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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산행(완료)/낙남정맥(완료)

낙남정맥 제8구간 오곡재에서 쌀재고개(만날고개)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2.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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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남도 함안군과 창원시의 낙남정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2년 03월 11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강한 겨울 찬바람과 아침에는 눈이 내린 매우 추웠던 날씨

산행온도 : 영하 06도에서 영상 05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오곡재(비실재, 1029번 비포장 지방도로)-557봉(국북사촌 사랑목 갈림 삼거리 이정표)-

               삼각고지(660봉 갈림 삼거리)-미산령(팔각정 및 동물 이동 통로)-743.5봉-돋을샘과 미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헬기장(좌촌, 3코스 갈림 삼거리 이정표)-나무계단-여항산(770봉)-

               나무계단-좌촌 1코스 갈림 이정표-헬기장(봉화산 6.4 Km 이정표)-소무덤봉(668봉)-

               대촌(나뭇골)과 별천(상별내) 갈림 이정표-별천(적십자 수련원) 갈림 이정표-706봉-

               정북산 삼거리-서북산(739봉, 전적비 및 삼각점)-감재고개(버드내와 미천 사거리)-

               비포장 임도-송전탑-평지산 갈림 삽거리-송전탑-대부산(649.2봉)-청암과 봉화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음암골 고개(봉곡 갈림 삼거리 이정표)-한치재(진고개 휴게소, 79번 2차선

               지방도로)-내곡마을 갈림 삼거리 이정표-광려산 삿갓봉(720봉, 전망데크, 화개지맥 분기봉)-광려산(752봉, 광려산 720봉

               정상 이정표)-광산사 갈림 삼거리 이정표-657 암봉-광려산 아래 갈림길-629봉(시루봉 갈림 삼거리)-대산(727봉)-

               광산먼동(727봉)-608 암봉-대산 웃바람재-569봉(산불감시초소 및 삼각점 그리고 전망데크)-바람재 위 갈림길-

               바람재(팔각정)-쌀재고개-박종규 농장-시멘트 임도-만날고개-산행 종료

산행거리 : 약 25.00 Km (접속구간 03.50 Km, 쌀재고개에서 만날고개 입구까지)

산행시간 : 춥고 눈보라 치는 어려운 환경속에 많은 사진 찍으며 여유있게 11시간 (접속구간 포함,  05시 40분 부터 16시 40분까지)

교통편 : 심야고속버스 00시 05분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출발

            내서고속버스터미널에서 택시로 오곡재까지 이동

            만날고게 초입에서 택시로 마산고속버스터미널 이동

            마산고속버스터미널에서 17시 40분발 서울행 고속버스로 복귀

 

낙남정맥이란?

지리산 세석평전을 품고 있는 영신봉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내려온 마루금이 삼신봉에서 외삼신봉을 지나 묵계치와 고운재를 거쳐 옥산까지의 산줄기는 서쪽 섬진강으로  그 물줄기를 가르고 있으나 이후 산줄기는 인위적으로 잘라 만든 진양호 물이 사천만으로 흘러들게 만든 거대한 가화강을 지나 백운산 대곡산 무량산 여항산 서북산 광려산 대산 무학산 천주산 봉림산 대암산 용제봉 김해의 신어산을 거쳐 낙동강하구인 김해시 매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그 긴 줄기를 낙동강에 묻는 약 224 Km의 산줄기를 낙남정맥이라 한다.

이 산줄기에는 특이하게도 인공 호수와 강줄기가 마루금을 가르고 있기에 피치 못하게 가화강을 건너야 하는 산자분수령과는 다른 산행이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한겨울 삭풍에 환상의 조망과 풍경을 즐기며 여유를 만끽한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지난 금요일부터 어머님 병환이 호전되면서 병실을 옮기게 되였다.

지방 다녀 와 병실 옮기고 처음으로 물과 갈아 놓은 과일을 먹으며 그토록 즐겁고 기쁜 표정은 생전 처음인듯 하다.

토요일에도 하루 종일 병실에 있다 저녁에 나오니 참으로 지극정성으로 어머님 병간호를 하고 있는 옆지기가 내일 일요일인데 산이나 들렸다 오라고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차마 쉽게 산행 준비를 못하고 집에 들어 와 있으니 다시 한번 산행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어렵게 낙남정맥 제8구간을 다녀오기로 마음 먹으니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한다.

배낭 챙긴 후 집을 나서니 무엇이 그리 안타까운지 강남고속버스터미널까지 배웅해 준다는 한마디에 눈가가 촉촉해지는 시간이다.

오랫만에 그렇게 심야 우등 고속버스를 타고 머나먼 창원시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많은 상념에 쉽게 잠을 청하지 못하다 어렵게 깊은 잠이 들었다 선산 휴게소에서 잠시 눈을 떴다 다시 내서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내린다.

 

하지만 일반 고속버스터미널과는 달리 허허벌판에 둥그런히 간이 고속버스터미널만 만들어 놨기에 아무것도 없이 쉽게 타리라 예상했던 택시마저 보이지 않는다.

난감해 하고 있는데 함께 내린 승객들이 콜택시를 부르는 소리에 어렵게 번호를 알아 택시를 부르니 채5분도 되지 않아 택시가 도착하고 채 새벽 4시도 되기 전에 오곡재로 향한다.

하지만 그 택시기사님이 네비게이션 조작도 미숙하고 또 오곡재도 모르며 아는체하며 돌아다니길 한시간 하고도 40여분, 어렵게 이 산객의 기억을 더듬고 갤럭시 핸폰을 찾아 오곡재 주소를 찾아낸 다음 새벽 5시 40여분이 다되어 지난 구간 어렵게 내려온 오곡재에 도착을 하니 택시비가 8만원이 다되어 있다.

보통이라면 30여분만에 3만5천원이면 되는 거리와 가격이 오늘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거리와 가겨에 택시 기사님도 미안했던지 3만5천원만 요구를 한다.

너무나 고생한 택시 기사님이고 양심적인 요구에 이 산객도 미안해 4만 5천원을 택시비 지불하고 그 기사님 명함을 받아 들고는 오늘 산행 날머리로 생각했던 마재고개까지 가능할지 의구심이 드는 산행 출발이다.

힘들고 어렵게 출발을 하니 예상했던 곳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무탈하게 또 한구간 마무리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출발하는 시간이 새벽 5시 40여분이다.  

 

진고개 휴게소가 있는 79번 2차선 지방도로의 한치재에서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참으로 어렵고 힘들게 오르니 광려산 삿갓봉 정상석이 있고 그 남서쪽 앞으로는 넓은 나무 전망데크가 만들어져 있어 그 앞으로는 마산 앞바다인 남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며 이 산객의 가슴에 큰 설레임을 안겨주고 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북동쪽을 바라보니 그곳에 내서읍의 마을들 위로 마산의 진산인 무학산이 학이 날아가는 형상으로 너무나 아름답게 날개짓을 하고 있다.

지난 오래전 함안으로 일을 보러 왔다 뜻하지 않게 올랐던 추억이 있는 무학산이기에 더욱 그때를 회상하며 오늘 저 무학산 정상을 밟지 못하고 다시 서울로 복귀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한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음에 다시 내려 와 그 품에 안겨 오늘을 뒤돌아 볼 수 있으니 이렇게 아련한 마음만이라도 품고 올라 갈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기도 하다.

 

참으로 어렵게 도착한 오곡재, 오실이라 불리던 이곳은 신라말엽 고운 최치원선생이 어린시절 어머님을 모시고 이곳을 지나던중 피로하고 배가고파 뒷산에서 쉬고있는데 어디선가 까마귀가 날아와 하늘위로 빙글돌다가 선생앞에 닭고기를 물어주고 갔다하여 오곡이라 불리웠다고하며 오곡마을 뒷산의 생김새가 까마귀 두 마리가 깃을 펴고 나는듯한 형상을 하고있다하여 한강 정구선생이 오곡이라 이름지었 다고도 하는데 자연부락중 골말은 먼저 형성된 마을로서 원래 고마을(고촌)이었다고 하며 새말은 맨 나중에 형성된 마을이라 새말(신촌)이라 하는 동네 위쪽 고개로서 군북면 오곡리와 진전면 여양리를 이어주는 비포장 고개이다.

어둠속에 강렬한 바람이 불어대고 도로가에 서 있는 깃발이 찟어질듯 울부짖으며 홀로 산행 준비를 하고 있는 산객의 가슴에 비수로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또한 이곳 오곡재 남쪽 마을인 여양리는 인민학살이 자행되였던 흔적이 발견돼 6.25의 격적지로서 뿐만 아니라 양민학살의 현장으로서 쵯근에 더욱 잘 알려진 마을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엊그제부터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한겨울 강풍 못지 않게 바람이 강하게 불어 완만한 능선을 타고 오르는 온몸이 아직도 차갑기만 하다.

강풍에 나무들이 몸을 섞어 비비며 괴성을 지를때면 온몸이 긴장하면서 머리가 쭈볏거리며 하늘로 치솟는 기분이지만 산행하기에는 약간 추운 느낌에 좋은 산행 조건이다.

등로 찾기에 큰 업려움 없이 그렇게 몸이 날아갈듯 강하게 불어 오는 강풍속에 한발 두발 걸어 20여분 오르니 갑자기 바위들이 혼재되어 있는 무명봉에 도착하고 어둠속에 사진 한장 남기지만 잠시 서 있는 사이에 몸이 굳으며 한기가 밀려 온다.

다시 그곳 정상에서 바위를 넘어 직진하다 끊어진 등로 때문에 뒤돌아 나와 우측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방금 전 등로가 끊긴 곳은 바위이기에 이곳으로 우회 등로가 나 있는 형상이다.

잠시 더 진행하니 하늘에 떠 있는 둥근 보름달이 온세상을 비추며 헤드렌턴 없이도 진해할 만큼 좋은 시야를 확보해 주고 있다.

 

다시 큰 소나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무명봉에 올랐다 짧게 내려서서는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갑자기 등로가 가파라지기 시작하며 코가 땅에 닿을듯 더욱 가파른 경사면를 따라 오른다.

조금 더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거대 바위군들이 자리하고 그곳을 우측으로 우회하며 오르다 보니 더욱 경사면이 가파라지며 산객의 등줄기와 이마에서 처음으로 땀방울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게 바위 지대를 오르니 앙상한 잡목 사이로 둥근 보름달이 온 세상을 밝혀주고 그 환한 달빛을 친구삼아 오르니 군북사촌(사랑목) 갈림 이정표가 서 있는 557봉에 도착해 사진 한장 남기며 잠시 쉬어 간다.

 

이제 시간은 아침 6시 24분여를 넘기고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며 온 세상이 두눈속으로 들어 오기 시작을 한다.

이곳에서 조금 더 기다리며 주위 풍경을 담기 위해 DSRL 카메라를 꺼내 약한 빛을 이용해 최대한 정성드려 사진을 남겨 본다.

이제부터 진행해야 할 미산령쪽 산판도로가 산허리를 휘감으며 돌아가 있고 그 위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올라 743.5봉과 그 우측으로 여항산이 펄퍼짐하면서도 단애를 이루는 모습으로 고용히 자리하고 있는 모습도 들어 온다.

하늘을 두껍게 덮고 있는 먹구름으로 인해 아침 일출은 보기 힘들것 같은 예감에 조금은 실망을 하지만 그것도 역시 자연의 섭리이니 따를 수 밖에 도리가 없는 현실이다.

   

앞으로 진행해야 할 마루금을 조망한 후 잠시 뒤돌아 보니 그곳에는 어렵게 진행해온 지나온 낙남 등로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방금 전 오르며 넘어 온 5571 봉이 바로 앞에 많은 소나무 군락지를 이고 서 있고 그 넘어 좌측 도로에서 올라오는 골짜기 아래에 오늘 산행 들머리인 오곡재가 보이는 듯 하다.

그곳 넘어 지난 구간 어렵게 내려왔던 557봉도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지난 구간 지루하게 걸었던 마루금이 아스라히 멀어져 간다.

그저 이렇게 걸어 온 마루금을 바라보면 아무 생각업시 뿌듯하고 행복한 마음은 나만의 느낌인지 ...

 

다시 등로를 타고 내리막 마루금을 타고 내려가니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을 타고 내려가고 잠시 활엽 잡목이 등로를 가득채운 운치있는 곳을 통과하니 등로 우측으로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 온다.

평온하게 내려다 보이는 여양리는 보기와는 달리 6.25때 학살된 민간인들의 유해가 발견되어 한때 세간의 이목을 받았던 곳이지만 이제 그것도 옛 이야기가 되어 버린 동네이다.

이제 비극의 역사는 가슴에 묻고 또 이렇게 고요한 아침을 맞이하는 마을에는 박무가 드리워지며 복잡한 도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포근함이 느껴진다.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좌측 앞으로 올라야 할 여항산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그 뒤로 이어지는 소무덤봉과 6.25격전지로 유명한 서북산 줄기가 두껍게 드리워진 구름 아래 또 다른 하루를 열고 있다.

낙엽진 활엽수가 등로 주위에 자라고 있는 나무 계단을 타고 계속 내리막 마루금을 내려가니 금새 동물이동통로 고사가 끝난 미산령에 도착해 여유롭게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겨 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우측의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와 좌측의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우측 아래로는 팔각정과 낙남정맥 미산령 등산안내도가 서 있고 동물이동통로를 통해 함안면쪽으로 가 보니 미산 산서 및 의상대 이정표가 서 있는 비포장 임도이다.

미산령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다.

 

다시 여양리 둔덕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마산시쪽으로 나와 좌측 동물이동통로 위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오르는데 초입에는 좌측으로 함안파수 그리고 우측으로 둔덕(녹색농촌체험마을)마을 방향지시가 그리고 직진의 올라야 할 방향으로는 여항산 정상 화살표가 보인다.

그 들머리를 타고 오르니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나무 벤취도 지나 이어지는 나무 계단을 타고 전진하니 가파른 된비알을 통해 곧이어 바위 지대가 나타난다.

그 바위지대에 올라 서서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전 올랐던 미산령 꼬부랑 임도가 마치 뱀이 움직이듯 자리하고 그 넘어 660봉 갈림 산거리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며 55봉과 지난 구간 진행한 낙남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낙남정맥 넘어 저 멀리로는 진주의 이반성면쪽 산군들이 저마다의 모습을 자랑하며 산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아침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등로 우측으로는 진전면 여양리 마을과 그 아래 작은 여양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좌측으로 돌아 오르며 이제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낙남마루금이 박무를 걷어내며 위풍당당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 놓고 있다.

등로 좌측으로는 함안의 마을들이 내려다 보이지만 더욱 짙게 내려 앉아 있는 안개로 인해 그 모습이 뚜렷하지는 못하다.

큰 바위지대를 우측으로 우회해 통과한 후 다시 계단을 타고 짧게 내려갔다 다시 오르니 작은 바위들이 너부러져 있는 743.5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좌우측으로 펼쳐진 남쪽 마을들을 내려다 보며 걸어가니 함안군 1-나 774고지란 119조난위치표찰과 함께 서북산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곳에서 뚜꺼운 하늘의 구름을 뚫고 찬란하게 세상을 비추는 때늦은 일출을 만나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망중한을 즐겨 본다.

어렵게 내려와 고통속에 오르는 시간이고 진행하는 낙남정맥이기에 더욱 가슴에 깊게 남겨지는 햇살이기도 하다.

 

예상치 못한 멋진 일출에 다시 용기와 힘을 내 진행하니 잡목 사이를 뚫고 바로 앞에 거대한 암봉 위에 소나무 몇그루가 모진 세상풍파 이겨내며 당당히 살아가는 풍경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다.

다시 등로 좌측으로 내려다 보니 하늘에 떠 있는 강렬한 햇살을 받아 희미하게 퇴색되어 버린 함안의 마을들과 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각 마을마다 크고 작은 저수지를 제일 높은 곳에 만들어 식수와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풍경이 이채롭다.

그러다 잠시 뒤돌아 보면 지금까지 진행해 온 낙남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그 산줄기 따라 저 멀리 끝도 없이 넘실대는 꿈을 날려 본다.

우측으로는 조금 더 가깝게 다가온 여양리 마을이 한가롭게 펼쳐져 있고 앞으로 진행해야 할 낙남마루금을 올려다 보며 전진하니 많은 돌탑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돌탑봉에 도착을 한다.

누군가가 수많은 사연을 담고 소원을 빌며 쌓았을 돌탑처럼 이곳에 오르는 모든 산님들도 모두 무탈하게 소망하는 소원 이뤄지길 빌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돌탑봉에서 몇장의 사진으로 추억을 남긴 후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그림같은 등로가 나타나고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진행을 하니 돋을샘과 미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데 이제 여항산까지의 거리가 500미터란 거리 표시도 보인다.

이정표 옆 119 구조대 이정목에는 배능재란 글씨도 보인다.

다시 나즈막한 안부로 내려갔다 오르니 바위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바라본 지나온 낙남마루금이 환상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

잡목이 우거져 있으면서도 군데군데 푸른 소나무 군락지를 이루며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참으로 이채로운 풍경이다.

 

그 돌길을 따라 정상부로 오르니 좌촌(3코스) 갈림 이정표가 보이고 그 위쪽엔 나무벤취가 주인을 기다리며 쓸쓸히 아침 햇살을 받고 있다.

이제 여항산 정상까진 300미터 남았다는 이정표의 거리 표시에 힘을 내 보지만 생각보다 강하게 불어 오는 바람에 몸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진행 속도가 나질 않는다.

평이한 등로를 타고 조금 더 전진하니 넓은 헬기장이 나타나고 그 한쪽에는 붉은 깃발이 흔들리는데 90도의 직각 각도를 이루며 강렬한 울부짖는 소리를 내고 있다.

이제 여항산까지의 거리가 200미터로 짧아졌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다시 암봉이 가로막는 등로를 우회하며 조금 더 전진하니 등로 좌측 아래로 함안면이 내려다 보이고 작은 저수지도 내려다 보이지만 강렬한 아침 햇살이 비추며 박무를 만들어 희미하다.

몇년전 까지만 해도 일 때문에 자주 내려 왔던 곳이기에 그때를 회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기도 하지만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기에 금새 잊어 버린다.

그 앞 우측으로는 여항면의 마을들이 빤히 내려다 보이지만 그곳 역시 박무로 인해 희미한 조망 뿐이다.

 

다시 등로 좌우측으로 펼쳐진 풍경을 구경하며 전진하니 저 멀리 여항산 지나 올라야 할 낙남정맥 마루금이 길게 누워있고 잠시 후 나무 벤취와 소나무 지대를 지나 작은 돌탑 하나가 서 있는 무명봉에 오른다.

이제 거대한 암봉이 앞을 가로막고 그 암봉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설치되어 있는 나무계단과 데크를 타고 조금 더 진행하니 금새 여항산 정상에 도착해 정상석과 입맞춤을 해 본다.

해발 높이 770미터인 여항산은 함안의 진산으로서 다른 진산은 보통 살아가는 터의 북쪽에 자리를 잡는데 여항산은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특징이 있다.

이에 그 허점을 풍수지리의 비보책으로 보완하여 산 이름을 물과 관련있는 여항산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이름을 지은이는 1583년(선조 16년) 함주도호부사로 함안에 부임한 정구라는 인물로서 여항이란 산 이름에는 삶터의 균형을 잡아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
여항산은 꽃이나 단풍으로 이름난 산은 아니고 근처에 이름 난 관광지가 있어 덤으로 유명세를 타는 산도 아니며 그저 산과 들판 사이에 솟았다.

그러나 산은 정상 부근의 옹골찬 기세와 능선의 부드러움이 어울려 여느 명산 못지 않는데 마치 세상 명리를 뿌리치고 초야에 묻혀 사는 지조 높은 옛 선비 같은 산이다.
여항산 능선을 타고 남쪽으로 서북산이 있는데 낙남정맥 산줄기인 여항산과 서북산은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이었으며 북한군 6사단과 미 25사단이 사투를 벌였던 곳이다.

미군들은 갓 뎀이라며 치를 떨었는데 이후 여항산과 서북산 일대를 갓데미산으로도 부른다고 하기도 하였다는데 서북산 정상에는 6.25 전적비가 있으며 당시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 중대장의 아들 리처드 티몬스가 1995년 주한 미군으로 부임해 와 세웠다고 한다.

참으로 많은 사연과 애환이 서려 있는 여항산 정상에서 주위 조망을 바라보는데 얼마나 강렬한 발함이 불며 가는 눈이 내리는지 서 있기 조차 힘이 들 지경이다.

 

너무나 강렬한 바람이 불어 와 서 있기조차 힘들지만 그렇다고 이토록 아름다운 조망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시간이다.

남동쪽으로 소무덤봉인 668봉을 지나 706이 우측으로 산줄기 하나를 보내며 우뚝 솟아 있고 그 좌측으로 돌아가면 6.25 전쟁 당시 치열한 낙동강 전투가 벌어졌던 서북산이 어서오라 손짓을 하고 있다.

그 서북산 넘어 저 멀리에는 광려산 줄기가 박무속에 산객의 마음을 주눅들게 만들고 있다.

이렇게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살아가는 힘과 용기를 얻어 보는 순간이다.

 

하지만 결국 오래 서 있지도 못하고 강풍에 밀려 앞으로 나 있는 가파른 나무 계단을 타고 조심하며 여항산을 출발한다.

좌측 저 멀리 희미하게 마산의 진산인 무학산이 보이지만 확실한 모습은 아니기에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시간이다.

계속 내려가니 앞으로 진행하며 걸어 가야 할 낙남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안부로 내려가니 여항산에서 200미터 지났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이곳에서도 역시 좌촌으로 하산하는 하산로가 표기되어 있다.

조금 더 전진하니 바위 위에 올려 앉아 있는 바위가 멋지고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우측 소나무에 하수도 덮개같은 구조물이 보여 의아한 풍경이다.

조금 더 진행해 나무 벤취봉을 통과하고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지나니 다시 앞으로 진행할 멋진 마루금이 멋지게 누워있다.

그곳에서 염소 두마리를 만나 서로가 놀라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진행해 암벽을 로프를 타고 내려가니 거대 암봉을 좌측으로 우회하는 등로를 만나 지도를 보니 이곳은 그저 소무덤봉 가기 직전의 암봉이다.

그 거대 바위를 지나 정상 등로로 복귀하니 방금 전 만나 서로 놀랐던 염소 두마리가 그 암벽 한가운데서 서서 이 산객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염소와 눈 싸움을 한 후 진행하다 다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좌측으로 우회한 암봉 위에도 로프가 달려있다.

아마도 그쪽 바위를 통해 진행하는 산님들도 있는듯 보인다.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다시 바위가 등로를 막아 주의하며 우회하니 나무 벤취가 반겨준다.

그 벤취봉을 지나니 우측으로 무명봉이 있지만 좌측 우회 등로가 나 있고 그곳에는 나무 터널이 만들어져 있다.

그렇게 나무 터널을 통해 걸어가다 보니 넓은 헬기장이 나타나고 그곳 한쪽에 서북산까지 2.5 Km남았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바로 이곳이 668봉인 소무덤봉으로 나오는데 바라보면 봉우리도 아닌 헬기장이 봉우리로 표기되어 있으니 의아한 시간이다.

 

헬기장 지나 전진하니 다시 앞으로 서북산을 넘어 진행해야 할 낙남 마루금이 저 멀리 대부산쪽으로 이어져 있고 그렇게 풍경을 조망하며 진행을 하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무명봉 우측 진전면 방향으로 거대한 산줄기 하나가 달려가고 있고 그 능선에는 다시 거대한 암봉들이 자리하며 낙남 마루금을 걷고 있는 산객에게 또 다른 멋진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다시 천천히 걸어가다 등로 우측을 내려다 보니 그곳에도 그림같은 진전면 평암리 마을이 펼쳐져 있고 잠시 고향 생각을 하면서 쉬어 간다.

저 아래 내려다 보이는 마산시 진전면 평암리 진전천 상류에는 아름다운 산골인 미천마을이 있는데 여항산과 서북산 그리고 인성산이 초록의 병풍으로 감싸 안은 마을이다.

마을 안쪽에 넓은 바위가 있어 붙여진 평암리도 멋진 이름인데 그 안에 있는 마을이름인 미천 역시 이름 그대로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가 있고 다랭이논들과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으며 시인 조병무와 소설가 전경린의 문학이 달맞이꽃처럼 향기롭게 피어난 마을이 바로 저 아래인 곳이다.

 

그 진전면 평암리를 내려다 본 후 남동쪽 방향으로 올려다 보니 서북산에서 하늘을 향해 솟구쳤던 낙남의 마루금이 강재고개로 내렸다가 다시 대부산을 향해 가파르게 솟아 오른 모습 그대로가 다 드러나 있다.

다시 멋진 그림같은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706봉이라 생각되는 바위봉이 앞을 가로막고 그 앞에는 좌측으로 약수터산장 가는 안내판이 걸려 있다.

서북산과 여항산 갈림 이정표도 보이고 그곳을 지나 다시 앞을 바라보니 좌측을 숨어 버린 서북산 우측 저 멀리 아침 햇살을 받아 조금은 선명하지 못하지만 대부산 지나 저 멀리 광려산과 무학산으로 달려가고 있는 황홀한 낙남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와 잠시 더 발길을 멈춰 본다. 

 

이제 등로 우측으로는 낙남 마루금에서 평암리쪽으로 가지를 친 산줄기 하나와 그 안에 포근하게 자리한 평암리가 더욱 아름답게 다가오고 그곳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무명봉에 올라 잠시 지나온 낙남의 마루금을 뒤돌아 본다.

저 멀리 바위가 우뚝한 여항산이 벌써 멀어져 가고 그 넘어 660봉도 오곡재 넘어 가물거린다.

생각보다 많이 걸어 왔다는 생각이지만 역시나 마재고개까지는 무리란 생각에 조금은 더 여유를 가지고 쌀재고개까지만 걸어 보기로 하니 마음이 조금은 평온해져 온다.

 

다시 너무 아름다운 등로 우측의 평암리를 친구 삼아 천천히 걷다보니 바로 앞에 바위 전망대가 보이고 그 옆에 소나무 한그루가 멋지게 서 있다.

그곳에 들려 앞을 바라보니 아침 햇살에 희미한 낙남정맥 마루금이 손짓을 하며 어서오라 속삭이고 있다.

별촌과 대촌 하산 갈림 이정표가 반기고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706봉 갈림길이다.

이름도 정겨워 별천을 찾아 보니 여항면 주동리에 있는 동 마을로 주주골이라 불리는 골짜기의 가장 끝부분에 위치한 동네인데 뒷산의 계곡이 매우 급한 곳으로서 풍경이 아름다워 정한강 선생이 이 곳에서 노닐다 간 곳으로 별천지라는 뜻에서 별천이라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는데 대촌 나뭇골은 그 지명 유래를 찾지 못해 아쉬운 순간이다.

 

전망바위에서 멋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다시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강하게 불어 오는 겨울 삭풍이 얼굴을 강하게 때리지만 새벽보다는 온도가 올라간듯 조금은 견딜만 하다.

잡목 같은 활엽수가 자라고 있는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에 거대한 암봉이 보이고 사진 한장 남긴 후 우회해 전진하니 다시 평이하지만 아름다운 등로와 이어져 있다.

나무 벤취 2개가 자리한 무명봉을 넘어 걸어가니 다시 별천(적십자수련원)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난다.

낙엽진 활엽수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갑자기 나무 벤취 2개 위의 나뭇가지에 정북산 삼거리 코팅지가 걸려있다.

정북산은 또 어느산인지 어느 방향에 정북산인지 아니면 이곳이 정북산이란 뜻인지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으니 도대체 알 길이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정북산 삼거리에 붙어 있는 이정표를 사진에 담은 후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 다시 평암리 마을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등로 좌측 저 뒤로는 방금 전 지나온 여항산과 소무덤봉 그리고 706봉이 너무나 멋진 모습으로 그 당당함을 드러내고 있다.

등로 좌측으로는 주동리 별천과 하벌내 그리고 별천계곡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그 한가운데에 저수지도 내려다 보인다.

다시 조금 더 진행하니 드디어 서북산에 도착해 서북산전적비와 정상 이정석을 담아 본다.

서북산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에 있는 높이 738.5미터의 산으로 장년 산지의 특색을 보여 봉우리가 뾰족하고 사면이 급한 형세이다.

진북면의 서북단에 있다고 해서 서북산으로 불리며 6.25때 2개월 동안 치열한 격전지가 된 산으로서 미군이 고전을 면치 못한데서 갓데미산이라고도 불리는 산이다. 

서북산전적비는 지난 50년 8월 마산을 거쳐 부산으로 진격하려던 인민군 6사단을 맞은 한미 연합군이 1백여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19번이나 고지를 잃고 빼앗는 처절한 사투끝에 승리한 서북산전투로서 그 후 대반격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전투를 기리기 위한 전적비이다.

 

                          

어렵게 셀카를 이용해 사진 몇장 남기고 서북산전적비를 읽어 본 후 오르니 넓은 헬기장이다.

바람은 강하게 불고 있지만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며 얼었던 등로가 녹아 제법 질척이기 시작하고 내리막 급경사를 내려갈 땐 제법 고생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곳 서북산에서 출발하기 전 잠시 헬기장에서 좌측 저 멀리 지나온 등로를 바라보니 660봉 지나 여항산이 참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함안군 파수리에서 올려다 볼때보다 더 강렬한 인상으로 남겨지는 여항산의 여운이다.

 

삼각점과 헬기장을 다시 한번 사진으로 남긴 후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곧바로 나뭇가지에 코팅된 서북산 이정표가 붙어 있다.

잠시 내려가니 등로 좌측 저 멀리 송전탑을 지나 대부산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 마루금이 시워하게 뻗어 잇고 그 줄기 넘어 저 멀리로는 희미하게 광려산 줄기가 드러나 있다.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고통이 밀려오지만 그만큼 오를 수 있다는 희망과 독기가 뿜어져 나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등로 우측으로는 진북면쪽 마을과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우측 뒤 저 멀리로는 지난 구간 어렵게 넘었던 낙남마루금이 다시 시원하게 눈에 들어 온다.

잠시 더 내려가니 멋진 등로가 열려있고 곧이어 활엽수가 빽빽한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등로는 소나무 등로로 변하고 바람이 잦아진 햇볕이 잘 드는 비탈면에 앉아 준비한 김밥과 과일 그리고 복분자 한잔으로 어중간한 아점을 해결한다.

맛난 식사를 끝내고 조금은 질척이는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나무벤취4개와 묘지를 지나 버드내와 미천 갈림 이정표가 서 있는 비포장 임도의 사거리 이정표에 도착을 해 감재고개임을 확인한다.

시냇가에 버드나무가 많은 동네를 버들동네, 비들내, 버드내, 뻐든으로 불렀고 버들이 있는 윗동네란 뜻으로 상버들내, 상뻐든내, 상벌내로 되였으며 위와 같이 버들이 있는 하천 아랫동네를하벌내라고 하였다는 유래가 전해지는 곳이다.

처음에는 이곳 감재고개를 한치재로 작위적으로 해석해 한동안 고생을 한 곳이기도 하다.

감재고개는 여항산과 서북산 산줄기가 한치재로 가기전 서북산과 대부산 사이의 나즈막한 임도로서 함안군 여항면 주동리 별 버드내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학동 서북마을을 이어주는 임도 고갯마루이다.

 

다시 임도로 된 감재고개를 넘어 능선으로 올라가니 벌목된 소나무 숲이 나타나고 곧이어 등로 좌측으로 잘 가꿔진 잣나무 숲이 따르고 있다.

이제 등로는 좌측에 잣나무 군락지를 두고 우측으로는 잡목지대를 두며 그 사이로 임도같은 넓은 등로를 타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게 한동안 오르니 넓은 임도는 우측으로 계속 직진해 지나가고 낙남 마루금은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며 올라간다.

넓은 헬기장 같은 장소에 도착해 잠시 등로 좌측에 펼쳐진 별천계곡을 내려다 보고 지나온 등뒤를 올려다 보니 그곳에 서북산에서 저 멀리 남쪽으로 인황산과 국시봉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마루금이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이곳에서 잠시 별천계곡을 알아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되어 있어 여름날 아이들 손잡고 한번 내려오고픈 계곡으로 남아 버렸다.

 

맑은 물줄기와 크고 작은 소와 소나무 군락으로 이뤄진 별천계곡은 함안군민은 물론 외지인이 찾는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계곡으로서 여항면 주동리의 여항산 자락에 있다. 

여항면은 골이 깊고 공기가 맑은 청정지역으로 개발바람도 비껴간 곳으로 전원주택과 별장이 많이 들어 서 청정 휴양지로도 이름나 있다. 

별천은 여항면 주동리에 있는 주주골이라 부르는 골짜기 끝자락에 있으며 조선시대 정한강 선생이 이곳의 경치가 하도 아름다워 별천지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되었다.
별천 계곡은 심심유곡의 지형 탓에 연중 맑은 물이 흐르고 크고 작은 소가 계곡을 따라 이어져 가족단위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리는 곳은 6.25격전비가 있는 곳으로 넓고 평평한 바위가 펼쳐져 있고 바위를 따라 계곡의 찬 물이 쉼 없이 흘러 내려 크고 작은 소가 되어 만난다.
아이들은 미끄럼틀 물놀이, 수영, 올챙이, 다슬기 잡기 등에 여념이 없고 어른들은 곳곳에 놓인 평상이나 너른 바위를 차고 앉아 음식도 먹고 책도 읽으며 여름 무더위를 이겨낸다.
함안 여항 별천계곡에서의 시원한 물놀이와 산림욕, 여항산 등산, 체험마을을 통해 고즈넉한 농촌마을의 정취도 느낄 수 있는 계곡으로 유명하다.

 

다시 등로 앞을 올려다 보니 우측으로 평지산 갈림길이 있는 송전탑의 무명봉이 올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 대부산 가는 낙남마루금도 멋지게 펼쳐져 있다.

계속되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등로 좌측에 잣나무 숲을 따라 한동안 완만하게 진행된다.

이제 서서히 등로 좌측 저 뒤 멀리 서북산 봉우리가 조금씩 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고 우측으로 여항산으로 달려가는 멋진 낙남 줄기가 올려다 보이기도 한다.

서북산과 여항산 그리고 그 아래 등로 좌측으로는 주동리의 별천계곡이 내려다 보이고 주동리쪽 민가들이 한가롭고 평화롭게 놓여 있다.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낙남 마루금과 그 마루금을 만들고 있는 주위 좁은 평야와 민가들이다.

 

그렇게 잠시 더 완만한 임도로 된 등로를 타고 오르니 사거리 안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임도는 우측으로 도망가고 마루금은 직진의 능선을 타고 조금은 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도록 되어 있다.

조금은 가파른 오르막이지만 활엽수의 낙엽이 깊이 깔린 호젓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바위들이 드러나 있고 그 바위지대를 넘으니 등로 우측으로 진북면쪽 대티리가 시원하다.

민가들과 저수지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고 그 뒤로 올려 뻗은 시루봉쪽 마루금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잠시 더 오르다 등로 우측 뒤를 바라보니 그곳에 서북산 끝자락에서 뻗어 내려 인황산과 국시봉으로 이어지는 멋진 산줄기가 올려다 보이고 그 좌측 저 멀리 지난 구간 하룻밤 묵었던 양촌온천 위로 적석산도 가물거린다.

잠시 더 오르니 빛바랜 억새가 섞여 있는 우측으로 평지산 가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 평지산쪽으로는 저 아래 송전탑 하나가 높게 서 있다.

이곳에서 정상 낙남 마루금은 좌측 등로를 타고 오르며 진행을 하는데 낙엽이 많이 쌓여 마치 가을 낙엽 산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다.

한동안 그렇게 아름답고 멋진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고 땀방울 흘리며 오르니 해발 649봉인 대부산 정상이다.

대부산에 관한 자료는 찾지 못하고 이 대부산이 속해 있는 진북면에 관한 자료만 찾아 올려 본다.

진북이란 본래 진해부의 북면이라는 데서 비롯되였는데 창원시 마산합포구 남서에 위치하며 동쪽은 진동면, 서쪽은 함안군, 남쪽은 진전면, 북쪽은 내서읍과 함안군에 각각 접한다.

본래 진해부의 지역으로서 1908년 함안군에 1910년 마산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따라 진동면의 일부와 함안군 병곡면 야현리를 병합하여 다시 창원군에 편입되였고 1980년 창원시의 승격으로 의창군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3월 1일 시군 통폐합에 따라 마산시에 편입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는 곳이다.  

 

649.1봉인 대부산 정상에서 잠시 옆에 보이는 평편바위에 앉아 물 한모금 마시며 쉬었다 다시 출발하니 그림같은 등로가 열려 있다.

등로 우측으로는 이제부터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야 할 진고개인 한치재가 내려다 보이고 그 위로 광려산 줄기가 가파른 봉우리로 산객의 의지를 시험하고 그곳 넘어 저 멀리 무학산 줄기도 잡목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낙엽진 관목이 등로를 가득 메우고 단지 산객 한명만이 힘들게 진행할수 있도록 열어 놓은 마루금이 또한 환상이다.

 

그렇게 한동안 다시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봉곡가는 갈림 삼거리에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만절은 여항면 봉곡마을로 불리어지는 곳으로 이 곳은 함안군의 최남단에 위치한다.
옛부터 내곡의 섭동으로 있다가 해방후에 내곡에서 분리될 적에 봉곡마을이라 하였으며 그 전에는 만절이라 하였다.
그 유래는 함안군의 최남단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뜻도 있고 양쪽으로 높은 산이 가리워져 해가 일찍 뜨고 늦게 지며 따라서 계절도 늦어진다는 의미에서 불리었다고 전한다.

이렇게 생소한 지역에 내려 와 그 마을을 알아가는 재미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즐거움중의 하나이다.

 

계속 이어지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잡목인지 아니면 어떤 나무인지를 식재한 듯한 곳을 지나 계속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다가 갑자기 우측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좌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앞으로는 잡목 사이로 올라야 할 광려산 봉우리가 더욱 높게 다가오며 산객을 더욱 작게 만들고 있는 시간, 갑자기 넓은 바위가 나타나더니 다시 일반 등로로 이어져 있다.

다시 계속 내려가니 안부 좌측으로 봉곡 가는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고 그곳을 지나 조금은 가파른 오르막 등로르 타고 넘으니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좌측으로 과실수가 식재된 밭 우측 넘어 이제부터 만나야 할 한치재와 그 위로 드높아 보이는 광려산 삿갓봉쪽 봉우리가 제법 높아 보이기만 한다.

 

좌측에 밭을 두고 내려가니 진고개 휴게소 건물이 보이고 79번 2차선 지방도로 건너 영업중인 한치재 휴게소 전경도 눈에 들어 온다.

79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한치재는 마산시 진북면 정현리와 함안군 여항면 내곡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이지만 현재의 모습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애국지사 안재휘 선생의 묘를 안내하는 안내판도 보이고 보호수인 느티나무도 서 있으며 이방실장군태실석도 서 있다.

현재 마산시(구 의창군)와 함안군의 경계지점인 봉곡마을(내곡리)을 한티재라 불리었는데 이 곳은 마산시(구 의창군) 진동면에서 약 30십리, 함안군 가야읍에서도 약 30십리 지점으로 남포선의 중앙에 위치한 고개로 이 길을 이용하던 행인들은 많이 쉬어갔던 곳이다.
한티재라 불리게된 유래는 이 고개에 올라서면 진동앞 바다가 한눈에 확 트이게 보인다는 뜻에서 한티재라 불리었다 한다.

그렇게 한치재를 구경한 후 도로 건너 거대한 함안아리랑보리한우 입간판과 식당 건물을 좌측에 두고 느티나무 보호수 옆의 시멘트 임도를 타고 오르며 계속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시멘트 임도를 타고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밭이 보이고 그 밭 한가운데에는 경운기 한대가 서 있다.

시골에서 봤던 정겨운 풍경이기에 잠시나마 어릴적 추억을 꺼내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조금 더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통과한 진고개 휴게소가 있는 79번 지방도로 상 한치재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내려온 낙남마루금이 시원하며 그 우측 능선을 타고 대부산쪽 풍경이 멋들어지게 줄지어 서 있다.

이제부터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 선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광려산 삿갓봉으로 올라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 산행임을 초반부터 예고하고 있다. 

 

오늘 산행 중 가장 힘들어 했던 광려산 삿갓봉 오르막 등로이다.

완만한듯 하면서도 완만하지 않고 또 가파른듯 하면서도 그리 심하게 가파르지도 않으면서 천천히 오르는 이 산객의 몸뚱아리와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등로는 정말 끔찍한 시간이 되였다.

그래도 한걸음 두걸음 걸어 올라가니 갑자기 등로 좌측으로 시멘트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가 바라보니 우측으로 산판도로가 만들어졌다가 이곳에서 그 끝자락을 내보이고 사라진 임도였다.

그곳에서 한치재 북쪽인 여항면 내곡리쪽 조망을 바라보니 잡목 사이로 황홀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내곡리는 상투봉 기슭에 자리한 산골마을인데 자연마을로는 내곡, 봉웃골, 은정골마을 등이 있다.

내곡마을은 광려산 안쪽 골짜기가 되므로 안골 또는 내곡이라 칭하게 되었고 봉웃골마을은 옛날 이곳에서 봉화를 올렸다 하여 지어진 지명이며 은정골마을은 이곳에서 은을 캤다 하여 유래된 지명이다.

내곡리에는 지방 기념물 제 220호인 함안 파산봉수대가 있다는데 확인하지 못함이 못내 서운한 시간이다.

 

                         

다시 임도를 나와 완만한 소나무 등로를 타고 오르니 서서히 오르막 경사도도 가파라지기 시작하고 자꾸만 쉬어 가는 시간이 길어진다.

다시 힘을 내 천천히 오르다 등로 우측을 바라보니 그곳에도 역시 한치재 남쪽으로 아름다운 저수지를 안고 있는 정현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정현리는 봉화산과 평지산 중앙에 위치하여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고도가 매우 높은편인 마을로서 쌍계천의 발원지로 밭농사를 주로 하는 산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구석말(구석촌,구성,구형), 목넘(대현), 정삼 등이 있는데 구석말은 대현 서북쪽 구석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목넘은 정현리에서 중심이 되는 마을이며 정삼은 대현 서쪽에 있는 마을로 뒷산이 솔밭처럼 생겼다고 한다.

정삼과 대현의 이름을 따서 정현리라 하였으며 문화유적으로 김해김씨의 정문인 삼악문이 있다.

다시 한동안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바위군들이 보이고 다시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올라 힘겹게 내곡마을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만나 한숨 크게 쉬어 간다.

 

내곡마을 갈림 삼거리 이정표에서 좌측 내곡마을 하산로를 버리고 우측 광려산쪽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다시 거대 암봉이 길을 가로막아 우회해 오른다.

잠시 더 오르니 등로에 많은 바위들이 깔려 있는 지대를 지나 주능선에서 잠시 지나온 여항산과 서북산 방향을 조망한 후 칼날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정현리와 대티리를 지나 진북과 진동면쪽 마산 앞바다가 가슴이 시원하게 뚫릴 정도의 멋진 풍경으로 성큼 다가온다.

늘 남해 바닷가를 옆에 두고 진행하는 낙남정맥 마루금 잇기 산행이지만 이렇듯 가깝게 바다를 대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기에 오늘 내려다 보는 조망은 참으로 인상적으로 남겨지는 시간이다.

 

이제 등로 우측의 멋진 마산앞바다인 남해바다를 바라보며 걸어가는 시간은 이전의 낙남정맥과는 차원이 다른 산행이 되어 버렸다.

이곳부터 간간히 만나는 등산객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산행 정보도 교환하고 진행하다 보니 몰랐던 부분에 대한 많은 공부도 해 보는 시간이다.

한동안 그렇게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다 거대한 소나무 두 그루가 등로를 지키고 있는 곳을 지나자 저 멀리 광려산 삿갓봉 정상석이 반갑게 맞이해 주고 달려 가 사진 한장 남기니 그 우측 아래에는 나무로 만든 전망데크가 멋지게 서 있다.

그곳에서 잠시 조망을 즐기는 이곳 등산객을 만나 어렵게 증명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제 갈길로 헤어진다.

지도를 보면 이곳은 광려산 삿갓봉으로 표기되어 해발고도 720미터이지만 다른 자료를 찾아보면 이곳은 이름이 없는 730봉으로 표기된 봉우리이다.

어느 것이 맞는지 정확한 고증을 한 후 정확한 이름을 붙여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 광려산 삿갓봉 정상석과 전망 나무데크 사이의 좌측 능선으로는 화개지맥 안내표가 달려 있어 잠시 화개지맥을 찾아 본다.

시간이 되어 다시 찾게되면 한치재에서 다시 올라올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한동안 그 화개지맥을 바라본다.

화개지맥이란 

낙남정맥이 옥산에서 남하하여 마산의 진동면과 함안의 경계인 한치재에서 마산의 진산인 무학산으로 향할 즈음 광려산을 지나게 된다.

이 광려산에서 하나의 지맥을 낳게 되는데 이름하여 화개지맥으로 이 지맥은 동쪽으로 흐르는 광려천의 울타리 역활을 하며 남강이 낙동강에 합수하는 함안군의 대산면 장암리 장포마을까지 가는 도상거리 34.4 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남강의 하구 건너편에는 남덕유산에서 뻗어 내려온 남강기맥의 끝지점인 기강나루가 마주하고 있다.

으로 멋진 산줄기로 생각되지만 역시나 오늘은 낙남정맥을 걸어야 할 몸이기에 마음만 보내본다.

 

다시 광려산 삿갓봉을 출발하기 앞서 전망데크 옆 바위에 올라 바라보니 저 멀리 앞 북동쪽으로 마산시의 진산인 무학산이 우뚝하고 그 아래에는 오늘 새벽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와 내렸던 내서읍 신갈리와 감천리가 빤히 내려다 보인다.

오래전 일이 있어 함안에 내려왔다 무심코 올랐던 무학산에 대한 추억이 되살아 나고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한동안 무학산을 올려다 본다.

무학산 우측 뒤 저 멀리로는 하얀 콘크리트 아파트들이 즐비한 옛날의 마산시인 지금은 창원시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무학산을 우측에 두고 내서읍 신갈리 좌측 능선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이곳 광려산 삿갓봉에서 북쪽으로 뻗어 나간 화개지맥의 화개산 상투봉이 우뚝 솟아 있다.

그 화개지맥 역시 멋진 산줄기를 자랑하며 이 산객에게 어서오라 손짓하는 듯 하다.

바로 앞에는 진달래 나무처럼 보이는 나무 줄기마다 몽우리가 굵어지며 곧 봄이 오는 소리를 들려 줄 것만 같다.

언젠가 꼭 한번 저 능선을 타고 오늘 걸어간 낙남정맥 마루금을 추억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순간이기도 하다.

 

곳 광려산 삿갓봉에서 이제 가파른 바위벽을 타고 내려가니 그곳에서 진정한 재야의 고수를 만나 3일간 고암나루에서 이곳까지 걸어 올라온 무용담을 들으며 20여분간 다시 쉬어 간다.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 서로에게 무탈한 산행을 기원하며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는 마음은 모두 똑 같은 마음이리라.

바위를 내려가니 다시 잡목이 빽빽한 등로를 타고 진행되고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 저 멀리 상투봉 지나 응봉과 호암산으로 이어지는 화개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줄지어 늘어서 있다.

다시 바위들이 깔린 잡목으로 둘러쌓인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잠시 주위 조망을 즐기며 진행한다.

그렇게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광려산 정상에 도착해 다시 잠시 배낭 내려놓고 주위 조망을 즐겨 본다.

광려산은 마산시 내서읍과 함안군 여항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마산의 무학산(767.4봉)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 서쪽 건너편에 우뚝 솟아 있는 광려산(720.2봉)을 아는 이는 드물다.

이 산은 함안군 여항면과 창원시 내서면 및 진북면과 경계를 이루고 남쪽 대산(727봉), 북쪽의 730미터 봉우리와 이어져 무학산에서 보면 생김새가 의젓하다.
원체 깊은 골짜기안쪽에 숨어 있었기에 비교적 사람의 손이 덜 미친 덕에 아직은 그래도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여름이면 많은 인파가 모여드는 곳이다.
내서읍의 주산으로 해발 720.2미터이며 (광려천의 발원지) 내서읍 삼계마을 뒤쪽에 솟은 큰산(상투봉, 724봉)을 거쳐 삿갓봉, 투구봉, 중바위, 대산(727봉) 두릉마을 뒷산,바람재, 쌀재로 이어지는 길게 뻗은 산으로 낙남정맥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광려산 정상에서 잠시 배낭 내려 놓고 지나온 등로를 바라보니 방금전 많이 쉬며 많은 산님들과 이야기를 나눴던 광려산 삿갓봉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며 애틋한 손짓을 흔들고 있다.

그 봉우리 좌측으로는 한치재가 보이고 그 뒤로 대부산과 서북산 줄기도 시원하다.

우측으로는 돌고 돌아 무학산이 바로 지척으로 다가온 느낌이며 그 무학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저 멀리 오늘 산행을 마쳐야 할 쌀재고개와 바로 직전의 바람재도 가물거리는 듯 하다.

 

광려산을 뒤로하고 내려가니 다시 바위가 박혀있는 등로를 타고 소나무 사이로 전진하고 계속 등로 우측 앞으로 바라다 보이는 진동면쪽 남해바다를 바라보며 걷고 있는 풍경이 눈에 어른거리며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추억이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는 657봉 넘어 무명봉을 지나면 대산이 우뚝하고 그 낙남 마루금 지나 좌측 저 멀리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마산의 무학산이 우뚝하다.

그렇게 다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광산사 하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보이고 그 넘어 바람이 살랑거리는 바위 위에는 산객 한분이 앉아 허기를 달래며 맛난 점심 식사를 즐기고 있다.

광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로서 신라 때 창건되었다.

장지연이 지은 광산사중수상량문에 따르면 한때 원효가 머물던 사찰로 합포의 명찰로 알려졌다고 하는데 1481년(조선 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1799년(정조 23) 편찬된 범우고에 사찰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온 것이 분명하며 1742년(영조 18) 빙연이 중수하였으며 1805(순조 5) 당우를 새로 지었다.
1950년 6.25전쟁 때 불에 탄 것을 뒤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는데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요사체 2동이 있다.

1912년 영봉이 제주도에 법정암(지금의 관음사)을 창건할 때 이 절에 있는 탱화를 옮겨갔다고 하며 유물로는 1852(철종 3) 율암 치흡이 쓴 광산사대웅전창건기와 역시 치흡이 1872년(고종 9)에 지은 광산사현판문, 1887년(고종 24) 법전이 지은 광산사극락전창건현판문이 전한다.

이들 현판에 따르면 박계준이라는 신도가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대웅전을 지은 뒤 용호가 중창하였으며 광발이 극락전을 지었다.

시간이 되면 한번 내려가 둘러보고 왔으면 좋겠지만 오늘은 갈길이 머니 다음을 기약해 본다.

 

광산사 갈림 삼거리를 지나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안부를 지나 낙엽진 잡목 사이를 타고 진행을 한다.

등로 좌측으로는 거대한 바위봉이 자리하고 있는 무명봉을 우측으로 우회해 넘으니 다시 안부로 내려가고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전 지나온 암봉이 생각보다 크고 높은 절벽임에 놀라는 시간이다.

다시 등로 우측으로는 계속해 마산 앞바다의 남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그곳으로 이어지는 곳에 추곡리의 저수지가 아름답게 놓여 있다.

다시 한동안 진행하니 광려산 아래갈림길이란 이정목이 나타나고 곧이어 벤취 3개가 놓여 있는 벤취봉에 도착을 한다.

다시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화개지맥의 상투봉이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고 무학산도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다.

가파른 바위 암봉 사이를 넘어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준.희님의 성원 아크릴 안내판이 붙어 있고 아름다운 등로를 타고 꿈길을 걷듯 진행을 하니 바로 앞의 무명봉과 저 멀리 대산이 올려다 보인다.

 

다시 출발해 낙엽진 앙상한 잡목 등로를 타고 한동안 전진하니 등로 우측에 큰 바위 하나가 있는 전망대가 보이고 그곳에 잠시 올라 배낭을 내려놓고 쉬어 간다.

오늘 산행을 마재고개가 아닌 쌀재고개까지 가기로 하니 마음의 여유가 한결 많아졌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지나온 마루금을 뒤돌아 보니 저 멀리 무명봉 지나 657봉이 보이고 그 뒤로 광려산과 광려산 삿갓봉으로 이어진 후 그 우측 능선으로 화개지맥도 빤히 보인다.

지나 온 마루금을 뒤돌아 보는 이런 시간이 너무 좋기에 다시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딛고 또 오를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가 보다.

 

등로 우측인 남쪽으로는 시루봉 지나 마산시 진동면 앞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올망졸망한 섬들도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그 좌측으로는 저도도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많은 추억이 깃들어 있는 거제도도 가물거린다.

거제지맥에 대한 추억이 깃들어 있는 거제도이기에 오늘 이렇게 바라보는 마음이 다시 한번 짬하다.

조금 더 맑고 시원한 조망이였다면 더 환상이였을 것을 이것조차도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지만 욕심의 끝은 없는가 보다.

추곡리와 대티리쪽 마을과 저수지들이 보이고 그 뒤쪽으로는 계속 이어지는 남해바다가 넘실거리는 낙남정맥 마루금에 서서 다시 한번 뒤돌아 본 지나온 마루금이 이 산객의 가슴으로 파고 들어오며 영원히 잊지 못할 멋진 추억으로 남겨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곳 바위 전망대에서 허기를 달래기 위한 간식과 복분자 한잔을 들이키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나무계단을 통과해 이마에 땀방울을 흘리디 보니 어느덧 대산 정상부에 도착을 한다.

나무 계단에서 바라 본 주위 조망과 풍경이 또한 멋지지만 너무나 많이 봐왔던 그림같은 사진들이기에 오늘은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시간이다.

 

대산 정상부로 오르니 지나온 마루금이 광려산을 지나 광려산 삿갓봉에서 우측으로 화개지맥을 분기 시키고 그 분기된 산줄기를 타고 상투봉이 우뚝 솟아 있으며 그 산줄기들이 감싸 도는 아래에는 신갈리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등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마산 앞바다인 진동쪽 남해바다가 파란 바닷물을 넘실거리며 이 작은 산객의 가슴에 수많은 추억을 담아 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드디어 대산 정상에 올라 정상석을 사진에 담다 보니 그 대산 정상석 넘어 저 멀리 마산의 진산인 무학산이 너무나 선명하게 다가와 있다.

마산시였다가 창원시로 바뀐 내서읍과 진동면에 걸쳐 있는 대산은 해발고도가 727미터로서 정상에서 바라 보는 조망이 환상인 곳으로 봄에는 진달래꽃 산행지로 제격일 것 같은 그런 산이였다.

 

대산 정상에서 바라 본 조망과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지나온 낙남마루금이 부드럽게 뻗어 있고 그 마루금 저 멀리 지난 구간 올랐던 마루금도 희미하지만 제 모습 그대로 다가와 있다.

북쪽으로는 화개지맥의 상투봉이 시원하고 그 우측으로는 오늘 새벽 이 산객이 내렸던 내서읍의 회색빛 아파트 단지들이 줄지어 서 있다.

북동쪽으로는 무학산이 학이 날아가는 형상으로 멋지게 서 있고 그 우측인 동쪽으로는 앞으로 진행해야 할 윗바람재 지나 바람재와 쌀재고개가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마창대교가 파란 바닷물 위에 너무나 아름답게 놓여 있다.

그 뒤 우측 저 멀리로는 진해의 산군들이 어서오라 손짓하며 이 산객을 유혹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많은 시간 대산 정상에서 즐긴 후 다시 완만한 등로를 타고 우측에 직벽의 낭떨어지를 두고 걸어가니 좌우로 펼쳐진 조망과 풍경이 황홀하다.

이제 끝자락도 눈에 들어 오니 조금은 더 여유를 느끼며 유람하듯 걸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다 만나는 거대한 두 그루의 소나무에도 안겨보고 잡목이 자라고 있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금새 작은 정상석이 서 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해 살펴보니 해발 727미터인 광산먼등 이란 정상석이 서 있다.

자료를 찾아 봐도 나오지 않는 산인데 알 수가 없으니 아쉬운 시간이다.

주위의 나무들로 인해 조망도 없기에 다시 곧바로 낙남정맥 이어가기를 해 본다.

 

이제부터는 등로 앞으로 바라보이는 맟ㅇ대교와 그 사이에 흐르는 바다 그리고 저 멀리 창원과 진해를 친구 삼아 거닐면 될 듯 싶은 그런 등로이다.

조금 내려가니 생각보다 많은 진달래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꽃이 피는 봄을 기다리는 풍경이 장관이다.

오늘 처음으로 이곳이 봄 진달래꽃 산행지로 유명 할 것 같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빼곡히 들어 찬 진달래 나무 터널을 타고 내려가는 시간도 생각보다 좋은 기억으로 남겨진다.

 

진달래 군락지를 타고 내려가니 저 아래 608봉의 암봉과 윗바람재를 지나 산불감시초소가 보이는 569봉도 드러나 있다.

계속되는 진달래 터널을 지나 내려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곧바로 다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608미터의 거대 암봉이 등로를 가로막아 그곳을 우회해 내려가니 저 앞으로 윗바람재가 바로 발 아래로 다가와 있고 산불감시초소도 바로 코 앞이다.

이곳에서 산불 감시초소 요원을 만나 앞서거니 뒷서거니 그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569봉으로 오른다.

 

제법 넓어 보이는 등로를 타고 다시 내려가니 나즈막한 안부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는 대산 윗바람재란 이정목이 서 있다.

그곳을 지나니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잠시 오르니 금새 569봉의 삼각점과 산불감시초소 그리고 전망나무데크가 준비되어 있는 정상에 올라 잠시 배낭 내려 놓고 주위 조망을 즐겨 본다.

방금 전 지나온 마루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오고 608봉 지나 대산으로 이어진 능선이 아름다운데 하루해가 벌써 서산으로 기울어가며 강렬한 햇살을 펼쳐보이고 있다.

봄이 되어 진달래가 만발하면 또 다른 추억과 삶의 즐거움을 선사할 대산 마루금을 그렇게 지나고 있다.

 

569봉 정상의 산불감시초소 앞에 있는 나무 전망데크에 올라 시원하게 펼쳐진 조망을 즐겨 본다.

동쪽으로 5번 지방도로가 시원하게 뻗어 있고 그 주위로 예곡동과 문화동이 내려다 보이며 바로 앞에는 마산시내의 아파트촌과 남해바다 그리고 그 넘어 창원시가 보이고 그 마산과 창원을 이어주는 마창대교도 시원하게 보인다.

그 마창대교 건너편으로는 진해의 진산인 천자봉과 웅산등이 보이고 그 북쪽으로는 이제 다음 구간 다시 올라야 할 낙남마루금의 대암산과 용지봉도 가물거린다.

이렇게 내려다 보고 앞으로 올라야 할 마루금을 바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다.

 

북동쪽으로는 오늘 마지막으로 걸어 넘어야 할 바람재가 잡목 사이로 숨어 있고 그 바람재 넘어 447봉이 아직도 낙남정맥 마루금은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 447봉우리를 넘으면 오늘 날머리인 쌀재고개가 나타나고 다음구간에 다시 올라야 할 대곡산과 그 옆 신월산을 지나 좌측인 북쪽으로 무학산이 웅장하게 서 있다.

어둠속에 올라야 할 곳이지만 시간 조정을 해 저곳 무학산 정상에서 찬란한 일출을 볼 수 있기를 바래보며 오늘 올랐던 이곳에 대한 추억을 담아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동안 조망과 풍경을 즐긴 후 산불감시원과 인사를 나누고 내려가니 나즈막한 안부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대산 바람재위 갈림길이란 이정목이 서 있다.

다시 나즈막한 능선을 타고 봉우리로 오르니 벤취 2개가 보이는 무명봉에 오르고 그곳을 내려가며 앞을 내려다 보니 바람재의 넓은 공터와 팔각정 그리고 이제 마지막 봉우리로 올라야 할 447봉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팔각정 앞에는 운동기구도 비취되어 있는 풍경을 바라 본 후 잡목 지대를 타고 내려가니 갑자기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금새 바람재에 도착을 한다.

바람재에서는 맨 처음 바람재진달래축제3월31일이란 이정석이 반기고 잠시 둘러본 후 팔각정에 올라 다시 한번 풍경을 조망해 본다.

 

바람재에 있는 팔각정에 올라 주위 풍경을 조망한 후 내려와 나무전망데크에서 남동쪽을 내려다 보니 5번 지방도로와 예곡동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내려다 보이는 예곡동은 원래 합포현에 속한 지역으로 조선시대 태종 때 창원부에 1910년(융희 4)에는 마산부 구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외서면 두릉리를 통합하여 예곡리라 하고 창원군 구산면에 편입되었던 지역이다.
1949년 지방자치제 실시로 마산부가 마산시가 되면서 마산시 예곡리가 되었으며 1973년 리가 동으로 바뀔 때 마산시 예곡동이 되었다.

1989년 합포출장소 관할이 되었으며 1990년 합포출장소가 합포구로 승격됨에 따라 마산시 합포구 예곡동이 되었다가 2001년 1월 합포구가 구제 폐지로 없어져서 다시 마산시 예곡동이 되었다.

길이 7.5 ㎞의 우산천이 흐르며 두릉, 밤밭고개, 새머리, 장승배기 등의 옛마을, 싸리티, 밤밭곡, 만날고개, 쌀재고개 등의 고개, 숲골, 참샛골, 조창골 등의 골짜기, 큰 바위인 통시바우, 야산인 배나무골 등이 있다.

통시바우는 시(뒷간)처럼 생겼다는 데서, 조창골은 조를 많이 심었다는 데서, 새머리마을은 지세가 새의 머리처럼 생겼다는 데서, 배나무골은 배나무가 많이 있었다는 데서, 밤밭곡은 밤나무가 많았다는 데서 명칭이 연유하며, 만날고개에서는 해마다 축제인 만날제가 개최된다.

참으로 많은 사연과 변화를 겪으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마을이 참으로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다.

 

그렇게 바람재에서 한동안 머물며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다시 길을 떠난다.

넓은 평전의 바람재를 떠나는 마음이 아쉽지만 또 이별을 해야 새로운 만남이 있는 것을...

조금 더 진행하니 빛바랜 억새들이 자랐다 말라붙은 안부가 나타나고 좌측의 낙남정맥 등로와 우측의 박종규목장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갈림길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좌측 정상 낙남정맥 마루금을 타고 다시 가파라지는 등로를 타고 오르며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인 447봉을 향한 투혼을 불살아 본다.

 

그렇게 어렵게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등줄기와 이마에 땀방울을 흘리니 드디어 오늘 마지막 봉우리인 447봉에 도착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본다.

몇장의 띠지들이 나풀거리고 있지만 특이한 이정표나 봉우리 표시가 없으니 알다가도 모를 그런 봉우리로 기억된다.

이제 하산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면 오늘 산행 날머리인 쌀재고개에 도착을 할 것이다.

 

마지막 447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천천히 내리막 등로를 타고 오늘 마지막 산행 남러리인 쌀재고개로 향한다.

잠시 내려가니 식재된 나무가 보이고 곧이어 임도를 만나는데 그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 임도를 만나 드디어 오늘 산행 남러리인 쌀재고개에 도착을 한다.

쌀재고개란 이름이 특이해 자료를 찾아 보니 쌀재고개는 현재 쌀을 져 나르는 고개라고 알려져 있으나 그것은 사실과 다른 듯 하다.

원래 감천고개는 물이 맑기로 이름이 나있었으며 감천너머에는 옥수골이 있을 정도였는데 옛날에는 감천고개에서 감천동네로 내려가는 길 우측 편에는 아주 맑은 물이 흐르다 고이는 옹달샘같은 곳이 있었다고 하며 여기에서 동네 아낙들이 쌀을 조금씩 가져와서 나무에 걸고 복을 빌고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곳에 걸린 쌀은 살림살이가 어려운 사람들이 가져가 양식으로 이용을 하였다고 하였으니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베푸는 마음씨가 이 얼마나 조심스러우며 없는자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겸허한 마음인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쌀이 걸린 나무가 있는 고개라는 뜻으로 이후 쌀재고개가 되었다는 설이 전해지는 고개이다.

 

이렇게 또 한구간 잘 마무리 한 다음 마산 택시를 부르지만 그 어느 택시도 쌀재고개로 올라오지 않고 또다른 택시 번호를 찾아 호출해 보지만 대답도 없다.

할 수 없이 홀로 천천히 걸어 넓은 시멘트 도로를 타고 만날고개쪽으로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박종규목장이라 알려진 돼지 목장이 보이고 그곳 우측으로도 바람재로 오르는 등로가 나 있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계속 내려가며 택시를 부르지만 대답없는 메아리가되어 하늘로 사라진다.

계속 걸어 내려가니 다시 삼거리 갈림 도로와 만나고 도로 좌측 200미터 전방에 만날고개가 있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그 안내판이 가리키는 좌측 방향으로 나즈막한 언덕을 넘으니 바로 마산시내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그 언덕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이 환상이다.

 

마산시를 내려다 보며 내려가니 이제 이곳 저곳에 모두 만날고개와 관련된 이정석과 유래설명 그리고 그 만날고개와 관련된 인공 구조물로 뒤덮혀 있고 제법 많은 마산시민들이 올라와 쉬고 있는 휴식공간으로서의 면모도 보이고 있다.

이곳에서 잠시 만날고개에 얽힌 전설을 알아보기로 한다.

마산시 월영동 산 160번지 예곡동과 월영동의 경계에 있어 내서면 감천곡으로 통하는 고갯길을 만날고개라 하는데 차량이 없었던 시절엔 이 고개로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이곳은 만날고개로 부르게 된 사연을 간직한 고개로 실제로 음력 팔월 열 이렛날(추석 이틀 후)이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 만남의 기쁨을 나누는 곳이다.
옛날 마산포에 이씨 성을 가진 양반 집이 있었는데 일찍이 바깥양반이 죽고 편모슬하에서 삼남매가 자라고 있었는데 큰딸이 열 일곱 살 그리고 둘째딸이 열 서너 살이라 했고 막내아들이 열 살 남짓이었는데 기둥인 어머니가 질병까지 얻어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한편 고개 너머 감천곡에는 돈으로 진사벼슬을 얻은 천석꾼 윤씨가 살고 있었고 슬하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반신불수에 벙어리라 나이 서른이 되도록 혼처가 나타나지 않아 속을 태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산포에서 시골로 행상을 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바로 이씨집 이웃에 살아 이 집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 어느 날 아주머니는 이씨 집안의 어머니를 찾아 큰딸을 감천 윤진사집과 혼인만 시키면 전답수십 마지기와 많은 금전을 받을 수 있으니 가세도 되살리고 돈으로 병도 구완할 수 있다고 혼사를 권유했다.

그러나 사위될 사람이 반신불수 벙어리란 소리에 대경실색해 비록 구차하게 살지언정 딸은 그렇게 결혼시킬 수 없다고 한사코 거절하여 행상 아주머니는 며칠 후 큰딸을 직접 만나 감언이설로 설득하니 큰딸은 집안과 어머니의 병환을 구완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혼사가 이루어지도록 작심하고 어머니를 달랬다.

겨우 어머니를 달래고 눈물로 헤어진 후 이씨집 큰딸은 감천 윤진사집으로 시집을 갔지만 시집살이의 고초는 말이 아니었다.

반신불수의 신랑은 아예 남자 구실을 못하는데도 며느리더러 손자도 못 낳는다며 시댁의 구박이 심했다.

그래도 새댁은 시부모와 남편을 잘 모셨는데 시집온 지 3년 만에 친정에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친정에 와 보니 시집갈 때 받은 전답과 돈으로 가세도 좋아져 있었고 어머니의 건강도 나아져 더 바랄 것이 없어 보였다.

막상 시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자 딸은 도저히 시집살이 할 엄두가 안 난다며 그냥 친정에서 살면 좋겠다고 여쭈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호통을 치며 여자는 출가외인이라 한 번 시집가면 죽어도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며 시댁으로 되돌아가게 했다.

그러나 만날고개에서 아내가 오길 초조하게 기다리던 남편은 자신에 대한 열등감으로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는데 집을 도망쳐 새 삶을 찾으라 는 유서까지 써 놓았다.

이리하여 스무 살에 청상과부가 되어 수절하면서 몇 해가 흘러갔지만 자나깨나 친정 생각뿐이었다.
하루는 안부나 전해 듣고자 만날고개로 나갔는데 그 날이 음력 팔월 열 이렛날 마침 그 날 마산의 친정어머니도 시집간 딸의 안부를 묻고 싶어 사람의 왕래가 많은 만날고개에 올랐으니 우연치고는 희한하게 맞아떨어져 모녀가 얼싸안고 울었다고 한다.

다음 해에도 모녀는 이 날이 되면 꼭 이 만날고개를 찾았으니 이 이야기가 입으로 전해져 고개이름도 아예 만날고개로 불려지게 되었고 사람들도 이 날이면 만날고개에 올라 한 동안 못 보았던 사람들을 만나길 기대한다.
 지금은 시민 축제 차원에서 매년 팔월 한가위 다음 다음날부터 이틀 동안 고갯마루 축제 만날제가 베풀어지고 있다.

이토록 애틋한 전설을 간직한 만날고개로 내려 올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좋았던 마무리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만날고개를 내려 와 화장실에 들려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살것 같다.

그곳 차도에서 택시를 타고 마산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해 오후 5시 40분 발 서울행 버스로 복귀를 한다.

 

다음주에 다시 내려 와 무학산 구간을 오를 수 있기를 희망해 보지만 어머님 병환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어 다시 기약없는 이별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도 엄습하는 시간이다.

 

그래도 다시 내려 와 오를 수 있기를 기다리늠 마음은 늘 셀레임 그 자체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