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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기/서울의 산

호암산과 삼성산 야등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4.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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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서울시와 안양시의 호암산과 삼성산 일대

산행일자 : 2014년 01월 10일 (금요일)

산행날씨 : 올 들어 가장 추웠던 날씨였지만 바람이 없어 산행에 큰 지장이 없었던 날씨

산행온도 : 영하 10도에서 영하 02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호압사주차장-호압사-호압사 위 헬기장-깔딱고개-이정표(한우물 800m와 석수역 3.5 Km)-전망바위-헬기장-호암산 국기봉-

               전망데크-헬기장-K80 민주동산 이정표-제1야영장 헬기장-K78 제1야영장 이정표-장군봉(411봉)-

               K61 운동장바위위 이정표-철쭉동산 갈림 이정표(삼막사 1.6 Km, 시흥 1.5 Km)-일몰-

               삼.5 깔딱고개 삼거리 이정표(서울대 3.5 Km, 국기봉 0.3 Km)-국기봉 암벽-K48 국기봉 이정표-국기봉 정상-

               호암산 전망데크 및 정상에서 야경-호압사-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4.60 Km

산행시간 : 약 02시간 50분 (16시 00분에서 18시 50분까지)

               추운 날씨에 멋진 야경을 기대하며 천천히 진행을 하였지만 황사로 인해 시야 제한된 산행

 

 

본격적인 맥 잇기 산행에 앞서 호암산과 삼성산에서 야경을 즐겼던 시간들 

 

 

일찍 일이 끝나 집으로 돌아 와 내일 새벽부터 다시 전남 함평으로 내려가 진행하다 중단된 영산기맥을 오르려고 준비하다 밖을 보니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그 풍경에 배낭 둘러메고 호암산과 삼성산에 올라 야경이라도 담아보려 출발한다.

추운 날씨이기에 멋진 야경을 생각해 보지만 역시나 박무와 엷은 황사로 인해 제한된 시야 때문에 조금은 아쉬움이 남아 있는 야경이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호암산에만 올라 야경만 사진에 담고 내려오려 했는데 시간이 남아 삼성산 국기봉까지 왕복으로 다녀오며 생각지도 못한 멋진 사진들을 남길 수 있는 호사도 누려 본다.

다시 호암산 전망데크로 뒤돌아 내려 와 제한된 시야이지만 멋진 야경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고 나니 내일 새벽 출발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앞으로는 시간되는 대로 계속 야등이라도 즐겨보려 노력할 것이다.

 

 

빠르게 호압사 위 국기봉으로 올라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사진에 담아본다.

 

삼성산 주능선을 타고 오르다 깃대봉 못미쳐 능선에서 등로 우측 서산으로 떨어지는 하루 해를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젖어 보는 시간이다.

 

삼성산 깃대봉 국기봉에 올라 남쪽으로 서 있는 산성산 정상과 철탑을 사진에 담는 시간도 홀로 있다 보니 왠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난다.

 

호암산 전망데크로 내려 와 다시 반짝이는 서울 야경을 내려다 보니 박무로 인해 깨끗하지는 않지만 답답한 마음을 달래 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오늘은  일을 일찍 마치고 집에 돌아 오자마자 갑자기 호암산 해넘이와 야경이 생각나고 잠시 앉아 있을 틈도 없이 간단히 배낭 챙겨 곧바로 집을 나선다.

호압사 정문의 일주문을 통과 해 주차장까지 애마를 몰고 올라가 주차를 하지만 약간 날리는 눈으로 인해 하산 후 무사히 애마를 끌고 내려 갈 수 있을지 걱정도 되는 시간이다.

호압사 오름 도로를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어 급경사이면서도 이렇게 편안하게 오를 수 있다.

 

잠시 호압사에 들려 전경을 사진에 담아 본다.

호압사는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 삼성산 아래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종파의 사찰이자 대한민국 불교의 본산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조선왕조 3대 임금인 태종에 의해 건립되었다.

1841년(헌종 7) 4월에 의민이 상궁 남씨와 유씨의 시주를 얻어 법당을 중창하였고 1935년에 주지 만월이 약사전 6칸을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호압사는 관악산에서 이어진 삼성산의 지맥 금주산은 금천구의 진산이다.

산세가 북쪽을 바라보는 호랑이 모습을 닮아 일명 호암산이라고도 하는데 금주산에는 보습바위 또는 쟁기바위라고도 불리는 칼바위가 있다.

바위 틈새는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정도이지만 바위 안쪽은 성인 10여 명이 들어갈 정도로 넓어 전란 때마다 피난처가 되었고 실제로 6·25 전쟁 때 이곳에 숨어 지낸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호압사가 있어 혼동으로 호압산이라 하지만 정확히는 호암산이며 삼성산 자락이라 삼성산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고려시대에 금주라 하여 금주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금천구는 안양천을 금천한내로 불렸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호압사는 서울시 지하철 1호선 안양방면 석수역을 이용하여 찾을 수 있는 사찰이다.

1407년 조선왕조 3대 임금인 태종의 지시에 따라 1391년 무학대사가 창건한 비보사찰로 사찰명은 호랑이를 누른다 라는 뜻으로 지어졌는데 삼성산의 산세가 호랑이의 형상을 하고 있고 한양과 과천 등에서 호환으로 인한 피해가 잦다는 점술가의 말에 따라 호랑이를 누른다 라는 뜻의 호압을 본따 지었다.

별칭으로 호암사, 호갑사라고도 불렸다.

문화재로는 한우물 및 주변 산성지(사적 343), 순흥안씨 양도공파 묘군(서울유형문화재 74)이 있으며 한우물은 금주산 등성이에 있는데 길이 22m, 폭 12m, 깊이 1.2m로 작은 연못만큼 커 큰우물이란 뜻의 한우물 또는 천정이라 부르며, 용보라고도 한다.

한우물 부근의 삼국시대 산성 지역은 한우물과 함께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고 순흥안씨 양도공파 묘군은 삼성산 기슭에 있으며 조선 전기의 문신 안경공과 그의 후손들이 묻힌 묘역이다.

그 밖에 안흥행궁터, 시흥현관아터, 시흥6방 중 병방이 있던 병사터 등이 있다.

호압사 석불좌상(약사불), 서울문화재자료 8호) 등이 있고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요사채가 있으며, 대웅전 안에는 약사여래좌상과 신중탱화가 있다.

오랫만에 호압사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한번 해 보는 시간이다.

 

호압사 뒤 헬기장으로 올라 잠시 이제부터 올라야 할 호암산 바위봉을 올려다 본다.

늘 봄철에 연분홍 진달랚%ㅗㅊ이 만발하던 시절 오르며 탄성을 질렀던 곳이기에 그때의 추억도 떠올려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