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충청북도 보은군과 옥천군의 금적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19년 12월 07일 (토요일 당일산행)
산행날씨 : 아침에 잠시 맑았으나 이후부터 하루종일 흐리고 강한 바람이 불었으며 저녁에는 약간의 싸락눈이 내려 무척 추웠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7도에서 영상 06도(강한 바람으로 체감온도는 훨씬 더 추웠던 온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쌍암3리 입구(571번 회인내북로 2차선 포장도로)-구인산보덕사 입구-구룡산산림욕장-쌍암재(290m)-시멘트 포장도로-밭 경작지-능선진입-금적지맥 분기점-461.1봉-새집 안부 이정표(구룡산, 주차장)-구룡산(548.7봉, 정상석) 이정표(등산로 지선, 주차장)-542 무명봉-529.5 산불조심 안내판봉-이정표(주차장, 구룡산)-515.3봉-산림기능 안패판과 이정표(주차장, 구룡산)-보은방향 조망-440 무명봉-447.3 삼각점봉-속리산 조망-387 무명봉-무명안부-472.5봉-447 무명바위봉-385 무명봉-갈티고개(2차선 포장도로)-동래정공 묘지-407 길주의 지점-무명묘지1-순흥안씨묘-2차선 포장도로-382.2 삼각점봉(삼각점 소실)-동물보호터널-389 무명봉-은사시나무 군락지-397 무명봉-무명묘지지대-무명안부-준희님 응원판-비포장 임도 산판도로-능선진입-444 무명소나무봉-비포장 임도 산판도로-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묵은 비포장 임도-무명안부-427.4봉-413 무명봉-지독한 잡목지대-395 무명봉-비포장 임도 산판도로-424.3봉-449 무명바위봉-잡목지대-447 무명봉-449.4 삼각점봉(보은420 삼각점)-바위암릉-청주한공묘지 조망-453 무명봉-400 무명봉-수리티재(321미터, 25번 보청대로 2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벌목 후 식재지-이동통신탑-벌목지 조망-푯대봉(434.9 삼각점봉, 보은307 삼각점, 이동통신탑)-수리터널-425 무명봉 조망-소나무 무명안부-427 무명고사목봉-448.9봉-460 무명봉-478.9봉(무성산?)-길주의 지점(우측으로)-벌목 후 조림지-성황당안부-바위암릉-노성산(515.5봉, 정상판, 정상목)-496 무명봉-전주이공묘지들-460 무명봉-무명안부-503.7봉(갈고성산?)-노성산(572.3봉) 갈림삼거리-456.3봉-무명안부-455 무명봉-묵은 비포장임도-국사봉(550.8 삼각점봉) 갈림삼거리-554 무명봉-대청호 조망-무명안부-507 무명봉-533 무명봉-554 무명봉-561.5봉-495 무명봉-504.5봉-바위암릉-밭과 초지 철조망-노성리고개(용촌차정로 2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벌목지-474 무명봉-503.6 삼각점봉(보은421 삼각점)-501 무명봉-541.8봉-533 무명바위봉-456 무명봉-335 무명봉-장선리 고개(575번 안내수한로 2차선 포장도로)-밀양박씨묘-성황당고개-311봉-318 무명봉-목장초지-민가와 축사-309 무명봉 길주의-무명안부-밭과 초지지대-305.5봉-305 무명봉-칡넝쿨지대-밭 초지지대-민가와 시멘트 포장도로-묵은 비포장 임도-장선소계로 2차선 포장도로-진둥고개 갈림삼거리-방하목리 질신리 버스정류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빨래판 등로에 낙엽과 눈이 쌓여 미끄러운 등로를 따라 무척 힘들게 진행하여 28.82 Km (스마트폰의 Oruxmaps와 트랭글 기준)
산행트랙 :
산행시간 : 낙엽과 그 낙엽 위에 쌓여 있는 눈으로 인해 미끄러운 등로를 타고 힘들게 진행하여 13시간 04분 (07시 05분부터 20시 09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3:40 집에서 보은버스터미널를 향해 애마로 출발
05:50 보은읍에서 동다리하상주차장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국밥집에서 돼지국밥으로 아침해결
06:35 보은한양병원 앞 중앙사거리 군내버스 승차장에서 06시 35분 쌍암리발 830번 버스 탑승
07:00 쌍암3리 입구 앞에서 830번 버스에서 하차 후 산행 준비하여 곧바로 산행 시작
올때 - 20시 09분 방하목리와 질신리 버스 정류장에서 금적지맥 제1구간 산행 종료
20시 30분 카카오 택시를 호출해 동다리하상주차장 입구까지 이동(12,500.-)
22시 35분 뻥 뚫린 고속도로를 타고 이른 시간에 귀가 후 저녁식사 및 사진 정리
금적지맥이란 ???
구룡산(549 미터), 수리티재, 노성산(572 미터), 국사봉(551 미터), 거멍산(495 미터), 문티재, 덕대산(575 미터), 금적산(652 미터), 듬치재, 국사봉(475 미터)을 지나며 최고봉인 금적산(652 미터)의 이름을 따 금적지맥이라 부른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 미끄러운 낙엽과 그 낙엽 위에 쌓인 눈으로 너무나 힘들게 빨래판 등로를 타고 계획된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며 고생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금적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충청북도 보은군과 옥천군 및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및 네이버의 지식백과와 다음의 백과사전 그리고 산림청과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면서 온 세상이 얼어 붙고 있어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금적지맥 산행이 조금은 걱정으로 다가 오지만 어짜피 올라야 할 산줄기이기에 예정대로 산행을 진행하기로 하고 만반의 준비를 한 후 금요일 저녁 조금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눈을 뜨니 새벽 1시를 넘어가고 있다.
오지 않는 잠으로 인해 손흥민이 뛰고 있는 토트넘 축구를 구경하다 보니 벌써 3대0으로 이기고 있는데 손흥민 선수가 인생골을 넣었고 재방을 자주 해 주고 있어 잠시 더 구경하다 토막 잠이라도 더 자려고 누었다가 다시 눈을 뜨니 새벽 2시 50분을 넘기고 있다.
일어 나 배낭 꾸리고 이틀 동안 진행 할 등산복과 먹거리 등을 챙겨 조용히 집을 빠저 나오는 시간이 새벽 3시 40여분을 넘기고 추워서 그런지 고속도로도 생각보다 많지 않은 차들로 인해 막힘 없이 내려가니 규정 속도로 달렸어도 새벽 5시 40여분에 보은읍 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하고 그곳 주변의 공용주차장에 애마를 주차시킨 후 열려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 아침 밥을 먹는데 이곳 식당의 돼지국밥은 영 아니다.맛 없는 아침 밥을 먹고 터미널로 가 확인해 보니 군내버스는 이곳 보은버스터미널이 아닌 중앙사거리에 있는 정류장에서 탑승을 해야 하기에 약 5분간 걸어 가는데 기온이 영하 7도까지 내려가 있고 강한 발함이 불어 와 볼이 얼어 붙고 콧물이 흐르며 오늘 하루 산행이 쉽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는 듯 하다.
그래도 이곳 보은은 다른 지역과 달리 토요일인데도 새벽 6시 35분 쌍암리로 향하는 버스가 출발하기에 마음 편히 산행 들머리로 이동할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산행 중 등로에 쌓여 있는 낙엽과 몇일 전 내린 눈으로 미끄러워 결국 헤드렌턴까지 켜 마지막 질신리로 하산하였으며 그곳에서 보은으로 나오는 버스는 시간이 늦어 탑승하지 못하고 카카오 택시를 이용해 마무리한 순간은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에 다시 내려 가 옥천에서 질신리로 가는 버스를 이용해 진행하면 금적지맥 산행도 마무리가 될 것이기에 낮의 길이가 조금은 길어진 내년 봄 쯤 마무리를 할 계획을 세워 본다.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까지 불어 귀마개를 하지만 볼이 얼어 붙어 어쩔 수 없이 버프를 쓰고 진행하니 추위는 견딜만 하지만 등줄기와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로 인해 추위와 더움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쌍암리에서 내려 칼바람이 불어 오는 도로를 타고 산행 들머리인 쌍암재로 오르고 금적지맥 분기점과 구룡산을 지나 447.3 삼각점봉을 넘어 잡목 등로를 내려가니 등로 좌측 앞 나뭇가지 사이로 멋진 산줄기가 조망되고 잠시 살펴보니 우측의 천황봉을 기준으로 좌측으로 바위 암릉이 이어지고 중간에 문장대 지나 묘봉과 상학봉으로 이어지는 충북알프스의 주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사진에 담으로 그 이름을 불러 본다.
생각지도 못한 환상의 조망으로 속리산을 구경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바로 이러한 시간 때문에 그 어려움을 뚫고 다시 산상으로 오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이어지는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해 보지만 떨어진 낙엽 위에 엊그제 내린 눈이 덮혀 있어 더욱 미끄러운 등로를 만들며 전혀 속도를 내지 못하게 한다.
그래도 꾸준하게 걸어 진행하다 보니 강한 바람도 조금은 완화되고 일출이 되며 기온도 올랐는지 방풍의가 없어도 진행에 부담이 없기 때문에 산행 속도를 내니 새벽에 버스로 넘었던 수리티재 지나 푯대봉을 통과하고 우측으로 펼쳐진 드넓은 벌목지대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당진과 영덕간 고속도로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에는 좌측으로 식장지맥 산줄기와 우측 끝자락으로는 한남금북 정맥 산줄기들도 보일듯 말듯 다가와 있다.
새벽 일찍 애마를 몰고 보은으로 내려 가 동다리하상주차장에 애마를 잘 주차시키고 터미널 앞 식당에서 돼지국밥을 시켜 먹는데 이 산객이 지금까지 먹었던 돼지국밥 중 최악이기에 국물에 밥만 몇 숟갈 먹고 일어 나 보은시외바스공용정류장에 도착을 하니 군내버스는 보이지 않아 편의점에 들려 확인하니 군내버스는 보은 한양병원 앞 중앙사거리에서 탑승을 해야 한다기에 헐레벌떡 그곳으로 가니 찬바람이 휭하니 불며 바람 막을 공간도 없다.
잠시 쉬고 있으니 새벽 6시 32분 쯤 쌍암리가는 830번 버스가 도착을 하고 그곳으로 오르니 아주머니 한분과 단 둘이서 그 넓은 버스를 전세내듯 이용한다.
보은읍은 충청북도 보은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읍으로 금강 수계인 보청천이 읍의 중앙을 관류하고 있으며 삼년산성이 있다.
읍 남부에는 2008년에 개통된 당진과 상주 간 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있어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영남권으로 접근하는 중요한 길목이 되었으며 현재 삼산리, 죽전리, 장신리, 교사리, 수정리, 지산리, 금굴리 등 28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보은이라는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본조 태종 6년(1406)에 보령현과 음이 서로 비슷하다 해서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현감을 삼았다 라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 초기인 1406년 이후에 생성되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지명이다.
현재의 읍은 조선 시대 보은현의 읍치가 있던 읍내면과 함께 사각면, 서니면, 산내면, 외북면 지역이었으며 조선 시대 읍내면은 동변리, 서변리, 하장리, 교동리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여지도서에는 사각면이 광석리, 길상리, 구인리 등 15개 리를 관할하였고 서니면은 송죽리, 황토리, 사각리 등 13개 리를 외북면은 어온동리, 오대리, 원평리 등 17개 리를 관할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와 함께 각 동리의 관문으로부터의 방향과 거리, 편호, 남녀 인구가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 해동지도에는 외북면, 사각면, 서니면이 동여도에는 사각면과 서니면이 1872년지방지도에는 읍내와 산내면, 사각면, 서니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때 외북면은 해동지도가 제작된 18세기 중반에서 1872년지방지도가 제작된 19세기 후반 사이에 면 지명이 산내면으로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신구대조에는 1914년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의 결과 읍내면을 포함하여 산내면의 종동리와 종서리, 종남리, 월안리 등 25개 리와 서니면의 10개 리, 사각면의 13개 리를 병합해 읍내면이라 명명하고 22개 리로 새롭게 개편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당시의 보은군청은 읍내면 삼산리에 있었다.
1917년에는 읍내면이 보은면으로 개칭되고 1973년에는 보은읍으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1987년에는 내북면의 중초리와 산성리, 노치리, 봉평리, 장곡리의 5개 리를 편입하였다.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토요일인데도 새벽 6시 35분 버스가 운행을 한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한 시간이었다.
중앙사거리 군내버스 정류장에서 찬바람이 휭하니 불어 오는 시간에 바람을 막아 줄 천막 하나 없는 곳에서 서성이며 벽면에 붙어 있는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니 정확히 6시 35분에 출발하는 쌍암리 버스표가 보여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얼마 전 근처의 다른 지방을 내려갔다 아침 7시 전에 출발하는 버스는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고 회사원들이 출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소식에 그 다음부터는 출발하기 전 늘 사전 전화로 확인하는데 엊그제도 보은에 확인해 출발을 알았지만 막상 이렇게 시간표를 보고 잠시 후 도착하는 830번 버스를 보니 많은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다.
아주머니 한분과 단 둘이 버스에 오르니 그곳 역시 차갑기는 마찬가지이고 그렇게 한동안 추위에 떨다 보니 난방을 가동했는지 버스가 따뜻해지니 내려야 할 지점이 가까워지고 있다.
승차한 후 25분여만인 아침 7시 쯤 마지막 종점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쌍암3리 마을 이정석이 서 있는 입구에서 내리니 생각보다 차가운 강한 바람이 불며 두 뺨을 얼리기 시작하고 온 몸에선 추위에 달달달 떨려 오기 시작해 잠시 배낭 챙기고 사진 몇장 찍은 후 빠른 발걸음으로 쌍암재 방향으로 걸어 오르기 시작한다.
이곳 암리는 충청북도 보은군 회인면에 있는 리로서 회인면의 북쪽에 있으며 구룡산 자락인 황계봉이 이어져 내려와 마을을 아늑하게 안아주고 있으며 회인천이 발원하여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능암, 지바우, 초갯골 등이 있는데 능암은 고려 때 웅암사란 절이 있던 곳으로 절이 없어지고 마을이 생겼다 하여 웅(熊)자에서 아래 네 점을 버리고 능암(能巖)이란 이름을 붙였고 동재정씨 집성촌이기도 하다.
지바우는 있는 마을 계목와 큰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고 초갯골은 옛날에 풀이 무성하였다 하여 생긴 지명이며 초개동, 능암리, 계암리를 병합할 때 능암과 계암의 이름을 따라 쌍암리라 하였다.
유적지로는 웅암사지가 있다.
쌍암재가 있는 진행 방향인 북동쪽으로 붉은 기운이 보이기 시작하며 조만간 일출이 시작될 것임을 알려주고 있는 듯 보인다.
추위에 온 몸이 얼어 붙는 듯한 느낌이기에 빠르게 걸어 571번 회인내북로를 타고 걸어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 흐르는 시냇물이 여전히 많은 수량으로 제법 강한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어 한여름 피서철엔 많은 피서객들이 몰릴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으로 걸어 본다.
잠시 후 도로 좌측으로 민가와 축사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걸어 오르니 다시 도로 좌측으로 구인산보덕사라는 입간판이 보이는데 이곳에는 구인산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기에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 보덕사 갈림삼거리를 지나니 이제 도로 우측으로 넓은 공터가 보이고 등산안내도와 화장실 건물이 보이는데 그 입구에는 승용차 한대가 주차되어 있어 이 산객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도 있음에 감탄하며 걸어가니 우측으로 구룡산산림욕장이라는 커다란 이정석도 서 있다.
그곳을 지나니 조금 더 급해지는 도로를 따르니 해발 290미터의 쌍암재라는 도로 이정판이 서 있는 한남금북정맥 상 쌍암재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기며 옛 추억에 젖어 본다.
쌍암재는 쌍암리 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붙은 이름으로 보이는데 쌍암리는 충청북도 보은군 회인면에 있는 리로서 회인면의 북쪽에 있고 구룡산 자락인 황계봉이 이어져 내려와 마을을 아늑하게 안아주고 있으며 회인천이 발원하여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능암, 지바우, 초갯골 등이 있는데 능암은 고려 때 웅암사란 절이 있던 곳으로 절이 없어지고 마을이 생겼다 하여 웅(곰웅)자에서 아래 네 점을 버리고 능암이란 이름을 붙였으며 동재정씨 집성촌이기도 하다.
지바우는 있는 마을 계목와 큰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고 초갯골은 옛날에 풀이 무성하였다 하여 생긴 지명이며 초개동, 능암리, 계암리를 병합할 때 능암과 계암의 이름을 따라 쌍암리라 하였다. 유적지로는 웅암사지가 있다.
이곳 쌍암재는 2010년 2월 마지막 날 홀로 한남금북정맥 제3구간 산행을 위해 홀로 통과했던 곳인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어 조금은 신기한 기억력이다.
벌써 10여 년 전에 다녀 간 쌍암재이지만 홀로 걸으며 산행후기를 작성해서 그런지 기억이 뚜렷하고 그 추억을 회상하며 몇장의 사진을 남긴 후 10여 년 전 내려왔던 등로를 따라 거꾸로 걸어 오르며 산행을 이어 가 본다.
짧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예전에는 묵은 밭으로 잡풀들이 무성했던 공터가 깨끗하게 경작되어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가장자리를 따라 오르니 올라야 할 금적지맥 분기점이 빤히 올려다 보이고 그 분기점 우측으로 이어지는 461.1봉도 보이기 시작한다.
잘 정리된 밭 경작지 끝자락 좌측으로는 파란색 그물망이 보이고 그 사이로 오르니 묵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우측으로 돌아 진행하며 지나 온 밭 경작지 넘어 쌍암재와 저 멀리 솟아 있는 산줄기를 살펴보니 나즈막한 한남금북정맥 마루금이 보인다.
10여 년 전 묵었던 공터가 이렇게 깨끗하게 정리된 밭 경작지로 바뀌었고 그 위에 얼마 전 내린 눈이 쌓여 있어 색다른 풍경을 선물하고 있다.
그 밭 경작지 좌측 경계를 타고 걸어 오르니 드디어 능선이 나타나고 그 뒷편으로 검정색 차단막도 올려다 보이는데 10여 년 전 수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주렁주렁 걸려있던 철줄은 사라지고 나뭇가지에 몇장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조금은 아쉬움도 남긴다.
그 앞 밭 경작지 끝자락에는 제법 하얀 눈에 쌓여 있어 준비했던 체인젠과 스패츠를 애마에 놓고 온 것을 잠시 후회해 보지만 산행 내내 체인제이 없어 고생은 안했지만 내려 쌓여 있는 눈과 낙엽으로 참으로 힘든 산행을 이어가게 되었다.
능선으로 오르니 떨어져 쌓여 있는 활엽수 낙엽 위에 엊그제 내려 쌓여 있는 눈이 얼어 붙어 여간 미끄럽지 않아 초반부터 진행에 애를 먹는다.
한발자국 걸어 오르면 두발짜국 미끄러지기 일쑤이고 그렇게 힘들게 그 오르막 등로를 걸어 오르니 준희님과 백두사랑 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금적지맥 분기점이란 이정판이 보인다.
2010년 2월 28일 진행하며 봤던 사진을 확인해 보니 그때도 동일한 준희님이 걸어 놓은 금적지맥 분기점이란 이정판이 보이는데 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이정판은 보이지 않았다.
강한 차가운 바람이 불어 사진 한장 남기기도 힘든데 안경에 입김까지 서려 어렵게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우측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본격적인 금적지맥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은 참으로 쉽지 않은 순간이었다.
분기점을 지나 우측으로 걸어 오르니 소나무들이 정상을 지키고 있고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461.1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좌측으로 꺽어 내려가니 새집들이 보이고 곧이어 방향만 표기된 이정표가 서 있는 무명안부를 통과하여 짧은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앙증맞은 정상석이 서 있는 548.7미터의 구룡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구룡산(548.7미터)은 충청북도 보은군의 내북면 용수리와 법주리 및 회인면 쌍암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548.7미터이다.
여지도서(회인)에 구룡산은 보은 속리산으로부터 와 주맥이 된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이후 1872년지방지도(회인), 조선지지자료(회인), 한국지명총람에 모두 표기자 변화 없이 구룡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상석 우측으로는 산림욕이란 안내판과 방향 표시만 보이는 이정표가 서 있어 추억 한장씩 남기고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가는데 강한 바람이 불어 두 뺨이 얼어 쓰라리기 시작한다.
구룡산 정상에서 추억을 남긴 후 우측으로 크게 돌아 내려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무명봉에 도착하고 띠지를 확인하고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활엽수 위에 하얀 눈이 쌓여 있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팔봉지맥 분기점 부근의 산줄기가 선명하게 다가오는데 나뭇가지에 가려 시야가 제한적이라 아쉽기만 하다.
잠시 후 산불조심이라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 무명봉을 통과하고 다시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이정표를 지나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고 독도님이 띠지에 해발고도를 적어 놓은 515.3봉에 도착을 한다.
띠지들을 보니 이미 다 알고 있는 종주자들로서 한분은 이미 162지맥까지 완주를 하였고 다른 한분도 조만간 졸업을 향해 열심히 산에 오르고 있으니 그 마지막 산행에는 동참이라도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515.3봉을 지나 내려가니 보이지 않던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안부를 지나 오르니 산림의 기능을 설명한 설명판과 우측으로 주차장 하산길이 표기된 이정표가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더 남겨 본다.
이정판에서 좌측으로 꺽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 앞으로 멋진 조망이 펼쳐져 있고 잠시 사진 한장 남기고 살펴보니 세촌리 방향으로 상궁저수지와 보은 도시를 지나 저 멀리 구병산 방향의 산줄기가 보이는데 오래 전 걸었던 추억을 회상도 해 보는 시간이다.
세촌리는 충청북도 보은군 내북면에 있는 리로서 면의 서쪽에 위치한 산촌마을이고 경주 김씨가 대대로 살고 있어 세촌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느리울, 바깥누리울, 안누리울 등이 있는데 느리울은 임진왜란때 명나라 사람 나학천이 이여송을 따라 나왔다가 길을 잘못들어 이곳에 이르렀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돌아갔다고 하고 바깥누리울 세촌리의 중심마을로 누리울의 바깥 쪽에 있는 마을이다.
아침에 떠 오른 태양이 그 산줄기 위에 떠 있고 그 아래 펼쳐진 산그리메가 환상으로 다가오는 아침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환상의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고 좋은 기분으로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등로 좌측 나뭇가지 뒤로 방금 전 걸어 넘어 온 금적지맥 마루금이 빤히 올려다 보여 사진에 담고 발걸음을 빠르게 옮겨 본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멋진 참나무 등로가 열리고 잠시 후 440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참나무 가지가 4개가 있는 정상이다.
그 무명봉을 지나 나즈막하게 내려갔다 오르니 글씨 인식이 불가능한 447.3미터의 삼각점봉에 도착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런 이정판이나 정상판도 없어 삼각점만 사진에 담고 곧바로 출발한다.
그 삼각점봉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급경사 내리막 등로로 변하면서 등로 좌측 앞으로 밭 경작지가 보이는데 그 넘어 저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멋진 능선이 펼쳐져 있어 무심코 내려가다 다시 확인해 보니 바로 속리산 주능선이다.
지난 주 팔봉지맥 산행을 하면서도 나뭇가지 사이로 잠시 만나 봤던 속리산이지만 사진에 담지 못해 아쉬웠는데 오늘 그 모습에 잠시 발걸음 멈추고 줌으로 당겨가며 몇장의 사진으로 남긴다.
속리산은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과 괴산군 및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명칭 유래를 보면 속리산은 오래전부터 광명산, 지명산, 미지산, 구봉산, 형제산, 소금강산, 자하산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속리산(俗離山)은 봉우리 아홉이 뾰족하게 일어섰기 때문에 구봉산(九峯山)이라고도 하며 신라 때는 속리악(俗離岳)이라고 일컬었다 라고 되어 있다.
증보문헌비고에는 속리산은 산세가 웅대하고 꼭대기는 모두 돌봉우리가 하늘에 나란히 솟아서 옥부용을 바라보는 것 같아 세속에서는 소금강이라 부른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높이는 1058미터이고 태백산맥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나온 소백산맥 줄기 가운데 위치하며 최고봉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보현봉, 관음봉, 묘봉, 수정봉 등 8개의 봉과 문장대, 입석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신선대, 봉황대, 산호대 등 8개의 대가 있다.
대부분의 봉과 대가 보은 쪽에 있는 반면 은폭동을 제외한 용유동계곡와 쌍룡폭포, 오송폭포, 장각폭포, 옥량폭포, 용화온천 등은 상주 쪽에 있다.
속리산에는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와 망개나무(천연기념물 제207호) 등 1055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고 또한 까막딱따구리(천연기념물 제242호)와 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제328호) 등 희귀동물을 포함하여 1831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봄에는 산벚꽃, 여름에는 무성한 녹음,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 겨울에는 설경으로 계절마다 장관을 이루며 등산로도 잘 닦여 있어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다. 1984년에는 속리산의 줄기인 화양동도립공원과 쌍곡계곡 일대가 속리산국립공원에 편입되었고 추가로 편입된 괴산군 청천면의 화양동계곡에는 송시열이 은거하며 필적을 남긴 화양구곡과 이황이 찾아왔다가 도취되어 노닐었다는 선유동구곡이 있다.
박대천의 지류인 화양천을 따라 좌우로 산재한 경승지를 화양구곡이라 하는데 한줌의 흙도 보이지 않는 흰 반석에 맑은 물이 흐르고 있고 울창한 숲과 조화를 이룬 모습이 장관이며 화양구곡은 경천벽, 운영담,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청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선유동구곡은 선유동문과 경천벽, 학소암, 연단로, 와룡폭, 난가대, 기국암, 구암, 은선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속리산은 수려한 경치와 다양한 동식물 및 대규모 사찰인 법주사와 여러 암자가 있어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때 의신조사가 창건한 절로 경내에는 쌍사자 석등(국보 제5호), 팔상전(국보 제55호), 석련지(국보 제64호), 사천왕 석등(보물 제15호), 마애여래의좌상(보물 제216호), 대웅보전(보물 제915호), 원통보전(보물 제916호), 신법 천문도 병풍(보물 제848호), 괘불탱(보물 제1259호),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 제1360호),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1호) 등이 있다.
10여차례 이상 오르고 많은 추억을 남겼던 속리산이기에 여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능선이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속리산을 보고 나니 마음이 들떠 어떻게 내려가는지 느낌도 없이 걸어 진행하고 약간의 잡목이 발목을 잡지만 신경 쓰지 않고 내려가니 다시 무명안부를 지나 멋진 참나무 등로가 길게 펼쳐져 있다.
미끄러워 진행은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참나무 낙엽이 깔려 있는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387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대전의 산지산인님이 걸어 놓은 띠지가 반겨 준다.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잣나무 군락지가 짧게 펼쳐지고 곧이어 깊은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아무 이름도 없는 무명안부이고 안부 좌측으로는 밭 경작지 위에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려 앉아 색다른 풍경을 선물하고 있다.
안부를 지나 오르니 깊게 쌓여 있는 활엽수 낙엽으로 인해 등로가 보이지 않고 사라져 방향만 잡고 진행하니 능선에 도착을 하고 짧게 걸어가니 다시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 등로가 이어지며 말랐던 등줄기의 굵은 땀방울이 등산복을 적시기 시작한다.
힘들게 걸어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고 독도님의 띠지에 해발고도가 적혀 있는 472.5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다 뒤돌아 보니 참나무에 파란 페인트가 칠해져 있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 472.5봉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지맥 산행을 하면서 자주 만났던 붉은 노끈이 계속 이어져 있어 고마운 인사를 드리고 진행하니 소나무가 펼쳐지고 곧이어 그동안 보이지 않던 바위가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바위를 보니 이곳 바위는 얇은 편바위가 쌓여 있는 듯 보이는 바위로서 사진에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447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소나무에도 역시 방금 전 만났던 파란 페인트가 칠해져 있어 더욱 궁금하기만 하다.
그 무명봉을 지나 내려가니 소나무 등로에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고 곧이어 다시 참나무 등로로 변하고 있다.
선답자들이 걸어 놓은 띠지를 확인하며 내려가니 뚜렷한 등로가 열리고 낙엽송 지대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 밭 경작지를 내려다 보며 진행하면 둔덕봉을 넘어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티고개에 도착을 한다.
갈티고개(2차선 포장도로)는 갈티리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처럼 보이는데 갈티리는 충청북도 보은군 회인면에 있는 리로서 회인면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동북쪽에 오봉산과 서쪽에 노적봉 등 사방을 산이 둘러싸고 있어 골짜기가 많으며 마을 앞으로는 회인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갈티 등이 있는데 갈티는 갈티리의 으뜸되는 마을로 옛날에 칡이 많은 고개 아래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부무골은 작은 노적봉 너머에 있는 골짜기로 이곳에는 불무형의 명당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 갈티고개에는 높은 콘크리트 옹벽이 설치되어 있어 우측으로 조금 걸어가니 도로 좌측 위로 묘지가 보이고 그곳으로 올라가는 등로를 찾으니 등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손쉽게 진행을 이어간다.
갈티고개에서 능선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마침 묘지로 가는 등로가 보여 쉽게 올라가지만 그 옆으로는 지난 여름날 무성하게 자랐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잡풀들과 가시나무들이 이 산객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잠시 묘지 마당으로 오르니 동래정공과 진주강씨 합장묘지이고 그 앞에서 도로 건너 펼쳐진 산줄기를 살펴보니 우측의 치마바위산 뒤로 이름없는 산줄기가 길게 펼쳐져 있어 사진에 담고 그 묘지 뒤로 나 있는 낙엽을 밟으며 어렵게 산행을 이어가 본다.
묘지 뒤로 오르니 소나무와 관목들 그리고 약간의 잡목들로 이뤄진 나즈막한 둔덕으로 오르고 별 특징없는 낙엽 등로를 따르니 활엽수 낙엽 이불을 뒤집어 쓰고 추위를 피하고 있는 무명묘지를 지나 다시 방금 전 헤어졌던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진행을 이어가게 된다.
도로 위 터널을 지나면 애곡리 복우실마을이 나타나는데 등로는 보이는 도로를 타고 조금 걸어 오르다 우측으로 올라 382.2봉을 찍고 다시 내려 와 저 앞에 보이는 동물이동통로 위를 통해 진행이 되고 있다.
복우실재는 충청북도 보은군 회인면 애곡리에 있는 복우실마을에 있는 고개로서 붙여진 이름처럼 보이며 복우실은 지형이 소가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애곡리는 충청북도 보은군 회인면에 있는 리로서 회인면의 동쪽에 위치하며 구룡산 자락에 걸쳐 있는 깨끗하고 소박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쑥티와 복우실 등이 있는데 쑥티는 애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쑥이 무성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단양우씨 집성촌이며 쑥을 먹은 황소가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여 사람을 해치는 일이 많아 황소를 사육하지 못하였다는 말도 있다.
복우실은 지형이 소가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 붙여진 이름이고 애티리와 보고곡리를 병합할 때 애티와 보고곡의 이름을 따서 애곡리라 하였다.
조상들의 위패를 봉안한 단양우씨 제단인 상현사가 있다.
진행 방향 도로 좌측으로는 인삼포가 내려다 보이는데 기온 변화와 함께 인삼의 재배지역도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해 보는 시간이다.
2차선 도로 방향으로 내려가니 순흥안씨가족묘지가 보이고 그 옆으로 돌아 내려가니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곧이어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좌측으로 걸어 진행을 이어간다.
도로 옆에는 예수님의교화와 애곡리라는 도로 간판이 보이고 사진에 담고 올라 우측으로 전봇대와 밭 경작지가 보이는 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초반부에는 잡목들이 긴장감을 주더니 오를수록 등로가 조금은 선명해지고 금새 주능선에 도착을 하는데 삼각점 표기가 되어 있는 382.2봉은 우측으로 조금 더 내려갔다 올라 와야 하는 모습이다.
내려가니 준희님 이정판이 걸려있는 382.2봉에 도착을 하지만 실제 이정판에는 381.5미터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고 그 아래 보여야 할 산각점은 소실이 된 듯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아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하고 정상판만 확인하고 다시 뒤돌아 올라 간다.
약간의 잡목들이 저항하기 시작하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간간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오래되었는지 낡아 헤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라 아마도 이곳 382.2봉은 생략하고 도로를 타고 도로 건너편 능선으로 진행을 한 듯 보인다.
짧게 나타나는 지독한 잡목지대를 뚫고 내려가니 동물이동통로가 나타나는데 등로 양쪽으로는 녹색 철망이 쳐져 있고 우측으로는 고석리 마을이 빼꼼히 내려다 보이는데 잡목들에 가려 정확한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고석리는 충청북도 보은군 회인면에 있는 리로서 회인면의 북쪽에 위치하고 옥녀봉 아래 자리하였으며 마을 앞으로 회인천이 흘러나가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고새별, 선돌, 양지말, 음지말 등이 있는데 고새별은 이 곳에 절이 있었는데 중이 절을 떠나며 이별했다 하여 고사별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고새별이 되었으며 큰 들에 풀이 무성하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 내를 이루어 고초리 또는 고초천리라 하기도 한다.
선돌은 처음 마을을 설립할 때 마을 표지로 큰 돌을 세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양지말은 양지쪽에 있고, 음지말은 음지쪽으로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보은군 내북면 하궁리(좌)
하궁리는 충청북도 보은군 내북면에 있는 리로서 면의 남부에 있는 산간 농촌마을이고 궁들 아래가 되므로 아래궁들 또는 하궁평이라 한데서 하궁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겅검바우, 대수리, 윗궁뜰 등이 있는데 겅검바우는 하궁리의 중심마을로 앞산에 있는 바위에서 염료로 쓰는 겅금이 나무로 겅금바위라 하던 것이 변하여 붙은 이름이고 대수리는 겅검바우 남쪽에 있는 마을로 수한면과 경계 아래 있는 마을이며 윗궁뜰은 겅검바우 상궁저수지 위에 있는 마을이다.
잠시 그 동물이동통로를 타고 반대편 능선으로 오르며 뒤돌아 보니 여름철 잡목들과 잡풀들이 우거지면 진행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등로이기도 하다.
동물이동통로를 통해 건너편 능선으로 오르니 이곳 역시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이 희미해지고 잡목들이 태클을 걸어 와 진행에 애를 먹는다.
어렵게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에 흰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모습이 나타나고 곧이어 은사시나무 군락지가 보이는데 살펴보니 제법 굵은 관목의 은사시나무들을 조림해 놓은 후 관리가 되지 않아 잡목 등로처럼 변해 있는 오르막 등로이다.
힘들게 이리저리 잡목들을 피해 오르니 선답자들의 띠지가 길라잡이를 해 주고 곧이어 키 작은 참나무들과 은사시나무 고사목이 보이는 397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등로 우측 앞 나뭇가지 사이로 진행 방향의 노성산과 국사봉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우측으로 길게 펼쳐진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눈길을 끌고 살펴보나ㅣ 대청호 지난 식장지맥의 산줄기처럼 보이는데 이곳에서는 정확하게 인식하기 어려워 보인다.
잠시 후 잡목을 뚫고 내려가니 무명묘지지대가 펼쳐지고 그곳에서 등로 우측을 보니 진행 방향으로 노성산에서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시원하게 올려다 보이고 잠시 후 무명안부를 통과하니 이곳 역시 예전에 산불이 났었는지 키 큰 나무들은 사라지고 잡목들이 등로를 차지해 진행에 애를 먹는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무명봉 정상부에 준희님이 달아 놓은 응원판이 보이고 사진 한장 남기고 조금 더 전진하니 넓은 비포장 임도의 산판도로가 나타나 잠시 그곳으로 내려가 심호흡 한번 해 본다.
비포장 임도인 산판도로로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산림청에서 세운 2017년 갈티간선임도라는 이정목이 서 있고 그곳에서 도로 우측을 살펴보니 도로 건너 저 멀리 잠시 후 올라야 할 427.4 무명봉이 제법 뾰족한 모습으로 이 산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이곳에서 지도를 보니 저 능선으로 오르기 직전까지 이 산판도로가 이어지지만 마루금은 임도 건너 가파른 절개지를 타고 올라 능선으로 이어지기에 잠시 마음의 갈등을 느끼다 원 마루금인 능선으로 오르기로 한다.
능선으로 오르기전 등로 좌측 뒤를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은사시나무 군락지와 동물이동통로 넘어 삼각점이 소실된 382.2봉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짧게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서 봤던 인삼포가 내려다 보인다.
그 뒤 저 멀리로는 지난 주 첫구간을 걸었던 팔봉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사진에 담으며 이야기를 나눠 본다.
방금 전 걸어 넘었던 382.2봉을 가운데 두고 좌우측을 살펴보니 우측으로는 갈티고개로 이어지는 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쌍암재에서 팔봉지맥 마루금으로 이어지는 접속구간과 팔봉지맥 분기점 지나 청주 방향으로 달려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지난 주 저곳을 걸으며 이곳을 살펴보니 나뭇가지에 가려 전혀 보지 못했는데 이곳에서 살펴보는 팔봉지맥은 실제 걸었던 기억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이 산객의 가슴으로 파고 든다.
잘 보여주지 않는 조망이기에 이곳 산판도로에서 많은 사진을 남기고 주위 산들의 이름을 불러준 후 가파른 절개지를 타고 능선으로 올라 뒤돌아 보니 여전히 아름다운 금적지맥과 팔봉지맥 마루금이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으로 더 남기고 전진하니 소나무 한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444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소나무 주변으로는 키 작은 참나무들이 잡목처럼 자라면서 등로를 삼켜 버렸기에 정상 등로를 찾아 잠시 살펴보니 약간 우측의 커다란 소나무 가지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고 그곳으로 고개 숙여 인사를 하며 힘들게 산행을 이어가 본다.
지독한 잡목들을 헤치며 잠시 내려가니 등로 우측 앞으로 올라야 할 427.4봉이 여전히 뾰족한 모습으로 이 산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잠시 후 그뾰족봉 우측으로 시원한 조망이 펼쳐져 있어 바쁘 발걸음 멈추고 많은 사진에 담고 진행을 이어가 본다.
사진 좌측으로 금적지맥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국사봉이 보이고 그 우측 뒤로 대전의 개머리산 뒤로 식장지맥인 계족산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돌아가며 하늘금과 맞닿아 있는 관암지맥의 계료산 부근이 그 능선 위만 하늘에 붙어 있는 모습으로 늘어서 있다.
중앙 우측 앞으로는 양성산과 작두산도 보이고 그 뒤 우측으로 조만간 걸어야 할 팔봉지맥과 그 멀리에는 관암지맥과 전월지맥이 보여야 하지만 그 앞의 능선에 막혀 나즈막한 그곳 산줄기들은 보이지 않는다.
생각보다 멋진 조망과 풍경들이 조금씩 펼쳐지기 시작하며 산행 속도를 떨어뜨리고 있기에 산행 후 보은으로의 복귀가 조금은 걱정이 되지만 너무 늦으며 그리 멀지 않기에 질신리에서 택시를 이용해 복귀하기로 하니 마음은 더욱 느긋하게 발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한다.
잠시 후 다시 방금 전 헤어졌던 비포장 임도인 산판도로를 만나 우측으로 휘돌아 올라가는 그 산판도로를 따라 잠시 진행을 이어간다.
원 마루금은 그 산판도로 좌측의 나즈막한 능선이지만 올랐다 금새 다시 내려와야 하기에 그냥 산판도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지나온 마루금과 팔봉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렇게 잠시 그 산판도로를 따르니 도로는 고개 넘어 좌측으로 휘돌아 내려가고 그곳 고갯마루 정상에서 마루금은 직진의 짧은 절개지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며 진행이 된다.
능선으로 오르니 능선이 아닌 우측 약간의 사면 등로로 이어지는데 예전에 비포장 임도였다가 묵어 있는 등로처럼 보이는데 이곳 역시 산불이 났던 지역처럼 보이는 등로이다.
잠시 후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 주능선의 잡목들을 헤치고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427.4 뾰족봉에 도착을 하는데 보기와는 달리 그렇게 뾰족한 봉우리가 아닌 잡목봉이었다.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427.4 뾰족봉을 넘어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를 지나니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휘어져 진행하다 금새 좌측으로 180도 뒤돌아 진행되는 모습이라 머릿속에 그 이미지를 확인하며 전진하니 등로 우측 옆으로 방금 전 지나온 금적비맥 마루금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그 마루금 넘어 저 멀리 하늘과 맞닿아 있는 팔봉지맥 마루금이 살짝 얼굴을 보여주고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눈맞춤을 한 후 출발한다.
조망이 없던 초반부와는 달리 진행할수록 아름답고 멋진 조망과 풍경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 오니 발걸음을 멈추는 시간도 많아지며 산행속도가 느려져 오늘 산행에 대한 걱정을 처음으로 해보는 시간이지만 어짜피 일찍 내려간다고 해도 특별히 할 일이 없으니 느긋하게 즐기며 진행하기로 한다.
지나온 마루금과 팔봉지맥을 살펴보고 계속 전진하니 커다란 참나무가 보이는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올라간다.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마루금과 팔봉지맥을 살펴보며 오르니 등로는 정상적인 능선이 아닌 우측 사면으로 나 있는 묵은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한참을 따르니 정상부에서 좌측 지독한 잡목들이 우거진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를 하고 그곳에 매달려 있는 선답자의 띠지를 확인하며 지도를 보니 등로는 좌측으로 다시 크게 꺽여 내려가야 하는 413 잡목 무명봉인데 이곳 역시 예전에 불이 났던 지역으로 추정되는 봉우리이다.
지독한 잡목들을 헤치며 힘들게 내려가니 나뭇잎이 완전히 떨어지지 않은 관목의 참나무 사이로 진행 방향의 봉우리들이 연이어 나타나고 그 좌측으로도 중간에 산판도로가 지나는 멋진 산줄기들이 계속 이 산객을 따라 오고 있다.
잠시 후 급경사 내리막 등로로 접어들며 진행하다 앞을 보니 진행 방향의 마루금 좌측으로 푸른 물을 가득 담고 있는 저수지가 내려다 보여 지도를 보니 진골저수지라 되어 있는데 최근 지도에는 이름도 없는 율산리에 있는 저수지로만 표기된 곳이다.
그 우측 뒤 저 멀리 노성산과 들리지 못한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연봉들이 벌써 이 산객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데 하나같이 솟아 있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야 하는 빨래판 등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쉬운대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진행 방향의 봉우리들을 살펴보며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전진하니 이름없는 붉은 띠지가 걸려 있는 395 무명봉을 지나고 또 다른 붉은 띠지가 보이는 무명봉을 넘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벌목 후 편백나무들을 조림해 놓은 풍경들이 드넓게 눈에 들어 온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다시 비포장 임도인 산판도로를 만나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짧은 구간 진행을 이어가 본다.
산판도로를 따라 짧게 이동하니 도로 좌측으로 안부처럼 생긴 능선 진입로가 보이고 그곳을 통해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하니 등로 좌측 발 아래로 멀게만 보였던 율산리의 진골저수지가 펼쳐져 있는데 그 물빛이 하늘빛과 동일하게 푸르러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저수지인지 잠시 헷깔렸던 시간이다.
잠시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424.3봉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에는 관목의 벗나무가 보이는 곳이다.
그 424.3봉에서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고 잠시 후 다시 오르니 보이지 않던 바위들이 박혀 있는 449 무명봉이다.
이제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휘어져 이어지고 별 특징없는 능선을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진행 방향으로 연봉들이 죽 늘어서 있는 모습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당진영덕간 고속도로 교각들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에는 이제부터 힘들게 넘어야 할 노성산과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금적지맥 마루금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 쳐진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오지만 마음속으로는 한숨부터 나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경험 상 어짜피 일정한 산행 시간과 거리가 채워져야 오늘 산행도 마무리가 될 것을 알기에 모든 것을 체념하고 흐르는 콧불을 닦으며 무명안부를 지나 오르니 갑자기 잡목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지독한 잡목들로 인해 무사했던 온 몸에 몇개의 생채기를 만든다.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워 보온이 불가능한 부분은 얼어 있지만 이마와 등줄기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흘러 입었던 방풍의를 벗어 배낭에 넣고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잡목지대를 우회하며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 두그루가 서 있는 무명봉을 지나 보은420이라는 삼각점이 박혀있는 449.4봉에 도착을 하는데 삼각점 옆 잘려진 참나무 가지에 준희님이 이곳을 450.2봉이란 이정판을 걸어 놨다.
사진 한장 남기고 준비한 음료수 한모금으로 갈증을 풀어 낸 후 갈길이 멀기에 곧바로 출발한다.
삼각점봉을 지나 멋진 참나무 능선을 타고 깊은 낙엽을 헤치며 진행하니 지금까지 잘 보이지 않던 바위암릉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우회하며 그 바위암릉을 통과하니 커다란 참나무들이 보이는 무명봉을 넘는다.
다시 나타나는 긴 바위암릉은 다시 우측으로 우회하며 힘들게 통과하니 청주한공 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 주위로 나무들이 사라지며 특히 등로 우측으로 환상의 조망이 펼쳐져 잠시 발걸음 멈추고 풍경들을 사진에 담아 본다.
지난 주 가족 모임 후 잠시 들렸던 문의문화재단지 뒷쪽의 양성산과 작두산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구룡산도 보이고 대청호로 내려 앉았던 산줄기들이 좌측으로 흐르며 걸어야 할 팔봉지맥과 걸었던 관암지맥 및 전월지맥의 산줄기들도 보일듯 말듯 펼쳐져 있는 풍경들이 가슴을 파고 들고 있다.
많은 사진을 남기고 등로 좌측을 보니 제한된 시야속에 한남금북 정맥 마루금이 보이지만 그 뒤로 보여야 할 속리산 구간은 앞 산줄기에 막혀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그렇게 한동안 청주한공 묘지에서 시간을 보내고 출발하니 조금 더 뚜렷한 우측 산줄기들이 펼쳐져 있어 자세히 살펴보니 팔봉지맥과 관암지맥 그리고 정ㄴ월지맥 산줄기가 모이는 지점이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일듯 말듯 펼쳐져 있는데 정확한 산줄기와 봉우리는 분간이 어려워 보인다.
그렇게 걸어 다시 완만하게 오르다 등로 좌측 뒤를 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었던 금적지맥 마루금 우측으로 산척리에서 하궁리 방향으로 이어지는 무명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눈길을 잡는다.
자꾸만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들과 조망에 취해 진행하다 보니 아침보다 현저히 느려진 산행 속도가 걱정되기 시작하고 조금 더 빨리 걸어 보지만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453 무명봉을 넘어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수리티재 넘어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다시 환상의 모습으로 펼쳐지고 그 마루금 좌측 저 멀리에도 올 봄에 힘들게 걸었던 장령지맥 산줄기와 좌측 옆으로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이 환상의 마루금을 만들며 펼쳐져 있어 그 이름들을 불러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이제 신산경표 상에 있는 총 162지맥 중 반 정도 오르다 보니 산행을 하면서 보이는 산줄기와 봉우리들에 대한 지식이 넓어지면서 조금 더 산행의 즐거움도 느껴보는 시간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진행 방향과 장령지맥 산줄기를 살펴보고 빠르게 진행하니 약간의 바위들과 벗나무가 보이는 400무명봉을 지나고 부드러운 참나무 등로와 바위지대를 넘으니 차량들이 통행하는 소음이 지척에서 들리기 시작하고 곧이어 회인면과 수한면을 이어주는 25번 보청대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해발고도 321미터의 수리티재에 도착을 한다.
수리티재(321미터)는 충청북도 보은군의 수한면 차정리 수리치에서 회인면 건천리 공태원과 야남골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차의현은 고을 서쪽 15리에 있으니 회인현과의 경계이다 라는 기록이 있고 회인현에도 차의현이 등장하는데 이때 차의는 수리의 받쳐 적기법(훈주음종법)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유사한 표기 사례로 음성군 생극면과 감곡면 및 충주시 신니면과 노은면의 경계에 있는 수리산 (수레의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후 해동지도에는 차의치로 표기되어 있고 회인현 지도에는 보은현과의 경계에 차령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때 차령의 차는 수리의 훈차 또는 훈음차 표기로 보인다.
여지도서에는 차의현은 현 서쪽 15리에 있고 회인현 경계에 있다 라는 기록이 보이며 동일한 표기가 대동여지도에도 확인된다.
조선지지자료(회인)에 차령이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 수리티재의 동쪽 골짜기에는 수리치라는 촌락이 분포하고 있다.
새벽에 버스를 타고 통과한 수리티재는 생각보다 차량들 통행이 많아 조심스럽게 통과한 후 곧바로 능선으로 진입을 하였는데 많은 선답자들은 좌측으로 이어진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다 이동통신탑 가까운 곳에서 마루금으로 올라 진행을 한 듯 보였다.
능선으로 오르자마자 등로 좌측으로 벌목 후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그 우측 경계 지역에 벌목된 나무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나뒹굴고 있는 등로가 열려 있다.
그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바로 앞으로 드높은 이동통신탑이 보이고 그 위 저 멀리 정상부에 또 다른 이동텅신탑이 보이는 푯대봉이 올려다 보인다.
그 벌목된 경계 능선을 타고 걸어 이동통신탑까지 진행하니 이제는 등로 우측으로 벌목 후 편백나무들이 식재된 장소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해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올라 본다.
등로 우측의 벌목된 경계를 따라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당진영덕간 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그 도로 조금 더 지난 지점에 회인터널이 자리하고 있는 풍경들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그 고속도로 건너 저 멀리에는 피반령으로 이어지는 팔봉지맥 마루금이 살짝 보이고 그 좌측으로 흘러가는 이름없는 산줄기가 길게 이어지며 좌측 앞의 노성산과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환상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멋진 조망과 풍경들을 조망하며 가파르게 오르니 벌목 경계선은 자꾸만 아래로 향하고 있어 조금 더 조망을 살펴본 후 좌측의 잡목들을 헤칠고 가파르게 올라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하니 지나 온 방향으로 400봉과 453 무명봉이 보이고 사진에 담고 다시 오르니 높은 이동통신탑과 보은307 삼각점 그리고 준희님이 걸어 놓은 435.5봉에 도착을 해 지도를 보니 434.9미터의 푯대봉 정상이다.
여전히 춥지만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다 보니 등줄기에 굵은 땀방울이 맺히고 방풍의를 벗어 배낭에 넣고 진행하다 보니 얼굴은 붉게 얼어 버린 모습이다.
그래도 이런 산행이 좋아 그 고생을 하면서도 또 내려가고 있으니 모든 고통은 스스로 감내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다만 이 434.9미터 삼각점봉은 어느 지도에는 푯대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이 푯대봉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이동통신탑과 삼각점이 박혀 있는 434.9미터의 푯대봉을 지나 우측으로 급격하게 떨어져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수리터널 위를 통과하고 그 아래로 지나가는 당진영덕간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는데 바로 앞에는 다시 회인터널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 뒤 저 멀리 우측으로 지난 주 짧게 걸었던 팔봉지맥 마루금이 피반령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그 좌측으로 흐르는 산줄기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도를 확인해 보니 이름없는 산줄기이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며 수리터널를 통과하니 등로 위에는 깊은 활엽수 낙엽들이 쌓여 미끄럽고 조심하며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며 수리터널을 벗어나니 이제는 등로 좌측으로 당진영덕간 고속도로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길게 뻗어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다시 사진에 담아 본다.
보은군쪽 산들이 올망졸망 보이고 당진영덕간 고속도로 좌측 멀리에는 보은읍도 보이는데 그 뒤로 보여야 할 속리산은 약간의 박무 현상속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고속도로 정중앙 저 멀리로 보이는 높은 산은 구병산쯤으로 생각되는 봉우리만 고개를 내밀고 있다.
등로 좌우측으로 곧게 뻗어 나간 당진영덕간 고속도로와 그 주위에 보이는 산들을 살펴보며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가지가 세개인 소나무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 좌측 앞을 살펴보니 안산과 거멍산들을 지나 다음 구간에 통과해야 할 금적지맥의 덕대산과 진산인 금적산 줄기도 보이기 시작해 그 산줄기를 가늠도 해 보는 시간이다.
그 산줄기 좌측으로는 차정리와 오정리 지나 오늘 날머리로 예상하고 있는 질신리 방향의 마을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날머리 방향만 가늠이 될 뿐 실질적인 질신리는 산자락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다시 진행 방향의 봉우리들을 살펴보고 이름도 불러준 다음 참나무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아름다운 소나무가 보이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고 등로 우측 앞 나뭇가지 사이로 이제부터 빙 돌아 올라야 할 노성산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데 지도를 보니 그곳을 오르기 위해서는 아직도 한참을 더 돌아 가야 될 것 같다.
잠시 후 소나무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벌목 후 편백나무 조림지가 펼쳐지고 그 아래로는 당진영덕고속도로 넘어 팔봉지맥 마루금이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우측 가장자리로 오늘 이 산객이 산행을 시작한 금적지맥의 구룡산 산줄기도 보일듯 말듯 보여지는데 우측 산줄기가 막고 있어 분간하기는 쉽지 않다.
등로 우측을 조망하며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고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진행이 어려워 우측 벌목지대로 우회하며 걸어 오른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금적지맥 분기점 부근과 팔봉지맥 그리고 당진영덕고속도로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다시 많은 사진에 담고 진행하니 등로 좌측 앞으로 노성산과 좌측 끝자락으로 오르고 싶었지만 들리지 못한 국사봉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등로 우측으로 당진영덕간 고속도로와 금적지맥과 한남금북정맥 및 고속도로 뒤로 팔봉지맥 마루금이 올려다 보인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멋진 풍경들 때문에 자꾸만 산행 속도가 늦어지며 이미 질신리에서 마지막 버스를 탑승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기에 마음 편히 천천히 걸어 택시를 타고 보은으로 복귀하기로 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등로 우측의 벌목된 경계를 따르니 지금까지 바라봤던 환상의 풍경들과 조망이 다시 펼쳐지고 많은 추억을 남기며 천천히 오르니 427 무명고사목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푹신한 낙엽을 밟고 내려가 무명안부를 통과하니 약간 거칠어진 참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지나 바위가 보이는 전망대에 도착을 하는데 이제는 등로 우측이 아닌 좌측으로 아름다운 풍경들과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이곳에서도 잠시 머물며 많은 사진들을 담아 본다.
제일 먼저 등로 좌측 뒤를 보니 바로 앞에 염통산이 솟아 있고 그 뒤로 이름없는 봉우리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으며 그 뒤 저 멀리에는 산경표상 한남금북정맥과 신산경표상 호서정맥 산줄기 넘어 속리산 국립공원 북쪽의 화양계곡 쪽 산군들이 아름다운 산그리메를 만들며 드넓게 펼쳐져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속리산을 찾아 보지만 속리산은 앞의 산봉우리에 막혀있는지 아니면 박무 현상으로 보이지 않는지 모르겠지만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운 환경이다.
화양계곡 쪽 산줄기와 봉우리들을 살펴보고 눈을 동쪽으로 돌리니 당진영덕고속도로가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회색도시인 보은읍이 희미하게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 뒤로는 구병산이 솟아 있는 모습까지는 보이지만 그 좌측으로 보은읍 뒤어 있어야 할 속리산은 박무속에 희미하게 확인이 되었지만 사진으로는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고속도로 우측으로는 항건산과 딱바위산 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항건산과 딱바위산 우측으로는 오늘 산행 날머리로 생각하고 있는 장선리와 질신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우측으로 금적지맥 마루금과 좌측으로는 거망산과 이름없는 봉우리들이 아름다운 산그리메를 그리며 드넓게 펼쳐져 있다.
계획으로는 내일 저 산줄기를 타고 걸어 금적지맥 산행을 마무리했으면 좋겠는데 결론은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오늘 밤 늦게 서울로 복귀하게 되어 언제 다시 내려 와 걸을 수 있을지 기약도 없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등로 좌측의 드넓은 지역을 확인하고 이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코 앞으로 478.9봉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노성산이 올려다 보인다.
그 뒤 저 멀리 다음 구간에 걸어야 할 금적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그 이름들을 찾아 보지만 정확하지 못해 각 이름은 불러주지 못함이 미안할 따름이다.
그렇게 다시 조금 더 머물며 많은 추억과 사진을 남기고 다시 바위 전망대를 나오니 이제 등로는 좌측으로 꺽여 진행되고 참나무와 소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 벌목된 나뭇가지 사이로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노성산과 좌측의 국사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데 보이는 것은 가까운데 그곳 정상으로 오르는 등로는 결코 쉽지 않은 오르막 등로였다.
무명봉을 지나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오르니 소나무 밑둥이 보이는 460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진행을 이어가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고 봉 따먹기의 대가이신 박건석님이 종이 코팅지에 무성산이라 적어 놓은 478.9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478.9 무성산이란 정상에서도 등로 좌측으로 차정리 마을이 그림처럼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구병산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차정리는 충청북도 보은군 수한면에 있는 리로서 수한면의 서쪽에 있고 산과 골짜기가 많으며 벼와 고추 및 채소를 재배하는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구소골, 밤나무골, 상차정, 수리티 등이 있는데 구소골은 옛날 노인들이 모이면 구수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또 지형이 구유처럼 생겨서 구수골이라 부르던 것이 변한 것이라고도 한다.
밤나무골은 옛날에 밤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생긴 지명인데 차정리란 지명은 본래 수리티고개 아래에 있다 하여 수리티 또는 차령 및 차정 등으로 불리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문화유적으로는 지정기념물 제15호인 후율사가 있다.
많은 시간 내려다 보고 이름을 살펴 본 풍경과 조망들이지만 이렇게 바라보니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슴에 남겨지는 시간이다.
사진 우측으로는 좌측으로는 구병산 지나 팔음지맥이 나즈막하게 보이고 가운데로는 다음 구간에 걸어야 할 울퉁불퉁한 거멍산과 그 우측 뒤 뾰족한 덕대산 그리고 그 덕대산 좌측의 평퍼짐한 금적산 줄기가 한눈에 들어 와 잠시 더 조망을 즐겨 본다.
차정리와 장선리 및 질신리로 이어지는 오늘 산행 날머리쪽을 살펴보고 다음 구간에 걸어 넘어야 할 거멍산과 덕대산 및 금적산을 살펴본 후 눈을 우측으로 돌리니 저 멀리 금강변의 나즈막한 산군들이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는 가재봉 라인이 제법 웅장한 산세를 자랑하며 눈 앞으로 바짝 다가와 있다.
저 가재봉으로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없기에 다음에 별도로 꼭 한번 오를 수 이는 기회가 있기를 바래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이어지는 소나무 능선을 타고 빠르게 걸어 전진하며 내려가니 능선 등로는 좌측으로 흐르는데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는 우측 잡목 사이로 걸려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정독을 해 보니 이곳이 길주의 지점으로 좌측의 뚜렷한 능선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낙엽 쌓여 있는 잡목 능선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 지점이었다.
어렵게 마루금을 찾아 내려가니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고 잠시 후 벌목된 우측으로 당진영덕 고속도로 교각 뒤로 좌측부터 팔봉지맥과 우측 앞쪽으로 금적지맥의 구룡산 부근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로는 한남금북정맥 마루금도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다시 봉우리 이름을 불러 본다.
잠시 더 많은 사진을 남기고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나뒹굴고 있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 앞으로 높게 치솟아 있는 노성산이 어서오라며 손짓으로 부르고 있는데 그곳까지 또 어떻게 올라야 하는지 두 다리에 전해지는 힘이 조금은 부치는 시간이다.
그래도 인간의 두 다리가 위대함을 알고 있기에 무심으로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그 노성산 좌측 저 멀리 503.7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저 503.7봉이 오르지 못하는 국사봉이라 생각했는데 국사봉은 좌측 벌목지 능선에 가려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생각보다 멋진 조망들을 살펴보며 진행 방향도 올려 본 후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는데 이제 노성산이 바로 눈 앞으로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노성산을 살펴보며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나즈막한 돌무덤들과 신수나무들이 보이는 성황당 안부가 나타나는데 등로는 그 성황당 안부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황당은 서낭당의 다른 말로 서낭신을 모신 당집이나 제단을 말하고 지방에 따라 할미당과 천황당 및 국사당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서낭신은 토지와 마을을 수호하는 신으로 최근까지 전국에 널리 퍼져 있었다.
서낭당은 보통 신수에 잡석을 쌓은 돌무더기나 신수에 당집이 복합되어 있는 형태로 고개 마루, 길옆, 부락입구, 사찰입구에 위치하고 있고 서낭신의 봉안처인 동시에 거소가 되는데 이 신은 천신과 산신의 복합체로 보여진다.
서낭신의 신앙에는 내세관이나 인간 정신세계의 이상 같은 것이 없고 현실적인 일상생활의 문제가 중심을 이룬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액과 질병, 재해, 호환 등을 막아주는 부락수호와 인간의 현실적인 생계문제 해결에 목적이 있고 신수에는 아이들의 장수를 위해 걸어놓는 헝겊조각과 상인의 장사를 잘되게 해달라고 걸어놓는 짚신짝, 신랑신부가 새살림을 차릴 때 부모계의 가신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신부가 자기 옷을 찢어서 걸어놓는 색헝겊조각 등이 있다.
또 통행인이 길을 안전하게 가기 위해 돌을 주워서 돌무더기 위에 던지거나 침을 뱉는데 이는 길가에 배회하는 악령의 피해를 막기 위함이며 이처럼 서낭당은 현실적인 문제를 기원하는 곳이다.
정초에는 부인들이 간단한 제물을 차려놓고 가정의 평안을 빌기도 하며 동해안 별신굿이나 강릉단오제는 규모가 큰 서낭제의 일종이다.
예전에는 제법 큰 규모로 굿이 열리기도 했을 법한데 이제는 사람들 통행조차 하기 힘든 고갯마루로 변해가고 있는 듯 보이는 성황당 고개 안부이다.
많은 신수들이 보이는 성황당 고개 안부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 우측 뒤로 지나 온 마루금이 보이기 시작하고 사진에 담고 다시 오르니 등로가 점점 더 가파르게 이어지더니 이제는 코가 땅에 닿을 듯 곧추세운 등로로 이어지고 그 위에 남아 있는 낙엽과 눈들이 쌓여 있고 바위들도 보이면서 최악의 등로로 변하고 있다.
거대한 바위암릉을 조심하며 타고 오르니 등로는 다시 직각으로 오르지 못하고 좌우측으로 사면 등로로 이어지듯 좁게 이어지고 있어 온 몸에 전해지는 긴장감이 최고조로 오르기 시작한다.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지나니 다시 바위암릉이 나타나고 경사도는 완화되어 있지만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며 전진하니 노성산 정상부가 멀지 않은 지점에 도착을 하고 고도를 높이니 잡목들도 사라지며 지나 온 등로가 시원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 우측으로 금적지맥 마루금 좌측에 솟아 있는 무명봉이 보이고 그 좌측 사진 중앙으로는 지맥 마루금 옆으로 솟아 있는 가재봉이 길게 줄지어 늘어 서 있으며 그 좌측 저 멀리에는 다음 구간에 걸어 넘어야 할 거멍산과 덕대산 및 금적산으로 이어지는 금적지맥 마루금이 솟아 있는 모습이 두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다음 구간에 올라 이곳을 바라보는 눈길과 마음은 어떨지 벌써 궁금해 지는 시간이다.
눈을 남동쪽으로 돌리니 방금 전 걸어 넘어 온 성황당 고개 지나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흐르는 금적지맥 상 478.9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바로 지척으로 보이고 그 우측 능선 뒤 저 멀리 다음 구간에 넘어야 할 거멍산과 우측 끝자락에 뾰족한 덕대산 그리고 그 좌측으로 금적산 라인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많은 사진으로 남겨 본다.
그 478.9봉 뒷쪽으로는 보은읍이 내려다 보이는데 산행이 아니라면 와 볼 기회조차 없었을 도시이기에 새롭게 다가오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 눈을 북동쪽으로 돌리니 우측 끝자락으로 478.9봉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쭉 이어진 금적지맥 마루금이 수리티재로 내려갔다 좌측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쌍암재 방향으로 이어진다.
그 뒤 저 멀리에는 충북 북쪽의 백두대간 마루금과 화양계곡 근처의 산군들이 보여야 하는데 박무로 인해 확인하기 쉽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이제 눈을 북쪽으로 돌리니 수리티재로 이어지는 25번 도로가 뱀처럼 길게 구불구불 이어지고 그 좌측으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금적지맥 마루금이 보이는데 사진 중앙부에 분기점 근처의 구령산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한남금북정맥 마루금과 구룡산 좌측으로는 팔봉지맥이 보인다.
마루금 바로 앞으로는 당진영덕간 고속도로가 지나고 그 아래 펼쳐진 건천리 마을이 그림처럼 내려다 보이는데 이 산객이 어릴적 살았던 고향과 많이 닮아 있어 문득 고향이 그리워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동안 그 전망대에서 많은 추억과 사진을 남기고 다시 조금은 완만해진 오르막 등로를 따라 몇걸음 올라가니 백두사랑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정상이정판과 이정목이 서 있는 515.5미터의 노성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노성산(572봉)은 충청북도 보은군의 회인면 송평리와 수한면 차정리 그리고 회남면 금곡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572미터이다.
세종실록지리지(회인)에 토산은 석철로 현의 남쪽 노성산에서 난다고 기록되어 있어 관련 지명이 처음 등장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회인)에는 노성산은 고을 남쪽 10리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노성산의 성 자의 표기가 세종실록지리지와 달리 성(聖)에서 성(城)으로 바뀌어 표기되어 있다.
여지도서에는 현 남쪽 1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해동지도(회인)와 대동여지도(보은)에도 표기자 변화없이 노성산(老城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조선지지자료(회인)에서도 노성산(老城山) 은 동면 노성리에 있다로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지명이 수록된 이후 500여 년간 동일한 표기자인 노성산(老城山)으로 변화 없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회인 일대에서 이름난 산임을 짐작 할 수 있으며 특히 한국지명총람에는 국사봉이 등장하며 이 산의 다른 명칭으로 노송산, 노성산, 좌월산이 기록되어 있다.
마을 주민들은 지명에 표기된 한자를 훈차 표기로 풀이하여 노송이 있어 산 이름을 노송산이라 부른다거나 산 정상에 고려 시대 최영 장군이 쌓았다고 전하는 좌월대가 있다 하여 좌월산이라 부른다고 전한다.
현재 노성산의 동쪽사면에는 수한면 노성리가 있다.
노성산 정상으로 올라오며 즐겼던 조망과 풍경은 노성산 정상에서는 사라지고 잡목 속에 파묻혀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으니 정상부 사진만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노성산으로 오르는 등로가 가파르고 바위암릉들이 있어 위험했지만 그렇기에 잠시 쉬면서 뒤돌아 본 조망과 풍경이 너무나 화상적이었는데 막상 정상으로 오르니 특별한 이정석도 없고 조망도 없어 추억 몇장 남기고 곧바로 낙엽이 깔린 능선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약간의 눈이 낙엽 위에 쌓여 있는 등로를 따라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와 함께 나뭇가지에 철심을 이용해 화살표 표식을 해 놓은 독특한 띠지들이 보이는 496 무명봉에 도착을 해 확인해 보니 충북경찰 안전관리공단에서 걸어 놨는데 나무에게는 피해가 될 듯 싶어 추천하기 어려운 방법처럼 보였다.
둔덕같은 무명봉을 넘으니 전주이공 묘지들이 나타나고 참나무 등로를 타고 내려갔다 완만하게 오르니 또 다시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460 무명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곧바로 진행을 이어간다.
무명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휘어져 내려가는 길주의 지점을 통과하고 등로 옆으로 보이는 작은 버섯은 주인이 따로 있는 듯 하여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커다란 참나무들이 보이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활엽수 낙엽이 무릎 근처까지 빠지는 안부이다.
안부를 지나 둔덕을 넘고 다시 또 다른 무명안부를 통과하니 생각보다 경사도가 급한 된비알 급경사 오르막 등로가 앞을 가로막아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힘들게 오르니 등로는 우측으로 휘어져 잠시 후 지도에는 표기가 없는 503.7봉에 도착을 해 준희님이 걸어 놓은 이정판을 배경으로 사진 몇장 남겨 본다.
그 이정판 옆으로는 이미 고인이 되셨다고 알고 있는 3000산 오르기의 한현우님이 갈고성산이란 작은 종이 코팅지를 달아 놨는데 어느곳에서도 산 이름을 발견할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그 503.7봉을 지나 조금 더 평이하게 걸어 진행하니 잘려진 참나무 고사목이 나뒹굴고 있는 572.3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등로 좌측으로 또 다른 노성산으로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이다.
시간도 없고 하늘엔 검은 먹구름이 밀려 와 금방이라도 비나 눈이 쏱아질 것 같아 좌측의 노성산 왕복은 포기하고 우측으로 휘어지는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 본다.
올라 왔으니 다시 내리막 등로를 따라 진행이 되지만 능선 같은 고도 차이가 별로 없는 등로이기에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걸어 보는 시간이다.
진행 방향으로는 나뭇가지 사이로 수많은 봉우리들이 줄지어 나타나고 그 봉우리들을 넘어야 한다는 사실에 두 다리의 힘이 빠지지만 어짜피 넘어야 할 봉우리들이기에 아무 생각없이 걷다 보니 커다란 소나무 가지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456.3봉에 도착을 한다.
금곡님과 독도는 우리땅의 이경일님이 다녀 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신상의 노란 띠지들이 반갑게 나란히 걸려있어 사진에 담고 다시 출발한다.
무명봉을 지나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무명안부로 내려갔다 다시 오르니 등로가 요상하게 이어지고 있어 정독을 한 다음 좌측 방향으로 크게 꺽어 사라진 등로를 찾아 급하게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에 선답자의 띠지가 걸려있는 455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진행 방향의 많은 봉우리들을 살펴보며 무명안부로 내려갔다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묵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가 나타나고 그 등로 한쪽으로는 커다란 철대문이 쓰러져 있으며 낙엽이 사라진 땅을 살펴보니 검은 색 석탄같은 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목장이 있었던 장소라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석탄 광산이 있었던 곳처럼 보이는 묵은 비포장 임도였다.
비포장 임도를 지나 낙엽속에 작은 검은 돌들과 석탄처럼 생긴 등로를 타고 가파른 된비알을 힘들게 걸어 오르니 상당히 큰 운지버섯들이 쓰러진 고사목에서 피어나 있는데 이것 역시 사진으로만 담은 후 다시 등줄기에 땀방울이 흐르도록 치고 올라 짧은 잣나무 군락지를 통과한다.
조금은 완만해진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고사목이 나뒹굴고 있는 무명봉을 지나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삼각점이 박혀있는 550.8미터의 국사봉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부에는 크게 함몰된 듯한 모습으로 한쪽에는 찟긴 플랭카드가 강한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국사봉(551.1미터, 보은 21 2등삼각점)은 전국적으로 여러 곳에 있으며 이곳 보은군 회북면과 희남면 경계에 있는 552미터봉의 국사봉 역시 그 중 한곳인데 지도의 국사 봉이라고 되어있는 이 산들을 현지 주민들은 한결같이 국수봉이라 부르는데 그 까닭은 알 수 없으나 이들 산의 거개가 봉화대터가 있거나 봉우리에 석축 흔적이 있다.
국어사전에 국수는 먹는 국수가 있고 나라의 병을 고친다는 의국수의 준말로 이름 난 의사의 뜻이 있으며 바둑이나 장기의 명수로 나라에서 일류인 사람을 말하는 경우가 있고 두 손을 오목하게 하여 물을 뜨는 것을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중에서 나라와 관계 있는 말은 나라의 병을 고친다는 뜻의 국수 밖에 없다.
400미터 이상의 국수봉 중에서 보은군 회북면과 회남면 경계의 552미터봉은 멀고 외진 곳에 있어 더욱 그 의미가 알기 어려운 곳 중 한곳이다.
시간을 보니 오후 4시가 넘어가고 아직도 갈길은 먼데 국수봉을 오르려면 낮은 안부로 내려갔다 급경사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올라야 하기에 오늘 오르기엔 무리하는 판단에 왕복을 포기했지만 다녀 온 지금은 많은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다.
아쉬움을 남기고 우측으로 보이는 국사봉을 사진에 담고 넓은 함몰지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활엽수 낙엽이 깊게 깔려 있는 평이한 능선 등로로 이어지고 약초를 재배하는 사유지로서 출입을 금지한다는 풀랭카드가 자주 보이기 시작한다.
좌측으로 하산 등로가 갈리는 갈림삼거리에서 우측 내리막 등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대청호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는데 나뭇가지에 막히고 날씨도 흐리면서 미세먼지가 있는지 뚜렷한 모습은 보기 어렵다.
그래도 대청호를 내려다 보며 걸어 진행할 수 있음에 즐거운 마음으로 전진하니 참나무들이 보이는 무명안부로 내려가고 그 안부를 통과해 다시 오르니 가지가 많은 참나무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507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차돌들이 보이는 또 다른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능선 같은 등로를 타고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오르니 고사목들이 보이는 53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하고 진행을 이어간다.
고사목이 있는 533 무명봉을 지나 참나무 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진행 방향의 무명봉들을 살펴보며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낙엽이 미끄러워 몇번인가 호랑나비 춤을 추면서 진행하는 시간이다.
선답자의 띠지가 보이는 554 무명봉을 넘고 참나무가 가득한 등로를 따라 무명안부로 내려갔다 오르니 등로 우측 앞으로 조금 더 선명한 대청호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잠목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등로 좌측의 561.5봉으로 올라 추억 한장 남겨 보는데 이곳 역시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족보가 있는 561.5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지만 주위에는 그 어떤 표시기들도 보이지 않아 서운하기까지 하다.
잡목들이 보이는 561.5봉을 지나 올라갔던 등로를 타고 다시 내려 와 이제는 진행 방향 좌측으로 진행하니 태풍에 쓰러진 거대한 소나무 가지들이 말라죽어가는 무명안부를 지나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연이어 무명봉들이 나타난다.
다시 큰 굴곡없는 능선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504.5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하산 등로를 찾아보니 이곳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90도 꺽어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이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싸락눈이 떨어져 걱정과 고민을 하면서 내려가니 진행 방향으로 노성리고개 넘어 제법 높아 보이는 503.6 삼각점봉에서 좌측으로 541.8봉으로 이어지는 금적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오며 저곳을 넘어야 오늘 산행이 마무리됨을 알려주고 있다.
사진에 담으며 발걸음은 진행을 하고 있지만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한데 질신리까지 진행을 해야 다음 구간 대중교통과 진행이 수월할 듯 한데 하지만 오늘은 어둠속에 보이는 것 하나 없이 저 봉우리들을 넘어야 하는 어려움도 상존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진행 방향의 도로와 봉우리들을 살펴보며 내려가니 생각보다 급한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고 낙엽이 깊게 깔려 있어 중간에 등로도 사라졌다 희미하게 나타나기를 반복하고 잠시 후 바위암릉도 보인다.
어둠이 짙어지는 시간이기에 최대한 조심하며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가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데 다 내려가 살펴보니 너무 급경사이기에 다른 선답자들은 우측으로 크게 우회하며 진행을 한 듯 보였다.
등줄기에 땀이 흐를 정도로 집중하며 내려가니 드디어 평이한 낙엽 등로가 열리면서 곧바로 철조망이 나타나는데 그 철조망을 타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 초지가 내려다 보이는 철사줄 출입금지 지역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철사줄을 넘으려고 손을 대는 순간 찌릿한 전기가 통하고 그 통증으로 인해 전기줄을 넘는 것을 포기하고 탈출구를 찾아 보지만 쉽지 않아 우측으로 갔다 좌측으로 그 전기줄을 빙 돌아 내려가 보지만 끝어진 곳이 없어 난처하다.
잠시 후 전기줄 옆으로 나무가 서 있는 곳에서 나무를 이용해 무사히 전기줄을 통과하여 잠시 초지지역을 통해 정상 마무금 가까이 부터 걸어가니 철대문이 나타나고 그 옆으로 돌아 어렵게 용촌차정로 2차선 포장도로인 노성리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주위는 벌써 짙은 어둠속에 파묻혀가며 보이는 것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헤드렌턴를 꺼내 야등을 잠시 진행하기로 한다.
이곳 노성리고개는 노성리에 있는 고개라서 붙은 이름으로 노성리는 충청북도 보은군 수한면에 있는 리로서 수한면의 동쪽에 위치하며 사방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골짜기가 많아 밭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송정, 모개울, 점볼 등이 있는데 송정은 옛날에 노송이 많이 우거졌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모개울은 갈고성에서 남쪽 온천으로 나가는 목이라 하여 모개울이라 하였다고 하며 점볼은 옛날에 솟점이 있었다고 한다.
노성리라는 지명은 노성산 밑이 되므로 노성골과 노성동 또는 노성이라 하였는데서 유래하였으며 마을 뒷산인 태음산에는 우리나라 국민이 3일간은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예산하기로는 이 시간에 질신리 버스 정류장까지 진행을 해 그곳에서 출발하는 마지막 버스 편으로 보은까지 이동하기로 했는데 낙엽과 내린 눈으로 등로가 미끄러워 2시간 이상 지체가 될 듯 싶지만 일찍 끝낸다고 해도 할 일이 없으니 계획대로 질신리 정류장까지 가 보기로 한다.
노성리고개에 있는 용촌차정로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갑자기 생활용품들이 쌓여있는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해 전진하니 그 비포장 임도는 점점 좌측 아래쪽으로 이어지고 있어 우측 짧은 절개지를 타고 어렵게 능선으로 오르니 우측에서 올라오는 정상 마무금과 만나 좌측으로 걸어 진행한다.
생각해 보니 생활용품들이 쌓여있던 비포장 임도에서 우측으로 올라으면 편안했을 것을 잠시 돌아 오르느라 힘만 빤 시간이다.
짙은 어둠속에 희미한 등로를 찾아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벌목지대가 펼쳐지고 그 아래 동정리와 노성리 마을에는 하나 둘 밝은 전등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잠시 후 금곡님의 띠지가 보이고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474 무명봉에 오르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오르니 삼각점 하나만 둥그런히 박혀있는 503.6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인증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503.6 삼각점봉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휘어 진행되고 등로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트랙을 확인하며 진행하다 보니 산행 속도는 점점 더 느려져 이제는 오늘 중 무탈하게 하산만 하자는 생각으로 바뀌고 나니 급할 것이 더욱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대전의 구름나그네님이 달아 놓은 띠지가 나풀거리는 501무명봉에 도착을 해 남아 있는 간식거리고 허기를 달래고 새벽에 편의점에서 구매한 사과 음료수로 갈증을 풀고 나니 오늘 준비한 물 1리터는 입도 대지 않고 단지 사과주스 500미리리터를 마신게 전부인 하루였다.
허기를 달랜 후 평이한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걸어가니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도상 541.8봉에 도착을 하고 어렵게 사진 한장 남기고 보이는 것이 없으니 곧바로 출발한다.
약간의 싸락눈이 내리면서 조금 잠잠해졌던 바람이 강하게 불기 시작하고 다시 벗었던 방풍의를 입고 희미한 등로를 찾아 전진하니 붉은 띠가 묶여있는 541.8봉을 지나고 잠시 후 관목의 참나무와 바위가 보이는 53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하고 다시 출발한다.
어둠속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그저 트랙과 눈 앞에 보이는 희미한 등로를 찾아 걸어가니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등로 양쪽을 지키듯 서 있는 456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우측으로 꺽어 진행을 해야되는 등로를 놓치고 직진의 좌측 등로를 타고 잠시 내려가며 알바도 해 본다.
다시 정상적인 등로를 찾아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독도는 우리땅이란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을 지나 옥천군 안내면이라는 도로 표지팜이 불빛에 빛나는 575번 안내수한로 2차선 포장도로인 장선리고개에 도착을 한다.
장선리고개(월외리고개, 575번 안내수한로 2차선 포장도로)는 보은군 장선리와 옥천군 월외리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로서 장선리고개 또는 월외리고개라 불리는 곳으로 장선리는 충청북도 보은군 수한면에 있는 리로서 수한면의 남서쪽에 있고 서쪽으로 피난봉이 웅장하게 솟아있으며 고추와 벼를 주로 재배하는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장선, 감나무골(枾木洞), 궁터골(弓基洞) 등이 있는데 감나무골은 마을에 감나무가 많았다 하여 생긴 지명이고 궁터골은 임진왜란 전에는 홍병서라는 사람이 이 곳에서 활 연습을 하였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들이 활과 화살을 만들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월외리는 충청북도 옥천군 안내면에 있는 리로서 노승산과 가재봉이 마을을 감싸 안고 있으며 중앙으로는 월외천이 발원하여 흐르는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달외(월외), 서답불(서답평), 용골(용곡) 등이 있는데 달외는 사방에 높은 산이 있으므로 달 밖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여기서 월외리라는 지명이 유래되었으며 서답불은 조 헌 선생이 은거하면서 빨래를 한 곳이라 전하고 용골은 옛날에 용이 승천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곧바로 능선에 들며 나머지 산행을 이어가 본다.
능선으로 오르니 밀양박씨 묘지를 지나 등로는 좌측으로 휘어져 이어지고 마을이 가까운지 견공들이 어둠속에 낙엽을 밟는 소리를 들었는지 목청껏 울부짓고 있어 괜시리 미안해지는 시간이다.
다시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갑자기 눈 앞에 신목들과 나즈막한 돌무덤이 보이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옛날 성황당과 같은 모습의 성황당고개이다.
성황당은 서낭당의 다른 말로 서낭신을 모신 당집이나 제단을 말하는데 지방에 따라 할미당과 천황당 또는 국사당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서낭신은 토지와 마을을 수호하는 신으로 최근까지 전국에 널리 퍼져 있었다.
서낭당은 보통 신수(神樹)에 잡석을 쌓은 돌무더기나, 신수에 당집이 복합되어 있는 형태로 고개 마루, 길옆, 부락입구, 사찰입구에 위치하고 있고 서낭신의 봉안처인 동시에 거소가 되며 이 신은 천신과 산신의 복합체로 보여지는데 서낭신의 신앙에는 내세관이나 인간 정신세계의 이상 같은 것이 없고 현실적인 일상생활의 문제가 중심을 이룬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액과 질병, 재해, 호환(虎患) 등을 막아주는 부락수호와 인간의 현실적인 생계문제 해결에 목적이 있으며 신수에는 아이들의 장수를 위해 걸어놓는 헝겊조각, 상인의 장사를 잘되게 해달라고 걸어놓는 짚신짝, 신랑신부가 새살림을 차릴 때 부모계의 가신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신부가 자기 옷을 찢어서 걸어놓는 색헝겊조각 등이 있다.
또 통행인이 길을 안전하게 가기 위해 돌을 주워서 돌무더기 위에 던지거나 침을 뱉는데 이는 길가에 배회하는 악령의 피해를 막기 위함이다.
이처럼 서낭당은 현실적인 문제를 기원하는 곳으로 정초에는 부인들이 간단한 제물을 차려놓고 가정의 평안을 빌기도 하며 동해안 별신굿이나 강릉단오제는 규모가 큰 서낭제의 일종이다.
이 산객이 어렸을 적 시골에 살때도 역시 당집이 있었고 가끔 굿을 하는 광경도 목격을 하였는데 밤에 혼자 그 당집 옆을 지나갈 땐 왜 그리 무서웠던지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웃음만 나온다.
그 성황당고개에서 정상 등로를 찾지 못해 잠시 우측 아래로 안부를 따라 내려가다 좌측 능선으로 가시나무들을 헤치며 오르니 금새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는 정상 마무금에 도착을 하고 다시 평이하게 걸어 진행하니 마을과 거리가 더욱 가까워졌는지 불빛들이 바로 지척으로 다가오고 강아지들의 울부짓는 소리가 더욱 귓전을 때리고 있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311봉이 멀지 않기에 잠시 올랐다 추억 한장 남기고 내려오는데 낙엽에 묻힌 등로를 찾지 못해 헤매다가 어렵게 등로를 찾아 다시 진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어렵게 정상 등로를 찾아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검정 차단막이 길게 설치되어 있어 그 천막을 타고 진행하고 다시 만나는 무명묘지에서는 좌측으로 꺽어 걸어가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318 무명봉에 도착을 해 어렵게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제부터 나타나는 약간의 잡목들을 넘어 전진하니 눈 앞에 갑자기 민가 한채와 축사가 보이는데 그곳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이방인의 출현에 울부짓고 주인장에게 미안하기에 그 민가 뒷쪽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빠르게 통과해 본다.
민가를 지나 잡목과 잡풀들이 무성했다 말라 죽어 있는 교통호 같은 묵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어렵게 걸어 오르니 등로는 우측으로 휘어지는데 직진 방향으로 잘 알고 있는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어 잠시 헷깔렸던 지점도 지난다.
어렵게 정상 등로를 찾아 우측으로 내려가니 안부를 지나 밭 경작지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밭인지 아니면 초지인지 분간조차 힘든 곳이다.
그곳을 지나 가시나무와 잡목들을 헤치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305.5봉에 도착을 해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선답자의 산행 띠지들을 확인하고 그 305.5봉을 넘어 진행하니 지독했던 가시덤불과 칡넝쿨 지대가 나타나는데 계절이 바뀌면서 그 위세가 누그러져 진행에 큰어려움은 없어 다행이다.
그 가시나무 지대를 지나니 넓은 초지가 나타나고 그 초지를 지나 다시 언덕으로 오르니 등로 좌측 아래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우측 앞으로 민가의 불빛이 훤하기만 한데 그곳에 있는 강아지 몇마리가 다시 마을이 떠나갈 듯 짓어대고 있다.
그 민가를 좌측으로 내려다 보며 조금 더 걸어가니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그곳 묘지가 있는 곳에서 좌측 민가가 보이는 방향으로 내려 가 그 민가 앞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마지막 힘을 내 본다.
민가 담장을 좌측에 두고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금새 그 포장도로는 비포장 임도로 바뀌면서 우측으로는 과수원이 있는 듯 보인다.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조금 더 전진해 걸어가니 다시 마을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장선소계로 2차선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한다.
그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우측으로 걸어가며 도로 표지판을 보니 잠시 후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직진은 보은 방향이고 우측으로는 옥천과 안내 방향이 표기가 되어 있는데 이 산객은 우측의 옥천 방향으로 도로를 타고 진행을 해야 한다.
도로를 타고 걸어가며 카카오 택시를 부르니 채 3분도 되지 않아 연락이 오고 택시를 확인한 후 도로를 타고 마지막 날머리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질산리는 충청북도 보은군 수한면에 있는 리로서 수한면의 남쪽에 있고 근처에 매봉산과 거멍산이 있어 마을이 비교적 높은 곳에 있으며 담배와 고추 및 벼 위주의 경작을 하는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질고지, 새터, 참나무쟁이 등이 있는데 질고지는 산이 길게 뻗어나와 곶을 이루고 있어 긴곶이라 불리던 것이 변하여 생긴 지명으로 또 지대가 높아서 제일고지라 부르던 것이 변하였다고도 하고 여기서 질신리의 지명이 유래했다고 하며 질관리와 신리를 병합하여 질신리가 되었다고도 한다.
새터는 서남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이고 참나무쟁이는 참나무가 많아 숯을 구웠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완전한 어둠이 내려 앉은 시골 도로는 한적하면서도 조용해 개들이 짓는 소리가 더욱 마을을 깨우고 있어 미안하기만 하다.
갈림삼거리에서 우측 옥천 방향으로 나 있는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저 멀리 방하목리 마을의 민가에서 흘러 나오는 불빛들이 마치 이 산객이 어릴적 시골에서 살던 때와 비슷한 모습으로 다가와 마음이 찡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드디어 도로 우측으로 방하목리 질산리 버스 정류장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배낭 정리하고 옷을 입고 있으니 택시 기사로부터 전화가 오는데 이 산객이 전화를 건 질신리 버스 정류장이라고 하여 설명하면서 금새 그 택시를 만나 편안하게 보은으로 뒤돌아 간다.
방하목리는 충청북도 옥천군 안내면에 있는 리로서 거명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어 골짜기가 많고 중앙으로 흐르는 안내천의 발원지이며 밭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방하목, 비금터(비금기,삐끔터), 상송정이(삼송정), 정구지밭골, 질구지(제일고지,월경) 등이 있는데 방하목은 지형이 방아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비금터는 임진왜란때 피난와서 이룬 마을로 비금산의 이름을 땄으며 상송정이는 옛날 최, 황, 배 3성의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각각 소나무를 하나씩 심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질구지는 지대가 높다.
생각보다 먼 거리를 어둠속에 헤드렌턴의 불빛으로 힘들게 진행하고 보은으로 돌아가니 다시 옥천으로 가 여관에서 자야한다는 사실이 내키지 않아 대전 찜질방에서 쉬고 내일 새벽에 내려 와 남아 있는 구간을 마무리하고 올라가려고 계확한다.
그렇게 보은읍에 잘 도착을 해 공용주차장에서 애마를 회수하는데 얼마나 추운지 온 몸이 떨리기 시작하고 재빨리 시동을 켜 실내를 따뜻하게 만든 후 배낭을 정리하고 등산화와 등산복까지 정리한 후 따뜻해진 애마를 끌고 대전으로 향하면서 걱정하는 옆지기에게 연락하니 추운 날씨에 밤 늦게까지 고생했다면 오늘 올라 와 소맥 한잔하고 내일은 오붓하게 쇼핑이나 하자며 꼬드겨 못이기는 척 서울로 복귀한다.
날씨가 추워 그랬는지 아니면 미끄러운 낙엽과 눈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산행은 체력적인 어려움과 정신적인 부담으로 일요일 산행을 포기하고 올라오니 몸은 좋은데 마음 한구석은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만 가득 남긴 시간이었다.
하루해가 워낙 짧으니 산행 구간 나누기도 조금은 짧게 끊어 편안하게 진행하고 올라 올 수 있는 방법으로 한동안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산행을 접는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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