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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산행(완료)/낙남정맥(완료)

낙남정맥 제6차 추계재에서 담티재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2.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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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남도 고성군의 낙남정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2년 03월 02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 종일 겨울비가 내리고 안개와 박무가 있었으나 온도는 산행하기 좋았던 날씨

산행온도 : 영상 01도에서 영상 12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추계재(1016번 지방도로)-404봉 선바위-440봉 2개의 바위-송전탑-489봉-전망바위-

               농장 철조망-경주최씨와 부인 김해김씨묘-대곡산(542.8봉)-통영지맥 분기봉-

               농장 철조망-1차선 포장도로-농장 출입문-성주배씨묘-편백나무 숲-483봉-

               농장 철조망-531봉-전망바위-화리치(화리재, 양화고개)-편백나무-비포장 임도-

               이정표(정상 0.5 Km 및 큰재 1.5 Km)-무량산 및 봉화산 갈림 이정표(봉화산 2.2 Km)-

               무량산(581.4봉)-무량산 갈림 삼거리 복귀-암릉과 바위 전망대-578봉-바위 전망대-

               비포장 임도-1차선 포장도로-큰재(1차선 포장도로)-학남산 갈림길(500봉)-465 바위봉-

               백운산(486봉)-감투바위-점심식사-소나무 조림지-제일목장과 한림정공 공장 건물-

               장전고개(1009번 지방도로)-송전탑-69번 송전탑-전망바위-성지산(459봉)-71번 송전탑-74번 송전탑-밀성박씨묘-떡고개-

               덕산(278봉)-송전탑-배치고개(1007번 지방도로)-밤나무 밭-소나무 조림지-밤나무 밭-키 큰 산죽지대-밤나무 밭-신고개-

               탕근재(370.1봉 삼각점)-봉광산(386봉)-새터재(6번 지방도로)-소나무 조림지-필두산(420봉)-전주최씨와 진주정씨 쌍묘-

               고성저연 KT 중계탑-담티재(1002번 지방도로)-청심목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1.50 Km (접속구간 00.00 Km)

산행시간 : 가랑비 내리는 속에 조금은 빡빡하게 10시간 30분 (06시 30분부터 17시 00분까지)

 

낙남정맥이란?

지리산 세석평전을 품고 있는 영신봉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내려온 마루금이 삼신봉에서 외삼신봉을 지나 묵계치와 고운재를 거쳐 옥산까지의 산줄기는 서쪽 섬진강으로  그 물줄기를 가르고 있으나 이후 산줄기는 인위적으로 잘라 만든 진양호 물이 사천만으로 흘러들게 만든 거대한 가화강을 지나 백운산 대곡산 무량산 여항산 서북산 광려산 대산 무학산 천주산 봉림산 대암산 용제봉 김해의 신어산을 거쳐 낙동강하구인 김해시 매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그 긴 줄기를 낙동강에 묻는 약 224 Km의 산줄기를 낙남정맥이라 한다.

이 산줄기에는 특이하게도 인공 호수와 강줄기가 마루금을 가르고 있기에 피치 못하게 가화강을 건너야 하는 산자분수령과는 다른 산행이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겨울비와 안개로 최악의 산행 조건에서도 무탈하게 또 한 구간 이어 놓은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언제 오를지 기약없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 것 같아 걱정을 하였는데 뜻밖에 일찍 그 기회가 찾아 왔다.

갑자기 함안에 있는 거래처에서 2일 저녁 만나자는 연락이 오고 평소 같으면 징검다리 연휴 사이 저녁에 만남을 잡는다고 거절을 하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은 그곳 낙남정맥에 오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도 같아 꿩먹고 알먹는 기회가 되었다.

삼일절 날 어머님 병환으로 인해 집에만 있다 그날 저녁 간단히 산행 준비를 해 내려갔다 낙남정맥 산행을 이틀에 걸쳐 진행하고 그 중간 저녁에 손님 만나 일을 보기로 하니 갑자기 보너스를 받은 듯 설레이는 기회가 되였다.

이렇게 뜻하지 못한 귀중한 기회를 얻었으니 남아 있는 낙남정맥도 속도를 내 3월이 가기 전에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다.

 

무량산 가기 직전 삼거리 갈림길에서 잠시 더 올라 전망 바위에서 바라 본 578봉과 우측 저 멀리 백운산 마루금이 하얀 안개속에 묻혔다 나타나기를 반복하고 그 기회를 엿보다 어렵게 몇장의 사진에 담은 순간은 참으로 자연의 많은 부분에 대해 감사함과 함께 두려움이 밀려 드는 시간이다.

하루 종일 내리는 겨울 가랑비로 인해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던 조망과 풍경들, 하지만 내리는 빗방울과 안개가 있기에 평소같으면 보기 힘든 아름답고도 환상의 사진에 탄성이 절로 나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산자락을 잘라 만들어 진 포장도로가 또한 가슴 아프면서도 살아가는 인간에게 자연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주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산행 날머리인 담티재의 청심목장 옆 공터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고성택시를 불렀지만 엉뚱하게도 배치고개로 갔다 되돌아 온다면서 20여분이나 늦게 도착을 한다.

아쉽지만 시골이고 새벽녘이다 보니 참고 가는데 도로는 이 산객이 알고 있는 도로가 아닌 돌아 가는 길을 택해 가격이 비싸게 나오고 운전은 또 얼마나 난폭한지 나도 모르게 손잡이를 꽉잡고 타고 가는 촌극이 벌어진다.

아무튼 어렵게 2개월하고도 반이 지난 오늘에야 낙남정맥 산행을 이어가기 위해 다시 추계재에 도착해 옛 추억을 더듬어 보는 시간이다.

추계리는 단일 법정리로 형성된 마을로 본래 진주군 영선면의 지역으로서 가리재 고개 밑에 마을이 있다하여 가리재 또는 추현이라 하였는데 광무 10년인 서기 1906년에 고성군에 편입되어 1914년에 고성군의 행정구역 통폐합시 영현면의 추계리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추계리는 서기 1650년경에 달성서씨와 진양정씨가 맨 먼저 입촌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지금은 김해김씨, 진양강씨, 장흥마씨등 여러 성씨가 마을을 형성하여 살고 있다.

추계마을은 면 소재지로부터 약 5㎞ 동남쪽에 위치한 큰땀, 새땀, 반장땀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동, 서, 남쪽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골마을로 선바위산 골짜기에서 원류하는 냇물이 마을 앞을 지나 영천강으로 흐르고 있고, 농경지는 계단식 천수답이 많으나 수원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추계재는 고성 영현면과 상리면을 잇는 지방도 1016호선이 지나며 대가면으로도 이어지는 도로가 있는 삼거리이다.

이곳이 오늘 낙남정맥 제6구간을 시작해야 할 들머리인 셈이지만 어둠속이다 보니 제대로 된 사진 한장 남기기 어렵다.

 

추계재에서 1006번 지방도로를 타지 않고 동쪽의 장박고개로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조금 오르면 도로가 우측으로 휘였다 좌측으로 꺽이는 지점 우측 도롯가에 전봇대 하나가 서 있고 좌측 화살표 도로 표지판이 있는 곳 우측 능선으로 많은 띠지들이 나부끼며 제6차 산행의 들머리임을 알린다.

능선으로 올라 진행하니 생각보다 일찍 내리기 시작하는 겨울 가랑비에 비옷을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다 보니 산행 속도는 나질 않고 힘만 들어가는 시간이다.

그래도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등줄기와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다 보니 404봉 선바위에 도착해 잠시 흐르는 땀방울 닦아보는 여유를 부려 보지만 롤러코스터와 같은 오늘 마루금을 타고 어둠이 내리기 전 무탈하게 산행 날머린인 담티재에 도착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계속되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옆에 인동장씨 부인인 경산전씨 묘지가 나타나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계속되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이마와 등줄기에선 벌써 굵은 땀방울이 옷을 적시기 시작해 잠시 풀숲에 서서 비옷을 벗고 진행하니 조금은 살 것 같다.

그렇게 진행하니 갑자기 등로 앞을 가로 막는 바위가 보이고 두개의 바위 사이를 통해 440봉을 넘는다.

이제 등로 우측 상리면쪽 마을에서 빛나는 불빛이 저 아래 내려다 보이니 제법 고도를 높인듯 하다.

 

이제 서서히 어둠이 엷어지며 등로가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더 진행하니 등로 옆에 송전탑 하나가 보이지만 그 번호까지는 확인이 불가능 하다.

활엽수 낙엽이 등로를 채우고 그 주위에는 멋진 소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등로를 타고 여유롭게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 벌목된 장소에 멋진 바위 전망대가 보인다.

그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들리니 그곳에 환상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경상남도 고성군 상리면 마을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그 마을 유래를 찾아 보니 삼한시대에는 변한의 성한 땅이었으며 소가야 때에는 보령향에 속하였고 고려현종 9년(1018년)에 고성현으로 개칭되면서 상리 또는 오산으로 호칭하였다.

상리면에서도 부포리는 옛날부터 감티, 부개, 부포로 불리어져 왔는데 감티는 통영에서 70리, 진주에서 70리 되는 지점이 이곳으로서 옛날 사천, 진주, 지리산지역의 산적과 통영, 마산, 부산등지의 산적이 서로 만나 감투싸움을 한 고개로서 감티(재)라 부르게 되어으며 부개는 천황산 줄기가 지아비 부, 클개(날개) 포자 모양을 하고 있다 하여 이곳을 지나던 원님이 지어준 지명을로 부개라 하였다 한다.

그리고 부포는 일제시 행정구역 개편으로 부포리로 하였다가 광복후 분동이 되면서 부포와 내부포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부포마을은 고성에서 사천과 진주방면 국도의 갑문에 위치한 감티고개 마을로 뒤에는 천황산이 앞은 선당산 자락에 자리잡은 마을로 군내에서 높은 지대로 겨울에 춥기로 전라도 운봉 다음가는 마을로 알려져 있으며 농토가 비옥하지 못하고 수원도 좋지 못한 지대이다.

이렇게 또 그 마을 유래를 알아가는 공부 역시 산행의 중요한 의미중 하나가 되였다.

  

바위 우측 서쪽으로는 송전탑 넘어 지난 2개우얼 전 어렵게 내려 온 천황산이 ㅡ어둠속에 우뚝 솟아있고 그 뒤 저 멀리 아기자기한 산그리메가 환상의 풍경을 만들고 있다.

저 골짜기 타고 희미하게 보이는 사천의 진산인 와룡산이 보일듯 말듯 다가오고 그 멀리 있어야 할 하동의 금오산은 그저 상상속으로만 그려 보는 시간이다.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이 홀로 오르며 시간 조절을 하는 장점이지만 또 조금은 외로움을 타는 것이 아쉬운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도 기분 좋게 멋진 조망을 즐긴 후 뒤돌아 나오는데 다시 빗방울이 굵어지며 비옷을 입고 배낭 커버를 씌우다 보니 산행속도는 나지 않고 힘은 많이 드는 그런 산행이 되고 있다.

 

이제 그 바위 전망대를 나와 정상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나즈막한 봉우리인 489봉을 넘어 진행한다.

그곳을 지나 진행하니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 잡풀이 등로를 가득 메운 안부를 통과하고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등로 좌측에 농장 철조망이 처음 시작되는 지점을 만난다.

철조망을 타고 내려가니 다시 안부같은 장소를 통과하고 조금 더 전진하니 한글로 된 경주최씨와 부인인 김해김씨의 묘지를 지나며 한글로된 비석의 글씨에 잠시 쉬어 간다.

그곳을 지나 계속 걷다 보니 금새 잘 벌목된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아름다운 산행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빗방울이 조금 가늘어지고 다시 비옷을 벗고 가랑비를 맞으며 진행하니 살 것 같다는 느낌이다.

 

계속 전진하며 걷다 보니 한자로 된 비석이 서 있는 함안이씨 묘지를 지나 오르니 등로 우측 저 멀리 희미하지만 남해바다와 남해군의 남해지맥 산줄기가 몇년전 추억을 말해주며 쉬어가라 재촉한다.

그곳에서 조금 더 오르니 나뭇가지에 명밭골박씨네에서 걸어 놓은 묘지가는 길 이정표가 눈에 띄고 그곳 삼거리에서 우측 등로를 타고 조금 더 오르니 금새 542.8봉인 대곡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대곡산은 낙남정맥 상 위치한 산들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산이지만 옆에 있는 무학산에 묻혀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정상에는 정상석과 삼각점이 있으며 바로 옆에 있는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잘 알려진 곳으로 유명하다.

대곡산은 통영지맥 분기점인데 좌측이 낙남정맥, 우측이 통영지맥으로 많은 산님들이 무심코 통영지맥으로 들며 심심찮게 알바를 하는 곳으로 잘 알려진 곳이니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대곡산 정상에는 지적삼각점이 있고 그 앞에 작은 돌탑이 보이며 그 옆에는 삼각점이 박혀 있다.

하지만 대곡산 주위에는 잡목들과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주위 조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쉽게 정상 풍경을 사진에 담고 다시 주의해 조금 더 내려가니 삼거리가 나타나고 등로 우측으로 나뭇가지에 통영지맥 이정표가 걸려 있고 그곳과 좌측 등로 모두에 많은 띠지들이 붙어 나풀거리고 있다.

그곳에서 잠시 지도를 살펴 정상 정맥 마루금을 찾아 내려가며 통영지맥을 찾아 본다.

 

통영지맥이란

통영지맥은 지리산 영신봉에서 부산쪽으로 가는 낙남정맥의 대곡산(516봉)에서 남쪽으로 가지를 쳐 고성반도 끝으로 가는 산줄기로서 고성읍내를 관통하여 고성과 통영일대에서 가장높은 벽방산(651봉)을 넘어 통영시가지를 감싸안고 서쪽으로 돌아가 통영시 길목마을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40여 km되는 산줄기로 호미 땅끝 고흥 여수지맥처럼 반도의 끝으로 가는 능선이라 지맥의 이름도 지역명을 따 통영지맥이라 칭한다.

언젠가는 꼭 한번 더 내려 와 이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통영지맥을 우측으로 보내고 좌측의 낙남정맥 마루금을 타고 진행하니 사면로로 등로가 나 있는데 등로에는 빛바랜 억새와 소나무가 적당히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게 열려 있는 그런 마루금이다.

다시 잡목지대가 나타나는듯 하더니 작은 돌탑이 있는 무명봉에 올랐다 이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등로 우측으로는 고성군 대가면 연지리쪽 마을과 나즈막한 산줄기가 참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연지리는 본래 고성군 가동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3월 1일 고성군의 행정구역 통폐합시 연동과 지동 및 평동을 병합하여 연동과 지동의 이름을 따서 여지리로 하여 대가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연지리는 엣날 늪지가 있던 에 연을 많이 재배하였다 하여 연동이라 하고 평동은 넓고 평평한 들가운데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혀진 이름으로 지금은 행정리로 지동과 평동 마을이 있다.

지동마을은 대가면 소재지로부터 남쪽산 등성이를 넘어 약 6㎞ 떨어진 양화저수지 밑의 평야지대에 위치한 마을로 고성읍 덕선리와 경계를 하고 있으며 농경지는 경지정리가 된 비옥한 토질로 수원은 양화저수지 몽리구역으로 양호하다.

평동마을은 무량산(해발 581미터)의 남쪽 줄기에 형성된 넓고 평단한 평야지에 자리잡은 마을로 천황산을 경계로 고성읍 무량리와 인접하여 있는 비교적 넓은 들판은 비옥하고 경지정리가 되어 수원도 양화저수지 몽리구역으로 양호한 편이다.

이렇게 내려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에 취할 수 있는 이곳 지역을 배울 수 있어 더없이 즐거운 산행이 되어 간다.

 

그렇게 대가쪽 마을과 들판을 조망한 후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철조망이 나타나고 그 철조망 안으로는 드넓은 목장이 펼쳐져 있는데 앞으로 올라야 할 마루금이 저 멀리 좌측으로 이어지며 농장 위로 이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원래 낙남정맥 마루금은 대곡산에서 곧바로 농장을 가로질러 저 앞에 보이는 능선으로 올라야 하지만 현재는 농장이 그 마루금을 가로막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농장 우측 철조망을 타고 내려갔다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하는 그런 등로로 걸을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산객에게는 아쉬운 부분이지만 농장 주인에게는 별로 달갑지 않은 이방인들로서 방역이나 기타 여러가지 신경이 쓰이는 일이니 서로에게 부담이 되지 않게 조심하며 진행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계속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에 철조망이 길게 곧바로 박혀있고 그 철조망을 타고 한동안 내려가니 그 철조망과 헤어져 1차선 포장도로와 만난다.

살펴보니 이 농장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로서 포장도로로 내려서서 좌측의 농장 출입문이 있는 철조망 문을 통해 들어 갔다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우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들어가면 또 하나의 열려있는 철조망 문이 나타나는데 그곳을 통과해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한다.

그렇게 한동안 진행하면 비포장 임도가 끝나고 그 끝나는 지점에 넓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그 공터를 지나 능선으로 진입하면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공터를 지나 이제 능선으로 들어 천천히 고도를 높히니 다시 등줄기와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흘러 내리기 시작한다.

조금 오르니 성주배씨 묘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하니 잡목지대와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금새 다시 등로 우측으로 편백나무 군락지가 짧게 펼쳐진다.

그 편백나무 지대를 지나니 다시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더니 다시 편백나무 군락지 가운데로 등로가 나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등로를 타고 오르니 483봉을 넘어 진달래 군락지가 발길을 붙잡지만 금새 등로 좌측에 농장 철조망을 다시 만나 오르면 조망이 좋은 531봉에 도착해 잠시 쉬어 간다.

방금 전 지나온 대곡산과 그 아래 펼쳐진 드넓은 농장도 한눈에 들어 오는 멋진 조망처이다.

 

531봉 정상에서 지도를 꺼내 가랑비가 내리는 동안 조심스,럽게 독도를 해 보니 등로 좌측으로 나 있는 등로를 버리고 우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네려가면 될듯 하다.

배낭 내려 놓고 잠시 주위 조망을 즐겨보니 환상이다.

동쪽으로 고성군 대가면 양화리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저 멀리 양화저수지가 박무속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다.

두개의 봉화산이 대가면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형상으로 서 있고 그 앞에는 양화저수지가 박무속에서도 아름다운 자태를 내보이며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양화리는 단일 법정리로 형성된 마을로서 본래 가동면의 지역으로 옛날 이 마을에 법천사라는 큰 절이 있었던 연유로 마을명을 법천으로 불러 오다가 언제인지는 몰라도 마을 앞에 버드나무가 줄지어 우거져 있다 하여 버들양자를 붙여 양화리로 하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대가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양화리는 고성의 진산이라 일컫는 무량산(해발 581미터)의 높은 산자락이 두개의 날개를 펴 사방을 에워싼 아늑한 산골마을로 기후가 온화하고 계곡의 물은 맑고 수원도 풍부하나 농경지는 산록에 천수답이 많으며 경지정리가 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1972년도에 마을 입구에 양화저수지가 설치되어 밖에서는 마을이 잘 보이지 않는 마을이다.

맥 잇기 산행을 하면서 이렇게 들려보지 못하고 살아보지 못하는 마을을 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동안 고성군 대가면쪽 조망과 풍경을 조망한 후 다시 지나 온 남쪽의 대곡산 방향을 바라보니 그곳에도 아름다운 낙남마루금이 펼쳐져 있다.

우측 저 멀리 보이지 않는 추계재에서 급경사 능선을 타고 올라 만나는 404봉부터 좌측으로 이어져 오며 낙남정맥의 제일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대곡산까지의 능선이 아름답게 놓여 있다.

그 가운데 아래로는 정상 마루금이 있어야 하지만 거대한 농장이 가러막고 있으니 좌측 우회 능선을 타고 돌고 돌아 어렵게 이곳으로 오른 경로도 훤히 보인다.

이제 한동안 쉬고 있으니 내리는 가랑비에 온몸의 열기를 빼앗기며 한기가 밀려 와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다시 출발한다.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에는 드문 드문 편백나무들이 곧게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 있고 등로 우측으로는 방금 전 지나 온 대곡산 하산로와 그 우측으로 거대한 농장의 모습이 간간히 들어 온다.

그렇게 조심하며 내려가니 갑자기 비포장과 시멘트 포장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 삼거리 갈림 임도가 나타나고 임도 건너 능선쪽으로 낡은 무량산 등산 안내도가 서 있고 그 좌측 편백나누 숲으로 정상 낙남정맥 마루금을 알리는 띠지들이 펄럭이고 있다.

잠시 내려가 주위 임도를 사진에 담고 등산 안내도까지 남긴 후 다시 내리는 가랑비로 인해 쉬지도 못하고 편백나무 숲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계속 전진해 본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지도상에 나타나 있는 화리치 또는 화리재라는 곳인데 자료를 찾아보니 화리치나 화리재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찾을 수 없고 다만 고성군의 자료를 이용해 삼남면의 자료에서 이곳 화리치의 자료를 짧게 찾을 수 있었다.

삼산면은 소가야때에는 어례향과 박달부곡 및 번계현에 속하였으며 고려현종 9년(1018년)에 고성현으로 개칭되면서 상서면과 상남면으로 나누어져 남쪽의 상남면은 장박, 화리치, 삼봉포, 미곡, 용호, 두모치, 포교, 장지의 8개 동리를 관할하였고 서쪽의 상서면은 9개의 동리를 관할하였다.

서기 1914년 3월 1일자 조선총독부 경상남도령 제2호로 면을 병합할 때 상남면과 상서면을 합병하여 이 지역의 갈모봉, 매바위산 그리고 봉화산의 세 산을 상징하여 삼산면으로 개칭하였다.

아쉽지만 이렇게나마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남겨 본다.

 

화리치 또는 화리재에서 무량산 등산 안내도가 서 있는 좌측 능선으로 난 등로를 타고 오르니 다시 편백나무 숲이 반갑게 맞이해 주고 그곳을 통해 나즈막한 무명봉을 넘어가니 다시 등로 좌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보이더니 그 임도로 내려 선다.

그 비포장 임도로 내려서서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50여미터 진행하니 임도 우측 능선으로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화리재 0.7 Km, 정상까지 0.5 Km 및 큰재까지 1.5 Km 란 이정표가 눈에 들어 오고 이곳에서 정상 방향 능선으로 오르며 맥 산행을 이어 간다.

어짜피 큰재로 진행해야 하지만 무량산 정상을 만난 후 내려가야 하기에 비포장 임도를 좌측으로 버리고 능선으로 들어 무량산을 향해 오른다.

 

능선으로 오르니 키 작은 잡목과 키 큰 소나무들이 함께 등로를 열어 주고 조금 더 오르니 빛바랜 억새들이 겨울비와 바람에 잎새를 이리저리 흔들리며 산객을 반겨주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소나무 옆에 바위 2개가 문을 열어 놓고 산객을 기다리듯 그런 모습으로 반겨주는데 그곳을 지나자 마자 봉화산까지 2.2 Km란 이정표가 서 있고 좌측 오르막 등로쪽으로 무량산이 존재하는 무량산 갈림 삼거리이다.

먼 거리가 아니고 또한 500미터급의 나즈막한 산이지만 고성에서는 제일 높고 진산으로 대접 받는 무량산이기에 잠시 들려 인사나 하고 주위 풍경과 조망을 남기기 위해 무량산 방향으로 향한다.

 

무량산 방향으로 오르다 우측 바위 전망대에 잠시 올라 앞으로 진행해야 할 마루금을 바라보니 578봉 넘어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시원하게 조망되지만 금새 하얀 안개가 밀려 와 그 풍경마저 삼켜 버린다.

그 마루금 좌측 아래로는 화리치 넘어 만났던 임도가 산자락을 뱀처럼 둘러 이어지며 큰재로 넘어가는 모습도 보이고 그 아래로는 갈천리쪽 마을과 민가들도 내려다 보인다.

짧은 시간이지만 겨울비가 내리며 천변만화하는 자연의 힘에 그저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는 시간이 되였다.

 

한동안 그 바위 전망대에서 주위 풍경을 담은 후 서서히 오르니 바위지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의 조망 역시 멋지고 아름답지만 갑자기 밀려드는 안개로 인해 제대로 된 풍경을 담지는 못한다.

그 바위지대를 넘으니 곧바로 무량산 정상에 도착을 하고 정상석과 삼각점 그리고 무인산불감시탑을 넣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무량산의 높이는 581.4봉으로서 바다와 접한 고성군의 산역이 그렇듯이 해발 600미터 미만의 산들이 부드러운 산줄기를 서로 이어가면서 나름대로의 산역을 만들고 있다.

무량산은 고성읍 북서쪽에 위치하면서 대가면의 중심을 이루는 산으로 양화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는 형세로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낙남정맥의 산 중 고성지역 최고봉이다.

고성의 진산이며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형상으로서 멀리서 보면 이름 그대로 헤아릴 수 없는 은은한 산세를 지녔고 남릉에 봉화대가 있다.

산세는 그저 평범한 내륙산의 전형이지만 주릉을 따라 드문드문 자리잡은 암봉이 그런대로 변화를 주고 있다.

남릉에 봉화대가 아직도 있고 특히 주릉에 올라서면서 숨어있는 정상을 찾는 재미도 있다.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의 산명도 아마 쉽게 정상을 가름할 수 없는 데서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산의 이름에서 조차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무량산 정상에 서서 겨울비 내리는 가운데 잠시 망중한의 시간을 가져 본다.

 

먼저 무량산 정상에 서서 북동쪽으로 진행해야 할 낙남정맥 마루금을 담아보니 이미 그곳엔 안개가 덮혀 제대로 된 등로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 좌측으로 돌아 북쪽을 바라보니 갈천리 끝쪽 마을 넘어 학남산이 있는 송계리가 보이는데 산 정상 바로 옆에는 멋진 소나무 한그루와 바위가 사이좋게 붙어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잠시 갈천리를 찾아 보니 갈천리는 본래 대둔면의 지역으로서 내가 갈라져 있다 하여 갈내 또는 갈턴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종생마을을 병합하여 대가면 갈천리(법정리)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행정리로 외갈과 내갈 및 종생마을이 있다.

외갈천은 무량산(해발 581미터)이 서쪽을 그리고 학남산이 서북쪽을 에워싸고 있는 산간오지 마을로서 외갈천은 갈천리 입구 바깥쪽에 위치하여 산이 높고 물이 맑아 산자수려한 마을로 1985년도에 갈천저수지가 마을 위에 설치되어 경지 정리가 된 비옥한 농지로 수리가 완전하여 영농은 편리하나 지방도에서 약 2㎞ 떨어진 마을로 교통이 불편하다.

내갈천은 무량산과 학남산이 서북쪽을 에워싸고 있는 갈천리의 중심지에 위치하여 고봉이 만장흘하고 청간이 백회류라는 두암시(중국고승)와 같이 농지는 경지정리가 된 사질양토로 1985년도에 갈천 저수지가 설치되어 수원도 풍부하다. 그리고 교통은 지방도에서 약3㎞ 떨어져 있어 불편한 마을이다

이렇게 전혀 생소한 마을과 그 유래를 찾다 보니 이 산객이 전혀 들리지도 못했던 마을이였는데 왠지 모를 친숙함이 드는 것은 무엇인지...

 

방향을 바꿔 남서쪽으로 진행해온 낙남정맥 마루금을 뒤집어 오니 저 멀리 오늘 넘어 온 대곡산이 산자락에 하얀 안개의 흔적을 남기며 우뚝 솟아 있고 그 우측 산줄기를 타고 끊어질듯 이어진 산줄기가 보인다.

대곡산 정상 저 넘어로는 고성의 올망졸망한 산들이 멋진 산그리메를 만들며 이어져 있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등로 우측 저 멀리 사천의 와룡산을 찾아 보지만 흐린 날씨에 겨울비까지 내리며 그 존재감을 숨겨 버렸다.

그래도 이렇게 기대하지 않았던 풍경과 조망만으로도 만족하며 즐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무량산 정상에서 잠시나마 망중한을 즐기며 주위 풍경과 조망을 담은 후 다시 바위지대를 넘어 무량산 갈림 삼거리로 뒤돌아 내려오다 바위전망대에서 올라야 할 마루금을 바라보니 하얀 안개가 춤을 추며 멋진 선물을 선사하고 있고 그 낙남마루금 좌측 아래로는 학남산과 송계리쪽 풍경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다시 무량산 갈림 삼거리로 복귀해 이제 우측 대곡산 방향이 아닌 직진의 578봉쪽 능선으로 진입하며 진행하니 연속으로 바위 전망대가 나타나고 등로 우측 저 멀리 고성군 대가면쪽 양화저수지와 대가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며 그 주위로 펼쳐진 마을들이 길게 누워있는 모습이 참으로 고즈넉하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그 멀리에는 많은 추억이 남아 있는 통영쪽 산들과 마을이 박무속에 숨으면서도 희미한 존재감을 알리며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는 듯 하다.

 

무량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천천히 능선을 타고 진행하니 등로 좌우측으로 멋진 풍경과 조망이 펼쳐져 있지만 겨울 가랑비와 안개로 인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간이기도 하다.

계속 나타나는 바위 전망대를 넘어 진행하며 앞을 보니 578봉 위로 춤을 추듯 사라졌다 다시 산상을 맴도는 안개로 인해 천변만화를 일으키고 있어 지루하지 않게 진행을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바위지대를 지나니 멋진 소나무 몇그루가 등로에 자라고 잡목과 억새지대를 통과하니 또 다시 넓은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온 무량산 정상부의 무인산불감시탑이 훤하게 올려다 보인다.

아직도 약간의 안개인지 박무가 드리워져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이 남겨지는 순간이다.

 

등로 우측으로는 계속되는 양화저수지와 대가저수지가 희미하게 자리한 모습이 드러나 있고 등로 좌측으로는학남산 지나 연화산이 희미하다.

그렇게 멋진 조망과 풍경을 친구삼아 진행하니 다시 바위지대를 지나 소나무와 억새가 어우러진 등로가 나타나고 갑자기 등로 좌측으로 정상 1.2 Km란 이정표가 나타난다.

사진 한장 남기고 혹시나 다른 거리 표시가 있는지 살펴 보지만 보이지 않아 다시 앞으로 전진하니 겨울비에 촉촉히 젖어 있는 억새풀 넘어 바로 코 앞에 578봉이 보인다.

바위와 빛바랜 억새풀 그리고 멋진 소나무 몇그루가 등로를 채운 그곳을 천천히 걸어 오르니 고성 4-3이란 현위치 번호 이정목이 서 있는 578봉에 도착을 한다.

 

578봉 정상에는 바위봉으로서 그 우측에는 소나무 한그루가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힘들게 살아가며 이곳을 지나는 산객들에게 평생의 아름다움으로 다가 올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앞으로 올라야 할 마루금에는 여전히 하얀 안개가 너울 춤을 추고 등로 좌우측으로는 민초들이 살아가는 정겨운 풍경들도 펼쳐져 있지만 내리는 겨울비로 인해 조금은 안타까운 시간이다.

그렇게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다시 소나무 군락지에 들어 솔잎이 푹신하게 떨어진 마루금을 걸어 내려가 안부를 만난다.

그 안부에서 뚜렷한 직진의 등로를 버리고 좌측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집터인지 절터 같은 흔적이 있는 장소를 지나 곧바로 비포장 임도에 도착을 한다. 

 

비포장 임도를 건너 다시 나즈막한 능선으로 들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철조망이 쳐진 과수원이 나타나고 그 아래 저 멀리 거대한 건물들도 보인다.

그렇게 잠시 더 내려가니 다시 1차선 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니 더 넓은 포장도로와 만나는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그 삼거리 우측 도로가에는 무량산 등산 안내도가 서 있고 그 안내도에는 이곳이 바로 큰재임을 알리고 있다.

큰재는 보통 고개가 높고 크다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이곳을 보니 그런것 같지는 않은데 옛날에는 이곳에 사는 민초들에게 그렇게 보이는 고갯마루였나 보다.

산행 들머리는 1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전봇대와 가로수 한그루가 서 있는 콘크리트 옹벽을 올라 진행하면 된다.

 

짧은 민둥의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활엽수 낙엽이 등로를 채우고 주위를 돌아보니 활엽수보다는 소나무가 훨씬 더 많이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활엽수와 소나무가 혼재된 등로를 타고 비에 젖은 활엽수 낙엽을 밟으며 진행하니 다시 잡목 구간이 이어지는 551봉에 도착을 한다.

이곳은 등로 좌측으로 고성의 학남산으로 갈 수 있는 갈림 삼거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무량산과 더불어 학남산은 고성의 3대 산인 거류 구절 철마산의 그늘에 가려 덜 알려진 고향의 뒷산같은 수더분한 산으로서 주위의 낮은 산과 더불어 외면을 당하고 있는 처지지만 산세 상으로 낙남정맥길이 어깨를 통과하고 있다.
학남산 자락에는 갈천서원이 있는데 고려 공민왕때 회화면에 있던 금봉서원을 조선 숙종(1712년) 때 갈천에 중수하여 문정공 행촌 이암을 추모하여 건립했는데 문화재 자료 36호로 지정돼 있다.
여기에 고성의 산이란 산은 대부분 확인할 수 있고 당항만과 한려해상 국립공원은 도심에서 찌든 스트레스를 날려보낼 수 있을 만큼 시원하고 통쾌한 산으로 산행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조용하고 깨끗한 산길이다.

언젠가는 꼭 한번 들려보고 싶은 산이기도 하다.

 

 

계속되는 잡목지대를 지나 다시 억새가 자란 안부를 지나니 바위지대가 앞에 펼쳐진다.

겨울비에 젖어 조금은 미끄러운 바위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비에 젖은 활엽수 낙엽이 등로를 가득 메워 참으로 운치있는 길을 만들고 있다.

그러다 만난 산보님의 띠지에 잠시 옛 추억을 떠올리며 웃음을 지어 본다.

지금은 어느 산에 올라 산길을 걷고 있을지 궁금한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완만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금새 바위들이 많이 널려있는 465봉에 도착을 한다.

 

다시 바위봉을 지나 조금 더 진행을 하니 금새 바위들이 줄지어 늘어 선 등로를 타고 백운산에 도착을 한다.

넓은 공터같은 정상에는 봉분이 무너진 묘지 하나가 보이고 좌측 소나무 옆 바위에는 백운산이란 정상 표시가 되어 있다.

사진 몇장 남기고 많은 시간 보내며 환상의 조망과 풍경을 담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안개의 춤사위는 더욱 요염하게 진행되고 홀로 외롭게 산에 든 이 산객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듯 보듬어 주고 있다.

백운산은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에 있는 해발 486미터의 산으로 서쪽에는 학남산이 남쪽으로는 무량산이 북쪽으로는 성지산과 이어져 있고 정상은 웅장한 탑바위와 함께 고성읍을 굽어 볼 수 있는 전망바위로 되어 있으며 동남쪽 사면에 척정저수지가 있다.

다만 안개로 인해 고성읍을 내려다 볼 수 없음이 아쉬운 시간으로 남아 있다.

 

백운산 정상에서 남동쪽에 위치한 전망 바위에 올라 지나 온 마루금을 살펴보니 박무속에서도 환상으로 남아 있다.

우측 송전탑이 서 있는 551봉이 우뚝하고 그 좌측으로 내려가 큰재로 잠시 가라 앉았던 마루금은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578봉과 전망바위 지대를 지나 다시 우측 저 멀리 정상에 하얀 안개 모자를 쓰고 있는 무량산이 벌써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무량산 우측 하얀 안개를 덮고 있는 송구산은 독립된 산으로 낙남정맥 마루금상에는 없지만 그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듯 서 있다.

 

남쪽으로는 대가의 들녘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주위에 올망졸망한 산줄기들이 제각각 이름을 걸고 멋지게 서 있다.

넓은동과 봉황산 그리고 대가 저수지와 또 다른 봉황산이 눈에 들어 온다.

낙남정맥이 아니라면 올라 올 기회가 없었을 이곳이기에 오랫동안 눈과 가슴에 그 풍경을 담아 본다.

 

다시 전망바위를 내려 와 옆의 전망바위를 오르니 북동쪽으로 권총 모양을 한 선돌이 예쁘게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어렵게 몇장의 사진을 담은 후 내려 와 묘지와 백운산 정상 표시를 몇장 더 찍고 바위를 돌아 내려가며 맥 잇기 산행을 진행하지만 뱃속에서는 허기가 밀려오며 식사를 하고 가자고 조르고 있다.

큰재로 이어지는 도로와 아름다운 굴곡진 산하를 담은 후 백운산을 넘어 진행하니 금새 등로 우측으로 선돌 가는 등로가 보이고 그 바위 앞 공터에서 잠시 배낭 내려 놓고 맛있는 점심식사를 즐겨 본다.

 

혼자하는 식사이지만 허기가 지니 무엇인들 맛없는 것이 있으랴

맛난 식사를 즐긴 후 내려가니 이제 활엽수 낙엽이 등로를 깊게 덮고 있어 미끄럽기에 아주 조심하며 천천히 내려가 본다.

잡목 지대를 지나 앞을 보니 통영진주간 고속도로가 지나는 장전고개 넘어 저 멀리 송전탑이 줄지어 서 있는 성지산과 459봉이 안개의 춤사위에 멋지게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우측으로 밭이 보이고 곧이어 제일목장 건물이 내려다 보인다.

그 제일목장 빗돌을 담고 1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타고 내려가니 임도 좌측 저 멀리 거대한 공장 건물이 보이는데 그 지붕쪽에는 한림정공주식회사란 로고가 크게 붙어 있다.

1009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장전고개에 도착을 하니 도로 좌측으로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그리고 우측 도로 건너에는 장전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장전고개였던 것이다.

장전고개는 마당장자와 밭전자를 써서 장전고개라고 하는데 현지 주민들은 장전고개라하면 잘 모르고 장밭고개라 불러야 알 수 있는 고개이다.

이곳은 넓고 큰 밭이 많아서 장전고개라 이름 붙여졌다는 곳이기도 하다.

장전고개는 고성군 개천면과 대가면을 이어주는 1009번 지방도로가 지나며 하부로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고성3터널이 관통하고 있다.

혹시나 하고 그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를 찾아 보지만 차량이 통행하는 거대한 소음은 가깝게 들리지만 눈으로 확인은 못하고 출발한다.

 

겨울비 내리는 장전고개를 출발해 다시 억새풀이 말라 있는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 좌측에 원형의 타이어 벙커가 나타나고 곧이어 제법 넓은 그림같은 등로가 나타나며 산객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고 있다.

처음에는 잡목과 억새가 주류를 이루더니 금새 멋진 소나무들이 도열해 이 산객을 맞이하듯 그런 풍경이다.

서서히 고도를 높혀 오르니 등로 우측에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 하나를 지나 다시 그림같은 소나무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송전탑 69번 밑을 통과해 주 능선에 도착을 한다.

이제 진행하며 등로 우측을 바라보니 깍아지른듯 낭떨어지 산세가 주의를 요하고 그 우측 저 멀리 송전탑을 타고 앞으로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마루금 우측으로는 깊은 산골짜기에 신리 어은동 마을과 작은 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신리마을은 본래 고성군 서마면의 지역으로서 어은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시 마암면으로 개칭되면서 새로 마을이 이루어졌다 하여 신리로 명칭하였으며 현재 양촌과 음촌의 2개 자연마을로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리 마을은 배둔과 문산 지방도를 따라 회화면 배둔에서 8km 떨어진 마암면의 마지막 마을로 개천면 좌연리와 경계를 하고 있으며 동북쪽의 매봉산 밑에 자리하여 산이 많아 밤나무 단지가 많고 마을 앞에 조성되 농경지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경지정리가 된 비옥한 토질로 농산물의 생산이 풍부한 지대이다.

이곳에는 또한 배탄에 관한 전설이 내려오는데 아주 오랜 옛날 천지가 개벽하여 해일이 일어나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되었을 적에 이곳 산 골짜기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뒷산으로 피신을 하였다.

물이 계불어나서 재를 넘어 흘러가게 되었는데 해일과 함께 어디서 밀려온 나룻배 한척이 재를 유유히 건너지르고 있었다.

이때 산위에 있던 사람들은 이 배를 타기 위해 서로 밀고 당기고 하다가 그만 대부분 물에 빠져 죽고 몇사람만 타고 건너 갔는데 그때 그배가 지나는 것을 지켜본 사람들의 입으로 입으로 전해 오는 것이 지금까지도 배타재 또는 배티재로 그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잠시 후 지나야 할 마루금이기에 더욱 정감있게 읽어 본다.

 

그렇게 등로 우측의 신리쪽 풍경과 앞으로 내려가야 할 마루금을 구경하며 오르다 보니 바위봉으로 이뤄진 정상에 도착해 많은 띠지들의 환영을 받는다.

그 옆에는 3000산 오르기의 주인공인 한현우님이 붙여 놓은 성지산이란 띠지가 눈길을 잡지만 실제 성지산은 등로에서 우측으로 조금 더 떨어져 있음을 알기에 웃음으로 대신해 본다.

다시 조금 더 진행 해 오르니 활엽수 낙엽이 뒹구는 등로 저 앞 잡목사이로 459봉도 올려다 보인다.

쩗지만 그림같은 등로를 타고 여유롭게 걸어가는 시간이 되였다.

 

한동안 활엽수 낙엽이 떨어진 그림같은 등로를 타고 진행하며 459봉을 오르기 위해 전진하니 등로에 71번 송전탑을 통과하고 다시 잡목과 소나무가 적당히 어우러진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459봉에 도착을 하지만 이곳 역시 잡목들로 인해 조망도 없을 뿐더러 정상 표시도 없다.

조금 더 진행해 시루봉 갈림길을 지나 다시 아름다운 등로를 타고 하염없이 무심으로 걷다보니 74번 송전탑을 다시 통과한다.

밀성박씨 묘지도 지나고 소나무들이 일렬로 도열해 열병식을 해주는 마루금도 걸으며 등로 좌측으로 작은 저수지와 연화산쪽을 잡목 사이로 구경하며 몇기의 묘지를 지나니 임도같은 떡고개에 도착을 하지만 왜 떡고개인지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는다.

돌아 와 모든 자료를 찾아 보지만 왜 떡고개인지 알 수 없으니 궁금증만 더해가는 시간이다.

 

떡고개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진행하다 등로 좌측을 바라보니 작은 저수지 건너 개천면 좌령리 마을이 예쁘게 다가온다.

좌연리는 본래 고성군 서마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합과 폐합시 연동, 신평, 좌이곡을 병합하여 좌이곡과 연동의 이름을 따서 좌연리라 하여 마암면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7월 1일자 대통령령 제6542호로 개천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행정리로 좌이와 좌연의 2개 마을이 있다.

좌이마을은 좌이산(탕근봉) 아래에 조그만한 들판을 중심을 형성된 마을로 옛날에는 자라 아홉마리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고 하여 좌구실이라 불리어 왔으며 또한 좌이마을이 상, 하동으로 이루어져 있어 동명을 한문화하면서 좌이산 이름을 따서 좌이곡으로 하여 고려시대부터 개칭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좌연마을은 배치고개를 경계로 마암면 신리와 접하고 있으며 월곡과 심평, 좌구실등 산재마을로 형성되어 있고 연화산이 마을 서쪽으로 높이 솟아 있으며, 좌연 저수지에서 원류하는 하천이 마을 중심을 흐르고, 하천양쪽으로 조성되어 있는 심평들은 비교적 넓은 들판으로 토질이 양호하여 농산물의 생산이 풍부하며, 지방도가 마을을 통과하고 있어 교통도 편리하다.

이런 멋진 마을을 구경삼아 오르니 금새 278미터의 해발고도를 가지고 있는 덕산에 도착을 해 삼각점과 정상 이정표를 담아 본다.

하지만 덕산에 관한 자료 역시 찾기가 어려워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다시 덕산을 출발해 전진하니 활엽수 낙엽이 겨울비에 젖어 황홀한 마루금을 열어 주고 있다.

마치 가을날 낙엽 산행을 하듯 사뿐히 그 낙엽을 밟으며 명상에 잠겨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그러다 앞을 보니 거대한 송전탑 하나가 서 있고 그 좌측으로는 좌령리쪽 도로와 마을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갑자기 관목까지 사라진 등로를 타고 조금 더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1007번 ㅜ2차선 포장도로인 지방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그 도로를 타고 저 멀리 좌련리를 지나 북평리로 이어지는 작은 산촌인지 농촌마을들도 보인다.

그 도로 좌측 저 멀리로는 연화산과 남산도 그 존재감을 알리고 있지만 오늘은 그저 이렇게 눈으로 만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배치고개로 내려서고 잠시 주위 도로와 풍경을 담은 후 이곳 지명에 대한 공부를 해 본다.

배치고개는 1007 지방도로 마암면과 개천면을 이어주는 도로로서 좌련리의 마을과 관련한 서령으로 대신해 본다.

좌이마을은 좌이산의 주봉인 탕근봉(해발 369미터)을 중심으로 구만, 마암면과 경계를 하고 있고 동, 남, 북 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 두메에 자리한 마을로 산록지에 조성된 농경지는 비옥하나 천수답이 많으며 수원은 1955년도에 설치된 좌이소류지가 마을 윗쪽에 있어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좌이곡에 비해 좌연마을은 마을 모양이 배와 같다고 해서 마을 내의 지명들이 짐대, 배치고개, 배바위등 배와 관련된 이름들이 많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시 좌이곡과 연동의 이름을 따서 좌연리로 하였으며 좌연리를 행정마을로 분동 하면서 좌연으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배와 관련된 지명 이름들이 많은 것을 보니 이곳 역시 바다와의 연관성이 깊은 마을인듯 하다.

 

배치고개 도로를 가로질러 건넌 후 다시 능선으로 들어 전진하니 그림같은 등로가 다시 열리고 가랑비가 내리는 중에도 호젓한 마루금을 즐겨 본다.

이제 날머리도 멀지 않았고 오늘 밤 손남을 만나 이슬이 한잔 하고 잠을 자야 하기에 마음만큼은 무척 여유가 넘친다.

그렇게 조금 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밤나무 단지가 등로를 가로막고 그 밤나무 가운데를 통해 진행하며 주위 풍경을 담아 본다.

등로 좌측의 좌련리 마을이 계속 따라오고 그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친 아름모를 산줄기가 아름답게 다가온다.

  

밤나무 단지를 지나 오르니 키 작은 소나무들과 빛바랜 억새풀이 바람에 펄럭이는 안부에 도착해 혹시나 무슨 사연이 깃든 장소는 아닐까 지도를 살펴보지만 아무 이름도 없는 그거 그런 안부이다.

약간 우측으로 등로를 꺽어 진행하다 다시 좌측 능선으로 들며 전진하니 소나무와 활엽수가 적당히 조화를 이루는 등로를 타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무명봉을 넘어 잠시 내려가니 안부 지나 다시 등로 좌측으로 밤나무 단지가 나타나고 그 밤나무와 우측 능선 경계를 타고 밤나무 단지가 끝나는 지점까지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한다.

 

밤나무 밭이 끝나고 다시 능선으로 들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니 중간 중간 선답자들이 붙여 놓은 띠지들이 여러 색깔로 흔들리며 또 다른 재미를 가져다 준다.

무명봉을 넘어 내려가니 키가 큰 산죽지대가 짧게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오르니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우측으로 나즈막한 매봉산을 갈 수 있는 갈림 삼거리가 있는 무명봉을 지나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은사시나무인지를 식재한 장소가 나타나고 그 은사시나무 조림지 넘어 저 멀리 좌련리릐 윗자구실쪽 마을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렇게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농장이 나타나고 그 경계엔 파란 철조망이 쳐져 있다.

그 철조망 안에도 밤나무를 식재한 듯 보이고 그렇게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신고개이다.

성전리와 좌련리를 이어주는 1차선 포장도로인데 왜 신고개인지 알 수가 없어 아쉬운 시간이다.

 

신고개 도로를 건너 반대 능선으로 오르니 그곳 초입에 입산금지 간판이 서 있고 그 뒤를 돌아 오르니 멋진 사면 등로가 열려 있다.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하니 능선 위로 오르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온 매봉산쪽 산줄기가 시원하게 올려다 보인다.

다시 진행하니 멋진 주위 조망이 아름답고 그렇게 걷다보니 등로는 다시 소나무 군락지를 관통하며 이어져 있다.

다시 나즈막한 봉분이 있는 묘지를 지나 진행하니 370.1봉 삼각점이 있는 탕근재에 도착을 한다.

왜 봉우리에 재란 이름을 붙였을까 그리고 탕근재란 이름은 또 왜 붙었는지 궁금하기만 하지만 알 수가 없으니 안타까운 순간이다. 

 

의문을 가지며 탕근재를 지나 진행하니 다시 멋진 능선 위에 소나무들이 즐비하고 그 가운데를 통해 걸어 본다.

등로 우측에 용와리와 좁은 들판이 내려다 보이고 그렇게 한동안 진행을 하니 용와리 마을도 계속 뒤따라 온다.

용와리는 본래 고성군 구만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시 용당과 와룡을 병합하여 두 마을의 용자와 와자를 따서 용와리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행정리로 와룡과 용당의 2개 마을이 있다.

와룡마을은 마을 뒷산(용두산)의 형세가 마치 용이 누워있는 형상과 같다 하여 마을명을 와룡으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와룡마을은 마을 뒤에 용두산 자락이 두 날개를 펴 사방을 에워 싸고 있는 산록에 자리한 마을로 마을 뒤에 죽림이 울타리처럼 빽빽히 들어 서 있고 마을 앞에 농경지는 경지정리가 된 비옥한 토질로 소류지 2개소와 지하수도 3개소가 있으나 한발 때 농업용수로는 부족한 편이다.

용당 마을은 매화산 밑을 흐르는 매림천에 용소가 있었는데 용이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는 누워있는 형상(용두산)과 같다하여 와룡리라 하였고 윗마을을 와룡, 아랫마을을 용당이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용당마을은 용두산과 매화산 자락의 매림천 주변에 자리하여 마을 앞을 구만천이 흐르고 있으며 경지정리가 된 농경지는 비옥한 토질로 농업용수는 마을 위에 소류지를 이용하고 있어 농산물의 생산이 풍부한 지대이다.

또 이렇게 고성의 마을 하나를 내려다 보며 배워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져 보기도 한다.

그렇게 마을 공부를 하며 진행하니 금새 386봉인 봉광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봉광산 정상 역시 잡목과 소나무로 가로막혀 조망이 전혀 없다.

그저 정상부 풍경과 이정판만 담은 후 다시 진행하니 잡목이 어지럽게 흩어진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 잡목 지대를 지나자 다시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고 그곳을 지나 무명봉을 넘는다.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묘지가 나타나고 그 주위에는 편백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조금 더 내려가니 앞으로 올라야 할 마지막 봉우리인 필두산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편백나무 지역을 지나자 수원백씨 가족묘지 빗돌이 서 있고 곧바로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6번 지방도로의 새터재에 도착을 한다. 

이곳 새티재는 현재 속해있는 봉치리를 알아야 그 내용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봉치리는 단일 법정리로 형성된 마을로 본래 진주군 개천면의 지역으로서 새티라 하였는데 1906년에 고성군으로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시 개천면의 봉치리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봉치마을은 면사무소에서 약4㎞ 동쪽 오지에 위치하여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인 해발 약 150m나 되는 고지대의 분지로 형성된 마을로 동으로 새티재를 넘어 구만면과 경계를 하고 남으로는 고사리재를 넘어 좌이마을과 접하고 북으로 개내곡을 넘어 청광리와 접하고 있다.
농경지는 산 계곡에 형성되어 있어 천수답이 많으며 봉치소류지등 2개의 소류지가 있다

봉치리를 원래 새티라 부르고 왔는데 호칭이 상스럽다하여 새조자 또는 조치리라 부르고 왔는데 호칭이 상스럽다하여 새조자에다 궤(궤)를 씨워 새 봉자자로 하여 봉치리로 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며 최초 새티라고 하게 된 것은 아주 옛날 천지가 개벽할때 봉치골에 물이 범람하여 새티재에 새 한 마리가 앉을 정도만 남고는 모두 물에 잠기었다고 새티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여 오고 있다

이런 전설이 진실이던 아니던 그것은 큰 논란거리가 아닐 것이며 단지 그런 지세나 이유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니 그 한 하나에 큰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이제 새터재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조금 벌목된 소나무 군락지가 열려있고 등로는 왜그리 가파른지 두 다리엔 힘이 빠지고 거친 숨소리는 자꾸만 커지고 있다.

10여분 그렇게 가파르게 오르니 소나무 군락지가 끝이나고 다시 나타나는 안부를 통과한다.

안부를 지나니 다시 잡목지대가 나타나고 이제 정신적으로도 조금은 지쳐가는 시간이지만 이제 날머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남아 있는 힘을 내 본다.

 

그렇게 한동안 오르다 힘에 지쳐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봉광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조금 더 전진하니 비에 젖은 검은 평평바위가 등로에 펼쳐져 있고 그곳을 조심해 타고 오르니 완만한 능선 등로로 바뀌면서 평이하게 변해있다.

소나무 지대를 지나 계속 전진하니 드디어 오늘 마지막 봉우리인 필두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필두산 또는 필두봉을 찾아보니 산이나 봉우리 자체에 관한 정보는 찾을 수 없고 다지 그 근처의 마을 유래에서 필두봉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고성군 구만면 저연리는 본래 고성군 구만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시 저동과 연동을 병합하여 저연리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행정리로 연동과 저동의 2개마을이 있다.

연동마을은 마을 뒤의 우뚝 솟은 필두봉(해발 420미터)과 용암산(해발 399.5미터) 산록에 천역적으로 이루어진 연소가 있었는데 옛날에 도사가 이곳에 연종(연근뿌리 씨앗)을 뿌려 연이 많이 생산되었다고 연소를 연지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곳에 풍치림을 조성하여 서무골이라 칭하고 지금도 여름철이면 동민이 피서를 하는 곳으로 보존되고 있다.

그리하여 마을명도 연지명을 따서 연동이라 이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나 연지는 지금 흔적조차 없어지고 말았다.

연동마을은 북쪽은 용암산과 서쪽은 필두봉을 경계로 개천면(청광리)과 접하고 있는 마을로 옛날에 양 산록에 천연적으로 형성된 연지 주변에 조성된 마을로 마을 주변의 농경지는 비옥하나 마을 뒤에는 천수답이 많으며 곳곳에 소류지가 설치되어 있으나 수원은 좋지 못하다.

또한 그 반대편의 개천면 청광리쪽 마을 유래에서도 잠깐 그 필두봉 이름을 찾을 수 있다.

청광리 청남마을은 면 소재지로부터 동북쪽으로 약10㎞ 지점에 위치하여 마을 뒷산이 남향으로 평온하게 뻗어 내려 산록지대에 농경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마을 남쪽에 위치한 필두봉은 해발 200미터 이상의 고지대 산간지로 일조광선이 남북방향에 있기 때문에 음달과 양달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지대이다.

그리고 필두봉을 경계로 동쪽은 구만면과 장구재를 경계로 봉치리와 접하고 있다.
농경지는 일부가 고지대 산간지에 산재해 있으며 평지의 농경지는 경지정리가 된 비옥한 토질로 수원도 양호하여 농산물의 생산이 풍부하며 마을 앞을 지방도가 통과하고 있어 오지마을로서는 교통도 편리한 편이다.

어렵게 찾아 본 이름들이라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듯 하다.

 

필두봉에는 작은 돌탑과 정상 이정표가 보이고 등로는 이곳 정상에서 직진이 아닌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야 한다.

잠시 정상 부근을 사진에 담은 후 직진으로 나가 전망바위에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겨 본다.

북동쪽으로 이제부터 내려가야 할 마지막 마루금이 자세를 낮추며 이어져 있고 저 아래 송전탑을 타고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파란 지붕의 청심농장 건물 지붕도 내려다 보인다.

그 담티재 넘어 내일 새벽 올라야 할 전망바위봉과 용암산이 박무를 쓴 모습으로 우뚝 솟아 있어 쉽지 않은 산행임을 알리고 있다.

 

바위전망대의 직진 방향인 저련리에도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며 아름답게 좁은 평야에 민가들이 붙어 있고 저 멀리 깃대봉쪽 정상에도 하얀 안개가 덮혀 있다.

구만면 저연리의 연동마을은 북쪽은 용암산과 서쪽은 필두봉을 경계로 개천면(청광리)과 접하고 있는 마을로 옛날에 양 산록에 천연적으로 형성된 연지 주변에 조성된 마을로 마을 주변의 농경지는 비옥하나 마을 뒤에는 천수답이 많으며 곳곳에 소류지가 설치되어 있으나 수원은 좋지 못하다.

저동마을은 필두봉 산록지대에 형성된 마을로 북쪽은 개천면(청광리, 봉치리)과 경계를 하고 있으며 마을 주변에 형성된 농경지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천수답으로 이루워져 있어 전답 규반을 활용하여 옛날부터 모시와 대추나무가 많이 있었으며 수원은 소류지가 있으나 넉넉하지 못하다.

이렇게 아직도 겨울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조금은 일찍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마루금에서 이제 마지막 봉우리에 올라 조망을 즐기는 시간이기에 마음만은 편안하다.

 

잠시 더 필두봉에서 주위 조망과 풍경을 즐긴 후 이제 정상 우측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잡목 사이로 난 좁은 마루금을 내려가 본다.

젖은 낙엽과 진흙처럼 질척이는 내리막 급경사 등로를 타고 내려가는 길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그렇게 한동안 주의하며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온순하게 변하고 전주최씨 묘지를 지나니 밤나무와 편백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넓은 임도같은 등로가 나타난다.

그곳을 통해 조금 더 내려가니 KT 고성정연 기지국과 송전탑이 보이고 저 아래에서 차량들이 통행하는 소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금 더 내려가니 드디어 오늘 산행 날머리인 담티재에 도착을 한다.

저련리와 청광리를 이어주는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1002번 지방도로 위의 담티재, 내일 오를 산행 들머리를 확인하고 도로 주위를 사진에 담은 후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고개를 넘으니 도로 좌측으로 청심농장 입구가 보이고 강아지두어마리가 이방인을 보고 아주 심하게 짖어댄다.

그 아래 주착된 애마로 내려가 애마를 회수하며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산행 후 이곳 담티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양촌온천으로 이동해 흐른 땀을 닦아내고 새워를 하니 살 것 같다.

손님을 만나 생각보다 많은 이슬이를 마신 후 근처 잠자리에서 하룻밤을 묵어 가니 온 세상이 이 산객의 세상인 듯 즐거워 오는 시간이다.

하지만 잠은 잘 잤는데 다음날 새벽 아침 식사와 점심 도시락 준비에 어려움이 있어 결국 또 마산시로 나가 식사를 해결하다 보니 산행 출발 시간도 늦어지고 새벽에 조금은 불필요한 시간 허비를 하고 말았다.

 

내일을 위해 멋진 꿈나라로 ...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칠갑산