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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백운지맥(영월·완)

백운지맥 제1구간 성남분소에서 가리파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9.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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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강원도 원주시의 백운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9년 04월 05일 (금요일 당일 오후산행)

산행날씨 : 하루 종일 흐리고 강한 바람이 불었지만 여전히 미세먼지가 가득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상 00도에서 영상 13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성남종점(23번 버스종점)-성남공원지킴터-이정표(상원사 5.1 Km, 남대봉 5.8 Km, 비로봉 16 Km)-성남로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성남계곡)-이정표(상원사 4.0 Km와 남대봉 4.7 Km, 성남탐방지원센터 1.1 Km)-이정표(상원사 3.0 Km와 남대봉 3.7 Km, 성남탐방지원센터 2.2 Km)-마지막 소형차 주차장 이정표(상원사 2.6 Km와 남대봉 3.3 Km, 성남탐방지원센터 2.5 Km)-능선진입-이정표(상원사 2.2 Km와 남대봉 2.9 Km, 성남탐방지원센터 2.9 Km)-이정표(상원사 1.7 Km와 남대봉 2.4 Km, 성남탐방지원센터 3.4 Km)-이정표(상원사 1.0 Km와 남대봉 1.7 Km, 성남탐방지원센터 4.1 Km)-나무계단-이정표(상원사 0.4 Km, 성남탐방지원센터 4.7 Km)-상원사 샘터(음용 부적합)-상원사 이정표(남대봉 0.7 Km와 영원사 2.8 Km 및 비로봉 10.5 Km, 성남탐방지원센터 5.1 Km)-영원사 갈림삼거리 이정표(남대봉 0.5 Km와 비로봉 10.2 Km, 영원사 2.5 Km, 상원사 0.3 Km)-쌍용수 샘터와 상원사 및 영원사 갈림삼거리 이정표(남대봉 0.3 Km와 비로봉 10.1 Km, 상원사 0.4 Km, 영원사 2.5 Km와 금대분소 4.9 Km)-나무계단-남대봉(1181봉, 정상석과 헬기장 및 남대봉 안전센터) 이정표(비로봉 9.8 Km, 상원사 0.7 Km)-안전목책과 로프-산죽로-영원사와 금대분소 갈림삼거리 출입금지 이정표(남대봉 0.7 Km와 비로봉 10.5 Km, 상원사 0.5 Km, 영원사 2.3 Km와 금대분소 4.7 Km)-산죽지대-1102 무명 바위봉-1090 무명 고사목봉-1090 바위 무명봉 우회-안부-1170 무명 바위봉에서 조망-시명봉(1196봉)-1175 무명봉-1084 무명봉-1097 잡목봉-1059 바위 무명봉-바위 암릉등로 우회-1056 Y참나무 무명봉-1057 고사목 무명봉-1053 바위 무명봉-1054 무명봉-1034 갈림삼거리봉(길주의 지점)-질아치 안부-753 바위 무명봉 우회-잣나무 군락지-낙엽송 군락지-662 고사목 무명봉-잣나무 군락지-명경사 시멘트 임도-폐 산불감시초소-잣나무 군락지-비포장 임도-송전탑-가리파재(치악재, 5번 치악로 4차선 포장도로, 치악재정상 버스정류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2.60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성남종점에서 가리파재 5번 치악로 4차선 포장도로까지 진행) 

               백운지맥 - 약 06.80 Km(지맥 분기점인 남대봉에서 가리파재(치악재, 5번 치악로 4차선 포장도로까지)

               접속구간 - 약 05.80 Km(성남종점인 성남공원지킴터에서 백운지맥 분기점인 남대봉까지)

산행트랙 :

20190405 백운지맥1구간 성남분소-가리파재.gpx
0.07MB
산행시간 : 하루종일 강한 바람과 미세먼지로 조망 없이 꾸준히 진행하여 05간 45 (11시 50부터 17시 36분까)

교통편 및 숙박 : 갈때 - 11:00 이천에서 일 마치고 승용차로 출발

                               11:45 성남 버스 종점인 성남공원지킴터에 도착해 산행 준비

                               11:50 백운지맥 산행시작

                      올때 - 17:36 가리파재인 치악재에서 지맥 산행 종료

                              17:45 원주 콜 택시 도착 해 성남공원지킴터로 출발 (12,000.-)

                              18:10 애마 회수 해 장령지맥 산행을 위해 금산으로 출발

백운지맥이란 ???

공식적인 용어와 이론이 정립되지 않다 보니 지맥 산줄기에도 많은 이론들이 존재하고 특히나 영월지맥과 백운지맥이 지나는 이곳 역시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는 산줄기이기에 오래 전부터 오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어 미루고 또한 산줄기가 이어지는 차례대로 진행하려는 개인적인 원칙이 있어 진행하다 중단된 천등지맥도 오르지 못하고 있기에 더 이상 미루지 못하고 오르게 되었다.

영월지맥 남대봉에서 분기하여 시명봉 백운산을 거쳐 서진하며 섬강이 남한강에 합류하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흥호리에서 산줄기를 마감하는 46.9 Km의 산줄기다.

백운지맥이 분기하는 남대봉은 원주시와 횡성군의 경계이고 마루금은 원주시 판부면과 신림면을 가르며 시작해 중앙고속도로 옆 가리파재를 넘어 올라선 937.6 미터봉에서 충북과의 도계를 접하다가 백운산을 넘고는 원주시 귀래면으로 복귀한다.

다시 미륵산을 지나고 부론면계를 따라 영동고속도로를 잠시 넘었다 되돌아 와 남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내려가면 부론면 흥호리 동매마을이 된다.

 

 

일 마치고 남아 있는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 새로운 산줄기에 올라 두 계절이 공존하는 마루금에서 자만한 자신을 탓하며 어렵게 한 구간 마무리하였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원래 계획은 오늘 새벽 일찍 강릉으로 내려 가 울릉도행 첫 배를 타고 2박 3일간 울릉도와 독도를 다녀오는 계획이었지만 갑자기 불어대는 강풍으로 인해 배가 출항하지 못하고 그곳 강원도 고성과 속초 및 강릉지역에 대규모 산불로 인해 차량 통제까지 생기고 보니 갑자기 일정이 사라져 버렸다.

옆지기와 딸 아이는 이 산객이 2박 3일간 울릉도와 독도 여행과 산행 계획에 맞춰 제주도로 여행을 떠날 예정에 맞춰 떠나고 이 산객은 갑자기 이천쪽에 일이 생겨 아침 일찍 출발하며 산행 준비 후 어디라도 다녀 오기로 한다.

일을 마치고 시간을 보니 이제 오전 10시 30여분이 지나고 있어 가깝지만 오르지 못하고 있던 백운지맥을 생각하곤 곧바로 성남분소 방향으로 애마를 돌린다.

몇 년 전 제천쪽에 일이 있어 내려갔다 돌아 오는 길에 잠시 진행했던 천등지맥도 이곳 백운지맥 산행을 진행하지 못해 중단된 상태이기에 하루 빨리 마무리를 하고 싶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아직 오르지 못해 이번에는 큰 마음먹고 출발을 해 본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니 오르막 보다는 급경사 내리막 등로로 고생을 한 산행기들이 보이고 몇군데 길주의 지점도 보이길래 조심하며 진행하기로 해 본다.

 

오늘 산행 시간이 최대 6시간 정도를 예상했기에 가능하면 가벼운 배낭을 챙기는데 점심식사도 못하고 출발하기에 준비한 과일과 약밥만 물 1리터와 챙겨 곧바로 성남분소 앞 버스정류장 종점에서 백운지맥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채 12시도 되지 않았다.

몇 번 올랐던 남대봉이지만 짙은 안개와 어둠속에 올랐던 기억 뿐이란 조금은 새롭게 다가오는 등로를 타고 백운지맥 분기점인 남대봉을 지나 시명봉으로 진행을 이어가니 1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라 그런지 등로에는 눈과 얼음이 남아 있어 진행에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그래도 조심하며 걸어 진행하여 드디어 시명봉에 도착을 해 정상 이정판을 사진에 담고 바위봉으로 이동을 해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짙은 미세먼지속에 저 멀리 좌측의 벼락바위봉에서 우측 중앙의 백운산이 아스라히 펼쳐지며 다음구간 산행도 결코 쉽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래도 이렇게 나마 그 희미한 모습이라도 만나고 바라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잠시 오래 전 강한 비와 짙은 안개속에 어렵게 올라 고운 추억 한장 남기고 내려왔던 지난날을 되돌아 보는 시간은 그저 꿈결같은 시간이 되었다.

 

울릉도도 울릉도이지만 이번에는 독도가 정말 보고 싶었는데 갑자기 불어닥친 강풍으로 인해 배가 출발을 못한다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오전에 일찍 잡힌 미팅이 끝나니 오전 10시 30여분이 지나고 애마를 몰아 몇 번인가 치악산 종주를 위해 들렸던 치악산 성남분소 앞 버스종점에 도착을 하니 채 12시도 되지 않았다.

치악산 성남지구는 이곳의 지명이 성남리이기에 붙은 듯 보여 성남리를 찾아 보니 성남리는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에 있는 리로서 신림면의 북쪽에 있으며 동쪽으로 매화산 줄기를 경계로 하여 황둔리와 접하고 있고 서쪽으로는 금창리, 남쪽으로는 신림리, 북쪽으로는 남대봉을 경계로 하여 횡성군 강림면과 접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가둔지, 사동, 상원동, 전불 등이 있는데 성남리는 치악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산수가 수려하며 상원사와 성황림 등 많은 유적과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상원사는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로, 오늘날까지도 치악산이란 산명이 있게 한 유서 깊은 사찰이며 은혜에 보답한 꿩과 뱀의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또 성황림은 고산식물에서부터 야산식물에 이르기까지 각종 초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숲으로, 천연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버스 정류소 반대편에 애마를 잘 주차시키고 도로 옆 계곡을 따라 백운지맥 첫 출발을 시작해 본다.

 

애마를 주차시키고 잠시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성남탐방지원센터가 자리잡고 있는데 혹시 경방기간이라 출입을 통제하면 어떻게할까 걱정을 했는데 기우였다.

이제 남대봉까지 5.8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걸어 올라가니 도로 좌측으로 청아한 계곡물이 흐르고 이제 봄이 오고 있음을 느끼며 발걸음을 옮기니 앞으로 걸어 진행을 해야 할 방향으로 치악산의 고봉들이 올려다 보이는데 그곳에도 봄이 오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고 있다.

 

계곡을 두고 설치된 다리를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건너니 잠시 후 이정표가 서 있는데 남대봉까지는 이제 4.7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그렇게 빠른 발걸음을 옮기니 포장도로가 비포장 임도로 바뀌면서 임도 좌측 골짜기에는 아직도 두꺼운 얼음이 보이고 그 속으로 청아한 물소리를 내면서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다시 1 Km를 더 걸어 올라 좌측으로 공터를 지나니 좌측 계곡물이 너무나 아름다운 작은 폭포를 이루며 홀로 걸어 오르는 산객의 발길을 붙잡아 잠시 계곡으로 들어 가 사진 몇장 남겨 본다.

상원골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첫 부분의 협곡과 암반과 소가 나오는 그 다음 부분이 아름다운데 푸른 물이 흐르는 여름은 말할 필요도 없고 겨울에도 마찬가지로서 올해는 예년보다는 적설량이 적어 실망스러웠지만 그러나 겨울 산의 아름다움은 그대로 간직한 계곡이다.

여름철이면 계류가 폭류를 이루고 소엔 푸른 물이 넘실거리던 상원골 입구 위쪽의 골짜기는 이제 서서히 겨울잠에서 깨어 나려는 듯 얼어있던 얼음들이 녹으면서 조금씩 수량을 늘려가고 있는 듯 보인다.

몇번인가 올랐던 상원골이지만 그때엔 모두 청아한 물소리만 들었을 뿐 제대로 된 계곡물을 만난 것도 드물었던 기억 뿐이다.

 

계속 이어지는 포장도로와 그 도로 옆으로 흐르는 성원골 계곡물을 노래삼아 걸어 오르니 드디어 마지막 작은 주차장이 나타나고 우측으로는 몇대의 승요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뒷편으로 화장실도 보인다.

화장실로 들어 가 시원하게 비움의 행복을 느끼고 다시 돌아 나와 상원사로 들고 갈 물건이 있을까 찾아 보니 모두 커다란 박스들이 지게에 실려있어 도움을 주는 것을 포기하고 빈몸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기왓장들이 보여 올려다 드린 기억이 있는데 조금은 아쉬운 시간이었다.

 

이제 남대봉까지는 3.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마지막 계곡물을 사진에 담고 키 작은 산죽들이 보이는 능선으로 오르니 초반부터 가파른 나무 계단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잠시 후 우측에 바위가 보이는 둔덕을 넘어 걸어가니 이제 남대봉까지는 2.9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다시 보인다.

다시 나타나는 철다리를 통해 계곡을 넘고 이정표를 사진에 담고 오르니 두어명의 등산객들이 벌써 올랐다 하산을 하고 잠사 후 눈 앞에 모녀라 생각되는 두사람이 걸어 오르며 힘이 드는지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즐거운 춤사위도 선보여 모르는척 추월해 진행한다.

 

이제 등로 주변으로는 조금 더 머물고 싶어 하는 겨울과 그 겨울을 빨리 보내려는 봄이 공존하는 두계절이 눈에 들어 온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산행을 하면서 눈과 얼음으로 사투를 벌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하면서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오르는 시간이다.

상원사와 남대봉까지의 거리가 조금씩 짧아지는 이정표를 만나고 길게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타고 걸어 오르니 몇 년 전 많은 눈이 내려 쌓여 있던 등로를 따라 홀로 새벽에 오르며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방풍의를 벗어 배낭에 넣었던 장소에 도착을 해 잠시 추억을 생각하니 웃음만 나오는 순간이다.

그곳을 지나 이제 상원사까지 4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샘터 이정표가 보이고 그곳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아직도 이곳 샘물은 음용수로 부적합 샘물로 남아 있다.

 

그 샘물을 빠져 나와 다시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눈 앞으로 상원사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예전에 오를 때 공사중이던 상원사 앞 뜰은 대부분 공사가 끝나고 잘 정비되어 있지만 일주문만은 아직도 완성되지 못했는지 천막이 가리워져 있다.

상원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치악산상원사사적비와 보은의종유래비가 서 있고 사진 한장 남기고 올라 우측으로 다시 올라가니 상원사지 석탑과 광배 그리고 범종각이 우측으로 보이고 좌측으로는 대웅전이 서 있다.

상원사는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성남2리 치악산 남대봉 아래에 있는 절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며 해발 1200미터에 있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신라 말 경순왕의 왕사였던 무착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오대산 상원사에서 수도하던 중 문수보살에게 기도하여 관법으로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창건 이후 고려 말에 나옹 혜근이 중창하였고 월봉, 위학, 정암, 해봉, 삼공, 축념 등이 이곳에서 수도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여러 왕들이 국태민안을 위한 기도처로 삼았다.

6·25전쟁 때 모두 불타버린 것을 1968년에 중건하였으며 1988년 대웅전을 다시 짓고 범종각과 일주문을 신축하였다.

현재 건물은 상원사 대웅전(강원문화재자료 18)과 심우당, 심검당, 범종각, 요사채, 객사 등이 있으며 대웅전을 중심으로 동서에 신라 석탑 양식을 따른 상원사지 석탑 및 광배(강원유형문화재 25)가 있다.

이 사찰과 관련하여 은혜 갚은 꿩의 전설이 전해오며 그 내용은 치악산 기슭에 수행이 깊은 승려가 있었는데 어느 날 산길에서 큰 구렁이가 새끼를 품고 있는 꿩을 감아 죽이려는 것을 보고 지팡이로 구렁이를 쳐서 꿩을 구하였다.

그날 저녁 승려는 폐사가 되다시피 한 구룡사에 도착해서 잠이 들었다가 한밤중에 가슴이 답답하여 눈을 떴는데 구렁이 한 마리가 자신의 몸을 친친 감고 노려보며 네가 나의 먹이를 먹지 못하게 했으니 대신 너라도 잡아 먹고 싶으나 날이 새기 전에 이 산중에서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너를 살려주겠다고 했다.

상원사에 가야만 종이 있는데 시간상 도저히 불가능하여 포기한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종이 세 번 울려왔고 구렁이는 기뻐하면서 이것은 부처님의 뜻이므로 다시는 원한을 품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승려가 상원사로 올라가보니 종루 밑에는 꿩과 새끼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 있었고 이와 같이 꿩이 죽음으로 보은하였다고 해서 이 산을 치악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곳에 올 때마다 한번 둘러보고 떠났던 것이 전부였는데 오늘은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둘러보는 여유도 부려 본다.

 

 

대웅전을 사진에 담고 그 앞에 서 있는 설명판도 읽어 본 후 주위를 둘러보고 그 대웅전 앞에 서 있는 3층 석탑 2개와 범종각을 살펴본다.

범종각은 상원사 아래에서 봤을 때 늘 가장 먼저 보였던 건물이기에 살펴보지만 사실은 그 범종각보다는 그 앞에 서 있는 3층 석탑 2개가 더욱 눈길을 잡는다.

상원사의 현존하는 당우로는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8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요사채 및 객사 등이 있으며 대웅전을 중심으로 동서에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른 아름다운 삼층석탑 2기가 있다.

이 탑은 상원사의 창건과 동시에 세워진 것으로 상륜부에 둥근 연꽃 봉오리 모양을 새겨 일반 탑에서 보기 어려운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동쪽 탑의 바로 앞에는 화염문을 보이는 섬세한 불상의 광배와 연화대석이 있어 원래 이 절에 석불이 봉안되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으며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으로 장고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아직까지 건재하고 있으니 보고 있으면 그저 감탄사만 연발하게 만드는 걸작품이란 생각이다.

 

대웅전 좌측 뒷편에는 최근에 새로 설치된 듯한 좌불이 보이는데 좌불은 결가부좌한 자세로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것과 설법을 하는 자세를 뜻하며 초기는 입상이었다가 후기로 가면 앉아 있는 불상으로 바뀌는데 이는 권력화되고 권위적인 부처님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불상의 모습도 바뀜을 알 수 있다.아무튼 반가상은 현생의 중생들의 고달픔을 생각하는 모습을 상징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이제 상원사를 둘러보고 다시 백운지맥 산행을 이어가기 위해 우측 등로를 따르니 치악산일주문은 아직도 공사중이다.화장실을 지나 산죽지대를 통과해 걸어 진행하니 갑자기 눈 앞에 영원사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나고 이곳에서 잠시 영원사를 생각해 본다. 영원사는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치악산에 있는 절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다.676(문무왕 16)에 의상이 영원산성의 수호사찰로 창건하여 영원사라 하였으며 1664(현종 5)에 중건하면서 지금의 절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그 뒤의 사적은 불확실하지만 1939년에 계호가 중건하였으며 1964년에 주지 김병준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당우로는 대웅전과 삼성각 및 요사채가 있으며 오래된 석물이나 특별한 문화재는 없으나 법당 안의 후불탱화만은 오래된 것이다.절의 동쪽 산위에는 10리에 걸쳐 영원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이는 부근의 해미산성과 함께 임진왜란 때 왜병을 맞아 항전하던 전적지이다.이제 우측 나무계단을 타고 500미터 거리인 영월지맥의 한 봉우리이자 백운지맥 분기점인 남대봉으로 향한다.

 

나무계단을 타고 주위에 보이는 파란 산죽들을 살펴보며 천천히 걸어 오르니 또 다시 등로 좌측으로 영원사와 금대분소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나고 이곳에서도 우측의 남대봉과 비로봉 가는 등로를 따라 남대봉으로 향한다.길게 이어지는 나무계단과 안전목책을 타고 걸어 오르니 다시 나무계단이 사라지고 키 작은 산죽등로가 이어지고 금새 남대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2017년 9월에 강원도 산친구들과 영월지맥이란 이름으로 들렸으니 1년하고도 7개월이 지나 백운지맥 산행으로 다시 찾은 기분이 새로운 남대봉이다. 남대봉(1180)은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과 신림면 및 황성군 안흥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180미터이다.치악산에 딸린 산봉으로 망경대라고도 부르는데 남대봉에서 북쪽으로 비로봉까지 병풍처럼 이어진 능선 곳곳에는 기암절벽의 골짜기가 형성되어 장관을 이루고 남대봉에서 남쪽으로 떨어져 내린 안부는 가리패재로서 국도와 루프식 터널이 딸린 중앙선의 치악산 터널이 통과한다.산 정상부에 가까운 남쪽에 있는 상원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로 주변의 경치가 장엄하고 법당 앞에는 희귀한 계수나무 세 그루가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자라고 있다.1872년지방지도에는 남대봉으로 표시되어 있다.넓은 헬기장 주변에 설치되어 있는 벤취에 배낭 내려 시원한 물 한모금 마시고 어렵게 모바일폰을 이용해 셀카로 사진 한장 남기고 나니 이제부터 본격적인 백운지맥 산행이 시작됨을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이기도 하다.앞으로 몇번인가 더 올라야 할 것 같은 남대봉에서의 재회를 뒤로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방금 전 올라 온 영원사와 금대분소 갈림 삼거리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며 백운지맥과의 만남을 이어가 본다.

 

남대봉안전센터 우측 뒷편으로 나 있는 영월지맥 마루금을 마지막으로 아쉬운 남대봉과 이별하고 올라갔던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금새 등로 우측으로 조망처가 나타나고 잠시 들려 예전에 만났던 얼굴바위와 그 우측 뒤로 펼쳐진 치악산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을 살펴보지만 미세먼지가 가득해 실루엣으로만 보여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래 전 홀로 치악산 종주를 하면서 이곳에서 봤던 너무나 아름다웠던 풍경과 조망이 그리워 찾아 보니 2014년 12월 26일 아침에 지났으니 4년하고도 4개월이 지난 시간이었다.

그때엔 날씨가 좋아 저 얼굴바위 좌측 뒷편으로 원주시의 희미한 시가지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는데 오늘은 보이는 것 하나 없이 그저 수묵화처럼 아름다운 산그리메가 전부이다.

 

그곳에서 우측 뒷편으로 치악산 주능선 상 향로봉 줄기와 원주시를 돌아 보고 이제는 진행 방향인 등로 우측 앞을 살펴보니 저 멀리 희미하게 백운지맥이란 이름을 낳게 한 백운산이 하늘금에 맞닿아 있는 머습으로 당당하게 서 있지만 역시나 미세먼지로 인해 조금은 아쉬움을 남기는 시간이다.

저곳 역시 2010년 8월에 시원한 덕동계곡이 그리워 찾았다가 하루 종일 내리는 강한 비와 짙은 안개로 인해 무척 고생하며 올랐던 기억이 나 잠시 추억에 젖는 시간인데 천등지맥 첫구간을 올랐던 이유도 그때 바로 저 백운사과 함께 만나던 십자봉과 분기점이 생각 나 잠시 오르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백운산의 자료를 찾아보니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과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014미터이고 치악산의 서쪽 줄기가 뻗어가다가 가장 높게 솟은 봉우리가 백운산이다.

늘 흰 구름이 끼어 있고 겨울에도 흰 눈이 쌓여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마치 고기를 겹겹이 쌓아 놓은 것 같다고 하여 육산 또는 겹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되어 있다.

오를 땐 이런 모습도 기대를 할 수 없을만큼 미세먼지가 가득했는데 그래도 강풍이 불며 약간의 흐미한 모습이라도 보여주니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백운산을 살펴보고 이제부터 진행해야 할 시명봉은 나뭇가지 사이로 살펴 본 후 다시 등로로 복귀해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금새 영원사와 금대분소 갈림삽거리에 도착을 하고 이제부터 영원사와 영원산성과 헤어져 오롯히 백운지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영원산성은 영원골 영원사 위에 있는 산성을 말하는데 유래를 살펴보면 고려사에는 치악성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다른 곳은 모두 영원산성으로 기록하고 있다.

축조연대는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신라 문무왕대라고 알려져 있는 영원산성은 원주의 중요한 방어 시설이었는데 고려시대 충렬왕 17(1291)에는 합단이 침입해와 원충갑이 이 성에서 10여 차례나 적의 공략을 막았다고 한다.

조선 중기에 이 성은 폐지된 것으로 보이고 다시 임진왜란 때 수축되었다고 하는데 이 성에서 1592 8월에는 원주목사 김제갑이 왜병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그 후 1594년에 이 성을 다시 수축하였다 하며 18세기 중반 경에는 다시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영원산성은 지리적으로 깊은 산 속에 위치해 있어서 적을 방어하기가 쉬운 이점이 있었던 산성으로 적이 침입해 오기 위해서는 금대리 긴 계곡을 들어와야 하는 반면에 수비하는 쪽에서는 길아치에서 가리파쪽과 반곡쪽의 관측이 용이하고 또 신림쪽과 부곡 및 행구 쪽과 교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벽은 자연석으로 산 능선을 따라 축조되어 있는데 붕괴된 곳이 있지만 대체로 잘 남아 있는 편이고 여러 곳에 건물터가 남아 있으며 1개의 우물과 5개의 샘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원주시에서 복원사업을 추진 중이다. 반곡동 섶재에 성안이 마을 지명이 있다.

평일이고 오후 시간이다 보니 등산을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강풍만 태풍처럼 불어 와 봄이 오는 길목에서 한기를 느끼는 시간이다.

 

커다란 활엽수가 발거벗은 아래 키 작은 산죽들이 파란색으로 치장하며 더욱 봄 기운을 물씬 풍기지만 불어 오는 바람은 태풍급 바람으로 온 몸에 한기를 느끼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차갑지는 않아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진행하면서 등로에 남아 있는 눈과 얼음이 산객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기 시작하고 암봉으로 이뤄진 등로를 잘 통과나 가능할지 걱정이 되기 시작하는데 이곳에 오르기 전 체인젠을 챙길까 말까 고민하던 시간이 야속하게 다가온다.

잠시 후 다시 등로 좌측으로 영원사와 금대분소 하산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만나고 주위를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출입금지 구역으로 이제부터 치악재까지는 조용히 오지 않은 듯 흔적도 남기지 말고 도둑고양이가 되어 통과를 해야 하는 구간에 도착을 한다.

 

조심스럽게 금불을 넘어 진행하니 이곳 역시 파란 산죽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어 오랫만에 느끼는 초록에 눈길을 빼앗기는 시간이다.

등로 우측 주능선에는 바위 암릉들이 펼쳐져 있어 좌측 사면 등로가 발달해 있어 그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의 바위들이 인사를 건네고 있다.

조용히 도둑 고양이처럼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사각거리는 산죽 울음소리가 귓전을 맴돌고 잠시 후 1090미터를 가리키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해보며 불어 오는 강풍에 흘려던 땀방울을 식혀 보는데 얼마가 바람이 강한지 잠시 발걸음을 멈추면 한기가 돌 정도로 천미터가 넘는 이곳 높은 지대에서의 바람은 아직 차갑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정상에 약간의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무명봉을 지나 앞에 높아 보이는 봉우리를 바라보며 이어지는 산죽지대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이어지는 바위와 암릉 등로가 조용히 진행하는 이 산객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는 착각에 빠진다.

계속 이어지는 바위 암릉을 우회하며 걸어 진행하니 점심식사를 하지 못하고 올랐기에 허기가 지기 시작하고 옆지기가 준비해 준 약밥과 과일을 꺼내 허기를 달래니 조금은 세상이 부드럽게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빠르게 진행하니 등로 앞뒤로 거대한 바위 암릉이 버티고 서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그 안부로 불어 오는 바람이 얼마나 강한지 서 있을 수가 없어 재빨리 바위 옆 바람이 잦아 든 장소로 이동해 잠시 사진 한장 더 남기고 출발한다.

 

이제부터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점점 더 가파르게 이어지고 잠시 후 어렵게 바위 암릉을 지나 바위 전망대에 도착을 한다.

올라 잠시 불어 오는 바람을 조심하며 뒤돌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남대봉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등로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남대봉 우측 아래로는 상원사도 뚜렷하게 보인다.

그 남대봉 좌측으로는 치악산 종주를 하면서 몇번인가 걸었고 1년 7개월 전에 영월지맥이란 이름으로 걸었던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치악산을 생각해 본다.

치악산은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과 영월군 수주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282미터이고 최고봉은 비로봉이며 차령산줄기에 속하는 준령으로 비로봉을 주봉으로 남쪽의 남대봉(1182미터)에서 북쪽의 삼봉(1072미터)에 이르기까지 능선의 길이가 24 Km에 달하는 원주의 진산이다.

옛 이름은 적악산(赤嶽山)인데 뱀에게 먹히려던 꿩을 구해준 나그네가 그 꿩의 보은으로 위기에서 목숨을 건졌다는 전설에 따라 치악산으로 바뀌었다고 하며 그 전설에 얽힌 상원사의 서쪽으로 세존대, 만경대, 문바위, 아들바위 등이 있고 영원산성, 해미산성, 금두산성 등이 있다.

상원사 남쪽의 상원골에는 천연기념물인 성황림이 있으며 주봉인 비로봉 언저리에는 운곡 원천석의 혼이 깃든 석경사, 입석대, 신선대, 태종대, 노고소 등이 있고 세렴폭포, 사다리병창, 창대바위, 투구봉 등이 있다.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이 창건한 고찰이며 치악산에는 옛날부터 절이 많아서 현재 남아 있는 절터만 해도 100개소가 넘는다.

현존하는 사찰은 구룡사, 상원사, 석경사, 국향사 등 8개뿐이며 구룡계곡에는 노목들이 울창하여 옛날에는 궁궐에서 가져가기 위해 일반인의 벌목을 금했다는 황장금표가 학골에 남아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치악산을 봄가을에 치제를 올렸던 곳으로 기록하고 있고 광여도, 여지도, 지승, 1872년지방지도, 해동지도에는 구룡사와 상원사가 표시되어 있다.

광여도, 여지도, 지승, 1872년지방지도에는 태종대가 표시되어 있고 1872년지방지도에는 석경사, 영원산성, 입석대, 비로봉, 국형사가 나온다.

광여도에는 치악사(雉岳寺)가 표기되어 있으며 지승과 해동지도에는 치악산이 표시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의 동쪽 25리에 있는 진산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치악산과 관련된 고려 시대 진보궐 관련 설화가 실려 있고 여지도서와 강원도원주군읍지에도 같은 내용의 설화가 실려 있으며 조선지지자료에는 본부면 2리 황암 마을에 소재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앞으로도 몇번인가 더 걸어야 그 그리움이 풀릴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이제는 저 등로를 걸으며 의미없이 지나는 시간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 치악산 주능선의 향로봉을 살펴보고 그 좌측 아래를 살펴보지만 그 산줄기 넘어 보여야 할 원지시는 미세먼지속에 파묻혀 눈으로만 흐릿한 모습으로 보이지만 사진으로는 잘 구분하기 어려운 풍경이다.진행 방향으로는 이제 시명봉이 가깝게 다가와 있어 그렇게 주위를 살펴보고 그 바위 전망대를 지나 산행을 이어가니 잠시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는데 이곳부터 지난 번 내린 눈이 녹지 않아 하얀 눈 등로가 열려있고 오르막 바위 위에는 눈과 함께 얼어 있는 얼음들이 악마의 이빨을 드러내듯 노려보고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조금 더 정신을 집중하며 네발로 걸어 오르니 금새 1196미터의 시명봉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주위 풍경을 살펴보지만 잡목들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어 아쉽기만 하다. 시명봉(1196)남대봉이라고도 하며 명칭에 많은 혼선이 있지만 국립지리원의 지도에 의거하여 시명봉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북쪽으로는 치악산 주봉인 비로봉 방향으로 이어지는 남대봉과 그 넘어 향로봉 그리고 서쪽으로 뻗어 내린 곰바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조망 되며 이곳 시명봉 서쪽 바로 아래로는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진행해야 할 능선이 펼쳐져 있다.
서북쪽으로 깊은 산중 골짜기에 들어 앉은 사찰 영원사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이고 남쪽으로는 가리파에서 올라오는 치악종주능선과 능선상에 있는 1088미터는 여기 시명봉 보다도 더 높게 보여 진다.
그래도 그곳 시명봉에서 내려가기 전 지나온 남대봉 방향을 바라보니 그 남대봉 넘어 저 멀리 치악산 정상부인 비로봉이 희미하지만 확실한 모습으로 존재감을 알리고 있어 어렵게 사진 한장 더 남기고 출발한다.

 

 

치악산 주능선을 살펴보고 좌측 원주시에서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넘어 희미하게 보이는 원주시를 사진에 담아 보지만 아쉬움만 남기는 시간이다.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그 원주시가 내려다 보이기에 자료를 찾아 보니 원주시는 한반도의 중심부이자 강원도의 남서부에 있으며 반도의 백두대간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태백산줄기을 중심으로 서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은 영월군과 횡성군과 서쪽은 경기도 여주시와 양평군과 북쪽은 횡성군 그리고 남쪽은 충청북도 충주시와 제천시와 접한다.

지명은 통일신라시기 9주 5소경을 설치하여 북원소경이라고 하였으며 경덕왕 때 북원경이라고 불렸다가 고려 성종때는 행정구역이 10도 12목으로 개편되면서 충원도(현재의 충북)에 소속되었다.

충렬왕 17년 익흥도호부로 34년에는 원주목으로 승격하였다가 조선시대에 들어 강릉과 원주에서 각각 한 글자를 따 현재의 강원도라는 호칭을 만들 정도로 강원도의 대표도시로 자리잡게 되었다.

일제강점기때 원주읍으로 승격하였고 1955년 시로 승격된 후 1995년에는 원주군(옛 원성군)과 통합하여 도농복합시가 되었다.

여행과 일 때문에 많이도 들렸던 원주시이지만 앞으로도 몇번인가 더 들려야 할 원주시이기에 조금 더 살펴보고 추억을 남겨본다.

 

이제 치악산 주능선과 원주시를 살펴보고 진행방향을 보니 저 멀리 다음 구간에 올라야할 백운지맥의 주산인 백운산이 웅장한 산세를 자랑하며 봄으로도 당당하게 서 있다.

오래 전 강렬한 비와 짙은 안개속에 천등지맥 분기점과 연계하여 올랐던 추억도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희미한 그 끝자락만 남아 그 추억을 찾아 떠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음 구간에 올라 만나면 또 어떤 추억을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설레이는 시간이다.

 

이제 출발에 앞서 진행 방향의 산줄기를 살펴보니 바로 앞에 1175 무명봉이 우뚝하고 그 우측으로 돌아 저 멀리 1084 무명봉과 좌측으로 돌아 1097봉이 뾰족하게 솟아 있어 어서 오라 손짓하듯 이 산객을 부르고 있다.

이곳 산줄기를 타고 언제 다시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기약은 없지만 아마도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을 담아 조금 더 진행 방향의 산줄기를 살펴보고 그 부드러운 등로를 찾아 떠나는 마음이 조금은 무겁게 남아 있다.

 

조심하며 시명봉을 내려가니 지금까지 보였던 산죽등로가 사라지고 굵은 활엽수와 관목들이 자라고 있는 낙엽 등로가 열려있다.

금새 1175 무명봉에 도착을 해 선답자들이 걸어 놓은 띠지를 살펴보고 출발하니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 바위 등로를 통과하고 여전히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 안부를 통과한다.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올해들어 처음 만나는 노란 복수초가 고개를 내밀며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지만 불어오는 바람은 아직 겨울을 보내기 아쉽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복수초는 우리나라 각처의 숲 속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으로 햇볕이 잘 드는 양지와 습기가 약간 있는 곳에서 자라고 키는 약 15 Cm정도까지 자라며 잎은 3갈래로 갈라지고 끝이 둔하고 털이 없다.

꽃대가 올라와 꽃이 피면 꽃 뒤쪽으로 잎이 전개되기 시작하고 줄기 끝에 한 송이가 달리고 노란색인데 우리나라에는 최근 3종류가 보고되고 있으며 제주도에서 자라는 세복수초와 개복수초 및 복수초가 보고되었다.

오랜 옛날 일본에 안개의 성에 아름다운 여신 구노가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구노를 토룡의 신에게 시집 보내려고 했고 토룡의 신을 좋아하지 않았던 구노는 결혼식 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아버지와 토룡의 신은 사방으로 찾아 헤매다가 며칠 만에 구노를 발견한 아버지는 화가 나 구노를 한 포기 풀로 만들어 버렸고 이듬해 이 풀에서는 구노와 같이 아름답고 가녀린 노란 꽃이 피어났다고 하는데 이 꽃이 바로 복수초였다고 한다.

봄철 하얀 눈을 뚫고 가장 먼저 올라오는 야생화로 봄의 전령이라 여겨질 정도로 이른 봄에 만날 수 있는 야생화이다.

남녘에는 봄꽃인 산수유와 매화가 지고 진달래꽃이 만개해 있으며 이제 벗꽃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데 강원도 1000고지가 넘는 이곳은 이제서야 봄을 알리는 복수초가 막 피어나기 시작하고 있으니 좁은 땅에서도 얼마나 편차가 큰지 알 수 있는 풍경이다.

 

등로는 생각보다 뚜렷하게 잘 나 있고 그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가지가 많은 참나무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1084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쉬어 간다.

지나 온 시명봉은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무명봉은 잡목속에 숨어 희미한 모습만 실루엣처럼 다가온다.

그 사이 기온이 올랐는지 아니면 고도가 약간은 낮아지면서 바람의 온도가 올라갔는지 추위와 한기도 사라지고 다시 많은 땀방울이 흘러 흐르는 땀을 닦으며 진행하기 바쁜 시간이다.

 

다시 참나무가 크게 자라고 있는 부드럽고 뚜렷한 등로를 따라 여유롭게 걸어가니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완만하게 올라 잡목과 가시들이 무성하게 자랐던 흔적이 보이는 무명잡목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1097봉으로 이제 등로는 다시 좌측으로 휘어지며 부드럽게 이어지는데 워낙 뚜렷하게 나 있어 길찾아 진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잡목봉을 지나니 등로에는 바위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바위들을 주능선에 두고 사면 등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진행을 이어가니 앞뒤로 높은 바위 암릉들이 보이는 무명 안부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진행방향과 지나온 등로를 보니 등로 우측으로 거대한 바위 암릉이 올려다 보이고 그 암릉을 우회하며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희미하게 보이고 있다.

 

그렇게 바위 암릉구간을 통과하니 다시 몇개의 나즈막한 무명봉과 안부를 지나 참나무가 보이는 1056미터의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하고 다시 출발한다.

평이한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걸어 전진하니 고사목들이 쓰러져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1048 무명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출입금지 구간이라 걱정을 하였는데 이곳까지 진행한 등로는 너무나 뚜렷하게 잘 나 있어 진행에는 큰 무리가 없어 다행이었다.

 

무명봉을 지나니 등로에는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바스락 거리고 그 음악소리에 맞춰 경쾌한 발걸음을 옮기니 등로에는 다시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조심하며 그 바위 구간을 지나니 다시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 있는 참나무들이 줄지어 늘어 선 1054 무명봉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 더 마시고 출발한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여전히 이어지는 부드러운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이제 바위들이 삐죽삐죽 나와 있는 바위 암릉으로 변하고 있다.

지도와 트랙을 보며 진행을 이어가니 잠시 후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이 되기에 조심하며 걸어가지만 마침 전화가 걸려 오고 전화 통화를 하며 조금 더 걸어가다 통화 후 트랙을 보니 경제적으로 전혀 도움도 되지 않는 알바를 하고 있는 중이다.

다시 바위들이 보이는 등로까지 되돌아 올라 와 자세히 살펴보니 많은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바위 위 알바 후 진행 방향 좌측으로 나부끼고 있는데 왜 이 많은 띠지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직진으로 내려갔는지 의아하기만 한데 아마도 전화 통화를 하면서 지나친 듯 보인다.

 

정상적인 내리막 등로를 찾아 조심하며 진행하니 등로는 급경사 내리막으로 이어져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조심하며 내려가니 등로 좌측 앞으로 신림면쪽 도로와 마을들이 내려다 보이는데 미세먼지로 인해 조망이 제한되어 아쉽기만 하다.

이곳 신림면은 강원도 원주시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신림면 성남리에 있는 성황림을 신적인 숲으로 생각해서 신림이라 하는데 이것이 면 이름의 유래이고 또 다른 설에 의하면 본래 원주군 지역으로서 금창리에 큰 굴이 있으므로 구을파면이라 불리다가 1895년(고종 32)에 가리파면으로 바뀌었으며 일제강점기인 1916년 신림리의 이름을 따서 신림면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광여도, 여지도, 지승, 1872년지방지도, 해동지도에 가리파면과 신림역이 표시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가리파면은 동남쪽으로 처음은 30리이며 끝은 60리이다 라는 기록이 보이며 여지도서에는 가리파면은 일리와 이리의 2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는 내용과 각 리의 위치와 호구수 및 인구수가 수록되어 있다.

1995년 도농통합으로 원주시에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는 신림을 비롯하여 7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우측 아래로 내려가야 할 가리파재를 살펴보지만 나뭇가지에 가려 보이지 않아 아쉽다.

 

등로 우측으로는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백운산이 보이고 그곳으로 이어주는 아래에는 중앙고속도로와 5번 지방도로도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조심해 내려가니 바위 암릉이 나타나고 조심해 그 바위를 우회해 내려가며 통과해 낙엽 수북히 쌓여 있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다시 조심하며 어렵게 내려가니 안부가 보이고 그곳에 도착을 해 지도와 트랙을 보니 이곳을 질아치라 하였는데 좌우측을 아무리 살펴봐도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을 찾기는 어려워 보이는 고개 안부이다.

금대리는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에 있는 리로서 유명한 치악산과 백운산이 겹치는 계곡에 있어 천혜의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도사리, 한여, 회론, 원동 등이 있는데 금대리는 금항아리가 묻혀 있고 금이 묻혀 있는 집의 터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주산물로는 미곡과 함께 복숭아가 있으며 관광지로서 대부분의 상가가 횟집을 경영하고 있다.

또 치악산과 백운산 계곡을 이용한 토봉이 이루어지고 옻나무가 재배되어 전국 제일의 꿀과 옻진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금대리의 명소인 회전터널은 루프식 터널로 또아리굴 또는 금대터널로 불린다.

길이가 1970미터로 또아리 처럼 원형을 그려 한바퀴 돌아 치악산을 뚫고 신림 방면으로 나가다가 다시 치악터널을 맞게 되며 또아리굴 속에는 종유동굴이 있는데 이 속에는 작은 연못과 종유석 및 넓은 광장이 있어 관광지로서 알려져 있다.

질아치에 대한 자료는 찾지 못하고 질아치가 있는 금대리 자료를 찾아 보니 그곳 역시 질아치에 대한 자료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질아치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에는 활엽수 낙엽이 발목 이상 덮혀 있어 여간 미끄럽지 않아 조심스럽게 걸어 진행을 한다.

조심하며 다시 그 낙엽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눈 앞에 바위가 보이고 등로는 우측으로 우회하며 내려가도록 되어 있는데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다 뒤돌아 보니 거대한 바위가 등로를 막고 있어 우측으로 우회하며 걸어 내려온 마루금이다.

 

다시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여간 미끄럽지 않아 조심스럽고 그렇게 한동안 신경을 쓰며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거대한 잣나무 군락지가 나타난다.

잠시 그 잣나무 군락지를 보며 걸어 전진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우측의 잣나무 군락지를 버리고 좌측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이제는 등로 우측으로 잣나무 대신 낙엽송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잠시 낙엽송 군락지를 갈펴보며 무명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다시 고사목들이 썩고 있는 66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추억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약간의 조망이 열려 살펴보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등로가 우측으로 크게 꺽여 이어지고 그곳에는 또 다른 잣나무 군락지가 짧게 나타난다.

잣나무 지대를 지나니 등로 우측에서 사람들 목소리와 마이크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잠시 후 잡풀들이 자랐다 말라죽어 있는 좁은 평지로 내려서니 무명 묘지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 묘지지대를 지나니 곧바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 우측으로 명경사라는 작은 암자의 건물 한채가 올려다 보이는데 살펴보니 명경사이며 자연치유센타 휴라는 시설도 함께하는 듯 보인다.

 

그 명경사에서 강아지 두마리를 만났는데 처음에는 강하게 짖어대기 시작하더니 이 산객이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그 강아지들도 따라 오기 시작하여 한동안 외롭지 않게 동행하는 산행이 되었다.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가파르게 걸어 오르니 545미터의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잠시 배낭 내려 식수 한모금 마시고 있으니 함께 동행하던 강아지들이 흥미를 잃었는지 이곳에서 되돌아 내려가고 이제부터 이 산객 홀로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뼈대만 남아 있는 2층 산불감시초소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마지막 산행을 이어가 본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다시 잣나무 군락지가 펼쳐지고 그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비법정탐방로 출입금지 안내판이 서 있어 미안한 마음으로 재빨리 그 안내판을 지나 내려간다.

조금 더 내려가니 또 다른 출입금지 안내판이 서 있고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드디어 밭 경작지가 보이기 시작하고 바로 그 앞에는 치악재휴게소의 건물 지붕들도 내려다 보이고 있다.

그 밭 경작지 우측 가장자리로 내려가니 묵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임도 우측으로 번호를 확인할 수 없는 송전탑 하나도 서 있다.

 

그 송전탑을 지나 내려가다 임도 좌측을 살펴보니 치악재 휴게소 건물 지붕 넘어 저 멀리 금창리 마을이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햇살에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5번 2차선 포장도로 우측 아래로는 중앙고속도로가 보이고 그렇게 금창리 마을을 확인해 보니 금창리는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에 있는 리로서 동쪽으로는 성남리와 서쪽으로는 가리파고개를 경계로 판부면 금대리와 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구학리와 접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금옥동, 강안, 둔창, 예찬리, 흑천 등이 있는데 금창리에는 원주에서 신림을 연결하는 가리파 고개와 조선시대 둔전의 쌀을 저장하던 창고 및 조선시대 신림역을 관장하던 보안도찰방이 넘어다니던 찰방망이가 있다.

가리파고개를 경계로 원주지역과 기온의 차이가 심하여 동절기에는 눈과 빙판으로 교통의 불편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제 오늘 계획한 산행 날머리인 가리파재가 바로 눈 앞으로 다가와 있어 이렇게 또 하나의 산행을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금창리를 살펴보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다음 구간에 힘들게 올라야 할 마루금이 5번 국도 넘어 빼꼼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지만 어짜피 오늘 올라야 할 등로가 아니기에 그저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올려다 본다.

저곳을 오르먀 뒤돌아 본 오늘 걸어 내려온 마루금은 또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지 궁금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조심해 마지막 비포장 임도를 지나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넓은 치악재휴게소 앞 마당이 보이고 그 앞에는 많지 않은 차량들이 보이고 있다.

 

드디어 가리파재 5번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 도로 우측 옆으로 서 있는 가리파재 이정석을 사진에 담는데 담쟁이 덩굴이 휘감고 있어 여름철에는 이 이정석을 찾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가리파재 일명 치악재는 남대봉에서 남쪽으로 떨어져 내린 안부를 가리파재(가리파고개)라고 부르는데 국도와 루프식 터널이 딸린 중앙선의 치악산 터널이 통과한다.

강원도 원주시 금창리와 판부면 금대리의 경계가 되는 고개로서 가리파동은 가리패라고 하는데 둔창 서부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고 가리파면의 입구에 해당한다.

치악산 남쪽 가리파재 밑에 가리파굴이라 불리는 십리굴이 있고 금대리 원동에서 시작하여 신림면 금창동 둔창까지 이르는 중앙선 철도의 긴 터널 길이가 십리가 된다고 한다.

가리파 고개를 넘어 다니던 장사꾼들이 평안과 안녕을 빌기 위해 고개마루에 성황당을 짓고 성황제를 지냈다고 하며 강원도원주군읍지에는 주 동쪽 30리에 있고 제천과 주천으로 가는 길이다 라고 쓰고 있으며 조선지지자료에는 부흥사면 1리 원동마을에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곳 가리파재 이정석이 있는 5번 포장도로를 건너 버스정류장에서 원주 콜택시를 부르니 채2분도 되지 않아 택시가 도착을 하고 그 택시를 이용해 오늘 산행을 시작한 성남버스종점으로 돌아가니 하루해가 서산으로 기울어가고 있다.

 

택시를 타고 성남분소로 가며 택시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랫동안 택시를 운전하면서 이곳 치악재정상에서 택시에 손님을 태우기는 처음이라며 방금 전 치악재휴게소까지 손님을 태워다 드리고 돌아가는 길에 연락을 받아 다시 손님을 태우고 일을 할 수 있어 행운이라며 좋은 이야기를 해 주신다.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계획했던 백운지맥 첫 구간을 무탈하게 마치고 애마를 몰아 집으로 갈까 아니면 금산으로 갈까 고민하다 남아 있는 장령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금산으로 내려가지만 역시나 도로가 막혀 시간이 걸리고 특히나 지난 주 소개를 받은 금산의 물빛하늘정원 찜질방에 들렸는데 탕도 없이 샤워시설에 관리가 되지 않아 아쉬웠고 더욱이 새벽1시부터 5시까지는 출입도 제한되어 있으며 손남들이 시끄럽게 고스톱을 치고 있어 최악이었다.

 

이제 남아 있는 구간은 가장 빠른 시일 내 다시 올라 더운 계절이 오기 전에 마무리 하고 진행하다 중단된 천등지맥도 완주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90405 백운지맥1구간 성남분소-가리파재.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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