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삶에 달콤한 향기를 담아준 1백두대간9정맥 산행을 마치며,
바람처럼 구름처럼 세상을 떠다니며 살아가는 삶이 좋아 국제무역을 하는 직업을 택해 전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다보니 경제적인 어려움과 우물안 개구리란 좁은 소견에서는 벗어났지만 그 대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것이 결국 이렇게 산행에 미친 산객의 하나로 남게 되는 계기가 되였으니 이것 또한 인생의 아이러니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다.
학창시절 그저 막연하게 동경했던 외국 생활에 대한 동경이 점점 현실화 되면서 몇번의 외국 경험을 하고나니 자연스럽게 직업을 선택할 때에도 전공이나 공부한 방향과는 무관하게 국제무역이란 직업을 택해 처음 학교에 들어가는 신입생의 마음으로 일을 하게되고 그렇게 미친듯 일을하다 보니 일을 하면서도 취미같은 직업이 되어 인생의 황금기에 후회하지 않을만큼 멋진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며 잠시 뒤돌아 보는 순간 어느덧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며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독하게 마음먹고 즐기던 술과 담배를 끊고 오로지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운동에만 매달리기 시작한 후 7년여가 지난 지난 2006년 초 드디어 등산이란 단어를 배우며 본격적으로 관악산에 오르기 시작을 하였다.
즐기기 위한 등산이 아닌 오로지 건강을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택한 산행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만나면 일터에서 만났던 사람들과는 달리 셈도 없고 이해타산도 따질것이 없으니 즐겁게 만나 산행 후 탁배기 한잔 나누는 재미로 더욱 산행에 빠져 들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날 알게 된 백두대간 산행이란 거창한 단어 앞에서 이유도 모른채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였고 그 백두대간 첫 산행이였던 2006년 8월 5일 댓재에서 이기령 구간을 다녀 와 산행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큰 획을 긋는 중대한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고 말았다.
산행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며 산행에서 배우는 무형의 배려와 기다림 그리고 봉사란 단어에 매료되어 시작한 산행이 벌써 1백두대간과 9정맥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이렇게 그 동안의 산행에 대한 후기를 적을 만큼 성장했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시기였을 것이다.
1백두대간 9정맥 완주 일지
백두대간 : 2007년 02월 - 2008년 09월 도상거리 670 Km
한북정맥 : 2008년 10월 - 2012년 05월 도상거리 220 Km (신한북정맥 40 Km 별도)
한남금북 : 2010년 01월 - 2010년 05월 도상거리 152 Km
금남호남 : 2010년 01월 - 2010년 01월 도상거리 64 Km
금남정맥 : 2010년 01월 - 2010년 06월 도상거리 133 Km
금북정맥 : 2010년 06월 - 2010년 12월 도상거리 280 Km
한남정맥 : 2010년 06월 - 2011년 01월 도상거리 190 Km
호남정맥 : 2010년 09월 - 2011년 10월 도상거리 462 Km
낙동정맥 : 2011년 02월 - 2012년 02월 도상거리 397 Km
낙남정맥 : 2011년 11월 - 2012년 05월 도상거리 224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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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두대간과 9정맥 (총 5년 3개월 간) 총 도상거리 2832 Km (실제 산행 총거리는 약 3600여 Km)
소속된 산악회에서 종주대원으로 백두대간 산행을 10여차례 진행한 후 본격적으로 산행 리더가 되어 시작한 백두대간 제2차 산행이 2007년 2월 9일 한겨울 칼바람이 얼굴을 때리던 날 어둠을 헤치고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가슴 벅찬 장쾌한 마루금에 소리없이 눈물짓던 작은 산객이 이렇게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인생의 희노애락을 얻은 그 마루금에서의 추억을 생각하니 그 모든 영상들이 주마등처럼 가슴에 남겨지는 시간이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아무 이해 타산도 없이 그저 즐거워 올랐던 그 산행에 대해서도 시기하고 질투하며 방해하는 사람으로 인해 가슴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했던 시기에 새롭게 산악회를 태동시키며 어렵게 이어서 두번째 오른 댓재 구간에서는 산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리더로서의 무한책임을 느끼며 허리까지 빠지는 심설을 헤치고 19시간이 넘는 사투끝에 종주대원 모두 무탈하게 민가로 내려왔던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줄기에서 식은 땀이 흐를 정도로 이 작은 산객의 인생에 가장 고통스러우면서도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남아 있는 흑백의 영상이 되였다.
수많은 기쁨과 슬품 그리고 희망과 좌절을 느끼며 진행하다 마지막 마산봉에서 진부령으로 내려가는 마루금에서 서쪽으로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가슴속으로부터 불타오르는 눈물을 흘리던 시간은 이제 평생의 추억으로 남아 이 산객이 살아가는데 많은 등불이 되어 줄 것이다.
그렇게 첫번째 목표인 백두대간 산행을 리딩하면서 큰 대과없이 마무리함으로서 다음에 이어 갈 9정맥 산행에 대한 더욱 뚜렷한 산행 의식과 자기 반성 그리고 더욱 철저한 산행 계획을 만들면서 목표를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만들수 있었다.
백두대간 산행을 완주한 후 곧바로 이어지는 같은 산악회의 다른 리딩대장과 함께 첫번째 정맥으로 오른 한북정맥 산행에서는 잘려지고 파헤쳐진 마루금을 걸으며 가슴 아프고 서글픈 현장을 많이도 만나고 목격하면서 왜 이렇게 힘든 맥 잇기 산행을 하면서 자연을 어떻게 가꾸고 또 후세에 어떠한 모습의 자연을 남겨 줘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 알게 되였다.
고운 단풍이 진 아름다운 산하를 벗어나면 곧바로 늘어나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가꾸기 위해 참혹하게 잘려지고 멍들어 간 마루금을 바라보며 삶의 터전과 자연이 얼마나 양립하기 어려운가를 몸으로 배우고 깨우친 시기였다.
그렇게 첫번째 오른 한북정맥 역시 무탈하게 완주 후 이곳 한북정맥은 또 다른 산줄기인 오두지맥과 도봉지맥 또는 한북정맥과 신한북정맥의 논쟁이 뜨거운 산줄기임을 배우고 꼭 다시 올라 두 맥을 모두 밟아 보리라 마음 먹어 본 시간도 바로 이 시기였지만 그 마지막 맥까지 밟는데에는 다시 3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가 되였다.
이어가던 정맥 산행을 잠시 미룬채 다시 시작된 제3기 백두대간 산행에서 1년 가까이 선두 리딩을 맡아 오른 후 갑자기 시끌어지기 시작한 산악회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며 이 산객이 처음 생각했던 초심으로 돌아 가 남아 있는 정맥 산행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였다.
그래서 다시 시작한 정맥이 한남금북 정맥과 금남호남 정맥이였는데 두 정맥 모두 마지막 산줄기가 물로 빠지지 못하고 중간 다리 역활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 정맥이였기 때문이였다.
다시 찾은 속리산 천왕봉에서 정맥이 무엇인지 백두대간 산행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정맥 산행 중 처음으로 올랐던 한남금북정맥 산행에 대한 추억과 무지의 소치에 대한 처절한 반성의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그곳 맥 산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민가의 사람들과 민초들의 삶 그리고 산행중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과 마음을 얻으면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실과는 다른 세계의 존재를 뼈저리게 감사하며 고마워했던 시간들이였다.
그렇게 병행하며 올랐던 금남호남정맥에서는 지금까지 만났던 그 어떤 산그리메보다 더욱 뚜렷하고 거룩하게 뇌리에 각인된 후 가슴속 깊이 남겨진 풍경이 없을만큼 자연과 하나된 시간들이였다.
홀로 어둠을 헤치고 오르며 날짐승들과의 조우에서는 등줄기에 식은 땀도 흘렸지만 인간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절대로 공격하거나 해를 끼치지 않는 다는 당연한 진리를 발견한 산행으로 남겨지는 곳이기도 하다.
짧은 거리였지만 그곳에서 많은 종주대를 만나 인사 나누며 스치는 인연을 만들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니 그 또한 산행에서 얻어지는 기쁨중 가장 큰 기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또한 이 산객이 살아보지 못한 새로운 환경과 생활방식 그리고 다른 생각을 가지고 같은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치열하게 살아가되 잘못 살아가면 안되는 이유를 찾은 산행이기도 하였다.
지금까지는 그저 좋아하는 종주 산행을 대신한 정맥 산행이였다면 이제 3정맥 산행을 마친 후에는 9정맥 완주가 새로운 목표가 되어 마음속에 내재된 갈증을 참을 수 없었던 시간들이였다.
그래서 시작한 산행이 다른 산악회를 따라 나선 금남정맥이였는데 역시나 많은 산우님들과 오르다 보니 처음 생각했던 보고 싶은 풍경과 조망을 놓치고 그저 앞사람 발바닥 보고 가는 시간이 많아져 결국 홀로 하는 산행이 되였다.
시골에서 자란 고향 근처를 지나는 마루금이였기에 많은 부분 잘 안다고 생각을 하였는데 오르면서 느껴보니 그것은 착가일 뿐 실제로는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설은 이국 땅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배운것이 우리 땅 우리 국토도 내가 밟아보지 못하고 다녀오지 못한 곳은 타국에 존재하는 미답의 땅임을 가슴속 깊이 절실하게 담아 본 시간이였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마루금이 물을 만나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산자분수령을 제대로 느끼고 배워본 맥으로 남겨 본다.
또한 많이 다녀왔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역사의 현장에서 그 역사를 몸으로 배워 본 뜻깊은 산줄기로 기억하고 있다.
어렵게 금남정맥을 마무리하고 곧이어 시작된 금북정맥에서는 고향과 뒷산 그리고 앞산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면서 조금은 더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되였지만 이제 그 아름답던 추억도 돌아가신 어머님으로 인해 가슴 아픈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마루금이 되어 버렸다.
이 금북정맥은 이 산객이 태어나 자란 뒷동산을 지나는 산줄기이기에 정맥 산행 중 제일 마지막 산행으로 남겨두고 싶었지만 남아 있는 3 정맥 마루금 모두가 정맥 산행 중 가장 길고 수도권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기에 마음과는 달리 경제적인 면과 시간적이 면에서 상당한 부담을 느끼게 됨으로서 산행 계획을 수정해 먼저 오르게 된 산행이 되어 버렸다.
구수한 고향 사투리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만나 탁배기도 나누고 또한 시골 부모님에게 들려 어리광도 부리면서 조금은 수월하게 진행을 하였지만 예기치 못한 곤파스란 가혹한 태풍을 만나 산림의 반 이상이 황폐화되는 과정을 보면서 자연 재해의 두려움과 공포를 직접 체험한 시간이기도 하였다.
산행 완주 후 서해 바다에 손을 담근 후 고향 땅으로 가 탁배기 한사발을 앞에 두고 새롭게 올라 본 뒷산에 대한 소회를 느낄 땐 정말 정맥 산행의 묘미와 그 의미를 가슴 깊이 느꼈던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홀로 오르며 진행하던 정맥 산행에 이제 서서히 외로움을 느끼면서 함께 산행하던 산친구들과 함께 오르는 한남정맥 산행이 시작되였다.
특별히 대절 버스를 이용 할 필요도 없이 대중교통을 이요해 오르면 되는 마루금이였지만 수도권과 가장 가깝게 붙어 있고 개발 놀리로 모살을 앓고 있는 인천시를 지나 김포로 가기 때문에 가장 훼손이 심한 마루금으로 남겨진 곳이다
특히나 아라뱃길을 만든다고 인공 수로를 만들어 산자분수령을 완전히 무시해 버린 가장 처참한 산줄기의 하나로 남겨질 만큼 아품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걸으면서 느끼고 배우는 것은 더 많은 곳이지만 과연 먼 훗날에도 정상 마루금을 타고 한남정맥이란 제목으로 산행이 가능 할지에 대한 회의가 많았던 산줄기이기도 하였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그 명맥을 유지하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길 바라는 마음은 이 산객만의 마음일련지...
한남정맥을 하던 도중 오래전 같은 산악회에서 함께 산행을 즐기며 백두대간 산행도 함께했던 옛 산친구들을 만나 잠시 호남정맥 마루금에 발을 옮겨 본다.
한동안 함께 진행을 하지만 역시 바빠진 일들로 인해 계속 홀로 오르는 기회가 많아지며 아쉬운 산행의 연속이다.
가장 길고도 가장 아름다운 호남정맥 산행을 1년이란 긴 세월을 다시 투자 해 걸으면서 새로운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에 눈을 뜨고 또 새로운 삶과 새로운 사람들의 정에 대한 답을 조금은 얻은듯 하여 그 의미를 담아 본다.
정맥 산행이 아니였다면 결코 들리지 못했을 산촌과 시골 농촌 그리고 연세든 어르신들의 인심 넘치는 삶에서 삶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지만 역시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많지 않은 한푼의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부끄러운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다양한 인간세상을 경험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지나고 보면 후회하지 않고 살아 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새삼 깨달으며 조금이나마 배려해 주고 나눠주는 삶이였으면 그 후회하는 기회도 많이 줄어 들 것이란 평범한 진리를 알아 간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제 낙동강을 가르는 두 산줄기만 오르면 되는 시간이지만 그 마루금이 가장 접근하기 힘들고 또 이 산객이 살아가는 곳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기에 마음과는 달리 내려 가 산행을 이어 가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계획을 세우고 다시 함께했던 산친구들과 멋진 낙동정맥 산행을 시작해 보지만 산행지에 내리는 100년만의 폭설로 인해 처음 시작부터 산객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오래 전 백두대간 산행을 리딩하면서 경험했던 폭설의 위력을 잘 알고 있기에 하늘이 허락해 주지 않으면 오르지 못함도 이해하고 있을 쯤 드디어 하늘이 허락해 주고 한겨울 찬바람속에서도 등줄기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또 멋진 추억을 쌓아간다.
하지만 좋은 산행이 있으면 고통도 수반되는 것인 인생사임을 알려 주듯 하루 종일 비에 젖어 생쥐꼴이 되면서도 무엇이 그리 좋은지 얼굴엔 웃음꼬치 만발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그저 생각하는 지금도 미소가 피어 오른다.
다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알바도 하며 새로운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인연을 맺고 또 멋진 추억을 만들었던 시간은 평생의 기억으로 남겨질 것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낙남정맥에 오르는 날, 하지만 하늘의 허락을 받지 못하고 먼 유럽으로 출장을 떠나며 힘들고 고달펐던 마지막 산행길이 이곳 영신봉이 되고 말았다.
점점 더 커지는 1백두대간과 9정맥에 대한 정의와 의미 그리고 왜 미친듯 이렇게 올라야 했는지에 대한 끝없는 질문과 답변을 만들어 보지만 역시나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하고 떠 돌고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너무나 치열하게 살아 온 일상이였기에 자연에 들어 이름모를 산새들의 노래소리를 들으며 이름모를 야생화가 전해주는 향기를 맡으며 또 스치는 시원한 바람을 맞다보면 어느새 그 치열함은 사라지고 태초의 인간의 본모습인 순한 양이 되어 다 함께 살아가고 욕심없이 살아가는 자연을 모습을 배웠기에 의미도 모르지만 다시 그 산에 드는 것은 아닐까 막연히 알듯 모르듯 다가온 순간이다.
한발 두발 걸어 오며 완주 후 가장 희열이 클 것이란 기대와는 달리 어머님을 잃은 슬품이 가시지 않아서 그런지 더욱 차분해지는 기분과 어딘지 모르게 부족한 자신을 느끼며 희열보다는 자성의 시간으로 남겨지는 것은 진정한 산꾼으로 태어니는 시간은 아닐까 홀로 생각해 본 시간이였다.
이제 그 부단한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목표로 했던 1백두대간과 9정맥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였으니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조금은 더 여유롭게 조금은 더 자연을 닮아 인간답게 살아가는 시간이길 간절히 바래 본다.
이 산행이 분명 이 작은 산객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한 곡점이 되였지만 그렇다고 긴 인생에서 생각해보면 찰나의 순간일수도 있기에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늘 새롭게 하는 일에 매짐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삶이길 바라는 마음은 너무나 큰 욕심은 아닐련지...
5년하고도 3개월 동안 수없이 만나고 헤어졌던 수많은 사람들과 산꾼들 그리고 그 발걸음 하나 둘 걸을 때마다 친한 친구가 되어 외로움을 달래주고 편안한 삶을 이어 오게끔 알려 준 수많은 자연의 풀한포기와 나무 한그루 그리고 이름모를 산새들에게 이 영광을 돌리며 앞으로도 더욱 조심하며 자만하지 않게 산에 들어 그 침묵하는 산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기나긴 자유를 시간을 만끽해 본다.
조금 더 여유롭게 조금 더 평화롭게 자연이 준 가르침 대로 살아 갈 수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1백두대간 9정맥 산행 완주 후기를 접는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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