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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봉수지맥(금북·완)

봉수지맥 제1구간 분기점에서 숫고개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6.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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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남도 홍성군과 청양군 봉수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6년 04월 10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박무와 미세먼지로 조망이 없었지만 약간은 무더위를 느겼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상 06도에서 영상 18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광성3리 버스정류장-광천천 다리통과-광성리 광제마을-보호수 느티나무-기도원-비포장 임도-밭 경작지-능선진입-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 갈림삼거리 이정표(광성주차장 3.0 Km, 등산로 정상 3.0 Km, 내포문화숲길 백제부흥군길12 안내판)-능선진입-공덕고개 이정표(오서산

                 정상 2.7 Km, 광성주차장 3.3 Km), 오서산 등산로 안내도, 벤취쉼터2-소나무 등로-395.1봉-봉수지맥 분기점(금북정맥 홍성구간 안내도,

                 사각탁자)-잡목지대-343 삼각점봉(보령420)-바위 무명봉-갈림삼거리 이정표(수정저수지 0.6 Km, 오서산자연휴양림 3.5 Km)-바위와

                 잡목구간-274 무명봉-나무계단-무명묘지1기-나무계단-기러기재 이정표(주류성 4.4 Km와 신풍리 0.9 Km, 공덕고개 2.2 Km, 신라저수지),

                 기러기재 설명판과 시멘트 포장도로-나무계단-통나무계단-잡목구간-269.5 바위봉-무명묘지1기-자작나무 조림지-통나무 계단-비포장 임도-

                 갈림사거리 이정목(대현리 4.17 Km, 기러기재 1.86 Km)-182 무명봉-백제부흥군길18이정목 안부(대현리 3.84 Km, 기러기재 2.19 Km)-

                 통나무 계단-66번 송전탑-갈림삼거리-밤나무 등로-잣나무 등로-224 잡목봉-소나무 등로-백제부흥군길(대현리 2.98 Km, 기러기재 3.05 Km)-

                 261 삼각점봉(보령 304)-비포장 임도-소나무 등로-비포장 임도-철문(옥계리 홍성군 재산 경고판)-백제부흥군길(대현리 2.48 Km,

                 기러기재 3.55 Km)-68번 송전탑-69번 송전탑-백제부흥군길(대현리 1.95 Km, 기러기재 4.08 Km)-한우목장-상송리 갈림삼거리

                 이정표(주류성 1.95 Km, 목장 0.65 Km, 상송리 0.3 Km)-193 소나무봉-70번 송전탑-216.1봉(백제부흥군길24 이정목 대현리 1.36 Km,

                 기러기재 4.67 Km과 벤취쉼터3)-잡목지대-밤나무 지대-무명묘지지대-155 무명봉-넓은 공터-무명안부-절개지-숫고개(96번 2차선

                 포장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07.96 Km (봉수지맥 산행 약 06.00 Km와 광성리에서 분기점까지 접속구간 약 01.96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봄꽃을 즐기며 여유롭게 진행하여 03간 05분 (14시 48부터 17시 54분까)

교통편 : 애마와 대중교통을 이용해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귀경하였음

             옆지기 애마를 이용해 광성3리 버스정류장 도착

             숫고개에서 히치 하이킹으로 광천읍 버스터미널까지 이동

             광천역에서 19:02분 용산발 열차로 귀경 - 10,400.- 원

산행횟수와 총 산행거리 : 2016-20 : 358.49 Km

봉수지맥이란 ???

안성 칠장산(492.4봉) 남쪽 300미터지점에서 분기한 금북정맥이 남서진하며 서운산(547봉), 성거산(579봉), 봉수산(525봉)등을 일구며 150여 Km를 달려와 백월산(560봉)에서 한줄기는 남진하며 성태산(624봉), 월명산(544봉), 오석산(127봉)등을 일구며 70 Km를 달려가 용당정에 이르며 신산경표의 호서정맥을 만들고 또 한줄기는 북서진하여 다시 130 Km를 가면서 오서산(791봉), 가야산(678봉), 지령산(220봉)등을 일구고 안흥해안에 몸을 담그는 금북정맥을 낳는다. 

봉수지맥은 이 분기점인 백월산(560봉)에서 북쪽으로 10.9 Km 떨어진 오서산(791봉)에서 동북으로 약 3.2 Km 떨어진 공덕고개 남쪽의 370미터봉에서 금북정맥은 서북으로 가고 봉수지맥은 동북으로 갈라진다.

동북으로 올라가며 초롱산(339봉), 봉수산(483봉), 팔봉산(207.4봉)등을 지나서 예산군 신암면 하평리에서 삽교천에 몸을 담그며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로 약 47.5 Km되고 지맥 서쪽으로 떨어진물은 삽교천 본류에 동쪽으로 떨어진 물은 무한천에 몸을 담갔다가 삽교천에 합류하여 아산만으로 들어간다.

지나는 산들중 제일 높은산인 봉수산(483봉)의 이름을 따서 봉수지맥이라 부르며 무한천의 오른쪽 물막이가 된다.

지맥 서쪽의 삽교천은 길이63.9 Km에 유역면적 1649.87 Km2에 아산시 인주면이 종점이고 지맥 우측의 무한천은 길이 53.9 Km에 유역면적 467.54 Km2에 예산군 신암면이 종점이다.
발원지의 길이로 치자면 무한천이 더 긴데 유역면적이 삽교천이 더 커서 무한천이 삽교천의 지류가 되는 모양이다.

오서산은 까마귀와 까치가 많아서 오서산이라 부르며 까마귀 오자에 살서자를 쓰는데 일부지도는 오루산(다락루산) 혹은 조루산, 조서산으로 표기한것도 있는데 이는 까마귀오자를 새조자로 살서자를 다락루자로 잘못 표기한 것이다.




고향 근처에 있는 또 다른 산줄기를 찾아 추억을 담았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하지정맥 수술 후 약간의 걱정과 고민이 있었는데 어제 오랫만에 옆지기와 삼성산을 둘러보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생각보다 다리 상태가 좋아 옆지기와 아이들이 종교생활을 위해 집을 나간 사이 간단하게 산행 준비 후 옆지기가 귀가하자마자 다시 고향 시골집으로 향한다.

겨울동안 얼었던 수도가 풀리며 고무 패킹이 터지며 물이 새고 있기에 수리도 하고 부모님 산소에 들려 어제 다 하지 못한 잔디로 입혀야 하기 때문이다.

약간 밀리는 도로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가 집 수리를 하고 도로 공사를 하고 있는 인부의 잠자리로 이용하기 위한 계약을 한 후 뒷산으로 올라 부모님 산소를 정리하고 나니 벌써 점심시간을 지나고 있다.

간단히 정리하고 집을 나서 광천으로 가 국밥으로 점심을 먹은 후 광성리로 가 옆지기를 서울로 보내고 홀로 산행 준비하여 광성리 광제마을을 통해 또 다른 맥 잇기 산행을 해 보는 시간이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숫고개까지나마 걸어 갈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도 되는 시간이다.

다만 아직은 괜찮은 다리의 상태가 악화되지 않고 정상적인 산행이 가능하길 간절히 바래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더 더워 벌써 무더위를 느끼며 천천히 걸어 진행을 하니 공덕고개를 지나 봉수지맥 분기점과 기러기재를 통과하고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진달래와 산벗꽃 등로를 따라 즐기는 시간도 가져 본다.

가끔은 지독한 잡목과 가시등로가 보이지만 짧은 구간을 지나면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멋진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니 생각보다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그렇게 진행을 해 224 잡목봉에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소나무가 식재되어 있는 한쪽에 잡목이 우가진 봉우리가 보이고 고곳으로 올라 잠시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억새로 유명한 오서산이 우뚝하고 그 앞으로 오늘 이 산객이 어렵게 올라 걸어 온 봉수지맥 마루금이 너무나 환상의 풍경을 만들며 펼쳐져 있다.

늘 새로운 등로에 대한 설레임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시간을 지나면 이토록 황홀한 풍경을 만날 수 있으니 아무리 큰 고통이 기다린다 해도 또 이렇게 오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으니 그 좋았던 시골집도 자꾸만 폐허처럼 변해가는 모습이 아쉬웠는데 마침 시골 마을 앞에 도로 공사가 벌어지고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인부들이 여관에서 잠을 자는 것이 너무나 비싸고 아깝다고 어찌 알았는지 비어있는 시골집에서 기거를 했으면 하는 소식이다.

서로에게 윈윈할 수 있는 계약을 끝내고 뒷산으로 올라 부모님 산소의 비어 있는 곳에 잔디를 새로 심고 정리하다 보니 오늘도 또 점심을 지나고 있다.

간단하게 새워 후 옆지기의 애마를 몰아 봉수지맥 산행 들머리인 홍성군 장곡면 광성리에 도착을 하니 벌써 봄을 지나 성하의 계절로 달려가는지 무더위를 느끼는 시간이다.

이곳에서 옆지기를 서울로 올려 보내고 홀로 산행 준비 후 도로 좌측의 광천천 위에 설치된 작은 다리를 건너 광제마을로 들어서며 또 다른 맥 잇기 산행을 시작해 보는 시간이다.

이곳 광성리는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에 있는 본면의 남부에 위치하며 오서산의 동사면에 자리한 산간마을로서 자연마을로는 광제, 성중, 동살미, 홈다리 등이 있는데 광제는 광성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넓은 벌판이 되어 붙은 이름이다.
성중은 고려 때 여양현의 여양산성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며 앞에 소나무 정자 넷이 있어 사송정이라고도 부르고 동살미는 작은 동산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광제와 성중의 이름을 따서 광성이라는 명칭이 생겼으며 특산물로 쪽파, 청정쌀 등이 있다.


광성3리 주차장과 팔각정자가 있는 곳에서 내려 직진의 서쪽 방향으로 오서산과 금북정맥 마루금을 바라본 후 좌측 광천천 위에 놓여있는 작은 다리를 건너 시멘트 도로를 따라 광성리 공제마을로 올라가니 마을 전체가 울긋불긋한 봄꽃으로 단장을 하고 있고 이제는 겨울의 두꺼운 외투를 벗어 던지고 푸릇한 봄빛이 완연한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민가를 지나 오르니 금새 보호수인 커다란 느티나무를 지나고 밭 경작지를 통과하니 철문이 열려있는 기도원 지대로 접어 드는데 그 우측 앞으로는 여전히 오서산과 금북정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벗꽃이 만개한 비포장 임도를 따라 커다란 기도원을 통과하니 멋진 소나무 지대를 지나 다시 드넓은 밭과 논 경작지가 펼쳐져 있다.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올려다 보니 그곳에도 연두빛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그 우측으로는 여전히 오서산과 금북정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가슴속에 쌓이는 시간이다.

오서산은 충청남도 보령시의 청소면과 청라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791미터로서 보령시와 홍성군의 경계를 이루기도 한다.
오서산자연휴양림이 이곳에 조성되어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오서산이 기록되어 있고 광천의 근원이 둘인데 그 가운데 하나가 오서산이라는 내용도 수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에는 오서산이 결성현과 경계를 형성하고 산의 남쪽으로는 현재의 청라면에 해당하는 청라동이 위치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서라는 이름은 예로부터 이 산에 까마귀와 까치가 많이 살아 까마귀(오)의 보금자리(서)라는 의미에서 유래하였다.
해동지도, 1872년지방지도, 팔도군현지도 등에 오서산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광여도, 여지도서, 조선지도에서는 또 다른 한자인 오서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잠시 더 오르니 임도 우측으로 이제는 선홍빛이 선명한 도화가 곱게 피어 있어 산객을 발길을 잡아 끌고 있다.


임도 좌측으로는 그물망이 쳐진 밭 경작지가 나타나는데 아마도 천적이 없어 개체수가 급격하게 늘어 난 멧돼지와 고라니의 출입을 막기 위한 그물망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오르니 임도 양쪽으로는 이제 연두빛을 지나 초록의 봄이 오고 있음을 몸으로 알려주고 있다.

생각보다 무더운 날씨로 인해 벌써 온몸에선 굵은 땀방울이 흘러 내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오르니 이제 논과 밭 경작지를 지나 능선으로 접어 드는데 등로는 여전히 넓은 비포장 임도로 이어져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비포장 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임도 양쪽으로 벗꽃이 만개해 있고 그 벗꽃 사이로 초록으로 변해가는 봄빛이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오며 이 산객의 마음을 힐링시키고 있다.

오르면 오를수록 더욱 짙푸른 봄빛이 펼쳐지고 잠시 후 비포장 임도가 시멘트 포장도로로 변하고 있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눈 앞에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 한쪽에는 내포문화숲길 아래 백제부흥군길12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지나온 방향으로는 광성주차장이 우측으로는 오서산 정상 방향과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내포는 충남 서북부 가야산 주변을 통칭하는 지역으로 중국으로부터 선진불교가 전래된 지역과 천주교의 성지이고 서민문화의 전승지이며 서해안 천혜의 자연경관을 보유한 지역이다.
보령, 서산, 홍성, 예산, 태안, 당진 등 955 Km2에 이르는 내포문화권이 얼마 전 지역균형개발법에 의한 전국 최초의 특정지역으로 지정되어 국가차원의 지원 아래 체계적인 개발이 가능케 되었다.
내포문화권 개발은 많은 자금이 투입되는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정신문화창달, 문화유적정비, 관광휴양시설, 기반시설 확충 등 4개 부문으로 나누어 무형문화재 전수관 건립, 홍주성 복원, 내포보부상촌 조성, 가야산순환도로 건설 등 총 46개 사업이 계획되어 있다.
내포는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10고을을 말하는데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은데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200여리쯤에 가야산이 있으며 서쪽은 큰 바다이고 북쪽은 경기도 바닷가 고을과 큰 못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동쪽은 큰 들판이고 남쪽은 오서산에 가려져 있는데 가야산에서부터 이어져 온 맥으로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10고을을 내포라 한다고 언급되어 있다.
가야산 앞뒤의 10고을은 홍주, 결성, 해미, 서산, 태안, 덕산, 예산, 신창, 면천, 당진 등이며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는 내포지역을 홍주목(지금의 홍성군)이 관활하던 충남 서천에서 경기도 평택까지의 20여 고을을 지칭하기도 했다.
이런 기로들에 의하면 내포지역은 충청도 지역 중에서 서해안을 끼고 있는 대부분의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포문화숲길과 백제부흥군길이란 자료는 차후 다시 한번 더 설명을 해 보기로 한다.

이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직진의 가파른 능선 오르막 등로를 타고 금북정맥 상 공덕고개 방향으로 치고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내포문화숲길의 백제부흥군길 이정표가 서 있는 비포장 임도에서 직진의 가파른 오르막 능선으로 오르니 더욱 짙푸른 등로가 펼쳐지고 그렇게 굵은 땀방울을 등로에 뿌리며 걸어 올라 바위지대를 지난다.

오르다 보니 등로 옆으로 개별꽃과 보라빛 제비꽃이 활짝 웃으며 이 산객을 반겨주고 그 봄꽃들의 환영을 받으며 오르니 깊은 골짜기 형태를 보이는 금북정맥 상 공덕고개에 도착을 해 이정표와 벤취쉼터들을 사진에 담아 본다.

공덕고개는 충청남도 청양군의 화성면 화암리에 위치한 고개로서 공덕고개는 청양군과 홍성군의 경계를 형성하는 오서산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가로지르는 고개에 해당한다.
공덕재라고도 불리며 이 고개의 동남사면에는 공덕 마을이 존재하는데 즉 고개의 이름에서 마을의 이름도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산객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청양과 접한 곳이기에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금북정맥과 시간이다.


그 공덕고개에서 우측의 오서산 방향을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좌측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른다.

이곳은 금북정맥 마루금으로서 몇 년 전 홀로 걸으며 오늘 걷고 있는 등로를 반대 방향으로 걸었던 추억을 떠올려 보는 순간이다.

아직도 머릿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는 금북정맥 산행이다.

금북정맥은 경기도 안성시 칠장산(492미터)에서 태안반도의 안흥진까지 금강의 서북쪽을 지나는 산줄기의 옛 이름으로 길이는 약 240 Km이며 한반도 13정맥의 하나이다.
한남금북정맥의 끝인 칠장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칠현산(516미터), 청룡산(400미터), 성거산(579미터), 차령, 광덕산(699미터), 차유령, 국사봉 등 충남을 가로질러 청양의 백월산(395미터)에 이르고 여기에서 다시 서북으로 뻗어 오서산(790미터), 보개산(274미터), 월산(395미터), 수덕산(495미터), 가야산(678미터)에 이르러 다시 서쪽으로 뻗어 팔봉산(362미터), 백화산(284미터), 지령산(218미터)를 지나 안흥진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바위지대를 지나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첫번째 주능선에 올라 느긋하게 걸어 보는데 등로 양옆으로는 분홍빛 진달래가 만개하여 또 다른 마루금을 만들고 있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395.1봉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 지도를 잘못 이해하여 봉수지맥 분기점이란 이정판을 찾아 이리저리 해헤매게 된다.


그 395.1봉이 봉수지맥 분기점으로 잘못 이해를 해 한동안 머물며 이곳저곳을 찾아 보지만 기대를 했던 준.희님이 붙여 놓은 봉수지맥 분기점이란 이정판을 찾지 못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 우측 직진의 희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뚜렷한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한다.

잠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분홍빛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며 반겨주는데 등로 우측으로는 청양군 화성면 들녘을 지나 저 멀리 백월산이 솟구쳐 올라 있는 금북정맥 마루금이 옛 추억을 상기시키며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화성면은 충청남도 청양군의 서부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홍성군과 남쪽으로는 보령시와 각각 경계를 형성하는 면으로 면의 사방이 구릉성 산지로 둘러 싸이고 이들 산지의 여맥이 저산성 구릉지를 이룬다.
면내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반계천의 유역에 소규모의 저지가 분포하는데 현재 산정리, 장계리, 화강리 등 12개의 법정리를 관할한다.
면은 홍주군에 속하였던 곳으로 홍주 남쪽 45리 지점의 용곡역에 화성부곡이 소재하고 있어 그 마을의 이름을 따서 화성면이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면은 원래 화성의 부곡이며 홍주목의 남쪽으로 처음은 50리이고 끝은 60리라고 기록되어 있고 흥구향면은 본래 흥구의 옛 고을이었는데 처음과 끝이 화성면과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 조선지도, 1872년지방지도에서는 흥구향면이 화성면보다 더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양 및 보령과 경계를 형성한다.
1872년지방지도에서는 이 일대에 용곡장과 합천점을 표기하였으며 조선지도 등에서는 창이 표기되어 있고 1914년에 홍주군 화성면과 흥구향면이 통합되어 화성면이 되었으며 군에 편입되었다.


등로 우측으로 청양군 화성면 들판을 지나 금북정맥 마루금ㄴ을 살펴보며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더욱 붉게 만개된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금새 금북정맥 홍성구간 안내판과 사각탁자 그리고 금북정맥 이정목이 설치죄어 있는 봉수지맥 분기점에 도착을 해 준.희님이 붙여 놓은 이정판을 사진에 담아 본다.

예전에 금북정맥 산행 시에는 만나지 못했던 많은 인공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는 풍경에 기억이 가물거리고 있다.

이제 마음속으로 안전 산행을 빌며 새로운 마음으로 봉수지맥 첫 구간을 출발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곳 봉수지맥 분기점에서 출발하기에 앞서 금북정맥 홍성구간 안내판 앞에서 셀카 놀이를 하면서 기념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우측 잡복 사이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해야하는데 좌측 뚜렷한 금북정맥 등로를 따라 잠시 걸어 내려가다 알바를 인지하고 다시 뒤돌아 올라와 어렵게 그 잡목를 헤치고 우측 능선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하니 짧은 구간 잡목지대를 지나 조금은 뚜렷한 등로와 만나 걸어 내려간다.

이제 또 새로운 지맥 마루금을 따라 걸어 보는 출발선에 서서 새롭게 다짐을 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알바를 하다 올라오며 뒤돌아 보니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무명봉과 343 삼각점봉이 저 멀리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등로 옆으로 피어 있는 하얀 제비꽃도 사진에 담으며 잡목을 헤치고 걸어 내려가니 잡목과 가시나무가 자라고 있는 비포장 임도를 만나 걸어 내려간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안부를 지나는데 그곳에도 초록빛 봄이 오고 있음을 온 몸으로 알려주고 있다.


안부같지 않은 안부를 지나 진행을 하는데 거대한 나무들 아래로 초록잎을 피워 낸 봄빛이 산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이곳 봉수지맥은 내포문화숲길 중 백제부흥군길과 많은 부분이 중첩되고 있는데 그 백제부흥군길과 중첩되는 부분은 등로가 잘 정비되어 있지만 그렇지 못한 구간은 이렇게 잡목과 가시나무가 우거져 걸어 진행기에도 어려움이 있는 등로이다.

그 잡목과 가시나무를 헤치며 조심스럽게 걸어 진행한다.


커다란 소나무 아래 자라고 있는 잡목이 섞여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솔갈비가 부드럽게 깔려있고 잠시 후 돌구님 띠지를 만나는데 요즈음 지맥 산행을 하다 가장 자주 만나는 띠지중 하나이다.

이렇게 지맥 산행을 하다보면 우연히 또 마루금에서 만나 인사라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 보는 시간이다.

약간의 잡목이 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보령420이란 343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보며 잠시 쉬어 간다.


다만 그곳 343 삼각점봉에는 잡목이 우거져 보이는 조망과 풍경이 없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등로로 복귀해 몇 발자국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커다란 바위들이 보인다.

그 바위를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우회하며 걸어가니 봄꽃들이 피어 있는 뚜렷한 등로가 열려있는데 지나다닌 흔적들이 별로 없어 잡목들이 자라면서 그 등로를 침범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갑자기 눈 앞에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지나온 방향으로 오서산자연휴양림과 우측 아래 방향으로 수정저수지 방향과 거리 표시가 표기된 이정표이다.

이곳에서 우측 수정저수지 방향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 직진의 잡목이 우거진 희미한 등로를 찾아 어렵게 진행을 하는 시간이다.


어렵게 좌측 잡목을 헤치고 걸어가니 등로 옆에 카다란 바위들이 보이고 곧이어 등로 우측으로 잡목이 사라지며 화성들녘과 그 뒤로 우뚝한 백월산 좌측으로 금북정맥 마루금이 멋지게 펼쳐져 있다.

그 좌측 끝자락에 천마산이 보이는데 그 천마산 좌측 옆으로 이 산객이 태어나고 어릴적 살았던 고향땅도 보일듯 다가와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금북정맥 좌측 끝자락으로 청양을 살펴보지만 청양은 능선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다.


한동안 그렇게 잡목과 싸움도 하고 멋진 조망도 즐기며 걸어가니 쓰러진 고목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이제 잡목 사이로 올라야 할 마루금을 살펴보고 천천히 그 고사목이 쓰러진 무명봉을 출발하니 아름다운 산벗꽃 나무를 지나 생각지도 못했던 나무 계단을 타고 편안하게 걸어 내려가 본다.

이 나무계단은 오래전 설치되었는지 이제 썩어 보수가 필요할 정도로 보이는데 왜 이곳에 이런 멋진 나무계단이 설치되었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봉수지맥 때문은 아닌듯 하고 아마도 내포문화숲길 조성을하면서 만들어진 신설 등로인데 통행하는 사람들이 적어 다시 폐쇄되다 시피한 등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이제부터 기러기재 지나 올라야 할 등로가 보이는데 그곳 오르막 등로에도 통나무계단이 설치된 모습이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계단 좌측으로 잘 정비된 커다란 봉분을 가지고 있는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다시 나무계단을 타고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이는 안부가 빤히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나무계단을 타고 걸어가니 드디어 기러기재에 도착을 한다.


기러기재에는 이정표와 기러기재 설명판 그리고 야생동물대처요령 안내판이 서 있다.

우측으로 신라저수지 하산길이 보이고 진행방향으로는 주류성이 그리고 좌측으로는 신풍리로 하산하는 방향과 거리가 표기되어 있다.

신풍리는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에 있는 마을로서 본면의 남부에 위치하며 상풍 서남쪽에 신풍저수지가 있는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신리, 상풍, 샘골 등이 있는데 신리는 샘골 남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고 상풍은 신풍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샘골은 새암골 또는 정동이라고도 부르며 하풍 동남쪽에 샘이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며 신리와 상풍의 이름을 따서 신풍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또한 기러기재를 읽어 본 후 자료를 찾아보니 기러기재는 충청남도 청양군의 화성면 수정리와 홍성군 장곡면 신풍리 일대에 위치하는 고개이다.
기러기재는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한자화하여 안치 또는 안티라고도 불리며 기럭재 또는 서낭댕이 등의 이름으로도 불린다.
지역 주민들은 기러깃재라고 부르는데 지명은 오서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의 생김새가 마치 기러기가 날아가는 형국과 같기 때문에 유래하였는데 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의 이름도 고개 이름을 따라 기러깃재라 불린다.
구한말지형도와 조선지형도에는 안치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서산 줄기가 동으로 뻗어 홍성군 장곡면과 청양군 화성면의 경계를 형성하는데 기러기재는 이 산줄기의 북사면에 자리한다.


기러기재의 유랴판을 읽어 본 후 그 안부를 지나 다시 나타나는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이제 등로에는 통나무 계단으로 바뀌고 있는데 등로 주위에는 벌목 후 자라고 있는 잡목들이 보이는 오르막 마루금이다.

등로 우측으로 청양의 화성 들판과 그 넘어 금북정맥 마루금이 보이고 잠시 뒤돌아 보면 연두빛 자연과 그 우측 뒤 저 멀리 오서산이 서쪽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는 강렬한 햇살을 받아 희미하게 솟아 있는 풍경도 보인다.

방금 전 올라 온 기러기재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등로 우측으로 흐르는 풍경 역시 내려다 보이고 있다.


등로 뒤 오서산 우측으로는 오늘 이 산객이 산행을 시작한 광성리 마을과 그 주위의 마을들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저 멀리 새우젓으로 유명한 광천읍도 희미하게 보이고 있다.

그렇게 오르니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이제 잡목이 우거진 등로로 바뀌고 있다.

잠시 더 그 잡목을 뚫고 오르니 등로 옆으로 올해 들어 처음으로 만나는 붓꽃이 눈에 띄어 사진에 담아 보는 시간이다.

붓꽃은 각처의 산과 들에 자라는 다년생 초본으로 생육환경은 양지바른 곳의 습기가 많은 곳이나 메마른 땅에서 자란다.
키는 30 Cm에서 60 Cm이고 잎은 길이가 30 Cm에서 50 Cm이며 폭은 0.5 Cm에서 1 Cm로 줄기에 2줄로 붙어 올라간다.
꽃은 자주색으로 밖으로 나가 있는 꽃잎은 안쪽은 노란색과 검은 자색의 선이 있고 꽃줄기 끝에 2에서 3개 정도 달리며 열매는 8에서 9월경에 결실되고 갈색으로 길이는 3에서 4 Cm이며 끝이 갈라지면서 검고 광채가 나는 종자가 많이 들어 있다.
관상용으로 쓰이며 뿌리는 약용으로 쓰인다.
번식법으로 9월경에 받은 종자는 냉장보관이나 일반적 보관 방법으로 하여도 무방하다.
종자를 파종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것은 물에 2에서 3일간 담궈 둬야 하는데 이는 종자 껍질이 두터워 수분 흡수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수분을 충분히 흡수시키기 위함이다.
뿌리나누기는 봄이나 가을에 한다.
관리법으로 화단에 심어 물 관리는 자주 해 주지 않아도 좋으며 햇살이 잘 드는 곳에 두어야 한다.


붓꽃과의 첫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올라 뒤돌아 보니 오서산이 조금 더 뚜렷하게 보이는데 이제는 제법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주능선에 도착을 해 평이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등로 양쪽으로는 연두빛을 지나 푸릇한 봄빛이 짙어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고 그 바위 사이로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269.5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이곳 269.5봉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잡목 사이 저 멀리 올망졸망한 산그리메가 펼쳐져 있다.


그 바위봉우리를 지나 출발하니 다시 등로 좌측으로 커다란 조개를 닮아있는 바위가 보이고 잠시 짧지만 지독한 잡목과 잡풀지대가 펼쳐진다.

어렵게 그 잡목과 잡풀지대를 뚫고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무명묘지 한기가 보이고 그곳에서 등로 우측 아래로 펼쳐진 조망을 살펴보니 청양군 화성면 수정리와 저수지 그리고 그 뒤 저 멀리 백월산과 천마산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 마루금이 아름답다.

참으로 자주 지나다녔던 곳들이기에 잠시 더 지난 어린 시절을 추억도 해 보는 시간이었다.


그 묘지에서 멋진 조망과 풍경을 즐긴 후 출발하니 나뭇가지 위에 내포문화숲길이란 작은 안내판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내포문화숲길은 2009년 1월 19일 산림청은 기존 등산로와 옛길을 찾아내 전국에 산재한 자연 휴양림과 산촌 생태 마을을 수평적으로 연결하고 주요 노선에 등산 안내인 및 숲해설가 등을 배치하여 지역 고유의 산림 생태, 문화, 역사 자원을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전국 12곳에 산림 문화 체험 숲길 1500 Km를 조성할 계획을 발표하였다.
충청남도 예산군, 당진군, 서산시, 홍성군의 4개 시와 군은 2009년 10월 14일에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60억 원을 투입하여 내포문화 숲길을 조성할 계획을 발표하고 2009년 10월 16일 예산군 덕산면 가야관광호텔에서 내포문화 숲길 조성 협약식을 가졌으며 4개 자치 단체와 중부지방산림청 등 행정 기관, 수덕사 등 종교 단체, 역사문화 단체, 학계, 시민 단체 등이 참여한 내포문화 숲길 협력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하였다.
내포문화 숲길 조성 사업은 2010년 5월 23일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와 행정안전부가 공동 주최한 전국 시와 군 기초 생활권 발전 계획의 연계 협력 사업 종합 평가에서 자치 단체 연계 협력 부문 우수 사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0년 10월 21일에는 부여국유림관리소에서 내포문화 숲길 구간 가운데 국유림 내의 시범 구간 6.5 Km를 조성하여 일반에 공개하였는데 공개된 구간은 서산 보원사지와 서산 보원사지에 소속된 100개의 암자지 가운데 백암사지를 연결하는 노선이다.
2011년 3월 29일에는 서산시 동문동 소재 새마을 회관에서 내포문화 숲길 서산시추진위원회가 2011년 착공할 14 Km 노선을 지정하기 위한 간담회를 가졌다.
현재 숲길의 테마는 원효 깨달음의 길, 백제 부흥군 길, 내포 역사 인물 길(동학길), 천주교 순례길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길이는 330 Km에 달한다.
2010년 시범 구간 공개 이후 2011년 현재 충청남도 예산군, 당진군, 서산시, 홍성군의 4개 시와 군이 각각 행정 구역 내의 숲길의 노선을 정하여 조성하여 2013년 내포문화숲길이 완공되었다.

잠시 싸리나무가 우거진 등로를 헤치고 전진하니 밤나무와 자작나무들이 뵈은 등로와 만나 걸어가 본다.


잠시 더 진행을 하니 자작나무가 조금 더 보이기 시작을 하는데 이곳부터 잡목이 우거져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도 가끔 등로에 피어 있는 진분홍 빛 진달래가 반겨주고 곧이어 나무계단이 나타나는데 그 계단을 타고 걸어 내려가 본다.

그렇게 그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잡목과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비포장 임도를 만나는데 그곳에서 등로는 직진의 내리막 등로가 아닌 우측으로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한동안 걸어 간 후 좌측으로 꺽여 내려가게 된다.

우측으로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다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이제부터 거어 올라야 할 260.5봉과 그 좌측으로 흐르는 마루금이 연두빛 봄을 알리며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우측으로 한동안 그 잡목이 우거진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좌측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잠시 후 지독한 잡목과 잡풀지대를 벗어나 뚜렷한 비포장 임도를 만나 편안하게 걸어 본다.

잠시 걸어가니 황톳빛 등로가 이색적이고 곧이어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는 백제부흥군길이란 이정목이 다시 보이는데 숫고개 방향의 대현리까지의 방향과 거리 표시가 보이기 시작한다.

백제부흥군길은 660년(의자왕 20년) 나당 연합군의 침공으로 백제가 멸망하자 의자왕의 사촌 동생인 복신과 승려 도침이 주류성을 근거로 백제 부흥 운동을 일으켰고 일본에 있던 왕자 부여풍을 왕으로 옹립했다.
하지만 일본군과 함께 사비성을 공격하다 크게 패해 임존성(지금의 예산)으로 후퇴했고 내분이 생겨 복신이 도침을 살해한 후 부여풍도 살해하려 했으나 오히려 그에게 살해되었다.
한편 백제 장수 흑치상지도 660년 임존성에서 군사 3만을 모아 주변 2백여 성을 회복하고 백제 부흥 운동을 일으켰으나 복신과 도침이 당나라군에 제압당하자 당나라에 투항해 백제 부흥 운동을 진압했다.
1400여년 전 일어났던 그 백제부흥운동의 길을 따라 조성된 길을 백제부흥군길이라 명하고 산책로로 만든 길을 말한다.


등로 우측의 화성면 수정리와 좌측의 홍성군 장곡면 신풍리를 이어주는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이곳 역시 벌목 후 잡목이 자라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오르는데 가끔 그 잡목 사이로 키 작은 소나무가 도도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 키 작은 소나무 등로를 지나 오르니 다시 일반 등로로 변하고 곧이어 소나무들이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백제부흥군길18이란 이정목이 서 있는 무명 안부에 도착을 한다.


안부 좌측으로 이정목이 보이고 그 이정목 뒤로 넓은 비포장 임도가 열려있지만 안부 정상에서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올라 진달래꽃을 친구삼아 오르니 금새 등로 좌측으로 방금 전 헤어졌던 넓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 그 ㄹ임도를 따라 걸어 오른다.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66번 송전탑이 보이고 그 송전탑을 지나 소나무 등로를 걸어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주능선에 도착을 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는 우측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걸어 올라 뚜렷한 마루금을 따라 걸어 진행을 하니 언덕을 넘어 진행 방향으로 올라야 할 봉우리들이 잡목 사이로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 옆으로 피어 있는 예쁜 진달래꽃을 바라보며 평이하게 걸어 전진하니 다시 안부같지 않은 안부를 지나 수레길 같은 넓은 등로를 따라 오른다.

한동안 오르니 밤나무 단지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는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는데 등로 우측으로는 활엽수를 간벌한 나무토막들이 널부러져 있다.

다시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잡목들과 소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224 무명봉에 도착을 해 그곳에서 지나온 등로를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그 잡목봉에서 뒤돌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지나온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저 멀리 오서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아래쪽으로 좌측으로 흐르는 금북정맥 마루금과 공덕고개 지나 봉수지맥으로 이어져 온 등로가 가슴속 깊이 남겨지는 시간이다.

몇 번인가 올랐던 오서산이기에 그 올랐던 추억을 꺼내 아름답게 간직된 시간을 되새겨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너무 늦게 산행을 시작했기에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사진 몇장 더 남긴 후 다시 우측 주등로로 내려 와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224 잡목봉에서 멋진 마루금을 살펴본 후 내려 와 진행하니 멋진 소나무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제법 굵은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힐링하듯 걸어 내려가니 내포문화숲길 백제부흥군길19라는 이정목이 보이는데 이제 기러기재에서 약 3 .05 Km 진행했다는 거리 표시가 보인다.

계속해서 진행 방향으로는 대현리라는 지명과 그곳까지 2.98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보이는데 그 대현리가 바로 숫고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백제부흥군길19라는 안부에 있는 이정목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잡목의 저항이 일부 있지만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잠시 후 밤나무 군락지를 지나 걸어 오르니 억새가 자랐다 말라죽은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보령304라는 삼각점이 박혀있는 260.5봉에 도착을 해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쉬어 간다.

한쪽에는 홍성둘레길이란 이정판이 보이고 준.희님은 261.6미터라는 이정판을 붙였는데 지도에는 260.5봉으로 나와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저 멀리 오서산과 그곳에서 이곳으로 이어져 오는 봉수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그 260.5봉에서 물 한모금 마신 후 다시 출발하니 커다란 활엽수 한그루 지나 잡목과 소나무가 섞여있는 희미한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는데 선답자가 지나간 희미한 발자국이 보여 그 발자국을 따라 내려가 본다.

그렇게 내려가니 등로를 우측으로 조금 지나쳐 비포장 임도에 도착을 하는데 그 임도에는 녹슨 쇠막대가 박혀있고 그 쇠막대 사이를 막아 놨던 가는 철사줄은 모두 끊겨 사라진 곳이었다.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좌측의 소나무 등로와 만나 이어지고 잠시 그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무심으로 걸어 본다.


제멋대로 자란듯 잘 나 있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언덕을 넘고 그 언덕에서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저 멀리 오서산에서 이곳 봉수지맥으로 이어져 온 마루금이 환상의 산그리메를 이루며 다가 와 있다.

다시 이어지는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내포문화숲길이라는 작은 안내판이 소나무에 매달려있고 잠시 편안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비포장 임도를 만나는데 그 임도 좌측으로 철문이 보이고 그 앞에는 홍성군 재산이라는 경고판이 서 있다.

왜 이런 시설물이 이런곳에 설치되어 있을까 궁금했는데 등로 우측 아래를 살펴보니 거대한 한우 축산단지가 내려다 보이고 아마도 오래전 이곳에도 축산단지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홍성군에서 세운 경고판을 지나 좌측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또 다른 백제부흥군길21이란 이정목이 서 있고 내포문화숲길이란 안내판도 걸려있다.

이제부터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편안하게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68번 송전탑이 서 있고 한동안 그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무심으로 걸어가니 제대로 힐링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커다란 소나무와 활엽수가 섞여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옆으로는 진분홍빛 예쁜 진달래꽃이 반갑게 반겨주고 있다.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잠시 키 큰나무들이 사라지며 멋진 조망이 펼쳐져 있는데 살펴보니 바로 발아래 신풍리를 지나 오늘 이 산객이 산행을 시작한 광성리와 오성리 그리고 화계리가 있는 장곡마을과 들판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데 미세먼지와 강렬한 햇살로 인해 조망이 제한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장곡면은 충청남도 홍성군의 동남부에 위치하며 면의 남쪽에 위치한 오서산으로부터 뻗어 나온 산줄기를 따라 동쪽으로는 청양군과 경계를 형성하고 남쪽으로는 보령시와 경계를 형성하는 면이다.
면내에 큰 하천은 없으며 계류천만 흐르는데 현재 도산리, 신풍리, 화계리 등의 16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장곡면은 조선 시대에 홍주목 오사소이었다가 이후 홍주군 오사면이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오사소는 남쪽 34리 지점에 위치하였고 본래 오사면이었는데 이것은 도사면으로 변경되었으며 서남쪽으로 20리에서 30리 사이에 위치하였다.
여지도서, 여도비지 등에서도 오사면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해동지도, 1872년지방지도 등에서는 홍주의 남쪽에서 보령과의 경계 부근에 오사면이 위치한다.
홍주군 오사면으로 이어져 오다가 1914년에 기존 오사면에 홍주군의 유곡면과 성지면, 대흥군 일남면 일부, 청양군 얼방면, 화성면, 서상면의 일부 지역을 각각 통합하여 현재의 지명인 장곡면으로 개칭하였고 홍성군 소속이 되었다.


등로 좌측으로 장곡면 들판과 마을들을 내려다 보며 걸어가니 등로는 여전히 넓은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있어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잠시 더 걸어가니 키 작은 소나무 등로와 벗꽃 등로가 보이더니 다시 소나무와 잡목이 임도 양쪽으로 보이는 임도를 따른다.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임도 좌측으로 69번 송전탑이 보이고 그 송전탑 주위에는 간벌된 나무들이 널부러져 있는 풍경도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벗꽃이 예쁘게 피어있고 안부같지 않은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며 진행을 한다.

백제부흥군길22이란 이정목을 지나 완만하게 오르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에 상송리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보인다.

상송리는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에 있는 마을로서 본면의 중심에 위치하며 마을 옆으로 오서산이 있는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상오, 반송, 두리 등이 있는데 상오는 도산리의 오미 위쪽이 된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반송은 반송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두리는 상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상오와 반송의 이름을 따서 상송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그 상송리 갈림삼거리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걸어 올라 본다.


상송리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살펴보니 지나온 방향으로는 목장이란 지명이 그리고 진행 방향으로는 주류성이란 지명이 보이는데 그 주류성을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보인다.

주류성은 삼국시대 백제의 성으로서 백제가 멸망한 뒤 부흥운동의 본거지가 되었던 곳이다.
서기 660년 7월 18일에 백제의 의자왕이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게 항복하였고 이후 백제사람들의 부흥운동이 산발적으로 일어났는데 점차 흑치상지와 복신이 웅거한 임존성과 도침이 이끄는 주류성을 중심으로 부흥운동세력이 통합되었다.
그리하여 주류성을 공격하는 나당연합군을 크게 이겼으며 이러한 기세로 부흥군은 200여성을 회복하였다.
웅진성 공격 실패와 옹산성에서의 패배로 그 기세가 크게 위축되었으나 나당연합군이 고구려 공격에 전념하고 일본에 있던 왕자 풍이 돌아와(662년 5월) 부흥운동을 이끌면서 다시 활기를 띠었으나 부흥운동세력의 지휘부 내에 분란이 일어나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다시 부여풍이 복신을 죽이는 데에 이른다.
더욱이 부흥군을 돕기 위해 왜가 보낸 병사 2만 7천명이 백강에서 궤멸되고 부여풍이 고구려로 달아나자 백제의 부흥운동은 이내 막을 내리고 말았다.
주류성은 삼국사기와 구당서, 신당서에 기재된 이름으로 일본서기에는 주유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나오는 두량윤성을 주류성의 다른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같은 책의 문무왕 3년(663) 5월조에 왕이 김유신 등 28장군에게 함께 두릉윤성(두량윤성이라고도 한다)과 주류성 등 여러 성을 공격하라 명령하여 모두 빼앗았다고 적힌 기사를 감안하면 두량윤성과 주류성이 같은 성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주류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학설이 분분한데 충남 서천군 한산면의 건지산성, 충남 연기군 전의면의 당산성, 전북 정읍시의 두승산성, 전북 부안군 상서면의 위금암산성 등에 비정하는 학설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일본서기에는 주류성이 백강에서 가깝고 농사짓는 땅과 멀리 떨어져 있으며 돌 많고 척박한 땅이어서 농사지을 수도 없는 땅으로 지금은 지켜내는 곳이지만 싸움이 길어지면 백성들이 굶주리기 쉽다고 적혀 있어 위치 추정의 주요 근거가 되고 있다.계속 진행을 하니 능선에 도착을 하고 카 작은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소나무 옆에 진달래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193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진달래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193 무명봉을 넘어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거대한 한우 목장 건물들이 잡목 사이로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소나무와 진달래꽃이 멋지게 피어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큰 고도 차이도 없이 평이한 등로를 타고 힐링하듯 걸어 본다.

나즈막한 안부와 언덕을 교대로 내려갔다 오르기를 반복하다 보니 너무나 환상의 소나무 등로가 펼쳐져 있어 잠시 그 소나무 밑에서 쉬어가는 시간도 만들어 본다.


그렇게 환상의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금새 등로 좌측으로 70번 송전탑이 보이고 곧이어 식재된 듯한 소나무 군락지를 통과한다.

소나무 등로를 지나니 다시 활엽수 등로가 나타나더니 저 멀리 앞으로 벤취쉼터3개와 이정목이 서 있는 216.1미터의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정목에는 백제부흥군길24이라는 글이 보이고 이제 대현리까지는 1.36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이곳에서 우측 아래로 휘어져 내려가는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직진의 좌측으로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헤치고 어렵게 진행을 해 본다.

그곳 갈림삼거리 우측 아래로는 거대한 한우 목장지대가 펼쳐져 있는 풍경도 잡목 사이로 내려다 보인다.


잡목과 약간의 가시나무를 헤치며 좌측 희미한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잠시 후 활엽수 낙엽이 깊게 깔려있는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진달래꽃이 화사한 등로를 지나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등로를 통과하니 연두빛 봄이 등로에 피어 있는 멋진 등로를 지난다.

거대한 활엽수를 타고 오른 으름나무가 초록잎을 피우며 봄이 왔음을 알리는 그 등로를 지나니 다시 활엽수가 식재된 듯한 등로를 만나 그 사이를 걸어 진행한다.


그 활엽수 지대를 지나니 몇기의 무명묘지들이 보이는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그 묘지 우측 아래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숫고개 지나 다음 구간에 걸어 올라야 할 봉수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 목표는 저 마루금을 넘어 대영리고개까지 진행을 할 수 있기를 바랬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고 해가 아직은 짧은 계절이기에 오늘은 숫고개에서 마치기로 하니 올려다 보는 다음 구간 마루금이 아름답기만 하다.


그 무명묘지지대를 지나 연두빛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키 작은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이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휘어지며 완만하게 내려간다.

봄빛이 조금 더 가깝게 다가온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눈 앞에 거대한 산벗꽃 나무가 나타나고 그곳에는 화사한 예쁜 하얀 벗꽃이 활짝 피어 있다.

그렇게 진행을 하니 등로는 다시 소나무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155 무명봉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 마신 후 출발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걸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넓은 공터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는 막 피어 오르기 시작한 고사리가 지천으로 보여 잠시 배낭 내려 놓고 산행 중 처음으로 고사리를 뜯어 본다.

옆지기가 좋아하는 모습이 눈 앞에 선하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그 공터에서 시간을 보내며 제법 많은 고사리를 뜯은 후 다음 구간 진행해야 할 봉수지맥 마루금과 등로 우측 아래로 펼쳐진 아름다운 옥계리 마을을 살펴본다.

옥계리는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에 있는 마을로서 본면의 남부에 위치하며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옛날에는 피난처로 알려진 농촌마을이다.
본래 홍주군 화성면의 지역으로써 옥계라 하였는데 자연마을로는 가정골, 냉정골, 등대실, 반계장터 등이 있다.
가정골은 등대실 동쪽에 있는 마을이고 냉정골은 냉정리 또는 상랭리라고도 부르며 찬샘이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등대실은 등대사라는 절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반계장터는 옥계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시장이 서서 장곡면의 동부지방에서 주로 이곳에서 시장을 본다.

다시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키 큰 활엽수와 잡목이 섞여있는 등로가 이어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갈수록 짙어지는 봄빛이 가슴속에 남겨지는 시간이다.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그 안부에서 비포장 임도는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고 등로는 안부를 지나 능선으로 이어진다.

능선으로 오르니 지나다닌 흔적이 사라지며 잡목이 나타나고 잠시 후 멋진 소나무 등로를 짧게 통과하니 거대한 절개지가 눈 앞에 펼쳐지는데 그 절개지 상단부에는 시멘트 옹벽이 높게 가로막고 있다.

그 절개지 정상에서 발 아래로 펼쳐진 96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숫고개를 ㄴ려다 본 후 우측 사면 등로를 따라 그 숫고개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내려가 본다.

숫고개 도로 양쪽으로는 거대한 콘크리트 옹벽과 철조망이 쳐져 있어 우측 가장자리를 통해 다음구간 산행을 시작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숫고개는 충청남도 홍성군의 장곡면 상송리와 대현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숫고개는 과거에 고개 양쪽으로 참나무가 많아서 그 참나무로 숯을 구어 팔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숯고개 또는 한자화한 탄현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는 96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지금까지 산행을 하면서 계속 만났던 대현리는 이곳 숫고개를 지난 다음구간 들머리쪽으로 자료를 찾아보니 대현리는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에 있는 마을로서 본면의 중심에 있으며 동으로는 학성산성 남으로는 석성산성 서로는 숫고개 북으로는 월천마을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대부, 월현, 병티 등이 있는데 대부는 대현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조선시대 때 대부창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월현은 달고개 밑에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대부와 월현의 이름을 따서 대현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유적으로 고인돌3기, 한치바위, 학성산군창지, 배다티, 연소, 금광지 백제시대의 토기 등 역사유산물이 곳곳에 많다.


이곳 숫고개에서 스틱을 접고 배낭을 정리하면서 지나가는 차량에 손을 흔들어 히치 하이킹을 시도해 보지만 쉽지 않아 조금만 더 시도하다 안되면 택시를 부르려고 하는데 SUV 차량 한대가 고맙게도 멈추며 태워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북한에서 오신 분으로 이곳 근처로 이사를 온지 얼마 되지 않은 분으로서 제초제를 구매하기 위해 광천으로 나가는 길이었다.

고마운 분을 만나 편안하게 광천역으로 이동을 해 인사를 나누고 식당에 들려 국밥으로 허기를 면한 후 무궁화 열차를 이용해 편안하게 귀경을 해 또 새로운 지맥 산행 한구간을 무탈하게 마무리한 것으로 만족하는 시간이다.


오늘 역시 산행 후 수술한 다리에 전혀 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했기에 다음부터는 조금 더 길게 산행을 이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날씨가 더워지며 다음주에는 태국으로 출장 계획이 있기에 남아 있는 봉수지맥은 언제 다시 내려 와 진행을 하며 완주할 수 있을지 기약도 없는 산줄기가 되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