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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보현지맥(낙동·완)

보현지맥 제4구간 사곡령에서 한티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7.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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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북도 의성군의 보현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7년 09월 09일과 10일 (토요 무박 일요일 산행)

산행날씨 : 맑아침까지 짙은 안개였으나 일출 후부터 맑고 무척 무더웠던 산행 날씨

산행온도 영상 16도에서 영상 28도

산행인원 : 총 18명 (칠갑산과 K산악회 종주대 18명)

산행코스 : 사곡령(삼학재, 912번 2차선 포장도로, 355미터 수준점, 평강푸드 이정석)-443 무명봉-철조망-433 무명봉-476.3봉-널부러진 간벌목 지대-

                 갈라지맥 분기점(550미터)-583 무명봉-541 무명봉-묵은 묘지-폐헬기장-555 깡통봉-523 공터봉-폐헬기장-472 무명봉-옷참나무실(비포장

                 임도)-능선진입-간벌된 소나무 등로-무명 안부-일출-523 무명봉-해주오공묘지-550.4(551.7) 삼각점봉-묘지3기-소나무 등로-무명묘지1-

                 522 무명봉-소나무 등로-우측 잣나무 군락지-아침식사-소나무 등로-무명 안부-사과 과수원-낙엽송 지대-511.9 삼각점봉(매곡봉)-

                 유동재(2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465.2봉-묘지들-2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397 무명봉-묘지들-주월재(1차선 포장도로)-비포장 임도-

                 주월산(불출산, 440미터, 산불감시초소와 무인산불감시카메라)-426.5 삼각점봉(삼각점 분실)-426 무명봉-무명안부-398봉-간벌된 소나무 등로-

                 368 무명봉-346 폐묘와 잡목-360.1봉-소나무 등로-무명안부-묘지들-멧돼지 목욕탕-333 무명봉-장티재(79번 2차선 포장도로, 통신탑)-

                 비포장 임도-326 무명봉-348 무명봉-묘지들-무명안부-390.5봉-안부 임도-348 무명봉-351.1 삼각점봉-343 무명봉-338 묘지봉-398

                 무명봉-묘지 위 조망-무명안부-간벌된 소나무 등로-성황당터 안부-산수유 조림지-265 무명봉-마송지대-독도는 우리땅 응원판-

                 황룡고개(1차선 포장도로, 통신탑)-287 무명봉-306.2봉-237 무명봉-240 무명봉-비포장 임도-묘지들-288 무명봉-비포장 임도-능선진입-

                 269 무명봉-아카시아나무 등로-비포장 임도-275 잡풀 묘지-풀라다너스 조림지-264 무명봉-절개지 정상-한티재(914번 2차선 포장도로)-

                 산행종료-의성읍 신선 목욕탕-이영희 마늘 이야기와 의성마늘 한우 식당에서 식사 후 귀경

산행거리 : 아침식사까지는 어둠속에 천천히 여유롭게 걷고 아침식사 후부터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여 25.27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트랙 : 20170910 보현지맥 제4구간 사곡령-한티재.gpx

산행시간 : 무더위와 잡목과 싸우며 조금은 어렵게 진행하여 09시간 47분 (03시 42분에서 13시 30분까지)

교통편 : 종주대 전용 40인승 버스 이용 

보현지맥이란 ???

백두대간의 매봉산(태백)에서 시작한 낙동정맥은 주왕산과 통점재를 지나 가사령에 내려서기전 1.1 Km 지점에서 서쪽으로 큰 산줄기 하나를 가지치고 가사령으로 내려서 침곡산으로 간다.

서쪽으로 가지친 큰 산줄기는 베틀봉(934봉), 면봉산(1121봉), 보현산(1126봉)을 지나 석심산(750.6봉)에 이르러 다시 두갈래로 갈라진다(분기점에서 39.4 Km).

한줄기는 남서진하며 방가산(755.8봉), 화산(828.1봉)과 팔공산(1,192.8봉)을 지나고 가산(901.6봉)에서 북진하여 좌베틀산(369.2봉)과 청화산(700.7봉)을 지나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 새띠마을에 이르는 길이120.7 Km되는 산줄기다. 

석심산(750.6봉)에서 또 한줄기는 북서진하며 어봉산(634.2봉), 갈비봉(672봉), 산두봉(719봉), 구무산(676.3봉), 푯대산천제봉(359봉), 삼표당(443.7봉), 해망산(400봉), 삿갓봉(290.7봉), 골두봉(314.8봉), 곤지산(330봉), 비봉산(579.3봉) 등을 지나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팔공산쪽으로 온 산줄기를 마주보며 끝을내는 길이 127.4 Km가 되는 산줄기다. 

두 산줄기는 위천을 남과 북으로 애워싸고 서로 마주보고 달리다가 다시 위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위천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며 만나게 되는데 위천의 북쪽 울타리가 보현지맥이고 위천의 남쪽 울타리가 팔공지맥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사령에서 석심산과 팔공산 줄기를 팔공기맥(지) 또는 낙동내륙기맥, 금호북기맥등으로 부르고 있는 모양인데 박성태님의 신산경표에는 이를 각각 가사령에서 석심산과 서북쪽 산줄기 전체를 보현지맥으로 석심산에서 남서쪽 팔공산 줄기를 팔공지맥으로 이름을 붙였는데 나도 그렇게 부르는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산세로야 팔공산쪽이 더 크고 유명세도 있지만 우선은 길이가 단 6.7 Km이긴 하지만  긴쪽을 장자로 봐야할 것 같고 석심산에서 북서쪽 산줄기만 따로 떼어내서 이름을 붙이자면 그쪽에서 제일높은산인 산두봉(719봉) 이름을 따야 할텐데 이름없는 산이라 좀 어색하고 잘 알려진 보현산(1124.4봉)의 위상도 감안하여 가사령에서 석심산과 산두봉 줄기를 보현지맥으로 부르고 석심산에서 남서쪽 팔공산 줄기를 팔공지맥으로 부르는게 좋을 듯 싶다. 

보현지맥 북쪽의 물은 용전천, 길안천, 미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보현지맥 남쪽의 물은 위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위천의 남쪽 울타리인 팔공지맥의 북쪽물은 위천으로 흘러들어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낙동강에 합류하고 팔공지맥의 남쪽물은 금호강으로 흘러들다 가산을 지나고부터는 낙동강에 직접 흘러든다.
 

 

 

나즈막한 산줄기를 따라 늦은 무더위속에 잡목과 날파리와 싸우며 어렵게 마무리한 보현에서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어제 보개지맥 첫구간을 다녀 와 사진 정리하고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산행 준비를 하는데 아무래도 오늘 저녁 의성의 보현지맥 제4구간이 신경 쓰여 산행을 포기하고 조금 더 달콤한 잠을 보충한다.

지난주만 해도 기온이 내려가 한기를 느꼈기에 어제도 그런 생각으로 식수를 2리터만 준비를 하였는데 그것이 모자라 많이 고생하였고 또한 나즈막한 산줄기를 걷다 보니 날파리와 지열로 인해 생각보다 산행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이런 날씨에 연 3일 연속 산행은 무리라는 판단에 하루 쉬었는데 탁월한 선택이란 판단이다.

조금 여유있게 지하철을 이용해 장암역에 내리고 산행대장님과 새로 합류한 종주대 한명 그렇게 3명이서 마지막 버스에 탑승하여 자리에 앉자 마자 깊은 꿈나라로 여행을 떠나고 잠시 충주 휴게소에서 일어나 필요한 식수와 먹거리를 조금 더 준비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마지막 휴게소에 도착해 있다.

너무나 달콤하게 자서 그런지 이제부터는 잠도 오지 않아 눈만 감고 쉬었다 한달 전 만났던 사곡령에 도착을 하니 새벽 3시를 넘기고 있고 주위에는 짙은 안개가 껴 약간의 한기를 느끼는 시간이다.

오늘도 새벽 안개로 인해 일시적으로 산행하기 좋은 기온을 보이지만 일출이 시작되면 해발고도가 낮아 급격히 기온이 오르면서 제법 무더울 것 같아 많은 식수와 음료수를 준비하지만 역시나 날파리와 지열로 부터의 공격은 필할 수 없었던 고통스런 하루였다.


사곡령에서 시멘트 옹벽을 넘어 능선으로 오르니 밤새 내린 안개가 풀섶에 내려 앉아 있다가 지나는 종주대의 움직임에 비산하며 등산바지와 등산화를 적시고 있지만 생각보다 시원한 기온으로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해 본다.

큰 오르내림도 없고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산도 없으며 해발고도도 300미터급에서 500미터급을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진행을 하다보니 남길만한 사진도 이야기 거리도 없는 지루한 시간이다.

그래도 어둠이 사라지고 여명이 밝아 오는 시간에 옷참나무실 옆 비포장 임도를 만나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며 임도 좌측을 살펴보니 박무속에서도 사곡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 한달 전 어렵게 통과한 구무산이 드높게 솟아 있으며 그 우측 사곡지 뒷편으로는 새롭게 지맥 반열에 오른 오토지맥이 끊어질 듯 이어지며 조만간 새로운 만남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하늘에선 두꺼운 구름을 뚫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려는 붉은 기운이 보이지만 제대로 된 일출을 만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상쾌한 기분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출발하니 소나무 군락지가 반겨주며 지루한 산행에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던 잡목들이 발목을 잡으며 어렵게 진행이 되고 매곡봉이란 이정판이 걸려있는 511.9 삼각점봉을 지나 등로 좌측 아래로 지나는 임도를 따라도 좋은데 굳이 마루금을 고집하여 등산바지와 등산화를 흥건히 적신 다음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유동재 직전의 절개지 정상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구무산에서 이어져 온 오토지맥 마루금이 한껏 자세를 낮췄다가 다시 늑두산과 그 줄기들을 일으켜 세운 산줄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온다.

그 뒷쪽으로는 선암지맥이라 생각되는 산줄기들이 희미한 실루엣으로 다가 온다.

언젠가는 다시 올라야 할 산줄기들이기에 가슴속 깊이 그 풍경을 간직하고 절개지 좌측의 잡풀 능선을 따라 조심하며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유동재에 무탈하게 안착을 한다.


약간의 잡목과 소나무 등로를 따라 보이는 것 하나 없이 지루한 산행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덧 산행 후반부에 접어 들고 바로 눈 앞에 장티재로 통하는 79번 2차선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그 넘어로 신감리와 오상리 마을들이 보이고 그 뒤로는 멋진 산 하나가 보이는데 살펴보니 오늘 하루 종일 등로 좌측으로 보였던 오토지맥에서 액간 떨어져 있는 비;봉산과 그 우측으로 금성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름도 생소하여 듣지도 못하여던 산인데 지맥 반열에 들었으니 언젠가는 꼭 한번 올라야 할 산이기에 저 오토지맥 마루금 역시 가슴속에 그 모습을 잘 간직해 보는 시간이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한달 전 만났던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공정리와 청송군 현서면 화목리를 연결하는 사곡령에 도착을 해 산행 준비 후 버스 밖으로 나오니 짙은 안개가 끼어 있어 약간의 추위를 느끼기에 준비한 방풍 자켓을 입고 주위 풍경을 둘러 본다.

평강푸드라는 커다란 이정석이 보이고 그 고갯마루 건너편에는 작은 사각정자와 수준점이 있는데 수준점에는 이곳의 해발고도가 355미터로 표기되어 있다.

사곡령(355미터)은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공정리와 청송군 현서면 화목리를 연결하는 고개로서 고개가 위치한 사곡면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사곡령은 북동쪽의 440미터 고지와 남서쪽의 430미터 고지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낮은 안부로 높이 355미터로서 사곡령의 남동쪽 곡부는 길안천으로 유입되는 소하천의 최상류부이며 북서쪽 곡부는 남대천의 최상류부이다. 사곡령 북서쪽에는 사곡지가 축조되어 있어 사곡면 일대의 농경지에 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사곡령 일대의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 하양층군의 춘산층으로 퇴적암인데 춘산층은 사암, 세일, 응회암 및 역암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퇴적암은 침식 저항력이 약하여 높이가 낮은 산지를 이루는데 사곡령 주변 지역의 능선부는 대부분 400미터 내외의 산지로 높지 않으나 산지의 경사가 매우 급한 것이 특징이다.
천연기념물 제323호로 지정된 희귀한 매의 일종인 붉은배새매가 사곡령 일대에 서식하고 있고 식생은 소나무와 참나무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오가피와 같은 약초와 다래와 머루 덩굴이 등산로 주변 지역에서 간간이 발견된다.

사곡령에서 공정리로 이어지는 구간은 산지 경사가 급하여 도로가 구불구불한 형태로 이어져 있고 사곡령을 통과하는 도로는 지방도 912호선이며 의성사곡로이다.

이 길을 통해 사곡면 주민들 특히 공정리 주민들은 화목 5일장을 이용했고 화목 주민들도 지금은 폐쇄되고 없지만 사곡장과 의성읍 5일장을 왕래하며 고추, 마늘 등을 시장에 내다팔고 생필품을 샀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곳에 호랑이가 출몰한다는 소문이 있어 해가 지는 한밤중에는 인적이 끊기곤 했다.
사곡댐이 건설되면서 사곡면 공정 1리 일대 일부 마을들이 수몰되었으며 우회 도로가 개설되었다.

또한 1980년대 후반 사곡령이 왕복 2차로로 확장되면서 경상북도 내륙과 포항 등 동해안을 잇는 주요 길목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사곡령 주변에는 구무산과 같은 산지가 분포하고 있어 화목재에서 구무산, 사곡령을 잇는 등산로가 발달해 있으며 일부 구간에서는 포장이 되어 있고 능선을 따라 이어지기 때문에 길이 대체로 평탄하다.

이곳 사곡령을 지도에는 삼학재로 표기한 경우도 보인다.

오늘은 혼자가 아닌 함께 진행하는 산행이다 보니 앞에 서서 이슬을 털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조금 더 여유를 부리며 사진 몇장 남기고 중간 그룹으로 출발을 하며 보현지맥 제 4구간을 시작한다.



사곡령에서 시멘트 옹벽을 올라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타고 조금은 가파르게 오르니 금새 443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종주대를 보내고 홀로 남아 포인트를 확인하다 보니 제일 후미가 되었다.

후미대장에게 알리고 다시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그물망이 보이는데 아마도 약초를 재배하고 있는 곳은 아닐까 추측이 가능한 그물망이다.

다시 짙은 안개를 헤치며 걸어 진행을 하니 나즈막한 안부와 무명봉을 지나 참나무 한그루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433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사초가 깔려있고 참나무 한그루가 정상에 서 있는 지도 상 476.3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많은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참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는 곳을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등로에는 간벌 후 널부러진 소나무 가지들이 널려있어 정상적인 등로를 찾아 진행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주고 있다.

그래도 방향만 보고 진행을 하니 널부러진 간벌목들이 줄어들면서 정상저긴 등로를 만나고 한동안 완만하게 이어지는 지루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드디어 갈라지맥 분기점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씩 남기고 시원한 물 한모금으로 모마름을 달래고 출발한다.

다시 한번 더 내려 와 올라야 할 갈라지맥이기에 찾아 보니 갈라지맥은 낙동정맥 고라산에서 갈라져 나온 보현지맥이 보현산, 노귀재, 문봉산, 구무산을 넘고 삼학재에서 올라 선 의성군 사곡면과 옥산면 및 청송군 현서면이 갈라지는 삼면봉(550)에서 동쪽으로 산줄기를 나누는데 이 산줄기는 동으로는 길안천을, 서로는 미천을 나누며 북진하다가 반변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안동시 정상동 영가대교 아래에서 덕산지맥을 마주보며 낙동강으로 스며드는 42.2 Km의 산줄기다

전반적으로 북진하는 갈라지맥은 동으로 구암지맥과의 사이에 길안천을 흘려 보내고 서로는 보현지맥과의 사이에 미천을 흘려 낙동강으로 보낸다.

오늘 등로 우측으로 흐르는 갈라지맥을 살펴보려고 하였으나 잡목이 우거져 보이는 것이 없어 정확한 산줄기를 확인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겨진 시간이었다.


갈라지맥 분기점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우측으로 갈리는 갈라지맥 마루금을 버리고 좌측으로 휘어지는 보현지맥 마루금을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제법 굵은 참나무들이 등로에 많이 보인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이제 간간히 소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우측으로 590.2봉으로 갈 수 있는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해 좌측으로 꺽여 내려가는 정상 등로를 확인하고 진행을 해 본다.

선답자들이 산행 주의 지점으로 확인딘 곳이기에 다시 한번 더 확인을 하고 출발하는 지점이기도 하였다.


좌측으로 꺽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제법 굵은 참나무들이 많이 보이고 곧이어 541 무명봉을 지나 잔디가 자라지 않는 묘지 한기를 통과한다.

자손들이 잘 찾지도 못할 것 같고 관리도 되지 않는 이런 묘지를 쓴다는 것이 무의미해지기 시작하기에 이제부터는 후손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자주 찾을 수 있는 장례문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해 보는 시간이다.

별 특징 없는 활엽수 등로를 따라 한동안 걸어가니 소주병이 나뒹굴고 있는 묵은 헬기장이라 생각되는 곳을 지나 깡통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555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다시 지루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한동안 내려가니 아름 없는 무명 안부를 지나고 다시 등로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벽소령 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띠지가 헤드렌턴 불빛에 반사되어 길라잡이를 자처하는 등로를 따르니 다시 잘려진 나뭇토막들이 널부러져 있고 한쪽에는 제법 굵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523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제 등로 우측으로는 여명이 밝아 오려는지 하늘이 붉게 변하기 시작한다.


다시 내려가니 잡풀들이 자라고 있는 묘지 한기를 지나고 잡목이 태클을 거는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와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폐 헬기장이라 생각되는 공터에 도착을 한다.

지도에 보면 헬기장 표시가 자주 나타나는데 어둠속에 진행하다 보니 이미 용도 폐기가 되었는지 제대로 된 헬기장은 보이지 않고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진 공터같은 헬기장만 보일 뿐이다.


묵은 폐 헬기장을 지나 여전히 특징 없는 활엽수와 소나무들 그리고 잡목들로 이뤄진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하니 서서히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하고 등로 우측의 하늘에선 금새라도 햇살이 튀어 나올 듯 붉게 변하고 있어 양해를 구하고 조금 일찍 선두로 나가 빠르게 걸어가며 혹시 일출을 볼 수 있는 장소가 있을까 찾아 보지만 소나무와 잡목들이 가득찬 나즈막한 해발고도를 가진 산속이다 보니 제대로 된 일출 구경은 어렵겠다는 판단으로 종주대를 기다렸다 다시 함께 진행을 한다.

잠시 후 커다란 활엽수 두그루가 서 있는 47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시원한 식수 한모금 마셔 본다.


다시 잡목들이 성가시게 굴고 있는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잠시 후 잘 관리되고 있는 비포장 임도에 도착을 하고 선두권 종주대를 기다렸다 아침식사를 할것인지 아니면 조금 더 진행 후 먹을 것인지 난상토론 후 조금 더 진행하다 아침식사를 하기로 하고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한다.

지도에는 이곳 우측 아래에 옷참나무실 임도가 표기되어 있는데 이 임도가 아닐까 생각되는 지점이다.

참나무실은 의성군 옥산면 오류리에 있는데 참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그러면 옷참나무실은 옷참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마을인가 모르겠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옷참나무를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옷참나무실 임도를 따라 진행하다 임도 좌측을 보니 여명이 밝아 오며 벅무속에 사곡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 한달 전 참으로 어렵게 다녀 온 구무산이 우뚝 솟아 있고 사곡지 우측으로는 조만간 다시 걸어야 할 오토지맥의 나즈막한 산줄기가 끊어질 듯 이어지며 늑두산이 흐르고 있다.

그 우측 저 멀리 보여야 할 오토지맥의 주산인 오토산은 산줄기에 막혀 보이지 않지만 오늘 중 한번쯤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다 우측 능선으로 올라야 하는데 일부 종주대는 계속 비포장 임도를 따라 진행하려고 해 지도와 트랙을 살펴보니 정상 보현지맥과는 만나지 않을 듯 하여 모두 능선으로 이끌며 올라 잡풀들을 헤치며 진행하니 이곳 역시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등로 찾기도 쉽지 않고 진행에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도 조심하며 잡목을 헤치고 멋진 소나무 숲을 따라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일출이 시작되는데 시간을 보니 일출은 이미 한참 전에 시작되었지만 구름과 안개에 가려 이제서야 햇살이 잡목을 뚫고 등로를 비추기 시작한다.

잡목 사이로 잠시 일출을 보고 가파르게 오르니 우측 능선을 버리고 좌측 내리막 등로로 진행해야 할 장소에 벗나무 하나가 서 있고 선답자들의 띠지가 매달려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고 안부 같지 않은 안부를 지나 평이하게 걸어가니 잘 관리되지 않은 해주오공 묘지 한기가 눈에 들어 온다.

그 묘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551.7(어느 지도에는 550.4미터)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음 종주대에게 정상을 양보한다.

정상은 삼각점 주위에 잡목이 우거져 두세명이 서 있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사진 한장씩 남기고는 곧바로 정상을 떠나는 형국이다.

 

551.7 삼각점봉을 출발하니 다시 소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안부같지 않은 무명안부를 지나 관리되지 않는 묘지 3기를 통과한다.

묘지를 지나 다시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등로를 타고 내려갔다 오르니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면서 이제 완전히 어둠이 사라지고 밝은 아침을 맞이한다.


잠시 후 봉분이 없는 묘지 한기를 지나고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라 안부도 통과한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을 하니 소나무 등로에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우측으로 536.5봉 가는 등로도 희미하게 나 있어 주의가 필요한 지점처럼 보인다.

이곳에서는 우측 536.5봉 가는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지는 등로를 따라 내려가며 진행을 해야 올바른 맥 잇기 산행이 된다.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에는 썩어가는 고사목 소나무들이 널려있고 잠시 후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는데 그 한가운데 ㄷ등로를 따라 걸어가는 시간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잠시 더 그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는 이제 잣나무 군락지도 짧게 나타나고 곧이어 완만하게 오르다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저 멀리 종주대가 모여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30여분 함께 맛난 식사를 즐기고 이제부터는 자기 자신의 속도에 맞춰 자유 산행이 주워지기에 아침식사 후 조금 일찍 길을 나서 본다.


여전히 이어지는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잠시 후 소나무 아래 잡목들이 커가고 그 잡목들로 인해 길찾고 진행하는데 조금은 애를 먹고 있다.

그래ㅔ도 지도와 트랙을 이용해 정상 등로를 찾아 진행하니 갑자기 눈 앞에 작은 물 웅덩이가 나타나는데 살펴보니 멧도ㅑ지들의 목욕탕처럼 보이는 곳이다.

멧돼지들의 식흔이 널려있고 목욕 후 물을 털어 낸 자국이 소나무에 선명한 그곳을 지나 다시 잡풀들이 자라고 있는 묘지 몇기를 통과하니 등로 우측으로 공압을 이용해 짐승과 새들을 쫒는 공기총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사과 과수원이 나타난다.

주위에는 그물망이 쳐져 있는데 살펴보니 벌써 몇개의 사과에는 새들이 쪼아 먹어 상품 가치가 떨어진 사과들도 보인다.


사과 과수원 좌측의 사면 등로를 따르니 사과 과수원에서 떨어진 사과들이 여러곳에서 나뒹굴고 어렵게 그 사면 등로를 통과하니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에는 낙엽송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나타나는 잡목과 활엽수를 지나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금새 511.9 삼각점봉에 도착을 하는데 선답자들이 이곳을 매곡봉이란 종이 코팅지를 달아 놨다.

이곳은 올라오기 전에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 진행하는 사면 등로가 발달되어 있어 일부러 찾지 않으면 오르기 쉽지 않은 봉우리이기에 오늘도 선두에서 몇명만 이 삼각점을 확인하고 출발하는 듯 보인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지금과는 달리 수많은 날파리와 하루살이들이 달려들어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몇몇 종주대는 마치 양봉업자들이 쓰고 일을 하는 듯한 가림망을 쓰고 진행을 하는데 상당히 효과가 있을 듯 하여 이 산객도 한번 구입해 보려고 한다.


511.9 삼각점부터는 지나다닌 사람들의 흔적이 현저히 줄어들어 잡목과 잡풀들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 있다.

진행에 상당히 애를 먹으며 쇄기도 두어번 ㅚ이며 어렵게 진행을 하니 무명묘지 한기가 보이고 잠시 후 비포장 임도처럼 보이는 곳으로 내려서는데 이미 오래전 그 기능을 상실했는지 등로에는 키가 큰 잡목과 잡풀들이 자라면서 이란 등로보다 더 어렵게 진행을 해 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눈 앞에는 가파른 바위 낭떨어지 절개지가 나타나고 사진 몇장 남기고 좌측 묵은 밭과 잡목이 우거진 사면 등로를 찾아 어렵게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유등재에 도착을 하니 좌측 임도로 우회한 종주대들은 벌써 이곳을 지나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고 있다.

지도를 보면 이곳을 유등재라 하였는데 사곡면 매곡리에는 유등재와 관련이 있는 지명이 보이지 않아 더욱 금궁증만 커져 간다.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 진행을 하니 도로 좌측으로 한달 전 지났던 구무산과 그곳에서 분기한 오토지맥 마루금 상 늑두산에서 비봉산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보여 다음에 올랐을 때 더욱 기대가 되는 곳으로 남겨진다.

조금 더 걸어가다 도로 좌측을 살펴보니 구무산 정상부가 제법 가깝게 다가와 있고 그 앞 좌측으로 오늘 이 산객이 걸었던  보현지맥 마루금이 제법 그럴듯한 산줄기를 그려 보이며 이어져 있다.


그렇게 한동안 지루하게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도로 좌측의 오토지맥을 조망하며 걸어가니 도로가 좌측으로 휘어져 가는 곳 우측으로 칡넝쿨이 우거진 능선 진입로가 보인다.

모든 종주대가 편안하게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고 이 산객 홀로 우측 칡넝쿨이 우거진 능선으로 들어가니 초반 몇발자국 지나 평이한 등로가 희미하게 열려 있다.

특별한 봉우리가 아니면 이 산객도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을 했을텐데 지도를 보니 우측 능선상에 465.2봉이 표기가 ㄷ회어 있어 사진 한장 담기 위해 나선 길이다.

잠시 후 잡목들이 우거진 곳에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고 그곳이 바로 465.2봉 이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평이하게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2차선 포장도로로 내려간다.


잡목을 헤치고 무명 묘지 몇기를 지나 내려가니 다시 방금 전 헤어졌던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고 그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 본다.

잠시 걸어 진행을 하다 박무속에 도로 좌측을 살펴 보니 구무산이 조금 더 멀어지며 그 우측으로 오토지맥을 길게 늘어트린 풍경이 눈에 들어 와 사진 한장 더 남겨 본다.

좌측의 사곡지를 지나 중앙부의 두리뭉실한 봉우리들은 오토지맥 상 늑두산과 그 줄기들로서 우측의 비봉산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도로를 따라 잠시 더 걸어가다 도로 우측에 낙석주의 표지판이 서 있는 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들어가니 묵은 비포장 임도가 열려있는데 오랫동안 방치되었는지 잡목과 잡풀들이 자라면서 일반 등로보다 더 험하다.

어렵게 잡목을 헤치고 능선으로 올라서니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잠시 후 중앙부에 397 무명봉이 보인다.

이곳도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주월재 방향으로 잡목과 잡풀들을 헤치며 완만하게 내려가 본다.


묘지들이 보이고 주월재가 가까워지는 등로 좌측으로 조망이 살짝 열려 다가가 보니 그토록 보여주지 않았던 오토산의 뾰족봉이 제대로 그 모습을 드러내며 다음을 기약하고 있다.

그 오토산 우측으로도 이어지는 오토지맥 산줄기가 끊어질 듯 이어지는 풍경으로 이 산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조망을 즐긴 후 내려가니 1차선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하고 그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몇발자국 걸어 나가니 또 다른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통신탑이 보이는 주월재에 도착을 한다.

주월재에 관한 자료를 찾지 못해 주월재가 속한 마을을 ㄹ확인해 보니 양지리라는 마을이다.

양지리의 양지는 본래 경상북도 의성군 내사면의 지역으로 양지골 또는 양지마라고 불려졌던 마을로서 양지바른 곳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 마을인 중평은 귀평과 월평의 중간에 위치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귀평은 1598년 이자남이 개척한 마을로 뒷산에 거북이를 닮은 바위가 있어서 그렇게 불렀다 한다.

구눌마을은 조선 후기 정호공이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본래 살던 마을에서 소년의 죽음이 잦아 어느 노승에게 알아보니 앞산의 혈맥이 죽은 송장을 묶어 놓은 형상과 같아 변을 당한다고 하여 이곳으로 옮겨왔고 이로써 생명을 구하게 되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 한다.

월평은 마을 뒷산에 주월사라는 절이 있고 앞에 들이 있는데 주월사의 월과 들의 평을 합쳐 월평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또한 주월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그 주월사에 대ㅔ한 자료를 찾아보니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양지리에 있는 주월사는 통일 신라 신문왕 때 창건된 고찰이나 주월사가 언제 폐사되었고 현재의 사찰이 언제 중건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신문왕 때 현재의 주월사 위쪽 불출산(주월산)에 천지라는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에서 세 분의 부처가 솟아나서(주지 스님의 증언에 의하면 세 분의 부처는 은혜사, 고운사, 주월사에 각각 모셨다고 함) 이곳에 절을 짓기로 결정하였고 주변의 목재를 베어 절을 지을 준비를 해 두었는데 어느 날 하룻밤 사이에 목재가 없어져서 찾아다닌 결과 현재의 절터에 목재가 운반되어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피로에 지쳐 쓰러져 있는 수십 마리의 토끼가 있는 것으로 보아 토끼가 목재를 이곳으로 운반하였으며 이곳이 명당이라 여기고 의상대사가 주월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주월사에 토끼상이 있었는데 한때 절을 비우면서 고운사로 옮겼다고 한다.

사찰 창건이 완성된 날 밤 하늘의 달이 움직이지 않고 몇 시간을 멈춰 있다가 움직여서 사찰의 이름을 달이 머무는 절이라 하여 주월사로 하였다고 하며 주월사는 통일 신라 신문왕 때 창건되어서 조선 초기 사찰 정리시기에 폐사되었다가 18세기 경에 주월사로 재창건 되었다.

그러나 사세가 기울어지면서 19세기 말엽이나 20세기 초에 주월암으로 사격이 떨어졌다가 1994년에 중수를 하면서 주월사로 승격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능선을 고집하다 보니 함께 걸어 진행하던 종주대들은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벌써 주월재을 지나 주월산으로 향하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전봇대 옆으로 나 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진행을 하다 트랙을 잘못 읽어 좌측 능선으로 들어가 고생을 한 다음 다시 비포장 임도와 만나 주월산으로 향한다.

거친 잡풀들이 사람 키만큼 자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무인산불감시카메라와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주월산 정상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잠시 헤어졌던 종주대를 다시 만난다.

주월사가 위치하고 있는 주월산(440미터)은 불출산이라고도 하는데 산세가 웅장한 정상에 청용봉과 사리봉이 함께하여 부처님이 나셨다고 불출산이라 하고 부처님의 사리가 있는 사리봉이 있어 이 산에 주월사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주월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전하나 한국 5000년사에서는 신라 법흥왕 2년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창건 이후의 연혁은 자세히 전하지 않으며 1996년 대웅전을 수리할 때 상량문이 나와 연혁의 일부를 알 수 있었는데 상량문에 따르면 1688(숙종 14) 화재로 대웅전이 소실되어 1692년에 중건하였고 1819(순조 19) 웅파 스님의 제자 동명천오 스님이 다시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또한 용화전 상량문에 따르면 1821년에 용화전을 중수하였다
근대에 와서는 1938년 백동허 주지가 삼성각을 새로 지었으며 최근에는 1980년에 요사를 1985년에 심검당과 석탑 및 석등을 세웠으며 1996년 대웅전을 수리하였고 이어서 1997년 삼성각과 용화전을 중수하며 오늘에 이른다.

사진 한장 남기고 잠시 산불감시초소로 오르니 생각보다 멋진 풍경과 조망들이 펼쳐져 있어 사진 몇장 더 남기고 떠나기로 한다.


제일 먼저 남쪽 방향을 살펴보니 좌측으로 구무산이 우뚝하고 그 우측으로 낮게 이어진 산줄기를 지나 오토지맥 상 늑두산이 다시 아름답게 놓여 있다.

약간의 박무가 있지만 그 모습만큼은 제대로 보여주기에 이름 한번 불러주기에 거침이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오토지맥 넘어 선암지맥도 찾아 보지만 오늘은 박무로 인해 보이는 것은 오토지맥이 한계 시야인 듯 하다.

그래도 이렇게 바라보며 그 이름 한번 불러 줄 수 있음에 감사하며 다음에 저 늑두산에 올라 이곳 보현지맥과 보현지맥 넘어로 보일 갈라지맥을 살펴보며 오늘을 회상하고 이름 한번 불러 볼 수 있으면 족할 것이다.


그 늑두산 우측으로는 뾰족하게 올라 온 비봉산과 그 우측으로 흐르는 금성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저 멀리에는 오토지맥의 주산인 오토산이 뾰족하게 올라 와 있는 풍경도 보인다.

약간의 박무는 있지만 새벽 안개속에 기대하지 못했던 오토지맥들을 만나며 무더위에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은 벌써 잊혀져 가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더 그곳 주월산 불출봉 정상에 있는 산불감시초소에서 주위 조망과 풍경을 즐기고 종주대가 다 떠난 텅빈 등로로 내려 와 내려 놓은 배낭 둘러메고 다시 칡넝쿨이 우거진 방향의 등로를 따라 출발한다.

 

늘 홀로 다니다 이렇게 함께하는 산행을 하니 지독한 칡넝쿨도 미리 뚫어 놔 진행에 상당한 도움을 받고 있다.

칡넝쿨을 지나니 다시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여유롭게 그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잡목과 잡풀속에 426.5 삼각점봉이 나타나는데 보기에는 전혀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상의 봉우리이다.

그곳에서 선답자가 걸어 놓은 종이코팅지의 426.5란 이정표를 사진에 남기고 잡목속을 헤치며 삼각점을 찾아 보지만 도저히 찾지 못해 그대로 출발을 해 보는데 아마도 손실된 삼각점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다.


삼각점을 찾지 못해 아쉬운 마음으로 426.5봉을 출발하니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는데 그 소나무 아래에는 제법 키가 큰 잡목들이 자라면서 진행에 약간의 방해를 주고 있다.

잡목들을 헤치며 걸어 진행을 하니 봉우리 같지 않은 은선상 426 무명봉을 넘고 잡목이 조금 더 거칠어진 마루금을 따라 무명안부도 통과한다.

무명안부를 지나 오르니 다시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많은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있는 곳을 지나자마자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398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무명봉을 지나니 멋진 소나무 등로는 그대로 인데 그 아래 자라고 있던 잡목들이 잠시 사라져 아주 여유로운 진행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등로에 널부러져 등로 찾기와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도 주능선을 타고 진행을 하니 등로 찾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고 잠시 후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난 묘지 한기를 통과한다.

묘지를 지나니 다시 잡목들의 저항이 시작되고 잠시 후 소나무 한그루에 하얀색 페인트를 칠해 놓은 368 무명봉에 도착을 해 긴 한숨을 내쉬며 잠시 쉬어 간다.


무명봉을 지나 다시 이어지는 잡목 구간을 어렵게 뚫고 걸어 진행을 하니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낙엽 안부를 지나는데 주위에는 멧돼지들이 만들어 놓은 식흔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그곳을 지나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잡목과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며 묘지의 원래 모습을 사라지게 만든 무명 묘지 한기가 있는 346 무명봉을 지나는데 조만간 그 흔적도 사라질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잡목과 소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따르니 싸리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능선상 360.1봉에 도착을 해 포인트를 확인하고 물 한모금 마시고 출발한다.


다시 소나무와 그 아래 키큰 싸리나무들이 자라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만나는데 그곳에도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잠시 그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등로를 따라 좁은 공터를 지나고 다시 펼쳐진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안부 지나 무명 묘지 2기를 다시 통과한다.

또 다른 묘지 한기를 지나고 무명봉을 넘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다시 소나무 등로가 나타나며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등로를 따라 올라다 내려가기를 반복하니 갑자기 눈 앞에 커다란 물 웅덩이가 보인다.

그 주위에도 많은 멧돼지 발자국들이 보이는데 멧돼지들의 목욕탕으로 사용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물 웅덩이를 지나 잡목을 헤치고 진행하니 급경사 내리막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후 평지 같은 333 무명봉을 통과한다.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 소나무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그곳으로 가 잠시 살펴보니 장티재로 이어지는 79번 2차선 포장도로 넘어 저 멀리 오토지맥의 늑두산과 비봉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앞 우측으로는 진행해야 할 보현지맥의 나즈막한 마루금이 길게 뻗어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조망을 즐기고 내려가니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를 만나 진행되고 잠시 후 칡넝쿨을 헤치고 내려가니 금새 79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장티재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잔 남기며 물 한모금 마신다.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실업리와 사곡면 신감리를 연결하는 고개로서 장티재는 북쪽의 390미터 고지와 남동쪽의 380미터 고지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낮은 안부이며 높이는 315미터이다.

장티재의 동쪽 계곡은 미천의 발원지이며 도곡지와 같은 저수지가 축조되어 있고 서쪽 계곡은 남대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소하천의 발원지이며 대감지와 같은 소규모 저수지들이 골짜기마다 축조되어 있다.
장티재는 옥산면 실업 1리와 실업 2리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길로서 옥산면 주민 대부분은 지방도 914호이 지나는 점곡재와 한티재를 넘어 의성읍 5일장을 이용했으나 실업리 주민들은 한티재나 점곡재까지 가기에는 길이 멀고 험하였다.

장티재는 상대적으로 의성으로 가는 지름길이었으므로 이를 주로 이용한 것이다.
1960
년대에 실업리 마을 주민들은 재배한 고추와 약초, 광주리와 소쿠리 종류 등을 등짐이나 지게를 지고 서너 시간을 걸어 의성읍 5일장에 내다 팔고 점심을 먹은 후에는 곧장 생선이나 고기, 생필품 등을 구매하여 돌아왔다.

당시 옥산면 실업리 주민들의 생활은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으나 현재는 사과 등 환금 작물을 재배하여 부촌으로 성장하였다.
현재 장티재는 군도 79호선(신감 옥산로)이 지나가고 있으며 옥산면 방향인 북동쪽에는 도로가 급커브여서 미끄럼 주의와 급커브 경고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또한 장티재 일대는 높이가 비슷한 지역이 200미터 가량 이어지고 있어서 이 고개를 지나는 도로는 산지 사면을 거의 깎지 않고 건설되어 있으며 도로 양쪽에는 시멘트로 된 1미터 내외의 낮은 옹벽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 에서 잠시 쉬고 출발하려고 하였지만 너무나 무더워 사진 몇장 남기고 곧바로 도로 좌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조금 더 진행한 후 쉬어 가기로 한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잠시 좋은 등로가 이어지다가 곧바로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등로로 변하고 있다.

억새지대를 지나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펼쳐지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에는 다시 키 작은 잡목들이 주의를 요하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오르니 384 무명봉에 도착을 해 선답자들이 걸어 놓은 띠지들을 살펴 본다.

많은 선답자들이 직접 만나지는 못하였지만 온라인 상에서 인사를 나눴던 띠지들이고 산익회 역시 많은 도움을 받았던 띠지들이기에 최근에 만났던 기분으로 고마움을 표하고 다시 출발한다.


잡목들이 자라고 있지만 등로 찾기는 어렵지 않은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하니 잡풀이 자라고 있는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고 다시 소나무와 잡목들이 함께 공존하는 등로를 만난다.

잠시 후 본봉이 사라진 듯한 무명 묘지를 지나고 낟엽진 안부를 통과하는데 이곳도 어김없이 멧돼지들의 식흔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묘지 한기가 보이고 다시 소나무 등로를 만나 여유롭게 걸어 진행하니 390.5봉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잠시 우측으로 올라 390.5봉에 올라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갈림삼거리로 되돌아 내려 와 종주대와 함께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어 간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봉분 위에도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사라지는 묘지 한기를 지나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다시 묘지 한기를 더 만난다.

구불 구불 하늘을 향해 삶의 굴곡을 알려주는 듯한 소나무 등로를 따라 무명 안부도 통과하고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안부도 지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도를 살펴보니 이무런 표식도 없는 무명 안부인데 우측으로 내려가면 구암리라는 마을이 있는 곳이다.


우측에 임도가 지나는 무명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려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걸어 본다.

큰 저항 없이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348 무명봉을 통과하고 좌측 사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다 보니 우측 위로 능선 등로가 있는 듯 하여 지도와 트랙을 보니 우측 능선에 351.1 삼각점봉이 보인다.

우측 잡목 능선을 헤치고 오르니 잡목과 잡풀 사이로 글자 표식이 보이지 않는 삼각점과 그 옆 커다란 나뭇가지에 대구거품일행들이라는 산악회에서 보현기맥 352봉이란 이정판을 걸어 놨다.

아무 생각 없이 좌측 우회 등로를 타고 걸어가다 이 삼각점을 놓칠 뻔 하여 한시름 놓고 잠시 물 한모금 마시고 출발한다.


삼각점봉을 지나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343 무명봉을 넘고 묘지 몇기를 지나는데 상석까지 있는 묘지이지만 이제는 관리가 되지 않아 조만간 묘지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할 것 같다는 느낌으로 통과한다.

다시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몇기의 묘지들 위에는 커다란 소나무와 잡목들이 자라면서 묘지로서의 모습을 완전히 상실한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조금 더 걸어가니 무명묘지 한기와 그 묘지 우측으로 검정막이 쳐져 있는 338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의 검정막은 그 이유를 모르겠는데 아마도 산약초를 재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추측을 해 본다.

다시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을 하니 커다란 참나무 하나가 고사목이 되어 등로 한가운데 서 있어 다가가 보니 밑둥에 칼로 껍질을 벗겨 놔 자랄 수 없도록 만들어 놨다.

병이 들어 그렇다면 이해가 되겠지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아쉬운 풍경이다.


껍잘을 벗겨 말라 죽은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곳을 지나 빠르게 진행하니 다시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된 등로와 만나 그곳을 타고 걸어 진행한다.

봉우리 같지 않은 308 무명봉에 도착을 해 직진의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진행을 해야되는 길주의 지점을 지나 다시 이어지는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묘지 몇기를 지나 완만하게 오른다.

주 능선에 올라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저 멀리 좌측의 비봉산에서 금성산 그리고 우측의 오토산이라 생각되는 오토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조망을 즐기고 다시 진행하니 키 작은 소나무와 칡넝쿨이 우거진 무명안부를 지나고 다시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한다.

잠시 더 오르니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등로에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상당한 방해를 받고 있지만 무탈하게 통과한 후 벌목된 장소에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곳에 도착을 해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황룡리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사진 몇장 더 남겨 본다.

황룡리는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 속하는 리로서 황룡이라는 명칭 유래에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대곡용보에는 청룡과 황룡이 살았는데 두 용이 크게 싸움을 하였고 마침 지나가던 검객이 이를 보고 궁지에 몰린 황룡을 구하기 위해 청룡의 꼬리를 칼로 친다는 것이 황룡의 목을 쳐 죽였다.

그 후 이 마을 사람들이 황룡의 혼을 달래기 위해 제사를 지내고 마을 이름을 황룡이라 붙였다고 한다.
자연 마을인 동평은 1831년 평택 임씨가 처음으로 마을을 개척한 곳이라 신리라고 부르다 마을 앞에 양지바른 들판이 있어 동편이라 하다가 후에 동평이라고 불렀다.

본래 의성군 점곡면의 지역으로 황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의성군 점곡면 황룡동이 되었고 1988 5 1일 군 조례 제1225호에 의해 황룡동을 황룡리로 개칭하였다.

북쪽 한티재 아래에 남북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황룡 1리에는 구사지 저수지에서 옥곡천이 발원하여 흐르면서 황룡들을 형성하고 있다.

북쪽으로 올라가면 황룡 2리 마을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옥곡천으로 흘러 드는 작은 지류가 흘러 물이 풍부하다.



잡풀들이 우거진 벌목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 좌측으로 거대한 느티나무 한그루가 보이는데 살펴보니 예전에 성황당터 같은 느낌이 나는 곳이다.

등로는 그 성황당터 같은 커다란 느티나무 한그루를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빙돌아 진행하도록 이어지고 있다.

성황당은 서낭당의 다른 말로서 서낭신을 모신 당집이나 제단을 말하며 지방에 따라 할미당, 천황당, 국사당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서낭신은 토지와 마을을 수호하는 신으로 최근까지 전국에 널리 퍼져 있었는데 서낭당은 보통 신수에 잡석을 쌓은 돌무더기나 신수에 당집이 복합되어 있는 형태로 고개 마루, 길옆, 부락입구, 사찰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서낭당은 서낭신의 봉안처인 동시에 거소가 되는데 이 신은 천신과 산신의 복합체로 보여진다.

서낭신의 신앙에는 내세관이나 인간 정신세계의 이상 같은 것이 없고 현실적인 일상생활의 문제가 중심을 이룬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액, 질병, 재해, 호환 등을 막아주는 부락수호와 인간의 현실적인 생계문제 해결에 목적이 있다.

신수에는 아이들의 장수를 위해 걸어 놓는 헝겊조각, 상인의 장사를 잘되게 해 달라고 걸어 놓는 짚신 짝, 신랑신부가 새살림을 차릴 때 부모계의 가신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신부가 자기 옷을 찢어서 걸어 놓는 색헝겊조각 등이 있다.

또 통행인이 길을 안전하게 가기 위해 돌을 주워서 돌무더기 위에 던지거나 침을 뱉는데 이는 길가에 배회하는 악령의 피해를 막기 위함으로 이처럼 서낭당은 현실적인 문제를 기원하는 곳이다.

정초에는 부인들이 간단한 제물을 차려 놓고 가정의 평안을 빌기도 하는데 동해안 별신굿이나 강릉단오제는 규모가 큰 서낭제의 일종이다.


성황당터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를 돌아 오르니 잡풀들이 우거진 밭이 나타나는데 그곳에는 산수유가 식재되어 있고 붉게 변해가는 산수유가 보인다.

그 산수유 지대를 지나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소나무와 그 아래 잡풀들이 공존하는 오르막 등로가 보이고 그 등로를 따라 올라 본다.

잠시 후 265 무명봉을 지나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벌초가 잘 되어 있는 묘지 2기가 있는 능선에 도착을 해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오토지맥의 비봉산과 금성산 줄기와 그 우측으로 오토산이 지척으로 다가와 있다.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오토지맥 마루금을 조망하고 다시 잡목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에는 마송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종주대들이 그 마송을 채취하는 동안 이 산객은 진행하던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좌측으로 휘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잠시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조망이 펼쳐지고 잠시 들어가 살펴본다.

나즈막한 오토지맥이 길게 이어지고 그 우측으로 비봉산이 솟아 있는 모습이 박무속에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그렇게 조망을 즐기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예전에 공터였던 장소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은 이미 칡넝쿨이 우거지고 억새들이 자라면서 임도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채 종주대의 발걸음만 붙잡고 늘어지고 있다.

어렵게 그 칡넝쿨이 우거진 안부를 지나 잡풀이 우거진 등로를 따르니 다시 등로는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로 변하고 있다.

잠시 오르니 얼마 전까지 멧돼지들이 목욕 후 주위 나무에 비볐던 흔적이 남아 있는 등로를 지나고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닉을 사용하는 산님이 응원 종이 코팅지를 달아 놨다.


응원판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와 잡풀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 묘지인지도 분간하기 힘든 무명 묘지 한기를 통과한다.

그곳을 지나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금새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황룡고개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 더 마셔본다.

황룡고개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니 찾을 수 없었는데 혹시 그 고갯마루 우측 아래로 황룡리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 마을이름에서 유래된 이름은 아닐까 추측을 해 보는 시간이다.

이곳 황룡고개는 우측의 의성군 점곡면 황룡리와 좌측의 의성읍 치성리를 이어주는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이다.


도로를 건너 우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잠시 오르니 등로는 다시 직진의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포장 임도 우측으로 보이는 고추밭에는 가뭄이 얼마나 심했는지 고추들이 말라 죽어가고 있다.

잠시 능선으로 올라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묘지들이 보이고 그곳에서 등로 우측 아래를 살펴보니 저 멀리 방금 전 만났다 헤어진 1차선 포장도로 아래 황룡리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황룡리 마을 뒷편으로는 언젠가 올라야 할 또 다른 갈라지맥 마루금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조망을 즐기고 잠시 더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나뭇가지에 벌집이 하나 보이는데 싸납지 않은 벌인데 무슨 벌인지 모르겠다.

장수말벌이나 땅벌도 아닌 것이 자주 봤던 벌이 아니기에 살펴보니 벌집도 길게 일자로 지어져 새롭게 보이는 벌의 종류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벌집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287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조금은 가파르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굵은 땀방울을 흘리다 보니 길주의 지점인 선답자들의 많은 띠지가 걸려 있는 306.2봉에 도착을 해 직진의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크게 꺽어 정상 마루금을 확인하고 천천히 걸어 내려가 본다.


소나무 등로를 타고 평이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평야지대가 내려다 보이고 곧이어 지독한 잡목과 칡넝쿨 지대를 지나 플라티너스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장소를 통과한다.

그곳을 지나니 밤송이들이 많이 떨어져 등로를 가득 채우고 있는 237 무명봉에 오르고 좌측으로 꺽어 걸어가니 다시 지독한 칡넝쿨이 앞을 가로막고 등로를 터주질 않는다.

어렵게 그 칡넝쿨 지대를 뚫고 진행하니 가지가 세갈래로 갈라진 소나무가 서 있는 240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무명봉을 지나니 잡풀이 무성하게 자란 묘지 한기를 만나고 잠시 지독한 잡목과 잡풀지대를 통과하니 보상이라도 해 주듯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는데 그 임도는 잠시 후 만나는 묘지지대에서 끝이 나고 다시 등로는 평이한 등로로 변한다.

아마도 그 좋은 비포장 임도는 묘지를 만들며 새로 조성된 임도가 아니였나 추측을 해 본다.


묘지 지대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점점 기온이 올라가는지 무더위에 헐떡거리고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진행하다 보니 온 몸과 등산복은 이미 흥건히 젖어 조금만 눌러 짜내도 빨래를 짜듯 물기가 한주먹씩 빠져 나온다.

그래도 멈출 수 없어 계속 오르니 288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이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이 되고 있어 길주의 지점이다.


이제 간간이 보이는 선답자들의 띠지를 보며 소나무와 키 작은 잡풀들이 자라는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저 멀리 차량들이 지나다니는 소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에는 잡목들과 칡넝쿨이 우거져 진행에 상당항 어려움을 느끼다 보니 잠시 후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곳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임도 건너 능선으로 오르며 마지막 힘을 내 본다.

 

능선으로 오르니 잡ㅍ ㅜㄹ들이 우거져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고 잠시 후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269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다시 짧게 이어지는 아카시아 가시지대를 통과하니 넓은 비포장 임도가 반겨주고 한동안 그 좋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 본다.


둔덕을 넘고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지독한 잡풀이 뒤덮고 있는 묘지 한기를 만나고 좌측으로 꺽어 진행하니 그곳은 능선과 나무가 식재되어 있는 경계선이다.

하지만 그 경계선이 오래되면서 잡목과 잡풀들이 자라면서 일반 등로보다 더 어렵게 진행되는 등로로 변해 버렸다.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풀라다너스 나무 식재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니 또 다른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묘지를 지나 일반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소나무와 잡풀이 공존하는 등로를 따르니 마지막 264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몇발자국 걸어 나가니 바로 발 아래로는 꽤 높은 절개지가 나타나고 그 아래 저 멀리에는 오늘 이 산객이 타고 온 버스가 내려다 보인다.

바로 오늘 산행 날머리인 한티재로서 그 2차선 포장도로 건너로는 다음 구간 올라야 할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 한티재도 최근에 새로 개설된 도로와 지형이 많이 변해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와는 달라진 풍경을 확인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다.


절개지 우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수로 옆 능선을 타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드디어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한티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도로는 최근에 새로 포장된 듯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다.

한티재는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중리리와 점곡면 황룡리를 연결하는 고개로서 한티재는 북쪽의 300미터 고지와 남쪽의 280미터 고지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낮은 안부로 높이는 235미터이다.
한티재를 중심으로 동쪽 계곡은 옥곡천으로 유입되는 소하천의 발원지이며 서쪽 계곡은 남대천의 소지류 하천의 발원지이다.

옥곡천은 북류하여 점곡면 면소재지에서 미천에 합류하는 하천으로 한티재는 미천과 남대천을 구분하는 분수계에 해당된다.
한티재와 주변 지역의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 하양층군의 점곡층인데 점곡층은 중회색 내지 녹회색 셰일, 사암, 세력암 및 녹색 응회암으로 구성되어 있는 퇴적암이다.

침식에 대한 저항력이 낮은 퇴적암이기 때문에 이 지역은 높이가 250에서 400미터 내외의 낮은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다.
한티재 주변에는 청호반새, 황조롱이, 청딱따구리, 두더지, 다람쥐 등이 서식하고 있다.

경상북도 의성읍 중리리와 점곡면 황룡리 사이에 있는 한티재는 지방도 914호선이 지나가고 있으며 도로명은 의성 길안로로서 지방도 914호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산지를 일부 깎아 도로 양 옆에는 기반암이 노출되어 있다.
한티재는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의성군 점곡면 주민들과 의성군 옥산면 구성리, 안동시 길안면 주민들이 의성읍 5일장에 갈 때 반드시 이용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 한티재에는 포장이 되지 않은 흙길과 고갯마루에서 계곡을 통해 내려오는 오솔길이 있었다.

소달구지를 끄는 사람들은 주로 포장되지 않은 길을 이용하였고 지게나 봇짐을 진 사람들은 계곡으로 나 있는 오솔길을 이용했다.
현재 한티재는 구미와 군위 등 경상북도 내륙 지역의 주민들이 청송이나 영양, 동해안 등지로 이동할 때 주로 이용되고 있으며 특히 주말이나 단풍철에는 청송 주왕산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간다.

또한 한티재 북쪽으로 청애산, 천제봉 등의 산지가 이어져 있어 등산객들도 많이 지나다니는데 고갯마루의 도로 북쪽에는 청애산, 천제봉, 도토지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다.

배낭 정리를 하고 시원한 탁배기 한잔으로 목마름을 달랜 후 후미를 기다렸다 가까운 의성읍으로 나간다.




의성읍으로 나와 신선목욕탕에서 조금은 저렴하게 가격 흥정을 한 후 샤워하고 나오니 이제서야 본 모습으로 돌아오며 살 맛 나는 시간이 되었다.

목욕탕에서 나와 의성읍내를 거리를 따라 오늘 뒷풀이가 예정되어 있는 의성마늘 이야기와 한우라는 식당으로 이동해 맛난 식사로 하루를 마감하니 또 한구간의 보현지맥 산행이 추억이 되어 간다.

이제 보현지맥도 세번만 더 내려오면 마무리가 될 것이기에 가능하면 함께하는 종주대와 같이 마무리하고 새로운 산줄기를 찾아야 될 것 같다.


장암에 도착을 해 기분 좋게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는데 커다란 비박 배낭을 메고 탑승한 취객 한사람이 등산객 전체를 욕보이는 사태에 격분하여 한마디하고 돌아 오는 시간이 참으로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그 커다란 비박 배낭을 메고 술에 취해 많은 사람들이 승차해 있는 지하철에서 혼자 자리 세개를 차지하고 지하철 바닥에 눕다시피 하며 비틀거리는 모습과 스스로 산악인이라며 큰소리 치는 모습에서 다시 한번 산에 오르는 기본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같이 산에 오르는 한 사람으로서 다시는 배낭을 메고 술에 취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지하철과 버스에서 그런 추태를 보이지 않기를 바라며 길었던 하루를 마감해 본다.

다음 주에는 산친구와 함께 진행하다 중단된 영월지맥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기대가 크고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70910 보현지맥 제4구간 사곡령-한티재.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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