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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제1차(산행완료)/백두대간 산행 후기

신백두대간 우듬지 제2구간 구영고개에서 아침재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2.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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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남도 하동군의 신백두대간 우듬지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2년 08월 11일과 12일 (1무1박3일 산행)

산행날씨 : 오전에 구름 끼고 비가 내렸으나 오후부터 뜨거운 태양에 고온다습했던 날씨

산행온도 : 영상 22도에서 영상 33도

산행인원 : 칠갑산 포함해 3450온누리산악회 총4명(총 14명중 10명은 남해 사촌에서 해수욕 즐김)

산행코스 : 구영고개(2차선 포장도로)-밤나무밭-218.1봉 갈림삼거리-191봉-길찾으며 대형 알바-감나무 밭-비포장 임도-33번 송전탑-비포장 임도-1차선 포장도로-(주)자연-(주)큐이-1003번 지방도로-남해고속도로 및 안심마을 빗돌-고속도로 굴다리 통과-안심마을회관-콩밭농장-옛고속도로 2차선 포장도로-아임허브농장-돌탑과 콘테이너-과수원-대나무 밭-잡목지대-전망바위(아침식사)-진양하공묘지-콘크리트군사도로-이정표(정상까지 2.8 Km)-이정표(정상 해맞이공원 2.6 Km 및 약수골랜드 1.4 Km)-우측 능선 진입-잡목지대-666봉 산불감시초소-콘크리트 군사도로-이정표(정상 1.9 Km)-이정표(정상까지 1.8 Km)-이정표(정상까지 0.8 Km)-KT 금오산 중계소-석굴암 이정석-금오산 해맞이공원-금오산(소요산) 정상석-이정표(금오산정상 0.1 Km)-나무계단-바위 전망대-바위1이정목-바위전망대-하동 금오산 마애불-마애불앞 이정표 이정목-이정표(청소년 수련원 3.2 Km와 대송 3.5 Km)에서 대형 알바-대송입구 1.7 Km 이정표-우듬지로 복귀-소나무3이정목-이정표(정상1.0 Km, 청소년 수련원 2.7 Km)-금오산11이정목-대형알바-큰바위4이정목-소나무5이정목-이정표(청소년수련원 2.1 Km 와 정상1.6 Km)-내리막길 시작점6이정목-이정표(정상 2.3 Km와 청소년 수련원 1.5 Km)에서 회귀-정상 우듬지 복귀-바위지대-급경사 내리막 등로-잡목지대-동물이동통로(2차선 포장도로)-비포장 임도-59번 송전탑-깃대봉 철쭉제단-관목과 억새지대-깃대봉 정상-지독한 잡목지대-등로 좌측으로 우회-정상등로 복귀-지독한 잡목지대-아침재-좌측 계곡으로 탈출-채석장 앞-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3.00 Km (신백두대간 우듬지 구간 13.00 Km와 알바로 약 10.00 Km)

산행시간 : 비가 내리고 고온다습한 날씨에 잡목을 헤치고 알바하며 어렵게 13시간 50분 (04시 55분부터 18시 45분까지)

교통편 : 40인승 대형버스로 이동 (총 14명중 4명은 우듬지 산행하고 나머지 10명은 남해 사촌해수욕장에서 해수욕 즐김) 

백두대간 우듬지란 ???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에 의해 백두대간이 우리나라의 모든 물줄기를 동서로 양분한다고 전제할 때 산경표의 시작점인 백두산에서는 압록강과 두만강이 동과 서로 갈라지나 그 끝점인 지리산에 와서는 동서로 가르는 물줄가 없이 엉거주춤하게 되어 버렸다.

나라 전체의 윤곽에 대한체계적인 지식도 없이 두 발로 걸어 올라 나라 전체의 물줄기와 산줄기를 도표로 만듦에 있어세세한 부분까지 언급하며 기록 할 수는 없었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나라 등뼈에 해당하는 백두대간의 마지막 지점이 어디냐를 놓고 많은 이견들이 나타나기 시작을 하였다.

산경표에서 마감한 지리산 이후의 산길에서 물을 만나 산과 산줄기로써의 기능을 잃고 산과 물이 만나 하나되는 지점까지의 산줄기에 관한 의견들인 것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하거나 또는 마무리하던 백두대간 산행을 언제부턴가 웅석봉에서 백운산으로 또는 진양호까지 연장을 하며 진행하기도 하였지만 그 경우에도 물길을 가르는 기능이 없어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축소된 듯 보인다.

지리산 천왕봉을 지나 가장 길게 연장하여 진양호까지 이어간다 하더라도 마루금 양쪽의 물은 모두 남강물로서 원래 산줄기를 정했던 물길이 동서로 가르는 기능은 없기 때문이기에 산줄기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는 지점까지 가거나 왔다는 의미는 있으나 물길을 가르는 분수의 역할은 영신봉을 넘으면서 이미 끝이 났기 때문이다.

 

신산경표에서는 백두대간을 영신봉에서 계속 남으로 이어 노량 앞바다에서 마감을 했는데 이럴 경우 낙동강과 섬진강을 가르면서 나라의 물줄기를 온전히 동과 서로 양분하는 산줄기가 가능하지만 이럴 경우 산경표의 낙남정맥과 일부 겹치게 되어 산경표의 일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는데 우듬지와 낙남정맥이 분기하는 옥산을 낙남정맥의 시작점으로 내려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다른 맥들처럼 이름 짓기가 용이하지 않는데 먼저 백두대간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별도의 지맥으로 볼 것인가 부터 쉽지 않다 보니 신산경표의 백두대간이나 백두대간 꼬리 또는 신백두대간이라 불려지기도 하는데 그 중에서 순수 우리말인 우듬지를 택해 백두대간 유듬지로 정하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다.

우듬지란 순수 우리말로서 나무 꼭대기의 가지 윗부분 줄기를 뜻한다. 

 

 

 

무더위속에 지독한 잡목과 대형 알바로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우듬지 산행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1백두대간과 9정맥 산행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나니 그 마루금과 관계되어 있는 논란거리가 몇군데 발생하고 많은 자료를 찾아 공부를 하다보니 그 나름대로 올라 봐야 할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어 진행 할 시기만 저울질 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 한북정맥과 관련된 이견에 대해 오두지맥과 도봉지맥 또는 신한북정맥을 모두 걸어 보는 것이였고 이미 무탈하게 완주한 상태이다.

두번째로 논란이 되고 있는 산줄기가 바로 신낙남정맥인데 자료는 모두 준비해 놨으나 거리가 멀고 또한 남쪽 지방이다 보니 더운 여름철 산행에 어려움이 예상되어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오는 계절에 오르기로 하고 잠시 뒤로 연기한 산줄기가 있다.

마지막으로 신백두대간 우듬지 구간으로 이곳 역시 남쪽 지방이고 특히나 오르는 산님들이 많지 않아 등로가 사라지다시피한 상태이기에 완벽한 산행 준비와 함께 여름이 아닌 겨울철이란 계절을 잘 선택해 오르기로 하고 산행 자료만 준비한 산줄기이다.

 

그렇게 준비하는 도중 함께 산행을 즐기는 산악회에서 마침 우듬지 산행 공지가 올라오고 볼 것도 없이 산행 신청을 한 후 조금 더 세심하게 자료를 준비하며 몸을 만들어 본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드디어 산행 출발일이 다가오고 커다란 배낭 두개에 비박 테트 및 먹거리를 준비하니 큰 가방 두개가 더 필요한 이삿짐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좋아하고 오르고 싶었던 산행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하지만 출발하기 전 아무런 통보도 없이 산행을 주관한 산행리더는 산행대신 남해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즐기며 쉬었다 올라올 예정으로 우듬지 산행은 이 산객의 리딩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버스가 출발을 한 이후에 알게 되어 무척 당황스런 시간이 되어 버렸다.

그런 계획이였다면 사전에 연락이라도 줘 조금 더 완벽한 산행 준비를 시키던가 아니면 산행 시 발생 할 수도 있는 혼란을 방지할 수 있는 산행의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라도 확실하게 줬으면 좋았을 것을 출발하면서부터 기분은 영 좋지 못하다.

 

그래도 즐기려 떠나는 시간이기에 참으며 산행 등로를 다시 한번 확인하다 보니 머리가 아파오고 즐거움보다는 걱정이 앞서며 조금은 함께 오르는 시간이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산행을 하면서도 산행 공지한 대장 없이 리딩하며 진행하다 보니 몸은 더 무거워지고 예상보다 더 우거진 지독한 잡목과 잡풀들로 인해 심신의 피로도는 더욱 빨리 누적되면서 온 몸에 심한 생채기를 만들고 말았다.

또한 확실한 리더가 없다보니 갈림길에서 난상토론이 이어지며 자꾸만 알바 시간과 거리가 늘어나고 그 또한 마지막에 완주하지 못하고 탈출까지 해야 하는 아쉬운 마무리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이런 산행 경험을 통해 많은 자기 수양을 하였으며 또한 경험하지 못하면 얻을 수 없는 고귀한 공부를 한 계기가 되였으니 앞으로 이어가는 산행에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지독한 잡목과 가시넝쿨이 우거진 늦봄부터 늦가을까지는 절대로 진행해서는 안된다는 현실을 몸으로 배웠지만 그 신백두대간 우듬지 산행을 마무리 하지 못하고 올라 온 시간이 두고 두고 마음의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조만간 함께 고생하며 걸었던 산친구들과 함께 여유를 가지고 오르며 남해쪽 풍경을 가슴으로 담아 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폭우도 만나고 다시 뜨거운 태양열을 받으며 포장도로를 타고 어렵게 올라 온 금오산 해맞이공원에서 앞으로 펼쳐진 깃대봉과 연대봉 그리고 그 남쪽으로 이어지는 남해지맥의 산군들을 바라보는 시간은 꿈결에서 헤매는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동심에 가득찬 그런 기분이였다.

엷은 안개가 드리워져 있어 선명한 풍경은 아니였지만 그렇기에 더욱 애틋한 마음으로 걸어 온 길을 뒤돌아 보고 또 걸어가야 할 마루금을 바르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은 아닌가 하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내려다 본다.

고통과 어려움을 이기고 올라 온 자만이 누릴 수 있고 상상할 수 있으며 왜 이토록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아름다울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며 그것을 느끼는 이 작은 산객이기에 더욱 가슴 활짝 펴고 그리운 남해바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슬이 한잔하고 일찍 잠이 들어 그런지 정확히 새벽 2시에 눈이 떠지고 배낭 정리와 짐 정리를 한 후 텐트를 접으니 벌써 새벽 3시를 넘기고 있다.

오늘 산행 거리가 만만치 않아 일찍 출발하려던 계획은 이미 물건너 갔고 조금은 느긋하게 아침 식사 준비 후 남해의 사촌해수욕장을 빠져 나가는 시간이 벌써 4시가 가까워져 가는 시간이다.

어렵게 1시간 가까이 달려 어제 내려왔던 어둠이 짙은 구영고개에 4명의 종주대를 내려주고 나머지 산행을 하지 않는 10명의 종주대를 태운 버스는 휭하니 떠나 버린다.

몇장의 사진을 남겨 보지만 어둠속 사진이라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이곳 구영고개는 몇년전만 해도 비포장 도로였나 본데 이제는 깨끗하게 포장된 19번 2차선 도로로서 진교면 관곡리와 양보면 박달리를 이어주는 고개인데 지도상에 나와있는 구영고개보다는 상고개란 지명이름으로 더 잘 사용되고 있는듯 보였다.

 

 

관곡리쪽에서 오르면서 좌측 축석 옆 비포장 임도를 타고 들어가며 몇십미터 알바를 한 후 뒤돌아 내려 와 도로 옆을 살펴보니 비포장 임도를 타고 들어가자 마자 좌측 능선쪽으로 또 하나의 비포장 임도가 나 있고 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면 우측에 밤나무 단지가 나타난다.

즉 늘 도로를 만나면 같은 방법으로 오르는 것처럼 이곳도 구영고개가 뚫리면서 정상 마루금이 절개되어 사면길로 내려섰다 다시 정상 등로로 복귀하기 위해 우측에는 밤나무밭을 좌측에는 19번 절개지를 두고 오르는 상황이 되였다.

잠시 밤나무밭의 거미줄을 헤치고 오르니 밤나무밭과 헤어져 주능선으로 붙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218.1미터 삼각점봉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지만 어둠속에 삼각점 하나만 있기에 오늘은 패스하고 좌측으로 나 있는 주등로를 타고 진행을 한다.

 

 

218.1봉 갈림 삼거리를 지나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잠시 벌목된 나무들이 등로를 어지럽게 만들고 이곳 190봉 근처에서 한동안 정상 등로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며 시간을 보낸 후 약간 좌측으로 흐르는 정상 등로를 어렵게 찾아 내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다시 잡목이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어제 걸었던 등로보다도 더 희미하게 사라지는 마루금을 찾아 어둠속에 자꾸만 시간은 지체되고 마음만 바쁜데 발걸음은 제자리만 맴돌고 있다.

 

 

정상적인 등로를 찾아 어렵게 주능선을 타고 진행하니 잘 가꾸지 않아 봉분에 잡목과 잡풀이 무성한 묘지 한기가 나타나고 바로 아래에는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 있는데 그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한동안 진행을 하니 우측으로 크게 90도로 꺽여 내려가는 좋은 등로가 열려있고 직진의 방향으로는 벌목된 나무로 길을 박아 놓은듯 보이는 지점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 좌측 숲속으로 출입금지 경고판이 잡목속에 숨어 있다.

이곳에서 직진의 벌목된 나무로 막아 놓은 등로를 타고 진행을 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막아 놓은 등로 때문에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해 근 1시간 이상을 이곳에서만 돌고돌아 제자리 걸음을 해 본다.

 

 

190봉으로 원위치를 두어번하고 또 다시 벌목된 나무로 막아 놓은 지점으로 내려갔다 우측 좋은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지도에도 없는 대나무밭이 나타나고 그 옆에는 물이 제법 고여있는 큰 습지도 나타난다.

그 대나무밭을 가로질러 다시 우측 능선 위로 오르니 묘지가 있는 지대로 뒤돌아 올라가고 그곳에서 다시 190봉으로 올라가 띠지들이 보이는 곳에서 도민을 해보지만 특별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사이 벌써 여명이 밝아오고 주위 사물이 보일 정도로 날이 밝아 왔다.

1시간 이상 헤매고 마지막으로 그 묘지 한기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해 벌목된 나무로 막아 놓은 곳 직진 방향을 유심히 살펴보니 저 멀리 선답자의 띠지 하나가 보이고 들어가 보니 제법 뚜렷한 등로가 열려있다.

잠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잡목사이로 진행을 하니 드디어 그렇게도 찾았던 감나무 밭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감나무 밭을 좌측에 두고 우측 능선쪽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한다.

 

 

그 감나무 밭을 만나 우측 능선 임도를 타고 진행하다 등로 좌측을 바라보니 관곡리와 고이리쪽 민가와 들판을 지나 저 멀리 낙남정맥 마루금이라 생각되는 산줄기가 흐르지만 확신은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등로 좌측 저 뒷편으로 보여야 할 이명산과 이명산시루봉도 찾아 보지만 보이지 않아 시원한 물 한모금으로 목마름을 달랜 후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해 본다.

 

 

계속 등로 좌측 아래로는 감나무 과수원을 두고 우측에는 능선을 사이에 두고 걸어가니 시멘트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타고 계속 진행방향으로 걸어가니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진다.

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어제 다녀온 이명산시루봉과 그 좌측으로 이명산 정상부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는데 그 정상부엔 안개인지 구름이 가려 보여주질 앟는다.

그래도 어둠이 사라지며 여명의 빛으로 기대하지도 않았던 멋진 조망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다.

 

 

다시 진행 방향인 앞쪽을 바라보니 지금부터 진행방향으로 서 있는 송전탑이 가깝게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하동의 금오산이 역시 하얀 안개인지 구름을 덮고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제 감나무과수원과 시멘트 포장 임도와 헤어져 골짜기 같은 등로를 타고 완만한 오르막 마루금을 오르니 등로 양쪽으로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퍌쳐져 있는데 한두방울씩 굵은 빗방울이 솟아지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배낭 커버를 씌우고 사과 반쪽씩 나눠 먹은 후 굵어지는 빗속을 뚫고 진행을 하니 넓은 임도 우측으로 33번 송전탑을 만난다.

그 송전탑 맞은편 능선쪽으로 띠지 몇개가 달려있어 혹시나 하고 살펴보니 들어가 진행할 수가 없어 그냥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기로 한다.

 

 

한참을 오르니 무명봉에 올라 비포장 임도가 갈라지는 갈림 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 임도 옆에는 출입통제안내판이 서 있다.

처음에는 우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들어가 보지만 아니여서 뒤돌아 나와 좌측으로 크게 돌아가며 이어지는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돌아가니 다시 눈 앞에 송전탑 머리부분이 보이고 몇장의 선답자들 띠지가 붙어 있다.

이곳 역시 살펴보니 정상 마루금이 있지만 송전탑 공사를 위해 만들어진 비포장 임도가 생기면서 본래 마루금은 사라지고 그 송전탑 공사용 임도가 일부 구간 마루금을 대신하고 있는듯 보였다.

그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계속 비를 맞으며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1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그 도로를 타고 진행을 한다.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계속 내려가니 비가 서서히 그치고 안개가 밀려왔다 사라지며 우측에는 벌통이 그리고 앞쪽 좌측으로는 높은 통신탑이 보이기 시작한다.

도로 좌측으로는 전봇대가 줄지어 서 있고 조금 더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거대한 공장이 나타나는데 콘크리트와 블록을 제조하는 주)자연이다.

그 건물 정문을 통과해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금오산 정상부가 살짝 얼굴을 내밀고 그 모습이 아름다워 똑딱이이지만 한장 남겨 본다.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큐이란 회사가 하나 더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문은 굳게 닫혀있고 요란한 플랭카드만 걸려있다.

 

 

계속 이어지는 그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앞으로 보이는 하동의 금오산을 올려다 보며 진행을 하니 금새 저 아래로 지나는 남해고속도로와 굴다리를 만나고 곧이어 진교와 양보를 이어주는 1003번 2차선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잠시 헷깔리는 독도를 하여 남해고속도로 굴다리를 건너 살펴보니 안심마을로 가는 길이 없어 다시 독도를 해 보니 저 남해고속도로를 건너지 말고 안심마을이란 큰 빗돌이 서 있는 곳에서 1003번 2차선 지방도로를 건너 고속도로를 도로 좌측에 두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직진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 올바른 진행 방향이다.

 

 

도로 좌측에는 위로 남해고속도로를 두고 우측에는 논을 바라보며 그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도로를 타고 전진하니 다시 남해고속도로를 건널 수 있는 굴다리를 만나고 그 굴다리를 건너 계속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타고 안심마을로 들어간다.

안심마을로 들어가는 도로에서 앞을 올려다 보니 안심마을 지나 금오산 오르는 산줄기에도 하얀 안개 구름이 피어 오르며 환상의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비가 내려 온 몸은 구질거리지만 뜨거운 태양열도 막아주고 이처럼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하니 그 나름 묘미가 있는 산행 시간이다.

 

 

남해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타고 안심마을로 들어가니 도로 좌우측으로 논들이 파란 모를 키우며 줄지어 서 있고 그 넘어에는 나즈막한 산줄기를 두고 있다.

오르며 올려다 보는 안심마을과 그 넘어 하얀 안개가 춤을 추는 하동의 금오산 원경이 참으로 아름다우면서도 황홀하다는 생각에 잠시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정상적인 등로를 찾아 앞에 보이는 금오산으로 오르면 된다는 생각에 벌써 마음은 완주를 축하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렇게 4명의 종주대가 한팀이 되어 급하지 않게 진행을 하지만 역시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모두들 힘들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우중에 안개가 자욱한 등로를 고온다습한 상태로 진행하려니 얼마나 힘이 들고 고통스러울까 잠시 미안한 생각이 다 들 정도이다.

다시 계속 안심마을ㄹ호 들어가니 민가들을 지나 도로 우측에 거대한 느티나무 한그루와 6각정자도 지나고 조금 더 오르니 임도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좌측 임도 좌측에 그렇게 찾던 안심마을회관과 노인정 건물이 서 있다.

그 앞 평상에 배낭 내려 놓고 마을회관 앞에 있는 수돗가에서 머리를 감고 물을 보충한 후 잠시 더 휴식을 취한 후 천천히 출발한다.

 

 

안심마을회관과 노인정 건물에서 나오자 마자 있는 콘크리트 임도를 타고 마을회관 뒷쪽으로 크게 돌아 올라간다 생각하는 도로를 타고 진행을하는데 민가에서 이 종주대를 바라보던 할아버지 한분이 이쪽으로 가면 금오산을 오를수 없으니 다시 마을회관으로 뒤돌아 내려가 이제 진행방향의 좌측 포장도로를 타고 위에 수로가 지나는 도로 위쪽으로 진행하라고 알려 주신다.

분명 이 산객이 준비한 산행 자료에는 이 도로가 마즌데 할아버지의 간곡한 추천에 의해 다시 뒤돌아 내려가 포장도로를 타고 올라 이곳에서도 한동안 알바를 경험한다.

안심마을회관과 노인정 건물에서는 무조건 좌측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올라 안심마을회관 건물 뒷쪽으로 크게 돌아 오른다는 기분으로 올라야 정상 등로였던 것이다.

 

 

할아버지 말을 듣고 우측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 위로 콘크리트 수로가 지나고 계솏 민가 옆으로 난 도로를 타고 오르니 다시 삼거리 갈림 임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좌측 콘크리트 임도를 타고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밤나무밭이 나타나며 곧바로 콩밭이란 전통 장 담그는 농장이 나타난다.

그곳을 지나 오르니 옛고속도로인 2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이곳에 있어야 할 아임허브 농장 입간판이 보이지 않아 한동안 알바를 한다.

도로를 건너면 작은 개울을 건너 비포장 임도가 직진의 능선 방향으로 나 있고 도로 주위를 아무리 찾아 봐도 아임허브 농장을 찾을 수 없어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올라가 본다.

도로 우측에는 다시 콩밭 농장 이정표가 서 있고 한동안 오르니 도로 좌측에 약수골모텔 건물이 보이는데 사용되지 않은지 오래된 듯 폐허가 되어 버렸다.

 

 

계속 그도로를 타고 오르니 갑자기 도로 좌측으로 산악자건거 도로가 나 있고 저 앞을 올려다 보니 차량 통행을 가로막는 차단기도 설치되어 있다.

그 도로 안쪽 우측으로 산행 들머리도 보이는데 이곳으로 올라도 금오산 정상으로 오르는데 전혀 문제는 없을듯 한데 문제는 정상 등로를 타고 오르지 못한다는데 있다.

함께하는 4명의 종주대 모두는 정상 등로를 찾아 올랐으면 하는 눈치이기에 114로 전화를 걸어 아임허브 농장에 직접 전화를 하니 올라갔던 도로를 타고 다시 뒤돌아 내려와 약수골모텔과 콩밭농장을 지나 계속 내려오면 도로 우측에 아임허브 농장 입간판이 서 있다고 알려 준다.

 

 

아임허브 농장 주인이 알려준 대로 진행을 하니 금새 도로 우측으로 아밍허브 뒷문 이정표를 만나고 조금 더 내려가 보니 커다란 정문에는 높게 세워진 이정표도 보인다.

혹시나 하여 정상 등로를 찾아 보니 작은 아임허브 농장 출입문이 있는 곳 바로 앞 옛날 고속도로를 건너 잡목이 우거진 밤나무 단지쪽이 올라오는 정상 등로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종주대가 진행한 콩밭쪽 콘크리트 임도를 타고 옛 고속도로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우측이 아닌 좌측 도로를 타고 내려와 아임허브 농장으로 들어가며 진행을 하는 것이 더 편할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잠시 아임허브농장쪽으로 나 있는 콘크리트 포장임도를 타고 올라가니 돌탑이 있는 곳에서 몇분이 일을 하고 계시고 인사를 나눈 후 등산 때문에 잠시 들렸다 하니 이곳은 등로가 없다며 걱정스런 눈빛을 보낸다.

일일이 설명을 해도 알 수 없는 산행이기에 그냥 이곳으로 올라야 할 이유가 있다며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돌탑에서 우측 녹슬어가는 콘테이너 박스쪽으로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콘테이너 박스를 지나 과수원 둑으로 오르니 좌측으로 매실마무들이 식재된 농장에 원형 돌탑이 보이고 그 방향으로 진행해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올라 능선으로 오르니 우측으로 희미한 등로가 나 있다.

이슬이 풀섶에 내려 앉았다 종주대가 지나니 다시 물방울을 튀겨 등산복과 등산화를 흥건히 적시고 능선으로 들어가니 대나무 밭이 이어진다.

그 대나무 밭을 뚫고 완만한 오르막 등로릍 타고 오르니 선답자들의 띠지가 보이고 곧이어 편백나무 숲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 편백나무 군락지를 지나면서 등로가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벌목된 나무들이 등로 이곳저곳에 너부러져 있어 산행을 하는데 여간 어렵지 않다.

등로는 자꾸만 직진의 정상적인 등로로 진행을 못하고 좌측으로 돌아가며 진행된다는 느낌으로 오른다.

직진의 정면으로는 벌목된 나무들과 잡목이 우거져 도저히 뚫고 오를 수 없는 난해한 등로의 연속이다.

그렇게 진행하다 보면 등로 자체도 바위 등로로 변해면서 더욱 고통과 어려움을 가중 시킨다.

 

 

바람 한점없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온 몸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은 마치 빗방울이 떨어지듯 등로를 적시고 있다.

잡목과 단풍나무들이 길을 막으며 자꾸만 종주대의 발길을 좌측으로 좌측으로 밀어 내고 등로도 없이 띠지도 없는 곳을 헤치며 그저 감만으로 오르니 큰 바위가 앞을 가로 막는다

그 바위사이로 진행도 하고 또 바위를 우측 위에 두고 좌측 아래 사면 길로 진행도 해 보는 정말 웃기는 산행을 계속 이어가 본다.

속마음으로는 왜 방금 전 옛 고속도로에서 산악자건거 도로를 타고 금오산으로 오르지 않했을까 후회 막급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짧은 바위 너덜 구간도 지나고 다시 잡목이 얼굴을 때리는 난해한 등로를 타고 정말 힘들고 고통스럽게 오르니 갑자기 벌목되어 하늘이 열리는 등로에 도착을 하고 저 앞을 보니 소나무와 바위가 멋진 조화를 이루는 무명봉이 올려다 보인다.

힘을 내 그곳 바위쪽으로 오르니 이제서야 사라졌던 띠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약간의 바람이 불어 오는 그곳에서 후미를 기다렸다 늦은 아침 식사를 즐기고 출발하기로 한다.

다시 옷을 벗어 짜리 방금 전 물속에서 휑궜다 짜내는 물기처럼 주르륵 흘러 내린다.

온 몸과 등산복이 완전 흥건히 젖어 버린 시간이다.

 

 

식사 후 여유롭게 쉬면서 전망 바위에 올라 하얀 안개가 자욱한 안심마을쪽을 내려다 보니 생각보다 조망이 조금 터지고 이제서야 제대로된 등로를 확인해 본다.

가운데 보이는 안심마을 우측 능선 옆으로 올라와야 하는데 우리 종주대는 좌측 능선 옆 도로를 타고 올라 옛 고속도로에서 헤매다 어렵게 아임허브 농장을 통해 올라 온 풍경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진행 후 내려다 보면 이렇게 쉽고 편안한 등로가 왜 그곳에서는 보이지도 않고 또 엉뚱하게 진행이 되는지 이해가 안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동안 더 휴식을 취하고 다시 바위전망대가 아닌 좌측의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잡목이 다시 앞을 가리고 잡목을 뚫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니 진양하공 묘지가 나타난다.

봉분에는 잡목과 잡풀만 무성하게 자라나 후손들의 손길만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 묘지를 지나 오르니 갑자기 잡목이 사라지고 단풍나무들이 빼곡히 등로를 채우는데 띠지도 보이지 않고 등로도 확실하지 않아 주의를 기울여 등로 찾기를 해 본다.

 

 

단풍나무 관목들 사이 저 앞으로 띠지 하나가 반짝이고 그 띠지를 따라 잠시 오르니 드디어 군사도로를 만나 잠 시 쉬어 간다.

그곳에 몇장의 온누리산악회 띠지를 븥여 도로를 타고 반사경이 있는 방향인 우측으로 쉽게 오를 수 있도록 해 본다.

강렬한 햇살이 비추며 서서히 지열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온 몸으로 그 더위를 느끼는 시간이다.

물 한모금 마시며 옷매무새 만지며 배낭 정리하고 다시 뜨거워지는 그 포장된 군사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완만하게 오른다.

 

 

완만하게 시작된 군사도로는 서서히 가파른 오르막으로 변하더니 이곳에서의 산행 역시 많은 땀방울을 요구하고 있다.

가끔 차량을 이용해 금오산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많은 땀을 흘리며 말도 안되는 몰골로 걸어 올라가는 종주대를 바라보며 참으로 불쌍하다는 표정들을 짓는다.

그렇게 한동안 오르니 도로 우측에 현제 4 Km오셨습니다 정상까지 2.8 Km 남았습니다란 안내판이 보이는데 어디에서부터 4 Km를 올라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안내판에서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도로 우측에 전봇대 하나가 서 있고 그 안쪽에 해맞이정상까지 2.6 Km 남아있고 약수골랜드에서 1.4 Km 올라왔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살펴보니 아래 옛 고속도로 2차선 도로에서 산악자건거도로를 타고 오르면 만나는 등로는 아닐까 생각되는 지점이다.

아마도 이곳으로 올랐다면 최소 1시간 이상 시간이 단축되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곳에서 군사도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을 타고 진행한다.

 

 

잠시 능선을 타고 오르니 가시나무와 잡목이 등로를 채워 진행에 어려움을 주지만 금새 억새풀과 키 큰소나무가 펼쳐지며 그림같은 등로를 열어 준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걸어 오르니 이제 제법 시간이 지나며 지열이 올라오는지 온 몸이 뜨거워지고 자꾸만 그늘을 찾게 된다.

조금 더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우측은 잡목이 좌측은 식재된 소나무처럼 확연히 다른 두모습을 한 등로를 타고 오르게 된다.

 

 

계속 소나무 숲과 잡목을 헤치고 가시에 찔리며 오르니 키 큰나무가 사라지고 키 작은 관목과 억새풀이 등로를 채운 민둥의 등로가 열린다.

머리 위에서 뜨겁게 불타고 있는 태양 빛이 너무나 강렬해 준비한 수건으로 머리와 얼굴 그리고 목을 가린채 조금은 빨리 올라 본다.

오르다 등로 좌측을 바라보니 이제 하동의 금오산 정상부도 손에 잡힐듯 가깝게 자리하는데 그 정상부엔 인공구조물을 이고 안개속에 잠겨 있다.

보기에는 가깝지만 실제 걸어 오르려면 한시간은 다시 소요가 될 것이다.

 

 

조금 더 걸어 급경사 등로를 오르니 등로 좌측 소나무 가지 사이로 고룡리 원동쪽 마을과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데 안개로 인해 희미하다.

그렇게 걸어 오르니 드디어 산불감시초소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666봉에 올라 불어 오는 바람을 맞으며 주위 풍경을 살펴 본다.

북서쪽으로 구 남해고속도로인 12번 지방도로와 남해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양보쪽 민가와 나즈막한 산줄기들 그리고 파란 들판이 한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하늘을 뒤덮은 하얀 비구름이 서서히 물러가는 모습도 함께 어울려 멋진 환상의 조망을 보여주고 있다.

 

 

동쪽으로는 깊은 골짜기를 이루며 내려간 원동저수지와 대원사가 보일듯 말듯 앉아 있고 그 넘어 원동쪽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진교쪽 마을을 찾아 보지만 마을은 보이지 않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낙남정맥 마루금 역시 찾아 보지만 제한된 조망과 가시거리로 인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곳 역시 하늘엔 먹구름이 물러나며 조금씩 하늘이 밝게 열리는 모습만이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많은 시간 이곳 정상에서 그림같은 풍경과 황홀한 조망을 즐긴 후 따가운 햇살을 피해 그늘로 들어가니 그 그늘로 들어가는 길목 우측 위 나뭇가지에 준.희님이 붙여 놓은 백두대간우듬지 666봉이란 이정표가 반갑기 그지없다.

나무 그늘로 내려가 녹슨 쇠철조망이 등로 좌측에 보이는 앞에 앉아 간단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물 한모금 마신 후 다시 잡풀이 무성한 등로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다시 배낭 메고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또 다시 군사도로인 1차선 포장도로와 만나고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올라간다.

앞으로는 길게 늘어진 군사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끝자락 저 멀리 통신탑과 금오산 정상의 군사시설이 조금 더 가깝게 다가와 있다.

이제 이 군사도로를 타고 저 금오산 정상까지 걸어 올라가야 할 시간이다.

서서히 햇빛이 들기 시작하고 거리는 짧아졌지만 진행하기에 얼마나 어려운지 알려주는듯 하다.

 

 

도로를 타고 한동안 완만한 오르막으로 걸어 올라 본다.

도로 좌측으로는 지나온 마루금이 시원하고 원동저수지와 대원사가 간간히 내려다 보인다.

그렇게 걸어 진행하니 앞쪽 좌측으로 안개가 춤을 추는 금오산 정상부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조망을 즐기며 도로타고 오르니 다시 도로 우측에 정상까지 1.9 Km 남아 있고 약수골랜드에서는 2.1 Km 올라왔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에서 좌측의 군사도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진입해 진행해야 하지만 큰 의미는 없기에 그냥 군사도로를 타고 오르기로 한다.

 

 

우측 능선을 버리고 계속 이어지는 군사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군데 군데 약간의 공터를 마련해 놨고 그곳으로 들어가 뒤돌아 보니 안심마을에서 힘겹게 올라 도착한 전망바위 위 군사도로에서부터 이곳까지 이어진 우듬지 마루금과 그 아래로 뚫려있는 군사도로를 따라 이어져 있는 전봇대가 참으로 인상적으로 남겨진다.

이렇게 바러보는 방향에서 군사도로 좌측의 주능선을 타고 진행해야 되겠지만 새로운 군사도로가 나면서 주능선은 다니는 사람이 적어 잡목으로 인해 이제 도저히 다닐 수 없는 일반 산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계속 군사도로를 타고 오르니 이제 제법 많은 차량들이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이 군사도로를 타고 금오산 정상으로 오르고 내리는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 온다.

여전히 그 차량을 타고 오르는 사람들 눈에는 아주 불쌍한 산꾼처럼 여겨졌는지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이곳을 걸어 오르는 이 종주대들 눈에는 차량을 타고 오르는 사람들이야 말로 조금은 아돼 보이는 그런 시간이다.

계속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암사로 들어가는 안내판이 서 있고 곧바로 우측 시멘트 도로를 타고 통신탑으로 오르는 도로가 개설된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 삼거리 앞에는 거북이상 수도가 있고 졸졸졸 흐르는 물방울이 생각보다 금새 물통을 채워 준다.

시원하게 물 한모금 받아 마신 후 그 아래 고인 물로 수건을 빨고 머리에 뿌리니 조금은 살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제 6 Km를 올라 왔고 정상까지는 0.8 Km 가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보고 다시 군사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가 우측으로 꺽여 올라가는 지점 좌측으로 헬리포터 그림이 보이고 철조망으로 막아 놓은 작은 공간이 나타나는데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다.

이제 정상 해맞이공원의 나무데크가 빤히 올려다 보이는 도로로 진입해 조금 더 힘을 내니 드디어 도로 좌측으로 석굴암 내려가는 큰 빗돌이 서 있는 모습이 보이고 그곳에서 도로 좌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하동 앞바다인 남해바다를 내려다 본다.

안개속에 갇힌 하동의 바닷가 마을 우측 저 멀리 남해대교를 지나 남해의 산들도 하얀 안개속에 희미하지만 그 존재감을 알려 온다.

 

 

도로를 타고 오르며 해맞이공원과 그 아래 좌측으로 펼쳐진 남해의 다도해를 바라보며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드디어 금오산과 소요산이라 적어 놓은 커다란 정상석이 있는 곳에 도착해 봉수대와 함께 사진을 남겨 본다.

실질적인 금오산 정상은 조금 더 올라가야 하지만 공군부대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기에 조금 아래인 이곳에 정상석과 봉수대 안내판을 세워 둔듯하다.

그 옆에는 시원한 수돗꼭지까지 준비해 둬 물을 몇 모금 마시며 목마름을 달래 본다.

금오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은 전국적으로 몇군데씩이나 있고 또한 모두가 이곳 하동의 금오산보다 그 명성이 자자하지만 이곳 하동의 금오산 전망처럼 바다쪽 전망이 백미인 곳은 없다.

지리산의 연봉들이 물결치는 북쪽 사면도 좋지만 남해 쪽빛 바다를 죄다 두 눈에 담을 수 있는 남 사면이 훨씬 매혹적이다.
하동 옥산에서 분기한 산줄기가 섬진강 망덕포구로 빠져 들기 직전 한 차례 솟구친 산이 금오산으로 고도는 해발 849미터이다.

북쪽으로 해발 1000미터를 훌쩍 넘는 고봉들이 즐비한 하동 땅에서 금오산의 높이야 그리 대단할 게 못 되지만 등산을 할 경우는 얘기가 달라진다.

바다를 끼고 있어 해발고도 0미터부터 올라야 하기에 여느 1000미터급 고봉에 견줄 만큼 힘든 것도 그런 까닭이다.
정상 나무데크에서 하산길로 접어들면 왼쪽으로 너덜지대가 장관을 이루는데 여기에서 15분쯤 내려가면 봉수대다.

고려 헌종(1149년) 때 설치됐다고 전해지며 과거 봉수대 파수꾼들이 사용하던 거처인 석굴암은 지금은 불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볼품없는 집이지만 전망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정상석 위에는 금오산 봉수대에 관한 설명이 되어 있는데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하며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빚으로 신호를 보냈다.

하동 금오산 봉수대는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 있는 해발 849미터의 금오산 능선에 있는데 이곳은 남해안의 한려수도가 정면에 보이는 전략상 요충지이다.
봉화터와 봉수대의 형태가 잘 남아있는데 둘레 200미터 정도의 석축이 남아 있고 봉수대 안에는 봉수군이 머물던 곳으로 보이는 석굴이 있다.

석굴은 높이 3미터와 가로 3미터 그리고 세로 2미터로 그 위에는 큰 돌로 막은 듯한데 지금은 부처를 모신 불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남아있는 봉돈은 길이 2미터와 폭 1.5미터의 타원형으로 봉수대의 아랫쪽에 입구가 있어 불을 점화하게 되어 있다

그 봉수대 설명을 읽고 다시 해맞이공원으로 내려오니 이제부터 걸어 내려가야 할 우듬지의 마지막 두 봉우리인 깃대봉과 연대봉이 남해바다를 끌어 안고 어서오라 손짓하는 듯 하다.

 

 

이제 해맞이공원에서 남아 있는 캔 맥주로 의식을 치른 후 떠나기 아쉬워 몇장의 사진을 남기며 또 멋진 조망을 내려다 본다.

우측으로 우듬지 마루금을 두고 좌측으로 남해바다가 한누에 들어오고 돌섬과 무도 그리고 목령도와 고도 닽은 아기자기한 섬들이 하나의 점처럼 흩어져 있다.

그 안쪽으로 생활의 터전을 삼으며 살아가는 어촌 민가들의 풍경 또한 한폭의 그림이 되어 이 산객의 가슴에 남겨지는 시간이다.

참으로 아름답고 황홀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에는 다시 내려가 석굴암 하산 내리막 등로를 타고 우측으로 빙 돌아 우듬지 마루금으로 복귀하는줄 알았는데 금오산 정상석 좌측의 도로를 타고 위로 조그만 더 올라가면 도로 좌측으로 금오산 마애불 하산 이정표가 서 있고 그곳을 통해 내려가면 덕천마을 3.45 Km 및 금오산 정상 0.1 Km 이정표가 서 있고 그곳에서 덕천마을 방향으로 내려가면 된다.

생각보다 최소 30여분 이상 시간을 단축시킬 것 같아 괜시리 기분 좋아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계속 이어지는 등로 우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대송리와 송문리쪽 마을과 그 앞으로 펼쳐진 남해 바다를 조망하는 기분 또한 즐겁기만 하다.

그러다 진행해야 할 우듬지 마루금도 한번 더 내려다 보고 가야 할 등로를 그려보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잠시 후 내려가니 가파른 통나무 계단이 나타나는데 그 위 나뭇가지에 먼저 진행한 휴가팀들이 3450온누리백두대간 제3기 띠지를 보기 좋게 걸어 놓고 내려갔다.

그 역시 기분 좋은 띠지이다.

그렇게 내려가니 오랫만에 큰 바위를 만나 잠시 사진에 담아 본다.

 

 

다시 바위가 실증나면 바다 한번 더 내려다 보고 가야할 우듬지 마루금도 내려다 본다.

현위치 번호 바위1이정목도 지나고 잠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다시 잡목들이 사라지고 멋진 조망을 즐길 수 있는 장소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잠시 우측으로 뒤돌아 보니 그곳에 높은 통신탑과 금오산 정상부의 군사시설이 벌써 저 멀리 높아만 보이고 있다.

 

 

다시 정상부를 담아보고 등로 우측의 금남면쪽 마을과 남해바다를 내려다 보며 천천히 진행을 한다.

그렇게 오르고 내려가는 등산객들과 인사도 나누며 내려가니 다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 위에 올라 오랫만에 폼잡고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자주 홀로 오르기에 제대로 된 사진 한장 남기기 어려웠는데 오늘은 그래도 제법 사진을 찍은듯 하다.

산객이 서 있는 저 아래 멀리 오늘 걸어 내려가야 할 깃대봉과 연대봉이 숨어 버렸다.

 

 

그 전망바위에서 고운 추억을 만들고 다시 내려 와 정상 마루금을 타고 내려가니 금새 등로 좌측으로 금오산마애불상이 보인다.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 금오산에 있는 고려시대의 마애불인 이곳은 남해대교 북쪽 해발고도 850미터의 금오산 정상에서 서남쪽으로 800미터 지점 너럭바위 지대의 거대한 암벽에 선각한 마애불좌상이다.

부분적으로 훼손되었지만 전체적인 윤곽이 잘 드러나 있으며 부처의 상호는 타원형으로 풍만하지만 손상으로 인해 자세한 표정을 알 수 없고 목에 삼도(불상의 목에 가로로 표현된 세 줄기 주름)가 표현되어 있다.

1993년 1월 8일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290호로 지정되었다.

하동 금오산 마애불은 높이가 110센티미터로 상현좌(불상의 옷 주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대좌)처럼 보이는 대좌에 결가부좌한 채 하늘을 나는 형상을 하고 있다.

법의는 통견으로 윤곽이 뚜렷하지 않고 광배는 원형의 거신광으로 안에 두광과 신광을 표현했지만 아무런 무늬가 없다.

수인은 정확하지 않지만 지권인을 취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비로자나불의 고유한 손 모양이다.

비로자나불은 대일여래라고도 부르는데 부처의 진리가 태양빛처럼 우주에 가득 비치는 것을 형상화한 것으로 진리 자체를 상징하는 화엄경의 중심 불상이라고 하는데 불상 옆에 선각한 구층 석탑이 있어 특이하다.

하동 금오산 마애불은 정교하고 치밀하게 선각한 것이 아니지만 단정하고 근엄한 인상에 약간 긴 상체와 신체 각부의 비례가 비교적 적절하여 전체적인 모습이 고려 후기 불상의 양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후기 불교 신앙생활을 엿볼 수 있는 주요한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또 하나의 문화 유산을 배워보는 시간이다.

 

 

금오산 마애불을 돌아보고 올라오니 좌측으로 청소년수련원 3.2 Km와 우측으로 대송 3.5 Km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아래에는 현위치번호 마애불앞 이정표란 이정목을 사진에 담은 후 우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다시 전진한다.

내려가야 할 아기자기한 등로와 저 아래 깃대봉과 연대봉 능선을 가늠하며 내려가니 소나무 한그루 앞에 좌측으로 청소년 수련원 3.2 Km와 우측으로 대송 3.5 Km 및 덕천마을 3.0 Km란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에서 앞서가던 종주대 한명이 청소년수련원쪽으로 내려갔다 뒤돌아 나오며 그 앞에 앉아 있던 등산객에서 남해대교 가는 길을 물어 보니 무조건 우측의 대송과 덕천마을쪽으로 내려가라 알려주고 있다.

이곳에서 지도와 산행 안내서를 확인했어야 하는데 무심코 선두를 따라 우측 대송과 덕천마을쪽으로 내려가며 대형 알바를 하고 만다.

 

 

내려가며 이야기 나누다 보니 어딘지 모르게 자꾸만 내려가는 등로가 깃대봉이나 연대봉이 아닌 우측 능선으로 빠지는 듯 해 나머지 종주대들에게 의심스럽다 이야기 하니 한종주대가 이곳으로 내려갔다 좌측으로 틀어 진행 될 것 같다며 확인을 시켜 주기에 또 무심코 따라 내려 간다.

지나서 보면 왜 그때 그곳에서 지도와 자료 한번 확인하지 않고 내려갔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그때는 그렇게 진행을 하였다.

한참 내려가 전망바위에서 우측으로 뒤돌아 보니 통신탑이 올려다 보이고 그곳으로 향하는 산사면에는 바위 너덜길이 널려있다.

이곳에서 미심쩍어 먼저 내려간 삲랭공지대장에게 전화해 물어보니 엉뚱한 답이 돌아 오고 아무 의심없이 진행하던 등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분명 위에서 봤을 땐 아기자기한 봉우리를 넘어 급경사 내리막 등로로 이어져야 하는데 이곳 등로는 처음부터 급경사 내리막 등로였는데도 의심없이 내려갔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동안 내려가 나무 벤취와 또 다른 이정표를 만나고서야 확실히 잘못 되였음을 깨닭고 잠시 고민을 해 본다.

갈림길에서 약 2 Km 정도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내려 왔고 오르려면 최소한 1시간 이상 더 소요 될듯 하다.

이곳에서 조금 더 진행하다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내려가려고 한 한명의 종주대만 1.5 Km 정도 남아 있는 덕천방향으로 하산시키고 나머지 3명의 종주대는 다시 뒤로 돌아 청소년수련원 3.2 Km 이정표까지 어렵게 뒤돌아 올라 온다.

너무나 힘이 들고 입안에선 단내가 풀풀 날 정도로 고통스런 오름길이지만 진행해야 한다는 우듬지 마루금이 있기에 이를 악물고 참으며 올라 왔다.

 

 

이제 정상적인 등로를 확인하고 청소년수련원 방향인 좌측 등로를 타고 억새 등로로 들어가니 들어 가 몇 발자국 앞에 그토록 기다리던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반겨준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와 거꾸로 올라오는 오르막 된비알 합쳐 약 4 Km를 알바한 것이다.

참으로 쉽게 허락해 주지 않는 우듬지 산행을 직접 경험하는 시간은 너무나 힘들고 고통에 몸서리 쳤지만 지나고 나니 다시 그리워지는 산길임에는 분명하다.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소나무와 친구하며 여유롭게 내려가 본다.

 

 

조금 더 내려가니 가지가 많은 소나무들이 자주 눈에 들어 오는데 모두가 그 가지마다 파란 이끼를 덮고 있다.

계속 전진해 내려가니 현위치번호 소나무3란 이정목을 만나고 나무 벤취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외로운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한다.

그렇게 내려가니 정상 해맞이공원에서 1.0 Km 내려 왔고 청소년 수련원까지 2.7 Km 및 대송입구까지 1.4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부터 조금 더 주의를 하고 내려가며 우측 등로를 찾아 봤어야 하는데 힘도 들고 또 정상적인 등로를 만나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긴장이 풀리면서 또 다시 큰 알바를 경험한다.

 

 

앞서가며 띠지를 확인하니 방금 전 지나온 이정표까지는 지금까지 함께 걸어 내려온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보이는데 어느순간 그 띠지들이 보이지 않고 일반 산악회 띠지들만 보이고 있다.

그것을 눈치채고 모두 알았으면서도 맞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이 다시 대형 알바를 만드는 시간이였던 것이다.

계속 내려가니 현위치번호 소나무벤취 금오산-11번 이정목을 지나고 다시 큰바위4 이정목도 통과하고 금오산 나무5 정목도 지나 나무 벤취가 있는 정상에서 1.6 Km 내려왔고 청소년수련원까지 2.1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는데 아직 까지도 제대로 된 등로 한번 확인하지 않고 그저 맞겠지란 안일한 생각으로 쉬면서 이상하게 제대로 된 띠지 하나 보이지 않는다며 계속 내려간다.

 

 

알바를 하는줄도 모르고 이상하게 띠지가 보이지 않는다며 계속 내려가는 심보는 또 무슨 심보였는지...

그래도 내려가며 등로 우측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대치리쪽 마을 풍경을 담아본다.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기에 금남면 대치리 마을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되어 있다.

대치리는 옛 한다사군의 성량현 지역에서 가장 큰 마을이고 모든 것이 이곳을 중심으로 발전한 흔적이 뚜렷한데 마을의 정확한 유래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알수 없으나 단군시대부터 마을이 이미 형성되어 있어 군사상에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곳이기도 하였다. 

본래 곤양군 김양면 지역이었다가 일제강점하인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폐합때에 창촌을 합쳐서 대치리가 되어 하동군 금양면으로 개편되었다. 

1933년 1월 1일 금양면과 남면이 합쳐서 금남면으로 될 때에 금남면에 편입되었다가 김양면 사무소가 지금의 마을회관 자리에 있었으며 금남면으로 개편된 1933년에 남면과 합쳐서 지금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동명은 금오산의 큰재가 있어 이것이 곧 대치리가 된 유래인 것 같으므로 대치는 한재(큰재)로 통칭되고 인근 일원에서는 대치보다 한재로 더 잘알려져 있다.
대치가 이 지역발전에 큰 중심지역이란 사실은 이곳에 창고와 현창이 있음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 현창은 현재 대치리에 창말에 있었으나 뒤에 구노량으로 이건 이름도 노량창으로 바뀌었다. 

마을은 본동과 창말 진곶이 솔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동은 앞터, 뒷터, 대숲밑으로 세분해 부르기도 한다. 

대숱밑은 대나무가 많았던 곳이라 붙여진 지명이고 창말은 창고가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참으로 많은 사실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였다.

다만 이 능선을 타고 485.2봉인 진비등으로 알바를 하면서 등로 우측으로 보이는 진짜 우듬지 능선을 점심 때 알바를 한 대송 하산 능선이라 착각하고 있었으니 지금 와 생각해 봐도 참으로 한심한 독도며 산행에 대한 부주의였다.

 

 

다시 계속 진행을 하니 현위치번호 내리막길시작점6 이정목을 만나는데 내리막 등로는 고사하고 잠시 완만하게 내려가다 바위지대를 지나 오히려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올라 진비등이라 생각되는 봉우리를 넘어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다시 금오산 정상부가 올려다 보이는데 이곳 사면 역시 거대한 바위 너덜 구간이 형성되어 있다.

정상부를 조망한 후 조금 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청소년수련원까지 1.5 Km 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그렇게 내려가 다시 만나는 나무 벤취와 청소년 수련원까지 1.5 Km 남아 있고 정상에서 2.3 Km 내려 왔다는 이정표를 보는 순간 다시 대형 알바를 하고 있음을 직감한다.

그 좌측 직벽에서 내려다 보는 중평리쪽 마을을 보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두 다리에 힘이 빠져 버린다.

개인적으로는 이곳에서 청소년수련원으로 내려가 산행을 접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나머지 2명의 종주대가 정상 등로를 찾아 진행하기를 원해 다시 금오산 정상 방향으로 거꾸로 오르며 정상 등로를 찾아 본다.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결정이지만 단 한명의 종주대라도 진행한다고 하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현실을 받아 들이기로 한다.

 

 

왠지 모를 미안함과 스스로에 대한 책망감으로 인해 조금은 앞서 빠르게 뒤돌아 올라오며 계속 등로 좌측으로 우듬지 마루금을 찾아 본다.

몇번인가 지도도 보고 상세 산행안내서도 읽어 보지만 아직도 어느 지점이 정확히 우듬지 마루금인지 감도 잡을 수 없다.

거꾸로 빠르게 치고 올라 소나무벤취 금오산-11 이정목을 지나 이제 정상 해맞이공원 1.0 Km, 청소년수련원 2.7 Km 및 대송입구 1.4 Km 이정표 가기 직전 좌측의 큰소나무 두그루가 있는 곳에 희미한 족적이 있는듯 해 지나쳤다 다시 뒤돌아 와 내려다 보지만 선답자의 띠지도 보이지 않고 등로도 확실하지 않아 뒤돌아 정상부근으로 올라가려다 자세히 보니 잡목 잎새들 밑으로 띠지가 보이고 잠시 안으로 들어가 보니 많은 띠지들이 걸려 있지만 나뭇잎이 무성히 자라고 잡목이 뒤엉켜 일반 등로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아래에는 바로 큰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고 그 우측 옆으로 희미하지만 뚜력산 등로가 보인다.

긴 한숨을 내쉬고 다섯장 정도의 띠지를 일반 등로 위 이곳 저곳에 붙여 놓고 우듬지 마루금으로 들어 가 숨어 본다.

조금 더 기다리니 나머지 두명의 종주대가 올라오다 띠지를 발견하곤 두리번 거리더니 금새 이곳 우듬지 마루금을 찾아 잘 들어 온다.

드디어 성공한 띠지 작전이다.

 

 

그토록 힘들고 고통스럽게 올라왔는데 정상 우듬지 마루금을 만나니 그동안의 고통은 모두 사라지고 모두 기분이 업된 상태로 내려가 본다.

잠시 더 내려가니 잡목과 가시나무가 등로를 막고 힘들게 헤치며 전진하니 큰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조심스럽게 그곳에 올라 내려다 보니 저 아래 대송리 마을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다만 비구름이 다시 밀려오며 밝은 대낮인데도 어둑컴컴한 날씨가 되어 버렸다.

 

 

내려가야 할 방향으로 동물이동통로가 새로 만들어진 점곡재 지나 부드러운 억새능선을 타고 군부대가 정상을 차지한 깃대봉이 보이고 그 뒤로 봉우리만 내민 연대봉이 보이며 그 뒤 저 멀리 남해바다 건너 남해의 남해지맥들이 희미하게 이어져 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그냥 지날 수 없어 몇장의 사진을 카메라에 담고 사라진 등로를 찾아 어렵게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바위지대를 지나 내려가니 겹경사 내리막 등로에 잘려진 나무들이 이리저리 가로 막아 한발 내딛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조심하며 내려가니 다시 등로가 사라지고 이리 저리 둘러보며 희미한 족적을 찾아 어렵게 진행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어렵게 내려가니 조금은 평이한 가파른 내리막 등로가 열리는데 이곳 역시 지금까지 보다는 편안하게 진행을 하지만 등로 찾기에는 어려움이 잔존하고 있다.

그러다 만나는 소나무 군락지가 얼마나 반갑던지 가서 입맞춤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였다.

 

 

계속 내려가니 선답자들이 말했던 묘지들은 만나지도 못하고 다시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타고 어렵게 빠져 나가니 억새와 고사리가 자라난 좁은 공터로 내려가고 곧이어 새롭게 조성된듯한 동물이동통로를 지나 반대쪽 능선 진입로인 비포장 임도에 도착을 한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점곡재로서 금남면 대치리에서 대송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인데 최근에 새로 2차선 지방도로가 터널로 뚫려 쉽게 넘나들수 있게 만든 듯 하다.

이곳에 도착해 대송 가는 길에 알바를 하면서 헤어진 종주대 한명을 불러보지만 대답이 없어 잠시 쉬고 있는데 비포장 임도 한쪽에 들고 다니던 부채를 세워 놔 이미 이곳을 지나갔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곳 점곡재에 도착해 남아 있는 간식을 먹기 위해 배낭을 내리니 장대비가 솟아지고 황급히 커버를 씌운 후 기다리니 금새 빗줄기가 가늘어져 남아 있는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 본다.

휴가팀과 전화 연락을 해보니 아직도 깃대봉에서 아침재로 내려가며 고생하고 있다면 잡목으로 인해 전혀 등로 자체를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전해 준다.

 

 

점곡재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올려다 본 알바지점이다.

금오산에서 내려 와 대송입구와 청소년수련원 갈림 삼거리에서 가운데 능선진입로를 찾지 못하고 우측 능선을 타고 1 Km 이상 내려갔다 다시 오르며 너무나 힘들게 진행한 시간이였기에 잊을 수 없는 능선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죽을지도 모르겠다며 조심 조심 내려 와 무탈한 모습으로 그 지독히 고통스러웠던 능선을 바라보는 기분은 왠지 모르게 묘한 흥분이 일어 나는 것은 무슨이유인지 모르겠다.

 

 

완만한 오르막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나즈막한 봉우리에 도착을 하고 뒤돌아 보니 저 멀리 금오산에서 오늘 한바탕 큰 알바를 경험한 양쪽 능선과 어렵게 정상 루트를 찾아 내려 온 우듬지 마루금이 한눈에 올려다 보인다.

다시 억새가 무성히 자란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에 59번 송전탑이 보인다.

그 송전탑을 지나 진행하니 억새가 무성하게 자란 등로 옆에 깃대봉 철쭉군락지 제단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깃대봉은 봄 철쭉 군락지로 유명한 곳인가 보다.

 

 

이제 큰 나무 한그루 없이 억새와 키 작은 관목 그리고 잡풀들이 무성한 깃대봉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올라 본다.

햇빛이라도 강하게 내려 쬐였으면 오르기 힘들었을 등로가 구름이 끼어 그나마 다행이다.

한동안 오르니 정상부에서 큰 목소리가 들리고 자세히 보니 먼저 오른 종주대 한명이 그곳 정상에서 오르고 있는 나머지 3명의 종주대를 부르는 소리였다.

얼마나 반갑던지...

한동안 오르다 잠시 흐르는 땀방울 닦으며 뒤돌아 보니 벌써 59번 송전탑이 저 아래 멀어져 가고 점곡재 지나 금오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우듬지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 금오산 줄기 양쪽으로 오늘 모두 대형 알바를 한 능선 또한 뚜렷하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그렇게 땀흘리며 오르다 다시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 닦으며 등로 우측을 바라보니 구름속에 숨어있던 강렬한 햇살이 구름 사이를 뚫고 내려오는 모습 아래로 송은리 마을과 남해바다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몇번인가 지나 다녔던 바닷가이지만 이렇게 이곳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 보는 풍경은 그곳에서 머물며 만났던 모습과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언제나 다시 저 마을로 내려가 그 좁은 도로를 타고 바닷가를 거닐어 볼 길회가 있을련지...

 

 

중간 안부에 올라 이제 드넓은 평원처럼 생긴 깃대봉 오름 등로를 올려다 본다.

꼭 호남정맥의 보성 지나 있는 존재산 오르막 등로와 어떻게 이렇게 꼭 닮아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종주대의 키만큼 자라난 억새풀이 등로를 완전히 숨긴 마루금을 타고 조심스레 한발 두발 옮기니 가까운 곳에 잠시 소나무 몇그루가 보이더니 다시 정상까지 민둥의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그 정상부 한쪽에 서 있는 바위 옆에는 먼저 오른 종주대 한명이 내려다 보며 사진을 담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이제 억새와 철쭉 능선을 타고 깃대봉 정상부에 올라 뒤돌아 보니 금오산에서 부터 이곳 깃대봉으로 이어지는 우듬지 마루금이 시원하게 이어지고 있다.

금오산 정상에서 내려 오다 좌측으로 통신탑이 보이는 능선에서 우측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좌측 능선을 타고 내려가 대송근처까지 내려갔다 다시 그곳 갈림 삼거리까지 올라오는 대형 알바를 한 등로가 확연히 나타나 있다.

다시 정상 등로를 따라 내려 오다 이곳 우듬지 마루금 입구를 찾지 못하고 우측 능선을 타고 1 Km 이상 내려갔다 가운데 우듬지 마루금을 어렵게 찾아 내려 온 등로가 이제는 아름답다 못해 황홀하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지나고 보면 모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해 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깃대봉 정상에 올라 이제 등로 좌측으로 대치리와 중평리쪽 마을과 바다를 내려다 본다.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은 무명봉이 가운데 우뚝 솟아 있고 그 넘어 좁은 평야지대엔 파란 농작물들이 자라며 그 평야지대를 지나니 올망졸망한 작은 섬들이 바닷가를 따라 들어서 있다.

그저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아름다운 자연이며 남해바다이다.

 

 

이제 남쪽으로는 아침재 지나 산허리를 잘라먹는 채석장이 흉물스럽게 내려다 보이고 그 위로 등로조차 사라진 잡목지대와 그 옆으로 나 있는 바위 너덜지대를 타고 연대봉 정상이 우뚝 하고 그 넘어 남해군에는 남해지맥이 끊어질듯 이어지며 남해바다로 달려가고 있다.

이제 시간은 오루 4시 30여분을 지나고 잘하면 오후 7시 이전에 남해대교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 보는 시간이지만 내리막 잡목을 만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파낸 돌로 인해 잘려진 산 허리는 차후 잘 복귀시켜 놓을 것인지 안타까운 시간만 흐르고 있다.

 

 

이제 정상에서 많은 시간 보내며 주위 조망을 즐겼으니 정상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을 해 본다.

정상이라고 해 봐야 단지 녹슨 깃대 2개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군부대가 정상을 차지했던 깃대봉이기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곳인데 철쭉 산행지로 최근에야 알려지기 시작해 조금씩 일반에 소개되고 있는 봉우리이다.

지금이야 군부대가 이전을 해 자유롭게 오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군부대 철조망까지 남아 있으니 늘 조심해야 할 곳이기도 하다.

 

 

깃대봉 정상에서 녹슨 군부대 철조망을 타고 좌측 능선으로 내려가니 처음 약 5미터 정도는 잘 나 있는 등로가 이어지지만 금방 잡목과 가시나무가 빽빽히 등로를 차지해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내려 갈 방법이 없어 난감해하며 잠시 생각해 보니 역시나 등로는 녹슨 철조망을 따라 나 있어야 하는데 그곳은 칡넝쿨이 우거져 도저히 들어 갈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등로 좌측의 잡목과 가시나무가 우거진 능선을 헤치며 온 몸에 생채기를 내며 진행하니 도저히 속도를 낼 수가 없다.

 

 

하늘을 가리는 잡목과 가시넝쿨 그리고 온 몸을 가로막는 질긴 칡넝쿨이 시간만 잡아 먹고 한발 옮기기가 힘이 들지만 이렇게라도 내려가지 않으면 오늘 해가 지기전에 내려 갈 방법이 없으니 힘들지만 이 방법이 최선이란 확신으로 내려간다.

정상에서 7부에서 6부 능선까지 내려가니 우측 철조망 부근으로 조금 엷은 잡목이 자라고 그곳으로 다시 힘들게 뚫고 들어가니 예상대로 선답자들의 빛바랜 띠지들이 듬성 듬성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확신을 가지고 준비한 띠지를 아주 촘촘하게 달며 내려가니 힘도 들고 고통이 밀려 오지만 산행의 묘미를 제대로 느끼는 시간이다.

 

 

조금은 수얼 할 것 같은 정상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다시 힘든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무지막지한 칡넝쿨이 앞을 가리고 어렵게 그 칡넝쿨을 헤치고 통과한 후 뒤따르는 세명의 종주대를 사진에 담으니 말은 안했어도 죽을 맛이라는 표정 그대로가 얼굴에 나타나 있다.

그래도 그 지독한 잡목과 칡넝쿨을 헤치고 가시나무를 피해 내려 와 그 정상부인 깃대봉을 올려다 보는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든 희열의 도가니였다.

맥 잇기 산행을 완주하는 기분과 길이 없는 등로를 타고 완주하는 기분은 같은 기분인듯 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매력이 숨어 있는 듯 하다.

 

 

그렇게 다시 잡목과 싸우면서도 무탈하게 그 지독한 잡목지대를 잘도 넘어 내려 왔다는 안도감이 등로 우측으로 보이는 하동의 화력발전소까지 눈에 들어 오게 만든다.

더욱 강렬하게 내려 쬐는 태양 빛이 구름속을 뚫고 세상에 퍼지는 풍경 역시 이제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변하는 시간이다.

현재 위치한 상황과 고통을 이겨 냈다는 안도감이 이렇듯 힘든 상황에서도 여유를 제공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다.

 

 

이제 아침재가 눈 앞으로 다가와 있고 연대봉 오름길에 큰 입을 벌리고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잡아 먹고 있는 채석장은 더욱 크고 넓게 산 허리를 잘라 들어가고 있다.

종주대 4명을 빼고 나머지 산친구들과 버스기사에게 연락해 남해대교까지 가지 못하고 아침재에서 탈출한다고 전하고 조금 더 여유를 가지며 내려가지만 여전히 잡목과 가시나무가 발목을 붙잡고 놔주질 않는다.

앞에서 길을 뚫고 나간 후 후미가 오길 기다리는 시간에 남아 있는 띠지를 붙히며 단 한사람의 종주재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내려가니 드디어 아침재에 도착해 띠지 하나 붙히고 그 이정표 앞에서 증명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대치리와 대송리를 이어주는 아침재는 이제 그 흔적조차 사라질 정도로 이름만 남아 있는 고갯마루로 변했다.

특히나 이 아침재 좌우측으로 거대한 채석장이 들어서며 더욱 사람들의 발길을 끊으니 이런 고갯마루가 있는지조차 아는 사람이 드문 고갯마루로 변해 버렸다.

산행을 하는 산꾼의 입장에서 보면 많이도 아쉽고 안타까운 현실이고 그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 가슴 아프기만 하다.

함께한 종주대 한명이 아침재 넘어 오르면 도로가 있다는 잘못된 정보를 줘 잠시 오르지만 역시나 내리막 도로는 보이지 않고 계속 오르막 등로로 이어져 다시 뒤돌아 내려 와 아침재에서 깃대봉에서 진행 방향에서 좌측으로 타ㅣㄹ출을 시도한다.

 

 

아침재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6시 10여분, 작은 개울을 타고 내려가니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듯 하더니 금새 그 희미하던 등로도 사라지고 잡목이 앞을 가로막아 내려가기도 힘들다.

가시에 찔리고 잡목에 생채기를 내며 어렵게 그 계곡을 지나 내려가니 넓은 임도가 나타나고 그 우측으로는 광법사란 절이 보이고 이 산객이 내려가야 할 좌측으로는 채석장에서 채석 작업을 하는 회사인듯한 이름들이 보인다.

함께한 산친구들이 시원한 맥주와 식수를 가지고 마중을 와 건네주며 고생했다는 한마디에 모든 고통이 눈녹듯 사라진다.

 

 

좌측으로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저 멀리 이 산객이 타고 서울로 복귀할 버스가 보이고 나머지 산객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그 아래 작은 개울에 흐르는 맑은 계곡물로 내려가 간단히 땀방울과 몸을 닦고 옷을 갈아 입으니 살것 같다는 생각이다.

옷을 갈아 입고 올라오니 이제서야 임도 좌측 깃대봉 자락이 잘려나간 채석장이 눈에 들어 오고 사진으로 한장 담아 본다.

남해대교까지 가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그 지독한 잡목과 가시덩쿨 그리고 칡덩쿨을 뚫고 무탈하게 내려 올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을 남겨 본다.

 

이제 남아 있는 구간은 짧게 올랐다 내려오면 완주가 되는 거리와 시간이니 여유를 가지고 내려 와 하룻밤 묵으며 하동과 남해의 명소를 여행하는 시간으로 남겨보고 싶다는 바램이다.

 

조금 더 확실하게 독도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진행해 큰 알바없이 정상 등로로 완주 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멀고도 긴 신백두대간 우듬지 산행 후기를 마감한다.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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