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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변산지맥(호남·완)

변산지맥 제1구간 장성갈재에서 분기점 지나 바드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20.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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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북도 고창군과 정읍시 및 부안군의 변산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19년 12월 28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맑고 강한 찬바람이 불어 추웠으나 오후부터 기온이 오르며 많은 땀을 흘렸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7도에서 영상 06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장성갈재(갈재로 2차선 포장도로, 통일공원)-비포장 임도 이정표(쓰리봉 1.8 Km, 갈재 0.1 Km, 방장산자연휴양림 12 Km)-준희님 응원판-

               515.5 봉(성터 흔적)-일출-무명안부-바위암릉 우회등로-방장산 쓰리봉 갈림삼거리-방장산 쓰리봉(733.6봉)-변산지맥 분기점-710.2 무명바위봉-

               산죽지대-바위암릉 우회등로-488.1 이정판-지독한 잡목과 산죽지대-406.2 무명바위 및 소나무봉-25번 송전탑-우거진 칡과 가시넝쿨-65번 송전탑-

               비포장 임도-소갈재 안부-자작나무 조림지-63번 송전탑-289.1봉-두승지맥 분기점-시누대 무명안부-옥녀봉(349.6봉, 삼각점, 거담봉 정상목과

               벤취쉼터)-무명안부-수리봉 정상목(298.7봉)-송전탑-이정표(교동 1.5 Km, 수리봉 0.2 Km)와 벤취숨터1-비포장 임도-편백나무 조림지-비포장 임도-

               전주이공 묘지들-갈림 삼거리(산불감시초소)-능선진입(동래정씨 묘지들)-비포장 임도-갈림 삼거리-조경수 농장-경주이공 묘지들-무명안부-비포장

               임도-왕림고개(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사거리-비포장 임도-장흥고씨 묘지들-도산재(가평로 2차선 포장도로)-한우목장-

               철망-134.9 무명봉-편백나무 조림지-소나무 등로 돌탑들-235.5봉 수산정-비포장 임도-무명안부-135.5 갈림삼거리-무명 묘지들-남평문공 묘지들-

               평산신공 표지-송촌고개(708번 왕림로 2차선 포장도로, 송촌버스 정류장, 송촌마을 이정석)-송촌1길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송촌마을 복지회관과

               경로당-애마 산행-자포길 2차선 포장도로-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농암 갈림사거리-신림로 2차선 포장도로-신림초교(23번 고인돌대로 4차선

               포장도로, 무림리 임리와 우화리 이정석)-만화 버스정류장-야동 버스정류장-흥덕장례식장-사천삼거리-목화교-제하사거리-동사삼거리-흥덕중학교-

               능선진입-비포장 임도-배풍산 옹달샘-배풍산(110.1 삼각점봉, 배풍정 육각정자와 흥덕배풍산공원조성비)-흥덕중학교 정문-잿말길 1차선 포장도로-

               잿말길 2차선 포장도로(치룡마을과 복룡마을)-치이삼거리(23번 부안로 2차선 포장도로)-신기삼거리-노동 버스정류장-신송마을 이정석-섬유질

               사료공장-고창군 산림조합-상연마을-솔비수목원-남당 버스정류장-신덕삼거리-신정마을 이정석-덕성 버스정류장-서해안고속도로 통과-십리동

               버스정류장-신리삼거리-줄포사거리-710번 줄포중앙로 2차선 포장도로-담소정 식당-차량 알바(10여 Km 알바)-연중길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

               줄포자동차정비공업사-태양광 발전설비-각동2리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선돌로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영전삼거리(707번 선돌로 2차선 포장도로

               대성농장 입간판)-선돌로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한우농장-신안촌길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갈림사거리(농업회사법인도래미팜)-신안촌길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부안로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원천 버스정류장(23번 부안로 4차선 포장도로)-용사 버스정류장(23번 부안로 4차선 포장도로)-

               사창길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영성재(사창마을)-마지막 민가와 창고-능선진입-113.4봉(유정봉?)-유정재(고사목)-218.8 무명봉-259.5봉(군초소와

               벙커 및 안테나)-279.5봉(돌담봉)-비포장 임도(못난작것 설명판과 벤취쉼터)-329.9봉-328.1봉-사창재-바위암봉 전망대-상여봉(389.2 삼각점봉)-

               노승봉(352.9 광산김공 묘지봉)-281 콘크리트 말뚝무명봉-298.4 말뚝봉-바드재(보안면 우동리와 상서면 청림리 경계, 2차선 포장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총 52.38 Km (장성갈재 통일동산에서 바드재까지)

               지맥산행 - 약 39.57 Km (방장산 쓰리봉의 변산지맥 분기점에서 바드재까지)

               접속구간 - 약 01.90 Km (장성갈재에서 방장산 쓰리봉 찍고 변산지맥 분기점까지)

                               약 10.91 Km (차량 이동 시 알바) 

산행트랙 : 20191228 변산지맥 제1구간 장성갈재-분기점-바드재.gpx

                최근들어 전파 방해가 있는지 정상 트랙 이외에 직선으로 만들어진 튄 트랙이 발생하여 실제 산행한 트랙과 다르게 표기된 점 참고바람니다. 

산행시간 : 09시간 55분 (07시 13분부터 17시 08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3시 30분 애마로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송용리 송촌복지마을회관까지 이동

                                 06시 50분 지인의 도움으로 편안하게 장성갈재 통일동산(갈재로 2차선 포장도로)까지 이동

                                 07시 13분 본격적인 변산지맥 산행 시작

                       올때 - 17시 08분 바드재에서 지맥 산행 종료 후 배낭 정리

                                 17시 15분 바드재 정상에서 부근에 사시는 SUV 차량 부부의 호의로 편안하게 영전사거리까지 이동(차주분님께 감사 드림니다)

                                 18시 20분 애마가 주차되어 있는 용사버스 정류장까지 도보로 이동 중 어정밥상에서 갈비탕으로 저녁까지 해결 후 애마 회수

                                 18시 45분 가까운 개암힐링찜질방에서 하룻밤 휴식 (10,000.-)

변산지맥이란 ???

영산기맥의 장성갈재에서 서쪽으로 약1.7 Km 떨어진 734미터봉인 쓰리봉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347.4미터봉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수산(237봉)을 일구고 708번 도로가 지나는 송촌에 이르며 송촌에선 방향을 바꿔 북진하며 변산반도 국립공원이 시작되는 부안군 보안면 남포리 사창마을까지 장장 22 Km를 비산비야의 구릉지를 지난다.
이구간은 최고봉이 109.2미터(배풍산)이고 주로 20미터에서 30미터의 구릉지로 도로나 농로를 따라 신림, 흥덕, 줄포, 보안면등 4개면을 지난 후 
변산반도 국립공원에 들어서면 방향을 다시 서쪽으로 바꿔 노승봉(352.9봉), 옥녀봉(432.7봉), 세봉(433봉), 신선봉(491봉)을 지나고 말재로 내려섰다 다시 갑남산(409봉), 사투봉(169.2봉), 봉화봉(174.2봉)을 세우고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변산반도 격포항 남쪽에 그 여맥을 묻는다.
도상거리는 약 56.5 Km 정도 되고 지역의 특성을 살려 이 산줄기를 변산지맥이라 하는데 
산줄기 좌측으로 흐르는 물은 갈곡천이 되어 곰소만으로 들거나 직접 서해바다로 들고 우측으로 흐르는 물은 고부천이 되어 동진강에 합류하거나 두포천이 되어 서해바다로 들거나 또는 직접 서해바다로 든다.

 

 

악명 높은 가시잡목들이 수그러 들어 그 동안 접근이 쉽지 않았던 호남의 산줄기들을 본격적으로 답사하기 시작하며 선정된 첫번째 변산지맥 산행에 올라 처음으로 애마를 이용해 길게 진행해 새로운 경험을 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변산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전라북도 고창군과 정읍시 및 부안군 그리고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및 네이버의 지식백과와 다음의 백과사전 그리고 산림청과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게 지맥 산행에 올인하며 진행하리란 생각을 못했기에 그저 오르고 싶었던 곳들과 집에서 가까운 곳들 위주로 진행하다 보니 점점 산행지가 집에서 멀어지고 또한 거리가 먼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면 이틀 연속 산행으로 지맥 하나를 마무리하고 올라오게 되면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신산경표 상에 있는 162지맥 완주를 목표로 진행하게 되었다.

그래서 진행했던 지맥 산줄기와 진행해야 할 지맥 산줄기를 분류하고 교통편과 숙박편을 확인하다 보니 역시 겨울철에는 가시잡목이 우거져 여름철에 진행하기 어려운 호남지역에 산재되어 있는 산줄기들을 오르는 것이 맞을 듯 싶어 확인하다 첫번째 산행지로 결국 변산지맥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오래 전 남여치에서 내소사로 진행하며 보였던 변산지맥 산줄기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방의 인구가 줄면서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운행하는 새벽 이른 시간의 군내 또는 시내버스들의 운행시간이 단축되어 학생들이 등교를 하지 않는 날에는 운행이 되지 않기에 어려움이 있는데 이곳 정읍의 버스 시간표 역시 바뀌었는지 2년 전까지 운행하던 6시 35분 운월행 버스의 운행이 보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이곳 부안에 있는 지인의 도움으로 이틀간 편안하게 날머리에서 들머리로 이동하게 되었다.

택시를 타면 편안하고 나중에 진 빚을 갚지 않아도 되니 좋겠지만 이 산객이 산행을 좋아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고 또 사업적으로 많은 인연이 있는 지인이기에 거절하기 어려워 이렇게 신세를 지니 이번 산행은 편안하게 진행을 하였지만 마음속에 남아 있는 빚으로 인한 부담은 커졌던 시간이었다. 

 

변산지맥 산행을 위해 들린 장성갈재와 방장산 쓰리봉은 이제 세번째 산행으로 오래 전 눈이 소복하게 쌓였던 시절에 이곳 정읍쪽에 일이 생겨 내려왔다 우연히 방장산이 그리워 들렸다가 본격적인 산줄기 잇기 산행을 진행하면서 영산기맥 산행을 위해 두번째 들렸던 곳이기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송촌마을회관 앞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부안에서 건너온 지인의 도움으로 장성갈재에 도착을 하니 이제 막 아침 7시를 넘기는데 아직도 어둠속 세상이라 지인을 보내고 잠시 더 산행 준비 후 바리게이트가 보이는 등로를 타고 오르막 등로를 통해 등줄기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방장산 쓰리봉에 도착을 하니 이제 막 떠오른 아침 햇살이 박무속 뿌연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잠시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고 쓰리봉 바위에 올라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내려 가 변산지맥 분기점을 지나 보이는 바위봉에서 오늘 아침에 걸어 올라 온 북북동과 동쪽 방향을 살펴보니 방금 전 오르며 일출을 봤던 성터의 흔적이 남아 있는 515.5봉이 바로 발 밑으로 내려다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좌측으로 입암산 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뒤로 백암산에서 내장산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호남정맥 마루금이 이제 막 떠오른 아침 태양 아래 환상의 모습으로 추억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어 잠시 귀를 기울여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방장산 쓰리봉을 다녀와 드디어 변산지맥 분기점을 통과한 후 거대한 바위암릉과 지독한 산죽 및 잡목지대를 어렵게 통과해 내려가니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을 듯한 가시잡목지대가 이어지고 잠시 후 첫번째 송전탑을 만나 진행방향으로 살펴보니 그래도 아름답게 보이는 환상의 마루금이 속마음을 숨기고 부드러운 등로를 펼쳐 보이며 내려오며 고생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를 해주고 이는 듯 보인다.

두승지맥 분기점과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아름답고 그 우측 뒤 저 멀리 조만간 다시 올라야 할 두승지맥의 두승산 방향의 봉우리들이 얼굴을 내밀며 존재감을 알리고 있어 잠시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쉬어가는 시간도 가져 본다.

보이는 등로는 아주 부드럽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면 또 어떤 말 못할 속사장을 가지고 있을지 조금은 걱정과 고민도 되었던 시간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지인의 도움으로 편안하게 장성갈재에 도착을 해 지인을 먼저 보내고 잠시 어둠이 엷어지길 기다리며 주위 풍경을 몇장의 사진에 담은 후 강한 바람이 불어 오는 고갯마루를 지나 멀고도 긴 변산지맥 산행을 시작해 본다.

이제 세번째 방문한 장성갈재는 앞으로 더 올 기회나 있을지 궁금한 시간으로 온다고 해도 여유로운 산행을 즐기기 위해 들리던지 아니면 여행으로 올 기회가 될 것이기에 심적으로는 지금까지 방문했던 세번에 비해 많은 여유로운 방문이 될 것이다 

장성갈재(영산기맥)전북 정읍에서 전남 장성으로 넘어가는 일명 장성 갈재라 불리우는 노령은 호남지방 노령산맥 중의 험준한 산세를 가로지르는 교통의 요지로서 옛부터 많은 문화유적과 경승지를 간직한 고갯길로서 해발고도는 276미터이고 지명의 기원은 전설에 의해 기생 노아(蘆兒)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장성갈재 즉 일명 노령은 전라남도 장성군의 북쪽에 위치하고 북이면 원덕리와 전북 정읍시 입암면 등천리와의 남북으로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고 내장산에서 입암을 거쳐 방장산으로 이어지는 동서 산줄기가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를 이루며 이들 두 산의 안부에 해당하고 호남고속도로와 1번 국도 그리고 호남선이 통과하는 주요 교통로이다.

세종실록지리지(장성)에 요해(要害)는 위령(葦嶺)이고 현의 북쪽에 있는데 험조하다 라는 기록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장성)에는 위령(노령)이라고 하는데 현 북쪽 30리에 있으니 요해의 땅이고 (중략) 정읍현의 노령이 사나워 도적이 떼를 지어 있으면서 백주에도 살육과 약탈을 하여 길이 통하지 않았다고 수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장성)에 노령(蘆嶺)은 북 40리에 있고 정읍과의 경계이며 대로로서 요해이다 라고 기재되어 있고 장성읍지에도 노령은 북이면 북단에 있고 입암에서 유래하며 정읍의 경계를 지나고 일등도로이다 라는 기사내용이 있다.

지승(장성)에는 노령이 정읍을 경계로 소노령과 대노령으로 구분되어 제시되어 있고 광여도에는 대노치와 소노치로 표기되어 있으며 호남지도와 1872년지방지도(장성)에는 노령(蘆嶺)만 기재되어 있다.

3분여 산행 준비를 하면서 머무르는 동안 단 한대의 차량도 만나지 못했으니 이제 이 장성갈재도 분주했던 옛 영광을 뒤로하고 이렇게 산행을 하는 산객들만 간간히 찾는 잊혀지는 고갯마루가 되어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겨지는 아침이다.

 

10여년 전 이곳 근처에 일이 있어 내려왔다 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 있는 방장산이 그리워 왔었고 몇 년 전 영산기맥 산행을 위해 들렸던 통일동산도 잠시 둘러보고 북쪽인 정읍에서 남쪽인 장성방향으로 갈재로 2차선 포장도로응 따라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차량 통제용 바리게이트가 보이고 그 옆으로 돌아 들어가니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는데 그 도로는 금새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있다.

10여미터 들어가니 임도 우측으로 이정표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는데 진행 방향인 우측으로 쓰리봉까지는 1.8 Km 거리라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눈에 들어 온다.

우측으로 90도 꺽어 능선으로 오르니 편백나무 군락지 근처에 준희님이 걸어 놓은 응원판이 보이고 활엽수 낙엽이 깔려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급하게 걸어 오르니 이마와 등줄기에서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하고 잠시 후 키 작은 산죽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바람에 노출된 얼굴과 손은 무척 춥게 느껴지지만 오르막 등로를 타고 가파르게 오르다 보니 등줄기에선 굵은 땀방울이 등산복을 적시는 시간에 돌담들이 보이는 515.5봉에 도착을 해 옛추억을 더듬으며 사진 몇장 남겨 본다.

 

성터 흔적이 있는 515.5미터의 돌담지대를 넘어 산죽을 살펴보며 안부쪽으로 걸어 내려가다 등로 좌측을 보니 저 멀리 백암산쪽 능선 위로 아침 일출이 시작되는데 등로 옆으로 서 있는 참나무 가지들에 막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자리를 잡으며 어렵게 커다란 참나무 가지 사이로 떠 오르는 아침 일출을 사진에 담고 다시 안부쪽으로 걸어 내려가며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오랫만에 다시 만나는 일출에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무탈한 산행을 빌어 본다.

 

잠시 후 무명안부를 지나 관목들 아래 자라난 키 작은 산죽등로를 타고 계속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몸이 풀리면서 호흡도 돌아오고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오르니 거대한 바위암릉이 앞을 가로막고 옆으로 돌아 오르니 하얀 눈이 등로에 깔려있어 잠시 걱정을 했지만 내린 눈의 양이 적어 아이젠 없이도 진행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렇게 산죽을 헤치며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변산지맥 분기점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방장산 써래봉이 올려다 보이기에 잠시 써래봉을 다녀오기로 한다.

좌측으로 오르니 바위들이 보이고 곧이어 스테인레스 판으로 된 정상판과 바위 사이에 쓰리봉이라는 정상목이 보여 사진 한장 남기고 그 바위 정상에 올라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내려가기로 한다. 

방장산은 전라북도 고창군·정읍시와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북쪽에 위치하며 해발고도는 733.6미터이다.

호남정맥의 내장산이 남서로 내려오다가 본 줄기는 남으로 뻗어가고 그 맥이 입암산, 내장산, 방장산, 문수산으로 이어지고 산줄기 사이의 낮은 안부가 갈재(노령)이고 아래에는 고창과 장성을 넘나드는 양고살재가 있으며 산 정상부에 봉수대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장성)에 반등산(半登山)은 현 북쪽 18리에 있으며 고창현에 상세히 나온다는 기록이 있고 대동지지(장성)에도 반등산(半登山)은 북으로 40리에 있고 정읍본부 4읍과 고창 흥덕과 교차하는 곳이며 수도사가 있다고 하였다.

장성군읍지에 반등산(半登山)은 북이면에 있고 노령에서 유래하며 고창과의 경계를 이루는데 일명 방장산이라고 하며 고부의 두승산을 영주산이라 하고 부안의 변산을 봉래산이라 하여 세 산을 삼신산이라 였는데 이 줄기는 남으로 영광의 불갑사와 무안 승달산까지 달린다 라고 기재되어 있다.

해동지도(장성)에 반등산(半登山)이 노령과 함께 나타나고 대동여지도에도 반등산(半登山)으로 표기되지만 1872년지방지도(장성)에는 반등산(盤登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백제 가요 방등산가의 무대이기도 한 지리산 무등산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으로 조선 시대까지의 이름은 방등산이었는데 방정하고 평등하다 라는 뜻을 가진 방등(方等)이라는 불교 용어이며 조선 인조 때 중국의 삼신산 중 하나인 방장산과 닮았다고 하여 현재 지명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오래 전 하얀 눈이 내린 날 이 등로를 타고 양고살재로 내려갔던 기억이 생생한 등로가 펼쳐져 있어 잠시 추억에 젖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쓰리봉이라는 정상목이 바위틈에 서 있는 써래봉 바위에 올라 남서쪽을 살펴보니 활공장과 방장산 정상 그리고 보이지 않는 방문산으로 이어지는 방장산 주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저 능선을 타고 하얀 눈을 밟으며 고운 추억을 남겼던 것이 벌써 10여년이 훌쩍 지난 과거가 되어 버렸다.

이곳 방장산은 전라북도 고창군·정읍시와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734 미터이며 벽오봉이라고도 부르는 방문산(640m)과 능선이 연결되어 있다.

고려사악지에 실린 다섯 편의 백제가요 중 방등산곡이 전하는데 도적떼에게 잡힌 여인이 남편이 자기를 구하러 오지 않아 애통하다는 내용으로 산이 신령스럽고 산세가 깊어 옛날에는 도적떼가 많았다고 하였으며 방등산이라고 불렀다가 근래에 들어 산이 넓고 커서 백성을 감싸준다는 뜻으로 방장산이라 고쳐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산기슭에 세 개의 계곡이 있는데 이 중 서쪽 기슭의 용추폭포가 흐르는 용추골이 제일 유명하며 수심이 깊어 용이 승천하였다고 전한다.

폭포 아래 웅덩이의 깊이까지 치면 높이가 20미터 정도 되며 경치가 아름답고 경사가 가파른 협곡으로 별로 높지는 않지만 봉우리가 많고 경사가 심하므로 산행할 때 주의해야 한다.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를 가르는 고개인 장성갈재에서 시작하여 497미터봉에 오른 뒤 안부로 내려와서 능선을 따라 정상에 닿고 정상에서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고창고개에 이르는데 여기서 북쪽은 용추폭포로 가는 길이고 남쪽은 장성군 북이면 청운리로 가는 길이다.

방문산을 들러 하산한다면 고창고개에서 왼쪽으로 돌아서 편백나무 숲을 지나면 된다.

하산은 방문산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가 상원사로 곧장 내려가거나 597m봉을 지나 양고살재로 내려가면 되며 장성갈재에서 시작하여 양고살재로 하산하는 코스는 6시간 정도 소요된다.

주변에는 내장산국립공원, 선운산도립공원, 석정온천, 고창읍성, 장성 입암산성 및 백양사 등 명소가 많다.

언제 다시 저 마름다운 방장산 능선을 타고 걸으며 힐링하는 시간이 올 수 잇을지 궁금해지는 시간이다.

 

방장산 좌측인 남쪽으로는 장성 백암리의 백암제와 달성리의 달성제가 바로 발 아래로 펼쳐져 있고 그 뒤로 박무속에 비산비야를 이루고 있는 장성쪽 아침 풍경이 환상적으로 펼쳐져 있다.

장성쪽 비산비야 지나 좌측 저 멀리 광주시의 무등산이 방금 전 떠 오른 강렬한 태양빛 아래 존재감을 알리는데 연무현상으로 인해 그 뚜렷한 모습은 보이지 않아 답답하기도 하다.

 

그렇게 장성쪽 풍경과 무등산을 살펴보고 눈을 좌측으로 돌려 남동쪽을 살펴보니 사진 우측 끝자락에 희미한 무등산이 여전히 자리를 잡고 존재감을 알리고 사진 중앙부쪽으로 조만간 걸어야 할 병풍지맥 상 불태산과 병풍산이 조망되고 그 좌측 끝자락에는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추월산의 길쭉한 산줄기도 펼쳐져 있어 잠시 더 시간을 보내며 자세히 살펴본다.

이곳 정상에 오르며 봤던 박무현상 또는 연무현상으로 인해 이런 멋진 조망과 풍경은 기대도 하지 못했는데 기대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풍광에 마음을 빼앗겨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사방팔방으로 펼쳐진 황홀한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고 이제부터 걸어 내려가야 할 동쪽으로 변산지맥 분기점과 바위암봉을 살펴보니 낙엽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차갑게 불어 오는 산상의 아침을 더욱 차갑게 만들고 있다.

그 분기점 우측 저 멀리에는 입암산 쪽 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뒤 저 멀리에는 정읍쪽 산줄기들이 펼쳐져 있다.

 

변산지맥 분기점과 바위봉우리를 살펴보고 눈을 좌측으로 돌려 북쪽을 살펴보니 두승지맥 분기점과 옥녀봉 지나 비산비야로 이어지는 변산지맥 마루금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동림저수지 좌측 아래로 흥덕쪽 배풍산도 박무속에 가물거리고 있다.

거리상으로 어둠속에 진행하기 싫다면 변산지맥은 세구간으로 나눠 진행하는 것이 맞을 듯 싶은데 송촌에서 저 흥덕중학교까지 차량으로 이동하고 흥덕중학교에서 배풍산을 왕복한 후 다시 보안면 남포리까지 애마로 이동하게 되면 두구간으로 나눠도 가능할 것 같아 가능하면 약간의 편법이지만 애마를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해 본 변산지맥 산행이다.

대부분 차량으로 이동을 하게 될 비산비야의 마루금을 한눈에 내려다 보는 기분 역시 평서 내려다 보던 마음과는 다른 심정으로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진행해야 할 비산비야로 이어지는 변산지맥을 살펴보고 눈을 다시 좌측인 북서쪽을 확인하니 신림쪽 신림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고창의 선운산 줄기가 서해바다를 가로막으며 길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온다.

그 뒤로 보여야 할 서해바다와 부안군 격포항 쪽 변산지맥 마지막 산줄기를 찾아 보지만 연무현상으로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아 조금은 아쉬웠던 시간을로 남겨 본다.

 

오랫만에 오른 방장산 써래봉 정상에서 360도로 펼쳐진 약간의 박무가 드리워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조심해 바위를 내려 와 눈이 덮혀 있는 산죽 등로를 타고 변산지맥 분기점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니 방금 전 올랐던 갈림 삼거리 지나 서쪽의 바위봉으로 가는 일반 등로 위 나뭇가지에 준희님이 걸어 놓은 변산지맥 분기점 이정판이 걸려 있어 추억 한장 남기고 산행을 이어간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변산지맥 산행을 시작하는데 도상거리로 약 56 Km 정도이니 실제 산행거리로는 60여 Km가 넘는 거리가 될 것이다.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기 전 바위 암봉에 올라 제일 먼저 동쪽으로 오늘 이 산객이 올라 온 장성갈재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발 아래에 성터의 흔적이 있는 515.5봉이 내려다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영산기맥의 입암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지고 그 좌측인 북동쪽으로 입암저수지와 마을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옆으로 호남고속도로와 철도가 길게 뻗어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사진 좌측 아래로는 산행 들머리로 생각했던 연월리가 내려다 보이는데 인구가 줄면서 아침 이른 시간의 버스가 운행을 중단하면서 앞으로는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 안타까운 현실이 아쉬운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방장산 써래봉인 쓰리봉과 변산지맥 바위봉에서 많은 사진을 남기며 고운 추억을 담은 후 바위지대를 지나 내려가니 중간 크기의 산죽밭이 펼쳐져 있고 조심하며 그 산죽을 따라 내려가니 거대한 바위들이 앞을 가로막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바위 너덜길이 보이고 그 바위 위에는 하얀 눈이 내려 쌓여 있어 많이 위험하게 보여 난감해 하는데 선답자의 띠지들이 우측으로 길게 우회하며 걸려있어 따라가다 보니 조금은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어 바위암릉을 하나 우회한 지점에서 좌측으로 길게 트래버스하듯 정상 마루금으로 접속한다.

그렇게 정상마루금으로 복귀하며 바위너덜길을 올려다 보니 생각보다 진행이 어려운 등로이다.

 

바위 너덜길을 지나 다시 만나는 산죽지대를 타고 우측 능선 마루금을 타고 걸어 내려가니 산죽잎에 내려 앉았던 하얀 눈들이 등산화와 등산바지에 흩뿌리며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커다란 참나무 아래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고 그 잡목 아래에는 산객의 허리춤까지 자란 파란 산죽들이 펼쳐져 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렇게 한동안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방장산 줄기가 드높게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산죽이 사라지며 잡목들이 발목응ㄹ 잡기 시작한다.

잡목 무명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에 준희님이 걸어 놓은 488.1 정상판이 보여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한다.

 

그 488.1봉을 지나 지독한 잡목과 산죽지대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고 잠시 후 산죽이 끝이나며 진행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의 잡목들이 온 몸을 햟퀴며 생채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몇개의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고 그 바위 사이에 커다란 소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406.2미터의 무명봉을 넘고 다시 지독한 잡목지대를 뚫고 어렵게 내려가니 제법 굵은 참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평이한 등로로 바뀌어 있다.

잠시 후 25번 송전탑을 만나 진행 방향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들을 감상하고 내려가니 지독하게 무성했던 덩쿨식물들이 말라 있는 곳을 지나 묵은 비포장 임도를 통과하고 또 다시 65번 송전탑을 지난다.

송전탑을 지나 내려가니 좌측은 시멘트 포장도로이고 우측은 비포장 임도가 이어져 있는 비포장 임도를 만나 우측으로 임도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걸어 온 비포장 임도는 좌측 아래로 내려가고 등로는 우측의 깊은 안부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안부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니 안부 좌측 위로 커다란 신수같은 나무가 보이고 그 나무 옆으로 나 있는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이곳이 지도 상 소갈재로서 그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자료들이 보여 정리를 해 본다.

소갈재는 전라북도 정읍시의 입암면 연월리와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로서 고개 북쪽에는 밤고개(율치)가 남쪽에는 방장산이 있다.

소갈재는 소노령(小蘆嶺), 소갈치(小葛峙) 등으로 불리었으며 만기요람에 소노령(小蘆嶺)은 흥덕(지금의 고창군)과의 경계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대동지지(정읍)에도 소노령(小蘆嶺)은 서남쪽 30리에 있흥덕과의 경계이다 라고 수록되어 있으며 호남지도에 반등산과 율치 사이에 소노령으로 표기되어 있.

해동지도광여도 등에도 고창과의 경계부에 소노령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고개 지명과 관련해 노령의 옆에 위치해 소노령이라고 한다는 설이 있다.

 

소갈재 안부를 지나 좌측 신수 옆으로 보이는 짧은 절개지를 오르니 지독한 잡목과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있는 곳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방장산 쓰리봉과 변산지맥 분기점이 저 높이 올려다 보이고 사진에 담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자작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다.

자작나무 조림지를 지나니 63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 우측 앞을 살펴보니 두승지맥의 산줄기 우측으로 정읍시가 보이기 시작한다.

조만간 다시 올라야 할 두승지맥과 정읍시를 살펴보며 사진 몇장 더 남기고 갈길이 바쁘니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두승지맥과 정읍시를 살펴보고 눈을 우측으로 돌리니 입암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저수지 가까이에는 입암면 마을이 보인다.

다시 이어지는 커다란 활엽수와 관목들이 보이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잘려진 고사목에 289.1 정상판이 걸려있고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한다.

등로 좌측 아래로는 방금 전 소갈재에서 헤어진 비포장 임도가 따라오고 있는 모습이 잡목 사이로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 나즈막한 289.1봉을 지나니 등로에는 쓰러져 널부러진 굵은 고사목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커다란 소나무들이 보이는 무명안부를 통과한다.

그 안부를 지나니 커다란 활엽수 한그루가 서 있는 무명봉에 오르고 이곳부터 등로에는 다시 널부러진 커다란 고사목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고사목들을 피해 힘들게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칡넝쿨이 우거졌던 지대를 지나니 활엽수 낙엽이 푹신하게 깔려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바위들이 등로에 깔려 있는 260.8 무명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바위들이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전진하니 수렛길같은 넓은 등로가 나타나고 편안하고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잡목 사이로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두승지맥 분기점과 옥녀봉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관목들이 빼곡한 뚜렷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드디어 커다란 소나무들이 보이는 두승지맥 분기점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준희님이 두승지맥 분기점이라는 이정판을 걸어 놨다. 

두승지맥이란 영산기맥 장성갈재에서 올라 선 써래봉에서 북으로 변산지맥이 분기하여 소갈재로 내려앉았다가 다시 올라선 옥녀봉(349.6봉직전의 전위봉격인 320봉에서 북동으로 또 하나의 산줄기를 갈라내는데 이 산줄기는 계속 북진하면서 두승산을 지나 부안의 백산을 끝으로 고부천이 동진강을 만나는 부안동진강교 아래까지 이어지는 32.9 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서쪽으로 변산지맥과 함께 고부천의 물막이가 되고 동쪽으로는 동진강을 흘려보낸다.

추억 한장 남기고 준비한 간식으로 허기를 면한 후 다시 우측으로 이어지는 두승지맥을 한번 더 살펴본 후 좌측으로 이어지는 옥녀봉 가는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 본다.

이곳 두승지맥 분기점은 내년에 다시 올라 만나야 하기에 조금 더 많은 사진으로 흔적을 남겨 보는 시간이었다.

 

조만간 다시 만나야 할 두승지맥 분기점에서 추억을 남기고 허기를 달랜 후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니 시누대가 무성한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는데 등로 좌측으로 오늘 이 산객이 지나 온 방장산 쓰리봉과 변산지맥 분기점 그리고 좌측으로 515.5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바쁜 발걸음 멈추고 다시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보기에는 부드러운 능선 등로로 이어졌는데 그 속살은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들이 우거져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방장산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변산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다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이제 등로 우측으로 두승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이어지고 그 산줄기 넘어로는 정읍시의 회색 건물들이 군집을 이루며 빛나고 있다.

뚜렷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드디어 도상 옥녀봉인 349.6 삼각점봉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에는 옥녀봉 대신 거담봉이라는 정상목이 박혀 있고 그 옆으로는 삼각점과 벤취쉼터들이 보인다.

이곳 옥녀봉에 관한 자료는 찾지 못하였지만 대부분의 옥녀봉이 유사하듯 이곳 옥녀봉도 옥녀와 관련된 지명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곳 옥녀봉이 속해 있는 용교리에 관한 자료를 찾아 정리해 본다.

용교리는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 있는 리로서 논농사 중심의 지역이지명은 행정구역 폐합 당시 통폐합된 여러 마을 중에 용전과 옥교의 이름을 한 글자 씩 취해서 용교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교동, 학동, 용전, 주산, 진목 마을이 있는데 교동마을은 마을 앞에 다리가 있어 처음에는 다리골이라고 하였는데 그 뒤에 교동으로 개칭하였학동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학의 형국이며 마을 뒷산이 날아가는 학 채로 되어있어 학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용전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용이 서리고 있는 모양과 같다 하여 용전이라고 부르게 되었주산마을은 마을이 배 형국이라 하여 명명하였으며 진목마을은 마을에 참나무 정자가 있었던 것에 연유하여 명명하였다.

 

삼각점과 거담봉이라는 정상목이 박혀 있으며 벤취쉼터들이 보이는 옥녀봉을 출발해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잡목들이 우거졌다 말라있고 많은 활엽수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올라간다.

갑자기 잡목이 사라지고 굵은 소나무들이 아름다운 등로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또 다른 정상목이 박혀 있어 올라가 보니 수리봉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그 글자 이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봉으로서 Oruxsmap의 고도로는 298.7미터를 가리키는데 실제 높이는 조금 더 높아 보이는 봉우리이다.

 

수리봉이라는 정상목이 박혀있는 봉우리 우측인 동쪽과 북쪽을 살펴보니 동쪽으로는 두승지맥 산줄기 넘어 입암산과 오봉산이 보이고 북동쪽으로는 정읍시가 그리고 그 정읍시 좌측인 북쪽으로는 중앙저수지와 원천저수지 넘어 저 멀리 두승지맥의 주산인 두승산도 보인다.

다시 그 수리봉을 지나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전진하니 번호가 보이지 않는 송전탑을 지나 벤취쉼터 하나가 보이고 등로가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길목에 이정표가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진행 방향으로는 교동까지 1.5 Km이라는 표시가 보인다.

 

이정표를 지나 굵은 소나무가 보이는 넓은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안부를 지나 오르니 고사목들이 보이는 250.8 무명봉에 도착하고 그 무명봉을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벌목지가 나타난다.

그 벌목지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수많은 전선 넘어 방장산 주능선이 길게 펼쳐지고 그 방장산 좌측 끝자락에서 이곳까지 이어지는 변산지맥 마루금도 살짝 보이고 있다.

 

방장산과 지나온 변산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며 벌목지 경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와 시멘트 포장도로가 연결되는 도로로 내려서고 그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짧게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편백나무 조림지가 나타나는데 등로는 우측 직진으로 내려가는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그 편백나무 조림지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짧은 편백나무 조림지를 지나니 굵은 소나무가 길게 이어지는 멋진 등로가 열리고 그 등로를 따르니 점점 더 잡목들이 우거지기 시작하고 어렵게 잡목을 헤치며 전진하니 금새 비포장 임도를 만나고 그 임도를 따르니 잘 관리되고 있는 전주이공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를 지나며 등로 좌측 앞으로 살펴보니 좌측의 방문산과 우측의 무명봉 사이로 고창군쪽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사진 몇장 남기고 진행을 이어간다.

 

계속 이어지는 묘지 앞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전진하며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방장산과 방문산 줄기가 여전히 잘 올려다 보이고 진행 방향으로는 키 작은 소나무들과 그 사이로 비포장 임도가 뻗어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잠시 등로 우측에서 올라오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 한쪽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어 조금은 의아한 생각으로 살펴보고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다시 동래정씨 묘지들이 보이는 곳에서 좌측인 직진 방향으로 가는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그 동래정씨 묘지 뒷쪽으로 열려 있는 능선 방향으로 등로는 이어지고 있다.

억새들이 무성한 무명봉을 지나 다시 나타나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잘 관리되고 있는 정원수들이 가득한 농원을 만나 힐링하듯 걸어 본다.

 

조경수들이 보이는 농원을 지나니 약간의 잡목지대를 통과하고 장흥고씨 묘지지대를 지나 만나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방장산과 방문산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그 좌측 뒤로는 방장산에서 이곳으로 오늘 아침에 이 산객이 걸어 온 마루금이 아름답게 이어져 온다.

한동안 그렇게 편안한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인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우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시멘트 포장도로와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갈림사거리인 왕림고개에 도착을 한다.

왕림고개(왕림과 월계를 이어주는 수렛길 안부)는 왕림마을에서 붙여진 이름처럼 보이는 지명이름으로서 왕림마을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왕림(旺林)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호형(虎形)국인데 나무가 없음으로 마을 남서쪽으로 약 200미터 지점에 자리를 잡고 범에게 숲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면서 마을 이름을 왕림으로 부르게 되었다.

마을에 숲이 무성하면 마을이 흥하고 숲이 없으면 폐한다고 하여 많은 나무를 심어서 숲이 우거져 있는데 이 때문에 마을이름을 왕림이라 명명하였다

월계마을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덕화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덕곡 서쪽에 있는 마을이고 뒷산이 달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왕림갈림 서거리에서는 직진 방향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사거리 안부를 지나 직진의 방향으로 오르니 임도 우측으로는 편백나무 조림지가 나타나고 좌측으로는 푸른 보리밭이라 생각되는 드넓은 밭 경작지가 펼쳐져 있는 사잇길로 발걸음을 이어간다.

임도 좌측으로는 드넓은 파란 보리밭 넘어 방장산과 변산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그 풍경들을 사진에 담으며 진행하니 찬바람이 불며 한기를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후 장흥고씨 묘지를 지나 여전히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이제 도산재 지나 목장 뒤로 올려다 보이는 235.5봉이 그림처럼 다가와 있다.

그렇게 주위 풍경들을 즐기며 진행하니 갑자기 등로는 비포장 임도를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 가시잡목지대로 들어가는데 어렵게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진행하니 할아버지 한분이 약초를 캐고 있어 잠시 인사 드리고 이야기를 나눈 후 출발해 내려가니 가평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도산재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건너에는 커다란 한우 목장이 보이고 그 목장 주위로는 철망이 쳐져 있어 산행 들머리를 찾아 잠시 헤매게 되었다.

도산재(가평로 2차선 포장도로)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인 도산마을에 있는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도림리는 들이 넓은 지형이도림리의 지명은 행정구역 폐합 당시 병합된 지역 중 도산과 왕림의 이름을 한 글자 씩 따서 도림리라 하였는데 도림리의 자연마을은 구산, 기곡, 도산, 아산, 왕림, 월화 마을이 있다.

도산재에서 가평로를 타고 우측으로 한동안 걸어 내려가 목장 철망이 조금 느슨한 곳에서 어쩔 수 없이 그 철망을 넘어 목장으로 들어가 산행을 어렵게 이어가 본다.

 

도로 우측 아래로 왕림마을을 살펴보고 어렵게 목장 철망을 넘어 목장 내부의 초지를 통해 능선 방향으로 오르니 소나무들이 보이고 잠시 후 방목되어 있는 커다란 소들이 이방인의 출현에 놀라기는 커녕 이 산객이 걸어 오르는 방향으로 몰려 와 약간은 공포심을 가지고 어렵게 쫒아 버리니 우르르 몰려 달아난다.

그 틈을 이용해 재빠르게 능선 방향으로 걸어 오르니 리더가 뒤돌아 오고 그 뒤를 많은 소들이 다시 뒤따르며 멀어지는 이 산객을 멀끄러미 올려다 보고 있어 조금은 안심하는 마음으로 주능선으로 오른다.

잠시 후 다시 목장 철망을 만나 그 철망을 따라 좌측으로 오르고 그 철망을 넘어 주능선으로 오르니 소나무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134.9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무명봉을 지나니 갑자기 등로는 지독한 잡목구간으로 변하고 온 몸에 생채기를 만들며 어렵게 그 잡목지대를 통과하니 벌목 후 편백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조림지가 펼쳐진다.

등로 우측으로는 비산비야로 이뤄진 변산지맥 산줄기가 배풍산 넘어 저 멀리 줄포쪽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그 편백나무 조림지를 지나 오르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길게 열리고 잠시 편안하게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등로 양쪽으로 작은 많은 돌탑들이 쌓여 있어 그 돌탑들을 구경하며 쉬엄쉬엄 올라 본다.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소나무 등로에는 여전히 수많은 작은 돌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누가 이런 돌탑들을 이곳에 세워 뒀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렇게 한동안 무심으로 걸어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 그네와 운동기구들이 나타나는데 그 누가 이런곳까지 올라 와 운동을 하고 내려갈 수 있는지 한심한 지자체 행정에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운동기구가 보이는 곳을 지나 오르니 육각정의 수산정이 나타나고 그 앞에는 수산정건립기념비와 좌측 나뭇가지에는 준희선생님이 걸어 놓은 235.5미터라는 이정판이 걸려 있다.

자도에는 235.5봉으로만 표기가 되어 있는 이곳 봉우리는 다른 지도에는 수산이란 이름으로 표기가 되어 있기도 한데 수산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수산정이 있는 235.5봉을 지나 보이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내려갈수록 더욱 멋진 소나무 등로로 변하고 있다.

편안하게 힐링하듯 걸어 내려가니 등로 옆에는 벤취쉼터 하나가 보이는데 오래되고 사용하지 않았는지 이끼가 끼어 있고 그곳을 지나 계속 평이하게 내려가니 갑자기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은 135.5봉으로서 등로는 우측으로 나 있는 등로를 따르는데 봉우리처럼 보이지 않고 일반 능선 상 봉우리처럼 느껴지는 봉우리였다.

 

우측으로 틀어 평이하게 걸어 가니 여전히 멋진 소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곧이어 등로 우측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무명묘지지대가 나타나는데 그 묘지지대 넘어로는 고창의 화시산에서 부안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들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이제부터 이 산객이 걸어 진행을 해야 할 마루금이 비산비야를 이루며 길게 이어지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제법 많은 산들을 올랐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미답지로 남아 있는 산들이 더 많은 듯 하니 언제나 이 산행에 대한 갈증이 해소될 수 있을지 스스로도 궁금하다.

화시산은 전라북도 고창군의 아산면 용계리와 운곡리, 부안군 사창리와 상등리 등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403미터이며 신증동국여지승람(고창)에 화시산은 현의 서쪽 15리에 있다 라는 기록이 있다.

화시라는 지명과 관련해 여지도서(흥덕)에 화시산은 현 서쪽 10리에 있는데 반등산(현 방장산)으로부터 시작해 북쪽으로 소요산에 이르며 전해지는 이야기로 산꼭대기에 큰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홀연히 저절로 쪼개져 불화살처럼 날아갔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대동여지도 (18첩 5면)에 고창현과 흥덕현 경계에 있는 사슬치에서 북서쪽으로 산줄기가 이어지다 화시산을 이루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고 그 밖에도 해동지도와 광여도 등의 지도에 두 현의 경계부에 화시산이 기재되어 있다.

북쪽의 소굴치와 최고봉인 화시봉(화실봉) 사이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지는 여러 암굴들이 줄지어 있는데 신라의 어느 왕자가 난을 피해 백제 땅인 고창으로 와서 가마를 타고 산을 오르며 투구를 벗어 놓았다는 투구바위(시루봉), 가마가 무거워 내려놓았다는 가마바위(상여바위), 촛불을 켜놓은 촛대바위, 수행한 장수가 호랑이를 몰아내고 왕자를 모셨다고 하는 왕자굴 등이 그것이다.

산의 남쪽 줄기 성틀봉 주변의 죽림리와 상갑리 일대에는 수백 기의 고인돌이 밀집해 있다.

저 화시산과 주위 산줄기는 또 언제나 올라 걸어 볼 기회나 있을련지 기대도 해 보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무명묘지 위에서 고창쪽 산군들과 이제부터 진행해야 할 부안쪽으로 이어지는 비산비야의 마루금을 살펴 본 후 남평문공 묘지를 지나니 평이한 등로를 지나 평산신씨 묘지 아래로 708번 왕림로 2차섡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도로 양쪽에는 송촌이라는 버스정류장이 서 있고 도로 건너 버스정류장 옆으로는 송촌마을이라는 원형의 오석 이정석이 보이는데 그 이정석 좌측으로는 도로를 넓히려는 도로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그 공사장과 버스정류장 사이로 나 있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늘 새벽에 애마를 주차했던 송촌마을회관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송촌마을(708 2차선 포장도로)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송용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자세한 지명유래는 찾을 수 없지만 소나무 송자를 써서 소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추측을 해 본다.

 

시멘트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마을로 내려가니 민가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임공기념비와 그 옆으로 효열부선산김씨기념비가 보여 사진 한장 남기고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길게 지어진 비닐하우스를 지나니 저 멀리 아침에 주차시킨 애마와 그 좌측으로 송촌마을복지회관과 경로당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고 드디어 오전 산행이 마무리되는 시간이다.

송용리는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있는 리로서 지명은 행정구역 폐합 당시 병합된 지역 중 송촌과 용암의 이름을 따서 송용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구정, 내동, 농암, 신송, 송촌 마을이 있는데 농암마을은 마을 앞 장등에 용바위가 있었는데 그 용바위를 보고 농암이라고 부르게 되었구정마을은 수랑샘이 있는 마을로서 샘이 아홉이 생겨야 마을이 흥하리라는 전설이 있다 하여 구정이라 명명하였으며 신송마을은 송촌 서쪽에 새로 된 마을이란 뜻으로 신송이라 명명하였다.

이곳 송촌마을복지회관 앞에서 애마를 회수해 한동안 애마를 이용해 산행을 이어가 보기로 하는데 처음으로 애마를 이용하다 보니 조금은 만족스럽지 못하고 찜찜한 점이 있지만 어짜피 도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해야 하니 세구간을 두구간으로 단축해 진행하려는 고육지책이라고 자위하며 진행을 이어간다.

 

애마를 회수 해 송촌1길에서 자포길로 갈아탄 후 우측의 소로인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도로 양쪽으로 밭 경작지가 드넓게 펼쳐진 비산비야를 달리며 산행이 아닌 여행같은 시간을 이어간다.

포장도로를 달리다 보니 엄나무 밭들이 보이는데 봄이 되면 유혹에 주의가 필요해 보이고 조금 더 진행한 후 뒤돌아 보니 저 멀리 방장산과 방문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여전히 그 위세를 자랑하며 봄으로도 당당하게 한자락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 등로 우측으로 추수가 끝난 논 경작지가 드넓게 펼쳐진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지도를 살펴보니 고창군 신림면 쪽 들판과 마을 풍경들이다.

조금 더 달린 후 도로 좌측을 보니 저 멀리 희미하게 보였던 고창의 화시산과 그 주위의 산즐기들이 조금 더 상세히 보이고 가까워져 있다.

고부천을 우측에 두고 조금 더 달리니 갈림사거리 지나 노란 물통과 민가들이 보이는 신림로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신림로 우측으로는 신광사란 암자 표시가 보인다.

 

신림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천천히 달리며 주위 풍경들을 살펴보니 특이할 것은 없지만 거대한 농장들이 도로 주위에 펼쳐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곳이다.

잠시 후 도로 우측으로 거대한 양계장이 보이고 그 양계장을 지나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자세히 보니 갈림사거리깉은 갈림삼거리이다.

좌측으로 육교도 보이고 그 육교 옆으로는 신림면 행정복지센터와 치안센터 그리고 도로 건너에는 CU 편의점이 보이는데 도로 우측으로는 만화리와 무림리 임리라는 커다란 이정석도 서 있다.

 

조심하며 그 갈림삼거리에서 23번 고인돌대로라는 4차선 포장도로로 접속하여 우측으로 가니 만화라는 버스정류장을 지나는데 이곳은 방금 전 이정석으로 만났던 무림리마을이다.

무림리는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있는 리로서 들이 있는 평탄한 지형이고 또한 무림리는 신림면의 중심지로서 신리면사무소와 경찰관 지서 등이 있으나 무림리의 지명 유래는 현재 알기가 어렵다.

무림리의 자연마을로는 대강, 만화, 임리, 장승배기 마을이 있는데 임리마을은 숲이 우거졌다 하여 임리라 명명하였고 만화마을은 뒷산에 매화낙지 혈이 있다 하여 명명되었으며 대강마을은 마을 앞에 강처럼 크고 긴 냇물이 흐른다 하여 명명되었다.

도로를 타고 계속 달리니 흥덕과 부안이라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곧이어 도로 우측으로 농장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두군데의 버스정류장 지나 좌측으로는 선운사가는 도로 표지판이 눈길을 잡는다. 

 

좌측으로 선운사 가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 갈림삼거리를 지나니 야동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자료를 찾아보니 야동은 마을 앞에 들이 있으므로 야동(洞)이라 불렀다는 자료가 보인다.

야동이 있는 송암리는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있는 리로서 서쪽은 동림저수지로 흘러가는 지류 유역의 평야지역이고 동쪽은 낮은 언덕지역이다.

월암, 종송리, 용암리 등의 자연마을이 있고 일제시대 행정구역 통폐합 때 제내, 빈월, 칠현, 용암, 종송, 야동 등을 병합하였으며 그 중심 마을인 종송과 용암의 이름을 따서 송암리라 부르게 되었다.

잠시 후 흥덕장례식장을 지나 좌측으로 나 있는 사천삼거리에서 23번 고인돌대로를 버리고 선운대로를 타고 진행을 했어야 하는데 계속 우측으로 휘어지는 23번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잠시 후 도로 위로 22번 선운대로가 지나는 아래를 통과하고 우측으로 법성포와 선운산IC 도로 표지판을 지나니 도로 좌측으로 흥덕가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데 그곳도 놓치고 회전교차로가 있는 제하사거리에서 어렵게 좌측 흥덕과 선운산IC 방면으로 들어간다.

선운대로 2차선 도로를 따르니 동사삼거리가 나타나고 곧이어 우측으로 보이는 도로를 따르니 배풍산 산행 들머리로 이용되는 흥덕중학교 정문에 도착을 하고 그 중학교 안 우측으로 보이는 주차장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빈손으로 배풍산을 향해 출발한다.

 

흥덕중학교 내로 들어가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운동장과 교실 건물들이 보이고 그 건물 사이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오르니 학교 건물 뒷쪽으로 통나무 계단이 보이는데 그 주위로는 대나무들도 보인다.

잘 정리된 대나무 사이로 나 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한동안 오르니 넓은 비폰장 임도와 만나는데 그 임도 옆으로는 산책로라는 이정판이 서 있고 좌측으로는 식수로 사용이 불가능해 보이는 배풍산옹달샘이란 우물이 보이고 살펴보니 여전히 물이 고여 있다.

 

그 배풍산옹달샘 뒷쪽으로 오르니 박달나무인지 모를 활엽수가 잘 식재되어 크게 자란 곳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오르니 드넓은 잔디 광장같은 곳에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잔디들은 멧돼지들이 경작한 것처럼 보이는 손상된 부분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주위를 둘러보고 좌측으로 식흔이 널려있는 잔디밭을 타고 걸어가니 야생 멧돼지를 주의하라는 작은 플랭카드가 보이고 곧이어 흥덕배풍산공원조성비와 2층의 육각정인 배풍정이 보인다.

 

2층의 배풍정에 올라 보지만 나무들이 주위 풍경을 막아 보이는 것이 없기에 다시 내려 와 좌측으로 가 보니 둔덕 위에 삼각점이 박혀 있고 그 옆으로 준희선생님이 달아 놓은 변산지맥 배풍산 110.1미터라는 정상판이 보이고 그 옆으로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들도 보인다.

배풍산(110m, 배풍정, 무안310 삼각점)은 전라북도 고창군의 흥덕면 흥덕리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109미터이고 조선 시대 흥덕현의 주산으로 여지도서(흥덕)에 배풍현(培風峴)은 현 북쪽에 있는데 장성 반등산(방장산)에서 시작해 (흥덕) 현의 주맥이 되었으며 (중략) 고읍성이 관아 북쪽 배풍현 위에 있다 라고 하였다.

이후 산경표에는 배풍치는 서북쪽으로부터 이어지고 흥덕 읍치의 동북 5리에 있다고 기록되는 등 대부분의 흥덕현 관련 지리지에 산이 수록되어 있다.

해동지도(흥덕)에는 읍치 뒷산으로 배풍현에서 뻗은 산줄기가 읍치를 감싸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그 밖에도 1872년지방지도, 대동여지도(18 5) 등에 읍치 북쪽에 배풍현(培風峴, 培楓峴), 배풍치(陪風峙) 등으로 한자를 달리해 기재되어 있다.

한편 조선지형도(줄포)에 배풍현(培豊峴)으로 현재와 한자지명이 동일하게 기재되어 있는데 지명은 옛날 서해안을 항해하던 배가 풍랑을 만나 뒤집혀 생긴 산이라고 해서 배풍산이라고 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과거 흥성읍성이 이곳에 있다가 옮겨갔다고 한다.

정상 주위를 한바퀴 돌아보고 곧바로 애마가 주차되어 있는 흥덕중학교 정문 방향으로 내려가는데 마음 같아서는 진행 방향의 치룡리로 가고 싶지만 애마를 회수하는 것이 어려워 마음은 내키지 않지만 다시 정문 방향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산행을 하면서는 어쩔 수 없는 차선의 선택이었다고 자위를 해 봤지만 역시나 다녀 오니 많은 아쉬움이 남아 있는 산행으로 기억된다.

다시 애마를 몰아 흥덕중학교 정문을 나와 좌측으로 나 있는 잿말길 1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다시 갈림삼거리를 만나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니 도로 옆으로 치룡마을 이정석과 복룡마을 이정석이 보인다.

치룡리는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있는 리로서 북동쪽으로 동림저수지가 펼쳐진 낮은 언덕지형이고 구동, 치이, 복룡, 치일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복룡이란 지명은 줄포와 후포 등지로 해산물을 사러 다니는 상인들이 이 마을의 고개와 계곡 사이가 꼭 용이 엎드려 있는 형체라고 하여 복룡촌으로 부르던 것에서 유래했고 치일과 치이는 용형태의 구름이 떠있는 것을 보고 붙여진 이름이다.

잠시 후 치이삼거리에서 우측에서 올라 오는 방금 전 헤어졌던 부안로 23번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진행한다.

 

부안로 23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하니 일반 평이한 시골 풍경들이 펼쳐지고 잠시 후 신기삼거리라는 도로 표지판이 서 있는 곳에 도착을 하는데 이제부터 남포리까지는 차량으로 이동을 해야 되기에 가능하면 걷는 것처럼 천천히 달리며 지나는 마을과 관련된 마을이정석과 버스정류장은 사진에 담아 보려고 노력하며 진행을 한다.

신기삼거리(23번 포장도로, 신기삼거리-대농휴게소-신덕삼거리-화전교 서해안고속도로-장동교 서해안고속도로 줄포IC-710번도로까지는 도로 따라 차량 이동)는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인 신기마을에서 지명이 유래된 듯 보이는데 신기(새터)는 사포 동남쪽에 새로 이루어진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며 사포리는 갯가에 모래가 많으므로 사진포 또는 사포(沙浦)라 하였다.

사포리는 조선 말기 흥덕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 4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주항과 회목 및 사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사포리라 하고 흥덕면에 편입하였다.

회목 동북쪽에 남생이 형국의 남생잇등, 술항골(일명 주항) 뒤쪽에 조선 영조 때 통헌대부 정시현의 묘와 비가 있는 비석등, 사포와 꽁방거리 사이에 한량들이 모여 활쏘기를 했다는 사장등 등의 산등성이가 있다. 술항골 앞에 아홉구미라는 들이 펼쳐져 있고 회목 앞 둑 안에 새운안과 술항골 뒤쪽에 수랑논 등의 논이 있다.

창 터 서쪽으로 시암이라는 우물이 있고 새터(新基-신기) 서남쪽으로 모양이 간대처럼 긴 간대방죽(일명 간척제-艮尺堤)이 있다.

생각보다 차량들의 통행이 많지 않아 생각보다 많은 사진을 담으며 천천히 달려보는 시간이다.

 

신기삼거리를 지나니 노동이라는 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지도를 보니 이곳 역시 잠시 후 만나는 신송마을 이정석과 같은 신송리 마을이다.

잠시 후 도로 좌측으로 석물공장을 지나 인삼포를 통과하니 도로 우측으로 신송마을 이정석이 보여 찾아 보니 신송리는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있는 리로서 남동쪽으로 동림저수지가 펼쳐져 있는 낮은 언덕지형이다.

자연마을로는 송내, 불당, 구송, 신송, 노동, 신기 등이 있는데 신송은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곳에 마을을 이루었다고 해서 신송당으로 부르다가 신송으로 고쳐 부른 것이고 노동은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려고 할 때 때마침 기러기가 날아가면서 입에 물고 있던 갈대를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갈대골로 부르던 것이 노동으로 고쳐진 것이다.

 

신송마을 표지석을 지나 우측으로 석우리 가는 도로 표지석도 만나니 도로 좌측으로 섬유질사료공장이 보인다.

잠시 후 우측으로 고창군 산림조합 건물들이 보이고 도로 좌측으로 상연마을 표지석이 서 있는 곳도 통과하는데 상연마을은 신덕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이다.

신덕리는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있는 리로서 서쪽으로 황해안 곰소만이 접해있는 낮은 언덕지형이다.

자연마을로는 목우, 신덕, 원덕, 하연, 상연 등이 있는데 1600년대 후기에 동래 정씨, 전주 최씨, 연안 차씨 등이 터를 잡아 마을을 이루었고 당시 유명하였던 지리학자 이서구가 이 마을을 지나다가 정씨 거주지역을 신덕, 최씨 거주지역을 원덕, 차씨 거주지역을 재덕으로 부르면 좋겠다고 하여 그대로 부르던 것이 현재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

목우는 소를 방목하여 목축을 크게 한 곳이란 뜻에서 목우촌으로 불리다가 목우로 고쳐진 것이다.

다시 남당 버스정류장을 지나 신덕삼거리 도로 표지판이 서 있는 곳에 도착을 해 잠시 지도와 자료를 찾아 본다.

 

신덕삼거리 도로 표지판을 지나니 도로 우츩으로 신정마을 표지석이 보이고 찾아보니 신정마을은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신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신정은 새말 동남쪽에 새로 된 마을이다.

잠시 후 다시 덕성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도로 위로 15번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나는 곳을 통과한다.

십리동이라는 버스정류장을 지나 조금 더 가니 신리산ㅁ거리 도로 표지판이 나타난다.

신리는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에 있는 리로서  

서해와 맞닿아 있는 만에 위치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강남정, 꽃밭골, 솔무덤, 수반, 신정, 오정 등이 있는데 강남정은 화전동 남쪽에 있는 마을이고 꽃밭골은 화심혈의 명당이 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으며 솔무덤은 마을에 큰 소나무들이 무성하며 당산제를 지낸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수반은 전에 숲이 무성했다 하여 숲의 안이라 불리던 것이 변하여 붙은 이름이고 신정은 새말 동남쪽에 새로 된 마을이며 오정은 큰 소나무 다섯 그루가 서 있던 곳이라 한다. 

 

신리삼거리를 지나니 도로 우측으로 옛날순대국밥이라는 식당 입간판이 보이는데 잠시 들려보니 문을 닫아 아쉽기만 하다.

다시 도로를 달리니 금새 줄포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작은 시골의 줄포면사무소가 있는 곳으로 이곳 줄포사거리에서 우측으로 90도 꺽어 진행을 한다.

줄포리는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에 있는 리로서 서해와 맞닿은 만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동편, 새터, 서편, 용서동, 은행정, 장성동 등이 있는데 동편은 줄포 동쪽에 있는 마을이새터는 줄포리에 새로 된 마을이서편은 줄포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용서동은 지형이 용형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은행정은 정자처럼 쓰던 큰 은행나무가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으며 장성동은 장승이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이곳 줄포면은 전라북도 부안군의 동남단에 위치한 면으로 낮은 구릉지가 대부분인 지역이고 동부의 고부천 주변은 넓은 충적평야가 서부의 곰소만 연안은 간척지가 펼쳐져 있다.

본래 조선 시대 건선면 지역으로 1895년 전주부의 부안군으로 1896년 전라북도에 속하게 되었다가 1914년 입상면과 고부군 서면과 고창군 북일면의 일부 동리를 합쳐 건선면으로 하였고 1931년 줄포면으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줄포리, 난산리, 대동리 등 7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줄포 지명은 1914년 건선면의 소재지이자 곰소만의 어업 중심지였던 줄포리를 상위 행정단위의 대표 지명으로 채택한 결과로 짐작되는데 매천야록(1906)에 민종식의 패졸들이 해로로 부안의 줄포면에 도착하여 일본 상인의 가옥 2호를 소각하고 라는 기록을 통해 이전에도 사용되었던 지명으로 보이나 공식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줄포리는 본래 줄이 많이 났던 포구여서 줄래포로 부르다가 줄포가 되었다 하는데,개항 초기에는 군산항 다음 가는 번성한 곳이었다고 하며 줄포리를 중심으로 군 남부생활권의 중심지 역할을 해오던 줄포면은 1875년 개항 이후 쌀 수출항으로 유명하다가 토사 퇴적으로 폐항되면서 경찰서, 식산은행, 농산물검사소 등이 부안읍으로 이전하여 쇠퇴하였다.

호구총수(부안)에는 대동상리, 대동하리, 파산리, 우포상리, 우포하리, 장동리 등 관련 동리명이 확인된다. 

 

줄포사거리에서 우측으로 90도 꺽어 줄포면내 도로를 따라 줄포중앙로 2차선 포장도로를 달리니 도로 좌측편으로 담소정이라는 식당 입간판이 보이는데 그곳을 지나 조금 더 달린 후 도로 좌측의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을 해야 되었는데 그곳을 놓치고 계속 710번 주율로 4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달리며 10여 Km를 알바하고 제자리로 돌아 오게 되었다.

한시간 가까이 홀로 드라이브를 즐기고 다시 돌아 온 갈림삼거리는 장동리로서 장동리는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 뒤로 산지가 위치하며 마을 앞으로 두포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고랑리, 보산동, 분장리, 장다리 등이 있는데 고랑리는 장서 서쪽 고랑에 있는 마을이보산동은 뒤에 보배 같은 산이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분장리는 지형이 마치 노루가 달리는 것 같다. 장다리는 동북쪽에 장씨들이 놓은 큰 다리가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약 25분 여를 경제적 이득도 없이 드라이브를 즐기고 다시 연중로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로 뒤돌아 오니 도로 우측으로 민가 한채가 나타나고 그 옆으로 잠시 후 만나게 될 줄포자동차정비사업소라는 입간판이 서 있다.

그곳에서 710번 주율로 4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들어가 연중길을 달리니 갈림삼거리가 보이고 좌측 도로를 타고 각동2길을 지나 도로 주위에 설치된 거대한 태양광 발전시설들을 살펴보며 진행한다.

그렇게 조금 더 진행하니 선돌로 지나 707번 선돌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영전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도로 건너 우측으로 보이는 대성농장이라는 입간판이 서 있는 곳으로 나 있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인 선돌로를 타고 계속 산행을 이어가 본다.

영전리는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 곳곳에 소류지가 위치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기와골, 방죽안, 신월리, 원영전, 찬시암골 등이 있는데 기와골은 신월리 서쪽 마을로 기와를 만들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방죽안은 신월리 동쪽 마을로 앞에 방죽이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신월리는 영전 북쪽 마을로 반달같이 생겼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원영전은 영전리의 원마을이찬시암골은 찬물이 솟는 샘이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대성농장이란 입간판이 서 있는 곳으로 들어가니 드넓은 밭 경작지가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로 나 있는 1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솔향기농원이 보인다.

곧이어 나타나는 갈린삼거리에서는 우측 도로를 따르니 곧이어 한우농장이 나타나고 그 농장을 지나 도로 우측 앞을 보니 남부안농협의 거대한 농장 건물과 그 뒤 저 멀리 보안면 마을들과 산자락이 잘려나간 산줄기가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좌측으로 크게 휘어 도로를 따르니 도로 옆으로 거대한 양파 재배지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니 금새 갈림사거리가 나타나는데 상입석리와 영전리의 경계 지점인 사거리이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 진행한다. 

상입석리는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 곳곳에 소류지가 위치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웃선돌, 아랫겉, 웃겉 등이 있는데 웃선돌은 선돌의 위쪽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아랫겉은 웃선돌 아래쪽이 된다 하여 붙은 이름이며 웃겉은 웃선돌 위쪽이 된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갈림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나 있는 신안촌길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 주변으로는 여전히 드넓은 밭 경작지가 펼쳐져 있는데 그 밭에는 아직도 수확하지 않은 무우들이 널부러져 있다.

그곳을 지나 계속 진행을 이어가니 저 멀리 진행 방향으로 좌측의 노승봉으로 이어지는 변산지맥 마루금이 올려다 보이고 직진의 저 멀리에는 지맥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우금산과 우금산성쪽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그곳에는 또한 개암사가 있는데 개암사는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이며 634(무왕 35) 묘련이 창건한 백제의 고찰이다.

개암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282년 변한의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 도성을 쌓을 때 우()와 진()의 두 장군으로 하여금 좌우 계곡에 왕궁전각을 짓게 하였는데 동쪽을 묘암으로 서쪽을 개암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676(문무왕 16) 원효와 의상이 이곳에 이르러 우금암 밑의 굴 속에 머물면서 중수하였다. 1276(충렬왕 2) 원감국사는 조계산 송광사에서 이곳 원효방(우금굴)으로 와서 지금의 자리에 절을 중창하여 대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황금전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에는 청련각, 남쪽에는 청허루, 북쪽에는 팔상전, 서쪽에는 응진당과 명부전을 지었으며 총 30여 동의 건물을 세워 능가경을 강의하면서 많은 사람을 교화하였다.

이 때문에 산의 이름을 능가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가 1414(태종 14) 폐허가 된 것을 선탄이 중창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황금전을 제외한 전 당우가 소실되었다.

그 뒤 1636(인조 14) 계호가 1658년 밀영과 혜징이 대웅전을 중건하였으며 1728(영조 4) 법천과 찬견이 명부전을 중건하고 1733년하서암과 석주암 및 월정암을 중건하였다.

1737년 시왕상과 16나한상을 조성하였으며 1783년 승담이 중수하였다.

1913년 화은이 선당을 짓고 1960년 대웅보전을 해체 복원하였으며 1993년 응향각을 복원하였고 이듬해 일주문을 짓고 응진전을 해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인등전, 응향각, 응진전, 일주문과 월성대 및 요사가 있다.

이 가운데 대웅보전은 보물 제292호로 지정된 정면 3칸과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대표적인 조선 중기 건물이며 예전의 황금전이 바로 지금의 대웅보전이다.

이 절에서 500미터 떨어진 곳에 울금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고 이 바위에는 모두 3개의 동굴이 있다.

그 가운데 원효방이라는 굴 밑에는 조그만 웅덩이가 있어 물이 고이는데 전설에 의하면 원래 물이 없었으나 원효가 이곳에 수도하기 위해 오면서부터 샘이 솟아났다고 한다.

또한 이 바위를 중심으로 한 주류성은 백제의 유민들이 왕자 부여 풍을 옹립하고 3년간에 걸쳐 백제부흥운동을 폈던 사적지로도 유명하다.

유물로는 1689(숙종 5)에 조성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6호인 동종과 중건사적기가 있다.

 

언젠가 한번쯤 오르고 싶은 우금산과 우금산성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우금산은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에 있는 산으로 높이340미터이고 변산반도국립공원 동북부에 속하며 기슭에 고찰 개암사를 비롯하여 울금바위우금산성 등의 명소가 있다.

우금산성은 총 길이 3.96 km의 석성으로 묘암골(묘암사터)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통하는 계곡에 남문이 있고 서남쪽으로는 개암사 뒷산의 울금바위 남면과 이어진다.

동쪽으로는 213고지를 지나 북동쪽 300고지에 닿고 이곳에서 서쪽으로 꺾여 서북쪽 213고지를 지나 남서쪽 울금바위 북면으로 이어지며 동쪽으로 벋은 60미터 가량의 성벽은 옛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산성은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지였던 주류성으로도 알려졌는데 주류성은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망하자 복신 도침이 왕자 부여풍을 받들고 백제의 부흥을 위해 최후 항전을 벌인 곳이다.

산행은 부안읍에서 줄포 방면 군내버스를 타고 개암사 입구에서 내려 개암저수지에서 시작하며 저수지 호반길, 개암마을, 개암사, 울금바위, 우금산성터, 우덕마을 순으로 걷는 데 4시간에서 5시간 정도 걸린다. 

우금산성은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으로 1974 9 27일 전라북도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되었다.

개암사 뒷산에 돌로 쌓은 으로 남쪽으로 통한 계곡 수구에 남문을 설치하고 양 능선을 따라 동서로 연결되었으며 서남쪽으로는 울금바위 북단에 연결된다.

울금바위에서 다시 동쪽으로 꺾여 수구에 이르는데 수구 옆 험준한 절벽 위로 장대(장수가 명령하던 돌로 높이 쌓아 만든 곳)가 있다.

면적은 198,875 m2로 남변의 길이는 수구에서 동측선이 563미터이고 울금바위까지의 서측선은 675미터로 총 1,238미터에 이르고 동변은 1,010미터에 북변은 830미터이며 서변은 838미터로 전체의 평면은 북변이 좁고 남변이 넓은 사다리형으로 주위는 총길이 3,960미터에 이른다.

660(의자왕 20) 백제의 부흥을 위하여 복신이 유민을 규합하여 항전하다가 나당 연합군의 김유신 소정방에게 패한 곳으로 유서 깊은 곳이다.

 

전히 도로 옆으로 드넓게 설치된 태양광 발전 시설들과 주이 산줄기들을 살펴보며 진행하니 도로 우측 옆으로 깊게 파인 산줄기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다시 눈 앞으로 보이는 변산지맥 마루금과 그 뒤로 우금산 줄기를 확인하며 전진하니 23번 부안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돌아가니 바로 옆에 원천이라는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남포리는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 곳곳에 소류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뒤로 산지가 위치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고현리, 네가호뜸, 만석동, 반월리, 백운골, 성방청 등이 있는데 고현리는 전에 희안(보안)현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네가호뜸은 네 가호가 있었다 하여 붙은 지명이며 만석동은 남포 북서쪽 마을로 암석이 많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반월리는 지형이 반달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백운골은 희룡동 서쪽의 백운봉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며 성방청은 옛 고을의 형방청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원천 버스정류장을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갈림사거리를 지나 도로 우측 옆으로 용사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용사는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상입석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자료를 찾아 보지만 보이지 않아 상입석리에 대한 자료를 정리해 본다.

상입석리는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 곳곳에 소류지가 위치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웃선돌, 아랫겉, 웃겉 등이 있는데 웃선돌은 선돌의 위쪽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아랫겉은 웃선돌 아래쪽이 된다 하여 붙은 이름이며 웃겉은 웃선돌 위쪽이 된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곳에서 도로가 끝이나고 좌측 남포리 마을로 들어가 능선으로 진입하며 진행이 되기에 용사 버스정류장 근처에 애마를 잘 주차시키고 배낭 둘러메고 오후 산행을 다시 시작해 본다.

 

애마를 주차시키고 23번 부안로를 건너 남포리 방향으로 사창리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들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식자재마트와 봉친경로당 건물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 계속 걸어 전진하니 도로 좌측으로 한우농장을 지나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 방향으로는 사랑감나무 체험관이라는 표식이 보이고 사창마을인 그방향으로 들어가니 주위는 온통 감나무 과수원이다.

계속 이어지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마지막 민가 한채와 창고 건물이 보이고 그 건물 좌측의 감나무 과수원을 지나 가시잡목 능선으,로 오르며 마지막 바드재로 향한 오후 산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간이다.

 

가시잡목들을 헤치고 능선으로 오르니 잘려 죽어가는 소나무들도 보이고 곧이어 밀양박공 쌍묘가 나타나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이곳 역시 잡목들이 앞길을 막는데 오랫만에 고인이 된 산길따라가기의 신공식님 띠지를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사진에 담아 본다.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잡목과 소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거어 오르니 드디어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지도를 보니 우측으로 113.4봉 표시가 보여 가 보니 봉 따먹기의 대가이신 써래야님이 이곳에 유정봉이란 종이코팅지를 걸어 놨는데 유정봉이란 이름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지만 우측 아래 23번 도로에 유정재라 하는 지명이 다른 지도에는 보이는데 실제 유정재는 잠시 후 변산지맥 마루금 상에도 존재한다.

다만 우측 아래 23번 도로에는 우금산으로 가는 길에 정유재란호벌치전적지라는 이름이 보여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자료들이 보인다.

정유재란 호벌치 전적지는 정유재란 때 의병들이 왜병을 맞아 혈전을 벌이다 장렬하게 전사한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호벌치 고개의 싸움터로서 1976 4 2일 전라북도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었다.

개암사에서 줄포 쪽으로 2 Km쯤 가면 낮은 오르막길이 나오고 오른쪽 노변공원 같은 경내에 비석과 사자상 등이 세워져 있는 곳이 호벌치이다.

임진왜란 때 채홍국은 고경명 김천일의 패전 소식을 듣고 근방에 의병을 모집하는 격문을 돌려 부안, 흥덕, 고부, 고창 등지에서 충의지사들이 모여들었다.

92명의 지사들은 1592 9 16일 흥덕의 남당에서 삽혈동맹을 맺고 궐기할 것을 다짐하였는데 이들은 곡식 400석을 모아 권율 장군에게 보내 300석은 해운 편으로 임금이 머물고 있던 의주 행제소로 보내게 하고 나머지 100석은 영남의 곽재우에게 보내도록 하였다.

그후 1597(선조 30)에 정유재란이 일어났는데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왜군들은 그들의 주력부대를 전라도에 투입하여 호남 각지가 적에게 유린되었다.

왜병들은 바다를 이용변산에 상륙하여 줄포로부터 부안읍으로 진격해왔는데 이때 채홍국은 다시 뜻 있는 의사 33명을 더 모집하여 총 126명으로 의병을 일으켜 고창군 흥덕 회맹단에서 혈맹하고 1 27일에 호벌치 고개에서 왜병을 맞아 싸웠다.

당시의 순절기에 따르면 3 23일에 배풍령 싸움에서 채홍조가 전사하였고 24일에는 이탁과 승려 만세, 김영 등이 전사하였다.

4 16일에는 채우령과 이시화가 4 17일에는 이익성이 4 18일에는 임추가 그리고 4 19일에는 오몽서와 김귀복이 전사하였다.

4 20일 전투에서는 조익령이 적의 급습을 받아 위급하게 되자 채홍국이 이를 구하려다 적의 칼에 맞았두 아들 채명달채경달이 아버지를 구하려 하였으나 이미 늦어 숨지고 말았다.

그러자 두 아들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적진에 뛰어들어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여 삼부자가 모두 이곳 호벌치 싸움에서 순국하였다.

또한 유희방, 이유, 김홍원, 김경덕, 김경장, 권대붕 등도 별도의 의병을 거느리고 싸웠는데 유희방은 적병 수백 명의 머리를 베고 9 15일 전사하였이유는 감교리의 청등고개에서 3일간의 치열한 싸움 끝에 전사하자 그의 부인 부안김씨 역시 죽창을 들고 적의 진중에 뛰어들어 싸우다 죽었다.

김홍원은 이곳 싸움에서 적의 토로를 끊고 수륙양면작전으로 적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1965 8월 이곳에 전적비가 건립되었으며 호벌치라는 지명은 당나라 소정방이 이곳에 상륙하여 유진치와 주류성 일대에 통수부를 설치하였던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그 113.4봉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뒤돌아 나오니 방금 전 올랐던 갈림삼거리와 만나 좌측에서 올라 온 마루금을 살펴본 후 직진의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지도 상 유정재에 도착을 하는데 아무 표식도 없는 안부같지 않은 안부였다.

자료를 찾아보니 유정은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진을 쳤던 곳이라 하며 세 곳에서 이민 와 살았다 하는 마을인데 이 유정마을 뒤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처럼 보이는 곳이다.

 

안부같지 않은 유정재를 지나 고사목들이 보이는 무명봉을 넘고 멧돼지들의 체력단련장을 지나니 한동안 평이한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가끔 보이는 잡목들을 보며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완만하게 솟아 있는 218.8 무명봉도 넘는다.

가끔 나타나는 잡목들을 헤치며 소나무 등로를 타고 빠르게 전진하니 갑자기 눈 앞에 콘크리트 초소가 나타나는데 이제는 사용되지 않는 듯 많이 부서져 있는 모습의 259.5봉에 도착을 한다.

그 부서진 초소를 지나자마자 다시 벙터가 나타나는데 이곳 역시 사용되지 않아 잡목들과 잡풀들이 자라난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259.5봉을 지나 나타나는 녹슨 높은 안테나를 사진에 담고 다시 출발하니 공터에 고사목이 나뒹굴고 있는 240.8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이제 서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하루 햇살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시간에 잡목들을 헤치고 진행하니 다시 등로를 가로막는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고 그곳을 지나니 곧이어 작은 바위들로 나즈막한 담을 쌓은 듯한 모습의 성터인지 집터인지 모를 279.5봉에 도착을 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몇장의 선답자들이 걸어 놓은 산행 띠지들이 보이고 지독한 잡목들을 헤치며 진행하니 금새 백두사랑산악회 띠지가 걸려있는 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된다.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무명봉을 지나니 키 작은 산죽지대를 지나 비포장 임도에 내려서고 주위를 살펴보니 벤취쉼터와 출입금지 플랭카드 그리고 녹슨 철구조물 옆으로 못난작것을 설명하는 설명판이 보이는데 읽어보니 60년대 이전 어린이들이 놀면서 흥을 돋구기 위해 즐겨 부르던 이 지역의 동요라고 하는데 그 의미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그 비포장 임도를 가로 건너 반대쪽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능선으로 오르니 뚜렷한 등로가 열리고 잠시 짧은 키작은 산죽밭이 보이더니 금새 산죽이 사라지며 등로에는 커다란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다.

다시 나타나는 산죽들을 헤치며 조심해 오르니 등로 좌측 뒤로 산자락 한쪽이 잘려진 산이 내려다 보이는데 아마도 장지산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주산 우측으로는 오늘 이 산객이 애마를 이용해 지나 온 변산지맥 마루금이 내려다 보이고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출발해 진행하니 빛바랜 억새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329.9봉에 도착을 한다.

 

그 봉우리를 지나 등로 좌측을 보니 방금 전 걸어 올라 온 변산지맥 마루금 뒤로 벌거숭이가 되어 버린 장지산이 보이고 그 우측 저 멀리 비산비야로 이뤄진 변산지맥 등로도 보인다.

그 장지산 뒷쪽으로는 비산비야의 산줄기 저 멀리 조만간 올라야 할 두승지맥의 두승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가 봉긋 솟아 있어 사진에 담아 본다.

그 우측 저 멀리로는 오늘 이 산객이 애마를 이용해 달려 온 비산비야의 변산지맥 마루금이 펼쳐져 있다.

 

그렇게 지나온 방향과 두승지맥 방향을 살펴보고 다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잡목 사이로 328.1봉이 바로 눈 앞에 어른거리고 그 좌측 뒤 저 멀리 내일 올라야 할 옥녀봉 능선이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다시 나타나는 잡목과 등로 위에 쓰러져 나뒹굴고 있는 고사목을 피해 어렵게 걸어가니 금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고 무명묘지 한기가 보이는 잡목봉의 328.1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무명묘지가 보이는 328.1봉을 지나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금새 사창재가 나타나는데 처음에는 안부라 생각했는데 일반 안부가 아닌 능선상의 고갯마루였다.

자료를 찾아 봐도 특별한 자료가 없어 사창재가 있는 청림리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니 청림리는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백천이 남북으로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노적동, 들독거리, 서운, 지금골 등이 있는데 노적동은 뒷산이 노적과 같으므로 욕심이나 고집을 부리면 해가 된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들독거리는 마을 앞에 밑이 들려 있는 큰 바위가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서운은 마을 앞으로 백천내가 지나간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지름골은 지형이 옥등괘벽형이라 하여 이름 붙었다.

사창재를 지나니 등로는 여전히 큰 고도 차이도 없이 평이한 등로를 타고 커다란 바위와 만난다.

 

그 커다란 바위를 지나니 등로에는 지금까지 잘 보이지 않았던 바위암릉들이 나타나고 그 바위암릉으로 오르니 멋진 풍경과 조망들이 펼쳐져 잠시 바쁜 발걸음 멈추고 환상의 풍광을 즐겨 본다.

제일 먼저 등로 좌측으로 오후  산행을 시작한 산줄기를 살펴보니 상입석리와 남포리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변산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보이고 그 우측으로 비산비야의 마루금도 보인다.

그 뒤 저 멀리에는 장지산의 한쪽이 잘려나간 볼썽 사나운 모습도 보이고 그 우측 뒤로는 두승지맥의 주산인 두승산도 보인다.

 

지나 온 마루금을 확인하고 이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바위암릉과 소나무 뒤 저 멀리 이제부터 걸어 넘어야 할 389.2봉의 상여봉이 저 멀리 솟아 있고 그 우측 뒤로 머리만 내밀고 있는 352.9 노승봉도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오늘 산행의 마지막 산줄기가 바로 눈 앞으로 다가와 있고 산행 날머리로 생각하고 있는 바드재 역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임을 알기에 조금 더 힘을 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진행 방향 우측인 서쪽으로는 가까운 곳에 내일 올라야 할 옥녀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가 솟아 있고 그 뒤 우측 멀리에는 군부대 인공 구조물들이 세워져 있는 변산의 의상봉이 보이는데 저 봉우리 역시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아직 오르지 못한 미답지로 남아 있다.

그 좌측으로는 내일 걸어 넘어야 할 내소사 뒷쪽의 관음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도 보이는데 생각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산그리메에 잠시 더 머물며 많은 사진에 담아 보는 시간이다.

 

한동안 그 바위암릉에서 아름다운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출발하니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뚜렷한 등로가 열리고 그 등로를 타고 빠르게 전진하니 안부같지 않은 안부를 지나 진행된다.

다시 살짝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지나 온 등로 좌측 뒤 저 멀리 회색도시가 눈에 들어 오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부안쪽 마을인 듯 보인다.

그 우측 뒤로는 여전히 산자락 한쪽이 잘려진 장지산이 내려다 보인다.

 

지나온 방향과 부안 방향을 살펴보고 이제 진행 방향 우측을 올려다 보니 잠시 후 들려야 할 352.9 노승봉이 빠죽히 얼굴을 내밀고 있고 이제부터 올라야 할 상여봉은 눈 앞의 잡목들로 보이지 않는다.

잠시 평이한 활엽수 등로를 따르니 다시 키작은 산죽지대가 펼쳐지는데 그 산죽지대를 헤치며 한동안 완만하게 걸ㄹ어 오르니 드디어 깨진 삼각점과 상여봉이라는 정상판 옆에 준희선생님이 걸어 놓은 389.2봉이라는 이정판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상여봉(398m, 삼각점)은 전라북도 서남부 황해안에 돌출한 반도인 변산반도에 솟아 있는 봉우리 중 하나로서 변산반도는 동북쪽의 동진강에서 서남쪽의 반도해안 끝까지 약 90 Km에 이르며 행정구역상으로는 부안군 부안읍과 변산면, 진서면, 상서면, 하서면, 보안면, 주산면 등을 포함한다.

동쪽은 김제시와 정읍시, 서쪽은 위도면의 섬들, 남쪽은 줄포만, 북쪽은 부안만과 접하고 있다.

변산반도의 지형은 소백산맥에서 떨어져 나와 전라북도의 남서 방향으로 가로질러 노령산맥의 끝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비교적 완만한 산세를 형성하고 있다.

변산반도는 크게 내변산 지역과 외변산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내변산 지역은 의상봉(508.6m)을 중심으로 신선봉(486m), 삼신산(486m), 쌍선봉(459m), 옥녀봉(432.7m), 관음봉(424.5m), 상여봉(395m), 삼예봉(354.6m), 덕성봉(328m), 닭이봉(85.7m), 갑남산, 세봉, 선인봉, 용각봉, 매봉, 마상봉, 직소폭포, 봉래구곡, 선녀탕, 분옥담, 와룡소 및 가마소 등으로 이루어진 산악지역이고 외변산 지역은 변산해수욕장, 고사포해수욕장 및 격포해수욕장 등 해안가를 중심으로 한다.

 

상여봉을 지나 가끔 보이는 널부러진 고사목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을 통과하고 잠시 더 전진하니 광산김공 묘지가 보이고 나뭇가지에는 노승봉이라는 정상판이 걸려 있는 352.9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는 준희선생님의 이정판이 보이지 않아 조금은 아쉬움을 남긴다.

노승봉(352m)은 전라북도 서남부 황해안에 돌출한 반도인 변산반도에 솟아 있는 봉우리 중 하나로서 변산반도는 동북쪽의 동진강에서 서남쪽의 반도해안 끝까지 약 90 Km에 이르며 행정구역상으로는 부안군 부안읍과 변산면, 진서면, 상서면, 하서면, 보안면, 주산면 등을 포함한다.

동쪽은 김제시와 정읍시, 서쪽은 위도면의 섬들, 남쪽은 줄포만, 북쪽은 부안만과 접하고 있다.

변산반도의 지형은 소백산맥에서 떨어져 나와 전라북도의 남서 방향으로 가로질러 노령산맥의 끝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비교적 완만한 산세를 형성하고 있다.

변산반도는 크게 내변산 지역과 외변산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내변산 지역은 의상봉(508.6m)을 중심으로 신선봉(486m), 삼신산(486m), 쌍선봉(459m), 옥녀봉(432.7m), 관음봉(424.5m), 상여봉(395m), 삼예봉(354.6m), 덕성봉(328m), 닭이봉(85.7m), 갑남산, 세봉, 선인봉, 용각봉, 매봉, 마상봉, 직소폭포, 봉래구곡, 선녀탕, 분옥담, 와룡소 및 가마소 등으로 이루어진 산악지역이고 외변산 지역은 변산해수욕장, 고사포해수욕장 및 격포해수욕장 등 해안가를 중심으로 한다.

 

광산김공 묘지가 있는 노승봉에서도 고운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잠시 산죽지대가 펼쳐지고 그곳을 지나니 다시 뚜렷한 소나무가 열려있다.

하지만 그 소나무 등로도 잠시 후 끝이나고 키작은 산죽지대가 다시 나타나고  그 산죽을 지나니 또 다시 산죽이 사라지고 약간의 잡목지대가 이어진다.

이리저리 잡목들을 헤치고 내려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고 이제는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좌측의 가파른 오르막 등로에 바위들이 보이는 미끄러운 낙엽 마루금을 넘어 콘크리트 말뚝이 박혀 있는 281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나즈막하게 내려갔다 다시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288.9 무명봉을 넘어 금새 또 다시 콘크리트 말뚝이 박혀 있는 298.4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그 298.4 콘크리트 말뚝봉을 지나 내려가니 진행 방향의 나뭇가지 사이로 내일 올라야 할 옥녀봉 자락이 보이고 그 옥녀봉 자락 한쪽으로는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하루 햇살이 길게 그림자를 만들며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다시 이어지는 잡목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 아래로 거대한 청림제가 내려다 보이고 등로 좌측으로는 선계폭포 지나 우동제와 진서리 마을이 보이고 그 끝자락엔 젓갈로 유명한 곰소항이 내려다 보인다.

 

잠시 더 곰소항 방향을 살펴보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직진의 방향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우측으로 길게 우회하며 이어지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2차선 포장도롯가에 설치되어 있는 철망을 피해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측으로 길게 우회하며 내려가게 되었다.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 도로를 타고 좌측 고갯마루로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보안면이라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도로 표지판 반대쪽으로는 상서면이라는 도로 표지판이 서 있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 공터 끝자락에 내일 아침에 올라야 할 들머리가 보이는데 그 입구에는 탐방로안내판 이외에 2개의 안내판이 더 세워져 있다.

전라북도 상서면 청림리에 있는 버드내(유포 또는 유천리)는 마을 앞 냇가에 버드나무가 많았다고 하고 큰 버드내와 작은 버드내가 있으며 세계적인 도자기 명품인 고려상감청자를 이 마을의 뒤 가마터에서 구웠다고 전한다.

이곳에서 스틱을 접고 배낭을 정리하니 내려갈 길이 난처해 택시를 부르려고 하는데 좌측 상서면 방향에서 SUV 차량 한대가 올라 와 무조건 손을 드니 첫 차가 세워주고 그 차량에 탑승해 부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편안하게 영전사거리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어 바드재에서 이 산객을 태워준 SUV  차주분 부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해 드린다.

 

영전사거리에서 이 산객을 태워준 SUV 차량은 23번 부안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인 남쪽으로 가고 이 산객은 같은 23번 부안로를 따라 좌측인 북쪽 방향으로 걸어 애마를 주차시킨 남포리 용사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영전사거리에서 이 산객을 내려주고 곧바로 출발하는 SUV 차량 뒷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고마운 인사를 다시 한번 드렸다.

 

23번 부안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걸어가니 생각보다 차량들 통행이 많아 조심스럽게 걸어가니 영전초등학교 앞을 지나고 남부안농협자재센터를 통과한 후 남부안 버스정류장도 지난다.

신안천마을이란 오석의 이정석을 사진에 담고 농장지대를 지나니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던 하루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가기 시작한다.

도로 좌측으로는 방금 전 이 산객이 걸어 넘었던 노승봉과 상여봉 능선이 보이고 앞쪽 저 멀리에는 우금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계속 걸어가니 남포 버스정류장을 통과하고 도로 우측으로 유명한 금동숯불삼겹살이라는 식당이 보이는데 많은 차량들이 들어가고 있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어정밥상이라는 식당 입간판이 보이고 그 앞에는 많은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어 메뉴를 보니 갈비탕이 보여 들어가 갈비탕 한그릇에 공기밥 두그릇으로 허기를 달래니 이 세상 모든 것이 내것이 되었다.

 

식사를 하고 나오니 세상은 완전한 어둠속에 갇히고 조심하며 23번 부안로를 타고 걸어가니 원천 버스정류장 지나 드디어 용사 버스정류장에 도착을 해 무탈하게 애마를 회수한다.

드디어 배낭 정리하고 가까운 찜질방을 검색하니 아주 가까운 곳에 개암힐링찜질방이 보여 그곳으로 가 편안하게 하룻밤 보내는데 생각보다 많은 손님들과 아이들이 떠들어 조금은 힘든 하룻밤이 되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무탈하게 긴 첫 구간을 잘 마무리하고 하룻밤 묵을 수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내일 하루 더 아무 사고없이 안전하게 변산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귀가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91228 변산지맥 제1구간 장성갈재-분기점-바드재.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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