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맥산행(완료)/낙남정맥(완료)

낙남정맥 제10구간 용강(신풍)고개에서 냉정고개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2. 3. 25.
728x90

산행지 : 경상남도 창원시와 김해시의 낙남정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2년 03월 25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가끔 구름이 끼고 강한 바람이 불었으나 산행하기 좋았던 날씨

산행온도 : 영하 02도에서 영상 10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신풍고개(용강고개 및 용강검문소, 14번과 25번 2차선 지방도로)-산마루 가든-운동시설봉-대나무지대-탱자나무 울타리-특수고압기-창원컨트리클럽 그물망-탱자나무 울타리-부치고개(창원컨트리클럽 경고판)-골프장-대나무 군락지-295봉 우회등로-산죽지대-소목고개-18번 송전탑-오르막 계단-바위 전망대-나무계단-전단쉼터 및 사각정-정병산(566봉)-CC 카메라봉 왕복-전단쉼터 및 사각정 복귀-암봉 우회-소나무 조각상-봉림산 헬기장-513봉-나무계단-나무계단-독수리바위(448봉)-정병산 수리봉(460봉)-나무계단-483봉-정병산 지킴솔-길상사 갈림 이정표-일심동체 소나무-내정병봉(493봉)-내정병봉 체육시설 안부-안전로프지대 벤취(아침식사)-계단-길상사 갈림 이정표-우곡사 갈림 삼거리 이정표-용추고개 체육시설-우곡사 갈림 삼거리 이정표-415봉 이정표-408봉-475봉 이정표-485.7봉-벌거숭이벗꽃동산(505봉)-진례산성 흔적-진례산성동문 이정표(용추계곡 입구 하산길)-나무계단-비음산 정상 갈림 삼거리 이정표-비음산(510봉)-비음산 갈림 삼거리 복귀-청라봉(517봉)-비상 소나무-나무계단-헬기장-남산치(평지백숙촌과 포곡쉼터 갈림 이정표)-나무벤취-암봉 및 나무계단-비탈바위-암봉과 안전로프-내대암봉 이정표(550봉)-안전로프 칼바위지대-장군바위-607.4봉-나무계단-대암산(670봉)-사각정과 산불감시초소-분지 억새밭-대방나들목입구 갈림 이정표-평지 갈림 삼거리 이정표-돌탑지대-신정봉(704봉)-평지 마을뒤 이정목-220번 송전탑-삼정자동 갈림 삼거리 이정표-682암봉-용지봉(용지봉, 744봉)-간이매점과 육각정-계단 하산 등로-장유사 하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잣나무 식재구간-523봉-임도(진례평지 및 장유대청 갈림 사거리 이정표)-504봉-전망바위-장유체육공원 갈림 삼거리 이정표-471.3봉 삼각점-5번 송전탑-5번과 5번 송전탑-시멘트 임도 이정표(황새봉 6.1 Km 이정표)-과수원 및 민가-502사격장-축사-2502 전투 경찰대 건물-용지봉 산행 안내도-냉정고개(진례면 표지석, 1042번 2차선 지방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2.50 Km (접속구간 01.00 Km 비음산 정상 왕복 및 정병산 CC 카메라 왕복)

산행시간 : 많은 사진 찍고 산꾼들과 이야기 나누며 여유롭게 09시간 40분 (05시 00분 부터 14시 40분까지)

교통편 : 심야고속버스 00시 40분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창원으로 출발

          창원고속버스터미널에서 택시로 용강검문소까지 이동

          냉정고개에서 김해택시로 장유시외버스임시터미널로 이동

          김해 장유 시외버스버스터미널에서 15시 45분발 서울행 버스로 복귀

 

낙남정맥이란?

지리산 세석평전을 품고 있는 영신봉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내려온 마루금이 삼신봉에서 외삼신봉을 지나 묵계치와 고운재를 거쳐 옥산까지의 산줄기는 서쪽 섬진강으로  그 물줄기를 가르고 있으나 이후 산줄기는 인위적으로 잘라 만든 진양호 물이 사천만으로 흘러들게 만든 거대한 가화강을 지나 백운산 대곡산 무량산 여항산 서북산 광려산 대산 무학산 천주산 봉림산 대암산 용제봉 김해의 신어산을 거쳐 낙동강하구인 김해시 매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그 긴 줄기를 낙동강에 묻는 약 224 Km의 산줄기를 낙남정맥이라 한다.

이 산줄기에는 특이하게도 인공 호수와 강줄기가 마루금을 가르고 있기에 피치 못하게 가화강을 건너야 하는 산자분수령과는 다른 산행이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환상의 조망속에 낙남정맥 산행의 마지막 도시인 김해로 들어 간 이야기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바쁜 회사일과 어머님 병환으로 많은 제약을 받으면서도 또 이렇게 남쪽으로 내려가 남아 있는 낙남정맥 산행을 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 무척 다행인 하루가 지나고 있다.

중환자실에 머물고 계시지만 심근경색증 시술을 받은 후 하루가 다르게 호전되어 가는 모습에 토요일까지 병상을 지키다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조금은 여유롭게 심야 우등을 타고 이제 낙남정맥 산행지의 마바지 창원으로 내려가 산행을 하다보면 그 마지막 도시인 김해로 들어가는 날이기에 내색은 안했지만 즐거움이 가득했었던 시간은 부인하지 못하였나 보다.

그 먼길을 거의 홀로 내려가 진행을 하다 보니 만만치 않은 경비와 무탈한 산행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았지만 이렇게 그 막바지에 다달으니 그것이 오히려 더 큰 추억과 상세한 산행으로 남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고운 시간으로 남겨질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오늘도 심야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길에 너무나 달콤한 잠을 자서 그런지 새벽녘 도착한 창원에서의 시간은 일상 생활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상쾌한 하루의 새벽으로 시작하고 있다.

 

 

홀로 어둠속을 헤치며 한발 두발 걷다보니 정병산 정상에서 아름다운 일출을 보고 싶어 조금은 여유를 부리다 결국 기대했던 일출도 보지 못하고 늦게 정병산 정상에 올랐다.

아무도 없는 정상에서 셀카 놀이를 하다 북서쪽에 자리한 무인카메라가 있는 암봉으로 가 멋지게 펼쳐진 조망을 즐긴 후 정병산 정상으로 되돌아 나오니 몇명의 산객들이 올라 와 주위 풍경을 감상하고 있고 그중 한 부부에게 부탁해 다시 정병산 정상석에서 증명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새벽 햇살을 받으며 담은 사진이기에 더욱 귀하게 남을 추억으로 간직하지만 너무나 강하게 불어대는 찬바람에 오랫동안 머물지 못하고 금새 내려 와 겨울 조끼를 입고 잠시 더 머물다 정상을 출발하는 시간이 되였다.

 

 

지난 구간까지 마산으로 내려가 마산 택시를 타고 산행 들머리로 이동을 하였지만 오늘은 창원으로 내려가 택시를 이용해 용강검문소로 출발을 한다.

산꾼들에게는 신풍고개로 더 잘 알려져 있는 14번과 25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이지만 이곳 주민들에게는 용강검문소나 용강고개로 더 잘 알려진 곳이으로 지금은 2차선 지방도로를 4차선으로 늘리기 위한 도로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기에 일찍 완주한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와는 사뭇 다른 장소로 변모를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택시 기사에게 용강검문소 직전 산마루 식당 간판 앞에서 내려달라 부탁을 하였는데 용강검문소를 한참 지나서도 말이 없다.

혹시 용강검문소를 한참 지난 듯 한데 어떻게 된일냐고 묻자 그제서야 용강검문소 지나 식당을 찾아 보지만 없어 그냥 진행하고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곳 택시에 대한 기분 나쁜 세번째 이야기로서 다시는 창원에 내려가 택시를 타는 일은 없을 것임을 다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용강고개로 뒤돌아 와 어렵게 산마루 가든 건너편 갓길도 없는 곳에 내려 조심스럽게 높은 중앙 분리대가 있는 도로를 건넌 후 시멘트 도로로 이어진 거대한 산마루가든 간판 앞에 서서 긴 한숨을 토해내며 산행 준비를 하는 시간이 새벽 5시를 막 가르키고 있다.

이곳 동읍은 경상남도 창원도호부시대에 지금의 창원시 소답동에 있었던 부성의 동북방에 위치했다고 하여 동면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가 고종 32년(1885년) 창원군 동면이라 하여 35개 리를 관할하고 있었으며 1910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동면 전체가 마산부에 편입되어 1914년까지 마산의 일부로 있었으나 1914년 일제의 지방행정구역 개편시 다시 환원되었다.

이 개편은 대산면 신전리 일부, 봉산면 하덕리 일부, 김해군 좌곤리 일부를 병합하여 법정리동 24개로 되었고 1995년 1월 1일자로 창원군에서 북면, 대산면과 함께 창원시로 통합되어 동읍이 된 곳으로 용강리는 옛 이름이 당방정이였으나 용암으로 바뀌였다가 그 용암이 수해로 인해 새로 만들어 이주한 동네로 용강이 되어 지금은 양달과 음달이란 마을이름으로 남아 있는 법정 마을로서 그 고갯마루에 검문소가 있어 용강검문소로 더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그것마저 사라져 그저 용강마을로 잘 알려진 곳이다.

지금에서야 지난 구간 내려오며 만났던 용강마을의 표지석에 대한 이해가 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정확히 새벽 5시에 산마루가든 입간판 앞에서 산행 준비 후 올라가니 왜 그리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대는지 몸을 가누기조차 힘이 드는 시간이다.

그래도 천천히 숨을 고르며 시멘트 포장 임도를 타고 산마루가든 앞으로 오르니 식당 직전 좌측으로 등산로 안내판이 서 있고 나무 울타리를 우측에 두고 절개지 위로 등로가 새로 개설되어 있다.

식당의 견공들은 새벽 찬바람을 가르며 진행하는 이 산객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는지 귓청이 떨어질 듯 무섭게 짖어대고 마음속으로 식당 주인장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진행하니 사면 등로를 지나 넓은 수레길 같은 등로를 만나 좌측으로 진행하니 금새 등로 우측으로 묘지들이 나타난다.

아마도 예전에 산마루가든 주차장쪽에서 올라오던 등로와 만나는 지점이라 생각되는 곳으로 다시 별 특징 없는 확실한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갑자기 바위와 벤취들이 보이고 그 바로 아래에는 체육시설들이 서 있는 177봉에 도착해 우측 아래로 반짝이는 창원시내 야경을 바라보고 진행을 한다.

 

 

177봉을 지나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많은 거대한 바위들이 보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곳으로 올라 창원시내 야경을 담아 보지만 너무나 짙은 어둠속에 삼각대가 없으니 제대로 된 사진 한장 담기가 버겁고 더군다나 강하게 불어 오는 찬바람에 위험을 느껴 바위를 내려 와 정상 등로를 타고 걸어 본다.

동네 뒷동산 같은 등로를 타고 한동안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의 남해고속도로를 빠르게 질주하는 차량 소음들이 귓전을 때리고 그 소음을 친구 삼아 걷다보니 갑자기 완만한 오르막 등로에서 짧은 대나무 밭을 지난다.

그 대나무 밭을 지나자 마자 등로 좌측으로 과수원의 큰 묘목들이 도로 불빛을 받아 눈에 들어 오고 이제부터 등로 좌측에 가시가 달린 탱자나무 울타리를 타고 진행하게 되는데 저 앞쪽으로 밝게 빛나는 등불 몇개가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를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조금은 으시시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지나며 생각해 보니 이곳 등로 우측으로는 창원 골프장이 들어 서 있어 이 탱자나무 울타리 역시 그 골프장의 울타리 역활로 심어 놓은 듯 보였다.

  

 

좌측으로 서 있던 탱자나무 울타리가 잠시 사라지고 그곳에는 이제 과수원 묘목을 보호하려는 철봉과 쇠줄이 대신하고 잠시 더 진행을 하니 깊은 도랑으로 뚝 떨어졌다 올라야 할 등로로 변해 있다.

마사토인지 흙이 무너지며 제법 미끄러운 등로를 타고 그 골짜기 같은 안부를 지나 오르니 다시 빽빽하게 들어 찬 탱자나무 울타리가 나타나고 넓은 구레길 같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한동안 전진하니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서 자주 봤던 특별고압 장치가 등로 좌측에 불쑥 나타난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그곳을 통과해 진행하며 정상적인 등로로 잘 진행하고 있음에 한숨을 크게 내쉬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곳 특수고암장치를 지나자 마자 등로는 새롭게 황토 흙을 깔아 놓은 듯 온통 붉은색 일색이고 부드럽기까지 해 꼭 이 산객을 위한 흙갈이처럼 느껴지는 시간이다.

한여름에는 잡목이 우거져 산행 하기에 무척 어려웠을 이곳 등로도 골프장에서 정리를 해 놨는지 깨끗하게 나 있어 산행하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평탄한 등로가 되어 있다.

다시 그렇게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어둠속에서도 골프장의 그린이 내려다 보이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에 골프장 본관 건물로 보이는 건물에는 몇개의 가로등이 밝게 빛나고 있다.

아마도 오늘 산행 초입에 봤던 도깨비 불빛 같았던 것도 바로 이곳에서 빛나는 밝은 가로등이 부는 바람결에 나뭇가지에 가렸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이 산객의 눈에 들어 왔기에 그렇게 느꼈는가 보다.

바로 그 건물 앞에는 이제 파란 그물망이 탱자나무 울타리를 대신하며 짧게 서 있고 그 위에는 많은 낙엽과 잡목이 자라다 말라죽은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창원골프장 본관 건물 앞 그물망에서 강하게 불어 오는 찬바람과는 달리 바람이 없는 곳은 더위가 찾아 와 벌써 이마와 등줄기에는 땀방울이 흐르기에 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고 가볍게 진행을 한다.

다시 등로 좌측으로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시작되고 그 울타리를 따라 진행을 하니 금새 198봉을 넘어 사면길을 타고 진행하다 등로 좌측에 얼마전 지나 간 산이랑님이 올려 놓은 바위속 느티나무 풍경을 담아 본다.

참으로 기구한 삶을 살아가는 느티나무가 예사롭지 않아 어렵게 올라 보니 온 사방에 모두 바위로 둘러쳐져 있는데 유독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는 곳에만 바위가 아닌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결코 가볍게 생각해선 안되는 삶이며 생명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탱자나무 울타리를 친구 삼아 계속 전진하니 등로가 갑자기 깊은 골짜기 아래로 떨어지고 가파른 절개지 같은 등로를 조심하며 내려가니 등로 우측 울타리에 (주)창원컨트리클럽 대표가 붙여 놓은 경고문이 붙어 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부치고개인듯 한데 자신은 없는 장소이다.

자료를 찾아 보니 동읍 덕산리에서 창원시 봉림동을 이어주던 부처고개(부찌고개)는 예전에 돌부처가 있었다 하여 유래되였다는데 이제는 창원골프장이 가로막아 그 고갯마루로서의 역활도 사라진 후 그저 전설로만 이름을 남겨진 고갯마루처럼 보인다.

 

 

부치고개를 지나 가파른 마사토 위에 안전로프가 설치된 오르막 등로를 조심하며 오르니 다시 등로 좌측으로 탱자나무 울타리가 나타나고 약간의 바위지대를 지나 가파른 내리막 등로와 이어지고 있다.

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는데 등로 우측 앞으로 어둠속에서도 멋진 골프장 그린이 보이고 잠시 배낭 내려 놓고 DSRL 카메라를 꺼내 이제부터 무거운 카메라를 목에 걸고 진행을 한다.

열심히 빛을 모아 담아 보지만 아직도 너무나 깊은 어둠속이다 보니 많이 흔들려 버렸다.

 

 

어렵게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사면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다보니 등로 우측으로는 창원골프장 그린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 골프장 그린과 붙었다 멀어지기를 몇번인가 반복하고서는 드디어 골프장 그린과 완전히 멀어진 장소에서 등로 좌측으로 덕산리와 남해고속도로 동창원 IC 그리고 동읍쪽 마을을 내려다 본다.

어둠속에 서서히 여명이 밝아 오고 그 흐릿한 빛을 받아 올려다 보니 잡목 가지 사이로 저 멀리 정병산 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다 만나는 짧은 대나무 밭을 지나 전진하니 바위가 있는 산죽지대를 지나 희미한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선답자들의 후기를 보니 우측으로는 295봉을 넘고 좌측 등로는 우회하는 우회 등로이다.

이곳에서 이 산객은 어둠속이고 정병산에서 일출을 보기로 했기에 좌측 사면 등로를 타고 진행하기로 하고 앞으로 전진하니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키 큰 산죽지대가 나타나 그속을 미로 찾기하듯 통과해 본다.

 

 

산죽지대를 통과한 후 다시 잡목이 있는 능선을 타고 진행하다 이어지는 짧은 산죽밭을 지나니 이제 정병산 정상부가 시원하게 올려다 보이고 곧이어 묘지를 지난 뒤 소목마을과 사격장이 갈라지는 사거리 임도인 소목고개에 도착을 한다.

이제 제법 어둠이 사라지고 여명이 밝아 오며 주위 사물들이 눈에 들어 오는 시간, 등나무 쉼터엔 몇개의 벤취가 마련되어 있고 그 앞에는 마을 주민 한분이 벌써 소목고개에 올라 와 운동을 하고 있어 인사를 나눈다.

소목마을은 현재 동읍 덕산리로서 옛지명은 소목이었는데 이는 지형이 소가 누워 있는 모양으로 마을이 소의 목쯤 되는 위치에 있다고 하여 유래된 지명으로 그 마을의 고갯마루이기에 소목고개가 되였다는 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오늘 최대 난코스중 한곳인 정병산 정상을 올라야 하는 힘겨운 시간이 남아 있다.

 

 

소목고개를 사진에 담은 후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직진의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등로 좌측 묘지 한기 넘어 18번 송전탑이 보이고 소나무가 멋지게 자라고 있는 등로를 따라 서서히 고도를 높히더니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은 가파른 된비알 오르막에 도착을 한다.

이제부터 숨이 턱에 차도록 헉헉 거리며 그 계단을 타고 오르니 다시 돌 계단이 나타나고 우측으로 바위너덜지대를 지나자마자 서서히 등 뒤로 아름다운 창원시가지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거대한 운동장과 아파트 단지들 그리고 공장지대와 한가운데 나즈막하게 자리한 산 뒤로 팔룡산과 뒷산(춘산)이 병풍처럼 솟아 있고 그 우측 저 멀리 지난 구간 멋지게 걸었던 무학산과 낙남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정병산 정상에서 만나려던 일출은 벌써 시작되였는지 발 아래 펼쳐진 창원시내의 하얀 아파트 단지에 그 햇살이 밀려 들고 있다.

아름답지만 조금은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조금 더 오르니 큰 바위에 안전로프가 달린 바위 전망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내려다 본 지나온 낙남정맥 마루금이 황홀하다.

발 바로 아래에 방금 전 지나온 소목고개가 자리하고 그 넘어 295봉이 솟아 있으며 나즈막한 산줄기를 타고 창원골프장을 좌측에 두고 이어지던 낙남정맥 마루금이 우측으로 달려나가 저 멀리 두 봉우리가 우뚝한 천자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좌측으로 돌고돌아 무학산을 일으킨 후 그 뒤로 광려산과 여항산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마루금이 환상으로 펼쳐져 있다.

많은 사진을 남기고 다시 천천히 우측으로 꺽여 오르는 계단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올라가 본다.

  

 

그렇게 멋진 조망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바위에서 창원시와 지나온 낙남정맥 마루금을 뒤돌아 본 후 정병산 정상으로 오르니 저 멀리 계단 위에 바위 암봉이 올려다 보인다.

곧이어 소나무가 아름답게 서 있는 나무계단과 나무데크를 타고 오르니 등로 우측 절벽에 분재형 소나무가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다시 몇발작 위로 오르니 거대 암봉이 바로 위에 올려다 보이고 지나온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오르니 저 멀리 벤취와 사각정 그리고 그 좌측으로 전단쉼터 이정표가 보인다.

  

 

드디어 정병산 정상에 올라 사각정 뒤로 돌아 가 늦은 일출을 담아 보지만 역시 해는 이미 중천에 떠오른 뒤였다.

붉게 타오르는 태양 아래 용추고개 지난 415봉에서 가지친 380봉과 284.1봉으로 이어지는 멋진 산줄기가 바로 앞에 펼쳐져 있고 저 멀리 다음구간 올라야 할 황새봉과 경운산 지나 낙남정맥 마지막 봉우리인 신어산이 가물거린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가슴이 설레이고 피가 거꾸로 들끓는 시간이다.

 

 

동쪽의 밝은 햇살을 담은 후 다시 남동쪽으로 진행해야 할 끝없이 이어진 황홀한 산그리메를 살펴 본 후 전단쉼터 이정표를 담고 정병산 정상부로 향한다.

정병산 정상부로 향하며 안전봉과 로프가 달려있는 바위를 타고 오르니 조금 넓은 정상에는 삼각점이 박혀 있고 그 뒤 조금 더 높은 바위 위에 앙증맞은 정병산 정상석이 안전봉과 로프 안쪽에 당당하게 서 있다.

아무도 없기에 어렵게 셀카 놀이를 하며 사진 두어장 남긴 후 배낭을 정상 밑 공터에 놓고 북서쪽으로 보이는 또 다른 봉우리와 무인산불 감시카메라가 있는 능선을 담아 보니 역시 환상이다.

그 봉우리 좌측으로는 남해고속도로와 창원2터널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서천저수지가 빤히 내려다 보인다.

 

 

북서쪽 무인산불 감시 카메라가 있는 봉우리에 도착해 북쪽으로 아름답게 솟아있는 암봉을 내려다 본다.

우측에서 비춰오는 아름다운 아침 햇살을 빋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 암봉이 이 작은 산객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져 자꾸만 시간이 늘어지고 있다.

그래도 홀로 올라 주위 조망과 풍경을 바라보는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암봉 아래 동읍 민가들과 서천저수지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멋진 바위 몇개가 모여 있는 모습을 담고 용정사와 동읍 자여마을 하산 갈림 이정표도 담은 후 다시 정병산 정상쪽으로 뒤돌아 나오며 등로 우측을 바라보니 그곳에 이 작은 산객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사진 좌측으로 오늘 힘들게 올라온 소목고개가 보이고 그 우측으로 돌아가며 창원컨트리클럽이 펼쳐져 있으며 그 넘어 신풍고개를 넘으니 쌍봉처럼 보이는 천주산을 지나 다시 좌측으로 돌아가며 마산의 진산인 무학산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 낙남정맥 마루금을 우측으로 돌리며 그 좌측 한가운데에는 마산시에서 창원시로 이어지는 거대한 도시가 회색 건물을 가득 담고 펼쳐져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자 조망이 아닐 수 없다.

 

 

돌아 나오는 길에 정병산 정상부를 바라보니 그곳에 다시 풍경화 한폭이 그림이 되어 그대로 남겨져 있다.

빛바랜 억새풀 넘어 암봉으로 이뤄진 정병산 정상이 우뚝하고 그 정상부를 둘러친 안전봉과 로프가 있는 한가운데에 산객 한분이 서 서 지나온 낙남정맥 마루금과 창원시를 내려다 보는 모습이 너무나 황홀하다.

그 정상 우측 저 멀리에는 몇겹인지도 알 수 없는 켭켭히 쌓여 있는 산그리메가 앞으로 올라야 할 이 산객의 가슴을 더욱 작게 만들고 있다.

좌측인 동쪽에 막 떠오른 아침 햇살이 비추며 그 아련함을 그리움으로 남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정병산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이 이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군사훈련을 실시했던 것에서 붙여진 이름이나 처음 이름은 봉림산이라고 한다.

봉림산은 통일신라시대 말기 진경대사가 이 산자락에 세운 봉림사에서 유래된 듯하며 당시 이곳에는 봉림사를 비롯해 많은 사찰이 들어서 불교가 융성했다.

그래서 고려시대 때는 부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과 관련이 있는 전단산으로 불렸다는데 창원 시민들이 뜻을 모아 처음 이름인 봉림산으로 다시 새기고 있다.

그래서 정상 표지석 앞면에는 봉림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뒷면에는 정병산으로 되어있다.
정병산은 낙남정맥 구간으로 뒤돌아보면 천주산과 무학산이 보이고 앞으로는 비음산과 대암산 등 정맥 산줄기가 끝없이 펼쳐진다.

비음산이 있는 동남쪽으로 직진해 헬기장을 지나 내정병산까지 가는 구간은 산세가 옹골차며 독수리 바위를 비롯한 여러 암봉들이 가파르게 일어섰다.

그러나 계단과 로프, 쇠받침대 등 안전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어 큰 어려움은 없다. 

 

 

정병산 정상부로 다시 뒤돌아 오니 이제 몇명의 등산객들이 이른 아침인데도 올라 와 있고 그중 한 부부에게 부탁해 어려게 증명 사진 한장 남기니 사과 한쪽을 나눠 먹다 이 산객에게도 권한다.

배낭에 과일이 많이 들어 있기에 고맙다는 인사만 드리고 다시 대암산 방향으로 천천히 진행을 한다.

진행하며 등로 좌측을 내려다 보니 우동리의 선천저수지와 창원의 전차 시험장과 훈련장이 거대하게 펼쳐져 있다.

조금 더 진행해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바로 앞에 헬기장 지나 513봉이 우뚝하고 그 뒤로 끝없이 이어진 낙남정맥 마루금이 춤을 추듯 넘실거리고 있다.

진행하지 못하고 다시 발걸음 멈추고 그 황홀함에 빠져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등로 우측으로는 창원시가 거대한 회색도시로 드러나고 마치 서울의 산에 올라 내려다 보는 거대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이다.

등로 우측으로 거대한 암봉을 놓고 좌측으로 우회해 지나며 올려다 보니 생각보다 크고 거대한 암봉이다.

그러다 뒤돌아 보니 지나온 등로 우측 능선으로 푸른 소나무가 가득하고 그 정상부에는 사각정이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는 동읍과 김해시 진례면 경계의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들판 군데 군데에 민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세상 살아가는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조금 더 지나니 암봉 좌측으로 나 있는 등로에는 안전봉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그곳을 지나 뒤돌아 보니 참으로 거대한 암봉 한쪽에 푸른 소나무가 독야청정 서 있는 모습에서 용기를 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그 암봉을 지나니 등로 우측으로 지나온 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고 그 한가운데에 거대한 창원시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그렇게 주위 조망과 풍경을 즐기며 더 전진하니 등로 옆에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고 그 앞에는 조각상(소나무)란 안내판이 서 있다.

그 안내문에는 육송, 적송이라고 하는데 나무껍질은 적갈색으로 거북이 등처럼 세로로 깊게 갈라진다.

겨울눈은 적갈색이며 잎은 바늘모양으로 2개씩 뭉쳐난다.

흔히 미술 조형의 조각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상이라 적혀있다.

특별할 것없는 곳에도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고 안내판을 세워 두면 한번쯤 읽고 가고픈 것이 사람들의 심리인가 보다.

 

 

그 조각상 소나무를 지나니 작은 도랑 위에 나무 다리가 걸쳐져 있고 그곳을 지나니 119조난위치표찰이란 안내판 아래 창원시 봉림산1-마란 글귀가 보인다.

역시 정병산이란 정상석과는 달리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이곳에서부터는 정병산이 아닌 봉림산이란 이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곳을 지나니 제법 넓은 억새밭이 펼쳐져 있고 그 한가운데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우측에 헬기장이 놓여 있다.

한쪽에는 헬기장이란 이정목이 서 잇고 그곳을 다시 펼쳐진 암봉 넘어 저 멀리 끝없이 펼쳐진 정맥 마루금이 환상이다.

그 암봉을 타고 끝자락으로 가니 그곳에는 기다란 나무 계단이 이어져 있고 가파른 나무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전차 훈련장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는 방금 전 지나온 거대한 암봉과 그 암봉 밑으로 이어진 기다란 나무계단이 올려다 보인다.

 

 

안부에서 등로 우측을 바라보니 여전히 창원시가 거대하게 펼쳐져 있고 천천히 그 조망을 즐기며 걸어가니 호젓한 능선길로 이어지고 그 우측에는 벤취가 놓여 있다.

그곳을 지나니 소나무가 멋지게 펼쳐져 있는 등로를 타고 참으로 아름답게 산행을 이어가게 만든다.

호젓한 등로를 지나니 멋진 봉우리 넘어 다시 황홀한 산그리메가 파도처럼 춤을 추고 등로 좌측으로는 조금 더 깨끗한 전차 훈련장이 드러나 있다.

그 모습을 사진에 담은 후 다시 전진하니 나무 계단 넘어 저 멀리 다시 드리워진 마루금이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그곳에 멈춰 그저 돌부처가 되라 하는 듯 하다.

차라리 돌부처라도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숨겨진 비경을 감상하며 가슴에 사무치는 산그리메를 담고 전진하니 다시 내리막 나무계단이 이어지고 그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며 등로 좌측을 내려다 보니 작은 서천저수지 지나 남해고속도로가 시원하고 그 뒤로 380봉과 284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다.

그렇게 진행하며 나무계단을 내려가니 다시 거대한 암봉이 등로를 가로막고 그 암봉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우회등로가 나 있다.

정병산 정상에서 1.1 m 지나온 장소로서 공식적인 이름은 독수리바위였다.

이 독수리 바위 역시 다시 우측 밑으로 안전하게 우회하는 등로가 나 있지만 보니 그렇게 가파르게 보이지 않기에 이 산객은 그냥 그 독수리 바위를 통해 진행하기로 하고 조심스레 진행을 한다.

 

 

독수리 바위로 오르는 암봉에는 안전봉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그 가눙데 능선을 타고 조심스레 진행을 하는데 생각보다 위험하지는 않지만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 조금은 주의가 필요한 시간이다.

암봉을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내려온 513봉 암봉과 나무계단이 빤히 올려다 보이고 그렇게 조금 더 전진하니 약간 넓은 공터같은 정상부에 해발 460봉인 정병산 수리봉이란 정상석이 박혀있다.

그 정병산 수리봉 정상석을 두고 저 멀리 동읍 들판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해발고도 460봉인 정명산 수리봉을 내려오니 다시 임봉 끝자락에 나무계단이 시작되고 그 계단을 타고 내려가며 앞을 바라보니 너무나 황홀한 낙남 마루금이 넘실거리며 그 끝자락은 좌우측으로 갈라지며 좌측으로 낙남 마루금을 보내고 우측으로 진해를 둘러싼 병풍같은 장복산과 불모산 그리고 산화산쪽 산줄기가 또한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며 뻗어 있다.

오래전부터 한번 올라보려고 많은 자료를 찾아 놨지만 아직도 오르지 못한 미답봉들로 남겨져 있으니 저곳을 오르기 위해 다시 한번 내려와야 할 이유가 생긴 곳이기도 하다.

계단을 내려와 뒤돌아 보면 각아지른 절벽의 독수리바위 끝자락에 질긴 생명을 걸고 견디는 소나무 넘어 저 멀리 무학산에서 천주산으로 이어지는 낙남 마루금이 시원하고 그 앞으로는 회색의 거대 도시인 창원시가 넘실거리고 있다.

등로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전차 훈련장과 서천저수지를 내려다 보고 전진하니 돗구리바위 위험을 알리는 안내판이 다시 보이고 그곳을 지나니 낙엽진 활엽수가 간간히 서 있는 호젓한 등로를 타고 걸어 가 본다.

그렇게 진행하다 다시 뒤돌아 보니 꽃망울이 올라오는 진달래 군락지 위 저 멀리 이 산객이 새벽부터 오르기 위해 진행했던 정병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줄지어 서 있다.

 

 

계속 이어지는 키 작은 진달래 군락지 위로 멋진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흙을 밟으며 호젓하게 걸어가는 아침이 상쾌하기만 하다.

한동안 그렇게 호젓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저 멀리 바위가 박혀있는 등로가 오르막으로 변하며 잠시 올라서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정병산 산줄기가 조금 더 시원하게 다가온다.

다시 낙엽진 활엽수와 소나무 사이를 통해 전진하니 바위 몇개가 등로 옆에 모여있고 곧바로 소나무 한그루와 그 옆에 안내판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정병산 지킴솔 소나무와 안내판이였는데 그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육송, 적송이라고 하는데 나무껍질은 적갈색으로 거북이 등처럼 세로로 깊게 갈라진다.

겨울눈은 적갈색이며 잎은 바늘모양으로 2개씩 뭉쳐난다.

정병산의 신성한 기운을 뿌리에서부터 6개의 줄기로 흡입하여 정병산의 모든 물체를 보호하고 있다란 글귀였다.

 

 

정병산 지킴이 소나무의 안내판을 읽어 본 후 483정상인 이곳에서 잠시 서성이며 등로 좌측으로 이어진 나즈막하지만 제법 산줄기의 틀을 만들어 뻗어 나간 산그리메를 바라 본다.

용추고개와 우곡사를 지난 415봉에서 북쪽으로 가지친 380봉과 284봉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마산시 동읍과 김해시 진례면을 가르며 또 다른 세상을 만들고 있는 풍경이다.

산줄기 우측의 동쪽에서 강렬하게 비추는 아침 햇살이 퍼지며 조금씩 더 진한 박무가 깔려 있지만 그렇기에 더욱 아련하게 그리움을 남기는 산줄기로 가슴에 남겨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정병산 지킴이 소나무를 지나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다 앞을 보니 여전히 장쾌하고 아름다운 낙남의 마루금이 끝없이 이어진 모습이 장관이고 그렇게 조망을 즐기며 내려가니 길상사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이제 정병산으로 부터 2.2 Km 지나 왔다는 거리 표시가 있는 곳이다.

현재의 길상사는 60여 년 전 김봉순이라는 불자에 의해 용연사란 이름으로 창건되었고 그 후 창건주의 희망에 따라 승보 종찰인 송광사의 말사로 편입되어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의 창원포교당으로 위상에 걸맞게 지역 사회에서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2000년 1월 현재의 주지인 승려 무자가 취임하여 3년에 걸친 공사 끝에 2004년 대법당인 무량수전의 낙성식을 거행하였고 무량수전은 2층으로 설계되었으며 위층은 천불보전으로 조성되어 있다.

새로운 무량수전의 건립을 위해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던 승려 법장이 여러 번 길상사를 다녀갔으며 낙성식에도 참여하여 창원의 불자들에게 큰 자부심을 심어 주기도 했다.
또한 무량수전 내 삼존불 점안식에는 조계총림 송광사의 방장인 승려 보성이 참석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낡고 협소하던 도량을 대가람으로 일신하였으나 최근 길상사의 도량 바로 앞으로 고속열차인 경전선의 복선화와 역사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사찰 이전이 불가피한 형편으로 변화되였다.

잠시 길상사를 생각해 보고 다시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봉우리 하나를 오르자 일심동체 소나무 한그루와 그 옆 공터에 내정병봉과 내봉림봉이란 한자가 세겨진 정상석이 서 있다.

내정병산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아쉬운 시간이다.

 

 

내정병산 정상에서의 조망 역시 아름답고 멋지다.

바둑판처럼 잘 짜여진 계획된 도시인 창원시내가 한눈에 들어 오고 그 좌측 남동쪽으로는 거대한 낙남 마루금이 병풍을 치고 둘러싼 풍경도 들어오며 그 위를 걸어 가야할 능선도 환상으로 빛나고 있다.

다시 잠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안부에 운동시설이 되어 있는 곳을 지나 내정병산 정상에서 0.1 Km 지난 지점에 다시 길상사 하산 등로가 갈라지는 이정표가 보인다.

계속 안전봉과 로프가 설치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며 등로 주위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소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다.

서서히 허기가 지기 시작하고 시간도 아침 식사 시간이 지났기에 그 내리막 등로의 계단 옆에 설치된 나무 벤취에 앉아 준비한 김밥을 먹으로 민생고를 해결하며 30여분 보낸 후 다시 내려가니 다시 길상사 갈림 이정표를 지나 우곡사 갈림길 이정표가 서 있다.

 

 

시간이 있으면 한번쯤 들려보고 싶은 우곡사이지만 오늘은 이렇게 자료를 찾아 보는 것으로 대신해 본다.

우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로서 832년(신라 흥덕왕 7년) 무염이 창건하고 이곳에서 후학을 길렀다고 하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절의 역사는 알 수 없다.

1799년(조선 정조 23년)에 편찬된 범우고에 절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도 명맥을 유지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후 폐사된 것을 19세기 말에 구만호가 복원하였다.
현재 건물로는 대웅전과 북극전, 산령각, 요사체 및 종루 등이 있고 유물로는 옛 절터에 탑 조각과 기와 조각들이 널려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만호의 초상화가 전해졌으나 도난당하였고 절 앞에는 창건 때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샘이 남아 있는데 샘은 창건주인 무염이 발견한 것으로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다시 우곡사 갈림 삼거리에서 창원시도 내려다 본 후 다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나즈막한 오르막 위에 나무 벤취가 있는 공터를 지나 평이한 등로를 타고 조금 더 전진하니 체육시설이 있는 용추계곡의 용추계곡입구 하산 갈림 이정표가 있는 곳을 지난다.

 

 

 

용추고개의 이정표를 담은 후 몇명의 등산객들이 쉬고 아침식사를 하고 있기에 그곳을 빠르게 통과한 후 전진하니 소나무 숲이 아름답게 이어져 있고 잠시 호젓한 등로를 타고 걸어 본다.

그러다 나즈막한 무명봉을 넘으니 다시 소나무가 사라진 평이한 등로가 열려 잇고 잠시 진행하니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며 우곡사 갈림 이정표가 또 서 있다.

잠시 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저 멀리 밋밋한 봉우리가 나타나고 그곳 정상에는 415봉 정상 이정표가 서 있는데 정상 표시는 없이 그저 대암산까지 5.0 Km가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되어 있다.

이곳에서 등로는 동쪽에서 다시 남동쪽으로 크게 꺽어 내려막 등로로 진행되고 있다.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주위에는 벌거벗은 갈참나무가 아름답게 등로를 호위해 주고 다시 나즈막한 봉우리인 408봉 하나를 넘어 소나무 군락지를 통과하니  등로 좌측 저 뒤로 지나온 정병산 줄기가 잡목 사이로 약간 보이더니 사라지고 이제 김해시로 들어 와 진례면의 마을들을 내려다 보며 진행하게 된다.

소나무와 잡목 구간을 번갈아 가며 타고 진행을 하니 잠시 등로 우측으로 잡목이 사라지며 저 멀리 지나온 낙남 마루금이 시원하게 정병산으로 이어진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그 좌측 산 아래로는 용추계곡 넘어 창원시의 변두리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창원의 용추계곡은 정병산(567봉)과 비음산(486봉) 사이에 있는 계곡으로 비음산에서 발원한 물이 골짜기를 벗어나기 전에 곳곳에 크고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는 곳으로 계곡의 길이는 4.5㎞로 생태계 탐방에 수월하도록 자연탐방로와 11개의 다리를 설치하였으며 사철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탐방객들이 많이 찾는다.
용추계곡의 골벽(골짜기 양쪽에 늘어선 벼랑)을 따라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어 비음산의 진례산성과 정병산을 찾는 이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으며 최근에 계곡의 동남쪽에서 도로가 발굴된 것으로 보아 예전에도 이 부근에 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름철 내려왔으면 그 시원한 용추계곡물에 몸이라도 담그고 가겠지만 한겨울 추위가 완전히 물러나지 않은 시기이기에 그저 먼 발치에서 내려다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시간이다. 

 

                         

지나온 정병산과 오늘 산행을 시작한 용강고개 그리고 지난 구간 어렵게 올랐던 천주산을 바라 본 후 다시 천천히 진행을 하니 정상이 넓은 공터로 이뤄진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 옆에 세워진 용추고개에서 1.4 Km 지나왔다는 이정표를 담아 본다.

그곳을 지나니 다시 잡목들이 등로를 채운 평이한 등로를 진행하니 이제 너무나 아름다운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저 앞으로는 앞으로 진행해야 할 낙남 마루금이 등로 우측으로 펼쳐져 있다.

그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는 기분이 환상이다.

 

 

그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내려가니 다시 잡목 구간이 나타나고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나무 벤취가 놓여 있는 무명봉을 지나 계속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잠시 더 오르니 등로 좌측에 나무를 감싼 돌담지역이 보이고 사진 한장 남기고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김해시 진례면 들판이 아름답게 들어 온다.

이제부터 키 작은 관목과 잡목이 등로 양쪽을 빽빽하게 채운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고 정상부 부근으로 오르다 뒤돌아 보니 지나온 408봉 지나 내정병산과 저 멀리 정병산 마루금이 멋지게 누워있다.

바로 아래 골짜기에는 여름철 이곳 창원시민들의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용추계곡이 숨어 있기도 한 곳이다.

 

 

다시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양쪽으로는 관목과 잡목이 어우러져 있다.

그러다 잠시 평이한 안부를 만나 전진하다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에 다다르니 등로 우측 저 망ㅍ으로 청라봉에서 낙남정맥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비음산으로 이어지는 멋진 산줄기가 시원하게 올려다 보인다.

잠시 후 저 능선을 타고 오르며 다시 이곳을 내려다 보는 풍경 역시 멋지고 아름다울 것이다.

 

 

그 멋진 풍경을 올려다 본 후 다시 진행하여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진례면의 진례저수지와 신월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제법 넓게 펼쳐진 진례면 들판도 내려다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낙남정맥 마루금의 마지막 봉우리인 신어산 줄기도 햇살을 받아 희미하지만 그 존재감을 강하게 알리고 있다.

등로 우측으로는 낙남 마루금 우측으로 창원시의 무명봉이 우뚝 솟아 있고 그 넘어 저 멀리 창원시도 내려다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는 394봉 넘어 신안리와 신월리가 내려다 보이며 그 넘어 저 멀리 김해시의 신어산 줄기가 아름답다.

 

 

그렇게 485.7봉을 지나 능선을 타고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계속 조망되는 진례면과 저 멀리 신어산 방향의 산그리메가 그리움을 더해주고 있다.

또한 뒤돌아 보면 지나온 낙남 마루금이 우뚝하고 등로 우측 뒤쪽으로는 계회도시인 창원시의 회색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줄지어 들어 선 모습도 들어 온다.

민둥의 무명봉을 지나 넘으니 오늘 올라야 할 대암산과 용지봉이 저 멀리 가물거리고 그 아래 산본리쪽 마을이 아름답다.

많은 돌이 깔려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민둥의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 옆에는 벌거숭이벗꽃동산이란 이정표가 서 있지만 좌우 거리 이정표는 사라지고 없다.

지도를 살펴보니 505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이다.

 

 

벌거숭이벗꽃동산 정상인 505봉에서 살펴보니 일망무제 시원한 풍경과 조망이 일품이다.

한동안 그곳에서 아름다운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이제 등로는 낙엽진 활엽수 군락지 한가운데로 나 있다.

잠시 더 진행하니 안부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 무너진 돌담 흔적이 뚜렷하고 지도를 살펴보니 진례산성 터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진례산성은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토월동 산 44-1, 44-2, 43번지에 위치한 통일신라 시대의 산성으로 1993년 12월 27일 경상남도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되었다.
김해시 진례면과의 경계를 이루는 비음산 위에 축조된 면적 806,234㎡ 둘레 약 4km의 포곡식 석축산성으로 통일신라시대에 축성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산성에서 내려다보면 김해평야와 창원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와 당시의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성 안에는 사람이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넓은 터가 있어 많은 병사들이 주둔하기에 충분한 곳이다.
성의 남쪽은 비교적 험한 암벽산으로 출입이 불편하고 북쪽으로는 긴 계곡이 형성되어 있어 차단이 용이한 지형으로 성벽은 대부분 붕괴되고 성문지가 세 군데에서 확인되었으며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 있는 동벽의 일부 구간은 높이 157cm 너비 77cm 정도이다.
이 성은 한때 김해시 소속으로 여겨 왔으나 문화재로 지정하면서 정밀한 지표조사를 실시한 결과 창원시에 소속된 것으로 확인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위원회에서 기념물로 지정하였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 김해도호부 고적조에는 진례성은 북쪽 14km 지점에 있으며 신라대 김인광을 진례성 제군사로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진례산성터를 등로 좌측에 두고 계속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진례산성동문이란 이정표 지점 표시가 서 있고 등로 우측으로는 용추계곡 입구로 내려 갈 수 있는 갈림 삼거리이다.

 

                         

진례산성동문 이정표 옆에 서 있는 진례산성동문지 안내글을 읽은 후 다시 고속도로같은 등로를 타고 이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올라 본다.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타고 조금 더 오르니 진례산성 0.6 Km 이정목이 서 있고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지점에서부터 나무계단과 나무데크가 설치되어 있는 등로를 타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잠시 더 오르니 나무계단 등로 우측으로 나무데크로 된 전망대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가 주위를 살펴보니 온통 진달래 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저 멀리 용추계곡을 따라 그 우측으로 지나온 낙남 마루금이 시원하게 뻗어 있다.

 

 

이제 전망데크를 나와 천천히 오르니 제법 많은 등산객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금새 나무계단이 끝이나며 일반 등로로 바뀌는데 기온이 오르며 등로가 질척이기 시작한다.

등산화가 무게감을 느낄 정도로 진흙을 달고 오르니 삼거리 갈림 등로가 나타나고 등로 좌측으로 낙남정맥 마루금인 대암산 정상이 2.6 Km이고 등로 우측으로는 낙남정맥 마루금에서 살짝 비켜 서 있는 비음산 정상이 0.4 Km란 이정표가 서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일단 등로 우측의 비음산을 다녀 오기로 한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진 비음산 가는 등로는 이제 더워진 햇살을 받아 더욱 진흙창으로 변해있고 그 진흙을 피해 오르다 보니 시간은 더디고 진행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잡목으로 이뤄진 등로를 타고 잠시 더 오르니 무명봉을 넘어 금새 비음산 정상부가 눈 앞으로 다가온다.

몇분 지나지 않아 금새 비음산 정상에 오르니 생각보다  많은 등산객들이 비음산 정상에서 조망을 즐기기도 하고 사각정에서 쉬고 있기도 하다.

 

 

주위에서 조망을 즐기는 산님에게 부탁해 비음산 정상에서 멋진 증명 사진 몇장 남겨 본다.

오랫만에 다시 정상석을 앞에 두고 담아 본 사진이다.

비음산은 경상남도 창원시와 김해시 진례면의 경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매년 철쭉 축제가 개최되는 산으로 산 정상은 해발고도 486봉이며 너른 산을 뜻하는 말이다.

비음산의 능선을 따라서 포곡식 석축산성인 진례산성이 축성되어 지방기념물 제 128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비음산은 북동쪽으로 정병산, 봉림산과 천주산으로 이어지고 남서쪽으로 대암산과 용지봉 그리고 불모산으로 이어지며 비음산은 진달래가 산재하여 있지만 정상부위에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경남지역의 철쭉 명산이기도 하며 매년 5월에 비음산 철쭉제가 열리는 산이기도 하다.

비음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4가지 정도가 있으며 창원시 토월동에서 출발하여 용추계곡을 따라서 올라가는 방법이 널리 이용되고 있는데 용추계곡에는 창원시에서 만든 11개의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위치하고 있다.

참으로 멋진 풍경과 조망이 압권인 비음산 정상이다.

 

 

비음산 정상에서 바라 본 북서쪽 조망이다.

우측 산줄기가 낙남정맥 정병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로서 이 산객이 오늘 저 마루금을 타고 이곳까지 진행해 온 곳이다.

그 아래로는 시원하게 뚫린 넓은 도로가 길게 누워있고 그 좌측으로는 창원시내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그 창원시 뒤 저 멀리 지난 구간 지나온 천주산이 시원하고 그 좌측으로 돌아가면 마산의 진산인 무학산이 아른 거린다.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한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얼어 버렸다.

 

 

 

서쪽으로는 수많은 가옥들과 아파트 그리고 공장 건물들이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지 이렇게 내려다 보고 있는 이 산객의 가슴조차 답답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 뒤 저멀리로는 무학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박무속에서도 시원하다.

그 멋진 풍경 위에 떠 있는 하얀 뭉게 구름이 또한 오랫만에 이 산객의 가슴으로 파고 들며 왜 이런 고통스런 산행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사각정자 앞에서 멋진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다시 비음산 정상석이 있는 방향으로 되돌아 나와 다시 낙남정맥 마루금으로 복귀하려다 앞을 바라보니 그곳에 청라봉 지나 대암산과 용지봉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낙남 마루금ㅇ니 펼쳐져 있고 그 용지봉 우측으로는 불모산과 산화산 그리고 응산과 천자봉이 진해시의 병풍첢 둘러쳐져 있다.

그 산줄기 위로 강렬한 햇살이 펼쳐지며 박무가 드리워져 있지만 그렇기에 더욱 그리움이 쌓이는 마루금이 되였다.

 

 

이제 더욱 질척이는 진흙창 등로를 타고 비음산을 내려 와 미끄러지지 않토록 조심하며 비음산 갈림 삼거리쪽으로 되돌아 내려온다.

내려오다 김해시 진례쪽에서 올라온 등산객들을 만나 많은 지역 산 이름과 지역 이름을 들으며 또 다른 배움의 시간을 가져 본다.

등산 바지와 등산화가 무거워질 정도로 진흙을 묻히고 다시 내려오니 잡목 사이로 나 있는 등로 한가운데에 큰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고 그 둘레에는 원형 나무 의자가 놓여 있다.

그 삼거리 갈림길을 지나 이제 본격적으로 낙남 마루금을 타고 청라봉으로 향한다.

 

 

비음산 갈림 삼거리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이곳 역시 기온이 올라가며 등로가 이미 진흙창이가 되어 버렸다.

조심하며 오르니 낮은 봉분이 있는 묘지를 지나 바위들이 깔린 등로를 타고 정상부로 오르니 진례산성 안내판이 서 있고 그 옆에 민족의 자산인 문화재 보호란 안내판도 서 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517봉 정상인 청라봉이 아닐까 생각되어 지는 봉우리이지만 그 어디에도 표식이 없으니 알길이 없다.

혹시나 하고 삼각점이라도 찾아 보지만 찾는 삼각점도 보이지 않아 아쉬운 마음만 남기고 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517봉인 청라봉을 떠나며 잠시 뒤돌아 보니 북서쪽 저 멀리 방금 전 다녀 온 비음산 정상부의 사각정이 빤히 보이고 그 좌측 아래로는 창원시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그 뒤로 끝없이 펼쳐진 낙남정맥 마루금이 또한 지난 추억이 되어 이 산객의 가슴으로 남겨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진행해야 할 550봉인 내대암봉 지나 대암산과 신정봉 그리고 그 넘어 우뚝한  용지봉이 어서오라 손짓을 하는 듯 하다.

등로 좌측으로는 진례저수지와 신월리 및 산본리 마을이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낙남정맥의 마지막 산줄기인 신어산 줄기가 가물거린다.

저곳에 올라 이곳을 바라보며 오늘을 추억하는 시간이 지나야 이 낙남정맥 마루금도 완주란 단어를 사용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능선을 타고 전진하니 암봉이 나타나고 그 암봉 우측에는 멋진 소나무 한그루와 그 앞에 안내판 하나가 서 있다.

다가 가 살펴보니 비상이란 안내판이 보이고 그 안내판에는 설명이 되어 있는데 전혀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지워져 있다.

그래도 어렵게 찾아 읽어 보니 마치 한마리의 학이 비상하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아름답고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으뜸 소나무라 할 수 있다란 글귀가 보인다.

그 안내판과 암봉 넘어 펼쳐진 창원시내를 배경으로 다시 한번 추억을 남긴 후 좌측 내리막 계단을 타고 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깍아지른듯 가파른 내리막 암봉에 설치된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다 바라보니 비음산 0.5 Km 이 서 있고 넓은 헬기장이 보인다.

그 헬기장을 지나 내려가니 너무나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가 열려 있고 그 등로를 타고 계속 내려가니 넓은 공터같은 안부에 도착해 그곳에 서 있는 이정표를 살펴보니 남산재란 고갯마루이다.

우측 창원시쪽으로는 포곡쉼터 하산 갈림길이 그리고 등로 좌측 김해시 진례면쪽으로는 평지백숙촌 하산로 표시가 되어 있다.

이곳 남산재는 창원시 사파정동에서 유래된 말인 사파동으로 사파정동은 본래 창원군 당시 상남면 사파정리인데 이 마을은 품질 좋은 남면쌀의 주산지이며 쌀밭들에서 살무정과 살푸정으로 다시 사파정으로 말이 변했다고 전해지며 사파정 마을에 있는 정맥산의 고개이름을 개월촌이라 하는데 이 고개는 김해군 진례면으로 나아가는 길목으로 일명 남산재라고 하는 고갯마루이다.

 

 

남산재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다 뒤돌아 보니 남산재 이정표와 그 옆에 넓은 평상이 보이고 조금 더 오르니 개월촌 등산객 웰빙 쉼터란 안내판이 서 있다.

이제서야 개월촌에 대한 이해가 될 듯 하다.

다시 오르니 넓은 평상과 나무를 둥글게 둘러친 의자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오르니 등로는 점점 더 가파라지다가 거대한 암봉을 타고 오르도록 되어 있다.

그 암봉 사이로 나 있는 계단을 타고 오르니 다시 시원하게 조망이 펼쳐져 있고 방금 전 올랐다 내려온 청라봉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안전봉과 로프가 달려있는 바위를 지나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진례면 신월리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넓은 들판 넘어 다시 김해의 신어산 줄기가 반겨준다.

올라야 할 용지봉 넘어 흘러 내려가는 산줄기가 동쪽으로 길게 들어 누워있고 그렇게 조망을 즐기며 오르니 안전봉과 로프가 주위 가장자리를 감싸도는 공터의 무명봉을 지나 곧바로 이정표가 서 있는 내대암봉인 550봉에 도착을 한다.

거대한 암봉들이 등로를 가로막아 진행하지 못하고 우측으로 우회하며 그 거대한 암봉을 통과하며 올려다 보니 참으로 대단한 바위들이다.

그 정상부가 진짜 내대암봉이라 생각되지만 오를 수 없으니 사진 몇장으로 대신해 본다.

그 내대암봉을 지나 소나무 두그루 사이를 빠져 오르니 다시 안전봉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칼바위처럼 생긴 능선을 타고 오르니 한동안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다 소나무 밑 벤취지대를 통과해 직벽의 계단을 오른다.

그러다 등로 우측에 서 있는 거대 바위를 바라보니 그 앞에 장군바위란 안내판이 서 있고 그 뒤로 창원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데 그 안내판에는 높은곳에 서서 부하들을 호령하는 장군의 기개를 엿볼 수 있는 바위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모양과도 같아서 일명 엄지바위라고도 한다는 내용이다.

 

 

잠시 더 그 장군바위를 배경으로 창원시내와 그 건너편 팔룡산과 춘산들을 조망한 후 조금 더 오르니 지나온 낙남 마루금이 막힘없이 펼쳐진 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멋진 조망대 바위들이 널려 있다.

다시 진행하지 못하고 뒤돌아 서서 지나온 등로 하나 하나를 생각해보며 남겼던 추억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바로 앞 바위지대의 내대암봉을 지나 내려가면 부드러운듯 능선을 타고 남산재로 내렸다가 청라봉으로 올라 이어지고 좌측의 비음산 줄기를 짧게 보낸 후 우측 마루금을 타고 달리다 다시 좌측으로 방향을 바꿔 저 멀리 정병산으로 연결되는 등로가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그 좌측으로 창원시내를 감싸며 하늘을 받치고 있다는 천주산을 넘어 저 멀리 무학산까지 가물거리고 그 위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이 활ㅇ점정을 만들어 이 산객의 가슴에 들어 와 박힌다.

 

 

이제 앞으로 진행해야 할 방향으로는 아기자기한 암봉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그 끝자락 저 멀리 대암산 정상부가 손에 잡힐듯 다가와 있다.

우측 저 멀리 희미하게 불모산 줄기가 박무속에 하늘거리는 모습 역시 아름답고 멋진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등로 우측으로 우회하는 안전한 등로가 열려 있지만 이 산객은 저 바위를 타고 조망을 즐기며 여유롭게 대암산으로 향해 보기로 한다.

잠시 더 진행하니 너무나 아름다운 분재형 소나무들이 바위틈에 자라며 삶의 무게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살아야 하는 당위성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게 암봉을 넘어 오르니 저 멀리 대암산쪽에서 두 부부인듯 이 바위를 타고 내려오는 등산객의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계속 이어지는 바위를 타고 오르니 이제 다시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그곳을 타고 넘으니 거대암봉이 있는 대암산 직전 전위봉에 도착을 하는데 많은 등산객들이 쉬면서 간식을 들고 있다.

돌 단을 쌓은 중앙부에 위치한 대암산 정상석을 만나기 위해 돌단을 한바퀴 돌아 오르며 드디어 대암산 정상석과 입맞춤을 해 보는 시간이다.

대암산은 창원시와 김해시의 경계에 있으며 북서쪽의 정병산의 줄기가 비음산을 거쳐 이곳으로 이어진 산으로 높이는 674.6미터라 되어 있는데 정상석에는 669미터라 표기되어 있다.

남쪽으로는 낙남정간의 기점인 용지봉을 거쳐 불모산(801.7미터)으로 맥이 이어진다.

창원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정상부와 능선은 거친 바위가 드러난 곳이 많으며 중턱의 아래 기슭은 돌서덜 지역으로 임야 이외의 토지 이용은 어려운 실정이다. 
생각보다 많은 등산객들로 붐비는 정상석에서 어렵게 사진 몇장 남기고 막힘없이 펼쳐진 주위 조망을 감상한 후 산불감시요원에게 잠시 주위 지명에 대한 소개를 받은 후 내려선다.

 

 

대암산 정상부를 내려가며 앞을 바라보니 잡목과 잡풀이 무성했던 등로 능선 위에 사각정 하나가 서 있고 그 우측으로 산불감시초소도 보인다.

바람이 다시 강하게 불어 와 정상에 올라온 등산객들이 바람을 피해 옹기종기 앉아 있는 모습들도 눈에 들어 오지만 새벽보다는 찬 기운이 사라졌는지 그 바람을 즐기는 산객들도 많이 눈에 들어 온다.

그 사각정 넘어 저 멀리 낙남정간이라 이름 붙여진 진해쪽 불모산을 중심으로 우측으로는 웅산과 천지봉이 그리고 좌측으로는 산화산과 금암산 줄기가 언젠가는 다시 이곳을 찾아야 된다고 속삭이는 듯 하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가슴이 설레이고 들뜨는 그런 시간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이제 능선을 타고 대암산 정상을 내려와 사각정과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움푹 꺼진 작은 분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해 전진하니 이제 용지봉까지 2.5 Km 가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곳에서 바라 본 동쪽으로 뻗어 나간 신정봉과 682봉 그리고 용지봉 마루금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며 그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고 그 우측으로 방금전 조망했던 불모산 줄기가 또한 호응하며 천상의 멋을 남기고 있다.

이곳에서도 진행하지 못하고 한동안 서서 그 아름다움에 취해 보는 시간이다.

 

 

대암산 정상부에서 내려와 전진하니 억새풀이 자랐다 말라 빛바랜 등로가 이어지더니 금새 내리막 등로를 타고 그늘을 만들어 주는 무성한 잡목 터널을 타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게 잠시 더 내려가니 평편한 안부에 도착을 하고 그 안부에도 어김없이 평지 하산 갈림 이정표가 서 있다.

빛바랜 회색의 억새풀과 푸른 소나무가 어우러진 방금 전 내려온 예쁜 등로를 바라본 후 잡목속에 숨어 있는 신정봉으로 오르는 등로는 조금은 더 가파라진 느낌으로 갈어 본다.

하지만 주위 조망이 너무 좋아 어려움도 모르게 즐기며 걷다보니 다시 잡목이 사라지고 하늘이 열리는 등로가 나타나지만 기온이 오르며 질척이는 진흙탕 등로가 되어 있어 진행하는데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몇명의 등산객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진행하다 보니 오르막 등로에 예쁘게 쌓아 올린 거대한 돌탑들이 나타나더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돌탑들이 계속 나타난다.

 

 

무슨 의미로 누가 쌓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규모나 정성으로 봐 수많은 세월동안 손으로 직접 쌓았을 것이란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다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정상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주위 조망 역시 황홀하기까지 하다.

그곳 정상부 좌측에 있는 돌탑 하나있는 곳으로 가 바라 본 지나온 마루금이 아름답고 또한 앞으로 진행해야 할 용지봉 능선이 멋들어 진다.

다시 이어진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몇개의 돌탑이 서 있는 704봉의 신정봉 정상에 도착해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 닦으며 다시 한번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겨 보는 여유를 가져 본다.

 

 

신정봉 정상을 지나 다시 낙엽진 잡목과 파란 소나무가 어우러진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작은 안부를 지나고 황량하기까지 한 잡목 등로를 타고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돌탑 하나와 이정표가 서 있는 682봉에 도착해 다시 한번 지나온 마루금과 올라야 할 마루금을 번갈아 바라보며 쉬어 간다.

남쪽으로 자리잡은 불모산은 여전히 등로 우측을 가로막고 남해바다와의 조우를 더디게 만들고 있지만 그 아름다운 풍경에 그것조차도 참아 줄만 한 그런 시간이다.

이제 용지봉도 1 Km가 조금 넘게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에 힘을 내 보지만 그 마지막 봉으리의 까다로움을 잘 알고 있기에 그저 무심으로 걸어 보려 마음 먹어 본다.

  

 

돌탑과 이정표가 서 있는 682봉에서 등로는 동진을 멈추고 남동진을 하면서 용지봉으로 이어지고 그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부드러운듯 이어진 용지봉 능선이지만 생각보다 제법 많은 굴곡이 있고 중간에 송전탑도 보이며 그 정상부로 오르는 길목에는 제법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보이는 듯 하다.

용지봉에서 불모산으로 이어진 능선이 이제 한누에 모두 들어 오고 낙남정간 산행을 위해 다시 한번 꼭 들려야 할 곳이기에 눈으로 감상하며 기억속에 저장을 해 둔다.

잠시 내려가니 다시 평이한 등로가 이어져 있고 조금 더 푸르게 변해가는 소나무 숲을 바라보니 봄도 멀지 않음을 직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동안 그렇게 질척이는 등로를 타고 낙엽이 져 황량함을 더해 주는 잡목 터널 구간을 지나본다.

그저 올라 지날 땐 몰랐던 아름다움이 이런 잡목 터널에서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기도 하다

늘 복잡하게 생각해야 하고 누군가를 이여야 하는 사회와는 달리 그저 무심한듯 스쳐지나는 바람과 나무 그리고 잡목과 파란 하늘이 전부인 산이기에 조그만 것에도 감사하고 또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 아름다움을 알리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색하듯 거닐다 보니 어느덧 다시 용지봉 0.9 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만나 힘을 내 본다.

 

 

이정표를 사진에 담고 진행을 하니 끊임없이 등산객들이 하나 둘 반대로 오르고 인사를 나누며 교행을 하다 보니 금새 소나무 밑에 평상과 나무 벤취가 설치되어 있는 장소에 도착해 괜시리 의자에 한번 앉아 보고 출발을 한다.

잠시 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무명봉에 나무 벤취 하나가 보이고 바로 아래에는 송전탑 하나가 코 앞으로 다가와 있다.

잠시 내려가니 220번 송전탑이 등로 우측에 자리하고 그곳을 통과해 전진하니 등로 옆에 식재된 듯한 편백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다시 그 편백나무 구간을 지나니 삼정자동 하산 갈림 삼거리에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데 이제 용지봉까지는 0.6 Km 남았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그곳을 지나 잠시 더 전진하니 등로에 넓은 평상 하나가 펼쳐져 있고 이제 잡목 구간에 들어 서 사면 등로를 타고 질척이는 마루금과 사투를 벌인다.

계속 이어진 잡목 구간을 지나니 등로에 바위들이 깔린 구간이 나타나고 조금 더 진행하니 바위지대가 앞을 가로막는데 우측으로 우회 등로가 나 있다.

어쩐지 이 암릉 바위 구간을 꼭 올라 가 보고 싶다는 생각에 바위지대를 통해 오르니 짧은 구간이지만 오르기 난해한 곳이 두어군데 자리하고 어렵게 오르니 바위 저편으로 오늘 올라야 할 마지막 높은 봉우리인 용지봉이 부드러운 잡목 가지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렵게 네발과 팔을 이용해 암봉에 오르니 보상이라도 해 주듯 황홀한 조망이 펼쳐져 있고 그곳에서도 진행하지 못하고 한동안 그 황홀한 풍경에 빠져 머물러 본다.

잡목과 소나무가 적당히 어우러진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송전탑 220번이 서 있고 좌측으로 돌아 682봉에서 좌측으로 돌아 신정봉과 대암산으로 연결되는 낙남 마루금이 거침없다.

사진 우측 저 멀리에는 정병산이 그 머리만 내밀고 멀어져 감을 아쉬운듯 바라보고 있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라 이런 풍경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그 암봉지대를 넘으니 이제 조금은 평이한 잡목 터널지대가 이어지고 그 터널을 타고 오르니 금새 용제봉이란 한자가 반겨주는 용지봉인지 용제봉 정상이다.

많은 등산객들이 모여 사진을 담고 추억을 만드느라 바쁘지만 갑자기 강하게 불어오는 찬바람에 황급히 그 아래 간이 매점으로 모두 몸을 피한다.

어렵게 등산객에게 부탁해 증명 사진 한장 남기고 강하게 불어 오는 정상에 홀로 서서 서서히  주위 조망과 풍경을 감상해 보는 시간이다.

용제봉 또는 용지봉은 경상남도 창원시 불모산동과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 723미터의 산이다.

북쪽으로는 대암산(669봉)과 이어지고 남쪽은 상점령을 지나 불모산(801.7봉)과 이어지는 낙남정감의 갈림길이다.

용지봉의 원래 이름은 용제봉이며 여지도서 김해도호부 단묘에 용제봉은 김해도호부의 서쪽 불모산에 있으며 50리로서 기우단을 두었다고 하였다.

이로써 용제봉은 기우제와 관련하여 생성된 지명임을 알 수 있으나 이와 달리 경상도읍지에는 용제산 또는 용제봉으로 나온다.

제사를 지내는 제자가 임금제자로 바뀐 배경은 알 수 없으나  이에 대해 주민들은 용제와 용제는 이름처럼 상이한 기원 설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용제는 무제와 관련되고 용제는 진례면 무송리 용소의 용 승천설화와 관련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용제봉이 지금의 이름인 용지봉으로 된 것은 자음 변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용지봉의 기반암은 변성퇴적암이며 정상부와 마루금에는 곳곳에 바위가 드러나 있다.

이곳 산지의 기반을 이루는 변성퇴적암은 풍화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여 산지의 고도가 높고, 경사가 거칠하다.

퇴적암층은 전반적으로 동쪽인 김해 방면으로 기울어져 있어 서쪽인 창원 방면의 경사가 더 급하다.

많은 역사와 지리 공부를 해 보는 시간 역시 맥 잇기 산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용지봉 정상에 올라 제일 먼저 바라 본 곳 역시 오늘은 가보지 못하는 불모산 능선으로 낙남정간이란 이름으로 꼭 한번 다시 올라야 할 마루금이다.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기에 더욱 애잔한 마음으로 바라보니 그 불모산 넘어 박무로 흐릿하지만 남해바다가 넘실거린다.

어느 낙남정맥 못지 않게 당당하면서도 묘하게 마음을 끌어 당기는 불모산으로 이어지는 낙남정간, 저 곳에 올라 이곳을 바라보며 오늘을 추억하는 시간은 또 어떤 마음과 시간으로 남겨질지 궁금하기도 한 순간이다.

여기에서 낙남정간 또는 신낙남정맥에 관해 공부를 해 보기로 한다.

 

맥 잇기 산행에 관심이 많고 또 산행에 대한 기사를 잘 연재하고 있는 부산일보의 기사를 간추려 본다.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족보로 엮어 펴냈다는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산줄기는 백두대간을 주축으로 여기서 가지 쳐 나간 12개의 정맥과 2개의 정간으로 이뤄져 있다.

낙남정맥은 지리산 영산봉에서 시작해 섬진강과 낙동강 수계를 가르며 낙동강 하구에 이르는 560리 산줄기로서 국토의 최남단을 떠받치는 주춧돌이다.

이 때문에 낙남정맥의 끝을 규정하는 것은 백두산에서 발원한 한반도의 산줄기가 국토를 동서로 양분하며 남으로 내달려 어느 지점에서 그 끝을 맺는가를 확정 짓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산경표에서 낙남정맥을 기술한 부분을 보면 지리산에서 시작한 산줄기가 창원 불모산(지금의 용지봉까지 포함)을 지나 남쪽으로 분산에 이르고 그 아래에 김해부 관아가 있다고 돼 있는데 분산은 지금의 김해 북쪽 분성산을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논란의 불씨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데 산경표 전체를 관통하는 대원칙은 산자분수령(산은 스스로 물을 가르는 고개라는 뜻으로 산은 물을 못 건너고 물은 산을 못 넘는다)과 주맥은 반드시 바다에서 끝이 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성산은 물과 연결되지 않아 산꾼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산경표의 원칙을 고수하려는 산꾼들은 달마가 동쪽으로 가 듯 하나둘 분성산 동쪽으로 향했다.

신어산을 넘어 동신어산 아래 매리에 이르면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기 때문이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해 남하하다 옥산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대곡산, 여항산, 무학산, 대암산, 용지봉을 지나 신어산에서 끝을 맺는 이 구간은 지난 1994년 한 등산전문지가 산경표에 따른 낙남정맥이라는 제하로 현장 답사하면서 국내 산꾼들 사이에서도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동신어산에는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동판이 설치됐고 낙남정맥의 끝이자 한반도 산줄기의 끝이라는 지위가 부여됐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부산경남지역 산꾼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주장에 반기를 드는 새로운 흐름이 감지되기 시작됐다.

동신어산은 낙동강 유역 안의 산줄기이기 때문에 엄밀히 따져 주맥은 바다에서 끝나야 한다는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였다.
게다가 용지봉에서 냉정고개와 황새봉으로 방향을 틀면 산세가 급격히 꺼진다.

낙남정맥 종주에 나선 많은 산꾼들은 장엄한 기세로 이어져 내려오던 낙남정맥의 기세가 용지봉을 지나면서 한순간에 맥없이 사그라지는 것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일단의 산꾼들이 주목한 곳은 서낙동강 녹산 수문에 위치한 봉화산이었다.

1967년 완료된 대규모 매립공사로 현재의 해안선이 만들어지기 이전 봉화산이 위치한 서낙동강의 하구 녹산은 바다였다.
이들은 용지봉에서 북동쪽으로 가는 대신 바다가 있는 남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불모산에서 화산, 굴암산, 너더리고개, 두동고개, 보배산(보개산), 장고개 그리고 봉화산을 지나 부산 강서구 녹산수문에 이르는 도상거리 24㎞의 새 구간을 일명 낙남꼬리라 불리는 낙남정맥의 끝자락으로 새로 규정했다.

기존의 낙남정맥과 구분 짓기 위해 신 낙남정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신 낙남꼬리는 용지봉-냉정고개-황새봉-나밭고개-영운이고개-신어산-동신어산-매리에 이르는 기존 낙남정맥 끝 구간에 비해 9㎞가 짧다.

하지만 700~800m 고봉으로 이뤄진 산들이 많아 기존 코스에 비해 능선이 뚜렷하다.

또 산꾼들이 많이 찾는 인기산도 여럿 포함돼 있어 종주의 즐거움도 한결 낫다는 평가다.
신 낙남정맥은 차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최근 들어 부산경남지역 산꾼들 사이에서는 낙남정맥의 재발견이라는 이름으로 신 남낙정맥 코스 종주가 하나의 트렌드를 이루고 있다.
꼭 맥 잇기 산행이 아니더라도 종주 산행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한 곳이기에 또 한번의 발걸음은 반드시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신낙남정맥 또는 낙남정간 마루금을 좌측에 두고 우측 골짜기를 내려다 보니 그곳에는 작은 저수지 하나가 보이고 그 아래로 농촌 특유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그 마을 넘어 불모산에서 내려온 산줄기를 타고 천자봉이 울타리처럼 쳐져 있다.

이곳 마을 이름인 불모장동은 불모산에서 유래하였는데 세종실록지리지에 창원도호부 남쪽 악상리 미을무산에서 사철이 난다는 기록이 있는데 미을무산은 불모산의 또 다른 표기로서 불모산리 지역은 본래 악상리였다고 여겨진다.

이 후 불모산동과 관련한 문헌 기록은 호구총수에 기록된 불모산리라는 지명으로 당시 남면 도상삼운에 속하였다.
불모산동은 본래 창원부에 속하였다가 1910년 마산부 부내면에 속하였고 1914년 창원군 상남면에 속하였으나 1973년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에 속하였다가 1976년 창원지구출장소 성주지소에 속하였다.

1980년에 창원시가 설치되면서 창원시 불모산동이 된 마을이다.
동쪽으로 김해시 장유면과 서쪽으로 삼정자동과 남쪽으로 성주동 그리고 북쪽으로 대방동과 접해 있으며 취락은 대암산 남서쪽 기슭에 형성되어 있다.

불모산저수지가 남동쪽에 있으며 마을 북동쪽 산기슭에 불모산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마을이다.

그 마을 저 멀리 남녘 바다가 내려다 보이니 가슴이 시원하고 마음이 후련함을 느낀다.

 

 

북동쪽으로는 바로 앞 진달래 군락지를 넘어 오늘 산행 날머리인 냉정고개를 지나 남해고속도로를 건너면 하얀 송전탑을 따라 이어진 산줄기를 타고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낙남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 좌측으로 펼쳐진 김해시 진례면의 마을과 평야가 낙남정맥과 어우러져 환상의 조망을 보여준다.

그 산줄기를 타고 다시 우측의 동해쪽으로 이어가면 낙남정맥 마지막 봉우리인 신어산 자락도 가물거린다.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우리의 산하이며 이어온 발걸음이 아닐 수 없다.

 

 

남동쪽으로는 낙남정맥을 좌측에 두고 진례면과 나뉘는 김해시 장유면의 고층 빌딩들과 민가들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그 넘어 저 멀리 김해시와 신어산을 찾아 보지만 이제 날씨가 더워지며 박무로 인해 더 이상의 조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마음으로만 상상하며 그 끝자락을 찾아 보곤 오늘 산행 후 이 산객이 내려가 서울로 복귀해야 하는 버스 정류장을 찾아 보지만 찾을 길이 없다.

그저 이렇게 내려다 보고 그 마지막 봉우리에 도착했음을 자축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많은 사진을 담으며 이곳 용지봉 정상에서 시간을 보낸 후 허기를 느껴 정상 동쪽으로 육각정 가기 직전 좌측에 위치한 간이매점으로 가 노상에서 남아 있는 김밥과 김치를 꺼내 허기를 달래며 탁배기 두대접으로 포만감을 느껴 본다.

배낭 정리 후 다시 육각정을 사진에 담은 후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이곳 등로 역시 진흙창이 되어 있어 여간 미끄럽지 않아 조심하며 내려가 본다.

한동안 내려가니 나무를 박아 놓은 계단을 타고 잡목이 우거진 등로 터널을 통해 내려가며 오늘 산행의 마무리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조금 더 내려가다 보니 앞이 툭 터지며 지금부터 내려가 넘어야 할 나즈막한 523봉과 504봉이 내려다 보이고 냉정고개도 그 봉우리 위에 놓이면서 살짝 모습을 보여준다.

그 넘어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마루금이 나즈막한 산줄기로 이어지며 환상을 노래하고 즐거운 기분으로 계속 내려가니 잡목 터널과 나무계단이 번갈아 나타나며 약간은 지루함을 주고 있다.

그렇게 진행하다 어머님 병환이 궁금해 전화를 하니 건강상태는 매우 양호하며 많은 친척분들이 면회를 다녀 갔다는 전언에 그래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가 본다.

더 내려가니 안부가 나타나고 등로 우측으로 장유사 하산 갈림 삼거리에 이정표 하나가 서 있고 정맥 마루금은 전경부대 방향이다.

 

 

다시 그 장유사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직진 방향으로 진행을 하니 이제 식재된 듯한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한동안 그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면서 이어간다.

게속 진행하니 나즈막한 무명봉을 넘고 그곳에서 내려다 보니 등로 좌측의 김해시 진례면쪽 마을이 아주 평화롭게 다가온다.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식재 구간을 타고 전진하니 이제 등로 우측으로 다시 김해시 장유면쪽 도심 빌딩과 복잡한 시내가 눈에 들어 오고 내려가는 등로에서 이제부터 올라야 할 마지막 504봉과 471봉이 뾰족하게 솟아 있어 체력적으로 힘이 빠진 이 작은 산객에게 더욱 큰 심적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를 처다보며 무심으로 걷다보니 다시 이어지는 식재된 소나무 등로를 따라 진행되고 게속 전진하다 보니 등로 옆에 나무 벤취 2개가 보인다.

잠시 배낭 내려 음료수 한모금 마신 후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를 만난다.

비포장 임도로 내려서기 직전 우측에 장유사 3.2 Km란 이정표가 보이고 임도로 내려서니 좌측으로 사각정이 보인다.

임도를 가로 질러 반대편 능선으로 오르니 그곳 입구에도 전경부대 2.6 Km란 이정표가 서 있다.

장유사는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 불모산에 있는 절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이다.

우리나라 불교의 남방 전래설을 입증하는 사찰로 사찰측의 기록에 따르면 48년에 인도 아유타국의 태자이자 승려인 장유화상이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후가 된 누이 허씨를 따라 이곳으로 와서 최초로 창건한 사찰이라고 한다.

그 뒤 선찰로 일관해 오면서 많은 수도승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지만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가락국 제8대 질지왕이 세운 장유화상사리탑은 현재에도 이 절에 남아 있는데 임진왜란 때 왜구들이 탑을 헐어서 부장품을 훔쳐갔으며 그 뒤 파손된 탑을 복원하였다.

조선시대 후기부터 민족항일기에 이르기까지 운파, 영담, 우담 및 만허 등이 이 절에 머물면서 중건, 중수하였으나 6ㆍ25전쟁 이후에 점차 퇴락하였다.

1980년부터 주지 화엄을 중심으로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현재는 규모 있는 사찰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참으로 접해보지 못한 많은 사연을 품고 있는 수많은 문화재와 사찰의 역사를 배워보는 시간이다.

 

 

이제 임도를 지나 마지막 봉우리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체력적으로는 많이 지쳐있지만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니 여유를 찾을 수 있었나 보다.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오르니 다시 잡목짇로 변하면서 잠시 좋은 조망터를 남겨준다.

그곳에서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용지봉이 벌써 저 멀리 멀어져 있고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벌써 추억으로 가슴에 쌓여 있는 중이다.

참으로 멋지고 당당한 용지봉을 다시 한번 올려다 보고 진행하니 활엽수에서 떨어진 넓은 낙엽을 따라 바스락 거림을 느끼며 작은 돌탑을 통과한다.

다시 이어지는 너무나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좌측은 가파른 경사지를 우측으로는 완만한 구릉지 같은 등로 가운데를 타고 걸어 본다.

 

 

 

급하지 않게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게속 이어지는 소나무 군락지가 따라 온다.

등로 좌측으로 큰 바위도 지나고 소나무 지대를 지나니 등로 좌측 앞쪽으로 진례면쪽 넓은 들판과 마을이 산재해 있는 모습과 그 마을 우측으로 송전탑을 타고 이어지는 낙남정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가슴 한번 크게 열고 심호흡 한 후 천천히 발길을 이어간다.

 

 

능선을 타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에 큰 바위가 나타나고 그 한가운데에 깊은 뿌리를 박고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소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기에 올라 봤더니 그곳만 깨진 바위 형상이다.

그 바위 위 소나무 지대를 지나 전진하니 다시 큰 바위가 나타나고 그 정상부에는 멋진 분재형 소나무 하나가 작은 키를 자랑하듯 흔들거리고 있다.

다시 계속 평이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 장유체육공원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잇고 오늘 처음으로 냉정고개까지 2.0 Km 가 남았다는 냉정고개 거리 이정표를 만난다. 

다시 낙엽진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471.3봉 삼각점이 불쑥 나타나고 사진에 담은 후 곧바로 출발한다.

 

 

471.3봉 삼각점을 지나 진행하니 5번 없는 송전탑 하나가 나타나고 조금 더 넓어진 수레길 같은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직진 방향으로는 고사목으로 막아 놓고 있다.

이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어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조금 더 내려가니 송전탑 하나가 더 나타나는데 번호가 5번이라 적힌 안내판이 두개이다.

살펴보니 하나는 신김해 장유의 5번이고 또 하나는 신김해 녹산 5번이다.

그 송전탑을 지나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잡목이 우거진 곳을 통과해 그저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해 황새봉 6.1 Km란 이정표가 서 있는 시멘트 포장 임도를 만난다.

 

 

그 시멘트 포장 임도를 만나 우측의 내리막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양쪽으로는 과수원이 나타난다.

앞으로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낙남정맥 마루금이 저 길 건너 빤히 올려다 보이고 계속 내려가니 과수원에서 일을 하고 잇던 농부가 이상하다는 듯 바라본다.

인사 드리고 계속 내려가니 도로 우측에 민가 한채가 보이고 조금 더 내려가니 도로 좌측에 502사격장이란 빗돌도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시멘트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과수원을 보호하는 높은 철조망도 보이고 이제 도록 우측으로 꺽이는 지점에 대나무들이 보이면서 저 아래 김해축협이란 표시가 보이는 새로 지은듯한 축사 건물이 보인다.

구재역이나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되면 다시 맥 잇기 산행이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까괜한 걱정도 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진행하니 도로 우측으로 2502전투경찰대 건물이 보이고 초병 한명이 위병소에서 책을 읽고 있다.

그곳을 내려서니도로 좌측으로 과수원 철문이 보이고 곧바로 도로 우측으로 새로 지은 축사가 서 있다.

 

 

축사를 지나 내려오니 도로 옆에 커다란 용지봉 산행 안내도가 서 있고 진례란 이정탑 그리고 2502전투경찰대 입간판과 여기는 진ㄹ면입니다란 커다란 빗돌도 서 있다.

그곳 1042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냉정고개에서 배낭을 정리 한 후 지나는 택시를 이용해 장유로 들어가니 10000원을 요구한다.

5000원이면 되는 거리를 그것도 지나가는 택시를 이용해 가는데 10000원을 요구하는 모습에서 역시 별로 좋은 인상을 받지는 못하고 말았다.

언젠가 한번이라도 옆지기와 아이들 손잡고 내려 와 하룻밤 묵고 가려고 했었는데 이제 마산과 창원 그리고 김해시에는 특별한 사업차 내려가지 않으면 들릴 일이 없을 것 같은 택시 기사들과의 악연이 만들어진 도시들로 남겨진다.

 

진례와 장유를 이어주는 이곳 냉정고개도 도로 확장 공사를 진행하고 있어 여간 어지럽지 않다.

이곳 냉정고개가 위치한 지명은 김해시 장유면 부곡리 윗냉정마을로서 조선 예종 때 지리지에 기록되어 있는 부량곡리이며 그 뒤 부곡리로 고쳤고 1914년 냉정리를 병합하였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부곡 4리 가운데 넓은 도로 아래에 엎어놓은 가마솥 모양(복부형)의 명당이 있어 효자와 열녀 그리고 거부가 나올 자리라 하였고 금가마를 거꾸로 걸어놓은 모양(금부도현형)의 명당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모신(천신이 지상으로 내려와 대지와 결합하여 세계의 질서가 내재되어 있는 대지)이 깃들어 있는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중심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에서 생긴 지명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윗냉정마을은 진례 주촌 2면의 경계가 되는 곳으로 지금의 찬물터에 옛날부터 찬물샘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으로서 그 윗냉정 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냉정고개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는 곳이다.

 

일찍 서울로 복귀해 생활하다 지난 월요일 새벽 다시 병세가 악화된 어머님 때문에 심장이 멈출뻔한 격정적인 시간을 보냈기에 언제 다시 내려 가 남은 구간 이어 놓을지 기약 할 순 없지만 조만간 다시 내려와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