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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백운지맥(영월·완)

백운지맥 마지막 제3구간 서낭당고개에서 섬강 합수점인 흥원창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9.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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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강원도 원주시의 백운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9년 07월 13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새벽부터 오전까지 박무에 구름이 껴 흐렸고 습도가 높았으나 오후부터 뜨거운 햇살이 나오면서 맑고 무척이나 무더웠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상 18도에서 영상 31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서낭당고개(이정석, 404번 귀문로 2차선 포장도로, 구사버스정류장)-비포장임도-국가유공자이수연의묘지-345.5 삼각점봉-

               녹슨 철조망-521 무명봉-간벌지대-609 무명봉-678 바위 무명봉-미륵산(689.9봉, 바위)-바위암봉 우회등로-652 무명봉-563

               무명봉-473 무명안부-533 봉림산 갈림삼거리-봉림산(577.5봉, 삼각점과 이정판)-465 무명봉-411 무명안부-427 무명봉-391

               서지재 잡목지대-459 공터 무명봉-벌목 후 조림지대-481.1봉-474 무명봉-쌀개봉(496.6봉, 삼각점)-449 무명봉-467.2봉-

               비두냄이고개(손비로 2차선 포장도로)-철계단-380 무명봉-384 무명봉-409.7봉-437.4봉-무명안부-443.4 삼각점봉 갈림삼거리

               바위-상봉산(443.4봉, 삼각점)-387 무명바위봉-만디고개 안부-벌목 후 식재지대-369.2봉(만디봉?)-무명안부-399.1봉-

               418.6봉-412 고사목공터봉-409 무명봉 갈림삼거리-409 무명봉-박수고개(비포장임도)-비포장임도-326 무명봉-부문재(후용고개,

               손곡리 이정석, 13번 2차선 포장도로)-벌목 후 조림지대-무명안부-벌목 후 조림지대-197 무명봉-260.1 삼각점봉-302봉-황수골

               갈림사거리 안부-긴경산(이정판, 삼각점, 헬기장)-314 무명봉-287 무명봉과 조망처-작은돌탑-307.1봉(흥이나 어려운골)-흥이나

               너럭바위-수영봉(283봉, 남한강전망대)-무명안부-52번 송전탑-소리개고개(묘지)-묵은 비포장임도-166 무명봉-무명안부-243

               삼각점봉(정상판, 산불감시초소)-157 무명봉-153 무명봉-양계장-비포장임도-채소재배용 비닐하우스-시멘트 포장도로-

               견휜로 49번 2차선 포장도로-흥원창 버스정류장-흥원창(섬강과 남한강의 합수점)-행종료

산행거리 : 약 22.56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서낭당고개 404번 귀문로 2차선 포장도로에서 흥원창 49번 견휜로 2차선 포장도로까지)

산행트랙

20190713 백운지맥제3구간 서낭당고개-흥원창.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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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시간 : 높은 습도와 박무 및 뜨거운 햇살로 힘들게 진행하여 11간 14 (05시 12부터 16시 26분까)

교통편 및 숙박 : 갈때 - 03:20 집에서 애마로 출발 

                               04:55 404번 귀문로 서낭당고개 도착 후 주차 

                               05:12 산행 준비 후 백운지맥 마지막 제3구간 산행 시작

                       올때 - 16:26 섬강과 남한강이 합수되는 흥원창에 도착 해 배낭 정리 후 민가에서 세수                                                                            16:45 원주에서 귀래방향으로 운행되는 55번 버스 탑승하여 돌고 돌아 귀래면 도착

                                17:30 귀래면 종점에 도착 후 히치 하이킹으로 서낭당고개 가까운 곳까지 이동 

                                17:50 서낭당고개 도착해 애마 회수하여 곧바로 귀가 

                                19:20 귀가 후 저녁식사와 사진 정리하고 휴식

백운지맥이란 ???

공식적인 용어와 이론이 정립되지 않다 보니 지맥 산줄기에도 많은 이론들이 존재하고 특히나 영월지맥과 백운지맥이 지나는 이곳 역시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는 산줄기이기에 오래 전부터 오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어 미루고 또한 산줄기가 이어지는 차례대로 진행하려는 개인적인 원칙이 있어 진행하다 중단된 천등지맥도 오르지 못하고 있기에 더 이상 미루지 못하고 오르게 되었다.

영월지맥 남대봉에서 분기하여 시명봉 백운산을 거쳐 서진하며 섬강이 남한강에 합류하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흥호리에서 산줄기를 마감하는 46.9 Km의 산줄기다.

백운지맥이 분기하는 남대봉은 원주시와 횡성군의 경계이고 마루금은 원주시 판부면과 신림면을 가르며 시작해 중앙고속도로 옆 가리파재를 넘어 올라선 937.6 미터봉에서 충북과의 도계를 접하다가 백운산을 넘고는 원주시 귀래면으로 복귀한다.

다시 미륵산을 지나고 부론면계를 따라 영동고속도로를 잠시 넘었다 되돌아 와 남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내려가면 부론면 흥호리 동매마을이 된다.

 


박무로 조망이 없었고 높은 습도로 많은 땀 흘리며 힘들게 진행하면서도 계획된 합수점까지 무탈하게 도착해 또 하나의 맥 잇기 산행을 마무리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 주 토요일에 백운지맥 제2구간을 길게 진행한 후 일요일 하루 더 진행하여 완주하려던 계획은 무더위와 식수 부족으로 인해 포기하고 안전하게 무탈한 산행 위주로 생각하다 보니 이번 주 다시 이곳 백운지맥에 들려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하지만 산행거리도 길고 날씨가 무더워지면서 구간 나누기에 애를 먹는데 오늘 역시 두번으로 나누기에는 너무 짧고 하루에 마무리하기에는 부담이 되는 거리이기에 어떻게 잘 마무리를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다가 새벽 일찍 애마를 이용해 무덥기 전에 시작해 조금 이른 시간에 마무리를 해 보려고 한다.금요일 저녁 조금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 3시간 가까이 깊은 잠을 자고 새벽 일찍 충분한 식수와 먹거리를 배낭에 채우고 비어 있는 고속도로를 타고 산행 들머리인 서낭당고개로 향하는데 원래 계획은 귀래면행정목지센터에 애마를 주차시킨 후 걸어서 한시간 거리인 산행 들머리로 이동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늦어 포기하고 곧바로 서낭당고개로 이동을 해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잘 주차시킨 후 여명이 밝아 오는 시간에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새벽 5시를 넘기자마자 산행을 시작하는데 날씨는 흐리지만 습도가 높고 약간의 안개와 박무가 드리워져 있어 초반부터 오르막 등로를 오르면서 많은 땀을 흘리기 시작하고 채 30여분이 지나지 않아 온 등산복이 흥건이 젖어오고 땀을 닦아 내는 커다란 수건은 마치 물에 빨래를 한 듯 그곳에서도 땀방울이 등로에 떨어지고 있다.그래도 고생하며 능선으로 오르니 고도가 높아지면서 시원한 느낌이 전해지고 그렇게 진행을 하지만 역시나 안개로 인해 보이는 조망 하나 없이 진행하다 보니 답답하기만 하다.중간중간 쉬고 먹으며 천천히 진행하여 부문재를 통과하니 안개와 구름이 사라지고 강렬한 태양이 떠 오르며 또 다른 무더위를 예고하고 그렇게 마지막 긴경산을 지나 수영봉에 도착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남한강전망대 바위들이 보이고 그곳에서 배낭털이를 하면서 한동안 쉬면서 주위 풍경을 살펴보니 오늘 산행 날머리인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지점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그 합수점 우측으로는 지난달 마무리를 한 성지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자산과 합수점이 좌측으로는 오갑지맥과 독조지맥 마루금과 남한강이 옛 추억을 들려주며 또 다른 추억을 쌓는 시간이다. 
어렵고 힘들게 진행을 하면서 조망까지 없으니 답답했던 시간이었는데 마지막 긴경산에 오르니 여전히 박무가 끼어 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보다는 희미하지만 제법 상상할 수 있는 조망을 선사하고 있다.제일 먼저 남동쪽을 살펴보니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 마을이 평온하면서도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 저 멀리 박무속에 오늘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힘들게 걸어 올랐던 미륵산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마루금에서 떨어져 있지만 잠시 발품을 팔았던 봉림산도 보인다.우측 앞으로는 손곡리를 둘러 싼 한계산 줄기가 합수점 방향으로 자세를 낮추며 흘러 내려가고 있는 풍경이 마치 풍경화를 보고 있는 듯 아름답기만 하다.

 

 

 

 

새벽 어둠속에 귀래면에 주차시킨 후 이곳 서낭당고개까지 도보로 걸어 와 산행을 시작하려던 계획은 집에서 조금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변경되어 이곳 서낭당고개로 직접 오게 되었다.

시간을 보니 이제 새벽 4시 55분으로 서서히 어둠이 엷어지며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에 산행 준비하여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다 보니 5시를 넘어 세상이 완전히 어둠에서 벗어나는 시간에 산행을 시작해 본다.

이곳 서낭당고개(서낭고개, 4042차선 포장도로)는 아홉사리 북쪽의 서낭당이 있던 고개로서 일명 아홉사리 고개라고도 불린다.

 

탑동에서 남쪽 운계리의 아홉사리로 가는 고개를 말하고 서낭당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춘추로 제를 지냈으나 70년대 초반 새마을운동 당시 없어졌다.

 

이곳은 구사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으로 남쪽으로는 미륵산황토방 간판이 보이는 도로를 타고 고개를 넘어가면 황산사와 경순왕경천묘가 있는데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이 국권을 고려로 넘긴 후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 후 경천묘(영정을 모신 사당)는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로 옮겨갔다.

지난 주 이곳에서 산행을 마치고 대중교통이 쉽지 않아 고민하다 마침 원주에 공장을 운영하는 서울에 살고 계신분의 호의로 문막까지 무탈하게 이동해 귀가를 하였기에 잠시 그분에게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서낭당고개에서 진행방향 우측을 보면 그곳에 전봇대와 시멘트 도로가 보이고 그곳으로 들어가며 백운지맥 마지막 제3구간을 시작하는 시간이 정확히 새벽 5시 12분으로 세상은 완전히 밝아져 있다.

잠시 도로를 타고 들어가니 금새 비포장 임도로 바뀌는데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는지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진행조차 힘든 상황이지만 희미하게 열려있는 길이 보이니 안개 물방울을 헤치며 오른다.

오르며 임도 좌측을 보니 분재형 나무들이 잘 관리되고 있어 정원수를 기꾸는 농원이 있는 듯 보이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잡목과 잡풀들로 더 이상 진행이 어려운 곳 우측으로 길이 열려있어 그곳으로 오르며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능선 방향으로 오르니 금새 뚜렷한 등로가 열리고 곧이어 국가유공자이수연의묘지가 나타나며 등로는 그 묘지 뒤로 이어진다.

잠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온 몸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방울을 흘리니 드디어 첫번째 봉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는 345.5미터의 삼각점이 박혀 있는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겨 보지만 역시나 아직은 빛이 충분하지 않아 흔들림 현상이 심하다.

 

사진 몇장 남기고 그 345.5 삼각점봉을 지나 다시 오르니 습도가 높아 금새 온 몸은 땀범벅이 되고 등로를 적실만큼 굵은 땀방울이 쉴새없이 온 몸을 타고 흐르기 시작한다.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녹슨 철조망이 보이는데 대부분 임산물이나 약초 또는 산양인삼을 재배하는 곳이기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등로만 따라 산행에만 집중을 한다.잠시 후 안개속에 몽환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 오는 아름다운 적송 구간을 만나 힐링하듯 걸어 진행을 하고 한동안 편안하게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에는 간벌 후 정리되지 않은 등로가 나타나는데 선답자들이 진행하면서 조금은 등로를 열어 놔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잠시 더 걸어 올라 커더란 나무들이 보이는 좁은 공터의 무명봉을 넘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는 무명봉도 통과한 후 계속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등로 옆으로 거대한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런 바위들은 미륵산 정상부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이리저리 바위들을 우회도 하고 타고 넘으며 진행하니 정상부에서 등로는 바위암릉을 좌측으로 우회하도록 되어 있어 우회하니 등로는 다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 느낌이라 지도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니 우회한 우측 바위봉우리가 바로 백운지맥 상 미륵산 정상부이다.배낭을 바닥에 놓고 잠시 우회한 우측 바위 정상부로 오르니 689.9미터의 미륵산정상이라는 이정판이 붙어 있고 선답자들의 많은 산행 띠지들이 보이는데 정상석은 보이지 않는다.미륵산(689.9)주포리 북쪽에 있는 높이 689.9미터의 산으로 정상에 큰 미륵불상을 조각해 놓아서 미륵산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신라말 경순왕이 왔다고 하여 대왕산이라고도 한다.미륵산은 백운산의 지맥으로 독립된 산으로 이 산상에는 12개의 봉이 있고 그 12개 봉 중 가장 큰 봉이 주봉인데 그 암벽에 미륵불상을 큼직하게 조각하였다고 한다.그런데 이 미륵불은 특히 코가 튀어 나와 사람들이 만지면 누구든지 소원 성취가 되고 특히 자손 없는 사람은 아들을 낳을 수 있었다고 하나 깎아지른 듯한 바위에 새겨진 그것을 아무도 만져 볼 수 없었다고 한다.한편 이 미륵불이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을 그린 것이라고 하는 전설이 전해진다.산세가 험한 편은 아니지만 정상 부근에는 미륵봉장군봉신선봉 등의 봉우리가 많고 모두 암벽으로 되어 있으며 정상에서는 남한강 줄기와 그 너머로 국망봉(1168미터)과 보련산이 그리고 북서쪽으로 보림산(579미터)과 현계산(535미터) 줄기가 보인다.능선에는 927(경순왕 1)에 서응과 학서가 창건하였다는 아담한 황산사가 나온다.미륵산은 1872년지방지도에서 확인되고 여지도서와 강원도원주군읍지에는 관문 남쪽으로 6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지지자료에는 귀래면 초1리 능내마을에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산행하기 전 미륵산 아래에 있는 미륵불과 황산사터를 다녀오고 싶어 확인해 보니 이곳은 실질적인 미륵산 정상이 아닌 미륵북봉으로서 정상은 남쪽으로 약 20여분 거리에 헬기장이며 그곳에 미륵산 정상석이 세워져 있으며 그 아래 한동안 더 내려가야 황산사터가 있어 이곳은 나중에 별도로 여행 겸 다녀 오는 것으로 정리하니 그래도 아쉽기만 하다.

미륵산 정상 미륵봉 바위벼랑에는 미륵불상이 새겨져 있어 유명한데 미륵산 정상(해발 689.9미터)의 절벽(높이 15.6미터)에 동쪽을 향해 높이 48척의 초대형 미륵이 새겨져 있고 코의 길이만 해도 사람의 키를 넘을 정도로 커 가까이에서는 그 모양을 알아볼 수가 없고 멀리서 바라보아야만 형체를 알 수 있으며 예전에는 용화산이라 불리었는데 이후 용화산을 미륵산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미륵불이란 미래 인간 세상에 내려올 부처를 일컫는데 미륵불이 내려와 만드는 세상은 물이 거울처럼 맑고 깨끗하며 곡식이 풍족하고 인구가 번창하며 사계절이 순조로워서 질병이 없고 사람들의 마음이 평화롭고 서로가 즐거워하는 이상적인 세상이다.
이를 기원하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마을과 산천의 이름에 미륵을 붙이고 미륵불상을 조각해 세우면서 미륵 세상을 꿈꾸었으며 하루라도 빨리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와 힘겨운 자신들을 구원해주길 갈망했고 그 갈망했던 모습이 미륵불에 담겨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미륵불상은 신라의 56대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초상으로 알려져 있고 미륵산은 경순왕의 애환이 서린 산이라고 전해져 온다.
또 미륵불의 코를 만지면 소원을 성취한다는 전설도 있는데 요즘에는 미륵산 실제 정상인 695.6미터봉으로 직등하는 코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
오늘은 날씨도 무덥고 걸어야 할 거리도 제법 길기에 다녀오지 못하는 아쉬움은 다음에 다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둘러보며 확인하기로 한다.

그 미륵산 미륵불상 아래쪽으로는 황산사터가 나타나는데 현재 이름은 주포리 삼층석탑으로  경천묘를 지나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다 보면 나타나는 황산사터에 그동안 흩어졌던 조각들을 복원해 세운 탑이다.예전엔 큰 절이었으나 세월의 흐르고 지금은 3층석탑과 부도들만이 그 터를 지키고 있는 황산사는 신라 경애왕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데 3층석탑은 탑의 기단부가 없이 자연 암반 위에 넓게 깎은 2장의 돌과 그 위에 2단의 굄돌을 놓고 3층의 석탑을 세웠다.탑의 몸돌에는 귀퉁이 기둥을 새겨 놓았고 지붕돌은 크고 두꺼우며 처마는 받침을 3단으로 만들었다.3층 지붕돌 위에는 꽃봉오리 모양을 한 큼직한 머리장식이 놓여 있고 두꺼운 지붕돌에 비해 몸돌이 가늘고 높아 전체적으로 길쭉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여행이나 산행을 하다 보면 역사적으로 높은 보존 가치를 가지고 있는 유산과 유물들이 너무나 많지만 방치되어 사라지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운 시간들인데 이곳도 그런 곳은 아닌지 아쉽기만 하다.다음에 들리면 자세히 둘러보고 조금 더 상세한 포스팅이 가능하리란 생각을 하면서 아쉬운 미륵산 정상부를 통과한다.

 

미륵산 정상에서 추억을 남기고 다시 뒤돌아 내려가 내려놨던 배낭을 둘러메고 직진 방향으로 출발하니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와는 다른 풍경이라 지도와 트랙을 확인해 보니 이 방향은 실질적인 미륵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로이기에 곧바로 뒤돌아 올라가 커다란 암봉으로 이뤄진 미륵산북봉(미륵산 689.9봉)을 우측에 두고 우회하며 정상 등로로 복귀한다.잠시 더 걸어가니 눈 앞으로 가대한 바위암봉들이 나타나고 대부분 암봉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우회 진행하며 살펴보니 눈이 내리는 겨울철에는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도 예상되는 구간처럼 느껴진다. 
한동안 계속 이어지는 바위암봉을 우회하며 진행을 하니 갑자기 등로 좌측으로 안개속에 희릿한 조망들이 나타나는데 아마도 등로 바로 옆의 용암리쪽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다시 평이한 소나무 등로를 타고 박무속에 습도가 높아 생각보다 많이 흘리는 땀방울을 닦다 보니 커다란 수건도 물에 흥건히 적신 듯 물기가 흘러 내리고 진행하는 도중에도 몇번인가 물기를 짜내며 걸어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에 2가지가 보이는 65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온 몸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본다.하지만 바람 한점 없는 습기가 높은 날씨이다 보이 흐르는 땀방울도 마르지 않아 쉽지 않은 산행임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커다란 소나무에 2가지가 멋지게 보이는 무명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진행하다 허기가 져 준비한 김밥 한줄과 과일로 아침을 마치고 진행하지만 흐르는 땀방울로 온 몸이 완전히 젖어 버려 찝찝하기만 한데 여전히 바람은 어디로 마실을 갔는지 불어 올 생각도 없다.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금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커다란 소나무가 보이는 612 무명봉을 통과하고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걸어가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563 무명봉도 넘어간다.그 무명봉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눈 앞에  환상의 적송 구간이 펼쳐져 있어 잠시 땀으로 힘든 시간을 힐링해 본다.
그 멋진 적송지대를 통과하니 등로는 다시 잡목구간이 펼쳐지고 한동안 팔뚝에 생채기를 만들며 그 잡목지대를 통과하니 나즈막한 안부를 넘는데 좌우를 살펴보니 이제는 동물들조차 넘나들기 힘든 고갯마루로 변한 곳이다.다시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등로 좌측으로 봉림산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힘이 들지만 배낭 벗어 놓고 재빨리 좌측 봉림산으로 향하니 10여분 후 어렵게 봉림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하지만 이곳 봉림산에 대한 정보를 전혀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이 있는데 나뭇가지들과 안개로 인해 조망까지 없으니 더욱 안타까운 시간이었으나 인식할 수 없는 삼각점 하나와 어느 산악회에서 달아 놓은 정상 이정판이 반겨 줘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으로 사진 몇장 남기고 곧바로 갈림삼거리로 복귀한다.
봉림산을 왕복하는 등로는 별 특징은 없지만 약간의 바위암봉들이 있어 주의가 필요한 곳도 보이며 그곳을 간과하며 짧은 알바 후 사면치기를 통해 어렵게 정상 등로로 복귀해 산행을 이어가 본다.벗어 놓은 배낭을 회수해 다시 진행하면서 조금 더 뒤로 내려가 좌측으로 진행을 했어야 하는데 조금 이른 지점인 정상부에서 좌측으로 꺽어 진행하다 보니 이곳에서도 사면치기를 통해 한동안 힘들게 정상 등로로 복귀를 한다.잠시 걸어 내려가니 거대한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465 무명봉을 넘고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구간을 지나 나즈막한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좌우측으로 제법 그럴듯한 길이 보이지만 사람들의 왕래는 없는 듯 잡풀들과 잡목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안부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커다란 소나무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427 무명봉에 오르고 이곳에서 우측 사면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바로 위 정상부로 올라보니 잡목들과 벗나무가 보이는데 그곳을 확인하고 뒤돌아 내려왔어야 하는데 조금 더 진행한 후 우측으로 급하게 내려가며 이어가니 금새 등로가 사라지고 잡목속에 갇혀 고생을 한다.우측으로 사면치기를 하면서 어렵게 잡목을 헤치며 걸어가 정상 등로를 만나 진행을 이어가고 잠시 후 지독한 잡목구간을 만나는데 지도와 트랙을 보니 이곳을 서지재라 하였는데 현지 상황은 전혀 안부같지 않은 능선상의 일반 등로이다.서지재(400미터)는 방아실 뒤에 있는 재를 말하는데 방아실에서 부론면 손곡리 방아실로 넘어가는 고개이며 귀래면 용암리, 부론면 손곡리, 문막면 비두리의 경계가 되는 고개이다.서지마을은 구마니 동남쪽 골짜기로 방아실 아래에 있는 마을을 말하며 이름 유래는 지초(芝草)가 많았다고 하여 서지라 하며 서지재(고개) 서지에서 방아실을 거쳐 문막 방아실로 넘어가는 고개로 서지고개라고도 한다.잠시 더 진행하며 왜 이곳을 서지재라 했는지 궁금해하며 오르니 도중에 나즈막한 안부 형태가 보이는데 이곳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지독한 잡목지대를 헤치며 힘들게 걸어 오르니 바람 한점 없는 날씨에 습도까지 높으니 그렇잖아도 많이 흐르던 땀방울이 이제 빗물이 떨어지듯 온 몸을 타고 흘러내리며 등산복 자체가 완전히 젖어 든다.그래도 그렇게 잠시 더 잡목을 헤치며 오르니 잠시 잡목이 사라진 곳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넘어 온 미륵산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잠시 더 걸어 올라 커다란 소나무들이 보이는 능선으로 들기 직전 다시 뒤돌아 보니 미륵산 우측으로 이곳 서지재로 이어진 백운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우측 저 멀리에는 지맥 마루금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봉림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오는데 다녀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조망을 즐겨 보는 시간이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다 기계음이 크게 들려 우측을 살펴보니 희미한 박무속에서도 귀래리쪽 황톳빛 거대한 채석장이 보이고 그곳에서는 토요일인 오늘도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지 커다란 기계음이 귓전을 때리고 있다.날씨가 좋았으면 주위 풍경과 조망을 보면서 정확한 위치 파악이 가능했겠지만 오늘은 그것조차 불가능하니 이렇게 상상만으로 그 채석장을 살펴보고 다시 커다란 나무들이 보이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른다. 
그렇게 지나 온 미륵산 북봉과 봉림산 그리고 채석장을 살펴보고 다시 커다란 나무들이 서 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 있는 좁은 공터의 459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나즈막한 무명 안부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 드넓게 펼쳐진 발목 후 작은 침엽수 묘목들이 식재된 조림지역을 따라 올라가 본다.그 벌목지 정상부로 올라 뒤돌아 보니 미륵산 북봉이 바로 코 앞으로 높게 솟아 있고 그 뒤로 미륵산의 바위암릉들이 고개를 내밀며 존재감을 서서히 알려오고 있지만 박무와 북봉에 가려 확실하지는 않다.
그렇게 지나 온 미륵산과 봉림산 그리고 채석장을 제한된 시야에서도 조망하며 조금씩 터지는 풍경을 즐기다 보니 커다란 적송들이 즐비하게 줄지어 늘어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 본다.잠시 후 우측으로 벌목된 후 조림된 지역에 자라고 있는 잡목들과 잡풀들을 헤치며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고사목이 쓰러져 걸쳐있는 481.1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갈길을 재촉해 보는 시간이다.
이제부터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등로를 따르니 고사목이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고 사초가 싱그러운 등로를 타고 여유롭게 걸어 보지만 여전히 습도가 높아 얼굴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기 바쁜 시간이기도 하다.다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보이고 커다란 참나무에 가지가 많이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참나무가 소나무로 바뀌면서 한동안 평이한 능선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그렇게 걸어 전진하니 갑자기 눈 앞에 오래되어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나타나고 지나 온 방향의 커다란 소나무에는 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496.6봉의 쌀개봉이란 산패가 보이는데 국토지리원지도에는 무명봉이지만 영진지도에는 쌀개봉으로 표기된 봉우리같지 않은 봉우리에 도착을 한다.쌀개봉은 계룡산의 관암지맥 분기점이 제일 유명한 봉우리로서 이곳 원주의 백운지맥 상 쌀개봉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어느곳에서도 찾을 수 없어 조금은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출발한다. 
그곳 쌀개봉 정상에서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이곳도 오토모터 사이클을 즐겼는지 등로가 완전히 파이고 작은 물흐름 골이 생겨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잠시 후 밑둥이 벗겨진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가 보이는 473 무명봉을 지나고 다시 내려가 적송들이 보이는 멋진 등로를 짧게 걸어가니 또 다시 무명 안부를 통과하는데 사람들이나 짐승들이 지나다니는 안부는 아닌듯 보인다.안부를 지나 조금은 지루하게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참나무와 등걸이 보이는 449 무명봉을 넘고 선답자들의 띠지가 보이는 463 무명봉도 통과한 후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헤치며 전진하니 커다란 소나무 두그루가 서 있는 467.2봉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고 출발한다.

 

 

 

 

 

 

 

그 467.2봉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나뭇가지 사이로 비두냄이고개 지나 올라야 할 마루금이 살짝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에 올라 조금 더 선명한 마루금도 확인을 해 본다.

잠시 잡목이 우거진 내리막 등로를 조심하며 걸어 진행하니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휘어 내려가며 어렵게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비두냄이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생각보다 차량들의 통행은 없어 보이는 고갯마루이다.

비두냄이고개(273미터, 비두냄이재)는 원주시 문막읍 비두리와 부론면 손곡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비두가 넘어갔으므로 비두넘이, 비두네미 또는 비두골이라 하다가 후에 비두리로 부르게 되었고 옛날부터 질이 좋은 화강암이 많이 나와 비석 재료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하며 부론면 정산리에 소재했던 거돈사에 세워진 승묘탑비의 비갓도 이곳에서 채석된 암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또한 비두리에서는 오늘날까지 거돈사의 승묘탑비를 세울 때 있었던 화강암과 소의 전설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포장도로 2차선이 지나는 비두냄이고개에서 고갯마루 중앙에 있는 철계단을 타고 산행을 이어가는데 그 철계단에도 잡풀들이 자라 침범하며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주고 있으며 특히나 크게 자라고 있는 칡넝쿨이 여간 위험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어렵게 그 철계단을 지나 오르니 등로는 완전히 잡목 가시나무들과 잡풀들로 뒤덮혀 전혀 보이지 않는데 무조건 도로를 만들기 위해 절단된 절개지 상단 중심부로 조심하며 걸어 오르니 절개지 상단부 우측으로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그 능선으로 들기 전 비두냄이 건너 방금 전 내려 온 마루금을 뒤돌아 보니 초록으로 물든 467.2봉이 무산 산행을 빌어주며 이별 인사를 건네고 있다.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생각보다 뚜렷한 등로가 열리고 잠시 편안하게 그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묘지 한기 옆으로 노란 원추리가 곱게 피어 있어 사진에 담고 출발한다.지금쯤 덕유산 서봉으로 오르는 등로에는 노란 원추리가 천상의 화원을 만들어 흔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한번쯤 덕유산도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고개를 내밀고 있다.  
오랫만에 만나는 원추리를 사진에 담고 이제 잡목들로 어지러운 오르막 등로를 찾아 어렵게 걸어 오르니 바람 한점 없는 잡목 등로는 더욱 더 한여름 무더위를 가중시키고 온 몸의 물기란 물기는 다 빼내려는 듯 쉴새없이 흐르는 땀방울이 마치 분수에서 솟구치는 분수처럼 온 몸을 타고 흘러 내린다.얼음물 1리터를 포함해 총 3리터의 물과 음료수 1리터 그리고 포도와 체리까지 수분을 섭취할 수 있는 충분한 물을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마시고 쉬다 보면 이 식수도 모자란 것은 아닌지 괜시리 걱정과 고민이 앞서는 시간이기도 하다.잠시 후 쓰러진 고사목이 보이는 380 무명봉을 통과하고 잠시 참나무와 소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솔바람이 불어 오는 능선 등로를 따라 힐링하듯 걸어가니 커다란 소나무와 참나무가 각 한그루씩 서 있는 379 무명봉에 도착을 해 불어 오는 산들바람에 풍욕을 즐기고 출발한다.
한동안 풍욕을 즐겨보지만 흐르는 땀방울을 주체할 수 없어 다시 배낭 둘러메고 출발하니 쓰러진 고사목들이 보이는 384 무명봉을 통과하고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걸음걸이를 이어가니 391 무명봉도 넘어 진행된다.다시 평이한 능선 등로를 타고 참나무들을 살펴보며 전진하니 쓰러진 고사목들이 보이고 곧이어 많은 가지들이 함께 자라고 있는 참나무 한그루가 눈에 들어 오는 409.7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이제부터 등로 양쪽으로는 관목을 벗어나 커다란 참나무로 변신중인 등로가 예쁘게 다가오는데 진행하는 도중에 가끔 커다란 바위들도 눈에 들어 온다.하지만 지겹도록 따라다니는 날파리들로 인해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낙엽 위에 주저 않아 시원한 얼음물 한모금 마시고 남아 있던 김밥으로 허기를 채우고 난 후 다시 진행을 이어가니 금새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를 키 작은 잡목들이 호위하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보이는 437.4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갈길 바쁜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다시 이어지는 푹신한 낙엽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옆으로는 참나무가 대세를 이루고 그렇게 한동안 걸어 전진하니 안부같지 않은 안부를 지나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가 나타난다.아무 생각없이 그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눈 앞에 바위 두개가 나타나고 지도와 트랙을 확인해 보니 등로 우측으로 약간 떨어져 있는 443.4 삼각점봉 갈림 삼거리로서 이곳에서 잠시 마루금을 벗어나 있는 443.4 삼각점을 다녀오기로 한다.
지도 상 443.4 삼각점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조금 걸어 들어가니 등로는 참나무 능선 등로로서 진행에는 큰 어려움 없이 금새 443.4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공터 한쪽에 박혀 있는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을 사진에 담고 주위를 살펴보니 커다란 참나무에 어느 산악회에서 이곳을 443.4미터의 상봉산이란 산패를 걸어 놔 지도를 살펴보니 영진지도에는 분명 상봉산이란 지명이름이 보인다.상봉산(443.4)은 직전 갈림삼거리에서 100며미터 가량 우측으로 벗어나 있으며 참나무 등로가 이어져 걷기 편하므로 쉽게 다녀올 수 있는데 다만 인식을 할 수 없는 삼각점이 공터 한쪽에 묻혀 있고 정상석은 없으나 상봉산이란 이정판이 달려있다.이곳 상봉산 역시 지형도 표기지명은 아니고 마을에서 상봉 또는 상봉산이라 부르는 것이 상봉산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상봉산 공터에서 삼각점과 산패를 둘러보고 바위가 있는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나와 이제는 진행 방향 우측으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활엽수 낙엽이 쌓여 있어 미끄러운 등로 옆으로 얇은 노끈이 마치 로프를 설치한 듯 길게 이어지고 있어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잠시 후 등로 옆으로 입산금지 경고판이 보여 살펴보니 약초와 임산물 그리고 산양인삼을 재배하는 지역으로 허락없이 출입하는 것을 경고하는 종이 경고판이라 이제서 그 노끈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동안 그렇게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니 깊은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이 만디고개란 고개 안부이다.

만디고개(288미터)는 원주시 문막읍 궁촌리의 궁말 남쪽에 있는 서들마을 일명 서석이라고도 하는 곳과 부론면 손곡리를 이어주는 고개를 말하는데 만디골과 만디고개는 모두 이곳 궁촌리의 옛날 마을 이름과 관련이 있는 듯 보인다.

남디고개가 있는 궁촌리는 고종의 순빈 엄씨의 경우궁이 있었으므로 궁말 또는 궁촌으로 불려지다 궁촌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고 또 후백제 견훤이 견훤산성에는 석성을 쌓고 여기에는 토성을 쌓았으며 이곳에 궁실을 지었다고 해서 궁말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좌측으로는 여전히 마을로 통하는 길이 있는 듯 보이지만 우측으로는 잡목들과 나무들이 자라면서 길이 사라진 듯 보이는 민디고개를 지나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드넓은 벌목지가 펼쳐져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편백나무를 닮아 있는 침엽수를 조림한 조림지대이다.한동안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그 벌목 후 조림된 경계선을 따라 가파르게 걸어 오르다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부론면 손곡리 넘어 저 멀리 오늘 걸어 온 미륵산과 봉림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잠시 발걸음 멈추고 지도로 확인한 후 다시 가파르게 올라 흐르는 땀방울 닦으며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잠시 들렸다 내려 온 상봉산과 민디고개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박무속에서도 생각지 못한 멋진 풍경과 조망을 선물 받은 즐거움 속에 계속 가파르게 이어지는 벌목지대의 경계를 따라 걸어 오르니 정상부로 오를수록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미륵산과 봉림산 그리고 현계산 줄기가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오고 그렇게 많은 땀방울을 등로에 뿌리며 오르니 서래야님이 만디봉이란 종이 코팅지를 걸어 놓은 369.2봉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잠시 쉬어 간다.뒤돌아 보면 여전히 상봉산에서 이곳 369.2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만디고개로 내려 앉았다 솟구친 모습 그대로 힘들게 진행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 369.2봉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잠시 진정시키고 땀에 흥건히 젖어 있는 수건도 짜 낸 후 다시 출발하니 등로는 생각보다 뚜렷하고 넓게 나 있어 진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하늘이 약간씩 열리면서 무더위를 가중시키고 있어 고통도 따르는 마루금이다.잠시 그렇게 평이하게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다 잡목이 드세지는 지점 앞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이제부터 올라야 할 399.1봉과 418.6봉 그리고 무명봉들이 도토리 키재기를 하듯 늘어 선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잠시 발걸음 멈추고 그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남기고 다시 출발한다.
무더운 날씨에 습도까지 높아 많은 땀방울을 등로에 뿌리며 힘들게 진행하고 있지만 가끔 보여주는 환상의 풍경과 조망에 위안을 삼으며 계속 평이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참나무가 보이는 351 무명봉도 넘는다.활엽수 낙엽이 푹신하게 깔려있는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마루금을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안부같지 않은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좁은 공터무명봉을 지나 바위들이 보이는 등로도 통과한다.바위 등로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커다란참나무와 키작은 소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399.1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여전히 뚜렷하고 낙엽 깔린 푹신한 등로를 따라 안부같지 않은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으로 도열하듯 늘어선 참나무들이 아름답게 다가오는 시간이다.잠시 후 커다란 참나무들과 막 자라기 시작하는 키 작은 잡목들이 보이는 418.6봉에 도착을 해 다시 배낭 내려 시원한 얼음물 한모금으로 목마름을 달래고 출발하니 날씨가 조금씩 맑아지며 더욱 무더위를 부채질 하고 있어 남아 있는 구간이 조금은 고민되고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 되고 있다.
다시 출발하니 등로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깔려 있고 그 바위들을 넘어 진행하니 떠 다ㅣ른 커다란 바위 하나가 둥그런히 놓여 있는 417무명봉에 도착을 해 지점을 확인하고 진행을 이어간다.잠시 후 고사목이 가운데에 서 있는 좁은 공터의 412 무명봉을 지나 약간의 사면치기를 하듯 좌측으로 돌아 진행하니 금새 커다란 소나무들과 잡목들이 보이는 등로 좌측으로 많은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걸려있어 지도를 확인하니 이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90도 꺽어 내려가도록 되어 있다.하지만 우측 직진 방향으로도 이곳 갈림삼거리보다 높은 봉우리가 보여 잠시 다녀오기로 한다.
가파르게 좌측으로 꺽이는 갈림삼거리를 확인하고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오르니 금새 잡목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409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아무 표식도 없이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만이 정상을 지키고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내려 온다.자도를 보니 이곳에서 직진 방향으로 또 다른 무명봉이 보이지만 특별한 언급도 없고 지도에도 아무 표식이 없어 그곳은 포기하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기로 한다.
다시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나와 이제는 진행방향 우측으로 커다란 소나무들과 잡목들이 우거진 내리막 등로를 따라 조심스럽게 산행을 이어가 본다.잘 알고 있는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대부분이기에 잠시 확인 작업도 하면서 조심해 걸어 내려가니 지독한 잡목지대가 펼쳐지고 이리저리 그 잡목들을 헤치며 조심해 내려가니 잠시 잡목 사이로 진행 방향의 조망이 터져 살펴보니 우측의 후용리 마을과 이름없는 올라야 할 백운지맥 마루금 좌측 저 멀리 마지막 산이라 생각되는 긴경산이 뾰족한 모습으로 이 산객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도 펼쳐져 있다.

 

 

 

 

 

 

 

지독한 잡목지대를 걸아 내려가면서도 가끔씩 열리는 진행 방향의 이름없는 무명봉들과 산줄기를 살펴보며 전진하니 자작나무들이 보이는 318 무명봉을 넘고 금새 자작나무들이 식재된 듯한 묵은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해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진행을 해 본다.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벌목 후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비포장 임도 끝자락으로 와 좌측으로 꺽어 진행하다 지도를 보니 이곳이 바로 박수고개로 표기된 안부이다.

박수고개는 묵은 비포장임도 남쪽의 손곡리에서 올라와 북쪽 후용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손곡리의 유래를 찾아보면 알산골에서 별간골을 거쳐 문막읍 후용리로 가는 고개를 말한다고 했고 별간골은 알산교에서 박수고개로 넘어가는 긴 골짜기를 말한다고 하였으니 여기 비포장 임도와 만나는 곳이 바로 박수고개라 생각되는 곳이지만 지도상에는 제법 그럴듯한 도로가 보여 잠시 헷깔렸던 곳이기도 하다.

 

 

 

 

 

 

 

박수고개를 지나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지독한 잡목구간이 길게 이어져 있어 제법 고생하며 걸어 올라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좌측으로 꺽어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또 다른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그곳에도 역시나 멋진 자작나무들이 식재된 듯 자라고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잠시 후 얼마 전에 통과한 홀대모 방장인 에이원님의 띠지도 만나고 다시 좌측으로 휘어져 가는 등로를 따라 진행을 이어가니 고사목들이 쓰러져 널부러져 있는 무명봉을 지나 하늘나리가 곱게 피어난 무명봉에 도착을 해 다시 물 한모금 마시고 출발한다.
가끔씩 보이는 커다란 자작나무들을 살펴보며 걸어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 두그루가 서 있는 321 무명봉에 어렵게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등로 옆으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영지버섯들이 보이지만 아직 자라지 못해 이 산객의 것이 아니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통과한다.다시 이어지는 낙엽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 옆으로 산딸기들이 보이고 잠시 발걸음 멈춰 잘 익은 산딸기를 따 먹다 보니 갈증도 해소되고 허기도 면해 조금 더 머물며 산행을 즐겨 본다.

렇게 산딸기를 따먹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 내려가니 잣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좌측으로 돌아 들깨가 심어져 있는 밭을 통과해 시멘트 포장도로로 진행한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후용고개 또는 부문재라고 하는 고갯마루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도 높은 콘크리트 옹벽으로 고민하다 녹슨 철조망을 잡고 어렵게 올라 붉게 익어가는 산딸기를 따 먹은 후 산행을 이어가 본다. 

 

부문재(232미터, 2차선 포장도로)는 손곡리와 후용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고개 넘어로는 커다란 부문재 이정석이 서 있지만 그곳도 가기 싫어 포기하고 고개 정상부만 사진에 담아 본다.이곳 손곡리는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과 이성계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기도 한 곳으로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유배를 당하여 여기에 머물게 되었는데 공양왕이 이성계에게 왕위를 손위하고 와 있었던 곳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손위실로 불렀고 이를 한자로 적으면서 위가 탈락되고 손곡이라고 적었다고 한다.
또는 한시로 유명한 손곡 이달 선생이 살았다고 해서 손곡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며 아마 이달의 호 손곡은 손위실의 마을 이름을 따서 지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많은 역사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녹슨 철조망을 잡고 높은 콘크리트 옹벽을 올라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 참으로 고된 시간이다.

 

부문재 일명 후용고개를 지나 다시 가파른 골짜기 같은 등로를 타고 잣나무 지대를 힘겹게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드넓은 벌목 후 조림지가 펼쳐져 있고 그 아래 저 멀리 경동대학교메디컬캠퍼스와 그 좌측으로 오림리의 원주부론일반산업단지 및 민가들이 산재되어 있는 마을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그 뒤로 흐르는 섬강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섬강 뒤로는 우측의 문막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마치 병풍을 두른 듯 길게 펼쳐져 있는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다가온다.한동안 많은 사진을 남기며 그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을 즐겨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잣나무와 소나무들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여전히 드넓은 벌목 후 조림지대가 펼쳐져 있다.잠시 후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벌목된 지대 넘어 저 멀리 뾰족하게 솟아 있는 진경산이 이제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와 있고 그곳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예시롭지 않아 보이기에 선답자들이 왜 저 긴경산을 오르며 힘들어 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긴경산 우측 뒤 저 멀리에는 얼마 전 마무리를 한 성지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자산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점도 보일듯 말듯 다가와 있어 조금 더 힘을 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등로 좌측의 소나무 군락지와 우측의 벌목 후 나무 조림지 경계를 타고 진행을 이어가니 등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문막으로 이어지는 노림리와 후용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경동대학교와 브론일반산업단지의 모습도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잠시 후 계속 산행을 이어가니 이제 눈 앞 진행 방향으로도 완전히 벌목 후 편백나무같은 침엽수를 조림해 놓은 등로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좌측 아래로는 방금 전 통과한 2차선 포장도로가 옆으로 바짝 다가오며 뒤따라 오고 있는 풍경도 내려다 보인다.그 벌목 후 조림지를 타고 한동안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걸어 진행하는 시간은 여간 고된 시간이 아니였다.
잠시 후 벌목지 한가운데 움푹 파인 무명안부를 통과해 오르고 평이하게 이어지는 벌목 후 조림지를 따라 걸어가니 이제 눈 앞으로는 커다란 참나무 몇그루가 보이는 둔덕으로 이어지고 있다.그 둔덕을 지나 다시 펼쳐진 벌목지대를 진행하다 뒤돌아 보니 부문재 지나 걸어 온 마루금이 펼쳐져 보이고 그 한쪽에는 거대한 채석장이 입을 벌리고 조금 더 크게 산자락을 파헤쳐 삼키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면 채석이 끝난 이후라도 제대로 관리를 해 가장 빨리 복구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해 줄 것을 간절히 바라며 진행을 이어간다.
진행 방향으로는 꽤 많이 벌목지대를 타고 걸어 왔는데도 아직도 그 벌목지대를 벗어나려면 한동안 더 걸어 진행을 해야 됨을 알려주고 있다.잠시 후 올라야 할 260.1 삼각점봉이 벌목 후 조림된 지역 바로 위로 뾰족하게 솟아 있고 그 우측 저 멀리 나뭇가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긴경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가까이 있는듯 꽤 멀리 애를 태우기도 한다.이제 서서히 안개가 벗어지며 오전보다는 더욱 강렬하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자꾸만 식수의 양을 확인하며 마시는 횟수가 늘어만 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한동안 벌목 후 편백나무를 닮은 침엽수들을 조림해 놓은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풍경들과 조망이 눈에 들어 오고 잠시 발걸음 멈춰 지도를 꺼내 보니 손곡리 들판과 야산 넘어 저 멀리 오늘 걸어 온 상봉산과 그 주변의 백운지맥 마루금이 박무속에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모습들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벌목지대 바로 아래에는 여전히 부문재로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가 좁은 손곡리 들판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한동안 그렇게 주위 풍경과 뜨거워지는 벌목 후 침엽수 조림지대를 따라 산행을 진행하니 벌목된 커다란 소나무 밑둥이 드러나 있는 197 무명봉을 통과하고 계속 이어지는 벌목지대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벌목지대가 끝나고 참나무와 소나무들 그리고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능선으로 들어 완만하게 오르게 되어 있다.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약간 벗어나 있는 260.1 삼각점봉이 나타나고 그곳으로 들어 가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백운지맥 마루금으로 복귀해 이제 진행방향의 우측 등로를 타고 산행을 계속 이어가 본다.
잡목들이 우거진 260.1 삼각점봉을 지나 다시 올랐던 갈림삼거리로 복귀한 후 산행을 이어가니 완만하게 내려간 등로가 무명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는데 그곳 무명봉에서 뒤돌아 보니 지금까지 걸어 온 부문재 넘어 보이는 무명봉과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아래 채석장도 모두 시원하게 보이고 있다.등로 좌측 아래로는 손곡리와 상봉산이 여전히 조망되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다 진행 방향 좌측 앞쪽을 살펴보니 성지지맥 마루금들도 보이고 그 한쪽으로는 마루금을 잘라 만들어진 도로가 지나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다시 이어지는 벌목 후 조림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드디어 벌목지대가 끝이나고 커다란 소나무들과 잡목들이 보이는 능선으로 마루금은 이어지고 있다.잠시 더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302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정상에도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외롭게 정상을 지키고 있다.지도를 확인해 보니 긴경산 오르기 직전의 마지막 봉우리로서 등로는 다시 가파르게 떨어졌다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힘들게 마지막 산봉우리인 긴경산으로 이어지고 있어 약간의 긴장감으로 산행을 이어가 본다. 
무명봉을 지나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생각보다 가파르게 제법 긴 거리로 내려가고 한동안 긴장하며 내려가니 깊숙한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좌측의 손곡리와 우측의 노림리를 이어주는 안부인데 여전히 사람들의 왕래가 있는지 희미한 길이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이곳 주민들은 이곳을 황수골 고개로도 불린다고 하는데 등로 좌측의 부론면 손곡리에 있는 황수골이 바로 안부 옆이기 때문이며 이 황수골 마을은 양지말 북쪽으로 난 고개를 말하고 이 고개로 긴경산(봉화대)을 넘어 광명터로 가게 되며 황수곡이라고도 한다.황수골이라는 이름은 빛과 관련된 환히 빛나는 봉화를 가리키는 말로 봉화대(긴경산)와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이제부터 선답자들이 꽤 팍팍하게 올랐다는 긴경산으로 올라야 하기 때문에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그 황수골 안부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른다.

 

생각보다 높지 않은 351미터의 긴경산이지만 방금 전 해발고도 225미터인 황수골 안부로 뚝 떨어졌다 가파르게 오르다 보니 왜 선답자들이 그토록 힘들어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체력적으로 많이 소진된 상태에서 약 130미터의 고도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결코 쉽지 않은 등로였기 때문이다.

다시 많은 땀방울을 등로에 뿌리며 힘겹게 걸어 오르니 드디어 넓은 헬기장으로 이뤄진 긴경산 정상에 도착을 해 입구에 달려있는 산패와 끝자락에 박혀 있는 삼각점을 사진에 담고 잠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망중한을 즐겨보려 하지만 마침 ㅓ 오르기 시작하는 강렬한 햇살로 인해 짧은 시간 정상에서 머물다 재빨리 그늘로 피신도 해 보는 시간이었다.

긴경산(351)에 대한 자료가 없어 아쉽지만 노림리 노숲 남쪽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351미터이고 경경산 또는 경정산이라고도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긴경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남쪽과 북쪽의 풍경과 조망이 좋아 잠시 둘러 보고 진행하기로 한다.

 

제일 먼저 긴경산 남쪽을 살펴보니 부론면 손곡리 마을 뒤로 오늘 걸었던 봉림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좌측 뒤로 보여야 할 미륵산은 박무속에 눈으로도 보일듯 말듯 희미하게 다가온다.봉림산 우측 앞으로는 현계산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산세를 낮추며 남한강 방면으로 떨어지는 산줄기의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현계산 뒷쪽으로는 덕갈봉이 제법 우람한 형상으로 솟아 있는데 저 봉우리는 평생 한번 오를 수 있는 기회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그리워지는 봉우리가 되어 버렸다.
등로 우측인 북쪽 방향으로는 노림리와 흥호리를 지나 등골산과 삿갓봉들이 내려다 보이는데 이곳 역시 박무가 심해 제대로 된 조망이나 이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잠시 그늘로 들어 가 지도를 보며 좌측과 우측으로 나뉘어진 두개의 등로를 놓고 어디로 가야할지 잠시 고민하다 좌측의 구영봉과 소리개고개 지나 243 산불감시초소와 삼각점이 있는 마지막 봉우리에서 조망을 즐긴 후 하산하기로 한다.  
한동안 긴경산에서 쉬면서 조망을 즐긴 후 좌측의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빠르게 내려가니 이곳에도 등로 옆 나무에 굵은 로프들이 설치되어 있어 생각보다 많은 등산객들이 찾고 있는 긴경산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일반 조선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분뇨냄새가 심하게 나 머리가 아플지경이고 그곳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소나무가 있는 무명봉을 지나 바위가 보이는 무명봉도 통과한다.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손곡리와 미륵산 그리고 봉림산으로 이어지는 백운지맥 마루금이 조망되는 조망터에 다시 도착을 해 약간 조망터로 내려가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사진 몇장 더 남기고 출발하는 시간이다. 
한동안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바위 위에 작은 돌탑도 보이는데 자료를 찾아 보니 이곳 손곡리에는 임경업장군추모비가 있으며 살펴보니 임경업장군추모비는 손곡 1리 벌말(평촌) 손곡교 도로변에 있고 내용은 화강암 비석으로 원주문화원에서 1968년에 세웠으며 높이 330cm에 폭은 60cm이다. 임경업장군은 조선시대 인조 때의 명장으로 1647년 김자점의 무고로 피살될 때까지 이괄의 난을 평정시킴으로써 1등 진무원종공신이 되어 명나라와 청나라에서까지 벼슬을 받았던 인물이다.억울하게 죽은 그에게 그 후 나라에서는 충민공이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정조 때는 충민공실기라는 책자를 만들어 그의 은덕을 기리고 공적을 비석에 새겨 세우도록 한 것이 어제달천충열사비로 내려온다.왜 임경업장군추모비가 이곳 손곡리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임경업 장군에 대한 자료를 다시 한번 더 찾아 보는 계기가 된 것은 다행이었다.등로 좌측으로는 계속 해 손곡리가 내려다 보이고 잠시 후 땅에 묻힌 로프지대를 지나니 등로 옆 나뭇가지에 흥이나 어려운골이라는 안내판이 보이는 307.1봉에 도착을 하는데 아마도 흥이나는 이곳 지자체의 브랜드 이름이고 어려운골은 지명처럼 보인다.
어려운골 이정판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멋진 삼형제 소나무가 반겨주고 잠시 후 흥이나 너럭바위라는 이정판도 만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너럭바위 같은 바위가 보이지 않아 어느 바위를 말하는지 아쉽기만 하다.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우측의 나즈막한 봉우리를 좌측으로 우회해 진행하도록 되어 있어 우측의 봉우리로 오르니 바로 283미터의 수영봉으로서 산악회에서 산패를 걸어 놨고 우측 직진 방향으로는 남한강전망대라는 이정판도 소나무 아래 걸어 놨다.이곳에서 배낭 내려 남아 있는 간식과 시원한 물을 마시며 펼쳐진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들을 사진에 담으며 가슴속에도 추억으로 남겨 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제알 먼저 진행 방향의 철탑과 그 넘어 좌측의 남한강과 우측의 성지지맥 마지막 봉우리인 자산 아래 합수점만 보이는 섬강이 만나는 산행 날머리를 살펴보는 재미가 그만이다.얼마 전인 지난 달 무탈하게 마무리하며 어렵게 내려왔던 성지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자산이 철탑 위로 바로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암벽인 합수점이 보이며 자산 우측으로는 길게 이어지는 성지지맥 중간에 영동고속도로로 잘려진 마루금도 보이는 풍경은 고생하며 걷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큰 감흥없이 바라보는 풍경이겠지만 맥 잇기 산행을 두발로 걸어 마지막 봉우리에서 내려다 보는 산객의 눈과 가슴에서는 알지 못하는 태양보다 더 크고 뜨거운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수간이기도 하다.
철탑에서 좌측으로 휘어져 진행되는 백운지맥 마지막 마루금과 한가운데로 흐르는 남한강과 우측의 성지지맥 아래 잘 보이지 않고 숨어 있는 섬강 그리고 좌측으로는 오갑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삼합리 고향산과 봉우재가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한겨울에 산친구들과 마무리를 한 독조지맥의 중근이산이 지난날의 추억을 들려주며 조금 더 확실한 마루금을 선사하고 있다.이제 모두 고운 지난날의 추억이 되어 버린 오갑지맥과 독조지맥에서의 시간들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아마도 평생에 다시 그곳으로 오를 기회는 많지 않겠지만 다시 오른다면 오늘 이 산객이 힘들게 걸었던 진경산과 수영봉은 확실하게 찾아보고 내려갈 수 있으리란 생각이다. 
이제 함수점으로 바라보던 조망을 마지막 마루금을 기준으로 살펴보니 철탑 지나 좌측으로 소리개고개를 건너고 다시 고개를 치켜 들고 있는 실질적인 마지막 봉우리인 243 산불감시초소와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가 아직도 고생길이 남아 있다며 긴장의 끈을 놓지 말라 충고하듯 보인다.내려 갈 마루금 뒤로는 오갑지맥 마루금이 보이지만 역시나 박무로 인해 희미한 실루엣만 눈에 들어 오고 그 오갑지맥 넘어 보일까 하고 찾아 보는 독조지맥의 산줄기들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찾기 힘든 시야이기에 아쉽기만 하다. 
이제 눈을 돌려 북쪽을 살펴보니 지난달 마무리를 한 성지지맥 마루금이 제법 멋진 산줄기를 이어가며 저 멀리 펼쳐진 모습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그 마루금 중간중간에 보이는 들리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던 관모봉과 일당산 그리고 수리봉들도 보일듯 말듯 다가와 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가ㅣㅇ기맥 상 금물산과 성지봉을 찾아 보지만 산자락에 가리기도 하였고 박무로 인해 그 먼곳까지는 조망되지 않는다.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오잔에 비하면 그래도 제법 멀리 보이는 풍경과 조망에 마지막을 즐겨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그 수영봉에서 간식도 먹고 조망도 즐기며 많은 사진을 담고 추억도 쌓으며 풍욕을 즐긴 후 마지막으로 시원한 식수 한모금 마시고 출발하니 등로는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곧이어 눈 앞에 거대한 바위가 나타나고 그 바위를 우측으로 돌아 우회하며 내려가니 바위를 막 지난 지점 좌측으로 멋진 조망이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쉬어 간다.이제서야 제대로 된 좌측 끝자락의 미륵산과 앞으로 중앙에 봉긋 솟아 이는 봉림산이 깨끗하게 조망되고 그 우측 앞으로 현계산 지나 남한강으로 달려가는 산줄기의 모습이 아름답게 가슴속으로 쌓이는 시간이다.
그렇게 멋진 조망과 풍경을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조심하며 진행하니 별 특이한 내용 없이 금새 낙엽들이 쌓여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해 지도를 살펴보니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안부이다.무명 안부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얼마 진행하지 않아 높은 52번 송전탑을 만나고 어렵게 번호를 담고 다시 그 송전탑 밑을 통과해 마지막 산행 등로를 따른다.
송전탑을 지나니 부드러운 등로가 열리고 뚜렷한 참나무 등로를 따라 마지막 힐링을 하듯 걸어 본다.그늘 속을 따라 걸어가지만 오후 3시를 넘기면서 강렬한 햇살이 구름을 뚫고 나오고 기온도 최고조로 오르면서 조금은 말랐던 땀방울이 다시 등로를 적시기 시작하며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낀다.잠시 후 잡풀들이 자라고 있는 쌍묘를 만나 그 위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이제부터 소리개안부를 지나 넘어야 할 마지막 243 삼각점봉이 생각보다 높게 솟구친 모습에 약간의 좌절감도 맛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진행 방향을 조망한 후 그 쌍묘를 지나 내려가니 금새 뚜렷한 안부가 있는 소리개재에 도착을 하는데 좌우측을 살펴보니 아직도 사람ㅈ들의 왕래가 있는지 희미한 길도 보이는 듯 하다.

 

이곳 소리개재는 가루개라고도 하는데 광명터 서남쪽 노림 2리 3반에 있는 고개를 말하며 가루고개 또는 갈현이라고도 한다.

 

갈래를 뜻하는 가루는 가르다(分)에서 온 것으로 가라, 가래, 가리, 거리, 가야 등으로 나타나고 개, 갈, 걸로도 나타나며 개는 고개(峙, 峴)를 뜻하므로 가루와 개가 합쳐져서 가루개가 되었다고 전한다.

이곳 소리개재의 좌측으로는 법천천이 흐르는 법천리와 우측으로는 흥호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이다.

 

소리개재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얼마 진행하지 않아 묵은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가로질러 오르니 잠시 잡목들이 보이더니 금새 커다란 참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능선 등로로 바뀌면서 등로도 조금 더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한동안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무심으로 걸어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에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 있는 166미터의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고 좌측으로 내려가는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크게 꺽여 올라가는 등로를 따라 조금 더 굵은 땀방울들을 흘려 본다.
잠시 후 다시 만나는 안부를 통과하며 제법 그럴듯한 모습이기에 지도를 살펴보니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안부이고 그 안부를 가로질러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코가 땅에 닿을듯한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며 오늘 산행 중 가장 힘들게 올라보는 시간이다.한동안 오르다 너무나 많은 땀방울로 인해 잠시 발걸음 멈추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뒤돌아 보니 방금 전 한동안 쉬면서 환상의 조망과 풍경을 즐겼던 긴경산과 그 앞의 수영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고 그 앞으로는 52번 송전탑도 보이면서 지나 온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온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지나 온 마루금을 조망하며 체력을 비축해 다시 마지막 힘을 짜내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주능선에 도착을 했는지 등로가 조금은 완만해지며 금새 하늘이 열리면서 산불감시초소와 삼각점 그리고 잡풀속에 숨어 있는 이정판이 보이는 백운지맥 마지막 봉우리인 243봉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먼저 닦으며 남아 있는 시원한 얼음물로 갈증을 풀어 본다.갈증을 풀고 난 후 산불감시초소 앞에 웃자라고 있는 잡풀속에 숨어 있는 이정판을 찾아 어렵게 사진 한장 남기고 삼각점과 산불감시초소가 보이는 정상부를 추억으로 남기고 마지막 조망과 풍경을 즐겨 보지만 역시나 하늘이 열린 상태로 있다 보니 너무나 뜨거워 오래 있지 못하였다.
제일 먼저 북서쪽을 살펴보니 구비쳐 흐르는 남한강과 그 우측으로 섬강과 만나는 합수점 및 모래톱도 보이고 그 모래톱 뒷쪽으로는 난달 완주한 성지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자산과 암벽이 보이고 남한강 좌측으로는 오갑지맥의 봉우재와 저 멀리 독조지맥의 마지막 둥그런 모양을 하고 있는 중근이봉이 지난날의 추억을 들려주고 있다.이제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이곳과 청미천이 있는 독조지맥쪽 4개 지맥 산행이 마무리되었으니 또 이곳 합수점으로 다시 올 기회가 있을지 기약도 할 수 없는 시간이기에 시원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아쉬움이 짙게 묻어 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남한강 좌측으로는 제대로 된 오갑지맥과 그 뒤로 독조지맥이 조금은 시원하게 조망되고 각 봉우리마다 지나간 추억들이 생각나며 그때가 다시 그리워지는 시간이기도 하다.오갑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홀로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하고 아쉬워 했던 추억과 저 독조지맥 산행 후 어두워지는 시간에 택시를 불러 여주로 나가 그곳에서 소맥 한잔씩 나누며 고운 추억을 쌓았던 산친구들이 다시 그리워지는 시간이기도 하다.함께하는 산친구가 있으면 좋겠지만 이렇게 홀로 하는 산행도 나쁘지는 않지만 왠지 모르게 마무리를 하는 날에는 함께 자축하며 탁배기라도 한잔 나누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 마지막 243봉에서의 시간을 추억속에 간직하고 우측으로 크게 휘어져 내려가는 잡목속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등로는 커다란 참나무와 소나무들 그리고 키 작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커다란 참나무 한그루와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좁은 공터봉을 지나 평이하게 진행하니 다시 등로 양쪽으로 밤나무 한그루와 참나무 한그루가 보초를 서듯 서 있는 153 무명봉에 도착을 해 고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곳을 지나 진행하니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휘어지며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지도와 트랙을 살펴보니 진행했던 선답자들 모두 제각각 다른 등로를 타고 내려갔기에 뚜렷한 등로조차 보이지 않는다.방향만 보고 가파른 낙엽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산줄기를 벗어 나 비닐하우스가 보이는 곳으로 내려가는데 살펴보니 그 안에는 닭들이 사육되고 있는 작은 양계장이다.닭들이 놀라지 않도록 조심하며 내려가 만나는 비포장 임도에서 그 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가니 우측으로는 파란 벼들이 자라고 있는 논들이 펼쳐져 있고 민가 한채가 보인다.그 민가쪽으로 꺽어 들어가니 그곳은 민가가 아닌 비날하우스에 채소를 재배하고 농사일을 할 수 있는 도구들을 보관하는 장소로서 논에 물을 대고 있는 양수기를 발견하곤 모자를 벗어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한 후 시원하게 몇 모금 들이키니 이제서야 조금 살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 양수기가 돌아가고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시원한 물로 머리를 감고 물을 마신 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나오니 금새 49번 견휜로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고 그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며 앞을 보니 흥원창 넘어 성지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자산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이곳은 창말마을(2차선 포장도로)로 통하는 도로로서 창말마을은 남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곳의 흥호리의 한 마을을 말하며 현재의 창말지역이다.

 

마을유래는 고려 때 원주, 영월, 평창, 정선. 횡성 심지어는 강릉, 삼척, 평해 지방의 세금 곡식이나 물자를 이곳에 모아 배를 이용하여 개성으로 보냈으며 조선조 때에는 원주 등지의 조세만 모아 보냈던 곳으로 흥원창이라 하였다.

고려 때에는 전국 12조창의 하나였었는데 곡식 200석씩을 싣는 평저선 21척이 드나들었으며 양삿 앞강이 호수같고 넓고 깊어 흥원창 호수라는 뜻에서 흥호리라 하였다고 전한다.

이제 머리위로 떠 오른 강렬한 햇살이 도로 위 지열을 끌어 올려 더욱 열기를 부채질하고 금새 굵은 땀방울로 범벅이 된 몸으로 어렵게 흥원창으로 걸어가 본다.

 

 

드디어 창말마을 앞 커다란 흥원창 이정석이 있고 사각정자가 있는 남한강 변으로 오르니 몇대의 오토싸이클을 즐기는 동호회 사람들이 사각정자에서 휴식을 취하고 이 산객이 도착하자 곧 그들이 떠나면서 사각정자는 이 산객의 것이 되었다.

그곳에서 다시 합수점과 성지지맥 그리고 남한강 넘어 오갑지맥과 독조지맥을 살펴보며 배낭을 정리하는 시간도 가져 본다.

 

섬강은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태기산에서 발원하여 경기도와 경계를 이루면서 시의 문막 서쪽으로 흘러 강천면 동편을 남쪽으로 흐르면서 남한강에 합류하는 하천이며 비교적 강수량이 많은 지역을 통과하므로 수량이 풍부하고 심하게 감입곡류하여 협곡에는 경승지가 많다.

금계천과 횡성천 및 원주천 등의 지류가 합류하는데 세종실록지리지 원주목편에 대천은 섬강이며 주 서남쪽에 있는데 흥원창이 있는 곳이다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원주목)편에도 동쪽에는 치악이 달리고 서쪽에는 섬강이 달린다고 하였으며 달강 또는 달래강이라고도 불렸는데 섬()자는 두꺼비를 뜻하며 달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한다.

섬강이 지나는 간현리의 절벽위에 토정 이지함이 썼다는 병암(屛岩)이란 글씨가 새겨진 병풍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 올라앉은 바위 생김새가 두꺼비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섬강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

서거정의 시에도 치악산은 푸른 봉우리를 모아서 조령에 이었고 섬강은 흰빛을 끌어서 여성(驪城)에 닿았네 라고 하였으며 송강 정철이 노래한 관동별곡에도 한수를 돌아드니 섬강이 어디인가 치악은 여기로구나 라는 구절이 있다.

여지도서에는 섬강에 대해 군 서쪽에 있고 바로 충주 금탄의 하류이다 라고 쓰고 있으며 1872년지방지도에는 상류에 있는 바위인 섬암을 동시에 표시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섬암만 표시되어 있고 여지도, 광여도, 해동지도에서는 섬암강으로 표시하고 있으며 조선지지자료에는 소재지를 부론면 노림으로 적고 있다.

세번이나 만났던 섬강은 오늘로서 이별하고 다음부터는 충주호와 강원도쪽으로 발길을 돌려야 하는 시간이기에 아쉬움을 달래 본다.

 

 

사각정자에서 배낭을 정리하고 바로 앞 2차선 도롯가에 세워진 흥원창이란 커다란 이정석 앞에서 셀카봉을 이용해 추억 몇장 더 남긴 후 너무나 많은 땀을 흘리기에 앞에 보이는 민가로 들어가 그 앞에 보이는 수돗가에서 시원한 물로 세수하고 머리까지 감고나니 조금은 더위가 덜하는 느낌이다.

 

흥원창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강원도 원주시에 설치되었던 조창(漕倉)으로 고려 13개 조창의 하나로 원주 은섬포에 있었다.

이러한 전국적인 조운체제가 정비된 것은 992(성종 11)경으로 조창에서는 전년에 거두어 저장한 세미를 이듬해 2월부터 4월까지 경창으로 운송하였는데 흥원창에는 세미의 운송을 위하여 200석을 적재할 수 있는 평저선 21척이 배치되어 있었다.
또 판관
이 파견되어 창고와 운송업무를 관장하였으며 중앙에서는 감창사를 파견하여 때때로 발생하는 세미의 횡령과 기타 부정행위를 조사 및 감독하였다.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으나 후기에는 관선조운이 쇠퇴하고 사선업자에 의한 임운이 행해지면서 그 기능은 쇠퇴하였다.

현재도 전세계에서 조선업이 가장 강력한 한국이지만 경영 부실과 방만경영으로 인해 이웃나라들에게 그 지위를 빼앗기고 있으니 많이 안타깝고 아쉬운 시절이기도 하다.

 

 

민가에서 잠시 더위를 식히고 나오니 저 멀리 55번 버스가 오고 있어 마지막으로 배낭 한번 더 정리하고 그 버스를 타고 귀래면까지 이동 후 좋은 사람들을 만나 구사버스정류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갈림삼거리까지 이동하며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남한강은 한강의 본류로서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금대산의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충청북도 동북부와 경기도 남부를 흘러 양평군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한다.

 

오늘날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하천 명칭은 아니며 한국하천일람에 따르면 강원도에서 발원하여 충청북도와 경기도를 흐르는 한강은 달천, 섬강, 청미천, 복하천, 북한강, 소양강, 임진강, 안성천을 비롯한 19개의 지류가 있으나 남한강은 보이지 않는다.

북한강이 한강의 지류로 명시되어 있는 반면에 남한강이라는 명칭은 찾아볼 수 없으며 북한강은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한강의 본류와 합쳐지는데 이 합류점 이남의 한강을 북한강에 견주어 편의상 남한강이라 부르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옛 문헌에서는 영조실록 남한강을 뜻하는 남한(南漢) 표기가 보이고 조선 고종 3년 때를 기록한 비변사등록에도 남한(南漢) 북한(北漢)이라는 표기가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출간된 충주발전지(1916)와 충청북도요람(1928) 등에서는 강원도에서 발원하여 충주를 흐르는 하천을 한강이라 불렀고 1928에 조선총독부가 출간한 조선토목사업지에서도 남한강과 북한강을 함께 언급하되 북한강은 한강의 제1지류이며 남한강이 한강의 본류임을 명시하였지만 일제강점기의 관보나 언론에서는 경기 지역은한강이라 표기하여 서울 지역의 한강과 구분하기도 하였다.

 

한강의 본류는 강원도 태백시 금대산에서 발원하여 충청북도 북부와 경기도 남부를 흘러 양평군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고 팔당댐과 서울시를 거쳐 경기도 파주군에서 다시 임진강과 합류한 뒤 강화만에서 황해로 흘러든다.

한강 본류의 발원지에 관해서는 오대산 우통수라는 기록도 있으나 국립지리원이 발행한 지형도에서 계측한 결과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금대산의 북쪽 계곡에 위치한 검룡소가 우통수보다 27 Km 상류임이 확인되어 한강의 발원지로 공인되었다.

이렇게 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백운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마지막으로 합수점과 남한강을 살펴보고 뒤돌아 서는 마음이 가벼우면서도 아쉬운 것은 아마도 다음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여름 가장 무더운 계절에 조금은 길게 걸어 3구간으로 백운지맥을 마무리하고 나니 이제 섬강과는 한동안 만날일이 없어 시원함보다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 시간이었다.대중교통을 이용해 진행하며 마무리한 후 시원한 맥주 한잔이라도 마셨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게 하면 한구간 이상 더 늘어나고 귀가길에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 것 같아 새벽 일찍 애마를 이용해 산행을 시작해 정상적인 시간에 마무리하고 생각보다 막히지 않은 고속도로를 타고 조금은 일찍 귀가를 하게 되니 계획보다 더 편안하게 잘 마무리가 된 듯 하다.이제 한여름 산행은 진행하다 중단된 남아 있는 천등지맥과 주왕지맥을 마무리하고 가능하면 황병지맥과 금대지맥을 진행하였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한데 바램처럼 이뤄질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다.

 

다시 이어지는 맥 잇기 산행에서도 좋은 추억 많이 남길 수 있기를 바라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90713 백운지맥제3구간 서낭당고개-흥원창.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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