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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봉수지맥(금북·완)

봉수지맥 마지막제3구간 비티고개에서 합수점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9.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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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남도 홍성군과 예산군 봉수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9년 01월 27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맑고 화창한 하였으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오후부터 추웠던 기온이 조금은 올랐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하 06도에서 영상 04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비티고개(616번 2차선 포장도로, 홍성둘레길)-작은 공동묘지지대-비포장임도-194.9 무명봉-무명안부(옛성황당터)-가야둘레길(거리

                 3.1 Km) 이정판-돌탑들(성황당 2.9 Km 이정표)-190.3 무명봉(달성서씨묘지들)-현위치 가야둘레길 이정판-응봉고개 갈림삼거리-204.3

                 삼각점봉(예산 314, 옥녀봉 설명판)-갈림삼거리 복귀-은사시나무 등로-측백나무 등로-2차선 포장도로-묵밭-개활지-벌통-삽치고개(1차선

                 포장도로)-147.8 바위봉-임도 사거리-예산추모공원-무명안부-묘지지대-과수원-팔봉농원산야초지대-619번 2차선 포장도로-잣나무-122

                 잡풀봉-과수원-묵밭-183.7 봉(산불감시초소)-팔각정 갈림삼거리-202.6 무명봉(검정 천막)-207.1 무명봉-팔봉산(207.4봉)-197.8 무명봉-

                 시멘트 임도삼거리-207.7 삼각점봉(예산 313)-철조망 우회-아카시아나무 등로-과수원 물탱크 3개-과수원-창녕조씨 묘지 위 103.8 잡목봉-

                 김해김공 묘지지대-당진영덕간 고속도로-지하통로-과수원-2차선 포장도로-대흥농원-예산운전면허시험장-운전면허장사거리-석현농원-

                 1차선 철로 통과-영산농원-대동 RPC미곡종합처리장-임성교차로-좌방리 버스정류장-원천3리-분천4리 버스정류장-사물놀이 이광수 민족

                 음악원 갈림삼거리-양신초등학교-원천1리 버스정류장-내량리 버스정류장-내량2리 갈림삼거리-오촌리 버스정류장-내량리3구-오촌사거리

                 버스정류장-오촌사거리-사거리-조림초등학교-오산3리 마을회관-오산3리 버스정류장-가스웨어건물-남해화학 물류기지-한선레미콘과

                 폐쇄된 대상주유소-거대목장-화암사 이정판-화암사 추사김정희선생고택 용산 등산안내도-거승건설-화암사-김정희선생 필적 암각문(천축고

                 선생댁)-김정희선생 필적 암각문(시경)-안부 이정표(용궁리, 추사고택1427m, 화암사)-김정희선생 필적 암각문(소봉래)-화암사 복귀-암각문-

                 내포문화숲길 이정판(추사고택 1.008 Km, 화암사 0.282 Km)-오석산(삼각점, 95.8봉)-암릉-사각정자(추사고택 설명판)-갈림삼거리 안부-

                 추사고택 갈림 삼거리 안부-용산(74.3봉, 벤취쉼터와 운동기구)-추사고택 갈림삼거리 복귀-추사고택-2차선 포장도로-백송공원-예산백송-

                 백송공원(용궁2리) 버스정류장-갈림삼거리-거대목장-신택교회-신택1리 마을회관과 버스정류장-천안농원-신택교차로(32번 지하차도 통과)-

                 신택리 버스정류장-신택2리 이정석-신종2길-거대목장-논 경작지-시멘트 포장도로-신종2배수문-합수점(무한천과 삽교천의 합수점)-산행종료-

                 여사울성지-두곡리 버스정류장-차량히치 하이킹-신례원 버스정류장-버스로 예산역까지 이동-국밥집에서 반주와 저녁식사-예산역

산행거리 : 약 25.62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트랙 : 20190127 봉수지맥 마지막제3구간 비티고개-합수점.gpx

산행시간 : 꾸준하게 걸어 진행하여 07간 06분 (08시 46부터 15시 52분까)

교통편 : 갈때 - 06:05 옆지기의 도움으로 애마를 이용해 영등포역까지 이동

                       06:30 영등포역 발 삽교행 탑승

                       08: 20 삽교택시 탑승

                       08: 40 비티고개 도착 후 산행준비

             올때 - 15:52 무한천과 삽교천이 만나는 합수점에 도착해 산행 종료

                       16:37 도보로 두곡리 버스정류장까지 이동

                       16:40 동네 주민의 호의로 히치 하이킹하여 신례원 버스 정류장까지 이동

                       17:10 예산 시내버스로 예산역까지 이동

                       18:14 예산역 발 서해금빛열차로 영등포구역 행 탑승

                       19:50 영등포역 도착 후 지하철 이용해 귀가

봉수지맥이란 ???

안성 칠장산(492.4봉) 남쪽 300미터지점에서 분기한 금북정맥이 남서진하며 서운산(547봉), 성거산(579봉), 봉수산(525봉)등을 일구며 150여 Km를 달려와 백월산(560봉)에서 한줄기는 남진하며 성태산(624봉), 월명산(544봉), 오석산(127봉)등을 일구며 70 Km를 달려가 용당정에 이르며 신산경표의 호서정맥을 만들고 또 한줄기는 북서진하여 다시 130 Km를 가면서 오서산(791봉), 가야산(678봉), 지령산(220봉)등을 일구고 안흥해안에 몸을 담그는 금북정맥을 낳는다. 

봉수지맥은 이 분기점인 백월산(560봉)에서 북쪽으로 10.9 Km 떨어진 오서산(791봉)에서 동북으로 약 3.2 Km 떨어진 공덕고개 남쪽의 370미터봉에서 금북정맥은 서북으로 가고 봉수지맥은 동북으로 갈라진다.

동북으로 올라가며 초롱산(339봉), 봉수산(483봉), 팔봉산(207.4봉)등을 지나서 예산군 신암면 하평리에서 삽교천에 몸을 담그며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로 약 47.5 Km되고 지맥 서쪽으로 떨어진물은 삽교천 본류에 동쪽으로 떨어진 물은 무한천에 몸을 담갔다가 삽교천에 합류하여 아산만으로 들어간다.

지나는 산들중 제일 높은산인 봉수산(483봉)의 이름을 따서 봉수지맥이라 부르며 무한천의 오른쪽 물막이가 된다.

지맥 서쪽의 삽교천은 길이63.9 Km에 유역면적 1649.87 Km2에 아산시 인주면이 종점이고 지맥 우측의 무한천은 길이 53.9 Km에 유역면적 467.54 Km2에 예산군 신암면이 종점이다.
발원지의 길이로 치자면 무한천이 더 긴데 유역면적이 삽교천이 더 커서 무한천이 삽교천의 지류가 되는 모양이다.

오서산은 까마귀와 까치가 많아서 오서산이라 부르며 까마귀 오자에 살서자를 쓰는데 일부지도는 오루산(다락루산) 혹은 조루산, 조서산으로 표기한것도 있는데 이는 까마귀오자를 새조자로 살서자를 다락루자로 잘못 표기한 것이다.




오랫만에 다시 홀로 산줄기 이어가기 산행을 시작하며 힘들었지만 걱정되었던 산행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봉수지맥 마지막 합수점에서 웃음으로 마무리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은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관아를 기준으로 한 그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원래 계획은 이번 주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동안 서해안쪽 짧은 지맥에 올라 지맥 산행 하나를 마무리하고 올라 올 계획이었지만 전날 부산 출장 후 사촌 매형의 부고와 갑자기 늘어 난 일 때문에 토요일인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일에 빠지다 보니 소화도 되지 않고 자꾸만 몸만 불어나는 것 같아 고민하다 홀로 기차를 이용해 진행하다 중단된 봉수지맥을 갈무리하고 올라오기로 한다.

하지만 오랫만에 홀로 오르는 지맥 산행이고 거리도 만만치 않아 잘 마무리나 가능할지 걱정하면서 충분한 산행 시간을 계산하여 저녁 늦은 기차표를 예매하여 일요일 새벽같이 집을 나서 옆지기의 도움으로 간신히 영등포역에서 출발하는 장항선 열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어둠속에 홀로 배낭메고 집을 나서 지방으로 출발하는 것이 꿈만 같고 첫발을 잘 내디뎠으니 앞으로는 일과 산행 두마리 토끼를 향해 열심히 살아가는 삶이길 바래 본 시간이기도 하였다.


예산운전면허시험장에서부터 시작된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는 산행이 오랫만에 걸어보는 이 산객의 발바닥에 한겨울 차가운 바람이 무색하게 용광로보다 더 뜨거운 열기를 전달해 주고 그렇게 끝없이 이어진 도로 걷기를 이어가니 드디어 화암사에 도착을 하는데 더 이상 산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발바닥이 아프고 물집이 생길 것 같은 불안감에 잠시 쉬어 확인해 보니 아직까지 건강상에는 문제가 없다.

조심하며 다시 용산과 추사김정희 고택을 둘러 본 후 고통이 수반되는 도로를 타고 어렵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드디어 오늘 산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무한천과 삽교천이 만나는 신종2리배수문에 도착을 해 강하게 불어 오는 바람속에 추억 한장 남기는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온다.

사진 뒷편으로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은 말없이 조용하게 흐르고 있지만 그 속으로 벌어지고 있는 전쟁터 같은 삶은 영원히 이어질 것이기에 보이지 않는 내면에 숨겨져 있는 세상사까지 살펴볼 수 있는 혜안을 얻을 수 있는 삶이길 바래도 본 시간이었다.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양볼을 강렬하게 얼리기 시작하는 아침에 다시 21개월만에 찾아 온 비티고개에서 산행 준비 후 능선으로 올라 잠시 오르니 경직되었던 온몸이 조금씩 풀리면서 발걸음도 속도를 붙히기 시작한다.

거친 숨을 내쉬면서 꾸준하게 걸어 오르니 난이도가 높지 않은 등로이지만 벌써 등줄기와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하고 내 뱉는 숨소리가 거칠어지며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 조용한 산사를 깨우고 있다.

그렇게 올라 헐떡이는 숨을 참아가며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나즈막한 산줄기 사이로 저 멀리 회색빛 건물들이 보이고 살펴보니 당진시쪽 마을과 건물들이 오랫만에 펼쳐져 아름다운 추억을 알려주고 있다.

조만간 다시 내려가 다른 이름의 지맥 산행을 하면서 만나야 할 풍경들이기에 가슴속 깊이 그 풍경들을 담아 보지만 얼마나 간직하고 다른 풍경에 그 자리를 내줘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시간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좋은 등로를 따라 빠르게 진행을 하니 걱정했던 몸도 잘 적응을 해 가고 길찾기도 어렵지 않게 진행되고 있어 계획보다도 훨씬 빠르게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정신없이 진행하여 삽치고개를 통과해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183.7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시 쉬었다 출발하여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 앞으로 개활지가 펼쳐지고 그 뒤 저 멀리 자주 만났던 예산시가지와 그 뒷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군들 그리고 시가지 좌측 앞으로 펼쳐진 드넓은 광활한 들판이 눈에 들어오며 한동안 잊고 지냈던 아름다운 조망에 다시 빠져드는 순간이다.

오르지 않으면 절대로 만날 수 없는 풍경과 조망이기에 한동안 많은 추억으로 남기며 앞으로는 더 자주 이런 사진들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래 본 시간이기도 하였다.


새벽 일찍 일어나 산행 준비를 해 보지만 역시나 약간의 해찰로 인해 영등포역에서 출발하는 6시 30분 발 익산행 무궁화 열차의 탑승이 불투명해지고 걱정을 하고 있으니 옆지기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영등포역까지 데려다 준다.

고마운 마음을 표하고 헤어져 영등포 역으로 뛰어 올라가 어렵게 정시에 출발하는 열차에 몸을 실고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른 후 차창 밖을 살펴보니 아침 7시 20여분이 지나 평택을 통과하면서 동녘하늘이 붉게 변하며 오늘 하루를 밝히려 하고 있다.

오랫만에 만나는 여명에 잠시 흔들리는 차창 넘어로 몇장의 사진을 남겨 보지만 역시나 보는 것과 사진으로 남기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다시 한번 절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렇게 새벽을 열면서 살아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느껴 보는 순간이다.


그렇게 흔들리는 무궁화 열차를 타고 졸다가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도고온천을 지나 예산을 통과하고 있다.

고향과 가까운 예산이기에 참으로 많이 들리기도 하였고 서울로 삶의 뿌리를 바꾼 이후에는 늘 오고가는 길목에 들렸던 예산이기에 많은 추억들이 남아 있지만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소중한 추억은 없는 곳이기도 하다.

잠시 후 예산을 지난 열차는 드디어 삽교역에 도착을 하고 차가운 아침 공기를 맞으며 역사를 빠져 나가며 사진 한장 담는 시간이 조금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삽교역은 장항선에 있는 기차역으로 예산역과 화양역 사이에 있으며 1923년 11월 1일 삽교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고 1973년 11월에 수덕사역으로 역명을 변경하였으나 1980년 11월 다시 현재의 명칭으로 환원된 역으로 역사는 거의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역이다.

1992년 소화물 취급이 중단되었으며 2008년 장항선 직선화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고 2008년 12월 부터는 코레일에서 직영하는 컨테이너 야드를 설치하여 화물을 주로 취급한다.

현재 모든 무궁화호와 일부 새마을호가 정차하고 코레일 대전충남본부에서 관리하며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삽교역로 101-14에 있다.

어느 중견가수의 노래로 더욱 유명해진 삽교이지만 이제는 그조차도 옛 영광으로 남아 있는 곳으로 변해 버렸다.


삽교역에서 택시를 타고 비티고개를 이야기하니 알듯 모를듯 다른 택시 기사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탑승을 허락한다.

가다가 보니 잘 모를 것 같아 홍성추모공원 방향을 알려주니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빠르게 달려 어렵게 도착한 비티고개는 옛 모습 그대로이지만 2년 전 꽃 피는 봄에 들려 옻순을 채취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황량한 한겨울 찬바람만 강하게 불고 있다.

비티고개는 홍성군 금마면과 예산군 대흥면 그리고 응봉면의 3개 면이 만나는 고갯마루로서 금마에서 예당저수지로 이어지는 616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곳으로 예전에는 아주 헌한 고개였다는데 지금은 그저 평범하게 보이는 고갯마루가 되었다.

충청남도 홍성군의 금마면 봉서리와 예산군 응봉면 건지화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홍성군과 예산군의 경계를 형성하는 봉수산 줄기가 북쪽으로 뻗어 나가는데 이 산줄기를 넘어 홍성지방과 예산지방으로 이동하던 사람들에 의해 비티고개가 형성되었다.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비티고개는 비치라고도 불리는데 비티고개 남쪽의 예산군 대흥면에는 큰비티고개(대비치)도 존재한다.

현재는 616번 지방도가 비티고개를 지나며 이 도로를 따라 가면 예산의 예당저수지와 연결된다.

사진 몇장 남기는 사이에도 지나가는 차량 하나 만날 수 없을 정도로 이제는 어느 시골의 고갯마루처럼 사람 하나 찾지 않는 무명의 고갯마루로 변해가고 있는 듯 보여 안타까웠던 시간이다.


비티고개에서 잠시 2년 전 추억을 떠 올린 후 도로 좌측의 시멘트 옹벽을 타고 올라 능선으로 오르니 잘 정비된 묘지들이 작은 공원묘지를 이루듯 줄지어 나타나고 잠시 후 그 묘지 뒷편의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길고도 먼 봉수지맥 바지막 제3구간 산행을 시작한다.

잠시 올라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힐쯤 뒤돌아 보니 2년 전 어렵게 올랐다 내려 온 봉수산이 우뚝 솟아 있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묘지들이 보이는 둔덕에 올라 등로 좌측으로 나즈막한 언덕들과 산줄기 넘어 저 멀리 홍성시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홍성시내 뒷편으로는 나즈막한 394미터의 백월산과 그 줄기들이 마치 병풍을 두른 듯 홍성시내를 감싸고 있다.

 

등로 좌측으로 홍성쪽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정상 비포장임도로 이어지는 등로로 복귀해 좌측으로 걸어 진행하니 이제부터 올라야 할 194.9 무명봉이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와 있고 그곳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잠시 등로 우측으로 아름답게 펼쳐진 산그리메를 살펴보고 조금은 빠른 걸음걸이로 걸어가다 뒤돌아 보니 봉수산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우뚝 솟아 있다.

다시 잠시 더 올라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졌다 계절의 변화에 숨죽이고 있는 194.9봉을 넘고 다시 낙엽진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가야둘레길이라는 이정판이 서 있는데 거리가 3.1 Km라 적혀 있는데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다시 작은 돌탑이 보이는 곳에 도착을 하니 성황당 거리 2.9 Km라는 이정표가 서 있고 의미도 모른채 사진에 담고 출발하니 등로 우측으로 묘지들이 보이고 그곳에서 살펴보니 저 멀리 오래 전 걸었던 금북정맥 마루금과 그 좌측으 로 솟아 있는 천안의 광덕산 줄기가 하얀 안개속에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잠시 그곳에 서성이며 사진을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달성서씨 묘지들이 보이는 190.3봉에 도착을 해 잠시 금북정맥 방향으로 산들을 찾아 본다.

그 190.3봉에는 산줄기 잇기 산행을 하면서 자주 만났던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닉을 사용하는 이경일님의 띠지도 보이는데 그곳에 친절하게 이곳이 190.3봉임을 알리고 있다.

그 무명봉에서 다시 출발하니 그림같은 등로가 펼쳐져 있어 오랫만에 자연속으로 동화되며 하나되는 느낌으로 걸어 보는 시간이다.


잠시 더 멋진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가야둘레길 현위치 안내판이 서 있는데 이곳은 봉수지맥 등로보다는 가야둘레길이란 이름의 등로가 더 유명해진 느낌이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홍성시와 내포 신도시 방향을 살펴보고 다시 출발하니 좌측으로 응봉고개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안내판을 살펴 본다.


등로 좌측인 응봉고개 방향으로 인공시설물들이 보여 잠시 들렸다 나오기로 하고 올라가니 옥녀봉 안내판이 서 있는데 정작 옥녀봉은 이곳에서 1.9 Km 정도 떨어져 있어 왜 이곳에 옥녀봉 안내판을 세웠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살펴보니 이곳은 204.3 삼각점이 보이는 삼각점봉으로서 안내판에는 예산314라 적혀 있지만 정작 삼각점은 오래되었는지 판독이 불가능하다.

옥녀봉에 대한 설명판을 읽어 보니 산수가 수려하고 산봉우리가 옥처럼 아름다워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남쪽 아래 돌에서 흐르는 우물에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하여 옥녀봉이라 하며 우물옆에 암자가 있어 옥녀사라 한다고 적혀 있다.


204.3 삼각점봉 정상에서 잠시 등로 좌측인 홍성과 예산의 경계지역의 들판을 내려다 보니 생각보다 드넓은 평지에 비산비야를 이루고 있는 산구릉들이 이 산객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참으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아는 것을 찾아 보니 아는 것이 없어 당황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산만 보였던 가까운 청양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에 왜 홍성과 예산이 발달되고 더 잘 살게 되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였다.


다시 옥녀봉 갈림 삼거리로 나와 이제는 좌측 등로를 따르니 이곳 역시 그림같은 등로가 열려있고 잠시 후 은사시나무 군락지를 만나 꿈결을 걷듯 걸어 본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멋진 소나무 두그루가 서 있는 조망처가 보이지만 보고 싶은 방향으로는 약간의 나무들로 인해 보이지 않기에 곧바로 내려 와 진행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낙엽송 지대를 지나 내려가니 생각지도 못한 멋진 편백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그 한가운데 등로를 따른다.

잠시 후 그 편백나무 군락지를 통과하니 곧바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삽치고개라 불리는 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자료를 찾아 보니 실제 삽치고개는 조금 더 진행하여 만나는 1차선 포장도로가 맞는 듯 하다.

이곳 고개는 예산군 예산읍 향천리와 응봉면 건지화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처럼 보인다.


삽치로 잘못 알려진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작은 묵밭이 보이고 곧이어 약간의 잡목들이 길을 막아서는 등로를 만난다.

잠시 후 밤나무들과 잡목들이 섞여 있는 148 무명봉에 오르고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벌목된 개활지가 나타나는데 등로 우측으로는 민가가 보이고 등로 한가운데 안부에는 수많은 벌통들이 가지런히 늘어선 모습도 보인다.

그 뒤로 걸어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나즈막하게 이어진 모습으로 이 산객을 부르고 있어 빨리 만날 것을 약속하고 출발한다.


개활지를 타고 걸어 내려가 안부를 통과하니 많은 벌통들이 꽃이 피는 봄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 벌통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몇기의 묘지들이 보이고 그 묘지들을 지나니 갑자기 절개지가 나타난다.

그 절개지를 우측으로 돌아 조심하며 내려가니 1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삽치고개이다.

삽티고개(삽치고개, 삽재고개)의 삽재에서 삽은 사이를 뜻하는 말로 삽재는 사이의 고개를 뜻하고 있다.

조선지지자료의 예산편에 삽치현(삽틔고개)이 산의리에 있다는 내용이 보이는데 삽티 마을이나 삽티교차로 등에서 그 지명을 엿볼 수 있다.

지금이야 그저 평범한 도로에 불구하지만 예전에는 이런 고개 하나 넘기위해 얼마나 힘들게 넘었을지 짐작도 못하는 곳들이 많으니 이곳 역시 같은 맥락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삽치고개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는 여전히 고속도로처럼 잘 나 있어 진행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잠시 후 바위들이 보이는 147.8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등로 좌측으로 찟겨진 물통 하나가 보인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몇기의 묘지지대가 보이고 그 끝자락에는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는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곳 갈림사거리에서 약간 등로를 헷깔려 해 우측 도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해 본다.


도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능선으로 들어가니 등로가 희미해지고 곧이어 거대한 예산추모공원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겨 본다.

생각보다 거대한 추모공원에 놀라워하며 살펴보니 다다음주 명절 날 들리지 못하는 가졹들인지 몇가족들이 벌써 묘지에 도착을 해 제를 지내고 묘지들을 손보고 있다.

예산군 추모공원에 들어가 보니 예산군추모공원은 산세가 아름답고 경관이 수려하며 안락한 지형에 경사도가 완만하고 마사토 토질의 묘지로써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되어 있다.

이 산객도 명절날 시골로 내려 가 부모님 묘지를 가꾸고 인사 한번 해야 하는데 시골에 사는 가족이 없으니 명절날이 아니면 들리지 못하는 몸과 마음이 불효자가 된 기분이다.


예산추모공원을 잠시 살펴보고 그 추모공원을 우측에 두고 잡목이 보이는 능선 지맥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다른 종주대들은 등로 좌측 아래로 따라오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을 한 듯 보이는데 그곳으로 내려가는 것이 더 큰문제처럼 보여 그냥 능선을 고집한다.

잠시 후 좌측 비포장 임도와 만나 무명 안부를 지나고 진행 방향 위쪽으로 많은 묘지들이 보이는 곳 우측 능선으로 방향을 바꿔 산행을 이어가 본다.

다시 나타나는 묘지를 지나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사과과수원이 보이고 그곳 아래로 응봉면 노화리와 예산응봉농공단지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잠시 후 넓은 비포장 임도를 만나 내려가니 팔봉농원산야초지대라 출입을 막는 작은 창고가 보이고 그 아래로 619번 2차로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에 도착을 한다.


평촌리와 노화리를 이어주는 619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의 도로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멋진 잣나무 몇그루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니 잡목들이 우거진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철조망이 쳐진 작은 콘테이너 박스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여름철 지독하게 자랐던 잡풀들이 뒤덮은 능선 상 등로에는 이제 한겨울 찬바람에 길을 내주고 고개숙인 122 무명봉의 모습이 이제서야 등로다운 등로를 열어주고 있다.

지나온 방향으로 방금 전 들렸다 길을 헤매였던 예산추모공원이 저 멀리 멀어지고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그 지독한 잡목봉을 통과한 후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약간의 잡목과 잡풀지대를 지나 과수원 상단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른다.

사과의 고장답게 어디를 가나 사과과수원을 만나고 그 과수원 위로 이어진 등로를 따라 오르니 이곳에도 역시 경작하다 중단된 묵밭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 묵밭을 넘어 오르다 등로 좌측 아래를 살펴보니 응봉면 마을들이 드넓은 들판에 모여 정겹게 살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응봉면은 충청남도 예산군 중부에 있는 면으로서 대체로 200미터 이하의 낮은 산지를 이루며 동부에 팔봉산(207미터)이 솟아 있다.

동남면계에 예당저수지가 있으며 이곳에서 흘러나와 동북면계를 흐르는 무한천 연안에 소규모의 평야가 분포하고 쌀 생산 이외에 사과와 배, 복숭아 등 과수재배가 활발하다.

문화재로는 도응선생 묘 일원(충청남도 기념물 제90호)과 지석리 고인돌, 표씨열녀비 등이 있고 당진영덕고속도로와 홍성과 온양을 연결하는 국도가 면내를 경유한다.

행정구역은 노화리, 지석리, 건지화리, 신리, 평촌리, 등촌리, 후사리, 입침리, 운곡리, 증곡리, 송석리, 주령리, 계정리 등 13개리가 있으며(법정리 기준, 행정리 기준은 17개리) 면사무소 소재지는 응봉면 노화조개내길 9이다.


사과 과수원 우측 가장자리를 타고 걸어가며 좌측 아래로 펼쳐진 응봉면 마을을 살펴본 후 다시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능선으로 진입하니 등로는 걷기 좋은 산책로처럼 부드럽다.

하지만 금새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등줄기에 다시 굵은 땀방울이 맺힐쯤 183.7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오래되어 사용되지 않고 있는 산불감시초소가 높게 설치되어 있다.

잠시 가쁜 숨을 헐떡이며 쉰 후 다시 천천히 평이한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 본다.


등로 좌측으로는 은사시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 뒤 저 멀리 팔봉산으로 이어지는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봉수지맥 마루금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벌목된 드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뚜렷한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지맥 등로는 좌측으로 꺽어 진행이 된다.

잠시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저 멀리 팔각정이 보이는데 조망도 좋지 않을 것 같아 좌측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팔봉산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이곳 등로 역시 드넓은 임도같은 등로가 펼쳐져 있어 진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등로 우측으로는 팔봉암이란 암자가 있다는데 팔봉암은 예산군 응봉면 운곡리와 후사리의 경계에 위치한 팔봉산의 제1봉 중턱에 위치한 암자로 130년전에 건립된 절로 태고종에 속해 있다고 되어 있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오르니 큰 참나무 두그루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검정 가림막이 쳐져 있는 능선에 도착을 해 살펴보니 특별할 것 없는 203 무명봉이다.

잠시 추억 한장 남기고 큰 고도 차이가 없는 평이한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 본다.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바위가 나타나고 그 바위를 우회하며 통과하여 뒤돌아 보니 잡목과 잡풀이 우거진 뒤 저 멀리 희미하게 거대한 예당저수지가 눈에 들어 온다.

의좋은 형제로 유명한 예당저수지는 이 산객의 고향과 그리 멀지 않기에 몇번인가 들렸던 기억이 있어 잠시 그 옛 추억을 꺼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아무 표식도 없는 207.1봉에 도착을 해 이곳에서도 추억 한장 남겨 본다.

그곳을 지나자마자 등로 우측 앞 저 멀리 드디어 에산읍내가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그 예산읍 우측 뒤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금오산과 관모산 그리고 안락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예산읍내와 그 뒷편의 산줄기 우측 저 멀리에는 금북정맥 마루금이 넘실거리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을 하니 커다란 참나무와 밤나무가 보이는 207.4봉인 예산의 팔봉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제대로 된 정상석이나 이정표도 없이 누군가 작은 아크릴판에 이곳이 봉수지맥의 팔봉산임을 알리는 이정판만 보이고 있고 그 옆으로 몇장의 선답자 띠지들이 걸려 있다.

예산 팔봉산은 충청남도 예산군의 중부 응봉면 동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207미터이며 팔봉은 여덟 봉우리로 되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여지도서(대흥)에 팔봉산이 관아의 북쪽 1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조선지지자료(대흥)에 팔봉산이 군 북쪽 10리 운곡리에 있다고 쓰여 있다.

조선지형도(대흥)에는 대흥읍치 북쪽에 팔봉산이 확인되는데 팔봉암 등에서 그 지명을 엿볼 수 있다.

언제 다시 이곳으로 오를 수 있을지 또 오른다 해도 오늘 같은 마음으로 오를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기에 조금 더 머물며 고운 추억 하나를 더 쌓아 본다.


팔봉산을 지나 낙엽 깔린 부드러운 능선을 타고 안부를 통과한 후 다시 오르니 잘린 소나무 등걸 하나가 보이는 무명봉을 넘고 평이하게 걸어가니 등로 좌측 나뭇가지에 출입금지 안내판이 붙어 있다.

잠시 더 부드러운 등로를 따르니 좌측의 주능선을 피해 우측의 우회 등로를 걸어가니 이곳 등로 역시 넓은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곧이어 시멘트 포장도로아 만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도로 건너편으로 열려있는 능선으로 들어가며 산행을 이어간다.


갈림삼거리 우측으로는 벤취수미터 2개도 보이는데 요즈음처럼 겨울철에는 효용가치가 없지만 여름철 무더운 계절에는 잠시 올라 불어오는 산바람 맞으며 쉬어가기 좋게 생긴 쉼터이다.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그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올라가니 예산313이란 삼각점이 박혀있는 207.7봉에 도착을 하는데 준.희 선생니은 이곳을 봉수지맥의 팔봉산이란 이정판을 걸어 놨다.

몇장의 사진을 담은 후 그 삼각점이 박혀있는 207.7봉을 지나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잠시 우측으로 약간 휘어지는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갑자기 눈 앞에 높은 철조망이 나타나는데 최근에 설치된 듯 철조망이 빛나고 있다.

뛰어 넘어볼려고 살펴보지만 뛰어 넘기는 어려워 보여 어쩔 수 없이 좌측 아래로 돌아 우회하니 철조망 넘어 좌측으로 이어지는 정상 등로와 만나 다시 정상적인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무슨 산약초를 재배하려는지 이곳 산하도 모두 파헤쳐지고 막혀 지맥 산행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철조망을 좌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하여 정상 등로와 만나 진행을 이어가니 이곳 등로 역시 여전히 소나무 등로가 펼쳐져 있어 힐링하는 기분으로 걸어 본다.

그렇게 한동안 소나무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갑자기 눈 앞으로 벌목지대가 펼쳐지고 그곳에서 우측으로 예산읍내와 그 앞으로 펼쳐진 광활한 평야지대를 살펴보는 재미로 걸어 보는 시간이다.

잠시 더 걸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아카시아 가시나무들이 앞을 가로막아 좌측으로 우회하다 보니 등로를 벗어나 어렵게 다시 아카시아 나무 군락지 한가운데로 나 있는 좁은 등로를 따라 어렵게 걸어 본다.


한동안 가시나무에 찔리며 어렵게 내려가니 드디어 아카시아 가시나무 군락지를 통과해 벌목지대로 내려서고 그곳에서 잠시 등로 우측 앞으로 펼쳐진 예산쪽 풍경과 그 뒤를 병풍처럼 둘러친 금오산 산줄기들을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아름다운 풍경을 모바일 폰에 담아 가족들에게 보내니 한마디씩 거들고 그렇게 다시 가족들의 응원을 받으며 오랫만에 맥 잇기 산행의 진수를 맛보는 시간이다.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드디어 무명 안부에 도착을 하고 그곳부터는 좌측으로 과수원을 두고 우측 가장자리를 따라 진행이 이어지고 있다.

사과의 고장답게 어디를 가나 사과과수원이 보이고 그 과수원과 관련된 건물들도 이어지고 있다.

안부를 지나 우측으로 올라가니 저 멀리 커다란 물통 하나가 햇살에 반짝이고 그곳을 목표삼아 오르니 그 뒤로 파란 물통 2개가 더 숨어 있다.

그 물통 3개를 지나며 잠시 지나온 방향으로 사진 한장 남겨본다.


물통 주위로 둘러쳐진 철조망에는 맥 잇기 산행을 하면서 자주 만났던 반가운 띠지들이 나란히 걸려있어 한번 확인하고 인사를 나눈 후 산행을 이어간다.

등로 좌측으로는 응봉마을 뒤편 저 멀리 충남도청쪽 빌딩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뒤로 많은 추억을 남겼던 용봉산과 수암산 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계속 이어지는 과수원 우측 가장자리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타고 걸어가니 작은 콘테이너 박스를 지나 우측으로 묘지들이 보이고 중앙 봉우리에는 잡목들과 잡풀들이 우거졌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103.8봉에 도착을 해 허기진 배를 채우고 진행하기로 한다.


다시 산행을 시작하면서 건강과 활력을 되찾다 보니 새벽 잠도 반납하고 산행준비를 도와주는 옆지기가 정성껏 싸 준 빵과 과일 그리고 따뜻한 물한모금으로 허기를 달래고 잠시 쉬면서 봉우리 우측 아래 잠들어 있는 창령조씨 묘지들도 알현을 해 본다.

잠시 쉬면서 허기를 달래고 다시 배낭 둘러메고 출발해 능선으로 들어가니 등로는 금새 다시 과수원 우측 상단부 가장자리로 이어지고 있다.

그곳에서 진행방향을 살펴보니 당진영덕간 고속도로가 과수원 지나 바로 지척으로 보이고 그 뒤로 삽교쪽 드넓은 평야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과수 수확철에는 진행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 등로를 타고 편안하게 걸어 내려가니 김해김공 묘지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당진영덕간 고속도로 갓길 옆으로 내려서게 된다.

달리는 차량이 많지 않은 틈을 타 늘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지나다니는 신양 10 km라는 도로표지판이 반가운 사진 한장을 남겨 본다.

당진영덕고속도로(고속국도 제30호선)는 충청남도 당진시를 기점으로 경상북도 영덕군을 종점으로 하는 대한민국 고속도로이다.

2007 11 28일에 충청북도 청원군과 경상북도 상주시를 연결하는 청원상주고속도로 (현재 이름:청주상주고속도로)가 개통되었고 2009 5 28일에는 충청남도 당진군과 대전광역시를 1시간으로 연결하는 당진대전고속도로가 개통되었으며 2009 12 18일부터 경상북도 상주시와 영덕군을 잇는 상주영덕고속도로가 착공되어 2016 12 26일에 개통되었다.

이제 짧은 거리를 우측에 당진영덕간 고속도로를 두고 걸어가니 고속도로를 통과할 수 있는 지하통로가 보이고 그 통로를 통해 고속도로를 통과한 후 우측으로 돌아 오르며 과수원과 민가 한채가 보이는 옆으로 진행을 하지만 진행하다 살펴보니 직진의 도로를 타고 무인텔 방향으로 진행을 하는 것이 더 좋을 듯 싶어 보이기도 하였다.

예산군은 충청남도의 중서부에 위치한 군으로 서쪽에는 덕산 도립공원이 있으며 동쪽에는 차령산지와 서쪽에는 가야산지가 남서쪽으로 달리고 있어 동부와 서부는 산지를 이루며 중앙부에는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이들 산지 사이를 오늘 산행 후 만나게 될 삽교천과 무한천이 북류하면서 유역에 예당평야를 형성한다.

삼국사기에 고산현은 원래 백제의 오산현이었던 것을 경덕왕 16년(757)에 개칭한 것으로 지금의 예산현이다라는 관련 기록이 처음 수록되어 있다.

고려사지리지에는 919년(고려 태조 2)에 지금 명칭 즉 예산으로 고쳤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는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해가는 과정에서 아산만 일대의 해상세력과 동맹관계를 맺었는데 이 일대의 민심이 왕건을 지지하고 견훤을 배척하였다.

따라서 왕위에 오른 다음 해에 오산을 예산으로 고치면서 태조에게 예절을 지킨 지역이란 의미의 지명으로 바뀐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시대에는 계속 현으로 존재하다가 1895년(고종 32)에 부제가 실시되어 홍주부 예산군이 되었고 1896년(건양 1)에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충청남도 예산군이 되었다가 1914년 예산군과 대흥군, 덕산군이 예산군으로 통합되면서 오늘에 이른다.


그 과수원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드디어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는데 이제부터 이 도로를 따라 발바닥에 불이 날때까지 한동안 걸어가야 하는 도로이다.

그 도로로 나가니 우측으로 화신이라는 공장 건물이 보이고 그 반대방향인 좌측으로 도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이제부터는 또한 수없이 많은 사과과수원을 만나는데 각 과수원마다 고유의 농원이름을 붙여 기억도 다 하지 못하는 수많은 농원들을 통과하며 이름 놀이도 해 보는 시간이다.

잠시 도로를 타고 걸어 진행하니 도로 우측으로 넓은 예산면허시험장이 보이는데 오늘은 휴일이라 그런지 면허시험도 없이 한가해 보인다.


예산면허시험장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니 도로 우측으로는 예산읍내가 조금 더 가깝게 보이고 그 뒤로 솟아 있는 금오산 줄기가 위에서 봐던 것보다는 훨씬 높고 장엄한 모습으로 예산을 지키고 있다.

잠시 더 걸어가니 첫번째 갈림사거리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면허시험장 사거리이다.

생각보다 차량 통행이 많아 기다렸다 횡단보도를 통해 도로를 건너 직진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작은 공장 건물들이 보이는 곳을 지나 다시 한적한 시골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이곳 역시 도로 좌우측으로 과수원들이 계속 이어지고 각 과수원마다 고유의 농장이름을 새긴 입간판을 도로변에 세워 홍보를 하고 있다.

잠시 후 단선의 장항선이 지나는 도로를 건너며 아래를 살펴보니 복선화 작업을 하기 위한 토목공사가 진행중인지 단선 철도 우측 옆으로 넓은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

장항선 철도는 경부선의 천안과 금강 하구의 익산 사이를 잇는 철도선으로 길이는 160.2 Km로서 본래 사설의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에 의하여 충남선이라는 이름으로 천안에서 온양 사이가 1922 6 1일에 개통되고 1931 8 1일에 전구간이 개통되었다.

1946 5월 사설철도의 국유화정책으로 국유화되었고 1955 6월에 장항선이라고 개칭하였다가 2008 1 1일에 장항에서 군산 연결선이 개통하면서 군산선 일부 구간(대야에서 익산)을 장항선이 흡수하였고 종착역은 장항역에서 익산역으로 변경되었다.

장항역은 기존 역사에서 북쪽으로 4.2 Km 떨어진 신역사로 이전하였으며 기존 역사의 이름은 장항화물역으로 장항화물역에서 새 장항역까지는 장항화물선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연변에는 온양, 도고 등의 온천이 있고 또 예산, 홍성, 광천, 대천 등의 주요 지방도시를 연결하여 충남 남서부 지방 교통의 중심을 이룬다.


장항선 철도를 건너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니 이곳 역시 많은 과수원이 보이고 그 과수원 출입문에는 고유의 농원이름이 붙어 있다.

좌측으로 미곡종합처리장을 지나 과수원 사이로 뚫려있는 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가니 조금씩 발바닥에서 불이 난듯 아파오기 시작하고 잠시 후 예산세무서 건물이 보이는 밭 옆에서 살펴보니 저 멀리 삽교지나 조만간 올라야 할 가야산과 고산지맥 마루금이 길게 이어진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사진 한장 남기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고 조만간 만나게 될 산줄기이기에 설레임도 함께 느껴 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도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예산읍과 그 뒤로 금오산 줄기가 아름답고 그렇게 조망을 즐기며 걸어 진행하니 금새 오가면 역탑리 임성교차로에 도착을 한다.

임성교차로는 예산군 오가면 역탑리에 있는 도로 교차로로서 역탑리는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고 농경지가 넓게 조성되어있으며 마을 서쪽으로 성리천이 흐른다.

역촌리와 탑동을 병합하여 역탑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골뜸, 방죽뜸, 사거리, 역말, 웃뜸, 탑말 등이 있는데 골뜸마을은 골짜기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방죽뜸마을은 마을에 방죽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사거리마을은 마을에 네 갈래의 길이 나 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역말은 역탑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조선 때 시흥도역승에 딸린 일흥역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웃뜸마을은 역말 위쪽에 있는 마을이란 의미의 이름이며 탑말은 탑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오늘 걸어 진행을 하면서 또 만나야 할 마을들도 보이는 역탑리에 대한 설명이다.


임성교차로를 건너니 우측으로 사과산지유통센터와 임성중학교 가는 안내판이 보이고 몇채의 건물들이 보이는데 그곳을 지나니 다시 도로 양쪽으로는 거대한 사과과수원이 펼쳐져 있다.

계속 이어지는 도로 양쪽의 농원들을 살펴보며 걸어가니 좌방리버스정류장을 지나 작은 사거리도 통과하고 오가초39회농원도 지난다.

예산군 오가면 좌방리는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고 농경지가 넓게 조성되어있으며 마을 서쪽으로 성리천이 흐르는데 방하리와 좌천리 일부를 합하여  좌방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방하다리, 자구내, 좌하, 세집매마을 등이 있는데 방하다리마을은 좌방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지형이 방아의 다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자구내마을은 좌방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며 좌하마을은 자구내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세집매마을은 좌하 남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세 집이 있었다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도로 우측으로 자동차운전학원도 지나고 원천3리 안내판도 통과한 후 평이한 시골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생각보다 춥지 않은 바람이 불어오지만 바람을 막아주는 방패막이가 없으니 제법 한기가 돈다.

원천3리는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고 농경지가 넓게 조성되어있으며 마을 동쪽으로 무한천이 흐르며 외천리, 내천리, 원형리, 전죽리를 병합하여 원형과 내천의 이름을 따서 원천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샘골, 밭새암골, 원형, 윗원형, 아래원형, 전죽마을 등이 있는데 샘골마을은 마을에 좋은 샘이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고 밭새암골마을은 샘골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형말은 원천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마을 지형이 둥글게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윗원형말과 아래원형말은 각각 원형말의 위, 아래에 자리하였다 하여 불리우는 이름이며 전죽마을은 살을 만드는 대가 많이 나는 지역이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이제 도로는 분천4리로 바뀌고 좌측으로 양신초등학교 들어가는 입간판이 보이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분천4리는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고 농경지가 넓게 조성되어있으며 마을 서쪽으로 성리천이 흐르며 자연마을로는 분천, 거룻들, 농소, 남부, 세집뜸마을 등이 있다.

분천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부나냇가가 되므로 부나내 또는 부난내라 하다가 분천으로 개칭되었고 거룻들마을은 분천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는 이곳에 나루여서 거룻배가 다녔다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농소마을은 조선 때 이곳에 농소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고 남부마을은 거룻들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6.25 사변 때 이재민을 이곳에 정착시키면서 시작된 마을이다.

세집뜸마을은 분천 서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세 집이 살았다 하여 불리우게 된 이름이라 한다.


수많은 농원지대를 지나니 이제는 도로 양쪽으로 제법 규모가 큰 한우축사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시골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히기 시작한다.

원천1리 이정석과 버스정류장을 지나 다시 농원과 민가들을 바라보며 걸어가니 대림농원 입간판도 보인다.

원천리는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고 농경지가 넓게 조성되어있으며 마을 동쪽으로 무한천이 흐르며 외천리, 내천리, 원형리, 전죽리를 병합하여 원형과 내천의 이름을 따서 원천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샘골, 밭새암골, 원형, 윗원형, 아래원형, 전죽마을 등이 있는데 샘골마을은 마을에 좋은 샘이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고 밭새암골마을은 샘골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형말은 원천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마을 지형이 둥글게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윗원형말과 아래원형말은 각각 원형말의 위, 아래에 자리하였다 하여 불리우는 이름이며 전죽마을은 살을 만드는 대가 많이 나는 지역이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조금은 지루한 도로를 타고 농원들을 살펴보며 한동안 걸어가니 두 발바닥에선 금방이라도 주저 않아 진행이 어렵다고 투정이라도 릴 듯 아파오기 시작한다.

내량리 버스정류장을 통과하고 오촌리도 지나가니 저 멀리 회전교차로 도로표시가 보이기 시작한다.

내량2리는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농촌마을이며 하포천이 흐르고 마을 전면에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목장뜸, 굴량, 북부, 안골, 쌍가랫골마을 등이 있는데 목장뜸마을은 전에 목장이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고 굴량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이고 북부마을은 굴량 북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이곳은 1953 10월에 난민 정착지로 지정되었다.

안골마을은 군량 안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고 절골마을은 절이 있었다 하여 불리우는 이름이라 하며 쌍가랫골마을은 쌍으로 갈라지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촌2리는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고 농경지가 넓게 조성되어있으며 마을 동쪽으로 무한천이 흐르는데 화천리, 신탄리, 아지리, 녹야리, 상촌리의 다섯 마을을 병합하였다 하여 오촌리라 이름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골뜸, 신탄, 아지, 화천, 녹야마을 등이 있으며 골뜸마을은 골짜기에 자리하였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고 신탄마을은 이곳에서 질그릇을 구워내는데 신탄()을 많이 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혹은 땅이 질어서 신바닥에 흙이 달라 붙으므로 때때로 신을 털어야 했다 하여 신탄이라 칭하였다고 전해진다.

아지마을은 오촌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못이 있었다 하여 못 지자를 넣어 지은 이름이며 화천마을은 청결한 샘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녹야마을은 아무골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회전교차로가 가까워지니 도로 옆으로 추사고택이란 도로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곳까지 거리가 4.8 Km 라는 표시가 반갑기만 하다.

오촌사거리라는 회전교차로를 지나 다시 도로 우측으로 예산읍과 금오산 줄기를 살펴보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도로 양쪽으로는 여전히 과수원 이정판들이 즐비하게 나타난다.

또 다시 나타나는 사거리교차로를 지나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해 이제부터 우측 제일 가장자리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추사고택이란 이정판을 보고 걸어가게 된다.

초림초등학교와 용산로라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 삼거리같은 사거리에서 제일 우측 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도로를 따르니 주유소와 오산3리 마을회관을 지나고 둔덕을 넘어 저 아래 갈림삼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방향으로 이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 본다.

잠시 더 내려가 오산3리 버스정류장이 보이는 갈림삼거리에서 좌측 직진의 도로를 타고 진행한다.

오산3리는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에 있는 리로서 완만한 구릉성 지대가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며 농지가 넓게 조성되어 있으며 마을 남쪽으로 작은 하천이 흐른다.

가사리, 산직리, 오지리를 병합하여 오지와 산직의 이름을 따서 오산리라 하였고 자연마을로는 도당골, 오리못, 피직이마을 등이 있는데 도당골마을은 도당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오리못마을은 오산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못이 있어 물오리가 많이 깃들였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피직이마을은 오리못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산직이라고도 불린다.


갈림삼거리를 지나 좌측으로 가스웨어라는 건물을 두고 걸어 가니 이제서야 과수원이 보이지 않고 전형적인 시골 풍경들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농협과 남해화학 물류창고를 지나 좌측으로 한선레미콘과 이제는 폐쇄된 대상주유소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거대한 축산단지가 나타나고 시골스런 냄새를 맡으며 진행하니 드디어 도로 좌측으로 화암사 갈림삼거리 도로 표지판이 나타난다.


우측 화암사 방향으로 꺽어 소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좌측으로 화암사에서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용산 등산로안내판이 서 있고 살펴 본 후 고민하다 화암사를 통해 용산으로 오르기로 결정한다.

다시 이어지는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갈림삼거리를 만나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우측으로 거승건설 건물이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니 저 멀리 화암사가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화암사에 들려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곳 화암사는 작은 사찰이지만 추사 김정희 선생과 관련이 있어 유명해진 사찰로서 추사 김정희 집안에 속한 절로 증조 김한신(영조의 사위)을 위해 영조가 하사한 땅 안에 화암사라는 절이 들어 있어 자연스럽게 추사 집안의 개인 절이 되었다고 한다.

화암사는 또한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1길에 있는 사찰로서 예산의 화암사에 가면 추사 김정희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화암사의 원 창건 연대는 알 수 없고 원래 절 뒤에 병풍바위 앞에 있던 절이 폐사되고 탑만 남아 있던 것을 화순옹주의 부군인 월성위 김한신이 중건하고 영조가 화암사라 명명했다 하는데 즉 영조 임신년(A.D 1752) 영조의 부마인 월성위 김한신이 이절을 중건하였으며 화암사라는 절 이름은 영조가 명명한 것이고 이 현판은 월성위가 쓴 것이다.

월성위는 화순옹주의 부군이고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이니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가 되고 화순옹주는 영조의 따님이니 비운의 왕자 사도세자의 누이동생인데 이러한 가계관계가 후일 김추사 일문이 왕권투쟁에 말려들어 죄없이 파멸을 당하게 되는 연유가 된다.

월성위가 이 절을 중건한 95년 후 헌종 병오년에 절이 또다시 훼손되어 승려들이 기거할 수 없게 되자 김추사 일족이 출자하여 다시 중건하였는데 그 건물이 현재의 화암사이다.




화암사를 둘러본 후 사찰 뒷편으로 오르니 바위에 김정희 선생 필적 암각화가 보인다.

대웅전 뒷편에서 오른쪽으로 보면 판각 암각으로 천축고선생댁이 세겨져 있는데 천축은 부처님이 계신곳이고 고선생은 부처님을 말하는 것으로 천축나라의 옛 선생댁이라는 표현이라고 하는데 추사 김정희의 불교에 대한 느낌을 잘 알수 있는 문구이다.
왼쪽편으로는 암각에 시경이라는 글씨가 세겨져 있는데 시상이 떠오를 정도의 경치라는 뜻으로 이곳의 빼어난 경치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요즈음 같으면 바위에 낙서를 하거나 암각화를 했다고 비난 받겠지만 대문호가 해 놓은 암각화이다 보니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으로 변하기도 한다.

화암사 뒷편의 암각화를 구경하고 등로로 복귀하니 다시 등로 진행 방향 반대쪽으로 소봉래라는 암각화가 있다는 이정표가 보여 잠시 들렸다 오기로 한다.

화암사에서 약 370미터 떨어진 두덕 넘어에 있으며 살펴보니 멋진 글씨체로 소봉래라고 적혀 있다.

소봉래추사제(김정희선생 필적 암각문)는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화암사의 뒤뜰과 근처 바위에 새겨진 추사필적으로 1998 12 24일 충청남도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하나는 화암사 뒤뜰의 바위에 새겨져 있고, 다른 하나는 화암사에서 약 50미터 떨어진 지점에 있는 바위에 새겨져 있으며 뒤뜰 바위에는 시경이라는 글씨가 다른 한 군데의 바위에는 천축고선생댁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둘 다 활달하고 거침없는 필체로서 호방한 추사체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희의 필적암각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북한산 북쪽 자락인 노고산 계곡에도 있는데(경기기념물 97), 이곳에는 몽재라는 암각문의 좌측 하단에 추사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소봉래라는 암각화까지 구경한 후 다시 화암사로 복귀하여 그 뒷편으로 나 있는 등로를 따르니 지금까지 잘 보이지 않던 멋진 바위들이 보이고 어느 바위에는 또 다른 암각화가 많은 글씨와 함께 새겨져 있다.

잠시 편안한 등로를 따르니 내포문화숲길이라는 안내판이 보니고 곧이어 95.8미터의 삼각점이 박혀있는 오석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그 앞에는 운동기구들이 보인다.

오석산(95.8미터)은 충청남도 예산군의 북부 신암면 용궁리에 위치한 산으로 고도는 95.8미터인데 옛날에 용이 나온 용총이 있어 용산이라 부른다고 전하며 산 모양이 앵무새처럼 생겼다고 하여 앵무봉이라고도 한다.

대동여지도와 조선지형도에 용산이 표시되어 있으며 용산에는 두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각각 앵무봉과 오석산이라고 한다.

앵무봉 아래에는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생가와 집안의 묘소가 있고 백송이 유명하며 또한 오석산 중턱에는 추사 집안의 사찰인 화암사가 있다.

오석산 삼각점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좌측 등산로로 내려 와 얼마 남지 않은 합수점을 향해 빠른 발걸음을 옮겨 본다.


오석산에서 내려와 잠시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드넓은 평야와 우측 저 멀리 예산읍내 그리고 그 뒤로 올려다 보이는 금오산이 보인다.

늘 자주 들렸던 예산인데 이제는 시골에 들릴 기회조차 별로 없으니 들리지도 못하는 고향이 되어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조만간 다시 들려 좋은 추억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다시 소나무가 아름다운 등로를 타고 솔향기 맡으며 한동안 걸어 진행을 하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바위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사각정자가 있는 비포장 임도에 도착을 한다.

그 옆에는 추사고택에 대한 설명판이 붙어 있어 잠시 읽어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추사고택의 안채에는 6칸 대청과 두칸의 안방과 건넌방이 있고 부엌과 안대문, 협문 광등을 갖춘 ㅁ자형 가옥이다.

안방과 건넌방에는 각각 툇마루가 있고 부엌 천장은 다락으로 되어 있으며 안방과 건넌방 사이의 대청은 그리 흔하지 않은 규모로서 이러한 ㅁ자형 가옥은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이른바 대갓집 형이다.

사랑채는 남쪽에 한칸과 동쪽에 두칸의 온돌방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대청과 마루로 되어 있으며 원래 안채와 사랑채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 조선시대 가옥 관념이었는데 이는 유교적 윤리관념에 근거한 것이다.

사랑채 댓돌앞에는 석년이라 각자된 석주가 있는데 이 석주는 그림자를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로 추사가 직접 제작하였다.

추사의 지혜와 고고함이 배어있는 추사고택 한채 한채를 걸쳐 걷다보면 기둥마다의 주련과 추사의 작품들과 손길에 감성과 지성이 충만해진다.


사각정이 있고 추사고택에 대한 설명판이 있는 비포장임도에서 잠시 설명판을 읽어 본 후 진행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니 화암사로부터 1130미터 거리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안부를 건너 다시 반대쪽 능선으로 오르니 조림되어 잘 가꿔지고 있는 소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내포문화숲길이라는 안내판이 보이고 그 아래를 살펴보니 추사고택까지 270미터가 남아 있다는 거리와 방향표시가 보인다.

고속도로같은 넓은 등로를 타고 소나무가 식재된 곳을 걸어가니 등로 우측 아래로 잠시 후 내려가 만나게 될 추사고택이 빤히 내려다 보인다.


등로 우측으로 추사고택을 내려다 보며 잠시 더 걸어가니 우측으로 추사고택으로 내려갈 수 있는 안부가 나타난다.

그 안부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금새 벤취쉼터들과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는 74.3미터인 용산정상에 도착을 해 주위를 살펴보지만 그 어느곳에도 용산 표시가 없어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 있는 곳으로 가 사진 한장 남기는 것으로 용산정상을 인증해 본다.

네이버 지식백과를 확인해 보니 용산은 충청남도 예산군의 북부 신암면 용궁리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74미터이다.

옛날에 용이 나온 용총이 있어 용산이라 부른다고 전하며 산 모양이 앵무새처럼 생겼다고 하여 앵무봉이라고도 하는데 대동여지도와 조선지형도에 용산이 표시되어 있다.

용산에는 두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각각 앵무봉과 오석산이라고 하며 앵무봉 아래에는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생가와 집안의 묘소가 있고 백송이 유명하다.

또한 오석산 중턱에는 추사 집안의 사찰인 화암사가 있으며 화암사는 추사 김정희 집안에 속한 절로 증조 김한신(영조의 사위)을 위해 영조가 하사한 땅 안에 화암사라는 절이 들어 있어 자연스럽게 추사 집안의 개인 절이 되었다고 한다.

정상을 알리는 표지판 하나라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올랐던 등로를 따라 안부로 내려가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추사고택을 살펴보러 걸어 내려가 본다.


    

안부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잠시 걸어 내려가니 추사의 선조와 출신배경이라는 안내판이 보이고 그곳에 쓰여 있는 설명판을 잠시 읽어 본다.

추사 김정희(1786-1856년)는 18세기 말에 태어나서 19세기 외척 세도 정치기에 활동한 조선 예원의 마지막 불꽃 같은 존재로서 조선이 고유 문화를 꽃피운 진경시대의 세계화에 성공한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진경시대의 학문 조류인 북학 사상을 본궤도에 진입시킴으로써 조선 사회의 변화 논리에 힘을 실어준 장본인이다.
그는 영조가 지극히 사랑한 화순옹주와 김한신의 증손자이자 왕실의 내척으로서 태어날 때부터 경축 분위기에 싸여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신비스러운 탄생 설화도 갖고 있다.

아버지 노경과 어머니 기계 유씨 사이의 장남으로 24개월 만에 출생했는데 그가 태어난 향저(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의 뒤뜰에 있는 우물물이 말라버리고 뒷산인 오석산의 원맥 팔봉산의 초목이 모두 시들었다가 그가 태어나자 샘물이 다시 솟고 초목이 생기를 되찾았다고 한다.

그가 어린 시절 서울 집 대문에 써 붙인 입춘첩의 글씨를 우연히 보게 된 재상 채제공이 그의 아버지에게 충고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 아이는 글씨로서 대성하겠으나 그 길로 가면 인생 행로가 몹시 험할 것이니 다른 길을 선택하게 하시오라고 했다고 한다.
천재성이 그의 인생에 빛과 그림자를 아울러 드리우고 있음을 노재상이 알아본 것이다.

그가 살다간 19세기 조선 사회는 18세기의 진경문화에서 벗어나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조선 문화의 보편성으로 흡수해야 하는 전환기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이다.


추사고택으로 들어가니 많은 여행객들이 집을 둘러보고 그들 틈에 껴 이 산객도 잠시 시간을 내 본다.

조선후기의 실학자이며 대표적인 서예가였던 추사 김정희 선생의 생가인 추사고택은 추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이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사고택은 약 80.5평으로 솟을 대문의 문간채와 ㄱ자형의 사랑채 및 ㅁ자형의 안채와 추사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는 가옥이다.

ㄱ자형의 사랑채는 남쪽엔 한칸과 동쪽에 두칸의 온돌방과 나머지는 대청과 마루로 되어 있으며 안채에는 6칸 대청과 2간통의 안방 및 건넌방이 있다.

이밖에도 추사 선생의 묘소와 증조부이신 김한신과 부인인 화순옹주의 합장묘 그리고 화순옹주 열녀문 즉 홍문이 있으며 또한 추사고택에서 북쪽으로 600미터쯤 올라가면 천연기념물 제 106호인 백송을 볼 수 있는데 백송은 중국북부 지방이 원산지로 우리 나라에 몇 그루없는 희귀한 수종이다.

예산의 백송은 추사선생이 25세 때 청나라 연경에서 돌아올 때 백송의 종자를 붓대 속에 넣어가지고 와서 고조부 김흥경의 묘 입구에 심었던 것으로 원래는 밑에서 50cm부터 세줄기로 자라다가 서쪽과 중앙의 두 줄기는 부러져 없어지고 동쪽의 줄기만이 남아서 자라고 있다.

1980년도에 줄기의 피해 부분을 외과 수술하여 치유하였고, 그 후부터는 철저하게 보호하고 관리하고 있다.


추사고택을 둘러보고 2차선 포장도로로 나와 좌측 화순옹주 홍문과 예산 용궁리 백송을 가리키는 좌측 방향으로 걸어 올라가니 잠시 후 좌측으로 홍문이 보이기 시작한다.

홍문은 조선 영조의 둘째 딸로서 13세에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 월성위 김한신과 결혼한 화순옹주의 열녀정문이다.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이기도한 김한신(1720-1758)은 벼슬이 수록대부 오휘도총관에 이르렀으며 부군이 38세의 젊은 나이에 별세하자 옹주는 음식을 전혀 먹지 않고 영조의 말림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길을 택하였다.

영조는 옹주가 부왕의 뜻을 저버린데 대한 아쉬움 때문에 정문을 내리지 않았으나 후대에 정조가 내렸으며 약 200여 평의 대지 위에 낮은 담장을 두르고 출입문의 정면에 홍문을 세웠다.

건물은 정면 8탄 측면 1칸으로 중앙의 오른쪽 칸에 문을 내었고 문의 전면에 홍살을 세우고 문 뒤에는 붉은 칠을 한 현판이 걸려 있다.

그 홍문을 지나 좌측으로 백송공원 이정석이 나타나는데 원산지가 중국인 백송을 추사가 직접 심어 보존하였다고 전해져 유명해졌으며 그 백송이 있는 곳에 공원을 만들어 추사의 작품들을 함께 전시하고 있는 공원으로 조성된 장소이다. 


그 백송공원 이정석을 사진에 담고 추사고택로라는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상혁농원을 지나 나즈막한 둔덕을 넘어간다.

둔덕을 넘으니 도로 좌측 저 멀리 백송공원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그곳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백송이 보이기 시작한다.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추사 김정희 고택(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798) 인근 백송공원에천연기념물 제물 106호 예산 용궁리 백송이 자리잡고 있다.
백송은 원래 국내에는 자생하지 않고 중국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천연기념물로는 예산 용궁리 백송을 비롯해 서울 재동 백송(8호), 서울 수송동 백송(9호), 고양 송포 백송(60호), 이천 신대리 백송(253호) 등 5그루가 존재하고 있다.
예산 용궁리 백송은 높이가 14.5미터 규모로 수령은 200년 정도로 추정되는데 뿌리 부분에서 세 갈래로 나무 밑동이 갈라져 나왔으나 두 군데는 죽고 한 가지만 남아 있으며 거칠고 뚜렷한 흰색을 띈 표면이 주변의 일반 소나무 등 다른 나무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 백송은 추사 김정희 선생이 직접 심은 것으로 전해지며 조선 순조 9년인 1809년 부친 김노경을 따라 중국 청나라에 갔다가 돌아올 때 백송의 종자를 갖고 와 고조부 김흥경의 묘 옆에 심은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잘 가꾸고 보존하여 오랫동안 삶이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래 본다.


백송을 구경하고 조금 더 걸어가니 백송공원(용궁2리) 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계속 앞으로 걸어 진행을 하니 우측으로 32번 당진 신택리 가는 도로가 분기되는 갈림삼거리 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그곳에서 직진의 고덕 오가 방향인 직진의 용산로를 버리고 우측의 추사고택로를 따라 신택리 방향으로 걸어 산행을 이어간다.


우측 신택리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니 저 멀리 거대한 축사단지가 보이고 그 주변으로 민가들이 늘어 선 풍경들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동안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용궁리의 드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는데 그 뒤로 흐르고 있는 삽교천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도로는 용궁리를 지나 신택리 방향으로 걸어가게 되는데 가끔 만나는 견공들이 이방인의 출현에 격하게 환영인사를 하고 있어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이어가 본다.


도로 우측에 보이는 거대한 축사건물을 지나 나즈막한 둔덕으로 올라가니 도로 좌측 과수원 방향으로는 높은 그물망이 쳐져 있다.

언덕을 넘어 오르니 다시 민가들이 보이더니 잠시 후 좌측으로 신택교회도 서 있다.

이곳 신택리는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에 있는 리로서 완만한 구릉성 지대가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농지가 넓게 조성되어 있으며 마을 동쪽으로 삽교천이 흐르고 자연마을로는 구양섬, 대골, 솔안말, 창말 등이 있는데 구양섬마을은 섬처럼 생긴 마을로 조선 때 귀양살이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대골마을은 신택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큰 마을을 이루었다 하여 대골이라 칭하였다.

솔안말은 대골 북쪽에 자리한 마을로 마을 앞에 소가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고 창말은 조선 때 창고가 자리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작은 갈림사거리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신택1리 버스장류장과 신택1리경로회관 건물도 나타난다.




신택리 버스정류장을 지나니 도로 양쪽으로 다시 비닐하우스들이 보이고 그렇게 끝도 없이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다시 발바닥에 문제가 생겼는지 따갑고 아파오기 시작한다.

잠시 후 우측으로 천안농원과 장애인복지시설도 지나 걸어가니 예당평야로4차선을 건널 수 있는 지하통로가 나타나고 그 통로를 통해 위를 달리는 예당평야로 4차선 포장도로를 통과해 본다.

 

그 지하통로를 통과하니 도로 좌측으로 다시 거대한 한우축사 건물이 보이고 좌측으로 당진IC와 합덕 그리고 우측으로는 오가와 신암으로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도로표지판이 서 있고 그 우측 뒤로는 무지개농원이 보인다.

잠시 후 도로 좌측으로 신택리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도로 건너편으로는 삽교천 합덕지구 하천환경 정비사업 건물도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삼양농원을 지나 계속 도로를 따르니 또 다른 갈림삼거리 도로표지판이 나타나고 이제 우측의 예산 아산 방향으로 방향을 바꿔 돌아간다.


도로 우측으로 신택2리 이정석을 끼고 우측으로 돌자마자 좌측으로 보이는 녹색 철망이 쳐져 있는 밭 가장자리를 타고 들어가니 파와 마늘 밭을 지나 신택리 마을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1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좌측으로 걸어 본다.

신종2길이라는 집주소를 바라보며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거대한 축사를 지나 이제 저 멀리 삽교천제방이 보이는 드넓은 논 경작지가 눈에 들어오며 오늘 산행도 막바지에 도달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벼가 수확된 논과 비포장 임도를 번갈아 타며 삽교천 제방뚝 방향으로 계속 걸어 들어가니 도로 우측 저 멀리 예산읍을 감싸고 있는 금오산 줄기가 빤히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제방뚝 가까이 접근하니 공사하는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제 삽교천 제방뚝이 바로 지척으로 다가온 풍경을 사진에 담고 불이 나 있는 발바닥을 달래며 봉수지맥 마지막 합수점으로 진행한다.

 

드디어 그 드넓은 논 경작지를 지나 삽교천 제방뚝으로 오르니 삽교천 건너 무한천 좌측에서 포크레인이 바쁘게 움직이며 공사를 하고 있다.

드디어 무한천과 삽교천이 만나는 신종2배수문에 도착을 해 오늘 산행이자 오랫동안 걸린 봉수지맥 산행을 잘 마무리 해 본다.

삽교천은 충남 홍성군 장곡면에서 발원하여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길이는 58.60 Km, 유역면적 1649.87 Km2이다.

청양군 비봉면에서 발원하여 예당저수지를 거쳐 오는 무한천과 예산군 신암면 하평리에서 합류하고 다시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하구 부근에서 천안시 광덕면에서 발원하는 곡교천과 합류한다.

예산평야와 아산평야 일대의 관개수원이 되며 하천 연안에 홍성읍과 삽교읍 등이 자리하는데 하구에 삽교천 방조제가 있다

무한천은 충남 청양군과 예산군을 북류하여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길이는 53.90 Km, 유역면적 467.54 Km2이다.

충남 보령시와 청양군 경계부의 차령산맥 서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가야산맥과의 사이의 단층구조선을 따라 흐르다가 예당저수지를 거친 뒤 예당평야를 관류하고 하구부에서 삽교천에 합류하여 아산만으로 흘러든다. 삽교천과 더불어 유역평야의 농업용수 공급에 큰 몫을 한다.
1979
10 26일 삽교방조제가 축조되고 담수호인 삽교호가 조성되어 연안 일대의 농업발전에 큰 역할을 한다.

연안에 예산읍과 도고온천이 있고 장항선이 예산읍에서 이 강을 가로지른다.

드디어 2016년 4월에 시작한 봉수지맥 산행을 거의 3년만에 3구간으로 나눠 무탈하게 마무리를 해 보는 시간이다.


무한천과 삽교천이 만나는 신종2배수문에서 마지막 추억을 남기고 예산택시를 불러보지만 이곳 뚝방을 알지 못하고 아산에 있는 삽교천만 찾고 있어 기차시간도 충분하기에 천천히 걸어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다시 뚝방길을 걸어 나와 여시울성지 이정석을 통과하니 드곡리 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잠시 배낭내려 짐정리를 해 본다.

정리 후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도로 좌측에서 승용차 한대가 나오고 염치없지만 손을 흔드니 세워져 편안하게 신례원버스 정류장까지 이동을 한다.

태워주신 차주분에게 감사 드린 후 잠시 기다렸다 예산행 버스를 이용하여 예산역 근처까지 이동한 후 예산역 앞 소머리국밥집에서 따뜻한 국물 한그릇에 이슬이로 봉수지맥 완주를 자축해 본다.





고향가는 기회를 봐 오르기로 하고 시작한 봉수지맥 산행이 3년 여가 지난 후에야 어렵게 완주하는 시간이 소중하기만 하다.

옆지기가 바꿔준 열차시간에 맞춰 열차를 타고 서울로 복귀하니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을 하고 한달전과 비교하여 피곤하지 않은 몸으로 가족들과 탁배기 한잔 더 나누며 또 다른 일주일을 마감해 본다.

이제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기로 하였으니 이번주에는 외국 손님과 새로운 Item으로 또 다른 사업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한국에 수입되는 긱의 시운전을 마친 후 가까운 지맥 하나를 다시 완주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90127 봉수지맥 마지막제3구간 비티고개-합수점.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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