다.

그 무명묘지를 지나니 여전히 멋진 솔갈비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평이하고 마음 편히 여유롭게 걸어가니 갑자기 말라있는 멧돼지 목욕탕들이 나타나고 그 주위의 소나무들은 멧돼지들이 몸을 문질러 껍질이 완전히 벗겨지며 말라 죽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생각보다 많은 멧돼지들이 이곳에서 생존해 있다는 사실에 등골이 절여 옴을 느끼기도 한다.

 

그 멧돼지 목욕탕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파평윤공 묘지 2기가 보이고 우측인 북서 방향으로 방향을 바꿔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약간의 잡목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짧은 잡목 구간을 통과하니 다시 편안한 소나무 등로가 길게 열려있고 힐링하듯 전진하니 갑자기 등로가 울퉁불퉁 굴곡이 져 있어 살펴보니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인위적인 부분도 있는 듯 보인다.

그렇게 조금 더 계속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북서 방향에서 남서 방향으로 바뀌고 그 정점에 236.6미터 봉이라는 이정판이 걸려있어 준희님에게 묵념으로 인사 드리고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보는데 다음지도에는 이곳을 앞산이라 하였다.

 

그 236.6봉을 지나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평이하게 진행하니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듯 보이는 조선소나무 아래 키 작은 잡풀들이 우거져 있다 말라 있는 풍경이 지금과는 조금 다른 풍경으로 다가 온다.

조금은 지루할 정도로 한동안 같은 풍경과 등로같은 마루금을 따라 빠르게 걸어가니 다시 완만하게 올라 갑자기 소나무 등로 한가운데에 굵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238.2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이제 소나무에서 참나무로 변하고 푹신하게 깔려있는 활엽수 낙엽이 바짝 마르면서 바스락 거리는 음악소리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태양이 머리위로 이동하며 추웠던 기온이 올랐는지 굵은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흐르기 시작하며 무명봉을 지나 평지처럼 길게 이어지는 푹신한 활엽수 등로를 타고 바스락 거리는 음악소리에 집중도 해 본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 진행하니 참나무 등로는 이제 다시 소나무 등로로 변하더니 금새 잡목들이 우거진 오늘 산행 중 처음 만나는 가장 어려운 등로를 통과한다.

 

사라진 등로를 찾아 잡목가지에 뺨도 맞으면서 힘들게 그 지독한 잡목가시 지대를 통과하니 등로 우측으로 좁은 농경지가 나타나고 그 사이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에 출입금지 플랭카드가 걸려있고 중앙부에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는 무명안부이다.

지도를 보니 좌측의 봉양면 풍리리와 우측의 길천리의 경계를 이루는 안부에 도착을 하니 바람이 잔잔해지고 허기도 지기 시작해 잠시 자리 잡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볶음김치 하나에 흰쌀밥으로 든든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귤 하나 까 먹은 후 다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에 말라있는 잡풀들을 구경하며 올라간다.

 

오르면서 진행해야 할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여름철 지독하게 우거졌을 덩굴식물들과 잡풀들이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숨죽이고 말라 있는 모습이 생경하게 다가오고 그렇게 짧은 오르막 등로를 타고 힘들게 오르니 활엽수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참나무 무명봉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아름다운 풍경이 열려있어 잠시 살펴보고 사진에 담아 본다.

좌측 뒤로 방금 전 지나 온 오토지맥의 태봉산과 앞산에서 흘러 내려 온 무명 산줄기가 남쪽으로 길게 이어지고 그 산줄기 바로 앞으로는 풍리리와 하리로 이어지는 좁고 긴 논 경작지가 골짜기를 이루며 우측 뒤 저 멀리로는 오토산에서 비봉산 지나 금성산으로 이어지는 오토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기만 하다.

 

활엽수 낙엽이 푹신하게 깔려있는 미끄러운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관목의 참나무들과 활엽수들이 등로를 열어주고 무릎까지 빠지는 낙엽이 쌓여있는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활엽수가 자라고 있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216.9봉 오르기 직전 좌측인 남쪽으로 풍리리와 장대리 방향의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나즈막한 둔위와 의성쪽 산줄기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어 잠시 더 살펴보고 사진을 담아 본다.

 

그렇게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산그리메들을 살펴보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금새 커다란 참나무 두그루와 작은 관목의 참나무들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216.9봉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에는 선답자의 산행 띠지 한장만이 이 산객의 맞이해 준다.

잠시 주위 풍경들을 사진에 담고 추억을 가슴에 남긴 후 남쪽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간벌목들이 널부러져 있어 조심스럽고 그렇게 천천히 전진하니 추위를 느끼던 바람도 조금은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널부러진 간벌목 등로를 지나니 약간의 잡목들이 발목을 잡기 시작하고 그곳을 지나 무명안부를 통과해 오르니 다시 수렛길 같은 뚜렷하고 넓은 등로가 완만하게 걸어 오른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오르다 등로 좌측을 보니 생각보다 멋진 산그리메들이 펼쳐져 있어 지도를 보며 확인해 보니 좌측 앞으로 태봉산에서 흘러 내려 온 무명 산줄기가 보이고 그 우측 앞으로는 오동산 지나 저 멀리 금성산과 비봉산이 우뚝하고 중앙부 저 멀리 오토지맥의 526.6봉 좌측으로 오토산이 머리만 살짝 내밀고 있어 장소를 바ㅣ꿔가며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더 등로 좌측으로 어제 지나 온 마루금을 살펴보고 방금 전 지나 온 뚜렷한 등로를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우측으로 휘어지며 펼쳐진 앞산과 태봉산으로 이어진 오토지맥 산줄기가 길게 펼쳐져 있다.

그 태봉산 우측 뒤로는 여전히 머리만 내밀고 있는 오토산이 보이고 그렇게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정상부로 오르니 좌측 직진 방향으로 흐르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보내고 우측 아래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지도를 살펴보니 길주의 지점으로 우측 급경사 내리막 등로로 진행을 해야 한다.

이곳이 201.5미터의 무명봉으로서 우측 잡목들이 보이는 곳으로 조심하며 산행을 이어간다.

 

잡목들이 우거진 우측으로 들어가니 다시 넓은 활엽수 낙엽이 깔려있는 내리막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우측으로 관목들 사이로 잡풀들이 자랐다 말라있는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수렛길 같은 넓고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아카시아 나무들이 보이는 무명봉 지나 좌측으로 꺽여 이어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넓은 소나무와 참나무 등로가 이어진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 전진하니 등로 곳곳에 선재충 방지용 벌목된 나무 더미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조금 더 전진하니 등로는 서쪽에서 남서 방향으로 바꿔 완만하게 걸어 오르게 된다.

잠시 더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빛바랜 페트병이 버려져 있는 243.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진행을 이어간다.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등로를 지나니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잠시 후 제선충 예방 때문에 벌목된 나무더미들이 쌓여있는 곳을 지나 잡목들이 보이는 희미한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254.5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는 다시 서쪽인 우측으로 휘어져 이어지고 있다.

그곳 무명봉을 지나니 커다란 소나무 사이로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고 천천히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의성461이란 삼각점이 박혀 있는 270봉에 도착을 해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잠시 물 한모금 마시고 출발한다.

 

삼각점봉을 지나니 등로는 이제 서쪽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꿔 진행되고 오늘 처음으로 지독한 잡목지대를 만나 힘들게 진행하는 시간이 되었다.

잘림 잡목가지에 온 몸에 강렬한 생채기를 만들고 무릎에서는 붉은 피가 나올 정도의 고통을 느끼며 어렵게 내려가 잠시 뒤돌아 보니 지독한 잡목 사이로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270 삼각점봉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무명안부를 지나 홍주신공 묘지를 넘으니 지독한 잡목과 잡풀지대가 눈앞에 펼쳐지고 어떻게 통과할지 고민하다 우측을 보니 우측 사면 등로가 열려있어 조심스럽게 그 지독한 잡목과 잡풀지대를 무사히 빠져 나간다.

 

지독한 잡목과 잡풀 지대를 무사히 빠져 나간 후 여전히 빼곡한 가시잡목 지대를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여전히 온몸에 강력한 고통을 선사하는 가시들이 이곳 역시 지맥 마루금임을 알려주고 있다.

 잡목 사이로 사라진 등로를 찾아 힘겹게 내려가니 드디어 커다란 활엽수 한그루가 보이는 잡목 안부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그 안부를 빠져 나가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건너 묘지가 보이는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2기의 흥해배공 묘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지독한 잡목 지대를 따라 내려 온 270 삼각점봉이 파란 하늘 아래 아름답게 솟아 있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이곳 등로 역시 수렛길 같은 넓은 임도같이 열려있어 방금 전 270 삼각점봉에서 내려오던 지독한 잡목 등로와는 지옥과 천당 차이만큼 다른 늼으로 오른다.

한동안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이마에 땀방울을 흘리다 보니 묘지들이 차례로 나타나고 다시 제선충 방지 나무 더미들이 쌓여있는 곳을 지나 커다란 소나무에 준희님이 180.3미터봉이라는 이정판이 보인다.

공식적으로는 180.3미터봉이지만 다음지도에는 이곳을 삼보산(180.3m, 묘지2기)이라 했는데 자료는 전혀 보이지 않고 이곳의 리 이름인 구미리를 찾아 보니 잠시 후 남대천 위에 세워진 구미교 역시 구미리란 이름에서 유래된 듯 보인다.
구미리는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 있는 리로서 북쪽으로 남대천이 흐르고 남쪽으로 쌍계천이 흐르는 산간지역 내의 평지이자 농경지이다.

구미리는 마을 앞 산의 모양이 거북과 유사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마을 뒷산에 동감, 백꿩, 백사 등 세 가지 보물이 있다 하여 산 이름을 삼보산(三寶山)이라 하였다.

또한 마을 정기를 오래 지속하여 후손이 번창하기를 기념하면서 선주들이 마을 뒷산과 마을 입구 맞은 산에 왕릉과 같은 무덤을 만들어 맞 무덤이라 부른다.

이 지역은 중앙선 철도 의성역에서 가깝고 5번국도와 28번 국도가 가까이에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이 삼보산이란 180.3봉이 실질적인 오토지맥의 마지막 봉우리로서 이제 내려 가 남대천 위에 건설된 구미교를 만나면 오늘 산행도 마무리가 될 것이기 때문에 마지마가지 힘을 내본다.

 

오토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180.3미터의 삼보산을 지나 우측으로 약간 휘어져 내려가니 약간의 잡목들과 참나무들이 보이는 능선 등로가 이어지고 미끄러운 활엽수 낙엽을 조심하며 내려가다 등로 우측을 보니 잡목 사이로 남대천의 파란 물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드디어 합수점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남대천을 내려다 보는 마음이 늘 한결같이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아쉽지만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남대천과 진행 방향 우측 앞으로 의성 소방소 건물과 그 주변 민가들을 살펴보며 조금 더 내려가다 등로 우측을 보니 남대천 넘어 저 멀리 오늘 이 산객이 걸어 넘어 온 앞산과 태봉산쪽 마루금도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멧돼지들이 몸을 비벼 죽어가는 소나무 한그루가 눈길을 끌고 이리저리 잡목들을 헤치며 활엽수 낙엽을 따라 조심해 진행하니 갑자기 눈 앞으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과수원이 짧게 나타나고 그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통과하니 다시 커다란 참나무들과 지독한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난해한 등로가 보이는데 그곳으로 비집고 들어가다 살펴보니 우측으로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여 다시 뒤돌아 나와 과수원 가장자리를 따라 시멘트 포장도로 방향으로 무탈하게 이어간다.

 

그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둔덕을 넘으니 커다란 파란 물통이 하나 나타나고 그 뒤로 제법 넓은 과수원이 펼쳐지며 드디어 등로 앞 우측으로 남대천 위에 설치된 구미교가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 뒤 저 멀리 봉양면 구미리의 의성소방소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남대천은 경상북도 의성군의 사곡면과 의성읍에 있는 하천으로 사곡면 공정리의 삼학재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의성읍내를 관류한 후 봉양면 구산리에서 쌍계천에 합류한다. 

남대천은 조선시대에 장천(長川)으로도 불리던 하천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의성)에 장천은 현 서쪽 3리에 있고 근원은 모현(茅峴)에서 나온다 라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한다. 

여지도서(의성)에는 장천은 관아의 서쪽 3리에 있고 모현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하여 비안현 병천(屛川)으로 흘러들어 간다 라는 기록이 있어 장천이 현재 쌍계천으로 불리는 병천으로 유입되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같은 문헌 단묘조의 빙계서원은 장천 가에 처음 세우고 (중략) 조선 선조 9년(1576)에 나라에서 장천서원(長川書院)이라는 이름을 내려 주었다 라는 기록을 통해 하천 지명에서 유래한 서원 명칭을 발견할 수 있다. 

이후 표기자의 변화 없이 해동지도(의성), 대동여지도, 1872년지방지도(의성)에 장천으로 표기되어 있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에서는 한다리를 대교(大橋) 또는 남천교(南川橋)라고도 했으며 남원터 남쪽에 있는 다리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남대천을 남천으로도 불렀음을 알 수 있다.

 

물통을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도로가 좌측으로 빙돌아 내려가고 직진 방향으로는 벼 짚단들이 쌓여 있는 과수원이 펼쳐져 있어 직진의 과수원으로 진행하다 벼 짚단에 옆에서 시원한 물한모금과 남아 있는 사과를 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배낭 정리한 후 마지막 그 과수원을 통과해 내려가니 구미교로 통하는 927번 조문로 2차선 포장도로 바로 앞 커다란 참나무 가지 위에 선답자가 오래 전 걸어 놓은 찌그러진 냄비 하나가 오토지맥 완주를 축하해 주고 있어 사진에 담고 과수원을 내려간다.

 

드디어 927번 조문로 2차선 포장도로에 내려서고 우측으로 몇발자국 걸어가니 많은 선답자들이 오토지맥 산행을 마무리한 구미교 앞에 도착을 하고 그 앞에서 치량들의 통행이 뜸한 사이 추억 한장 어렵게 남겨 본다.

이곳은 남대천으로서 좌측의 쌍계천과 만나는 합수점은 직진 방향으로 300여미터 떨어져 있어 고민도 없이 남대천 둑방길을 타고 합수점까지 다녀 오기로 한다.

 

둑방길을 타고 북서 방향으로 걸어가니 우측으로는 남대천이 바로 내려다 보이고 그 남대천 넘어로는 5번 경북대로 4차선 포장도로 건너 의성소방소 건물이 보이는 구미리 마을이 깨끗하게 다가와 있고 그 뒤를 병풍처럼 감싸고 휘돌아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가 자꾸만 눈길을 잡는다.

좌측으로는 드넓은 과수원이 펼쳐져 있고 논 경작지가 섞여 있으며 그 뒤로 쌍계천과 군위쪽 선방산 라인이 가깝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동안 더 둑방길을 타고 걸어 들어가 드디어 합수점이 보이는 곳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걸어 온 둑방길 지나 저 멀리 오토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180.3미터의 삼보산과 그 우측 뒤로 270미터의 삼각점봉이 조금씩 멀어지며 벌써 지나 온 추억이 되어 버린다.

 

드디어 좌측의 쌍계천이 우측의 남대천과 만나 저 뒤로 보이는 5번 경북대로 4차선 포장도로 아래로 흘러 나가는 마지막 지점에서 합수점을 배경으로 추억과 사진을 남겨 본다.

합수점에서 추억을 남기고 합수점 좌측 뒤를 살펴보니 금산서원 건물들이 보여 자료를 찾아 약간의 공부를 해 본다.

금산서원(금연정사)은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산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설 교육 기관으로 신체인(1731~1812)이 1776년(영조 52) 자제와 문생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금연 정사(錦淵精舍)의 후신으로 1981년에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금산 서원은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산리 1556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금산서원은 자료의 소략과 자료 간 기록 차이로 그 내력을 밝히는 데 어려움이 따르는데 1833년(순조 33)에 간행된 경상도읍지와 1894년(고종 31)~1895년(고종 32)경에 간행된 영남읍지에는 기록이 없고 교남지에 금연정 군의 서쪽 구미동에 있으며 회병 신체인이 세웠다라는 기록만 있다. 근래 편찬된 자료를 보면 금산 서원의 창건 연대에 차이를 보이는데 1997년 금산 서원 앞에 세워진 금산서원기에 1776년에 금연 정사가 세워졌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를 따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1912년 금연 정사가 무너지고 현판만이 남았는데 신종기가 정사 중건을 유언으로 남겼고 그 후손 협성 교육 재단 이사장 신진욱이 유지를 이어 1977년 강당을 지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1981년 후손들의 발의로 정사를 서원으로 승격시켜 신지제를 주벽으로 하고 신체인을 함께 봉안하였다. 금산 서원은 금연정사, 모현사, 동재, 존성재, 누각, 문간채 등 총 6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강학 공간의 동쪽 제향 공간이 서쪽으로 병렬 배치되어 있다.

 

마지막 합수점을 확인하고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홍수 조절장치인지 모를 인공 구조물이 보이고 그곳에서 바로 앞으로 보이는 쌍계천을 확인하고 이틀간 진행한 오토지맥 산행을 마무리 한다.

쌍계천은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신흥리에서 발원하여 비안면 쌍계리에서 위천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으로 낙동강 수계의 지방하천이며 낙동강의 제 2지류이자 위천의 제 1지류이다. 

하천의 수계는 본류인 쌍계천과 지류인 금오천, 사미천, 산마천, 남대천, 안평천, 화신천으로 이루어져 있고 하천연장은 38.4km, 유로연장 43.8km, 유역면적 501.36㎢이다. 하천의 이름은 쌍계리 쌍계 마을에서 유래하였으며 쌍계 마을은 남대천과 위천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물이 합친다는 의미로 쌍계(雙溪)라고 불리는 하천의 형태는 전형적인 농촌 자연하천이다.

 

좌측의 쌍계천과 우측의 남대천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공식적인 오토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긴 후 다시 걸었던 둑방길을 타고 구미교 방향으로 뒤돌아 나오니 이제 둑방 우측 아래 농막에서 짖어대던 강아지들도 한번 봤다고 조금은 친절하게 봐 주고 그렇게 구미교로 뒤돌아 나와 배낭 정리하고 927번 조문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구미교를 건너 걸어가니 저 멀리 구미삼거리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곧이어 5번 경북대로 4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그 5번 경북대로 4차선 포장도로 좌측으로 구미리란 버스 정류장이 보이고 그곳으로 가 최종 배낭을 정리한 후 물 한모금 마시고 남아 있던 귤을 까먹으며 허기를 달래며 버스 시간표를 보니 오후 1시 40분 전후로 버스가 지나갈 것 같은데 안계에서 13시 10분에 출발하는 버스이다.

현재 시간을 보니 12시 45분으로 약 1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시간적인 여유도 있고 버스 시간도 충분히 남아 있어 패딩을 껴 입고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다 보니 오후 1시 10여분이 지나는데 마침 버스 정류장 앞으로 SUV 차량 한대가 나와 무조건 손을 흔드니 젊은 차주가 세워 줘 의성 버스터미널로 간다며 태워 준다.

 

어제 오토지맥 제1구간 산행 후 어둠속에 비봉 버스정류장에서도 마음씨 좋은 SUV 차주를 만나 쉽게 의성역으로 나갈 수 있었는데 오늘도 생각지도 못한 SUV 젊은 차주님의 도움으로 편안하게 의성역으로 이동을 해 이틀간 애마를 주차했던 의성역 주차장에서 일찍 애마를 회수 해 곧바로 고속도로를 타고 귀가하니 오후 4시 30여분이 지나고 있다.

언제 다시 이곳 의성역에 들려 애마를 주차 시키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산행을 이어갈 수 있을지 기약도 할 수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어제 오늘 이틀간 보낸 시간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 믿어 본다.

 

등ㄹ 자체보다는 뢰부적인 요인들로 인해 진행을 많이 걱정했던 오토지맥 산행을 이틀간 의성역에 베이스 캠프를 차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아무 마찰없이 마무리하고 귀가하는 시간이 그저 꿈결 같기만 하다.

등로는 대체적으로 무난하고 고속도로처럼 좋았지만 첫날 처음 시작부터 마지막 마치는 만천리까지 곳곳에 출입금지 구역으로 묶여 산나물이 나는 봄부터 약초나 송이버섯 채취 기간인 가을까지 무탈하게 진행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한겨울철 주민들의 감시가 덜하고 관심도가 떨어지는 계절에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특히 의성역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서 출발하는 대중교통인 버스를 이용하면 구간 나누기와 진행에도 어려움이 없어 편안하게 진행이 가능하며 특히 새벽에 일찍 문을 여는 곰탕집이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잘 마무리가 된 기분이다.

 

이제 다음주부터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광주로 내려가 장원과 분적을 끝내고 그 다음에는 울산과 부산으로 내려 가 올 한해 지맥 산행을 마무리 해볼까 계획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고민거리로 남겨 뒀던 금오나 화원 및 웅석 또는 사자지맥으로 변경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